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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편 쓴다면 더 희망적인 메시지 담고 싶어”

    “속편 쓴다면 더 희망적인 메시지 담고 싶어”

    “마법 같은 영화다. 목 밑까지 감동이 차올랐다.”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자 장 마르크 로셰트(57)와 뱅자맹 르그랑(63)이 제16회 부천국제만화축제를 맞아 한국을 찾았다. 15일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동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처음 관람한 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느낌이었다”면서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영화의 성공으로 원작 만화를 다시 보는 사람도 늘어난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이 서점에 선 채로 읽고 바로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밝힌 ‘설국열차’는 1984년 1권이 출간된 프랑스 만화다. 1권은 1990년 작고한 자크 로브가 이야기를 구상했고, 로셰트가 그림을 그렸다. 로브가 세상을 떠난 뒤 이야기를 이어갈 방도를 찾던 로셰트가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던 르그랑을 만나면서 1999년과 2000년 2, 3권이 연이어 출간됐다. 국내에는 2004년 처음 소개됐다가 절판된 뒤 중고 시장에서 원가의 3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원작은 ‘멈추지 않는 열차가 영원한 겨울의 백색 세상을 가로지른다’는 설정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와는 크게 다르고 결말도 훨씬 비관적이다. 영화 관람 전 기자들을 만난 르그랑은 “‘설국열차’의 설정은 로브가 생각했는데 하나의 시스템이 어딘가를 향해 굴러간다는 상징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면서 “원래 그림을 그리기로 했던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작품의 분위기도 더욱 어두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말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 1권에 이어 글을 쓰다 보니 다른 탈출구를 찾기는 어려웠다”면서 “지금은 3권으로 끝나지만 4, 5권을 통해 좀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을 생각이었다. 4, 5권 집필은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영화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두 사람은 촬영 당시의 일화도 전했다. 르그랑은 “커다란 수염을 달고 모래를 뒤집어쓴 채 엑스트라로 참여했는데 어쩐지 러시아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고 무척 재미있었다”며 웃었다. 극 중 꼬리칸 화가의 손 대역을 했던 로셰트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손이 덜덜 떨릴 만큼 스트레스가 컸다”면서 “감독으로서 그토록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책임을 지는 일의 부담감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로셰트는 영화에 등장하는 화가의 그림(작은 사진)을 그리기도 했다. 이들은 만화의 영화화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르그랑은 “봉준호처럼 위대한 감독의 손에 영화로 만들어져 기쁘다”면서 “상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만화만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그 ‘표현’을 하는 건 나인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는 말로 좌중을 웃긴 로셰트는 “기술의 발전으로 만화에서만 가능하던 것이 영화에서도 가능하게 돼 전 세계적으로 만화의 영화화가 늘어났다. 투자나 자본의 문제에서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만화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유숙할 객주 치기를 내키지 않아 하는 늙은 주모를 다독거려 어렵사리 봉노로 찾아들었다. 혹여 적굴 사람이거나 무전취식을 일삼는 무뢰배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에 봉노 내주기가 썩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깔아둔 멍석 틈새와 목침 속에 창궐하던 물것들에 뜯기다 못한 세 사람은 마당에 있는 살평상 위로 잠자리를 옮기고 모깃불을 피웠다. 천생 말뚝잠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잔뜩 흐려서 바람 한 점 없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천봉삼이 말했다. “생달 사기점을 드나든다는 동무들에게 들었던 말과는 생판 다르오.” “그들도 지레 겁먹고 도래기재로 내왕하고 있을 테지요.” “적당들도 당장 눈치채고 도래기재로 소굴을 차린다는 생각은 못했을까…. 협기만 있다면 궐놈들과 대치하여 소탕할 수도 있을 텐데….” “그 동무들… 입성은 말쑥하고 언변도 젊잖았으나 결기나 배짱은 없어 보입디다. 부상들 가운데 용맹도 절륜하고 기개도 놀라워 협객의 기풍이 있다는 동무들을 흔하게 볼 수야 없겠지요.” “협객이 있다 할지라도 선달산과 옥돌봉 능선이 동서로 가로막고, 북쪽으로만 골짜기가 트여 있어서 적굴 놈들 네댓이 북쪽 골짜기에 있는 잔도만 가로막으면 생달은 독 안에 든 쥐요.” “그러나 북쪽에 구애가 없다면 내성이나 울진에서 영월 태백으로 가는 길은 도래기재를 넘는 노정보다 하루 반 노정 줄이기는 수월하지요. 그로써 경상도 내륙과 강원도 내륙 사이의 상로를 온전하게 유지한다면 큰 이문을 바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장담한 것은 천봉삼이었다. 곽개천이 거들었다. “서쪽으로는 충청도 영춘장까지는 고개가 많긴 하지만 120여 리, 영월 땅까지는 줄잡아 100리 상거겠으니 장정 걸음으로 이틀 노정이면 더 갈 곳이 없고, 내성까지는 옥돌봉 넘어 서벽을 지나 40리 상거에 불과하오.” “접장께서 소굴에서 데리고 나온 노인네들과 아녀자들을 멀리 내쫓지 않고, 왜 이제까지 양류밥을 먹이고 있는지 그 속내가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갑니다.” 곽개천이 그 말을 받아서, “시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요.” 천봉삼은 덩달아 잠을 청하지 못하고 불당그래로 살평상 옆에 피워둔 모깃불을 뒤지는 주모를 살평상 모서리에 불러 앉히고 물었다. “생달에 원래 길손들을 바라고 숫막을 연 집이 몇이었소?” “네댓 집 되었지요. 그땐 생달이 유숙하는 길손들과 등짐장수들로 제법 붐볐더랍니다.” “지금은 몇 가호나 살고 있소?” “10여 호 됩니다. 천봉답에 피 농사나 짓고 근근이 연명하고 있지요.” “사기점은 여기서 초간하오?” “오전 약수터 못미처에 있습니다만, 요즘은 등짐장수들의 출입이 뜸해지고 숫막도 덩달아 한 시절 가고 말았지요.” 달게 자기는커녕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등걸잠으로 조리를 친 일행은 하루종일 옥돌봉과 문수산과 박달재를 비롯하여 생달의 사기점까지 둘러보았다. 그리고 하룻밤을 더 묵고 내성으로 회정하였다. 물론 그때까지도 임소에는 반수 권재만의 소식이 당도하지 않고 있었다. 소식 늦은 것이 장차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알 수 없었으나, 서둘러 십이령을 넘어 말래 접소로 회정하였다. 일행이 내성 발행하여 가풀막진 모래재 초입으로 들어설 즈음, 배고령에게서 배웠다는 길세만의 타령이 들려왔다. 미역 소금 어물 짐 지고 내성장을 언제 가노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흥부장을 언제 가노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오고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 붉어지는 가을 길목… 눈시울 붉힐 무대 2곳

