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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바꿔 대박 난 소설들

    제목 바꿔 대박 난 소설들

    출판계의 불황 속에서 2010년 4월 출간된 장편소설 ‘은교’가 7월 현재 20만부 이상 팔렸다. 출간 후 2년 동안 5만권 정도 팔렸던 소설 은교는 지난 4월 말 영화 ‘은교’가 개봉되자 약 석 달 만에 15만부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순수한 10대 소녀 은교와 70대 시인 이적요의 사랑이란 설정은 독자들에게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출판계에서는 은교의 성공 이면에는 제목이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10대인 소설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은교는 신비하고, 발랄하며, 순수한 어떤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은교가 다른 제목이었다면 독자의 주목을 덜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박범신 개인 블로그 ‘박범신 촐라체’에 연재됐을 당시의 제목은 ‘살인 당나귀’였다. 박범신은 “단행본으로 묶을 당시 문학동네의 편집자였던 시인 김민정으로부터 소설 전체 이미지와 살인 당나귀라는 제목이 조화가 안 된다고 은교로 개명하자는 권유를 받았다.”면서 “일반적으로 소설의 반응이 좋으면 ‘제목이 좋았다’는 평가가 뒤늦게 나오지만, 제목이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보다는 오히려 영화의 덕을 봤다.”면서 “문화적 지형이 변해서 1970~80년대 최인호 등과 함께 소설가가 관객을 극장으로 인도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어 씁쓸하다.”고 했다. 박범신은 제목의 힘을 과소평가하지만, 제목의 힘을 무시하긴 어렵다. 작가 자신도, 출판사도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굿바이 동물원’으로 데뷔한 강태식 작가는 “작가들이 집필할 동안 가제를 사용하는데, 실제 출판 단계에서 이를 변경하려면 엄청난 설득이 필요하다.”면서 “좋은 소설도 제목 때문에 묻히는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가제와 한번 비교해 보자. 2003년 등단해 우리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천명관의 ‘고래’. 고래가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을 때의 제목은 ‘붉게 구은 슬픔’이었다. 거대한 꿈을 향해 돌진하는 존재를 상상하게 하는 고래 대신 원제목으로 출판됐다면 그래도 호평을 받았을까 싶다. 서른셋을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구조조정 바람에 이어 인수설이 도는 회사마저 그만두는 연수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서유미 작가의 2008년 장편소설 ‘쿨하게 한 걸음’(창비 펴냄)의 가제는 ‘문제적 인간들’이었다. 가제는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곤란을 겪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같아서 읽기도 전에 김이 빠지는 기분이다. ‘2011년 최고의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은 정유정의 ‘7년의 밤’(은행나무 펴냄)의 가제는 ‘해피 버스데이’였다. 2001년에 출간돼 100만명(2007년 12월 현재) 이상의 독자를 매혹시킨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의 가제는 ‘광화문 그 사내’였다고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미성년 야동 수백개…성범죄 전력있었지만 자유롭게 거주 이동

    등교하던 경남 통영 초등학교 4학년 한아름(10)양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김모(44)씨는 자신의 집 컴퓨터에 어린 학생들이 나오는 야한 동영상 수백개를 저장해 놓고 즐겨 봐 왔던 것으로 23일 드러났다. 통영경찰서는 이날 한양 집 인근에 살며 고물를 수집해 온 김모(44)씨를 성폭력 및 감금·시체 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 16일 오전 7시 30분쯤 학교에 가려고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던 한양을 1t 트럭에 태워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10㎞쯤 떨어진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찰에서 “순간적으로 충동을 느껴 성폭행하려고 했으나 반항하는 바람에 살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과 김씨의 성폭행 여부 등을 가리기 위해 24일 부검에 이어 27일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 경찰은 김씨의 방안과 1t 트럭 등에서 발견된 혈흔과 문구용 칼, 검정색 테이프, 노끈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지난 19일 김씨의 트럭에서 발견된 문구용 칼에서 검출된 혈흔은 분석 결과 한양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김씨에 대한 경찰조사와 주변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김씨는 범행 당일 오전 6시 58분쯤 차를 몰고 집을 나온 뒤 오전 7시 45분쯤 한양을 태워 주변을 돌아다니다 오전 8시 24분 집에 도착해 한양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뒤 오전 8시 38분쯤 집을 나왔다. 이어 김씨는 낮 12시 12분쯤까지 집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다 삽을 챙겨 집을 출발한 뒤 낮 12시 45분에서 오후 1시 37분 사이에 시신을 파묻었다. 조사 결과 압수한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218점의 동영상 가운데 70점은 어린이들이 나오는 야한 동영상이었다. 또 야한 소설류도 많았다. 경찰은 김씨가 평소에도 인근 마을에 사는 학생들을 자신의 트럭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준 사실을 확인, 추가 범행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2005년 강간상해 혐의로 4년간 실형을 산 전력이 있지만 성폭력 범죄자 등에 대해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도록 한 법률(2008년 9월 시행)이나 성폭력 범죄자 신상공개제도(2011년 4월 시행)가 시행되기 전의 범죄인 탓에 해당 법 적용을 받지 않고 특별한 관리 없이 자유롭게 거주·이동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연극 ‘십이야’·‘한여름 밤의 꿈’ 8월 1~2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는 두 개의 셰익스피어. 극단 여행자가 대표 레퍼토리인 한여름 밤의 꿈’과 역동적이고 흥겨운 구성으로 호평받은 ‘십이야’를 일주일씩 번갈아 공연한다. 온가족이 즐기기에 안성맞춤. 2만~5만원(패키지 구매 40% 할인). 1644-2003. ●연극 ‘팔로우맨’ 8월 11일~9월 15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잔혹한 아동 살인사건에 얽힌 소설가와 지적장애가 있는 형, 이들을 조사하는 형사의 진실 공방. 2003년 영국 런던 초연 당시 뜨거운 이슈를 부르며 작가 마틴 맥도너에게 ‘21세기 천재 작가’라는 칭호가 붙었다. 한국 공연은 5년 만이다. 4만원. (02)744-4334.
  • [문학 새 책]

    북극 사냥꾼들의 일상 꽁트집 ●북극허풍담 전 3권(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별천지 펴냄) 덴마크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저자가 북극에 사는 괴짜 사냥꾼들의 비범한 일상을 그린 연작 콩트집. 온통 눈과 빙산에 찬바람이 몰아치는 북극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대한민국의 7~8월 찜통더위에 읽으면 그저 마음이 시원할 듯하다. 책표지도 북극 눈처럼 새하얗다. 각 콩트는 독립돼 있지만, 전체는 연결돼 있고, 허풍 같은데 묘한 현실성이 있다. 영화 ‘카모메 식당’ 감독의 소설 ●히다리 포목점(오기가미 나오코 지음, 푸른숲 펴냄) 영화 ‘카모메 식당’의 감독이 지은 소설집.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봉틀을 물려받은 청년 모리오는 자신을 위한 꽃무늬 치마와 모리오의 재봉틀 소리를 들어야 편두통에서 벗어나는 아래층 소녀 카트린을 위한 꽃무늬 치마를 만들기로 한다. 그래서 전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가는 오래된 섬유거리의 포목점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고양이 사브로와 말 없이 꽃무늬 포목을 골라주는 아주머니가 있다. 소심한 사람들이 잔잔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 英추리작가협 골드대거상 작품 ●가짜 경감 듀(피터 러브시 지음, 이동윤 옮김, 엘릭시르 펴냄) 영국추리작가협회의 골드대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영국 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미스터리. 1920년 격변기의 영국을 배경으로 유쾌함과 풍자, 서스펜스, 미스터리를 한데 맛있게 버무려 놓았다. 철저한 시대적 고증을 거친 작품으로 월터 듀 경감은 1910년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크리펜 박사 살인사건을 해결한 실존인물이다.
  • 2등 강박 가진 주변 인물들 스스로 괴담속에 끌려 들어가

