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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번째 작품집 ‘비밀’ 펴낸 서하진

    세월은 세상을 변하게 하지만 사람도 변하게 만든다고 한다.이런 말들은 작가 서하진(44)의 네번째 작품집 ‘비밀’(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도 오버랩된다. 작품 안팎에서 좀처럼 자기 얘기를 하지 않던 그녀가 이번엔 자기 모습을 많이 드러낸다.심지어 소설집 속에 자전소설 ‘미련함에 대하여’까지 넣었다. 또 소통의 단절을 강조하며 즐겨 다루던 ‘불륜’의 풍경도 주체에서 객체로 바뀌었다.그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94년 등단한 뒤 모범생처럼 2년 단위로 3권의 작품집을 낸 그녀가 이번엔 4년의 터울을 두었다.“집중적이고 긴 시간을 내지 못해 장편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작품집을 내느라 공백이 길어졌다.”는 그녀는 이번 9편의 작품에 대해 “종전 내 작품들이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록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세상과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들려준다. 그런 변화가 잘 드러나는 것은 역시 자전소설 ‘미련함에 대하여’다.작가는 주판·시계·귀걸이·이불 등 자신의 추억이 깃든 일상의 소재에서 때론 아늑하고 때론 가슴아린 지난 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이에 대해 “어차피 한번만 쓸 작정이었기에 거짓말 같은 자전소설이나 일정시기만을 다루지 않고 어릴적부터 결혼 이후까지 포괄적으로 풀어나갔다.”고 말한다. 또 즐겨 쓰던 소재인 불륜도 여러 작품에 등장하지만 이전처럼 주된 요소는 아니다.대신 그 자리엔 아버지와의 갈등이나 남자의 교활함이 들어섰다.남편의 외도를 알고 이혼을 결심하려 나선 앙코르와트 여행에 아버지가 동행한 ‘뱃전에서’가 그 전형이다.여행 속에서 대학·결혼 등 삶의 주요 고비의 선택권을 행사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이런 무서운 아버지로 인한 눌림은 자신만의 방을 가지려 사랑도 없이 결혼을 하게 만들고(‘알 수 없는 날들’),눈물을 펑펑 흘리며 미완으로 끝낸 항의(‘미련함에 대하여’)에서도 재현된다. 그러나 작품 속 여성들이 고통 속에 침잠하지 않고,그 틀을 깨뜨리고 나오지도 않는다는 점은 한결 같다.남편의 외도를 알고 자신을 추스르는 여행에 나선 ‘나’가 비슷한 상처의 여인을 만나는 모습(‘불꽃 없이 끓는 방’)은 작가가 ‘인내와 파괴’ 사이에서 주춤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작가는 “내 작품속 여성이 특별한 정체성을 지니지 않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힘듦보다는,삶 자체의 고통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쓰고 있는 장편을 물었더니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문을 열어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주위로부터 방향 선회를 권유받아 고민 중”이라며 “다섯번째 작품집이 먼저 나올 것 같다.”고 말한다. 글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
  • 서성란 첫 작품집 ‘방에 관한 기억’

    한결 같이 상처 투성이다.상처없는 영혼이 있을까마는 작가 서성란(37)의 첫 작품집 ‘방에 관한 기억’(문이당 펴냄)을 채우고 있는 주인공들의 내면 풍경을 보면 그 아픔이 유달리 심하다. 그래서 몸과 마음 모두에서 치명적인 문신을 새기고 산다.성추행으로 인한 눌림,남편의 버림,자폐 장애아인 자식,아들 못낳는다는 강박관념으로 산후우울증에 걸린 며느리,출산후 몸무게가 급증한 여자…. 이 작가가 현실을 이토록 어둡게 보도록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쓸 때는 몰랐는데 엮고 나니 상처입은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아마 글쓰는 사람으로서 무의식속에 백 마디의 위로보다 한 편의 글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박혀 있었나 봅니다.” 지난해 첫 장편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에 자폐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의 심경을 옮겼던 그는 8편의 중단편을 모은 이 소설집에서도 상처입은 절망감 탓에 최소한의 인간관계마저 막혀버린 이들에게 눈을 돌린다.부모의 사망소식을 접한뒤 조산한 아이는 자폐증에 걸렸고 자신은 갑상선기능항진증 때문에 남편에게 버림받는 명주(‘산초’),여고생때 부기 선생에게 성추행 당한 악몽으로 강박증에 시달리다 아이 딸린 남자와 결혼한 뒤 버림받아 자폐증에 걸린 딸과 살아가는 여자(‘모델 하우스’) 등이 그들이다. 더 특이한 것은 이들이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결코 신같은 초월적 존재에 기대지 않는다.감정의 찌끼를 다 짜버린 뒤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이 고통을 낳은 현실과 맞선다.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군살없는 짧은 문장,비유나 상징을 배제한 문체도 ‘전략’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작가는 “대중·통속적 작품으로 흐르지 않으려고 주인공의 상처를 다룰 때 감정 몰입을 배제하려고 한다.”며 “그러다 보면 자연 화려하고 감성적 문체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고 말한다. 작가의 이런 창작방법은 아들을 못 낳는다고 구박받은 며느리가 갓난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씌운 뒤 태연하게 밥을 먹거나(‘겨울손’) 자신을 거부하는 자폐증 아들을 보고 담담하게 발길을 돌리는(‘산초’) 신산한 장면을 낳는다.이런 ‘거리 두기’는 출산 후 몸무게가 급증한 여성을 소재로 한 ‘당신의 몸’에도 이어진다.갈비,돼지고기와 토마토,광어 등 음식이나 재료들을 소재로 한 소제목 아래서 ‘몸 만들기’에 혈안이 된 세태를 담담하게 그린다.감정을 절제한 작가의 시선은 오히려 주인공 혹은 그를 잉태한,곪은 현실을 더 도드라지게 한다. 평론가 황광수는 “훼손과 박탈의 조건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끈질기게 탐색하면서 우리의 삶을 근원에서부터 성찰하게 한다.”고 평가한다. 1996년 중편 ‘할머니의 평화’로 제3회 실천문학상 신인상을 받은 작가는 최근 인터넷·CCTV·디지털 카메라에 자기도 모르는 결에 생활이 노출되는 삶을 다룬 장편을 탈고했고 내년엔 두번째 창작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칠레작가 세풀베다의 ‘외면’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으로 세계적 작가가 된 칠레 출신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집 ‘외면’(열린책들 펴냄)에는 황량한 세상을 바라보는 라틴아메리카 문학 특유의 여유와 기지,마술적 세계관이 가득하다. 절판된 작품집에 실렸거나 미발표 중·단편소설 27편을 모은 이번 작품집은 사람,자신,흐르는 시간,사랑 등을 외면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았다.그 속에는 불가피했거나 애써 피하고 싶지 않았던 실수와 파멸에 얽힌 사연,그로 인해 외면하고픈 상황들이 즐비하다. 현실에서 소외받고 외면당하는 주인공들은 친구·연인 심지어는 자신조차 믿지 못한다.15년 전 옛 연인을 보러 새벽 기차역에 나갔지만 창에 비친 모습만 슬쩍 보기만 하고 돌아오거나 지난날의 추억이 묻은 사진을 찢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감행하지 못한다.사랑하는 여인의 집 현관문 벨을 누를 용기가 없어 망설이거나 한밤중에 집 앞에 정차한 차에서 위협을 느끼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마치 날선 칼날 위에 서 있는 위태한 형국들이다.그럼에도 작가는 여유와 넉넉함으로 희망의 단서들을 길어 올린다.특유의 섬세한 문체에다 환상을 통한 망각·착각의 여유를 실어나르면서 비참한 현실을 잊게 하거나 달래준다.그 힘은 직접적인 묘사보다 마술이나 환상의 요소를 많이 배치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 같다. 번역을 맡은 권미선씨는 “그런 실패와 패배들이 소망으로,사랑으로,우정으로,꿈으로,정치적 포부로 바뀌어 가면서 슬픔은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게 한다.”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 ‘남녘사람 북녘사람’ 美출간 앞둔 이호철 씨

