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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는 어느 날 한 권의 노트를 집어든다. 라이토는 이 노트에 이름과 방법을 적으면 그 사람이 그대로의 운명을 맞게 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사신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였던 것이다. 다양한 규칙을 숙지한 라이토는 노트를 활용해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라이토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전 세계의 범죄율은 70% 이상 줄고, 인터넷과 사회 구성원들은 그를 ‘키라’라 부르며 신(神)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2003년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오바타 다케시와 오바 쓰구미의 만화 ‘데스노트’는 인간의 본성에 도전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의 독자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노트를 한 번쯤 소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악행을 한 사람이 응징을 당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 로버트 스콧(1868~1912).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의 이번 주 주인공들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라이벌’로 인해 마음껏 행복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 패배자라는 주변의 시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콤플렉스. 이들에게 가상의 데스노트를 쥐어주면 어떤 내용을 적을까. 위대한 천재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 라이벌들을 살펴봤다. “흉내쟁이에 촌뜨기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라파엘로(1483~1520)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다.”(미켈란젤로의 회고문 중에서) ●주요 내용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날 그려 넣었단다. 그것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같이 더럽게 못생긴 인물로 말이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가죽장화나 옷이나 전부 지금 시대 복장인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얼굴까지 똑같이 그려 놨으니 아예 대놓고 욕 먹이는 짓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 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옆에서 내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엇보다 기분 나쁜 건 벽화의 주인공인 플라톤으로 내 필생의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려 놓았다는 거다. 우르비노(이탈리아의 시골) 출신의 촌뜨기가 처음 볼 때부터 기본이 안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파엘로 저놈은 어릴 때부터 나랑 다빈치 작품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베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더니 이젠 그걸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그냥 모방이자 습작 화가지. 후세 사람들이 저놈 그림이랑 내 그림을 같은 높이에 걸어 놓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된다. 라파엘로는 분명히 자기 고향 선배이자 후견인인 브라만테(1444~1514·성베드로 성당 설계자)와 짜고 날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나보고는 20m나 되는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고, 라파엘로한테는 편하게 집무실 벽화를 맡기다니. 난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해설 괴팍하고 추남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잘생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라파엘로를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다. 특히 라파엘로와 브라만테가 서로 짜고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자기보다 8세 어렸던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서 증오심을 나타냈다. “가증스런 교류전기 찾은 테슬라” -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만든 가증스러운 교류(交流)의 위험을 알려 주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1885년 에디슨이 직원들에게) ●주요 내용 큰일났다. 결국엔 교류가 이기고 마는 것인가. 세르비아 출신 과학자 한 명을 단지 똑똑하다는 소문만 듣고 고용했다가 내 평생의 성과가 날아가게 생겼구나. 난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해 주겠다는 테슬라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테슬라가 내 발명인 직류(直流)와는 전혀 다른 교류를 발견한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그놈이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류가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JP 모건이 자신의 대저택에 내 설비를 깔았을 때만 해도 영광은 내 것이라 믿었는데 일개 직원 나부랭이가 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에서 난 모두 졌다. 솔직히 잔머리를 좀 굴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교류를 이용해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공개실험도 해 봤고,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만들었다. 제길. 도끼 살인마 케믈러가 즉사하지 않고 구워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 업적의 집대성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국박람회장의 조명설비 입찰에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패하기도 했지.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던 나이아가라폭포 조명 설비에서도 웨스팅하우스가 GE를 눌렀고, 모든 이들은 교류를 전기로 인식하게 되겠지. 남은 건 하나뿐이다.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테슬라가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뭐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날씨를 변화시키는 장비, 순간이동 장치 등이나 만들겠다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1700만 달러나 되는 교류 로열티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이미 테슬라를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곧 잊혀지고 난 영원한 발명왕으로 남을테니까. ●해설 1915년 테슬라와 에디슨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거부했고 시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무선통신, 유도전동기,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을 개발했고 미국 전기전자학회는 테슬라에 대해 “그의 작업 결과를 없앤다면 자동차들이 멈출 것이며, 도시들이 깜깜해지고 공장들이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소문만 무성한 탕아 모차르트” - 살리에리 “당신도 알고 있죠.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내가 독살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종 직전의 살리에리가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츠 모셰레스에게) ●주요 내용 내가 풋내기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모차르트를 죽여서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나는 황제의 음악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 능력을 주체조차 못하는 애송이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이게 다 모차르트가 천재라고 떠드는 소문이 과장돼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가인 건 맞다. 나처럼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밟아 가는 성장 과정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까. 5세에 작곡을 하고 10세도 안 돼 연주회를 다녔다는 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연주회장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능력에 걸맞은 인품을 주지는 않았다. 작곡을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궁정생활을 영위할 최소한의 자제심도 없는데. 그 낭비벽과 문란한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음악가로서 나 역시 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이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 나를 위해 세 곡의 소나타를 바칠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천재와 노력파 같은 과장된 소문으로, 내 영광스러운 일생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해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 이 같은 소문이 퍼졌지만, 역사적으로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고 모차르트는 그 스스로 신장병과 요독증을 앓고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은 살리에리는 죽는 날까지 이를 괴로워했다. “날 속이고 남극점 먼저 간 아문센” - 스콧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 (스콧이 자국민에게 보낸 편지) ●주요 내용 로알 아문센(1872~1928·노르웨이), 나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북극을 탐험한다고 나를 속이더니 결국 상대를 안심시켜 놓고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헛소문을 낸 것이었나. 북극 탐험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하고, 전화도 안 받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로버트 피어리가 이미 북극점을 정복한 상태인데 왜 또 거길 가겠다고 한 건지 이상하긴 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내 기자회견과 신문기사를 보며 아문센은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곳에서라도 대영제국을 이겨보겠다는 그 얄팍한 수를 읽지 못하고 신사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려던 내가 멍청했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불과 35일이다. 난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을 평생 꿈꿔 왔는데, 그곳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인류가 남극점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 최초의 영광은 고작 한 달 남짓에 영원히 북유럽의 바이킹에게 넘어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내 실수였다. 말을 끌고 남극에 오다니. 사람의 동반자인 개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 나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 최초’라는 이름이 결코 신사다운 행동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아쉽다. ●해설 군인이었던 스콧은 1904년 남극에서 660㎞ 지점까지 접근한 기록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7년 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맞았다. 현재 남극점에는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아문센·스콧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서적] ▲서양미술의 걸작(양정무/네이버 오늘의 미술)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엘리자베스 런데이·최재경/에버리치홀딩스) ▲빛의 제국(질 존스·이충환/양문) ▲모차르트 컨스피러시(스코트 마리아니·이정임/노블마인) ▲발트슈타인 소나타(이재규/21세기북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정재승/달) ▲아문센과 스콧(피에르 마르크·배정희/비룡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K 랑너·배진아/생각의 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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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 연재 ‘디구셩미래몽’ 단재 신채호 작품”

