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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절 67돌] “사랑하는 북한 주민” 이례적 표현

    [광복절 67돌] “사랑하는 북한 주민” 이례적 표현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를 한 달 전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소설가 이문열씨 등 몇몇 인사가 관여했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이 대통령이 주도했다는 후문이다. ●박수 작년보다 적은 28차례 경축사를 시작하며 이 대통령은 “사랑하는 북한 주민과 재외동포 여러분!”이라는 표현을 썼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5일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은 분리해서 보기 때문에 사용한 표현으로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2009년 광복절 경축사 때는 “사랑하는 북녘 동포”라는 용어를 썼다. 경축사 중에서 “정치는 임기가 있지만, 경제와 민생은 임기가 없다.”는 부분은 이 대통령이 가장 힘줘 강조한 부분이라고 한다.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일하는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라고 한다.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기존의 ‘따라잡기’를 벗어나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며 내세운 ‘코리안 루트’도 이 대통령의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28분간 연설을 이어갔다. 경축사는 모두 7685자로 200자 원고지 67장 분량이다. 연설 도중 박수는 지난해 38차례보다는 적은 28차례가 나왔다. 일본을 언급한 부분은 비록 짧았지만, 경축사에서는 처음 거론된 위안부 문제 대목에서는 잇따라 3번 연속적으로 박수가 나왔다. ‘코리안 루트’ 부분에서도 5차례 박수를 받았다. 경축사에 쓰인 단어로는 ‘경제’(18차례), ‘위기’(13차례), ‘대한민국’(10차례), ‘창의’(7차례) 등이 빈번하게 나왔다. ●독립군가·시대별 태극기 등장 이 대통령은 경축사를 마친 뒤 ‘마라톤 영웅’인 고(故) 손기정 옹을 주제로 한 ‘나는 한국인’ 영상과 신독립군가, 압록강행진곡 등 독립군가 2곡의 합창·군무를 관람했다. 이어 시대별 태극기가 입장했다. 독도경비대원 2명이 태극기를 들고 무대에 나오고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양궁 기보배, 레슬링 김현우, 태권도 황경선, 펜싱 김지연 선수 등 4명도 선수단복 차림으로 태극기를 흔들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문화마당] 올림픽 유감/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올림픽 유감/주원규 소설가

    올림픽은 더 이상 신성하지 않다. 이 문장을 듣게 되면 대뜸 다음과 같이 물을 것이다. 언제 우리가 올림픽을 신성하다고 했었느냐. 올림픽이 종교라도 되는 거냐 등등의 질문을 쏟아내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예상되는 반문에도 거듭 밝히자면 올림픽은 본래 신성했다. 왜냐하면,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올림픽을 운영하는 협회, 선수들의 열띤 경합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수억명에 달하는 시청자들. 이들 모두가 올림픽의 신성성을 지지하며, 이를 숭고한 감정으로 지켜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가 가능한 이유는 올림픽이 기본적으로 스포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며, 인류의 역사 자체가 경쟁과 경합의 추동력 덕분에 지속하였음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에서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는 스포츠란 게임을 통해 인간의 영웅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경쟁에서 승자를 향한 경외심을 긍정하고 승자에 대한 숭배의 합의까지 자연스럽게 도출해 내는 속성이 있다. 승자를 정점에 놓고 승리의 감격을 공유하는 측면에서 분명히 스포츠는 신성하며, 그만큼 순수하다. 승리의 감정을 공유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이 자연스러운 본능이 당연한 것으로 합의되기 위해선 정당성이란 장치가 요구된다. 정당성은 경쟁이 공평하게 이뤄질 수 있는 장의 조성을 통해 구현되기 마련이다. 공평한 장이 형성되고 그 기반을 통해 승리자를 가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인간은 신성함을 경험하게 되고 4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명실상부한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은 그러한 신성한 체험을 가장 극적으로 인도해줄 의무를 가진 것으로 당연히 합의되어 온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신성함에 대한 기대의 붕괴를 경험하고 말았다. 정당함을 잃어버린 오심의 난무, 그 저변을 장악한 스포츠 비즈니스에 대한 정당성 훼손 혐의가 하나의 이유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올림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나타난 신성에 대한 그릇된 맹신을 꼽을 수 있겠다. 먼저 오심에 대해서. 올림픽에서 가장 기대하는 건 공정한 경쟁이다. 선의의 경쟁을 보장하는 건 합리적인 경기 규칙과 심판, 정당한 판정이다. 그런데 이 정당한 판정이 붕괴되는 순간이 심심찮게 나타났다. 혐의를 좀 더 확장해 판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들이 소위 강대국, 스포츠외교 영향력 관점에서 비롯되고 거기에 또 하나. 스포츠 산업, 스폰서 기업들의 입김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올림픽을 신성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신아람 선수의 ‘1초 오심’ 사건을 통해 해석되는 위의 서글픔은 그렇기에 공정한 경쟁을 통한 참된 영웅을 기대하는 최소한의 기대마저 무너진 것에 대해 더없는 유감을 표현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여기에 또 하나 유감스러운 일이 있다. 우리 사회가 올림픽을 바라보는 뿌리 깊은 우상숭배다. 우리의 결론은 언제나 하나다. 힘을 갖는 것. 언제나 되풀이되어온 같은 결론이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 답을 위해 우리는 승자 만능주의에 입각한 엘리트 선수 양성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역량을 쏟아부을 것이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호하다. 바로 그게 문제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올림픽의 신성함은 선수들의 땀 흘리는 노력이 필요조건이요, 경쟁과 승리자 찬양은 충분조건이란 바른 관계 설정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의 우리는 과연 올림픽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입으로는 패자도, 노메달리스트도 아름답다고 떠들지만, 그들에게 건네는 건 패자를 위로해 주는 수준의 측은지심, 동정의 태도만으로 일관되진 않았는지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분명해졌다. 하지만, 훼손된 올림픽 정신, 우리의 승자 만능주의에 대한 유감은 더 깊어졌다.
  • 非朴 주자들 “공천헌금 사과하라” 朴 “대표때 어땠는지 뻔히 아시면서…”

    새누리당 대선 경선 주자들의 첫 공중파 방송토론회에서 비박(비박근혜) 주자들은 공천 헌금 파문을 둘러싸고 박근혜 후보를 향해 집중 공세를 펼쳤다. 14일 밤 진행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비박 주자들은 질문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박 후보를 겨냥해 사당화 논란, 공천 헌금 관련 책임 등을 집요하게 물었다. 박 후보는 “터무니없는 말”이라며 단호하게 반박, 대응 수위를 높였다. 김문수 후보는 공천헌금 파문 당사자인 현영희 의원을 염두에 두고 “친박(친박근혜) 스폰서 국회의원이라는 말까지 나와 수치스럽다.”며 공천 헌금 사건에 대해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던 박 후보가 왜 사과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아직 결론도 안 났는데 모든 비례대표 의원들이 비리에 연루된 것처럼 말을 만드는 게 과연 당원으로서 금도를 넘는 말씀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임태희 후보가 현기환 전 의원을 거론하며 “공천 과정에서 박 후보의 의중을 전달한 사람”이라고 하자 박 후보는 질문 중간에 끼어들며 “전혀 아니다. 최측근이라는데 뭘 갖고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곧바로 임 후보가 “현 전 의원을 공천위원으로 직접 추천한 것 아닌가.”라고 캐물었고 박 후보는 “네. 불출마한 의원 중에….”라고 답했다. 다만 박 후보는 현 전 의원을 통해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말, 소설을 만들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박 주자들 간 상호 토론에서도 박 후보를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가 이어졌다. 김태호 후보는 현재 새누리당 체제에 대해 “1인 지배체제의 사당화적 구조”라고 꼬집었고, 김문수 후보는 “눈치 주는 사람 한 사람과 눈치 보는 다수로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박 후보는 “사당화를 말씀하시는데 사당화는 뭐든지 제 뜻대로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뭐를 갖고 그러느냐.”고 반박했다. 공천 헌금 관련 공격이 이어지자 박 후보는 1분 추가발언이 주어지는 ‘찬스’까지 요청하며 “제가 당 대표 시절에 어떻게 했는지 뻔히 아시면서 이런 말들을 하시니 섭섭한 생각이 든다.”면서 “민주적인 상향식 공천 도입, 의원총회 최고의결기구로의 격상 등이 제가 당 대표 시절 이뤄진 것이고 거대한 정치실험이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허백윤·최지숙기자 baikyoon@seoul.co.kr
  • 혼불문학상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제2회 혼불문학상에 박정윤(41) 작가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이 선정됐다. 제주 바리데기 설화를 바탕으로 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은 인천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의 밑바닥 삶을 그린 소설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범신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상처와 고독, 사랑 등을 실감나게 묘사했다.”면서 안정적인 문장과 도전적인 문제의식, 무엇보다도 버림받은 바리의 이야기를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박정윤 작가는 2005년 소설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3) 노론 명문 가문 박지원 vs 남인 몰락 가문 정약용

