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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숨 걸고 광복군에 무기 공급… 항일투쟁 중 사료 모아 독립사 집필

    목숨 걸고 광복군에 무기 공급… 항일투쟁 중 사료 모아 독립사 집필

    “위협과 모욕을 수없이 퍼붓다가 필경에는 온갖 악독한 형벌을 행한다. 나를 꿇어 앉힌 후에 직경 삼촌(三寸)쯤 되는 통나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양단에 두 놈이 올라서서 통나무를 디디면 형문(刑問) 다리가 부러질 듯 기절하게 되는데,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않고 당하였다.” 1929년 2월 만주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힌 김승학 선생이 고문을 받던 상황을 기록한 ‘망명객행적록’ 부분이다. 희산(希山) 김승학 선생은 만주 대한독립단에서 활약하고 독립신문 사장과 참의부 참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881년 7월 12일 평북 의주군 비현면 마산동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이웃집 방아를 찧어 주고 삯으로 등겨를 받아와 먹었다고 한다. “등겨에 백태(白太·흰콩)를 약간 섞은 것은 상미(上味)라 하여 우리 형제를 먹이고 부모님은 순전한 등겨만을 자시었다. 아침은 겨밥, 저녁은 송피 범벅, 이런 생활을 매일 계속하였다.”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했던 선생은 가난한 살림에도 7년 동안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익혔다. 1899년 선생은 명망 있던 유학자 조병준(건국훈장 독립장)의 문하생이 됐다. 조병준은 “우리는 섬 오랑캐 왜노(倭奴)와 400년 동안 원수인데 을미년에 우리 국모 명성황후를 참시(慘弑)하였으니, 우리 선비로서는 거의하여 왜노를 토벌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스승의 우국충절에 크게 감동해 서간도 지역을 다섯 달 동안 답사하며 독립운동을 꿈꾸었다. 선생은 1904년 한문박사과 시험에 응시했는데 시험 부정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에 학무국장을 찾아가 항의했다가 타협책으로 한성사범학교 입학을 제의받아 1년 남짓 신학문을 공부했다.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자 선생은 서울 종로에서 배일(排日) 강연을 하다 체포돼 석 달 동안 구금당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극명학교 등에서 근무했는데 매일같이 일경이 찾아와 “김승학과 같은 불온분자에게 교육을 받으면 순량한 자제들까지 불량자가 된다”며 이간질을 했다. 더는 고국에서 있을 수 없었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선생은 만주로 건너가 봉천성 관립 강무당에 입학, 군사교육을 받고 의병단에 가담해 6년 동안 활동했다.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하자 만주에서 대한독립단이 결성됐는데 선생은 재무부장이 됐다. 선생의 첫 임무는 국내에 잠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지단(支團)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선생은 평남북 일대를 다니며 친지, 동창들을 설득해 지단과 연통제 기관을 만들었다. 첩보를 접한 일경은 집요하게 추적했고 선생은 배추씨 장수와 좁쌀 장수로 가장해 그때마다 따돌리며 활동을 계속했다. 목숨을 건 활동 덕분에 1920년 1월까지 평안남북도 일대 52곳에 하부 조직을 만들고 독립운동 자금도 수만원을 모았다.선생은 이어 상하이임시정부에 대표로 가서 만주 독립운동 통합단체 명칭을 받고 무기를 구입해 오는 임무를 맡게 됐다. 마우저 총과 루저 권총 240정, 탄환을 상하이에서 비밀리에 구입하기는 했는데 운반이 문제였다. 철궤 4짝을 사서 포장한 뒤 누에고치 거래로 위장해 우여곡절 끝에 압록강변 안동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일경이 정보를 듣고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독립군을 도와주던 이륭양행 주인 아일랜드인 조지 쇼의 도움으로 무기는 내렸지만 선생은 야음을 틈타 상륙하다 경찰견까지 동원한 일제의 추적을 받게 됐다. 옥수수밭에 사흘이나 숨고 맨발로 산골짜기를 헤매며 천신만고 끝에 귀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 무기는 국내 동포들이 주는 것이니 제군들은 무기를 생명과 같이 사랑하여 한 발의 탄환이라도 헛되게 쓰지 말고 1탄에 왜적 1명씩 잡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1920년 광복군사령부 무기수여식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무기로 광복군사령부는 서너 달 동안 일본군과 78회 교전하면서 주재소 등을 습격해 일경 95명을 사살하는 막대한 전과를 거두었다. 일제가 한인들을 학살한 경신참변 후 선생은 임정에 상황도 알릴 겸 두 번째로 상하이로 갔다. 뜻밖에도 선생은 독립신문 사장을 맡게 됐다. 당시 독립신문 책임자였던 소설가 이광수는 변절해 국내로 돌아갔고 프랑스 조계에 있던 신문사는 일제의 방해로 인쇄 도구가 압수되고 신문 발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선생은 프랑스 영사관과 교섭한 끝에 신문을 복간, 1927년까지 6년 동안 발행을 책임졌다. 그동안 일제의 추적을 피하고자 28번이나 인쇄소를 옮겼는데 한번 옮길 때마다 마차 2량과 인력거 20여대가 필요했고 한밤중에 이사를 다니기도 했다.선생은 1924년 무렵 임정 학무부 총장 대리 등의 직도 맡았다. 그런데 당시 서간도 독립운동 단체인 통의부와 참의부의 알력이 깊어져 유혈극이 벌어졌다. 독립신문의 글 때문에 불똥이 선생에게까지 튀자 사장직을 사임했다. 그것도 잠시 선생은 임정의 임명으로 비어 있던 참의부 제4대 참의장이 됐다. 갈등을 겪으면서도 참의·정의·신민 3부는 통합을 추진했는데 통일 단체 이름은 ‘혁신의회’였다. 1929년 2월 5일 선생은 혁신의회 회의를 마치고 나오다 환인현 와니전자에서 일경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상하이에서 무기를 구입한 일, 독립신문을 발간한 일 등을 캐물으며 일경은 혹독한 고문을 했다. 특히 선생이 틈틈이 수집해서 보관하던 독립운동사 사료를 내놓으라고 추궁했다. “왜경에게 피포(被捕) 후 손발이 요절되는 수십 차 악형이 주로 이 사료 수색 때문이었다”고 선생은 밝힌 바 있다. 선생은 굴복하지 않았고 5년의 옥살이도 버텨냈다.출옥 후 선생은 다시 만주로 망명, 임정 베이징 조직을 맡고 만주 천금채에 맡겨 둔 독립운동 자료를 찾았다. 독립운동 자료는 선생에게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베이징 조직이 탄로 나는 바람에 선생은 베이징을 탈출, 70여일 동안 무려 1000㎞를 뚫고 한구에 도착했고 만주로 돌아와 은둔하다 그리던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선생은 정치 참여는 자제하고 독립신문 복간과 독립운동사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복간은 중단됐고 ‘한국독립사’는 1964년 탈고했지만 출간 직전인 1964년 12월 17일 선생은 별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경기 고양에 있던 묘소는 2012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광복회 학술연구원장으로 있는 장증손자 김병기 박사를 만났다. 선생은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도 여러 번 감옥에 갇혔고 자손들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선생과 가족들은 피란지 부산에서 10여년을 살았는데 부두 노동자 취업도 못하게 이승만 정권의 탄압과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오리를 키우고 행상을 해서 생계를 잇는 형편이라 자손들이 포상 신청을 하자고 하자 선생은 “독립운동을 한 게 무슨 벼슬이라도 되느냐”고 화를 내며 만류했다고 한다.김 박사에 따르면 정부가 독립운동가 포상을 시작한 때가 1962년인데 처음에는 친일 역사학자들이 심사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반발해서 이듬해 독립운동사 편찬자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도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선생은 심사를 하면서 이병도 등 학자들에게 “자네들이 독립운동에 대해서 뭘 아는가”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40대에 독립운동사 연구를 시작해 만주 참의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선생의 유업을 이어받아 ‘한국독립사’를 7권으로 나눠 현대화하고 보완해 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詩는 걸으면서…가사는 컴퓨터 앞에서…내 안의 ‘두개의 몸’ 즐겨요”

