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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회고록(回顧錄)/최용규 논설위원

    회고록 집필로 훨씬 더 유명해진 이는 영국의 정치가 원스턴 처칠(1874~1965)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 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01년 프랑스 시인 르네 쉴리프뤼돔(1839~1907)부터 2010년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이르기까지 노벨문학상 100여년 역사에 시인·소설가가 아닌 정치인이 이 상을 받기는 처칠이 유일하다. 정치가·웅변가 외에 저술가란 ‘고급스러운 훈장’이 붙은 것도 회고록 덕이다. 총리 재임시절 받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혜경궁 홍씨(1735~1815)의 ‘한중록’(閑中錄)은 우리가 자랑할 만한 ‘국보급’ 자전적 회고록이다. 71세 때인 1805년(순조 5년)에 썼다. 남편인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생을 회고했다. 한문본에는 泣血錄(읍혈록)으로 되어 있다. 눈물을 쏟고 슬피 울면서 기록했다는 뜻이리라. 회고록은 더 이상 한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예술·스포츠 스타에 이르기까지 외연이 크게 확대됐다. 회고록이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자전적 에세이로 명찰을 바꿔 달기도 한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표현의 절제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폭로투성이다. 미국 백악관 인턴이던 모니카 르윈스키는 1995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했다. ‘모니카 이야기’다. 클린턴은 탄핵, 이혼 위기로까지 몰렸다. 올봄 국내에서는 신정아의 자전적 에세이 ‘4001’이 화제를 몰고 왔다. 회고록은 과거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인생 전반을 다루는 자서전과는 차이가 있다. 자기가 겪은 일을 기록하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자기 해명서나 변명서가 될 개연성이 높다. 1992년 대선 때 민자당 후보인 YS(김영삼)에게 선거자금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고백한 ‘노태우 회고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5·17 비상계엄 확대를 ‘서울의 인명·재산 보호를 위한 치안유지 차원’, 5·18 광주민주화 운동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라고도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도 회고록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복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 등의 형태로 자신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힐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군사반란의 주범으로 한국현대사에 큰 오점을 남긴 5·6공 최고통치자들이 자기들의 역사를 고쳐 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문화마당] 이외수, 인천아트플랫폼/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이외수, 인천아트플랫폼/신동호 시인

    고등학교 까까머리 문예부 시절에 춘천에는 아주 유명한 작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닭갈비촌으로 유명한 춘천 명동, 나름으로 모던한 거리에 신문지 한 장 깔아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춘천 소양로에는 미군기지 캠프페이지가 있었는데, 그곳을 근거로 형성된 유곽 장미촌은 그의 소설 ‘꿈꾸는 식물’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곳. 세상에서 버림받은 누이들과 2년여, 긴 언덕길 작은 골목에서 그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답니다. 아이쿠! 하루는 이층집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작은 방에 쇠창살이 쳐져 있었던 겁니다.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벽에는 온통 먹물로 새겨 넣은 글씨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세상과 등진 채 쇠창살 사이로 먹을 것과 배설물이 오가는 사이, 그 세월 그가 완성한 소설은 바로 ‘칼’이었습니다. 광기가 아니고는 지날 수 없는 시간이었다는 걸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2년,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머니 저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했을 때 하셨던 말. “너 이외수처럼 될래?”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기인처럼, 클래식 다방의 한구석에서 ‘고삐리’들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품은, 그러나 그저 지저분하고 세상과 담을 쌓은 듯한 풍모. 그것이 춘천의 어머니들이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이라서, 그래서 몰래 시를 썼는데, 그래서 대학에서는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친 작가들을 선망하면서 살아왔는데, 모더니즘과 사실주의 틈에서 우아한 작가가 되고 싶어서 방황도 했는데. 이 잘난 주요 20개국(G20) 시대에 그분들은 다 어디를 가셨나요. 그즈음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들었고 또 읽었고. 시인과 작가는, 또 예술가는 ‘25시’에 등장하는 토끼처럼, ‘소설 속의 토끼는 잠수함에서 키워집니다. 토끼가 눈을 껌벅거리며 졸기 시작하면 잠수함 안의 공기가 희박하다는 상황입니다. 선원들은 토끼의 상태에 따라 산소를 공급합니다. 생존과 직결된 것이지요.’ 예술가의 역할이 바로 토끼와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시대와 사회의 부조리를 먼저 자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운 시대를 무난히 건너 가게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걸 시인의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때로 죽음도 불사해야 할 터입니다. 작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이 글을 쓰는 지금 또다시 연평도 인근에서 포격이 있었다는 뉴스가 들립니다-, 이토록 분명한 분쟁과 불행 앞에서 급속도로 한쪽으로 쏠린 대한민국의 정서는 그 어떤 소수 의견도 용납할 수 없었으니. 상식적으로 분쟁보다는 평화가 우리들의 일상에 안전을 보장하겠지만, 그저 언젠가는 이 시대가 지나가겠지… 무력하게 지나왔는데. 지금 인천으로 가는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인천아트플랫폼’이라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기존의 미술관하고는 아주 다른 풍경을 만납니다. 들어가는 문도 나오는 문도 없는, 아무 곳이나 길이라 여기면 거기가 입구입니다. 이곳은 과거 대한통운과 일본의 우선주식회사 같은 개항기 건물을 그대로 전시관으로 만든 곳입니다. 여기에서 ‘분쟁의 바다 평화의 바다’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달 28일까지입니다. 최원식 선생이 “정부가 머뭇거리면 시민이 먼저, 서울이 주저하면 지방이 먼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평화의 노둣돌을 놓을 일이다.”라면서 평화선언을 했고, 화가들과 작가들이 토끼를 자처했습니다. 이도 없었다면 우린 무력으로만 평화가 온다고 여겼겠지요? 저는 한원석의 설치작품 ‘화해’가 좋았습니다만-수천 개의 스피커에 서해 5도 주민들의 육성을 담았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진정성이 담긴 작품들이 모두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좀 늦었지만 어머니에게 대답해야겠습니다. “이외수처럼 되려고요.” 요즘 모두, 시인과 작가 예술가들이 입을 닫고 있을 때 ‘청춘’들과 대화하는 이외수가, ‘청춘’들에게 스스로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이외수가, 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고자 하는 저 인천아트플랫폼의 작가들이, “되려고요.”라고.
  • [문화계 블로그] ‘신정아 사건’은 왜 계속 회자되나

    [문화계 블로그] ‘신정아 사건’은 왜 계속 회자되나

    이번엔 소설이다. 2008년 결심 공판을 끝으로 기억에서 사라지는가 싶었던 ‘신정아 사건’은 지난 3월 신씨가 직접 썼다는 수필 ‘4001’에 이어 드라마 ‘미스 리플리’에서 또다시 다뤄졌다. 서하진(51)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신작 장편소설 ‘나나’의 여주인공 나나를 신정아를 연상시키는 욕망의 화신으로 설정했다. 서 교수는 9일 “문학소재로 봤을 때 신정아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말했다. 그는 신정아란 여성을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예쁜 여자는 거짓말을 해도 사정이 있겠지.’란 한국 사람들의 속물적 통념을 실행에 옮긴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학위, 간판, 헛된 이름에 목매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정아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가진 기본적인 문제점을 다 폭발시켰기 때문에 자꾸 이슈가 된다.”면서 “우리 사회가 욕망에 휘둘리고 있으며, 신정아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맹목적으로 폼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나나는 거짓말을 할 때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여성이다. 누구든 단박에 사로잡을 정도로 빼어난 매력을 지닌 나나는 거짓말을 일삼고 학력마저 위조하며 성공의 동아줄을 움켜쥔다. 유부녀임에도 자신의 매력을 앞세워 여러 남자를 유혹한다. 비엔날레 총감독이 되려고 고급 공무원에게 접근하고 이복 오빠마저 욕망을 채우는 대상으로 삼는다. 서 교수는 “처음부터 신정아 사건을 염두에 두고 팜므 파탈 여주인공을 설정하지는 않았다.”며 “소설과 미술 모두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매체이므로 미술을 소설에 끌어들이다가 욕망에 사로잡힌 여성을 묘사했다.”고 덧붙였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주변 사람을 나락에 빠뜨리는 팜므 파탈은 문학사적으로도 많은 작가가 공들여 묘사해 온 캐릭터다. 우선 나나도 에밀 졸라(1840~1902)의 장편 소설 ‘나나’와 이름이 같다. 졸라의 나나는 창녀로 주변 남자들을 죄다 유혹하지만 모성애만은 잃지 않아 결국 아들에게서 천연두를 옮는다. 서 교수는 “사람들이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우리 속에 기본적으로 악이 있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쁘면 죄의식 없이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악에 대한 동경은 마음속에 선함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종로, 인문학을 만나다

