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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재 추억돋소… 역시 명작이제… 춤바람 났구려

    아재 추억돋소… 역시 명작이제… 춤바람 났구려

    공연계는 설 연휴를 맞아 다채로운 전통·가족 공연은 물론 특별 할인 행사 등 풍성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영화로도 익숙한 명작은 뮤지컬로 재탄생해 연휴 관객 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설날 연휴에 즐기는 흥겨운 민속 공연 국립극장 국립무용단은 2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명절 기획시리즈 ‘설·바람’을 공연한다. ‘설·바람’은 2020년 경자년 ‘흰쥐의 해’를 맞아 새해 행운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낸 풍성한 한국춤 잔치로, 자연과 인문현상을 관장하는 여러 신을 모시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작품 ‘맞이’로 시작한다. 신이 강림해 인간과 함께 어우러지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과정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봉산탈춤의 일곱 번째 마당인 ‘미얄할미’도 관객을 만난다. 미얄할미·영감·소첩 세 인물이 벌이는 다툼을 유쾌하고 해학적인 춤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다. 동래학춤, 부채춤, 사랑가, 장고춤 등 단아한 아름다움과 화려함 모두 맛볼 수 있는 전통 공연이다. 서울남산국악당은 ‘경기소리프로젝트그룹 나비’의 특별한 민요공연 ‘전집’(全集)을 26일 오후 3시와 7시, 2회에 걸쳐 남산 국악당 크라운해태홀 무대에 올린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김미림·이덕용·이미리·이은혜·채수현이 1970~80년대 경기민요를 풍미했던 명창들의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해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경기소리꾼 이희문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2019년 이희문프로젝트 ‘날’의 멤버로 활동한 박범태, 임용주, 한웅원이 참여한다.●눈물샘 자극하는 ‘빅 피쉬’… 연휴엔 40% 할인도 뮤지컬 무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 명작이 팬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팀 버튼 감독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은 ‘빅 피쉬’는 뮤지컬로 각색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원작 소설과 영화처럼 기자인 윌이 죽음을 앞둔 허풍쟁이 아버지 에드워드의 삶을 추적하며 아버지의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렸다. 무대 위에는 환상적인 이야기와 연출이 이어지며, ‘가족’ 이라는 이야기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설 연휴 공연(21~27일)은 40% 할인된 가격으로 관람권을 판매한다.●무대 위 홍콩 영웅들… 강하늘 ‘환상동화’도 주목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영웅본색’은 1980~90년대 명절이면 홍콩 영화에 빠져들었던 추억을 자아낸다. 1980년대 ‘홍콩 누아르’ 장르를 개척한 영화 ‘영웅본색’ 1·2편을 뮤지컬 한 편에 모두 담았다.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권총을 쥔 저우룬파(주윤발)와 ‘당년정’을 부르는 장궈룽(장국영)의 모습을 추억하게 된다.연극 무대에서는 배우 강하늘의 연극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환상동화’를 눈여겨볼 만하다. 사랑광대·전쟁광대·예술광대가 두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그해 겨울은 추웠다네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그해 겨울은 추웠다네

    표독스럽게 추웠다. 박완서는 그의 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에서 수지가 동생 오목이의 손을 놓고 헤어지던 그날의 추위를 이렇게 표현했다. 표독스러울 만치 추웠던 이 소설 속 겨울 그날은 6·25전쟁 1·4 후퇴 때의 어느 날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가 등장하는 유행가 가사에서도 그해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짐작할 수 있다. 추웠던 그해 겨울을 작가는 역설적으로 따뜻했네라고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1월은 기상청 관측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눈 없는 겨울이 기록될 가능성이 예상된다고 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울의 한파 일수는 0일, 적설량은 0㎝를 기록 중이기 때문이라는데 한파일은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도 이하인 날이라고 하니 표독스럽기는커녕 추위의 근처에도 못 가 보는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겨울날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거창한 그래프를 들이대며 지난 수십 년간의 기후변화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올해 겨울의 싱거운 추위는 많은 사람에게 기후변동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뭔가 정상은 아니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가지게 됐다. 지구에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많게는 95%의 생명체가 절멸하는 대멸종 사건이 5번 있었다고 한다. 이 대멸종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지만 급작스러운 기후변동이 원인이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화산이 폭발했건, 운석이 충돌했건 대기와 바닷물의 순환에 이상이 생기면서 기후변동이 생겼고 결국 생명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추워지거나 더워지는 기후 변화의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는 결국 멸종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대멸종이다. 하지만 운석 충돌로 인한 기후변화로 공룡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가장 최근의 대멸종인 백악기 말의 대멸종 사건도 약 6500만년 전의 일이고 보니 마치 신화 속의 전설처럼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환경파괴로 인해 인류에 의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경고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인류가 두 발로 일어서고 석기를 만들면서 한창 진화의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할 무렵부터 인류 생존의 관건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발 빠르게 적응해 나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 적응해 왔던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유난히 따뜻한 이번 겨울 이제는 인간 스스로가 자신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체의 멸종을 재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경고를 실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유리창에 두껍게 낀 성에를 입김으로 불며 손톱글씨를 쓰던 그 쨍한 추억을 소설 속에서나 느낄 수 있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채찍으로 때리는 듯한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표독스러운 겨울 추위를 만나고 싶다.
  •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대단한’ 여성들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대단한’ 여성들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환자 진료하면서 연구와 각종 학회 발표, 교육까지 하시는데 가정까지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말을 나를 비롯한 기혼 여성 의사들은 자주 듣는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겸손해 보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이런 칭찬에 도리어 억하심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기혼 남성 의사에게 ‘가정까지 챙기시느라 정말 힘들겠다,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정을 돌보는 것, 가사와 육아는 그들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기혼 남성 직장인들은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2차 책임자, 즉 부 (副)이다. 정(正), 1차 책임자는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 집 역시 그렇다. 아이들의 학교나 학원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찾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인 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여성도 일단 결혼을 하면 가정에서 정(正)의 위치는 피할 수 없다. 물론 누군가 일차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너무도 당연하게 여성의 일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육아휴직을 하는 여의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사실은 3개월의 출산휴가도 실질적으로 다 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 의사의 대부분은 그나마 결혼을 해도 경력단절 여성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성 의사에 비해 그 경력은 확장된다기 보다는 정체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 의사에게서 시간 활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파트타임 봉직의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은데,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 중 파트타임 근무자의 비율이 여성은23%였던 반면 남성은 4%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배우자가 교수나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쌓고자 하는 남성 의사인 경우 동등한 경력을 쌓는 여성 의사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남성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대신 가정을 지키는 것은 여성의 몫이 된다. 결국 그녀는 보수나 발전 가능성이 적더라도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반 직장인에 비해 더 많이 벌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일이 처음 가졌던 꿈에 맞는 크기일 가능성은 어떨까. 아마도 남성 의사보다는 낮을 것이다. 화제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 부분에는 화자인 정신과 의사의 아내인 안과 의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학창시절 남편보다 뛰어난 우등생이었지만, 결혼 후 교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페이닥터로 일하다가 결국 아이의 정신건강 문제로 일을 접게 된다. 그녀는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것 하나밖에 없거든”이라며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 풀이에 빠져드는 이상증상을 보이는데, 사실 나는 그녀와 비슷한 심정을 느껴 본 적이 있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며 보게 된 초등수학문제집에 나온 도형과 숫자들은 명쾌하고 아름다웠다. 의사,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 해내는 ‘대단한’ 사람이어야 하는 나를 내려놓고 소박한 논리와 추론의 세계에 침잠하고 싶었다. ‘82년생 김지영’은 형식상의 남녀평등이 보장된 사회의 평범하고 선량한 가정에서도 여성의 존엄성과 독립성은 좀처럼 지켜지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여성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의 메시지에 쐐기를 박는다. 여성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워질 길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게 맞다고. 성별격차, 즉 임금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남녀 차이는 여성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의 구조와 인식의 문제이며, 숨쉬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말이다.
  •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대단한’ 여성들

