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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만 루슈디가 겪은 ‘도피생활 12년’ 무라카미 류가 그려낸 日 중·장년의 삶

    살만 루슈디가 겪은 ‘도피생활 12년’ 무라카미 류가 그려낸 日 중·장년의 삶

    영국, 일본의 유명 작가 작품이 잇따라 번역 출간됐다.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 ‘조지프 앤턴’(문학동네)과 무라카미 류의 소설집 ‘55세부터 헬로라이프’(북로드)다. ‘조지프 앤턴’은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도발적으로 묘사한 소설 ‘악마의 시’로 1989년 이란의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에 의해 유례없는 공개 처단명령이 떨어졌던 루슈디의 자서전이다. ‘악마의 시’ 집필 계기와 작품을 둘러싼 논란, 처단명령 발동 시점부터 영국·이란 정부 간 협상에 따른 명령 철회, 2002년 영국 경찰 특수부대의 루슈디 경호업무가 해제되기까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13년의 기록이다. 호메이니는 ‘악마의 시’ 출판 당시 “자랑스러운 전 세계 무슬림에게 공포한다. 이슬람교와 예언자 무함마드와 쿠란을 모독한 ‘악마의 시’ 작가에게, 그리고 이 책 내용을 알면서도 출판에 관여한 모든 자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어디서든 그자들을 발견하는 즉시 처단하기를 모든 무슬림에게 촉구한다”(16쪽)는 내용의 ‘칙령’(파트와)을 발표했다. 파트와의 후폭풍은 거셌다. 이탈리아어 번역가는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고 일본어 번역가는 살해당했다. ‘조지프 앤턴’은 루슈디가 ‘악마의 시’를 발표한 뒤 도피생활을 하며 지은 가명이다. 그가 존경하는 작가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에서 따왔다. ‘55세 헬로라이프’는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4050세대의 가느다란 희망을 담고 있다. 작가는 대표작 ‘69’ 이후 30여년 만에 ‘55’라는 숫자를 들고 나왔다. 전후 풍요로운 일본 사회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춘들의 얘기를 담은 ‘69’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TV만 보는 남편과 이혼하고 재혼남들을 만나며 사랑을 찾는 여자(‘결혼상담소’), 작은 출판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뒤 노숙자만 보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는 남자(‘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중견 가구회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나자 조기 퇴직한 뒤 재취업의 어려움을 겪는 남자(‘캠핑카’), 무뚝뚝한 남편 대신 반려견에게 의지하는 여자(‘펫로스’), 운송회사를 다니다 그만두면서 아내와 헤어지고 트럭운전사로 살아가는 남자(‘여행 도우미’) 등 5편의 중편소설을 통해 중장년의 절망과 희망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현대 일본 사회의 시대적 문제를 앞장서서 읽어내는 작가라는 평에 걸맞게 인생의 변곡점에 선 중장년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덧 없음에…더 애절한 고백

    덧 없음에…더 애절한 고백

    ‘겨울의 환’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채원(69)이 신작 소설집 ‘쪽배의 노래’(문학동네)를 냈다. 2004년 여덟 번째 소설집 ‘지붕 밑의 바이올린’ 이후 11년 만이다. ‘자기 스스로를 원질(原質)로 한 고백체형 소설의 순금 부분을 이루었다’(문학평론가 김윤식)는 평가가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의 운명적 쓸쓸함, 삶의 허망함을 투명한 고백체형 문체로 드러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특징 짓는 회화적인 언어감각과 여성 인물의 자의식도 여전히 서늘하고 강렬한 빛을 발한다. 소설집엔 표제작 ‘쪽배의 노래’를 비롯해 ‘서산 너머에는’, ‘등 뒤의 세상’, ‘조금 더 가까이’, ‘물의 희롱-무와의 입맞춤’, ‘소묘 두 점’ ‘누가 빨강 파랑 노랑을 두려워하는가’ ‘거울 속의 샘물’ 등 단편 8편이 실렸다. 2002년부터 최근까지 쓴 작품들이다. 문학평론가 문혜원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수다스러움이 없고 물 흐르듯 조용한 목소리가 흐른다”며 “자전적인 에세이 혹은 일기, 가까운 이와의 손편지 같은 소설을 읽으며 자주 쉬었고 그때마다 편안하게 상념으로 빠져들었다”고 평했다. 표제작 ‘쪽배의 노래’는 집을 쪽배에 비유했다. 집은 거센 바람이 불던 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에 실려 쪽배처럼 흘러간다. 가만히 있으면 바람에 사정없이 부서져 가족이 다치기 때문이다. 작가는 “절대적인 사랑을 생각했다”며 “누군가를 위해 자기 목까지 내놓는 게 절대적인 사랑”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세찬 바람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갔던 쪽배가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처음 자리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어린 시절 감성도 묻어 있다. 이번 소설집은 “영원한 나의 초상”이었던 소설가인 언니 김지원의 2주기를 맞아 나왔다. 김지원은 2013년 1월 30일 세상을 등졌다. “언니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작품집 출간이 우연히 2주기와 맞아떨어졌다. 이 책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딘가에 바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새삼 깨닫는다.” 작가도 삶의 마무리를 생각한다. “자연의 나이로 마지막에 가까이 와 있다. 점점 말이 하기 싫어지고 어딘가에 전화 한 통 하기도 힘이 든다.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불안한 마음으로 사전을 찾아보지만 사전이라는 단어를 알아야 찾을 수 있음을 자각한다. 그동안 작품을 많이 쓰진 못했지만 꾸준히 써 왔다. 떠나기 전까지 특별히 어떻게 지낸다기보다는 평소처럼 글을 쓰며 지내고 싶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1·끝) 문학 작품 속 서울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1·끝) 문학 작품 속 서울