    “詩는 걸으면서…가사는 컴퓨터 앞에서…내 안의 ‘두개의 몸’ 즐겨요”

    시는 걸어다니며 손으로 쓰지만, 가사는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서 타이핑한다. 술을 마신 날, 시는 쓰지 않지만 반대로 가사는 더 잘 써진단다. 맨 정신엔 못할 ‘보고 싶어’ 같은 말도 직설적으로 할 수가 있어서. 최근 첫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문학동네)을 펴낸 구현우(31) 시인은 숱한 SM 아이돌들의 노래를 쓴 작사가다. 2015년 슈퍼주니어-D&E의 ‘브레이킹 업’을 시작으로 레드벨벳 ‘오 보이’, 샤이니 ‘드라이브’ 등을 썼다. ‘내 안으로 새로운 계절이 불어와’(‘오 보이’), ‘날 부르는 초록빛 그 끝에 혹시 네가 서 있나’(‘드라이브’) 같은 SM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형이상학적인 가사들. “문어체 느낌, 현실에서 한발 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게 재밌다”고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시인이 말했다. 시도, 가사도 시초는 음악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자작곡을 쓰려 하자 멜로디는 쉽게 나와도, 가사는 더뎠다. 작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무심코 시집을 집어 들었다. 그 세계는 오묘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만 들어와도 그 시가 좋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글쓰는 공모전에 하나둘 지원하다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 갔다. 2014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6년 만에 탄생한 그의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은 제목처럼 서로 다른 ‘시차’에 관한 이야기다. ‘너는 가을옷이 필요하구나 나는 봄옷을 생각하면서/양화대교를 건너고 있어’(‘선유도’ 중)라는 표현은, “너와 나는 마주하고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혼자다, 비단 나만이 아니라 너도 그렇겠구나. 나의 이야기뿐 아니라 너의 이야기도 여기에 있다’ 같은 얘기를 하고 싶었나 봐요.” 그의 시에서 ‘인간은 혼자’라는 명제가 형상화되는 공간이 ‘방’이다. ‘밀실’, ‘광장’ 같은 시어는 정치적 함의가 가득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에서나 보던 단어들이다. 2020년대의 시인은 ‘나는 밀실에서야 쓰’(‘미의 미학’)지만 ‘아름다운 광장’(‘붉은 꽃’)이 있음을 아는 존재다. “혼자 쓰는 행위는 누구랑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니까 밀실에서 이뤄지는 것이죠. 광장을 가져온 이유는 이런 것들이 다만 개인 서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서사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시인이 말하기로, 작사를 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글을 잘 쓴다고 작사를 잘하는 게 아니고, 그 반대로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그냥 몸을 두 개로 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작사할 때는 ‘난 이제부터 아이린이다’ 하면서 가성으로 노래를 불러요. 가수에게 빙의하지 않으면 작업이 안 되니까요. 시는 화자에게 빙의할 필요가 없죠. 일정 부분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요.” 그는 ‘클 태’가 들어간 본명으로 작사를 하고, ‘악기줄 현’이 들어간 필명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흥미로운 분열’을 갖고 있다. “하고 싶은 일에는 몸을 다 던질 수 있는데, 재미없는 일은 잘 못한다”는 그는 취미가 모두 일이 되어서 정작 취미가 없다고 했다. 가사와 시가 주는 낙차, 이상한 이름이 주는 분열을 오롯이 즐기는 듯 보이는 그가 가지런히 웃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황제의 옥새9] 일본인 감시 피해 헤이그 특사 묘수 찾는 베델

    [황제의 옥새9] 일본인 감시 피해 헤이그 특사 묘수 찾는 베델

    서울신문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 독립을 위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그렇다면 조선의 황제가 어떻게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할 수 있을까요? 이토 히로부미의 부하들을 피해 이곳을 빠져 나갈 수가 없는데...” 내가 말했다. “황제의 신임장이나 옥새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밀사들이 가짜 승인서를 들고 회의장에 들어갈 수도 없는데 말이죠.” 베델도 거들었다. “그게 숙제입니다.” 용 남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조선으로 오면서 이 일을 어떻게 성공시킬까 기차 안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늘 하기와라(훗날 조선의 2대 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의 감시를 받으며 궁궐에 갇혀 지내고 계시니까요. 심지어 폐하 혼자서는 황태자(순종)조차도 만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폐하를 만나 헤이그에 희망이 있음을 알리고 두 밀사(이준·이상설)가 가져갈 서신에 옥새를 찍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이 바로 그거였군요” 베델은 남작의 말을 받았다. “그런데...폐하를 설득해 비밀 서신에 옥새를 받는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조선을 빠져 나갈 수 있을까요? 일본인들이 거기로 가라고 순순히 허가하지 않을 텐데요. 당장 우리만 해도 독 안의 쥐처럼 늘 감시를 받고 있잖아요. 헤이그로 가야할 이들 또한 이미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돼 있을 것이고요. 우리 같은 외국인은 조선인 노동자가 끄는 인력거만 타도 곧바로 그 사실이 경찰에 보고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증기선을 타려고 제물포나 부산으로 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의 말에 긴 침묵이 흘렀다. 용 남작이 기대에 차 실천에 옮기려고 했던 행동이 난관에 부딪힌 것 같았다. 황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황제에게 남은 것은 사방을 둘러싼 일본 침략자들의 감시 뿐이었다. 간교한 뱀 같은 하기와라의 눈과 귀를 어떻게 속일 수 있을까? “폐하가 아직도 옥새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베델이 특유의 호기심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1905년 일본이 조선과 조약(을사늑약)을 체결할 때 황제가 옥새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인들이 아예 옥새를 쓰지 못하게 하려고 황제가 중요한 부분을 따로 떼어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이때였다. 문고리 위에 올려뒀던 자물쇠가 “쿵”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리 셋 다 온 몸의 털이 쭈뼛 섰다. 다들 놀라서 말을 멈추고 문을 바라봤다. 베델이 코트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왼손으로 램프를 들고 조심스레 문으로 걸어갔다. 귀를 문에 대고 조용히 소리를 들었다. 램프를 테이블에 내려 놓고 엉덩이 뒤 주머니에 권총을 숨겼다. 그리고는 곧바로 문을 활짝 열었다. 복도는 캄캄했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용 남작과 나도 문밖으로 나갔다. 베델이 램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우리는 희미한 불빛이 비쳐 주는 모든 곳을 살폈다. 들리는 소리도 그림자도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만 아는 이 비밀 장치가 문고리에서 떨어지다니...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자물쇠가 중력을 이기지 못해 자연스레 미끄러졌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너무 예민했나’ 하는 기분으로 씁쓸히 복도를 걸어왔다.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온 뒤 베델이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가만!” 용 남작이 고개를 숙이더니 문턱 바로 옆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베델이 불빛을 가까이 대 보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 역시 조선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자세히 바라봤다. 길고 꼬부라진 여성의 회색 머리카락이었다. 한 쪽 끝에는 머리핀이 달려 있었다. 이 호텔의 유일한 여성인 영국인 신지학자 데오도시아의 것이 아닌가. ‘황제의 옥새’는 10회로 이어집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안개와 갈대숲… 老작가를 따라 ‘나와 너의 무진’을 필사하다

