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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마스에 끌려갔던 자폐 소녀, 숨진 채 발견

    하마스에 끌려갔던 자폐 소녀, 숨진 채 발견

    소설 ‘해리포터’ 열혈 팬으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납치돼 안타까움을 샀던 이스라엘 소녀가 열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19일(현지시간) 예루살렘 포스트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식 엑스(옛 트위터) 계정이 최근 해리포터 코스튬 사진을 올려 주목받은 이스라엘 소녀 노야 단(12)이 가자지구 국경 근처에서 전날 시신 상태로 발견됐다.현지 소식통은 구호단체 자카의 자원봉사자들이 가자 국경 근처에서 불 탄 시신 두 구를 발견했다며 정부가 노야와 그의 할머니 카르멜라 단(80)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하마스가 기습 공격을 감행하던 지난 7일 가자 국경에서 불과 3㎞ 떨어진 니르오즈 키부츠(집단농장)에 있는 한 집에 다른 3명의 가족들과 함께 숨어 있다가 하마스 대원들에게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노야와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카르멜라는 끌려가던 중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텔아비브에 사는 친척 이도 단은 CNN 방송에 말했다. 이어 그는 노야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 지르고 한 장소에 머무는 특징도 있다며 이 같은 이유로 하마스 테러범들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현재 텔아비브로 피신한 노야의 어머니 갈리트(53)는 두 사람의 시신이 돌아오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사라진 나머지 가족들은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ABC 방송에 밝혔다.그의 조카들인 사하르 칼데론(16)과 에레즈(12), 그리고 매부 오페르(52)가 바로 그들이다. 이 중 에레즈는 납치 당시 모습이 영상에 찍혀 소셜미디어상에 공유돼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그의 누나인 가야(21)가 영상 속 아이가 자신의 동생임을 확인하고, 무사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어머니 하다스도 “슬퍼할 시간 조차 없다. 사라진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며 이스라엘 당국에 인질 구출을 촉구했다.
  • 구상 시인의 발자취를 잇다…영등포 문학상, 구상 한강백일장 열어

    구상 시인의 발자취를 잇다…영등포 문학상, 구상 한강백일장 열어

    서울 영등포구가 구민의 문학창작 활동을 장려하고 역량 있는 문인을 발굴하기 위해 ‘제4회 영등포 문학상’과 ‘제12회 구상 한강백일장’을 연다고 20일 밝혔다. 구는 30여년간 영등포구에 거주하며 한강을 소재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친 구상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 중이다. 구상 시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영등포 문학상’은 영등포의 문화 예술 발전과 구민의 자긍심 고취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 구는 영등포 문학상에서 보다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을 공모하기 위해 기존 구민 대상으로 제한한 자격 조건을 확대한다. 공모 자격은 ▲출생지 또는 현 거주지가 영등포구인 경우(자유 주제) ▲영등포구 거주 기록이 없을 시, 작품의 소재가 ‘영등포’인 경우이다. 기성작가 역시 이미 발표된 작품이 아닌 경우에 한해 공모가 가능하다. 공모 분야는 시와 소설이다. 시는 시조 포함 5편 이상, 소설은 200자 원고지 80장 내외 분량의 1편 이상이다. 당선작 1명에게는 1000만원, 가작 1명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공모 희망자는 24일까지 영등포구청 문화체육과를 방문하거나 담당자 이메일로 작품을 제출하면 된다.아울러 이달 28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구상 시인의 시비가 있는 여의도 한강공원 진성나루 앞에서 ‘구상 한강백일장’이 개최된다. 참가 자격은 ▲전국 초·중·고등학생과 또래 청소년 ▲대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이다. 글제는 행사 당일 현장에서 발표되며, 주제에 맞게 시와 산문(수필 또는 미니픽션)을 작성해 제출하는 방식이다. 시상 부문은 초·중·고등부, 일반부이며 상장과 부상이 제공된다. 고등부 장원과 차상 수상자에게는 중앙대 예술대학장상이 수여된다. 일반부 산문 장원에게는 수필전문지인 <한국산문>에 작품이 게재되는 혜택이 주어진다. 백일장 참여 희망자는 25일까지 구상 한강백일장 카페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영등포 문학상과 백일장 수상작은 부문별로 구성된 심사 위원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선정 결과는 구 홈페이지와 백일장 카페에 공지되고 개별 통보될 예정이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이번 기념사업이 구상 시인의 문학적 발자취를 돌아보고 문화예술계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제2의 구상 시인을 꿈꾸는 구민들이 문학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풍요로운 문화도시 조성에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 당사자 부인에도 김한길 ‘역할론’ 재점화 왜? [주간여의도who?]

    당사자 부인에도 김한길 ‘역할론’ 재점화 왜? [주간여의도who?]

    매주 금요일 [주간 여의도 Who?]가 온라인을 통해 독자를 찾아갑니다. 서울신문 정당팀이 ‘주간 여의도 인물’을 선정해 탐구합니다. 지난 일주일 국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정치인의 말과 움직임을 다각도로 포착해 분석합니다. “어디 안 간다”는 당사자 부인에도 김한길(71)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의 ‘총선 역할론’ 불씨는 쉽사리 꺼지지 않을 듯하다. 연말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고, 김기현 체제2기가 차별화에 실패할 경우 김 위원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른바 ‘구원투수론’이다. 20일 여권 고위관계자는 서울신문 통화에서 ‘흑묘 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를 언급하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역할 할 수 있다”며 그의 역할론에 여지를 남겼다.‘김한길 역할론’이 급부상한 건 국민의힘이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서 참패 한 이후다. 당 안팎에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 중심의 신당을 창당하거나 국민의힘 지도부가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될 경우 그가 중책을 맡을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아직 위원장을 찾지 못한 혁신위 후보로도 언급됐다. 특히 지난 17일 윤 대통령이 국민통합위 만찬 자리에 여당 지도부와 주요 부처 장관 등을 대거 참석시키는 등 그를 한껏 띄우며 김한길 역할론에 힘을 실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선거 패배 등 총선 위기론을 극복해야 할 윤 대통령으로선 중도 실용을 표방해온 김 위원장 역할에 대한 일종의 기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4선 의원을 지낸 그는 이후 정당 대표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등 당·정·청 국정의 주요 분야를 두루 경험한 노련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정치 경력 대부분이 민주당 계열인 데다 과거 여러 차례 정계 개편의 중심축에 선 인물만큼 중도 외연 확장 가능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와 윤 대통령의 인연은 2013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김 위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때 검찰 국정원 댓글 수사팀을 이끌던 윤 대통령을 보고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할 것을 권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 합류해 지금까지 독대하며 정치적 조언을 하는 ‘책사’ 역할을 하고 있다.다만 그의 역할론엔 부정적인 목소리도 따른다. 국민의힘 충남도당위원장인 홍문표 의원은 최근 라디오에서 관련 질문에 “당원들이나 일선 당직자들은 누가 뭐래도 정서와 조직력이다”며 “그런데 ‘저 사람은 우리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저기 가서하지?’라는 정서가 있다면 속도를 내기 어렵다”면서 에둘러 김 위원장의 역할론을 떨쳐냈다. 민주당 출신인 김 위원장이 당의 얼굴로 나설 경우 보수 지지층의 반발 등 역풍이 불 수 있단 설명이다. 김 위원장 역시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지난 17일 국민통합위 간부회의에서 “어디 안 간다”면서 “동요하지 말고 통합위 본연의 업무를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길 위원장 누구? 1952년 9월 17일 도쿄 출신. 김철 전 사회당 의원의 차남으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여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소설 ’바람과박제‘로 등단했고 이후 ’여자의 남자‘라는 소설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후 한국일보 미주지사 기자,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지사 지사장으로도 활동했다. 국민가요 ‘화개장터’를 작사하기도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1996년 15대 총선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으로 배지를 달았다. 이후 16, 17, 19대에서 4선 의원을 지냈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기획 특보를 맡았다. 그는 민주당 분열 과정에서 빚어진 탈당과 합당, 창당으로 ‘창당 전문가’, ‘정당 브레이커’로도 불린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대표 등을 지낸 그는 2014년 안철수와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해 공동대표로 취임했으나 그해 재·보궐 선거해 패배, 사퇴했다. 이후 그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그는 바른미래당에도 합류했으나 건강문제로 적극적인 활동은 하지 못했다. 배우자는 배우 최명길 씨.
  • 발길 닿는 곳마다 ‘혼불’의 서정이 스치네… 눈길 닿는 곳마다 춘향의 사랑이 머무네 [권다현의 童行(동행)]

    발길 닿는 곳마다 ‘혼불’의 서정이 스치네… 눈길 닿는 곳마다 춘향의 사랑이 머무네 [권다현의 童行(동행)]