    종로구가 오는 9월부터 11월까지 성신여대 평생교육원과 함께 ‘살아 있는 인문학 박물관-한국 근·현대사와 종로’라는 주제로 종로의 문학과 역사, 예술에 대한 강의를 실시한다. 인문학에 대한 주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다. 지역 전체가 아니라 종로로 특화했다. ‘종로에서 소설을 읽다’, ‘소설가 구보씨 따라 종로 걷기’ 등 문학 중심 강의와 ‘근대 서울의 형성과 종로 건축 유산’, ‘인문학 스캔들, 성균관 유생들의 일화’ 등 역사 중심 강의, 일반 인문학 강의로 구분된다. 김영종 구청장은 “종로를 걷다 보면 길거리 곳곳에서 역사와 문학 등 인문학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며 “종로 자체가 인문학의 보배”라고 강조했다. 건축학도 출신인 그는 “인문학은 상상력의 원천”이라면서 “구정에서도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종로를 만들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주민들을 상대로 한 강의이면서도 품격 높은 여러 강좌를 준비했다. ‘찻잔 속의 인문학’과 ‘옷장 속의 인문학’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인문학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종로의 정치사’를 통해서는 4·19혁명 등 민주주의와 인권이 싹튼 종로의 거리를 접할 수 있다. 강사 대부분은 시인, 작가, 평론가로 구성됐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명사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으로 유명한 소설가 박태원씨의 차남 재영씨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독도 광고를 낸 홍보전문가 서경덕씨도 강사로 나선다. 서씨는 ‘세계를 향한 무한도전’ 강의를 통해 홍보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오는 25일까지 선착순 150명만 접수한다. 만 20세 이상 성인이면 종로구민이 아니어도 된다. 수강료는 3만원이고, 모두 12회의 강의로 구성됐다. 과정 이수자에게는 성신여대 총장 명의의 수료증을 수여하고, 평생교육이력제 3학점을 부여한다. 강의는 9월 9일부터 11월 25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성신여대 수정캠퍼스에서 열린다. 수강 신청은 구 교육체육과(731-1692)나 동 주민센터,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홈페이지(http://life.sungshin.ac.kr)에서 신청하면 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이제는 공공외교다] 佛주재 日문화원 직원 30명 vs 佛한국문화원 직원 8명

    [이제는 공공외교다] 佛주재 日문화원 직원 30명 vs 佛한국문화원 직원 8명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내에 위치한 일본 문화원은 평일이라 그런지 직원들을 빼고는 한적했다. 공간이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일본 관련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처럼 꾸며 놓았다. 책꽂이에는 일본 언어와 역사를 비롯해 각종 만화책들이 빼곡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책꽂이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는 헝가리어로 돼 있는 책들이라는 점이었다. 헝가리인 직원에게 헝가리어로 된 일본 관련 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다. “200권이 넘는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헝가리어로 된 한국 관련 책은 현재 15권이 안 된다. 해외문화홍보원이 올해 초 발간한 ‘재외 한국문화원 현황’에 따르면 한국문화원은 지난해까지 설립된 16곳을 통틀어 현지어 도서 비율이 10.7%에 불과하다. 그나마 비영어권은 더 열악하다. 영국과 미국에 소재한 문화원을 제외한 12곳 평균은 7.0%에 그친다. 역사적 요인으로 번역본이 상대적으로 많은 일본까지 빼면 3.9%로 떨어진다. 베트남, 카자흐스탄, 나이지리아는 아예 한 권도 없고, 폴란드도 0.6%뿐이다. 심지어 교역량 1위를 차지하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한국문화원도 중국어 도서 비중은 각각 4%와 2%여서 충격을 더한다. 프랑스 주재 일본문화원의 경우 전체 인력은 30명이 넘고 이 가운데 3분의1이 현지 채용이다. 반면 인근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은 원장 포함 8명(현지인 5명)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문화원 원장실은 창문 너머로 에펠탑이 한눈에 보이지만 한국문화원장실은 지하 1층에 그것도 물건이 잔뜩 쌓인 복도 끝에 위치해 있다는 것도 굳이 비교하자면 엄청난 차이였다. 일본국제교류기금 한국 사무소 혼다 오사무 소장은 “한국 소설을 외국에 소개하려면 해외 한국문학전공자와 좋은 번역자가 필요하다.”면서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의 장점은 변화에 역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이나 때론 (정책도) 서둘러 바꾸려 하다 보니 문화 외교가 꽃피기 전에 지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 [저자와 차 한 잔] “충무공이 수재? 무과 6년 공부하고도 첫 낙방”

    [저자와 차 한 잔] “충무공이 수재? 무과 6년 공부하고도 첫 낙방”

    충무공 이순신. 그를 모르는 한국인도 있을까? 교과서에서부터 위인전, 소설, 영화, 드라마까지 늘 곁에 있었던 이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그 물음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이가 있다.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펴냄)를 낸 박종평 골든에이지 대표. 그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으로 찾아 들어가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삶의 속살을 끄집어내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박 대표는 ‘새로운 이순신’을 찾아내기 위해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같은 관련 자료는 물론 시와 편지의 행간까지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런 작업 끝에 장군을 넘어서서 한 시대를 경영했던 CEO 이순신을 찾아냈다. ●상관에게 대들다 파직당하기도 그는 이순신 장군에게 다가서게 된 동기를 ‘궁금증’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궁금한 게 무척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도 그가 위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당위성만 말하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거꾸로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난중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동안 알려졌던 이순신과 다른 이순신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 대표가 새로 발견한 이순신은 처음부터 큰 인물은 아니었다. 아니, ‘별 볼일 없는’ 청년에 가까웠다. “문과를 준비하다 스물두 살 때 무과 공부로 바꿨는데 스물여덟에 본 첫 과거에서 낙방했습니다. 본질은 6년이나 공부해서 낙방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지요.” 이순신의 별 볼일 없는 행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 과거에 낙방한 뒤 방황하다가 서른두 살에 무과에 급제했는데 급제 뒤에도 문제는 늘 그를 따라다닙니다. 상관에게 대들다가 파직당하기도 하고…. 변방을 떠돌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보통사람 이순신’이 어떻게 ‘영웅 이순신’이 되었을까. 그 변화를 이끈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박 대표는 시간의 힘과 자기성찰, 그리고 올곧은 성품에서 답을 찾는다. “부러지고 깨지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관찰했습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저돌적이고 강직한 성격을 에너지로 바꿔놓았던 것이지요. 중요한 건 이순신 장군이 근본적으로 바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시련을 넘어 완성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겁니다.” 박 대표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깊이 파고든 것은, 굴곡 많았던 자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방송사에서 일하다 학문에 목이 말라 사표를 냈더니 IMF가 터졌고, 공부를 포기한 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찾아 출판사를 차리고…. 그러던 중 가장 힘든 시기에 난중일기 완역판을 만나면서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 “도전하고 좌절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타인과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차에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고독한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아, 이 사람도 그렇게 살았구나.’ 하는 동질성을 느꼈다고 할까요. 그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낙관주의자이자 홍보맨 그가 찾아낸 이순신은 지독한 낙관주의자이면서 관찰과 설득의 달인이자 브랜드 홍보에 능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무엇보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대로 산 사람’이었다. 죽음조차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시련과 싸우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결국 세상을 바꾼 사람이 이순신 장군입니다. 리더십이 실종된 이 시대에 배워야 할 게 많은 삶이었습니다.” 이호준 편집위원 sagang@seoul.co.kr
  • 국내 커피점 110년 역사