    부모의 죽음을 마주한 가족의 이야기는 연극과 영화, 소설 등에 꾸준히 등장하는 소재다. 그러나 몇 번을 접해도 번번이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마찬가지. 올가을에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린 연극 두 편이 무대에 오른다. 16일 막을 올리는 ‘선녀씨 이야기’의 ‘선녀’는 어머니의 이름이다. 누군가의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고자 하는 열망이 깃든 작품이다. 집 나간 아들 종우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15년 만에 집을 찾는다. 아들은 어머니의 영정 앞에 앉아 말을 건넨다. 영정 속 어머니가 ‘괜찮다’고 웃음 짓는 순간, 아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평생을 한 남자의 아내로, 3남매의 어머니로 고된 삶을 살았던 ‘선녀씨’를 마주하게 된다. 배우 이재은과 고수희가 젊은 시절과 노년의 선녀씨를 각각 연기한다. 아들 종우 역에는 배우 임호가 캐스팅돼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오는 9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네모극장. 4만~5만원. 1599-0701.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아버지를 그린다. 간암 말기로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아버지와 그를 돌보는 가족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깨닫는 가족애를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제6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 무대 인생 50년의 배우 신구와 손숙이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 ‘홍매’ 역을 맡아 관록의 연기를 보여준다. 9월 10일~10월 6일 서울 흰물결아트센터 화이트홀. 3만~5만원. (02)577-1987.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돈만 있으면 개도 명첨지 대접받는 세상인데…. 배고령이 가진 것이라고는 댕댕 소리 나는 불알 두 쪽밖에 없는 혈혈단신 가난뱅이라는 것입니다. 계집이 시집갔을 때, 시댁이 미주알이 찢어질 듯 가난하면 필경 매파를 원망할 것이고, 지각 없이 혼인을 주선한 어미를 미워할 것이고, 그 불평이 하늘에 닿을 것이다. 급기야 남편을 원수로 알 것이고, 바라보는 얼굴에 차디찬 원망이 사라질 날이 없을 것이다. 음식 수발은 시늉일 뿐일 것이니, 그 음식이 입에 달기는커녕 비상처럼 쓰디쓰겠지. 집안일은 물론이고 비가 내려도 비설거지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걸핏하면 울고불고 화내고 욕하고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 트집 잡고 늘어지겠지. 행패를 보다 못한 시부모가 꾸중을 한다 해도 귀담아 듣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낯빼기를 비틀어 꼽고 대들어서 시부모의 복장만 태울 것이다. 부모님께 아침에 문안 드리고 저녁에 자리까지 보아 드리는 것은 며느리로서 당연한 일인데, 시부모가 핀잔이라도 주면, 흰자위를 굴리면서 동네방네 쏘다니며 게거품을 물고 비방을 일삼겠지. 그렇게 되면 누가 시부모이고 누가 며느리인지 도무지 경계가 흐트러져 온 집구석이 억울함과 원망으로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 설사 제가 가진 재능이 남편의 열 배 스무 배가 된다 하여도 그 재능을 다른 남자를 찾아 헤매는 데 쓸 테지. 집안은 부창부수인데 매일 저녁마다 암탉의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마을에 울려 퍼지게 된다면, 그 집안에는 필경 재난이 닥치지 않겠느냐고…. 숫막을 열고 난 뒤 오가는 길손들로부터 들은 풍월은 많아서 구구절절이 주워섬기는데, 시생의 등에 진땀이 흘렀습지요.” 만기의 말에 정한조는 허허 웃고 나서, “오죽했을까…. 천지개벽이 된다 하여도 사태를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넋두리에 하소연을 늘어놓았겠지…. 월천댁도 숫막을 열고 있다지만, 옹색하기는 배고령과 다름없겠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옹색한 살림에 찌들다 보니까 푸념인들 오죽했겠나. 그 아낙네가 심덕이 무던해서 걸핏하면 덧거리를 많이 주어서 이렇다 할 이문을 바랄 수 없었지. 서둘러 혼수 장만하고 주과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니, 우리 접소에서 십시일반으로 갹출하여 혼수 장만해서 혼례를 치러야 하겠지. 배고령은 아직 모르고 있을 터, 흥부장에서 돌아오면 데리고 나가서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조용히 일러 주게.”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아 흥부장 어물 도가로 갔던 일행이 흥정을 하다 말고 허행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배고령이 장가들게 되었다는 소문은 누가 발설한 적도 없었으나 어느새 퍼져 만기가 조용히 불러내어 여러 사연을 통기할 것도 없게 되었다. 말래 접소에서 그런 소동을 벌이는 동안 천봉삼과 곽개천은 길세만을 데리고 내성장 임소에 머물러 있었다. 안동 부중으로 떠난 반수 권재만이 임소로 회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반수는 진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동 임소 도회에서 하회가 어떻게 떨어질지 궁금하여 목이 빠질 지경이었다. 내성 임소에서 양류밥이나 축내며 하회 기다리기를 사흘째가 되는 날 보발꾼으로부터 통기가 왔는데, 장차 열흘 정도는 기다려야 도회가 열릴 것 같으니 말래로 돌아가라는 전갈이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으나, 나선 김에 들러볼 곳이 없지는 않았다. 바로 내성에서 서벽(西碧)을 지나 옥돌봉* 아래의 박달령을 넘어 오래전 보부상들이 발견하였다는 오동나무골 약수터가 지척인 생달에 이르는 상로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생달을 오동나무골로 잘못 부르기도 하는 것은 서로의 상거가 오리정밖에 되지 않는 까닭도 있었는데, 서벽은 물야(物野)를 거쳐 주실내나 예비재를 거쳤고, 영주(榮州)는 삽재를 거치거나 입석(立石)에서 시냇물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그 상로는 사기점 사람들이 간혹 이용하는 장삿길일 뿐 내왕이 빈번한 곳은 아니었다. 생달 마을이나 그곳에서 오리정인 오동나무골 약수터에서는 성황당이 있는 박달령만 넘으면 곧바로 영월 땅이란 얘기만 들었지, 천봉삼이에겐 발새 익은 길이 아니었다. 아니래도 반수 권재만으로부터 말래에서 눈 빠지게 바라고 있는 하회가 떨어지면, 곧장 생달 마을을 얼추나마 둘러보고 말래 접소로 돌아갈 참이었다. 곽개천과 작반한 것은 그와 같은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달령 오른쪽으로는 옥돌봉과 구룡산 높은 뫼가 버티고 있고, 왼쪽 멀리로는 늦은목이를 껴안은 선달산이 버티고 있어 영월과 태백으로 오가는 등짐장수들은 필경 박달령을 넘는 지름길로 내왕해야만 일정을 줄일 수 있었다. 천봉삼이 그런 청을 하였을 때, 행중에서 지름길 찾는 일에 달통한 곽개천이 흔쾌히 승낙하였다. 길세만은 내성에 두고 가려 하였으나, 일행과 떨어져 있다가 큰 봉변을 당했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았던 길세만이 거의 우는 얼굴로 두 사람의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내성에서 생달까지는 불과 40리 노정이라, 발바닥에 날개를 달았다는 장정들 걸음으로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새벽에 발행하여 저녁 중화 먹기 전에 당도한 생달 마을에는 예견했던 것과는 달리 유숙할 길손을 받아 주는 숫막이라곤 허리는 매화나무 등걸처럼 휘고 얼굴에 저승꽃이 핀 노파가 경영하는 한 집밖에 없었다. 생달이 그처럼 피폐하게 된 연유는 강원도 영월 태백으로 드나들던 부상들이 박달재를 넘다가 고개치에서 출몰하는 도적에게 크게 봉변을 당한 뒤로, 내성에서 옥돌봉 기슭을 지나 구룡산 아래의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로 가는 길목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옥돌봉: 일명 옥석산
  • 케이블 하이라이트

    ■666 파크 애비뉴(AXN 밤 8시) 제인은 계속 불안해하며 뉴욕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헨리는 제인에게 청혼을 하고 함께 있으려 한다. 노나는 제인에게 처음으로 할머니를 소개해 준다. 한편 노나의 할머니 로티 역시 제인처럼 드레이크의 비밀을 밝히려고 오랫동안 많은 자료를 수집해 왔다. 그런데 로티의 자료 중 제인의 어릴 적 사진이 발견되는데…. ■계절의 식탁(올리브 밤 9시) 아홉 번째 식재료는 채식 열풍 속에서도 육류의 자존심을 지킨 오리고기다. 친환경 농법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오리를 살펴본다. 또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점찍은 광주 오리탕 골목 맛집과 중국인 셰프가 선보이는 정통 베이징 덕, 오리 기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오리꽁피와 오리 가슴살 구이까지. 오리 고기의 모든 것이 공개된다. ■도전슈퍼모델 코리아 4(온스타일 밤 11시) 까다로운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도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다. 도전자들은 제작진의 호출에 영문도 모른 채 서울 광화문광장에 집합해 공개 런웨이 미션을 맞닥뜨리게 된다. 서울대 ‘엄친딸’ 황현주, 막강 비주얼 정하은 등 완벽한 신체 조건과 끼, 그리고 열정 등을 갖춘 도전자들의 모습을 공개한다. ■크리미널 마인드 2: 분노의 폭탄 살인(FOX 밤 12시) 미 연방수사국(FBI) 범죄행동분석반이 시애틀을 공포에 빠뜨린 연쇄 폭파범을 찾아 나선다. 조사를 거듭하던 행동분석반은 범인이 기계 문명을 비판한 소설책 ‘텅 빈 행성’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기디언과 리드는 ‘텅 빈 행성’의 작가인 우슬라 켄트 교수를 만나려 한다. ■케이팝 히어로2(MTV 오후 5시) 한국을 넘어 세계를 유혹하는 K팝 히어로의 기대주를 만나 본다. 꿈나무 남자 그룹 3탄으로, 이번 회의 주인공은 보이프렌드, 엑소, 빅스, 에이젝스로 K팝 히어로 기대주들의 특별한 무대를 선사한다. 또한 네 그룹의 든든한 응원군과 각 팀의 숨은 노래 찾기까지, 히어로 꿈나무들의 다양한 무대와 이야기가 펼쳐진다. ■벼락맞은 문방구(투니버스 밤 8시) 번개탐정단이 의뢰받은 사건은 바로 짝사랑 문제다. 31세의 모태 솔로 휘순은 빨간 구두의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어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테리우스라 불리는 장발의 남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엾은 의뢰인을 돕고자 번개탐정단은 연애조작단으로 변신한다. 과연 이들의 프러포즈 대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생략·침묵으로 전하는 삶의 근원