    “대한매일 연재 ‘디구셩미래몽’ 단재 신채호 작품”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에 무기명으로 연재된 계몽소설 ‘디구셩미래몽’(地球星未來夢)이 당시 대한매일신보 주필이었던 단재 신채호가 쓴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디구셩미래몽’은 1909년 7월 15일~8월 10일 19회에 걸쳐 대한매일신보 한글판에 연재된 소설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디구셩미래몽’은 전편이 다 전해진 단재의 첫 소설이 된다. 지금까지는 1908년 ‘가정잡지’에 발표된 ‘익모초’가 단재의 첫 소설로 알려졌으나, 일부분(2회분)만 전해지고 있다. 김주현 경북대 교수는 지난 2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38회 한국현대소설학회 학술대회에서 ‘디구셩미래몽의 저자와 그 의미’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 작품의 저자가 단재 신채호라는 견해를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김영민 연세대 국문과 교수도 “디구셩미래몽의 작가를 신채호로 확정한다.”고 밝혔다. 2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김 교수는 ▲작품 속 화자인 ‘우세자’가 단재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월보와 잡지를 발간했으며 독서가 직업인 인물로 소개한 점 ▲단군을 내세워 민족 주체 의식을 강조한 점 ▲작품 속 문체가 산문 속에 운문을 넣어 리듬감을 살린 단재 특유의 문체와 닮은 점 등을 근거로 저자를 신채호라고 단정했다. 김 교수는 또 19회 연재 중 마지막회가 가장 짧으며, 새로운 인물을 제시하고 서둘러 작품을 마무리한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이 같은 점은 작품이 투고된 것이 아니라 사내 인물에 의해 쓰였다는 증거”라면서 “당시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기자였던 신채호, 양기탁, 이장훈, 장도빈 가운데 단재만 유일하게 소설을 썼던 인물”이라고 부연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1) 근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1) 근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근대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불과 10년 전까지도 일본인들은 매일같이 1000엔권 속에 그려진 그의 얼굴과 만났다. 하지만 그가 소설을 발표한 기간은 1905년 그의 나이 38세부터 49세가 되던 1916년까지 불과 12년 동안이다. 그는 천부적 재능으로 글을 썼던 사람은 아니었다. 아래의 강연에서처럼 그는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하기 위해 소설을 썼을 뿐이다. 작가에게는 소세키다움을, 독자들에게는 바로 그들 자신을 발견하기를 촉구하는 문학! 무엇이 소세키를 이런 자기 발견의 세계, 굴착(掘鑿)의 글쓰기로 이끌었을까. “여러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의 곡괭이로 광맥을 파낼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무엇인가에 맞닥뜨릴 때까지 나아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학문을 하는 사람, 교육을 받은 사람의 평생의 임무로서 혹은 10~20년의 주요한 작업으로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아아, 여기에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 간신히 파낼 수 있는 광맥을 발견했다! 이와 같은 감탄사를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토해낼 때,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자신감이 그 외침 소리와 함께 문득문득 머리를 쳐들고 오는 것은 아니겠습니까?”(학습원 강연 ‘나의 개인주의’, 1914년 11월 25일) ●‘런던의 원숭이’ 두 개의 유령을 만나다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에 태어났다. 이 해는 일본이 천황제에 바탕을 둔 근대 국민국가 일본으로 거듭나던 해다. 소세키는 어려서부터 한문학을 좋아해서 두루 한서를 읽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들에 뒤지지 않기 위해 서양의 과학 지식과 사상들을 중심으로 일본의 근대 고등교육을 시스템을 재편해 갔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소세키는 평소 문학을 좋아했던 장기를 살려 영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33세의 나이에 영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소세키는 처음부터 자신의 유학이 탐탁지 않았고 불안했다. 그가 받게 될 국비 유학은 청일전쟁(1895) 승리에 따른 배상금을 바탕으로 기획되었고, 일본 문부성은 유학생들이 최신의 제국주의 이론과 내셔널리즘을 습득해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세키는 자신의 영국 런던 유학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의 불안은 적중했다. 소세키는 1900년 9월 런던에 도착해서 두 가지 유령과 마주치게 된다. 첫 번째는 영문학이란 유령이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대학의 영문학과 수업을 들으며 최신의 영문학을 연구하려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소세키는 영어로 쓰여진 문학작품을 진지하게 연구하려는 지식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학의 수업에서는 영문법과 문학가의 약력을 겨우 설명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인들에게 영문학이란 읽으면 알 수 있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소세키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문학이란 한문학의 ‘좌국사한’, 즉 ‘춘추좌씨전’, ‘국어’, ‘사기’, ‘한서’처럼 국가의 성쇠와 역사, 그안에서 활약했던 인간을 둘러싼 담론이었다. 소세키는 런던에서 한문학과 영문학 사이에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다는 것을, 어느 곳에도 영문학이 한문학보다 낫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과 유럽의 영국은 각자 다른 필요에 의해 다른 식의 문학을 발전시켜왔을 따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문학을 신봉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영국의 변두리, 영국의 식민지, 영국을 동경하는 비서구 지역 출신들뿐이었다. 영문학은 실체도 없으면서 이들 불쌍한 열등 민족들에 횡포를 부리고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퇴화론’이라는 유령이다. 당시 런던의 학계와 신문기사들은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의 논리로 무장한 사회진화론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특히 영국인들은 퇴화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가 떠나 온 일본에서는 오직 서양을 닮기만 하면 진화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미 제국주의의 정점에 서 있던 영국에서는 몰락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했다. 막스 노르다우가 쓴 ‘퇴화론’이 1894년 영역되어 1895년에 크게 유행했는데, 이 책은 라파엘 전파나 상징주의 등의 세기말 예술이나 반기독교적인 사상을 인간종의 퇴화가 진행되는 징조라고 경고했다. 소세키는 강의실과 런던 거리 곳곳에서 자신을 흘겨보는 무수한 멸시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들의 차가운 시선은 자신의 키 작고 노란 얼굴, 얽은 곰보자국을 퇴화의 증거로 보고 있었다. 소세키는 자신을 원숭이 취급하는 백인들 앞에서 서양의 최신 학문이란 특별한 지위에 있는 특정한 인종만을 위해 작동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연구와 글쓰기 - 유령들과 싸우는 방법 소세키는 사회진화론이 낳은 이 두 유령을 물리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소외와 열등감을 떨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런던의 하숙방 안에서 최신의 철학서와 과학서를 읽으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다움을 찾는 것에 출구가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설사 그것이 세상에서는 인간사에서 퇴화의 증거로 받아들여질지라도! 소세키는 곧바로 두 개의 유령에 대적할 두 개의 전략 마련에 들어갔다. 첫째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철저히 연구하는 것이다. 그는 당대 최첨단의 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이 달성한 성과에 비추어 근대 문학이 어떤 필요에 의해 생겨났고 발달했고 그리고 퇴화할 것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은 1년 여의 유학 생활을 오로지 하숙방 안에서 각종 과학, 철학 등의 서적을 읽는 데에 몰두했다. 덕분에 런던에 유학하던 다른 일본인들 사이에는 ‘나쓰메가 미쳤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소세키는 일본인들에게마저 퇴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소세키는 이처럼 퇴화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애쓰는 태도를 ‘자기본위’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작품에서 이 태도를 강조했다. 둘째 전략은 자기본위의 길을 모색하는 문학 작품을 쓰는 것이다. 한문학도 영문학도 아니고 소세키만이 쓸 수 있는 문학!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로 했다. 귀국 직후 발표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1906.8)는 그가 품고 있던 위의 두 전략이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이름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별반 하는 일도 없이 집안에서 소일하는 주인 선생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1905년은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 열도가 들끓었던 해다. 신문 저널리즘은 날마다 일본의 제국주의를 찬미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소세키는 한가하고 찌질한 선생들이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세계를 그려보임으로써 사회진화론의 승전보에 맞서려 했다. 1907년 5월 소세키는 ‘대학이 지식을 사고파는 것이나 소설가가 글을 사고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동경제국대학 영문학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도쿄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장편을 연재했다. 대단한 집중력과 성실함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그후’(1909), ‘피안 지날 때까지’(1912), ‘행인’(1912~13), ‘마음’(1914), ‘유리문 속에서’(1915), ‘미찌쿠사’(1915), 그리고 미완작인 ‘명암’(1916) 등 작품 안에는 진화론적 고등교육 안에 갇혀서 자기 마음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이 나온다. ●근대인의 마음을 파헤치다 때때로 인물들의 얼굴에는 곰보자국이 있고, 또 많은 경우에 주인공들은 연애 후에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 모두 퇴화의 증거다. 소세키는 이들이 자기 마음의 진실을 질문하기를 유도하면서 결국 거짓된 욕망과 비겁한 자아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소세키에게 자기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사회가 칭찬할 만한 대단한 개성이나 새시대에 맞는 모범적 인간성을 구축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각자 자기만의 인생을 살라! 그 무엇보다 자기답게 살라! 소세키는 우리 각자가 지금 갖고 있는 부와 명예, 우정과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들을 철저히 점검하는 것, 자기본위를 위한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자신을 직시하는 일에 희망을 걸었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제국주의와 같은 타인본위의 삶을 거부한 수많은 동아시아의 청년과 지사들에게 독립과 자유를 꿈꾸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오선민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행복에도 지름길 있나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2003)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날 게다. 번잡하고 힘든 일들은 브루스(짐 캐리)에게 맡겨 두고 휘휘 휴가를 떠나던 신(모건 프리먼) 말이다. 전지전능한 신조차 늘 행복하지는 않은 듯하다. 신의 권능을 물려 받은 브루스가 “내 뜻대로 될지어다.”(My Will Be Done)라고 자신 있게 읊조렸어도, 정작 그가 행복해진 건 신의 권능 때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신조차 그런데 장삼이사들이야 더 말할 게 없다. 저마다 어려움을 달고 사는 세상. 행복해지는 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행복하게 사는 것 외엔. ‘행복하게 사는 법’(박완서 외 21명 지음, 숙란문인회 엮음, 연암서가 펴냄)은 여류 문인들의 행복에 관한 단상들을 모은 작품선이다.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 등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의 어릴 적 이야기와 학창 시절, 현장을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 그리고 나이듦 등을 소재로 쓴 글들을 빚어 묶었다. 작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살아온 삶의 편린들이 담백하게 녹아 있다. 한혜숙은 레인 마니아 편에서 “나는 비오는 날은 어머니 자궁 속 양수에 떠 있는 것 같이 편안해 진다.”고 했다. 그런데 수확철, 한 줌 햇살에 목말라 하는 농부들도 그럴까. 결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하고 우아한 행복이란 없다고 봐야 한다. 고(故) 박완서를 행복하게 해준 건 “사랑 받은 기억”이었다. 산골 벽촌에서 태어나 아버지 없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난 그에게 세상은 부족한 것 천지였다. 넉넉한 것이라고는 사랑밖에 없었다. 칭찬 받고 귀염 받은 기억, 그게 “이른 새벽 잠 달아난 늙은이의 마음을 한없이 행복하게 해 줬다.”(‘행복하게 사는 법’)고 그는 회고했다. 책은 행복해지는 방법, 혹은 행복으로의 지름길을 일러 주지는 않는다. 되레 ‘너 자신의 행복을 알라.’는 주문이 많다. 정연희의 ‘새와 꽃의 살림살이’가 의미심장하다. “꽃은 저 혼자 피고 저 혼자 시든다. 그냥 저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누구의 열광과 찬사와 갈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저의 때를 따라 제 삶을 살 뿐이다. 새는 저의 지저귐이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는 것을 모른다. 꽃은 저의 자태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누구에게 들려줄 일이 없는 새 소리는 그래서 영원과 이어지고, 누구의 눈에 띄기를 바라는 일이 없는 꽃은 그래서 황홀하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는 얘기다. 당신만 그걸 모를 뿐. 1만 3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지금이 평화롭습니까 현실 못 본 척하는 거겠죠”