    [선택! 역사를 갈랐다] (23) 노론 명문 가문 박지원 vs 남인 몰락 가문 정약용

    연암은 아무런 관직도 없이 중국에 갔다. 집안 덕이었다. 건륭제의 칠순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단 책임자(정사)로 금성도위 박명원이 임명되었는데 그가 연암의 삼종형(팔촌)이어서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산은 중국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연암(1737~1805)과 다산(1762~1836)은 모두 영조 시대에 태어났다. 다만 연암이 다산보다 25세 위다. 연암의 집안은 반남 박씨로 노론 명문가로 꼽혔다. 다산의 집안은 압해 정씨로 정치적으로 실세한 남인 몰락 가문이었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두 사람은 대표적인 실학자로 나란히 거론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같다고 보면 문득 다르고 다르다고 보면 문득 같다. 연암은 당대의 주류 다수파에 속했으면서도 비주류 소수파의 모습이 보인다. 다산은 당대의 비주류 소수파에 속했으면서도 주류 다수파의 모습이 보인다. 연암은 16세에 결혼해 장인의 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학업에 임했다. 공부가 늦은 감이 있다. 다산은 어린 시절부터 잘나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면서 일찌감치 학업에 정진했다. 7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고 10세에 시집을 만들 정도였다. 연암은 몇 차례 과거를 봤지만 이내 단념하고 말았다. 다산은 과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거에 합격해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갔고 28세에 벼슬길에 나갔다. 과거를 통과하지 않았던 연암은 50세가 넘어서야 정조의 배려와 친구의 천거로 벼슬에 나아갔다. 55세에 첫 지방수령직으로 안의현감에 임명되었다. 지방관 경력을 잠시 비교해보자. 다산은 36세의 나이에 곡산부사로 나갔다. 같은 해에 연암은 61세에 면천군수로, 그 후 64세에 양양부사로 승진되었다. 다산은 30대 부사, 연암은 60대 부사였다. 아무튼 문과에 급제하지 않고도 양양부사에 임명된 사람은 연암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과거 단념·서얼들과 교류… 연암의 ‘강남 스타일’ 과거를 단념한 연암은 30대였던 1760년대 후반부터 탑골공원 근처에 살면서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과 교유했다. 주로 노론 출신이라는 점과 이덕무 등이 신분상 천대받은 서얼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이른바 ‘북학파’ ‘연암그룹’ 또는 ‘백탑시사’ 등으로 불린다. 10대의 다산은 줄곧 둘째 형 정약전과 함께 다녔고 성호 이익의 가르침을 받은 권철신, 이가환 등을 만나고 한국 천주교를 스스로 일으킨 이벽, 이승훈과 어울렸다. 이들은 ‘성호학파’ 또는 ‘기호남인’으로 불린다. 다산은 15세에 결혼한 후 서울 남촌에서 살았다. 연암은 고관대작들이 많이 사는 서울 북촌에 살았으니 요즘으로 치면 연암은 강남, 다산은 강북에 산 셈이다. 두 사람은 문장가, 학자로서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 연암은 사마천의 마음을 읽으라 했다. 다산은 연표를 꼼꼼히 챙기라 했다. 연암은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 마음을 비우라 했다. 다산은 글을 쓰려면 속을 꽉 채우라 했다. 연암은 시를 별로 남기지 않았는데 다산은 마치 일기 쓰듯 많은 시를 남겼다. 연암은 글쓰기엔 요령이 있다고 가르치는데 다산은 문장학이야말로 유학의 큰 해악이라고 내쳤다. 연암은 문장가, 다산은 학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글쓰기에는 두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은밀하게 감추는 방법과 들춰내 드러내는 방법이 그것이다. 연암의 글은 감추는 방법을 잘 활용했다. 다 읽고 나서도 그의 뜻을 제대로 포착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다산의 글은 명징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주로 했다. 읽노라면 곡진한 느낌을 준다. 연암은 인상파 화가인 듯하고, 다산은 사실주의 작가인 듯하다. 연암은 정조에 의해 당시의 자유분방한 문체를 주도한 죄인으로 지목되었다. 다산은 정조의 우등생이요 모범생이었다. 다산은 정조의 순정한 문체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 다산은 당시 사교라 불린 천주교에 감화돼 적극 동조했다가 나중에 태도를 바꾸어 거리를 두었다. 반성문도 썼다. 연암은 천주교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폭력적 탄압에는 반대했다. 이렇듯 다르다 보니 동시대 인물인데도 두 사람이 만났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나이도 차이나고 사는 동네도 달랐지 않은가. 두 사람을 연결하는 인물로 박제가(1750~1805)를 생각할 수 있다. 그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낮에는 규장각에서 다산과 함께 근무했고 저녁에 퇴근하면 연암그룹과 어울렸을 것이다. 박제가를 통해, 또 베스트셀러 작가 연암의 이름이 이미 높았기에 다산은 연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혹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다산이 손위인 연암에게 먼저 인사를 했을 것이다. 인사를 받은 연암은 어떻게 대꾸했을까? 젊은 친구가 누군지 몰라 심드렁하게 인사만 받았을까,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관리라 공손하게 인사를 받았을까. 다산이 18년 유배 기간이 끝날 무렵에 마무리한 ‘경세유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규장각 검서관 박제가가 지은 ‘북학의’ 6권을 보았으며 유신(儒臣) 박지원이 저술한 ‘열하일기’ 20권을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실린 중국의 기구 이용 제도는 보통 사람이 헤아리기 힘든 것이 많았다.” 다산의 ‘경세유표’는 유가적 이상에 입각한 국정 전반의 제도 개혁안이다. 여기서 다산은 청나라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北學)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여 오로지 그것을 직무로 하는 관청을 별도로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이용감’이었다.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제안한 제도 중 꼭 그대로 시행되길 바라는 열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이용감 설치는 그중 하나다. ●저자와 독자 그 이상의 연결고리 ‘열하일기’ 이로 볼 때 두 사람은 ‘열하일기’로 연결되고 있었다. 물론 저자와 독자의 관계였지만. ‘열하일기’는 연암이 중국에 다녀와서 쓴 책이다.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야구도하기’ 또는 유명한 소설 ‘허생전’을 교과서에서 읽었을 텐데 모두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그래서 ‘열하일기’를 여행기 또는 문학작품으로만 생각할지 모른다. 그 해 여름, 44세 연암은 붓 두 자루, 먹 하나, 작은 공책 네 권 등 간단한 행장으로 중국을 향했다. 압록강을 눈앞에 두고 자객 형가를 생각했다. 진시황을 죽이러 적국이며 강대국인 진나라로 강을 건너가기 직전의 형가가 하필 떠올랐을까! 연암은 국경을 넘어 살림살이가 넉넉해 보이는 여염집을 보고서는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변방의 촌마을이 이 정도라니. 연암은 중국에서 정말 볼 만한 것은 큰 누각이나 성곽이 아니라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이라고 했다. 민간의 이용후생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연암은 도중에 목격한 수레, 벽돌, 목축, 선박 등 여러 제도들을 소개했다. 허구적이고 자폐적인 북벌론의 미몽에서 깨어나 북학을 해야만 북벌도 가능할 터. 대내용 북벌만 강경하게 외칠 뿐 민생은 나아지지 않는 조선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열하일기’를 통해 연암은 여정의 진행에 따라 보고 들은 것들을 전하면서 갖가지 주제를 넘나들었다. 형식 또한 일기 형식으로 시작해 다양한 산문 형식을 시도했다. 이러한 다양한 주제와 형식에도 불구하고 ‘열하일기’ 전체에 흐르는 주제의 하나는 ‘천하의 정세를 살피는 것’이었다. 연암은 사신의 일행이면서 공식 임무가 없었다. 새벽이면 일행보다 먼저 출발해 여기저기 많은 곳을 둘러보려고 했고 저녁이면 몰래 숙소를 벗어나 중국 지식인들과 만나 필담을 나누다 새벽에 들어오곤 했다. 청 황실의 대내외 통제 술책을 간파하면서 지금 태평연월을 누리고 있는 천하가 장차 어찌 될지 변역의 기미를 살폈다. ‘열하일기’는 현실적 존재인 청 왕조를 오랑캐라 외면하고 무시하는 자폐에 대한 질타였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조선의 식자층 내지 지배층에 고정관념과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을 갖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내 눈으로만 보는 자폐와 남의 눈으로만 보는 자아 상실의 극단은 늘 경계할 병통이다. 또한 천하대세를 전망하고 변역의 기미를 놓치지 않는 예민함은 지금도 절실하다. 아, 아깝다. 또 다른 위대한 저술가 다산은 해외 여행 갈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도 외국에 다녀왔다면 필시 굉장한 저서를 낳았을 터이다. 다산이 유배 18년 동안에 육경사서와 정치·경제·행정·역사·지리·언어·국방·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룬 저서가 모두 500권이 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그는 다만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에 관한 책을 부지런히 찾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당대에 큰 반향을 일으킨 연암의 역저 ‘열하일기’는 점차 위축되었다. 그릇된 문체의 본산으로 지목되고 오랑캐 연호를 사용한 원고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후손조차 문집 간행을 보류했을 정도다. 나라를 잃은 1911년에 와서야 활자로 간행되었다. 다산의 역저 ‘경세유표’ 등도 빛을 보지 못하다가 조선왕조가 망할 때에 가서야 주목을 받았다. 연암은 문체 문제로, 다산은 천주교 문제로 각각 정조의 지적을 받았지만 두 사람 다 정조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정조가 죽자 다산은 유배를 가고 연암은 몇 년 후 세상을 떴다. 조선왕조는 망하기 직전인 1910년 다산과 연암에게 시호를 내렸는데 둘 다 ‘문도공’(文度公)이었다. 만시지탄. 그들은 글로써 세상을 바꾸고자 필생의 역저를 남겼다. 그 진가는 뜻있는 독자들에게 달렸다.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 [문학 새 책] 영미권 스타 작가들의 단편소설집