    최명희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지작가를 아끼는 주민들 마음 모여노봉마을은 ‘혼불마을’로 재탄생젊은 연인들의 포토존 된 서도역‘미스터 션샤인’으로 핫플 떠올라광한루 연못 위 오작교도 가볼 만 개인적으로 좋았던 여행지는 아이와 함께 꼭 다시 찾는다. 사랑스런 공간에 추억을 덧대고 훗날 같이 나눌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두기 위함이다. 이번에 찾은 전북 남원 노봉마을이 그러했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매료되었던 대학 시절 기억을 더듬어 어느 추운 겨울 노봉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해설사 어르신 이야기에 흠뻑 빠져 남원 시내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발을 동동 구르던 내게 어르신은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어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껏 남원을 지날 때마다 안부를 묻는 오랜 친구가 되었다. 그 추억이 너무도 소중해 남편과 한 번, 첫째와 다시 한번 찾았다. 이번에는 둘째와 함께였다. 노봉마을은 남원 사매면 서도리에 속한다. 노봉(露峰)이란 이름은 마을 뒤에 우뚝 솟은 노적봉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1917년 발행된 지명 자료에 노봉마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비교적 최근에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노봉마을은 삭녕 최씨 세거지(世居地)로 알려져 있는데,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을 이끌었던 공으로 영의정에 두 차례나 올랐던 최항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손자 최수웅이 이곳 마을에 은거하면서 대대로 명문을 형성했는데, 최명희 작가도 그의 17대손이다.●노봉마을에 번진 ‘혼불’의 감동 전주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1980년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으로 등단했고 이듬해 ‘혼불’ 제1부를 완성하며 전업 작가로 나서게 된다. 다른 작품 연재는 모두 중단한 채 오로지 ‘혼불’ 집필에만 몰두했던 그녀는 무려 17년 세월을 쏟아부어 5부작, 10권의 대하소설을 펴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부터 1943년까지 매안 이씨 가문을 지키려는 종부 3대와 빈민촌인 거멍굴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 ‘혼불’은 출간 당시 150만부가 팔릴 만큼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노봉마을은 ‘혼불’에서 매안마을로 그려지는 실제 배경으로, 1999년부터 주민들이 직접 나서 ‘혼불마을’을 알리기 시작했다. 추수를 끝내고 마을 주민들끼리 관광에 나섰는데, 노봉마을은커녕 남원도 잘 모르던 사람들이 ‘혼불’ 이야기를 하니 대번에 알아보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주민들은 혼불문학관을 짓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대로 갈아오던 기름진 논을 헐값에 내놓았다. 마침내 지난 2004년 ‘혼불’의 배경이 되었던 노봉마을에 혼불문학관이 들어섰다. 아이에게 혼불마을에 갈 거라고 했더니 혼불이 무슨 뜻이냐 묻는다. 혼불은 사람의 혼을 이루는 푸른빛을 뜻하는 전라도 지역 방언이다. 국어사전에 사람이 죽기 전 혼불이 빠져나가는데, 그 크기가 작은 밥그릇만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이에겐 죽음이란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는지 대뜸 “그럼 우리 귀신마을에 가는 거예요?”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황당한 오해에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십수 년 전 혼불문학관에서 만난 해설사 어르신의 설명이 떠올랐다. “가수는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는데, 최명희 작가도 그랬던 모양이에요. 혼을 불살라 ‘혼불’을 완성하고 끝내 사그라들었으니….” 최명희 작가는 1943년 이후 ‘혼불’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전쟁과 민주혁명까지 수많은 글감이 그의 책상 앞에 쌓여 있었다. 하지만 해설사 어르신 말처럼 ‘혼불’ 집필에 혼을 불살랐던 탓일까, 탈고를 앞두고 난소암 진단을 받게 된다. 무서운 질병과 싸우면서도 끝내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앞으로 써야 할 수많은 이야기를 남겨둔 채 1998년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혼불’이 완간이 아닌 미완성의 대하소설인 이유다. 혼불문학관 입구에는 글쓰기를 대하는 작가의 처절한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는 글귀가 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고 했더니 아이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가 보다. 나이는 몇인지, 어디에 사는지, 아이와 함께 자주 여행을 다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문학관 한편에 재현된 작가의 작업실을 보면서 “엄마도 이런 책상 좋아해요?”,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님은 왜 컴퓨터가 없어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예전에는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썼고, 작가가 그 과정을 바위를 뚫어 손가락으로 글씨를 새기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꼈다고 설명하자 아이 낯빛이 어두워진다. 온 마음을 다해 ‘혼불’을 완성하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엄마는 너무 열심히 글 쓰지 마요. 엄마 좋아하는 만큼만, 아주 조금만 써야 해요!” 아이의 순박한 진심이 작가의 글귀만큼이나 내 마음을 울린다. ●간이역 향수 가득한 가을의 서도역 혼불문학관 내부에는 ‘혼불’ 속에 그려진 당시 세시풍속이나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을 디오라마로 구성한 공간도 자리한다. 작가의 치밀한 취재와 생생한 묘사 덕분인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글로 적힌 것이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혼불’은 문학뿐 아니라 민속학, 인류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다채로운 방언과 사라져 가는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 하나 세울 수 있다면” 바랐던 작가의 소망이 이뤄진 셈이다. 혼불문학관에서 인연을 맺었던 해설사 어르신은 ‘혼불’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말에 서도역에서 문학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꼭 한번 걸어 보라고 권했다. 넓게 펼쳐진 논 한가운데 기차역이 있는데, 그 앞 삼거리가 소설 속에서 천민들의 거주지인 거멍굴과 양반들의 공간인 매안마을을 나누는 길목이다. 서도역은 강모의 아내 효원이 순천에서 신행 올 때 처음 발 디딘 공간으로 묘사된다. ‘혼불’의 주요 배경인 매안 이씨 종가는 여기서부터 한 식경이나 걸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지금은 자동차로 5분 남짓한 거리다. 첫날밤 신부 옷고름도 풀지 않은 채 잠든 강모의 무심한 뒷모습에서 효원은 그녀 앞에 놓인 처연한 운명을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터벅터벅, 매안마을로 걸어 들어가 혹독한 운명에 맞섰던 그녀는 스무 살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인물이다. “어느 한 사람 나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 하여도, 내 속에 내 먹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비루하고 누추하게 남의 문전에서 동정을 얻으려고 서성거리지 않을 것이다”란 구절 때문이다.몇 년 새 서도역은 꽤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구동매(유연석 분)가 철길에 앉아 고애신(김태리 분)을 기다리는 장면에 등장했는데, 여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지난한 세월을 품은 목조건물이 어우러져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 ‘혼불’을 기억하는 이들만 가끔 찾아오던 낡은 간이역이 이제는 젊은 연인들의 포토존이 되었다. 이들을 위한 피크닉 용품 대여 서비스까지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덕택에 나도 둘째와 피크닉 매트를 펴고 앉아 예쁜 추억을 남겼다. 언젠가 아이가 ‘혼불’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렇게 마주 앉아 두런두런 오늘을 떠올려도 좋겠다.●춘향전의 무대, 광한루의 낭만 ‘혼불’에 앞서 남원을 대표하는 이야기, 바로 ‘춘향전’ 아닐까. 아이는 아직 ‘춘향전’을 읽지 않았는데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꾸민 상설 공연이 있어 광한루로 향했다. 작품 속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로 등장하는 광한루는 가상의 공간, 혹은 재현된 곳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명정승인 황희가 남원으로 유배 왔을 때 지은 엄연한 건물로,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인조 16년인 1638년에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래는 광통루로 불렸는데, 조선 전기 문신인 정인지가 달나라에 있다는 궁전(廣寒淸虛府)에 빗대어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도 웅장하고 그 앞으로 펼쳐진 연못과 그림처럼 놓인 오작교가 낭만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에 선보이는 상설공연 ‘신관사또 부임행차’는 춘향테마파크 입구 사랑의 광장에서 시작해 광한루를 오가는 제법 큰 행사다. 신관사또를 위한 육방과 기생의 다채로운 공연과 퍼레이드가 흥을 돋우는데, 100여명에 이르는 배우는 모두 오디션을 거친 지역 주민들이다. 사실적인 분장과 의상, 천연덕스런 연기 덕분인지 아이는 마치 과거로 여행을 온 것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엄마, 남원은 옛날 사람들이 사는 곳이에요?” 광한루 근처에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아이와 함께 찾았다. 남원의 근현대 기록물을 모아놓은 복합문화공간 남원다움관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혼불문학관에서 만난 해설사 어르신의 인터뷰 영상이 소개되고 있었다. ‘혼불 지킴이’, ‘혼불 할매’ 등으로 불리는 황영순씨다. 내게도 스스로를 촌아낙이라고 소개했던 그녀는 우연히 읽게 된 ‘혼불’로 인생이 바뀌었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니 호기심에 펼쳐 든 책이었다. 전주 이씨 문중 종부이기도 한 그녀는 청암부인과 효원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혼불’에 흠뻑 빠지게 되면서 효원의 실제 모델인 삭녕 최씨 종가 며느리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청호저수지, 근심바우 등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찾아냈다. 덕분에 혼불문학관의 해설사로, ‘혼불’ 문학기행의 안내자로 제2의 인생을 맞게 되었다. 지금도 그의 서가에 꽂혀 있던 너덜너덜한 ‘혼불’ 초판과 이튿날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내게 쥐여 줬던 따뜻한 누룽지 한 덩이를 잊지 못한다. 내게 남원이 ‘춘향전’ 대신 ‘혼불’로, 추어탕 대신 누룽지 한 덩이로 남은 이유다.●아이는 호기심, 어른은 추억의 세계로 아쉽게도 황영순 어르신의 영상은 그새 다른 전시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1층 야외에 마련된 물놀이터 덕분에 신이 났다. 땀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뛰어놀고는 그제야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남원다움관 1층에는 남원 시내 지도와 함께 공간 하나하나에 쌓인 주민들의 소소한 기억들을 수집해 뒀다. 2층은 아이와 함께 둘러보기 좋았다. 인력거를 타고 남원의 근현대 거리를 달려 보는 가상체험 콘텐츠를 비롯해 엄마아빠의 학창 시절 추억까지 떠올리게 하는 오락기, 1960~70년대 만화방과 다방, 사진관 등이 재현돼 남원의 정체성은 물론 아련한 복고 감성도 즐길 수 있다. 특히 옛 만화를 따라 그리는 데 관심을 보인 아이가 ‘독수리 오형제’를 쓱쓱 그림으로 담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엄마가 어릴 때 재미있게 봤던 만화라고 하니 완성된 그림을 선물이라며 건넨다. 전시는 바뀌었어도 또 하나의 기억을 덧댄 셈이다.●굽이치는 지리산 능선이 발아래 남원은 지리산이 품은 도시다. 산을 즐겨 오르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 아이와 함께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면 그 첫 번째는 지리산 아닐까 싶다. 훌쩍 자란 아들과 서로를 밀고 끌어 주며 지리산을 종주하는 꿈을 마음 한편에 간직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아이를 위해 이번 여행에선 정령치를 골랐다. 정령치휴게소 주차장에서 계단만 오르면 굽이치는 지리산의 능선을 발아래 담을 수 있는 명소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면 개령암지 마애불상군까지 걸어 보길 추천한다. 대부분 평탄한 숲길이어서 아이가 걷기에도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 절벽에 새겨진 12구의 불상이 신비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깎여 온전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바위에 새긴 온화한 눈매와 부드러운 옷 주름이 경건함만은 잃지 않았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밝혀진 이들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
  • ‘개의 후원받는 예술가’… 작품 태워야 비싸진다는 역설 곱씹다

