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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이 영화] 生을 걸 만한 사랑, 괴물을 만들어내다

    [지금, 이 영화] 生을 걸 만한 사랑, 괴물을 만들어내다

    1816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연일 쏟아지는 비 때문에 외출이 어려울 정도였다. 네 사람은 집에 틀어박혔다. 무료한 나날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각자 괴담을 써봅시다.”역시 여름은 으스스한 이야기의 계절이다. 딱히 할 일도 없던 이들은 저마다 무서운 서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 멤버가 누구보다 진지하게 여기에 매달렸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정식 출간까지 했다. 그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독자로 하여금 두려워서 주위를 돌아보게 만들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맥박이 빨라지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그가 빚은 ‘괴물’은 공포 캐릭터의 대명사가 됐다. 그 괴물은 이름이 없다. 그래서 제목으로 극 중 괴물을 창조한 박사의 성(姓)을 붙였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그런 장난 같은 기획에서 비롯된 이 소설로 유명 작가가 된 그는 누구일까. 정답은 메리 셸리다. 그는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아나키스트 윌리엄 고드윈 부부의 딸이었다. 개혁 사상가를 부모로 둔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메리 셸리는 본인의 인생이 평범하게 흘러가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의 삶은 그가 쓴 ‘프랑켄슈타인’의 내용만큼이나 곡절이 많았다. 그런 메리 셸리의 젊은 시절열다섯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를 조명한 영화가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다. 이 시기 그에게 일어난 사건 하나를 꼽자면 무엇보다 ‘연애의 도피’를 들어야겠다. 이것은 스캔들이었다. 당시 메리(엘르 패닝) 나이가 열일곱 살이었다는 사실보다는, 애인 퍼시(더글러스 부스)에게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세간의 비난을 받을 만한 불륜이다. 하지만 그는 퍼시와 함께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메리에게 그것은 자기의 생을 걸 만한 유일한 사랑이었으니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연인밖에 안 보인다. 그리하여 ‘사랑의 주체’는 용감해서 한편으론 더없이 잔혹해질 수 있다. 메리도 다르지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프랑켄슈타인’도 그렇게 해석 가능한 텍스트라고 생각한다.영화를 제작한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도 이와 비슷한 인터뷰를 했다. ‘프랑켄슈타인’에 메리의 삶이 상당 부분 투영돼 있어 놀랐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결과물은 아쉽다. 메리의 삶이 평면적으로만 나열돼서다. ‘와즈다’(2012)로 호평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첫 여성 감독에게 관객이 걸었던 기대치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메리의 용감함만 부각하기보다 다음과 같은 메리의 실제 발언을 더 주목해야 했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에 애착을 느낀다. 행복하던 시절, 죽음과 슬픔은 그저 단어일 뿐 내 가슴에서 현실적인 울림을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의 산물이기에.” 알고 보면 이는 매우 잔혹한 말이다. 타인은 물론 메리 자신에게도. 허 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SKY 캐슬’ 이태란, 캐슬의 에밀 졸라가 될 수 있을까

    ‘SKY 캐슬’ 이태란, 캐슬의 에밀 졸라가 될 수 있을까

    이태란은 ‘SKY 캐슬’의 위선 속에서 에밀 졸라가 될 수 있을까.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제작 HB엔터테인먼트, 드라마하우스, 총 20부작)에서 박영재(송건희) 가족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수임(이태란). 영재 가족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밑바닥이 드러나는 것은 원치 않았던 캐슬 주민들과 달리 수임은 그저 구경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를 가장 외면하고 있는 한서진(염정아)에게도 똑같은 비극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수임은 소설을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강예서(김혜윤)의 전교회장 당선 축하파티에서 모두에게 밝혀진 수임의 소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캐슬과 영재네 비극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겠다고 하자 일제히 공격이 쏟아졌다. 차민혁(김병철)은 “우리 캐슬의 명예가 실추되고 품위가 손상되는 건 자명한 일 아닙니까”라며 반발했고, 진진희(오나라)는 “당장 집값부터 떨어진다고요”라며 들고 일어섰다. 현실적이어서 더욱 씁쓸했던 이들의 반응 때문일까. “인생의 가장 행복해야할 나이에 어른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책을 통해서라도 좀 알려야 되지 않겠어요?”라는 노승혜(윤세아)의 지지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임은 “영재네에서 일어난 엄청난 비극이 여러분들한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게 절망스러워서요. 아니, 입시경쟁으로 해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데도, 우리 사회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게 비통하다 못해 참담해서요”라며 이 소설을 쓰려는 목적을 절실하게 토로했다. 입시 경쟁 속에서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목숨을 잃은 제자 연두를 돕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있는 수임에게 소설은 창작 욕심도, 돈벌이 수단도 아니다. “자식을 명문대 보내려고 수십억 들이는 게 알려질까 두려우신 거, 아닙니까”라는 질문에는 아니라면서도, 당장 눈앞에 벌어진 비극 자체를 외면하고 있는 방관자들 사이에서 수임만이 유일하게 용기를 낼뿐이다. 영재네 비극에 함께 눈물을 흘려줬으나, 그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 적극적으로 막아서는 캐슬 사람들. “없는 사람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도 배려를 해줘야죠. 어차피 형편 안 되는데 모르는 게 낫잖아요”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비단 서진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자신들의 견고한 세상에 살고 있는 200여명의 주민들이 집단으로 모여 수임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고 있듯이 말이다. 수임의 남편 황치영(최원영) 역시 부창부수였다. 의원에게 로비를 하려는 최원장(송민형)이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없는 법이야”라며 치영을 회유했을 때, “물고기 그립다고 탁류로 살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라며 거절한 것. 그러나 맑은 물에 살겠다는 수임과 치영 부부가 남들 눈엔 이상하게 비춰지는 세상이 바로 우리네 이상한 현실이다. 모두가 덮으려고 하는 진실을 파헤친다는 이유만으로 ‘SKY 캐슬’에서 이상한 존재가 된 수임. 게다가 부조리가 반복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소설 집필은 강단 있는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집단의 반발에 혹시 자신 역시 은연중에 영재네의 일을 자극적인 소재의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검열에 들어갔고, 소설을 포기할까 고민했다. 또한 비극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김주영(김서형)의 거짓말에 넘어가 동력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경쟁에 희생된 제2의 영재, 제3의 연두를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다는 수임의 분명한 목표는 그녀를 불편하게 여겼던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비극의 씨앗을 알면서도, 어째서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불편해 하는가”라고.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을 고발해 그가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듯이, 겉으론 평온해 보이는 캐슬을 들쑤시고 그로 인해 모두가 등을 돌리더라도, 수임 역시 끝끝내 세상에 진실을 알릴 수 있을까. ‘SKY 캐슬’, 매주 금토, 밤 11시 JTBC 방송. 사진=JTBC ‘SKY 캐슬’ 방송 화면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SKY 캐슬’ 제작진 “이태란이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에 주목”

    ‘SKY 캐슬’ 제작진 “이태란이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에 주목”

