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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거리 탄탄 영화화에 안성맞춤… 오래된 소설 재조명에 더 잘팔려

    줄거리 탄탄 영화화에 안성맞춤… 오래된 소설 재조명에 더 잘팔려

    밀고 당기고. 문학과 영화의 관계가 그렇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하고, 영화가 개봉되면 다시 원작소설이 더 팔린다. 어쨌든 요즘 소설은 영화와 불가분의 관계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문학은 영화에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 올해 문학-영화의 스타트는 ‘은교’로 시작했던 것 같다. 연초에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2009년 살림 펴냄)를 원작소설로 영화 ‘가비’가 제작됐지만 원작이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반면 2년 동안 5만부 정도 팔렸던 소설 ‘은교’(2009년 문학동네 펴냄)는 영화 개봉 전후로 15만부를 더 팔았다. 70대 노인의 10대 소녀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노년에 대한 성찰을 그려 비교적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파장을 일으킨 탓에 더욱 관심을 끌었었다. 멕시코 출신의 노벨문학수상자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원작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5년 민음사 펴냄)은 동명의 영화가 지난 7월 한국에서 개봉되자 원작소설 판매가 5배 이상 늘었다고 복합상영관 CGV는 밝혔다. 민음사 측은 16일 “영화 개봉 전에 월평균 100부 미만으로 판매되다가 7, 8월에 500~600권이 팔렸다.”고 밝혔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90세 노인의 사랑과 인생에 대한 고독과 성찰을 다뤘다는 점에서 ‘멕시코판 은교’이다. 영화는 15개 개봉관에서 1만 751명이 들었다. 출판사 RHK는 에드거 앨런 포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09년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장 출신인 마이클 코넬리가 편집한 포의 단편소설집 ‘더 레이븐’(RHK 펴냄)을 7월 말 영화 ‘더 레이븐’ 개봉에 맞춰 일부러 내놓았다. 동명의 영화 이름 덕 좀 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영화에 에드거 앨런 포가 나온다는 것 말고는 이 단편소설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탓에 RHK는 크게 재미를 못 보고 있다. 관객이나 독자들이 똑똑하게 무(無)상관을 읽은 것이다. 최종 관객은 15만명이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7월 말 국내 개봉 시기에 맞춰 RHK가 펴낸 ‘케빈에 대하여’는 출간 1개월 만에 1만부를 파는 등 판매실적이 좋은 편이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개봉 후 2만 2000여명의 관객이 들었으니, 단순히 산술적으로 따져 보면 영화를 본 절반이 책을 사서 읽었거나, 책을 읽은 사람들 전부가 영화를 관람한 것처럼 보인다.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2003년 출간한 책으로, 대학살을 저지른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인 아들을 낳은 가족 이야기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던 엄마와 작은 괴물이 된 아들이 실패한 애착관계로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비극을 낳는다는 내용이다. RHK 측은 “영미소설은 많이 팔리면 5000권 정도인데 한 달여 만에 1만권을 팔았으니 베스트셀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RHK는 내년 2월에 국내 개봉할 영화 ‘호스트’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소설 ‘호스트’는 ‘트와일라잇’의 저자 스테프니 메이어의 또 다른 장편소설로 2009년 1월에 번역 출판됐다. 출판 무렵 같은 작가의 영화 ‘트와일라잇’이 개봉되면서 관심이 형성돼 3만 5000부 정도 판매했다. 동명의 영화 ‘호스트’가 내년 초 개봉되면 더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에미야 다카유키가 쓴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만물상자 펴냄)는 임업 기술자인 아사카와 다쿠미가 1914년부터 조선총독부 임업사업소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의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을 수집하고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해 도자기를 기증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원작소설은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출판돼 200만부 넘게 팔렸고, 국내에서는 7월 영화 개봉에 맞춰 책이 출간됐다. 미국 순문학 출판사인 랜덤하우스 빈티지는 지난 7월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시공사 펴냄)가 출간 석 달 만에 2100만부가 판매되었다고 발표했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미국에서 2000만부 이상 팔리기까지 3년이 걸린 것을 떠올리면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영국에서도 J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영국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100만부 판매를 달성한 소설로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인터넷서점 YES24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출판 1주 만에 종합순위 2위를 차지하는 등 놀라운 속도로 판매되고 있다. 그 덕분인지 저자는 영화 판권으로 500만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다 빈치 코드’가 300만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원작료가 아닐 수 없다. ‘주부용 할리퀸 로맨스’라 불리는 여성 취향의 성인소설인데, 영문과 졸업생이자 가난한 아나스타샤와 완벽하게 잘생긴 27살의 성공한 CEO 그레이의 밀고당기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청소년 시절에 하이틴로맨스류를 좋아한 독자라면 1권 50쪽을 넘기기도 전에 심장에서 반응을 할 것이다. ‘간질간질 너무 재밌다.’는 소리 없는 외침과 함께. 그렇다면 대박나는 영화의 원작소설들은 과연 원작료를 얼마나 받을까. 외국의 경우 작가의 지명도에 따라 원작료가 천차만별인 모양인데, 한국은 그와 상관없이 대체적으로 5000만원 수준이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너도 나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달려드는 바람에 원작료가 1억원으로 껑충 뛰고, 러닝개런티 5%까지 받기로 했다. 문소영·최여경기자 symun@seoul.co.kr
  • 명랑소설서 사회소설로 ‘변신’ 소외된 이웃의 삶 고스란히…

    명랑소설서 사회소설로 ‘변신’ 소외된 이웃의 삶 고스란히…

    “소년출세지만 ‘정신 차리자’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 펴냄)을 낸 소설가 김애란(32)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2세에 대산문학상으로 데뷔했으니, 어른들이 인생에서 가장 기피해야 한다는 소년출세 아니냐.”고 질문하자 이런 대답을 턱 하니 내놓았다. 지난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펴냄)이 1년 만에 25만부가 팔려 나가며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을 때도 김애란은 “책마다 반응이 어떨지 모르고 예상할 수도 없는 것이니, ‘역시 정신 차리자’”라고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흰 피부에 커다란 검은 눈이 또렷한 김애란은 원래 유머러스하고 명랑한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써온 단편소설을 묶어낸 ‘비행운’은 세상과 삶의 무게는 천근만 한 대형 바위로 꾹 눌러놓은 듯 묵직한 소설들로 꽉 채웠다. 표제작인 비행운(飛行雲)은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형성되는 구름을 말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행운이 없다는 뜻의 비행운(非幸運)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질 나쁜 채무자가 된 대학 졸업자로 죽어서도 박스를 줍는 할머니의 환영을 보고 오열하는 88만원 세대, 화장실과 동격으로 취급받지만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사식을 넣어 주기 위해 명절 근무를 자청하는 원형탈모증으로 대머리가 돼 가는 공항 화장실 청소부, 첫사랑으로 인해 발 들인 다단계 판매업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학원 제자를 밀어넣고 그 제자가 자살하자 죄의식에 시달리는 전직 학원선생, 재개발 지역의 건물 잔해 위에서 양수가 터진 임부, 크레인 위에서 체불 임금을 요구하다가 실족한 아버지에 이어 홍수로 집을 잃고 다시 크레인에 올라야 하는 소년, 집안의 멸시를 받으며 어찌어찌 조선족과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뤘지만, 암으로 아내를 잃고 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로 중국어를 익히는 택시기사 등이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20대뿐 아니라 50대도 읽는다면 통곡하고 싶은 심정에 빠질 만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을씨년스러운 재개발지역을 다룬 소설은 어떻게 썼을까 싶었다. “취재를 일부러 하지는 않았는데, 지난 4년 동안 소설 속의 소재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가 결혼 전에 살던 서울 회기동이 실제 재개발이 일어난 공간이고, 용산 사태도 벌어지고 해서 쓸 수 있었어요.”라고 김애란은 말했다. 22살 느닷없이 소설가 데뷔를 한 뒤로 ‘총알’(데뷔 전에 써놓은 미발표 작품들)이 많지 않아 청탁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쓰다 보니 시의적으로 민감해졌다. 또 처음에는 주변의 가까운 소재를 쓰다가 한발한발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사회적 소재들이다. 그는 “서산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에 진학하면서 살게 된 서울이란 공간이 하나하나 신기했다.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서 편의점, 고시원, 노량진, 신림동 이야기를 썼고, 공간의 이야기가 재개발 지역까지 확장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퇴고를 많이, 오래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1년 365일 중 300일 정도 소설을 쓰고, 첫날 200자 원고지 3장을 쓰고 다음 날 이어 4장째를 쓰는 것이 아니라, 첫 장부터 다시 쓰면서 4장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쓴다. 김애란의 소설이 밀도가 높은 이유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10년째 소설가의 길을 가는 김애란은 “작가가 되려고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호기심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설을 쓰는 경지에 올라 평생 동안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문학 새 책] 영미권 스타 작가들의 단편소설집