    ●문학작품 속의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문학은 픽션이지만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망원경이거나 현미경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현실을 우화처럼 보여 주는 만화경(萬華鏡)이 되기도 한다. 역사가 서울에 관한 공식적이고 근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문학작품에는 역사에 나오지 않는 서울사람들의 내밀한 희로애락이 실려 있다. 공룡 같은 도시, ‘서울공화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빌딩과 아파트 숲에 가려진 서울사람들의 진면목은 역사보다 오히려 문학 속에 살아 숨 쉰다. 우리 문학작품 속의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파리의 에펠탑이나 몽마르트르 언덕, 센강처럼 낭만적이고 생동감 있는 모습일까. 한번쯤 가 봐야 하는 버킷리스트에 올라가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시와 소설 속 서울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로 넘친다. 내 집 마련의 꿈과 전세살이의 고달픔, 실직과 타향살이의 애환,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투성이다. 노동운동과 민주화 과정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천민자본주의의 욕망이 꿈틀댄다. 한때 프랑스 도시사회학자들이 유행시킨 ‘Seoulization’이라는 용어가 서울을 상징하는 단어로 회자된 적이 있다. 미국 뉴욕의 고층건물 집적화를 꼬집을 때 쓰였던 ‘Manhattanization’처럼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Seoulization’이란 초거대도시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유형의 현상 중 하나로 흔히 ‘서울형’이라고 설명됐다. 환경오염과 파괴, 무질서, 범죄가 판치는 쓰레기통 같은 도시라는 뜻으로 쓰였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책을 펴내 서울을 아파트의 나라로 특징지었다. 한국과 프랑스는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대표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였다.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였고,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그런 공통점 때문에 보존으로 한발 앞서간 파리사람들이 개발에 목을 매는 서울사람들을 비하한 것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이전 서울을 그린 시가와 산문 작품들 어떤 문학작품이 단순히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 서울을 다룬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나라 문학과 예술작품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생산되고 서울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당대 서울의 의미 있는 특성을 부각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가려 살펴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의 문학은 시가 문학과 산문 문학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시가 문학은 조선의 개국과 한양천도를 알린 정도전의 ‘신도가’와 ‘신도팔경시’가 대표적이다. 신도가는 “아으 다롱디리 앞은 한강수여 뒤는 삼각산이여”라는 대목으로 유명하다. 권근의 ‘신경지리’, 정이오의 ‘남산팔영’, 변계량의 ‘화산별곡’, 윤회의 ‘경회루시’ 등 한결같이 한양을 찬탄하는 내용이었다. 서거정 등의 ‘한도십영’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석형의 ‘호야가’에서 한양도성 축성에 동원된 백성의 참상을 묘사했으며 임진, 병자 양란 이후 비판적 작품들이 나왔다. 박제가가 ‘성시전도’에서 근대지향적인 실사구시를 선보였으며 한산거사의 ‘한양가’와 작자 미상의 ‘장안걸식가’에서는 서울거리의 풍물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동하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문학·국어학과 서울연구’ 논문에서 “조선 전기의 산문 문학은 성현의 ‘용재총화’, 허균의 ‘장생전’ 등 잡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후기로 접어들면서 전(傳), 야담, 소설 등 다양한 산문 장르가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서울에 관한 자료가 여럿 발견됐다”고 말했다. 정내교의 ‘김성기전’과 ‘임준원전’, 박지원의 ‘마장전’과 ‘광문자전’, 유득공의 ‘유우춘전’, 이옥의 ‘시간기’(市奸記), 조수삼의 ‘육서조생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옥은 시간기에서 “서울에 세 군데 큰 장이 서는데 동편은 배오개, 서편은 소의문, 중앙은 운종가다. 모두 좌우양편으로 전이 늘어서 은하수처럼 벌여 있다.…”라고 19세기 초 서울의 시장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20세기 시와 소설… 근대문학 작품들 일제 강점기와 전쟁·분단의 비극과 참상 그리고 서울로의 미친 듯한 집중과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자비한 개발이 낳은 인간성 상실과 사회 병리현상의 실체를 문학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진에 찍히지 않는 실체적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동하 교수는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김광균의 ‘장곡천정에 오는 눈’, 오장환의 ‘수부’(首府), 서정주의 ‘광화문’, 정회성의 ‘어두운 지하도 입구에 서서’, 박노해의 ‘가리봉시장’,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연작 등 7편의 시가 1920~1990년대까지 서울을 특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소설은 시대순으로 염상섭의 ‘사랑과 죄’, 이상의 ‘날개’, 박태원의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태순의 ‘밤길의 사람들’, 윤대녕의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 등을 꼽았다. 서울은 물질적으로는 유토피아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디스토피아이다. 빛과 그림자의 도시인 셈이다. 문학작품 속에서 서울을 읽는 코드는 다양하지만 몇 가지 특징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근대화와 개발에 의해 소외된 군상, 아파트와 달동네로 대변되는 주거를 둘러싼 소시민 군상, 전쟁과 민주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군상 등이 그것이다. 개발시대 인간군상을 다룬 시 중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는 1960년대 개발에 의해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인간의 애절함을 비둘기에 비유했다. 신동엽도 시 ‘종로오가’에서 이농과 도시빈민, 매매춘 같은 개발연대 희생자들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조선작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의 여주인공 영자는 70년대 우리의 딸들이 겪은 인생유전의 자화상이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서울 변두리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무허가 주택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 줬다. 박완서의 소설 ‘이별의 김포공항’은 당대를 휩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그렸다. 신경림, 정희성, 장정일은 1970~8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무기력한 삶을 시로 읊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2000년대 서울은 구원이 필요한 도시다. 서울은 소돔과 고모라로 그려진다. 주거를 둘러싼 인간군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김광식의 소설 ‘213호 주택’은 1950년대 서울의 대규모 공영주택단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상도동을 중심으로 정릉, 안암동, 청량리, 약수동 등 벽돌처럼 찍어낸 교외 단지주택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풍경이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소설가 최인호는 ‘타인의 방’에서 아파트 생활에서 발생하는 현대인의 미묘한 정서를 다뤘고 조세희는 ‘민들레는 없다’에서 “잠실은 모래로 만들어진 동네이다. 모래땅에 모래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 서 있다”며 요즘 잠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양귀자는 연작소설집 ‘원미동사람들’에 수록된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에서 1980년대 서울을 떠난 서울사람이 아닌 서울사람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었다. 이문열의 ‘서늘한 여름’, 박영한의 ‘지상의 방 한 칸’, 신상웅의 ‘도시의 자전’, 최수철의 ‘소리에 대한 몽상’,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 등도 집을 매개체로 서울과 서울 언저리를 떠도는 서울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황지우의 시 ‘徐伐 셔, 셔발, 서울 SEOUL’이 제5공화국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허위성을 나타냈다면 1980년대 강남을 그린 박완서의 ‘꽃을 찾아서’에서는 의외의 장면과 마주친다. “가락동, 오금동, 방이동…다 싫어요. 혜화동, 안국동, 경운동하는 동네이름 좀 좋아요, 품위도 있고…” 그 시절 강남은 강북 콤플렉스를 가진 그렇고 그런 동네였다. 반면에 김원일의 ‘깨끗한 몸’, 이남희의 ‘플라스틱 섹스’, 이순원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등 일련의 소설들은 1990~2000년대 강남을 무대로 펼쳐지는 퇴폐와 향략상을 담았다. 강남은 서울의 시원지였으나 이천년 가까이 잊혀졌다가 다시 새로운 서울의 원천으로 떠오른 땅이다. 인생역전이요 세상은 돌고 도는 것임을 소설은 가르쳐 준다. 저항의 군상을 대표하는 작품은 김지하의 ‘오적’(五賊)이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독재정권의 부도덕성과 오적의 소굴이라고 불렸던 동빙고동, 성북동, 수유동, 장충동, 약수동에 사는 재벌, 국회의원,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계층을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1960~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은 왜곡된 노동구조와 비인간성이 판치는 자본주의의 하수구였다. ‘전태일평전’을 쓴 조영래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윤정모의 ‘신발’, 강석경의 ‘숲속의 방’,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어쩌면 당대를 산 문인들의 참회록이다. 이균영은 “서울은 원주민이 없는 낯선 도시”라고 선언했다. 우리 문학사에서는 ‘소설가 구보씨’가 세 번 등장한다. 1930년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식민도시 경성의 거리를 거닐던 지식인의 상실과 자조를 보여 주었다면 1970년대에는 최인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통해 서울을 관찰했고 1990년대에는 주인석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거의 동명의 작품을 통해 서울의 하루를 정밀스케치했다. 2003년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종은의 ‘서울특별시’와 이혜경 등 여성 작가 9명의 서울에 관한 단편을 모은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도 소설가의 눈에 포착된 서울의 일상이자 기록으로 남았다. 소설과 시는 어쩌면 역사보다 위대하다. 선임 기자 joo@seoul.co.kr 서울의 생성과 소멸의 궤적을 추적한 ‘노주석의 서울택리지’는 이번 회로 끝을 맺습니다. 2012년 6월 연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41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서울택리지’ 1권이 지난해 10월 책으로 출간됐고, 2권이 올 봄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 박완서의 동심 세계를 엿보다