    [김선영의 의(醫)심전심] ‘대단한’ 여성들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환자 진료하면서 연구와 각종 학회 발표, 교육까지 하시는데 가정까지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말을 나를 비롯한 기혼 여성 의사들은 자주 듣는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겸손해 보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이런 칭찬에 도리어 억하심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기혼 남성 의사에게 ‘가정까지 챙기시느라 정말 힘들겠다,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정을 돌보는 것, 가사와 육아는 그들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기혼 남성 직장인들은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2차 책임자, 즉 부 (副)이다. 정(正), 1차 책임자는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 집 역시 그렇다. 아이들의 학교나 학원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빠가 아니라 엄마를 찾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인 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여성도 일단 결혼을 하면 가정에서 정(正)의 위치는 피할 수 없다. 물론 누군가 일차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너무도 당연하게 여성의 일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육아휴직을 하는 여의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사실은 3개월의 출산휴가도 실질적으로 다 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 의사의 대부분은 그나마 결혼을 해도 경력단절 여성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성 의사에 비해 그 경력은 확장된다기 보다는 정체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 의사에게서 시간 활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파트타임 봉직의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은데,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 중 파트타임 근무자의 비율이 여성은23%였던 반면 남성은 4%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배우자가 교수나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쌓고자 하는 남성 의사인 경우 동등한 경력을 쌓는 여성 의사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남성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대신 가정을 지키는 것은 여성의 몫이 된다. 결국 그녀는 보수나 발전 가능성이 적더라도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반 직장인에 비해 더 많이 벌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일이 처음 가졌던 꿈에 맞는 크기일 가능성은 어떨까. 아마도 남성 의사보다는 낮을 것이다.  화제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 부분에는 화자인 정신과 의사의 아내인 안과 의사가 등장한다. 그녀는 학창시절 남편보다 뛰어난 우등생이었지만, 결혼 후 교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페이닥터로 일하다가 결국 아이의 정신건강 문제로 일을 접게 된다. 그녀는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것 하나밖에 없거든”이라며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 풀이에 빠져드는 이상증상을 보이는데, 사실 나는 그녀와 비슷한 심정을 느껴 본 적이 있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며 보게 된 초등수학문제집에 나온 도형과 숫자들은 명쾌하고 아름다웠다. 의사,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 해내는 ‘대단한’ 사람이어야 하는 나를 내려놓고 소박한 논리와 추론의 세계에 침잠하고 싶었다.  ‘82년생 김지영’은 형식상의 남녀평등이 보장된 사회의 평범하고 선량한 가정에서도 여성의 존엄성과 독립성은 좀처럼 지켜지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여성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의 메시지에 쐐기를 박는다. 여성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워질 길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게 맞다고. 성별격차, 즉 임금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남녀 차이는 여성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의 구조와 인식의 문제이며, 숨쉬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말이다.
  • 패권의 차가운 동반자, 따뜻한 감성 메이트로 돌아왔다