    ‘SKY 캐슬’ 이태란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그녀의 소설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응원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지난 21일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에서 이수임(이태란)은 교생실습 때 제자 ‘송연두’를 떠올리며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공개된 수임의 과거는 그녀가 박영재(송건희)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 영재네 비극의 중심에 서 있던 김주영(김서형)이 연두를 이용해 수임에게 접근하며 예측불가 전개를 예고했다. 수임이 영재 이야기와 캐슬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쓴다고 하자 반발이 일어난 캐슬. 사람들은 영재 아빠 박수창(유성주)의 심정, 품위와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내세우며 소설을 반대했지만 수임은 꿋꿋했다. “영재네에서 일어난 엄청난 비극이 여러분들한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게 절망스러워서요. 아니, 입시경쟁으로 해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데도, 우리 사회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게 비통하다 못해 참담해서요”라는 수임에게는 절실함까지 느껴졌다. 지지해주는 사람은 남편 황치영(최원영)과 노승혜(윤세아) 뿐이었지만, 수임은 ‘누가 그 여자를 죽였을까’라는 소설 제목을 ‘SKY 캐슬’로 바꾸며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처럼 수임이 소설을 놓지 않는 이유는 성적 스트레스 속에서 비극을 맞이한 제자 연두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당신 영재 얘기에 몰두하는 게 연두 때문인 것 같더라”는 치영의 추측처럼. 교생실습 때, 수임의 반 학생 중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해를 일삼던 연두. 당시 담임선생님은 “부모도 포기한 애를 교생이 뭘 어쩌겠다고”라며 무관심으로 대응했고, 오직 수임만이 연두의 상처에 분노했다. 하지만 연두는 ‘선생님, 도와주세요. 저 살고 싶어요’라는 SOS 신호만을 남긴 채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구원의 눈길을 보내는 연두를 도와주지 못했던 당시 일들이 지금까지도 죄책감으로 남아있었다. 수임의 정의감이 캐슬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수임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주영. 지난 9회에서 영재의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낸 그녀가 연두의 과외선생이었다고 밝히며 수임을 놀라게 했다. 또한 오늘(22일) 밤 10회 방송을 앞두고 공개된 스틸 컷은 주영의 꿍꿍이를 더욱 궁금케 한다. 수임이 그동안 비극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온 주영의 손을 꼭 잡고 있기 때문. 제작진은 “수임과 주영이 연두의 납골당 앞에서 다시 만난다. 그곳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뒤바꿔놓을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캐슬 사람들의 반대 서명도 무릅쓰고 수임이 꼭 소설을 써야만 하는 이유, 그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주목해달라”고 전했다. 누군가에겐 오지랖이라고 느껴졌던 수임의 정의감과 소설. 특히 주영에게 입시 코디를 받고 있는 한서진(염정아)에겐 불안까지 심었다. 하지만 수임에게 책은 영재와 연두처럼 입시경쟁 속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었다. 수임이 영재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소설에 몰두하는 진짜 이유가 드러나자 이제는 소설에 기대가 모이고 있다. 수임의 소설은 어떤 결말을 쓸까. 한편, JTBC ‘SKY 캐슬’은 22일 오후 11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 = HB엔터테인먼트, 드라마하우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두 개의 외로움이 마주친 부산행 열차

    두 개의 외로움이 마주친 부산행 열차

    인터내셔널의 밤/박솔뫼 지음/아르테/132쪽/1만원기차에서 옆에 앉은 낯선 이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있는가.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나 나올 법한 이 장면은 어느 시절엔 흔했는지 몰라도 요즘엔 흔하지 않다. 기껏해야 창가 자리에서 복도로 나가며 “저기요” 정도지 이후 얘기가 더 뻗어 나가는 일은 드물다. 소설 ‘인터내셔널의 밤’은 등단 10년을 맞은 박솔뫼 작가의 여덟 번째 책. 각자의 자리에서 떠나 ‘신기하고 무섭고 이상한 기분’으로 기차에서 만난 한솔과 나미의 얘기다. 가슴 제거 수술을 받고 이후의 선택지로 자궁 제거 수술을 남겨 둔 한솔. 일본 오사카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 나미는 자신을 옥죄던 교단에서 뛰쳐나와 얼굴도 모르는 이모의 친구 집에 의탁하러 가는 길이다. 말은 나미에게서 먼저 나왔다. “저, 정말 죄송한데요.” “네.” “창가로 자리 좀 바꿔 주실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버름한 시간을 넘어 이들이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배제’된 사람임을 알아본 까닭일까. 한솔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지 ‘2’로 시작하는지를 묻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고, 나미는 실제 도망치는 몸이다. 외로운 사람이 둘이면 외롭지 않다 했던가. 이들은 뜻밖에 낯선 곳, 낯선 이에게서 안온함을 느낀다. “시간은 길고 시간은 많고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을 거야. 그냥 살면 된다.” 나미의 이모 친구 유미는 말한다. 항구와 커다란 여객선 사진을 함께 바라보며 각자의 새로운 여행지로 다시 떠나는 이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말이기도 하다. 오사카를 향해 떠나는 한솔의 수첩에 “모든 것이 좋았다”고 적히는 것은 이 실낱같은 인연이 주는 힘이다. 따옴표 처리도 되지 않은 등장 인물들의 혼잣말들이 묘한 공감을 자아낸다. 책장을 덮으면 배경이 되는 호텔, 보수동 책방 골목, 역 근처의 묘사 덕에 부산에 가고 싶어진다. 부산 가는 기찻길에서 읽기 좋게 손바닥 크기만 한 아르테의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중 하나로 나왔다. 그러다 한솔과 나미처럼 옆에 앉은 이에게 말을 붙여 볼 수도 있겠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우울증 늪에서 건진 인류의 보석

    우울증 늪에서 건진 인류의 보석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앤서니 스토 지음/김영선 옮김/글항아리/456쪽/1만 8000원열등감은 때로 예상 밖의 큰 업적과 성취를 낳는다. 프랑스대혁명의 틈새에서 제1제정을 건설, 유럽 운명을 쥐락펴락했던 나폴레옹을 말할 때 167㎝의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이 회자된다. 독일 나치 정권을 창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인식엔 오스트리아의 평민 사병 출신이란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열등감처럼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위인 중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우울증을 앓았던 인물이 숱하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윈스턴 처칠과 프란츠 카프카, 아이작 뉴턴에 집중한다. 어릴 적 유전적, 혹은 환경적인 이유로 우울증을 갖게 된 세 인물의 생애를 우울증으로 연결하고 있다. 가정의 배려 부족 탓에 얻은 우울증이 위업과 창의성으로 승화된 과정을 촘촘하게 풀어내 흥미롭다.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에 맞서 영국과 서방 세계를 수호한 정치가로 유명한 영국 정치인 처칠. 그에 대한 인상은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호방함, 그리고 사람 마음을 휘어잡는 화려한 웅변술로 굳어져 있다. 하지만 그 좋은 인상의 바탕에 극심한 우울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평생 재발하는 우울증 발작에 시달렸고 자주 자살 충동까지 느꼈으며 결국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1895년 홀더숏 훈련기지에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보자. “제가 정신적 침체 상태에 들어가리라는 걸 알아요. 저는 절망의 늪에서 일어서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진지한 저작도 읽을 기운을 차릴 수가 없어요.” 한 지인은 1915년 다르다넬스 원정 실패로 해군성에서 사임한 뒤 우울증에 빠진 처칠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더니 절망한 듯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반항심이나 분노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간단히 말했다. 난 끝났어.” 처칠은 대대로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부모의 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애정 박탈감은 청소년기 생활에 그대로 드러난다. 성적은 바닥이었고 지각을 일삼은 데다 의욕과 야망이 없는 낙제생이었다. 처칠은 느닷없이 재발하는 우울증을 스스로 ‘검은 개’라 부르며 우울증에 빠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다른 일을 찾았다고 한다. 그 대안이었던 그림과 글쓰기는 수준급이었고,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다.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는 프란츠 카프카도 어린 시절의 홀대와 박탈감 탓에 우울증을 달고 살았다. 좀처럼 부모를 만날 수 없었던 결핍과 잇따른 동생들의 죽음으로 인해 늘 존재 불안에 휘둘렸다. 그의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도 불안과 피해자라는 의식이다. 대단히 정교한 굴을 만들어 안전을 확보하려는 한 동물 이야기인 ‘굴’은 그 성향의 대표적인 결정체다. 초기 소설을 모은 ‘어느 투쟁의 기록’에 실린 ‘기도자와의 대화’에선 “내 마음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고 확신한 때가 없다”고 쓰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카프카의 글쓰기는 인격의 병적인 부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좀더 행복했더라면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크게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아인슈타인 이전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는 아이작 뉴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태어나기 석 달 전 아버지는 죽었고, 조산아로 출생했으나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방치됐다. 어머니의 재혼과 이별을 뉴턴은 배신으로 여겼던 듯하다. 그 상실은 언제나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주변인으로 이어졌고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살았다고 한다. 뉴턴의 전기작가인 셀리그 브로데츠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뉴턴은 다른 사람들의 재촉이 없었다면 자신이 발견한 것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뉴턴은 미적분학을 당대의 경쟁자인 라이프니츠보다 10년 빨리 완성했지만, 자신의 성과를 빼앗길까봐 발표를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뉴턴의 기본적인 불신은 과학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도록 자극한 원동력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뉴턴의 말 속에 들어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고정시키기 위한 가장 사소한 세부 사항도 마음대로 그리고 마구잡이로 벗어나게 허용하지 않을 단단한 틀이 불안에 시달리는 이 남자의 근원적인 욕구였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문학 속 서울공화국… 욕망으로 지은 도시

