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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가 투수라면 독자는 타자… 타구가 어디로 갈진 저도 모르죠”[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소설가가 투수라면 독자는 타자… 타구가 어디로 갈진 저도 모르죠”[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소설가 김홍(38)을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야구연습장으로 불러낸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작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에 실린 첫 번째 작품 ‘인생은 그라운드’ 때문이다. 야구가 사라진 세상에서 기어코 투수가 되겠다는 주인공. 해 본 운동이라고는 학생운동뿐인 그가 캐치볼 하듯 자연스레 던진 공이 시속 100㎞를 찍는다. 야구를 좀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일반인이 가볍게 던져서는 이런 구속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혹시 재능이 있는 걸까. 살짝 설렜지만 큰 의미는 없다. 세상에서 야구는 이미 사라졌으니까. 5일 만나기로 약속한 야구연습장에 김홍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색한 인사를 뒤로하고 그에게 준비한 야구방망이를 건넸다.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사진기자의 지시에 따라 이런저런 포즈를 열심히 취한다. 그런데 어딘지 좀 어색해서 물어봤다. ‘사회인야구 같은 거 안 해 봤어요? 대학 때 동아리라도….’ 멋쩍어하는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안 해 봤는데요….” 사진은 적당히 찍고 얼른 근처 카페를 찾아 소설 이야기나 해야지 싶었다. “제 소설이 웃긴다고요? 왜 웃기지…. 저는 일단 진지하게 쓰려고 하거든요. 갑자기 ‘갤럭시’나 야구공이 되지 않도록 평소에도 주의하면서 지내는 편이에요.” 김홍의 소설은 웃긴다. 너무 황당한 장면의 연속인데, 처음에는 피식 웃다가 슬슬 거기에 중독된다. 그다음부턴 걷잡을 수 없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웃긴 기류가 만들어지면 뭐만 해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다. 실제로 만나 보니 진지하고 차분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 웃긴다. 진지한 사람이 글을 이렇게? 시쳇말로 ‘뻘하게 터지는’ 웃음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실소랄까. 소설은 거짓말의 예술이고 소설가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구라꾼’일 텐데, 김홍은 어쩌면 기자 앞에서 혼신의 예술을 펼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이 웃긴다는 건 좋은 일이죠. 그런데 작가가 독자더러 ‘어디서는 웃으세요’라고 강요할 순 없잖아요. 슬픔이든 웃음이든 ‘낙차’가 중요한 거죠. 이 낙차가 웃긴 걸까요?” 김홍의 소설은 독자의 예상을 벗어난다. 그것도 좀 많이. 그러니 괜히 머리 쓰면서 골치 아플 필요는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시라. 기왕 야구 이야기를 꺼냈으니 구종에 비유하자면 낙차 큰 포크볼 정도다. 대학에선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방송사에서 잠깐 기자로도 일했다. 성정에 맞지 않아서 금방 때려치우고 전업 소설가로 전향했다. 뉴스 틀어 놓는 걸 좋아한단다. 그의 작품엔 국정원장을 지낸 원세훈도, 쿠팡 의장 김범석도 등장한다. 방송인 백종원은 심지어 대통령 출마도 선언한다. “공인의 이름이 갖는 부피감을 좋아해요. 현실의 맥락이 제거되면 공백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가 생기겠죠. 물론 이들을 좋게 쓰지만은 않아요. 세간의 평가가 있으니까. 원세훈씨도 이런 건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네요. 혹시 제 소설에 불만이 있으면 전화 주세요. 밥 한 끼 하면서 얘기해 볼까요.” 2017년 신문사 신춘문예로 데뷔하기 전까지 몇 년간 여러 문예지의 문을 열심히 두드렸다. 쉽게 얻어질 꿈이 아니었으니, 당시 낙방이 이어지던 시절 위안이 됐던 건 프로야구 관람이다. 마치 아침드라마처럼 중독적인. 다시 태어나면 소설가 대신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과거 LG트윈스의 ‘날쌘돌이’, 지금은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는 이대형을 콕 집었다. 잘생겼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그는 타자보다는 투수가 어울린다. 낙차 큰 포크볼을 구사하는 한국문학의 노모 히데오. 소설가가 투수라면 독자는 무엇인가. “당연히 타자죠. 포수처럼 최선을 다해 내 공을 받아 주지 않으니까요. 심지어 내 편도 아니잖아요. 매 타석 대결을 벌입니다. 강타자가 내 공을 쳐서 멋진 아치를 그리기도 하는데, 저는 그걸 넋을 놓고 감상하죠. 그러니 소설가는 ‘져도 되는’ 투수라고나 할까요.”
  • ‘2024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에 소설가 김종성

    ‘2024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에 소설가 김종성

    제17회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소설가 김종성(사진)이 선정됐다. 이병주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이병주국제문학상은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의 작가 이병주(1921-1992)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제정됐다. 대상 상금은 2000만원. 수상작은 김종성의 세 번째 연작소설집인 ‘가야를 찾아서’(서연비람)다. 1992년 ‘가야를 찾아서’부터 2023년 ‘가야를 위하여’에 이르기까지 30년 남짓 가야사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작가의 집념과 열정이 녹아든 단편 소설 2편과 중편 소설 3편으로 이루어졌다. ‘가야를 찾아서’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현대 인물의 활동을 그린 바깥 이야기와 역사 속 인물을 그린 안 이야기로 다양한 인간의 삶과 그 궤적을 보여준다. 이 작품집은 “탄탄한 묘사력과 풍부한 어휘력을 구사하면서 시대적 삶의 본질과 진실에 대한 굳건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는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강원도 평창 출신인 작가는 탄광 노동자의 삶을 다룬 중편소설 ‘검은 땅 비탈 위’가 1986년 제1회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연작소설집 ‘마을’, ‘탄(炭)’, ‘연리지가 있는 풍경’을 비롯해 ‘말 없는 놀이꾼들’, ‘금지된 문’ 등의 작품집을 냈다. 작가는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를 역임하며 ‘한국환경생태소설연구’와 ‘글쓰기와 서사의 방법’, ‘한국어 어휘와 표현’ 등의 연구 성과도 책으로 펴냈다. 전 10권의 ‘누가 봐도 재미있는 김종성 한국사’는 한국문학과 한국사 연구에 매진하여 얻은 성과이기도 하다. 한편 올해 이병주국제문학상의 학술연구상은 ‘이병주의 지리산, 또는 회색의 군상’을 발표한 문학평론가 안준배, 경남문인상은 시인 박우담, 공로상은 최증수 전 이병주문학관장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5시 경남 하동 이병주문학관에서 있다.
  • 조경란 단편소설 ‘그들’, 올해 김승옥문학상 대상