    패권의 차가운 동반자, 따뜻한 감성 메이트로 돌아왔다

    ‘극단의 시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진단한 20세기의 모습이다. 세계는 무수한 갈래로 나뉘어 저마다 극한 경쟁을 벌였다. 그 역사를 오롯이 반영하는 소품이 있었으니, 바로 만년필이다. 둔탁하고 육중한 만년필은 패권을 쟁취한 자의 손에서 그들의 의지대로 역사를 기록했다. 그랬던 만년필이 이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더 가볍고 더 컬러풀하게. 만년필 소비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다.●역사의 궤를 같이한 미국의 만년필 현대적인 만년필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명됐다. 1883년 미국의 보험판매원 루이스 워터맨이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고안한 것이 시작이다. 제품이 인기를 끌자 이듬해 특허를 받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글로벌 만년필 브랜드 ‘워터맨’의 탄생이다. 그가 만년필을 개발하게 된 일화가 전해진다. 중요한 계약을 앞둔 워터맨은 실수로 계약서에 잉크를 쏟는다. 정리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경쟁자가 나타나 계약을 가로챈다. 절치부심한 워터맨이 ‘절대로 잉크가 쏟아지지 않을 필기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그 결과가 만년필이라는 것. 물론 이야기의 진위는 확인 불가다. 분명한 것은 ‘발명신화’까지 만들 만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회사를 키운 워터맨이 탁월한 수완을 지닌 사업가라는 점이다. 패권은 서명으로 완성된다. 만년필이 20세기 역사 곳곳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만년필의 발전은 미국이 패권을 확립하는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898년 ‘미서전쟁’은 만년필이 처음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다. 쿠바섬을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이 벌인 전쟁이다. 4개월 만에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양국은 같은 해 12월 파리에서 ‘파리 평화조약’에 서명한다. 스페인이 쿠바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스페인 제국의 몰락과 미국의 부상. 두 가지 의미에서 세계인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위대한 미국’의 서막을 알린 이 사건에서 사용된 필기구는 워터맨의 경쟁사인 미국의 ‘파커’ 만년필이다. 미국산 만년필은 20세기 역사를 통째로 수놓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나고 맺은 ‘포츠머스 조약’에선 워터맨 만년필이 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한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 손에도 워터맨 만년필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파커의 전성시대였다. ‘20세기 최고의 만년필’이라는 찬사를 듣는 ‘파커51’이 가장 유명하다. 회사의 트레이드마크인 화살 모양의 클립과 심플하면서도 날렵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는 창공을 가르는 항공기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고 훗날 미국 대통령까지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애용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서명한 마크 클라크 장군도 파커51을 썼다. 다른 제품도 있었다. ‘인천 상륙작전’의 주인공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보다 중후한 느낌의 ‘파커듀오폴드’를 사용했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 1987년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는 ‘파커75’가 쓰였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잠식하던 시기였다. 중요한 서명은 언제나 미국산 만년필의 차지였다.●표준에 인문을 담다… 독일의 만년필 뼈를 깎는 노력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도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조용히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고 마침내 성공했다. 독일 만년필 회사 ‘몽블랑’ 이야기다. 몽블랑은 후발 주자였다. 미국 회사들이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한 반면 몽블랑은 1900년대 와서야 비로소 회사의 꼴을 갖추고 필기구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술 혁신은 매번 한 발짝씩 늦었다. 미국에 밀려 언제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역전의 순간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독일 만년필에 집중된 순간. 바로 1990년 동·서독의 통일이었다. 서독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는 몽블랑 ‘마이스터스튁149’를 손에 쥐고 통일 조약에 서명했다. ‘마이스터스튁’은 걸작이라는 뜻의 독일어다. 몽블랑이 스스로 걸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1952년 출시한 마이스터스튁149는 당대 모든 만년필 기술의 총합이었다. 후발주자 몽블랑은 앞서가기보다는 ‘제대로’ 완성하기를 목표로 삼았다. 당대의 기술들을 모아 하나의 제품에 집약시켰다. 그렇게 ‘걸작’이 탄생했다.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제품을 조금씩 계속 발전시켰다. 자신들만의 입지를 다졌다. ‘조용한 혁명’의 진가는 훗날 발휘됐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독일 통일을 계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출시된 지 40년 만에 빛을 본 것이다. 고급스러운 검은 광택에 둥그렇고 두툼한 몸체. 마이스터스튁149는 이제 ‘만년필의 표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자신감을 얻은 몽블랑은 만년필의 외연을 확장한다. 만년필에 ‘예술적 감수성’을 덧씌우기로 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작가 에디션’을 선보인 이유다. 기실 만년필은 많은 인문학적 영감의 원천이요 문학의 산실이었다. 몽블랑은 여기서 착안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반드시 만년필을 소유해야 할 이유를 제시한 것이다. 1992년 작가 에디션 첫 번째 주인공은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간결한 문장으로 인물과 세계의 진실을 담은 ‘하드보일드 문체’로도 잘 알려진 그를 몽블랑은 첫 번째 작가로 선택했다. 헤밍웨이가 몽블랑 만년필을 사용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저 자신감의 발로였던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등 다양한 작가들을 콘셉트로 한 한정판 만년필을 내놓으면서 애호가들의 소장 욕구를 들끓게 했다. 에디션이 거듭되면서 작가의 영역도 넓혔다.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 월트 디즈니, 영국의 록 밴드 비틀스,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 등을 주제로 한 만년필이 나오면서 더욱 풍성해졌다.●가벼움에 컬러를 입히다… 여성의 만년필 그동안 만년필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최근 이런 고정관념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만년필의 주요 소비층으로 여성이 새롭게 등장한 것. 캘리그래피 문화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한 2015년을 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변화를 제대로 감지한 회사는 몽블랑의 영원한 맞수인 독일의 ‘펠리컨’이다. 2015년 기존 모델보다 가볍고 흰색과 분홍색을 조화롭게 배치한 ‘소버린 M600 핑크’를 출시해 여심을 사로잡았다. 펠리컨은 지난해에도 여성들을 타깃으로 은은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소버린 M600 퍼플화이트’를 선보였는데 며칠 만에 동이 날 정도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박종진 만년필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만년필 시장의 전망을 이렇게 내다봤다.“만년필은 시대를 반영합니다. 최근 펠리컨의 성공은 만년필 시장의 주도권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가는 전주곡이었죠. 여성들의 소비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천하의 몽블랑조차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기존의 둔탁하고 무겁고 차가운 만년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금속이 덜 들어가서 가볍고 따뜻한 재질의 감촉이 좋은 만년필이 앞으로 유행할 거라고 봅니다. 그것에 발맞춰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브랜드가 결국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전태수 2주기-유니 13주기…우울증이 앗아간 스타들

    전태수 2주기-유니 13주기…우울증이 앗아간 스타들

    배우 전태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됐다. 가수 유니도 13년 전 같은 날짜에 생을 마감했다. 故 전태수는 2년 전인 지난 2018년 1월 21일 34세의 짧은 일기를 마감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전태수는 평소 우울 증세로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다. 복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를 해오던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많은 이가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 전태수는 지난 2007년 투썸 뮤직비디오 ‘잘 지내나요’로 연예계에 데뷔, 하지원의 동생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2007년 OCN ‘키드갱’을 시작으로 SBS ‘사랑하기 좋은 날’ ‘왕과 나’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은 그는 KBS 2TV ‘성균관 스캔들’,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 SBS ‘괜찮아 아빠 딸’, MBN ‘왔어 왔어 제대로 왔어’, JTBC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MBC ‘제왕의 딸 수백향’ 등에 출연했다. 하지원은 동생을 떠난 보낸 뒤 “아름다운 별. 그 별이 한없이 빛을 발하는 세상에 태어나기를. 사랑하는 나의 별. 그 별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세상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별이 되기를. 사랑한다”라는 글로 동생을 추모했다. 한편 이날은 유니의 13주기이기도 하다. 유니는 지난 2007년 1월 21일, 인천광역시 서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25세. 유니는 1996년 KBS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이혜련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해 드라마 ‘TV소설 은아의 뜰’, ‘납량특선 8부작’, ‘용의 눈물’, ‘왕과 비’, 영화 ‘세븐틴’, ‘질주’ 등에 출연했다. 이후 2003년 6월 솔로 가수로 변신해 1집 ‘가’를 발표했고, 2집 ‘콜콜콜’을 내놨다. 2006년 1월에는 일본에서 정식 데뷔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3집 발매를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은 악성 댓글로 인한 우울증으로 전해졌다. 당시 유니의 소속사 측은 “유니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 때문에 유니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밝혔고, 유니 어머니 또한 “일찍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마음도 여리고 내성적인 아이라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 겉으로는 강한 척하다 보니 우울증이 심해졌던 것 같다”며 애통해했다. 우울증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스타들의 비극은 계속 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가수 설리(25)와 구하라(28)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긴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미스터리 제왕의 과학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사이언스?’