    정부가 19일 발표한 3기 신도시 조성 계획은 ‘서울로의 접근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신도시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새로 깔고 지하철을 연장하며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신설해 “30분 내 서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계획은 서울의 위상을 다시금 보여 준다. 서울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유인책으로 서울에 가기 쉽다는 점을 강조하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도대체 서울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위상을 갖게 된 것일까.신간 ‘서울 탄생기’는 1960~70년대 서울의 변화상을 추적하며 해답을 내놓는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도구가 문학작품인 점이 독특하다. 저자인 송은영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이호철 ‘서울은 만원이다’, 김승옥 ‘무진기행’, 최일남 ‘서울의 초상’,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순 ‘정든 땅 언덕 위’, 박완서 ‘낙토의 아이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작가 16명의 작품 110편으로 서울의 변화를 분석한다. 저자는 1960년대 초반 이후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과거와의 ‘단절’과 ‘망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빠른 변화가 지금 서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우선 1960년대 초반은 혼란을 거쳐 현대 도시 서울을 형성한 법적·행정적 토대가 마련된 시기였다. ‘무진기행’에서 하인숙은 당시 젊은이들의 서울 열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여주인공이 보여 주는 서울 생활은 혼란 그 자체다.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내 몸 하나 제대로 누일 곳도 없다.1962년 1월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에 이어 서울은 1966년 현대 도시로 나아간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1966년)의 효과가 슬슬 나타난 지점이기도 했다. 1965년 한·일회담 결과로 한국에 돈이 풀리며 경기가 살아났고, 같은 해 베트남 전투부대 파병과 건설사업 참여 등으로 서울은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한다. 이를 진두지휘한 이는 1966년 4월 부임한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다. 군인 출신인 그는 서울을 현대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개발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인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그를 가리켜 ‘부산 거리를 의욕적으로 밀어버리고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서울로 전임해 온 젊은 시장’으로 묘사한다. 그는 400여동의 시민아파트를 짓고, 봉천·신림·상계동 등지에 거대한 불량지구를 만든다. 판자촌을 쓸어버리려 서울 외곽 변두리 지역인 경기도 광주로 철거민을 강제 이주한다. 결과적으로 사대문 안에 머물러 있던 서울의 실질적 경계는 확장됐고, 현재 서울 전체의 모습도 이때쯤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급작스런 도시 개발은 부작용을 부른다. 1970년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1971년 광주 대단지 소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건에 관해 박태순은 ‘정든 땅 언덕 위’의 ‘외촌동’이라는 가상 마을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김 시장은 물러났지만, 서울 개발은 강남으로 이어진다. 포화 상태에 이른 강북 인구를 분산시킬 신시가지인 강남은 전쟁이 나면 또다시 한강을 건너지 못하는 시민들이 생길까 하는 걱정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 개발자금과 정치자금 등을 마련해야 했던 권력층의 탐욕이 있었다. 특히나 1972년과 1973년은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다. 1972년 4월 서울시가 강남을 발전시키고자 강북을 특정시설 제한구역으로 설정하며 강남은 뜨고 강북은 쇠락한다. 당시 서울시는 도심부 인구 분산계획의 일환으로 종로구와 중구 전역은 물론 용산구와 마포구의 기존 시가지 전역 등에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등 신규 시설을 불허했다. 이듬해에는 강남 지역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한다. 수많은 상업시설이 규제도 받지 않고 특별법 혜택으로 취득세, 재산세 등을 면제해 주는 강남으로 옮겨갔다. 와우아파트 사고 이후 침체했던 아파트 붐이 살아났고, 명문 고교들이 강남에 터를 잡으며 명실상부한 서울의 또 다른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에서는 강을 경계로 생겨나는 강남과 강북의 거리감을 탁월하게 짚어낸다. 1960~70년대 서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을 향한 사람들의 거대한 욕망은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 지금의 서울을 만든 근원적인 힘이다. 서울은 주택, 교육, 취업, 여성의 권리 등 현재의 문제가 집약된 곳이자, 제대로 된 자기성찰 없이 근대화에 매진해 온 한국 현대사 현장 자체이기도 하다. 꿈틀거리는 욕망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우리는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경없는 포차’ 베르나르 베르베르 출연..신세경 초대에 응답

