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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 앗아간 건 메르스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회피였다”

    “남편 앗아간 건 메르스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회피였다”

    “엄마, 아빠 이야기가 왜 책에 나왔어?” “아빠가 훌륭한 사람이라서 그래.” 지난해 11월 일곱 살 아들은 납골당에 잠들어 있는 아빠 곁에 두꺼운 소설책 한 권을 가져다 놓았다. 아들은 네 살 때 떠나간 아빠가 ‘하늘나라’라는 곳으로 갔다는 걸 어렴풋이 안다. 하지만 왜 아빠를 만나러 갈 수 없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김석주’.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종식’과 동시에 세상에서 지워져버린 아빠는 새 이름으로 다시 세상에 호명됐다. 김탁환 작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소설 ‘살아야겠다’(북스피어)를 통해서다. 메르스라는 병마와, 정부의 무능과 싸우다 쓰러져 간 이들을 기리는 소설에서 ‘김석주’의 이야기는 감히 헤아리기조차 힘든 무게감으로 읽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172일 동안 격리된 채 사투를 벌이다 눈을 감은 마지막 사망자. ‘메르스 80번 환자’라 불렸던 그의 진짜 이름은 ‘김병훈’(사망 당시 35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의 감염자와 유족들은 다른 여느 재난 피해자와는 달리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숨어버렸다. 구멍 난 방역체계의 피해자임에도 ‘바이러스 덩어리’라는 낙인이 찍힌 탓이다. 김씨의 아내 배윤희(40)씨는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유족이다. “망망대해에 돌멩이라도 던지는 심정으로”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 응했고, 메르스 피해자와 유족을 수소문하던 김탁환 작가의 손을 잡았다. 소설이 출간된 뒤 반향이랄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죽고 없어져도 이 이야기를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제 남편은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가해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아파서,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을 찾았을 뿐인데….” 배씨는 메르스 감염자들이 ‘전파자’로 매도당했던 기억에 가슴을 쳤다. 김씨가 폐렴 증상으로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던 2015년 5월 27일. 응급실에 머무르던 사흘 동안 ‘메르스 슈퍼 전파자’라 불렸던 ‘14번 환자’도 같은 곳에 있었다. 14번 환자는 국내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됐지만, ‘2m, 1시간’이라는 지침상의 밀접접촉자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격리되지 않았다. 배씨는 14번 환자를 탓하지 않았다. “‘슈퍼 전파자’라 손가락질을 받으셨어요. 그분이 받았을 상처가 어느 정도였을지….”김씨는 6월 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배씨는 “폐렴 증상이 계속돼 병원에 메르스 검사를 요청했지만 1주일이 지나서야 검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씨에게는 1년 전 완치됐던 림프종까지도 다시 찾아왔다. 삼성서울병원에 1인실에서 메르스 대증(對症)치료를 받다 7월 3일 서울대병원 음압병실로 옮겨진 뒤 림프종마저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메르스가 악화되고, 당장 메르스부터 잡으려니 항암 치료가 미뤄지는 상황이었다. 김씨의 투병 과정은 172일이라는 ‘세계 최장 투병기간’뿐 아니라 양성과 음성을 여러 차례 오갔다는 점에서 특수한 사례였다. 질병관리본부는 10월 1일 김씨가 PCR(환자의 침이나 가래 등에서 극소량의 유전자를 검출, 증폭시켜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방법) 검사에서 ‘24시간 간격으로 2회 연속 음성’이 나와 최종 음성으로 판정돼 퇴원했다고 밝혔다. 배씨는 “8월에 이미 2회 연속 음성이 나와 격리해제가 이뤄졌어야 했지만 정부와 병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사이 다시 양성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질본과 서울대병원으로부터 더이상 PCR 검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9일 만에 고열로 걷기 힘든 상태가 돼 삼성서울병원을 다시 찾았고, 삼성서울병원의 PCR 검사에서 다시 양성이 나와 서울대병원 음압병실에 격리됐다. 김씨가 퇴원 뒤 다시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 질본은 “감염 또는 재발이 아닌, 환자 체내에 잠복해 있던 극소량의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감염력은 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림프종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사실상 죽은 바이러스 조각이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김씨가 10월 초 퇴원해 집에 머무르는 동안 배씨와 아들을 포함해 김씨와 접촉했던 사람들 129명 어느 누구에게서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은 모호했다. ‘24시간 간격으로 2회 연속 음성’이라는 기준을 여러 차례 충족했는 데도 정부는 김씨에 대한 격리를 해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김씨가 음압병실 안에서 메르스 치료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에 대해 질본은 11월 16일 해명자료를 통해 “10월 초 음성 판정을 받았을 때와 동일하게 감염력은 여전히 낮다”면서도 “양성과 음성을 반복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환자에 대한 감염관리 철저를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질본이 근거로 든 한국·WHO 간 메르스 상황점검회의(10월 26일 개최)에서 WHO는 김씨에 대해 “감염력이 현저히 낮다(extremely low)”고 해석하며 메르스의 “전파 가능성 해소(the end of transmission)”라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질본 10월 29일 보도자료). 정부 스스로 앞뒤 안 맞는 해명을 내놓은 셈이다.배씨는 “남편은 음압병실에 있다는 이유로 림프종 치료를 제한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질본은 당시 “받아야 할 항암치료를 못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배씨는 “검사실로 이동해 받아야 하는 MRI와 CT 검사,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유전자 검사, 백혈구 수혈을 위해 주사를 꽂는 일 등을 가족들이 항의하고 언론에 제보해서야 이뤄진 적이 많았다”면서 “병원은 환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에 하나 남아 있을지 모를 감염력이라도 차단하는 게 정부의 역할일 것이라고 배씨는 믿었다. 다만 림프종 치료가 한시라도 급했기에 언제 격리가 해제될지에 대한 확답이 절실했다. 배씨는 정부에 “남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격리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은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고 했고, 질본은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배씨가 계속해서 항의 메시지를 보냈던 질본의 한 관계자는 배씨의 전화번호를 수신 차단했다. 골수이식에 희망을 걸었던 김씨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됐다. 급기야 병원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제안해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배씨가 격리 해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던 11월 25일 새벽 3시 6분 김씨는 결국 눈을 감았다. 사인은 메르스가 아닌 악성 림프종이었다. 김씨는 족쇄 같았던 소변줄과 콧줄을 치렁치렁 단 채로 관에 담겼다. 차가운 비닐팩이 김씨의 몸을 이중으로 감쌌다. 관에 탕탕 못을 박는 소리가 마치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내딛지 말라”는 마지막 경고처럼 배씨의 가슴에 박혔다. 관이 음압병실을 나와 화장터로 향하는 길에 노란 줄이 쳐졌다. “몇 미터 밖으로 떨어지라”며 밀치는 통에 배씨는 남편의 관을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했다. “이게 남편과의 이별 방식이어야 했을까요. 병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나요.” 배씨가 서울대병원의 차가운 바닥 위에서 절규하던 그날 아침, 포털사이트는 “메르스 제로” “메르스 종식” 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뒤덮였다. 배씨는 보건복지부와 질본으로부터 위로의 전화나 문자메시지 한 통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공중 보건과 환자 개인 사이에서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이었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겁니다.” 감염력이 사실상 0%였고 더이상 메르스 치료를 받지도 않는 김씨를 계속 음압병실에 가둬놓았던 건 정부와 병원의 책임 회피가 아니었냐고 배씨는 되묻고 있다. 배씨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도움으로 정부와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의 생명을 앗아간 게 메르스가 아닌 정부와 병원의 무능과 무책임이 아니었는지를 따져 물으려 한다. 소송은 아직 1심도 열리지 않았다. 소송의 첫 단추인 의료감정을 해줄 기관을 찾는 데서부터 난관이었다.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남편의 죽음에 애도가 아닌 안도를 한 세상과도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배씨는 말했다.정부로부터 사과를 받는 게 끝이 아니다. 배씨는 ‘감염병 환자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도 낼 생각이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바깥 공기 한 번 쐬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던 남편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다. “남편이 음압병실에 갇혀있는 동안 그리워한 건 특별한 게 아니었습니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소음,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싶어했어요.” 김씨는 음압병실에 갇혀 있는 동안 아들의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다. 24시간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침대 위에 누운 채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극심한 우울증이 김씨의 몸과 마음을 파고드는 동안 어느 누구도 살펴보지 않았다고 배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소변줄과 콧줄을 빼내주지 못한 게 가슴에 사무친다”는 배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환자의 인권에 대한 고민을 박사논문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비행기를 타고, 로켓을 타고 아빠를 만나러 가겠다던 아들은 이제 떨어진 속눈썹을 후 불며 소원을 빈다. “아빠를 돌려달라고 빌었는데 이뤄지지 않아… 엄마, 다음엔 우리 같이 소원 빌자.”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언젠가 장편소설 한 권을 읽을 나이가 될 때까지 배씨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남편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잊혀지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제일 두렵습니다. 불씨가 꺼지지 않게 계속 목소리를 낼 겁니다. 이렇게라도 사랑했던 남편을 추모하려고 합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방구석1열’ 박찬욱 감독, ‘리틀 드러머 걸’ 국내 최초 공개