    미스터리 제왕의 과학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사이언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작가의 자리에서 10년 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을 낸 일본 미스테리의 제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 출간된 에세이집만 3권인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최근 출간된 에세이집 ‘사이언스?’(현대문학)은 그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잡지 ‘다이아몬드 LOOP’와 ‘책의 여행자’에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이공계 출신 전직 엔지니어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들려주는 생활 밀착형 과학 이야기를 표방한다. 제목에 붙은 물음표처럼 본격 과학 이야기는 아니다. 환경 오염, 기술을 악용하는 지능 범죄의 출현, 저출산 문제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과학적 이슈들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라고 보는 게 맞다. 특히나 히가시고 게이고의 팬이라면 궁금해할 법한 집필 뒷이야기들이 재밌다. 예를 들면 동료 문인들 사이에서 이과 출신 작가로서 느끼는 이질감(‘이공계는 장점인가′), 이른바 ‘커트앤드페이스트’(데이터의 일부를 잘라내어 다른 위치에 붙이는 일’) 방식으로 원고를 썼던 작가가 별 거부감 없이 육필에서 워드프로세서로 갈아탄 일화(‘도구의 변천과 창작 스타일’) 등이다. ‘과학기술은 추리소설을 변화시켰는가′라는 대목에서는 과학기술의 진보로 달라진 추리소설을 조망한다. 그 대표 주자는 바로 휴대전화의 보급이다. 작가는 ‘중요 인물과 아깝게 엇갈리거나 연락할 수 없는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 ‘휴대전화가 등장해 몹시 까다로워졌다’(25쪽)고 말한다. 이같은 전개는 독자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진보가 추리소설을 쓰기 힘든 환경을 만든 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지능 범죄들이 숱하게 탄생한 탓이다. 15~17년 전에 쓰여진 에세이들이라 다루는 소재들이 지금과의 시차가 느껴지는 건 좀 아쉽다. 그러나 세상 만사로 뻗어가는 추리소설 작가의 논리회로, 스키 등 스포츠를 향한 그의 남다른 열정 등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면면을 보는 재미가 있다. 232쪽. 1만 3000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박보검 출연 뮤직비디오 ‘내가 많이 사랑해요’ 화제 ‘훈훈 비주얼’

    박보검 출연 뮤직비디오 ‘내가 많이 사랑해요’ 화제 ‘훈훈 비주얼’

    박보검 뮤직비디오 ‘내가 많이 사랑해요’가 화제다. 박보검은 20일 공개된 카카오페이지 웹툰 ‘달빛조각사’ OST ‘내가 많이 사랑해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가수 이승철이 부른 ‘내가 많이 사랑해요’는 웹툰 ‘달빛조각사’의 주인공 ‘위드’가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차가운 ‘서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모습을 조각하는 스토리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곡. 박보검은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배우 고윤정과 호흡을 맞췄다. 박보검은 훈훈한 비주얼과 열연으로 여심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뮤직비디오 공개 후 실시간 검색어에 박보검 뮤직비디오가 뜰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웹툰 ‘달빛조각사’는 카카오페이지에서 누적 조회수 3억 7천만 건을 기록한 동명의 판타지 웹소설을 원작으로, 위드가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달빛을 조각하는 ‘달빛조각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카카오페이지의 첫 번째 웹툰 OST ‘내가 많이 사랑해요’는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씨줄날줄] 육포/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육포/이동구 수석논설위원

    미국의 단편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은 부부의 사랑과 함께 선물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남편은 아내에게 예쁜 머리핀을 선물하기 위해 소중히 간직해 오던 시계를 팔고, 아내는 남편의 시계에 잘 어울리는 근사한 시곗줄을 선물하기 위해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을 잘라 판다. 가난한 부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렸지만 뜻밖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향한 애틋한 사랑은 독자들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로 기억되고 있다. 선물은 상대방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거나 축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명절이나 기념일 등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행동이다. 국가나 조직, 개인 간의 예를 표하는 의미에서 주고받는 윤활유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선물이 지나치면 뇌물이 되거나 화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꽃 선물은 인류의 공통점이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할 리 없다. 하지만 색깔에 따라 호불호는 달라진다. 흰색의 국화나 백합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물로 사용하지 않는다. 멕시코인들은 장미꽃이라고 해도 노란색은 싫어한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흰색과 함께 파란색, 검은색도 꽃이나 옷, 포장지 등에 사용치 않는다고 한다. 모두가 죽음, 장례식 등을 연상시켜 일상사의 선물로는 부적절하다고 여긴다. 종교·문화적인 차이로 금기시되는 선물은 부지기수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소나 돼지와 관련된 가죽제품 등을 선물하는 것은 결례로 통한다. 남미인이나 일본인에게 칼을 선물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단절, 자살의 의미가 있다며 선물로 주고받기를 금기시한다. 새 사업을 시작한 중국인 친구에게 괘종시계를 선물하면 욕을 먹는다고 한다. 종은 ‘끝내다, 망하다, 죽다’의 의미를 가진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선물은 상대방의 문화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본래의 취지를 크게 곡해할 수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불교계에 전하려던 설 선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육식을 금하는 불교계에 소고기 등을 말린 육포를 선물한 것이 화근이 됐다. 지난 17일 서울 견지동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등에 설 선물로 황 대표 명의로 포장된 육포가 배송된 것. 해명과 함께 육포는 급히 회수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 대표가 지난해 5월 ‘부처님오신날’에 홀로 불교식 예법인 합장을 하지 않아 불교계 홀대 논란 등을 일으킨 적이 있어 이번 소동을 지켜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다. “세심한 주의와 배려라는 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yidonggu@seoul.co.kr
  • 강화길 작가 ‘음복’ 젊은작가상 대상

    강화길 작가 ‘음복’ 젊은작가상 대상

    문학동네는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에 강화길 작가가 선정됐다고 20일 밝혔다. 수상작은 ‘음복’(飮福)이다. 한 해 동안 발표된 등단 10년 이하 작가들의 중단편소설 중 7편을 선정해 시상하는 젊은작가상에는 최은영·김봉곤·이현석·김초엽·장류진·장희원 작가가 함께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4월 열리며, 대상을 비롯한 수상자 7명에게는 상금 각 700만원이 주어진다.
  • [임정욱의 혁신경제] 글로벌 콘텐츠 강국이 될 기회