    박완서의 동심 세계를 엿보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4주기를 맞아 추모 산문·소설집에 이어 어린이 책들도 새 옷을 갈아입고 재출간됐다. 박완서가 글을 쓴 그림동화 ‘7년 동안의 잠’과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못난이’다. 어린이작가정신에서 펴냈다. ‘7년 동안의 잠’은 여름 한철을 보내기 위해 7년여 동안 땅속에서 잠들어 있는 매미 애벌레를 발견한 개미들의 이야기다. 수년째 흉년이 이어져 먹을 게 부족한 개미 마을. 어느 날 한 개미가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크고 싱싱한 먹이를 발견한다. 순식간에 모든 개미들이 먹이에 달려든다. 그때 지혜로운 늙은 개미가 이 먹이는 매미가 되기 위해 7년이 넘도록 땅속에서 지낸 매미 애벌레라며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곧 허물을 벗고 날아오를 애벌레를 먹이로 해선 안 된다고 제지한다. 애벌레를 먹어야 할지 매미가 되도록 놔둬야 할지 고민하는 개미들을 통해 삶에서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애벌레서 어른 매미가 되기까지 매미가 감수해야 하는 인내와 끈기를 통해 생명의 고귀함도 표현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못난이’는 떼만 쓰면 원하는 걸 모두 얻는 떼쟁이 ‘빛나’가 동갑내기 사촌 ‘고운’이의 못난이 인형을 탐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빛나는 떼쟁이가 됐다. 갖고 싶은 인형은 울고불고 길바닥에 뒹굴어서라도 꼭 손에 넣고야 만다. 하지만 잠깐 관심만 보일 뿐이다. 떼를 써서 샀다가 잠깐 갖고 놀다 방치한 인형들이 커다란 장식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느 날 빛나는 고운이네 집에 놀러 갔다 고운이 품에서 밝게 웃는 못난이 인형을 보고 빼앗으려고 또 떼를 쓴다. 오래도록 사랑의 손길을 주어 정감과 온기가 깃든 고운이의 못난이 인형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을 주고 사랑을 쏟았을 때 얻어지는 결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려준다. 물건 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동물도, 자연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게 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우쳐 준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박완서 그를 추모하다

    박완서 그를 추모하다

    22일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4주기를 맞아 추모 산문집과 소설집이 잇따라 출간됐다. 초기 산문집도 새 옷을 입고 다시 나왔다. 박완서의 맏딸 수필가 호원숙은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달)를 펴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쓴 산문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평범하면서도 소소한 하루하루를 소개한 1장 ‘그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치울에 머물며 어머니를 회고한 2장 ‘그후’, 작가가 개인적으로 틈틈이 일상의 면면들을 포착해 삶의 의미를 찾는 3장 ‘고요한 자유’로 이뤄져 있다. 작가는 “어머니가 계실 땐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다. 어머니라는 큰 산을 벗어나 ‘나는 나다’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게 됐다. 작가로서,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어떤 역할도 피하지 않으며 훌륭하게 지낸 어머니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완서의 초기 산문집 7권(문학동네)도 새로이 나왔다. 1977년 첫 산문집부터 1990년까지 출간된 것으로, 초판 당시 원본을 토대로 중복되는 글을 추리고 재편집했다. 1권 ‘쑥스러운 고백’, 2권 ‘나의 만년필’, 3권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4권 ‘살아 있는 날의 소망’, 5권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6권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수’, 7권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등이다. 출판사 측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작가의 생생한 경험담과 소소한 일상에서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각각의 책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후배 문인들은 추모 소설집 ‘저물녘의 황홀’(문학세계사)을 냈다. 박완서의 단편 ‘저물녘의 황홀’과 여성 소설가 14명의 신작 소설이 실렸다. 동리문학상 등을 받은 노순자의 ‘웃음’, 영화 ‘여자 정혜’의 원작자 우애령의 ‘장승포에서’,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의 원작자 박재희의 ‘춘향’ 등이 수록됐다. 박완서의 ‘저물녘의 황홀’은 그의 딸 호원숙이 추천했다. 자녀들이 모두 이민을 떠나고 홀로 살아가는 60대 노인의 고독을 그린 작품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소개합니다 ‘히든 소설가 챔피언’

    소개합니다 ‘히든 소설가 챔피언’

    신춘문예 등단의 바늘 관문을 거친 새내기 문인들이 주목받는 이즈음. 출발점에서의 포부나 기대와 다르게 많은 글꾼들이 문단과 대중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탄탄한 실력을 갖췄는데도 관심권에서 비껴나 있는 소설·시 부문의 숨은 보석들을 돌아본다. 먼저 문학평론가 10명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설가들은 누구일까. 조정래, 황석영, 김홍신, 신경숙, 김훈…. 올해 두말이 필요 없는 대형 작가들의 작품이 잇따라 출간될 예정이다. 문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는 박민규, 편혜영, 김애란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발간을 앞두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귀환이다. 하지만 이들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숨은 보석’들도 있다. 문단의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실험정신으로 문학을 살찌우고 그 영역을 넓히는 작가들이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와 김동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는 조현을 꼽았다. 그는 2008년 등단 후 소설집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를 냈다. 2000년 이후 한국 문학의 중요한 전통인 사실주의나 체험·실존적 문학 경향에서 벗어나 지적인 허구 세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오고 있다. 김미현 교수는 “역사마저도 상상의 것으로 인위적으로 만드는 등 상상력만으로 쓰는 소설을 시도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김동식 교수는 “현실이나 삶에 집착하기보다는 지구 밖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바깥의 사고와 상상력을 추구하면서 B급 문화와 하위 문화의 감수성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다양한 글쓰기 실험도 돋보인다”고 분석했다. 신수정 명지대 문창과 교수는 기준영, 김형중 조선대 국문과 교수는 서준환을 각각 들었다. 기준영은 최근 첫 소설집 ‘연애소설’을 냈다. 20, 30대 도시 남녀의 미묘한 심리나 일상 묘사가 뛰어나다. 기술적인 역량과 당대 문제를 포착하는 감각도 탁월하다. 신 교수는 “대중적인 주제인 연애나 도시 남녀의 일상을 굉장히 세련되면서도 소설 언어만이 포착할 수 있는 내밀한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했다. 다만 “대중적인 관점에서 봤을 땐 다소 어렵고 비평가 입장에선 주제가 대중적이라 조명을 못 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준환은 관념소설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문학사를 보면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세계를 다루는 관념소설의 계보가 형성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서준환은 대다수 작가들과 달리 철학적인 자기 세계를 구축해 보여 주고 있다. 난해하지만 철학적으로 분석해 볼 만하다”고 했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조하형을, 우찬제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조해진을 거론했다. 문단에서 ‘은둔형 작가’로 통하는 조하형은 묵시록적 상상력, 미래도시의 감각 등 SF소설의 장르 문학적 성격을 본격 문학과 결합시킨 소설을 추구한다. 함 교수는 “주목할 만한 강력한 문학적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시대 흐름보다 일찍 장르 문학적 성격의 소설을 선보여 묻혀 버린 감이 없지 않다”며 “흐름의 선구성, 장르 문학의 본격 문학과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재조명을 받을 만하다”고 강조했다. 조해진은 우리 시대의 소수자들과 상처받은 자들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형상화해 왔다. 우 교수는 “꾸준히 자기 세계를 천착해 오면서 미학성과 사회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 나가고 있다”며 “시대에 대한 문제 의식이나 학문적 성찰을 사려 깊은 언어로 잘 표현한다”고 했다. 이광호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와 조연정 평론가는 윤이형을 꼽았다. 윤이형은 소설가 이제하의 딸이다. SF 색채의 상상력이 뛰어나다. 최근 동성애를 다룬 단편 ‘루카’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기존 SF나 동성애를 다룬 작품처럼 앞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상상력과 감수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평론가는 “문명사적 시각의 넓이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최근 수작들을 발표하고 있다”며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 문제뿐 아니라 개별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섬세한 문장으로 잘 묘사한다”고 평했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이상운을, 이경재 숭실대 국문과 교수는 유현산을 꼽았다. 유 교수는 “이상운은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재미와 페이소스를 동시에 지닌 본격 장편 작가”라며 “너무 본격적이라 평단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교수는 “유현산은 장르 문학적 상상력으로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 지점을 타격하는 작가”라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노동의 새벽(박노해 지음, 느린걸음 펴냄)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아 출간된 개정판. 1984년 군사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부 가까이 발간된 시대의 고전이다. 개정판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살렸고 세월이 흘러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 냈다. 172쪽. 1만 2000원. 정태병 전집(정태병 지음, 이동순 엮음, 소명출판 펴냄) 해방기 아동문학사의 공백을 메우는 작품들을 모았다. 1부 동화, 2부 동시와 기타 작품, 3부 조선동요전집으로 이뤄져 있다. 작가는 1939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동화 ‘일남이의 그림’이 당선돼 등단했다. 등단 이후 20여편의 동화를 썼다. 동요에도 관심이 많아 해방 후 최초로 조선의 동요를 집대성했다. 203쪽. 1만 5000원. 첨벙(박솔뫼·백수린 등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중독’을 소재로 13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테마 소설집이다. 신인 소설가 13명이 저마다 불가사의하면서도 기묘한 얘기를 풀어냈다. 소설들은 중독의 한복판에 또는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들에게 빠져나오라는 뻔한 얘기를 던지지 않고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말한다. 368쪽. 1만 3500원.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고은·강은교 외 지음, 나무옆의자 펴냄) 국내 시인 49명의 사모곡(思母曲)을 모았다. 예전 발표됐던 시들이 아니라 신작시들을 한데 엮었다. 1부는 고은 김종철 문인수 정호승 등 연륜 있는 남성 시인들로, 2부는 강은교 문정희 신현림 유안진 등 중견 여성 시인들로, 3부는 김응교 손택수 박주택 함민복 등 요즘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로 각각 이뤄져 있다. 시 말미에 시인들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엿볼 수 있는 ‘시작 메모’도 수록해 놨다.
  • 문학동네 겨울호도 초판 매진 진기록