    영미권 스타 작가들의 단편소설집 ●안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스티븐 킹, 닐 게이먼, 마이클 크라이턴, 데이브 에거스 등 영미권 스타 작가들의 단편소설집으로 공포와 추리, 범죄, 로맨스, 판타지, SF 등의 장르를 담았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마이클 셰이본이 작가 섭외부터 디자인까지 총괄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잊혀진 단편소설의 초기 장르를 부활시키고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한 소설집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톨 펴냄.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25편 모아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1990년 폴 버호벤 감독과 2012년 렌 와이즈먼 감독은 영화 ‘토탈 리콜’을 찍었다. 토탈 리콜의 원작은 필립 K 딕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이다. 폴라북스는 ‘도매가’를 표제작으로 하는 딕의 단편소설집을 펴냈다. 딕이 가장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던 1963~1981년의 단편들 25편을 모았고, 이 중 23편은 국내 처음으로 공개하는 단편들이다. ‘현실이 뭐지?’ ‘인간이 뭐지?’라는 의문이 깊게 배어 있다.
  • 김종회교수, 北문학 집대성…연구총서 발간

    문학평론가 김종회 경희대 국문학과 교수가 북한문학연구와 북한의 시, 소설, 비평을 묶은 북한문학 연구자료총서 4권을 발간했다. 이 연구총서는 5년간에 걸쳐 북한문학의 심층적 연구를 위한 자료를 시기별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이다. 특히 시집과 소설집은 각각 912쪽, 922쪽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북한 문학의 이해 및 연구를 통해 남북관계 격변의 시기에 북한 사회 내부를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자료이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통합적 인식과 전망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김 교수는 “1990년대부터 본격궤도에 오른 북한문학 연구가 20년에 이른 시점에 포괄적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 3번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펴낸 소설가 김연수

    3번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펴낸 소설가 김연수

     이겼다의 반대말, 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면서 꼭 1등을 하려는, 남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려고 사는 것은 아니다. 이기지도 않았지만 지지도 않은 상태도 있다. 소설가 김연수(42)의 6번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마음의숲 펴냄)은 달리기를 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심상을 보살피면서 시간을 늘려서 쓰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의 이야기 같다. 이야기의 태반은 달리기와 관련한 글이다.  서울 광화문 근처 한 커피전문점에서 지난 17일 만난 작가 김연수는 책표지 날개에 달린 사진만큼 잘생기지 않았다. 그의 도회적인 문장들이 사금파리처럼 반짝 윤이 나지 않아도 오래 마음에 머물다가 떠나가듯, 김천 사투리를 쓰는 그는 적당히 수줍어하고 적당히 뻔뻔하고 해서 덜 부담스러웠다.  산문집에서 그는 늘 바람을 가르고 일산 호수공원을 달리고 있었다. 김연수는 소설가의 글쓰는 일 말고 그 이외의 생활에 대해서 쓴 것이라고 했다. 달리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책 읽기, 맥주 마시기 등등이다. 2002년부터 ‘빅이슈’ 등 다앙햔 잡지에 쓴 글들을 모았다. 1998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그에게 달리기는 소설 쓰기와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그가 “매일 달릴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매일 소설을 쓸 수 없어요.”라는 말이고, “달리는 것은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것은 “소설을 쓰는 게 어려워요.”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그가 “40대는 달리기의 황금기다.”라고 말했다면 “40대는 소설 쓰기의 황금기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스물네 살에 문단에 데뷔해서 7권의 장편소설을 내고, 4권의 소설집을 묶어냈고, 에세이를 6권 썼다. 내년에 데뷔 20년인데 “많이 꾸준히” 써 왔다고 했다.  “20대에는 어떻게 하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쓰고 싶은데 쓸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소설을 쓰고 못 쓰고가 재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재능이 있을 때 쓰고, 재능이 사라지면 못 쓰는 것이다라고.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바뀌었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달리는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야 매일 달릴 수 있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연습에 얼마나 시간을 쏟아부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다. 마라톤대회 2주 전에 32㎞를 달리면 42.195㎞를 완주할 수 있다. 소설을 쓰는 데도 절대적인 시간이 들어간다. 그 시간을 못 채우면 못 쓴 작품이 나오고, 절대적인 시간을 채우고 나면 잘 쓴 결과물이 나온다. 단숨에 도달하고 싶다고 해도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은 인과의 사슬 속에서 움직이며, 우리의 삶은 장기적으로 평준화돼 간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에는 비평가의 험담에 쓰린 마음을 끌어안고 밤잠을 못 자고 고민하던 스물일곱 살의 젊은 김연수가 있는가 하면, “사랑했지만 어쩌다 보니 헤어진 애인”의 이야기나, “살아오면서 이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여러 번 상처를 입은” 순진한 김연수, 빵집 아들로 달력의 빨간 날에는 새벽까지 빵을 팔아대던 붉은 빰의 소년 김연수가 있다.  40대의 나이에 30대처럼 살면서 20대의 독자들과 호흡하는 김연수에게 연령과 달리기를 비교해 달라고 했다.  “10대는 달리기를 안 한다. 아예 달리기가 뭔지 모를 것이다. 20대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20대는 전력질주를 하기 때문에 장거리를 못 달린다. 30대는 달리려고 했는데 왜 나는 걷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할 것이다. 40대는 달리기의 황금기다. 전력질주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기록도 제일 좋고, 달릴 수밖에 없다. 50대는 불안에 시달릴 것이고, 60대에는 달리기를 못 할 것이다. 최대한 늦게 뛰어야 빨리, 멀리, 오랫동안 뛸 수 있다. ”  우리의 인생으로 고스란히 연결되는 발언이다. 김연수는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게 시간을 조각내서 쓸 것인가, 365개로 조각을 내면 굉장한 소설이 나올 것 같다.”고 한다. 삶이 재능의 크기로 결정될 것도 아니고, 얼마나 질기게, 원하는 것을 향해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에 달렸다고, 그러면 최소한 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100년의 전쟁상태와 식민지를 겪은 아버지 세대들은 패배자가 되면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생생하게 경험했지만, ‘우리’는 다른 식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글·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문학 새 책]

    북극 사냥꾼들의 일상 꽁트집 ●북극허풍담 전 3권(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별천지 펴냄) 덴마크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저자가 북극에 사는 괴짜 사냥꾼들의 비범한 일상을 그린 연작 콩트집. 온통 눈과 빙산에 찬바람이 몰아치는 북극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대한민국의 7~8월 찜통더위에 읽으면 그저 마음이 시원할 듯하다. 책표지도 북극 눈처럼 새하얗다. 각 콩트는 독립돼 있지만, 전체는 연결돼 있고, 허풍 같은데 묘한 현실성이 있다. 영화 ‘카모메 식당’ 감독의 소설 ●히다리 포목점(오기가미 나오코 지음, 푸른숲 펴냄) 영화 ‘카모메 식당’의 감독이 지은 소설집.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봉틀을 물려받은 청년 모리오는 자신을 위한 꽃무늬 치마와 모리오의 재봉틀 소리를 들어야 편두통에서 벗어나는 아래층 소녀 카트린을 위한 꽃무늬 치마를 만들기로 한다. 그래서 전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가는 오래된 섬유거리의 포목점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고양이 사브로와 말 없이 꽃무늬 포목을 골라주는 아주머니가 있다. 소심한 사람들이 잔잔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 英추리작가협 골드대거상 작품 ●가짜 경감 듀(피터 러브시 지음, 이동윤 옮김, 엘릭시르 펴냄) 영국추리작가협회의 골드대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영국 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미스터리. 1920년 격변기의 영국을 배경으로 유쾌함과 풍자, 서스펜스, 미스터리를 한데 맛있게 버무려 놓았다. 철저한 시대적 고증을 거친 작품으로 월터 듀 경감은 1910년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크리펜 박사 살인사건을 해결한 실존인물이다.
  • 젊은 작가 8명이 말하는 고민·자기합리화