    ‘방구석1열’ 박찬욱 감독, ‘리틀 드러머 걸’ 국내 최초 공개

    박찬욱 감독의 여성서사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된다. 지난 달 28일 한국 영화의 자존심 박찬욱 감독이 JTBC ‘방구석1열’의 녹화에 참여했다. 이날 녹화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내러티브와 미장센을 담당하는 정서경 작가와 류성희 미술 감독이 출연했으며, 임필성 감독과 주성철 편집장이 함께했다. 이날 녹화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여성서사 중 첫 번째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2005)’와 여성서사 중 가장 최근작인 ‘리틀 드러머 걸(2018)’이 명작 매치를 펼쳤다. ‘친절한 금자씨’는 속죄와 복수를 꿈꾸는 ‘금자’ 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2005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2006 방콕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리틀 드러머 걸’은 지난해 영국 BBC와 미국 AMC를 통해 방영된 박찬욱 감독의 첫 드라마로 ‘존 르 카레’의 1983년 소설을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3월에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될 ‘리틀 드러머 걸(2018)’의 감독판을 ‘방구석1열’을 통해 공개했으며 장면에 담긴 숨겨진 뒷이야기까지 속속들이 밝혔다. 뿐만 아니라 ‘박쥐(2009)’와 ‘스토커(2013)’ 등 박찬욱 감독의 작품의 주류를 이루는 여성서사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이날 박찬욱 감독은 “그동안 동고동락한 가족과 같은 동료들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에서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으며, ‘방구석1열’의 연출을 맡은 김미연PD는 “지난 번 특집 때와는 달리 직접 박찬욱 감독을 모시고 그의 영화세계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매우 뜻 깊은 자리였다”고 전했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JTBC ‘방구석1열’은 오는 3월 15일 금요일 저녁 6시 3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길섶에서] 고통과 구원/이두걸 논설위원

    20년 전, 학부 샤머니즘 수업 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만신 김금화 선생이 강의실을 찾았다. 오랫동안 수행 생활을 한 종교인들의 공통점은 형형하면서도 평안한 눈빛이다. 김 선생이 딱 거기에 들어맞았다. 강연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속인은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이들의 고통을 떠안는 자들”이라는 고백이 생생하다. 무속에 대해 어렴풋이 가졌던 빗장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목도한 서구 그리스도교는 갈 길을 잃는다. 홀로코스트가 저질러지는 순간에도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극단의 역설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함께 눈물 흘리는 그리스도’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자전소설 ‘나이트’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10대 소년이 교수대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절규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그때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소년과 함께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영화 ‘사바하’를 보며 가슴이 저미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등장인물들은, 고통의 무게만큼 구원을 갈구했다. 우리의 모습이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자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헤겔, 법철학 비판)이라는 마르크스의 경구를 떠올렸다. douzirl@seoul.co.kr
  • [황제의 옥새1]일제 맞서 조선 구하려는 두 명의 서양인

    [황제의 옥새1]일제 맞서 조선 구하려는 두 명의 서양인

    올해는 3·1운동 발발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서울신문은 100주년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인을 위해 기꺼이 모험에 나서는 내용입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다음은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난 뒤 ‘조선의 형제’를 자처하며 한반도 침탈에 나선 일본이 벌인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또 수백년 간 조선의 왕들이 비밀리에 간직해 온 유물이자 종종 왕국에서 위대한 일을 해 낸 옥새에 대한 비화이기도 하다. <제1장> 헝클어진 곱슬머리 중년 여인 한때 명쾌하고 정곡을 찌르는 지혜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얼간이가 된 나(이 소설의 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미국인 빌리)는 하등 관계도 없는 작은 나라가 위험에 처하자 조상의 지혜가 담긴 격언에 도전장을 던졌다. 바로 “불에 데인 개는 불을 무서워한다”라는 말을 거스르기로 한 것이다. 이 말은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거나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처럼 수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개도 개 나름이고 불도 불 나름이니까. 내가 아는 ‘해피’(Happy)라는 이름의 개가 있다. 전에 자동차에 치어 눈과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그런데 휘발유로 움직이는 마차가 또 한 번 해피에게 달려간다고 하자. 과연 그 녀석은 괴물을 보고 저 멀리 도망깔까. 아니다. 남은 3개의 다리와 한 쪽 눈으로 다시 한 번 그놈과 맞부딪히려고 할 거다.나와 베델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우리는 러일전쟁이 끝난 뒤부터 ‘조선의 형제’를 자처한 일본이 대한제국에 지른 불에 심하게 데였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불 속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또 한 번 크게 다칠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우둔하지만 행복하고(happy) 유쾌한 개니까. 그 불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번역자주: 소설 속 화자인 빌리가 ‘불에 심하게 데였다’고 말하는 것은 이 소설의 전편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서 두 주인공 베델과 빌리가 조선의 황제를 중국으로 망명시켜 을사늑약 체결을 막으려다가 실패한 것을 뜻합니다.)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선조들의 지혜를 거스르는 건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우리처럼 바보같고 혈기왕성한 청년들만 이런 짓을 한다. 나는 집(뉴욕 브루클린 소재 고급 아파트) 근처 작은 도서관에서 저 아래 아파트에 사는 여자가 축음기로 ‘겨자가 너무 많아요’(20세기 초 발매된 미국 재즈음악)를 듣고 있을지 가늠해보고 있었다. 이곳은 너무도 평화롭고 무료했다. 문득 내 오랜 친구 베델이 슬픔에 잠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조선)에서 다시 한 번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려고 마음먹은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이제 다시 한 번 그를 도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는 친구니까.흔히 보험업자들은 증서 뒷면에 “신의 행위나 화재, 홍수, 공공의 적의 도발” 등에는 지불 의무가 없다는 면책 조항을 적곤 한다. 과연 이들은 일본에게 점령당한 조선 땅으로 다시 들어가 분란을 일으키려는 우리를 받아줄까.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 없겠지. 몇 년 전 우리는 조선의 황제(고종)를 중국 상하이로 모셔가려고 했다. 나와 소녀(전편에 등장하는 러시아 스파이), 베델은 황제와 함께 서울 성벽을 넘어 자유를 향해 달아나다가 앞에서 소개한 격언이 말해 주던 일(고종이 일본에 지레 겁을 먹고 조선 탈출 직전 망명을 포기)을 실제로 겪었다. 우리가 기획한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 갔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모험이었다. 일부 아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최근 이 이야기를 잡지에 발표했다. (번역자주: 이 소설의 전편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1912년 12월 미국의 ‘포퓰러 매거진’에 실렸습니다.) 베델은 조선에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발간하며 일본을 지독하고도 신랄하게 비난했다. 일본은 늘 그를 감시했다. 영국 대사관을 압박해 징역 1년형을 선고받게도 했다. 그는 중국 상하이에서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석방되자마자 서울로 돌아와 신문 되살리기에 열을 올렸다. 끝없이 비틀거리던 제국의 주인(고종)이 한반도를 빠져 나가 전 세계를 상대로 일본을 비난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번역자주: 실제로 베델은 1907~1908년 영국 대사관에서 두 차례 재판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재판에서는 6개월 근신형을, 두 번째 재판에서는 3주간 금고형 뒤 6개월 근신형에 처해졌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영국인 구금시설이 없어 베델은 두 번째 재판 뒤 중국 상하이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황제의 옥새’는 2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비틀스의 관계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비틀스의 관계는?