    문학동네 겨울호도 초판 매진 진기록

    계간 ‘2014 문학동네’가 가을호에 이어 겨울호도 초판이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불황의 늪에 빠진 출판계에서 계간지가 연속으로 매진되는 기록은 처음이다. 18일 출판사 문학동네에 따르면 창간 20주년 기념호 ‘문학동네 겨울호’의 초판 5000부가 지난 17일 모두 팔려 1000부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지난달 26일 서점에 출고된 지 3주 만이다. 계간 문학동네 초판 매진은 1994년 창간호, 2001년 가을호, 2006년 겨울호, 2013년 봄호, 2014년 가을호 등 다섯 번뿐, 문학동네 20년사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세월호 특집을 다룬 2014 가을호는 계간지 중에는 최초로 3쇄까지 들어가 모두 5500부가 제작됐다. 잡지의 인기에 힘입어 가을호에 실린 글들은 단행본(‘눈먼 자들의 국가’)으로도 만들어졌다. 문학동네는 스타 작가들이 포진한 겨울호의 판매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가을호 초판보다 1000부를 더 찍었지만 가을호보다 열흘 정도 앞서 초판이 매진됐다.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주목받는 신예부터 중견작가까지,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이 고르게 포진한 ‘소설 특집’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며 “단행본 한 권 분량의 단편소설 11편이 잡지에 수록된 점도 인기를 끈 한 요인인 듯하다”고 말했다. 겨울호에는 김훈·김연수·은희경·성석제·김영하·박현욱·김언수·천명관·박민규·김유진·손보미의 최신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문학동네는 겨울호에 실린 단편소설들을 모아 추후 소설집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열린세상] 오징어와 신춘문예/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오징어와 신춘문예/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제자들이 신춘문예에 투고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 대학교수로 임용되었을 때, 스승에게 앞으로 삼 년 안으로 신춘문예에 제자를 등단시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 지가 벌써 15년이 흘렀건만 아직까지 한 명의 제자도 등단시키지를 못했다. 그래서 늘 스승 뵙기가 면구스러울 뿐이다. 그런데도 한 달 전 스승에게 지키기 어려울 듯한 약속을 또 했다. “선생님, 올해는 꼭 제 제자가 등단할 겁니다, 그때 선생님 모시고 제자 등단 축하 여행을 가겠습니다”라고. 올 일년 내내, 제자들에게 만약 등단 못하면 문학 때려 치워라 협박도 하고, 등단하면 일년 내내 밥과 술을 사 주겠노라고 어르기도 하면서 작품을 쓰도록 다그쳤다. 제자들은 지금쯤 아마 전화기에 목매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못 받아서 당선 취소가 되면 어떡하느냐라는 걱정 아닌 걱정으로. 내 제자만 그러겠는가.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모든 이들 또한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연말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속초에 살면서 소설을 쓰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속초에 도착해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바닷가로 향했다. 한적한 겨울 바다를 거닐다 보니 후회가 밀려왔다. 올 초 청마(靑馬)의 해를 맞아 말(馬)처럼 문학만을 향해 땀을 흘리며 달려갈 것을 결심했건만, 한 해를 보내는 자리에서 보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오징어 가공 공장을 지나게 되었다. 바람막이도 없는 공장 마당 작업장에 생물 오징어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수십명의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 작업량이 한 사람당 수백 마리는 될 듯해 보였다. 겨울 해풍이 몰아치는데도 아주머니들은 난로 하나 없이 쪼그리고 앉아, 연신 차가운 물에 오징어를 씻어가면서 칼로 오징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분리하고 있었다. 그 손놀림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가히 오징어 손질의 달인이라 할 만했다.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잠깐 휴식을 취하는 한 분에게 다가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연세가 무척 든 할머니였는데, 추위 탓인지 얼굴이 몹시도 꺼칠꺼칠하고 푸르죽죽했다. 힘들지 않느냐고 여쭙자, 할머니는 뭐가 힘드냐며, 평생을 해 온 일이라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답했다. 저녁 무렵 친구를 만나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마른오징어 구이를 뜯어 잘근잘근 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울 밤바다와 친구와 한 잔의 술에 가슴이 확 트였다. 자리를 옮기기 위해 일어서는데 접시에 남은 오징어 다리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그냥 두고 나왔겠지만 나는 그것을 소중한 보물인 듯 싸서 들고 나왔다. 친구와 방파제에 앉아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으로 반짝이는 밤바다를 보다가 ‘백문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제자들에게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놈만 연락하고 떨어진 놈은 일절 연락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는데, 그럴 것이 아니었다. 당선되든 떨어지든 제자 모두를 데리고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속초 바다를 다시 찾아 달인 할머니를 뵙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들은 깨달을 것이다. 평생을 바쳐 맛있는 오징어를 만든다는 의식으로 살아온 저 할머니처럼, 삶의 전부를 바쳐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는 작품을 쓰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치열하게 문학을 할 때, 작가가, 그것도 달인의 경지에 오른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내 얼굴이 먼저 확 달아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오징어 손질을 하는 저 할머니처럼, 나는 그렇게 올 한 해를 보내지 못했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소중한 문학과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내 삶의 귀중한 시간을 저 멀리 내팽개쳐두고 마냥 늘어져 있었다. 스승 뵙기가, 또 제자들 보기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바닷바람이 자꾸 내 볼을 세차게 때렸다. 친구는 연말에 소설집을 낸다면서 내게 해설을 부탁했다. 소설책을 내는 친구와 문학을 멀리한 나. “이 친구가 한 수 가르쳐주려고 나를 부른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아까 가지고 나온 오징어 다리를 씹었다. 단물이 입안에 가득 고였다.
  • [지구촌 책세상] 미래의 일본에서 현재의 일본을 보다