    굉장히 현실적이고, ‘해본 여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에 “참 잘도 묘사하네.”라며 큭큭대다가(김애란의 ‘큐티클’), 인간관계를 이래저래 얽어 끌고가면서 말하고자 하는 지점에 명확히 독자를 데려다 놓는 구성력에 무릎을 탁 치게도 만든다(손아람의 ‘문학의 새로운 세대’). 치열하게 사는데도 비루하기만 한, 정상적인 듯한데 속내는 그렇지 않은, 아등바등 살아온 길이 허망하기만 한 현실을 작가 8명이 자신의 언어로 풀어냈다. 민족문학연구소가 선정한 작가의 소설을 한 데 묶어 낸 소설집 ‘포맷하시겠습니까?’(한겨레출판 펴냄)이다. ‘큐티클’은 소비에 대한 고민과 자기 합리화를 털어놓는다. 친하지 않은 친구의 결혼식에 가면서 9㎝ 높이의 구두를 신고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스물아홉 살 여성의 하루를 추적한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점 더 나은 것, 좋은 것, 비싼 것을 구매하는 자신의 모습을 ‘건강한 삶’이라고 위안한다. 선배 언니의 ‘깨끗한 손톱’을 보고 네일숍에 들러 자신도 ‘솜사탕 같은 손톱’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불편하다. 9㎝만큼 삶의 질이 높아지길 바랐지만, 존재감은 “늘 반 뼘 모자라거나 한 뼘 초과”해 허망하기만 하다. 손톱 관리를 받고, 쇼핑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해본 여자들’은 아주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서로의 작품을 “어설프고 성급하다.”, “구태의연하다.”고 폄하하는 소설가 추와 평론가 정이 한 신문사 신춘문예 심사에서 맞닥뜨렸다. 심사에 동참한 소설가 셋과 평론가 둘을 불편하게 하며 우여곡절 끝에 고른 작품의 작가는 스물다섯 살 여성 ‘박’이다. “자신이 더없이 늙었음을 깨달”은 추에게서 문단의 세대교체를 말하려나 했더니 “한국 소설은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는 박의 말로 문단에 절망감을 안긴다. ‘문학의 새로운 세대’가 치밀하고 도발적이라는 느낌이 여기에 있다. 김미월의 ‘질문들’, 김사과의 ‘더 나쁜 쪽으로’, 손홍규의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 염승숙의 ‘완전한 불면’, 조해진의 ‘이보나와 춤을 추었다’, 최진영의 ‘창’ 역시 독특한 언어, 흥미로운 상징으로 사회를 새롭게 조망하도록 유도한다. 민족문학연구소가 쓴 기획의 말 중 “좋은 문학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삶의 방식을 고민케 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에 이 책이 “그런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 소설집의 매력과 역할에 대한 적확한 표현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세 번째 소설집 도시탐험 ‘1F/B1’ 펴낸 김중혁작가

    세 번째 소설집 도시탐험 ‘1F/B1’ 펴낸 김중혁작가

    “제 소설에 나온 모든 이야기는 ‘뻥’입니다.” 소설집 ‘1F/B1(일층, 지하 일층)’을 펴낸 작가 김중혁(41)은 이렇게 말했다. 유리에 알루미노코바륨를 넣어 만든 뒤 울트라소닉을 쏘이면 유리가 수축한다는 ‘유리의 도시’에 나오는 대목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란다. “제 소설을 많이 읽은 분들은 소설 속 지명도, 과학적 이야기도 모두 사실 그대로 쓴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낄낄댔다. 표제작인 ‘1F/B1(일층, 지하 일층·문학동네 펴냄)’을 비롯해 소설집에는 ‘유리의 도시’, ‘바질’, ‘냇가로 나와’,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크라샤’, ‘C1+y=:[8]:’ 등 2009~2011년에 쓴 단편 8편을 모았다. “세 번째 소설집인데, 첫 번째 소설집인 ‘펭귄 뉴스’에서는 사물 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두 번째 ‘악기들의 도서관’에서는 음악과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모았다면 이번에는 도시와 사람의 이야기를 모았다.”면서 “‘1F/B1’의 슬래시(/)가 도시와 도시 사이의 틈 같았고, 그 도시의 틈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중혁에게 도시는 매력적인 소재다. 도시에 대한 각자의 이미지가 있는데, 작은 단서를 던져주면 독자들은 도시에 대한 이미지와 상징을 덧칠하고 더 풍성하게 제멋대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는 제멋대로 해석하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이다. 유리로 외벽을 치장한 일산의 오피스텔들이 해질녘에 오렌지색 태양빛을 반사해내는 것을 보고 그는 ‘그 유리들이 모두 다 떨어져 내린다면?’ 하는 불길한 상상을 하고, 도시의 흉포함을 독자들에게 휙 던져버리는 것이다. 공감해 같이 공포를 느끼든지 아니면 다른 코드로 해석하든지. 단편 ‘바질’의 경우를 보자. 지윤서와 박상훈은 헤어졌다. 지윤서는 이별한 직후 네덜란드로 출장을 떠나 그곳 노점의 할머니에게 바질 씨 10개를 5유로에 사서 돌아온다. 그리고 화분에 이 씨를 심었다. 박상훈은 지윤서가 출장에서 돌아온 뒤 깜깜했던 그녀의 집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박상훈은 지윤서 집 주변이 무성한 덤불로 가득 싸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바질은 더 이상 향신료 바질이 아니고, 사람의 생기를 빨아먹는 괴생물체가 된다. 김중혁은 “그 단편은 쌉싸래한 바질을 좋아해서 쓴 바질에 대한 찬사”라며 “도시에는 조경으로 깔끔하고 인공적으로 정리된 자연도 있지만, 내버려둔 자연도 있다. 그 내버려둔 자연에서 도시인들은 낯선 생물체를 느끼고 섬뜩해하거나 무서워하는 것 아니냐.”고 딴청을 피운다. 겨우 인공호흡기를 쓴 채 허덕거리는 도시의 자연을 무서워할 수 있을까? 역설적이다.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남는다면, 바퀴 달린 것 중에는 반드시 스케이트보드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는 식의 문장을 읽다 보면, 소설가가 40대라는 점을 깜빡 잊는다. 20대의 감각으로 소재를 골라, 40대의 나이 먹은 감각으로 서술해 나갔다지만, 소설을 젊고 유쾌하고, 컴퓨터 게임의 어딘가에 머물게 하는 것 같다. “내 소설에서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그런 일들이 있었네 하고 무심하게 읽어주길 바란다.”고 작가는 말했다. 잡지사 기자, DJ 등을 거쳐 그는 3~4년 전부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라디오 PD도 하고 팔방미인처럼 살아간다. 그것이 소설적 상상력으로 숙성해서 나오는 것인지, 1만 명 이상의 두터운 고정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제 ‘本心’ 좀 읽어주세요 신춘문예 ‘본심’서 정말 낙방할 만했는지…