    “저는 열서너 살 때부터 재즈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음악은 제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코드나 멜로디나 리듬, 그리고 블루스 감각 같은 것들이 제가 소설을 쓸 때 매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사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 음악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다 보면 어김없이 일련의 노래들이 등장한다. 비틀즈와 엘비스 프레슬리, 도어스 같은 몇 십년 전 팝 음악과 함께 최근작인 ‘기사단장 이야기’에서는 클래식 넘버들이 줄줄이 소환된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은, 중간 중간 멈추고 그 노래를 배경 삼아 다시 읽는 재미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내친구의서재)은 하루키의 소설을 장식하는 음악 100곡을 록, 팝, 클래식, 재즈 등 장르별로 정리, 다섯 명의 평론가가 장르별로 스무 곡씩 엄선해 리뷰한 책이다. 책보다는 음악이 먼저여서, 주요 음악들을 쭉 언급해놓고 그 음악이 나오는 소설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정리해놨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곡은 비틀스의 ‘Norwegian Wood’다. 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 혹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동명의 하루키 소설로 유명하다. 그러나 실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주인공인 ‘나’가 원곡을 듣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단다. 소설의 서두, ‘나’가 탄 비행기가 착륙 한 후 배경음악으로 교향곡 버전 ‘Norwegian Wood’가 흘러나오고, ‘나’의 연인인 나오코의 정신병원 룸메이트인 레이코씨가 ‘Norwegian Wood’를 기타로 연주한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집을 찾아온 레이코씨가 나오코의 넘버들을 하나하나 연주하는 장면에서다. 곡의 가사와 소설 내용과의 관련성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것도 하루키를 읽는 또 다른 독법이다. 이 외에도 하루키가 듀란듀란이나 아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를 소비하는 방식, ‘하루키가 음악을 대충 사용해도 깊이 파고드는 독자가 늘어 반대로 그런 점을 이용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평 등이 재미난 책이다. 하루키를 좀 아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상처를 치유하려는 몸짓, 그 몸의 언어

    상처를 치유하려는 몸짓, 그 몸의 언어

    몸이라는 것이 내 정신을 담고 있는 살 덩어리 이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가령 매운 닭발을 먹으며 느낀 물리적 쓰라림이 연인과의 이별 후 느낀 심적 고통과 닮아 있음을 느낄 때 매운맛은 괜히 통각이 아니었던 거다.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의 나, 나의 물성을 마주 하는 지점이다. 책 ‘사나사나’는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등단한 후 2014년에는 ‘문학나무’ 신인작품상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소설가로도 활동을 시작한 주지영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껍데기 소설만 읽다가 정말 오랜만에 몸 소설을 만났습니다”라는 표제작 ‘사나사나’ 속 철학자 ‘권’의 말은 실상 작가에게 하는 말 같다. 주지영의 소설은 몸으로 행하고 몸으로 느끼며 몸으로 대답하는, 필설 그대로의 ‘몸 소설’이다. 가령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몸에 관한 언술로 치환된다. 소설 속 화자들은 ‘옅은 겨울 햇살 아래로 걸어가는 권의 뒷모습을 보는 게 유선이 말라 버린 빈 젖을 보는 듯 안타까워’(‘사나사나’)하고, ‘갖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을 찢어발기는 통증’(‘인간의 구역’)을 느낀다. 장면·심리 묘사는 거의가 몸에서 기원한 한편으로, 그들이 느끼는 심적 고통은 곧바로 육체로 침투해 온다. 보통은 남성으로부터 오는 이러한 폭력들에 화자인 여성들은 가만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교수가 되고자 하는 속물적 바람을 이루고 나를 떠나려는 권을 향해 막걸리를 쏟아붓고(‘사나사나’), 남편과 바람난 인터넷 방송 BJ를 향해서는 공개 채팅방에서 사자후를 토해낸다.(‘맞바람’) ‘물 흐르듯 살자’는 입말과 달리 몸의 논리를 어기는 이들에게는 몸에서 우러난 복수를 하는 그들이다. “생살에 난 상처를 치유하려는 그 몸짓이 나에게 있었던가. 언제쯤이면 나는 그 옹이의 언어로 소설을 쓸 수 있게 될 것인가.”(‘사나사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속물 ‘권’에게서 매번 상처받던 ‘나’는 나무를 쥔 정직한 ‘함’의 손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그 옹이의 언어를 내 몸의 옹이로 읽어 내야 하는 소설이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법, 미술을 품다(김영철 지음, 뮤진트리 펴냄) 검사를 시작으로 35년 동안 변호사, 사법연수원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교단에서의 ‘미술법’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술과 법의 관계를 탐구했다. 법이 인정한 미술의 범위, 담벼락 낙서의 예술 여부 등 미술계 종사자들이 일선에서 부딪치는 법적 문제들과 상식들을 정리했다. 324쪽. 2만원.종전의 설계자들(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메디치 펴냄) 원폭 투하와 소련의 참전, 무엇이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소였을까?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인 저자가 미국과 소련, 일본의 방대한 문서저장고에서 태평양전쟁 종결의 배후를 캐내 일본의 항복 과정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웠다. 720쪽. 3만 3000원.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펴냄) 세계적인 신경 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인 저자가 말하는 잠의 이모저모. 충분한 수면은 강화된 기억력과 높은 창의력을 얻게 해 주고, 심지어 몸매를 더 날씬하게 유지시키는 한편 식욕도 줄여 주는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효능을 가진다. 512쪽. 2만원.메이드 인 강남(주원규 지음, 네오픽션 펴냄) 강남 초고층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발견된 시체 열 구. 이 참혹한 살인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찾은 국내 1위 로펌의 김민규 변호사는 상위 0.1% ‘로열패밀리’들과 연관된 사건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는 ‘설계사’다. 욕망과 천민자본주의로 점철된 강남의 모습을 화려하지만 어두운 색채로 그린 장편소설. 192쪽. 1만 3000원.엘리트 제국의 몰락(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북라이프 펴냄) 정치·경제·사법·언론 등 각 분야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사회 불평등을 조장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지, 이러한 행태가 어떤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지를 다룬 저작. 30여년간 세계의 엘리트주의를 연구해 온 저자는 국가 간 비교를 통해 가진 자들의 권력과 경제적 유산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알고리즘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376쪽. 1만 6800원.나의 살인자에게 JUDAS(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지음, 김지원 옮김, 다산책방 펴냄) 1983년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맥주회사 하이네켄 회장 납치사건. 주범인 빌럼 홀레이더르는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셀러브리티 범죄자’가 됐다. 감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를 상대로 “오빠는 연쇄 살인범”이라며 법정 증언에 나섰던 여동생의 회고록. 536쪽. 1만 7000원.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실험실서 편집된 유전자로 테러한다면…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실험실서 편집된 유전자로 테러한다면…