    ‘국경없는 포차’ 베르나르 베르베르 출연..신세경 초대에 응답

    ‘국경없는 포차’에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등장해 화제다. 지난 19일 방송된 Olive, tvN 예능프로그램 ‘국경없는 포차’에서는 박중훈, 안정환, 신세경, 이이경, 샘 오취리가 프랑스 파리포차 영업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오픈 시작과 동시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바로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앞서 다섯 사람들은 SNS를 통해 포차에 왔으면 하는 셀럽들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고 말한 신세경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신세경의 초대 메시지를 본 그가 실제로 온 것.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국경없는 포차’에 등장하자 출연진들은 놀라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신세경은 메뉴판을 건네며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 있냐”고 물었다. 이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비빔밥을 먹어본 적 있다. 한식을 좋아한다. 김치 같은”이라고 답했다. 이날 베르베르는 두부김치와 불닭에 소주를 곁들이며 맛있게 먹었다. 그는 “여러분 모두 요리사가 아니지 않나. 맛있다. 완벽하다”고 칭찬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제 전생 중 하나는 한국일 거다. 한국에 가면 쉽게 알 수 있다. 고향 같다는 것을”이라 말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진=tvN ‘국경없는 포차’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3회 서대문(안산 아랫동네)편이 지난 15일 서대문구 현저동과 영천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서대문역 8번 출구에 집결한 참석자들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대문 통술집~석교교회~영천시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어 서대문역사공원에서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해설을 통해 엄혹했던 경성교도소(서대문형무소) 시절 행해졌던 옥살이와 옥바라지의 고통을 되새겼다. 자락길을 따라 봉수대에 올라 안산 아랫동네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을 내려다봤다.서대문(돈의문)은 행정적으로 한성부 서부 반석방에 속하는 성 밖 십리지역이다. 그러나 서대문은 행정지리학적으로 사대문 안 새문안과 진배없는 특수지역이기도 했다. 서울~개성~평양~의주를 오가는 조선 제1대로인 의주대로와 영은문·모화관 그리고 경기감영의 존재가 조선 수도 한성부 서대문 도시 공간의 핵심 코드이다. 서대문은 1915년 서대문~청량리 간 전차궤도 부설로 말미암아 강제 철거될 때까지 종각~남대문 간 남북대로와 함께 동대문~서대문 간 동서대로의 종착점이었다. 의주로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조선 초(1393년)부터 수원으로 옮겨간 1896년까지 경기감영이 자리잡았다. 조선시대 1번 국도는 중국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연행로(燕行路) 혹은 사행로(使行路)라는 별칭이 따랐다. 조선 제일의 무역로이기도 했다.영천시장 앞 석교교회 앞은 말 그대로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모두 6개의 다리 중 북쪽에서 첫 번째 다리가 석교이다. 다리 아래에는 1967년 복개 이전까지 서대문~홍제동~고양~파주~장단~개성~의주를 잇는 의주로를 끼고 무악천이 철철 흘렀다. 다리의 남쪽은 교남동, 북쪽은 교북동이었다. 무악천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욱천(旭川)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붙으면서 본명을 잃었고 지금은 만초천이라고 불린다. 기봉·기산·봉우재·봉화뚝·모악산·무악재 같은 다채로운 이름을 가졌던 무악산 또한 길마재의 한자표기인 안산(鞍山)으로 개명됐다. 무악은 동봉과 서봉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봉우리 사이가 움푹하므로 길마(소에 짐을 실을 때 그 등에 얹는 기구)와 같다 해 길마재라고 불렸다. 안산이란 말의 안장같이 생긴 산이란 뜻이다. 무악(毋岳)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는 풍수지리상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북한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어서 이를 달래려고 ‘어미의 산’이란 뜻에서 모악(母岳)이라고 칭했던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무악이라는 신령스런 지명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고 나라를 잃은 탓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어쨌거나 안산에 오르려면 지하철 무악재역에서 내려야 하는 게 우리의 지명현실이다.무악과 인왕산은 북방으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방어선이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唐)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고 했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라면서 외침 때마다 지키지도 못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남한산성을 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는 왕조를 비판했다. 한성부 서부 반송방은 오늘의 인천처럼 서울을 드나드는 제일 관문이었다. 반송방은 고려 남경 때부터 소반처럼 생긴 반송(盤松)이 많아서 붙은 지명이다. 서지(西池)라는 학교운동장만 한 큰 연못이 지금의 금화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이를 반송지, 반송정, 천연정이라고도 지칭했다. 정조는 국도팔영(國都八詠), 서거정은 한성십경(漢城十景)에 속하는 명소로 꼽았다. 도성대지도, 경조오부도 등 옛 지도에 나타나는 서대문 밖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1407년 태종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려고 세운 모화관과 영은문이다. 연못 자리에는 개화기 일본 공사관(청수관)과 죽첨공립소학교(동명여중)가 들어섰다. 하필이면 경기감영을 한성부 관할 지역인 반송방에 뒀을까. 경기감영의 설치 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경기도를 다스리는 경기관찰사는 반송방에 본영, 영평(포천)에 신영을 두고 왕래하면서 업무를 봤다. 지금도 수원에 경기도청, 의정부에 경기 제2청(경기북부청)을 따로 두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기도는 수도방위의 중책을 맡고 있으므로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요한 때문이다. 김종서 장군의 집이 서대문 밖 지금의 농업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일행이 일흔 살 노장군의 집에서 철퇴를 휘둘러 즉사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죽지 않았다. 왕에게 반역을 고하려고 부인의 가마를 타고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기감영과 사대문을 장악한 한명회의 수하들이 서대문과 남대문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수양은 다음날 새벽 자객을 보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방원에 의해 척살당한 정도전의 수송동 집이 마구간으로 변한 것처럼 김종서의 서대문 집은 여행객에게 말을 대여해 주는 고마청으로 둔갑했다. 역사의 가설은 성립하지 않지만 김종서의 집이 사대문 안에 있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노릇이다.경기감영 터는 1896년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군부대로 사용되다가 1903년 한성부 청사, 죽첨공립소학교 사택, 고양군청을 거쳐 경성적십자병원(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서는 독특한 장소 변화를 겪었다. 또 서부 경찰분서, 경성감옥 분감, 경성측후소(서울기상청) 등도 들어서 이후 변화상을 예감케 한다. 사대주의의 상징 모화관과 영은문을 헐어내는 대신 독립관과 독립문이 세워졌다. 일본의 자본과 부추김에 의해 세워진 독립문과 독립관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현저동이란 말 그대로 고개(峴) 아래(底) 동네를 말한다. 인왕산과 무악산이 이어지는 무악재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다. 1975년 대통령령에 따라 현저동 절반이 종로구로 편입돼 의주로 동쪽 인왕산 자락은 무악동으로 바뀌었다. 의주로를 중심으로 안산 쪽은 서대문구, 인왕산 쪽은 종로구로 각각 나뉜 것이다. 서대문 밖은 지배세력의 교체에 따른 공간 변화가 두드러진 곳이다. 점유주체가 바뀌면서 공간의 이력도 덩달아 달라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적산가옥이 많았던 인왕산 아래 대로변 평동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빈민층이 스며들었다. 염상섭은 ‘삼대’에서 “전차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물어 홍파동에까지 와가지고 수첩을 꺼내보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꼬불꼬불 뺑뺑 돌아야 양의 창자다. 서울서 이십여 년을 자랐건만 이런 동네에는 처음 와 보았다”고 묘사할 정도였다. 박경리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영천시장엔 한 귀퉁이에 제법 시장까지 선다고 했다. 아무리 공화국의 하늘 아래라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인 이상 먹어야 사는 것 다음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이 사고파는 일…”이라고 한국전쟁 와중에도 열린 영천시장을 그렸다. 현저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현저동 달동네의 각박한 삶이 절절히 펼쳐진다. “여기가 서울이야?” 나의 한 섞인 물음에 엄마는 뜻밖에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기는 서울의 문밖이란다. 느이 오래비가 이담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면 우리도 그때 가선 버젓이 문안에 살아 보자꾸나.”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삼청동(삼청공원의 겨울)●일시: 12월 22일(토) 오전 10시~낮 12시●집결장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신청·안내: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미래유산 톡톡] 수직성 강조한 첨두아치… 석교교회 ‘디테일’에 푹~

    [미래유산 톡톡] 수직성 강조한 첨두아치… 석교교회 ‘디테일’에 푹~

    지난 15일 답사단이 찾은 서대문(안산 아랫동네)의 서울미래유산은 서대문통술집, 석교감리교회, 독립문 영천시장 등 유형유산 3곳과 김광섭의 ‘독방 62호실의 겨울’, 심훈의 ‘그날이 오면’ 등 무형유산 시 2편 등 모두 5건이었다.서대문 통술집은 1961년 개점 이후 한 장소에서 2대째 운영해 오는 돼지갈비집이다. 1950년대 말 전남 광양에서 상경한 창업주 박종채씨는 난생처음 간 창경궁 나들이 때 구입한 복권이 당첨돼 그 자본으로 개업을 했다. 드럼통 탁자 3개뿐인 소위 ‘서서갈비집’으로 시작, 오늘에 이르렀다. 석교감리교회는 1916년에 준공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소속의 교회이다. 석교교회는 인근 영천시장 입구에 놓인 돌다리(石橋)에서 유래한다. 유서 깊은 교회건축물로 수직성을 강조한 첨두아치를 비롯, 고딕양식의 특징적인 조적 디테일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영천시장의 유래는 영천장이다. 영천장은 지금의 독립문 인근에 존재하던 장으로 경기 고양시의 화전, 원당, 능곡, 일산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장이었다.‘독방 62호실의 겨울’은 시인 김광섭이 재직했던 중동학교 학생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했다는 죄목으로 1941년 2월부터 1944년 9월까지 약 3년 8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 독방에 수감돼 옥고를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다. 시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일제의 간악함,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한 울분과 적개심이다. ‘그날이 오면’은 장편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세상을 떠난 뒤인 1949년에 발간된 작품집이자 이 책에 수록된 시 제목이기도 하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더욱 극대화했으며 이 때문에 그는 ‘저항시인’이라는 명예까지 얻었다. 제1연에서는 조국 광복의 그날이 오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기쁜 소식을 울리겠다고 노래하며, 제2연에서는 잘 드는 칼로 자신의 몸에서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둘러메고 앞장을 서도 조국 광복의 그 우렁찬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아쉬움 없이 눈을 감겠다고 노래한다. 심흥식 해설자·경기대 초빙교수
  • 이창동 ‘버닝’ 한국영화 사상 최초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