    본심(本審)에서 떨어진 작품이기도 하고 본심(本心)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단편소설 7편이 인간의 본심에 대한 이야기라는데 실은 작가의 본심에 가깝다. “어디, 정말 떨어질 만했는지 여러분의 평가를 기다립니다.”라는, 기대이거나 혹은 도발이다. 지난해 ‘나의 토익 만점 수기’로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은 작가 심재천(35)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신춘문예와 문예지에 공모했던 작품을 묶어 ‘본심’(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펴냈다. 이 책을 일종의 ‘오답노트’라고 규정한 작가는 “소설을 써 볼 생각이 들 때 이 소설집을 기출문제집으로 삼아 달라.”고 했다. “나처럼 스승 없이 혼자 방에 틀어박혀 쓰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무산됐다’는 속어를 써서 ‘나가리들’과 ‘완전 나가리’로 나누었다. ‘완전 나가리’에 있는 단 한 편을 빼고는 6편이 본심에 올랐거나 ‘근처까지 간’ 단편들이다. 작가에게 “붙을 만하다고 생각한 작품을 꼽아 달라.”고 했더니 주저 없이 ‘산’을 꺼내든다. “폭력에 정면 대응하는 것 대신 자신을 성숙시키고 초탈하는 모습을 그려 봤는데 그 메시지가 심사위원들에게 닿지 않았나 보다.”라고 자평했다. ‘산’의 화자는 인간인지 산인지 알쏭달쏭한 ‘나’이다. 개를 묻고 사람을 묻고 사람들이 버린 집을 묻으면서 산을 차곡차곡 쌓았다. 흙 사이로 빠져나온 등이 볼록한 소년 모와 친구가 되고, 잃어버린 집을 찾아온 여자의 치마 밑에서 나온 ‘아야’라는 아이와 가까워졌다. 동쪽과 서쪽에서 온 군대에 위협당하고 급기야 모가 총에 맞아 죽었지만 ‘나’는 그들을 묻어 버리지 않는다. 대신 “더 높이 올라”가면 된다면서 흙을 얹고 산을 키웠다. 단문을 효과적으로 나열하면서 이야기를 몰아가는 게 매력적이다.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철학을 고고한 산으로 대체해 풀어낸 알레고리가 돋보인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에게는 다소 “느슨하고 도식적”으로 느껴지거나 “지나치게 단순”하게 비쳐 낙방했다. 마약과 폭력에 찌든 삶을 살던 주인공이 도피처를 찾다가 친구가 일하는 한국으로 흘러와 고급 세단을 타는 인기 영어 강사가 됐다. 영어만 하면 누구든, 현지에서 무슨 짓을 했든 상관하지 않고 우러러보는 현실을 풍자한 ‘잉글리시 티처’는 꽤 흥미롭다. 하지만 표현이 극단적이고 거칠어 뒷맛이 씁쓸하다. 덜 ‘근엄한’ 문학상에 도전했다면 가능성이 있었을까. 어찌 생겼는지 모를 권총 한 자루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이 내재된 폭력성을 발견하게 되는 ‘베레타’, TV만 보면 눈에서 피를 흘리는 인턴 사원 민수가 주변 사람들이 TV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관찰하는 ‘드라마틱’은 소재 자체가 독특하다. 개연성이 부족한 감이 있다. 그래서 안된 것일까. 책 뒤에 ‘정답’이 있다. 작가가 심사위원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아 수록한 심사평들이다. 소설이 떨어질 만했는지,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작가와 평론가들이 내놓은 심사평이 적절했는지 여러 각도로 돌려 보는 재미가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32살 조정래가 본 70년대 ‘부조리한 사회’

    호흡이 긴 작품만 써 내던 조정래가 단편소설집을 냈다. 토속적인 전라도 사투리와 맛깔스러운 생생한 대사로 근현대의 역사적 비극을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에 익숙한 독자들은 조정래의 단편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외면하는 벽’(해냄 펴냄)은 작가가 1977년부터 79년까지 문예지에 발표했던 8편의 작품을 담았다. 1999년 발간된 9권짜리 ‘조정래의 문학 전집’에서 ‘마법의 손’으로 묶어 나온 것을 이번에 제목을 바꿔 개정판으로 내놨다. 1943년생인 작가가 32살 무렵에 기록한 1970년대의 기록들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엄마를 찾아 서울로 가 철공소 직원, 짜장면 배달원, 소매치기, 소년원을 체험하고 나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덫에 걸리는 열다섯 살의 ‘동호’(‘진화론’)나, 기지촌에서 혼혈아로 자라난 20대로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어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깜둥이’ ‘흰둥이’들(‘미운 오리 새끼’),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사상범이라는 이유로 적절한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외딴섬 돌로 만든 감옥에서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살다가 죽는 ‘독종’(‘비둘기’)들이 나온다. 장례는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줄로 당연하게 알고 있는 현실이 1970년대는 망자가 살던 집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외면하는 벽’). 조정래는 저자의 말에서 “2010년대 지금 세월이 흘러 흘러 장강이 되었으니, 살 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우리가 좀 더 사람다운 모습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조정래는 “작가로서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7가지 ‘비주류의 삶’ 엮은 단편소설집

    잔인하다 싶다.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만날 법한 인물들이 놓인 처지가 그렇다. 딱할 정도로 비루하기도 하다. 제각각 절망적인 상황을 담은 소설들을 하나하나 거치다 보면 감정은 점점 “이 기분, 뭔지 알 것도 같다.”로 옮겨 간다. 2001년 단편소설 ‘어떤 갠 날’이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 부희령(48)이 현실 그 자체를 담은 첫 소설집 ‘꽃’(자음과모음 펴냄)을 냈다. 각종 지면에 발표한 단편소설 7편을 모았는데 은근한 통일감이 흐른다. ‘결핍’이다.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하지만 자신을 그대로 내보이지 않는 자존감이 부족한 인물이다. 사랑을 놓치고 삶의 터전을 상실하며 청춘을 잃은 인물도 있다. 이들을 스치는 환경은 서정적인데 현실은 잔혹하다. 표제작 ‘꽃’은 여성성에 대한 자신감을 이야기한다. “여자는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내보이면서 한 번도 자랑스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아무도 없는 방에서 조심스럽게 거울을 들이대고, 스스로의 몸을 들여다볼 때도 여자를 지배했던 것은 모욕감과 수치스러움이었다.”(70쪽) 빛바랜 벽지의 얼룩을 보면서 꽃을 떠올린 여자는 왜 여성의 성기를 ‘꽃’이라고 부르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벽지에서 시작된 의문과 연상 작용은 여자가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소녀 시절부터 성관계를 처음 맺은 날을 거쳐 지금 벽지를 보는 시간까지 여성의 몸을 보는 시각과 의식 변화를 되짚어본다. ‘왜 남자는 자신감이 넘치고 여자는 그렇게 위축돼 있을까.’라는 문제를 두고 몸과 섹스에 대한 남녀의 다른 기대와 의미에 대한 심리 분석을 소설로 풀어낸 듯하다. 불안한 청춘 시절을 떠올리는 ‘어떤 갠 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만남을 이어가려는 ‘사다리게임’, 비극적인 운명을 삼촌에게 버림받은 단종에 합일시키는 ‘정선, 청령포’ 등에서 그악스럽고 비루한 생의 이면을 파헤치는 작업은 계속된다. 인물들이 어째 하나같이 열패감과 자조감에 휩싸여 있을까. “주류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많은 소설에서 보여줄 테니 지금 옆에 있을 수도 있는 비주류의 삶을 조명하고자 했다.”는 작가는 “자신감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끝까지 붙잡고 싶은, 놓칠 수 없는 자존감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풀어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톡톡 튀고 힘있는 청춘들의 단편소설