    국내 커피점 110년 역사

    1896년 아관파천 당시 커피를 처음 맛본 고종은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 ‘정관헌’을 만들어 커피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왕실의 처음이자 마지막 다방이다. 당시 커피는 거무튀튀한 것이 한약 같다고 해서 서양에서 온 탕국이라는 ‘양탕(洋湯)국’, 영어 발음을 중국식으로 차용한 ‘가배’(??)라고 불렸다. 1888년에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인천 대불호텔에 근대식 다방이 문을 연 뒤에 독일 여인 손탁이 서울 정동에 지은 손탁호텔(1902년), 조선호텔(1914년) 등에 다방이 잇따라 들어섰다. 다방의 첫 전성기는 1920,30년대.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인 모던보이나 모던걸들은 다방에서 자유연애를 꿈꿨고, 문화예술인들은 아지트로 삼았다. 영화감독 이경손이 서울 종로에 개업한 ‘카카듀’(1927년)가 한국인이 처음 세운 다방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 특히 다방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건축가 이순석이 운영하던 ‘낙랑파라’(1931년)의 단골이면서 스스로 ‘제비’, ‘쯔루’, ‘무기’ 등의 옥호를 지닌 다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6·25 전쟁 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 커피가 보급되고, 전화기가 한 구석을 차지하면서 다방 출입구는 다시 북적였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수입품인 커피를 자제하자.”고 호소하면서 다방은 된서리를 맞았다. 이때 돌파구가 됐던 것이 바로 달걀. 달걀 노른자와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아침밥 대용으로 판매한 ‘모닝커피’가 인기를 끌면서 다시 다방에는 손님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 직장이나 집에서 손쉽게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와 자판기가 등장하면서 또다시 다방은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공략 계층에 따라 젊은층이 많이 찾는 음악다방과 일명 ‘레지’로 불리는 여성 종업원을 고용한 다방으로, 성격이 확실하게 양분됐다. 원두커피를 내세우며 1988년에 문을 연 ‘쟈뎅’도 초기 프랜차이즈로 각광받더니 원두 원산지와 가공법을 다채롭게 활용하는 커피 전문점에 자리를 내줬다. 그 시절 다방과 오늘의 커피전문점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커피뿐. 누군가를 기다리며 음악을 신청하거나 탁자 위 성냥으로 탑을 쌓는 모습은 간 데 없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거나 책장을 넘기며 뭔가를 끼적이는 모습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게 110년이 커피향과 함께 흘렀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Weekend inside] 증권가 ‘찌라시’의 세계

    [Weekend inside] 증권가 ‘찌라시’의 세계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널리 알려진 오랜 격언이다. 풍문은 어디서 들을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증권가 찌라시’(사설 정보지). 하지만 실제 여의도 증권가에서 생산된 찌라시는 없다는 것이 증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보는 찌라시가 되어 공표되는 순간 힘을 잃는다. 고급 정보는 고수끼리 독점되어 메신저를 통해 은밀히 유통된다. 일반 투자자들의 귀에 들어갈때면 이미 고수들은 수익을 챙긴 후라는 이야기다. 증시 전문가들은 오히려 한탕을 노리며 풍문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조회 공시’를 눈여겨 보길 권한다. 한국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개적으로 해당 기업에 갖가지 풍문에 대한 사실 여부를 묻는 제도로, 적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공개 자료여서 이를 이용해 큰돈을 벌 수는 없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손해를 막는 데는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보도·공공기관 정보도 출처로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267건의 풍문을 해당 기업에 조회 공시했다. 기업의 80.5%(215건)가 풍문을 인정했고, 19.5%(52건)가 부정했다. 조회 공시가 들어간 풍문은 이미 신빙성이 있다는 의미다. ‘감사의견’, ‘부도’, ‘횡령·배임’ 등 악재성 루머에 대한 조회 공시를 요구받은 130개 기업 중 70.8%(92건)가 상장폐지나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등 부실화됐다. 횡령·배임으로 조회 공시된 57건 중 47.5%(29건)는 상장폐지를 진행 중이다. 거래소가 풍문을 듣는 경로는 다양하다. 주식을 발행하려는 기업이 금융감독원에 증권 발행 신청을 할 때 자금 사용처가 불분명하면 금감원은 거래소에 이를 통보한다. 특히 소규모 회사에서 해외 광산 등 불명확한 투자를 하기 위해 증자를 한다면 횡령을 의심받기 쉽다. 언론보도나 증권사 및 공공기관의 정보도 풍문의 출처로 쓰인다. 이외 금융시장에 은밀히 돌아다니는 정보들도 수집된다. 조회 공시의 적중률이 높다 보니 조회 공시를 계기로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4월 상장폐지된 스톰이앤에프는 1월 24일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에 따른 피소설로 조회 공시를 요구 받았는데, 같은 달 19일 417원이었던 주가는 27일 395원으로 5.3% 하락했다. 역시 지난 4월 상장폐지된 유니텍 전자는 전·현직 대표의 횡령으로 조회공시가 요구된 지난해 12월 2일을 기점으로 3거래일 전과 3거래일을 비교할 때 43%나 폭락했다. 반면 대기업의 주가는 조회 공시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4월 12일 횡령설에 대해 조회공시를 했지만 주가는 이날 16만 5000원에서 사흘 뒤인 15일 19만 1000원으로 오히려 크게 올랐다. 교보증권 역시 지난달 29일 횡령배임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했지만 주가에 큰 변동은 없었다. ●풍문으로 한탕을 찾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고 거래소의 조회 공시가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 따라서는 찌라시에 떠도는 풍문을 조회 공시했다고 거래소에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증시에서 풍문의 힘은 절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래소는 풍문에 의해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조회 공시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최근에는 조회 공시를 하는 풍문이 찌라시에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재 찌라시는 공식적으로 유통되는 2개와 비공식적인 10개 정도가 있는데 모두 여의도 증권가 밖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20년 이상 증권업계에 종사한 관계자는 5일 “이제 고급 정보는 메신저의 일종인 미스리나 야후를 통해 증권가에서도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은밀히 공유된다.”면서 “정보는 공표되는 순간 수익을 얻을 힘을 잃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찌라시가 담아 내는 정보가 금융 정보보다는 연예계의 가십을 다루는 데 집중하면서 그 영향력은 더욱 줄고 있다. 증권업계 종사자 김모(43)씨는 “벤처기업 거품 이후에 풍문을 통해 한탕을 벌려는 사람도 많이 줄었고 펀드 등 간접투자상품의 등장으로 고급 정보를 찾는 일반인도 그만큼 감소했다.”면서 “요즘 금융소비자들은 증권사 직원이 전하는 풍문도 과대포장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곤 한다.”고 말했다. ●찌라시를 단속하라, 하지만… 찌라시는 1980년대에는 각 증권사가 ‘월요 정보팀’, ‘화요 정보팀’ 식으로 요일마다 나뉘어 술집 등에서 국회의원 보좌관, 정보 경찰, 국정원, 기자 등을 만나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정보보고’용으로 만들던 문건이다. 따라서 허위 사실을 유포해도 책임질 이가 없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 우려를 틈타 찌라시에 오른 기업 자금난 소문이 경제계를 강타했고, 올해에는 건설사 부도 블랙리스트가 돌면서 관련 회사 주가가 떨어졌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3월 ‘금융회사 전자장비 이용에 대한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발표하고 오는 10월부터 금융회사는 임직원들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이메일이나 메신저의 사용기록과 내용을 보관·관리토록 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개인용 메일·메신저를 이용하는 경우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반응이다. 정보로 움직이는 증권시장에서 정보를 통제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반응도 있다. 실제 금감원의 조치 이후 지난 5월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소송이 알려지면서 미확인 악성 루머를 유포하는 찌라시가 오히려 늘었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의 조치는 찌라시를 근절하기보다는 증권사 내부의 정보나 고객정보 등이 찌라시라는 이름으로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근본적으로 투자자들이 ‘풍문의 두 얼굴’을 명확히 알고 기업의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주·임주형기자 kdlrudwn@seoul.co.kr
  • “애들 생각하면 골치 아파”…위대한 학자 다윈의 편지를 엿보다