    “그 얘기 들었어?”로 시작하는 학교 괴담. 언덕이 됐든, 연못이 됐든, 학교 건물 옥상이나 떨어지면 죽을 만한 높이에 있는 창문이 됐든 장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쟤만 없으면 내가 1등이 될 것만 같은 2등 아이가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1등을 죽여 버리고, 살해된 1등은 귀신이 돼 2등을 괴롭힌다는 플롯만 있으면 된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늘 경쟁하고 비교당하는 중고등학생의 불안한 심리를 절묘하게 파고들어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소설가 방미진의 청소년 소설 ‘괴담-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문학동네 펴냄)는 살짝 진화한 학교 괴담으로 다른 유형의 서늘함을 던진다. 1인자가 되려다가 함정에 빠진 2인자의 공포가 아니라, 스스로 2인자라고 느끼는 콤플렉스가 야기하는 두려움이다. 한 고등학교에 “연못 위에서 1등과 2등이 사진을 찍으면 2등이 사라진다.”는 괴담이 돈다. 1·2등 버전이 있고, 첫째·둘째나 형제 버전이 있는데, 달라지지 않는 것은 통학로 옆 샛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연못’과 ‘두 번째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도 으스스한 연못이라 옆 대학 무슨 과 학생이 자살했다거나 밤늦게 시체가 떠오른다는 식의 소문이 많다. 학생들은 유독 ‘1·2등 괴담’에 솔깃해져 입소문이 퍼질 무렵 합창부 여학생 서인주가 숨진 채 발견된다. 인주의 죽음은 자살로 알려졌지만, 인주와 연관된 기억을 가진 인물들에게는 ‘누군가의 의도’이거나 ‘실현된 괴담’이다. 인주의 죽음 이후 저마다 괴담을 재해석한다. 인주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낫지만 밀리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지연, 노래에서만큼은 인주에게 질투를 느끼는 연두, 연년생 언니 연두와 늘 비교당하는 연지, 헤어질 때를 대비해 미리 두 번째 여자친구를 만들어 놓은 치한과 이상한 삼각관계를 이어가는 보영·미래. 예쁘지도 않고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인주를 비롯해 각자 다른 상대를 두고 자신을 ‘두 번째’로 규정하면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싸인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최상의 조건에서 키웠는데도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딸 지연이 못마땅한 성혜, 한때 촉망받는 인재였지만 평범한 학교 음악교사가 된 경민. 어른들도 ‘두 번째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원망하고 복수하는 귀신 따위가 아니라, 심리적 불안감으로 인물들은 괴담 속으로 스스로 끌려 들어간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사라진다. 작가는 “괴담이 무서운 것은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제일 무서운 것은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질투가 아닐까 한다.”고 했다. ‘청소년 소설’로 분류돼 있지만, 성인이 읽어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만하다. 작가는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후 미스터리 호러 동화 ‘금이 간 거울’, 청소년소설 ‘손톱이 자라날 때’ 등을 발표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3번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펴낸 소설가 김연수

    3번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펴낸 소설가 김연수

     이겼다의 반대말, 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면서 꼭 1등을 하려는, 남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려고 사는 것은 아니다. 이기지도 않았지만 지지도 않은 상태도 있다. 소설가 김연수(42)의 6번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마음의숲 펴냄)은 달리기를 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심상을 보살피면서 시간을 늘려서 쓰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의 이야기 같다. 이야기의 태반은 달리기와 관련한 글이다.  서울 광화문 근처 한 커피전문점에서 지난 17일 만난 작가 김연수는 책표지 날개에 달린 사진만큼 잘생기지 않았다. 그의 도회적인 문장들이 사금파리처럼 반짝 윤이 나지 않아도 오래 마음에 머물다가 떠나가듯, 김천 사투리를 쓰는 그는 적당히 수줍어하고 적당히 뻔뻔하고 해서 덜 부담스러웠다.  산문집에서 그는 늘 바람을 가르고 일산 호수공원을 달리고 있었다. 김연수는 소설가의 글쓰는 일 말고 그 이외의 생활에 대해서 쓴 것이라고 했다. 달리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책 읽기, 맥주 마시기 등등이다. 2002년부터 ‘빅이슈’ 등 다앙햔 잡지에 쓴 글들을 모았다. 1998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그에게 달리기는 소설 쓰기와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그가 “매일 달릴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매일 소설을 쓸 수 없어요.”라는 말이고, “달리는 것은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것은 “소설을 쓰는 게 어려워요.”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그가 “40대는 달리기의 황금기다.”라고 말했다면 “40대는 소설 쓰기의 황금기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스물네 살에 문단에 데뷔해서 7권의 장편소설을 내고, 4권의 소설집을 묶어냈고, 에세이를 6권 썼다. 내년에 데뷔 20년인데 “많이 꾸준히” 써 왔다고 했다.  “20대에는 어떻게 하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쓰고 싶은데 쓸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소설을 쓰고 못 쓰고가 재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재능이 있을 때 쓰고, 재능이 사라지면 못 쓰는 것이다라고.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바뀌었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달리는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야 매일 달릴 수 있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연습에 얼마나 시간을 쏟아부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다. 마라톤대회 2주 전에 32㎞를 달리면 42.195㎞를 완주할 수 있다. 소설을 쓰는 데도 절대적인 시간이 들어간다. 그 시간을 못 채우면 못 쓴 작품이 나오고, 절대적인 시간을 채우고 나면 잘 쓴 결과물이 나온다. 단숨에 도달하고 싶다고 해도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은 인과의 사슬 속에서 움직이며, 우리의 삶은 장기적으로 평준화돼 간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에는 비평가의 험담에 쓰린 마음을 끌어안고 밤잠을 못 자고 고민하던 스물일곱 살의 젊은 김연수가 있는가 하면, “사랑했지만 어쩌다 보니 헤어진 애인”의 이야기나, “살아오면서 이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여러 번 상처를 입은” 순진한 김연수, 빵집 아들로 달력의 빨간 날에는 새벽까지 빵을 팔아대던 붉은 빰의 소년 김연수가 있다.  40대의 나이에 30대처럼 살면서 20대의 독자들과 호흡하는 김연수에게 연령과 달리기를 비교해 달라고 했다.  “10대는 달리기를 안 한다. 아예 달리기가 뭔지 모를 것이다. 20대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20대는 전력질주를 하기 때문에 장거리를 못 달린다. 30대는 달리려고 했는데 왜 나는 걷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할 것이다. 40대는 달리기의 황금기다. 전력질주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기록도 제일 좋고, 달릴 수밖에 없다. 50대는 불안에 시달릴 것이고, 60대에는 달리기를 못 할 것이다. 최대한 늦게 뛰어야 빨리, 멀리, 오랫동안 뛸 수 있다. ”  우리의 인생으로 고스란히 연결되는 발언이다. 김연수는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게 시간을 조각내서 쓸 것인가, 365개로 조각을 내면 굉장한 소설이 나올 것 같다.”고 한다. 삶이 재능의 크기로 결정될 것도 아니고, 얼마나 질기게, 원하는 것을 향해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에 달렸다고, 그러면 최소한 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100년의 전쟁상태와 식민지를 겪은 아버지 세대들은 패배자가 되면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생생하게 경험했지만, ‘우리’는 다른 식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글·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전직 언론인인 사비오는 규칙적이고 편안한 삶을 유지했다. 수십 년 동안 허드렛일을 챙겨 온 하녀 다미아나가 일주일에 몇 번 찾아올 뿐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집 안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매주 일요일마다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해 왔던 그는 어느덧 아흔 살에 이르렀다. 아흔이 되기 전날 그는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늙은 포주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처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어이없는 주문에 포주 로사 카바르카스는 준비하겠노라고 선뜻 답했고 아흔의 노인은 십대 소녀와 한 침대에 눕게 된다. 그것을 자신에게 주는 하룻밤 선물로 여긴 사비오는 이후 예기치 않은 상황에 면한다. 불현듯 그는 불안과 고통을 느꼈으며 이따금 솟아나는 질투심과 의혹이 평정했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의 개봉은 조금 뜬금없다. 이미 절판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이 그리 인기 있는 작품이던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의 개봉은 아마도 ‘은교’와 대중의 만남과 상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노작가와 소녀의 사랑 이야기란 점에서 두 작품은 얼핏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은교’의 이적요와 반대로 사비오(원작에는 따로 이름이 없다)는 한량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창가를 들락거렸으며 창녀들과 즐긴 쾌락의 시간은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사는 데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영화에서 소녀의 관점을 일부 더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일방적인 사랑 이야기다. 드러나지 않게 사랑을 가꾸는 노인의 복잡한 심리가 극을 이끄는 주 동인이다. 사연이 어찌 됐든 이 영화를 한국에서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십대 창녀라는 소재에 편협하게 반응한 외국에서 이 영화가 제대로 개봉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여든 중반의 나이에 발표한 원작은, 마찬가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에서 따온 문구를 글에 앞서 소개한다. 삽입과 관련한 어떤 성적 관계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잠자는 미녀’의 문구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의 이후 방향을 암시한다. 이것은 노인이 새로운 삶의 시작점에서 발견한 ‘위대한 첫사랑’의 이야기다. 사랑에 미친 노인은 칼럼을 연애편지로 바꾸어 버리고 넋을 잃은 채 방황한다. 좀 건방지게 굴자면 내 눈에는 아흔 노인이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지금껏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프란체스코 로지의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같은 거장의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이야기를 이미지의 리듬 위에 얹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작가와 동갑인 헤닝 카를센의 선택은 탁월하다. 전작들보다 판이할 정도로 단순한 원작은 영화와 근사하게 어울리며 인물과 비슷한 연배에 도달한 카를센은 대사 대신 선명한 이미지를 앞세워 표현할 줄 안다. 일인칭 시점의 소설에 몇몇 장면을 과감하게 집어넣어 관객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원작에서 노인이 억누르던 외침을 스크린 위로 불러낸 마지막 장면은 그중 압권이다. 19일 개봉. 영화평론가
  • [20일 TV 하이라이트]