    “최근 출간된 중국어 번역판에 이어 오는 6월 독일에서 열릴 작품 독회에 참석합니다.또 11월에는 미국 이스트브리지 출판사에서 영어권 처음으로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남북관계를 소재로 다뤄 국제무대에서도 통했다면 문학작품은? 소설가 이호철(72)씨의 자전적 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이 올해들어 국제무대를 향한 비상의 날개를 더욱 활짝 펴고 있다.우선 미국 이스트브리지 출판사와 올 11월 ‘남녘사람∼’을 출간키로 최근에 계약했다.이는 북·중남미 6개국 진출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독일지역을 순회하는 작품 독회 및 TV 특별출연 등의 일정이 연이어 잡혀 있어 98년 동유럽 진출 이후 다시 한번 유럽에서 붐을 조성할 것으로 기대된다.앞서 지난 2월 중국어판 ‘남녘사람∼’의 출판기념회 때 예상밖으로 중국언론의 호응을 얻었다. 1996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연작소설집 ‘남녘사람∼’은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은 작품.지난 98년 폴란드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독일어·프랑스어·일본어·중국어 등 6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멕시코 언론도 최근들어 ‘남녘사람∼’과 ‘소설가 이호철’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 스페인어 출간계획도 곧 실현될 전망이다.문단에서도 노벨상수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이같은 해외반응을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사)인간개발연구원 초청 조찬강연 직후 만난 그는 “이 작품은 폴란드에서는 정치인들,중국에서는 지식인들에게 인기가 높다.”면서 “그 이유는 아마 남북관계,특히 해방 이후 50년까지 북한의 실정,또 인민군에서 국군포로로 넘어가는 과정 등에서 감명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남녘사람∼’은 50년 7월,19살의 나이로 인민군 의용군에 징집됐다가 한달여 만에 울진지구 전투에서 남측 군의 포로로 잡히는 과정 등을 담은 자전적 소설로 수준 높은 문학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는 고등학교 2학년 이상은 무조건 인민군에 끌려가야 했습니다.따발총을 지급받았으나 제대로 쏜 적이 한번도 없었지요.” 지난 55년 ‘탈향’ 발표 후 줄곧 분단의 아픔을 집중적으로 다뤄온 그는 아직도 북쪽에 사는 누이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저리다고 했다.제3국을 통해 지금도 북쪽 소식을 가끔 접한다고 귀띔했다. 지금의 남북상황과 관련,그는 “우즈베키스탄의 한국 화학공장에는 북한 근로자 200명이 남한 기술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한솥밥을 먹는 일이 늘어나야 자연스러운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김문기자 km@seoul.co.kr˝
  • 권지예 첫 장편 ‘아름다운 지옥’