    안개와 갈대숲… 老작가를 따라 ‘나와 너의 무진’을 필사하다

    나에게 ‘무진’은 첫 필사(筆寫)의기억이 각인된 장소다. 언어영역의 지문으로나 보던 소설 원문을 통째로 베껴 쓰는 일이 대학에 입학한 첫 학기의 중간고사 리포트였다. 문학평론가 서영채 교수가 강의하던 현대한국문학사 시간의 일이었다. 소설 ‘무진기행’의 전문을 보는 것도 처음인데 필사라니. 처음에는 정직하게, 중간쯤에는 발랄한 필기체로 쓰다 종내에는 나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문장들을 베껴 나갔다. 단편소설은 생각보다 길었고, 분명 한글인데 이상하게 그림들 같았다. 놀다가 졸다가 연애를 시도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맥주나 마시자는 심정으로 소설을 옮겨 그렸다. 여귀(鬼)의 입김이 우리에게도 옮겨 온 것 같이 추운 밤이었다. 에어컨의 전원을 끄며 건너다본 교수 연구실의 불빛은 그날도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함께 고되게 벼락 필사를 하던 동기이자 이 여행에 동행하게 된 석양정에게 내가 물었다. “근데 교수님도 필사를 다 하셨을까?”전남 순천 무진길. 4월답지 않은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군락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순천문학관이 나온다. 순천시가 2010년에 개관한 이곳은 김승옥관과 정채봉관으로 나뉘어 있다. 도로를 벗어나 얼마를 더 달렸는데도 갈대숲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디쯤에 김승옥 선생께서 미리 도착해 계신다고 했다. 2003년 이문구 소설가의 장례식에 가던 차 안에서 쓰러진 뒤로 언어 능력을 많이 상실한 까닭에 일상적인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선생께서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지 않은 지도 오래였고, 공개적인 자리에 서는 일도 드물다고 했다. 선생의 건강 상태에 따라 준비해 간 질문의 답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말도 전해져 왔다. 코로나19 탓에 문학관은 잠정적으로 폐쇄된 상태였다. 선생께서 직접 순천문학관 내에 있는 김승옥관의 문을 열어 줬다. 지그려 둔 사립문을 여는 손끝이 매우 활기차 보였다. 그날 오후 우리는 내내 선생의 손끝만 따라다녔다. 음성 대신 그려 주는 손말을 해석해 가며 선생의 지난 시간을 듣는 갈대숲 속이라니. 어떤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닫힌 문을 여는 시간이면 충분했다.선생의 안내로 김승옥 전시관을 둘러봤다. 전시물들과 우리 사이에는 유리관이 있었고, 선생께서는 그 유리관에 대고 손끝으로 단어를 하나하나 써 가며 우리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줬다. 동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던 ‘국민학생’ 때의 일부터(선생은 1941년생이다.) 서울대 불문과 재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김이구’라는 이름으로 만화 연재를 시작한 일화, 단체 사진 속에서 선생의 친구들을 찾아 이름을 알려 주는 손끝을 따라가고 있자니 병색은 간데없고 활기차고 옛이야기 해 주기를 좋아하는 어른 한 분이 오롯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선생의 활기찬 손끝 따라 거닐다 질문마다 선생은 품에 꼭 지니고 다니던 메모지에 단어와 그림을 그려 가며 대답을 했다. 곁에 있던 에세이스트 석양정과 박진규, 김경희 소설가가 선생의 ‘새로운 창작물’에 해석을 곁들여 줬다. 선생의 근황을 여쭙자 “서울에서 3일, 순천에서 사나흘 정도를 지낸다”고 했다. 4월에는 그림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순천시청에서 ‘무진기행’ 관련 그림 30부를 요청해 5월 전시를 준비하고 있지요.”혹 엿보기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 작업 진행 여부를 물었는데 “이제부터…”라며 말끝을 흐렸다. ‘역시 작가를 움직이는 건 마감 시간인 건가’라는 동의였는지 동석한 작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작가 “순천문학관이 2010년 개관된 이래 계속 이곳에서 생활을 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곳 자랑 좀 해 주세요.” 김 선생 “순천은 갈대가 유명하고요. 포구에 들어오는 배와 철새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순천만 갈대 습지의 탐방로를 따라가면 용산전망대가 나오는데, 그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순천만의 노을이 매우 일품입니다. 그리고 순천문학관에는 정채봉과 김승옥이 있지요.” 이 작가 “이곳 풍경은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무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시대적·개인적 슬픔이 무진기행 쓰게 만들어 김 선생 “무진은 평양과 서울, 부산 등 한반도의 모든 지명을 포함한 이름이에요. 이곳이기도 하고, 이곳이 아니기도 하죠. 신과 악마가 남녀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어머니와 태중의 아기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섞인,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장소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신과 악마의 사이에서 급기야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소설 ‘무진기행’의 맨 마지막 문장)고 토로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쓰던 당시에는 제게 어떤 슬픔 같은 것이 컸어요. 외교관이 되려던 꿈이 좌절됐고, 두 살 연상의 연인과 결별을 겪었지요. 시대적 아픔도 컸고요. 가족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 슬픔이 내게 그 소설들을 쓰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작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소설을 한 번쯤 필사하거나 문장을 외워 가면서 습작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도 일어나고, 교과서에도 실리고, 언어영역의 지문으로도 활용됐는데, 그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 선생 “제가 소설을 쓴 것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아주 짧은 시기입니다. 그 이후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제 작품을 읽어 주고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려고 노력해 줘서 매우 고맙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더 큰 말을 찾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제 소설로 된 문제를 풀어 본 적은 없습니다. 하하.”이 작가 “아까 전시관에서 유독 친구분들과의 사진을 오랫동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쭤도 될까요?” 김 선생 “김현, 최하림, 김치수, 최인훈, 최인호, 박태순, 이문구…. 친구들이 다 먼저 갔어요. 그중에 김현은 가끔 꿈에도 나와요. 많이 보고 싶어서 그렇죠.” 이 작가 “올해 선생님의 SF소설 ‘2020년, D9 기자의 어느날’(동아일보 1970년 4월 1일자, 창간 50주년 특집호)이 발표된 지 50주년이 됐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선생님 소설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앤솔러지 한 권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김 선생 “후배들이 좋은 소설을 쓰고 있다니,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저도 천천히, 조금씩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끝내 그럴 겁니다.”●선생의 크고 단단한 발음으로 “좋다” 인터뷰는 오랜 시간에 걸쳐 띄엄띄엄 건네 오는 단어로 진행됐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건넨 시간이었다. 선생께서는 그림과 단어들에 어떤 한계가 있다고 느꼈던지 우리에게 다시 ‘인터뷰 답변지’를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내 사정을 알고 있던 김경희 작가가 ‘이 작가가 지금 첫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말을 전하자 막 걸음을 떼려던 선생은 나를 돌아보며 “좋다”고 크고도 단단한 발음으로 말씀해 주셨다. 그날 내가 들은 선생의 언어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도 호쾌한 발음이었다. 인터뷰를 위한 현장에서는 ‘김승옥 다큐’ 작업이 한창이었다. 4년 전부터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에 담고 있는 김병수 PD(아르띠잔)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로 그날도 선생의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옛날 선생께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영화 연출을 하던 시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와 ‘겨울여자’, ‘영자의 전성시대’를 비롯해 16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썼고, ‘감자’는 시나리오는 물론 직접 연출까지 한 이력이 있는 선생에게는 오히려 영상에 담기는 것보다 영상 밖에서 ‘김승옥’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선생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TV와 영화로 상영될 예정이란다. 거장의 옛날을 예우하는 사람들의 혼신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무진’의 갈대숲이었다. 월요일이 됐지만 약속한 답변지는 도착하지 않았다. 화요일이 돼도, 금요일까지도 답변지는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갈대숲에서의 대화를 하나씩 곱씹던 나는 급기야 선생이 답변지를 한 30년 정도 늦게 줘도 괜찮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고야 말았다. 선생은 다시 ‘다음 월요일까지 답변지를 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따름이었다.●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하는 삶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돼 보니 스무살 적에 도서관에서 가졌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굳이 몰라도 될 것만 같다. 세상에는 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를 하는 삶이 있기 마련이고, 게다가 그 시간은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우주선들의 도킹 같은 것이니 말이다. 누군가를 무진으로 초대하는 일은 한 세계가 다른 세계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우리는 김승옥 선생과 그의 소설로부터 꽤 괜찮은 시간을 부여받은 셈이라고, 무진이라는 시공간 안에서는 어떠한 해석도 무방하다고 여기면 어떨까. 나는 훗날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너의 출생을 축복해 준 안개와 갈대숲의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리라 마음먹었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줄 답변지를 고르느라 갈대숲 속에서도 아주 많이 바쁘시다고, 무진의 안개를 그려 낼 시간조차도 답변지를 작성하는 데 쓰고 계시다는 사실도 넌지시 전해야겠다. 내 아이는 언제쯤 소설을 필사하고, 삶과 시간이 주는 비의에 기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 그곳과 여기 그리고 나와 너의 무진에서.
  • [황제의 옥새8] “조선 독립 요구 문서에 옥새 찍어 헤이그 보내야”