    ‘개의 후원받는 예술가’… 작품 태워야 비싸진다는 역설 곱씹다

    팬데믹 때 기업들 후원 끊기자음식 배달 라이더 나선 주인공가혹하지만 ‘예술가’의 삶 열망‘자본’ 결정으로 작품 소각 위기생존 문제로 창작 욕구 떠밀어“그래도 꿈을 얘기하는 게 예술” “나는 개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다.” 윤고은의 새 장편 ‘불타는 작품’은 중의적이면서도 강렬한 문장으로 영미권 출판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개의 후원’에서 개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의미하겠거니 어림짐작하고 소설로 들어가면 허를 찔린다. 실제로 부유한 사업가로부터 미술재단을 넘겨받은 ‘사진 찍는 개’ 로버트가 예술의 후원자이자 예리한 비평가로 작가들을 정해 지원에 나서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절 기업의 후원이 끊기며 ‘예술’ 대신 음식 배달 라이더로 ‘밥벌이’에 나서게 된 안이지. 그에게 로버트로부터 후원 작가로 낙점됐다는 전갈이 온다. 지원은 풍요롭다. 하지만 단 하나의 조건이 가혹하다. 16주간 미국 팜스프링스에 있는 재단에서 지내며 만든 작품 가운데 로버트가 선택한 작품 하나를 ‘소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르는 집세에 점차 변두리로, 예술의 세계에서 현실의 진창으로 내몰리던 안이지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재단에서의 나날은 의구심과 불쾌감의 연속이다. 로버트는 일종의 번역기인 블랙박스와 재단 직원, 영영 통역사, 영한 통역사까지 총동원해 나누는 대화와 편지 등을 통해 오만과 힐난으로 뭉친 언어로 안이지를 창작으로 몰아붙인다. 그는 점차 작품 활동에 몰입해 들어가면서도 최고의 작품이 끝내 자신의 소유가 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다. 가혹한 동아줄을 부여잡고서라도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 내 창작품을 ‘자본’의 결정으로 불태울 수 없다는 고민 사이의 갈등이 이야기를 추진해 나가는 동력이 된다.작가는 ‘개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라는 설정을 통해 자본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예술의 운명을 화두로 펼쳐 놓는다. 작품을 소각하는 ‘이벤트’ 자체가 작품 가격을 한껏 띄우고 작가가 명성을 얻는 길이라는 것, 그것이 예술의 성취가 되고 예술가가 되는 길이라는 이 한 편의 ‘블랙코미디’는 사실 현실에 대한 지독한 재현이다. 이런 설정은 경매에서 낙찰되자마자 작가가 액자에 숨겨 둔 파쇄기를 작동시켜 하단이 갈가리 찢겨 나간 뱅크시의 작품 ‘풍선 없는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2018년 낙찰 당시 가격이 17억원이었다가 2021년 경매에서 304억원까지 뛰며 미술품 가격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안이지처럼 초반에는 개가 미술재단의 후원자라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에 자꾸만 이야기에서 미끄러지게 된다. 하지만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솜씨 좋게 꿰는 작가의 작법은 어느새 어딘가에 있을 법한 세계라고 독자를 설득시킨다. 재단 바깥 풍경이 캘리포니아 산불에 ‘디스토피아’로 변모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생존의 문제로 창작의 욕구는 밀어내야 하는 예술가들의 핍진한 현실을 보여 주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믿고 싶은 것은 소설 속 이 문장이다. “나는 예술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는 막다른 골목이지만, 꿈으로 넘어가 계속 얘기하자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게 예술가가 우리에게 심어 주는 빛이죠.”(155쪽)
  • [책꽂이]

    [책꽂이]

    모던 키친(박찬용 지음, 에이치비프레스) 농장과 공장과 주방에서 음식이 만들어져 세상으로 나오고 연결되는 모습을 쫓았다. 귀농자와 외국인이 농업의 세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인천 중국집이 배달비를 받지 않는 이유 등을 풀어낸다. 2년간 40여곳의 식품공장, 식당 주방, 농업 현장 등을 취재해 230장의 사진으로 담았다. 472쪽. 2만 2000원.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라(유범상 글, 유기훈 그림, 마북) 누구나 존중받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좌충우돌하는 민달팽이 마중이의 여정을 그렸다.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자유권, 사회권, 안전하게 일할 권리, 생명권 등 인권의 주요한 주제를 우화로 담고 깊이 있는 해설을 붙였다. 생생한 삽화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304쪽. 1만 9000원.밤이 오면 우리는(정보라 지음, 현대문학) 지난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저자의 중편소설로 ‘현대문학’에 실린 작품을 개작했다. 한때 인간이었던 흡혈인과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인조인간이 기계에 대항하는 사투를 통해 궁극적인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묵직한 주제를 속도감 있게 그렸다. 140쪽. 1만 4000원.로마 이야기(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가득하지만 정작 관심 있는 외국인 여성에게는 이방인처럼 소외당하는 중년 남성 작가의 이야기 ‘P의 파티’를 비롯해 로마를 배경으로 한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인도계 미국인 작가가 그동안 주목한 경계인의 정체성에 대해 끈질긴 질문을 던진다. 288쪽. 1만 6800원.변덕 마녀의 수상한 죽 가게(나우주 지음, 김영사) 먹기만 하면 원기가 충전되는 변덕죽으로 유명한 마녀에게 어느 날 번아웃이 찾아오고, 마녀는 이곳저곳을 떠도는 방랑을 시작한다. 단편 ‘안락사회’로 토지문학상을 받은 이후 번아웃으로 방황하던 저자가 오랜 시간 칩거하며 곱씹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마녀라는 캐릭터에 녹여 냈다. 156쪽. 1만 2000원.특별한 날 특별한 동화(최도영 글, 김민우 그림, 별숲) 초등학교 4학년 동화가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설날, 생일 때 겪는 소동을 연작으로 엮었다. 동화는 특별한 날 어떤 선물을 받을지, 용돈을 얼마나 받을지 기대하지만 소동이 일면서 최악의 날이 된다. 그럼에도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행복 가득한 진짜 특별한 날을 맞는다. 160쪽. 1만 3000원.
  • 서사 중독된 호모나랜스… 이야기꾼이 역사가 된다

    서사 중독된 호모나랜스… 이야기꾼이 역사가 된다

    전 세계 수천 개의 신화 똑같은 패턴 진행… ‘강력한 이야기’가 인류 미래 좌우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2020)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한 사람당 10센트를 받고 신문을 읽어 주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남북전쟁 참전 장교 출신 주인공이 등장한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단순히 신문 뉴스를 읽어 주는 것뿐인데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낯설다. 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신문이 거의 유일했지만 디지털 기술 덕분에 이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소셜미디어(SNS), 오디오북, 전자책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넘쳐난다.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 용량을 넘어서는 수준의 이야기가 있음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스토리를 찾는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에 ‘중독’됐을까.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전 세계 수천 개에 이르는 신화와 전설을 분석한 결과 이야기의 패턴은 예외 없이 똑같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역의 신화와 전설들이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인간에게 ‘이야기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자도 ‘뇌리에 박히는 강력한 이야기가 인류 생존에 도움이 됐기 때문’에 인류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는 진화론적 설명에 동의한다. 원시시대 동굴에 살았던 고대인들은 커다란 동물이나 사나운 육식동물 사냥에 나섰다가 돌아온 사냥꾼 주위에서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들었을 것이다. 재미도 있지만 사냥을 나갔다가 살아 돌아오는 방법에 대한 교훈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인간은 슬기로운 사람(호모 사피엔스)이 아니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고 주장한다.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 속에만 있지 않다. 뉴스, 교육, 광고를 비롯해 정보가 교환되는 모든 곳에는 경쟁, 구원, 변신, 복수, 약자, 러브스토리, 자기희생 등 서사 구조가 존재한다.이런 서사가 정치인이나 정치에 이용되면 단순한 재미를 넘어 치명적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책은 지적한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각종 음모론과 가짜뉴스들이 대표적이다. 가짜뉴스, 음모론 같은 서사가 위험한 것은 이야기 속 숨은 부정적 관념이 뇌리에 박혀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사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미 서사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 사람이 있긴 했다. 바로 플라톤이다. 그는 ‘국가’라는 책에서 “이야기꾼들을 폴리스에서 추방해야 한다”며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다.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아 죽게 되는 과정에 당시 이야기꾼이었던 시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라는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를 사기꾼으로 묘사했고 아테네 시민들은 이 가짜뉴스를 믿고 소크라테스의 사형에 적극 동의했다. 이야기는 삶을 구할 수도, 투표 결과를 좌우할 수도,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우리 미래를 좀더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는 희망적 서사를 만들고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잘못 전하고 있다는 단순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잘못된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이성’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 [문화마당] 풀빵이면 어떻겠냐고/이은선 소설가