    어느 날 시력을 잃어버린 남편과 근근이 살아가는 아내가 있다. 아내는 똑똑한 남자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멍청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자책하면서, 구청 문화센터에서 미국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강사의 ‘똑똑함’을 동경한다. ‘빽빽하게 책이 꽂힌 고급 원목 책장’이나 ‘작지만 격식 있는 티테이블’을 연상시키는, 딱 봐도 교양 있어 보이는 아내와 남편도 있다. 똑똑한 아들은 기숙사가 딸린 명문 사립중학교에 다닌다. 앞의 부부는 불행하고, 뒤의 부부는 행복할까. 두 부부를 보노라면 한 속담이 생각난다. ‘모든 사람의 옷장에는 해골이 있다.’ 삶과 배경이 정반대인 두 부부에게는 각각의 불행이 있다. 과연 이 두 부부의 불행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교차하면서 풀어낸 두 부부의 이야기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간다. 이 세상의 불행들에 벗어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다. 손보미(2011년 동아일보) 작가의 단편소설 ‘폭우’는 올해 3회를 맞는 젊은 작가상 대상작이다. 문학동네는 등단 10년 이내의 작가들이 지난해 주요 문예지, 공동소설집 등에 발표한 중·단편 소설들을 두고 선정한 젊은 작가상 수상작 7편을 묶은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펴냈다. 젊은 작가들의 톡톡 튀는, 또는 다소 진부한 듯한 서사를 끝까지 읽어내게 하는 힘을 가진 단편소설들이다. 김미월(2004년 세계일보) 작가의 단편 ‘프라자 호텔’은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이라면 옅은 미소를 머금거나, 키득댈 법하다. 여름휴가마다 서울시내 호텔 순례를 하는 부부가 이번에 머물 곳은 프라자 호텔이다. 남자에게 이곳은 아내에게 말하지 못한 대학시절 추억과 연관돼 있다. 택시 기본요금으로 읍내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에서 자란 남자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심지어 7개월 아르바이트비를 쏟아부어 호텔방을 잡기까지, 그 추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 서울 광화문과 명동을 이야기하고, 대학생활을 더듬는다. ‘맞아, 그땐 그랬지.’를 연발하며 풋풋한 사랑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여자’를 ‘엄마’로 부르기까지 미묘하게 변화하는 감정과 관계를 그린 김이설(2006년 서울신문) 작가의 ‘부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한 남자의 배설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유쾌하면서도 철학적으로 풀어낸 이영훈(2008년 문학동네) 작가의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 양산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의 하루 속에 정치사회적 상황과 풍속을 녹인 황정은(2005년 경향신문) 작가의 ‘양산 펴기’, 한 인간 속에 숨은 죄의식을 집중력 있게 파헤친 정소현(2008년 문화일보) 작가의 ‘너를 닮은 사람’ 등이 담겨 있다. ‘국경시장’을 쓴 김성중(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작가는 젊은 작가상이 만들어진 첫 회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상자로 선정되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책꽂이]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류시화 지음, 문학의숲 펴냄) 시인 류시화가 15년의 긴 침묵을 끝내고 낸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1991),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1997) 이후 세 번째다. 인도, 네팔 등을 여행하던 시인은 그동안 쓴 시 350여편 중 56편을 추렸다. 오랜만에 내놓은 시집에는 정제된 언어와 명상, 진솔한 고백, 순정한 사랑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이나 ‘만약 앨런 긴즈버그와 함께 세탁을 한다면’, ‘독자가 계속 이어서 써야 하는 시’ 등 시인의 독특한 감성이 전해오는 시에서는 특히 눈길이 오래 머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시집을 묶는 것이 늦은 것도 같지만 주로 길 위에서 시를 썼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한 채 마음의 갈피에서 유실된 시들이 많았다. 삶에는 시로써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시인의 말 또한 시로다. ●김원일 중편소설집(김원일 지음, 도서출판 강 펴냄) 김원일 순천대 석좌교수의 소설전집 중 중편소설집 3권이 출간됐다. 김원일 소설전집은 그의 사실상 등단작인 장편소설 ‘어둠의 축제’(1967)부터 소설집 ‘오마니별’(2008)을 아우른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 살았던 작은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는 청년과 가족의 시선을 최적의 다양성으로 풀어낸 ‘손풍금’, 이 시대에서 보기 드문 사랑을 그린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 한국사회의 기독교적 믿음의 작동방식을 다룬 ‘믿음의 충돌’ 등 중편소설 13편이 담겨 있다. 김원일 소설전집은 모두 28권으로 예정돼 있다. ●스타터스(리사 프라이드 지음, 박효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 16세기만 해도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는 디스토피아가 대세다. 치사율 100%의 치명적인 생물학 폭탄이 미국을 강타했다. 2년에 걸친 태평양 연안국의 전쟁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백신을 미처 맞지 못한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폭탄이 떨어지고서 일주일 이내에 사망했다. 1년이 지나자 미국의 얼굴은 ‘엔더’라고 불리는 70~80세의 노인들과 ‘스타터’라고 불리는 10대 이하의 청소년만 남게 된다. 부자와 빈자의 장기이식과 같은 비극을 그린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보다 비극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 불안·그리움 담은 섬세한 마음의 풍경화

    웬만해선 문장 하나가 두 줄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간결하다. 그렇게 촘촘히 문장들을 써내려 가면서 만든 문단을 모아 아이들이 복작거리는 피아노학원을 만들고, 어정쩡한 상태로 함께 살고 있는 옛 연인을 그리고, 다소 기이한 성장담을 들려준다. ‘여름’(문학과지성사 펴냄)은 단편소설 ‘늑대의 문장’으로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작가 김유진(31)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문학지에 발표한 단편소설 8편이 각각, 단정한 문장들을 쏟아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리듬감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편의 구성 역시 큰 틀에서 묘하게 연결고리를 갖는 듯하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흔하지 않은 관계, 섬세하게 도드라지는 풍경 같은. 그중에서도 작가는 ‘풍경’에 더 많은 애정을 부여했다. 첫 번째로 실린 ‘바다 아래서, Tenuto(테누토·악보에서 음을 충분히 지속시키라는 음악 용어)’부터 확연히 느껴진다. 인물 K의 일상이 단편영화 한 편 보는 듯 세세하다. 눈을 떠 “밤새 떠나 있던 영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침대에 앉아 있다가 “원룸 발코니에 트렁크 차림에 양말만 신고 양치질을 하는” 아침, 까만 얼굴에 분홍색 옷을 입는 소녀를 응시하는 오후, 오밤중에 고기를 구워 대는 이웃에게 투서를 날린 밤이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이어지는 ‘희미한 빛’에서도 작가의 성향은 이어진다. 전 남자친구가 사귀는 여성의 외모와 행동을 표현하는 것이나, 고용센터의 분위기나, 과거 B와 만든 추억 등이 그렇다. ‘대체 왜 이렇게 풍경에 집중할까.’라는 의문이 생길 즈음 세 번째로 실린 표제작 ‘여름’에서 얼핏 답을 엿본다. ‘…상자는 모두 손으로 만들어야 해요. 지름이 5센티미터건, 1센티미터건. 그래야 각각의 상자마다 크기나 형태에서 미묘한 차이가 생겨나니까요. 그 차이는 나중에 수백 개의 상자를 일정한 패턴으로 캔버스에 옮겨 붙였을 때, 작은 틈을 만들어 줍니다. 그 공간이 변화와 균형감을 만들어 주지요. …큰 그림을 봅니다. 수백 수천 개의 모서리가 만들어 내는 질감, 경계가 희미한 형태들이 주는 모호한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감정을 가진 형태들을 풍경이라 부릅니다.’(76~77쪽) 전화로 만난 작가는 그 풍경을 “글을 쓸 때 가진 소박한 목적”이라고 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그런 것에서 발견하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는 “그 안에 인물이 있지만 앞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단출하면서 미묘한 상황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드러나지 않는’ 인물은 바로 단편 대부분에서 화자인 ‘나’, 하지만 관계 속에서 그 존재는 투명에 가까운 ‘나’이다. ‘희미한 빛’에서 전 남자친구와 어정쩡한 동거를 하는 ‘나’와 ‘물보라’에서 L과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나’, ‘우기’에서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난 ‘나’가 있다. ‘나’는 한 발짝 물러나 있지만, 그려내는 풍경에서 거북함, 불편, 불안, 외로움, 그리움 등 감정을 담아낸다. 평론가 조연정이 해설에서 말한 “김유진이 그려낸 섬세한 마음의 풍경화”가, 그래서 이 소설들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확한 말이지 싶다. 하나 더. 마지막 단편 ‘나뭇잎 아래, 물고기의 뼈’를 제외하고 인물 이름이 죄다 영어 이니셜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물들에게 엄청난 운명과 성격을 부여하는 느낌이라 부담스러웠다.”는 게 이유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소설과 그림이 만났다