    [황제의 옥새8] “조선 독립 요구 문서에 옥새 찍어 헤이그 보내야”

    서울신문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 독립을 위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나와 베델은 용 남작이 매우 중요한 일을 말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변장을 했어도 그에게서는 신사의 기품이 느껴졌다. 보통의 조선 양반에게서 흔히 볼 수 있던 어리석음이나 게으름 같은 느낌이 없었다. 넓은 이마는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줬고 달걀형 얼굴 또한 그가 상류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곱고 예리한 눈과 넓은 미간, 반듯한 코와 입술의 모양에서 애국의 열망이 묻어났다. 이 우울한 조선 땅에 용 남작 같은 이가 몇 명만 더 있었어도 역사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텐데... “존경하는 베델과 빌리!” 그는 열정에 가득 차 있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제가 오늘 조선을 구할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기회를 잘 살린다면 우리에게도 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베델은 더 이상 그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목소리를 높이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우리는 작은 램프로 더 가까이 얼굴을 맞댔다. 그림자가 더 크게 만들어졌다. 남작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묘수를 찾았어요. 오는 9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국제회의(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립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주재해요. 그곳에 대한제국 대표가 참석해 전 세계에 정의를 촉구하며 도움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조선의 생존이 달린 일이죠.” 베델이 급하게 끼어 들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회의죠? 조선 특사가 헤이그에 가도록 일본이 가만 내버려 둘까요?” “제 말을 천천히 들어 보십시요.” 조선의 젊은 친구가 영국인 편집자를 제지했다. “앞서 제가 유럽과 러시아에 다녀온 사실을 두 분은 잘 알고 계시죠. 사실 저는 그때 폐하(고종)의 서신을 갖고 세상 밖으로 나갔습니다. 제 신발 속에 숨겨 지구의 반을 돌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고위층에게 전달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도와 달라고 말이죠.“ 용 남작은 니콜라이 2세의 비밀 평의회 의원 한 명의 이름을 말했다. 그는 지금(이 소설을 발간한 1914년)도 유럽 외교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에 여기서는 가명을 쓰고자 한다. ‘애스터리스크(‘*’표시, 작은별을 의미) 왕자’쯤으로 해 두자. “그는 저에게 ‘조선에서 자행되는 일본의 행위들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조선이 국제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한다면, 그리고 동양의 작은 독립국에 서서히 칼을 들이대는 일본의 진실을 폭로할 수 있다면 차르(니콜라이 2세)가 분명 뒤에서 도울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일본이 손에 끈을 들고 이 나라의 목을 조르고 있음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 밤 희미한 전등 불 아래서 무너져 가는 나라에 찾아온 마지막 희망을 잡아보고자 열망에 가득찬 눈빛으로 열변을 토하는 그 애국자를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남작과 자리를 함께 한 영국인(베델)과 미국인(빌리)은 마치 전 세계의 운명이 자신들의 손에 놓여 있는 것같은 전율을 느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기나긴 항해 끝에 신대륙을 발견하고 찬송가를 부르던 그때만 해도 조선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던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둠 만이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아무 힘도 없는 우리 세 명이 이 땅을 구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있다. 현실적으로 지금 기댈 수 있는 곳은 러시아 차르 뿐이었다. 그만이 일본인 교살자의 손에서 조선을 구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용 남작을 지원할 수 있었다. 악인들의 감시 속에서 무섭고도 지루한 삶을 지내던 우리들에게 그 사실은 새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난 러시아가 이번 게임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잘 모릅니다. 조선을 도우려는 약속 뒤에 분명 뭔가 노리는 것이 있겠죠. 다만 이분(애스터리스크 왕자)는 뭔가를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일단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분입니다. 그를 믿고 이 모험을 감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황제의 옥새’는 9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황제의 옥새7] 넝마옷 입고 베델 찾아 온 조선의 우국지사

    [황제의 옥새7] 넝마옷 입고 베델 찾아 온 조선의 우국지사

    서울신문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 독립을 위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그녀는 식사를 마치자 곧바로 등을 가져 달라고 하더니 비걱거리는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와 베델은 서울의 외로운 밤에 지쳐 있었다. 루이가 천장에 달아놓은 단 하나의 등불에 의지해 그림자의 정글에서 당구를 쳤다. 9시가 조금 지났다. 거실에 우리 둘만 남았다. 호텔 밖 거리에서 야경꾼들이 돌아 다녔다. 그들이 발에 차고 다니는 작은 물체가 부딪치며 고드름이 우지직 떨어지는 듯한 금속성 소리를 냈다. 게임 열기 때문인지 크지 않은 공간이 금세 더워졌다. 우리는 바에 있던 창문 3개를 모두 열었다. 그러자 이 도시의 온갖 냄새가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11시쯤 됐을까...그때까지도 우리는 당구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작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베델”을 불렀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뭔가가 들어왔다. 베델이 곧바로 입으로 바람을 불어 램프를 껐다. 침묵과 어둠만이 가득했다. 베델의 거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용 남작께서 오셨습니까?” “예, 접니다.” “용 남작, 이리로 와서 내 친구 빌리와 인사하시오, 이제 두 분은 제 손을 잡고 이동하시죠.” 나는 어둠 속에서 베델의 손이 내 손을 찾으려고 테이블 가장자리를 따라 더듬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쉿! 밖에서 일본인들이 우릴 감시하고 있는 거 다들 아시죠?” 그는 속삭이며 말했다. 그는 나와 어둠속의 유령같은 낯선 이의 손을 잡고 당구대를 떠났다. 베델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도 그와 보조를 맞춰 계단을 걸어갔다. 침실이 있는 긴 복도를 기어가듯 지난 뒤 베델의 방으로 들어 갔다. 지독한 담배 냄새 덕분에 일부러 알려주지 않아도 그의 방임을 알 수 있었다. 성냥을 그어 불을 켠 뒤 침대 옆 램프 심지에 작고 약한 불을 붙였다. 베델이 방문을 걸어 잠갔다. 호주머니에서 자물쇠를 꺼내 문 손잡이 위에 올려놓은 뒤 정교하게 균형을 잡았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스파이 탐지 방법이었다. “누구라도 엿듣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알아 챌 수 있어요. 문 밖에서 손잡이를 조금만 움직여도 이게 밑으로 떨어지니까.” 꼭 코미디 오페라의 한 장면 같았다. 악당이 나오고 으시시한 음악이 나오는 오페라 말이다. 작고 아늑한 방 5개와 욕실, 어수룩한 웨이터와 관리인, 그리고 으스스한 분위기까지...이런 것들이 코믹 오페라의 필수 조건이니까... 나와 베델은 언제 터질 지 모를 일촉 즉발의 화염에 성냥을 들이 댄 바보들이었다. 자신의 능력은 생각지 않고 정의감에 약자부터 보호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앵글로 색슨 특유의 으스댐과 건방짐으로 대한제국 일에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고나 할까. 희미한 불빛 아래서 나는 베델을 찾아 온 미지의 손님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용 남작’(baron)으로 불리던 조선의 유명 지식인이었다. 야간 작업자들이나 입는 더러운 흰색 넝마를 입고 왔으니 그의 실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더러운 누명 옷을 반쯤 걷어 올리고 양말도 신지 않았다. 옷에는 하층민의 직업을 뜻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머리에 튼 상투가 그의 신분을 말해줬다. 그는 잘 생겼고 키도 커 눈에 확 띄었다. 정장을 입고 이리로 왔다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본명은 ‘용치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흥선대원군 시절 영의정을 지낸 거물이다. 치선은 미국 남부의 가장 큰 대학 가운데 한 곳에서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며 국제 정세를 익힌 뒤 귀국했다. 그는 조선에 얼마 남지 않은 애국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한때 그는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암흑 속에서도 애국단체인 ‘일진회’에 가입해 열정을 바쳤다. 원래 일진회는 이웃 섬나라에서 들어온 점령자(이토 히로부미)를 비난하려고 설립됐지만 언제부터인가 일본의 자금력에 굴복해 지금은 침략국을 옹호하는 단체로 타락했다. 그는 나와 베델을 만나고자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일본인들이 이 영국인 편집장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던 터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번역자주:소설에 등장하는 일진회는 1904년 8월 독립협회 관계자들이 주축이 돼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러일전쟁 뒤로 일본에 매수돼 친일행각을 일삼는 단체로 전락했습니다. 조선 병합의 뜻을 이룬 일제는 1910년 9월 이를 해산시켰습니다. 일진회는 조선의 망국을 이끈 대표적 매국집단으로 평가됩니다.) ‘황제의 옥새’는 8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황제의 옥새6] 옥살이 마치고 돌아온 대한매일신보 편집장 베델