    [지구촌 책세상] 미래의 일본에서 현재의 일본을 보다

    미래의 어느 날. 동일본대지진 같은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한 뒤 얼마 지난 시점의 일본. 일본은 에도시대처럼 쇄국으로 돌아가 있다. 에도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초고령화 사회가 됐고 이상기후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노인들은 100세를 넘어도 건강하지만 아이들은 환경오염 때문에 이가 쉽게 빠지는 등 시름시름 앓는다. 노인은 영원히 일하고, 아이들은 모두 환자다. 쇄국 상태이므로 외국어 사용이나 영어교육은 금지돼 있다. 예술 활동도 규제를 받고, 정부는 걸핏하면 제멋대로 법률을 바꾼다. 독일에 거주하는 일본 작가 다와다 요코가 지난달 펴낸 신작 소설집 ‘겐토시’가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다. 모두 5편으로 이뤄진 소설집의 대표작인 ‘겐토시’의 주인공은 곧 180세를 맞이하는 작가 요시로다. 증손자 ‘무명’과 도쿄 서쪽에서 단둘이 살고 있다. 도쿄는 “오래 살다 보면 복합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곳”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딸 부부는 오키나와로 이민을 가 농원에서 일한다. 손자는 행방이 묘연해졌고, 아내는 무명을 낳다가 죽었다. 그래도 무명은 행복하다. 증조할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교육이나 의료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비록 재해의 여파로 전력이 부족해 물자가 부족하지만 서로 도와가면서 살고 있다. 이윽고 소년이 된 무명은 몰래 대륙으로 파견되는 ‘겐토시’가 된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겐토시는 일본어로 ‘견당사’와 발음이 같다. 견당사는 일본 조정에서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당나라에 파견했던 사절이다. 일종의 유토피아인 ‘쇄국 상태’를 깨고 나아가려는 겐토시에 소설의 실마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은 분명 미래를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일본과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피해, 아베 신조 정권의 특정비밀보호법 강행 등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풍자하는 듯하다. 실제로 저자가 작품을 쓰게 된 계기도 지난해 여름 프랑스인 사진가의 소개로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피난민들과 만난 것에서 비롯됐다. 도쿄 출신인 저자 다와다는 1982년부터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독일에서 레싱문학상, 괴테문학상 등을 탔고 일본에서도 아쿠타가와상 등을 받았다. 중·단편이나 에세이를 주로 써 왔다. 독일을 무대로 범죄에 대해 다룬 ‘허황된 이야기’나 북극곰을 주인공으로 한 ‘눈의 연습생’ 등 시공을 초월해 환상성이 있는 작품을 발표해 왔다. 한국에는 소설 ‘목욕탕’과 에세이 ‘영혼 없는 작가’가 번역돼 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이경희, 장편소설 ‘기억의 숲’

    이경희, 장편소설 ‘기억의 숲’

    2008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 이경희가 두 번째 장편소설 ‘기억의 숲(문학사상)’을 냈다. 첫 소설집 ‘도베르는 개다’에서 삶과 현실의 눅진한 맛을 보여줬다면 ‘기억의 숲’에서는 지나간 시간이 가진 감성의 울림과 향수를 일깨우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영향으로 시골 마을에까지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을 그리고 있다. 박씨들만 모여 사는 명달리 마을에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중미네 가족의 이야기다. 작가는 어쩌면 자신이 그 시간을 기억헐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친구들을 불러내고 고향 마을의 풍경과 설화같은 소문과 풍문을 짜집기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소중한 것들은 대개 깊고 후미진 곳에 은밀히 감춰져 있다. 금방 드러나지 않고 쉽게 꺼내지지 않기에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되고 삶의 화두가 된다.”고도 했다. 작가 이경희는 충남 당진 출신으로 2008년 ‘실천문학’에 단편소설 ‘도망’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집 ‘도베르는 개다’, 장편소설 ‘불의 여신 백파선’, 산문집 ‘에미는 괜찮다’를 출간했다.252쪽.1만2000원.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너무 힘든 일 당하면 가만히 멈춰 서 숨을 쉬세요

    너무 힘든 일 당하면 가만히 멈춰 서 숨을 쉬세요

    “올해는 ‘세월호’ 참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 삶은 전반적으로 발전하고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사건이 터지면 퇴보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 곳곳에 세월호 유족들처럼 신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 송은일(50)이 사람들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삶을 망치거나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상처의 속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등단 20년을 맞아 펴낸 새 소설집 ‘나의 빈틈을 통과하는 것들’(북인)은 상처와 치유의 결정체다. 2009년 소설집 ‘남녀실종지사’ 이후 5년 만에 나온 세 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 ‘나의 빈틈을 통과하는 것들’을 비롯해 ‘나비의 동굴’, ‘맹렬한 오후’, ‘파우스트와 나와 케이’, ‘혹’ 등 중·단편 8편이 실렸다. 삶에 치이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내(나비의 동굴), 전망 없는 삶에서 빠져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옷가게 주인(맹렬한 오후),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 삶의 변두리에 내몰린 여자(혹)…. 상처 입은 영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작가는 “‘나비의 동굴’에 나오는 사내와 ‘나의 빈틈을 통과하는 것들’의 배꽃잎이 유독 짠한 인물들”이라고 했다. 표제작은 상처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빈틈’은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 허약한 지점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허방처럼 아찔한 틈을 갖고 있다. 그 틈을 통해 바깥에서 뭔가가 들어올 땐 더 큰 상처를 입는다. 틈으로 무엇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작품 속 남녀 주인공 ‘홍선용’과 ‘배꽃잎’은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서로 만났다. 트럭운전사 홍선용은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할 때, 통신회사 콜센터 여직원 배꽃잎은 막말과 음담패설에 시달리며 새로운 삶의 출구를 찾고자 할 때다. 홍선용은 연일 배꽃잎에게 전화해 육두문자를 쏟아낸다. 소설은 홍선용이 배꽃잎을 찾아가 서로 만나는 장면에서 끝난다. “한 개인의 상처가 상대방의 틈과 만나게 될 때 상대방을 소생 불가능할 정도로 쓰러뜨리는 상처의 치명성을 다뤘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 너무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것 같아 둘이 만나는 부분에서 싹둑 잘랐다.” 작가는 점집을 즐겨 찾는다. 미래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순간순간 위로를 받기 위해서다. 점집에서 받은 위안이 작품에 구현되고 독자들은 그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치유의 선순환이다. “너무 힘든 일을 당하면 헤쳐 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우선 가만히 멈춰 서서 숨을 쉬어야 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들고, 쓰고, 신고, 입고 소설과 패션이 만나다