    “지금이 평화롭습니까 현실 못 본 척하는 거겠죠”

    경기 평택시 대추리 황새울 들녘과 지구 반 바퀴 가까이 떨어진 이라크 서부 마을 함다니아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나 소설의 한 공간에 자리하고 숨가쁘게 오갔을까. 전쟁, 그리고 미국에 의해서다. 이를 문학적으로 명확히 인식한 소설가 강영(51)에 의해서다. ‘나비, 사바나로 날다’(이야기마을 펴냄)는 2006년 미군기지 건설에 맞섰던 대추리 사람들과 같은 해 미군에게 강간, 납치, 학살된 이라크 함다니아 마을의 순박한 이들을 불러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이들은 지구상에 어떤 전쟁도 정의로울 수 없음을 각각 삶으로 웅변한다. ‘나비’는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지리산’ 또는 ‘붉은 산 검은 피’나 ‘단테’와 같은 유구한 서사를 품고 있는 장편 서사시라고 해도 그만이다. 작가는 시조의 형식을 빌렸다고 말한다. 모두 2만여행을 갖고 인류의 근원적 문제인 전쟁의 다툼 가운데 개인의 문제를 성찰하고자 했으며 실제 형식적 불변의 원칙인 종장 첫 3음절을 꼬박 지켜냈다. 강영은 “잘 읽히는 소설을 넘어 노래처럼 불리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면서 독특한 형식을 차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덕분에 읽는 맛이 산다. 대추리에 터 박고 살아온 이들의 걸쭉한 입말을 담아 내는 대목에서는 한판 구성진 판소리 사설 같기도 하고, 이라크 함다니아의 잔혹한 실상을 담은 편지는 아리아를 옮겨 놓은 듯 아련하게 읽힌다. 또한 리얼리즘에 대한 원칙을 틀어쥐면서도 전통적인-혹자는 낡은, 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방식이 아닌 ‘몽환적 리얼리즘’의 실험이 엿보인다. 완성도를 한껏 높였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겠지만 현실의 치열한 지점을 직시하되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화(無化)시키는 방식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인식을 도출해 내기에 충분하다. 문장은 몽환적인 원시의 속삭임처럼 들린다. 대추리의 평화로움도, 그저 땅을 부치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열세 살 소녀의 눈에 비친 그대로, 소녀 ‘여정’의 언어로 그려진다. 여정은 일부러 숨을 꾹 참으면 나비로 변해 황새울 들녘과 이라크 함다니아, 일본의 오키나와 등 평화가 간절한 곳을 자유로이 훨훨 날아다니거나 그리운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음을 안다. 오히려 일부러 기절하며 꿈의 경지로 가지 않으면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평화’임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명한 21세기에 반미 소설이라니. ‘시대착오적’이라는 혐의를 쉬 벗어나기 어려울 성싶다. “이라크를 들여다보고, 팔레스타인을 들여다보고, 멀리 갈 것 없이 한국 사회만 봐도 평화의 가치로, 반전의 시선으로 집중하면 늘 미국이라는 존재가 나오더라고요. 기가 막히죠. 이런 상황에서 ‘반미 문학’이라는 평가에 부담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사명감만 커져요. 평생을 써도 모자랄 주제예요.” 유별난 운동권 작가는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공장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창원대 영문과에 들어가 문학수업을 받은 강영은 2002년 중편소설 ‘원더풀 패밀리’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9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첫 장편소설을 상재했으니 많이 늦은 셈이다. 과작(寡作)이었느냐는 질문에 “이 작품 외에도 장편소설만 네 편을 더 썼다.”고 답했다. 당연히 반전과 평화, 자본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단다. 그는 “지금 우리의 상태를 평화롭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라면서 “그저 못 본 척하거나 보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전체 인류중 0.1%도 되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따져 봐도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몇십명밖에 되지 않을 거예요. 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연대해서 평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보여줘야 합니다. 저에게는 소설이 그 연대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세련되게 잘 만들어진, 그러나 형식도, 글감도 뭔가 틀에 박힌 듯한 소설이 주를 이루는 시대다. 애써 꾸미지 않고 찬물에 세수한 말간 얼굴을 만난 듯 반가운 작품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펴낸 소설가 이세기