    [문화마당] 풀빵이면 어떻겠냐고/이은선 소설가

    “아버지,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붕어빵 꼬리야말로 붕어빵의 생명이죠.” (중략) “붕어뿐만이 아니다. 물고기의 생명은 심장이 아니라 꼬리에 있다. 꼬리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물고기의 삶이 결정되는 거야. 붕어빵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도 꼬리야. 꼬리부터 먹건 머리부터 먹건 꼬리가 모든 걸 좌우한다. 머리부터 먹는 사람의 달달해진 입안을 꼬리가 말끔하게 씻든가, 꼬리부터 먹으면서 바삭한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든가.”(김학찬 ‘풀빵이 어때서’) 붕어빵 장수 아버지의 업을 이어 다코야키 장수가 된 아들에게 아버지가 내려준 매우 흥미로운 정의다. 가히 음식에 관한 설왕설래 중에서도 난제에 속하는 ‘순대의 장은 무엇을 찍어 먹느냐’나 ‘짬뽕인가 짜장면인가’에 필적하는 ‘붕어빵은 머리부터 먹느냐 꼬리부터 먹느냐’에 관한 작가의 날카로운 해석이다. 한 가지 일을 평생 해 온 사람 특유의 단정한 태도로 단언하는 거두절미(去頭截尾). 김학찬의 소설을 떠올리고 나니 이 사자성어가 붕어빵의 머리를 가르고 꼬리를 자르라는 말 같기도 하다. 바야흐로 풀빵의 계절이 돌아왔다. 찬바람이 부는 것과 동시에 개장하는 포장마차 중에 단연 으뜸은 붕어빵과 어묵 국물이 아니겠는가. 노점에 한해서만 ‘오뎅’이라는 말을 쓰기로 하면 안 될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붕어빵과 어묵 국물의 조합을 찾아나서는 사람은 비단 나만은 아닐 텐데 그 역사를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각자가 아는 붕어빵과 어묵 국물에 관해서라면 본인들 나이테만큼의 에피소드들이 지층처럼 빼곡할 것이다. 학교와 학원 사이 광천역 앞에 붕어빵을 팔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그 길로 나가서 다 써버리곤 하던 나와 달리 한 살 터울의 오빠는 나름 계획성 있는 지출을 하곤 했는데, 바로 한 달 치 붕어빵 소비에 대한 계획이었다. 늘 얼마간의 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오빠에게 약간은 비굴한 얼굴로 손을 내밀면 얼굴은 찌푸리면서도 빵은 사 줬다. 나는 받을 때만 고마워하고 뒤돌아서면 곧바로 잊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서 용돈이 조금 올랐을 때는 붕어빵을 굽는 그 틀 위에 쥐포까지 얹어 주는 포장마차로 옮겨 가 ‘단짠단짠’한 맛을 즐겼다. 쥐포 뜯어서 먹던 손으로 피아노를 친다고 학원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다. 이게 다 찬바람 아니 소설 ‘풀빵이 어때서’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소설가와 투수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하면 투수들은 화를 내거나 ‘소설 쓰고 있네’라고 웃을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가 되면 시구(始球)를 할 수 있을까.” 10년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흡사 작은 야구공 같은 다코야키들을 문장으로 구우며 시구를 수천 번 연습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머리와 꼬리의 순서가 중요한 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보다는 갓 구운 풀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함께 먹고 싶은 이를 생각하며 집어든 따뜻한 풀빵 봉지를 품는 손에게 잘 끓인 어묵 한 그릇 같이 먹자는 말을 건네고 싶은 여유를 가지는 것이 시구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안팎의 추위에는 그게 최고 아니겠는가. 그런 뒤엔 또다시 포장마차의 축축한 비닐 덮개를 걷어 볼 힘이 생기지 않을까. 이게 다 찬 거리의 풀빵 덕분이다.
  • ‘사소한 일’의 팔 작가 시블리 시상 취소…말레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보이콧

    ‘사소한 일’의 팔 작가 시블리 시상 취소…말레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보이콧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 아다니아 시블리는 세계 최대의 도서박람회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오는 20일(현지시간) 도서전 산하 문학진흥단체 리트프롬이 수여하는 리베라투르상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고 이스라엘이 보복 공습을 지속해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바람에 주최 측은 시상을 취소한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발행되는 타게산차이거는 “이런 시대에 이스라엘을 살인 기계로 묘사한 소설이 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주최 측이 답한 것이었다. 시블리의 작품 ‘사소한 일’(Minor Detail, 2020, 도서출판 강)이 반이스라엘과 반유대주의 감성을 문화계에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작품은 1949년 이스라엘군 부대가 베두인족 소녀를 살해한 실화에다 수십 년 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행정도시 라말라에서 이 범죄를 조사하는 여성 언론인의 활약을 상상력으로 버무렸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편드는 이들에게는 무척 불편할 수 있는 내용임에 틀림없다. 공교롭고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굳이 시상을 취소할 이유가 없었는데 주최 측은 작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성급히 시상 취소부터 발표했다. 이에 전 세계 작가 350여명이 공개 서한을 보내 비판하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다. 17일에는 팔레스타인을 편들 수밖에 없는 말레이시아가 주최 측의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이유로 올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 최대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18일 개막해 22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 교육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명백히 국제법을 어기고 인권을 침해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폭력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교육부는 이번 결정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 다수가 무슬림인 말레이시아는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왔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이 시작된 후에도 일관되게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해 왔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도 전날 의회에 출석, 서방 국가들이 하마스에 대한 규탄을 요구했다고 비판하며 하마스와의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 “섬진강이 내 시(詩) 속으로 들어온 것이지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마주한 시적인 순간 [인터뷰]

    “섬진강이 내 시(詩) 속으로 들어온 것이지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마주한 시적인 순간 [인터뷰]