    “1970년대에 정치는 억압적이었지만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낭만적이었다.또 그 시대를 통과한 청춘이란 얼마나 순정하고 촌스러운지.그 사람 냄새나는 촌스러움이 너무 귀하게 느껴져서 지금에 와서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다.” 첫 소설집도 내기 전에 단편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받아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작가 권지예(44)가 첫 장편 ‘아름다운 지옥’(문학사상사 펴냄)을 내놓았다.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실린 이 두 권의 성장소설은 폭압적인 현실과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한 소녀가 여성으로 커가는 달콤새콤한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소설은 주인공 혜진이 열두 살 되던 해 식구들이 전농동 단층 기와집으로 이사오는 것으로부터 열린다.이후 ‘내 집 장만 기념’으로 심은 라일락 향기에 실려 소녀의 가족사가 피어난다.정보계 장교 출신의 아버지로 인한 잦은 이사 추억,별을 달지 못해 전역한 아버지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위축되는 모습,갈수록 쪼그라드는 살림을 걱정하는 어머니,자기보다 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하늘의 시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혜선 등 애틋하고 아련한 가족사가 이어지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작품의 다른 축은 혜진의 사랑 이야기.그녀가 아프면서 커가는 모습이 이광수의 ‘사랑’보다 ‘선데이 서울’에 더 감수성을 자극받던 사춘기,생활고로 집앞에 내준 술집 논산옥에서 들려오는 끈적한 농지거리 풍경에서 지레 짐작해버린 어른들의 비밀스러운 세계.어린 작부 진숙과의 인연,그리고 대학생이 됐을 때 찾아온 소설같은 사랑 등을 징검다리 삼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과정에 ‘웃으면 복이와요’의 비실이 배삼룡 흉내내기,통행금지 사이렌에 쫓기는 풍경,박정희 전대통령의 유고로 인한 80년의 봄 풍경 등이 동행하며 ‘추억 여행’을 더 생동감있게 만든다.아늑하기만 한 소설 속 공간은 작가와 동시대를 보낸 이들에게는 풋풋한 기억에 젖게 만든다.그렇다고 그 추억이 과거에 갇혀 있지만은 않다.그 또래의 소녀라면 누구나 겪을 ‘통과제의’라는 보편적 감성을 확보하면서 공감의 물결은 넓어진다.시의적절한 비유와 탄탄한 이야기 전개도 돋보인다. 가족사와 내면 풍경을 흥미롭게 엮어가는 작가는 그 먼지쌓인 원형질의 세계를 닫으며 이렇게 얘기한다.“백원에 몇장하는 고무줄 잘 끊어지는 헐렁한 팬티와 엄마가 입던 걸 줄인 누리끼리한 인조견 속치마”로 상징되는 그 때가 비록 비루하고 ‘지옥’ 같았지만 그래도 꿈과 낭만이 있어 행복했고 아름다웠노라고.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강영숙 두번째 소설집 ‘날마다 축제’

    “매년 중단편 3∼4편을 쓰는게 문학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감성을 키우는데 큰 보탬이 된다.”는 작가 윤대녕의 말에 기대면 강영숙은 틀림없이 행복한 작가이다.98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그녀가 2002년부터 2년 동안 써온 9편의 단편소설을 모아 두번째 소설집 ‘날마다 축제’(창비사 펴냄)를 출간했다. 작품 속 세계는 제목과 달리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는다.그 속의 현실은 일그러지고 어둡고 우울하다.그 풍경을 맛보려 첫 작품 ‘시티투어버스’에 올라본다.불황이 지속되고 공항마저 폐쇄된 도시.그 절망적 공간의 중심을 순환하는 버스의 승객들은 결혼한 뒤 날이 갈수록 상처만 늘어가는 부부,검은 터틀넥 원피스로 남편에게 얻어맞은 멍을 가린 채 병적으로 음식을 마구 먹어치우며 스스로를 달래는 여인 등이다.기괴한 풍경은 표제작도 마찬가지다.날마다 축제가 벌어지지만 주인공과는 상관이 없다.남자에게 아이를 빼앗긴 상처가 남긴 쓰라린 현실과 아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환각만이 교차할 뿐이다.그 어두운 그림자는 결벽증에 걸린 여자친구나 암에 걸린 어머니가 등장하는 ‘별빛은,별빛은’,부채더미에 앉은 젊은이들이 도피성 여행을 떠나지만 어쩔 수 없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태국풍의 상아색 쌘들’ 등에서도 어른거린다. 이들에게 ‘구원의 동아줄’은 없는가? 작가는 ‘환상의 힘’으로 현실을 버틸 수 있노라고 대답한다.그것은 작품 속에서 환영·환각 등의 모습으로 변주된다.구체적으로 도심버스에서 평원을 달리는 들소떼의 꿈을 꾸거나 다른 아이를 자기 아이로 착각하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환영 속에 젖는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이고 헛것이다.절망적 일상을 벗어날 당장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그래서 그 환상에 대한 열망은 더 간절해진다.그럴 때마다 ‘시티투어버스’를 타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게 강영숙의 작품집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네번째 소설집 ‘누가‘ 펴낸 윤대녕