    ●강연 100℃(KBS1 밤 10시) 여성들을 위한 부분 가발을 만들어 하루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김영휴 대표. 그는 사업의 ‘사’자도 몰랐던 전업 주부였다.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에 가려져 정작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아 왔던 그는 오랜 우울증 끝에 손재주를 살려 부분 가발을 만들었다. 주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그의 희망 메시지를 들어 본다. ●TV소설 사랑아 사랑아(KBS2 오전 9시) 노경(오창석)에게 호감을 가진 서진은 적극적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태범은 승희를 챙겨 주기 위해 공방에 자주 출입한다. 노경은 승희가 신경 쓰여 공방에 찾아오게 되고, 승희의 방 도배를 도와주게 된다. 한편 만복당에선 승아의 결혼 준비가 진행되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있던 승아에게 춘봉이 찾아 온다. ●MBC 스페셜(MBC 밤 11시 15분) 고학력 실업자들이 늘어나는 시대. 서울시 관악구의 서울여상 학생들은 대졸자도 따기 어렵다는 고급 전문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 대기업으로 일찌감치 취업을 결정한 학생도 있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는 부모 앞에 ‘어른들은 몰라요’를 외치며, 자신의 삶을 당당히 결정하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 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 25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게 자식이라지만, 부모도 사람인지라 자식이 미워 보이는 날도 있다. 눈만 돌렸다 하면 등 뒤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틈만 나면 9개월 된 동생을 물고 뜯는 여섯 살짜리 말썽꾸러기 용근이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엄마, 아빠의 사연이다. 과연 용근이가 폭군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명의(EBS 밤 9시 50분) 장에 염증이 생기는 염증성 장질환은 발병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호전과 재발을 반복하면서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키는 이 질환은 크게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으로 나뉜다. 얼마 전 가수 윤종신이 크론병을 앓고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염증성 장질환은 아직 병의 원인도, 완치법도 발견하지 못한 병인데…. ●대뜸 토크(OBS 밤 7시 5분) 다함께 잘사는 건강한 동반성장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다는 정운찬 전 총리를 찾아 간다. 정 전 총리의 대권 도전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 당시의 러브콜을 거절한 사연부터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냈을 때의 에피소드 등 다양한 이야기를 공개한다.
  • [김문이 만난사람] 한국 현대음악 개척 강석희 前서울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한국 현대음악 개척 강석희 前서울대 교수