    소설과 그림이 만났다

    ‘댄싱 맘’(산지니 펴냄). 마리 로랑생 특유의 화사한 핑크빛 색채감이 살아 있는 유화 ‘아르테미스’가 책표지이고, 책 제목도 유쾌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치고 나면, ‘왕따’나 ‘현대판 고려장’ 같은 칙칙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7편이나 실려 있어 ‘아차!’ 싶을지도 모르겠다. 44살 늦깎이로 등단한 뒤 바지런히 부산 문단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소설가 조명숙(54)의 세 번째 소설집의 표제작 ‘댄싱 맘’도 내용은 영 딴판이다. 4명의 딸과 불화하는, 치매가 시작된 늙은 어머니의 실종과 관련한 이야기인데, 노년에 자식들에게 존경받으려면 어떡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앞서게 한다. 지난 28일 서울 인사동으로 남편이자 시인인 최영철과 서울 나들이를 한 조명숙은 “두 번째 소설집은 ‘죽음’을 소재로 묶었고, 이번 소설집은 여성 화가의 인물화를 모티브로 인간의 상처를 들여다본 작품들로 묶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집이 독자들에게 골라 먹는 재미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투덜대자 “원래 소설은 우울하고 칙칙한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추적하고, 주인공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소설로 그림 읽기’를 시도한 이 책에는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자작나무 숲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소녀’, 프리다 칼로의 ‘버스’, 김원숙의 ‘댄스 온 더 브리지’, 추지영의 ‘바람꽃’, 가브리엘레 뮌터의 ‘블랙 마스크 위드 로즈’, 노은의 ‘새’, 황주리의 ‘추억제’ 순으로 단편소설과 대칭을 이룬다. 이 그림들은 책에 실려 있지 않은데, 책을 읽기 전에 그림을 찾아서 들여다보면 소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겠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네 번째 심리에세이 ‘만가지 행동’ 펴낸 소설가 김형경

    네 번째 심리에세이 ‘만가지 행동’ 펴낸 소설가 김형경

    “…홀로 면벽한 채 남의 이야기나 읽고, 창백한 글이나 쓰고, 삶을 묘사하는 행위는 진짜 삶을 사는 게 아니지 않을까? 무의식을 비워 낸 후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진짜 삶을 살아보리라. 진짜 삶이란 봄에 감자 씨를 묻고 여름에 감자 알을 깨내는 일, 파도치는 밤바다에서 집어등을 밝히고 살찐 오징어를 건져 올리는 일 같았다.…(중략) …작가로 살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이 재능이나 열정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도 알게 됐다. 글을 쓸 때 내부 검열자를 침묵시키면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일부터 불안을 떨쳐 내는 용기, 글쓰기가 공동체의 통념을 넘어서는 곳으로 나아갈 때도 용기가 필요했고, 내가 읽은 세계 명작과 내가 쓰는 글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며 좌절할 때도 용기가 필요했다.…(중략)…만 명의 독자로부터 만 가지 평가를 듣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140~142쪽) 소설가 김형경(52)의 네 번째 심리에세이 ‘만가지행동’(사람풍경 펴냄)에서 글쓰기와 관련해, 변화되는 그의 마음을 이렇게 서술했다. 인용한 글의 첫머리는 30대 언저리일 것이고, 뒤로 갈수록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마치고 훈습(working through)을 거쳐 ‘본령’에 다다른 40대 언저리의 김형경일 것이다. 그가 최근 펴낸 ‘만가지행동’을 손에 들고 소설가가 소설을 써야지 또 심리 에세이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4일 서울 무교동의 커피집에서 만난 김형경에게도 집요하게 왜 더 열심히 소설을 쓰지 않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형경은 “심리에세이도 나의 문학의 한 부문이다. 20~30권의 문학전집이 꾸려질 때 에세이집 4~5권은 아름답지 않겠나. 한때 에세이가 소설보다 하위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독자적인 영역을 가진 문학으로 인정한다. 이제 쓸 만큼 썼고, 경험할 만큼 했으니 내 경험을 나누는 소설을 쓸 것이다. 올가을, 늦어도 겨울 전에 장편소설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사람풍경’이란 책을 쓸 때 심리에세이를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행기를 쓰려다 보니 범람하고 있어서 차별성을 위해 심리이야기를 넣은 것인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고 다음 단계의 책들을 요구해서 네 번째 책까지 쓰게 됐다.”고 말했다. ‘만가지행동’은 두 번째 책인 ‘천개의 공감’의 속편 격 같지만, 사실은 불교의 ‘만행’(萬行)에서 따온 것으로, 스님들이 10년 경전을 읽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10년 참선해 내면의 깨달음을 얻고 나서 10년간 세상에 나아가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온갖 수행을 한다는 의미다. 즉 이전의 책들이 자신을 깨닫는다면, 이번 책은 깨달음을 실천하라는 의미다.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3년 이미 시인이었다. 1985년에는 소설가로도 이름을 올려 ‘중고 신인’으로 늙어가고 있었다. 월간지 기자로 20대를 꾸려나가던 그는 30대 초입이던 1993년 국민일보가 파격적으로 1억원을 내건 제1회 문학상에서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라는 장편소설로 문단에 신데렐라 탄생을 알렸다. 시인 출신답게 문장과 표현력이 탄탄했고, 또 전직 기자답게 구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1980년대의 독재정권을 돌파하며 살아냈던 젊은이들의 고통과 시대상을 잘 반영하기도 했다. 1993년은 공지영(49)이 페미니즘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출간했고, 같은 해 신경숙(49)은 단편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를 내놓았을 때다. 여성작가 트로이카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후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 소설가 김형경의 자리는 넓지 않고, 심리에세이스트 김형경이 우뚝 서 있다. ‘새들은’을 보면 그는 사회적인 문제를 문학으로 통합시켜 존재론적인 고민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했던 소설가였는데 애석하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김형경은 “최근 우리 문학, 소설이 갈 길을 잃은 것 같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작가가 깊이 녹여서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문학이 필요한데, 그 맥락을 잃어버렸다. 세계를 이해하는 코드가 단편화·기계화되니까, 삶의 총체성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면서 “연말에 쓸 장편소설은 그 돌파구를 마련해오는 방식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는 “문학 해법이 어디에서 있는지 짐작한 곳이 있다.”면서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세계 등은 현실 밖에 있다. 현실로 돌아오기.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기를 조만간 해낼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지금은 입보다 귀 열어야 할 때”… 소통을 부탁해!

    “지금은 입보다 귀 열어야 할 때”… 소통을 부탁해!

    “듣는 역할 자체가 남에게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이죠.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고, 사회에서 받은 상처는 사회에서 풀어줘야 합니다.”(소설가 신경숙) “업무 특성상 민원인을 많이 만나요. 머리는 민원인들의 얘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주문하지만, 현실은 그들보다 제 얘기를 더 많이 하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진선경 식품의약품안전청 사무관승진예정자) 신경숙 소설가가 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5급 승진자 과정’ 교육생 246명에게 특강을 했다. 며칠 동안 목감기·콧물감기에 시달리고 있다는 작가는 특강이 시작되자 예의 속삭이듯 조용하게 말문을 열었다. 특강 주제는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소통이다-신경숙의 문학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소통의 필요성, 중요성을 애써 소리 높이지 않았다. 대신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화목했지만 어려웠던 가정, 낮에 일하며 밤에 상고를 다녀야 했던 학창시절, 삶의 구원과도 같은 글쓰기와 만났던 과정, 그때의 고마운 선생님 등 자신의 삶을 조곤조곤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가 최근 펴낸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과 최고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 등 두 작품의 시공간에 씨줄날줄로 얽혀 있는 자신의 삶과 가치, 문학관, 인생관 등을 담담히 풀어내며 공무원들과 조용한 소통을 이뤘다. 교육생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때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때로는 뭔가를 수첩에 적으며 귀 기울였다. 신경숙은 “자기 이야기를 진실하게 들어주는 다른 한 존재만 있어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들어주는 것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소통이라는 것은 들어주는 것이며 지금은 말하는 것보다 들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약속했던 1시간 강의를 훌쩍 넘겨 두 시간 가까이 흘렀다. 특강이 끝난 뒤에도 교육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신경숙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사인을 받기 위해 강단 앞에 줄을 섰다. 양회용 교육생(법무부 대전지방교정청)은 “신 작가의 특강이 있다고 해서 ‘엄마를 부탁해’를 급하게 사서 읽었는데 책 속에서만큼이나 겸손하고 솔직한 작가의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러 강조하지는 않았음에도 진짜 소통은 따뜻한 마음과 감성에서 배어나오는 것임을 저절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구경옥 교육생(호남지방통계청)은 “꼭 공직에 있어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개인으로서도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신경숙은 “공무원분들이 너무도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어주고, 별것 없는 농담에도 폭소를 보내 줘 감기에 걸렸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42)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 루쉰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42)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 루쉰