    생략·침묵으로 전하는 삶의 근원

    손보미(33)의 경이로운 첫 번째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의 표제작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길광용이라는 스타 감독이 5년에 걸쳐 ‘댄스, 댄스, 댄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뒤 자살한다. 맥락 없이 잡다한 춤이 뒤섞인 영화는 혹평을 받는다. 몇 년 뒤 ‘댄스, 댄스, 댄스’의 조감독을 맡았던 문정우가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영화를 내놓는다. 처음에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평론가 성일정과 감독의 오랜 팬 윤주윤이 두 영화의 기묘한 공통점을 지적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성일정은 ‘그들에게 린디합을’이 알려지지 않은 길광용의 유작이며 ‘댄스, 댄스, 댄스’에 대한 주석일지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윤주윤은 두 영화에 동일한 스윙 댄서가 출연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작가는 표면적 사실을 설명할 뿐 진실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문정우는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길광용의 전 아내이자 ‘그들에게 린다합을’의 공동 연출자로 오른 허지민이 참석한다. 허지민은 길광용이 죽기 전 자신에게 필름과 콘티를 주면서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영화를 완성해 달라 부탁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창작자는 길광용일까 문정우일까. 작가는 답하지 않는다. ‘댄스, 댄스, 댄스’의 모호한 결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댄스홀에 들어온 남녀가 서로를 바라본다. 여자가 남자의 귀에 무언가 속삭이고 춤을 추려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그들에게 린디합을’은 책에 실린 9개의 단편 중 작가의 세계가 가장 압축적으로 제시된 작품이다. 여기에는 불가해한 세계를 돌파하기 위한 소설가의 근원적 고민이 담겨 있다. ‘린디합’이라는 스윙 댄스에 대한 인용문으로 시작하는 보르헤스 풍의 단편에는 가짜 인터뷰와 주석, 기사 등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심지어 길광용을 인터뷰하는 ‘손보미’라는 소설가가 등장하고, 정성일 평론가를 연상시키는 성일정의 글이 제시된다. 거짓과 진실, 허구와 현실이 교차할 때 독자는 소설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필연적으로 되묻게 된다. 작가는 결정적 순간 진술을 중단함으로써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댄스, 댄스, 댄스’의 남녀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독자는 끝내 알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성일정과 ‘손보미’와 화자의 글을 통해 대상을 해석하고, 인터뷰하고, 다시 쓴다.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인 ‘애드벌룬’이 첫 단편 ‘담요’를 다시 쓴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작가는 “이 두 소설은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아간 동일 인물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쓰고, 또 쓰고, 그것을 읽는 행위를 통해서야 우리는 심연 같은 우주를 가까스로 짊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2009년 등단(계간 21세기문학)해 지난해 ‘과학자의 사랑’으로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난타 당하는 美 대테러 정책

    난타 당하는 美 대테러 정책

    미국의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자국 대(對)테러 정책을 비난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의뢰인’, ‘펠리칸 브리프’ 등 법정 스릴러 소설로 유명한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셤(왼쪽·58)은 지난 10일(현지시간)과 12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대테러 정책의 상징인 관타나모 수용소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리셤의 글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11년째 갇혀 있는 독자 나빌 하드자랍(34)의 사연으로 시작한다. 알제리 출신인 하드자랍의 삶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알제리계 게스트하우스에 투숙했다 아랍 출신이라는 이유로 붙잡혀 2002년 2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용됐다. 그곳에서 수면 박탈과 감각차단, 극한 기온에의 노출, 장기간 격리 등 ‘관타나모 편람’에 나오는 모든 잔혹 행위를 겪었다. 그리셤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고 되묻고는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그가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배상하라”고 미국 정부에 촉구했다. 그럼에도 “간단하게 들리겠지만, 결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글을 맺었다. 영화 ‘JFK’와 ‘플래툰’, ‘월스트리트’ 등을 연출한 거장 올리버 스톤(오른쪽·66)도 미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13일 해외 주둔 미군 신문 성조지에 따르면 일본을 방문 중인 스톤 감독은 지난 12일 도쿄 외신기자클럽(FCCJ)에서 “미국 정부의 감청망 기밀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희생해 자신에게는 ‘영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불법적인 첩보 프로그램들을 제도화하고 있다며 그를 ‘뱀’으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스톤 감독은 “일본이 다시 대국이 되려면 먼저 중국에서 한 일과 일본이 죽인 모든 이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하면 중국도 일본을 금세 다르게 볼 것”이라고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아침은 찾아온다, 비밀·욕망·불안 속 허약한 당신에게도

    아침은 찾아온다, 비밀·욕망·불안 속 허약한 당신에게도

    “삶의 위치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징후나 기미가 있을 때,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작은 기척에 이끌려요.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의 실패에도 눈길이 가고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니까 자꾸 화자로 불러내게 되네요.” 편혜영(41)이 직조한 네 번째 소설집 ‘밤이 지나간다’(창작과비평)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건조하지만 치밀한 문장, 불편할 정도로 냉담한 관찰력이 장기인 작가는 이번에도 특유의 솜씨로 밀도 높은 이야기들을 부려놓았다. 철거가 임박한 아파트에서 노년의 여인은 죽음처럼 엄습하는 불청객을 맞닥뜨린다(야행). 인생을 파국으로 치닫게 할 비밀을 잉태한 중년의 남자는 ‘태연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전락시킨다(밤의 마침). 벙커 제작사에서 일하는 남자는 닥치지도 않은 재앙에 대한 불안에 허우적댄다(블랙아웃). 이렇게 8편의 단편들 속에는 허약한 일상을 찢고 틈입해 들어오는 불안의 기운이 서려 있다. ‘아오이 가든’(2005), ‘저녁의 구애’(2011) 등 전작에서 멀끔해 보이는 문명세계의 비밀을 폭로해온 그가 이번엔 개인의 내밀한 비밀 세계로 손을 뻗었다. “사람들이 지키려는 비밀,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욕망은 자기만의 서사를 구축해주는 장치”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비밀을 사수하느라 더없이 고독해지기도 하지만, 비밀이 없다는 데서 오는 비관으로 수치스러워하기도 한다. ‘야행’의 주인공은 죽은 남편이 이렇다 할 비밀 하나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데서 안도가 아닌 실망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마저 시시해지는 것 같은 모욕감 때문이다. 추잡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밤의 마침’의 주인공은 그렇게 해서 끝내 지키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조차 모른다. ‘비밀의 호의’의 주인공은 자신의 남루한 삶을 이웃에게 폭로하는 여동생을 요양시설에 버린다. 그리곤 비밀이 폭로될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온함을 느낀다. 초기작에서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엽기적인 묘사들을 펼쳐보였던 작가는 이제 인간의 사소한 감정과 일상의 작은 틈새에서 길어올린 통찰력으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초기 소설에는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상황과 직설적인 문법들이 많았어요. 그게 조금씩 은유적으로 감춰져 가고, 인물들이 온화해지니 아쉬워하는 독자들도 있죠. 하지만 제 소설 속 인물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변함없어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변혁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무력감, 대항할 의지도 희망도 없고 뭘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일상을 영위해가는 인물들이죠.” “일상의 삶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파국의 조짐을 묘사하며 불안을 축조해내던 편혜영의 소설은 이제, 그 안에서 거꾸로 삶의 기미들을 찾으려 한다”는 조연정 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그의 소설에서는 드물게 희망의 기미도 감지된다. 아이를 잃은 고통에 중독되어 있던 엠은 같은 고통을 공유하던 부모들의 모임에서 돌발적인 웃음으로 주위를 아연실색하게 한다(해물 1킬로그램). 고통도 때론 잦아들고 잊힐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부정형의 명령만 늘어놓던 부모 밑에서 메마른 삶을 이어온 남자는 처음으로 한 여자에게 이끌린다(가장 처음의 일). ‘언젠가는 어둠에 익숙해질 것이다. 유구히 어두울 수만은 없다. 그것이 이 세상의 유일한 법칙이다’는 마지막 문장처럼, 제목처럼, 밤이 지나가는 순간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英 성인소설 작가, 1년 만에 1060억원 수입