    들고, 쓰고, 신고, 입고 소설과 패션이 만나다

    “패션은 내가 보고자 하는 거울이다. 자기 자신을 반사하는 실제 거울과 다르다. ‘백설공주’에서 왕비가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왕비가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은희경, 편혜영, 김중혁, 백가흠, 정이현, 정용준, 손보미(등단순)…. 한데 어우러지기 어려운 개성 강한 작가 7명이 ‘패션’으로 뭉쳤다. 패션과 관련된 ‘들다, 쓰다, 신다, 입다’ 네 개의 동사들에 맞는 패션 아이템을 택해 한 편씩 글을 썼다. 패션 아이템은 글을 풀어 가는 소재가 되기도 하고 글 전체의 주제를 부각하기도 한다. 프로젝트 소설집 ‘더 클로짓 노블(THE CLOSET NOVEL)-7인의 옷장’(문학과지성사)에서다. 작가들이 택한 패션 아이템은 각 작품의 주제의식을 빛나게 한다. ‘상자의 미래’의 정이현은 ‘쓰다’라는 동사에 매료돼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를 소재로 삼았다. 오랫동안 ‘쓰다’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고 패션에서 ‘쓰다’라는 건 무엇일까를 반추하다 안경, 그중에서도 선글라스를 택했다. “안경은 잘 보기 위해 쓰는데 선글라스는 눈의 표정을 감추고 도수를 넣지 않으면 잘 보이는 것과 상관없는 모순적인 안경이다.” 작가는 선글라스를 통해 시간의 모순을 탐구했다. 작품엔 선글라스를 쓴 ‘박’과 ‘장’, 두 남자가 나온다. 박은 주인공 ‘양’의 옛 연인이고 장은 현재의 또 다른 남자다. “선글라스는 그대로인데 두 남자 사이의 시간은 많이 변했다. 시간이 변하지 않는 선글라스를 통해 시간이 오히려 많이 변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네 친구’의 백가흠은 구두를 들고 나왔다. 작가는 “구두는 사람의 인생을 상징적으로 압축해 놨다”며 “사람마다 인생이 다르듯 다른 인생들이 녹아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때와 먼지에 전 구두도 있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식적으로 광을 낸 구두도 있다. 작품 속 혜진, 제민, 은수 등의 삶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패션의 의미도 구두와 무관치 않다. “패션은 사람이 잘 드러나는 또 다른 얼굴이다. 사람을 잘 가릴 수도 있고 잘 드러낼 수도 있는 얼굴 같다.” ‘미드윈터’의 정용준은 ‘털모자’에 꽂혔다. 한땀 한땀 긴 시간을 들여 손으로 직접 뜨는 털모자다. 작품엔 동지의 기나긴 밤을 털모자를 짜며 보내는 한 남자가 나온다. 털모자를 뜨는 데 몰두해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이겨내려 한다. 하지만 끝내 털모자를 완성하지 못하고 자살한다. 한 사내가 그의 곁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본다. “사랑하는 대상의 외로움과 슬픔을 이해할 순 있지만 전적으로 동조하진 못한다. 그 대상을 지켜보는 이는 쓸쓸할 수밖에 없다. 털모자를 통해 우리의 쓸쓸함, 고독함을 그리려 했다.” ‘앨리스 옆집에 살았다’의 작가 편혜영의 소재는 독특하다. 신발은 신발인데 ‘신지 않는 신발’이다. 소설엔 옆집 사람들의 비밀을 계속 궁금해하고 자신의 삶과 비교하며 내 삶에선 무엇이 빠졌는지를 고민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자신의 신을 신지 않는다는 건 자기 존재를 비밀로 하고 싶다는 거다.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지켜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다.” 은희경이 ‘대용품’의 소재로 삼은 ‘운동화’도 마찬가지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마련한 물건이라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불안과 어긋남, 사소한 비밀들을 함축하는 기호들”이라고 설명했다. 남다른 사연도 있다. ‘종이 위의 욕조’의 김중혁은 가방을 택했다. 예전 유럽 여행 때 시장에서 사 온 가방을 잊지 못해서다. 가방 안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은 왜 가방 안에 이름을 썼을까, 가방을 소유하고 그 안에 뭔가를 담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며 썼다.”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슈트(양복)를 내세운 손보미의 ‘언포게터블’이 대표적이다. 한 조직의 보스, 보스를 좋아하지만 두려워하는 한 남자, 팜파탈(치명적인 여자)인 보스의 여자….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누아르 영화’를 글로 재현했다. “세 사람의 관계가 슈트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거나 하는 동작을 통해 드러날 수 있도록 했고, 슈트를 통해 떠나고 싶지만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나 잊고 싶지만 잊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드러내려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북적이는 세상속 외로움·노년의 삶·현대인의 콤플렉스…부조리한 세상에 또 한번 묻다

    북적이는 세상속 외로움·노년의 삶·현대인의 콤플렉스…부조리한 세상에 또 한번 묻다

    “작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말하는 존재이고, 소설은 작가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소설가 김경욱(43)은 당대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새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문학과지성사)에서도 그 예리함이 번뜩인다. 사회의 제도·구조적 모순이 개개인에게 억울함을 강요하고 그 억울함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더 수렁에 빠지는 불합리한 현실이 돋을새김돼 있다. 소설집엔 2012년 이상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스프레이’, ‘빅브라더’, 표제작 ‘소년은 늙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다워’, ‘승강기’, ‘염소의 주사위’ 등 9편의 단편이 실렸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우리 시대의 그릇됨이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에선 현대인의 도시 생활을 특징짓는 아파트를 화두로 삼았다. 빙하기, 폐허가 된 아파트에서 사망한 지 오래된 할아버지와 동거하는 소년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몇 년 전 봄에 이상 한파가 몰아쳤을 때 ‘소빙하기’라는 말이 회자됐다. 그때 진짜로 빙하기가 오면 도시의 고층 아파트 숲은 어떻게 바뀔까라는 상상을 해 봤다. 빙하기라는 특수 상황을 설정해 슬럼화된 아파트를 형상화하긴 했지만 현재 아파트에서의 삶도 서로 단절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살지만 정작 혼자뿐인 삶의 모순을 빙하기에 빗대 표현했다는 의미다. ‘승강기’에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데도 보수 비용을 내라는 아파트 관리소장의 강압에 대항하는 사내가 등장한다. 보통 아파트는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비용을 분담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관리소장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는 증거를 직접 대라고 윽박질러 억울함을 부채질한다. ‘염소의 주사위’에선 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회에서 정의를 세워주지 않자 사적으로 복수하는 사내가 나온다. 작가는 “삶의 부조리한 현실이 주를 이루지만 그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노인의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자살면허를 따는 게 노후 계획이 될 정도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한 할머니를 만나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할아버지 얘기를 다룬 ‘인생은 아름다워’를 두고 한 말이다. 인간의 내재된 심리도 파고든다. ‘빅브라더’에선 남들이 보기엔 괜찮은데 본인만 느끼는 콤플렉스를, ‘스프레이’에선 정형화된 일상에서의 일탈과 해방을 다뤘다. 작가는 “명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 소설을 쓴다”며 “다른 사람들도 시시포스처럼 다시 굴러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산 정상으로 밀어올리는 바윗덩어리를 갖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쉼 없이 동시대 사람들에게 던질 질문인 ‘바윗덩어리’를 밀어올리고 있다. 계간 ‘문학과 사회’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1980년대 초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을 통해 80년대 사회의 모순과 이면을 탐구하고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폐허같은 삶이라도…거침없이 살아간다