    영미권 스타 작가들의 단편소설집 ●안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스티븐 킹, 닐 게이먼, 마이클 크라이턴, 데이브 에거스 등 영미권 스타 작가들의 단편소설집으로 공포와 추리, 범죄, 로맨스, 판타지, SF 등의 장르를 담았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마이클 셰이본이 작가 섭외부터 디자인까지 총괄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잊혀진 단편소설의 초기 장르를 부활시키고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한 소설집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톨 펴냄.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25편 모아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1990년 폴 버호벤 감독과 2012년 렌 와이즈먼 감독은 영화 ‘토탈 리콜’을 찍었다. 토탈 리콜의 원작은 필립 K 딕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이다. 폴라북스는 ‘도매가’를 표제작으로 하는 딕의 단편소설집을 펴냈다. 딕이 가장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던 1963~1981년의 단편들 25편을 모았고, 이 중 23편은 국내 처음으로 공개하는 단편들이다. ‘현실이 뭐지?’ ‘인간이 뭐지?’라는 의문이 깊게 배어 있다.
  • ‘맨홀’에 갇힌 청소년, 혼자서 구원의 빛 찾을 수 있을까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평범해 보이지만 사고 친 아이들을 보호하는 ‘한마음 청소년 센터’의 낮 풍경이다. 골키퍼를 보고 있는 열아홉 살 ‘나’ 역시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 자랐다. ‘내’가 열여덟 살 때 아버지는 화재 현장에서 열여섯 명의 목숨을 구하고 스러져 소방 영웅이 됐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매일 밤 폭력을 휘두르며 집을 “불길 속 공포로 몰아넣은” 악인이었다. 박지리의 청소년 소설 ‘맨홀’(사계절 펴냄)은 악마 같은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을 여러 번 상상했던 소년이 아버지가 죽은 뒤 1년 동안 겪은 감정변화를 담담하게 그린다. ‘나’는 아버지만 사라지면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는 병에 걸린 듯 수척해졌지만 일단 폭력이 사라졌으니 괜찮다. 집을 나갔던 누나도 돌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분노가 끓어오른다. “아무리 싫어해도 아버진 우리 아버지야.”(33쪽) 아버지에게 맞은 세월이 부지기수인 엄마의 전용 넋두리이자 누나가 가장 혐오했던 말을 이제는 누나가 하고 있다. 엄마는 감사패와 훈장을 끌어안고 있다. 죽은 아버지의 존재를 갑자기 미화하는 엄마와 누나를 향한 분노가 인다. “그 사람이 했던 짓을 똑같이 하는구나… 닮은 얼굴로”(71쪽) 남자를 만나고 온 누나를 향해 다짜고짜 소리를 내지른 ‘나’를 향해 던진 누나의 말에 얼어붙었다. 누나와 ‘내’가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그 말이 꽂히는 순간, ‘나’는 변화를 깨달았다. 분노와 증오에 휩싸인 ‘나’는 새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파키’라고 부르던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을 살해하고 말았다. 어떤 욕구가 솟구쳤다. “그래, 난 한 번쯤 인간을 이렇게 패 보고 싶었어. 나만 늘 병신같이 당하란 법은 없으니까.”(226쪽) 유능한 변호사 덕에 ‘나’는 아버지를 잃은 충격 탓에 살인한 것으로 포장돼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관대한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살인적인 폭력에 시달렸던 ‘나’는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저 살인자일 뿐이다. 청소년소설 ‘합★체’로 2010년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글을 쓰는 동안 우리가 사는 곳이 무수히 많은 맨홀들로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소설은 그 많은 맨홀들 중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소설 속 ‘맨홀’은 주인공이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누나와 숨어든 안식처인 동시에 자신이 죽인 외국인 노동자 시체를 감춰둔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죽은 후 맨홀을 찾지는 않았지만 소년의 삶은 맨홀의 연속이다. 소년은 벗어나려는 의지가 부족해 맨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구원의 빛은 혼자의 힘으로 찾아낼 수 있는가. 책은 내내 의문을 던진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조선 후기 최대 금서이자 대표적 예언서 ‘정감록’

    조선 후기 최대 금서이자 대표적 예언서 ‘정감록’

    읽어 나가는 동안 머릿속을 울리는 단어는 ‘단턴 테제’다. 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이 ‘책과 혁명’(주명철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에서 내놓은 주장인데, 프랑스혁명이 과연 위대한 계몽사상 덕택이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단턴이 주목한 것은 혁명 전 프랑스에서 유행한 불법 도서 목록이었다. 혁명 전 불법 도서라 해서 폭력혁명을 부추긴다든가 하는 것은 없다. 대개는 연애소설이나 치정담 수준의 얘기들로 가진 자들의 위선과 타락상을 묘사해 둔 정도였다. 단턴이 주목하는 것은 이 책들을 통해 기존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대중들 사이에 유포됐다는 점이다. 단턴이 불법 도서들을 일러 ‘정치적 민담’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금의 우리야 루소 하면 ‘사회계약론’을 통해 프랑스혁명을 예비한 위대한 계몽사상가라고 배우고 가르치지만, 그 당시 보통 프랑스 사람들에게 루소라는 이름을 댔다면 아마도 ‘신엘로이즈’를 쓴 낭만적 연애소설가라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억압받던 민중이 마침내 깨우치고 떨쳐 일어나 쟁취한 위대한 승리로서 프랑스혁명을 기억했던 사람들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 셈이다. ‘정감록 미스터리’(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이런 맥락에서 조선 후기 최대 금서 ‘정감록’을 다룬다. 20여년간 정감록을 붙잡고 공부했고 이미 4권의 책을 낸 저자는 이 책으로 정감록 탐구를 마무리 짓는다. 마무리 짓는 마당인데 책 이름에다 ‘미스터리’를 붙여 뒀다.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정보 속에서” 저자가 스스로 “영화 속 이름난 형사”라 생각하고 최종 정리했으나, 아직 빈 구멍이 많아 추론으로 메워 뒀으니 다른 연구자들이 채워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인 셈이다. 그런데 추론 뒤에는 꼭 이 한마디를 붙여 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말, 겸손한 자기방어라기보다 꽤 단호한 선언으로 읽힌다. 이는 저자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개혁 움직임, 한 발 더 내디뎌 자생적 근대화 운운하는 이들은 늘 실학, 천주교, 동학 같은 것들을 끌어온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거 의외로 만만치 않다. 실학이 그렇게나 기존 유학과 차별적이고 참신한 새로운 사상인가, 왕정이나 토지개혁 등에 대한 입장을 감안했을 때 과연 전봉준의 봉기는 근대지향적이란 의미에서 동학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다면 그 잘났다는 서구의 근대혁명은 그토록 아름답기만 했던가, 대체 근대혁명의 표준적 모델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가라는 반론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저자는 이 논쟁에다 대고 ‘일반 민중의 눈으로 보기에 실학, 천주교, 동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감록’이라고 선언한다. 수면 위로 실학, 천주교, 동학 같은 것들이 분출했더라도 그 물밑 흐름 속에는 정감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기존 논쟁 구도의 불판을 갈아 버린 셈이다. 저자 스스로도 정감록이 무슨 대단한 비밀을 품은 책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오래 이어 내려온 불교와 도교적 전통 위에 언젠가 나타날 진인, 혹은 정도령이 계룡산에 도읍해 새 세상을 연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없었고 성경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도 안 보였”고, “알쏭달쏭한 표현만 단편적”으로 나열돼 있었기에 한국의 대표적 예언서라곤 하지만 “막상 읽어 보니 실망이 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정감록을 놓지 못하는 것은 정감록 자체보다 정감록 뒤에 숨어 있는 대중들의 힘이다. 정감록에 도취된 대중들이 워낙 많으니 정감록을 금서로 멀리하면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양반들도 이런저런 책에다 계룡산 얘기를 적어 뒀고, 그렇다 보니 흥선대원군조차 차라리 먼저 계룡산으로 도읍을 옮겨 볼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물밑 움직임도 다를 바 없다. 가령 1794년 조선으로 잠입한 중국 천주교 신부 주문모를 두고 정감록에서 얘기한 서쪽 바다에서 도래할 ‘해도 진인’이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천주교의 교세 확장에 정감록에 대한 대중적 믿음이 상당히 기여했으리라는 얘기다. 정감록에서도 말세를 묘사한 대목은 최후의 심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전쟁과 전염병을 강조해 두고 있다. 정감록이 불교와 도교의 토대 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상당히 이질적인데, 이는 천주교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저자는 동학, 증산교, 원불교 등 구한말 출현한 한국의 대표적 신종교들이 정감록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본다. 물론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14년간 신자 300여명을 살해, 암매장했다가 1937년 적발된 종교단체 백백교처럼 완전한 사이비도 있었고, 1920년대 신도 수만 600만명에 이르렀던 보천교나 항일적 성격이 강했던 청림교처럼 일제조차 전전긍긍했던 민족종교도 있다. 예언적이거나 미신적 요소를 대거 걸러 내고 종교적 가르침을 채워 넣었던 동학이나 원불교 같은 것도 있었다. 신종교의 뿌리 격인 동학의 경우 창시자 최제우는 ‘궁을부’(弓乙符)라는 부적을 만들었는데, 이는 정감록의 ‘궁궁을을’에서 따온 것이다. 원불교가 계룡산 아래 신도안에 자리 잡은 것 역시 “신도안에 웅크리고 앉아 새 운수가 되기만을 바라는 정감록 신자들을 깨우려 한 것”이라고 했다. 왜 정감록은 하나의 뿌리가 되었던가. 정감록(鄭鑑錄)이라는 이름에서 잘 드러난다. ‘정’(鄭)은 정몽주, 정도전, 정여립, 정희량 같은 인물에서 나왔다. 이들 인물을 묶는 키워드는 반(反)조선왕조다. “정씨는 조선왕조와 상극”이라는 “민중의 집단적 기억”이 반영됐다. ‘감’(鑑)은 판본에 따라 ‘堪’ 또는 ‘鑑’이라 표기되는데 앞의 것은 풍수지리, 뒤의 것은 거울을 뜻한다. 무언가 신령스러운 힘을 드러내는 단어다. 또 정감록에는 ‘록’자가 붙어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전 예언서에는 대개 ‘비기’, ‘비사’, ‘유훈’ 같은 말이 붙어 있었다. 그에 반해 정감록은 동양 고전의 오랜 형태인 대화체로 구성됐다. 저자는 “그 시대 한문 교양의 초점이 성리학적 교양에 맞춰졌던 만큼 반사회적인 정감록마저도 유교 경전을 방불케 하는 대화체, 유교적 역사관을 드러내는 실록체를 지향했다.”고 강조해 뒀다. 저자가 유심히 보는 또 하나의 대목은 조선왕조실록을 봤더니 영조 때 정감록을 둘러싼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고, 정조 때 이미 한글판 정감록이 보급된 정황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를 “평민층 가운데 독서인이 나오고 그들이 직접 저술에 뛰어들었다.”는 징표로 해석한다. 그러니까 정감록은 다소 엉성하고 조잡스럽고 유치해 보이기는 하지만, 평민들이 권력자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나름대로 꿈꿔 왔던, 그리고 가장 매혹시켰던 대항 이데올로기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1만 8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통령 독도 첫 방문… 한일관계 급랭