    ‘설계작물’이 보편화된 근미래 사회, 도쿄에 살고 있는 진매퍼(유전자 디자이너) 하야시다는 어느 날 새벽 충격적인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자신이 디자인을 맡았던 슈퍼 벼가 유전자붕괴를 일으킨 것으로 의심된다는 이야기다. 하야시다는 200GB가 넘는 용량의 DNA 데이터를 전달받아 코드를 분석하고, 설계작물들이 재배되고 있는 농장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설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 유전자 테러를 감행한 것일까? 후지이 다이요의 ‘진매퍼’는 지금 이 시점에 특히 읽기 좋은 과학소설이다. 오늘의 과학 뉴스를 그대로 떼어 와 이야기 곳곳에 녹인 것처럼 가깝고 생생한 근미래를 그린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유전자 변형 작물(GMO)은 여전히 우려의 대상일지언정 이미 익숙한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생명공학은 이제 정밀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새로운 생물들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다. ‘진매퍼’는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이 마침내 한 생물의 유전자 전체를 설계하는 수준에 다다른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스펜스로, 발전된 기술에 대한 낙관과 우려를 동시에 담아 냈다. ‘진매퍼’의 미래사회는 유전공학뿐만 아니라 섬세하게 구현된 증강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 위에 덧대어진 또 다른 현실을 체험하기 위해 몸에 피드백 칩을 이식하며, 회사에 직접 출근하는 대신 ‘워크스페이스’와 같은 가상 세계에서 활동을 수행한다. ‘진매퍼’는 작중 거의 모든 시점에서 증강현실의 필터를 통해 바라보는 세계를 서술하는데, 이 서술 방식이 마치 게임을 플레이하는 느낌이 들도록 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편으로 작중에서의 증강현실 기술은 아직 불완전하므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가까운 미래에 증강현실이 상용화된다면 정말로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풍부한 디테일이 흥미롭다. 후지이 다이요는 ‘진매퍼’의 초고를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썼고 일본 아마존 킨들 플랫폼에서 처음 발행했다. 인기를 얻은 이후에 종이책 원고로 다시 쓰였지만, 웹소설에 익숙한 독자층에도 널리 읽힌 만큼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두드러진다. 먼 미래의 우주여행이나 외계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면, 바로 손에 잡힐 듯한 미래를 다룬 이 소설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 근미래 사회를 상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된 해다. 순국선열들의 독립정신과 활약상을 되새길 전국의 역사적 장소들이 후손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독립운동의 흔적이 짙게 배인 7개 지역을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우리 근대사가 기억하는 선조들의 뜨거운 함성과 눈물에 귀 기울여볼 때다.① 서울 독립문… 역사박물관·경희궁 등 일제강점기 흔적 서울에는 도심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등 시대별로 서울의 변화상을 전시한다.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서울과 평양의 3·1운동’도 열린다. 박물관 옆 경희궁은 아픈 역사가 서린 궁궐이다. 인현왕후와 혜경궁홍씨 등이 거주했던 궁은 일제가 집중적으로 파괴한 대상이었다. 경희궁을 나서면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는 경교장이 금방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도심재생예술을 입은 돈의문박물관 마을, 아관파천의 아픔이 서린 정동길 등으로 시간 여행이 이어진다. 3·1운동 열사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행촌동 딜쿠샤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② 서울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위창 오세창 넋 기린 곳 망우리공원은 뜨거운 역사를 품은 야외박물관이다.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호암 문일평, 소파 방정환 등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잠들었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연보비를 읽다 보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난해 9월엔 ‘유관순열사 분묘합장표지비’가 세워졌다. 이곳은 20년 전까지 망우리공동묘지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약 83만 2800㎡(25만여평) 규모로 문 열어 1973년까지 운영됐다. 2만 8500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지만 꾸준히 이장해 현재 7400여기가 남았다. 이장으로 생긴 빈자리에는 나무를 심었고 울창한 생태 공원으로 변신했다. 숲이 우거져 고즈넉한 곳에 5.2㎞ ‘사색의 길’도 조성됐다. 망우리공원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조각가 권진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묘지도 있다.③ 충북 괴산 홍범식 고택… 1919년 1500명의 함성 생생히 독립운동가 홍범식은 대한제국이 1910년 한일병탄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 그는 아들에게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은 소설가 벽초 홍명희는 고향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 홍범식 고택에 들어서면 홍명희가 3·1운동을 준비했다는 사랑채를 만난다. 그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9일 괴산산막이시장 거리에서 1500여명이 목 놓아 만세를 외쳤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ㄷ자형’ 안채는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택을 둘러봤다면 진주성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 괴산호의 절경이 아름다운 연하협구름다리 등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④ 충남 천안 유관순 생가와 7개 전시관 있는 독립기념관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볼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높이 51m ‘겨레의 탑’과 동양 최대 기와집인 ‘겨레의 집’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우리 역사를 시기별로 전시한 7개 전시관은 다양한 문헌자료와 체험시설로 방문객을 맞는다.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리니 미리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주변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캠핑 공간에는 꼬마열차, 어린이방 등 편의시설이 있어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도 손색이 없다.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병천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가 있다. 유관순 열사가 체포돼 옥사할 당시 전소된 가옥과 헛간을 복원했다. 가까운 곳에 그의 영정을 모신 기념관이 있다.⑤ 전남 완도 소안도 항일운동기념관… 항일운동의 성지 완도 본섬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소안도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휘날린다. 함경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릴 만큼 치열한 저항정신을 보여준 땅이다.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10~12회 운항하는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여객선 이름부터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가면 이곳이 어떻게 항일운동 성지가 됐는지 알 수 있다. 당사도등대 습격사건과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을 알게 된다. 인구 6000여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도 소안도가 항일운동의 성지였음을 뒷받침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몽돌해변 등도 소안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다.⑥ 경북 안동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독립지사의 투쟁사 안동은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1894년 갑오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사를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유학이 뿌리 깊은 지역이지만 의병활동이 실패한 뒤 신학문을 받아들인 혁신유림이 생겨났다. 이들은 국권을 빼앗긴 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일제의 고문시설인 벽관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 흥미롭다. 기념관을 나서면 독립운동 성지로 알려진 내앞마을이다.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 생가 등이 있다. 안동의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임청각도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가까운 월영교의 밤경치도 놓치면 아깝다.⑦ 경남 밀양 의열기념관…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도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밀양은 영화 ‘암살’을 통해 재조명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고향으로 항일 독립운동 요람이다. 의열단은 식민지배자와 민족반역자 처단, 조선총독부 등 식민지배기관 파괴에 집중했다.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는 등 모든 투쟁의 배후에 김원봉이 있었다. 김원봉이 태어난 집터에 지난해 의열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단정하고 아담한 건물로 들어가면 영상과 자료들로 그의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일대는 밀양의 만세운동으로부터 태극기 변천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로 꾸며졌다. 이 지역 최초 만세운동이 일어난 밀양 관아지와 보물 147호 밀양 영남루도 독립운동과 연결되는 장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도굴 드라마 인기로 희귀종 천산갑 수난당해