    “애들 생각하면 골치 아파”…위대한 학자 다윈의 편지를 엿보다

    “형 아이가 열 명이 되었다는 것을 축하도 하지만 삼가 애도를 보내. 우리는 아이가 일곱이야. 아들이 다섯인데, 우리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아들 하나가 딸 셋 키우는 것만큼 어렵다는 거였어. 그러니 우리는 아이들 열일곱을 키우는 셈이야. 아이들이 뭐 해먹고 살지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 세상에 희망이라곤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이상은 찰스 다윈(1809~1882)이 1852년 성직자였던 육촌 폭스 윌리엄 다윈에게 보낸 편지다. 요즘 아버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했던 다윈은 자연 선택에 기반을 둔 진화론을 확립, 인류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을 변화시킨 지성사의 몇 안 되는 거인으로 평가받는다. ‘찰스 다윈 서간집: 기원, 진화’(전 2권, 김학영 옮김, 살림 펴냄)는 평생 2000명이 넘는 사람과 수만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다윈의 편지 가운데 그의 내면의 삶을 알 수 있는 것을 엄선했다. 다윈은 학창 시절과 비글호를 타고 떠난 항해를 제외하면 거의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조용한 은둔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론 하루에 열 통이나 되는 편지를 항해 동료, 친척, 동료 학자, 정원사, 사육사 등과 주고받았던 ‘소통의 달인’이었다. 당시 한 통에 1페니로 잘 확립되어 있었던 우편 제도를 다윈은 적절하게 활용했던 셈. 요즘 세상으로 오면 다윈은 소설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다윈의 삶에 대해서는 공통으로 떠오르는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신학생 출신으로 유물론적 진화론의 주창자가 된 다윈은 자신의 종교적 전환에 대해 고뇌하는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단호한 개종자였을까. 자연 선택의 아이디어를 발견한 후 ‘종의 기원’ 출간까지 20년이 걸린 것은 그가 우유부단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평처럼 다윈은 친구와 동료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 주장을 방어했던 교묘한 책략가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을까. 우선 종교적 문제부터 편지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면, 다윈은 “선생께서 제게 ‘인간’에 대해서도 논할 것인지 묻습니다만, 수많은 편견에 둘러싸인 그 문제는 피하고 싶습니다. 다만, 자연 학자에게 인간은 가장 흥미로운 주제라는 점은 온전히 인정합니다.”라고 자연선택 이론을 독자적으로 정립했던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에게 1857년 답장을 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 출간 이후에 “‘내 책이 다소 이단적이라기보다 불가피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았고 ‘창세기’ 따위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사실들만을 제시했고 그 사실에서 매우 정당한 결론을 이끌어 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까?”라고 친구와 상의하기도 한다. 다윈은 평생 병마에 시달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각종 통증이었는데 면역 체계 이상으로 다양한 알레르기 증상에 시달렸다는 가설이 있다. 8살에 어머니를 잃은 탓에 다윈의 심리가 불안했다는 가설도 있고, 최근에는 그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아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다윈은 식물의 수정에 관한 연구에 37년, 난초에 관한 연구에 32년, 범생설에 관한 유전학 연구에 27년을 보낼 정도로 오직 연구에 완벽을 기했을 뿐, ‘종의 기원’ 출간에 우유부단했던 것은 아니라고 ‘찰스 다윈 서간집’의 감수를 맡은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설명했다. 게다가 다윈은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인 에마는 유명한 도자기 제조업체인 웨지우드 집안 출신이어서 요즘 학자들처럼 정규직을 갖고자 논문 찍어내는 기계가 될 필요도 없었다. ‘종의 기원’이 완성되기 전에 다윈이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로부터 자기의 학설과 똑같은 취지의 논문을 받은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다윈은 친구의 도움으로 리네 학회에서 윌리스와 함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다윈은 경쟁자에게 선점의 명예를 빼앗길까 신경 곤두선 모습을 드러내곤 곧 후회하기도 한다. 다윈은 1859년 윌리스에게 “선생의 생각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제가 선생의 이론을 읽고 나서 바꾼 글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으셔도 좋습니다.”란 편지를 보낸다. 연대 순으로 정리된 다윈의 편지들은 흥미롭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편지는 위대한 학자의 지적 여정의 기록이자 한 편의 생생한 드라마다. 각 권 2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 지천명(知天命)/주병철 논설위원

    공자가 위(衛)나라를 방문할 때는 이 나라의 대부인 거백옥이란 사람의 집에 머물렀다. 공자는 옳은 일은 행하되 옳지 않은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거백옥의 됨됨이를 칭송했다. 거백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이 50에 이르러 49년간의 잘못(非)을 알게 되었다.” 공자는 만년에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서 “나는···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라고 회고했다. 나이 50을 일컫는 지천명은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이다. 쉰살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무게감이 묻어날 때다. 인생의 황금기란 말도 있다. 혹자는 ‘내가 무엇을 한다.’라고 믿었던 능동태가 실은 ‘님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하게 되었다.’는 수동태임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했다. 지천명이란 곧 ‘신의 뜻’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쉰살 예찬으로 가득하다. 50대 중반에 ‘50세, 빛나는 삶을 살다’라는 첫 저서를 펴낸 에릭 뒤랑은 “나이 50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삶의 과정이지 시들어가는 인생의 내리막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학자는 “인간 수명이 길어져 이제는 50세 전후에 은퇴를 한다면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일 뿐”이라며 후반 50년에 희망을 건다. 공자가 ‘매 10년마다 질적 도약’을 한 사실에 주목해 이를 법칙으로 승화시킨 현대 경영사상가 맬컴 글래드웰(M Gladwell)의 분석도 흥미롭다. 이른바 10년간 1만 시간 법칙이다. 빌 게이츠, 비틀스 등 어떤 분야든 창의와 창조의 핵심에 이르려면 하루 3시간씩 1만 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이를 단순 계산하면 1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공자의 ‘10년 도약’이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그대로 먹혀들고 있다니 참 놀랄 만한 일이다. 어제로 딱 쉰살, 지천명이 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근황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취임 초기 새까만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고 다소 늙어보이는 그의 표정에 수심과 연륜이 공존해 있단다.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한 합의안이 상원에서 가까스로 통과되자마자 글로벌 더블딥 논란이 오바마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73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공자가 살아 돌아온다면 재선 가도에 뛰어든 ‘지천명 오바마’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68세 주광일 전 서울고검장 워싱턴DC 변호사 최고령 합격