    지난해 4월 창작에 전념하러 제주로 내려간 윤대녕이 네 번째 소설집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를 들고 서울에 들렀다. 5년 만에 낸 작품집은 지난해 쓴 4편 등 6편의 작품을 모은 것인데 “중·단편을 정기적으로 쓰는 게 문학적 긴장과 감각을 유지하는 데 좋았다.”고 말했다.제주 생활에서 나온 여유와 성찰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제주로 내려간 것은)문학적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였는데 냉정해지고 객관적이 되면서 집중력과 문학적 내구력이 늘고 글에 대한 허영심도 가셨다.”고 스스로 진단했다.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기 속으로 더 들어간 덕분에 작가의 창작 열기는 더 그윽해지고 치열해진 듯 “매년 중·단편 3∼4편을 쓰고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우주·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생명의 고독감을 다룰,쓸 만한 장편도 쓸 계획”이라고 들려준다. 작가는 90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달의 지평선’‘미란’‘눈의 여행자’ 등 장편과 ‘은어 낚시 통신’‘남쪽 계단을 보라’ 등 중·단편을 가로질러 왔는데 그 차이를 물었더니 “단편이 문학하는 느낌을 더 주지만 힘은 더 든다.200∼300장 분량이 제일 편하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품집에는 ‘걷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흑백 텔레비전 꺼짐’의 일도와 정원은 서울 도심의 새천년 맞이행사장 주위를,‘찔레꽃 기념관’의 주인공 소설가와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여자 방송작가는 남산의 찔레꽃을 보러 무작정 비 오는 심야의 도심을 걸어간다.‘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의 남자는 아예 무작정 걷는다.작가는 그 ‘걸음 속 대화와 묘사’로 인물들의 내면과 삶의 흔적을 비춘다.그들은 대개 자기 정체성을 잃고 현실에서 표류하는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하원(‘흑백 텔레비전‘),출생과 관련해 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독신녀나 현실에서 탈출구가 봉쇄된 탈영병(표제작),문학적 가치가 무시되는 현실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찔레꽃 기념관’) 등의 모습으로 투영된다.해설을 쓴 평론가 이남호(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정체성의 위기를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면서,그 현상과 원인을 정치적·문화적·사회적·존재론적으로 다양하게 탐구한다.”라고 분석한다. 이런 작품세계는 ‘무더운 밤의 사라짐’‘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에서도 잘 나타난다.‘올빼미와의 대화’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듯한 사나이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자아를 찾으려고 모색한다.이에 대해 작가는 “유독 걷는 것을 좋아한다.”며 “삶의 경계를 걸으면서 자아이면서 타자,그림자이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이번 작품들은 이전에 보이던 과감한 생략이 많이 줄어 눈길을 끈다.‘시적(詩的)’이라는 평까지 듣던 그의 세계에 설명이 늘어났다.작가는 그에 대해 “아마 불교적 취향 때문에 가능하면 설명을 줄이고 공간과 여백을 키워서 그런 평을 들었는데 내심 달갑지 않았다.”면서 “그 점을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차츰 달라진다.생활 얘기도 늘리고 서사구조도 취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나이를 관통하는 달라진 찰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며 “늘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면서 나이에 걸맞은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의욕을 비친다. 글 이종수기자 vielee@˝
  • 중견문인 4인 ‘젊은 소설을 읽다’

    최근 문학판에는 재출간이 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홍성원의 ‘기찻길’(문학과지성사),김원일의 ‘겨울골짜기’(이룸) 등 장편이 나온 데 이어 이번 주에는 양귀자의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살림)이 선보였다.이는 ‘불황기에는 스테디 셀러가 안전하다.’는 고육지책의 관행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독자의 눈을 확 끌 만한 신인작가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이런 현실에서 2000년대 주목받는 작가,이른바 ‘새로운 상상력’의 주역들을 바라보는 문단 중진 4명의 시각을 담은 글들이 나와 눈길을 끈다.계간 ‘대산문화’ 봄호 특집 ‘2004년 봄,젊은 소설을 읽다’는 젊은 작가 분석과,그를 통해 본 중진들의 문학관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다. 리얼리즘을 중시해온 평론가 구중서는 천운영·이만교·박민규의 작품을 읽은 뒤 2000년대의 특징을 자본주의 세계화라고 전제한 뒤 그중에서도 박민규의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자본주의 문명을 그 어떤 소설보다 구체적으로 다루었다고 풀이한다.그 속에서 ‘가난해도 더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끄집어 낸 뒤 자본주의의 모순에 맞설 수 있는 문학과 예술의 힘을 역설한다. 구중서와 달리 ‘달궁’의 작가 서정인은 문학 내적으로 접근한다.먼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죽음의 냄새가 가득 차 있다.”고 진단한다.첫 문장부터 죽어가는 냄새가 진동하는 천운영의 ‘명랑’,작품 전편에 죽음의 음산함이 깔려있는 배수아의 장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 드러나는 괴기스러움은 비단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늘 존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다만 젊은 작가들은 그들 나름의 관찰과 숙달된 말재주로 “비인간적이고 반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분노를 형상화했다.”며 이는 “군화발 독재와 노동문제가 시들해진 뒤 표적을 잃은 문학적 기운의 새로운 희생 염소”라고 말한다. 김주연이 세운 분석의 잣대는 ‘페미니즘’.그는 배수아·정이현·천운영 등의 작품 속 여성들이 90년대와는 모습이 매우 달라진 데 주목하면서 “‘성 주체성’ 획득에 주력한 페미니즘 문학이 2000년대에는 자본에 인한 굴절로 변화된다.”고 설명한다. 한편 김원우의 논조는 자못 신랄하다.그는 문학 일반에서는 독창성을 성취하기 위한 자기갱신과 전통 부정의 경향을 보인다고 전제하고 김영하의 ‘검은 꽃’,배수아의 ‘일요일‘,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세밀히 분석한다.그 결과 “세 작품이 모두 형식의 변주를 시도한 흔적은 역력하다.”면서도 “그 노력이 수미일관 지속되어 유종의 미를 거두었는지는 의문”이라고 메스를 들이댔다. 구체적으로 김영하의 경우 기법의 특이성은 주목할 만하지만 각 부와 그 밑의 문장들이 균형감각을 잃고 있으며 배수아는 “반어법적 세태 읽기의 유별성에도 불구,사실주의적 기법과 후반부의 에세이풍 서술이 혼재해 있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치우쳐 있다.”고 질타한다.또 정이현은 형식 실험에서 신선미가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7일 TV 하이라이트]