    조경란 단편소설 ‘그들’, 올해 김승옥문학상 대상

    소설가 조경란(55)의 단편 ‘그들’이 올해 김승욱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됐다고 문학동네가 20일 밝혔다. ‘그들’은 계간 ‘문학동네’ 2024 여름호에 수록됐다. 조경란은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일요일의 철학’과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혀’ 등을 썼다.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승옥문학상은 ‘무진기행’, ‘서울의 1964년 겨울’ 등을 쓴 소설가 김승옥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2013년 제정된 문학상이다. 등단 10년 이상 작가들이 한 해 발표한 단편소설 중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 수여하며, 대상 상금은 5000만원이다. 올해 우수상에는 강태식, 반수연, 신용목, 안보윤, 이승은, 조해진의 작품이 선정됐으며, 이들에게는 상금 500만원씩이 주어진다. 수상작품집은 내달 출간될 예정이다. 시상식 일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김승옥이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보낸 전남 순천에서 열릴 예정이다. 주관사인 문학동네는 이날 2024 문학동네신인상도 함께 발표했다. 시 부문은 이현아의 ‘비평’ 외 4편, 소설 부문은 주나영의 ‘우리의 산책’, 평론 부문은 단요의 ‘참조와 창조―도시의 교환 제의, 그리고 대항 형식으로서의 텍스트’가 당선됐다.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투계(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임도울 옮김, 문학과지성사) “어느 날 밤, 내가 수탉 한 마리를 인형처럼 두 팔로 안고 가던 중 닭의 배가 터져 버렸는데, 그때 나는 그 아저씨들, 어찌나 마초인지 닭에게 상대 닭을 반으로 쪼개 버리라고 소리 지르고 부추기던 그 아저씨들이 죽은 닭의 창자와 피와 닭똥을 보고는 구역질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두 손과 무릎과 얼굴을 그 창자와 피와 똥으로 범벅이 되게 했고, 그랬더니 더이상 키스나 멍청한 짓거리로 나를 엿 먹이지 않았다.” 여성, 작가,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라틴아메리카의 복잡한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폭력의 실상을 까발리는 이 소설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적확하고 시적인 언어, 상징적인 힘과 긴장감이 넘친다”고 평했다. 시인 김혜순,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추천했다. 224쪽. 1만 5000원.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한정원 지음, 난다) “여름은 슬픔처럼 살며시 사라진다고, 에밀리 디킨슨은 썼다. 분명 다른 계절이 끝나갈 때와는 다르지. 왜 여름은 유독 사라지는지. 증발하고 휘발하는지. 기체인지. 움켜쥘 수 없는 무엇인지. 하는 수 없는 사랑 같은지.” 시인 한정원이 감각한 여름의 느낌이 가득한 에세이집이다. 마냥 사랑할 수 없는 무더운 여름을 시인은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표현한다. 햇볕 뒤편의 나무 그늘, 여름비가 고인 웅덩이, 침묵으로 향하는 종소리 등 여름보다도 여름이 남긴 흔적으로 시선을 보낸다. 144쪽. 1만 5000원.루트비히와 코뿔소(노에미 슈나이더 지음, 골든 코스모스 그림, 이명아 옮김, 여유당) “코뿔소가 크든 작든 이 방에는 없어. 코뿔소는 동물원에나 있지. / 아빠가 증명할 수 있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 루트비히는 방에 코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빠는 여기저기 코뿔소를 찾지만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스승이었던 버트런드 러셀과 벌였던 ‘코뿔소 논쟁’을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으로 옮겼다. 예리한 철학적 사유를 강렬한 그림으로 버무렸다. 40쪽. 1만 7000원.
  • 시인 박세미·소설가 김기태, 제42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시인 박세미·소설가 김기태, 제42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시인 박세미와 소설가 김기태가 제42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창비는 박세미의 시집 ‘오늘 사회 발코니’(문학과지성사)와 김기태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문학동네)를 수상작으로 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박세미의 시집에 대해 “시와 현실의 공동공간인 ‘발코니’를 내세워 치열한 자기성찰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기태의 소설집에 대해선 “평범한 개인들에 대한 특별하고 애정 어린 시선과 치밀한 구성으로 동시대성을 다시 감각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신동엽문학상은 시 ‘껍데기는 가라’, ‘금강’ 등을 쓴 1960년대의 대표적 참여시인 신동엽(1930~1969)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역량 있는 문인을 지원하기 위해 시인의 유족과 창비가 공동제정한 상이다.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문인이 최근 2년간 한국어로 쓴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심사해 선정한다. 상금은 각 2000만원으로, 시상식은 오는 11월 말 열릴 예정이다. 창비는 창비신인문학상 수상작도 함께 발표했다. 제24회 창비신인시인상에는 김진선의 시 ‘때맞춰’ 외 4편이, 제27회 창비신인소설상에는 문소이의 소설 ‘마이 리틀 그리니’가 선정됐다. 제31회 창비신인평론상은 당선작이 나오지 않았다.
  • ‘숨’ ‘아름다운 얼굴’, 소설가 송기원 별세