    이창동 ‘버닝’ 한국영화 사상 최초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

    이창동 감독의 ‘버닝’(포스터)이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에 올랐다. 일 할리우드리포터와 인디와이어 등 매체에 따르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위원회는 이날 87개국 작품 가운데 ‘버닝’을 포함한 9편의 예비후보를 선정, 발표했다. 최종 후보작 5편은 내년 1월 22일(현지시각) 발표한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내년 2월 24일 열린다.‘버닝’은 일본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 분)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 그리고 정체불명의 부유한 남자 벤(스티븐 연 분)에 얽힌 이야기다. 이창동 감독이 ‘시’(2010)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화제를 모았다. LA영화비평가협회와 토론토영화비평가협회로부터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아울러 미국 방송영화비평가협회(BFCA)가 선정하는 ‘2019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乙의 눈물 따라 흐른 서사… ‘현실 그대로’ 노래하다

    乙의 눈물 따라 흐른 서사… ‘현실 그대로’ 노래하다

    구조 탄탄·문체 안정감… 준비된 신인作 장르문학 대신 노동 현실 다룬 소설 많아 희곡은 청년의 좌절·페미니즘 소재 다뤄 성정체성 등 내면에 침잠한 시 주류 이뤄 예스러운 소재 대신 자아성찰 시조 등장 판타지적 동화보다 보편적 주제로 회귀 “준비된 신인들이 낸 작품 같다. 기본적으로 안정감을 갖춘 문장에 서사 구조상의 밀도가 높았다.”(편혜영 작가) 지난 5일 마감한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곳곳에서 문청(文靑)들의 소중한 원고가 날아들었다. 교복 차림의 여고생이 수줍게 두고 가기도 했고, 미국·중국 등 멀리 해외에서, 교도소에서도 모두 수천편의 작품이 서울신문사로 몰려들었다. 컴퓨터가 없어 원고지에 수기로 쓴다는 고백, 삽화를 곁들인 시 등 ‘한 해 농사’ 신춘문예에 들이는 정성이 살뜰했다. 올해 응모작은 총 3968편. 분야별로는 시 2860편, 단편 소설 421편, 동화 161편, 희곡 73편, 시조 445편, 평론 8편이다. 단편 소설에서는 직장 내 상하관계, 비정규직 문제, 물류창고 택배기사 이야기 등 노동 현실을 다룬 글들이 눈에 띄었다. SF소설이나 장르문학이 자취를 감추고 철저하게 현실 그대로의 상처나 고통을 다뤘다. 친척이 알려오는 부고로 시작하는 작품, 이국적 공간 안에서의 여행 이야기 등 죽음이나 여행 등 예년에 자주 볼 수 있던 소재들도 재등장했다. 반면 페미니즘·퀴어 등 올해 문단계를 휩쓴 이슈들은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단편 부문 예심 심사위원을 맡은 황예인 문학평론가는 “문장이 별로여도 글 자체로 에너지가 있는 신인들이 있을 수 있는데 다들 안정감 있게 자기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잘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태용 작가는 “(문체가) 너무 안정감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시적이거나 파격적이라든지, 문장 그 자체로 뭔가를 시도하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시에서는 개인의 내면 풍경에 침잠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시 부문 예심 심사위원 박연준 시인은 “사회적 이슈보다는 개인에 대한 자아성찰이 많았다”며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룬 시들도 몇 편 보였다”고 말했다. 김언 시인도 “‘촛불 정국’이라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이 많았던 2년 전과는 비교되는 양상”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언어와 사유가 함께 단련된 시라야 본심에 올라갈 수 있다고 두 시인은 입을 모았다. 동화에서도 SF 등 판타지적 요소가 사라지고 아이들의 삶, 자연 등 보다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박숙경 아동문학평론가는 “전반적으로 아동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왔다”고 평했다. 유영진 아동문학평론가는 “아무리 독자를 어린이로 상정하고 쓰더라도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가르치려는 계몽 의지가 발현된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며 “정말 뛰어난 작품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스러운 테마, 자연친화적인 주제 일색이었던 시조도 달라졌다.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 생존 현장에 대한 묘사를 다룬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시조 심사를 맡은 이송희 시인은 “일상적 소재를 낯선 화법으로 다룬 세련된 작품들이 돋보였다”며 “이런 작품들은 기존의 시조 질서에 던지는 물음과 도전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평론에서는 최은영, 박솔뫼 등 비교적 젊은 작가 대상의 평론들이 도드라졌다. 그러나 왜 지금 이 시기에, 이 작가를 다루는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고 심사위원들은 평했다.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기존의 철학 사상에 소설을 부분적으로만 차용하는, 소설이 증거로만 제시되는 경향이 있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평론은 예년에 비해 작품 수가 급격히 줄었다. 희곡에서는 사회적 안전망이 파괴된 현실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공포가 극대화됐다. 파괴된 가정, 취업에의 어려움, 각박한 노동 환경 등이다. 희곡 부문 심사를 맡은 김태형 연극연출가는 “희곡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무대에 올렸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지금 바로 (무대에) 올려도 될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이 꽤 보였다”고 말했다. 소설 부문과 달리 페미니즘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도 많았다. 예심 결과 시는 10명의 작품이, 소설은 9편이 본심에 올랐다. 당선 결과는 이달 말까지 개별 통보하고 내년 1월 1일자 서울신문 신년호에 심사평과 함께 발표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나흘 만에 3쇄… 일본서도 ‘82년생 김지영’ 인기

    나흘 만에 3쇄… 일본서도 ‘82년생 김지영’ 인기

    국내 베스트셀러인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발간된 지 나흘 만에 3쇄까지 돌입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17일 이 소설의 일본 출판사 지쿠마소보에 따르면 일본어판 ‘82년생 김지영’은 지난 8일 발간과 동시에 2쇄 중쇄에 들어갔고, 독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발간 나흘 뒤인 지난 12일 다시 3쇄 중쇄를 결정했다. 이 소설은 이날 일본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재팬의 ‘문학·평론 분야’ 판매 순위 44위에 올랐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책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또 이용자들이 구입 의향을 밝힌 ‘구입하고 싶은 책’ 순위에도 5위에 올랐다. 한국 여성들의 현실을 기록한 국내 밀리언셀러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지쿠마소보는 3쇄 중쇄 소식을 전한 12일 트위터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중쇄하는 것은 좀처럼 없다. 감개무량하다”며 “지금 책을 입수하기 어렵다. 서둘러 인쇄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판사 측은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 방탄소년단의 RM, 소녀시대의 수영이 이 책에 대해 언급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 때 선물로 받은 소설이라고 홍보했다. 이 책은 평범한 서른넷 전업주부의 삶을 통해 여성이 학교와 직장에서 받는 성차별, 고용시장에서 받는 불평등, ‘독박 육아’를 둘러싼 문제점 등을 사실적인 자료와 함께 보여 줬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강희대제’ 쓴 中 소설가 얼웨허 별세

    ‘강희대제’ 쓴 中 소설가 얼웨허 별세

    중국에 대한 교과서로 불리는 ‘강희대제’, ‘옹정황제’, ‘건륭황제’ 등 제왕삼부곡을 쓴 중국 소설가 얼웨허(二月河)가 지난 15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73세.중국 신화통신은 얼웨허가 6개월 전부터 뇌전색으로 베이징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던 중 이날 새벽 심장기능 부전으로 병세가 악화돼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본명이 링제팡(凌解放)인 얼웨허는 1945년 11월 산시성 시양에서 태어났고 1967년 늦깎이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0년간 군인으로 복무했다. 전역 후 허난성 난양시 한 구의 선전부 과장 등으로 일했고, 1995년에는 중국 문학예술계연합회 난양시 부주석으로 뽑혔으며 수차례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회의 대표를 맡았다. 얼웨허는 비교적 늦은 40세 때부터 문학 창작을 시작했는데 중국 청나라 전성기였던 4대 강희제, 5대 옹정제, 6대 건륭제 시기 134년간을 다룬 대하소설 제왕삼부곡으로 국내외에서 유명해졌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제자 성추행’ 하일지 기소