    68세 주광일 전 서울고검장 워싱턴DC 변호사 최고령 합격

    주광일 전 서울고검장이 68세의 나이에 미국 워싱턴DC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화제다. 지난 2월 워싱턴DC에서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과 이틀에 걸쳐 시험을 치른 주 전 고검장은 최근 합격 통보를 받았으며 오는 8일 워싱턴DC 항소법원에서 최고령 합격자로서 변호사 선서를 앞두고 있다. 1965년 사법시험에 만 22세의 최연소로 합격했을 정도로 ‘공부’라면 일가견이 있는 그는 시드니 셸던의 소설 등 영어 소설책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끝에 지금은 영어 신문을 한국어 신문만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실력이 됐다고 한다. 주 전 검사장은 3일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불혹(40세)을 넘어서면 도전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상의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하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면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미국 변호사 시험에 도전하려는 학생들뿐 아니라 주경야독하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험에서는 응시자 중 합격률이 48%였다. 주 전 고검장은 1974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조지타운대 등에서 공부했고, 영어실력이 뛰어나 1978년 박동선 사건 때 한국 측 통역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장(현 국민권익위원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은퇴했으며 세종대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재스민혁명’ 월드컵 예선 최대변수 되나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혁명의 무기”라고 했다. 반면 이탈리아의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에 혁명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전두환 독재 시절 광주 무등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을 목 놓아 불러 본 사람들, 스페인 프랑코 독재 시절 레알 마드리드를 맞이한 FC바르셀로나를 죽어라 응원했던 사람들은 누가 옳은 이야기를 한 건지 판단할 자격이 있는 걸까. ●요르단 등 중동국가들 4개조 배정 의외로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그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올 초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돼 중동으로 번져간 민주화 바람 때문이다. 이른바 ‘재스민 혁명’은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바레인, 시리아 등에도 영향을 줬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 각국 정부는 약속이나 한 듯 강경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들 나라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 진출했다. 조 배정 결과 요르단과 이라크는 중국과 함께 A조에 속했다. 시리아는 일본과 북한이 있는 C조에, 사우디아라비아는 호주가 있는 D조에, 바레인과 이란은 E조에 포함됐다. 특히 반정부 시위가 최고조에 이른 시리아에서는 홈 경기 개최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미 지난 6월 올림픽 2차 예선과 7월 월드컵 2차 예선 개최를 허가하지 않았고, 경기는 중립지인 요르단에서 열렸다. 3차 예선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민중의 민주화 요구는 폭력에 억눌려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았을 뿐, 언제든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가운데 수만명의 군중이 밀집하는 축구 국가 대항전은 정권 입장에서 엄청난 부담이다. 음주와 말초적 쾌락 추구를 죄악으로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축구는 그야말로 ‘삶의 유일한 낙’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축구 경기장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행동이 앞서도 되는 공간이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작은 마찰이 불똥으로 작용, 사그라진 민주화의 불길을 다시 살릴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홈 경기 개최가 가능한 나라라도 돌발 사태를 대비해 경기장 주변에 군대와 경찰을 빼곡히 배치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할 것이 뻔하다. 경기를 시원하게 이긴다면 에코의 말이 맞아떨어질 공산이 크겠지만, 이기든 지든 소요가 발생한다면 게바라의 말처럼 될 것이다. 어쨌든 원정팀에는 마이너스 요소다. ●C조 3차 예선 첫 경기는 北·日 맞대결 C조는 다른 문제도 안고 있다. 북한과 일본의 맞대결이다. 일본은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독자 제재의 일환으로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했다. 원칙대로라면 경기를 열지 못한다. 제3국에서 해야 한다. 지난해 1월 이 같은 이유로 일본과 마찰을 빚던 북한은 여자축구 동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을 철회했던 전례도 있다. 공교롭게도 다음 달 2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C조 3차 예선 첫 경기는 일본과 북한의 맞대결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쌓았지만, 정작 그 결과물에 비해 주인공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유도 다양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기록이 갖는 한계 때문에, 패망한 국가의 군주는 승자가 지워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히틀러가 폴크스바겐의 스테디셀러 ‘비틀’을 만든 주역이라든가, 그가 얼마나 문학적인 인물이었는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은 누구도 말하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자연과학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만 인류의 삶을 바꿀 만한 발견이나 발명을 해낸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천재이거나, 은둔형 외톨이여서 앞으로 나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17세기의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다. 그는 짧은 수식을 적은 후 “나는 이 문제를 풀 놀라운 증명을 찾아냈지만, 여백이 부족해 적지 않는다.”라고 썼다. 인류가 흔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불리는 이 문제를 푸는 데는 그 후로 무려 357년이 걸렸다. 이 밖에도 “다 알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결과만 내놓거나 “이걸 어떻게 풀었는지 내가 왜 설명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잠적해버린 천재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남긴 업적과 함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생물학자들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과학자 중 업적에 비해 본인이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으로 ‘그레고어 요한 멘델(1822~1884)’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근대 유전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그는 왜 그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주 주인공은 지난달부터 전 세계 네티즌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전학자이자 수도사 멘델이다. 놀라운 발견을 한 그는 왜 철저하게 ‘재야의 과학자’로 머물러야 했을까. 그리고 최근 불고 있는 멘델에 대한 관심은 무엇 때문일까. 인터뷰가 진행되자 멘델은 오히려 “오늘날 내가 받고 있는 존경은 사실 어이없는 행운 덕분”이라고 털어놓았는데…. →중·고등학교 생물교과서를 덮은 이후 사실 처음으로 당신을 만나는 것 같다. 최근 전 세계 포털의 과학자 검색 순위에서 당신이 급상승했다. 완두콩도 검색어에 오르고 말이다. -나도 이상해서 좀 알아봤더니, 구글이 깜찍한 짓을 했더구먼. 지난달 20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그날 구글이 로고를 ‘완두콩’으로 만들었더라고. 뭐 탄생 189주년이니 딱히 기념할 만한 시점도 아닌데, 워낙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애들이니. →거 참 질문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답변이다. 검색어 덕분에 당신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 의외로 알려진 게 없더라. 뉴턴이나 다윈 같은 과학자들은 몇 페이지가 모자랄 정도인데 말이다. 검색창에 당신 이름을 넣으면 ‘멘델의 법칙’이나 나오지 당신 얘기는 ‘수도사였다’ ‘유전학의 창시자다’ ‘완두콩을 가지고 실험했다’ 이 정도가 고작이던데. 궁금한 점 위주로 개인 신상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자. 무엇보다 수도사가 왜 과학실험을 한 건가. -그게 사실은 거꾸로란 말이지. 난 과수원집에서 태어났거든. 어렸을 때부터 나무 품종을 개량하면서 유전학자의 꿈을 키웠고 아버지도 내 교육에 열성적이었어. 문제는 집에서 내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있는 처지가 안됐다는 거였지. 심지어 여동생 결혼자금까지 다 써버릴 정도였으니. 근데 대학 교수가 나보고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가 되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별로 망설임도 없이 사제 시험을 보고 수도사가 됐지. 마침 내가 있던 성 토마스 수도원 원장은 신학 외에 과학이나 예술을 공부하도록 장려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었어. →근데 사실 당신 낙제생이었다는, 그것도 생물에서 망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수도사들은 근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했는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중학교 교사 자격시험에서 생물과목 과락을 해서 자격증을 못 땄다. 착한 원장님께서 날 밀어준다고 빈 대학에서 특별 과외까지 시켜 줬는데, 또다시 떨어져서 아예 교사의 꿈은 접었어. 근데 대학을 다니면서 당시 유행하던 다윈의 학설을 접했고 그게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은 계기가 됐지. →아 당신보다 유명한 과학자와 동시대를 살았군. 다윈이 당신에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어. 수도원 안쪽 뜰에 있는 작은 정원에 완두를 심고, 만 그루 넘게 심고 키우고를 반복하면서 하나하나 결과를 기록해나갔어. 생색을 좀 내자면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 완두 꽃가루를 모두 손으로 수분시켰고, 내가 원하는 종끼리 수분시키기 위해서 일일이 다 봉지를 씌웠지. 그 실험만 무려 8년을 꾸준하게 계속했고. 그 결과 1865년에 대를 물려도 변하지 않는 형질이 있다는 것, 형질 사이에 우성과 열성이 있다는 것, 독립적으로 유전이 되는 형질이 있다는 것 등을 밝혀낼 수 있었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부모의 형질이 왜 잡종인 자손에게 나타나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가 그걸 알아낸 거다.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하나. →왜 하필 완두였나. -뭐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완두콩이 번식이 잘되고 하나의 가지에 콩이 많아서였다고 해야 하나. 물론 실험이 망하면 먹을 수도 있었고. 근데 결과를 보면, 정말 운 좋게도 유전형질이 딱 갈라지는 재료를 우연찮게 선택했던 것 같다. →근데 당신은 동네 학회에서도 무참히 밟혔다. 허무하지 않았나. -조그마한 소도시에 있는 자연과학협회 회원들이 내 연구결과를 이해나 했겠나. 딱히 큰 학회에 발표하지도 않았고, 다윈한테만 우편으로 보낸 정도였는데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사실 더 열받는 건 내가 다윈한테 보낸 논문이, 다윈이 죽은 후에 방에서 뜯지도 않은 채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지. 만약에 다윈이 그걸 뜯어봤다면 창조론자들과 맞설 강력한 무기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자기 복이 그 정도였구나 하고 생각해야지 뭐. 근데 나도 몇 년 뒤에 수도원장이 되고, 수도원이 세금 때문에 정부랑 싸우는데 앞장서면서 딱히 과학에 관심을 쓸 시간이 없어졌어. 결국 내 연구는 내 시대에는 개인적인 만족으로 끝난 셈이지. →당신 연구의 존재감이 얼마나 없었으면 당신이 죽은 후에 당신 동료들이 논문하고 연구 자료까지 아무 생각없이 불태웠을까. 근데 이쯤에서 핵심적인 질문을 해야겠다. 당신의 논문에는 ‘유전’이나 ‘법칙’이라는 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도대체 ‘멘델의 법칙’은 어디서 나온 건가. -그게 사람 운인 것 같다. 내가 했던 연구가 한 35년 정도 아무도 모르게 묻혀 있었는데 말이지. 과학자들도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지 1900년쯤에 과학자 세명이 나랑 비슷한 실험을 했거든. 그래서 결과를 얻었는데, 누가 먼저인지 당장 싸워야 할 판이 된 거야. 사실 과학자들이 ‘최초’ 어지간히 좋아하잖아. 그 와중에 어이없게 내가 예전에 썼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논문 ‘식물 잡종에 관한 실험’이 도서관에서 발견된 거지. 싸우기 귀찮으니까 그 영예는 전부 이미 죽은 나한테 돌려버리기로 합의를 본 거고. 하긴 내용도 거기서 거기였다고 하더구먼. →당신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뒤늦게 빛을 본 건가. -근데 그건 또 아니고. 난 잘 몰랐는데, 내가 좀 글을 못 썼던 모양이야. 후대 학자들이 심지어 “멘델은 시대를 앞서간 게 아니고, 19세기의 학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건 글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했겠느냐고. →그래도 당신은 오늘날 위대한 유전학자로 좋은 점만 부각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영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어. 베이트슨은 내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불명확한 대목은 손질하고, 원문도 좀 바꿔놓았지. 그 결과 당시 과학계를 주도하던 영국이나 미국의 연구자들은 절대적으로 시대를 앞서간 것으로 보이는 멘델만을 만나고 칭송하게 된 거지. 오히려 내가 사용한 독일어권에서는 인정받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이를 입증하지. →불운한 학자로 당신을 골랐는데, 듣다 보니 정작 엄청난 행운아 아닌가. -완두콩 1만 그루를 8년 동안 기른 정성은 보답받을 만하다고 생각해. 공부하기 위해서 수도사가 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런 노력을 하고도 내가 그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서 애쓰지 않고 스스로 만족했기 때문에 중학교 교사자격시험조차 떨어진 내가 교과서에 길이 남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참고문헌 -교과서를 만든 과학자들(손영운/글담)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른스트 페터 피셔·전대호/해나무) -멘델이 들려주는 유전이야기(황신영/자음과모음) -멘델, 현대 유전학의 창시자(비체슬라프 오렐·한국유전학회/전파과학사) -유전학의 탄생과 멘델(에드워드 에델슨·최돈찬/바다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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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아진 “내 안의 것을 풀어내는 방법 바로 글쓰기죠”