    대통령 독도 첫 방문… 한일관계 급랭

    ‘8시간.’ 이명박 대통령이 10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우리 땅 독도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4년 만에 처음 이뤄졌지만, 이 대통령이 전용헬기를 타고 울릉도를 거쳐 독도 땅을 밟고 돌아오는 데는 단 8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11일 새벽 런던올림픽 한·일 축구전과 8·15 광복절을 앞둔 이날, 이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면서 한·일 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임기 말 돌파구를 찾으려는 이 대통령의 지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관심을 끈다. 한·일 관계를 희생하더라도 국내 정치 속 ‘레임덕’을 막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비대원들을 만나 “독도는 진정한 우리의 영토이고 목숨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면서 “긍지를 갖고 지켜 가자.”고 말했다. 대통령의 방문과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가겠다고 생각하고 실제 실행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몇 차례 방문하려던 것을 접었다가 지금쯤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관심은 울릉도·독도가 친환경적으로 보존돼야 한다는 것이고, 울릉도·독도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대통령이 우리 땅에 가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에 통보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는 유영숙 환경부 장관과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설가 이문열·김주영씨, 하금열 대통령실장, 박인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 등이 동행했다. 그러나 한·일 간 외교적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듯 외교안보수석실이나 외교안보부처 관계자는 수행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오후 3시 독도를 출발, 5시 45분 청와대로 돌아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명랑소설서 사회소설로 ‘변신’ 소외된 이웃의 삶 고스란히…

    명랑소설서 사회소설로 ‘변신’ 소외된 이웃의 삶 고스란히…

    “소년출세지만 ‘정신 차리자’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 펴냄)을 낸 소설가 김애란(32)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2세에 대산문학상으로 데뷔했으니, 어른들이 인생에서 가장 기피해야 한다는 소년출세 아니냐.”고 질문하자 이런 대답을 턱 하니 내놓았다. 지난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펴냄)이 1년 만에 25만부가 팔려 나가며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을 때도 김애란은 “책마다 반응이 어떨지 모르고 예상할 수도 없는 것이니, ‘역시 정신 차리자’”라고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흰 피부에 커다란 검은 눈이 또렷한 김애란은 원래 유머러스하고 명랑한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써온 단편소설을 묶어낸 ‘비행운’은 세상과 삶의 무게는 천근만 한 대형 바위로 꾹 눌러놓은 듯 묵직한 소설들로 꽉 채웠다. 표제작인 비행운(飛行雲)은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형성되는 구름을 말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행운이 없다는 뜻의 비행운(非幸運)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질 나쁜 채무자가 된 대학 졸업자로 죽어서도 박스를 줍는 할머니의 환영을 보고 오열하는 88만원 세대, 화장실과 동격으로 취급받지만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사식을 넣어 주기 위해 명절 근무를 자청하는 원형탈모증으로 대머리가 돼 가는 공항 화장실 청소부, 첫사랑으로 인해 발 들인 다단계 판매업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학원 제자를 밀어넣고 그 제자가 자살하자 죄의식에 시달리는 전직 학원선생, 재개발 지역의 건물 잔해 위에서 양수가 터진 임부, 크레인 위에서 체불 임금을 요구하다가 실족한 아버지에 이어 홍수로 집을 잃고 다시 크레인에 올라야 하는 소년, 집안의 멸시를 받으며 어찌어찌 조선족과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뤘지만, 암으로 아내를 잃고 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로 중국어를 익히는 택시기사 등이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20대뿐 아니라 50대도 읽는다면 통곡하고 싶은 심정에 빠질 만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을씨년스러운 재개발지역을 다룬 소설은 어떻게 썼을까 싶었다. “취재를 일부러 하지는 않았는데, 지난 4년 동안 소설 속의 소재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가 결혼 전에 살던 서울 회기동이 실제 재개발이 일어난 공간이고, 용산 사태도 벌어지고 해서 쓸 수 있었어요.”라고 김애란은 말했다. 22살 느닷없이 소설가 데뷔를 한 뒤로 ‘총알’(데뷔 전에 써놓은 미발표 작품들)이 많지 않아 청탁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쓰다 보니 시의적으로 민감해졌다. 또 처음에는 주변의 가까운 소재를 쓰다가 한발한발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사회적 소재들이다. 그는 “서산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에 진학하면서 살게 된 서울이란 공간이 하나하나 신기했다.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서 편의점, 고시원, 노량진, 신림동 이야기를 썼고, 공간의 이야기가 재개발 지역까지 확장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퇴고를 많이, 오래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1년 365일 중 300일 정도 소설을 쓰고, 첫날 200자 원고지 3장을 쓰고 다음 날 이어 4장째를 쓰는 것이 아니라, 첫 장부터 다시 쓰면서 4장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쓴다. 김애란의 소설이 밀도가 높은 이유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10년째 소설가의 길을 가는 김애란은 “작가가 되려고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호기심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설을 쓰는 경지에 올라 평생 동안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박경리 ‘토지’ 정본화 작업 10년만에 결실

    박경리 ‘토지’ 정본화 작업 10년만에 결실

    박경리 작가 생전인 2002년부터 시작된 ‘토지’ 정본 확정 작업이 10년이 지나 결실을 맺었다. ‘토지’로 학위 논문을 쓴 5명의 편찬위원과 출판사 마로니에북스 직원들이 달려들어 연재본을 중심으로 한쪽 한쪽 읽어 가며 확인한 결과가 9일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출간간담회에서 공개됐다. 원고지 4만쪽 분량의 방대한 원고에는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손이 갔다.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고 비틀렸던 단어와 문장이 연재본과의 대조 작업으로 무수히 살아났다. 판본에 ‘우찌 그리 울어대는 자식보다 돈이 중하던고’라고 돼 있던 부분은 ‘우찌 그리 울 어매는 자식보다 돈이 중하던고’로, ‘줄 수도 없고요’는 ‘줄 술도 없고요’로 바로잡혔다. 600명이 넘는 인물이 넘나드는 ‘토지’에서 인물이 혼동된 부분도 작가와 생전의 상의를 거쳐 고쳐 나갔다. 작가가 쓴 옛말이나 독특한 표현도 여럿 살아났다. 본래 ‘침을 굴칵 삼킨다’가 ‘침을 꼴칵 삼킨다’로, ‘조굴조굴하게 주름이 지고’가 ‘쪼글쪼글하게 주름이 지고’로 심심찮게 왜곡돼 있었던 표현들이 줄줄이 발견된 것이다. 편찬위원이었던 박상민 가톨릭대 교수는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 ‘훌륭한 작가지만 사전에 없는 단어를 쓸 만큼 용기 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고 평했던 일화를 작가가 들려줬던 걸 상기시키며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모국어의 지평을 넓힌 작가의 소신을 회고했다. 연합뉴스
  • [씨줄날줄] ‘그년’/진경호 논설위원