    ‘엄마용 포르노’라 불리며 돌풍을 일으킨 3부작 성인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쓴 영국 작가 E L 제임스(50)가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작가로 선정됐다. 12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제임스는 2012년 6월 이후 1년간 9500만 달러(약 1060억원)의 수입을 올려 미국 스릴러 작가 제임스 패터슨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 출간 8개월 만에 7000만부가 팔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지난해 출간 직후 영화 판권 역시 500만 달러에 팔렸다. 작품의 판매량과 출판 부수, 업계 소식통들의 추산을 종합해 작가 수입 랭킹을 정하는 포브스는 “제임스의 소설이 전자책으로 판매되면서 독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에로틱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지만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것이 성공의 주요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위 패터슨은 9100만 달러로 2위로 밀려났고 영화로도 제작된 ‘헝거 게임’을 쓴 미국 소설가 수전 콜린스는 5500만 달러로 3위에 올랐다. 올해 들어 베스트셀러 집계 1위를 휩쓴 ‘인페르노’의 작가 댄 브라운은 2200만 달러로 수입 랭킹 9위에 올랐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남정네가 냉담하시면 계집은 매우 무색하여 몸 둘 바를 몰라 처신이 매양 두서없고 거동이 주책없기 마련입니다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일 접소로 돌아가시면 동배간들이 야심한 터에 처소를 나간 곡절을 묻고 놀림가마리가 될 터인데, 어찌 감당하시겠습니까.” “몰래 나왔는데 눈치나 챘겠소” “어림없습니다. 내일 동 트기 전에 벌써 접소는 물론이고 왕피천 염막에까지 소문이 파다할 터인데요.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을 새가 듣는다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방 점고하는 질청의 호방은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손을 써놓았구려.” “진작에 인정전을 찔러주었으니, 귀동냥으로 눈치를 챘어도 한동안 못 들은 척하겠지요. 걸핏하면 면박을 잘하는 위인이긴 하지만, 그동안 관령 거역한 적도 없었으니 비위가 거슬려도 잠잠하겠지요.” “참으로 빈틈이 없구려.” “접장과의 일이라면 불을 들고 화덕으로 뛰어들라 해도 서슴지 않겠습니다.” “이런 낭패가 없구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정한조는 잠깐 눈을 붙였다 닭울녘이 되어 서둘러 지어준 새벽동자를 먹고 향임의 집을 나섰다. 뻐근했던 하초가 문득 가벼워진 것을 깨달았다. 손에는 향임이가 쥐여준 조그만 항아리 하나가 있었다. 마시라고 주는 견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길가에 흔히 있는 쇠비름을 뜯어 고은 것입니다. 오행초(五行草)라 하기도 하고 장명채(長命菜)라 부르기도 해서 장수의 명약이지요. 피를 잘 돌게 하고 악창을 다스리는 데 특효라 합니다. 하루에 한 숟갈씩 드시면 오래 사신답니다.” 항아리를 쥐여주며 향임이가 한 말이었다. 접소에 당도하였을 때는 아침 선반머리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접소의 헐숙청에 있어야 할 동배간들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10여 년째 접소에서 동자치 노릇하는 노파와 적굴에서 풀려난 후 그때까지 접소에서 양류밥을 먹고 있는 몇몇 늙은이들과 아녀자들이 비설거지를 하느라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한 잎에서 난 듯 지난밤에 자취를 감춘 연유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동배간들은 아침동자 먹는 대로 내왕 행보로 한식경에 상거한 흥부장 어물 도가나 염막으로 흩어진 뒤였다. 그들이 입도 뻥긋하지 않는 것에 주눅이 들어 살평상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진력나도록 우두망찰하는데, 마침 샛재로 갔던 만기가 비를 흠뻑 맞으며 종종걸음으로 접소에 당도하였다. “초례청을 차려 혼례를 치르기로 담판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만기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꿰고 있기에 지난밤의 일을 눈치챌까, 공연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만기가 초연한 척하겠지만, 눈치채게 된다면 필경 강새암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차제에 곡경을 치른다 할지라도 만기와의 사이를 이렇게 처분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한마디를 거들었다. “월천댁이 많이 놀라서 기함하고 말았겠지?” “한 지붕 밑에 한 이불을 덮고 잠들던 모녀지간에도 딴 꿍심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불찰이 자기에게 있다고 한탄하였습니다. 자기 속에서 내질린 피붙이라면 필경 자기 손바닥 속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숱한 풍진을 감내해왔는데, 종국에 가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이 되었다고 눈물을 질금거립디다. 시생을 신랑감으로 겨냥하고 있었던 것도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되었지요. 구월이가 진작 소동 커질 것을 알아채고 이웃에 몸을 숨겼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조리돌림으로 분풀이를 당했을 터지요. 두 눈을 흡뜨고 샛재 비석거리가 들썩하도록 들쑤시고 다녀도 구월의 행방을 찾아내지 못한 월천댁은 애매한 까치 소리에 돌팔매질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부아를 달래는 고초를 겪었지요.” “임자도 같이 곡경을 치렀겠구만.” “불구녕을 질러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습니다…가시나무 비녀와 삼베 치마로 몸가축을 한들 얼마 가지 않아 콧등이 땅에 닿을 늙은이에게 소생을 맡길 수 없다고 버티는 심지를 돌려놓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아침에 바람 불고 저녁에 비가 내리는 속에, 외로운 등불과 차디찬 벽을 마주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월천댁도 잘 알지 않소. 이미 배태까지 한 소생을 어미처럼 만들지 말고 심지를 다잡으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더니 한바탕 서럽게 울고 나서 한다는 말이 괴이하더이다.” “그건 무슨 소린가?”
  • ‘객주’ 낭독 콘서트 공개방송

    EBS FM(104.5㎒) ‘라디오 연재소설’은 오는 17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문학동네 북카페에서 김주영 작가의 신작 ‘객주 완결편-멀고 먼 십이령’의 낭독 콘서트 공개방송을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방송에는 김주영 작가와 ‘라디오 연재소설’에서 작품을 낭독하고 있는 윤영미 아나운서 등이 참여한다. 15일까지 ‘라디오 연재소설’ 홈페이지(home. ebs. co. kr/radionovel)에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시생이 임소의 도회에서 접장에 천거되었다는 소식은 어찌 들으셨소?” “질청의 구실살이들과 상종이 잦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오늘밤 주과를 차려 모신 것도 경하할 일을 그냥 넘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도둑의 수괴와 동행이었다는 분은 사유(赦宥)를 받았습니까?” “모르는 게 없구려…. 반죽 좋은 그 사람도 치도곤이 무서워 손톱여물을 썰고 있소. 시생 역시 그 동무 꼭뒤잡이되어 접소에서 배송*될까 조마조마해서 그동안 덩달아 달게 자고 일어난 적이 없소. 밤마다 쪽잠에 조리를 치고 나니, 고뿔이 오려 하오. 그 동무나 시생이나 주제가 사납게 되었지요. 그 동무가 징치를 받게 되고 시생이 접장이 되면 무슨 비위짱으로 행세를 하겠소.” “모처럼 쇤네의 집에 침석을 마련하였으니, 하룻밤이나마 편히 쉬고 가십시오.” 향임의 말에 적지 않게 놀랐으나,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접소에서는 한저녁에 몰래 빠져나왔으니 동무들은 야경벌이* 나간 줄 알겠소.” “기방에서 몰래 침석을 하신다면, 야경벌이나 다름없겠지요.” 정한조는 입귀가 돌아가도록 웃고 나서, 향임이 쳐 주는 술잔을 받았다. 술잔이 두어 순배 돌아간 뒤 궐녀는 주안상 가까이 두었던 등잔을 등 뒤로 두어 발짝 멀리 옮겨 놓았다. 주안상 근처는 어두워진 가운데 지분 냄새는 더욱 코끝에 사무치고, 등 뒤로부터 비치는 불빛으로 말미암아 풀 먹여 다려 입은 모시 적삼 속으로 궐녀의 부드럽고 흰 이목구비가 아련하게 드러났다. 주전자를 들어 올릴 때마다 궐녀의 젖가슴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였다. 몸가축을 알뜰히 가꾸었다는 증거였다. 익은 술냄새와 가슴까지 적시고 드는 지분 냄새가 서로 어울려 방 안의 분위기는 술잔에 미약(媚藥)을 푼 것처럼 금세 농밀하게 익어 갔다. 밤은 저절로 두어도 깊어 가는 법, 향임이 말대로 두 사람 모두 의지할 곳 마땅치 못하고 또한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는 외로운 처지들이었다. 어느덧 술 따르는 소리가 밤새 우는 소리처럼 살갑게 들릴 무렵, 정한조는 자신도 모르게 등메 위로 코를 박고 비스듬히 누워 버렸다. 향임이가 다가와 베개를 받쳐 주는 것을 알아챈 정한조가 두 팔을 크게 벌려 향임이를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옷이 구겨지십니다.” “그깐 소금장수 베잠방이 구겨져서 걸레가 된들 대수겠소.” “입성이 사나우시면, 체통도 구겨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향임이가 다가와 정한조의 옹구바지와 홑저고리를 벗겨 횃대에 걸어 주었다. 그는 그런대로 몸을 맡겨 두고 있었다. 취기가 도도하여 부끄러움은 저만치 달아나고 건장한 한 사내의 땀투성이가 된 허우대가 등메 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향임이는 함지박에 물을 떠와 사내의 몸에 밴 땀을 알뜰하게 씻어 주고 주안상을 수습한 다음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때 문득 궐녀의 뇌리를 스쳐 가는 상념이 있었다. 소년의 나이에 기적에 올라 관기로 처신하는 동안 관원이나 하나같이 어투가 도저한 양반의 수청 기생 노릇으로 면박이나 당하면서 그들에게 하기 싫은 화수(和酬) 먹이를 주고받거나 아니면 육허기나 풀어 주는 노리개가 되어 왔었다. 그러나 소금장수와 알몸으로 나란히 누워 있는 이 순간만은 오랫동안 겪어 온 그런 수치심에서 완전하게 일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이야말로 한 계집사람으로서 온전하게 다시 태어난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궐녀는 사내의 큰 가슴에 손을 얹고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손바닥으로 사내의 풋풋한 기운이 뜨겁게 전달되었다. 그 손을 사내가 잡아 이끌어 배꼽으로 가져갔다. 모잽이로 누운 계집의 다른 한 손은 어느새 사내의 불두덩 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윽고 두 몸이 한 덩어리가 되어 부둥켜안고 등메 위를 한 바퀴 휘그르르 돌아감에 계집은 아래에 있고 사내는 위로 올랐다. 숨가쁜 소리가 오가고 난 뒤 계집에 주렸던 사내의 살송곳이 계집의 익혈을 향하여 맨땅에 송곳 박히듯 옹골지고 힘차게 내리박혔다. 사내의 하초에서 참기름 병마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메기 잔등으로 가물치 넘어가듯 미끌 하는 느낌이 들면서 계집의 감창소리가 입술 밖으로 터져 나왔다. 연거푸 이합을 치르고 나자 색에 주려 왔다고는 하나, 어진혼이 나간 듯 생게망게하여 깜깜한 밤인데도 한동안은 눈앞에서 북두칠성이 왔다 갔다 하였다. 계집은 사내의 겨드랑이 아래에서 물고를 뽑은 듯한 살송곳을 잡고 누워 좀처럼 비켜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풀막진 사내의 거웃을 오랫동안 어루만지며 채근하고 있었다. “오얏꽃* 주제인 쇤네가 언감생심 초례청을 차리자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간혹 쇤네의 누추한 와실을 찾아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명색이 접장이 되었다 하나, 하찮은 소금장수에 무지한 밥쇠일 뿐이오.” “취하신 줄 알았더니, 멀쩡하시네요.” “잠자리를 같이하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소.” “말래 접소에 머무실 동안 말미를 내어 간혹 쇤네를 찾아 주시겠습니까? 은행나무 열매는 새가 먹지 않는답니다. 독이 들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길가에 잠시 피었다가 지고 있는 오얏꽃이라 하나 은행나무 열매처럼 독은 없으니 자주 찾아 주십시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음에 오거든 고개 돌리고 외대나 마시오.” *배송: ‘쫓아내다’의 곁말 *야경벌이: 도둑질 *오얏꽃: 기생의 곁말
  • “꺄악~” 2000여 관객 기립박수… 뮤지컬 한류 通했다