    ‘숨’ ‘아름다운 얼굴’, 소설가 송기원 별세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숨’, ‘아름다운 얼굴’ 등의 작품을 남긴 작가 송기원이 별세했다. 77세. 1일 문학계에 따르면 전남 해남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던 송기원은 숙환으로 치료를 받아 오다 전날 오후 숨을 거뒀다. 1947년 전남 보성 출생인 고인은 1967년 고교 재학 당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1974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각각 시와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문인 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하는 등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실천문학사 주간으로 일하기도 했다. 서울신문과의 인연도 있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위원을 맡아 현재 문단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김이설 소설가를 발굴했다. 남긴 작품으로는 소설집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숨’(2021) 등이 있다. 빈소는 대전 유성구 선병원 장례식장 VIP 3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8시. (042)825-9494.
  • 삶과 관계에 대한 고민…‘김려령표 입말’로 풀다

    삶과 관계에 대한 고민…‘김려령표 입말’로 풀다

    8년 동안 그러모은 단편 7편 엮어상투를 거부하는 문장·서사 주목갈등서 연대까지 다양한 삶 담아 2007년 창비청소년문학상과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마해송문학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한 김려령(53) 작가가 소설집 ‘기술자들’로 돌아왔다. 만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리드미컬한 대사와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그의 전작들은 문단에서는 물론 타 장르에서도 사랑받았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은 영화화됐으며 ‘트렁크’는 올해 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공개될 예정이다. 상투를 거부하는 솔직한 문장과 대화체 입말 등 ‘김려령표’라 할 수 있는 매력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전히 빛난다. “너 알지? 그 황금 꽃다발 태명이 네 꿈이라는 거. 네 형도 잘 알 거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뻐했던 놈이 바로 너였다는 걸.”(‘황금 꽃다발’), “아 씨! 그녀가 얼른 봉지를 밖으로 꺼냈다. 다행히 봉지가 터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 여기를 들라고. 딸이 다시 들고 쓰레기장으로 걸어갔다.”(‘청소’) 등 불쑥 큰따옴표 없이 시작하는 입말은 글의 속도감을 높이고 독자와 인물 사이의 거리를 좁혀 놓는다.작가가 8년간 그러모은 7편의 단편은 비루한 관계로 인해 오는 피로에서부터 연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한다. 특히 도식적이지 않은 가족 서사들은 삶과 관계에 대한 굵직한 고민의 궤적을 남긴다. ‘세입자’의 주인공 ‘나’의 가족은 호시탐탐 나의 월급을 노리고 등골을 빼먹으려 작정한 인물들로 그려진다. ‘황금 꽃다발’의 팔순을 앞둔 주인공 역시 평소에는 연락 한번 없다가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큰아들에게 더이상 줄 사랑이 없다. 큰아들은 작가와 교수로 활동하면서도 노모를 ‘흙수저 마케팅’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청소’의 주인공 역시 홀로 일하며 아들과 딸을 키웠지만 자신을 하인 부리듯 하찮게 대하며 존중이라곤 할 줄 모르는 자식들을 미워하진 않는다. 다만 일주일간의 대청소로 온통 닦아 대며 버릴 것은 다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긴 채 미련 없이 그들을 떠나는 방법을 선택한다. 때로 관계는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되돌아보게 하고 내면을 살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해의 숲’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나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모난 성격 탓에 ‘폭탄’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해 왔던 재영의 상처는 악연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하윤과의 우연한 마주침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억측과 망상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가족 문제를 둘러싼 의견 차이로 이별하는 연인 이야기를 다룬 ‘상자’는 갈등보다는 갈등에서 비롯된 ‘나’의 성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나는 엄마가 33년간 보관해 온 나의 어릴 적 유아용품들을 버리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족, 연인과의 관계, 의존적인 삶을 정리한다. ‘뼛조각’에서는 인턴 기간이 끝나 가도록 정직원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현실을 가리기 위해 안 해도 될 뼛조각 제거 수술을 강행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아무 말 없이 간병하는 아버지의 관계를 애달프게 그린다. 나아가 관계는 연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표제작 ‘기술자들’에서 “갈 곳 없는 고속도로를 어쩔 수 없이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꼴이 처량하기만” 한 ‘최’와 길에서 만난 ‘이것저것들의 역사’를 가진 ‘조’는 투박한 우정을 나눈다. 성실하게 실리콘이나 줄눈 작업을 하며 일상을 채워 가는 두 사람의 연대는 묵직한 감동을 준다. 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글이 지면에 실림과 동시에 작가의 손을 떠나는 “공허한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이 단편들을 내내 품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작가의 품에 오랜 시간 폭 안겨 있던 작품이라 그런지 7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독자의 마음에 “아주 따뜻하게” 와 닿는다.
  •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소설로는 구도의 길 모색…작가 송기원 별세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소설로는 구도의 길 모색…작가 송기원 별세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숨’, ‘아름다운 얼굴’ 등의 작품을 남긴 작가 송기원이 별세했다. 77세. 1일 문학계에 따르면 전남 해남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던 송기원은 숙환으로 치료를 받아오다 전날 오후 숨을 거뒀다. 1947년 전남 보성 출생인 고인은 1967년 고교 재학 당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현 중앙대 문창과)에 입학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1974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소설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문인 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참여하는 등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소설가 이호철이 구속되자 문인들과 함께 데모에 나섰다가 처음 구속됐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 ‘1990년’ 오봉옥 시인 필화사건 등 총 네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실천문학사의 주간으로 일하기도 했다. 서울신문과의 인연도 있었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위원으로 현재는 문단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김이설 소설가를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서울신문 수도권 섹션인 ‘서울인’에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이라는 코너를 연재하기도 했다. 남긴 작품으로는 소설집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청산’(1997),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 ‘숨’(2021), 시집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3), ‘마음속 붉은 꽃잎’(1990),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2006) 등이 있다. 자전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는 1996년 김영빈 감독의 연출로 박상민, 최민수 등이 출연한 ‘나에게 오라’라는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생전에 고인은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과 제24회 동인문학상, 제9회 오영수문학상, 제6회 김동리문학상, 제11회 대산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다. 명상, 수묵화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빈소는 대전 유성구 선병원 장례식장 VIP 3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8시. (042)825-9494.
  • 핏빛 공포보다 더 쫄깃…날숨마저 집어삼켰다