    [임정욱의 혁신경제] 글로벌 콘텐츠 강국이 될 기회

    CES 2020에 다녀왔다. 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는 전 세계 약 4500개 기업과 17만명이 참관하는 거대한 종합기술전시회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후 중국 기업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가 봤다. 중국의 참가 기업 수는 1300여곳으로 여전히 많다. 하지만 예전처럼 첨단 신기술 제품을 내놓으며 뽐내는 중국 회사의 호기나 위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CES에서의 명맥을 이어 나가기 위해 건성으로 부스를 유지하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화웨이 전시관이 그랬다. 이렇게 중국 기업들의 존재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측면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중국 별거 아니었네”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CES 이후 바로 중국 베이징 출장을 다녀왔다. 중국 최대급의 정보기술(IT)전자기업과 인공지능기업에 방문했다. 방문객을 위한 자사 홍보체험관에서 보여 주는 각종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과 첨단기기들이 CES에서 본 것에 못지않았다. 트럼프 때문에 중국이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을 뿐이지 미국과 중국의 테크 패권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란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 공룡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 중국에서 일하는 한국인과 대화하다가 그 실마리 중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바로 콘텐츠다. 나는 영어, 일본어에 이어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이 하나 있다. 공부에 도움이 되는 재미있는 콘텐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중국어로 된 흡인력 있는 영화나 드라마 등 콘텐츠를 만나기가 어렵다. 영어를 공부할 때는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 등 재미있는 콘텐츠가 널려 있다. 반복해서 보면 저절로 공부가 된다. 미드 ‘프렌즈’를 통해 영어회화를 익혔다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흥미진진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대학 시절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익혔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등 흥미로운 소설콘텐츠도 널려 있다.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힌 분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이런 콘텐츠를 통해 배웠다는 반응이 많다. 그런데 중국어로 된 좋은 콘텐츠는 만나기 어렵다. 나뿐이 아니라 중국어를 공부하는 분들 상당수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중국 영화나 드라마가 있지만, 재미가 없어 계속 보기 어렵다. ‘의천도룡기’ 같은 인기드라마가 있지만, 예전 콘텐츠이고 사극이라 요즘 중국어 표현을 익히기는 어렵다. 요즘 흥행하는 중국 영화도 있지만 계몽성이 강하고 중국 중심이라 중국인이 아닌 경우에 공감하기 어렵다. 왜 이런가 물어보니 워낙 콘텐츠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검열과 제재가 강해서 그렇단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창작물은 더욱 그렇다. 사회 부조리를 비꼬는 통렬한 풍자와 비유, 묘사 등이 있어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당국의 규제를 받다 보면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정적이나 폭력적인 장면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당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내용이 들어가면 검열한다.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수상까지 노리는 영화 ‘기생충’이 중국에서는 지난해 상영이 취소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제재를 받은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회 빈부격차를 다룬 내용이라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는 사극밖에 못 만든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그 사극의 단골소재인 권력투쟁, 치정, 암투도 다루기 쉽지 않다. 반면 우리는 세계인의 감성에 맞는 케이팝, 영화, 드라마 등을 더 많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유튜브를 비롯해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글로벌한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 쏟아져 나오는 글로벌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한국이 콘텐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큰 기회다. 콘텐츠소비에 국경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한 케이팝의 글로벌한 성공이 그 방증이다. 중국의 IT대기업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은 “재미있는 콘텐츠에 목말라하는 중국인들에게 한국 콘텐츠가 좋은 답”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중 관계가 해빙하는 지금이 중국에 들어갈 적기라는 것이다. 글로벌 미디어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지금이 한국이 글로벌 콘텐츠 강국으로 부상할 기회다.
  • 롯데껌으로 시작 123층 월드타워까지… ‘창업1세대’ 시대 막내려

    롯데껌으로 시작 123층 월드타워까지… ‘창업1세대’ 시대 막내려

    19세 때 83엔 들고 일본 건너가 자수성가 1947년 껌 제조업 시작… 이듬해 롯데 설립 제과·호텔·쇼핑 앞세워 70년대 10대 재벌일제강점기 가난한 고향을 떠나 현해탄을 건너는 19세 청춘의 주머니엔 달랑 83엔뿐이었다. 그는 원래 독일의 대문호 괴테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문청(文靑)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출신의 배고픈 젊은이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꿈이었다. 다행히 그는 부지런하고 약속을 잘 지켰으며, 무엇보다 세상을 읽는 눈이 밝았다. 그는 이 세 가지를 밑천 삼아 맨손으로 거대한 유통제국을 세웠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에 진출, 90개 계열사에 총 매출 95조원의 재계 서열 5위(공기업 제외)로 롯데를 키워냈다. 고인은 1921년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 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서 기수보로 일하던 그는 1942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에 몸을 싣는다. 당시 고향 처녀(노순화)와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그가 떠난 이듬해,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이 태어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29살에 요절했다.그는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택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를 나와 1944년 군수용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제조공장을 차리면서 첫 사업을 시작했다. 하나미쓰라는 일본인 노인이 대준 거금 5만엔이 종잣돈이었다. 1946년 5월엔 ‘히카리(광) 특수연구소’란 사업장을 열었다.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비누와 포마드 등의 화장품은 만들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이듬해에는 친구의 권유로 껌 제조업에 손을 댄다. 풍선껌 포장 안에 놀이용 대롱을 함께 넣어 파는 발상의 전환으로 대히트를 쳤다. 껌 포장지 안에 추첨권을 넣어 당첨된 사람에게 1000만엔을 준다는 기발한 광고도 했다.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1948년 신주쿠 허허벌판에서 직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출발했다. 회사명은 그가 탐독하던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왔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 최대의 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신 회장은 1952년 일본 여성 시게미쓰 하쓰코씨와 재혼한다. 하쓰코씨의 외삼촌이 1930년대 주중 일본대사를 역임했던 시게미쓰 마모루이며 덕분에 그가 일본에서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 이후 신 회장은 1970년대 하이틴 스타이자 미스 롯데 출신인 서미경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는다. 30살이 넘는 나이 차였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과 서씨는 한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았다. 10남매의 장남인 신 명예회장은 사업 과정에서 동생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을 제외하고는 둘째 동생 신춘호 농심 회장과 넷째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이 모두 롯데를 떠났다. 그는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국내에 본격 진출했다. 일각에서는 “조국에서 첫 투자가 고작 소비재 사업이냐”는 비판도 나왔다. 훗날 그는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고 항변했다. 제과·호텔·쇼핑 등 삼두마차를 앞세워 외식, 중화학공업 분야로 뻗어가며 몸집을 키운 롯데는 1970년대 말 10대 재벌에 진입했다. 외환위기가 닥쳐온 1997년 이후 롯데는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재계 5위로 덩치를 불렸다.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 최고층 건물 건립은 ‘필생의 꿈’이었다. 그는 2017년 5월 완공된 국내 최고층 빌딩인 서울 잠실 123층짜리 제2롯데월드타워 꼭대기에 올라 3시간 동안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숙원을 풀었다.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계열사 상장을 극도로 꺼리고 소유와 경영을 하나로 생각했던 그는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그룹을 경영해 ‘황제 경영’, ‘손가락 경영’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폐쇄적인 기업지배구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를 이용해 극히 일부 지분만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면서 구두 지시로 인사나 경영상의 주요 결정을 좌지우지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나비 날개 같은 제 피부 보고 놀라시지 않으셨길”

    “나비 날개 같은 제 피부 보고 놀라시지 않으셨길”