    오는 27일 런던올림픽이 열린다. 올림픽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성화가 아닐까. 시곗바늘을 잠시 1988년 서울올림픽 현장으로 돌린다. 9월 17일 저녁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 숱한 곳을 돌고 돌아온 성화가 드디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제우스 신, 천둥, 번개, 투창대회, 춤 등의 이미지가 컴퓨터와 트럼펫, 여성 보컬 등에 의해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형상화됐다. 그 음악을 타고 성화대에 점화가 되는 순간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전 세계 음악인들이 놀라움과 찬사를 아낌없이 보냈다. 역사상 처음으로 컴퓨터 음악을 성화에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 오다’라는 제목에 걸맞게 문명의 다양성을 잘 조화시켜 세계 음악사적으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10월 2일 저녁 성화가 꺼질 때에도 이 같은 광경이 다시 연출됐다. 당시 이 음악을 직접 작곡하고 감독까지 맡았던 주인공이 바로 강석희(77) 전 서울대 교수다. 지금도 그날의 광경을 잊지 못한다. 그의 이름 석 자를 세계 음악인들에게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1966년 국내 최초의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작곡했다. 이를 시작으로 30인의 타악기 주자를 위한 ‘예불’, 관현악을 위한 ‘생성69’, 피아노를 위한 ‘정점’ 등의 작품을 연이어 쏟아냈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음악의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자음악을 비롯한 음악극, 칸타타, 독주곡,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만들어내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아울러 1969년 그가 처음 주도한 ‘판 뮤직 페스티벌’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면서 세계 음악과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1970년 일본 오사카 국제박람회 때 그의 창작곡이 연주되면서 일본과 유럽의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1984년 국제현대음악협회(ISCM) 주최 세계 음악제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부회장에 선출돼 세계 무대에서 확실히 인정받기에 이른다. ●11월 도쿄·내년 4월 루브르박물관서 연주 올해로 그의 음악 인생은 55년째다.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모두 80여 곡에 달한다. ‘가야금을 위한 다섯 개의 정경’, 국악 관현악을 위한 ‘취타향’ 등 전통과 접목시킨 것도 있고 김수용 감독의 ‘화려한 외출’ 등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보다 유럽과 미국, 남미 등 해외에서 초연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는 작품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솔로, 오케스트라, 오페라, 실내악 등 전통적 형식의 작품들을 형식에 따라 각기 적합한 어법으로 소화해 낸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젊은 청년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악보와 여러 음악 관련 책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그런데 피아노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면서 그 까닭을 먼저 물었다. “저는 원래 피아노가 없습니다. 작곡할 때 미리 다 소리를 알고 하기 때문에 피아노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물론 피아노 앞에 앉아 소리를 들어보며 작곡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건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방법이지요. 제 경우는 창작할 때 고도의 집중력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곡을 다 쓰고 나서 어떻게 듣느냐고 했더니 “연주하는 무대 객석에서 처음 듣습니다. 연주는 연주가의 몫이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다. “작년에 일본으로부터 위촉받은 ‘8중주’가 있는데 8월 말까지 끝내야 합니다. 오는 11월 도쿄에서 첫 연주회가 예정돼 있거든요. ‘8중주’가 끝나면 곧바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를 써야 합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측에서 오래전에 위촉을 받아 놓은 상태거든요. 이 곡은 내년 4월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연주될 예정입니다.” 이렇듯 그의 곡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찾는다. 최근 브라질 상파울루와 미국 뉴욕에서 그의 오케스트라곡이 연주됐다. 11월에는 일본, 그리고 12월에는 토론토 연주회가 있으니 하반기에만 4차례 해외에서 연주되는 셈이다. “오사카엑스포 당시 오케스트라곡인 ‘생성69’와 실내악 2곡이 연주됐을 때 일본의 신문이나 음악잡지에 크게 게재됐습니다. 얼마 뒤 독일에 갔을 때였지요. 저를 알아보는 음악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는 말이 있잖아요(웃음).”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에게 대중들이 현대음악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음악이 어려우냐 쉬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좋은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라면서 “좋은 음악은 분명 감동을 던져 줍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개 현대음악에는 기립 박수가 없다고들 하지만 1997년 ‘피아노 콘체르토’ 파리 연주 때와 서울 연주 때 등 그동안 기립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작품의 성공적인 연주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함과 자신감으로 이어집니다.”고 말했다. 대중들도 음악을 자주 접하다 보면 그런 행복과 감동을 맛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1년에 2곡 정도 작업… 지금까지 80여곡 탄생 그는 한 해에 2곡 정도 쓴다. 곡을 쓸 때마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고통을 이겨내며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 듯이 논리적으로 연결해 나가는 작업을 한단다. 마치 건축가가 설계해 놓은 전체의 디자인에 따라 그려 나가듯이. “작곡가가 작곡한다는 것은 순수한 음과의 대결을 의미합니다. 소리는 차갑고 냉정한 것이지요. 그런 소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작곡가가 할 일입니다. 음악은 보이지 않는 예술이기 때문에 그 구조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흐르는 건축물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어떻게 해서 작곡과 인연을 맺었을까. 초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탐정과 추리소설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증조부와 손을 잡고 집을 나섰는데 도착한 곳이 경성공업고등학교 교장 선생 댁이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고종 때 장원급제하고 1900년에 일본 유학을 다녀올 만큼 공부를 많이 한 분이었고 경성공고 교장은 바로 할아버지의 제자였다. 이때 할아버지는 경성공고 교장에게 손자를 부탁했다. “그런 인연으로 나중에 음악과 전혀 관계없는 경성공고에 진학했습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데 대개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 과목을 잘하게 되잖아요. 미술 선생님이 좋으면 미술을 공부했고 음악 선생님이 좋으면 음악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미술과 음악, 수학 등을 좋아했지요. 또 32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했는데 그게 나중에 음악에 대한 집중력과 저력을 키우는 원천이 됐습니다.” 그는 음악대학에 진학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도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종로6가에 살 때였다. 하루는 서울대 음대에 놀러갔다. 우연히 작곡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고 그 모습이 아주 멋있게 다가왔다. 문득 작곡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는 청음 실력이 남다르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터였다. 곧바로 책을 몇 권 읽고 서울대 음대에 응시했다. 당시 47명이 시험을 치렀는데 8명이 합격했다. 이강숙, 백병동, 송해섭, 장광열, 이영욱, 임종영, 장성덕 등이 동기들이다. “1964년 급성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습니다. 대학 동기 백병동이 ‘전기와 전자’라는 책을 놓고 갔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어서 단숨에 읽었지요. 전자음악이란 이렇게 만드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퇴원하자마자 KBS 스튜디오를 빌렸고 3개월의 작업 끝에 전자음악을 만들어 냈지요.” 이후 전자음악과 컴퓨터를 접목시키는 등 오늘날까지 한국의 현대음악을 개척하며 꾸준히 이끌어 오고 있다. “예술가란 기존에 닦아 놓은 길을 따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험한 정글에서 길을 찾아 나가는 모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작곡가 강석희는 국내 첫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 발표 1934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46년 경성공고 토목과에 진학했다가 6·25전쟁 때 경북 안동으로 피난 가서 안동고를 졸업했다. 이 무렵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을 접했다. 이후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6년 동안 정신여고 음악 교사로 재직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서양의 현대적 작곡 방식에 관심을 가졌으며 1966년 한국 최초의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첫 작품으로 발표했다. 1968년 잠시 한국에 와 있던 윤이상 선생에게 작곡을 배웠다. 1969년 ‘판 음악제’의 모태가 되는 ‘서울 현대음악 비엔날레’를 개최했다. 1970~1971년 독일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배웠다. 이후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음향학자 프란츠 빈켈 등을 사사했다. 1982~1999년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4~1990 국제현대음악협회(ISCM) 부회장을 맡았다. 이후 서울올림픽 폐회식 음악감독(1988), ISCM 서울 세계음악제 집행위원장 및 예술감독(1997), 계명대 특임교수(2000) 등을 지냈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0), 보관문화훈장(1998), 서울사랑시민상(2004) 등이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 [문화마당] 커피전문점에서 길을 잃다/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커피전문점에서 길을 잃다/주원규 소설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겐 부득이하게 마감이란 벽에 부딪힐 때가 다반사다. 마감에 쫓겨 원고를 송고해야 하는 일간지나 정기 간행물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때론 프리랜서를 표방하며 자신만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마감은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필자 역시 출판사에 보내야 할 원고를 미루고 미루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만 적이 있었다. 그것도 매우 긴박하게 원고지 매수로 환산해 800장 가까이 되는 분량을 나흘 안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필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커피 그리고 커피전문점이었다. 금연 이후 필자에게 커피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최상의 기호품이었기에 자연스레 커피 음용을 생활화했고, 그러다 보니 과부하가 예상되는 작업을 앞두고 커피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24시간 커피전문점을 임시 집필실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월요일 오전 6시에 노트북과 원고 뭉치를 잔뜩 챙긴 가방을 둘러메고 홍대에 있는 커피전문점을 찾았을 때만 해도 사실 필자는 일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목요일 오전까지 꼬박 나흘간 그곳에 틀어박힌 필자의 탁자 위에 쌓이는 머그컵만큼이나 필자의 눈에 비친 커피전문점의 풍경은 1인 코피스족, 또는 프리랜서들의 전용 공간으로 봐도 지나치지 않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커피의 미학은 단연 휴식, 잠시 멈춰 서는 여유에 집중되어 있다.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기에서 우리는 일상의 정지를 경험하고, 캐러멜 라테의 달콤함에서 여유를 느낀다. 하지만, 커피의 또 다른 미학은 여유와 일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여유와 일, 두 개념은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사회에선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커피는 우리에게 여유와 함께 일의 동거를 허락해 준다. 일을 하면서도 쉼을 느끼고 쉬면서도 일을 지속하는 이 묘한 동거가 많은 프리랜서를 커피전문점으로 찾아오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커피는 여유와 일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 울타리 안에 가두고 사육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커피는 여유와 일 모두를 풀어준다. 한 마디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길의 상실을 마냥 부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강요해 온 길은 다양성이 압살되고 개성이 거세된 하나의 목표만을 제시해 왔다. 또 그 목표를 성취하고자 가장 빠른 지름길만 찾아다니는 것이 최상의 가치로 인정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 경우 명확하게 제시된 획일적 목표와 그 목표를 위해 내달리는 길은 다양성이 혼재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선 어딘가 모르게 미심쩍은 미숙함을 체질적으로 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미숙한 체질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게 하는 것, 여유와 일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또 한편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강요해 온 단선적 편견에서 비롯된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것, 이른바 자발적 길 잃기를 독려하는 곳이 바로 커피 향기를 머금은 커피전문점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유감스러운 건 길 잃기를 가능케 하는 커피의 미학을 담아내야 하는 커피전문점이 ‘빨리빨리’의 목표의식에 너무나 충실히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원하는 커피전문점은 대규모 마케팅과 엄청난 물량공세가 빚어낸 몇몇 상표를 소비하는 장소가 결코 아니다. 이렇듯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는 가맹점 커피전문점에서 또 다른 경쟁논리만 남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부디 부탁이니 커피마저도 줄 세우지 마시기를. 진하디 진한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담은 공간만큼은 그냥 내버려 두시기를. 길을 잃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살지 말라고 다그치지 마시기를 제안한다. 그것이 커피예찬론자 중의 한 명인 필자가 원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 [한류정책을 바꿔라] “콘텐츠+공격적 비즈니스 결합… ‘제2 한류’로 세계시장 공략”