    핏빛 공포보다 더 쫄깃…날숨마저 집어삼켰다

    살인마·괴물 등 정통호러서 탈피직장 상사·초자연적 현상 등 소재생활밀착형 공포 쉽게 감정 이입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다.” 공포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무서운 이야기를 읽고 쓰는가.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크툴루 신화’의 창조자이자 현대 호러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는 ‘공포 문학의 매혹’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문학이 인간의 감정을 그려낸 것이라면 ‘가장 강력한 감정’을 형상화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여름은 ‘호러의 계절’이다. 요즘 어지간한 집이면 냉방기기가 잘 갖춰져 있을 테지만, 습관은 무섭다. 에어컨만으로는 부족한, 무더운 여름밤을 함께할 오싹한 소설들이 쏟아진다. 다만 이 오싹함의 양상이 과거와는 조금 달라졌단다. 29일 국내 장르문학 편집자·작가와 함께 호러문학의 최전선을 짚어 봤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가 하나가 아니듯 호러문학 안에도 여러 장르가 있다. 피와 살이 튀는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스플래터’부터 잔혹한 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등장하는 ‘크리처’, 인간이 괴물로 변하는 ‘좀비’까지. 그러나 요즘엔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정통 호러’보다도 실생활에 으스스한 소재를 살짝 덧댄 게 인기다.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①‘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황금가지)가 대표적이다. 제목대로 직장 상사에게 악령이 씌었다는 소재를 재치 있게 풀어냈다. 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주간은 “그간 출간된 호러는 사회 비판 성향이 강하고 섬뜩한 범죄나 강렬한 ‘폴터가이스트’(물건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현상)를 다룬 진지한 작품이 주를 이뤘다”며 “과거에 비해 쉽게 즐길 수 있는 공포 소설이 잇달아 나오면서 호러 팬이 아닌 일반 독자들의 관심도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파묘’의 영향으로 무당·부적 등 전통적인 소재와 함께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장르인 ‘오컬트’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오컬트의 인기는 올해 호러문학 전반의 관심을 환기한 계기이기도 하다는 게 출판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이삭 작가의 ②‘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인플루엔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존 장르로 분류할 수 없는 이야기가 득세하기도 한다. 장르소설 작가 위래는 “웹소설 쪽에서는 ‘백룸’을 위시한 ‘리미널 스페이스’나 ‘규칙괴담’ 등의 장르가 인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백룸’은 알 수 없는 현상을 겪은 뒤 도착하게 되는 현실 이면에 있는 공간이다. 사람이 북적거려야 정상이지만 버려져서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공간인 ‘리미널 스페이스’와 연결되며 여러 2차 창작으로 이어졌다. 특정한 상황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을 나열하며 거기서 기묘한 무서움을 주는 규칙괴담은 2000년대 초 일본의 ‘나폴리탄 괴담’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초자연적 존재를 관리·감독한다는 가상의 단체 ‘SCP재단’ 괴담으로도 이어지며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았다. 사실 한국은 호러문학의 불모지였다. 과거 장르소설은 이른바 ‘순문학’과 비교해 문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됐던 데다 호러는 SF나 판타지보다도 인기가 떨어졌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독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걸출한 작품들이 국내에 번역되면서다. 최근 번역된 ③‘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북스피어)도 짚고 넘어갈 만한 일본 호러소설이다. 장르문학 전문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는 “기시 유스케, 미야베 미유키, 기리노 나쓰오, 오노 후유미 등 1990년대 일본 사회의 붕괴를 다루며 ‘호러물의 풍요로운 10년’을 열어젖힌 작가들이 선보인 ‘생활밀착형’ 호러에 한국 독자들이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며 “이들은 지금도 출간과 동시에 해당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한국 출판사들은 이들과 계약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고 소개했다. 한국 호러문학도 점차 자기만의 영토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달 10만부를 돌파한 ④‘칵테일, 러브, 좀비’의 작가 조예은은 ‘입속 지느러미’, ⑤‘적산가옥의 유령’ 등 신작을 내며 독자와 호흡하고 있다. 황순원문학상 등 걸출한 순문학 작가로 호명됐던 김인숙의 신작 소설집 ⑥‘물속의 입’이 ‘미스터리·호러 단편선’으로 묶인 것도 흥미롭다. 2022년 영국 부커상, 2023년 미국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한국 호러문학사에 새 장을 열었던 정보라 작가도 신작 ‘작은 종말’ 등 부지런히 작품을 써내고 있다.
  • “독자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타인… 그래서 계속 말 걸 수 있죠”[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독자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타인… 그래서 계속 말 걸 수 있죠”[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책을 펼치자마자 난처함의 연속이다. 줄거리를 간략히 알려 주는 게 기자의 의무일 수 있겠으나, 이 책에 한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소설 속 문장을 하나하나 접할 때마다 독자인 나의 위치가 흔들리는 느낌. 도대체 누가, 어디에서 쓴 것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아예 소설 대부분이 문학평론을 인용한 것으로만 이뤄진 작품도 있다. 그러면 이것은 소설인가, 평론인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가. 얼마 전 문학과지성사에서 두 번째 소설집 ‘혹은 가로놓인 꿈들’을 펴낸 소설가 강대호(31)를 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설에 대한 인상을 솔직하게 전했더니, 그가 씩 웃는다. 마치 이런 반응을 예상한 것처럼, 그는 쑥스럽게 대답을 이어 갔다. “언젠가부터 ‘이야기’가 그리 재밌지 않더라고요. 사고 실험을 하듯 소설을 썼어요. 독자와 그걸 같이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죠. 너무 힘들게 읽으실 것을 알지만…. 글을 쓸 때 항상 이런 생각이 들곤 하잖아요.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게 누구인지. 나인지, 아니면 예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인지. 그런 의문을 환기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땐 판타지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덜컥 소설을 쓰겠다고 맘먹었는데 문예창작을 전공하면서는 잠시 시를 쓸까, 마음이 흔들렸던 적도 있단다.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대학원에서는 평론도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으니, 거의 ‘문학 올라운더’인 셈이다. 어쩌면 소설을 쓰고 있지만, 장르의 구분은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이 소설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으니까. 그의 첫 번째 소설집 ‘스핀오프’를 출간했던 출판사 문학실험실은 “강대호의 소설은 상업화의 시류를 역행한다”고 쓰기도 했다. 책을 팔아야 하는 출판사로서는 무척 ‘담대한’ 문장이다. “친구들한테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저는 최대한 잘 읽히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웃음). 당연히 판매됐으면 좋겠고 불특정 독자에게 가닿길 원해요. 그러려면 상업의 창구를 반드시 통해야겠죠. 어느 물결에 올라타면서도 그 밑에 발을 딛고 있진 않으려고 합니다. 그 물결 안에서 생기는 불규칙과 긴장감, 불화를 느끼려고 해요. 상업이라는 틀 안에서 상업을 배반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문학평론가 전청림은 그의 소설에 대고 “고정된 착각을 의심하는 철학자처럼 끈질기게 언어의 꿈속으로 자기 자신을 밀어붙일 뿐”이라고 평했다. 멋진 말이지만, 궁금증이 증폭되기도 한다. ‘언어의 꿈’이란 무엇인가. ‘언어가’ 꾸는 꿈인가, ‘언어로’ 꾸는 꿈인가. 언어로 꾸지 않는 꿈도 있는가. 기자가 헤매고 있는 사이 소설가가 멋진 비유를 들어 줬다. “언어는 머리카락이죠. 머리카락은 내 것이지만 계속 빠지기도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언어도 나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온전히 내 것은 아닙니다. 언어가 온전한 나의 소유라면, 타인과 소통할 여지도 없는 거겠죠. 문학이 독자에게 가닿을 수도 없겠고요.” 소설을 읽을 땐 아득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 맑아진 것 같다. 마치 관념의 세계에서 정다운 산책을 한 기분이랄까. 그에게 독자란 무엇인지 물었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타인. 저도 독자도 서로 만나면 실망할걸요. 하지만 그렇기에 계속 말을 걸 수 있겠습니다. 서로 영원히 모르기에 소설은 영영 끝나지 않겠죠.”
  • ‘빛’처럼 ‘음악’처럼… 장마에 읽을만한 책 3총사