    ‘제자 성추행’ 하일지 기소

    제자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아 온 하일지(본명 임종주)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재판에 넘겨졌다.서울북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박기종)는 하 교수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하 교수는 2015년 12월 10일 동덕여대 재학생 A씨에게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를 받고 있다. 하 교수는 지난 3월 14일 강의에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언급하며 “동백꽃은 처녀(점순)가 순진한 총각을 성폭행한 내용이다. 그러면 얘(남자 주인공)도 미투 해야겠네”라고 말했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배경에 대해 “피해자의 질투심 때문”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일었다. 이튿날 A씨는 인터넷에 하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하 교수에게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다”면서 “하 교수의 행동이 동의 아래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소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하 교수는 “A씨가 2016년 자신을 프랑스에 데려가 달라는 요구가 거절되자 1년 전 일을 폭로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는 추행이 있었던 다음해에 A씨와 다정하게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성북구, 문인사기획전4 ‘지금 여기 박완서’ 개최

    성북구, 문인사기획전4 ‘지금 여기 박완서’ 개최

    서울 성북구는 성북문화재단과 함께 성북예술창작터에서 내년 1월 22일까지 문인사기획전4 ‘지금 여기 박완서’를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문인사기획전은 성북의 문인 중 기념비적인 작가를 매년 한 명씩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문학과 예술간 융합프로젝트다. 2015년 시인 신경림, 2016년 시인 조지훈, 2017년 문학평론가 황현산에 이어 올해는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선정됐다. 전시장 1층은 프롤로그 개념의 개괄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2층은 ‘기억, 상상, 복제’를 주제로 구성됐다. ‘부재의 고고학’, ‘소박한 개인주의자’, ‘사늘한 낮꿈’의 소주제를 통해 박완서 문학에 나타나는 여성과 6.25전쟁, 한국 근현대 사회의 풍속과 부조리, 그리고 영원한 현역으로서의 박완서 등을 다루고 있다. 장·단편 소설과 에세이 등의 초판본·해외번역본·동화, 주요 저작들의 서문, 박완서 작고 1년 전의 카톨릭대 강연과 결혼식 영상, 호원숙(수필가, 박완서 장녀)·박철수(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이근혜(문학과 지성사 편집장) 등과 진행한 6편의 인터뷰 영상도 볼 수 있다. 18일 오후 7시 30분 성북예술창작터에선 박완서의 마지막 장편 ‘그 남자네 집’을 낭독극으로 연출, 선보인다. 성우 윤소라가 읽고,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가 연주한다. 20일 오후 7시 30분엔 라파엘센터에서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박완서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짚어보는 좌담회가 열린다. 국문학자 이선미, 여성학자 임옥희, 문학평론가 고명철, 수필가이자 박완서의 장녀 호원숙이 참석한다. 구 관계자는 “박완서를 균형감 있게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이번 기획전이 박완서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되새기고 가슴 따뜻해지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책꽂이]히피, 할머니를 업은 할머니 외

    [책꽂이]히피, 할머니를 업은 할머니 외

    히피(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 펴냄) ‘영혼의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가 1970년대 자신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히피’로 살았던 자신의 청년 시절 경험, 깨달음을 얻게 되기까지 모험과 방황, 사랑과 상처 등을 담았다. 소설 속 주인공이자 작가이기도 한 파울로는 1968년 여자친구와 함께 볼리비아 라파스를 지나 잉카의 옛 도시 마추픽추로 향한다. 첫 히피 순례길을 통해 세상은 진정한 교실임을 깨닫는다. 2년여 후 그는 진정한 내면 탐구를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광장에서 우연히 카를라를 만나 ‘매직 버스’에 탑승하며 두 번째 본격적인 히피 순례를 시작한다. 암스테르담을 떠나 오스트리아, 터키 이스탄불 등을 지나 네팔 카트만두로 향하는 길 위에서 파울로와 카를라는 다양한 길동무를 만나 마침내 ‘나 자신’을 발견한다. 360쪽. 1만 4500원.할머니를 업은 할머니(김형진 지음, 최지영 그림, 파란정원 펴냄) 한집에 사는 두 명의 할머니. 나이가 동갑이고 해와 달만큼 다르게 생겼지만, 둘은 무척 친하다. 손녀의 가족은 외할머니를 그냥 할머니, 다른 할머니를 ‘작은 할머니’라 부른다.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의 몸이 불편하다. 건강했던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를 타게 된다. 정신마저 흐릿해져 사랑했던 가족들 얼굴도 하나하나 잊어 간다. 손녀는 이런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 아프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곁에서 손을 잡아 주는 일 뿐.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남은 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다.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두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마음을 애잔하게 표현했다. 할머니가 할머니를 어떻게 업는다는 것일까. 작가는 작은 할머니의 정체를 마지막에서야 알려준다. 작은 할머니의 정체를 아는 순간 ‘아하!’ 하면서 무릎을 칠 것이다. 80쪽. 1만원.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김철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문학평론가이자 연세대 국문과 명예교수인 저자가 2010년부터 발표한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독립투사도, 부일협력자도 아닌 일제강점기 2000만 조선인, 그리고 그냥 그렇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우리의 정체성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가” 묻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을 자기동일성 혹은 정체성에 대한 병적인 강박, 공포에 시달리는 근대인으로 설명한다. 소설 토지의 일본인, 위안부 문제 등의 주제로 다양한 일제 식민지의 시공간과 우리 모습을 들춘다. 한국 근대문학을 통해 식민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노력해온 저자는 식민지 조선이 한국 정치의 수원지이며, 마르지 않는 폭력의 저수지라고 지적한다. “모든 혐오는, 타자에게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공포와 혐오라는 점에서, 결국은 자기 혐오이자,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라는 말이 섬뜩하다. 272쪽. 1만 6000원.재미있는 곁말 기행(박갑수 지음, 역락 펴냄) 조선 명종은 유명한 점쟁이 홍계관을 궁으로 불러 “궤짝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맞춰보라”며 문제를 낸다. 홍계관은 “쥐 세 마리가 있습니다”라고 답하지만 쥐는 두 마리뿐이었다. 왕은 홍계관을 죽이라 하고, 광나루 밖에 있던 한 산에서 홍계관의 사형이 집행된다. 왕이 이상히 여겨 뒤늦게 암컷 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 쥐가 한 마리 더 있었다. 왕은 선전관을 보내 사형을 멈추라 하지만, 간발의 차로 홍계관의 목이 떨어진다. 선전관이 “아차! 늦었구나”라고 해서 산의 이름이 아차산이 됐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설은 사실일까. 빗대어 표현하는 해학과 풍자가 담긴 말, 또는 동음어와 유의어, 다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 속담, 수수께끼, 육담과 같은 해학적인 표현을 통틀어 ‘곁말’이라 부른다. ‘월간중앙’에 연재됐던 박갑수 서울대 명예교수의 글을 모으고 덧붙여 두 권의 책으로 냈다. 346쪽, 349쪽. 각 권 2만원.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시대 역주행하는 소설 같지만 민족 정체성 되짚어 봤으면…”

    “시대 역주행하는 소설 같지만 민족 정체성 되짚어 봤으면…”