    도굴 드라마 인기로 희귀종 천산갑 수난당해

    중국에서 도굴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악의 기운을 쫓기 위해 천산갑으로 만든 부적을 사는 것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천산갑은 멸종 위기 2등급의 희귀 동물로 불법적으로 사냥하거나 판매하다 적발될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6일 ‘세계 천산갑의 날’을 맞아 발행된 보고서에 따르면 천산갑으로 만든 제품이 도굴을 주제로 한 드라마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천산갑의 발톱은 장식품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발톱 장식품은 ‘귀취등(鬼吹燈)’이란 판타지 소설에서 악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비록 불법이지만 천산갑으로 만든 장식품과 부적, 빗 등은 중국 골동품 시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가격은 2000 위안(약 34만원)에 이른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에서도 늑대나 개의 이빨로 만든 부적이 팔리는데 가격은 개당 10~100위안 정도다. 2007~2016년에는 모두 209건의 천산갑 밀수 사건이 적발된 바 있다. 도굴을 주제로 한 ‘귀취등’과 ‘도묘필기’(盜墓筆記) 등의 소설과 드라마는 2006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터넷 드라마와 영화가 2015년부터 등장하면서 천산갑 부적은 더욱 자주 드라마에 나왔다. 중국에서 부적을 만들기 위해 천산갑을 소비하는 양은 매우 적으며, 대부분의 천산갑은 약의 재료로 쓰인다. ‘도묘필기’는 50년 전 창사의 도굴꾼들이 보물을 찾으려 시도하다 모두 죽음을 맞고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젊은 손자가 할아버지의 노트에서 비밀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할아버지의 노트에 따라 보물을 찾으려 시도하면서 온갖 미스터리와 모험을 겪게 된다는 것이 내용이다. 처음에는 만화로 시작해 이어 소설과 영화로 제작됐으며 9편으로 구성된 소설은 2000만부 이상 팔렸다. 2006년 발매된 소설 ‘귀취등’은 50만 권의 판매고를 올렸다. 중국 공산당은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미신은 철저하게 탄압한다. 관영 신화통신은 공산당원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지지하고 미신을 믿거나 초자연적 풍습을 따르면 안 된다고 27일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미신을 믿는 풍습은 오래된 전통으로 2015년 반부패 처단에 따라 무기징역형을 받은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도 국가 기밀을 점쟁이에게 이야기한 바 있다. 유명한 점쟁이이자 풍수가인 차오융정은 공산당의 실세인 저우와의 인맥을 이용해 다양한 이권 사업에 개입했다가 둘다 반부패의 철퇴를 맞았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에코맘 산골이유식, 한광호 농업상 수상기념 햅쌀나눔 진행

    에코맘 산골이유식, 한광호 농업상 수상기념 햅쌀나눔 진행

    지역 농민과 함께 만드는 친환경 수제 이유식 브랜드 ‘에코맘 산골이유식’의 오천호 대표가 한광호 농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에코맘 산골이유식은 ‘오 산골농부 프로젝트’를 통해, 박경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하동햅쌀 4kg을 단, 1만원에 판매하며 해당 금액을 지역 취약계층에 모두 기부할 계획이다. 또한 당사 홈페이지 회원에 한에, 신규고객 중 산골이유식을 구매한 회원 모두에게 쌀 500g을 무료로 선물한다. 오 대표는 지난 지난 23일,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개최된 ‘제5회 한광호 농업인 시상식’에서 농가와의 상생을 통한 동반성장의 가치를 전파한 공로를 인정 받아 미래농업인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한태원 (재)한광호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200여 명의 농업계 주요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에코맘 산골이유식은 지역 농산물 이용 촉진과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과 농산물의 유통구조 개선, 농가소득 증대 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수상자에 선정됐다. 에코맘 산골이유식은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원료만을 사용해 일일이 수제로 만드는 명품 이유식으로, 까다로운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유식 제품에 대한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실버푸드 상품화에 나서는 한편, 생산량을 5배 이상 높일 수 있는 제2공장 증측을 진행하는 등 사업 확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리산 해발 500m에서 농민들이 수확한 재료를 이용해 바로 만드는 이유식으로 유명한 에코맘 산골이유식은 남북정상회담 만찬에도 올랐던 남해달고기를 비롯해 지리산 솔잎한우, 유기농쌀, 방사유정란 등 친환경 재료로 건강한 제철 이유식을 만들고 있다. 에코맘 산골이유식 오천호 대표는 “에코맘의 산골이유식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하동군에서 자경농장 3만 평을 직접 재배하고 수확하는 지역 농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 농민과 상생하며 함께 성장하는 기업으로 지역 사회는 물론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에코맘 산골이유식은 공식 홈페이지 등 온라인을 비롯해 현대백화점(압구점 본점, 판교점), 롯데백화점(명동본점, 안산점, 인천터미널점), 롯데마트(청량리점, 김포한강점),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 갤러리아백화점 진주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간] 선조들의 ‘비차’ 창의성·우수성

    [신간] 선조들의 ‘비차’ 창의성·우수성

    비차(김동민 지음, 연인M&B 펴냄) 조선 최초, 나아가 세계 최초의 비행기인 비차(飛車·비거)를 제재로 다룬 역사 장편소설(전 2권)이다. 신경준의 ‘여암전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기록된 비차에 착안해 썼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비차는 라이트 형제가 1903년에 띄운 플라이어호보다 311년이나 앞선다. 저자는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비차를 오늘에 재현시켜 소설로 다뤘다. 책은 우리 선조들의 비차 창의성과 우수성을 알림과 동시에 이를 계승·발전시키고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의 미래 비전을 널리 알리고 선포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길섶에서] 그린북/이종락 논설위원

    ‘그린북’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출간된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북이다. 흑인 여행자들이 이용 가능한 숙소와 식당, 주유소 등의 정보가 기록돼 있는 책이다. 여행이나 음식 가이드책인 ‘론리 플래닛’, ‘미슐랭 가이드’, ‘자가트’, ‘트리플 에이 가이드북’ 등은 알고 있었지만 그린북이 있었다는 것은 영화가 상영된 뒤 처음 알았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받은 ‘그린북’은 1962년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을 배경으로 이탈리아계 이민자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18세에 보스턴 팝스 관현악단에서 데뷔해 1955년 발매한 첫 앨범으로 당시 ‘하늘이 내린 천재 음악가’라는 극찬을 받은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그가 2개월간 고용한 토니 발레롱가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돈 셜리가 특히 남부에서 백인이 이용하는 숙소와 식당, 화장실 등을 이용할 수 없던 아픔을 고발한 영화다. 스크린이나 TV, 소설 등으로 미국의 치부인 흑백 차별을 끊임없이 고발하는 미국 문화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념 갈등 등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도 영화로 다뤄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3·1’ 혁명·촛불·메타역사·여성… 구국의 100년 다시 읽다