    ‘빛’처럼 ‘음악’처럼… 장마에 읽을만한 책 3총사

    장마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홀랑홀랑 가볍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소설집(앤솔러지)이 쏟아지고 있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책 3권을 소개한다. 책을 다 덮고 나면 쨍한 무더위가 찾아와 있겠다.돋보이는 책은 프란츠에서 펴낸 ‘음악소설집’이다. 비 내리는 계절에 ‘음악’을 키워드로 한 소설들을 엮었다. 여기서 김현식의 명곡 ‘비처럼 음악처럼’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참여한 작가들도 화려하다. 편혜영,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다섯 작가는 각각 열렬한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다. “가장 친밀했던 존재가 한순간 낯을 바꿔 경멸 섞인 무관심을 드러내자 나는 금세 위축되었다. 무엇을 하든 탓하고 의심했다. 한때 사랑했던 것들과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 몰라서였다.”(편혜영, ‘초록 스웨터’·195쪽)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편혜영의 소설 ‘초록 스웨터’가 인상적이다. 죽은 엄마가 남긴, 미처 다 뜨지 못한 초록색 스웨터를 들고 엄마의 친구인 ‘영주 이모’와 함께 강화도로 떠난다. 그곳에서 엄마의 어릴 적 친구인 ‘나주 이모’를 만난다. 나주 이모는 주인공에게 엄마가 불렀던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건넨다. 우리를 상상력의 끝으로 데려다줄 SF소설집 두 권도 흥미롭다. 빛을 주제로 한 소설 6편을 담은 문학과지성사의 ‘빛: SF 보다’와 낯선 존재와의 첫 번째 만남이라는 설정으로 시작한 8편의 이야기를 실은 달다의 ‘퍼스트 콘택트’다.‘빛: SF 보다’에는 단요, 위래 등 원래 SF를 주로 쓰던 작가 외에도 서이제, 장강명 등 장르문학계에서는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았던 유명 소설가들도 참여해 눈길을 끈다.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의 소설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는 지금으로부터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인공지능(AI)이 깊숙이 침투한 사회의 정경을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인터뷰 기사의 형식으로 전한다.‘퍼스트 콘택트’에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됐던 ‘은별’이 오히려 외계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전혜진의 ‘Legal ALIEN’(리걸 에일리언)과 외계인의 출현을 자신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여기는 ‘진기해’의 이야기를 담은 김단비의 ‘단독, 가져오겠습니다’ 등이 눈에 띈다.
  • 소설가 이윤기 문학비 제막…대구 군위 고향 마을에

