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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외수, 환경장관 비판 “화천군민 알몸에 소금 뿌렸다”

    이외수, 환경장관 비판 “화천군민 알몸에 소금 뿌렸다”

    조명래 환경장관 “생명 담보 인간중심 향연”이외수 “자갈 구워먹는 법 알려달라” 비판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최근 강원도 대표 축제인 화천산천어축제를 비판한 가운데 산천어축제 홍보대사를 지낸 소설가 이외수씨가 “각종 흉기로 난도질당한 화천군민들 알몸에 환경부 장관이 친히 왕소금을 뿌리시는 듯한 발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 장관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화천산천어축제를 놓고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중심의 향연은 저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씨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 장관의 발언은 무책임하며 각종 흉기로 난도질당한 화천군민들 알몸에 환경부 장관이 친히 왕소금을 뿌리시는 듯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화천군은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지자체로 산천어축제를 통해 1300억원 정도 수익을 올린다. 화천의 강물이 1급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축제”라며 환경을 파괴하는 축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완벽하지는 않으나 축제 관계자들은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책과 보완책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닭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사육되고 있는가, 돼지는, 소는, 말은, 양은?”이라고 반문하며 “동물보호단체나 환경부 장관님께 자갈을 구워 먹는 방법이나 모래를 삶아 먹는 방법을 좀 가르쳐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화천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며 환경부 장관과 동물보호단체에 “부디 (산천어를) 다량으로 구매하셔서 바다에 방류해주시기를 소망한다”고 꼬집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조 장관 발언에 대해 “산천어가 불쌍해서 그러는 모양인데 나도 펄떡이는 산천어 보면 불쌍하다. 물고기 배 절대 못 가른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생계가 달린 문제를 그렇게 모질게 말 못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그러지 않아도 예년보다 얼음이 얼지 않아 울상을 하고 있는데 재를 뿌려도 유분수”라며 “문제가 되니 ‘사견’(개인 의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관광이나 다닐 일이지 오지랖 넓은 소리 하지 말길 바란다. 즉각 화천군민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문 대통령, 중국·일본 대사에 신임장 접수… 中대사, 한국어로 인사 눈길

    문 대통령, 중국·일본 대사에 신임장 접수… 中대사, 한국어로 인사 눈길

    도미타 대사 ‘미국통’·싱 대사 ‘한반도통’싱 대사, 제정식 전 이례적 기자 회견해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대사와 도미타 고지 신임 주한 일본대사에게 신임장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도미타 대사, 싱 대사 순으로 신임장을 받았다. 도미타 대사는 지난해 12월 3일, 싱 대사는 지난달 30일 부임했다. 주한 대사들은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기 전이더라도 부임 후 외교부에 신임장 사본을 제출하고 주재국에서 자국을 대표해 공식 활동을 할 수 있다. 대사의 부임과 제정식에 간격이 있는 것은 대통령 및 신임 주한 외국대사들의 일정을 고려해 일정 기간 부임한 신임 대사들의 제정식을 합동으로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능통한 싱 대사는 이날 문 대통령이 입장하기 앞서 제정식을 예행 연습하는 과정에서 도미타 대사와 달리 청와대 관계자와 한국어로 대화해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에게 실제 신임장을 제정할 때도 한국어로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시진핑 주석님의 신임장을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라고 말했다. 도미타 대사는 ‘미국통’, 싱 대사는 ‘한반도통’으로 손꼽힌다. 도미타 대사는 1981년 외무성에 입부, 2004년부터 주한 일본대사관 참사관과 주한공사를 역임해 한국 정세에도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미타 대사는 참사관 시절 미일 안보를 담당하고 2013년부터 약 2년 간 북미국장을 지냈다. 도미타 대사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사위다. 싱 대사는 1986년 외교부에 입부, 주북대사관에서 1988~1991년, 2006~2008년 두 차례 근무했다. 주한대사관에서는 1992~1995년, 2003~2006년, 2008~2011년 등 세 차례에 걸쳐 10년 간 근무하며 공사참사관까지 역임했다. 싱 대사는 한국어에 능통하며 남북한 내 인맥도 폭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싱 대사는 지난 4일 서울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신임장 제정식 전에 주한 외국 대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당시 싱 대사는 한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 대응 조치에 대해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고 해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싱 대사는 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김건 외교부 차관보와 면담하는 계기에 기자들과 만나 “상대국 주재 대사로서 그 나라의 조치를 공개적으로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절필 #권리찾기 #원고청탁거부