    1898년, 루쉰은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들어가기 위해 고향 샤오싱을 떠났다. 집을 떠나는 장남의 손을 잡고, 루쉰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어 8원의 여비를 마련해 주시며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셨다.” 어머니의 울음에는, 가세가 기울어져 더 이상 과거공부를 시켜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갈 곳을 찾지 못한 아들에 대한 걱정과 가여움을 담고 있었다. 사실 루쉰의 어머니가 이렇게 서럽게 운 것도 당연했다. 왜냐하면 “그 시절은 경서(經書)를 배워서 과거를 치르는 것이 정도(正道)였고, 사회통념상 소위 양학(洋學)을 배운다는 것은, 갈 곳 없는 사람이 서양 오랑캐에 영혼을 팔아넘기는 것으로 간주되어, 몇 배의 수모와 배척을 당해야만 했기”(납함, 자서) 때문이다. 1898년, 18세가 되는 해에 루쉰은 새로운 길을 찾아 그렇게 고향을 떠났다. 루쉰의 본명은 저우슈런(周樹人·1881~1936)으로, 저장성(浙江省) 샤오싱(紹興)에서 태어났다. 저우 집안은 그 지역에서 웬만큼 산다는 집안이었으나, 과거시험 부정을 꾀했다는 이유로 조부가 투옥됐고, 조부의 관직 외에는 생활수단이 없었던 독서인 집안은 이로부터 가세가 기울었다. 설상가상으로 병에 걸린 부친의 약값을 대느라 재산은 탕진되었다. 집안의 장남인 루쉰은 집안의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는 일, 그렇게 빌린 돈으로 한약방에 가서 부친의 약에 쓰일 희한한 약재들을 사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14살의 소년은 재산과 권세가 가시자 차갑게 돌변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세상의 인정세태를 깨달았다. 루쉰에게 고향 샤오싱은 자신을 얽매고 절망에 빠지게 하는 것들의 집합소나 다름없었다. 샤오싱은 중국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전통적 가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고향은 흡사 고인 물처럼, 현재의 도살자들로 가득했다. 루쉰이 소설가로 발을 내딛으면서 말했던 ”철로 만든 방“은 결코 은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방은 철로 만들어져 깨부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질식사를 기다리듯 그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루쉰은 철방에서 홀로 잠을 깬 자였다. 그는 평생에 걸쳐 철방 속 적막을 느꼈고, 그럴 때마다 사회활동에 더 매진하거나 옛 문헌을 파고들었다. 루쉰은 바로 그런 철방과 같은 고향을 떠났다. 흡사 지금까지의 자신과 결별하듯, 스스로 탯줄을 자르듯. 자신을 짓누르던 전통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때, 루쉰에게 희망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진화론’이었다. 1901년, 루쉰은 옌푸(嚴)의 ‘천연론’(天演論)을 통해서 ‘생존경쟁’과 ‘자연도태’라는 용어를 접했다. 당시 진화론은 생물학적 다위니즘을 비롯해 사회 다위니즘, 상호부조론 등이 한데 뒤섞인 채 물밀듯이 중국으로 들이닥쳤다.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위기의식에 휩싸인 중국 지식인들은 진화론을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을 근대 세계와 같은 궤도에 두고,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했다. 루쉰의 세대에게 진화론은 일종의 돌파구였다. 처녀작 ‘광인일기’(1918)에서 루쉰은 중국 전통의 예의와 도덕의 해악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걸며,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쳤다. 자신과 같은 기성세대는 “인습의 무거운 짐을 지고 암흑의 수문을 어깨로 걸머질” 터이니, 아이들은 자신들을 밟고 넓고 밝은 곳으로 나아가라고 말이다. 그렇게 루쉰은 꽃을 피우기 위한 거름이 되기를 자청했다. 1902년 루쉰은 국비로 일본에 유학을 떠난다. 의화단사건(1900)에서 승리한 서구 연합국들이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청나라의 해외유학생 파견에 전용하기로 결정한 덕분이었다. 일본에 간 루쉰은 망설임 없이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더 이상 부친처럼 어리석은 처방과 치료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의학은 중국을 구해줄 과학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확신은 이른바 ‘환등기사건’으로 여지없이 깨졌다. 루쉰이 의학을 공부하던 시기는, 바야흐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수업시간 틈틈이 선생들은 환등기를 틀어주었는데, 어느 날 루쉰은 거기서 자신이 떠나온 고향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당시 그가 본 환등기 필름은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스파이 혐의를 받은 중국인을 처형하는 장면이었다. 처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고, 그 옆에 일본인 병사가 칼을 치켜들고 있다. 멍한 표정의 구경꾼들은 모두 변발이었다. 동족의 처형을 구경거리인 양 멍하니 바라보는 중국인의 사진 앞에서 루쉰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의대를 그만뒀다. 의학으로 구국하겠다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제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구경꾼밖에는 될 수가 없었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런 일은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납함, 자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루쉰의 답은 “문예”였다. 어리석고 약한 국민을 치료하는 데는 신체를 고치는 의학이 아니라 정신을 고치는 의학, 즉 문예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펜으로 ‘중국인의 열근성(劣根性)’을 해부하고 치료하겠노라! 신체에 깃든 병을 분석하고 해부하고 치료하듯, 루쉰은 글을 써내려갔다. 그에게 글쓰기는 익숙함에 안주하는 중국인들을 향한 공격에 다름 아니었다. 한 치의 위로나 연민도 없었다. 새것조차 헌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중국인의 사유방식, 그것의 기초가 되는 철학, 신화, 예술, 고전 등 모든 익숙한 것에 총공격을 가했다. 전통의 해독(害毒)에서 청년들을 지키기 위해 고문은 읽지도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 모두가, 탁자 하나를 옮기는 데도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필요로 하는 중국의 견고한 전통과 인습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었다. 루쉰은 우리에게 소설가로서 잘 알려져 있지만, 기실 그는 세 권의 단편소설집만을 남겼을 뿐이다. 소설 창작은 1920년대 초반에 집중되어 있고, 그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는 잡문쓰기에 치중했다. 지금의 에세이에 해당하는 잡문은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정신을 핵심으로 한다. 일본제국주의의 만행과 군벌들의 난립과 폭행, 국민당의 백색테러, 혁명을 팔아먹는 지식인, 현실의 권력에 굴복하면서도 정인군자(正人君子)인 체하는 하는 지식인. 루쉰의 붓끝은 그 모두를 향해 있었다. 잡문은 민중의 무지몽매함과 아큐식의 정신승리법을 비판하고, 혁명에 들뜬 청년들의 조급증을 논파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그의 잡문은 말 그대로 시대를 향한 비수이자 투창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루쉰의 글쓰기는 자신을 부정하고 해부하는 작업이었다. 황금시대로 아이들을 넘겨주는 중간물이자 꽃을 키우기 위한 거름으로 자신을 규정한 루쉰은 새롭게 도래할 혁명의 시기에는 멸망될 운명의 존재였다. 미래세대의 독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의 신체에 새겨져 있을지 모를 중국인의 열근성과 대면했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만큼, 루쉰은 시대의 암흑에 맞선 투쟁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결연한 의지는 죽음을 앞두고 유언처럼 쓴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만 열이 몹시 날 때면 유럽인들은 임종시에 흔히 남이 너그럽게 용서해줄 것을 바라며 자신도 남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의식을 지낸다는 사실이 기억날 뿐이다. 나의 적과 원수는 적지 않은데 신식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나는 생각해보고 나서 이렇게 결심했다. 그들에게 얼마든지 증오하게 하라. 나도 하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죽음) 루쉰은 죽어가면서까지도 무력으로 중국을 농단하는 제국주의자들과 군벌들, 위선적인 지식인들, 그들을 뒷받침하는 과거의 부정적인 것들을 향해 겨누던 창을 거두지 않았다. 전근대와 근대 사이에서 두 세계의 어둠을 볼 수 있었던 루쉰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암흑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다. 켜켜이 쌓인 중국의 역사를 뒤집는 일, 중국인의 혈관을 흐르는 피를 바꾸는 일, 즉 혁명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루쉰은 죽으면서도 모든 익숙한 것들, 자신을 위로하는 것들에 속지 말라고, 투쟁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최정옥(남산강학원 연구원)
  • 어머니…선생님…당신의 향기를 多 담았습니다