    본디 ‘그녀’는 없었다. 제3자를 말할 때 우리 선조들은 남녀를 따지지 않았다. 3인칭 여성을 가리키는 이 말이 본격 쓰이기 시작한 때는 대개 1950년대 전후다. 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양주동(1903~1977) 선생이 ‘신혼기’(1926)라는 작품에서 처음 ‘그녀’를 썼고, 한동안 ‘그네’ ‘그미’ ‘그니’라는 말들이 혼용되다 ‘그녀’로 정착된 것이다.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은 이런 ‘그녀’가 영 마뜩지 않았다. 19세기 말 영미 문학 바람이 일던 일본 문단이 영어 ‘he’와 ‘she’를 대신할 말로 ‘가레’(彼)와 ‘가노조’(彼女)를 만들었고, 이 가노조에서 우리 문단이 ‘그녀’를 끄집어 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왜색(倭色)이 짙은, 영어와 일어가 뒤섞인 뿌리 없는 말이라는 게 외솔의 생각이었다. 양주동 선생도 이런 지적이 걸렸던지 ‘그녀’라는 말을 만들어 놓고는 정작 자신은 ‘궐녀’(厥女)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 그러나 ‘궐녀’ 또한 우리말은 아니었다. ‘그것’, ‘그곳’ 등 적당히 떨어진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 ‘그’를 의미하는 한자 궐(厥)을, 당시 3인칭 대명사 ‘그이’로 사용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궐녀’를 제3의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게 된 것이다. 외솔은 ‘어미’ ‘할미’ 등에서 따온 ‘그미’를 썼고, 이광수(1892~1950)는 소설 ‘무정’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라고 했다. 1974년 국어순화운동 전국연합회라는 단체가 ‘그녀’를 쓰지 말자고 캠페인까지 벌인 걸 보면 올해로 여든여섯이 된 ‘그녀’는 태어날 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인 듯하다. 이런 ‘그녀’가 민주통합당 이종걸 의원으로 인해 입길에 올랐다.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를 ‘그년’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 뒤로 거세지는 논란에 그는 “‘그녀는’의 줄임말이다. 나름 많은 생각을 했다.”(5일)라고 해명하더니 “‘그녀는’의 오타였다. 듣기 불편한 분들이 계셨다면 유감”(7일)이라고 다시 둘러댔다. 이후 “그년이란 말을 그냥 고집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나의 제 내심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8일), “본의가 아닌 표현으로 심려를 끼친 분들께 거듭 유감을 표한다.”(9일)로 오락가락했다. 외솔이 ‘그녀’를 쓰지 말자고 했던 까닭의 하나는 ‘그녀는’을 발음하면 ‘그 년은’이라는 욕설로 들린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후대에 격 떨어지는 정치인 하나가 장난칠지도 모른다고 일찍이 걱정하셨던 모양이다. 이 의원의 조부는 항일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울랄라세션 임윤택 결혼… 소설가 이외수 주례 맡아

    울랄라세션 임윤택 결혼… 소설가 이외수 주례 맡아

    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왼쪽·32)이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칼라티움에서 세 살 연하의 헤어디자이너 이혜림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결혼식 사회는 개그맨 김경욱이, 주례는 소설가 이외수가 각각 맡았다. 축가는 울랄라세션 멤버들이 불렀다. 임윤택 커플은 지난해 여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사랑을 키웠다. 이들은 다음 달이면 아빠·엄마가 된다. 신혼 여행은 생략한다. 임윤택의 소속사는 “신부가 다음 달 아이를 출산할 예정인 데다 울랄라세션도 오는 25일 첫 단독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 신혼 여행은 가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3) 광주 육판서길 & 대구 북성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3) 광주 육판서길 & 대구 북성로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소년 어니스트는 마을 바위 골짜기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에 대한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고 자란다. 마을 사람들 역시 평생에 걸쳐 훌륭한 인물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얘기다. 고단하고 남루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부와 명예, 권력 등 출세에 대한 욕망은 이렇듯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았다. 대구 중구 북성로와 광주 동구 육판서길 역시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부와 출세에 대한 갈망의 얘기를 담고 있다. 타관으로 떠나 출세한 이는 마을의 자랑이다. 하지만 구불구불한 고향 길을 따라 대처로 떠난 이 대부분은 으리번쩍하게 출세하기보다 여전히 퍽퍽한 삶 속에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광주 육판서길 깜빡이는 30촉 전구를 올려다보며 박수를 치고 처음으로 전화를 들여놓은 집에 모여 감격스러워했던 것이 20년 남짓 전의 일이다. 지하수가 아닌 수도꼭지에서 졸졸거리는 수돗물에 감격했던 것은 불과 7, 8년 전이다. 광주 도심에서 20분 안쪽 거리에 있는 마을이건만 발전은 더뎠다. 온 나라가 난리던 6·25전쟁 때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을 정도였다. ‘전라도판 동막골’ 같은 곳이다. 광주에서 화순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길 입구에 커다란 바윗덩어리 표석이 보인다. ‘六判里’(육판리)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부터 육판서길이다. 시멘트로 닦인 길이긴 하지만 쉬 사람 사는 마을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구불구불한 산길, 논길, 밭길이다. 다른 곁길도 없다. 육판서길 중간쯤 왼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절(법림사)이 하나 있어 육판서길 143번길이 하나 따로 나와 있는 정도다. ●평산 신씨·광산 김씨 집성촌 시작점에서 2004m를 가니 거짓말처럼 마을이 하나 나왔다. 500년 정도의 나이를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에서 한껏 팔을 벌리고 있다. 행정구역명은 광주 동구 내남동 내지마을이다. 하지만 내지마을이 아닌 육판마을로 흔히 쓰인다. 풍수지리학적으로 3정승 6판서가 나올 지세라고 해 붙은 이름이다. 정승에 판서라니…. 정승은 요즘으로 치면 총리급이고 판서면 장관급인데 진짜 판서를 여섯 명이나 배출했던 것일까. 아니면 대처를 꿈꿔 온 궁벽한 마을의 바람이 담겼던 걸까. 이 마을은 평산 신씨와 광산 김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육판서길을 도로명 주소로 쓰는 집은 모두 82곳이 있지만 외지로 많이 떠나 빈집이 20곳 가까이 된다. 마을에서 가장 젊어 이장을 맡고 있다는 김성중(64)씨는 “아주 옛날부터 지관들이 마을을 보고 나면 한결같이 풍수지리학적으로 지세가 아주 좋아 3정승 6판서가 나올 곳이라고 했다.”면서 대처로 나간 육판마을 출신 인사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는다. 어디 병무청장, 어느 지역의 지법원장에 4성 장군, 큰 리조트를 운영하는 사업가…. 광주에서 언론인 생활을 하다 은퇴하고 귀향한 신현덕(70)씨도 “풍수지리학에서는 길지의 조건 중 ‘산진수회 필유음택’이 있는데 우리 마을이 딱 들어맞는다. 외지인들도 묘를 쓰기 위해 여기로 들어온다.”고 거들었다. 산진수회 필유음택(山盡水回 必有陰宅)은 산으로 막히고 물이 감아 도는 곳에 묘를 쓴다는 뜻이란다. ●내지천 마을 감싸고 분적산 병풍처럼 실제로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니 무등산 자락에서 뻗어 내린 분적산이 병풍처럼 든든히 버티고 있고 내지천이 마을을 감싸며 흐르고 있다. 총리, 장관까지는 아니라도 궁벽한 마을에서 출세한 사람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마을회관 앞에서 삶은 감자를 먹으며 마을 내력을 살펴보니 꼭 풍수지리학적 지세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비밀은 육판마을의 놀라운 교육열이었다. 단순히 자식들의 교육열이 아니라 어른, 아이 가릴 것 없는 배움의 열기 그 자체였다. 그저 먹고사는 것에만 매달려야 했던 1955년부터 육판마을에서는 한문서당을 운영했고 1961년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을 열었다. 공식 학력은 보잘것없는 촌로들이 문자속이 기특할 수밖에 없는 것도, 마을회관 벽마다 마을의 크고 작은 역사를 빼곡히 기록해 놓은 것도 그에 따른 당연한 이치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도 순리에 가까웠겠다 싶다.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의 출현을 기다렸던 어니스트와 마을 사람들이 말년에 이르러서야 새삼 깨달았듯이 육판마을 역시 마찬가지 가르침을 준다. ‘출세’는 돈이나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성찰할 줄 아는 겸손한 성품과 순결한 노력에 따른 부수적 산물이다. 글 사진 광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대구 북성로 일제강점기 때 대구 읍성이 헐리고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허물어진 읍성 자리에 신작로를 냈다. 북쪽에 낸 신작로가 북성로다. 대구역 사거리 대우빌딩에서 달성공원 입구까지 1.42㎞ 구간이다. 지역 최초로 포장된 도로였을 뿐만 아니라 북쪽에 경부선 철로가 나면서 제일 먼저 일본 사람들이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한 도로이기도 하다. ●대구 읍성 헐고 낸 신작로 1.42㎞ 구간 자연스럽게 북성로 일대는 일본인들의 상점으로 채워졌다. 조경회사인 스기하라합자회사, 목재회사인 구로가와 재목점, 대구 최초의 목욕탕인 조일탕, 대구 곡물회사, 마쓰노 석유회사, 철물점 등이 생소한 일본어 간판을 내걸고 늘어섰다. 식당, 요릿집, 영화관, 여관 등이 있던 무라카미초(향촌동)와 연결돼 대구 최고의 번화가를 이뤘다. 특히 이곳에 자리 잡은 미나카이 백화점(현재 대우 주차장 자리)은 대구 본점을 시작으로 한반도 전역과 만주, 일본 도쿄에 이르기까지 18개 지점을 거느린 백화점 그룹으로 성장했다. 1940년 당시 종업원 4000여명에 연 매출이 1억여엔인 공룡 기업이었다. 미나카이 백화점은 5층으로 지어질 당시 대구 최고층 건물이었다. 기둥 사이에 붉은 벽돌을 쌓고 타일을 붙였으며 안에는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 꼭대기 층에는 카페가 있어 지방의 재력가들이 드나들었다. 최근 이 백화점을 내용으로 한 ‘북성로의 밤’이라는 소설이 출간됐다. 일본이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부설한 철도도 북성로를 당시 최고의 번화가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철도가 멈추는 대구역 주변에는 물류가 모이고 빠져나가는 대형 창고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거래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식인 쌀의 거래는 일제의 수탈 강화와 함께 투기성을 띠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 북성로는 사교와 문화의 거리로 변모한다. 백조다방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 향토 음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향토 음악인의 연습 공간으로 애용되기도 했다. 6·25전쟁 시절에는 북성로 일대에 이름난 다방이 많이 있었다. 모나미, 청포도, 백조, 백록, 호수, 꽃자리 등이다. 모나미다방은 문인들이 즐겨 찾았으며 꽃자리다방에선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상권이 변하면서 1970년대 들어 북성로에는 공구 골목이 들어섰다. 북성로 거리 양쪽에 500여개 점포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공구, 호스, 농기구, 베어링 등의 산업용품을 판매한다. 이곳에서 대구 경북 산업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3산업공단, 이현공단 등 도심 산업단지가 들어선 197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았다. ●30년 넘은 여인숙·쪽방 다닥다닥 이후 공구 골목은 부침을 거듭했다. IMF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1998년에는 검단동 유통단지로 상당수 업체가 빠져나가면서,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몰이 생겨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반복되는 위기에도 굵직한 회사들이 여전히 북성로를 지켜 공구 골목은 건재하다. 하지만 공구 골목 주변은 개발에서 소외돼 도심의 빈촌으로 전락했다. 북성로에는 아직도 30년이 지난 낡은 여인숙과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3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래도 북성로에서 변화한 곳이 있다. 1904년 건설된 대구역사다. 당시 오두막 형태의 임시 역사였지만 1913년에 다시 지어졌다. 목조 2층으로 일본, 서양 절충형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었다. 역 앞 광장은 민중 집회와 축제, 선거 유세 때 가장 먼저 꼽히는 장소였다. 대구를 드나드는 사람들과 만나고 이별하는 추억을 시민들에게 남겼다. 그 광장은 2002년 대구역이 롯데백화점 민자역사로 바뀌면서 시민들의 품을 떠나고 말았다.북성로에서 50년째 살고 있다는 김정규(75)씨는 “북성로는 대구의 모든 돈과 쌀이 모였던 곳이었다. 이제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글 사진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14회는 제주 서귀포시 ‘이어도로’를 소개합니다.
  • 재일동포 100년사… 차별·무관심의 흔적들