    [저자와 차 한 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펴낸 소설가 이세기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1919년 발표된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김도산 감독)부터 2007년 영화 ‘추격자’(감독·각본 나홍진)까지 다양한 의미로 한국영화사를 장식한 그 많은 영화들을 책 한 권에 소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마로니에북스 펴냄)은 영화인들조차 엄두를 못 냈던 일을 깔끔하게 해냈다. 한 세기를 관통하는 한국영화 대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저자 이세기씨를 만났다. 어떻게 1001편을 선정했는지부터 물었다. “4년 전 집필이 결정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동안 만들어진 한국영화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검색 결과 2002년 말까지 만들어진 영화가 6402편, 여기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제작된 영화 360여편을 더해서 약 6800편, 그 중에서 1001편을 골라야 한다는 답이 나왔지요.” ●1919년 첫 영화부터 2007년作까지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가 다음 숙제였다. 나름대로 기준을 정했다. 우선 해마다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제 수상작 위주로 목록을 짰다.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영화’나 영화진흥공사의 ‘좋은 영화’ 선정 작품, 대종상·청룡상·백상예술대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작을 연도별로 모았다. 여기에 각종 해외 영화제 수상작과 영화사전에 나와 있는 감독과 배우의 데뷔작 및 대표작을 추가하고 평론가들의 저서에서 비중 있게 거론된 작품들을 보탰다. 그것도 모자라 영화에 관심 있는 문화예술인 100명을 선정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영화’ ‘일반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영화’를 물었다. 선정작업과 자료조사에만 2년 가까이 소요됐다. ●국내외 수상작·원로 추천작 등 기준 이씨는 “개인의 취향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하기 위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선정했다.”면서 “결과적으로 책에 소개된 영화들은 문화예술계 원로들이 추천한 영화인 셈”이라고 말했다. 원고지 분량만 1만 1000장. 언론인 출신의 소설가인 이씨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가장 길다. 영상자료원에서 보지 못했던 옛날 영화들을 틈틈이 봐 가면서 바깥 출입도 되도록 삼가고 2년 가까이 정말 공을 들였다고 했다.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니까 이 정도면 대하소설도 너끈히 쓰겠다는 자신감까지 생기더란다. ●“바깥출입도 자제… 알기 쉽게 썼어요” “글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평이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본격적인 비평은 평론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신문의 영화리뷰를 근거로 저의 안목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수준으로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김기영, 신상옥, 이만희, 유현목 감독의 흑백 작품을 좋아한다는 그는 “문학인으로 예술 다방면에 관심이 있지만 영화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누구나와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책이 한국영화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두시간 십분’으로 당선돼 등단한 저자는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1999년까지 재직했으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차범석 연극재단 이사와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예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창작집 ‘바람과 놀며’ ‘그 다음은 침묵’과 김옥길 평전 ‘자유와 날개’, 한국 명인 100인을 소개한 ‘빛을 가꾸는 에피큐리언’, 강선영 평전 ‘여유와 금도의 춤’ 등이 있다.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생명운동’ 장일순의 삶 오롯이

    오월이 가기 전에 푸른 명언 하나 되새겨 보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껍질을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새끼가 알에서 나오는 걸 돕기 위해 바깥에서 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하거든. 그 둘이 맞아야 된다 이 말이야. 어린 아이가 신이 나서 하게 해야지, 부모가 억지로 당긴다고 되나? 안 되지”  무위당 장일순이 생전에 강조했던 교육관이다. 고(故) 리영희 선생은 평소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우리 사회에서 그런 분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무위당을 꼽았다.  무위당은 1928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키며 힘 없는 사람들의 벗으로 살았고 민주화 투쟁과 생명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교육 운동, 민주화 운동, 생명 운동에 헌신해 고향 원주를 그 중심지로 만들었다. 당대 지식인들은 스승으로 모셨지만 무위당은 자기 자신을 ‘좁쌀 한 알, 일속자(一粟子)’라고 하며 스스로 경계를 삼았다.  무위당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그만 둔 뒤 스물여섯 나이에 원주에서 성육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교육 운동을 시작한다. 교육이 죽으면 미래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다운 삶을 함께 배우고 느끼는 의식의 상호 작용이야말로 교육 운동의 본질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이틀 뒤 체포된다.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이 빌미가 됐다. 무위당은 8년 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와 춘천 형무소에서 3년동안 복역했다. 출소 뒤인 1965년 대성고등학교 학생들이 고등학생으로는 전국 최초로 한·일회담 반대집회를 열었고 군사정부는 이 일을 이유로 무위당을 대성학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 즈음 무위당은 평생 뜻을 같이한 지학순 주교를 만나면서 재해대책사업과 가톨릭 농민회 운동, 신용협동조합 설립 등에 힘을 모은다. 자연스럽게 ‘원주 캠프’가 싹트게 됐고 ‘5·16장학회 부정부패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을 거치며 ‘80년대의 광주’처럼 ‘70년대의 원주’라고 할 만큼 민주화 운동의 진원지로 자리 잡은 그 중심에 무위당이 있었다.  지난 22일은 무위당이 세상을 떠난 지 17주기를 맞은 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무위당 장일순:생명사상의 큰 스승’(이용포 지음, 작은 씨앗 펴냄)이라는 책이 나왔다. ‘농민신문’에서 중편소설 ‘성자 가로등’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한 저자는 머리말에서 “무위당 선생의 삶을 다룬 책은 여러 권 나와 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출간 동기를 밝혔다. 1만2000원   김문기자 km@seoul.co.kr
  • 질서와 무질서 속 그 어디쯤에서 또 다른 ‘나’를 찾다