    “꺄악~” 2000여 관객 기립박수… 뮤지컬 한류 通했다

    지난 10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자리한 오차드 홀. 뮤지컬 ‘삼총사’ 공연 도중 달타냥 역의 준케이(투피엠)가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 통로에 섰다. 삼총사가 달타냥에게 총사 자격을 시험한다며 아름다운 여성의 이마에 키스를 하라고 지시한 것. 준케이는 몇 걸음 걸어가더니 현지의 여성 관객 가와모토 리사(17)양 앞에 멈춰 이마에 키스를 했다. ‘꺄악~’ 하는 함성이 대번에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크기의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뮤지컬 ‘삼총사’는 국내 공연기획사 엠뮤지컬컴퍼니가 두 번째로 일본 무대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첫 번째 일본 진출작인 ‘잭 더 리퍼’는 지난해 일본 전체 뮤지컬 흥행 7위를 기록했으며 주연배우인 김법래는 K팝 아이돌 못지않은 스타로 떠올랐다. ‘삼총사’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체코 뮤지컬로 2009년 국내 초연됐다. 이날 일본 공연에서도 2000석이 매진됐다. 공연 시작 후 내내 조용하던 관객들은 준케이가 처음 등장하자 일제히 술렁였다. 이내 신성우, 김법래, 민영기 등 삼총사로 분한 배우들의 개별 무대에 환호했고,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한국적 유머 코드에도 즉각즉각 반응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는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쳤고 2, 3층의 관객들은 무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프랑스 소설이 원작인 체코의 뮤지컬을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연기하고, 이를 다시 일본어 자막으로 봐야 하는 무대. 이런 공연이 일본에서 흥행한다는 사실은 특이하다. ‘삼총사’의 일본 측 기획사인 후지미디어홀딩스 산하 ‘쿠아라스’의 마쓰노 히로후미 국장은 “한국에 성량이 풍부한 배우가 더 많고, 일본 연출자는 원작을 개작하는 데 조심스러운 반면 한국 연출자는 원작을 과감히 바꿔 리메이크에 능하다”고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화려한 춤 솜씨와 가창력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사이타마에서 온 사이토 가즈코(50)는 “준케이를 좋아해 한 번 더 예매했다”면서도 “한국 뮤지컬은 처음 보는데 준케이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의 노래와 춤이 뛰어나다”고 감탄했다. 아직은 뮤지컬 작품 자체가 아닌 K팝 아이돌 열풍에 의존하는 한계도 있다. 달타냥 역에 캐스팅된 배우 5명 중 엄기준을 제외하고 준케이, 규현(슈퍼주니어), 이창민(투에이엠), 송승현(FT아일랜드) 등 4명이 아이돌 그룹 멤버다. 이날 공연에서도 준케이를 보러 온 K팝 팬들이 상당수였다. 기획사 측은 ‘삼총사’가 K팝 아이돌을 동원한 이벤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마쓰노 국장은 “아이돌 가수는 10대 후반인 주인공의 연령대에 맞으면서, 무대 경험이 많아 다른 뮤지컬 배우들에게 밀리지 않는다”면서 “관객들은 아이돌을 보러 와서 한국 뮤지컬의 팬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이돌 스타를 앞세운 라이선스 뮤지컬뿐 아니라 창작 뮤지컬들도 이미 일본에 진출했다. 도쿄 롯본기에는 1년 내내 한국 뮤지컬을 올리는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가 문을 열기도 했다. 한국 뮤지컬이 새로운 한류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쓰노 국장은 “한국 드라마는 일본에 이미 안착했고, K팝 아이돌 그룹도 일본 팬들에게 익숙하다”면서 “한국 뮤지컬계의 좋은 연출가와 작품이 일본에 소개돼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도쿄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TV소설 은희(KBS2 오전 9시) 은희(경수진)는 아이들을 대신해 자신이 봉제공장을 그만두기로 한다. 성재(이인)는 영화를 보자는 영주(최윤소)를 홀로 남겨둔 채 돌아오지만, 비가 쏟아지는 밤이 되자 걱정이 되어 결국 영주를 찾아 나선다. 한편 정태(정민진)는 은희가 공장을 그만둔 사정을 알게 되고, 은희에게 호텔 일자리를 다시 권한다. ■굿 닥터(KBS2 밤 10시) 시온(주원)의 돌발 행동에 도한(주상욱)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이로 인해 소아외과 팀원들은 모두 시온에게 등을 돌리고, 보다 못한 윤서(문채원)는 시온을 불러 충고한다. 한편 상벌위원회가 열리던 도중 아이가 위독하다는 호출을 받고 뛰쳐나가는 도한은 신생아 집중 치료 시설 안에서 곧바로 수술을 시작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발견한다. ■MBC 다큐스페셜(MBC 밤 11시 20분) 맹수사에 경사가 생겼다.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인 시베리아 호랑이 펜자가 임신한 것이다. 펜자는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수컷 로스토프와 함께 기증한 호랑이다. 펜자의 임신은 그 의미가 크다. 국내 시베리아 호랑이는 모두 46마리로 같은 혈족끼리의 근친교배가 잦아 지병을 가졌거나 기형 호랑이가 태어나기도 했다. ■백세건강시대(SBS 오전 5시 10분) 요즘 요실금 기저귀 판매시장이 급성장할 정도로 요실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식들에게도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숨기는 환자들이 있다. 요실금은 조기 치료와 기본 생활습관에서부터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한다. 요실금 치료에 좋은 자궁 및 괄약근 수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배워 본다. ■요리비전(EBS 밤 8시 20분) 장마가 끝나면 더욱 깊은 맛을 낸다는 갯장어. 유난히 길었던 올해 장마 끝에 장맛비를 흠뻑 마신 갯장어의 맛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즐겨 먹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최고의 보양식으로 대접받아 왔다. 매일 먹어도 또 먹고 싶어진다는 바다의 귀족, 갯장어를 만나러 남해의 여름 바다로 떠나본다. ■경찰 25시(OBS 밤 11시 5분) 지난 5월 강원 동해시 묵호항 내항에 정박해 있던 어선 사이로 한 여성의 변사체가 떠올랐다. 그녀의 몸에는 갑작스럽게 죽임을 당한 억울한 흔적이 묻어 있었다. 타살을 의심할 만한 수많은 상처와 멍 자국들. 동해해양경찰서는 아무런 단서 없이 시신으로 떠오른 이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수사한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소리 잘하는 배고령입니다.” “배고령? 바른말 잘한다는 그 배고령?” “어허, 세상일 알고도 모르겄네. 이 육실할 년이 하필이면 낼모레가 환갑인 배고령에게 가랑이를 벌려주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10년 과수로 독수공방하다가 고자 대감을 만난다더니… 이년이 숱한 남정네 놔두고 하필이면 몇 해 못 가서 환갑이 될 노닥다리 등짐장수와 배꼽을 맞추었네그래. 배고령이 언변만 번지르르한 줄 알았더니, 똥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재간까지 있는 줄 어느 누가 알았겠나.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이라더니 이런 봉패가 있나….” “봉패라니요? 구월이가 본데없는 산중 처자라고 모두 손가락질하는지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이 있습디다. 배고령이 구월이와 견주어 연세가 약간 지긋하다 하나 아직 허리도 튼튼해서 소금 짐을 지고 치받이길을 치고 오르는 데 아무런 구애가 없고, 양도가 절륜하답니다. 뿐만 아니라, 심성도 진국이어서 내자를 위하는 마음 한 가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오. 언변도 얼음에 박 밀듯 매끄럽고 언문에도 통달하여 장거리에 나가서 흥정을 해도 막힘이 없는 사람이오. 경위 밝고 보비위도 잘하여 장모님도 범절 차려서 깍듯이 모실 것입니다. 통도 크고 능갈치는 재간도 출중하여 조선팔도 어느 장거리에 내놓아도 남의 견모가 된 적이 없습니다.” “보비위 잘하는 놈치고 쓸개 안 빠진 놈이 없지…?” “배고령이 그처럼 데데한 사람이 아니랍디다.” “누가 그런 말을 하였소?” “이번에 접장이 된 정한조 도감이 그럽디다.” “도감 어른이 접장이 되었소?” “되다마다요. 사실은 혼례 치를 겸사해서, 접장이 된 축연도 해야 하오.” 월천댁은 다시 한번 까무라칠 뻔했지만, 정한조가 접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순간적으로나마 시름을 잊게 되었다. 사실 정한조가 접장이 된다는 소문은 파다했으나 아직 임소에서 통기는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소 마음속으로부터 정한조에게 한없는 신뢰를 보내는 월천댁의 심사를 달래주는 데는 효험이 있는 말이었다. 월천댁으로 하여금 마음을 돌려 혼례를 치를 수 있도록 주선하고 숨어버린 구월이까지 찾아내어 모녀 사이에 손찌검이 오가지 않도록 달래주느라 사흘간 동분서주하는 동안, 말래 접소에는 그동안 빈자리로 있던 내성 임소의 접장에 정한조가 발탁이 되었다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정한조가 감당했던 도감 자리에는 도공원이었던 곽개천이 천거되었다. 도감이 접장으로 발탁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떠들썩했던 그날, 해가 나절가웃이 될 무렵 말래 접소에는 생긴 것도 반반하고 입성도 단정한 한 상노아이가 찾아와 정한조에게 언문으로 쓰인 짧은 편지 한 장을 은밀히 전달하고 돌아갔다.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 두 발짝 앞에 있는 사람의 형용도 분별하기 어려운 한저녁, 베잠방이 차림의 정한조는 동배간들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서 몰래 접소를 나섰다. “분복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형단영척(形單影隻) 의지할 곳이 없어 공규를 지키며 외롭기 그지없기는 접장 어른과 쇤네 역시 다를 바 없어 전전불매(輾轉不寐)입니다. 오늘밤 소찬을 마련하여 접장 어른 모시려 하니 허물하여 내치지 마시고 쇤네의 와실(蝸室)을 찾아 주십시오.” 작은 쪽지였지만 여인으로부터 난생처음 받아본 언문 편지였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았다. 연서라는 것이 애당초 그에겐 낯선 것이기도 했지만, 접소의 동배간들 몰래 울진 관내에선 명자(名子)가 떠르르하다는 기녀의 집을 찾아간다는 것도 분복에 겨운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행담(行擔) 짜는 놈은 죽을 때도 버들잎 입에 물고 죽는다 하지 않았던가. 분수에 넘치는 일을 대중없이 넘보다 보면 필경 화근이 되어 환난을 겪기 마련 아닌가. 그러나 나절가웃에 걸려 있던 해가 먼산주름 뒤편으로 껄떡 넘어가고 산허리에 저녁 이내가 어렴풋이 걸릴 제, 매미 소리 또한 숲속에서 지악스럽게 울어대면서 마음이 어느새 동하여 정한조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접소를 나서고 말았다. 향임의 집은 접소에서 흥부장으로 향하는 한길로 가다가 왼편으로 꺾어든 언덕 아래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발새 익은 길은 아니었지만,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집은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단간 초옥에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데, 울바자 밖으로 정한조가 모습을 드러내자, 문틈으로 내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향임이가 몸소 뛰어나와 맞이하였다. 다가오는 궐녀에게서 지분 냄새가 설핏하였다. 외짝 지게문이 달린 휑뎅그렁한 방안에는 조선팔도 어느 고을 기방 풍속이 그러하듯 차려둔 가재도구는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빗자루 하나가 벽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멍석 위에 등메가 덧깔린 방 가운데는 개다리소반에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산해진미가 차려진 것은 아니었다. 울진 흥부장 저잣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찬들이었다. 그처럼 조촐한 주안상이 정한조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딱 벌어진 다담상에 주과가 즐비하였다면 아마도 좌정하기가 거북했을 것이었다. 향임의 도량이 그만치 깊다는 것을 차려진 주안상에서 익히 엿볼 수 있었다. 향임이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무릎 위에 두 손을 포개 얹고 다소곳이 인사를 건네었다. “오늘밤 오시지 않으셨다면, 짧은 여름밤이었다 하나 이렇게 앉아 뜬눈으로 새웠겠지요.” 그 말에 정한조도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나 역시 편히 잠들지 못하고 조리를 치거나 등걸잠으로 밤을 새웠겠지요.” 향임이가 임기응변으로 둘러대는 정한조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거들었다. “성가시게 여기지 않으시고 편역을 들어주시니 고맙습니다.”
  • [지구촌 책세상] ‘가까이 숨어있는 공포’를 엮어내다