    ●함께 가자 대한민국 희망 2004(오후 1시20분) 국민적 염원 속에 개혁적인 정치 관계법이 마침내 통과되었다.이 법이 제대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의식 변화가 필수적이다.유권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스스로 진단하고 대안을 찾는다.국민 패널과 정치인,선거 브로커들의 증언을 들어본다. ●일요일은 101%(오후 6시20분) 창공을 향한 젊은이들의 용기 있는 도전 ‘열린 취업 꿈의 피라미드’ 대한항공 편.막바지를 향하는 가운데 공포의‘심층면접’이 기다리고 있다.항상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할 예비 승무원들은 예상하지 못한 황당한 면접관들의 질문에 어떤 표정과 재치로 응수할 것인지 지켜본다. ●애정만세(오후 8시45분) 덕보는 아무것도 못하는 민주를 시집보내려 하자 걱정이 앞선다.하지만 평희는 오히려 민주로 인해 난영이 두 손 두 발을 다 들 것이라고 장담한다.한편 결혼식을 앞두고 함을 받는 평희는 기분이 좋지만,통금에 걸리고 취객과 실랑이까지 벌인 동식은 결혼식마저 못할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게릴라 리포트(오후 8시25분) 총선을 앞두고 곳곳에서 새 정치의 바람이 불고 있다.이런 바람을 타고 성남의 명물로 떠오른 유랑극단이 있다.거리를 돌며 길거리 공연을 펼치며 비리 정치인들을 패러디해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이 유랑극단이 비리 정치인을 패러디하는 현장을 따라가 본다. ●책,내게로 오다(오후 9시20분) 조경란의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는 ‘코끼리를 찾아서’‘동시에’‘마리의 집’ 세 편의 단편을 연극처럼 재연한다.인물들을 통해 소설가 조경란이 말하고 싶은 것을 함께 찾아가 본다.조경란이 전하고 싶은 한 권의 책은 ‘내 마음의 책’ 코너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클릭!자동차생활(오전 11시25분) 자동차가 발전하면서 자동차의 부속품도 다양해졌다.그중 환기를 돕고 외부를 볼 수 있게 하는 선루프는 오픈카 분위기를 연출하는 스타일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자동차 선루프의 종류와 각각의 장단점을 알아보고,올바른 관리요령까지 살펴본다. ●까치가 울면(오전 9시) 까치학교의 입학생들을 찾아나선 김제동과 서민정이 만나는 어르신들과의 유쾌한 이야기 한마당이 펼쳐진다.인생의 달인에게서 생활의 지혜를 배우는 ‘배워서 남주기’에서는 밀양 ‘얼음골’에서 스승을 해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의 허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씨줄날줄] 다이아몬드 별/우득정 논설위원

    불어를 배우다 보면 중급 과정 첫시간에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집 ‘풍차방앗간의 편지’와 마주치게 된다.그 첫번째 얘기가 양치기 소년과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의 청순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별’이다.양치기 소년이 별에 얽힌 전설을 한올 한올 풀어 나가는 동안 소년의 어깨에 기대어 잠에 빠져드는 스테파네트의 모습은 별빛만큼이나 선명하게 눈에 와닿는다.135년이 지난 지금에도 ‘별’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알프스 산자락에서 바라본 별처럼 세속의 얼룩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우리가 훗날 황순원씨의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소년과 소녀의 때묻지 않은 사랑 이야기와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소설이나 시에서 별은 항상 손에 잡히지 않는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묘사된다.절망에 빠진 인간에게는 구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윤동주 시인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읊조린 것처럼. 하지만 어느 날 별이 전자계산기의 숫자판으로 자리를 옮겼다.BBC인터넷판이 미국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우주물리학센터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내부가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 결정체로 된 백색왜성(矮星)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이다.지구에서 50광년 떨어진 이 별은 다이아몬드 단위인 캐럿으로 환산하면 조(兆)의 만곱절인 경(京)의 제곱에 해당한다.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구의 8분의1 크기에 해당하는 다이아몬드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못 하겠지만,잇속에 밝은 이들은 벌써 10을 33번이나 곱한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달러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좀더 황당한 사람이라면 광속을 주파하는 영화 속 우주선이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타고 다이아몬드 백색왜성을 찾아가는 꿈을 꿀 수도 있겠다.더구나 다이아몬드는 순결과 평화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부와 권력을 가져다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별이 손에 닿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듯이 수십억년에 걸친 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백색왜성도 다이아몬드로 치부하기보다는 인간의 상상이 닿지 않는 공백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우득정 논설위원˝
  • [책꽂이]

    ●외면 일기(미셀 투르니에 지음,김화영 옮김,현대문학 펴냄)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가가 30여권의 수첩에서 추려낸 생각의 편린을 모은 산문집.사물과 사람,책,여행지 등을 조망하면서 독특한 해석을 통해 대상물에 호흡을 불어넣는다.1만 1000원.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조용미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봄·나무·바람 등 다양한 대상을 투시하면서 그 내부의 소우주를 찾아낸 뒤 시로 형상화.시적 자아의 시선이 그윽하다.90년 등단한 뒤 꾸준히 써온 작품을 모은 3번째 시집.6000원. ●숨쉬어(안 소피 브라슴 지음,최정수 옮김,문학동네 펴냄) 2001년 열일곱 살에 등단하면서 프랑스 문단의 눈길을 끈 작가의 데뷔작.그 해 페미나상 후보에 오른 이 장편은 사춘기 소녀들의 깊은 우정을 그렸다.7500원. ●모든 돌은 한때 새였다(김영석 지음,시와시학사 펴냄) 70년 등단한 시인의 세번째 시집.초심으로 돌아가 세상의 근본과 자신의 모습을 찾자고 노래한다.34편의 작품에서 선시에 가까운 절제된 시어로 존재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았다.1만 5000원. ●알타미라 벽화(정진경 지음,현대시 펴냄) 이 땅의 여성으로 살면서 느끼는 억압을 시로 표현.야성적이고 원시적인 시어를 거침없이 쏟아내면서 내면의 욕망을 시와 조응시킨다.2000년 등단한 뒤 낸 첫 작품집.6000원. ●나는 공부를 못해(야마다 에이미 지음,양억관 옮김,작가정신 펴냄) 일본 인기 여성작가의 연작 소설집.학교 성적에는 관심이 없는 주인공 히데미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교생들의 성(性)과 순정을 재미있게 엮었다.8500원. ●그래,연애만이 희망이다(무라카미 류 지음,김자경 옮김,제이북 펴냄) 일본 대표작가의 연애 에세이.연애를 낭만적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경제와 사회 현상에 연결.기발한 발상으로 현실에 발을 디딘 연애를 통해 삶의 희망을 들려준다.8500원. ●행복한 왕자(오스카 와일드 지음,이동진 옮김,이가서 펴냄) 탐미주의 예술의 대명사인 작가의 대표작.불쌍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동상에 박힌 보석을 뽑아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그림을 보태 어른을 위한 동화로 꾸몄다.1만원.˝
  • 한동림 첫 소설집 '유령’