    문신 1·2·3 /윤흥길 지음/문학동네/각 408·408·400쪽/각 1만 4800원신문사에서 일하던 시절 윤흥길 작가의 연재소설 원고를 챙겼다는 김훈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듯이 소설을 짊어지고 그 고통스러운 시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최근 1·2·3권이 출간된 장편소설 ‘문신’은 올해 일흔여섯의 작가가 등단 50주년에 독자들을 향해서 힘껏 내미는 손이다. ‘경박단소’(輕薄短小·가볍고 얇으며 짧고 작음)의 시대. 독자들이 이를 원하고 출판사가 이에 부응하는 시대에 노(老)작가가 내미는 주름진 손. 총 5권인 소설의 4·5권은 내년 상반기에 출간된다. 소설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 징용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산서(山西) 마을 천석꾼 최명배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갈등을 그려 냈다. 아버지 최명배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당시 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막대한 부를 쌓지만, 둘째 아들 귀용은 아버지를 ‘악덕 지주 야마니시 아끼라’라 부르며 사랑채를 턴다. 여기에 ‘기회주의자’ 아버지와 ‘사회주의자’ 동생 모두에게 거리를 둔 장남 부용도 있다. 혼돈으로 가득한 시대,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과해 나가는 다종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린다.제목 ‘문신’은 전쟁에 나가기 전 몸에 문신을 새기는 풍습 ‘부병자자’에서 비롯됐다.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말했다. “학교 선배이신 이규태 선생님 저서 중에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읽다가 부병자자에 눈이 꽂혔어요. 제가 기억하기로도 6·25 때 동네 젊은이들이 입영 며칠 전 집 떠나기 전에 가족들이 보는 자리에서 팔뚝에다가 ‘일심’(一心) 같은 걸 새기는 걸 봤거든요.” 죽은 몸뚱이라도 고향에 돌아오겠다는 간절한 비원이 부병자자에, 그리고 ‘문신’에 담겼다. 왜 다시 일제강점기일까. 작가는 “어떤 면에선 이 작품이 역주행 소설 같다”고 했다. 글로벌 시대를 얘기하는 지금이더라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해 한 번쯤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민족성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일제 말기가 작가의 주제 의식을 구현하는 ‘최적기’였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신’은 대하소설에는 못 미치는 ‘중하소설’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토지’처럼 그 시대를 다룬 호흡 긴 소설들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간상이 등장한다. 지주집에 먹물 아들들, 생각 많고 냉소적인 첫째와 행동파 둘째, 그리고 이들 형제에 자극제가 되는 친척 같은 것이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살아 숨쉬게 하는 데 많은 공을 기울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야마니시 아끼라’로 개명한 악덕 지주 최명배는 실은 전통과 조상 신위를 끔찍이 여기는 인물이라는 식으로. “최명배는 놀부 같은 인물인데, 놀부가 사실은 못된 인간이지만 어떤 면에선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매력적인 인물일 수가 있죠.” 소설은 전반적으로 다지기 잔뜩 들어간 남도 김치같이 풍성한 맛이다(‘다지기’는 ‘다대기’의 바른 말이다). 한평생 국어사전을 끼고 살았다는 작가의 글답게 곳곳에서 출몰하는 다양한 어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런데 또 멈칫할 사위 없이 책장이 막 넘어간다. 문장에 흐르는 유장한 가락 때문이다. ‘둥기당당 쿵덕쿵덕’ 읽으며 뜻을 유추해 보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거나 하면 좋겠다. ‘전두엽이 크지 않아 스스로를 범재라 생각한다’는 작가는 실제 이와 유사하게 소설 공부를 했다고 한다. 야심한 시각 AFKN(주한미군방송)을 소리 죽여 보면서 다음 장면을 상상하는 식으로.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겨울 밥상 위 ‘멀티플레이어’

    겨울 밥상 위 ‘멀티플레이어’

    “통통하게 살 오른 꼬막의 차진 맛 아시나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꼬막이 침을 돋우는 계절이 돌아왔다. 꼬막은 가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 때쯤이면 전라도 사람들의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먹거리다. 꼬막은 11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이다. 기온이 올라오는 3월부터 9월까지는 독소가 올라오고 흐물흐물해 오히려 몸을 해치기도 한다. 꼬막은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나지만 전남 보성 벌교 참꼬막을 최고로 쳐준다. 조금만 오염돼도 생산이 어려워 청정해역에만 서식하는 자연식품이다. 벌교의 갯벌은 순수한 갯벌로 참꼬막 생산지의 최적지로 불린다.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에서 벌교의 특산품인 꼬막에 대해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고 배릿한 맛’으로 묘사하며 여러 차례 꼬막을 부각하면서 전국구 음식으로 부각됐다. 벌교 꼬막은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 8진미 중 1품으로 진상할 만큼 일찍부터 그 맛을 인정받았다. 벌교뿐 아니라 인근 도시인 여수·순천·고흥 등을 잇는 여자만, 강과 바다가 만나는 순천만에서 나온 꼬막도 일품으로 쳐준다.●환경오염에 ‘귀하신 몸’ 된 자연산 참꼬막 소설 ‘태백산맥’에는 벌교 꼬막을 상세히 표현했다. ‘알맞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물기가 반드르르 돌게 마련이었다. 양념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비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수산물 지리적표시 제1호인 벌교꼬막은 벌교 여자만 일대에서 생산된다. 남도에서는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린다. 맛이 쫄깃쫄깃 짭조름하다. 삶아서 양념하지 않은 채 술안주나 반찬으로 먹어도 일품이다. 꼬막전, 꼬막꼬치, 꼬막회, 꼬막장조림, 꼬막밥 등 다양하게 요리한다. 꼬막은 크게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피조개)으로 나눈다. 참꼬막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식당 밑반찬 등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게 새꼬막이다. 참꼬막은 외관상 새꼬막보다 골이 깊고 껍질이 단단하다. 알도 차 더 먹음직스럽고 바다 향이 나면서 맛에 깊이가 있다. 참꼬막 물량이 5~6년 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가격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새꼬막은 20㎏ 한 망당 10만원 선이지만 참꼬막은 40만원 선으로 4배 차이가 난다. 참꼬막은 연안에 가까운 뻘층에 종패를 뿌리거나 자연적으로 나온 종패가 3~4년 성장기간을 거쳐 자라난다. 기간이 길어 철새 등의 먹이가 되고, 온난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뻘 상태가 좋지 않아 예전만큼 생산되지 않는다. 기간이 길다 보니 수확할 때까지 종패 관리를 위한 비용이 많이 들고, 뻘에서 채취하는 탓에 인건비도 상승하고 있다. 어촌 고령화로 인한 인력부족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비해 새꼬막은 채묘시설을 해서 종패를 바다에 뿌린다. 그물에 붙어 있는 꼬막을 기계로 한꺼번에 들어 올려 수확도 쉽다. 봄에 뿌리면 그해 겨울에 먹을 수 있을 만큼 1년도 채 되지 않아 생산이 가능하다. 12월 들어 날씨가 추워지면서 속이 꽉 차 참꼬막과 새꼬막 모두 제맛을 낸다. ●타우린·비타민 등 함유… 자연이 준 보양식 꼬막은 11월 가을 찬 바람이 갯벌을 감싸기 시작하고 짱뚱어가 들어가면서 맛이 들기 시작한다. 추위에 오그라든 채 쫄깃쫄깃한 살이 오른 한겨울 속 맛을 최고로 친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알이 굵다. 꼬막이 함유한 타우린과 비타민 성분은 강정 작용과 음주로 인한 간 해독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비타민B 복합제로 B12, 철분, 코발트 성분이 많아 저혈압 환자와 노약자들에게 겨울철 보양 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처음으로 꼬막이라는 이름이 기록돼 있다. 저지방 식품으로 여성과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조혈작용을 해 빈혈이나 저혈압을 앓는 사람에게도 좋다. 단백질 23%와 필수아미노산, 무기질 함량이 높아 성장기 아이들의 발달에 좋은 식품이다. ●10여가지 꼬막 요리가 가득 ‘2만원의 행복’ 꼬막 하면 ‘벌교’를 상징할 만큼 국내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고장답게 벌교읍내에는 꼬막을 주재료로 하는 전문 식당들이 즐비하다. 벌교 5일 시장(4일·9일) 주변에는 이런 식당들이 30여곳 즐비하다. 이 식당 중 어느 집에 가서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주재료인 꼬막이 같아서 차이가 나지 않아 모두 맛있게 먹고 나온다. 5일 장이지만 수산물을 매일 판매하고 있어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다. 벌교역 앞에서 부용교로 나가는 길목의 매일시장에서는 언제든지 생꼬막을 살 수 있다. 시장 부근에 있는 두세 군데 도매상에서는 3~15㎏ 단위로 값싸게 살 수 있다. 벌교를 찾은 여행객들이 귀갓길에 한 자루씩 사 가지고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중 원조수랏상, 부용산 식당, 다성촌 식당, 벌교 꼬막 맛집, 고려회관, 홍도회관 등 6개 식당을 보성군에서는 10여년 전부터 모범식당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군은 2016년 전남도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10억원을 들여 ‘벌교 태백산맥 꼬막거리’를 조성했다. 조형물과 쉼터조성 등 거리 환경을 개선해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만들었다. 꼬막은 요리법도 다양하다. 살짝 데쳐 양념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미나리, 오이, 양파 등과 함께 초고추장으로 버무려 꼬막무침으로 먹기도 한다. 꼬막을 밀가루·계란 등과 반죽해 먹는 꼬막전도 별미다. 꼬막 해물뚝배기는 남도 바다의 싱싱한 해물과 꼬막, 미나리와 콩나물을 넣어 시원한 국물맛을 자랑한다. 꼬막정식은 통꼬막, 꼬막탕, 양념꼬막, 꼬막초무침, 꼬막찜, 꼬막전, 탕수꼬막, 꼬막 돈가스, 꼬막 된장국 등 10여 가지 이상의 꼬막 요리가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온다. 이 중 으뜸은 아무런 첨가물을 넣지 않고 살짝 데쳐 한 알씩 까먹는 삶은 통꼬막이다. 무엇보다 꼬막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피 색깔 같은 따뜻한 꼬막 국물은 몸에 좋다는 인식도 있어 인기가 좋다. 이곳 식당들은 꼬막 껍질을 손으로 벗기지 않고 쉽게 까는 껍질 까는 기계를 제공한다. 펜치 같은 기구로 꼬막 사이에 납작한 면을 넣어 꽉 쥐면 양쪽으로 껍질이 벗겨진다. 가격은 새꼬막 정식 한 상에 1인분 1만 5000~2만 2000만원이다. 보통 2만원이다. 꼬막 외에 생선찜, 반찬 등이 함께 나간다. 13일 일행 5명과 온 박모(53·부산시)씨는 “겨울철 입맛을 깨우는 별미가 꼬막 아니겠냐”며 “살도 찌지 않고 천연 건강 음식이 입에 딱 달라붙는 쫄깃한 그 맛 정말 일품이다”고 활짝 웃었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임을 위한 행진곡’ 세계 민중 가요로 널리 울려 퍼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 세계 민중 가요로 널리 울려 퍼진다