    재일동포 100년사… 차별·무관심의 흔적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강점기에 생계를 위해 현해탄을 건넜던 재일동포 100년의 역사를 영상과 유물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열도 속의 아리랑’이 오는 10일부터 개최된다. ‘재일동포’는 ‘1910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의 자손’을 말한다. 조선총독부가 1910~20년대에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을 펴자 생활기반을 잃어버린 농민들은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넘어갔다. 1920년대 후반 이후 매년 8만~15만명이 이동했고,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으로 부족해진 일본 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본 전역의 탄광과 광산, 토목공사 현장에 조선인이 동원되었다. 일본 소설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청춘의 문’에도 광산노동자로 전락한 조선인들이 나온다. 1945년 광복 후 일본에 잔류한 인원은 약 70만명에 달했다. 재일교포는 한국과 일본을 매개하는 가교가 될 수도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일본은 이들을 차별해 왔고, 한국은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7일 “재일동포의 역사가 100여년이 지나도록 이들의 삶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각인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이번 ‘열도 속의 아리랑’은 동북아역사재단과 서울역사박물관, 일본의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특별기획전과 역사 영상심포지엄, 영화상영 등으로 구성됐고, 모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 우선 특별기획전은 두개 부문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1부는 일본에서 건너온 ‘도항증명서’, ‘외국인등록증’ 등 총 449건 987점의 자료가 전시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온 재일교포들의 마음을 담았다. 2부는 일본의 역사관을 다색판화 ‘니시키에’를 통해 살펴본다. 니시키에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과 황국사관의 형성 과정을 보여 준다.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이 지난 40여년간 수집한 다색판화 중, 근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여 주는 ‘진구(神功)황후의 삼한정벌’ 등 총 94건 174점을 엄선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역사 영상심포지엄에서는 ‘영화가 말하는 한·일관계의 심층’에 대해 재일동포 소녀 야스모토 스에코의 일기를 원작으로 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은오빠’가 상영된다. 이후 한양대 윤상인 교수의 사회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가 ‘재일동포의 삶을 통해 한·일관계의 변화를 살피다’와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가 ‘우리 역사의 재조명, 재일코리안 역사특별전에 즈음하여’라는 주제의 기조발표를 한다. 역사 영상 심포지엄은 영화를 활용해 역사를 논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학술회의와는 다른 신선함과 관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영화상영에는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의 기록다큐영화 ‘숨겨진 손톱자국’ ‘버려진 조선인’,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데뷔작으로 1981년 모스크바 영화제 은상 수상작인 ‘진흙강’, 박철수 감독의 ‘가족시네마’, 재일동포 김수진 감독의 ‘밤을 걸고’ 등 모두 8편이 상영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공지영 “쌍용차 사태는 대기업판 도가니”

    공지영 “쌍용차 사태는 대기업판 도가니”

    “차라리 전태일 1명이 죽었을 때 모두가 충격받았던 1970년대가 더 나았던 것 아닌가요.” 소설가 공지영(49)이 쌍용차 사태를 다룬 ‘의자놀이’(휴머니스트 펴냄)를 내놓은 변이다. 책에는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현장 체험이라기보다 쌍용차 사태를 스스로 공부해 나가며 취재한 기록에 더 가깝다. ●실명으로 대형 회계법인 의혹제기 6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출간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만난 공지영은 “사랑 얘기나 쓰고 싶다.”거나 “아니, 대체 작가가 왜 이런 걸 써야 하나 싶었다.”거나 “저처럼 수학을 못하고 회계도 모르는 사람이 (쌍용차 사태를) 이해하느라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다.”는 말들을 곁들였다. 그럼에도 책을 쓰고야 만 것은 “전태일 같은 이가 100명이나 죽어 나가야 이 사태를 쳐다볼 것이냐.”는 반문 때문이었다. 여러 문제 가운데 작가가 가장 강조한 대목은 대형 회계법인에 대한 의혹 제기다. “차라리 이 회계법인들이 나를 고발해 이 문제가 공론화됐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내놨다. 노동자 해고 근거를 제공한 안진회계법인, 삼정KPMG 등 회계법인 실명이 거론됐다. 또 회계법인 문제를 제대로 파헤치지 않은 법원과 검찰에 대해서도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공지영은 쌍용차 사태를 “또 하나의 도가니”라고 불렀다. 외지고 음습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번듯한 대기업에서 일어나는 도가니라는 점이 차이점이다. “우리 아이들 열심히 공부해서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하면 뭐합니까. 일하는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는 세상인데. 우리 아이들이 취직해서 마음 편히 일하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올바르게 해결돼야 합니다.” 책 제목은 “얼굴 없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구령에 맞춰 부족한 의자를 차지하도록 사람들을 싸우게 하는 그 게임에서 따왔다.”고 말했다. ●수익금 전액 해고 노동자 도와 이번 책 수익은 모두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돕는 데 쓰인다. 출판사 측은 “10만부 판매가 목표인데 그럴 경우 4억 2000만원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만 2000원 책 1권을 사면 작가는 1200원, 출판사는 3000원을 내놓는 셈이다. 18일 그룹 들국화의 북콘서트와 정혜신 박사, 조국 서울대 교수 등과 별도의 북콘서트도 준비 중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데스크 시각] 런던올림픽 오심을 바라보는 자세/문소영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런던올림픽 오심을 바라보는 자세/문소영 문화부 차장