    [황제의 옥새6] 옥살이 마치고 돌아온 대한매일신보 편집장 베델

    서울신문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 독립을 위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나는 그녀가 여성 인권 운동가나 스웨덴식 마사지 치료사, 백과사전 집필자 같은 직업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대한제국에서 생각지도 않은 신지학자를 만나다니...루이는 나보다도 더 놀란 듯 했다. 사실 그가 이 단어(theosophy)를 들어본 적은 있는지도 궁금하다. 설사 들어봤다고 해도 이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를 것 같은데... 호텔 주인은 사무실 문 안으로 머리를 들이 밀고는 입을 삐죽거리며 나에게 도와 달라고 눈빛을 보냈다. 나는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고는 ‘알아서 잘 하라’는 의미로 쓴 웃음을 지었다. 당신의 능력을 믿는다는 뜻으로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사실 나도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호텔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감옥에 가 있던 베델(대한매일신보 설립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이었다. “다들 왜 이리 시끄럽죠? 무슨 일이 있나요? 어! 오...부인, 저는 베델이라고 합니다. 조선에서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의 편집장이죠. 일본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살다가 출소해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남들이 뭐라든 저는 이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어쩌다보니 내가 누구인지 다 설명이 됐네요.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있나요?” “네, 이 지적이고 인내심이 강한 분(일본인 정보요원)께서 제가 오늘 점심 때 무엇을 먹었는지까지도 다 알고 싶어 하셔서요.” 데오도시아는 생각지 않은 서양인 한 명을 또 만나게 돼 너무도 반가웠던 것 같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본인 정보요원과의 에피소드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상황을 이해한 베델이 유창한 일본어로 멋지게 통역을 시작했다. (번역자주: 영국인인 베델은 1888년 아버지와 이모부의 사업을 돕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고베에서 16년간 살면서 경제적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봤습니다. 이때 일본어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델이 사전을 찾아 일본인에게 신지학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해줬다. 정보요원은 자신의 노트에 표의문자 같이 생긴 언어로 몇 자 적은 뒤 호텔을 떠났다. 그제서야 데오도시아는 자유로워졌다는 듯 호텔 전체를 누비고 다녔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코를 킁킁거리며 거북하리만치 철저히 냄새를 확인했다. 이를 보고 있던 베델이 나에게 물었다. “빌리, 저 고상하신 여자분 좀 이상하지 않아? 딱 보니까 영국인이던데...근데 눈을 봤어?” 다혈질인 이 편집장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소년같은 관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오 끝내주는데...바로 그거야. 나이든 여자의 얼굴에서 소녀 같은 눈빛이라...일본인들 표현으로는 ‘돌을 품은 꽃잎’이라고 하지.” 우리가 식당에 자리를 잡자 까다로운 영국 여성이 테이블 저 멀리에 앉아 있었다. 베델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자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눈빛과 헛기침 등으로 스코트랜드 모자를 쓴 복숭아빛 피부의 여인이 우리를 인식하고 말을 걸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여행광이자 신지학을 추종하는 그녀는 더 이상 우리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듯 했다. 식당에는 우리 셋밖에 없었고 그녀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와 금세 친해질 수 있었지만 그녀는 우리와 계속해서 거리를 유지했다. 형식상의 안부 인사조차도 건네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와 아무것도 소통할 수 없었다. ‘황제의 옥새’는 7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갓세븐·뉴이스트·엔시티 드림…남성 아이돌 속속 ‘컴백’

    갓세븐·뉴이스트·엔시티 드림…남성 아이돌 속속 ‘컴백’

    갓세븐, 오늘 미니앨범 발매엔시티 드림 ‘리로드’ 29일 공개뉴이스트·아스트로도 새달 활동팬들이 기다려 온 남성 아이돌들이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속속 컴백하고 있다. 첫 테이프는 갓세븐이 끊는다. 이들은 20일 오후 6시 미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전한 일문일답에서 “전곡을 다 들어 보시면 진짜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새 앨범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멤버들은 새 미니앨범 ‘다이’ 발매를 앞두고 공개한 영상과 이미지에서 달리는 마차에 앉아 편지를 쓰거나 고풍스러운 셔츠와 액세서리, 반짝이는 메이크업, 베일 등으로 낭만적 면모를 뽐냈다. 타이틀곡 ‘낫 바이 더 문’은 “달처럼 변하는 것에 사랑을 맹세하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 대표 프로듀서 박진영이 작사, 작곡, 편곡에 참여했다. JB는 “트랙리스트나 로맨틱한 가사 등 전체적인 앨범의 흐름이 마음에 들고, 스토리가 담긴 음반이라 의미가 깊다”면서 “분위기를 놓고 보자면 (전작) ‘니가 부르는 나의 이름’의 연장선이지만 조금 더 파워풀하고 애절한 느낌이 담긴 곡”이라고 설명했다. 새 앨범엔 타이틀곡을 포함해 총 10곡이 담긴다. 이날 오후 8시에는 네이버 브이라이브를 통해 온라인 쇼케이스를 생중계한다. 엔시티 드림은 새 앨범 ‘리로드’를 29일 오후 6시 공개한다. 타이틀곡 ’라이딩‘을 비롯한 다양한 감성의 총 5곡으로 구성됐다. ‘라이딩’은 어반 트랩 장르의 묵직한 베이스 라인과 강렬한 비트가 질주 본능을 일깨우는 곡으로, 가사에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는 엔시티 드림의 열정과 포부를 담았다고 소속사는 설명했다. 20일 자정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새 앨범 콘셉트로 변신한 티저 이미지를 첫 공개한 이들은 시크하고 개성있는 분위기를 미리 선보였다.뉴이스트도 다음달 11일 여덟번째 미니앨범 ‘더 녹턴’을 발매한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미니 7집 ‘더 테이블’ 이후 7개월 만이다. 20일 자정 뉴이스트 공식 SNS에는 멤버 JR을 주인공으로 한 컴백 예고 영상도 올렸다. “며칠째 낮은 계속되고 있고 잠 못 드는 사람들은 밤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잃어버린 우리의 밤”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해당 영상에서 JR은 숲속을 걷다 발견한 상자 단추를 누르고, 비로소 도시에 밤이 찾아든다. 아스트로도 활동을 중단한 문빈을 포함해 6인조 완전체로 돌아온다. 소속사 판타지오뮤직은 이들이 다음달 4일 일곱번째 미니앨범 ‘게이트웨이’를 발매하며, 지난해 11월 건강 이상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문빈도 참여한다고 밝혔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아이돌 노래 작사한 시인 “시는 걸어다니며, 가사는 컴퓨터 앞에서”

    아이돌 노래 작사한 시인 “시는 걸어다니며, 가사는 컴퓨터 앞에서”