    심아진 “내 안의 것을 풀어내는 방법 바로 글쓰기죠”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더 편했지만, 10년간 개인적인 일로 소설 쓰기를 중단했던 심아진(39)이 등단 12년 만에 첫 소설집 ‘숨을 쉬다’(홍영사 펴냄)를 냈다. 그가 문단에 얼굴을 알린 작품은 1999년 계간지 ‘21세기 문학’에 실린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다. ‘차 마시는’은 외교관이 되라는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살아온 남자 준이 어머니의 부음에 갑자기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내용이다. 외무고시 2차까지 합격했지만, 면접을 앞두고 어머니가 하던 만화방 주인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남자의 곁에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때로는 미워하며 때로는 사랑하면서 지켜봐 온 친구 2명이 있다. 이야기의 결말이 준이란 남자의 독백으로 완성된다는 점은 서사란 소설의 형식을 위협한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인생이 아니라, 처음으로 내가 만들어갈 인생을 준비해야 하거든.…무엇보다 아무런 의도 없이, 생을 가슴 가득 느끼며 차를 마시는 시간을 배우고 싶어.”란 준의 말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만하다. 또 다른 단편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는 학원이란 하나의 세계 속에서 이전투구처럼 물고 뜯는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학원 강사들의 월급을 예사로 떼먹는 학원 원장은 밖에서 보기에는 어려운 학생을 돕고 강사를 자식처럼 대하는 성인군자다. 그러나 실상은 학원 1층의 주점 겸 찻집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 학생들을 부려 먹고 돈도 주지 않는 악덕 기업주다. 원장은 월급 때문에 불만이 생긴 신임 강사에게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라는 말을 써가며 자신이 결백하다고 현혹한다. 사주를 봐준다며 팔자가 ‘소처럼 부지런하고 우직한 사람’이라고 주입해 사회 초년생을 어르기도 한다. 심아진은 “항상 글을 쓰고 싶었지만 상황이 안 되어 못 썼을 뿐”이라며 “인간 심리의 뒤편에 깔린 의식이나 현상을 탐구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운명에 맞서는 한 여성의 삶을 그린 ‘당신에겐 혼자 웃을 권리가 있다’란 장편 소설도 이미 완성했다. “내 안의 것을 풀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라고 말하는 심아진은 오는 9월부터 고려대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그의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한 연유이기도 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日의원 ‘추태’에 부쳐/소설가 현길언