    폐허같은 삶이라도…거침없이 살아간다

    이은선(31) 작가의 첫 소설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선명한 채도와 이미지로 먼저 압도하는 낯선 이국의 땅에 거침없이 부려져 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2010년부터 지난 8월까지 4년간 써낸 단편 10편을 묶은 소설집 ‘발치카 No.9(문학과 지성사)’ 얘기다. “공간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세워 놨다”는 작가는 수로가 막히면서 삶이 황폐해진 아랄해 인근 마을들, 눈사태와 크레바스의 위험을 껴안고 살아가는 고산지대, 에티오피아의 쇠락해 가는 커피 재배지 등에 독자들을 내려놓는다. 낯선 땅에서의 삶은 대부분 종내에는 서늘한 파국을 맞고 황폐하게 스러진다. “장소와 상관없이 ‘우리 지척의 삶과 닮은꼴’임을 부감하게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가 심어진 부분이다. “동료 작가들도 ‘새로운 공간이지만 너무 익숙한 사람과 삶이 있어서 이국이란 경계가 있을까 싶다’는 독후기를 들려줬다”는 이 작가는 “공간, 배경만 다를 뿐이지 가까이 눈을 돌리면 광화문광장,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 우리가 외면하지만 주변 곳곳에 비극과 처연한 인생들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카펫’, ‘까롭까(상자)’, ‘톨큰(파도)’ 등 수로 3부작에는 그가 2006~2007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의 일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글 교사를 하며 목도한 장면들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수로 공사를 놓고 대치하는 군인과 주민들의 폭력적인 난상을 굽어보는 새의 시선(톨큰), 목화 산업을 쥐고 흔들며 마을의 부와 노동력, 여자들을 착취하는 독재자의 참담한 말로를 바라보는 상자의 시선(까롭까), 목화 재배를 위해 강줄기를 끊으면서 ‘배들의 무덤’으로 변한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카펫)이 모두 작가의 시선이나 다름없다. “좋고 비싸고 깨끗한 것만 찾아다니던 스물네살짜리 여자애가 생각지도 못한 비극의 장소에 내던져지면서 인생의 반환점을 겪었어요. 강줄기의 방향을 바꿔 바다도, 살길도 막힌 아랄해를 보며 우리 몸속 혈관도 수로이고 말도 타인과 소통하는 수로이듯 ‘인간 세상 어디나 다 수로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앞으로도 내내 삶의 화두로 가져갈 주제입니다.” 작가는 공연한 희망이나 구원을 암시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폐허를 펼쳐 보인다. 다만 ‘그래, 이렇게라도 우리 다시, 살아야지 않겄냐’(이화)고 중얼거린다. 우직하게 현실을 통과할 줄 아는 이만이 품을 수 있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도 들린다. “반드시 삶에 구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폐허 같은 삶일지라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독자들을 답답하게 할진 모르겠지만 독자들 스스로 ‘나라면 이곳에서 이런 희망을 만들었겠다’ 하고 상상할 여지를 주고 싶었어요. 희망이란 대가 없이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것, 내가 찾아 들어가 만드는 것이니까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개천서 용 나는 게 힘든 요즘 세상… 젊은이들에게 미안하죠”

    “개천서 용 나는 게 힘든 요즘 세상… 젊은이들에게 미안하죠”

    “초고가 밖으로 나가면 전 죽어야 돼요(웃음). 고치고 고치다 보면 ‘소설이 되겠구나’ 하는 지점이 오는데 그때가 행복하죠.” ‘과작(寡作)의 작가’ 이혜경(54)이 20년 만에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2009~2010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연재했던 ‘사금파리’를 4년간 다듬어 낸 ‘저녁이 깊다’(문학과지성사)다. 연재 당시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설은 ‘온전하게 살고 싶었지만 깨져서 조각조각난 삶’들의 이야기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념과 자본이 소용돌이쳤던 시대를 통과해 낸 또래 세대들의 핍진한 내면 풍경을 공들여 세공했다. ●1960~2000년대 이념·자본의 시대 통과한 또래들 이야기 이야기는 1960년대 지방 소읍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동급생들에게서 갈래갈래 펼쳐진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외삼촌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공부에 몰두하는 전학생 지표, 잡화상집 딸로 넉넉한 환경이지만 그 삶이 못내 불편한 기주, 노름으로 빚만 남긴 아버지 때문에 일찌감치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돌이’의 삶을 택한 병묵, 극장과 연탄공장을 소유한 유지의 외동아들로 첩인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엇나가는 형태 등이다. 출신도 기질도 다르지만 이들이 거치는 시대는 일상 공간에까지 폭력이 만연해 있다. 1960년대 초등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 외우기와 혼분식이 강제되고,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선생님들의 사랑도 나뉜다. 1970년대에는 고학생들의 입주과외 열풍이 불어닥치고 1980년대에는 통금, 불심 검문, 검열 등 금기와 규제가 제멋대로 작동한다. 1990년대는 삼풍백화점 붕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이 보통 사람들의 귀한 삶을 덮친다. 이념과 자본이 소용돌이치던 시대를 복원해 내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요즘 젊은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였어요. 우리 때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나는 게 가능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기성세대가 된 지금은 타고난 계층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어요. 50대는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왜 (젊은 세대들에게 기회를) 못 열어 준 거지,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딱딱하게 만든 걸까’ 하는 의문에 답을 찾고 싶었어요.” 바꿔 말하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글을 추동했다. 작가는 “스마트폰, 인터넷 등의 첨단 기기와 미디어가 생겨나도 우리 사회 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학창 시절 가장 공포스러웠던 ‘선착순 달리기’ ‘맞뺨치기’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선착순 달리기는 못한 사람을 스스로 비하하게 만드는 역할밖엔 안 해요. 맞뺨치기도 제도나 선생님에 대한 분노를 아랫사람끼리 상대에 대한 분노로 전이시키는 거죠. 우리 사회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절망이 엄습했습니다.” ●“첨단 기기 넘쳐도 ‘맞뺨치기’ 하던 시절 머물러 있는 듯해 절망” 소설의 끝자락, 인생의 저녁을 맞은 인물들의 삶에는 무력감과 비애가 씁쓰레하게 감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살고 싶었던 삶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둔 채 그와 동떨어진 곳에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실패’는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비애는 우리 삶의 뗄 수 없는 본질인 것 같아요. 사는 게 쉬우면 아기가 왜 울면서 태어나겠어요. 부처님도 삶이 고(苦)라고 했죠. 산다는 건 고통이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살 힘을 얻지 못하니 사랑이든 뭐든 작은 씨앗을 전심전력을 다해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파 먹히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꿀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거죠.” 작가에게 글쓰기는 사랑의 한 방식이다. 1982년 중편 ‘우리들의 떨켜’로 데뷔하고 단편 두 편을 낸 이후 그는 몇 번이나 소설에서 달아나려 했다. 쓰지 못한 시간이 13년이나 된다. ‘가까운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글을 쓰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장편 1권, 소설집 4권으로 더디게 작품을 내놓지만,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그는 오늘의작가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상복 많은 작가가 됐다. ●“사랑하는 법을 알기 위해 소설 쓰는 것 같아요” 인터뷰 다음날 아침 기자의 메일함에는 작가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새 장편을 쓰기 위해 6개월간 에콰도르로 떠나기 직전 작가는 전날 못다 한 말이 생각났던 거다. “최근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를 사게 된 이유가 책 뒤표지의 말 때문이었어요.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걸까요.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그걸 알기 위해서일 거예요. 자신을 사랑하고 목숨 있는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는 건 목숨 받아 태어난 이들의 의무이자 권리 아닐까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관계맺기에 실패한 중년의 그…그의 자화상 돌아보게 한 그녀