    요즘 일본의 최대 유행어는 ‘바이카에시’(배로 되갚음)다. 민영방송 TBS에서 일요일 오후 9시 방송되는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때문이다. 지난 4일 4회 방영분이 평균 시청률 27.6%를 찍으면서 올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로 군림한 ‘한자와 나오키’의 주인공의 모토가 바로 ‘바이카에시’다. 일본의 경제 거품이 막 꺼지던 무렵 세계 3위의 메가뱅크 ‘도쿄중앙은행’에 입사한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는 성실과 복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은 성선설이지만, 누군가에게 당하면 갑절로 갚아 줘야 직성이 풀린다. 일본인들은 이 드라마에서 ‘복수의 쾌감’을 느낀다.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자가 이케이도 준(50)이다.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쓰비시 은행에 취직해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던 이케이도 준은 소설가로 전업, 1998년 은행의 융자 회수로 나락에 떨어지는 중소기업 사장의 얘기를 다룬 소설 ‘끝없는 바닥’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2010년 담합 문제를 다룬 소설 ‘철의 뼈’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했고, 일본의 변두리 공장 기술과 장인 정신을 그린 소설 ‘변두리 로켓’으로 2011년 나오키상의 주인공이 됐다. 최근 ‘한자와 나오키’의 인기로 인해 이케이도 준이 지난달 발표한 ‘어서오세요, 저희 집에’도 덩달아 일본 출판가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최대 서점인 기노쿠니야가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이 책은 지난 5일 현재 문고판 부문 6위에 올라 있다. 내용은 이렇다. 근면 성실한 직장인 구라타 다이치는 어느 여름날 지하철 승강장에서 새치기를 하려는 남자에게 무심코 싫은 소리를 했다가 끔찍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화단은 밟아서 망쳐지고 우편함에는 죽은 고양이가 들어 있는가 하면 방에서 도청기까지 발견되면서 구라타는 물론 가족들의 신변까지 위험에 처한다. 가족들은 온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스토커와의 일전을 결의하지만, 구라타는 파견지인 나가노 전자부품 회사에서 영업부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삐쭉 튀어나온 나사 하나 때문에 거대한 빌딩이 무너질 수 있는 것처럼, 일상의 작은 소동 하나가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치밀한 필체로 그려낸다. ‘가까이에 숨어 있는 공포’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한국에 출판되어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하늘을 나는 타이어’(2010),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2007)을 읽어 보면 좋겠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숨이 막힐 정도로 치를 떨던 월천댁은 울다 말고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정주간 뒤쪽에 있는 부엌 봉노로 내달았다. 애매한 구월이를 아주 요절낼 작심하고 지겟문을 돌쩌귀가 나가떨어져라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나 죽여주십사 하고 엎드려 있어야 할 구월이는 봉노에 없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챈 구월이는 진작부터 어디론가 피신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뒷덜미를 잡아채서 패대기를 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던 월천댁은 구월이가 보이지 않자 그만 어진혼이 빠져 불당그래와 삭정이들이 널려 있는 정주 바닥에 넉장거리하고 드러누워버렸다. “주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정주 바닥에서 넉장거리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풀어헤쳤던 젖무덤을 서둘러 수습한 만기가 허둥지둥 달려와서 손사래치며 앙탈하는 월천댁을 곁부축해서 가까스로 일으켜세웠다. 그러나 억장이 무너져 눈앞에서 헛것만 오락가락하는 궐녀는 곧장 만기를 뿌리치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울타리 밖으로 내달았다. 손바닥 같은 숫막거리라 할지라도 가뭇없이 숨으려는 구월의 처지와 그를 찾아 헤매는 월천댁의 처지는 사뭇 다른 법, 눈을 화등잔같이 뜨고 화냥년 보리방아 찧듯 두서없이 허둥지둥 소생의 거처를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북새통을 피우며 발서슴하고 다니던 중에 어느덧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심사도 얼추 가라앉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까닭이 모두 제 못난 탓이었다는 생각을 진작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만기를 남장 계집인 줄 모르고 김칫국을 떠먹은 불찰은 따지고 보면, 누워서 침 뱉기요, 똬리로 샅 가리기였다. 이렇게 날뛰는 단초가 모두 월천댁인 자기 실수였지, 구월의 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처럼 황당하고 뒤틀린 심사를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혈육인 구월이뿐이었기에 이런 소동을 벌인 것이 아닌가. 굽도 젖도 못하고 월천댁 숫막 툇마루에 앉아 있던 만기는 나무 비녀에 쪽진머리가 봉두난발이 되어 집으로 들어서는 월천댁을 우두망찰하고 있었다. 구월이를 찾아내지 못한 앙갚음으로 만기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뒤틀어잡고 앙탈을 부리지 않는 걸 보면 그나마 넋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지는 않았다. 툇마루에 앉아 있는 만기에게 힐끗 일별을 보내면서 월천댁은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육실할 년이 어디 숨어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나.” 일테면 뒤틀린 심사가 원망 반 걱정 반으로 바뀐 셈이었다. 궐녀는 툇마루 끝자리에 풀썩 엉덩이를 걸치면서 뇌까렸다. “이년 내 눈앞에 보이기만 해봐라…… 등에서 누린내가 나도록 패주고 다리몽생이를 싹둑 분질러서 문밖 출입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테니……” 만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토록 모진 악담을 퍼붓는 월천댁이 구월이가 나이로 치면 삼촌뻘인 배고령과 정분을 터왔고 그로 말미암아 배태까지 했다고 직토를 해버린다면 어떤 몰골이 될까. 평소에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밭의 개똥도 줍지 않을 만치 소슬하게 살아왔다는 월천댁이 그 말을 듣게 되면 또다시 기절초풍을 하고 말 것이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치는 격이 될지라도 부리를 헌 김에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까지 직토를 해버려야 죽든 살든 양단간에 결말이 날 것이었다. 속으로 주저주저하는데, 난데없이 날아든 까치 두 마리가 맞은편 소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숫막을 향해 지악스럽게 짖어댔다. 이상하게 까치들은 항상 짝을 지어 날아다니며 성가시게 굴었다. 짖는 소리가 애간장을 긁어대듯이 거슬렸던 월천댁이 마당가의 돌멩이를 집어들고 까치들을 향해 팔매질을 하면서 걸찍하게 악담을 퍼부었다. “이놈의 새끼들…… 여동밥을 처먹지 못해 환장을 했나, 남의 복장 지르려고 몸 닳게 짖어대나.” 얼혼이 나가서 전전긍긍하는 월천댁을 가까스로 달래서 툇마루에 주질러앉힌 다음, 덩달아서 물에 빠진 사람처럼 엄벙덤벙하고 있는 늙은 중노미를 불러 물 한 사발을 떠오게 하였다. 그리고 소뿔은 단김에 빼더란 말이 있듯이 나중엔 벼락이 떨어지더라도 내친김에 속내에 있던 말을 들이대고 말았다. “구월이를 얼른 혼례 치러주는 게 순서입니다. 이제 서둘러 혼례를 치를 때가 되었지요.” “혼례를 치를 때가 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여? 비 오는 날 똥장군을 지고 밭두렁 비탈길을 걸으라면 걸을까 그건 못해.”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만기가 쐐기를 박았다. “무하고 여자는 바람 들면 못 쓴다는 말 듣지도 못했소? 이팔의 나이를 훌쩍 넘긴 처자가 배태를 하였다면, 삼이웃에 소문이 낭자하기 전에 냉큼 초례청을 차려주어야 하지 않겠소.” “아니, 구월이가 배태하였다고? 누가 그런 날벼락 맞을 말을 해?” “누가 그러는 게 아니라, 그거야 구월이 불러 물어보면 알 테지요. 등잔 밑이 어둡더라고 우리 상단 동무들은 모두가 눈치챈 일을 정작 어미가 모르고 있었구려.” “아이고 내 팔자야…… 개살구 지레 터진다더니 이 산중에 처박혀 사는 년이 바로 그 짝 났네. 내가 살아도 못 살어…… 나이 쉰이 다 되도록 딸자식 하나만 바라보며 애면글면 모든 고초를 참아왔는데, 종국에는 까막까치도 찾아와서 못난 어미 보고 짖게 되었구려. 내가 자문이라도 해야 분풀이가 되지 않겠소. 세상에 이런 봉변이 어디 있소.” “그러니까 동네방네 요상한 소문 퍼지기 전에 혼례를 치러주자고 도감 어른께서 말씀을 하시어 시생이 허둥지둥 찾아온 것입니다.” “도감 어른께서? 도대체 어느 놈이 금지옥엽인 내 딸에게 배태를 시켜 남의 애간장을 끓인단 말이오?”
  • [주말 인사이드] 정도전 쥔 황우여 vs 조정래 든 김한길… 여의도, 한여름 인문학 열전