    질서와 무질서 속 그 어디쯤에서 또 다른 ‘나’를 찾다

    지난해 초 우리 문학계는 한 가지 우울한 소식을 접해야 했다. 2006년 장편 역사소설 ‘제4의 제국’ 이후 소식이 뜸했던 소설가 최인호(66)가 암투병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평소 왕성한 필력으로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 온 그였기에 4년여의 침묵으로 그동안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던 중 날아든 소식이었다. 1975년부터 34년 6개월 동안 이어져 온 소설 ‘가족’의 연재를 중단한다는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 또한 팬들에게 많은 걱정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듯 소설가 최인호는 이제 새롭고 다른 모습으로 독자들과 마주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 펴냄)는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란 점에서 우선 반갑게 눈길을 끈다. 특히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와 종교소설 성향을 과감히 버리고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백제와 가야, 조선을 넘나들던 작가의 상상력이 다시 현대로 돌아온 것. 작가의 의미심장한 사고의 변화도 엿볼 수 있다. 머리말에서 그는 “이 작품은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다.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 주신다면 나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 ‘제2기 문학’에서 ‘제3기의 문학’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면서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 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창세기를 향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일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는 그동안 접해 보지 못했던 시공간, 즉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인 스스로의 혼돈의 공간을 창조해 냈다. 처제의 결혼식이 있던 그날, 주인공 K는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지난밤 술자리에서 끊겨 버린 기억과 자신의 행적을 추적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K는 계속해서 역할을 바꾸며 등장하는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부딪치고, 시공간적으로 전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간밤 자신의 행적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발을 딛고 선 현실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K는 조작과 속임수의 실체가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런 의혹을 풀기 위해 ‘나’를 만나러 떠난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작가는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실재에 배신을 당한 주인공 K가 또 다른 실재를 찾아 방황하는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의 과정을 통해 현대인이 맺고 있는 ‘관계 고리’의 부조리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치고 있다. 1만 28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첫 만남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상대방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다.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로 잘 알려진 소설가 정지아(46)의 몇몇 작품은 영문으로 번역됐지만 중국 소설가 한사오궁(韓少功·58)에게는 낯설었고,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山南水北), 장편소설 ‘마교사전’(馬橋詞典) 등 몇 작품 역시 정지아의 독서 편력에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맞춘 듯 서로 꼭 들어맞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낮고 겸손한 시선이 하나였고, 생명을 경외하는 열정도 마찬가지였다. 상업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작가의 물질적 곤궁함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눅진한 흙냄새 풍기는 농사꾼이자 치열하게 원고지 붙잡고 씨름하는 작가라는 사실이 언어의 다름, 경계의 차이를 넘어 둘을 스스럼없이 만나게 했다. 정지아, 한사오궁이 26일 서울 종로1가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를 주제로 지난 24일 개막한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계기가 됐다. 1시간 30분에 걸친 둘의 대화는 유쾌했고, 진지했다. 과학기술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선험적, 지성적, 비판적 통찰이 질문으로, 대답으로 오갔다. 둘은 통역을 제쳐 두고 만나자마자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지아는 “부모님이 모두 남한 사회가 반대하는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자였고, 그런 이야기들은 남한에서는 금기시된다.”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이들이 변화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신념은 지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을 작품에서 주로 다뤘다.”고 말을 건넸다. 한사오궁은 “오오, 그런가. 그러면 당신은 어떤가.”라고 슬쩍 되물었다. 정지아는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마 내가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눙치더니 이내 “사회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을 고쳤다. 이쯤에서부터 통역이 끼어들었다. 대화의 속도는 조금 더뎌졌지만, 더욱 깊어지고 묵직해졌다. 한사오궁은 “중국에서도 1980년대 이전 이데올로기 분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돈을 버는 좌파와 우파, 돈을 벌지 못하는 좌파와 우파로 나뉠 뿐”이라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정지아는 “기존의 이념을 뛰어넘어 세상이 시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붙잡혀 있다는 말씀이지요?”라고 말을 받은 뒤 “한 선생님은 돈을 버는 좌파인가요?”라고 한 걸음 더 내쳤다. 그는 “100만~200만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야 돈을 벌겠지만 나는 그저 10만~20만권 팔리는 정도”라면서 “그나마 중국 출판 시장이 크니까 겨우 살아가게는 한다.”고 받았다. 엄살에 가깝다. 그는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예기사 작위를 받고, 2007년 루쉰문학상을 받은 저명한 작가다. 현재 하이난성작가협회 주석이며 모옌(莫言), 위화(余華) 등과 함께 중국 문단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힌다. 그는 이 대목이 대화에 언급되자 손가락으로 ‘×자’를 만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믿지 말라. 노벨문학상은 올림픽처럼 계량해서 점수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 또한 엄살에 가깝다. ●시골생활 예찬론자끼리 만나다 정지아는 “한 선생님의 포럼 발제문 ‘수요와 욕구’를 읽고 탐욕에 대한 경계 등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면서 “10여 년 전에 시골에 내려가서 사신다고 하는데 저도 최근 시골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어떤 연유로 시골로 내려가셨나. 고향인가.”라는 한사오궁의 질문에 정지아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의 풍경이 핏줄기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여러 욕망들을 버리기 쉽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흙 만지며 야채 키우다 보면 그런 것들이 절로 사라진다. 쾌적하고 평화롭다.”고 답했다. 한사오궁은 “맑은 날 열심히 농사짓고, 비오는 날 책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생활이라고 했다(청경우독·晴耕雨讀). 손과 발, 머리를 모두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자본주의, 특히 도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고 맞장구쳤다.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은 루쉰문학상 수상 작품이며 ‘중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평까지 얻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배경이 된 후난(湖南)성 바시동(八溪洞)은 문화대혁명 시절 그가 청년 지식인으로 하방을 간 곳으로 11년 전부터 그곳에서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지내며 농사짓는 곳이다. 한사오궁은 바시동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작가로서 실존적 고민을 나누다 정지아는 “근대문학의 위기, 시장의 변화 등으로 작가들이 괴로운 시절이다. 이런 시대에 작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스럽다.”고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한사오궁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나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떡하겠나. 계속 밀고 나가고, 그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리스 신화를 보면 끊임없이 돌을 굴렸다가 떨어진 돌을 다시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시포스가 있지 않나. 사람의 인생도 똑같다. 작가의 인생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교과서 중심으로 복습 철저’와 같은 식의 모범답안이지만 정지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끝없이 써야만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는 말씀이네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고향 인구가 계속 줄어들다가 2년 전부터 미미하지만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해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부유한 삶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희망은 살아있는 것이지요. 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한사오궁은 “맞다. 나빠도 그 범위 안에서 나빠지고, 좋아도 그 범위 안에서 좋아진다. 욕망도 절망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그 과정은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위로하며 서로 희망을 나눴다. 정지아는 우직하게 사실주의 기법을 틀어쥐며 작품 활동을 하는, 문단에 몇 남지 않은 작가다. ‘빨치산의 딸’뿐 아니라 ‘행복’, ‘봄빛’, ‘숙자 언니’ 등 자본주의사회에 남은 사회주의자들의 모습과 내면을 핍진하게 풀어가는 작품을 주로 썼다. 리얼리스트 정지아 역시 사회주의자들 못지않게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사오궁은 “정 선생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다니 아쉽긴 하지만 영어로 된 책을 찾아 읽어 보겠다.”면서 “다음에 중국 오시면 꼭 연락해 달라. 내가 직접 마중나가고 또 직접 기른 토마토와 야채도 맛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아가 활짝 웃으며 “혹시 노벨문학상 받은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인가.”라고 묻자 한사오궁은 “노벨문학상보다 직접 가꾼 토마토가 더 중요하다.”고 맞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한사오궁은 정말 토마토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지아는 각자 직접 가꾼 고추와 토마토를 나누자고 했다. 땅 일구는 이들은 보통의 도시 사람보다 조금은 더 욕망을 무화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두 작가가 보여 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사오궁은… 한사오궁은 중국 후난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의 대표적 문예지 ‘줘자’(作家)로 등단했다. ‘뿌리 찾기’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심근문학(尋根文學)의 대표 주자로서 현대 중국문학의 거장이다. 작품 속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을 바탕으로 소재와 형식 등 중국의 전통을 재현하려 한다. ‘아빠, 아빠, 아빠’(爸爸爸), ‘유혹’(誘惑), ‘빈 성’(空城), ‘열렬한 책읽기’ 등의 작품이 있다. 하이난(海南)성 작가협회 주석이지만 후난성 바시동에서 살며 가을걷이가 마무리돼야 하이난다오로 돌아갈 정도로 시골 생활에 흠뻑 빠져 있다. 첫 중국인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高興建)은 중국 출신 프랑스인이다. ■ 정지아는… 정지아는 전남 구례가 고향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빨치산이었던 부모님의 실제 삶을 그려낸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1990년 실천문학에서 펴내며 등단했다. 소설은 출간 직후 판매금지됐다. 작가 자신도 3년 가까이 수배 생활을 하는 등 혹독한 필화사건을 겪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고욤나무’가 당선돼 안정적으로 ‘제도권’에 진입했다. 가족사적인 배경이 그러하듯 비극적인 현대사의 중심과 주변에서 역사를 직조했던 개인들의 상처와 희망, 불안 등을 주되게 다루고 있다.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소설상 등을 받았다. 올 초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연세(年貰) 200만원’에 집을 얻고 낮에는 밭 가꾸고 저녁에는 글쓰는 단출하고 정갈한 삶을 시작했다.
  • 권도엽 “김앤장 근무 사려깊지 못했다” 이채필 “인사청탁, 성립 안되는 소설”

    권도엽 “김앤장 근무 사려깊지 못했다” 이채필 “인사청탁, 성립 안되는 소설”

    26일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와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도덕성 검증에 초점이 맞춰졌다. 권 후보자의 경우 국토부 차관 퇴임 후 국내 1위 법률회사인 김앤장 고문으로 근무한 경력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김앤장이 지난 2월 법제처로부터 국토부 소관 법안 등에 대한 법률지원용역을 수주한 점을 거론하며 “김앤장은 입찰제안서에서 권 후보자를 ‘국토부 관련 유일한 자문위원’으로 소개했고, 평가에서 가중치를 받았다.”면서 “이런 방식의 ‘전관예우’를 근절하려면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권 후보자는 “국민들의 눈높이가 달라진 것 같다.”면서 “처신을 사려 깊게 해야 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2005년 분당 빌라와 산본 아파트 매매 과정에서 실거래가보다 낮은 기준시가로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면서 “주택거래신고제를 주도한 정책 책임자 출신으로서 장관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몰아붙였다. 권 후보자는 “법무사와 공인중개사에 위임했던 일이지만, 적절치 못한 처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후보자는 주택 거래 활성화 방안과 관련, “부동산 공급이 부족해 1가구 다주택 보유를 규제하는 정책을 펴 왔는데, 이제는 시각이 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인사청탁성 금품수수 의혹과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야권은 이 후보자가 노동부 총무과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부인이 별정직 6급 직원 김모씨로부터 인사청탁성 현금 1000만원이 든 행정봉투를 받은 의혹을 따졌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후보자가 추후 돈을 돌려줬다고는 하지만 인사를 책임지는 총무과장이 돈을 받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자는 “별정직 6급이 일반직 5급이 될 수 없다.”면서 “원천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의 유성기업 공권력 투입 사건도 도마에 올랐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유성기업 노조는 찬반투표를 통해 정당하게 파업을 했으나 사측이 바로 직장폐쇄를 하고 일주일도 안 돼 공권력이 투입됐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자는 “파업의 주체와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되나 (노조가) 시설을 점거한 것은 인정받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 등이 폐지를 요구하는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에 대해서는 “타임오프제가 자리를 잡고 복수노조 제도도 연착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부고]