    관계맺기에 실패한 중년의 그…그의 자화상 돌아보게 한 그녀

    ‘청춘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5)가 중년 남성들의 대변자로 나섰다. ‘도쿄기담집’ 이후 9년 만에 낸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에서다. 그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결집하는 ‘하루키스트’(하루키 팬을 일컫는 말) 덕분에 일본에서 예약 판매로만 30만부가 팔린 책은 국내에서도 이미 예약 판매로 6000부가 나가는 등 출간 첫날인 28일 현재 초판 5만부가 모두 소진된 상태다. 주요 온라인서점에서도 일간 베스트셀러에서 상위 5위권에 드는 등 단편임에도 하루키의 세력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했다. 그간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 대표작에서 청춘의 상실과 성장통을 위무했던 작가는 이번에 관계 맺기에 실패하고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 버린’ 중년 사내들의 잔등을 쓸어 준다. 이번 책에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단편 6편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오마주인 ‘사랑하는 잠자’ 등 단편 7편이 묶였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여자를 잃거나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중년의 남성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제각각의 사연으로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327쪽) 불리게 된 이들은 ‘암모나이트와 실러캔스와 함께 캄캄한 바다 밑에 가라앉’(327쪽)고 만다. 자궁암으로 죽은 아내가 바람피웠던 상대와 술친구가 되는 배우(드라이브 마이 카), 직장동료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뒤 집을 나와 바를 운영하는 남자(기노), 30여년간 남편, 애인 있는 여자들과 데이트를 즐기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상사병에 걸린 성형외과 의사(독립기관) 등이다. 여자는 사라졌지만 여자에 대한 기억은 남자들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인장을 남긴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가후쿠는 아내와 정사를 벌인 남자와 아내에 대한 추억을 나누며 메워지지 않는 ‘결핍’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임자 있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던 ‘독립기관’의 의사 도카이는 처음 사랑에 빠진 유부녀가 그를 배신하자 스스로 곡기를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각 단편 속 여자는 단순히 애인이나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물으며 자신을 바로 보게 하는 존재였다”는 일본 평론가 마쓰야마 이와오의 지적(요미우리신문 서평)대로 환희와 절망의 순간을 함께했던 여자의 부재는 인물들의 존재 의미, 정체성마저 뒤흔들어 놓는다. 결국 타인은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것, 그러니 관계 맺기는 꾸준히 실패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인간의 열패감, 고독, 허무가 작품 전체에 깊게 드리워 있다.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140쪽)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 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265쪽) 이는 가족, 직장, 친구 등 모든 관계에서 탈락해 감정의 공허 상태에 놓인 중년 남성들의 자화상이다. 주인공들의 내면과 말은 작품 속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하루키 자신의 목소리로도 들린다. 이에 대해 작가는 ‘저자의 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어째서 그런 모티브에 내 창작의식이 붙들려 버렸는지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그런 남자들의 모습과 심정을 몇 가지 다른 이야기의 형태로 패러프레이즈하고 부연해 보고 싶었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의 ‘현재’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 혹은 완곡한 예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부고] 손장순 前 한양대 불문과 교수

    [부고] 손장순 前 한양대 불문과 교수

    소설가이자 문학비평가인 손장순 전 한양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지난 24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8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대 대학원에서 현대 프랑스 문학을 연구한 뒤 한양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다. 1958년 ‘현대문학’에 단편 ‘입상’, ‘전신’이 추천돼 등단했고 ‘한국인’, ‘대화’, ‘세화의 성’ 등 20여권의 소설집을 펴냈다. 한국여류문학상(1967), 펜문학상(1996), 유주현문학상(2008)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최희승(재미 사업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 40분. (02)3010-2292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어린이 책꽂이]

    세상을 뒤흔든 10대들-소년·소녀편(미셀 로엠 매칸·아멜리 웰든 지음, 장은재 옮김, 라의눈 펴냄) 12세에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12세에 고아원에 보내졌으나 패션 제국을 건설한 코코 샤넬 등 세상을 뒤흔든 매혹적인 인물 46명(소년·소녀편 각각)의 인생을 한 권에 담았다. 넬슨 만델라와 윌 스미스를, 마더 테레사와 내털리 포트먼 등 기존의 엄숙한 위인전의 목록과 어법을 통쾌하게 뒤집었다. 각 1만 4800원. 처음 만나는 공공장소(권재원 지음·그림, 창비 펴냄) 아이들에게 처음 가보는 공간은 낯설고 두려운 곳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따라 공적 공간은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즐거운 장이 될 수도 있다. 그림으로 따라가 보는 카멜레온 삼남매의 공공장소 모험이 길잡이가 되어준다. 대중목욕탕에서 오줌을 눠 어른에게 꾸지람을 듣고 무작정 찻길로 뛰어드는 등 주인공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무심코 저지른 실수를 돌이켜 보게 된다. 1만 2000원. 관계의 온도·내일의 무게·콤플렉스의 밀도(김리리 외 20명 지음, 유영진 엮음, 문학동네 펴냄) 청소년들의 불안과 고민을 구성하는 세 가지 원소, 관계·미래·콤플렉스를 주제로 엮은 청소년 테마소설집. 최근 10년간 청소년문학을 가꿔온 신진 작가 21명의 단편들이 재기발랄하고 다채로운 상상력만큼이나 다양한 장르 SF(과학소설), 호러, 미스터리 등으로 엮었다. 각 1만 1000원.
  • 바다와 섬의 작가 한창훈 푸짐하게 차린 ‘글밥 술상’

    바다와 섬의 작가 한창훈 푸짐하게 차린 ‘글밥 술상’

    바다의 작가, 한창훈(51)이 이번엔 글밥 술상을 푸지게 차렸다. 바다를 안주 삼아 들이켜는 그의 술잔에는 ‘거친 바다 막막함을 삶의 질료로 하는’ 뱃사람, 섬사람들의 짠내 나는 고단함과 쓸쓸함이 함께 찰랑거린다. 손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써낸 지 200년 만에 펴낸 에세이집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에서다. 문학동네 카페에 지난 3~7월 연재한 글을 묶은 것으로, 2010년 펴낸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의 2탄 격이다. 한창훈에게 바다는 이 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전남 거문도에서 나고 자라 일곱 살 때 낚시를 배우고 아홉 살 때 외할머니에게서 잠수를 배운 그는 도시에서 선원, 디제이, 트럭운전사, 막노동꾼, 포장마차 사장 등을 전전하다 8년 전 고향으로 회귀했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나는 여기가 좋다’, 장편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등의 작품도 대부분 바다에 뿌리를 뒀다. 지금도 해발 1m의 바닷가 흰 집에서 글 쓰는 생계형 낚시꾼으로 사는 그에게 사람들은 묻곤 한다. ‘당신에게 바다란 무엇인가요.’ 그는 책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한다. 전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가 갖가지 바다의 산해진미로 침샘을 자극했다면 이번 책은 술과 함께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바닷물과 더불어 가장 가깝게 지낸 액체’이자 ‘무언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액체’다. 1959년 태풍 사라가 우리나라를 덮쳤을 때다. 당시 33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잔혹한 태풍에도 거문도의 유일한 조합선 팔경호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기로 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거문도 주민들의 ‘살림살이와 마음의 총화(總和)’였으므로. 배를 버리느니 죽기를 선택한 사내들은 마지막으로 막소주를 한 사발씩 들이켰다. ‘그것은 동료들과 미리 마시는 이별주이며 자신의 몸뚱이에게 보내는 첫 번째 제주(祭酒)이자 약해진 배포를 키우는 주술행위였다.’(37쪽) 5일 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 아들, 형이 돌아온 이야기는 50년 넘은 지금도 섬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목숨 내놓고 마시는 막소주에 “입안에 폭설이 내리치는 듯한” 사케, 쥐치포와 술집 여자의 마른 손가락(?)을 안주 삼아 마시는 맥주, 북극의 유빙을 조각내 만든 빙하 보드카 칵테일 등 사연도 풍경도 제각각인 바닷사람들과의 술상을 마주하다 보면 읽는 것만으로도 흥건히 취기가 오른다. 글쓰기에 한창 열중하던 지난 4월. 작가는 바닷속에 수장된 아이들의 소식을 듣고 연재를 중단했다. 아이들을 수장시킨 사람들을 떠올리며 바다 앞에서 이를 갈았다. 그러곤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아이들을 집단으로 죽여버린 대한민국. 제가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게, 그 무능하고 책임없는 사람들의 안정된 생활과 품위 유지를 위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게, 바다가 무참하게 훼손당해 버렸다는 게,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미워해야 할 것과 미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목숨과 바다를 지켜낼 수 있으니까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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