    [주말 인사이드] 정도전 쥔 황우여 vs 조정래 든 김한길… 여의도, 한여름 인문학 열전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한여름의 대지를 달구는 요즈음 여의도 정가에 인문학 바람이 뜨겁다. 휴가철마다 국회를 벗어나 각자 지역구에서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국회의원들이 이번 여름은 유독 인문학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의 원동력으로 인문학을 꼽은 것도 이런 열풍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책보다는 의정활동 보고서를 쥔 모습이 더 어울리는 의원들이 인문학 고전 읽기 모임 등에 앞다퉈 참여하고 있다. 인문학 열풍의 주역은 민주당 소속 신학용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만든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이다. 결성 두 달여 만에 회원이 40명을 넘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를 비롯해 유승우·강은희 의원, 민주당 이용섭·최재천·김재윤·도종환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참여 중이다. 6월 첫 모임엔 당시 개봉 영화 ‘고령화 가족’의 원작 소설가인 천명관씨가 연사로 초청됐다. 지난달 모임 땐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씨가 초대돼 ‘작가로서 본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강연하고 의원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신 위원장은 “훌륭한 작가들의 인생관, 세상을 보는 눈을 이해하면 직접 사회를 해부해 볼 기회가 생기고 입법활동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모임 배경을 설명했다. 강은희 의원은 “역사소설이 의외로 감성적인 면에 도움이 되더라”면서 “정보기술(IT) 기업 CEO 출신이라 예전엔 경영서적, 디지털 관련 책들만 들여다봤는데 김훈 작가의 책을 읽으니 잠시 다른 세상으로 빠져나갔다가 오는 것 같아 매료됐다”고 전했다. 다른 의원들도 “삶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니 영감을 얻게 된다”, “한동안 안 읽던 책을 다시 읽게 되더라”는 소감을 내놓았다.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친분 있는 당내 의원들 몇 명과 뜻을 모아 공부 모임을 결성했는데 주요 테마가 ‘인문학 고전’이다. 세계 주요 명연설과 선언, 국제협약, 헌법재판소 결정 등을 기본 삼아 공부한 이후에 인문학 고전 읽기로 범위를 넓혀가기로 했다. 김 의원은 “인문학을 통해서 정치 현안에 대한 시각을 더 깊게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여름 휴가 시즌이 끝나면 참석하는 의원들이 훨씬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전 읽기 목록은 ‘서울대 선정 인문학 고전 50선’을 참고해 결정하기로 했다. 국회도서관이 9일 지난해 4월 11일 이후 의원들이 많이 대출한 인문교양 분야 도서 20권을 뽑은 결과 1위는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가 차지했다. 2위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3위는 로버트 B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였다. 올해 서정태 시인이 27년 만에 낸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1Q84’,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 등도 의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법륜 스님의 주례사를 모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가 랭크된 것도 눈길을 끈다. 혜민 스님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여야 지도부가 탐독한 인문학 서적들은 무엇일까. 독실한 크리스천인 새누리당 황 대표는 최근 읽은 책으로 성경과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 필립 페팃의 번역서 ‘신공화주의’를 꼽았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공화주의를 현실 정치에 접목한 ‘신공화주의’는 상생의 정치를 고민하는 여당 대표의 관심사를 반영해 준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메이커스’, ‘생각에 관한 생각’, ‘정글만리’를 완독했다고 한다. 팍팍한 장외투쟁 국면이긴 하지만 손에서 인문 분야 책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측근들은 “베스트셀러 소설가였던 만큼 신간은 두루 섭렵하는 편이고 책 읽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고 전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평소 옆구리에 시집을 끼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팍한 정치현장에서 심신을 달래 주고 삶의 해법을 찾아 주는 것은 순수 시”라는 게 강 의장의 지론이다. 사석에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을 즐겨 암송하는 등 인문학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전국 민생탐방에 나선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수행차량 안에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갖고 다니면서 읽는다고 측근이 전했다. 국회 사무처가 의원 및 1급 이상 국회 공무원을 대상으로 매년 개설하는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도 부쩍 인기가 높아졌다. 2011년 9월 12주 과정으로 처음 열렸을 때 의원 38명이 신청했지만 지난해에는 51명으로 늘었다. 인문학 서적 읽기 붐은 ‘인문학 속에 답이 있다’는 진리 앞에 정치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방증한다. 특히 박 대통령이 문화계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새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등 유별난 인문학 사랑을 보이는 것도 여의도의 ‘인문학 바람’에 불을 댕긴 것으로 분석된다. 문화부장관을 지낸 4선의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정치권이 뒤늦게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치가 가장 후진적’이라는 비판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과거 세상이 권력의 힘으로 장악됐다면 이제는 정보의 힘으로 장악된다”면서 “인문학의 가치·철학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빛의 속도로 변하는 기술변화 과정도 따라잡을 수 없고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서민정치, 현장정치를 지향하는 의원들이 작가들이 고발하는 당대 사회상 속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인문학 예찬론을 폈다. 초·재선 의원들에게 인문학 서적은 큰 교훈이자 벗이 되기도 한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인류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 있는 인문학에서 사회를 조정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찾기 위해 인문학 서적을 접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민현주 의원은 “인문학은 사회 현안을 최종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설득력 있는 해답을 준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또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로 옛것을 지나치게 폄훼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옛것은) 새로운 것의 탄생 근거가 된다”면서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베를린장벽 붕괴후 이념 해체… 달라지는 사람들 면밀히 탐색”