    -日의원 ‘추태’에 부쳐/소설가 현길언

    드디어 일본이 다시 제국주의 망령을 온 세계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픈 과거를 잊고 새로운 세계질서 안에서 공존하려는 한국인의 마음을 외면한 채, 정략적으로 제국주의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경거망동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울릉도 방문을 강행하려는 일본 자민당 중의원인 신도 요시타카와 이나다 도모미, 참의원인 사토 마사히사 의원이 입국하려다가 한국 정부에 의해 입국금지 조치를 당하였다. 게다가 입국시켜 달라며 떼를 쓰다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니, 한 나라의 중진의원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일본은 제국주의 망령을 자랑처럼 내보이는 일을 최근까지 숱하게 저질러 왔다. 문부성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요지의 거짓 내용을 실어 교육시켰다. 그런가 하면 지난 6월 24일에 대한항공이 에어버스 A380을 도입하여 독도 상공에서 시험 비행을 했는데, 일본 외상은 일본영공을 침범했다고 항의 문서를 보내왔다고 한다. 여기에 더하여 외무성은 대한항공기를 이용하지 말도록 공무원들에게 권고 형식의 훈령을 내리기도 했다. 독도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일본의 억지는 제국주의적 발상으로 일본 영토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름 끼칠 일이다. 이번 일본 의원 울릉도행에 앞서 극우적 이론가인 다쿠쇼쿠대 시모조 마사오 교수는 하루 먼저 인천공항을 통해 몰래 들어오려다 입국 심사대에서 적발돼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정도를 무시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깡패 수준들이다.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계고지도에 의하면 1737년 프랑스 당빌이 제작한 ‘꼬레왕국의지도’는 울릉도를 ‘fanling-tau’(화링도)로, 독도를 ‘tchian-chan-tau’(천산도)로 표기하며 고려왕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764년에 프랑스 벨렝이 제작한 ‘꼬레왕국 해도’(Carte Du Royaume de Kau-li ou Corea)에도 우리나라의 주요 산맥과 지명 등을 비롯해서 동해가 코리아해(mer de Coree)로 나타나 있고, 그 안에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혜정박물관에 소장된 많은 고지도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아주 많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은 수백년 전 세계가 인정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제국주의의 국경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망령의 소치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한국 분단 현실도 제국주의 야욕의 결과이고, 한국 전쟁으로 톡톡히 이익을 챙겨 오늘의 일본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반인륜적인 식민통치의 만행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떼를 써도 독도는 한국의 땅인데, 울릉도를 방문하여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아물어 가는 한국인의 상처에 흠집을 내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 정치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독도’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자의식에 잠재해 있는 제국주의 망령을 청산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미래의 일본을 위해서도 그 일은 제일의 과제이다.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현길언은 ▲1940년 제주생 ▲한양대 국문과 교수 지냄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뒤 ‘닳아지는 세월’, ‘벌거벗은 순례자’ 등 분단 민족의 아픔을 소재로 한 작품 발표 ▲계간지 ‘본질과현상’ 발행인
  • [CEO 칼럼] 시장 가격균형 메커니즘의 복원/장영철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CEO 칼럼] 시장 가격균형 메커니즘의 복원/장영철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15년 전쯤, 개미의 눈으로 인간세상을 바라본다는 독특한 설정의 ‘개미’라는 소설이 크게 유행했다. 작가는 개미가 고도로 체계화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각 계층 간 원활한 소통을 통해 집단의 생존이라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다수가 활발히 소통하고 협력·경쟁하는 과정을 통해 조직 전체의 지적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정보사회학을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시장경제에서도 충분히 많은 시장참가자가 누구에게나 공개된 시장정보를 가지고 자유롭게 행동할 경우, 완전경쟁이 이루어지고 시장경제 시스템 전체의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진입장벽, 정보 비대칭 등의 제약 때문에 완전경쟁 시장을 현실에서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따라서 완전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들에 대한 조정을 통해 우리 시장경제 시스템이 완전경쟁 시장으로 수렴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우리 경제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버블에 편승해 높은 수익을 기대하고 PF 대출을 과잉 공급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개발 수요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장상황의 변화에 시장참여자들이 탄력적으로 반응하지 못함으로써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가격기능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즉, 저축은행들은 시장 여건이 변화했음에도 기존의 높은 수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PF 사업장에 대해 높은 수준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고, 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있는 수요자들은 실제 가격하락폭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거래 자체가 실종돼 시장의 자율적 가격기능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긴급한 문제는 일시적 불균형이 시장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조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의 원인이 PF 대출의 공급 과잉에 있는 만큼, 공급 과잉을 초래한 당사자로 하여금 일정부분 책임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시장가격이 균형수준으로 하락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시장의 자율적 구조조정 지원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저축은행 PF 채권의 매입·정리 업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캠코는 저축은행들이 보유한 사업중단 PF 사업장을 인수함으로써 침체된 부동산 시장의 붕괴를 방지하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얼핏 가격기능 회복과는 무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캠코의 PF 사업장 인수로 인해 부동산 시장에 추가로 대량의 PF 사업장이 공급되는 것을 차단하고 공급시기를 조정함으로써 새로운 가격균형점을 형성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저축은행들로 하여금 PF 대출에 대한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해 경영 실패에 따른 손실을 인식하게 하고, 그만큼 저축은행들의 매각 희망 가격을 시장균형에 근접하게 낮춰주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캠코의 이러한 조치로 인해 실제 사업이 재개되거나, 시장 매각이 가능한 PF 사업장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 시장균형 회복을 통한 문제해결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시장경제는 시장참여자의 창의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지만, 완전경쟁을 저해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시장 가격균형이 쉽게 깨질 수 있다.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다수의 경제주체가 능력에 따라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진시키려면, 가격기능과 시장균형을 지키기 위한 조정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번 저축은행의 PF 부실 문제 역시 미시적 조정을 통해 새로운 시장 가격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한다면, 이번 저축은행 PF 부실문제는 오히려 우리나라 금융과 부동산 시장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18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 보바리라는 여인의 불륜을 다룬 소설이 발표되었다. 작품은 즉각 가족주의와 금욕적 도덕관을 내세우는 신흥 부르주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다음 해, 제2제국의 권위주의적 재판부는 풍기 문란과 종교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이 작품을 기소한다. 유부녀가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인의 종부성사를 장님의 상스러운 노랫소리가 화답하는 등 작품 전체가 간통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마지못해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변호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마담 보바리’와 작가 플로베르는 예술 창작을 암암리에 규제해 오던 부르주아적 도덕의 허위를 폭로했다. ●아버지, 나는 부르주아가 싫어요 플로베르는 1821년 소도시 루앙의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장력 있던 조숙한 소년은 자신의 재능이 문학으로 꽃필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방 부르주아였던 닥터 플로베르가 보기에 이 똑똑한 아들이 해야 할 일은 딴 데 있었다. 파리의 법대에 들어가 입신출세하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 1820년 왕정복고시대에 태어난 플로베르는 1880년 죽을 때까지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각종 정치 체제의 변혁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어떤 체제가 되었든, 사회의 주인공은 부르주아였다. 온갖 정치적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이 계급은 금융과 산업을 주도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갔다. 소년 플로베르는 루앙의 시민들이 각자의 이권과 보신을 위해 질투에 찬 중상모략을 일삼는 것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다들 온순하고 근면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비정한 야욕이 도시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부르주아거나,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트거나. 청년 플로베르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특정한 계층에만 국한해서 쓸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돈이 없고 지위가 낮은 하층계급 안에서도 의사나 변호사 같은 번듯한 직업을 갖고, 돈 있는 가문과 결혼하고, 사교계에 나가 출세할 수 있으리라는 부르주아의 삶이 하나의 꿈으로 확실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란 재정상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이름이어야 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는 미덕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부르주아’라는 말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작업복을 입은 부르주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써 보냈다. 플로베르는 1843년과 1844년 연이어 일어난 치명적인 신경발작을 겪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예 부르주아적 삶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법대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포기하고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학계 안에서도 부르주아적 태도가 판 치고 있었다. 작가들은 기존의 문학잡지나 아카데미를 부와 명예를 향한 도약대로 삼아 그 안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치의 격변기마다 부화뇌동하면서 사회문제, 대중의 교화, 진보, 민주주의 같은 판에 박힌 소리만 되풀이했다. 사실주의를 내세우면서 서민들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하층민들을 동정할 뿐이었다. 플로베르는 이들을 보며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은 분명했다. 부르주아적 세계관을 버릴 것!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창조할 것! 플로베르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오직 문학에 자신의 삶을 다 바치기로 했다. 나중에 카프카는 이런 플로베르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모시며 평생 그의 작품을 가까이 했다. ●“나는 보바리다”-자살 장면 쓰면서 구토 플로베르는 본격적인 첫 작품을 구상하면서 안토니우스라는 성인에게 끌렸다. 안토니우스는 250년 무렵 이집트 북부에서 태어난 기독교 초기의 성자다. 그는 사막에서 고행하며 각종 이교도의 신들과 자기 안의 탐욕, 질투, 회의에 맞서 신앙을 지켜냈다. 플로베르는 이 성인의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끊임없이 유혹을 마주하면서 수도해야 하는 성인처럼, 그 자신도 계속해서 부르주아적 태도와 취향을 마주하며 글을 써야 했다. 문학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그런 적극적 대결이 필요한 일이었다. “진주는 조개의 병에서 생기는 것이라지만 문체는 아마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을 통해 나오는 것일 거요. 예술가의 삶, 아니 예술 작품의 완성도 그렇지 않겠소? 거대한 산을 오르는 일처럼 말이오. 얼마나 집요한 의지가 필요하겠소! 그 산 정상은 창공 속에서 순수함으로 빛나고, 그 엄청난 높이는 공포를 가져다주지. 우리는 더듬더듬 바위에 손톱들을 찢겨가면서, 외로움 속에 눈물을 흘리며 계속 걸어가지. 우리는 욕망의 백색 고통 속에서 소멸하는 거요. 정신의 격류가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얼굴을 태양으로 향한 채!”(편지, 1853년 9월 16일) 제목은 ‘성 앙투안의 유혹’. 그는 3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의 이야기는 서정, 인물의 움직임, 구성 어느 것도 새롭지 않았다. 초고를 본 친구들은 상투적인 반복과 무질서한 구도에 진저리를 쳤다. 플로베르는 성 앙투안을 쓴다면서 결국 자신의 의식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자신도 타인의 삶, 다른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여느 부르주아들과 다를 바 없었다. 플로베르는 작가의 개성과 정념이 지배하는 문학은 예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플로베르는 예술이 제2의 자연과 같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불가해한 것. 숲 속에 살아 있는 수많은 나뭇잎과 초록의 속삭임처럼 무한하면서도 준엄하게 존재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작가란 자신의 경험과 정념을 지움으로써 이 제2의 자연을 창조하는 존재여야 했다. 플로베르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기술하는 글쓰기, 그것이 바로 작가 주체를 소멸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는 나밖에 모를 거요. 주제, 인물, 효과 등등 모든 것이 나의 바깥에 있거든.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오. 예술과 예술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편지, 1852년 7월 26일) 그렇게 해서 플로베르는 자신과는 출신도, 성(性)도, 교육 배경도 완전히 다른 시골 유부녀 에마 보바리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에마와 그녀 이웃들의 속물주의가 주는 혐오감을 견디며, 작품 속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6년 동안 쉬지 않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에마가 비소를 먹고 자살하는 장면을 쓰다가 구토를 하기도 했다. 플로베르는 종종 “나는 에마 보바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도승처럼 철저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시키고 에마 보바리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시대의 허위와 대결 생애 마지막에 플로베르가 도전한 것은 두 명의 필경사 이야기다. 최신의 근대 학문을 다 섭렵해 보기로 한 부바르와 페퀴셰. 하지만 저명하다는 원예학, 지질학, 의학, 고고학, 심리학, 교육학 안에는 논리적 모순이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각각의 지식들은 현실에 적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근대 지식의 한계에 대항하면서 진리와 미,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 작품의 부제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전서’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위해 1500권이 넘는 학술서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근대적 학문에 맹종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신봉하는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인생에는 그 어떤 극적 드라마도, 감동적인 사건도 없다. 오직 실험과 논증이 백과사전처럼 한없이 펼쳐진다. 오락으로 읽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논리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한가한 부르주아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사소설, 연애소설과 같은 소설의 전통적 구분은 이 작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미완으로 붙이게 된 뒷부분 개요에서 서술 방법과 작품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다. 소설 안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해석하다니! 상상물인 소설과 현실의 작가가 뒤섞여 버린 것이다. 이렇게 플로베르는 19세기 문학의 온갖 관습을 무너뜨려 버렸다. 이 최후의 싸움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면서 근대 학문의 어리석음과 부르주아 문학의 허위와 대결했다. 오선민(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문학 엄숙주의 해체’ 덧씌운 가식·허울 남김없이 걷어내다