    [한류정책을 바꿔라] “콘텐츠+공격적 비즈니스 결합… ‘제2 한류’로 세계시장 공략”

    유진룡 가톨릭대 한류대학원장은 “한류의 콘텐츠만 향상시켰던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나아가 비즈니스 차원에서 콘텐츠 활용을 극대화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밝히고 글로벌화한 한류 콘텐츠와 공격적인 비즈니스가 결합한 제2의 한류 전성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한류대학원장은 서울신문이 창간 108주년을 맞아 기획한 ‘한류, K컬처로 거듭나라’ 특별인터뷰에서 이처럼 밝히고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류 수급 포화 우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세계를 공략하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만큼 한류의 확산은 당분간 더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다음은 17일 서울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황성기 문화에디터와 가진 인터뷰 내용. 대담 황성기 문화에디터 →문화체육관광부에 계실 때(2006년 8월 차관에서 퇴임)와 비교해 지금의 한류, 어떻게 달라졌나요. -한류가 싹튼 2004년에는 드라마가 중심이었습니다. 그 전부터 드라마나 K팝은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확 올라온 건 일본에서였지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한류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문화부 문화산업국장도 지내본 터라 비즈니스 관점에서 한류를 눈여겨보는데 과거엔 한류를 잘 이용하지 못했어요. 당시 배우 류시원, 최지우의 캐릭터숍이 한국에는 없었지만 일본에선 상점 하나 가득히 그 사람들 캐릭터 상품을 팔았어요. 원 소스는 우리인데 정작 우리는 극대화하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이제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한류 콘텐츠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세계의 문화 조류 속에서 한류의 존재 의의라고 한다면. -한류라고 하니까 비로소 세계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아준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한류 열풍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문화적인 우수성이 나타난 것이고 한국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위치가 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드라마, 가요, 영화 등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한국 대중문화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정서와 포맷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역동성, 리듬감, 음악성을 글로벌하게 만든 겁니다. 대중문화는 한 사람의 천재적인 창조자가 아닌 집단 창작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정서와 형식을 내놨기 때문에 먹힌 겁니다. →그중에서도 K팝이 으뜸인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나요. -K팝 작곡가들의 상당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정서와 형식을 추구합니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언어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언어, 정서 면에서 한국적 틀을 벗어나기 힘들지만 K팝은 이미 글로벌화돼 있기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발전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대중문화계에서는 기업이 키운 한류에 정부가 숟가락만 얹으려 한다는 불만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한류의 주류인 대중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한 적도 없어요. 하류 문화,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다가 이제서야 우리 문화라고 대접하는 겁니다. 일본은 자국 문화를 프랑스에 보급하기 위해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꾸준히 노력을 해 왔어요. 화가 마네, 모네의 동네에 일본식 정원을 꾸며 주거나 일본 소설을 20세기 초에 번역해 주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일본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노력은 했지만 미약했지요. →한류에서 순수예술은 소외돼 있는데 문학, 미술 등이 세계로 뻗어 나갈 잠재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만 ‘한국 문화의 우수성’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류라고 떠들고 호들갑 떠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은 필요하지요. 하지만 우리 문화가 우수하다는 것은 열등한 문화도 있다는 얘긴데 그렇지는 않거든요. 꾸준히 우리 문화를 알리고 세계 문화와 교류하면서 우리 문화적 요소, 우리의 것이 강력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있으면 우리도 상대방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문화 콘텐츠 산업에선 엔터테인먼트가 꽃입니다. 꽃의 향기를 보고 관광 등 관련 산업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줄기와 뿌리가 없으면 꽃이 필 수 없듯 가치관과 정서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밑(순수예술)이 없으면 위(엔터테인먼트)도 없습니다. →한류가 8년을 넘게 이어 오고 있지만 그 지속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은 자기네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전략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옛 기록에는 일본 화상들이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초에 자기네 그림을 유럽 등에 갖다 팔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일본 도자기 가격을 영국 것보다 비싸게 매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본 문화에 유럽 사람들이 젖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재팬 웨이브’라는 표현은 안 썼어요. 일본 문화는 외국의 지식층 속에 녹아 있습니다. 그만큼 안착한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코리안 웨이브’라고 해야 하나요. 일본의 J팝은 세계 음악사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K팝이 일본 문화의 뒤를 따라갈 것인지, 한때 절정기를 누렸다가 사라진 홍콩 영화의 뒤를 따라갈 것인지는 우리 하기에 달렸습니다. 한류라고 호들갑 떨지 말고 차분하게 분석하고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요. -문화를 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규모의 경제가 돼야 성공할 수 있어요. K팝을 만들려면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인적, 물적으로 우리나라 가요시장이 좁고 음반시장도 죽었어요. K팝을 세계 시장으로 넓혀야 성공합니다. 모든 콘텐츠 사업이 세계 시장을 상대로 전략을 짜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K팝이 성공했고 온라인 게임도 성공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가 많아요. 다른 분야는 왜 성공하지 못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드라마도 성공은 했지만 구조적인 활용이 안 되고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 산업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문화 산업은 경제적 효과도 크지만 스필오버(spill over·어떤 요소의 경제 활동이 다른 요소에 영향을 미쳐 전체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현상) 효과도 큽니다. 일본은 배우 류시원, 배용준으로 몇조원을 벌었습니다. 비즈니스 분야에서 문화 콘텐츠 후광 또는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논의해야 합니다. →한류를 K팝이 아닌 K컬처로 확대시키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순수예술 분야도 창작은 발전했는데 향유 기반이 취약합니다. 기본적으로 국내 시장이 바탕이 돼야 해외 시장도 바라볼 수 있어요. 국내 시장, 국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열심히 안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류가 공급도 한계 상황, 시장도 포화 상태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겁니다. 능력은 충분한데 우리에게 부족한 게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이 가능하려면 규제가 없어져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입니다. 콘텐츠 공급에서 질이 높아진다면 수요 창출도 가능합니다. 시장을 만들어야죠. 좋은 물건만 있으면 좋은 시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9월에 출범하는 한류대학원의 초대원장으로서 한류 확산에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한류가 나왔습니다. 엔터테인먼트에 부가가치가 있고 그에 따른 후광효과, 파급효과가 더 큽니다. 우리는 그걸 거의 살리지 못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한국 화장품이 많이 팔리고 TV나 에어컨도 많이 팔리고 관광객이 늘어나면 그런 후광효과를 본 기업은 원천효과를 만들어 낸 기업 또는 개인에게 보상해 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장 내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선순환을 돕는 역할을 한류대학원이 할 겁니다. 결국은 콘텐츠와 비즈니스의 결합이 있어야만 콘텐츠 시장 자체를 더 넓힐 수 있고 그에 따른 후광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정리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유진룡 가톨릭대 한류대학원장은 1956년생.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행정고시 22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산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2006년 8월 문화부 차관으로 퇴임. 올해 초까지 을지대 부총장을 하다 지난 6월 설립된 가톨릭대의 초대 한류대학원장에 임명됐다.
  • 불체포특권 비난여론 우려 “불응” 3시간 만에 말 바꿔