    “섬진강은 제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줄곧 봐 온 친숙한 강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니 섬진강이 내 시(詩) 속으로 들어온 것이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며 정감 어린 시로 많은 사랑을 받는 김용택(75) 시인은 지난 14일 충북 제천시 포레스트 리솜에서 ‘김용택 시인과 함께 하는 시/詩/적인 순간’을 주제로 열린 문학 콘서트에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섬진강 시인’이라는 애칭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섬진강을 벗삼아 살아가고 있는 김용택 시인은 이날 문학 콘서트에서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시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솔직 담백하게 공유했다. 1948년 진메마을에서 태어난 김용택 시인은 1969년 순창농림고교 졸업한 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2008년 8월 덕치초등학교에서 30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퇴임했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 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해 ‘꺼지지 않는 횃불’, ‘강 같은 세월’,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지금도 활발한 작품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는 문화부 기자로 30년 넘게 문화계 인사들을 만난 서동철 논설위원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여기저기 아프죠. 나이가 들면 (몸과 마음이) 좀 더 편해질 줄 알았는데. 인생이라는 게 살아가면서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으로 202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압둘라자크 구루나(Abdulrazak Gurnah)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분은 소설을 집중적으로 보는데 지금 세 권을 읽었고, 칠레의 민중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시 평전을 두 번을 읽었죠. 그리고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의 ‘총 균 쇠’도 읽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문학에서 나가고 싶은 거죠. 그래서 우리가 처한 우리 인류의 문제라든가 경제 문제라든가 정치 문제라든가 뭐 이런 문제들이 우리나라도 복잡하지만, 사실은 세계 속에 다 들어 있거든요. 그래서 시각을 좀 다르게 해서 시를 쓰려고 합니다. ➜ ‘섬진강 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계신데요. - 섬진강은 제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늘 보던 강입니다. 학교 다닐 때 강을 거슬러 다녔고, 교사 생활을 하면서 걸어 다니던 그냥 친숙한 마을 앞 강일 뿐입니다. 제 시의 모태가 된 곳입니다. ‘섬진강 시인’이라는 이름은 제가 문단에 나올 때 ‘섬진강’ 연작을 쓰다 보니 평론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붙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 앞에 국토의 어떤 명칭이 붙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부담이 될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국민에게 불리는 애칭이) 제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 스스로를 서정 시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전쟁, 코로나 등 세계적인 이슈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구 공동체 자체가 굉장히 역동적이다라고 볼 수 있죠. 제가 주로 서정시를 쓰고 있지만, 서정시라고 해서 그런 문제를 도외시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서 우리 인류 문제를 더욱더 깊이 관여하고 개입하고 또 그것이 시로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 선생님의 시가 읽기 편한 서정시로 생각했는데 세상의 문제를 깊이 다루고 계시네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자체가 산중 깊은 곳에서 홀로 살 수는 없고, 세상과 부딪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외면할 수가 없죠.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어떤 사회적인 생각을 담지 않는 시는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사는 농촌, 농민, 농사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시대적인 정서, 감정, 감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죠. ➜ 1980~90년대에는 세상 문제를 다룬 참여적인 시가 많았는데요. - 그때는 ‘시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이후 한 30년 동안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부딪히는 굉장히 격동적인 시기였습니다. 직접적인 언어로는 시대와 대결할 수가 없으므로 시적 은유라든가 시적인 비유 이런 것들이 세상의 움직임과 같이 갈 수밖에 없으므로 굉장히 치열했습니다. 그래서 시가 사람들한테 많이 읽혔죠. 그때는 시가 앞서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죠. ➜‘선생님 시인’으로도 불리시는데 어떻게 교직 생활을 시작하셨나요. - 제가 교사가 될 무렵인 1969년에는 전국적으로 교사가 너무 많이 모자랐습니다. 특히 시골에는 더 많이 모자랐죠.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나온 사람들한테 교사 시험 볼 자격을 주고 4개월 동안 교육을 했습니다. 제가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고 있는데 친구들이 시험 보러 가자고 해서 갔는데 이게 덜컥 합격이 됐습니다. 그래서 38년 동안 선생을 했는데 제가 태어나고 자란 모교(덕지 초등학교)에서만 31년을 근무했습니다.➜ 한 학교에서 30년을 넘게 교사 생활을 하셨는데요. - 제가 근무할 때 전라북도 교육 인사원칙이 선생님이 한 학교 5년 밖에 못 있어요. 그럼 5년 있다가 다른 학교로 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마암분교(현 마암초등학교)가 모교인 덕지초등학교의 이웃 면에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싫어서) 덕지초등학교에서 5년 있다가 이웃 학교로 가서 1년 있다가 다시 덕지초등학교로 다시 왔습니다. 그래도 마암분교에 가서는 좀 오래 근무했습니다. 5년 넘겨 있었습니다. ➜ 교사 생활하시면서 동시도 여러 편 쓰셨는데요. - 처음에는 동시를 안 썼는데 학교에서 학생들과 동시를 쓰는 시간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쓰는 시들을 보니 꽤 잘 쓰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한번 써 봐야 하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동시를 썼는데 한 15일 만에 동시집 한 권을 썼죠. 그때 쓴 동시가 ‘콩 너는 죽었다’라는 시집입니다. ‘콩 너는 죽었다’가 유명한 책이 되어 초등 교과서에 실려 있고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굉장히 유명한 시집이 됐죠. 지금도 동시를 쓰기도 합니다.  ➜ 학생들과 함께 시집도 내셨는데요. - 당시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쓴 시집을 냈는데 독일과 일본 등 외국에서 취재할 정도로 굉장히 유명해졌습니다. 독일이나 일본에서 방송하고 그랬었죠. (시집이 유명해지면서) 제가 마 분교에 있을 때 처음으로 교환학교라는 걸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입니다. 도시의 아이들이 마암분교에 와서 처음에는 2~3주일 공부하다가 갔는데 점점 늘어나 1년씩 있었죠. 그러다 보니 유명해지고 도시에서 아이들이 많이 오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폐교 직전의 작은 학교였던 마암분교가 지금은 마암초등학교로 아주 큰 학교가 됐습니다. 전주에서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학생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덕지초등학교는 학생이 줄어서 지금 6명이 다닌다는 것 같아요.  ➜ 지금 사시는 진메마을은 많이 변했나요. - 지금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예쁘죠. 자연은 변한 게 없습니다. 변한 게 있다면 예전에 있던 한옥을 해체해서 다시 복원했고 그 뒤에다가 집을 지어서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 한옥 툇마루에 있던 ‘관란헌’(觀瀾軒)이라는 현판을 ‘회문재’(回文齋)로 바꿨습니다. 관란헌이라는 이름이 좀 어려워요. 그래서 초등학교 바로 뒷산이 회문산(回文山)이라서 회문재로 했습니다. ‘글이 돌아오는 집’이라는 뜻인데 아주 예쁘잖아요. ➜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많죠, 그런데 제가 마을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고 또 수선스럽지 않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을에 사람이 거의 없지만 다 여든이 넘으신 분들입니다. 제가 마을에서는 소장파예요. 제자들은 몇 명 가끔 만나서 밥을 먹고 그럽니다. 이제 다 같이 늙어서, 모여 있으면 내가 젊어 보여요. ➜ 진메마을에서 문학 교실도 운영하시는데요. - 초·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신청하면 강연해주고 글쓰기도 가르쳐 주고 그렇게 있었는데 귀촌하신 분들이 찾아오셔서 문학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만나서 글쓰기를 하는 데 이분들이 굉장히 글을 잘 써요. 지금까지 시집을 4권이나 냈거든요. 모두 8명인데 예순, 일흔이 다 넘은 분들입니다. 저보다 한 살 많은 분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글을 가르쳐 달라고 오셨는데 어른들이라서 뭐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고, 그냥 모여서 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모였다가 갈 수 없으니 글을 한 줄씩 써와서 읽자고 제안했고, 이렇게 하다 보니 시를 한편씩 쓰게 된 것이지요.  ➜선생님의 시가 교과서에 많이 실리고, 시험에도 많이 출제되는데 (시험을 보시면) 정답을 맞추실 수 있나요. - 솔직히 저는 못 맞추죠. 정답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제가 이제 전주 살 때 여고 앞을 지났는데 여학생들이 “김용택 선생님, 저기 가신다”라면서 제게로 뛰어오는 거예요. 그리고 앞에 오더니 대뜸 “오늘 선생님 때문에 국어 문제를 틀렸어요”라고 그래요. “왜”라고 물었더니 “선생님 시가 시험에 나왔는데 (너무 어려워서) 다 틀렸다고”고 말해요. 그리고 언젠가는 학부모님들한테 전화가 와서 “우리 아이가 이렇게 썼는데 이게 맞지 않느냐, 근데 (학교) 선생님이 틀렸다고 한다”라며 정답을 물어봐요. 그래서 내가 그러죠. “저도 (정답을) 몰라요. (학교) 선생님들이 맞으시겠죠.”라고요.➜선생님의 시가 시험 문제로 출제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그래서 아이들이 시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시험 문제를 틀리니 기분 나쁘죠. 김용택의 시 읽다가 틀렸는데 기분이 좋지는 않잖아요. 시에 대한 어떤 뭐 친숙함, 시를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그런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나 대학 때 기본적으로 교과서에서 월트 휘트먼(Walter Whitman)이나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를 배우고, 공부하죠. 우리가 시를 계속해서 공부해야 상상력, 인간을 지키려는 노력, 또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 또 아름다움 등이 살아나잖아요. ➜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잖아요. 너무 격하고 너무 적대적이고 적개심을 가진 그런 말들이 횡행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날카로워졌어요. 그리고 길을 가다 보면 사람들의 표정이 뭔가를 경계하거나 굉장히 공격적으로 보여요, 도시에서는 특히 더 그렇죠. 정치적으로 굉장히 격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심하죠. 그러다 보니 안심, 평화, 또 아름다움, 점잖음, 성실함, 착하고 선량함 등 중요한 인간 덕목들이 사라졌죠. 이런 나라가 무섭습니다. (웃음)➜ 앞으로 준비하고 계신 시집이 있으신가요. - 올해 시집이 나왔어요. 앞으로는 내 시로부터 도망간 시를 쓰고 싶어요. 지금의 시는 너무 갇혀 있어요. 시를 감옥에 비유하면 시인들이 시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 벗어나고 싶죠. 요즘 벗어난 시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뭐 다 만들어 본 건 아니지만, 시도는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후 독서의 범위를 굉장히 넓혔습니다. 아프리카나 중동, 남아메리카의 칠레나 브라질 등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있습니다.  ➜ 선생님이 다시 ‘섬진강’을 주제로 시를 쓰신다면 내용이 좀 다를까요. - 이제 (기존의) 시에서 도망가고, 나가려 합니다. 나한테 나가고, 나한테서 떠나야 하고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계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번역된 외국 시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시적인 어떤 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자유자재로 어디에 구애됨이 없이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쓰고 싶습니다.
  • ‘문화예술의 1번지’ 탄생 20주년…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예술제 20일 개막

    ‘문화예술의 1번지’ 탄생 20주년…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예술제 20일 개막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생긴 지 20주년 기념 예술제 개막을 앞두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서부지역 문화예술 특화공간으로 조성 운영하는 저지 문화예술인마을 설촌 20주년을 맞아 ‘아트 & 저지(ART & JEOJI) 2023’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2003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등 유명 예술가들이 하나 둘 둥지를 틀면서 현재 회화, 조각, 서예, 공예,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입주해 있는 이곳은 2007년 제주현대미술관이 저지예술인마을에 건립되면서 저지리는 ‘문화·예술의 1번지’로 거듭났다. 얼마전 작고한 박서보 화백을 비롯, 한국 화단의 거목 김흥수 화백, 김창열미술관, 최근엔 유동룡(이타미 준)미술관까지 개관해 문화예술에 목마른 사람들의 갈증을 달래주고 있다. 저지 문화예술인마을 입주 예술인인 주민협의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2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29일까지 다채로운 프로 그램을 선보인다.20일 오후 3시 현대미술관 분관 야외광장에서 입주 예술인,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개막식이 열린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현대미술관 분관에서 입주 예술인들의 대표 창작작품 20점을 선정해 합동 전시를 개최하고, 입주 예술인 갤러리 15곳에서 한국화, 서양화, 서예, 수묵화 등 다양한 작품을 개별 전시한다. 또한, 입주 예술인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한국화, 문인화, 돌 조각 등 문화예술 체험, 김연수 소설가의 문화예술 강연, 아틀리에 전시 투어가 이뤄지며, 김창열미술관에서는 가수 하림과 장들레가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도 마련된다. 특히 지역주민들과 입주 예술인들이 함께 참여해 농산물, 식물, 음식, 아트상품 등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을 열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교류의 장을 펼친다. 김창열 화백과 건축가 유동룡의 일생을 각각 영화로 제작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이타미준의 바다’ 등 문화예술 영화를 지역주민, 입주 예술인, 방문객들이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마을극장도 운영한다. 오성율 도 문화체육교육국장은 “저지 문화예술인마을이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서부지역 특화 문화예술 공간으로 도민과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올해 제14회 김만중 문학상 대상 수상자...소설 김연수, 시 황인숙

    올해 제14회 김만중 문학상 대상 수상자...소설 김연수, 시 황인숙

    경남 남해군은 올해 ‘제14회 김만중 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소설부문에 김연수 작가, 시 부문에 황인숙 시인이 선정됐다고 16일 밝혔다.남해군은 최근 제14회 김만중문학상 심사위원회와 제2차 운영위원회를 열고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쓴 김연수 소설가와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의 작가 황인숙 시인을 각각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소설부문 신인상은 ‘마음에 없는 소리’ 작가 김지연 소설가, 시·시조 부문 신인상에는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를 지은 정재율 시인이 각각 수상자로 선정됐다. 소설부문 대상 수상자 김 소설가는 경북 김천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 ‘강화에 대하여’외 4편이 당선돼 등단한 뒤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발표한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문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시·시조 부문 대상 수상자 황 시인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돼 등단했다. 1999년 제12회 동서문학상, 2004년 제23회 김수영문학상, 2018년 제63회 현대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남해군은 김만중 문학상은 기존 문학상 공모 방식에서 벗어나, 추천위원회로 부터 추천작품을 접수 받은 뒤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2단계 과정을 도입해 문학상 제도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있다고 밝혔다. 소설 부문 심사는 백시종·김종성 소설가가, 시·시조 부문은 나희덕·이문재 교수가 맡아 심사를 진행했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남해군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대상은 2000만원, 신인상은 500만원이다. 남해군은 서포 김만중 선생의 작품 세계와 문학 정신을 기리고 유배문학을 계승해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2010년부터 해마다 김만중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한다.
  • 美 1920년대 흑역사, 송나라 핏빛 추격극…거장이 풀어낸 역사