    ‘3·1’ 혁명·촛불·메타역사·여성… 구국의 100년 다시 읽다

    3·1운동 100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00년간 3·1운동은 숱한 분석의 대상이었으나 최근 들어 학계에서는 민족 대 반민족, 수탈 대 저항 등의 낡은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다각도로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다양한 주체들을 재조명하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을 재구성하는 일 등이다. 출판계에 쏟아지고 있는 다양한 기념 저작들을 4가지 키워드로 알아봤다.●3·1운동인가, 3·1혁명인가 3·1운동에 관한 학계의 첨예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3·1혁명론’이다. 책 ‘3·1혁명과 임시정부’(두레)에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인구의 10분의1 이상이 만세시위에 참여했으며, 군주제를 폐지하고 근대적인 민주공화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3·1운동에 ‘혁명’이라는 ‘정명’을 붙여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학, 문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8인이 머리를 맞댄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창비)에서는 보다 심화된 논의가 이뤄진다. 식민지 조선인들이 정치적인 목표로 내걸었던 대한독립이 3·1운동으로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으로 부를 수 없다는 입장(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조교수)과 ‘3·1운동보다 규모가 작았던 1919년 이집트 독립운동에도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입장(김학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등이 맞부딪친다. 혁명을 새로운 시대에 대한 지향이나 욕망, 유토피아에 대한 해방감, 그걸 표현하는 축제로 봐서 3·1운동이나 촛불에도 모두 ‘혁명’을 붙일 수 있다는 의견(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도 있다. ● ‘촛불’ vs 촛불 100년 역사를 뛰어넘어 오늘날 ‘촛불’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모습도 눈여겨볼 만하다.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에서 이기훈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촛불시위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과 3·1운동의 ‘내가 대표다’라는 선언 사이에 100년의 차이가 있지만 3·1운동은 공화와 주체의 자각이라는 측면에서, 촛불은 그 정치 원리의 구현이자 정점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언론인 손석춘씨가 펴낸 소설 ‘100년 촛불’(다섯수레)은 촛불은 갑자기 출현하지 않았으며, 3·1운동을 기점으로 한 100년의 역사가 만들어 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계약직 노동자로 평범한 삶을 영위해 온 소설 속 화자는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함께 참여한 시아버지로부터 대한민국 역사 속 굵직한 인물·사건들과 얽힌 4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600쪽가량의 두꺼운 책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적 사건들이 촘촘히 담겼다. ●메타역사적 관점에서의 비평적 3·1운동 읽기 한국역사연구회가 3년의 준비 끝에 펴낸 ‘3·1운동 100년’(전5권·휴머니스트)은 메타역사적 관점에 따라 비평적 역사 읽기를 시도했다. 3·1운동의 기억이 남과 북, 한국과 일본이라는 공간에 따라, 그리고 정치적 변동에 따라 그 위상과 해석이 달라지는 역사적 주제임에 주목한 것이다. 3·1운동의 세계사적 의의가 갖는 과장된 측면을 짚어내고,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과 북한, 일본의 3·1운동에 대한 인식 흐름을 살폈다. 정설화되고 있는 ‘고종독살설’에 대한 문제제기와 ‘3·1운동=서울 파고다 공원’이라는 상식을 깨는 북부 지방 도시들의 만세시위 등 3·1운동 사건사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 준다. ‘3·1운동 100년’에서는 당대를 겪은 다양한 주체들의 시선을 담았다. 도쿄 유학 중 혁명을 꿈꾸며 귀국한 청년, 경남 산청 출신의 유림 청년, 서울 한복판에서 3·1운동을 비판한 YMCA 총무 윤치호, 시위 탄압을 진두지휘한 일본군 사령관, 서양인 선교사 등 여러 관점에서 3·1운동을 재구성했다.●소외 됐던 여성에 대한 조명 문학에서는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여성 문학, 페미니즘 문학에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2014년부터 ‘김말봉 전집’을 발간해 왔던 소명출판은 이번에 7, 8권을 내놨다. 기자로 활약했던 김말봉(1901~1961)은 ‘보옥’이라는 필명으로 193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동아일보에 연재한 ‘밀림’, 조선일보에 연재한 ‘찔레꽃’ 등이 히트를 하며 일약 통속소설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이번에 출간된 책에는 김말봉의 단편소설과 미완성 장편, 시, 수필, 칼럼, 기사 등이 수록됐다. 그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쓴다’는 신조를 가진 대중소설가임과 동시에 1940년대 공창폐지위원장으로 여성 인권 신장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신여성, 운명과 선택’(에오스)은 1910~1940년 한국 근대문학에 불꽃을 피운 여성작가 7인의 선집이다. 백신애, 이선희, 나혜석, 강경애, 김명순, 임순득, 지하련 등 해방 이전 사망했거나 해방 이후 월북해 상대적으로 빛을 못 봤던 작가들이 중심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3·1운동 100년]“안중근은 한류스타”

    [3·1운동 100년]“안중근은 한류스타”

    “임정 8년간 이동 행적 깎아내리면 안 돼 독립운동가, 좌익·우익 구분할 필요 없어”“중국의 항일전쟁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의용군은 일반 민중의 사기를 고무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윤봉길, 안중근, 이봉창 등 순국선열에 대한 소설, 시, 연극도 중국에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쑨커즈(孫科志·53) 상하이 푸단대 역사학과 교수는 화둥사범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 지도교수의 부탁으로 우연히 한국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게 됐다. 하지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역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젊은 나이에 이국 땅에서 희생했기에 후손이 없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등 아무런 포상도 받지 못한 조선의용군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알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쑨 교수는 27일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의 항일전쟁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중국의 안중근이 누구냐, 중국의 윤봉길은 누구냐’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은 중국 젊은이들이 항일투쟁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1928년 상하이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을 줄거리로 한 ‘애국혼’이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유감스럽게도 필름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쑨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임시정부가 1919년 상하이에서 세워진 이후 1932년 항저우 등을 거쳐 1940년 충칭으로 옮겨 갈 때까지 8년간 여러 도시를 이동한 역사를 ‘임시정부 간판만 들고 도망 다닌 기간’이라고 깎아내리는 시각에 대해 분개했다. 쑨 교수는 “임시정부의 이동 기간은 일제의 체포를 피하고 앞으로 해방된다면 어떤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를 모색한 시기였다”며 “1944년 임시정부가 건국령을 반포했는데, 이동 기간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건국 계획을 제정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쑨 교수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한국인들이 여러 가지 사상을 가질 수 있었지만 좌익이냐 우익이냐의 이데올로기로 그분들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며 “특히 조선의용군은 중국의 항일전쟁뿐 아니라 세계 파시스트 반대 전쟁에 참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를 잊는 것은 배신을 뜻한다’는 레닌의 명언을 인용했다. 이어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일본은 무조건 중국, 한국, 동남아시아에서 벌인 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하이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3·1운동 100년]베이징서 활동 독립운동가 253명 발굴… 유적지 지도로 제작 답사

    [3·1운동 100년]베이징서 활동 독립운동가 253명 발굴… 유적지 지도로 제작 답사

    작년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 조직 손정도 선생 조선어 설교한 충원먼교회 고려기독교청년회 독립운동 근거지로 김산 전기소설 ‘아리랑’ 쓴 스노 부인 집 ‘중안빈관’에 아리랑 한글 안내판 걸기로 홍성림 회장 “우리의 역사 스스로 찾아야”중국에는 여덟 곳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경제 개발에 밀려 독립운동 유적지들이 제대로 조명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한국인들은 지난해 3·1절을 계기로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했다. 아직 회원이 채 1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조직이지만 4년 전부터 이어 온 역사 연구에 대한 열정과 내공만은 상당하다.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리는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뒤 3월 한 달 동안 베이징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따라 밟는 답사를 세 차례 진행할 예정이다. 베이징에서 열리는 독립운동가 루트 답사에는 대구 지역의 항일 역사 연구단체도 참가한다. 지난 2일 진행된 답사에서는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감리교회인 충원먼교회(崇文門堂)를 찾았다. 여기서 1911년 기독교계 독립운동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손정도 선생이 전도사 시절 중국인과 조선인들을 위해 설교를 시작했다. 손 선생이 나라 잃은 조선인을 모아 모국어로 설교한 이래 조선어 설교의 역사는 108년 동안 이어졌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교회는 손 선생뿐 아니라 1920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감리교회 동아시아 대표총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이 회의 이후 고려기독교청년회가 설립돼 베이징 항일독립운동 활동의 근간이 됐다. 올해는 마오쩌둥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수립을 선포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을 통해 공산당을 서방 세계에 알린 에드거 스노 부부의 베이징 거주지에는 기념관이 건립됐다. 스노 부부가 1935~37년 살았던 중안빈관(中安賓館)은 2008년 중국 언론 북경만보에 실린 기사를 토대로 이곳이 스노 부부의 옛 집터란 사실이 밝혀졌고, 2011년에는 호텔 한편에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하지만 스노의 부인인 님 웨일스가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산을 만나 쓴 전기소설 ‘아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는 앞으로 한국어와 중국어로 웨일스와 김산, 그리고 아리랑에 대한 안내판을 만들어 벽에 걸기로 중안빈관 측과 협의했다. 사업회가 그동안 발굴한 베이징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253명에 이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행적지 31곳을 포함해 베이징의 독립운동 유적지는 지도로 제작됐으며 현재도 계속 정보가 새롭게 추가되고 있다. 홍성림(52)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장은 27일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찾지 않으면 누가 돌아보겠는가”라며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왜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주제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나 답사가 개별적인 인물이나 사건 중심으로 이뤄진 것 같다”면서 “역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흐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반전 메시지 그득한 메트로폴서 평화 여는 역사적 만찬 열렸다