    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한동림이 첫 소설집 ‘유령’(문학동네)을 냈다.9년 만에 묶은 첫 결실에는 작가의 곰삭은 문학적 진정성이 잘 녹아 있다. 진정성이 응집된 곳은 ‘기억’이다.표제작 등 8편의 단편 속 주인공들은 문득 마주친 현실의 한 장면에서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며 애써 잊으려 눌러두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의 강’을 건너 간다.그러나 그 수렁에서 헤어나올 방법은 잘 보이지 않아 여전히 힘겹다. 여자친구 인숙이 어머니에게 닥칠 죽음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다가 낯선 여자와 살을 섞은 기억과 그로 인한 죄책감을 떠올리는 진형(표제작),송별식 장소로 정한 ‘환희’라는 단란주점 상호를 듣고 죽은 애인 은주와 보낸 하룻밤을 기억하며,죽음 앞의 그녀를 막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주인공 영훈(‘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새벽 새’) 등은 작가의 시선이 잘 투영된 인물들이다.이런 상황은 ‘귀가’의 주인공 ‘나’도 마찬가지.퇴근 버스에서 불구의 아들과 탄 한 여인을 보고 ‘나’는 불구인 형과 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 어머니로 인해 느꼈던 질투심에 사로 잡힌 지난 날에 시달린다. 이처럼 작품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인공에게 ‘구원의 빛’이 잘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작가는 ‘과거의 악몽’에서 좌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비록 악몽에서 벗어날 길은 요원하지만 그 현실 자체를 받아들인다.기억에 묻혀 있는 끔찍함과 그로 인한 현재의 고통을 모두 운명으로 긍정하면서 온 몸으로 끌어안고 간다.그것은 탈주의 가능성에 대한 암시로 다가온다. 작가 한씨의 아버지는 중진작가 한승원씨고 여동생 한강도 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소설가로 활동 중이어서 문단에서 ‘작가 집안’으로 유명하다. 이종수기자˝
  • 책꽂이

    ●하루(한만수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2002년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작.농부의 하루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황폐한 농촌의 참상과 농민들의 애환을 생동감있게 그렸다.9000원. ●미들섹스(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이화연·송은주 옮김,민음사 펴냄)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14년 동안 여성으로 자란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진단을 받고 겪는 좌절감을 그렸다.성과 젠더,인종 차별 등의 문제도 담겨있다.모두 2권,각권 9000원. ●비만한 이성(이재복 지음,청동거울 펴냄) ‘몸’을 중심틀로 해서 문명과 자연의 상생을 탐색해온 평론가의 비평집.소설가 윤대녕·신경숙,시인 이승훈·이은봉 등의 작가론과 90년대 페미니즘·생태주의 문학론 등을 분석.1만 5000원.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지성 연구>(고인환 지음,청동거울 펴냄) 지난해 타계한 이문구의 작품세계에 대한 본격 연구서.현실과의 관련성과 문체 미학에 중심을 둔 기존 분석과는 달리 이문구 문학의 현재적 의미와 미래 지향성을 고찰.1만원. ●나를 찾아가는 동화여행(레스카 카우프만지음,조경수 옮김,문예출판사 펴냄) 호기심 많은 소녀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 나선 여행을 액자소설 형태로 다룬다.자작나무 앵무새,스라소니 등과의 만남을 통해 삶에 대한 16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8500원. ●연애소설(가네시로 가즈키 지음,김난주 옮김,북폴리오 펴냄) 재일동포로는 처음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소설집.표제작 등 3편의 작품에서 지난날의 사랑을 현재형으로 불러오면서 사람 사이의 대화가 중요함을 이야기.8000원.
  • 우울하게 or 발랄하게 세상 바라보는 두 시선