    “힘없는 나라의 백성은 어디 가도 서러움을 받는다.” 충남 부여군의 한 음식점에서 머리카락이 하얀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보던 신문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는 이제 주방에서 막 가져온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콩나물 국밥을 먹을 참이다. 아마도 그는 런던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가 수영 자유형 400m 예선에서 1등을 하고도 심판의 오심으로 실격처리됐다는 기사와 유도 남자 66㎏급 조준호가 8강에 올랐지만, 심판의 판정 번복으로 판정패해 억울하다는 식의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을 것이다. 아침 시간이라 식당에는 식사 팀이 두 팀밖에 없었고 그 노인의 발언은 귀에 쏙~ 들어왔다. 귀에 쏙 들어온 이유는 맞장구를 치려는 마음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뭔가 어색하다고 느껴진 탓이다. 88서울올림픽 때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가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에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한국의 박시헌에게 판정패당했던 것은 미국이 힘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나? 뭐 이런 생각이 느닷없이 튀어올랐다. 여름 휴가지에서 TV 생방송을 더 열심히 챙기고, 박태환의 실격 동영상이 스마트폰으로 무제한 반복 제공되면서 왜 ‘실격’ 판정이 내려진 것이냐며 의아해했지만, 오심의 이유를 힘없는 나라의 백성 탓이라고는 떠올려보지 않았다. 또 10대인 청소년 여행 동반자는 박태환에게 실격을 선언한 심판이 중국계라는 루머가 카카오톡으로 물밀 듯이 쏟아지자, 중국을 비난하는 등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고질적인 불화를 재현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못했다. 70세 안팎으로 보이는 그 노인과의 나이 차이를 가늠해 보고, 서로 살아온 세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르겠구나 했다. 40대인 소설가 김연수는 최근 펴낸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70대인 그의 아버지가 국가대항 축구경기를 결연한 표정으로 보다가 우리나라가 선제골을 먹으면, 보던 TV를 끄고 결과를 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돌아누워 힘없는 목소리로 “졌다, 졌어.”라고 했다고 써놓지 않았던가. 다른 한편으로 언론들이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트라우마를 불필요하게 자극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분석을 해봤다. 휴가지에서 돌아와 여러 신문을 펼쳐놓고 비교해 보니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들은 한국이 세계 15위 수준의 교역국가이거나,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로 국격이 높아졌다는 식의 불편한 자랑을 늘어놓다가도, 스포츠에서 과도하게 피해의식을 조장하곤 한다. 일제강점기나 1950년 한국전쟁 직후부터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하던 1960대, 아니 최근까지도 국가대항 스포츠는 그저 스포츠가 아니라 전쟁에 가까운 것이고, 그렇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인들은 달라졌다. 언론이 찌질하게 100년 전 사고로 뒷북을 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에서, 모태범·이승훈·이상화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우리는 올림픽 금메달에 대해 제법 쿨해졌다. 권투니 레슬링이니 하는 격투기 종목만이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형 금메달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먹고살 만해진 결과가 스포츠에도 반영됐다고 흐뭇해했다. 금메달에만 환호하지 않고, 은·동메달에도 환호했다. 2~3년 전처럼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기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경기의 승패나 금메달에 집착할 때는 주로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스포츠를 통해 위로받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가 생길 때였다. 그러나 최근 세계경제 불황이니, 애그플레이션 우려니, 깡통 아파트 속출, 자녀 진학 등의 고통과 불안이 금메달이 추가될 때마다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행인 것은 올림픽 축구팀이 런던올림픽의 주최국인 영국의 텃세를 극복하고 최초로 4강에 올라갔고, 6일 현재 한국은 목표 금메달 10개를 획득했다. 이제 나머지는 덤이니 편히 즐기자. symun@seoul.co.kr
  • [美화성탐사선 터치다운] “제2 지구 찾아라”… 화성탐사 50년

    화성은 공상과학(SF) 소설과 영화의 단골 메뉴였다. 크기가 지구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엷은 대기가 존재하고 계절의 변화도 있는 데다 자전주기도 24시간 37분으로 지구와 비슷하다 보니 인류는 줄곧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 왔다. 제2의 생명체를 찾기 위해 인류가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여년 전이다. 1960년 당시 소련이 화성 탐사선인 마르스 1호를 처음 띄운 이후 인류는 지금까지 45차례에 걸쳐 화성에 궤도위성과 무인로봇, 탐사선 등을 보냈다. 그러나 안착에 성공한 것은 20여 차례로 성공률이 절반에 그쳤다. 맨 처음 화성 탐사에 성공한 것은 1965년 7월 미국의 마리너 4호다. 화성 궤도 부근 1만㎞까지 접근한 마리너 4호는 화성 표면을 촬영한 사진 22장을 전송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화성에 인공 운하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화성의 표면은 여기저기 분화구가 존재하는 황량한 사막에 불과했다. 1972년에는 미국의 마리너 9호가 최초로 화성 궤도에 안착했다. 마리너 9호는 궤도 비행 중 화성 표면의 강바닥으로 추정되는 곳의 근접 사진을 비롯해 화산 분화구와 계곡을 촬영하는 데 성공해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탐사선이 화성 지표면에 최초로 착륙한 것은 1976년 바이킹 1호와 2호였다. 이들 탐사선은 4년에 걸쳐 화성의 대기와 토양에 대한 분석 자료를 지구로 보내왔다.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이었고, 수증기나 산소는 극소량이어서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상태였다. 암석과 토양에서 특이한 화학반응을 포착했으나 직접적인 생명체의 흔적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했다. 물의 존재 가능성을 발견해 화성 탐사의 신기원을 연 것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탐사선 패스파인더다. 1997년 화성 표면에 안착한 패스파인더는 소저너라는 탐사차를 이용해 83일 동안 화성의 정보를 분석해 냈다. 특히 암석에 박힌 둥근 자갈이 발견돼 화성에서 상당 기간 물이 흘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는 화성이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온화한 기후였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2003년 이후에는 마스 익스프레스(러시아 등 15개국)와 잉훠(중국) 등 유럽, 아시아까지 경쟁적으로 화성 탐사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2030년까지 화성에 유인 탐사선을 보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1969년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에 성공한 이후 21세기에는 화성 유인 탐사를 위한 각 나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과학이란? A부터 Z까지 인터넷이 답하다