    어머니…선생님…당신의 향기를 多 담았습니다

    “‘젊은 작가라고 해서 젊은 줄 알았더니 30대 후반 아니냐’고 한 출판사에서 박완서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 그리 이야기하셨습니다.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처럼 함께 여행을 가거나 세배를 한 추억이 없습니다. 그렇게 선뜻 저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아마도 (나를) 믿을 만한 작가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인생에 대해 늘 긴장하고 의심하고 질문할 때 감명받았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자신을 소수에 넣은 겸손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균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 은희경은 26일 세계사의 ‘박완서 소설전집’ 출판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하며 작가 박완서를 추모했다. ‘자신을 소수에 넣는 겸손, 그것이 균형’이라는 은희경이 해석이 마음에 꽉 박혔다. 지난해 1월 22일 별세한 박완서의 1주기 기념 출판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사는 이날 22권짜리 박완서 소설의 전집 결정판이 완성됐음을 선언했다. 문학동네는 마지막 소설집 ‘기나긴 하루’를 펴냈다. 열화당에서는 박완서의 첫 소설집 ‘나목’과 이를 해석한 ‘나목을 말하다’를 500권 한정 특별판으로 출간했다. 출판계에서는 “이청준도 박경리도 이런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세계사에서 펴낸 전집은 의미가 남다르다. 박완서의 팔순(2011년 10월 20일)에 맞춰 출간 예정이었던 기획이었는데, 1주기 기념 출판이 됐기 때문이다. 박완서는 2008~2009년 즈음 “여기저기 출판사에 흩어져 있는 작품을 한데 모아서 내고 싶다.”고 주변에 이야기했었다. 전집이 나오는 중에도 계속 다른 출판사에서 소설책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13권 전집(1993~1996년)과 17권으로 늘어난 개정판(2002~2008년)을 냈던 세계사가 박완서의 꿈을 다시 현실화하는 데 참여했다. 2010년 5월 3일 첫 번째 편집회의에서 박완서는 개개의 작품을 손수 교정 보고 내용도 고치는 등 모든 작품을 직접 만져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꿈은 ‘나목’의 교정을 마치고 두 번째 책인 ‘목마른 계절’을 보던 중에 담낭암으로 타계하면서 미완으로 남았다. 이번 전집에는 박완서의 등단작 ‘나목’부터 작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펴낸 2004년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까지 작가의 장편소설과 연작소설 15편이 모두 담겨 있다. 근작인 ‘아주 오래된 농담’과 ‘그 남자네 집’이 추가됐고,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던 ‘미망’은 원제를 복원해 실었다. 1차 전집에 포함됐던 ‘욕망의 응달’은 빠졌다. 이 작품은 여성지에 1978년부터 1년간 연재했던 것인데 박완서는 결정판 편집회의 이후 수록 목록을 줄 때 ‘전집에 넣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문학평론가 이경호씨는 “박완서의 특징을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장편, 중편, 단편 등 모든 장르에서 고르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둘째 특별히 전성기라 구분할 시기가 없이 노년에도 당대의 1급 작가들과 계속 문제작을 두고 겨루었다는 점, 셋째 한국 대표 작가로서 문학적 평가는 물론 대중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어낸 작가라는 점, 넷째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활동했다는 점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박완서가 다룬 주제는 전쟁과 분단, 이산가족, 1970년대의 속물 자본주의와 타락한 중산층의 삶, 여성과 노인 문제, 성장소설, 연애까지 다양했다.”고 덧붙였다. 세계사의 전집 결정판이나 열화당의 나목이나 모두 박완서의 장녀 호원숙씨의 참여가 없었더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호씨는 어머니가 타계한 뒤 교열을 책임져야 했다. 그는 출판 간담회에서 “지난 1년 동안 저에게 맡겨진 숙제가 굉장한 축복이자 동시에 큰 고통이었다.”면서 “가족이자 독자로서 어머니의 문학을 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교정을 보다가 내팽개치기도 하고, 끌어안고 자다가 일어나 다시 읽고 하는 과정을 반복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소설을 읽는 것은 큰 산맥을 종주하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려움만 주신 것이 아니라 냇물이 흐르고 들꽃이 피고 강이 흐르고 하는 즐거움도 주셨다. 언어와 표현의 즐거움, 많은 고통이 녹아있었다.” 특히 열화당의 ‘나목을 말하다’는 호원숙씨가 엮은 것으로, 나목을 쓰던 40대 안팎의 젊은 박완서를 10대의 기억으로 되살려냈다. 또 1976년, 1985년, 1990년 나목을 펴낼 때 쓴 작가의 후기와 김윤식과 김우종의 평론, 독자들의 감상문 등이 붙어 있어 나목을 이해하는 열쇠 같다. 열화당 나목의 백미는 134쪽부터 수록된 ‘‘나목’의 달라진 표현 대조표 1970-1976-2012’다. 열화당 이기웅 대표는 “여성동아 장편소설 당선작인 나목을 35년 전 처음으로 출판했다.”고 소개한 뒤 “1주기를 맞아 책이 나올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고, 대조표를 통해 나목을 재조명하고 역사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열화당의 한정본은 그래서 세로쓰기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배에 대한 추억 한 가지. 설날 세배 간 문인이나 출판계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박완서는 출판사 사람이나 후배 작가들이 세배를 오면 꼭 세뱃돈을 건넸다고 한다. 남자는 1만원, 여자는 2만원. 세배돈이 그리운 게 아니라 세배 갈 어른이 사라져 문학계는 슬퍼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환상인 듯, 현실인 듯… 그 희미한 존재를 쫓아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어떤 게 현실이고, 어디까지 공상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초반에는 읽어 내리기에 다소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점점 그의 문체에 적응할 즈음 어느새 마지막 단편에 다다랐다. 젊은 소설가 황정은(36)씨의 두 번째 소설집 ‘파씨의 입문’(창비 펴냄)은 확실히 매력이 있다.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7개 문학지와 2개 소설집에 실린 단편 9편을 모았는데 은근한 흐름이 읽힌다. 고씨와 한씨, 박씨와 백씨를 형과 동생, 형수님과 제수씨로 얽어 놓은 첫 단편 ‘야행’에서 이들의 가족관계가 어찌 이리되나 고민하다가 환상을 접해버렸다. “책. 책. 무슨 시계 소리가. 책. 책. 책. 그보다. 사람들은 내가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바쁘다.…저 사람들은 피를 흘리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싸운다. 무슨 재미가 있을까. 책. 책. 책. 책. 책.” 짤막한 대화가 이어지더니 곰이 시계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빠지자 온통 글투성이가 된다. 당혹스럽다.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잡념 속으로 끌어들이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는 부조리극 한 편을 마무리해버렸다. 환상은 죽어 잊히는 것들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죽은 원령의 시선으로 한 남자의 삶을 그린 ‘대니 드비토’와 3년째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를 그린 ‘낙하하다’, 다섯번 죽고 다섯번 살아난 길고양이의 삶을 그린 ‘묘씨생’은 있을 법하지만 관심을 두기에는 난감한 어떤 존재를 다뤘다. 그럴듯하게 사실적인데, 정작 존재의 유무를 대입하자니 어쩐지 오싹하다. “서쪽에 다섯 개가 있어.”라는 항아리의 목소리를 듣고 길을 나서는 ‘옹기전’이나 일일 바자회에서 양산 파는 아르바이트생의 하루를 담은 ‘양산 펴기’까지 이어지면 단편의 흐름은 존재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인가 싶다. “귀신 붙는다.”며 내다 버리라는 부모의 호통에도 “마음먹고 버리면 거기가 버릴 데”라는 노인의 충고에도 항아리의 말을 쫓아가는 아이는(‘옹기전’), “자외선 차단 노점상 됩니다 안 되는 생존 양산 쓰시면 물러나라 기미 생겨요 구청장 한번 들어보세요 나와라 나와라 가볍고….”라고 엉킨 외침은(‘양산 펴기’)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희미한 존재에 귀 기울이도록 유도한다. 간결하면서 리듬감 있게 흘러가는 문장으로 긴장감을 전달하는 기교, 서사(敍事)가 환상이 되고 환상을 다시 현실로 옮겨 오는 이음새가 마지막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이 작가의 매력이다. 1만 1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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