    어느 모로 보나 대조적인 두권의 소설집이 나와 눈길을 끈다.양태석의 ‘다락방’(해토 펴냄)은 정통적 기법으로 곰삭인 맛이 우러나고 김도언의 ‘철제 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펴냄)은 새로운 실험이 가득한 독특한 상상력이 빛난다.‘다락방’은 작가가 등단한 지 13년 만에 처음 낸 작품집.성장기 소년의 의식이 혼돈 속에서 익어가는 과정을 담은 표제작 등 9편은 탄탄한 기본기와 절제된 문체로 빚어온 녹록치 않은 솜씨를 보여준다.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비관적이고 회의적이다.그 모습은 비정상적인 광기로 가득한 세상(‘광인천하’),암울한 시대의 폭력에 휘둘린 가족의 비극(‘신데렐라 연구’) 등으로 나타난다. 평론가 정호웅 홍익대교수는 “인간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보여주는 세계”라며 “쓸쓸함과 적막함의 안쪽 너머 더 깊이 파고드는 문학을 기대한다.”고 평한다. 한편 ‘철제…’는 새로운 소설을 향한 의욕과 참신함이 넘친다.독특한 글쓰기를 향한 작가의 의욕은 등장인물을 다른 작품에서 끌어오는 방식에 있다.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기호태傳’,쇠라의 그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와 박태원의 ‘천변풍경’의 분위기는 표제작 등에서 불러낸다.작가는 이들을 발랄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으로 빚은 뒤 현대 사회의 불안한 표정과 목소리의 상징으로 묘사한다.이런 글쓰기에 대해 평론가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접속의 상상력’이라고 이름붙인 뒤 “불안의 뿌리로 내려가고 더 내려가서,상상적으로나마 불안의 해탈에 이르러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을 당부한다. 이종수기자
  • 정신 지체아·복합 장애아 가족…상처있는 풍경 보듬기/김원일 소설집 ‘물방울 하나‘

    “선배 작가중 김원일 선생이 젊은 작가들의 감성을 가장 잘 읽어낸다.” 한 작가가 사석에서 남긴 말이다.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김원일은 문단에서 쉼없이 현실 변화를 감지하면서 그 속에 담긴 문제를 날카롭게 끄집어내는 작가로 통한다. 김원일(62)이 12년 만에 낸 소설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문이당 펴냄)에는 시대에 영합하지 않은 채 냉정하게 마주보려는 긴장감을 그동안 쌓은 연륜으로 빚어낸 흔적이 역력하다.작가는 그 동안 장편 ‘겨울 골짜기’‘불의 제전’ 등 주로 전쟁 전후의 상처를 탁월하게 그리는데 주력했다.성장기에 ‘좌익 아버지’라는 상처가 준 개인의 고통을 실존적 차원에 가두지 않고 민족사적 문제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이번 작품집도 가족사를 다룬 점에서는 연장선에 있지만 그 폭과 깊이는 질적으로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표제작 등 근래 쓴 5편의 작품을 모은 작품집에서 작가는 이제 자신의 가족사가 아닌 타인의 상처,구체적으로는 장애인을 둔 가족들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다루면서 그들의아픔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물론 남파 간첩으로 체포돼 장기 복역한 작은 할아버지의 사연을 추적하는 ‘손풍금’이나,인혁당 사건을 소재로 한 ‘고문 일지’ 등 분단으로 인한 상처를 다룬 이전 경향의 작품도 있지만 장애인을 둔 가족 이야기가 주조를 이룬다. ‘미화원’은 폐암에 걸린 운전사 김씨가 정신 지체아인 아들의 홀로서기를 걱정해 미화원 자리를 구해주고 자신의 여동생에게 뒷날을 부탁하는 내용이다.표제작은 시립도서관 사서인 여 주인공이 인터넷에서 복합장애1급인 동수의 공개구혼서를 보고 결혼,그의 마음을 열어가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4가 네거리의 축대’에는 군인이 장난삼아 쏜 총알에 맞아 고자가 된 뒤 정신이 이상해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런 상처가 있는 풍경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아늑하고 따뜻하다.장애인은 대부분 선량하며,그들을 바라보는 주위 인물들도 훈훈한 인정의 소유자다. 작가의 연륜이 빛나는 것은 이런 주제를 풀어가는 문체.문장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빚기로 유명한 작가는 이번에도 자잘한 표현을 다 버린 채 인물들을 덤덤하게,그러면서도 면밀하게 관찰한다.현란한 수식어가 춤추는 흐름과는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사실주의 기법에 충실하면서 주인공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려준다.감정의 난무가 아닌 절제로 더 생생한 감동을 주는 이런 문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객관적인 사유로 사건과 정황을 정시하며 그 사태의 내면을 바라보게 만드는 문학적 진지함의 성과를 유도한다.”며 “쉽게 읽히는 것만큼 쉽게 쓰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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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평전(고은 지음,향연 펴냄) “이상(李箱)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시대를 앞섰던 ‘모던 보이’ 시인 이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실험으로 가득찬 그의 삶과 문학의 모든 것을 시인의 감성으로 빚었다.1974년 출간된 뒤 저자의 전집에 수록된 것을 단행본으로 재출간.1만 3000원. ●바베트의 만찬(이자크 디네센 지음,추미옥 옮김,문학동네 펴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여주인공의 실제 모델이자 원작자인 작가의 네번째 소설집.프랑스 제일의 요리사가 혁명을 피해 북구에 간 뒤 마련한 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야기 형식으로 다양한 경험을 들려준다.9000원.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안도현 지음,태동출판사 펴냄) 달콤한 감성의 시인이 밀란 쿤데라,백석 등 국내외 유명작가 등 100명에 얽힌 사랑과 관련한 빛나는 표현을 골랐다.원문에다 시인 특유의 해석을 덧붙여 아늑한 메시지를 던진다.8000원. ●가랑비 속의 외침(위화 지음,최용만 옮김,푸른숲 펴냄) ‘살아간다는 것’‘허삼관 매혈기’ 등 영화나 연극의 원작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3세대 작가’의 세번째 장편.민중들의 힘든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모습이 희극적이다.1만원. ●자거라 네 슬픔아(신경숙 글,구본창 사진,현대문학 펴냄) ‘외딴 방’의 작가가 추억을 더듬어 자유롭게 쓴 에세이와,그에 어울린 다양한 사진이 만났다.어머니에 대한 단상,잊지 못할 영화 등을 소재로 신문에 연재한 것을 모아 펴냈다.1만원. ●광기의 다이아몬드(김록 지음,열림원 펴냄) 98년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제목처럼 신예시인의 ‘광기의 상상력’이 곳곳에 번뜩인다.약간은 난해한 듯하지만 발문을 쓴 시인 성귀수의 안내를 따라가면 그 세계가 ‘광란’을 극단까지 밀고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6000원. ●오 헨리 단편선(김욱동 옮김,이레 펴냄) ‘마지막 잎새’ 등으로 단편 소설의 대명사로 통하는 작가의 작품집.‘크리스마스 선물’‘20년 뒤’등 삶의 애환을 다룬 주옥 같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휴머니즘을 만날 수 있다.1만 2000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강홍규 지음,나들목 펴냄) 6·25전쟁 이후 혼란스럽던시절 문인들의 기행과 일화등을 세세하게 들려준다.‘관철동 이야기’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했다.9000원.
  • 엽기적 소재와 상상력 요리조리 꼬고 튼 현실/박형서 소설 ‘토끼를 기르기전에‘