    과학이란? A부터 Z까지 인터넷이 답하다

    “과학은 여성의 것이다.”(Science: it’s a girl thing) 유럽위원회(EC)의 캠페인이 전 세계적인 논란을 낳고 있다. 과학에 대한 여학생들의 관심을 높여 여성 과학자의 숫자를 늘리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화제가 되긴 했지만 과학에 대한 오해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시리즈로 구성된 동영상에서 여성 과학자들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며, 하얀 가운 일색인 남성 과학자들 사이에서 미모를 뽐낸다. 과학계는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여성성’ 자체가 부각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진정한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등을 놓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유명 신경과학자이자 저술가, 코미디언인 딘 버넷은 최근 일간 가디언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 캠페인은 진정한 과학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버넷은 “과학은 무엇인가?”(What is science?)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일반인’의 시각을 빌리기로 하고, ‘구글 인스턴스’(Google Instance)로 불리는 자동완성 기능을 이용했다. ‘과학이란’(Science is…)이라는 단어를 입력한 뒤 수많은 사람들의 검색을 토대로 예측되는 뒷문장들 중에서 A부터 Z까지 각 알파벳 음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를 살펴보는 식이었다. 버넷의 시도는 마치 1970년대 스테파노 카잘리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연재한 1컷 만화 ‘사랑이란’(Love is…)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인터넷은 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범한 인식뿐 아니라 완전히 잘못된 생각조차 여실히 보여 준다. 전혀 뜻밖의 결과도 있다. 다만 구글 인스턴스는 사용자의 위치를 알고리즘 안에 포함하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의 검색은 다를 수 있다. 버넷은 영국 카디프에 산다. A verb now(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과학은 빠르게 움직인다’는 로켓통을 메고 날아가는 고양이의 모습이 그려진 유명한 티셔츠다. 티셔츠는 주류가 된 과학이 변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B oring(지루하다) 지루하다는 것은 극히 주관적이다. 어떤 사람에게 지루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재미있을 수 있다. 지루함으로 가장 먼저 검색되는 글은 7년 전 BBC방송이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다. C ool(좋다, 멋있다) 바로 위의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얘기다. 버넷은 이에 대해 “과학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과학을 위해서는 ‘쿨’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검색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Cool’은 2010년 가디언에 실린 유명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쿨한 과학’에 대한 릴레이 기고였다. D angerous(위험하다) 과학은 당연히 위험하다. 하지만 전기톱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누가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과학이 위험한 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하는 과학자라는 사람의 도덕적 개념과 연관된 문제다. E vil(부도덕하다, 악하다) 과학은 그 자체로 도덕적이거나 악의적이지 않다. 과학이 악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것을 이용한 범죄가 늘어나고, 보다 더 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evil’과 연관된 검색 결과들은 종교적인 내용이 많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악한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보여 주기 때문(우리가 우주에서 보이는 별빛은 과거의 빛이다)이라는 주장도 있다. F un(즐겁다) ‘Fun’이 검색어 맨 앞에 위치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과학교육 캠페인 때문이다. 방법에 따라 학생들의 체감은 다를 수 있겠지만, 과학을 배우는 것은 결코 소설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학교에서 마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주기 힘들다. G olden(금으로 만든) 과학과 금이라는 연관성을 찾기 힘든 단어가 등장한 것은, ‘더 그레이츠’라는 그룹의 노래 ‘과학은 금으로 만든 것’(Science is Golden) 때문이다. 노래 가사가 과학을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H ard(어렵다) 과학에 대한 대표적인 고정관념이다.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사람의 두뇌는 복잡하고 여러 분야에 걸친 내용을 한꺼번에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수많은 분야가 얽혀 있는 대표적인 학문이다. I nteresting(재밌다)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사실 ‘과학은 재밌다’라는 문장이 가장 먼저 검색되는 것은 진화학자인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가 출연한 비디오 클립 때문이다. 버넷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계 인사들은 ‘유머’ 같은 방식으로 과학적 흥미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도킨스는 “과학은 그 자체로 재밌다.”라고 주장한다. J ust a theory(단순한 가설) 이 같은 접근은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그냥 거대한 튜브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을 가설이나 이론으로 치부하는 시각은 과학에 가장 큰 위협이다. 예를 들면 창조론자들이 진화학을 ‘증명되지 않은 주장’이라고 폄하하면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K nowledge(지식)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기 힘든 정의다. 어렵거나 쉽거나, 재밌거나 지루하거나 과학은 모두 지식으로 이뤄졌다. L ike a blabbermouth(수다쟁이 같은 것) 인기 만화시리즈 심슨 가족의 이웃인 기독교 신자 네드 플랜더스의 말에서 비롯된 정의다. 그는 “과학은 마치 영화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떠들어 망쳐 버리는 수다쟁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M agic(마법) 완벽하게 틀린 말이다. 마법과 과학은 분명히 다르다. 어린아이의 눈에나 과학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놀라움으로 가득찬 마법 같은 일일 뿐이다. 이유를 모르고 신기한 것은 과학이 아니다. N ot a belief system(신념·신앙이 아닌 것) 과학과 신앙은 양립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학의 메시아는 누굴까. 과학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무신론자들은 아마 리처드 도킨스를 첫 번째로 꼽을 것이다. O bjective(객관적인 것) 객관성은 과학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실험과 타당한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반면 단순한 주장이 과학이 될 수 없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P hilosophy(철학) 과학과 철학은 뿌리가 같다. 과학을 전공하고 받는 박사학위의 명칭 ‘PhD’는 철학 박사(Doctor of Philosophy)에서 비롯됐다. Q uotes(인용·전달하는 것) 또 다른 잘못된 인식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과학적 결과물이나 인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물론 과학적 사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이를 읽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R eal(실존하는 것)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결론이다. ‘Science is Real’은 미국의 얼터너티브 밴드 ‘데이 마이트 비 자이언츠’의 히트곡 이름이기도 하다. S port(스포츠)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교묘하게 연결되는 배경에는 광고가 있다. 스포츠 마니아들을 겨냥한 수많은 에너지 드링크 회사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우수한 과학적 기술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떠든다. 만약 한국에서 검색할 경우 ‘과학=침대’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현대 스포츠가 기록경신과 경기력 향상을 위해 과학의 힘을 빌리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T he poetry of reality(진실의 시) 미국 PBS의 고전 시리즈 ‘코스모스’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작된 프로젝트 심포니 오브 사이언스(Symphony of Science)의 대표 동영상 클립이다. 과학을 음악적인 방법으로 대중화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으며 동영상마다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등장한다. U nreliable(신뢰할 수 없는 것) 과학에 대한 비정상적인 증오와 혐오감을 나타내는 종교 관련 웹사이트들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문구다. 베스트셀러 ‘배드 사이언스’의 저자인 벤 골드에이커처럼 과학의 탈을 쓴 과장 광고나 마케팅을 공격하는 과학의 투사들도 이 정의를 사용한다. V ital(생명에 꼭 필요한) 과학은 많은 돈이 든다. 결과가 쉽사리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 과학이고, 실패 가능성도 높다. 농촌의 농부들을 돕는 대신 과학에 돈을 투자하기 위한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 표현이 널리 쓰인다. W rong(틀린 것) 완벽히 옳은 표현이다. 틀리는 것은 과학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성질이다. 어떤 이론이나 기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일단 틀리다는 가정 아래에서 시작해야 한다. 또 그것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은 다른 이론이나 기술이 옳다는 것을 밝혔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과학에서 ‘틀린 것’은 곧 ‘새로운 것’ 또는 ‘옳은 것’과 같은 의미다. X KCD(별 뜻 없음) 과학과 수학에 대한 어떤 개인의 블로그다. 26개 알파벳 중 X만이 유일하게 과학의 정의에 근접하지 못했다. 과학과 수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알파벳이 미지의 수 ‘X’인데도 말이다. Y ear 8(8년) 서구권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는 햇수다. Z oology(동물학) 동물학은 생물학, 아니 과학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관심이 높은 학문 분야다. 인간 자체가 동물 중 하나이고,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과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민주 대선캠프 진용 들여다보니…

    민주 대선캠프 진용 들여다보니…

    민주통합당 대선 주자들의 경선 캠프가 속속 진용을 드러내고 있다. 친노(노무현) 색깔이 진한 문재인 후보는 지역 안배 중심의 인선을, 중도 노선을 표방하는 손학규 후보는 당내 재야 그룹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인사의 합류를 통해 진보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문 후보와 세력이 겹치는 김두관 후보 캠프에는 참여정부 출신 및 지방분권 인사들이 대거 포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후보는 여성 최다선인 5선 이미경 의원과 참여정부 관료 출신인 김진표 의원의 투톱 체제로 캠프를 꾸렸다. 문 후보는 5일 ‘담쟁이캠프’ 인선을 발표했다. 공동선대본부장에는 민평련 사무총장인 노영민 의원과 우윤근·이상민 등 3선 중진을 포진시켰다. 캠프는 혁신(정책)·동행(조직)·소통(홍보)·공감(온·오프라인 지지그룹) 등 4개 콘셉트, 23개 본부장 체제로 구축해 사실상 대선을 겨냥한 매머드급 조직으로 출범했다. 민주당 전체의 21.8%에 달하는 현역 의원 28명(초선 20명)이 캠프에 합세하며 당내 최대 세를 과시했다. 공동선대본부장의 경우 각각 충북, 전남, 대전으로 지역 안배를 했다. 민평련 소속인 이목희 의원이 기획본부장을, 정동영계인 이계안 전 의원이 4대성장 추진본부장을,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상임특보단장을 맡았다. 그러나 친노계가 대거 포진하면서 당초 기대했던 계파 초월형 인선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정 후보는 이날 경선 캠프인 ‘내일을 여는 친구들’을 공식 출범시켰다. 5선 중진 이미경 의원과 참여정부에서 경제·교육 부총리를 역임한 3선 김진표 의원이 공동선대위원장에 올랐다. 자문 그룹인 ‘37.2°C’에는 소설가 박범신씨와 참여정부 지방분권혁신위원장을 지낸 윤성식 고려대 교수 등이 포진했다. 현역으로는 4선인 신기남·김성곤 의원과 박병석 국회부의장 등 18명이 가세했다. 손 후보는 오는 10일쯤 ‘계파 통합형’ 캠프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선대위원장에는 홍재형 전 국회부의장이 거론된다. 정책 총괄은 손 후보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의 최영찬 서울대 교수가, 홍보는 판소리 연출가인 임진택씨가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김성수 전 성공회대 총장이 손 후보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낙연·조정식·신학용 등 중진 의원들이 총괄본부장을 맡고, 김동철·김우남·이찬열 의원 등 20여명의 현역 의원이 가세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지지 후보 투표에서 손 후보를 1위로 만든 민평련 소속 전·현직 의원들의 합류가 점쳐진다. 김 후보는 6일 공식 캠프 인선을 발표한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상임고문을 맡고, 천정배 전 법무장관과 4선 중진인 원혜영 의원이 상임위원장으로 포진한 투톱 체제다. 참여정부 인사로는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이 공동경선대책위원장으로, 윤승용 전 홍보수석이 TV토론기획단장으로 내정됐다. 현역으로는 민병두·김재윤·안민석 의원 등 15명 안팎이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현 전남지사인 박준영 후보는 11~12일 전·현직 의원 10여명을 주축으로 캠프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안동환·강주리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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