    美 1920년대 흑역사, 송나라 핏빛 추격극…거장이 풀어낸 역사

    동서양 거장의 역사물이 잇따라 개봉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생생한 화면, 최고의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가 영화의 맛을 제대로 보여 준다.●19일 스코세이지 ‘플라워 킬링 문’개봉 오는 19일 개봉하는 마틴 스코세이지(왼쪽)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①은 한 부부의 이야기로 1920년대 미국의 추악한 역사를 들춘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 어니스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에서 큰돈을 번 삼촌 헤일(로버트 드니로)을 찾아가 일자리를 구하면서 시작한다. 헤일은 택시 운전을 주선하며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릴리 글래드스턴)에게 접근하도록 권한다. 몰리의 어머니와 자매들이 죽으면 상속을 받을 수 있다며 범죄를 부추긴다. 1894년 마을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된 이후 오세이지 부족은 채굴권을 가지고 땅을 개발업자들에게 임대하며 막대한 부를 손에 쥔다. 돈에 눈먼 백인들이 몰려들어 이들을 노렸다. 미 정부 주도하에 후견인 제도가 도입돼 백인 후견인들이 돈을 챙겼다. 특히 이들의 사망 후 토지와 석유 지분권 등 수익권 제도를 노리고 가짜 결혼과 살인이 횡행한다.데이비드 그랜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플라워 문’(프시케의숲)을 원작으로 했다.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코미디의 왕’(1982), ‘좋은 친구들’(1990), ‘에비에이터’(2004) 등 영화사에 빛나는 작품을 연출한 스코세이지 감독은 영화에서 어니스트와 몰리의 사랑을 중심으로 미국의 흑역사를 묵직하게 그려 낸다. 그는 “그동안 오세이지족 내지는 원주민 부족사회 외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디캐프리오와 드니로는 각자의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206분. 청소년 관람불가.●장이머우 ‘만강홍’ 스토리텔링 탁월 장이머우(오른쪽) 감독의 ‘만강홍’②은 금의 침략에 맞선 송나라 장수 악비가 친금파 재상 진회의 모함으로 죽음을 맞이한 1142년에서 5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진회는 수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금나라 사신을 만나기 위해 접경으로 향한다. 회담 바로 전날 금나라 사신이 살해당하고, 진회에게 전하려던 밀서가 사라진다. 밀서를 찾으라는 명을 받은 소병 장대(선텅), 통령 손균(이양첸시) 등 6명의 암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붉은 수수밭’(1988)을 시작으로 ‘귀주 이야기’(1992), ‘인생’(1994) 등 세계 영화제 최고상을 휩쓴 장이머우의 장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주요 인물의 이야기를 엮어 낸 감독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가히 탁월하다. ‘문맨’(2023)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줬던 선텅이 영화를 쥐락펴락한다. 손균 역으로는 ‘소년 시절의 너’(2020)로 데뷔한 이후 주목받는 이양첸시가 합을 맞춘다. 158분. 15세 이상 관람가.
  • 거장이 그려낸 역사…스코세이지 ‘플라워 킬링 문’, 장예이머 ‘만강홍’

    거장이 그려낸 역사…스코세이지 ‘플라워 킬링 문’, 장예이머 ‘만강홍’

    극장가에 동서양 거장의 역사물이 잇따라 개봉해 눈길을 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플라워 킬링 문’으로 1920년대 미국 서부, 장예이머 감독은 ‘만강홍’으로 800년 전 송나라로 관객을 초대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생생한 화면, 최고의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가 영화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19일 개봉하는 ‘플라워 킬링 문’은 한 부부의 이야기로 1920년대 미국의 추악한 역사를 들춘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 어니스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오세이지족 보호구역에서 큰돈을 번 삼촌 헤일(로버트 드니로)을 찾아가 일자리를 구한다. 헤일은 택시 운전을 주선하며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릴리 글래드스턴)에게 접근해보라고 권한다. 그에게 어머니와 자매들이 있는데 죽으면 상속을 받을 수 있다며 범죄를 부추긴다. 1894년 이 마을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된 이후 오세이지 부족은 채굴권을 가지고 땅을 개발업자들에게 임대하며 막대한 부를 손에 쥔다. 돈에 눈먼 백인들이 물밀듯 몰려들어 이들을 노렸다. 미 정부 주도하에 후견인 제도가 도입돼 백인 후견인들이 돈을 챙겼다. 특히 이들 사망 후 토지와 석유 지분권 등 수익권 제도를 노리고 가짜 결혼과 살인이 횡행한다.데이비드 그랜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플라워 문’(프시케의숲)을 원작으로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코미디의 왕’(1983), ‘좋은 친구들’(1990), ‘애비에이터’(2004) 등 영화사에 빛나는 작품을 연출한 감독은 영화에서 어니스트와 몰리의 사랑을 중심으로 미국의 흑역사를 묵직하게 그려낸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그동안 오세이지족, 내지는 원주민 부족사회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 없었던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속물적이면서 우둔해 몰리를 사랑하면서도 범죄에 빠져드는 인물을 빼어나게 연기한다. 드니로는 오세이지족을 위한다면서도 그들을 서슴없이 죽이고, 친족마저 범죄로 내모는 소름 돋는 헤일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206분. 청소년관람불가.11일 개봉한 만강홍은 금의 침략에 맞선 송나라 장수 악비가 친금파 재상 진회의 모함으로 죽음을 맞이한 1142년에서 5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진회는 수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금나라 사신을 만나고자 접경으로 향한다. 회담 바로 전날 금나라 사신이 살해당하고, 진회에게 전하려던 밀서가 사라진다. 밀서의 내용이 알려지면 진회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는 소병 장대(선텅)와 통령 손균(이양첸시)에게 동이 트기 전까지 2시간 안에 밀서를 찾아내라고 엄명을 내린다.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채 밀서를 확보하려는 6명 간의 암투가 펼쳐진다. ‘붉은 수수밭’(1988)으로 제3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귀주 이야기’(1992), ‘인생’(1994)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휩쓴 감독의 장기가 이번 영화에서도 그대로 선보인다. 정해진 공간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가운데 권력자들과 간신, 그리고 서민의 정체가 드러난다.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주요 인물의 이야기를 엮어낸 감독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가히 탁월하다.‘문맨’(2023)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선텅이 장대로 분해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진지함으로 영화를 쥐락펴락한다. 손균 역으로는 ‘소년 시절의 너’(2020)로 데뷔한 이후 주목받는 이양첸시가 합을 맞춘다. 외세의 침략을 받은 남송의 역사에서 민족 영웅으로 자리 잡은 악비 장군의 우국충정을 도드라지게 그려냈다. 중국의 애국 정서를 지나치게 부각한 후반부가 거슬린다. 그럼에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재미가 있다. 158분. 15세 이상 관람가.
  • 치명적인 매력의 소녀?...‘롤리타 패션’ 베트남서 열풍 [여기는 베트남]

    치명적인 매력의 소녀?...‘롤리타 패션’ 베트남서 열풍 [여기는 베트남]

    머리에 달린 커다란 리본, 프릴 달린 풍성한 드레스, 호치민시의 대학 1년생인 히에우(19,여)씨의 등교 복장이다. 마치 동화 속 어린 공주님의 차림새로 눈길을 끈다.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일명 ‘롤리타 패션’의 옷차림을 좋아했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이런 옷차림을 하고 외출을 할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녀는 “롤리타 패션에는 여러 스타일이 있다"면서 “나는 주로 학교에 어울리는 ‘클래식 롤리타’를 입는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쳐다봤는데, 지금은 반 친구들이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히에우 씨는 현재 300개가량의 롤리타 드레스를 보유하고 있다. 롤리타 패션은 1980~90년대 일본에서 스트리트 스타일의 한 형태로 등장해 200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속 소녀 ‘롤리타’(1955)가 기원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풍기는 소녀의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시도는 비슷해 보인다. 베트남에서 5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롤리타 스타일을 사랑하는 젊은이들’ 그룹의 관리자인 응웬 투이 짱(28,여)씨는 “약 10년 전 롤리타 패션이 베트남에 소개되었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초부터 14~27세의 젊은이들이 롤리타 드레스를 입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엣 웅(30,여) 씨는 지난 5년간 롤리타 상품을 판매해 왔다. 주로 하노이와 호치민에 거주하는 14세~29세의 여성 100명가량이 매달 방문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방문객 수는 지난해의 2배, 3년 전의 10배가량으로 급증했다. 웅 씨가 판매하는 아이템들은 주로 중국과 일본에서 들어오며 가격은 50만~400만동(약 2만7000원~22만원) 가량이며 일부 제품은 수천만 동에 이르기도 한다. 하노이에서 중고 롤리타 가게를 운영하는 키우 뉴(26) 씨는 9월에만 물건을 빌리거나 사 간 손님이 200명을 훌쩍 넘겼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달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그는 "기존 고객 외에 최근에는 화려한 공주풍의 드레스를 원하거나 색다른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롤리타 드레스를 빌리거나 구매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롤리타 드레스는 주로 해외 주문이라 물건이 도착하기까지 한 달에서 최대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한 번 주문 시 3~4개의 드레스와 양말, 리본, 신발, 브로치 등의 액세서리도 세트로 주문한다. 최근 베트남에서는 롤리타 패션 관련 축제들이 개최되고 있다. ‘롤리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의상 축제의 조직위원장은 “호치민시 담센 문화공원에서 매년 1회 개최되는 행사에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처음 행사가 시작된 2019년에는 2000명 이상이 참가했고, 지난해에는 약 1만 명이 축제를 찾았다. 참가자 중 14~28세 청년층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한편 심리학자 짠 흐엉 타오 씨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고, 군중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롤리타 패션이 인기를 끄는 것”이라면서 “착용자가 행복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지역 사회는 이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롤리타 복장이 지나치게 화려해 공공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저널리즘 및 커뮤니케이션 아카데미 강사인 루 후엔 짱 씨는 “롤리타 패션은 파티나 축제 등의 사적 공간에나 어울리는 복장이지, 일상생활에서는 실용성도 떨어지고 베트남 문화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 ‘꼬막의 본고장’ 보성군, 제19회 벌교꼬막축제 개최