    ●김회원(한화건설 기획실장)회선(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씨 모친상 황의태(전 한진해운 전무이사)이건주(변호사)씨 장모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5 ●정의석(상계백병원 교수)성희·재희씨 부친상 윤성현(수빅네오코브 대표이사)씨 장인상 홍종현(소설가·필명 정이현)씨 시부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02 ●심연종(CJ헬로비전 영동방송 카메라기자)씨 부친상 26일 강릉연세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33)646-9700, 010-6374-0448(직장 직책)씨 ●이소정씨 남편상 박종하(교육사업)씨희정씨 부친상 임채성(건국대 교수)씨 장인상 임재영(서울대 재학)씨 준영군 조부상 2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8일 오전 7시 20분, (02)2227-7556 ●권나현(㈜아발론교육 가맹사업본부장 이사)씨 별세 2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8일 (02)2258-5940 ●오진석(전 우리은행 지점장)씨태석(현대자동차 수석연구원)준석(㈜경연전람 상무이사)씨 부친상 이명규(국민은행 청량리지점장)씨 장인상 26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2)921-3299 ●이동욱(사업)동명(전 의정부지방법원장, 변호사)씨 부친상 조규신(사업)씨 조택(이화여대 교수)씨 장인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7시 (02)3410-6912 ●서동일(사업)동호(약사)씨 부친상 이재형(광주불교방송 총괄국장)씨 장인상 26일 광주보훈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62)973-9165 ●허호준(전 서울지방국세청 직세국장)씨 별세 허영진(김앤장법률사무소 변리사) 영석(미국 애보트 선임연구원)씨 부친상 이석규(SK건설 부장)씨 장인상 2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4 ●김정호·건한(칼라 앤 카피)경자·명자·영희·정숙(서원대 교수)은숙씨 부친상 정규석(한독미디어대학원 교수)이장(국민대 명예교수)최호진(삼성물산 전무)씨 장인상 2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7시 (02)3410-6920 ●김지아(서울경제신문 편집국 문화레저부 기자)씨 외조부상 김재필(사업)장덕환(의사)씨 장인상 26일 광주보훈병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62)973-9165 ●김귀연(경주초교 교사)경애·경희·경자·경선·경숙씨 모친상 예영권(유강초교 교사)정운철·조정래(영남일보 편집부국장)씨 장모상 26일 영남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53)620-4241, 019-540-5516
  • “신경숙 띄우기도 깎아내리기도 잘못 출판사 이해관계에 따른 비평 안돼”

    “신경숙 띄우기도 깎아내리기도 잘못 출판사 이해관계에 따른 비평 안돼”

    “요즘 평론가들은 글을 너무 어렵게 씁니다. 비평가의 권위는 전문적인 식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독자의 한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2006년 이후 5년 만에 문학평론집을 새로 내놓은 백낙청(73)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문단에서 주류를 이루는 현학적 문학평론의 경향에 대한 입장을 나지막한 목소리지만 단호하게 밝혔다. 25일 낮 서울 무교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문학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시대의 가치 속에서 문학을 고민해 온 선배 평론가의 일침이다.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 등 활발한 활동 속에서도 여전히 문학평론가의 자리에 있었다는 백 명예교수의 메타 비평(비평에 대한 비평)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는 “남들과 색다른 얘기를 해야만 하고, 자기만 아는 얘기를 작가에게 일깨워 줘야 한다는 식의 우월의식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라면서 “독자들끼리 나누는 얘기와 같은 평론에 오히려 작가들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독자들을 배제하는, 독자끼리 이뤄져야 할 소통을 차단하는 현학적 문학평론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상업적 이해관계에 의해 맞춤 제작되는 주례사식 비평에 대한 비판과 자성도 이어졌다. 백 명예교수는 “주례사식 비평이 요즘 더 심해진 것 같다.”면서 “특히 전에는 개인적 관계에 의해 이뤄지던 것이 요즘에는 출판사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그 자신 또한 그러한 비판의 지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출판사 창비이건, 계간지 창작과비평이건 ‘백낙청’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탓이다. 그 상징성은 여전히 거대하다. “계간지는 발행인으로 있지만, 단행본 출판사와는 전혀 관계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쪽 작가라고 해서 내놓고 띄워 주지는 않더라도 앞장서서 비판하지도 않은 부분은 있죠. 저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소설가 신경숙의 예도 들었다. 그는 “1980년대에는 신경숙을 몰랐고 나중에서야 거슬러서 모두 읽었는데 그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평론가들이 한편에서는 터무니없이 깎아내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띄우기 일변도였듯 제대로 된 비평적 논의가 부족했다.”면서 상업적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으며 엄정한 독자의 눈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마따나 ‘즐겨 자처하는’ 문학평론가의 모습이다. 그는 이날 한국 문학과 외국 문학 관련 평론들을 묶어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창비 펴냄)도 새로 내놓았다. 또한 1978년 내놓은 백낙청 문학론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의 개정 합본판을 내놓았다. ‘문학이 무엇인지’ 또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다섯 번째를 부제로 달아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확인시켰다. 백 명예교수는 “시대가 변하고 사회의 과제가 많이 변했지만 1970년대 민족문학을 얘기했던 문제의식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글을 거의 수정하지 않고 내놓았다.”고 말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걸음아 나 살려라”…‘겁나게’ 빠른 거북 포착

    “걸음아 나 살려라”…‘겁나게’ 빠른 거북 포착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간다고 느릴 거라는 편견은 이제부터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거북이가 소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 25일(현지시간) 미국 인기 인터넷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게재된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거북’(World‘s Fastest Turtle)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소개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길가를 유유히 기어가던 거북이는 영상을 촬영하며 한 남성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몸을 조금씩 호숫가로 돌리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거북이 달리기 시작해 물에 들어가기까지 불과 5초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당시 촬영하며 지켜보던 남성도 무척 놀란 듯 “오 이거 엄청 빨라!”라는 감탄사를 내뱄고 있어 영상에 실제 상황의 느낌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상이 교묘하게 조작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영상에 나온 거북이는 거북목에 속하는 민물 거북(Soft shell turtle)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자라로 잘 알려졌다. 한편 자라는 한국 토종 동물로, 조선시대 고대 소설 ‘별주부전’에서도 등장하는 등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동물이다. 하지만 자라가 공개된 영상 속의 ‘별난’ 동물만큼 발이 빠르다는 말은 전해진 바 없다. 사진=유튜브 캡처(http://youtu.be/q_xp5Bq_i7U)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부고]

    ●한용상(전 CBS 보도국장·재단이사)홍상(케이보 트레이딩 대표이사)택상(한국광기술원 본부장)복상(오사카 산업대학 교수)종상(신세계 백화점 마산점 여성팀장)씨 모친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410-6931 ●신계현(사업)씨 모친상 나효승(유진투자증권 고문)씨 장모상 2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2258-5957 ●임준원(삼정한의원 한의사)두원(심일의원 의사)기원(프리랜서)씨 모친상 고석구(신우 엔지니어링 사장)씨 장모상 강경미(아이맘 신경정신과 의사)씨 시모상 고선영(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임상강사)씨 외조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4시 30분 (02)3010-2295 ●장경현(유아이에너지 사장)씨 부인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31 ●이광재(도서출판 한미의학 대표)정우(롯데기공 팀장)씨 부친상 양방섭(한솔의학 대표)씨 장인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4시 (02)3010-2230 ●김홍배(통일방폭전기 회장)홍경(㈜큐메탈 대표)홍돈(㈜삼덕아스콘 전무)홍빈(중국 거주)씨 부친상 김율섭(사업)정훈(와코루 이사)씨 장인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410-6914 ●국명자씨 남편상 정의석(인제대의대 상계 백병원 교수)성희 재희씨 부친상 윤성현(수빅 네오코브 대표이사)씨 장인상 홍종현(소설가 정이현)씨 시부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5시 30분 (02)3410-6902 ●임정훈(롯데 중앙연구소 분석팀장)씨 모친상 이정봉(KBS 비즈니스 사장)씨 장모상 25일 한양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2290-9442
  • [문화마당] 부모 버린 자식들의 사회/공선옥 소설가