    시는 걸어다니며 손으로 쓰지만, 가사는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서 타이핑한다. 술을 마신 날, 시는 쓸 수 없지만 반대로 가사는 더 잘 써진단다. 맨 정신엔 못할 ‘보고 싶어’ 같은 말도 직설적으로 할 수가 있어서. 최근 첫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문학동네)을 펴낸 구현우(31) 시인은 숱한 SM 아이돌들의 노래를 쓴 작사가다. 2015년 슈퍼주니어-D&E의 ‘브레이킹 업’을 시작으로 레드벨벳 ‘오 보이’, 샤이니 ‘드라이브’ 등을 썼다. ‘내 안으로 새로운 계절이 불어와’(‘오 보이’), ‘날 부르는 초록빛 그 끝에 혹시 네가 서있나’(‘드라이브’) 같은 SM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형이상학적인 가사들. “문어체 느낌, 현실에서 한 발 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게 재밌다”고 지난 16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시인이 말했다. 시도, 가사도 시초는 음악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자작곡을 쓰려하자 멜로디는 쉽게 나와도, 가사는 더뎠다. 작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무심코 시집을 집어들었다. 그 세계는 오묘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만 들어와도 그 시가 좋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글쓰는 공모전에 하나둘 지원하다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 갔다. 2014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6년 만에 탄생한 그의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은 제목처럼 서로 다른 ‘시차’에 관한 이야기다. ‘너는 가을옷이 필요하구나 나는 봄옷을 생각하면서/양화대교를 건너고 있어’(‘선유도’ 중)라는 표현은 “너와 나는 마주하고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너’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너‘들’이겠고요. ‘인간은 혼자다, 비단 나만이 아니라 너도 그렇겠구나. 나의 이야기뿐 아니라 너의 이야기도 여기에 있다’ 같은 얘기를 하고 싶었나봐요.” 그의 시에서 ‘인간은 혼자’라는 명제가 형상화되는 공간이 ‘방’이다. ‘밀실’, ‘광장’ 같은 시어는 정치적 함의가 가득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에서나 보던 단어들이다. 2020년대의 시인은 ‘나는 밀실에서야 쓰’(‘미의 미학’)지만 ‘아름다운 광장’(‘붉은 꽃’)이 있음을 아는 존재다. “혼자 쓰는 행위는 누구랑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니까 밀실에서 이뤄지는 것이죠. 광장을 가져온 이유는 이런 것들이 다만 개인 서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서사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나의 방은 한 명 이상의 외로움이 있다’(‘오로지 혼자 어두운’)는 것을 아는 것, 너와 나의 시차를 인정하고 이를 살펴보는 것이 구현우 시가 주는 사려 깊음이자, ‘광장’의 현대적 버전이다. 시인이 말하기로, 작사를 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시를 잘 쓴다고 작사를 잘하는 게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그냥 몸을 두 개로 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작사할 때는 ‘난 이제부터 아이린이다’ 하면서 가성으로 노래를 불러요. 가수에 빙의하지 않으면 작업이 안되니까요. 시는 화자에게 빙의할 필요가 없죠. 일정 부분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요.” 그는 ‘클 태’가 들어간 본명 ‘태우’로 작사를 하고, ‘악기줄 현’이 들어간 필명 ‘현우’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흥미로운 분열’을 갖고 있다. “하고 싶은 일에는 몸을 다 던질 수 있는데, 재미없는 일은 잘 못한다”는 그는 취미가 모두 일이 되어서, 정작 취미가 없다고 했다. 가사와 시가 주는 낙차, 서로 다른 이름이 주는 이상한 분열을 오롯이 즐기는 듯 보이는 그가 가지런히 웃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국회의원 연 소득 1억 4052만원… 초임은 ‘최고’

    국회의원 연 소득 1억 4052만원… 초임은 ‘최고’

    국내에서 평균 소득이 가장 많은 직업은 기업 고위임원으로 조사됐다. 2위는 국회의원이었다. 19일 한국고용정보원의 ‘2018 한국 직업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기업 고위임원의 평균 소득(연봉 또는 연 수입)은 1억 5367만원이었고, 국회의원은 1억 4052만원이었다. 국회의원은 해마다 평균 소득 최상위권에 들었는데, 2017년 조사에서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연소득은 기업 고위임원보다는 적었지만 초임 수준은 1억 4052만원으로 전 직업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이 밖에 외과 의사(1억 2307만원), 항공기 조종사(1억 1920만원), 피부과 의사(1억 1317만원) 등이 평균 소득 상위 5위권에 들었다. 소득이 가장 적은 직업은 자연·문화해설사로 1078만원이었고 시인(1209만원), 소설가(1283만원), 연극·뮤지컬배우(1340만원), 육아 도우미(1373만원) 순으로 낮았다. 직무 만족도(5점 척도)는 ‘보건·의료직’이 평균 3.75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경영·사무·금융·보험직’(3.66점), ‘교육·법률·사회복지·경찰·소방직 및 군인’(3.62점)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직무 만족도가 가장 낮은 직종은 ‘건설·채굴직’(3.19점)이었으며 ‘영업·판매·운전·운송직’(3.24점), ‘농림어업직’(3.24점)이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황제의 옥새5] 그녀의 정체는 영국 출신 신지학자

    [황제의 옥새5] 그녀의 정체는 영국 출신 신지학자

    서울신문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 독립을 위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이름:데오도시아 툴링, 주거지:도싯마운트(웨스트요크셔주 리즈시의 한 지역), 국적:영국’ 새의 깃털을 장식한 스코틀랜드식 모자를 쓰고 낡은 군용 재킷을 입은 여성이 휘갈겨 쓴 고딕체 글자는 꼭 남성이 쓴 것 같았다. 여기에 쓴 글자만으로든 이 여인에 대해 더 이상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서명 앞에 ‘미즈’(Ms·남녀평등의 상징적 표현)라고 써 놓은 것만 봐도 일반적인 여성은 아니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루이가 꽤나 실망한 듯 보였다. “아...이럴 수가! 내 호텔에 코끼리가 투숙하는 것이 더 낫겠다. 앞으로도 골치 꽤나 아프겠는데...” 그녀의 방에서 짐이 이리 저리 움직였다. 한 30분가량 뭔가 계속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뜨거운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다시 불러서 세면대에 비누가 없다고 항의했다. 이 때 그녀는 루이에게 “이 호텔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고 훈계했다고 한다. 사실 이곳이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위생’과는 담을 쌓은 곳이기도 했다. 자존심 하나는 세계 최고라는 프랑스에서 온 루이가 이 여인에게 괴롭힘을 당해 잔뜩 화가 난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데오도시아는 루이를 세 번째로 불러 목포에 있다는 12개 작은 불상의 소재를 물어봤다. 유럽에서 온 작은 호텔 주인이 그걸 어찌 알겠는가. 사무실로 돌아온 루이는 “이 여자를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서려고 할 때였다. 조선의 최고 실력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당시 한국통감부 초대 통감)의 비밀경찰 다음으로 바쁘다는 일본 정보부 요원이 들이닥쳤다. 그는 손에 노트와 연필을 쥐고 이 여인을 막아섰다. 우리는 사무실 문 틈으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실례...합니다. 부인의 이름이...무엇입니까?” 그는 어설픈 일본식 발음의 영어로 물었다. 비음 섞인 소리가 우리에게도 들렸다. “죄송합니다만...이건 제 임무...입니다. 조선에 오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죠.” “왜 내가 당신에게 제 이름을 말해야 하죠?” 데오도시아가 차갑게 대답했다. “게다가 나를 ‘부인’으로 부르다니...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아주 무례한 호칭입니다.” 크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바보같아 보이지만 나름 일본식 공손함의 표시였다. 정보부 요원은 재차 “죄송합니다...부인”이라고 말했다. “어휴...알았어요...내 이름은 테오도시아 툴링입니다. 영국인이고요. 서머싯주 도싯마운트라는 곳에서 왔습니다. 할머니 이름은...” “죄송합니다만...철자를 천천히 불러 주시겠습니까?” 일본인 정보요원은 엘리트답게 일말의 동요 없이 비음섞인 영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알아듣기 어려우신가 보죠? 매우 드문 이름이라는 건 저도 잘 알아요.” 그녀의 분노가 조금 누구러진 듯 했다. “제 성은 T-o-o-l-i-n-g, 그리고 저희 가문 문양은 그리핀 램판트(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한 신화 속 동물)고요...”“죄송합니다. 부인, 어디서 오셨다고 했죠?” 일본인이 이 질문을 할때는 루이와 나는 사무실에서 어쩔 줄 몰랐다. 데오도시아가 태연히 ‘아무말 대잔치’로 동문서답을 하며 정보요원을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다. 루이는 웃음을 참다 못해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일본인은 이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 했다. “저희 가족 전체를 다 말해야 하나요? 아니면 영국 동부 지역으로 한정해서 말씀 드릴까요?” “부인, 어디라고 말씀하셨죠?” 정보요원이 동양에서나 볼 수 있는 초인적 인내심을 보이며 계속 질문했다. “루앙프라방(라오스), 바하왈푸르(파키스탄)에서 왔다고 쓰세요. 통킹(베트남)에도 있었는데...일단 다 쓰실 때까지 기다리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키 작은 정보 요원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당신의 직업은...무엇...입니까?” 그녀 역시 더는 참기가 힘들어진 듯 했다. “아...정말 너무하네...이 호텔 주인이 어디 계시죠?” 데오도시아의 신경질 섞인 목소리에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루이가 웃음을 참고 로비로 달려갔다. “주인장, 이 무례한 일본 남자를 여기서 나가라고 해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우아하지만 영국인 특유의 호통치는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부인, 죄송하지만 이곳의 법을 따라 질문에 답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에게는 당신이 정보요원의 질문에 응하도록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 할 수 없죠. 이 사람에게 제 직업이 신지학(신비 체험이나 계시에 의지해 신의 본질을 추구하는 철학 사조) 강사이고 어두운 세상에 순수 이성의 빛을 전파하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세요.” 그녀는 마지막 대답이라는 걸 강조하며 말했다. 나는 그의 대답에 뭔가로 한 방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황제의 옥새’는 6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황제의 옥새4] 톤 낮은 영어를 쓰는 미스테리한 여인