    동남아선 민주화운동 상징곡처럼 등장 2022년까지 표준 가사 마련해 번역·배포 창작뮤지컬 등 문화콘텐츠 제작·보급도‘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민중가요로 자리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세계 민주주의 상징곡으로 거듭난다. 13일 광주시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비 9억원이 내년도 정부 예산에 반영됐다. 곡을 기반으로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작·보급,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광주시는 2022년까지 5년간 총사업비 83억원(국·시비 각 50%)을 투입한다. 시는 우선 ‘임을 위한 행진곡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고 2020년 5·18 40돌을 기념해 국내외 순회공연을 추진한다. 또 홍콩·대만·중국·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국가별로 제각각 불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표준화하기로 했다. 이어 2022년까지 표준 가사를 마련하고 가사와 배경, 과정 등을 세계어로 번역해 배포한다. 이 밖에 아시아, 유럽 등 민중가요 분야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아카데미, 워크숍 등 국제학술행사도 추진한다. 시와 광주문화재단은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를 위해 올해부터 관현악곡 제작, 국내외 연주회 개최, 창작 관현악곡 작품공모 등을 진행해 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광주의 고통과 시민의 결연한 의지를 녹인 민주화의 상징 노래로 불려 왔다. 5·18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항쟁 마지막날인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를 맞은 윤상원과 지역 노동운동가 박기순(1978년 사망)의 ‘영혼 결혼식’(1982년 2월)에서 처음 등장했다. 소설가 황석영이 통일운동가 백기완의 장편시에서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전남대 출신 김종률이 곡을 붙였다. 이후 ‘5월 투쟁’과 시위 현장에서 으레 등장했다. 태국·말레시아·대만 등 동남아 곳곳의 민주화 운동에서도 불리면서 세계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로 여겨졌다. 보수정권 시절 5·18 기념일마다 참석자 제창 여부를 놓고 숱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문화마당] 클래식 대중화의 진정한 의미/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문화마당] 클래식 대중화의 진정한 의미/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여러 문화생활 중 유독 클래식 음악에 대중화라는 슬로건을 많이 사용한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면 두 단어의 뜻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클래식은 한마디로 고전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범위로는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주의 시대 음악을 가리킬 수도 있고, 넓게 보면 서양음악 역사를 통틀어 클래식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는 느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청중 입장에서는 어렵다며 부담스러워하고, 연주자 입장에서는 청중이 지루해한다고 부담스러워한다. 시작부터 미안한 관계 형성이다. 비교 대상이 대중음악이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에 비해 길고, 진지하고, 가사가 없고, 있어도 외국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시대의 고전을 동시대의 풍류와 비교하는 오류를 쉽게 저지른다. 누가 ‘용비어천가’를 즐겁게 술술 읽고, 괴테의 산문을 가볍게 읽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원어로 읽어야 한다면 더더욱 힘들 것이다. 고전음악도 마찬가지다. 다른 시대에 다른 국가에서 다른 어법으로 쓰인 음악이다. 그 음악들이 후세에 남겨져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깊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전미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전소설에 정통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고전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낭독자와 해석가, 번역가, 편집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들려주어야 그 유산을 누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가 예술가라 불리기보단 고전음악 연주가, 연구자, 해석자 등으로 불리는 편이 맘이 편하다. 이와 같은 순수한 의미의 전달자가 아닌 공연예술가, 즉 엔터테이너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너무 커질 경우 대중화의 기로에 서기 시작한다. 대중화란 상품이나 생활양식이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지고 보급되는 현상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그 전제에 깔려 있어야 한다. 가장 완벽한 대중화 대상에는 과거에는 TV, 인터넷이 있었고, 미래에는 전기차나 로봇 등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선택된 소수만이 가졌었던 것을 많은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게 됐을 때 우리는 대중화됐다고 한다. 나는 사실 클래식 음악은 대중화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고 생각한다. 더이상 베토벤, 모차르트라는 이름이 생소하지 않고, 원하는 음악을 언제든지 인터넷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이미 대중화를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이자 문화 유산이다. 더 대중화되길 원한다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이 괴테의 시를 즐기고 파우스트를 읽기를 바라는 무모한 꿈과 다를 바 없다. 존재 자체를 몰라서 관심을 못 갖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워서 관심을 안 갖는 것이니 세일즈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 양질의 해석과 연주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괴테의 원서를 깊이 연구하고 해석하는 전문가가 필요한 동시에 만화나 그림책 혹은 연극으로 꾸며 비교적 쉬운 방향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 또한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구난방의 크로스오버 같은 가벼운 시도로 시장을 개척하고, 상품을 팔려는 경우는 문화유산 훼손과 다를 바 없다. 창의력을 발휘할 진정한 예술가라면 본인의 작품을 창작하고 맘껏 펼치길 바란다. 이 세상을 떠나 저작권 보호 기간이 지난 작곡가들의 경우 우리의 양심에 물어볼 수밖에 없다. 연주자 입장에서건 청자 입장에서건 언제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베토벤이 하늘에서 흡족해하며 미소를 지어 줄까? 혹여 베토벤이 무덤에서 뛰쳐나오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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