    [문화마당] 부모 버린 자식들의 사회/공선옥 소설가

    텔레비전에서 농촌이 사라졌다. 농촌을 그린 드라마가 사라졌다. 고작 ‘6시 내고향’ 정도다. 그것도 대부분 ‘소득’과 ‘미담’과 ‘맛’에 관해서다. 누가 무슨 작물을 심어서 얼마나 돈을 벌고 있는가, 그 동네의 누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얼마나 보기 좋은가, 어디에 가니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더라. 대부분이 도시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설정들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국민 80%가 도시민이라니, 이제 우리나라 농촌은 오직 도시만을 바라보고 도시사람들에게 잘보이기 위한 곳이 되어 있고 또 안돼 있다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되어야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농촌사람들을 잔뜩 세워놓고 외치게 하는 것이 ‘우리 마을로 놀러 오세요.’라니, 그걸 보는 심정이 오글오글해진다. 지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 지금 그곳의 진짜 속사정을 ‘진지하게’ 전하거나, 지금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을 ‘피 터지게’ 토론하는 프로는 없다. 어디 텔레비전뿐인가. 한국 언론 전체에서 농촌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정치에서도 농촌은 사라졌다. 농촌이 지역구인 국회의원들에게조차도 농촌은 표 얻는 곳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정말로 농촌에 관심이 있을까? 아니, 정말로 농촌을 사랑하고 있을까? 정말로, 가슴 절절하게, 진심으로,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그들의 고향을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해서, 혼자서, 구석구석 다녀본 적이 있는가? ‘고향인 농촌을 사랑해서’ 절절히 울어본 적이 있는가? 너무나 사랑해서, 중앙정부로부터 돈 따내는 일을 하면서도 또 그 돈 때문에 삶의 조건들이 망가질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뇌해 본 적이 있는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이 사탕을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사탕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것은 다시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에서 시작되고 관심은 또 자주 접촉해야만 생기는 것인데, 언론뿐 아니라, 요즘은 내가 몸 담고 있는 한국 문학판에서도 농촌이 사라졌다. 딱히 ‘농촌문학’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문학 속에 농촌을 묘사하는 장면 자체가 사라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 살다보니 농촌 출신 작가 자체가 귀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신문기자도 농촌 출신이 드물어지니, 한국 언론에서 농촌 문제를 제대로 짚어주는 기사를 보기가 어려워졌듯이, 이제 한국의 예술가 또한 대부분이 도회지 출신이다 보니, 농촌 정서를 혹은 자연의 정서를 알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를 만나는 일도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 언론이, 한국 예술이 농촌을 있어도 ‘없는 장소’로 치부하고 있을 때, 텔레비전은 소외감에 지친 농촌을 도시 사람을 호객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으로 만들고 있고, 또 그곳 출신 정치인들은 의붓자식에게 그러는 것처럼 중앙정부로부터 돈 따내서 안기는 것으로 사랑하지 않는 속내를 감추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시 사람을 호객하는 농촌이 아니고, ‘돈이나’ 바라는 농촌이 아닌, 자기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는 농촌, 문화가 있는 농촌을 진정으로 고민하는 사람 어디 없을까? 그런 언론인, 그런 정치인, 그런 예술인은 이 나라에서 진정 씨가 말라버린 것일까. 농촌을 잃어 버린다는 것은 부모를 잃어 버린 것과 같다는 말은 너무 진부한가? 그러나 도회지 사람치고 아름다운 농촌, 편안한 농촌, 자연이 주는 기쁨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회지 사람들이 막상 가지는 못해도 마음속으로 늘 꿈꾸는 것은 자연이지 않은가. 막연히라도 언젠가는 ‘돌아가서’ 쉬고 싶고 안식과 위로를 얻고 싶은 곳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니라 자연이지 않은가. 자식들이 부모 품을 그리 생각하듯이. 그러니, 도시는 자식이고 농촌은 부모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부모 버린 자식들을 올바른 자식이라고 할수 없듯이, 그런 자식들이 만든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 가오싱젠·오크리… 대문호들 한자리에

    달아날 수가 없다. 대한민국 서울, 혹은 원주, 부산 어느 한구석에 웅크린 채 혼자 글 쓰고 있더라도 세계 문학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세계적인 대문호들이 한국문학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국에 모였다. 한국문학 또한 세계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다.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출신 소설가 겸 극작가이자 연출가 가오싱젠(高行健·71),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70), 영국 계관시인 앤드루 모션, 아프리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벤 오크리 등 세계적인 작가 14명을 비롯해 김우창, 유종호, 박범신, 이문열, 구효서, 정과리, 공지영, 은희경 등 국내 작가 32명이 참가하는 제3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이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교보컨벤션홀에서 시작됐다.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포럼은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의 큰 주제 속에서 ▲문학과 세계화 ▲다매체, 세계시장, 글쓰기 ▲이데올로기와 문학 ▲다문화시대의 자아와 타자 ▲지구환경과 인간 등 다섯 개 주제로 나눠 국내외 작가들이 발제와 토론, 질의 응답 시간을 갖는다. 김우창 서울국제문학포럼 조직위원장은 기조강연을 통해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초청해 세계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더욱 심도 있게 논의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더불어 작가 상호 간 교류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인도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25일 앤드루 모션, 앙투완 콩파뇽(프랑스), 26일 요코 다와다(일본), 잉고 슐체(독일) 등의 기자회견이 열린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고] ‘부산 美문화원 방화 사건’ 주도 김은숙씨 하늘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을 주도했던 김은숙씨가 위암 투병 중 24일 오전 7시 40분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숨졌다. 52세. 김씨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미국이 눈감고 있는 것에 분노해 82년 문부식·김현장씨 등 부산 지역 대학생들과 함께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켰다. 이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5년 8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 왔다. 지난달에는 임수경씨 등 지인들이 그녀의 쾌유를 비는 ‘작은 음악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김씨의 동생은 “어제 갑자기 하혈을 하고 의식을 잃으면서 상태가 나빠졌다.”면서 “숨지기 직전 산소호흡기를 뗀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큰 소리로 ‘사랑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김씨를 곁에서 후원해온 통일운동가 임수경씨는 이날 오전 트위터에 “김은숙님의 온가족이 밤새 병상을 지켰다.”면서 “주치의 선생님이 야간 당직이라 수시로 환자 상태를 봐 주셨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 제발 힘을 내세요.”라고 쾌유를 비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러나 김씨는 2시간여 뒤 눈을 감았다. 김씨는 감옥에서 나온 뒤 소설과 번역서를 펴내며 두 딸과 생계를 이어 갔다. 지난해 위암 말기 판정을 받기 전까지 서울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자녀를 돌보는 ‘참 신나는 학교’를 운영했다. 김씨는 지난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사단법인 오월어머니집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어머니들에게 주는 ‘제5회 오월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김씨의 빈소는 녹색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 오전 9시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박경리문학상 ‘한국의 노벨상’으로 만든다