    [황제의 옥새4] 톤 낮은 영어를 쓰는 미스테리한 여인

    서울신문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 독립을 위해 모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나는 그녀의 눈을 유심히 살폈다. 장난기 섞인 유쾌함이 미간을 스쳐 지나갔다. “아! 서울에 사시나 보네요. 척 보니까 알겠어요.” 이 희귀한 도도새는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 도시에서 제일 좋은 호텔을 알려 주세요. 중국 상하이를 떠나기 전 서울 숙소를 알아보는 걸 깜박했거든요.” “그러죠. 부인, 여기선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서대문 정거장 근처에 내 친구 루이가 운영하는 ‘애스터하우스’라는 호텔(현 서대문역 농협중앙회 건물터)이 있어요. 거기가 아니면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주무셔야 하는데…외국인이 묵기에는 좀 불편하죠. 마침 제가 루이의 호텔로 가는 길인데, 괜찮으시다면…” “네, 좋습니다. 거기서 잘게요.” 그녀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인력거 세 대를 불렀다. 한 대에는 이방인이 들고 온 짐을 실었고 다른 한 대에는 그녀가 탔다. 나는 마지막 인력거에 타고 길을 안내했다. 호텔로 가면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모험을 상상했다. ‘내가 이 손님을 루이의 호텔에 있는 바에 데려가면 친구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앞서 1905년에 만난 묘령의 여인(이 소설을 쓴 로버트 웰스 리치가 베델을 주인공으로 한 첫 소설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러시아 스파이)은 호텔에 도착한 지 3시간도 되지 않아 그 소식이 시내에 모두 퍼져 나갔다. 서울은 이렇게 모든 소문이 빠르게 번지는 곳이었다. 지금 이 중년 여성은 멸망을 눈 앞에 둔 대한제국의 수도로 찾아와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분명 그녀는 새로 부임한 선교사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선교회 본부(현 광화문 동화면세점 감리교 본부 빌딩)부터 찾아갔을 테니까. 그런데 관광객도 아니었다. 서울은 외국인들이 뭔가를 구경하러 오는 도시가 아니다. 설사 이곳에 오더라도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일본인 요리사를 따라 10명 안팎이 함께 다닐 뿐 혼자 다니지는 않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도시를 찾아 온 신비한 여성은 도시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젊음의 흔적이 사라진 얼굴을 화장으로 메웠지만 눈에서만큼은 청년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생각해보니 저다지도 깊고 인상적인 눈을 한 번 본 적이 있기는 하다. 1905년 가을 어느 날에 말이다. (번역자주:소설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서 을사늑약 체결 직전 러시아 여성 스파이가 조선을 구하려고 나섰던 에피소드가 일어난 때를 뜻합니다.) 고급스럽게 다듬어진 보석에서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듯 이 여인의 눈동자도 그랬다. 새의 깃털을 단 스코트랜드식 모자를 쓰고 낡은 쟈켓과 예스런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젊음의 매력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자수정 같은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호텔로 들어서자 익살맞은 프랑스인 주인 루이(Looie·이 시기 호텔을 운영한 프랑스인 L.Martin의 실제 이름으로 추정)가 우리를 안내했다. 루이는 그녀에게 투숙 등록부를 작성하게 도우며 나를 힐끗 쳐다봤다. 미지의 여인을 데려 온 것에 대한 신기함과 눈에 확 띄는 벽안의 여인을 이리로 데려와 일본 경찰의 감시를 자초한 것에 대한 힐난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녀가 둔탁한 영어로 숙박비 협상을 시작했다. 이 호텔에 얼마나 묵을지 정하지 않았다며 장기투숙 여부는 여기서 편안한 서비스를 얼마나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저는 세계여행을 많이 해 본 사람입니다. 이 호텔이 값어치를 하는 곳인지 아닌지는 하루만 있어봐도 알 수 있죠.” 이 영국인은 등록부에 자신의 신상명세를 기록하며 여성 특유의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루이는 그녀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설득하며 객실로 안내했다. 사장이 직접 투숙객을 데려가자 조선인 벨보이들이 당황하며 여인을 뒤따랐다. 루이가 카운터로 돌아오자마자 등록부부터 열어봤다. 그녀가 뭐라고 썼는지 너무도 궁금했다. ‘황제의 옥새’는 5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향수‘ 쥐스킨트 명작들 양장본으로 다시 만난다

    ‘향수‘ 쥐스킨트 명작들 양장본으로 다시 만난다

    장편소설 ‘향수’로 유명한 독일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명작들을 엄선한 양장본 개정판(사진)이 나왔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은 새롭게 편집하고 디자인도 바꾼 ‘쥐스킨트 리뉴얼’을 펴낸다고 17일 밝혔다. 이 시리즈는 49개 언어로 번역돼 2000만부가 넘게 팔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쥐스킨트를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린 ‘향수’를 비롯해 모두 8권이다. 한국에서 더 인기를 끈 ‘좀머 씨 이야기’,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콘트라바스’와 ‘깊이에의 강요’, ‘사랑’, ‘비둘기’, ‘승부’, ‘로시니’를 포함했다. ‘콘트라바스’와 ‘승부’는 새롭게 번역했다.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과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젊은 시절부터 단편을 습작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쥐스킨트는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문학상 수상과 인터뷰를 모두 거절하고 사진 촬영조차 꺼리는 은둔의 작가로 알려졌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불멸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내일 밤 유튜브 무료 상영

    불멸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내일 밤 유튜브 무료 상영

    불멸의 명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온라인 무료 상영회 대열에 합류했다.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72)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을 17일 오후 7시(현지시간)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에 공개한다고 16일 밝혔다. 한국 시간으로는 18일 새벽 3시부터 48시간 동안 전막 실황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이번에 공개하는 공연 영상은 2011년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 무대에 오른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이다. 유령 역은 라민 카림루가 연기하고, 크리스틴 역은 초연의 사라 브라이트만 이후 최고의 캐스팅으로 꼽히는 시에라 보게스가 맡았다. 웨버는 코로나19로 전 세계 공연시장이 얼어붙자 지난 3일 유튜브에 이 채널을 만들어 매주 금요일 자신의 인기 뮤지컬을 한 편씩 공개하고 있다.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앞서 상영됐다.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파리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작곡가 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귀족 청년 라울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30년 이상 공연된 유일한 작품으로, 전 세계 41개국 183개 도시에서 누적 관객수 1억 4000만명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2001년 한국 출연진의 라이선스 공연으로 처음 관객을 만났고, 2005년과 2012년에 이어 2019년 12월 부산을 시작으로 월드투어 팀의 내한 공연이 진행 중이다. 서울에서는 지난달 14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개막해 공연을 이어왔지만, 앙상블 배우 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지난 1일부터 공연을 중단했다. 최근 모든 출연·제작진의 건강상태와 공연장의 안전상태를 확인한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측은 3주 이상의 격리 기간을 가진 뒤 오는 23일부터 공연을 이어간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박완서 작품 18편, 오디오북으로