    제 사진 보고 놀라시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전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 대학에 재학 중인 스무 살 루시 빌 롯이라고 합니다. 수포성 표피 박리증(Epidermolysis Bullosa)이란 희귀 질환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어디 다쳤느냐”는 거예요. 다치지 않았어요. 그냥 이렇게 태어났어요. 조금만 닿아도 피부가 쉽게 부서지고 쪼개집니다. 나비 날개에 비유해 저같은 아이들을 ‘나비 어린이’라고 하지요. 앞의 질문에 대한 제 답은 ‘생채기가 드러난 점이 아주 고통스럽지요’란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제 내면의 상처가 오히려 더 크다는 얘기겠지요. 목에 생겨난 손상 세포 때문에 10대 때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랐어요. 일찍 죽는다고들 하셨어요. 유전자 탓이고요, 치료할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다행히 20대에 접어들었네요. 영국에 대략 5000명, 세계적으로는 50만명이 EB를 앓고 있어요. 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일부 피부가 없는 채로 태어났어요. 낳자마자 EB 진단을 받았어요. 그림자처럼 EB가 함께 자라났어요. 제 이름을 알게 됐을 때부터 ‘얼마 남지 않았다(terminal)’는 말을 들었답니다. 하지만 전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했어요. 함께 EB를 앓는 친구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고 잡지 인터뷰에도 응했지요. 테드(Ted) 강연에도 나섰고 공부하는 틈틈이 첫 소설도 냈지요. 학교를 좋아했는데 그곳에선 늘 괴상한 꼬마였지요. 하지만 몸이 아파 수업을 빠지면 떨어질까봐 마구 화를 내곤 했어요.감수성 예민한 10대 때는 남들과 달리 보인다는 점 때문에 힘들었어요. 하지만 같은 처지의 또래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북돋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매일 일어나면 고맙다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는데 그게 제 가슴을 가득 채우더라고요. 영국 BBC 라디오 뉴스비트가 인터뷰하고 BBC 홈페이지에도 18일(현지시간) 소개됐는데 EB 환자들을 돕는 자선단체 ‘데브라’의 연구 책임자 캐롤라인 콜린스 박사님은 저처럼 젊은 EB 환자들은 긍정적이며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지난주 런던에서 열린 EB 환자 모임에서 제게도 유전자 치료법이 걸음마 단계이지만 개발되고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적지 않게 위안이 됐어요. 제 목표요? 올해는 EB란 질병을 사람들에게 더욱 널리 알리는 거고요, 인턴십을 많이 신청해 학사 학위를 빨리 땄으면 하는 거예요. 제게 달려 있겠지만 영원히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어요.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박완서 타계 9주기… 다시 읽는 ‘작가의 말’

    박완서 타계 9주기… 다시 읽는 ‘작가의 말’

    박완서(1931~2011) 작가의 타계 9주기를 추모하며 그가 생전에 쓴 ‘작가의 말’을 모은 책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작가정신)은 말 그대로 박완서의 모든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다. 소설, 산문 , 동화의 서문과 발문에 실린 ‘작가의 말’ 67편을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의 소회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그에 대한 고찰을 솔직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그가 남긴 ‘작가의 말’에서 두드러지는 한 가지는 시대의 변화를 목격한 자로서의 책임감이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온 작가는 전력을 다해 시대를 증언하고자 하는 냉철한 목격자였다. 동시에 온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았던 따듯한 서술자이기도 했다. “6·25의 기억만은 좀처럼 원거리로 물러나주지 않는다. 아직도 부스럼 딱지처럼 붙이고 산다”라고 얘기하면서도 “나의 부스럼 딱지가 개인적인 질병이 아닌, 한 시대의 상흔”(‘목마른 계절’(1978) 후기)이라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경유하는 식이다. 소설집 ‘꽃을 찾아서’(1996)에서는 1985년에 계간 ‘창작과비평’이 폐간되면서 ‘창작사’란 출판사 이름으로 나왔다가 1996년에 다시 ‘창작과비평사’로 펴내게 된 사연을 적었다. 그는 “야만적인 시절”에 대한 곡절을 풀어내며 창작의 자유가 그토록 ‘대견’한 것인 줄 몰랐던 자신의 안이함을 반성한다. 그 밖에 새마을운동, 급격한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이식, 전체주의,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세상에의 관심이 그대로 담겨 있다.대문호에게도 예외없었던, 창작에의 고통을 다룬 구절도 눈에 띈다. “써지진 않는데 원고 독촉은 빗발칠 때는 아유, 지긋지긋해, 소리가 입에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이 노릇을 안 하나, 쓰는 노릇에서 놓여날 것을 상상만 해도 황홀한 해방감을 맛볼 수가 있었으니까요.”(‘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책 뒤에) 마감에의 압박은 그에게도 여지없이 몰아쳤다. 그러나 마흔 살 당시로는 늦은 나이에 데뷔, 세상을 뜨기 전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를 구원하는 것도 역시 문학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뜻하지 않게 닥쳐온 무서운 고통과 절망 속에서 겨우 발견한 출구도 쓰는 일이었으니까요.” 이어지는 작가의 고백이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만나야 하고, 자기가 지닌 것 중 가장 괴로운 것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고, 자신을 극복하고 갱신해야 하는 일”이며, “그 길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지나가신 선생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는 최은영 작가의 말처럼, 문학으로 한 시절을 살다간 이의 생생한 육성이 오롯이 담겼다. 208쪽. 1만 4000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하동 평사리 들판서 2월 15·16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

    하동 평사리 들판서 2월 15·16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

    박경리(1926∼2008) 소설가의 대하소설 ‘토지’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들판에서 겨울에 남여노소가 함께 펼치는 ‘평사리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가 열린다.하동군은 평사리 들판 논두렁 축구대회가 다음달 15·16일 이틀간 넓은 평사리들판 특설경기장에서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 주관으로 열린다고 18일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인 올해 논두렁축구대회는 ‘겨울을 녹여 버리자’, ‘동심을 되찾아 오자’, ‘들판을 땀나게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남성부, 여성부, 혼성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등 모두 6개 리그로 나누어 진행된다.군은 논두렁 축구대회 각 리그에 참가할 100팀(외국인 포함)을 다음달 7일까지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비는 팀당 7만원이며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3만원을 돌려준다. 팀당 선수는 7명이다. 경기시간은 전·후반 구분 없이 20분이며 짚풀공예로 만든 공을 전용구로 사용한다. 시상금은 각 리그별 우승 50만원, 준우승 30만원, 3위 10만원 등 모두 700만원이다.참가신청은 놀루와 홈페이지(www.nolluwa.co.kr)나 전화(055-883-6544)로 하면 된다. 군은 축구대회 행사경비는 ‘구단주’ 모집을 통한 펀딩 형태로, 1구좌 1만원부터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구단주를 모집해 조달한다고 밝혔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하동 평사리 들판서 2월 15·16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