    ‘꼬막의 본고장’ 보성군, 제19회 벌교꼬막축제 개최

    전남 보성군이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벌교읍 천변 일원에서 ‘제19회 벌교꼬막축제’를 개최한다. 군은 가족이 함께 즐기는 주민참여형 축제로 준비했다. 다양한 공연과 체험 행사, 꼬막 노래자랑, 초청 가수 공연 등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제공된다. 축제 첫날인 27일은 벌교 길놀이를 시작으로 2000인분 꼬막 비빔밥 만들기, 꼬막 무료 시식, 진혼제, 제22회 벌교읍민의 날 기념식이 진행된다. 둘째 날인 28일은 태백산맥문학관 15주년 행사, 황금 꼬막을 찾아라, 채동선실내합창단 공연, 바퀴 달린 널배타기 대회 등이 열린다. 29일은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소설 태백산맥 주무대 문학기행, 청소년 경연대회, 어울림한마당으로 마무리된다.군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보성군이 지역민과 함께 준비한 가을 대표 축제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시길 바란다”며 “벌교꼬막축제를 통해 보성의 멋과 맛이 널리 알려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벌교읍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보성 벌교갯벌에서 전국 꼬막의 7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꼬막의 본고장이다. 벌교의 갯벌은 다른 지역과 달리 모래 황토가 섞이지 않은 차진 진흙 펄로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벌교 꼬막은 수산물 지리적표시 1호로 여자만의 깊고 차진 갯벌에서 생산돼 다른 어느 지역의 꼬막보다도 육질이 쫄깃하고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 가장 아름다운 복수, 용서… 극단·분열의 치료제, 애도

    가장 아름다운 복수, 용서… 극단·분열의 치료제, 애도

    “용서가 없으면 인류는 생존할 방법이 없다.” 극단의 분열과 분노가 서로 치받는 시대, 용서와 화해가 세상을 구할 가치라는 고언이 소설로 펴 나왔다. ‘인간시장’(1981)의 작가 김홍신(76)이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다. 1971년 ROTC 출신의 육군 소위 한서진은 사살된 북한 장교의 시신에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 준다. 흙으로 돌아가는 영혼의 마지막 순간 앞에 피아(彼我) 구분은 부질없는 것, 그의 넋을 위무한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됩니다. 흙은 빨갱이도 적군도 아닙니다. 그냥 흙일 뿐이니 미워할 가치도 없습니다.”(67쪽)하지만 엄혹한 시기 국가권력은 그를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한 ‘빨갱이’로 몰아 형무소에 가둔다. 가족은 물론 생에서 착실히 쌓아 올린 것들을 한꺼번에 잃은 그는 제 안에 내재된 인류애를 잃고 복수심에 매몰돼 범행을 저지른다. 죽은 넋을 위해 기도하는 손. 이는 작가가 1971년 강원 철책선 부대에서 육군 소대장으로 복무했을 때의 경험에서 뿌리를 낸 것이다. 당시 부대에서 육로로 침투하던 북한군을 사살하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작가는 시신 옆에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를 꽂고 기도를 건넸다. 이 일로 보안대의 조사를 받은 것까지가 ‘팩트’이고 이후는 ‘픽션’이다. ●“용서·애도하는 마음, 이념·좌우 갈등 완화해 줄 것” 작가는 “요즘은 ‘빨갱이’가 흔히 하는 말이지만, 우리 젊은 시절에만 해도 ‘빨갱이’라는 호명은 가장 잔혹한 형벌이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념, 좌우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는 양상을 우려하며 타인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애도하는 마음이 이를 완화하고 해소할 수 있을 거란 바람을 전했다. 당시의 경험을 가슴에 품고 있다 50년 만에 소설로 세상에 내보낸 이유다. 점차 용서의 가치를 깨달아 가는 한서진을 통해 작가는 무너지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키려는 인간의 존엄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최고의 복수는 상대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가치를 굳건하게 지켜 내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서진의 딸 자인이 아버지의 유고를 읽고 그의 삶을 짚어 보는 액자식 구성으로 짜인 소설은 현재와 과거의 동선을 자유롭게 오간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작품에 대해 “당대의 정치적 억압과 군문(軍門)의 부조리한 제조들, 서슬 퍼렇게 잔존하는 이념의 허상을 헤치고 인간이 왜 존중받아야 하는지 실감나게 서술했다”고 평했다. 다만 작가가 거듭 강조한 복수에서 용서로 돌아서는 ‘각성’의 과정을 치밀한 조직감으로 서사를 쌓아 올리는 대신 간략히 봉합하는 듯 마무리해 아쉽다. ●3년 뒤 등단 50년… “두 권 더 써 140권 완성하고싶어” 3년 뒤면 등단 50주년을 맞는 작가의 목표는 앞으로 소설 두 권을 더 써 140권의 저작을 완성하는 것이다.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게 살자고 기도한다. 쓰는 속도는 느리지만 죽는 날까지 정진해 내 이야기를 사랑해 준 독자들에게 보답할 방법을 찾겠다.”
  • 옆집에 사는 특별한 이웃, 인간보다 더 인간다웠다[웹툰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옆집에 사는 특별한 이웃, 인간보다 더 인간다웠다[웹툰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길었던 올해 추석 연휴 성수기를 노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TV, 극장 등에선 비현실적인 소재들이 대세였다. OTT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에 휘말린 초능력자들의 이야기인 디즈니 플러스의 ‘무빙’, 극장가에서는 무당과 귀신, 부적과 퇴마를 소재로 만든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TV에서는 모계 유전을 통해 대대로 괴력을 이어받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같은 작품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적 이야기들을 앞서는 이때, 대세의 흐름을 따라 비현실적 소재를 다룬 웹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2021년 12월부터 카카오웹툰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금산 작가의 ‘옆집 이방인’이다.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와 네 살짜리 여동생 하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하령이는 소설가를 꿈꾸는 여고생이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엄마와 어리지만 특이한 개그 코드를 가진 귀여운 여동생을 돌보며 매일 노트에 손 글씨로 소설을 습작하는 하령이는,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하령이는 그들의 왕따에 절대 굴하지 않는다. 자신에 관한 관심을 끄라고 담담히 말하면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중이다. 그런 하령이네 옆집에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밤 아주 단출한 짐으로 두 명의 남자가 이사를 온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그들은 창백한 얼굴과 붉은 입술에 곱디고운 손, 연예인 뺨치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아버지는 아예 외출하지 않고, 아들은 대리운전기사로 일하며 밤에만 움직인다. 가끔 마주치는 하령에게는 알 수 없는 외국어를 툭툭 내뱉으며 무심하게 지나간다. 창문의 커튼까지 꼭꼭 닫은 채로 햇빛을 아예 마주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단절된 그들에게 하령은 자꾸 관심이 간다. 그사이 하령이에 대한 왕따는 점점 심해져 이젠 남학생들까지 가세한 끔찍한 폭력까지 경험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마저 짓밟힌 하령에게 미스터리한 옆집 청년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하령을 구해 주면서 그렇게 둘만의 독특한 관계가 시작된다. 옆집 사람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뱀파이어. 그들은 인간과 거리를 두며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그들도 큰 고통을 겪는 중이다. 작가는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이방인이라는 단어와 연계시키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옆집에 사는 뱀파이어 이방인들은 공포나 악마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하령이를 괴롭히는 주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따스한 온기를 지녔다. 조금산 작가는 ‘시동’, ‘세상 밖으로’ 등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모두 영상화돼 재미의 보증수표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최신작 ‘옆집 이방인’은, 그간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판타지 장르의 왕도라고 할 만한 뱀파이어를 소재로 흥미롭고 독특한 재미를 준다. 작품을 읽어 보며 작가가 만들어 낸 현실 세계 같은 판타지를 한번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뱀파이어 이방인이 있다면 만나게 됐을 때 느꼈을 아주 흥미롭고 생경한 감정을 하령이와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백수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팀장
  • 시처럼 소설처럼… 도시에 가득 퍼진 문향