    소설가 이윤기 문학비 제막…대구 군위 고향 마을에

    소설가이자 번역가, 신화학자로 활동했던 고(故) 이윤기(1947~2010년) 작가를 추모하는 문학비가 그의 고향인 대구 군위군에 세워졌다. 이윤기기념사업회는 28일 이 작가 출생지인 군위군 우보면 두북리 소공원에서 이윤기 문학비를 제막했다. 김진열 군위군수를 비롯한 이전호 이윤기기념사업회장, 박수현 군의회의장, 군위문인협회장 및 회원 등이 참석했다. 문학비 건립 사업비 5000만원(주민참여 예산)은 전액 군 예산으로 집행됐다. 문학비 비문은 오철환 대구소설가협회장이 맡았다. 이 작가는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로 문단에 데뷔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제 29회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제8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번역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1976년 ’카라카스의 아침‘을 시작으로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 움베르토 에코의 번역으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이 밖에도 ’그리스인 조르바‘, ’양들의 침묵‘ 등 문학작품 및 인문교양서를 200권 이상 번역했다. 이윤기기념사업회장인 이전호 군인문인협회장은 “이윤기 작가의 문학적 성과를 널리 알리고 군위인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문학비를 건립하게 됐다”고 했다. 김 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이윤기 작가는 군위군의 보물이고, 그의 문학비는 군위 문학여행의 정거장을 만든 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군위군은 우보면 선곡1리~두북리 4㎞ 구간을 이윤기길로 명명하고 길 입구에 도로 명판 및 안내표지판을 설치했다.
  • [길섶에서] 소설을 읽으며

    [길섶에서] 소설을 읽으며

    오래 전 제법 유명세를 떨치는 작가가 일종의 판타지 소설을 펴냈는데 읽다 보니 필자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작가와 러시아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며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작중 러시아어에 능통하고 키로프발레단 여성 무용수를 친구로 둔 능력 있는 인물로 격상시켰으니 고맙다”는 농반진반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난다. 학교를 같이 다녔지만 나이는 많아 형님으로 모시는 소설가도 있다. 대학교수를 하다 은퇴한 이후 창작에 몰두한다더니 며칠 전 가야 역사를 다룬 연작소설집을 보내왔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은 광고회사를 거쳐 역사 관련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직장생활을 광고회사에서 시작해 역사·문화유산 담당 기자로 오래 일한 내 개인적 감회가 더해져 재미나게 읽었다. 갈수록 여기저기서 닮은꼴이 늘어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그만큼 이런저런 경험도 많아졌기 때문일까.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전승민 지음, 핀드)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비평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안에 담긴 것과 그가 부러 담지 않은 것을 가려내어 이해하는 일, 그것이 나의 세계와 어떻게 공명하는지 찾는 일. 어떤 존재와 깊이 밀착하여 그의 시간을 함께 살아 내는 일은 기도와도 같다.”서강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학평론가 전승민의 첫 책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쓴 에세이와 진지하고도 산뜻한 문장으로 벼린 비평이 아울러 담겼다. 책의 제목에서 글을 대하는 작가의 숭고한 태도가 엿보인다. 240쪽. 1만 6800원. 에밀의 루소(김조을해 지음, 북인더갭) “나야… 너의 첫 제자 에밀, 제발 눈을 떠 루소…”소설가 김조을해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 ‘에밀의 루소’를 포함해 7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서강대 불문과 명예교수이자 소설가인 최윤은 김조을해를 “잔잔한 사건들을 통해 한 인물의 내적 성숙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 낸다”고 평한 바 있다. 288쪽. 1만 6000원. 안티 사피엔스(이정명 지음, 은행나무) “세계가 신이 설계한 기계라면, 운명이 신의 언어로 구성된 정교한 프로그램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뿌리 깊은 나무’, ‘별을 스치는 바람’ 등에서 인상적인 상상력을 보여 줬던 소설가 이정명의 신작이다. 슬픔과 기쁨까지 데이터로 환원된 인공지능(AI) 시대를 그리고 있다. 원초적인 악을 학습한 AI와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대결. 누가 승리할 것인가. 304쪽. 1만 7000원.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당근 할머니(안녕달 지음, 창비) “할머니가 키운 건 왜 다 크고, 오동통하지?” 할머니의 넉넉한 손길로 오동통하게 자라난 것은 손주만이 아니다. 할머니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이 그렇다. 복숭아, 블루베리, 포도, 상추, 애호박은 물론 닭, 개, 젖소도 마찬가지다. 뭐든 배부르게 먹이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책. 하지만 전형적인 할머니가 아니라 ‘인생은 이제부터’라고 노래하는 호쾌한 할머니가 등장하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40쪽, 1만 4000원.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김기태 지음, 문학동네) “초라하게 사라진 나라들조차 폐허 어딘가에는 영광을 남기는 것처럼 그 연애들에도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은 있었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떤 독자든 소설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타인을 친근한 정감으로 맞이하게 하는 리얼리즘이 있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배역에 바치는 경의이자 진지하되 재치 있고 상처받되 사랑을 잃지 않는, 바로 ‘당신’들의 이야기. 2022년 등단 이후 2년 만에 이상문학상 우수상, 올해 젊은작가상까지 휩쓸어 버린 소설가 김기태의 첫 소설집. 336쪽, 1만 6800원.성적인 밤(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모호) “내가 수태되었던 밤, 나는 거기 없었다. 당신보다 앞서 있는 날을 목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탈장르적 글쓰기를 구사하는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미켈란젤로, 루벤스, 마그리트, 피카소, 호퍼부터 신윤복, 우타마로까지 동서고금을 가로질러 에로티시즘이라는 테마로 묶은 그림 200점과 짧은 단상을 함께 묶었다. 그림과 동행하는 키냐르의 글은 단순히 그림의 시종이 되기를 거부하고 그 그림이 촉발하는 또 다른 이미지를 그려 나간다. 288쪽, 2만 8000원.
  • 대하소설 ‘남한강’ 쓴 강승원 작가 별세