    불체포특권 비난여론 우려 “불응” 3시간 만에 말 바꿔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17일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한 검찰의 소환 통보에 응하기로 최종 입장을 정했다. 박 원내대표는 오후 7시 15분쯤 박용진 대변인을 통해 “당 정치검찰 공작수사 대책특별위원회에서 박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가 공작수사라고 규정하고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검찰의 소환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날 저녁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3시간 만에 말을 바꿨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에 대한 비판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새누리당에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박 원내대표가 소환에 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논평을 통해 “박 원내대표는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홍일표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의 정두언 의원은 검찰 출석에 응했고 영장실질심사에도 응하겠다고 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의 원내대표가 소환절차를 거부하겠다고 나선 것은 여전히 특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특권에 안주하겠다는 구태다. 본인이 결백하다면 더욱 정정당당하게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결정이 이뤄진 직후 브리핑을 갖고 “새누리당의 방탄 국회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설 같은 얘기”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수사 이후 검찰이 보이는 물타기 행태에 대해 이해찬 대표가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소환을 통보한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며 “제정신을 못 차리는 정치검찰을 묵과할 수 없으며, 민주통합당은 검찰의 정치공작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저의 생명을 걸고 어떤 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이나 청탁을 받은 일이 없다.”고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여름방학에 만나는 우리 문화

    여름방학에 만나는 우리 문화

    요즘 여름방학이 예전만큼 길지는 않다. ‘주5일 수업’이 정착하면서 방학기간이 한 달 남짓하다. 그렇다고 방학동안 학원만 다닐 수는 없는 법. 문화예술을 배우는 예술학교에서 우리 문화를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좋겠다. 국립극장은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서울 남산 국립극장 KB국민은행청소년하늘극장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름방학 어린이 예술학교’를 연다. 예술교육단체인 ‘이야기꾼의 책공연’이 준비한 ‘국립극장 이야기 해결단’은 책읽기의 확장판. 책을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책을 들려주고, 냄새를 맡고, 상상하게 하는 공연이다. 통합문화예술연구소 ‘넘나들이’의 ‘랩(RAP)소리난다-헬로, 미스터 래빗!’은 ‘수궁가’ 속 토끼의 상황을 자신의 현실에 비추어 생각하고, 엠싱(가사를 쓰고 랩을 하는 것)과 그래피티(낙서화)로 풀어낸다. 아이들이 힙합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수궁가인 셈이다. ‘아츠리퍼블릭’의 ‘예술로 만나는 세계사 여행-리틀 유네스코’는 다양한 나라의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기울이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토론·음악·의상제작을 한데 섞어 공연을 만들고 발표하면서 소통 능력과 창의성을 키운다. 국립극장 홈페이지(www.ntok.go.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수강료 12만원(재료비 포함). (02)2280-5820. 국립극장은 아울러 ‘국립극장, 고고고(보고 듣고 즐기고)’의 신작 뮤지컬 ‘소나기’를 지역 문화예술회관에서 무료로 올린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국악과 희곡을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해 공연을 쉽고 가까이 느끼도록 한 ‘국립극장, 고고고’는, 올해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바탕으로 국악과 뮤지컬을 버무렸다. 국립극장 문화예술인턴으로 구성된 예술단 ‘미르’가 1부에서 첫사랑을 주제로 한 국악을 연주하고, 2부에서 뮤지컬 ‘소나기’를 선보인다. 17일에는 충남 태안문화예술회관을 찾고, 21일에는 전북 익산솜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다. 25일에는 강원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한다. (02)2280-4114~6. 국립국악원은 이달 말부터 2주에 걸쳐 초등학교 1년생부터 중학교 3년생이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 국악강좌’를 서울 도봉구와 노원구에서 진행한다. 청소년 국악강좌에는 해금·가야금·단소 등 국악기를 배우는 시간과 국악원의 국악교육 전문가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강의하는 ‘어린이 사물북’, ‘장구와 전래동요’ 등이 준비돼 있다. 30일부터 다음 달 3일에는 도봉구 창5동 주민센터에서 열고, 6~10일에는 노원구 중계본동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1주일 동안 이어진다. 강좌가 끝나는 날에는 무대 위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낼 수 있다. 현재 2차 접수(노원)를 하고 있다. (02)580-3396.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대학생 천연기념물 지킴이 캠프