    ‘문학 엄숙주의 해체’ 덧씌운 가식·허울 남김없이 걷어내다

    장정일과 마광수의 후예들이 그려낸 2011년 대한민국 섹스 기상도는 어떤 모습일까. ‘남의 속도 모르면서’(문학사상 펴냄)는 8명의 젊은 남성 작가들이 섹스를 주제로 쓴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작가들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미혼과 기혼에 이혼남까지 골고루 섞였다. 신승철 문학사상 기획위원은 “대한민국도 이제 성을 주제로 편하게 쓰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해서 평소에 공격적으로 쓰는 남성 작가들에게 소설을 청탁했더니 아주 흔쾌히들 응했다.”고 말했다. 장정일은 1997년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법정 구속된 바 있고, 마광수도 1992년 ‘즐거운 사라’로 구속됐다. 두 작가 모두 죄명은 음란물 제조 혐의였다. ●장정일·마광수 후예 30·40대 작가들 ‘남의 속도’의 수위는 작가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수레 위 섹스(조헌용의 ‘꼴랑’)부터 의자에 집착하는 양성애자(김도언의 ‘의자야, 넌 어디를 만져 주면 좋으니’), 일본 성인 비디오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박상의 ‘모르겠고’)까지. 작가 김도언(39)은 “장정일이 법적 제재를 받았을 때 쏟아지는 질문에 ‘성에 대해 너무 무지해 오히려 이런 집요한 묘사를 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나 역시 성에 대해 아직도 미지한 영역이 많이 남아 있어 적극적으로 청탁을 받았다. 유년 시절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앓는 양성애자가 결국 인간이 아닌 의자에서 위안을 발견하는 데서 불구적인 현대인의 무의식을 묘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노골적 주제… 의외로 다양한 내용나와 여러 명의 작가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쓰는 테마 소설은 그동안 독신, 자살, 눈, 비 등 관념적이고 문학적인 주제가 많았다. 섹스처럼 노골적인 주제는 처음이다. 이런 시도는 영화계가 훨씬 앞서 있다. 1996년 박철수·강우석 등 중견 감독 7명이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를 발표했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인형방, DVD방, 안마방 등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퇴폐적인 ‘방’과 관련된 업소에서 일하는 과정을 그린 ‘풀코스’의 권정현(41)은 “섹스가 주제라면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모두 다른 소재와 주제로 썼다는 이야기에 놀랐다.”며 “5년 전이라면 섹스를 주제로 청탁했을 때 거절하는 작가들도 있었겠지만, 문학 엄숙주의가 해체되는 게 대중과 호흡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소설로 써 달라.’고 했던, 실제로 키스방을 운영하는 고향 친구를 찾아가 취재를 하고 소설을 썼다. 그는 ‘외로운 남성을 위로해 준다.’는 친구의 개똥철학이 문학 엄숙주의보다 더 진정성 있게 와 닿았다고 덧붙였다. 배설 기능만 가진 여성을 사랑한 남자와 그 남자의 상담을 받은 정신과 의사의 삶을 비교한 ‘배롱나무 아래서’를 쓴 은승완(43)은 “섹스나 성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일부 소설처럼 섹스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도 있는데 나부터 이중적인 자세가 있지 않았나 돌아봤다.”고 소설을 쓴 소감을 밝혔다. ●“나의 이중성부터 돌아봤다” 발기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남성 작가들은 몸과 정신을 최대한 발기시킨 채 섹스에 대한 소설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다들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문학이 짓누르는 압박감을 벗어나 썼다고 하지만 모두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인 만큼 성적 사유가 얄팍하지만은 않다. 섹스란 육체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일 뿐이지만 소설은 단순한 ‘액션’에 진지한 명상을 덧입혔다. 작가 권정현은 어린 시절 에로 비디오로 소문난 ‘투문정션’의 모자이크를 지우기 위해 아세톤으로 테이프를 닦았다가 플레이어를 망친 경험을 말하며 낄낄댔다. ‘남의 속도’는 섹스에 대해 우리가 씌운 가식과 허울의 모자이크를 닦아 낸 소설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희대의 명탐정·괴도 한자리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명탐정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셜록 홈스를 꼽지 않을까. 전설적인 명탐정 셜록 홈스는 19세기 말, 수입이 변변치 않던 의사 아서 코난 도일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비범한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불완전한 인간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던 홈스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조력자 왓슨과 함께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며 전 세계 독자들의 선풍적인 사랑을 받는다. 이후 홈스에 대한 오마주를 가진 ‘셜로키언’들이 수없이 양산된 것은 당연한 수순. 한국에서는 지난 6월 타계한 정태원이 대표적인 셜로키언 1세대로 꼽힌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코난 도일 외 9명 지음, 비채 펴냄)은 셜록 홈스와 함께 호흡했던 동시대의 단편들을 담은 추리소설 모음집이다. 고인이 만년에 직접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스가 활동하던 시기는 추리소설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그 시대를 이끈 건 홈스만이 아니었다. 1880년대 말부터 1890년대 초반까지, 셜록 홈스의 대성공에 힘입어 영국에서는 단편 추리소설이 크게 유행했다. 당시 추리작가들의 등장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대중잡지였다. 풍부한 삽화가 곁들여진 잡지들은 오락성이 뛰어난 데다 가격도 저렴해서 순식간에 많은 독자들을 그러모았다. 막 태동하던 추리소설이 대중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셜록 홈스를 의식한 작가들의 노력으로 수많은 명탐정들이 탄생돼 활약했으며, 이는 곧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시대로 이어졌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은 이런 수많은 명탐정들을 일컫는 표현이자, 그 시대를 통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책은 1891년 1월 창간된 전설의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과 ‘캐셀스 매거진’, ‘피어슨스 매거진’ 등 당시 유명 잡지에 실린 라이벌들의 에피소드 가운데 30편을 엄선했다. 그 덕에 당대를 풍미했던 명탐정과 괴도들을 고스란히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철저한 논리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생각하는 기계’ 밴 듀슨 교수, 아르센 뤼팽의 모델이 됐던 괴도 래플스, 추리작가 앨러리 퀸이 ‘최고의 홈스 패러디’라고 극찬했던 명탐정 헴록 존스, 개성 넘치는 마틴 휴이트, 경찰이 포기한 ‘콜드 케이스’를 소리 없이 해결하는 ‘구석의 노인’, 희대의 사기꾼 클레이 대령 등 홈스와 같은 시대를 살며 각축을 벌였던 추리소설 작가 9명의 작품과 코난 도일의 미발표 작품 4편이 담겨 있다. 남성 위주의 탐정 계보에 명함을 내민 섬세한 매력의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2만 4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책꽂이]

    ●부모가 읽으면 무릎을 치는 옛글(오동희 지음, 럭스미디어 펴냄) ‘한국 무역사의 산증인’으로 ‘프로스펙스’ 브랜드를 만든 저자가 동서양의 경전에서 주옥 같은 지혜의 글을 선별했다. ‘리더가 읽으면 무릎을 치는 옛글’도 함께 펴냈다. 1만 3000원. ●도시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정용실·이규현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도시생활자 정용실 KBS 아나운서와 이규현 프리랜서 미술 기자가 미국 뉴욕에서 살며 깨달은 도시의 속살을 다정하게 일러준다. 추천사는 두 사람의 도움으로 뉴욕에 정착했다는 소설가 신경숙이 썼다. 1만 4000원. ●미국 서부산악지역 자동차 여행(정명자·유일상 지음, 인스토어앤글로벌컨설팅 펴냄) 저자 정명자씨는 미국 오리건주를 여행하는 도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남편 유일상 건국대 교수가 아내의 메모를 다듬어 책을 완성했다. 1만 6000원. ●검은 역사 하얀 이론(이경원 지음, 한길사 펴냄) 이경원 연세대 영문과 교수가 탈식민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주요 사상가의 주장과 계보를 소개한다. 한길 신인문총서 18번째 책이다. 2만 8000원. ●사진철학의 풍경들(진동선 글, 문예중앙 펴냄) 사진평론가가 펴낸, 사진을 철학적으로 탐색하고 사진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는 시도. 2만원.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있었다(타데우슈 보롭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파란미디어 펴냄) 홀로코스트를 이겨냈지만 결국 자살한 폴란드의 문호 브롭스키가 아우슈비츠 참상을 폭로한 단편 소설.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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