    대하소설 ‘남한강’ 쓴 강승원 작가 별세

    대하소설 ‘남한강’을 쓴 강승원 작가가 지난 1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유족들이 15일 전했다. 84세. 1940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81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단편소설 ‘담수지역’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구한말 의병 후손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 권짜리 장편 대하소설 ‘남한강’(1997년)이 대표작이다. 남한강 유역을 배경으로 민중의 삶을 풍부하게 그려 냈다. 이 소설 ‘작가의 말’에 고인은 “내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토착민의 의무감도 작용했지만 의병에 나섰다는 것만으로 남한강변이나 백두대간 언저리의 산골짜기로 숨어들어 이름 없이 살다 간 백성들의 고통스러웠던 숨결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 밖에도 장편 ‘너울’과 소설집 ‘침수지역’, ‘아버지와 아들’, ‘멸구와 혹파리’ 등을 썼다. 1998년 한국소설문학상을 받았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구로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한국일보, 서울경제신문 등 일간지에서 30여년간 기자로도 일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덕자씨와 아들 강성갑(전 경총 이사)·우성(서울대 영문과 교수)·태성씨와 딸 혜숙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16일 오후 1시다.
  • 오영수문학상 수상자 정용준 소설가

    오영수문학상 수상자 정용준 소설가

    ‘제32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자로 정용준 소설가가 선정됐다. 오영수문학상운영위원회는 정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하고 수상작은 ‘창작과 비평’ 2023년 여름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자유인’이라고 10일 밝혔다. 이 상은 울산 출신 단편소설의 거장인 오영수 선생의 문학혼을 기리고, 문학인들의 창작열을 북돋우기 위해 1993년 제정됐다. 지난해 발표된 단편소설 중 문예지 등의 추천을 받은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6편 작품을 대상으로 본심을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 예심은 오영수문학상 역대 수상자인 전성태, 이충호, 박금산, 표명희 소설가가, 본심은 구효서 소설가, 이재복 문학평론가, 방현석 소설가가 각각 맡았다. 수상작은 만 85세 이상 모든 이들에게 존엄사를 강제하는 가상의 미래 사회를 다룬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은 우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다뤘다”며 “대상에 대한 집요함, 세계에 대한 균형 감각, 정직함, 서사적 밀도, 뚜렷한 문제의식 등을 탁월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정 작가는 “수상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과 함께 소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며 “한국 문학의 귀중한 정신 중 하나인 오영수 소설가를 비롯한 문학상을 받은 선배 소설가들을 떠올리며 앞으로도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정 작가는 황순원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등을 받았다. 작품으로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선릉산책’,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편소설 ‘유령’, ‘세계의 호수’, 단편소설 ‘저스트 키딩’, 산문집 ‘소설만세’ 등이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영수 문학상을 받은 문인으로 소설가 오정희, 송기원, 방현석, 공지영, 신경숙, 하성란, 김영하 등이 있다. 시상식은 오는 17일 울산 남구문화원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원이다.
  • 출구 없는 삶을 견디는 당신에게 ‘힘내는 맛’이란

    출구 없는 삶을 견디는 당신에게 ‘힘내는 맛’이란

    #1. 영업사원인데 표정이 ‘벽처럼 밋밋하다’는 말을 듣고 한철은 주민센터 알림판에서 발견한 연극 강좌에 등록한다. 수업을 거듭해 나가며 그는 드물게 감정과 단어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재미있다’는 것. 더 늦기 전 연극에 진심으로 몰입하려던 순간 그의 앞에는 족쇄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바로 가족. 그는 그 순간 자신이 가질 뻔했던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우주의 먼지) #2. 인문연구소에서 일하는 경완은 연구소에서 만난 상아와 유학을 갈 계획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경완의 새로운 발걸음은 내딛기도 전에 주저앉혀지고 만다. 경완의 유학자금을 내내 사고만 치는 형을 돕는 데 써야 한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부모 때문이다. 초등학생 조카 앞에서 아버지가 퍼붓는 욕을 듣고 있던 경완은 속으로 되뇌인다. ‘나는 여기에 없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힘내는 맛) 최민우(49)의 새 소설집 ‘힘내는 맛’의 주인공들은 이렇듯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를 잠식하는 존재와 환경에서 견딤으로써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한철과 경완의 경우처럼 이들에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려 할 때마다 뒤에서 끈질기게 잡아당기는’ 존재는 가족이기도 하고, 부정적인 사건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고 무뎌지도록 단련해 일상을 위태롭게 지탱해 온 나 자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의 삶의 경로에는 의지나 희망이라는 단어가 개입할 틈이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자꾸만 주변으로 밀려나는 듯한 우리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마치 자신의 인생이 종종 당사자를 제외한 채로, 그러니까 정작 진송 본인은 자기 삶의 부산물인 양 흘러가곤 하는 것처럼.’(가을의 곡선, 99쪽) 2012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작가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쓴 단편 7편을 이번 소설집에 담았다. 때로는 핍진한 서술로, 때로는 미스터리한 결말로 이야기를 재치 있게 이끌어 가는 작가는 극적인 출구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이며 자신의 생을 견디며 끌고 가는 것은 각자의 오롯한 몫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 [문화마당] 향, 항아리, 김소진