    사단법인 한국수달보호협회(회장 한성용)가 18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강원 화천과 양구 일대에서 제4기 대학생천연기념물지킴이단 캠프를 S-Oil 후원으로 운영한다. 캠프 기간에 천연기념물인 수달, 어름치, 두루미 전문가들의 생태와 보존활동에 대한 강의가 있다. 생태탐사 전문가와 함께 북한강변의 수달 생태군과 계곡의 서식지 조사, 양구 비무장지대(DMZ) 동물추적과 하늘다람쥐 보호, 무인카메라 회수 등의 활동도 펼친다. 전국에서 선발된 40명의 대학생지킴이단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 S-Oil 본사에서 발대식을 갖고, 화천 감성마을에서 소설가 이외수씨의 ‘수달과 청춘’이란 주제 강연을 들은 뒤 캠프 활동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16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촉망받던 영화감독 마이클 엉거와 아나운서 생활을 접고 배우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임성민. 이들은 2008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 같은 사랑을 시작했다. 영화제에서 만난 임성민에게 첫눈에 반한 엉거는 미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뒤로한 채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털어놓는데…. ●TV소설 사랑아 사랑아(KBS2 오전 9시) 다미울에 내려온 명주는 만복당에 찾아오게 되고, 승희를 만나 공방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한다. 태범은 노경과 만나 말년이 승희를 마음에 들어하며 며느리 삼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한편 윤식은 송 사장에게 승아(송민정)의 혼례 날짜를 전달하고, 승아는 내키지 않지만 송군과 데이트를 하게 된다. ●MBC 월화특별기획 골든 타임(MBC 밤 9시 55분) 정형외과 수술을 받고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VIP 환자의 출혈이 잡히자 모두가 안도한다. 그러던 중, 무심코 던진 민우의 질문에 인혁은 환자를 다시 개복한다. 당황하는 정형외과 과장 세헌에게 일반외과 과장 민준은 재수술의 순간부터 책임은 100% 인혁의 것이라고 하며 그를 안심시킨다. ●백세 건강 스페셜(SBS 낮 12시 30분) 결핵은 후진국형 질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2009년 WHO 보고에 의하면 결핵발생률이 10만 명당 90명, 사망률이 10만 명당 8.3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폐결핵 환자의 70~80%가 기침과 가래 등의 증상들을 보이지만 종종 이런 증상만 가지고는 결핵인지 아닌지 진단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다큐 프라임(EBS 밤 9시 50분) 우리나라는 밖으로 드러난 치매 인구만도 52만명에 달한다. 고령화와 스트레스 등으로 그 숫자는 10년 단위로 두 배씩 늘 것이라는 게 보건복지부의 공식발표다. 제작팀은 지난 6개월간 세상 밖에 드러나길 꺼리는 중증 치매환자 250여명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우리가 아는 것과는 한참 다른 치매의 현실을 함께한다. ●경찰 25시(OBS 밤 11시 5분) 김포 경찰서 강력팀에 한 여성이 찾아왔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귀가 중에 당한 뻔뻔한 추행에 눈물까지 보이는 피해자였다. 남자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대생의 옆자리에 앉아 다리를 노린 것이다. 노출의 계절, 무더운 여름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성범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형사들의 집념의 수사가 시작된다.
  • [열린세상] 나 없이도 직장이 잘 돌아간다면/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열린세상] 나 없이도 직장이 잘 돌아간다면/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여름휴가를 앞둔 탓인지 한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의 한 사적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왔다. 휴가기간 동안 내가 없어도 직장이 잘 돌아간다면, 슬퍼해야 할까 기뻐해야 할까.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프랑스인은 기뻐하는 쪽으로, 한국인은 슬퍼하는 쪽으로 조금 기울어졌다. 슬퍼하는 이유는 직장이 잘 돌아간다면 내가 필요치 않다는 뜻이니 직장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국인과 프랑스인이 휴가를 맞이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여름휴가 기간은 대략 프랑스는 30일이고, 영국이 28일, 독일이 24일, 미국이 기업별로 14~21일이다. 일본은 10일이고 한국이 1주일 정도로 집계된 것을 보았다. 프랑스 및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여름 휴가기간은 짧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1주일 중에 진정 휴가를 보내는 기간은 3~4일 정도라고 한다. 1주일 전에 직장에 서둘러 복귀하는 사람도 있고, 복귀하지 않더라도 내내 전화로 확인하는 등 일을 머리에서 떨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들은 왜 그 짧은 휴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 우선, 직장 내 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강박적인 성실성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이외에도 직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서방 국가들처럼 기업과 개인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아 법정휴가 기간을 온전하게 사용하기 어렵고 그것도 눈치를 보면서 써야 한다. 서양인들처럼 일을 다른 사람과 나눠 맡는 워크 셰어링(work sharing)을 하지 않고, 정해진 한 분야에서만 일하기 때문에 오래 비우면 일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실제 휴가를 가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몰라 서둘러 일터로 돌아오는 일 중독자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도 없는데, 나 없이 회사가 잘 돌아가는 것이 불안하다면 무엇 때문일까. 출판사 한 여직원의 여행 경험담을 소개하면, 외국 여행 중에 한국에 연락해서 급하게 처리해야만 할 일이 생각났다. 전자기기를 피해 보겠다며 떠나온 여행이라 노트북도 휴대전화도 없었다. 어렵게 PC방을 찾고 보니 자판이 모두 현지어로 되어 있었다. 전화카드를 쥐고 사방을 헤맸으나 공중전화 부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나라가 무슨 선진국이냐는 불평이 저절로 터져 나왔고, 일과 관련된 애매한 상대방을 심하게 혼자 탓하고 있었다. 혼이 빠진 듯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헤맨 뒤, 시차 때문에 연락해도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털썩 길가 벤치에 주저앉았다. 한참 후 마음이 진정되자, 돌아가서 처리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 사안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여행 중에 왜 갑자기 그 일을 떠올렸는지, 원하는 곳에 공중전화 부스가 나타나지 않자 왜 극렬하게 분노했는지 돌이켜 보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원하는 장소에 공중전화 부스를 강요하듯이, 직장에서도 상사나 동료 심지어 막 들어온 인턴사원이 그녀가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모습으로 있지 않아 매우 속을 끓였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이나 삶속에서 철저하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관철하려고 노력했고, 여행지에서 그 방식이 작동되지 않는 잔인한 순간을 만났기에 분노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올여름에는 나 없이 직장이 잘 돌아가도 행복해하는 여행을 하면 어떨까. 공중전화부스처럼 그 여행지가 주장하는 색다른 위치 질서와 방식에 순응하고,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나 없이도 다른 사람들이 주도하는 일의 방식에 온전한 믿음을 갖고 떠나면 어떨까. 시인 신현림의 시 속에 ‘네가 나 없이도 행복할 것이 두렵다.’라는 시구가 있다. 여행 가방을 싸면서 미소가 떠오르는 이유는 나 없이도 직장은 잘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두려워할 것 없다. 내가 없어도 직장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남은 사람들이 내 일을 분담할 만큼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또한 나를 위해 기꺼이 일을 대신해 줄 너그럽고 배려 깊은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닌가. 때로 자신이 직장에서 무용지물임을 깨닫는 여행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다.
  • 경쟁·권력 속에서 ‘사람의 길’을 묻다