    시처럼 소설처럼… 도시에 가득 퍼진 문향

    일본 규슈와 혼슈, 시코쿠 사이에 세토 내해라는 작은 바다가 있다. 일본에선 처음으로 국립공원의 하나로 지정된 바다다. 외해의 거친 바닷물이 밀려드는 비좁은 입구를 제외하면 사방이 육지로 막혀 일종의 지중해(地中海)를 이룬다. 일본인들이 이 바다를 보는 지리적 심상은 꽤 복잡한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노스탤지어, 향수라고 한다. 세토 내해를 사이로 마주 보고 있는 두 도시를 렌터카로 돌아봤다. 꿈이 사라진 시대에 문학으로 도시를 복구한 에히메현, 군사 도시에서 평화 도시로의 변신을 꿈꾸는 히로시마현이다. 정석과 같은 패키지 코스를 외면하고 좌충우돌 이어 간 여정이었지만, 잘 드러나지 않던 일본 소도시의 내면을 볼 수 있어 나름 만족할 수 있었다.에히메현부터 간다. 시코쿠의 4개 현 가운데 하나다. 시코쿠의 북쪽에서 세토 내해와 접하고 있는 작은 현이다. ‘시코쿠에서 일본을 읽다’ 등 국내 서적과 일본의 각종 여행 관련 문서를 종합하면 바다 전체를 하나의 내해로 보는 개념이 발생한 건 에도시대 때다. 흔히 이 일대를 두고 ‘일본의 원초적 풍경’이나 ‘일본인의 마음속 고향’ 등과 같은 수식어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설적으로 세토 내해의 이미지를 결정지은 건 서양인이라고 한다. 당시 세토 내해 지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유럽 문화의 발상지인 지중해와 닮았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이후 거칠고 넓은 대해가 아닌 정적이고 온화한 낙원이나 일본 문명의 기원 등으로 세토 내해가 표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세토 내해는 이후 1934년 나가사키의 운젠 등과 함께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이때 일본인들 사이에 형성된 지리적 심상은 작은 섬과 항구, 온화한 기후, 온천, 전통 산업 등이었다. 여기에 현대 일본인들에게 향수라는, 잔잔하면서도 휘발성 강한 감성을 촉발시킨 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이다. 동명의 소설(2001)과 영화(2004)로 세상에 나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소설과 영화의 주 무대로 등장하면서 수많은 일본인의 시코쿠에 대한 가슴앓이도 시작됐다. 초콜릿처럼, 달콤한 과거 속에 씁쓸한 현실을 가두는 이런 지리적 심상은 현재도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에히메현청이 있는 마쓰야마는 흔히 문학 도시로 불린다.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의 출생지이자 근대 하이쿠의 발상지이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봇짱’(도련님)과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 등의 배경이 됐다. 이 도시 중심에 있는 ‘언덕 위의 구름 뮤지엄’, 마쓰야마성 등을 돌다 보면 왜 일본인들이 에히메 같은 소도시에 아련한 감정을 갖게 됐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세상의 중심에서…’ 소설·영화 히트주 무대였던 세토 내해 ‘향수’ 폭발‘문학도시’ 마쓰야마 하이쿠 발상지소설 ‘봇짱’ ‘언덕 위의 구름’ 배경현존 12천수각의 하나 마쓰야마성 정상에서 시내 전체를 한눈에 조망‘센과 치히로’ 모티브였던 도고온천주변엔 상점가·중요문화재 볼거리 마쓰야마는 하이토(俳都)라 불린다. 이름 그대로 하이쿠(俳句)가 태동한 도시란 의미다. 하이쿠는 일본의 대표적인 운문 문학이다. 특정한 달이나 계절 등 자연에 대한 시인의 인상을 묘사하는 서정시다. 모두 17음으로 이루어지는 형식성을 가져 정형시로 분류된다. 고래로부터 이어지던 일본의 단가를 개혁해 하이쿠로 정착시킨 인물은 마쓰야마 출신의 마사오카 시키(正岡 子規, 1867~1902)다. 자신의 이름을 두견새를 뜻하는 자규(시키, 子規)에 비유한 것에서 보듯, 한 편의 시처럼 짧고 강렬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마쓰야마에 그를 기념하는 공간이 여럿 있는데 ‘언덕 위의 구름 뮤지엄‘은 그중 하나다. 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산케이신문에 연재한 동명의 소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건물을 설계한 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안도 다다오다. 건물의 모티브가 된 건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세 인물이다. 건물 안팎이 만지면 벨 듯한 삼각형 구도를 갖게 된 건 이 때문이지 싶다. 아름다운 건물이긴 해도 한국인이라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제국 일본’이라는 국가의 영광에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마사오카 시키는 시인이었지만 전쟁을 고양하는 시를 지으며 종군 기자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다만 건강이 나빠 생애 대부분을 병자로 지낸 탓에 전쟁의 흔적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서 문인이었던 마사오카는 전체 분량의 4분의1 지점에서 사망하고, 나머지는 러일전쟁에 참전한 두 군인 형제의 이야기로 채워지게 된다. 결국 뮤지엄이 표면상으론 문학을 강조하지만 실은 군인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삼은 전쟁기념관과 다름없다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아쉬운 부분이다. 건물 바로 옆에 ‘봇짱’(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을 쓴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유적이 있다. 1895년 당시 묵었던 하숙집 자리다. 그가 쓴 ‘봇짱’은 지금도 마쓰야마의 관광 테마로 활용되고 있다. 그 옆의 반스이소는 옛 마쓰야마 번주의 별장이다. 1900년 초 상류층 사교의 장으로, 지금은 전시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박물관 바로 위는 마쓰야마성이다. 1603년부터 260여년간 이어진 에도 시대의 덴슈(天守)가 남아 있는 일본 내 12개 천수각, 이른바 ‘현존 십이 천수각’의 하나다. 성내에 국가중요문화재만 21채에 달한다. 사실상 성 자체가 문화재인 셈이다. 마쓰야마 내 건물 55%가 불탔다는 1945년 미군 공습에도 살아남았다. 덴슈는 일본의 상징적인 건물 양식이다. 덴슈가쿠(天守閣)라고도 한다. 덴슈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천수각’이라 칭하는 망루 형태의 장대한 건축물을 말한다. 덴슈와 같은 형태의 건축물은 이웃한 한반도나 중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중세 유럽의 성곽과 비교해도 구조나 형태에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덴슈는 일본의 성곽 건축이 갖는 독자성 또는 특수성으로 분류된다.현존 덴슈는 일본 전역에 단 12곳이다. 메이지 당시 폐번치현을 거치며 상당수 성곽이 매각되거나 변질되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번에선 주민 손에 성곽이 파괴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가운데 마쓰야마 등 시코쿠의 도시 4곳에 덴슈가 남아 있다. 겨우 우리 경북도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시코쿠에서 꽤 많은 덴슈가 살아남은 셈이다. 마쓰야마 덴슈는 그중에서도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중요 건물이다. 마쓰야마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132m)의 정상에 선 덕에 시내 전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마쓰야마성까지는 로프웨이(3분 소요)나 리프트(6분)로 오른다. 리프트는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1명씩 타고 이동한다. 안전벨트도 없어 앞뒤로 흔들거릴 때마다 살짝 스릴도 느껴진다. 도심에서 이어진 산책로도 있긴 한데, 오르기가 만만하지 않아 관광객에겐 ‘비추’다.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라는 도고 온천도 인근에 있다. 역사가 무려 3000년을 넘나든다는 온천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건물이기도 하다. 1894년 지었다는 본관 건물은 현재 공사 중이다. 별관과 일부 시설만 이용할 수 있다. 온천 주변에 250m에 달하는 상점가, 135단의 돌계단을 올라야 만나는 중요문화재 이사니와 신사 등 볼거리가 있다.■취재협조 한·에히메경제관광교류협의회
  • [문화마당] 아시안게임으로 대동단결(!)/정승민 ‘일당백’ 유튜버

    [문화마당] 아시안게임으로 대동단결(!)/정승민 ‘일당백’ 유튜버

    태극마크를 달고 시상대에 오른 선수의 모습은 가슴을 뛰게 한다.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연주되면 울컥 치미는 응어리가 있다. 이 순간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하나가 된다. 세대와 성별을 가로질러 모두가 대한민국이다. 얼마 전 끝난 아시안게임에서 공유한 감정이다. 스포츠는 주기적으로 국민들의 일체감을 만들어 낸다. 애국심을 끌어올리는 데 이만큼 가성비가 높은 것도 없다. 구한말 독립신문은 조선이 나라가 될 수 있는 근거로 축구를 꼽았다. 경기하는 학도들의 승부욕이 ‘일본 학생보다 백 배 낫고 서양 아이들과 비스름하다’는 것이다. 당시 축구나 야구는 서양의 문물과 동일시됐다. 외국에서 들어온 운동을 잘하면 문명국이 될 자질은 충분히 입증된다는 논리다. ‘풋뽈’을 차는 젊은이야말로 조선의 진짜 사나이라는 타이틀을 쥘 수 있었다. 사실 스포츠는 독립변수가 아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스포츠민족주의를 분석하면서 현실 세계의 전쟁을 상상의 전투장으로 축소시킨 것이 올림픽이라고 말한다. 대회 소식은 격파, 대첩, 승전보 따위의 전투용어로 점철돼 있다. 시합을 중계하는 진행자는 선수 개개인의 승부보다 한국이 일본에 이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민적 결집을 이루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도구는 없다. 애초부터 스포츠는 근대의 국가 사업이 될 운명이었다. 많은 연구가 보여 주듯이 ‘백성’은 저절로 ‘국민’이 되지 못한다.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상상의 공동체’를 저술한 베네딕트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이나 국민은 심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인이나 한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모두가 공유하면 정치적 공동체가 생겨난다. 표준어로 만든 교과서를 배우고 같은 내용의 신문이나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는 하나’라는 관념이 밸 수밖에 없다. 운동도 동일한 효과를 낸다. 국민을 만드는 종목의 하나가 체조다. 프로이센의 참전 용사였던 프리드리히 얀은 외세에 맞서려면 강한 체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평행봉, 철봉 등으로 구성된 체조 교과 편성은 그가 노력한 결실이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조차 학창 시절에 혀를 내두른 체조 교육은 군사훈련과 흡사했으며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피에르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동기도 내셔널리즘이다.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를 운동회의 시대라고 부를 만큼 국민 만들기 차원에서 체육을 중시했다. 조선의 신식 학교도 체조를 가르치고 운동회 때마다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의례를 거행했다. 국민국가 형성과 스포츠 보급은 보조를 같이해 온 셈이다. 이렇게 훈습된 국민적 정서는 국제 경기마다 폭발적으로 분출한다. 금메달을 통해 ‘대한국인’임을 재확인하고 민족적 우월감을 강화할수록 좋기만 한 것일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커다란 승리엔 커다란 위험이 있으며 승리의 결과가 보다 중대한 패배를 가져올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스포츠 대회의 실적을 국가나 민족의 우열과 동일시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감정적 거리 두기를 약간만 하면 게임은 좀더 평화롭고 유익한 즐길 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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