    박형서의 첫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 두어야 할 것들’(문학과지성사)은 엽기적인 질료에 기괴한 상상력을 보탠 9편의 이야기 모음집이다.작가는 재미 있으면서도 울퉁불퉁한 구성으로 예측하기 힘들게 얘기를 끌어간다. 작품 세계가 특이한 것은 이야기 전개방식이 전통적인 구조에 벗어나 낯설게 하기 때문이다.기르던 토끼가 죽자 토끼처럼 서서히 변해가면서 죽는 아내(표제작),사막처럼 황폐한 곳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악몽에 사로잡힌 여러 인물이 등장하면서 얽히고 설키며 진행되는 이야기(‘사막에서’),죽은 자가 자신이 죽어간 과정을 묘사하는 것(‘하나,둘,셋’) 등 대개의 작품이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기 쉽다.그것은 메시지를 담은 소재와 모티브를 현실에서 캐올린 게 아니라 꿈이나 무의식 등 관념에서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이유는 그가 현실을 일차적으로 반영하는 게 아니라 알레고리나 환상 등의 방식으로 현실을 요리조리 비틀고 꼬집는 맛이 독특하기 때문이다.소설집 중 그나마 이야기 구조가 보이는작품인 ‘이쪽과 저쪽’‘불끄는 자들의 도시’에도 그런 맛이 담겼다.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가 살인자가 된 농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쪽과 저쪽’은 아주 우연한 선택으로 일상화된 틀을 벗어난 경우가 가져오는 불행을 들려준다.또 지방의 Y라는 소도시의 소방대원을 취재하러간 잡지사 기자를 화자로 한 ‘불끄는 자들의 도시’는 주인공의 취재가 진행될수록 소방대원들이 화재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불에 탄 신체부위 즉 ‘인육’을 즐겨먹는 엽기적 집단임을 보여준다.그러나 대부분 그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피해자를 구해준 의로운 사람들로 알고 있는 구조적 인식 앞에서 주인공이 발견한 진실은 무기력하다. 엽기적 소재나 몽환적 분위기를 즐겨쓰는 작가는 결국 구조라는 거대한 힘 앞에 직면한 나약한 개인의 운명을 은유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또 우연에 의해 삶의 고비가 결정되는 장면에 주목함으로써 삶이라는 게 이유없이 그저 무수한 비합리성이나 우연스러운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종수기자
  • 고종석씨, 동인문학상 후보 거부

    소설가이자 한국일보 논설위원인 고종석(사진·44)씨가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의 후보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고 위원은 한국일보 25일자 칼럼 ‘이런 생각’에 ‘동인문학상 생각’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이 상과 관련해 내 이름이 거론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정중히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18일자 ‘2004 동인문학상 심사 개막’ 기사를 통해 2004년 동인문학상 제1차 심사독회에서 고종석씨의 소설집 ‘엘리아의 제야’가 후보작에 올랐다고 발표했었다. 고 위원은 “나는 조선일보가 수구 냉전 복고세력의 선전국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비도덕적으로,현저히 정치적으로 드러내왔다는 판단 때문에 집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조선일보를 읽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 위원은 “수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거부라니 얼마나 우스운가,그렇다고 제가 비판해온 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는 꼴은 또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사고/박완서 칼럼 ‘살아가는 이야기’

    대한매일이 새해부터 서울신문으로 새 출발하면서 우리시대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인 소설가 박완서(72)씨의 칼럼을 싣습니다.‘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이름의 이 칼럼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감각이 빛나는 산문의 미학을 전해줄 것입니다. ‘한국 문학의 한 축복’으로 불리는 박완서씨는 분단현실에서부터 가족의 의미,여성문제,자본주의 체제 아래서의 인간소외 등 우리 사회 제반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 주는 탁월한 소설들은 물론 목덜미를 차갑게 훑고 지나가는 듯한 서늘한 감각의 감칠맛 나는 산문으로도 크게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자락 아래 아치울 마을에 사는 박씨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늙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시간과 더불어 원경으로 물러나는 일이고 원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작가의 달관의 경지를 보여 줄 것입니다.오늘의 세태를 깊은 통찰력으로 성찰한 사색과 생활의 정경들이 단아하고 유려한 문체로 생생하게 드러날 이 산문은 연륜의 깊이와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격조 높은 글이 될 것입니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박완서씨는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엄마의 말뚝’‘너무도 쓸쓸한 당신’과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미망’‘아주 오래된 농담’ 등을 발표했습니다.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만해문학상·황순원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도 받았습니다. 새해부터 격주로 월요일에 연재될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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