    [문화마당] 향, 항아리, 김소진

    “다 나에게 맡기고 이제 편안하게 눈을 감아.” 그는 다시 한번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어떻게 저녁이 오고 밤을 맞았는지 기억할 수 없다. 다만 벽이 갈라지듯 세상이 쪼개지듯 쩡! 하는 소리만이 귀에 선연히 남아 있을 뿐이다. 새벽이 되자 그의 혼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어둔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함정임 소설 ‘동행’ 중에서) 소설가 김소진의 27주기를 맞이해 매우 특별한 전시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향사 김태형과 센트 온 블랭크(Scent on Blank). 다소 익숙한 이름과 생경한 장소의 조합이었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스무 살 적의 기억들이 감자 줄기마냥 넌출거렸다. 현대한국문학사와 문학사회학 강의에서 종종 소설가 김소진을 언급하던 서영채 교수님, 그가 이르는 대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던 중에 소설집 ‘동행’을 마주했던 시간, 앉은 자리에서 밤을 새워 그 책을 읽으며 한나절 전까지는 알지도 못했던 작가의 소설과 가족사 그리고 그의 이른 죽음과 남겨진 이들의 애통함에 대해 뒤늦게나마 아주 멀리서 슬퍼했던 일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스무 살의 내 뇌리에 그렇게 각인된 김소진의 문장들을 그야말로 흠향하는 일이라니 당연히 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김태형은 김소진의 아들이다. 프랑스에서 조향(調香)을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새 돌아와 아버지의 문장에 향기를 입히는 작업을 한단다. 조향사 김태형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지만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얼마나 고심하며 답변을 골랐을까. “제가 하는 일은 향에 메시지를 담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삶은 언제나 문학 속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저를 키우셨지요. 저는 그 방식을 때론 부정하고 받아들이기를 반복했어요. 이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채웠던 문장들에 제가 조합한 향을 입히고, 또 그것으로 가득 채운 공간을 이끄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향기가 먼저 사람을 맞이하지만, 곧 그 향기의 주인은 맡는 이가 되지요. 향수 본연의 일입니다. 또 향과 책을 읽기에 앞서 그것을 창조한 이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작가의 오브제들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에 걸맞은 음악들도요. 이와 같은 작업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가 보내온 답변이 이상하게도 문학적으로 들리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일까. 부부 소설가 김소진과 함정임은 ‘오래된 항아리’(함정임), ‘파애(김소진)’ ‘열애’(함정임)‘,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김소진) 등과 같이 ‘항아리’를 매개로 한 화답형 소설들을 번갈아 가며 썼다. 그러니까 센트 온 블랭크, 그 텅 빈 항아리. 밑바닥이 깨지고 금이 간 항아리를 부모가 애써 문장으로 여미고 아들이 향으로 안을 채운다. 센트 온 블랭크에서 기획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김소진 소설가의 27주기에 맞춘 제의의 방식이지만 모두 함께 시향과 흠향할 수 있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카니발이다. 나는 기꺼이 이 문장을 향유하는 공간의 가장 첫 번째 독자이자 매우 오랫동안 찾아가는 객이 되겠다. 머지않은 옛날에 김소진이 촉발한 문장의 향이 기꺼이 지금의 독자들에게 어우러지는 향은 어떤지를 꼭 맡아 보고 싶다. 이은선 소설가
  • 믿었던 관계와 터전, 그 허방에 묵직한 한 방

    믿었던 관계와 터전, 그 허방에 묵직한 한 방

    #1. 중국 저가 의류를 파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하는 진화. 회사 매출은 날로 불어나지만 연봉은 제자리걸음이다. 부모 잘 만나 해외여행이나 쏘다니는 어린 사장을 저주하면서도 10년째 일을 이어 가는 이유는 하나. 기댈 곳이 없어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에 손 벌리는 건 포기했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옆집 오줌 누는 소리에다 계단엔 썩은 계란 냄새가 풍기는 대학가 오피스텔을 뜨지 못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건물이 복잡한 소송에 휘말려 월세가 몇 년째 동결된 까닭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안간힘 쓰며 밥벌이 중인 그는 휴대폰 명의도용 사기로 난데없는 빚을 뒤집어쓰게 되면서 사기범을 찾아 나선다.(‘버섯 농장’) #2. ‘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하루 여덟 시간 내내 서서 ‘알바’를 한다. 재료 하나만 잘못 넣어도 ‘기본도 안 된 인간’으로 몰아대는 손님에게서 갑질을 당하기 일쑤다. 살고 있는 오래된 빌라 옆 강변 산책로는 토막 난 40대 여성 시체가 발견된 살인 사건의 현장이다. 직장도, 삶의 터전도 안전하지 못한 ‘나’와 달리 오랜 친구인 유안은 누구보다 무해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부모와 남편도 있다. 유안이 맡긴 강아지를 잃어버리면서 격차가 분명한 둘의 관계는 우정이라는 외피 안에 깊숙이 자리잡은 ‘간극’을 드러낸다.(‘물가’) 성혜령(35) 작가의 첫 소설집은 이렇듯 계급 격차가 엄존한 사회에서 부당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지근거리에서 구체적인 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채 빠듯하게 생존을 모색해 나가는 청년들을 등장시킨다.8편의 소설에서 작가는 특유의 하드보일드(1930년대 전후 미국 문학에 등장한 사실주의 수법으로, 불필요한 수식을 빼고 냉정하고 비정하게 인물과 사건을 묘사하는 기법) 문체로 이들이 놓인 관계와 터전의 ‘허방’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기이한 파국을 초래하거나 오래 곱씹어 볼 고민을 남겨 주는 결말을 통해 소설이 끝나고 나서도 긴장의 사위를 팽팽하게 벼리게 한다. 특히 오랜 우정 사이에서도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계급 격차와 몰이해가 존재함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은 불평등이 뿌리 깊게 내재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비추며 서늘함을 불러일으킨다. 그 자리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청년들의 체념에 가까운 차가운 분노와 체화된 무력감이다. ‘너는 안전하고 좋은 세계에서 살고 있고 태어날 아이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너는 샌드위치에 오이를 잘못 넣었다는 이유로 몇 번을 고개 숙여 사과할 일이 없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다. (중략) 나도 모르게 유안은 세상의 불행에서 비켜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물가’, 70쪽) 예측 불가한 느닷없는 결말은 이야기의 봉합이 아니라 오히려 의문을 증폭시킨다. 이는 청년들이 놓인 지금 이곳의 현실과 곧 다가올 미래 역시 그처럼 많은 의심과 당혹감을 자아내는 위태위태한 무대임을 예견하는 듯하다.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이자 등단작인 ‘윤, 소, 정’,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간병인’ 등이 함께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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