    박경리문학상 ‘한국의 노벨상’으로 만든다

    대하장편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1926~2008) 선생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논란 끝에 1억원 상금의 국제문학상으로 만들어진다. 첫 회인 올해는 국내 작가로 한정하지만, 내년부터는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할 계획이다. 토지문화재단은 23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성에 갇힌 문학상이 아닌, 세계 문학의 흐름에 이바지하며 교류, 소통할 수 있는 글로벌한 문학상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면서 “올해 첫 시상은 한국 문학을 대상으로 하지만 내년부터는 세계 문학의 흐름을 대표할 수 있는 예술적 완성도, 사회적 기여도 등을 감안해 세계 작가들로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10월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열리는 박경리 문학제에 즈음해 첫 수상자를 발표하고 26~29일 문학제 기간 동안 시상식을 연다. 심사위원단 명단은 수상자 발표 때까지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 박경리 선생 타계 직후부터 문학상 제정을 둘러싼 열기는 뜨거웠다. 그가 28년 동안 지냈던 원주, 실제 고향인 경남 통영, ‘토지’의 무대가 된 경남 하동 등 3개 시·군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며 지역을 순회하는 문학상을 검토했다. 하지만 여러 논란을 거친 뒤 토지문화재단 운영위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머무르며 생명사상을 몸소 실천한 공간인 토지문화관을 중심으로 문학상 제정 및 선양사업을 추진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인 김영주 재단 이사장은 “식민, 분단 등 질곡의 시대를 살아온 박경리 선생은 생전 국내 문학이 민족의 문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세계 문학과 교감하고 그 외연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랐다.”면서 “어느 한 지역에 묶어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는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은 작품도 수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15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와 일제 강점기 아시아의 소국(小國) 조선이라는 공간과 위상의 차이. 이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메디치’로 불리며 이탈리아, 아니 중세 유럽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오른쪽·1449~1492)와 자국의 역사책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간송(澗松) 전형필(왼쪽·1906~1962).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는 너무나 다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과 예술을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남겼다. 만약 그들이 막대한 재산을 흥청망청 쓰는 데만 골몰했다면, 또는 재산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중세미술사와 한국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로렌조 메디치와 전형필이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유산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갖다가 지난주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후 한국미술의 전통과 매력에 흠뻑 빠진 직장인 윤정은(33·여)씨가 궁금한 점을 모아 인터뷰에 나섰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문이었고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됐나. -메디치 내 증조할아버지인 토스카나 대공(大公) 코지모는 피렌체인들 사이에서 ‘국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행업을 통해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가문의 수장이 됐을 때 내 나이 고작 20세였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특히 우리 가문은 직물산업의 핵심이었던 ‘백반’(양모 세척제)을 움직였고 메디치 은행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교회였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피렌체가 메디치였고, 피렌체의 모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법대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서울 일대는 물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를 지나면서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미곡상을 했는데 내가 24세에 물려받은 논은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했다.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였는데,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였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였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수치 환산이고 당시 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년에 나만큼 버는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윤정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쓰다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집안만 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실패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메디치 할아버지 코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렌체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난 그들과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10대 때부터 이미 유럽 각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덕에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로마어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스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을 정도였으니. 내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돈이 많은 시민이었지만 피렌체 안팎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됐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금욕적인 삶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난 바람둥이였고, 수많은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자에게는 그런 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전형필 난 원래 경성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호사가 될 것을 강권하셨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만든 법을 연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가업인 장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부모의 상을 당한 상황에서 본인이 즐기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수집(蒐集)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메디치 ‘위대한 로렌조’라는 호칭과 달리 난 콤플렉스가 많았다. 심한 주걱턱이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었다. 코도 낮았고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난 비올라와 류트(당시의 현악기), 승마술, 매사냥까지 섭렵했고 유려한 글솜씨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예술에 대한 조예는 못난 겉모습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를 지원해 그들의 작품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했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난 할아버지나 아버지,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고 동양의 예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 사회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휘문고보 시절 은사였던 고희동(1886~1965·서양화가) 선생과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서예가)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 선생은 나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왜놈들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위창 선생은 나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주셨고, 내 수집활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작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떤 눈을 갖춰야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윤정은> 돈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취미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데, 다른 목적은 없었나. -메디치 (웃음) 난 상인이었지만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에게 100% 순수한 호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밀라노에 보내고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보냈다. 그 공국들에 내가 후원하던 예술가를 보내는 게 좋은 작품을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호의를 베풀면서 실은 정치를 한 거였다. 솔직히 내가 예술가를 후원한 돈은 대부분 내가 피렌체의 공직을 겸하면서 공금으로 썼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내 수집품을 모으는 데 집중적으로 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지는 않았나. -전형필 왜 수집에 나섰느냐고 위창 선생이 물었을 때 난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이란 믿음이 없었는데도 수집을 계속했을지는 나도 자신이 없지만, 난 반드시 독립될 것으로 믿었다. 1933년 성북동에 터를 구해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팔려 갔던 고려석탑을 다시 사 오면서 난 한번 유출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해방된 후에는 이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에 더 이상 빼앗길 염려가 없어진 후에는 조선 사람이 모은 것은 모두 조선 것이기에 해방 후에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에만 전념했다. →<윤정은> 소장품들에 대해 묻겠다. 두 사람의 노력은 우피치와 간송 미술관으로 남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물관의 개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메디치 우피치는 영어로 하면 ‘오피스’(사무실)를 뜻한다. 그곳은 내 증조부 코지모의 집무실이다. 물론 내가 가장 주목받기는 하지만 우피치 수집품은 우리 가문 전체의 공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부터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소장 규모 자체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조토의 ‘성모자’,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도록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피치를 박물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 이후로 200여년이 지난 후 메디치가 최후의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토스카나 공국에 기증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겼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어느 것도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형필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운학문매병’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있다. 1937년에는 영국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청자 20점을 40만원에 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가치는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것이 원래 내가 수집을 시작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잡스러운 그림을 그린다고 폄하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을 화성(畫聖)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내 최대의 성과로 생각한다. 그럼 내가 묻겠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나. →윤정은 당대 최고의 좋은 자재로 지었다는 미술관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30년대의 근대식 2층 건물과 창틀에는 현대미술관처럼 멋진 조명도 없고 첨단 잠금장치도 없다. 화장실 냄새도 코를 찌른다. 아이들이 유리에 온갖 손자국을 내며 코를 박고 보는 모습은 유럽 미술관의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고,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전시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상의 것이라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바티칸이나 루브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친구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간송이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참고서적 간송 전형필/이충렬/김영사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최완수·한상남/샘터 조용헌의 명문가/조용헌/랜덤하우스코리아 메디치 머니/팀 팍스·황소연 옮김/청림출판 메디치‘의 음모/피터 왓슨·김미형 옮김/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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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돋보기] 조광래 감독을 서자로 만들 텐가

    한국 축구대표팀 조광래(57) 감독. 요즘 표현을 빌리면 참 ‘스마트한’ 축구인이다. 지난해 7월 취임과 동시에 ‘패싱게임’을 들고 나올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투지’ ‘투혼’ ‘정신력’ 등 기존 한국 축구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추상적인 단어는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표팀의 색깔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동시에 ‘2014 브라질월드컵 8강 이상’이라는 명확한 목표도 천명했다. 또 이를 위한 로드맵도 내놨다. 그러면서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다. 모든 일에 애매함이 없었다.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에게는 국가대표가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 항목별로 명확히 나눠 제시했다. 평가전이 끝난 뒤에는 경기에 대한 평가와 보완해야 할 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이메일을 보내 다음 소집 때까지 잊지 말고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유럽파들의 경기력을 체크하러 가서 만난 차두리에게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보폭을 줄여 보라.”는 세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한 결론, 무심한 듯 내뱉는 한마디 뒤에는 깊은 고민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복잡한 사고의 과정이 존재한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어떤 것도 결코 스마트할 수 없다. 쓰기 쉬운 물건일수록 속은 복잡하다. 23일 다음 달 세르비아 및 가나와의 평가전 대표 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작심한 듯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를 비판하는 조 감독의 논리 또한 단순하고 명쾌했다. 그는 ▲기술위가 대표팀 감독 고유의 권한인 선수 선발권을 침범하지 말 것 ▲대표팀 감독에 대한 언론 인터뷰 통제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사실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충혈된 눈은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했다. 축구계의 대선배들이 포진한 기술위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축구계의 ‘재야 인사’로 분류됐던 그였기에 전날 밤 무수히 뒤척인 것은 당연한 일. 또 앞서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표팀 코치진이 제출한 차출 대상 선수 명단을 내팽개쳤다고 하니, 이날 조 감독의 심정은 조선 시대의 적서 차별 등 부당한 제도를 비판한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 판서 앞에 엎드린 길동이’와 다를 바가 없었을 테다. 그는 “이 위원장의 공식 답변을 검토하고 대표팀 감독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국 축구와 대표팀의 미래를 위해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위원장은 스마트하지 못했다. 애매한 협회 규정을 근거로 자기도 선수 선발 권한이 있다고 강변했다. 이로써 이제껏 명확하지 않았던 권한과 책임을 정리할 기회가 축구계 선·후배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됐다. 고민이 필요한 순간 기분이 앞서 일은 더 꼬여 버렸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서로 마주 앉아 시간을 되돌려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욕할 사람은 없다. 어쨌든 지금은 이게 가장 스마트한 해결책이다. 조 감독을 홍길동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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