    박완서 작품 18편, 오디오북으로

    박완서 작가 타계 9주기를 맞아 작품 18편이 오디오북으로 나온다. 오디오북 스트리밍 플랫폼 스토리텔은 박 작가 대표작 18편(25권)을 엮은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세트’(세계사)를 오디오북으로 제작해 출시한다고 17일 밝혔다. 스토리텔은 대표작 3권을 우선 공개했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자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고유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문학세계의 시작이 된 화가 박수근의 일대기를 모델로 한 등단작 ‘나목’, 절대자와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자전적인 고찰을 들을 수 있는 ‘한 말씀만 하소서’다. ‘목마른 계절’, ‘엄마의 말뚝’, ‘미망’ 등을 차례로 낼 계획이다. 오디오북 제작에는 성우 문선희, 신소윤 등 국내 최정상급 성우가 녹음에 참여해 원작 소설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데에 집중했다. 스토리텔 측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며 “작가와 같은 시절을 살아온 중장년층은 물론 20대, 30대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감동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세령 스토리텔 한국지사장은 “그간 완독에 도전하지 못했던 거장의 작품을 스토리텔 앱으로 일상 속에서 더 가깝게 접해보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스토리텔은 북유럽 오디오북 업계를 선도하는 오디오북 플랫폼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한국어·영어 완독형 오디오북 5만여 권을 보유하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강남, 전자도서관 전자책 이용률 75% 늘어

    서울 강남구는 구립도서관 임시 휴관 기간 중 온라인 독서활동을 장려한 결과, 3월 한 달간 전자도서관 이용률이 지난해보다 7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7일 밝혔다. 지난달 강남구 전자도서관 대출건수는 2만 3387권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 3335권보다 1만 52권 늘었다.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은 감염병 사태를 다룬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82회)이고, ‘멋진 신세계’(52회), ‘데미안’(33회)이 뒤를 이었다. 강남구 전자도서관은 2만 2000여종 34만여권의 전자책을 보유하고 있다. 홈페이지(ebook.gangnam.go.kr) 회원 가입 후 이용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원서를 수준별로 제공하는 ‘오버드라이브’(OverDrive)는 지난해보다 326% 증가한 409권이, ‘귀로 듣는 책’ 오디오북은 지난해보다 112% 증가한 4542권이 대출됐다. 김용만 문화체육과장은 “코로나19로 휴관 중에도 강남구민들이 집에서 도서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SNS 기반의 북큐레이션, 팟캐스트 운영 등 다양한 온라인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구민 문화 향유 기회를 꾸준히 확대, ‘책 읽는 강남’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연애소설 읽는 노인’ 작가 세풀베다, 코로나19로 별세

    ‘연애소설 읽는 노인’ 작가 세풀베다, 코로나19로 별세

    칠레 출신의 세계적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스페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70세. AFP통신에 따르면 세풀베다의 저서들을 출간해 온 바르셀로나의 투스케 출판사는 1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세풀베다가 스페인 북부 오비에도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세풀베다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6주간 투병했다. 세풀베다는 1949년 칠레에서 태어났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독재 시절 학생 운동을 하다가 1977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스페인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는 대중적 인기와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대표작으로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있다. 1989년 피살된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는 소설이다. 아마존에 사는 노인이 침략자가 파괴한 자연의 균형을 바로잡고자 총을 들고 숲으로 떠나는 과정을 추리소설 기법으로 그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부고]

    ●박정이씨 별세 하승우(SK증권 경기PIB센터장)씨 장모상 16일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6시 (02)797-4444 ●차금열씨 별세 차석원(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국제협력부본부장)·석모(동대문구청 보건소 의약과)씨 부친상 남언정(킨더뮤직코리아 이사)·장인회씨 시부상 16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6시 (02)2072-2020 ●손세명(전 한국투자신탁 이사)씨 별세 손창환(석영에스텍 부장)·수연씨 부친상 조근수(삼성전자 경영지원실 부장)씨 장인상 16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6시 (02)2258-5919 ●이화자(소설가 고 장용학 배우자)씨 별세 장한철(예금보험공사 부사장)·한성(일진머티리얼즈 기술고문)·한기(두산인프라코어 자문)씨 모친상 16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02)758-0707
  • [책꽂이]

    [책꽂이]

    재미난 사람들의 쓸쓸한 얘기(류보상 지음, 천우 펴냄) 극작가이자 소설가, 극단의 고문인 작가의 세 번째 희곡 선집. 단국문학상, 탐미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던 작가는 ‘어르신 때문에’, ‘처제의 계산법’, ‘아버지와 아들’, ‘꽃가게 집 노처녀’ 등 8편의 희곡 작품에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얘기들을 담았다. 231쪽. 1만 5000원.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은행나무 펴냄) 물리학자이자 이탈리아의 양대 문학상 수상 작가가 조명한 코로나19 사태. 그는 오늘날을 ‘전염의 시대’라고 진단하며 이는 보편적인 고독을 가져온 동시에 바이러스 앞에서 모든 인류는 공평하며 각자의 운명은 연결돼 있음을 일깨우기도 했다고 말한다. 특히 “사람들의 극심한 공포는 ‘숫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불신’의 고리에서 나온다”며 거짓 정보에 유의할 것을 강조한다. 96쪽. 8500원.뭉클(강윤중 지음, 경향신문사 펴냄) 현직 사진기자인 저자가 렌즈 너머로 바라본 세상. 세월호 참사와 노동자들의 장기농성장, 로힝야 난민을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담았다. 사건의 현장뿐 아니라 이 땅의 계절, 유명인들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 등 뷰파인더로 본 세상의 스펙트럼이 넓다. 304쪽. 1만 5500원.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용주 지음, 양철북 펴냄)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작정 아프리카로 떠난 마도로스의 이야기. 그곳에서 물 한 방울을 찾기 위해 섭씨 60도가 넘는 한낮에 7시간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을 만난 저자는 식수 전문 국제구호 단체인 팀앤팀을 만들었다. 척박한 땅 남수단 마을에 물이 들어가기까지 과정을 사진 자료와 함께 기록했다. 256쪽. 1만 3000원.미술시장의 탄생(손영옥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한국 근대 미술시장의 태동부터 완성까지 살펴보는 저작. 국민일보 미술·문화재전문기자인 저자는 한국 미술시장이 전근대적 성격을 벗어나 근대적인 자본주의 생산 방식으로 이행한 시점을 개항기라고 본다. 이후 1905년부터 1920년대까지를 일제 ‘문화통치’ 전후, 1930년대부터 해방 이전을 ‘모던의 시대’로 명명하며 한국 미술시장 형성사의 세세한 풍경을 탐색한다. 424쪽. 2만 7900원.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김금숙·정철훈 지음, 서해문집 펴냄)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노동 인권과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한 김알렉산드라의 생애를 그래픽노블로 담았다. 언론인 출신 소설가인 정철훈 작가의 원작 ‘소설 김알렉산드라’를 김금숙 작가가 재탄생시켰다. 러시아 이주 한인들의 고단했던 삶과 혁명기의 격동했던 시대적 상황이 김알렉산드라의 비극적인 짧은 생애 속에 응축돼 있다. 240쪽. 1만 6000원.
  • [부고] 연주흠씨 부친상, 차석원씨 부친상, 손세명씨 별세, 장한철씨 모친상

    ●연규헌씨 별세, 연주흠(청주시 주택정책팀장)씨 부친상, 김서형(청주시 공원행정팀장)씨 시부상, 15일 오후 11시, 청주 성모병원 장례식장 특2실, 발인 17일 오전 8시 30분. 043-210-5444 ●차금열씨 별세, 차석원(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국제협력부본부장)·차석모(동대문구청 보건소 의약과)씨 부친상, 남언정(킨더뮤직코리아 이사)·장인회씨 시부상, 16일 오전 2시,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5호실, 발인 18일 오전 6시. 02-2072-2020 ●손세명(전 한국투자신탁 이사)씨 별세, 손창환(석영에스텍 부장)·손수연씨 부친상, 조근수(삼성전자 경영지원실 부장)씨 장인상, 16일 오전 9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 발인 18일 오전 6시. 02-2258-5919 ●이화자(소설가 故장용학 배우자)씨 별세, 장한철(예금보험공사 부사장)·장한성(일진머티리얼즈 기술고문)·장한기(두산인프라코어 자문)씨 모친상, 16일,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18일. 02-75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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