    경쟁·권력 속에서 ‘사람의 길’을 묻다

    신춘문예보다 확실하게 거액의 상금을 챙겨 주는 신문·문예지의 당선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배고파하며 문단 데뷔를 노려온 ‘늙은 문학청년’들의 재기가 느껴진다. 특히 올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강태식(왼쪽·40)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의 주인공 김영수는 마치 작가 자신 같다. 아니, 무서운 돈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기상청에 근무하며 현대문학의 신인상을 받은 허관(오른쪽·43)의 역사 장편소설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세조라는 인물을 통해 비정하게 반복되는 역사의 문제를 다루며, 인간은 어떻게 무엇을 용서할 수 있을까를 돌아본다.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는 강태식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부터 우선 들여다보자. 일단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읽고 나면 그 뒤를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15년 사이에 쌈지마저 탈탈 털린 한국인의 요즘 심사들이 대체로 울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1997년에 대대적인 명예퇴직이 있었고, 2008년에도 그러했다. 1997~2008년 사이에 ‘88만원 세대’라는 한국적 족보를 가진 신세대가 양산되기도 했으니, 명퇴를 당한 직장인이든, 한창 일할 나이에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20대든 이 문장에 마음이 쭉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빨간 대야 가득 마늘이 담겨 있다는 것이 두 번째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다시 1970년대가 상기된다. 김영수는 36살에 명퇴를 당하고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빈 곳이 없어 감정 처리를 어정쩡하게 한 탓에 마늘을 까면서 ‘마늘이 맵다.’며 울고 있다. 아내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개시하고, 그는 반지하 방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빨간 대야에 담긴 마늘을 깐다. 마늘을 까다가 곰 인형 눈을 붙이고, 바비인형의 눈썹을 붙이다가 10대처럼 본드도 마신다. 본드에 취한 그는 아내가 ‘한번 하자.’고 간청을 해도 들어줄 수가 없다. 종이학은 더이상 정성이 아니라 1개당 20원인 상품이다. 사람처럼 살기 위해 그는 본드를 버리고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업한다. 직원으로? 아니, 마운틴고릴라로. 이 지경이 되면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세렝게티 동물원에는 동물은 없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사람답게 살기 위해 회사 구조조정의 악역을 포기한 사람, 1억원 포상금에 눈이 어두운 남파공작원을 피해 달아난 또 다른 남파공작원 등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의 흉내를 낼 뿐이다. 하마, 악어, 사자도 다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위해 그들은 자신이 뒤집어 쓴 동물의 탈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간다. 마운틴고릴라인 김영수는 이제 한 시간에 한 번씩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 때때로 12m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올라가 파란 버저를 누른다. 5000원의 보너스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농사짓고 그 수확으로 배를 불리던 농경사회와 달리 돈 벌어 쌀을 사야 하는 화폐경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왜 이리 밥벌이가 눈물 나고 안쓰러우냐 말이다. 남파간첩인 연락원 동무는 사시미칼로 피칠갑이 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한다. “회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돈”이라고. 돈이 숭상받는 사회에 소속돼 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회색의 디스토피아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울컥울컥한데, 소설은 의외로 낙관하며 끝난다. 불필요해 보이는 대목들이 적지 않지만 군더더기가 많은 것이 또한 인생이고 보면, 소설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현대문학의 신인상을 받은 허관 작가는 소설책과 불교 서적을 즐겨 보다가 블로거가 됐고, 인기 블로거로 소설을 써 보라는 주변의 부추김에 부응하다가 소설가로 데뷔한 경우다. 처음에는 원고지 100장짜리 단편소설을 준비하다가, 쓰면서 깨달음을 얻어장편소설로 개작하게 됐다고 했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즉위한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강원도 상원사에 갔던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허 작가는 “세조처럼 권력을 위해 혈육을 죽이고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초등학교 무렵부터 다 알게 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우리가 역사를 똑바로 알고 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충남 안면도의 기후변화감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내놓은 그의 역사 인식을 잘 살펴볼 일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순신·류성룡은 왜 탄핵 당했나

    임진왜란 하면 ‘징비록’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문신 류성룡이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로 전쟁 당시를 기록한 책이다. 명과 일본에서 발간된 문헌에 표현된 ‘졸렬하고 수동적인 조선’이 이 기록으로 이미지를 상당부분 쇄신했다. ‘왜란:소설 징비록’(이번영 지음, 전 3권, 나남 펴냄)은 ‘징비록’을 토대로 역사적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웠다. 작가는 10여년 동안 국내외 사료를 살피고, 명량해전·한산대첩·노량해전 등 격전지를 수십차례 찾아 소설을 완성했다. 소설은 임진왜란의 전말을 풀어내면서, 당시 임금과 신하들은 무엇을 했는지, 백성들은 어떤 피해를 봤는지, 명나라는 과연 조선의 우군이었는지, 이순신과 류성룡은 왜 탄핵당했는지 등 불편한 진실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동아시아 패권 지형 바꾼 ‘국제戰’

    조선을 거쳐 명을 치고 멀리 인도까지 정벌하겠다는 야망에 불탄 일본 실권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수십만 군사를 파견해 조선을 침략했다. 1592년 일이다. 일본군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한양을 점령하고 평양을 함락했다. 의주로 몸을 피한 선조가 명에 구원을 요청했다. 명과 일본은 조선을 배제하고 긴 기간 휴전 협상, 화의 교섭을 진행했다가 결렬했다. 재침략한 일본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본국으로 철수했다. 이때가 1598년이다. 긴 전쟁이었지만 임진왜란에 대한 이미지는 다소 단편적이다. 이순신이 활약했고, 거북선이 제작됐으며 곽재우·사명대사와 같은 의병이 활약했다는 정도. 인구 3분의1이 죽어나갔고 건축물·서적·미술품 등 문화재가 소실됐다. 경제 파탄과 관료 부패가 횡행하면서 조선 역사를 100년 전으로 후퇴시켰다. 단순히 ‘임진년에 왜놈이 일으킨 난리’쯤으로 인식하기에는 영향이 상당하다. 고 김성한(1919~2010) 작가의 대하역사소설 ‘7년 전쟁’(전 5권·산천재 펴냄)은 임진왜란을 ‘동아시아의 패권 지형을 변화시킨 국제전’으로 이해한다. “이 사건을 한국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동양 전체의 입장에서 조감하고 인간의 운명, 민족의 운명을 다시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원래 이 전쟁은 무대가 한국·일본·중국으로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화전(和戰)의 내막도 복잡다기 이를 데 없었다.(중략) 가능한 범위에서 3국의 사료들을 상고하여 당시의 참모습을 그려 볼까 한다.” 작가가 1984년 동아일보에 이 소설을 연재하면서 쓴 말이다. 첫 연재 때 제목은 ‘7년 전쟁’이었지만, 일부 독자들이 ‘왜란’이라고 하지 않은 데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면서 1년 뒤 ‘임진왜란’으로 바뀌었다. 1990년 단행본도 같은 제목으로 나왔다가, 최근 원제를 달고 복간됐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이 소설의 서술은 마치 선조실록을 한 줄 한 줄 따라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증에 굉장히 충실해 소설의 수준을 넘어 2차 역사서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무명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제1회 동인문학상, 아세아자유문학상 등을 받았고 사상계 주간,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을 지낸 언론인이기도 하다.
  • ‘단편소설 거장’의 삶·문학 이야기

    ●레이먼드 카버-어느 작가의 생(강 펴냄) 영화 ‘에브리싱 머스트 고’가 개봉할 즈음 그 영화의 원작자의 평전이 나왔다. ‘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의 중흥기’를 이끈 레이먼드 카버(1938~1988)를 두고 영국의 타임스는 ‘미국 중산계급의 안톤 체호프’라고 명명했다. 미국 북서부 워싱턴 주의 야키마에서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10대 후반에 아이 아빠가 된 카버. 그가 완고한 문단을 뚫고 자리 잡는 과정과 1980년 초 알코올중독 말기에 술을 끊으며 인정받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세밀화처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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