    하동 평사리 들판서 2월 15·16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

    소설가 박경리(1926∼2008)의 대하소설 ‘토지’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들판에서 겨울에 남녀노소가 함께 펼치는 ‘평사리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가 열린다. 하동군은 이번 논두렁 축구대회가 평사리 들판 특설경기장에서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 주관으로 열린다고 18일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인 올해 논두렁축구대회는 ‘겨울을 녹여 버리자’, ‘동심을 되찾아 오자’, ‘들판을 땀나게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남성부, 여성부, 혼성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등 모두 6개 리그로 나누어 진행된다. 군은 논두렁 축구대회 각 리그에 참가할 100팀(외국인 포함)을 다음달 7일까지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비는 팀당 7만원이며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3만원을 돌려준다. 팀당 선수는 7명이다. 경기시간은 전·후반 구분 없이 20분이며 짚풀공예로 만든 공을 전용구로 사용한다. 시상금은 각 리그별 우승 50만원, 준우승 30만원, 3위 10만원 등 모두 700만원이다. 참가신청은 놀루와 홈페이지(www.nolluwa.co.kr)나 전화(055-883-6544)로 하면 된다. 군은 축구대회 행사경비는 ‘구단주’ 모집을 통한 펀딩 형태로, 1구좌 1만원부터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구단주를 모집해 조달한다고 밝혔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자본 물결 밀려들던 中 톈진 조선족 여공의 ‘격동 1998’

    자본 물결 밀려들던 中 톈진 조선족 여공의 ‘격동 1998’

    동북 지방서 도시 이주했던 여공 개혁개방기 겪은 흥분·한계 묘사 “잘살아 보세” 삶의 몸부림 생생1998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느닷없이 중국 톈진(천진)으로 이사 간 친구가 있었다. 전자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그곳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지금도 타국의 대도시를 설명할 때 벌어지던 친구의 입과 커지던 동공을 기억한다. 20여년 전, 그때만 해도 중국보다는 한국이 더 선진적이었던 시절임에도, 대국이 주는 포스에 압도됐달까. 친구를 쳐다보던 뭇 아이들의 얼굴이 선망으로 가득 찼다. 금희 작가의 소설 ‘천진 시절’은 조선족 여성인 상아가 겪은 ‘1998년의 톈진’을 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이를 기점으로 중국 동북 지방 출신인 상아가 청운의 꿈을 품고 대도시 톈진으로 가기까지의 과정, 함께 ‘천진 시절’을 보냈던 정숙 언니와 20년 후 재회하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상아는 어릴 적 동창 무군과 그야말로 부지불식 간에 약혼 관계에까지 이른다. 그것은 먼저 톈진에 정착한 무군의 누나가 이들의 일자리를 주선한 데 따른 것으로, 상아가 어쩔 수 없이 감당하게 된 선택이었다. 무군이 좋은지 싫은지 확실하지 않으면서도, 일단 고향인 남산촌을 떠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는 소설의 표현을 빌리면 ‘사은품이 마음에 들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사람들처럼’(61~62쪽) 경황없이 지갑을 열었다. 이처럼 시골에서 대도시로 올라온 ‘여공 서사’는 한국에서도 흔하기에 기시감이 든다. 그러나 가만 들여다보면, 스스로가 조선족 여성인 작가가 써내려 간 중국의 현실은 그 결이 우리와는 미세하게 다르다.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시기, 사회주의 국가에 불어닥친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변방의 소수민족이라는 정체성, 한국어·중국어 능력으로 매겨지는 계급화 등은 보다 배타적이고 첨예한 감이 있다. 한국인 소유의 전자회사에서 부공장장으로 일하는 무군의 누나가 사장과 나누는 ‘자본주의적인 대화’를 보며 상아는 말한다. ‘‘홍두문건’(중앙 당정 지도부에서 하달하는 문건)으로 시작하여 과장된 결의로 마치는 천편일률적인 사업 단위 공무원들의 회의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나는 그들의 대화방식에서 모종의 설렘과 흥분을 느꼈다.’(97~98쪽)주인공 이름인 상아가 남편의 불사약을 몰래 먹고 혼자 월궁으로 날아간 중국 설화 속 인물인 데서 기인하듯, 톈진으로 온 상아도 필연적으로 무군을 떠나게 된다. 무군은 동네에서 고물을 주워다가 중고 침대를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새 침대를 사 줄 수는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함께 지냈던 공장의 정숙 언니도, 자신만 바라보던 남자 희철을 그렇게 떠났다. 이후 한국에서 만난 남편과 건조한 관계를 유지하는 상아와 도박과 여자 문제 끝에 남편과 이혼한 정숙. 그러나 착한 무군·희철과 결혼했어도 지금보다 더 나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남성에게 의지해서만 지위 상승이 가능했던 시절, 그녀들의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다. “만약이라는 게 없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다시 한 번 그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아요?”(175쪽)라는 상아의 물음이 무의미한 이유다. 20여년 전 톈진으로 떠나 그곳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상아는 고향인 남산촌에서 톈진을 거쳐 서울에 갔다가 중국 동북의 도시 Z에 정착했다. “결국 한 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로 온 거죠”라는 말과 함께. 정숙은 또 다른 대도시인 상하이에 산다. 어디를 갔든, 다시 돌아왔든 그것은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맞서기 힘든 격변의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더 잘살고자 했던 몸부림이 있었다는 것, 그 자체다. 소설 ‘천진 시절’은 그런 시절을 다시 상기하게 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비채 펴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나’는 다른 미국 가정에 입양된 동생의 자살 소식을 듣고 그의 마지막 날을 추적한다. 이 자전적 소설로 작가는 미국독립협회 금상, 화이팅어워드, 반스앤드노블 디스커버상 등 독립출판물에 주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며 영미권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248쪽. 1만 3800원.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지음, 생각의 힘 펴냄) 90년대생의 불평등 문제를 분석한다. 책은 80년대 학번을 가진 60년대생이 학력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기반으로 외환·금융 위기를 거쳐 학번 없는 60년대생과 다중적인 격차를 벌리고 이를 90년대생 자녀 세대에 물려주면서 ‘세습 중산층의 2세대’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312쪽. 1만 7000원.성과지표의 배신(제리 멀러 지음, 김윤경 옮김, 궁리 펴냄) 성과 측정지표의 허와 실을 폭로했다. 성과 수치화에 집착한 나머지, 측정 자체가 목적이 된 현상을 저자는 ‘측정 강박’이라 부른다. 이 사회가 측정 강박에 시달리는 이유는 조직 규모가 커져 경영진들이 판단을 제대로 내리기 어려워진 탓이다. 276쪽. 1만 7000원.미국, 제국의 연대기(대니얼 임머바르 지음, 김현정 옮김, 글항아리 펴냄) 미국은 왜 이렇게 강력해졌을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소장학자인 저자는 이 물음에 ‘영토’ 개념으로 접근한다. 미국을 법적 규준을 준수해야 하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 등으로 나눴다. 전자는 미국 본토, 후자는 다수의 미국령이다. 미국은 이들 미국령에 등에서 자원을 얻고, 그곳을 기지로 전 세계를 무력 제압해 오늘날의 미국을 건설했다. 720쪽. 3만 5000원.빛의 마녀(김하서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아이를 잃은 죄책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두 여성이 공감대를 이뤄가는 이야기. 타인의 몰이해와 편견 속 스스로가 “사람들의 두려움과 경멸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마녀”일지도 모른다고 확신하는 주인공과 비현실적인 상황의 충돌을 통해 한 편의 잔혹 동화를 빚어냈다. 272쪽. 1만 3000원.서울, 권력 도시(토드 A 헨리 지음, 김백영 외 3명 옮김, 산처럼 펴냄) 일제강점기 서울의 역사를 다룬 해외 연구서. 경복궁 터, 남산의 신토(神道) 신사 등 식민지 시기 서울의 공공 공간을 분석하면서 일제의 식민지 동화 프로젝트가 전개된 양상을 정신적, 물질적, 공중적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 살핀다. 484쪽. 2만 8000원.
  • [길섶에서] 이육사/박록삼 논설위원