    반전 메시지 그득한 메트로폴서 평화 여는 역사적 만찬 열렸다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 호텔이 118년 역사에 굵직한 기록을 하나 더 새겼다.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일환으로 이 호텔에서 ‘약식 단독회담 및 친교 만찬’이 열렸기 때문이다. 메트로폴 호텔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던 1901년 개장한 5성급 호텔이자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다. 총 7층이며 364개의 객실, 수영장, 골프 코스 등 편의시설을 갖췄다. 본관 ‘히스토리컬 윙’과 1992년 증축한 신관 ‘오페라홀’로 이뤄졌다. 메트로폴 호텔은 ‘ㅁ’자 구조로 만들어져 있으며 중앙에는 소규모 야외 수영장과 정원이 있다. 이 수영장 측면에는 베트남전쟁의 상흔인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1964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된 베트남전 당시 실제로 사용된 벙커다. 지난 2011년 호텔 개조 공사 도중 이 벙커가 발견됐다. 유네스코가 2013년 이 벙커를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오랜 역사만큼 방문객의 면면은 화려하다. 대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찰리 채플린은 1936년 폴렛 고더드와 중국 상하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베트남으로 신혼여행을 와 메트로폴 호텔에 묵었다. 영국의 대문호 그레이엄 그린은 1951년 이 호텔에서 ‘조용한 미국인’을 집필했다. 영국 작가 서머싯 몸도 이곳에서 소설 ‘젠틀맨 인 더 팔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여배우 제인 폰다는 1972년 6월 투숙했다. 가수 겸 인권 운동가 존 바에즈는 같은 해 12월 이 호텔을 방문했다가 미군의 대대적인 공습에 휘말렸다. 바에즈는 벙커에서 반전 메시지를 담은 노래 ‘내 아들, 넌 지금 어디에 있니?’(Where Are You Now, My Son?)를 녹음했다. 이 곡에는 폭격 소리가 담겨 있다.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도 이 호텔에 머물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익숙한 호텔이다. 그는 201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하노이를 방문해 이곳에 묵었다. 한편 28일 확대 정상회담은 오페라 윙 쪽에 자리한 콘퍼런스·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호텔 측에 따르면 이곳에는 회의실 3개가 마련돼 있다. 회의실마다 6명부터 최대 2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메트로폴 호텔은 김 위원장의 숙소 멜리아 호텔에서부터 약 2㎞ 떨어져 있다. 차로 이동하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 JW메리어트 호텔에서는 직선거리로 약 8㎞ 떨어져 있고 차량 이동 시간은 30분 내외다. 하노이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별책부록’ 이나영♥이종석, 밑줄 긋고 싶은 명대사 퍼레이드

    ‘별책부록’ 이나영♥이종석, 밑줄 긋고 싶은 명대사 퍼레이드

    ‘로맨스는 별책부록’이 밑줄 긋고 다시 꺼내 보고 싶은 명대사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tvN 토일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연출 이정효, 극본 정현정, 제작 글앤그림)의 강단이(이나영 분)와 차은호(이종석 분)가 마침내 첫 입맞춤을 나눴다. 차곡차곡 쌓인 두 사람의 감정은 한 곳에서 만나며 걷잡을 수 없는 설렘을 선사했다. 아는 누나와 동생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 강단이와 차은호의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섬세한 감정 변화였던 만큼,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의 본질을 짚는 대사들은 큰 울림을 남겼다. 이에 시의 한 구절처럼, 소설 속 문장처럼 밑줄을 긋고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명대사를 짚어봤다. # “차은호라는 책, 새로운 문장이 보인다” 강단이의 변화를 제대로 짚어낸 명대사 관계 변화의 시작은 차은호였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강단이의 마음 변화였다. 아는 동생에서 남자로 다가서기 시작한 차은호의 진심을 눈치챈 후, 강단이는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설렘이라고 생각했던 지서준(위하준 분) 앞에서도 온 신경은 차은호에게 향했다. 강단이에게 차은호는 오래 지니고 있어도 좋은 책과 같은 존재였다. “언제든 꺼내”보기도 하고 “하도 여러 번 읽어서 문장을 다 외우다시피 하는 책”이었다. 편안하고, 삶의 위기에는 위로를 받고, 돌아보면 그 자리에서 손을 내밀어주는 존재였던 차은호를 향한 혼란은 낯설었다. “자꾸 새로운 문장들이 보인다. 내가 놓친 문장이 얼마나 많은지, 완전히 새로 읽는 것 같다”는 강단이의 고민에 지서준은 “그 책은 달라지지 않았다. 책을 읽는 사람인 단이씨의 마음이 달라졌다”고 뜻밖의 답을 준다. 그 순간 강단이는 차은호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긴 시간을 함께한 차은호를 책에 빗대어 표현한 대사는 ‘로별’만이 선사할 수 있는 차별화된 감동이었다. 오랜 시간 마음이 닿길 기다린 차은호를 향한 그녀의 변화에 설렘을 더한 한 문장이었다. # “계절이 언제 바뀌는지 모르는 것처럼” 강단이 향한 차은호의 사려 깊은 고백 전 여자 친구가 “강단이 사랑하잖아?”라고 물었을 때 차은호는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확인했다. 차은호를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눈치챌 만큼 당연하지만 요란하지 않게, 차은호의 사랑은 그의 삶에 스며들어있었다. 그 사랑을 강단이 앞에 꺼내 놓을 때도 차은호는 담담했다. 언제부터 자신을 좋아했느냐는 강단이의 물음에 차은호는 “누나는 계절이 언제 바뀌는지 알아? 겨울에서 봄이 되는 그 순간이 정확하게 언젠지, 누나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 모른다”고 답한다. 계절의 변화에 빗댄 차은호의 담담한 고백은 어떤 말보다 짙은 설렘을 남겼다. 그는 “좋아해. 그런데 억지로 몰아붙일 생각 없으니까 누나는 지금처럼 하면 된다. 누나 좋아하는 동안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애타는 사랑도 아니고, 인생을 건 사랑도 아니다”라며 애틋한 사랑을 애써 가볍게 고백했다. 고백의 순간조차도 강단이의 마음을 생각하는 차은호의 배려였다. 깊은 마음을 애써 밀어두고 담담하게 표현한 차은호의 사려 깊은 고백은 그의 사랑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사랑한다는 마음조차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돌려 말했던 차은호만이 할 수 있는 서정적인 표현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 “참기가 어려운 날” 강단이와 차은호의 마음이 만난 짜릿한 순간! ‘심쿵’ 명대사 강단이와 차은호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날들이 있었을까. 차은호에게는 술의 힘을 빌려 강단이의 집 앞을 찾아갈 정도로 보고 싶은 날, 강단이의 눈물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함을 느꼈던 날, 사랑을 주체할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쉽게 만나고 헤어질 수 없는 사이”라서 깊은 사랑을 드러내기보다 “강단이의 마음이 내 마음에 걸어올 때까지” 기다렸던 차은호였다. 언제나 시선은 강단이를 향하는 그였기에 강단이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도 차은호였다. 강단이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밀려오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더는 자신의 마음도, 웃음도 숨기기 어려워진 차은호는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다. 참기가 어려운 날.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날”이라며 강단이에게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오랜 역사가 진짜 로맨스 챕터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차은호의 한 마디와 짧은 입맞춤은 차곡차곡 쌓여진 두 사람의 감정선을 걷잡을 수 없는 설렘으로 물들였다. 마침내 강단이와 차은호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만큼, 섬세한 감정을 제대로 짚어내며 명대사를 쏟아낸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또 다른 문장에 기대가 쏠린다. tvN 토일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매주 토,일요일 밤 9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공터의 블루스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공터의 블루스