    “베를린장벽 붕괴후 이념 해체… 달라지는 사람들 면밀히 탐색”

    “동독인에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는 모든 것의 마지막과 같았습니다. 음식도, 옷도, 화폐도, 심지어 공기와 사랑도 변했어요.” ‘심플 스토리’와 ‘아담과 에블린’ 등으로 국내 독자에게 알려진 독일의 소설가 잉고 슐체(51)가 올해 만해대상 문예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8일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통일이 가져오는 변화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면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변화된 체제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바뀌어 가는지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슐체는 1962년 옛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자느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못 봤지만” 20여년간 통일 전후의 독일을 면밀히 지켜봤다. 1998년 발표한 ‘심플 스토리’는 동독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통일 이후 달라진 동독인들의 삶을 그렸다. 그는 “독일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 두 언어의 체계와 관계를 알 수 있듯 한 체제를 경험하다 다른 체제를 겪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통일 이후의 가장 큰 변화로 그는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꼽았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일은 사라졌고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이 되었다. 이념이 떠난 자리에는 시장과 자본주의가 들어섰다. 베를린의 수돗물 민영화를 예로 든 그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성장과 민영화”라고 통독의 현실을 진단했다. 2011년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당시에도 “통일 이전에는 공산당 서기장에 대해 입도 뻥긋 못했다면 지금은 사장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슐체가 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장벽이 무너진 것은 어찌 됐든 큰 행운이었다”면서 “다만 조금 다른 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독에 급하게 편입되면서 동독의 경제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슐체는 설명했다. 그는 “생활 수준이나 교류 여부 등을 보면 북한과 동독은 비교하기 어렵다”면서도 “독일처럼 통일을 서두르는 대신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수정암 마룻장을 뜯고 찾아낸 장물의 물목단자에는 그동안 십이령을 넘나들던 어물 상단과 길손들이 적당에게 탈취당했던 엄청난 전대와 패물의 알천들이 일목요연하게 적바림되어 있었다. 당백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은장도(銀粧刀)와 석장도(錫粧刀), 은항장도(銀項粧刀), 칼자루, 피도갑(皮刀匣), 밀화(密花), 산호(珊瑚), 호박(琥珀), 진옥(眞玉)과 같이 어물 상단으로는 눈요기도 어려웠던 진귀한 보석들이었다. 값어치로 따지면 기천 냥을 헤아릴 만하여 과연 십이령의 험로를 넘나들던 상단의 복물짐이나 길손들의 봇짐을 가차없이 탈취한 적당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그들 상단으로선 출처를 알 수 없는 물자들도 있었다. 그런 물목단자를 앞에 두고 속내가 달라진 접소 동무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장물들 대부분이 우리 상단을 은사죽음시키고 탈취한 물화들이니 임소의 하회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응당 우리들의 차지가 되어야 합니다.” “장물은 그동안 적변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버린 동무들의 친인척을 찾아내어 돌려주어야 후환이 없습니다.” “그 말도 온당하나 그동안 죽음을 당한 동무들 거개가 고향이 어느 고을 어느 골짜기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지 않나. 여기 모여 앉아 있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지만, 십중팔구 사고무친한 미장가 엄지머리에 오쟁이 진 홀애비 처지들이라, 그동안 장례며 면례(緬禮)조차 우리 임소 동무들이 십시일반해서 치러주지 않았나. 혹여 망자의 안태고향을 찾아낸다 할지라도 십중팔구 가숙이라 할 만한 계집사람이나 내지른 소생도 없어서 생시 때 초인사는 물론이고, 안면조차 트지 않았던 사돈의 팔촌들만 움 안에서 떡 받기 십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물화들을 관아에 고스란히 갖다바쳐야 하나?” “그건 게걸들린 길청의 이서배 놈들에게 이것 갖다가 한입에 꿀꺽 삼키시오 하고 턱밑에 들이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야.” “설마하니, 몽땅 털어 삼킬까.” “그놈들 목구멍은 호랑이 목구멍보다 더 크다는 것을 임자가 몰라서 그러나? 구실살이들이 월름(月?)이 없는 까닭이 나변에 있나? 그렇게 임자 없이 굴러온 물화를 거두어 치부하라고 월름을 두지 않았던 것이야. 여북했으면 호랑이 아가리란 별호가 붙었겠나. 우리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고 적굴을 소탕하고 건진 거관(巨款)을 입맛 다시는 데 이골 난 길청의 이서배 놈들 썩은 뱃속에 채워줄 까닭은 없지.”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일세.”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 접소에서 거둬들여야 할 장물일세.” 행중 식구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가운데, 곰방대를 빼물고 천장만 쳐다보고 앉았던 정한조가 시끌시끌하던 좌중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가만히 일렀다. “그 장물의 물목단자는 이미 임소에 보장을 띄웠으니, 우리가 접소에 앉아서 가지자 말자 하고 떠들어댈 처지가 아닐세. 견물생심이라 해서 그만한 거관에 이르는 장물을 취득하였다면 나랏님이라도 거두어서 내탕금으로 쓰고 싶은 심정일 것이야. 나 또한 욕심이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네. 그러나 장물로 말미암아 해로동혈하자는 접소의 동무들끼리 의견이 분분하고 종국에 가서는 좋은 의초들이 상해 서로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이 오갈까 해서 부랴부랴 임소에 보장을 접수시키지 않았겠나. 그로써 그 장물은 좋든 싫든 이미 우리 손에서 떠난 셈일세. 임소에서 작정하신 대로 우리 접소로 되돌려준다면, 그때 우리 임의대로 처분할 것이고 아니면 임소나 관아에서 처분하도록 지켜보는 것이 도리일세. 우리가 처음 적당을 소탕하고자 결의하고 나섰을 때, 저들의 장물을 거두고자 발기한 것은 아니지 않나. 다만 십이령 고갯길에 적당이 창궐하여 그 폐해가 막심해 그것을 정습시켜 우리들 상로의 안녕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었나. 그러기에 장물을 가지고 말들이 많은 것은 우리의 체면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일이며, 누워서 침 뱉기일세. 모두 자숙들 하게나.” 본심은 한결같이 충직한 사람들이라, 정한조의 한마디에 좌중이 잠잠해졌다. 정한조는 일행의 심사가 그동안 치러진 일들로 몹시 들떠 있고, 장물에 대한 미련도 말끔히 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들떠 있는 심지들을 쓰다듬고 달래주어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이렇다 할 묘책이 나서지 않아 전전긍긍이었다. 사로잡은 적당의 수괴는 임방의 처분에 따라 안동 부중으로 압송하여 짐을 덜었으나, 그와 더불어 길세만을 징치하라는 하회가 떨어질까 해서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모처럼 조기출, 천봉삼과 정담을 벌여보았다. 긴 논의 끝에 천봉삼이 내놓은 의견을 따르기로 하였다. 우선 송만기를 샛재의 월천댁에게 보냈다. 송만기로 하여금 자신의 본색을 토로하여 월천댁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함이었다. 그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월천댁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곁에 벼락이 떨어진다 해도 침착했던 월천댁은 송만기가 부풀어 오른 젖무덤을 숨기려고 가슴을 감싸고 있던 무명 자투리를 풀어 보이자, 그만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설마하니 송만기가 남장한 계집일까 해서 사뭇 곧이듣지 않다가 오목 주발을 엎어놓은 듯한 만기의 푸짐한 젖가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만기의 실체를 차마 보고 싶지 않아 일변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 가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보고 또 보다가 그만 염치불구하고 곡지통을 내쏟고 말았다. 간혹 젊고 모색도 반반하게 생긴 보상들이 통행에 구애를 받거나 험상궂은 부상들이 뒤따라다니며 지분거릴까 해서 남장을 하고 다니는 경우는 있었으나, 소금이나 어물 짐을 지고 험로를 넘나드는 부상이 남장을 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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