    새 교과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국어 교과서를 펼쳐 봤다. 소설, 시, 시조, 수필 등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지 않은 시나 시조는 미리 외워 두면 수업 시간에 으쓱거리기도 좋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지 싶다. 국어 교과서에 나온 이육사(1904~1944)의 시 ‘청포도’, ‘광야’는 가슴이 시원해짐을 넘어 서늘해지는 느낌까지 줬다. 그리고 3학년 때인가 ‘절정’도 실렸다. 시구마다 밑줄 그어 가며 주제, 숨은 뜻, 은유법, 역설법 운운하는 수업은 서늘했던 시어와 정신을 떠올리면 차라리 지루했다. 그렇게 민족 저항시인이라 외우고 시험쳤지만 실제 그의 삶과 정신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인이기 이전에 치열한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로서 구체적 행적을 고교 졸업 30년 만에, 그것도 지난 주말 TV를 통해서야 처음 알았으니 참 게을렀고 참 무지했다.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에 관여해 첫 옥고를 치른 뒤 17년 동안 17번 형무소를 들락거렸다. 낮밤 없이 감시하는 일제 순사의 눈길과 갖은 고문 속에서도 결정적 증거를 잡히지 않은 채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니 굳건한 의지를 가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1월 16일, 76년 전 오늘이 이육사가 중국 베이징에서 옥사한 날이다. youngtan@seoul.co.kr
  • 진중권 작심 반격에 공지영 “비난 소름…이제 그를 언급 않겠다”

    진중권 작심 반격에 공지영 “비난 소름…이제 그를 언급 않겠다”

    공, 14일 진중권 겨냥 “이분 케어 좀” 포문공 “진, 불안·힘들어 해 친구들이 좀 케어를”진 “외로움에 헛것 보이나, 허언증 심해졌네”진 “사생활까지 선 넘어…소설·현실 구별해야”진 “공씨는 조국에 새 삶 얻은 막달레 마리아”공지영 작가가 자신의 한 발언에 작심하고 거친 비판을 쏟아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해 앞으로는 진 전 교수와 관련한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공 작가는 몇차례 조 전 장관 가족 비리를 비민주적이라며 비판한 진 전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해왔다. 공 작가는 1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진중권씨, 이제 예수와 성경까지 가져와 나를 비난한다, 솔직히 소름이 돋는다”면서 “나는 이제 그를 언급하지 않겠다. 김지하 김문수를 언급하지 않듯이”라고 밝혔다. 공 작가는 이어 “솔직히 그가 나쁜 생각할까 맘도 졸였는데 일단 몸은 건강하고 낙담도 안 하니 다행이라 여기며…”라면서 진 전 교수의 건강을 걱정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공 작가는 “그의 글의 댓글들은 극우가 점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전날 공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중권 ‘(조)국아 너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이니?’>라는 제목의 일간지 기사를 링크하며 “이제 이분 친구들이 이분을 좀 케어해(보살핀다는 의미) 드렸으면 한다. 진심이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또 “이분과 가까운 자리에 있던 분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분이 요즘 평소에도 불안하고 힘들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진 전 교수가 불안하고 힘들어 해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공 작가는 지난해 11월에도 진 전 교수가 조 전 장관을 연일 비판하자 “이 사람이 선생인가”, “좋은 머리도 아닌지, 오래 머물며 박사도 못 땄다” 등 인신공격성 비난을 쏟아냈었다. 공 작가의 ‘이분 케어 좀’ 발언에 대해 진 전 교수는 작심한 듯 페이스북에 공 작가를 겨냥한 세 건의 글을 잇달아 올리며 공 작가를 매섭게 몰아세웠다.진 전 교수는 “공 작가가 허언증이 심해졌다. 외로움이 사무쳐서 헛것이 보이나 보다”라면서 “이분, 보자 보자 하니 남의 사생활 영역까지 거론하는데, 넘어서는 안 될 선이란 게 있는 거다. 저러다 다른 것도 보자고 할까 봐 겁난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공지영씨 유튜브 그만 보시고, 트위터 그만하시라. 동네 마을회관에라도 좀 다니시라. 말벗이 생기면 증상이 한결 호전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진 전 교수는 또 “공지영씨, 재미있는 분이다. 남다른 망탈리테(사고구조)를 가졌다. 근대적 이성이 아니라 중세적 신앙에 가까운. 상시빌리테(감성) 역시 독특하다. 뭔가 영적이랄까?”라면서 “공지영 씨에게 조국 일가는 신성 가족이다. 정경심 교수는 성모마리아다. 상장, 수료증, 표창장, 증명서 마구 처녀 잉태하신 분이니까”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국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공지영씨는 그분을 만나 새 삶을 얻은 막달레 마리아이시다”라면서 “그분의 발을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르시라”고 맞받아쳤다.이는 공 작가가 검찰개혁을 주도하는 조 전 장관을 공개 지지하면서 재판에 넘겨진 조 전 장관 일가의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옹호하면서 진 전 교수를 비난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진 전 교수는 조 전 장관 일가의 비위 의혹에 대해 비민주적인 행위라며 이를 두둔하는 여당과 청와대를 비판했다. 또 조 전 장관을 지지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설전을 벌이고 조 전 장관에 대해 침묵하는 정의당에서 탈당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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