    비탈을 거의 다 올라가는데 공터에서 팝송을 틀어 놓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이 착실히 깔려서 방심했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아닌 게 아니라 짚어 보니 일곱 시가 채 안 됐을 터였다. 가까이에 노숙인 지원센터 ‘다시서기’가 있어서 드물게 술을 마시는 사람이나 뭔가를 먹는 사람과 마주치고, 드물지 않게 그들의 흔적이 널려 있는 공터다. “원 웨이 티켓! 원 웨이 티켓! 원 웨이 티켓! 원 웨이 티켓! 원 웨이 티켓 투 더 블루스 우우우우~” 십대 아이들인가. 그러기를 바라며 낭패감을 누르고 용기를 내어 공터에 들어섰다. 10미터 남짓 떨어진 공터 끝 나무 아래 거무튀튀한 옷을 입은 늙수그레한 남자들 너덧이 둘러서서 좀은 건들거리며 흥을 내고 있었다. 하긴 팝송에 심취한 십대라니 옛날 고릿적 얘기지. 요즘 애들은 케이팝이나 가요를 들을 텐데. 화단 앞 돌 위에서 작은 카세트라디오가 그 옛날의 팝송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들이 취해 있긴 하지만 선하고 순한 사람들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나는 안심하고 쪼그려 앉아 제설함 뒤의 고양이 밥그릇을 채웠다. 어둠 속의 긴 머리 여인(나)을 의식한 듯한 사람이 목청을 높였다. “내가 옛날에 영어를 썩 잘했는데 말이야. 학원에 다닐 때.” 어떤 이가 노래를 따라 부르고 다들 “원 웨이 티켓!”에 목소리를 보탰다.나보다 좀은 나이가 적은 듯한, 비슷한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 그들이나 나나 이런 미래가 기다리는 길에 들어선 게 어느 시점이었을까. 비탈을 내려오면서 그들 모습을 떠올리니 왠지 ‘오즈의 마법사’ 생각이 났다.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 녹슨 양철 인간…. 나는 도로시가 아니라 저 셋을 합한 것 같은 인간이지. 도로시는 어디 있는가. 내가 본 노숙인은 대개 성정이 양순하다. 거친 사람을 딱 한 번 보았다. 지난해 늦봄 그 공터의 제설함이 치워진 벽 쪽에 쪼그려 앉아 물그릇에 남은 물을 화단 방향으로 끼얹는데 “뭐야!?” 벽력같은 고함이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화단 앞에 몸집 큰 남자가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못 봤어요!” 다행히도 내가 끼얹은 물은 그에게 전혀 미치지 않는 거리에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썩 닦아! 얼른 못 닦아!?” 그는 거기가 흙바닥인지 방바닥인지 분간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귀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려주는 그를 피해 허둥지둥 자리를 뜨면서 매일 와야 하는 장소인데 저 사람이 악감을 품고 있을 테니 큰일 났네 싶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취했다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맞은 것 같다. 그 공터를 처음 본 게 10년 전이다. 그때 내가 다니던 헬스장이 복지회관 건물 4층에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내 눈에 온통 연두색 철망으로 싸여 있는 이층집이 들어왔다. 운동을 끝내고 찾아가 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심상치 않았다. 집이나 가구에 쓰이는 온갖 종류의 문과 창문과 울타리가 빽빽이 집에 둘러져 있었다. 틈틈이 덩굴식물이 가지와 잎을 내밀고 꽃도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분명 사람이 기거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는 대체 어떻게 저길 드나들까. 나 혼자 보기 아까워서 그 며칠 뒤 작가 신경숙과 화가 김점선 선생님을 모셨다. 우리 셋이 두 걸음 너비 골목에서 그 집을 감상하며 건너편 벽에 기대어 있을 때 마침 집주인이 왔다. 김 선생님 또래로 보이는 그는 심상한 모습의 남자였다. 뒤에 듣자 하니 이웃들이 흉물스럽다고 구청에 민원을 넣기도 한 모양이지만 그는 자기 집을 그렇게 장치하는 데 예술가에 방불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잡지에도 소개됐다고 하면서 그 집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며 그가 말했다. “내 뜻을 이을 사람이 있으면 이 집을 물려주고 싶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냉큼 나를 그 앞으로 밀며 “얘 주세요, 얘요!” 하셔서 발칵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 집 바로 위의 그 공터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게 될 줄이야. 근래 존 버거에게 흠뻑 빠져 있다. 어제는 소설 ‘A가 X에게’를 읽으면서 ‘어떻게 이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절감했다. 뭐 이렇게 우아한 저항소설이 다 있나. 아름다움만으로도 가슴이 저릿저릿.
  • “콩밥 먹는다고 눈물겨워 마십시오”… 의연했던 열아홉살 심훈

    “콩밥 먹는다고 눈물겨워 마십시오”… 의연했던 열아홉살 심훈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짓무른 살을 뜯습니다. (중략)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 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소설 ‘상록수’의 저자로 잘 알려진 소설가 심훈(1901~1936)이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을 때 어머니께 쓴 편지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의 일부다. 좁은 감옥에서 목사, 시골 노인, 학생 등과 함께 지낸 것으로 알려진 심훈의 고단한 옥중 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투옥 당시 19살이었던 심훈이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를 위안하는 모습에서는 의젓함과 의연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박열, 박헌영, 윤극영 등과 동문 수학하던 심훈은 3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다. 일제의 수탈에 대한 분노와 조국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울부짖은 그는 3월 5일 덕수궁 앞 해명여관 앞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해 11월까지 옥살이를 한 심훈은 감옥에서 보낸 시간을 토대로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한 방에서 함께 지냈던 장기렴 천도교 서울대교구장의 옥사를 모티브로 1920년 집필한 단편소설 ‘찬미가(讚美歌)에 싸인 원혼’이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에서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듯 칠십을 넘긴 노구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굳은 심지를 가졌던 한 영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35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던 심훈은 출옥 후 작품 활동을 통해 독립에 대한 열망을 꾸준히 노래했다. 1932년 출판하려고 했지만 일제의 검열에 걸려 무산된 ‘심훈시가집’에 수록된 시 ‘그날이 오면’은 그 마음이 극적으로 표출된 작품이다.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한다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와 같은 구절은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 한 청년의 단단한 의지를 대변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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