    #절필 #권리찾기 #원고청탁거부

    문단 “불합리한 관행 깨야” 성토… 자음과모음 소설 공모에도 영향올 초 불거진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6일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단편 저작권을 출판사 측에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계약서 조항에 반발해 우수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이어 31일에는 전년도 대상 수상자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했고, 동료 작가들이 이에 연대해 이상문학상 주최사인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에 나섰다. 이 사태는 여타 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 부당한 원고 청탁에 대한 거부 등 문단 전체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제대로 사과하라”… 문학계 지지 여론 확산 작가들은 문학사상사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학사상사는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된 조항이 직원 실수로 우수상 수상작에도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며 작가들의 공분을 샀다. 급기야 윤이형 작가가 트위터에 “제가 받은 이상문학상을 돌려드리고 싶다. 부당함과 불공정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며 절필을 알려 문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윤 작가는 전날 서울신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 작품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이득을 얻는 것 같아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절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문학사상사 대표를 향해 공식 입장 표명과 사과, 운영 개선 등을 요구했다.전년도 우수상을 받은 최은영 작가도 같은 날 트위터에 “분별없이 수상에 동의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올해 수상 작가들에게까지 피해가 갔으리란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모든 책임을 직원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문학사상사에 사과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문학사상사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동료 작가들은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로 의지를 드러내고, 구병모·황정은·조해진·권여선·장류진·정세랑·함정임 소설가, 오은·권창섭 시인 등이 이에 연대했다. 독자들도 ‘#문학사상사_소비_거부’, ‘#문학사상사_독자_보이콧’ 등으로 동참하고, 동네서점 몇 곳은 문학사상사 책을 입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문학사상사 측은 묵묵부답이다. 서울신문은 문학사상사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매년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의 커버스토리를 담았던 ‘문학사상’ 2월호는 이번 호를 ‘시 공동 창작’ 특집으로 꾸렸다. 수년간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권영민 미국 UC버클리대 연구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상의 운용에는 관여하지 않아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작가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상금=선인세’ NO… 다른 문학상도 내용 정정 문학사상사 보이콧 사태는 다른 문학상 관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신인문학상 공모 내용을 정정했다. 상금 500만원을 두고 ‘인세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인세로 지급한다’고 공지했다가 삭제했다. 상금을 선인세로 공제하고, 출간을 전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가 아닌데도 단행본 계약을 강제한다는 데 이의 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부당한 원고 청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나온다. ‘소정의 고료’로만 통용된 출판계 관행에 대한 반기다.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이원석씨는 “올초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며 “함께 등단한 신인 작가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문학 출판 제도의 현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예술을 노동과 멀리 떨어뜨린 예술관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과거에 비해 문예지가 중심이 된 출판사의 권위 약화, 저작권 개념에 대한 문제 의식 강화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궁극적으로 해외 사례처럼 저작권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시스템을 널리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상문학상 사태’ 일파만파…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이상문학상 사태’ 일파만파…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올 초 불거진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6일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단편 저작권을 출판사 측에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계약서 조항에 반발해 우수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이어 31일에는 전년도 대상 수상자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했고, 동료 작가들이 이에 연대해 이상문학상 주최사인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에 나섰다. 이 사태는 여타 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 부당한 원고 청탁에 대한 거부 등 문단 전체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문학사상사, 제대로 된 사과하라”…#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작가들은 문학사상사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학사상사는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된 조항이 직원 실수로 우수상 수상작에도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며 작가들의 공분을 샀다. 급기야 윤이형 작가가 트위터에 “제가 받은 이상문학상을 돌려드리고 싶다. 부당함과 불공정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며 절필을 알려 문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윤 작가는 전날 서울신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 작품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이득을 얻는 것 같아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절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문학사상사 대표를 향해 공식 입장 표명과 사과, 운영 개선 등을 요구했다.전년도 우수상을 받은 최은영 작가도 같은 날 트위터에 “분별없이 수상에 동의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올해 수상 작가들에게까지 피해가 갔으리란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모든 책임을 직원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문학사상사에 사과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작가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문학사상사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동료 작가들은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로 의지를 드러내고, 구병모·황정은·조해진·권여선·장류진·정세랑·함정임 소설가, 오은·권창섭 시인 등이 이에 연대했다. 독자들도 ‘#문학사상사_소비_거부’, ‘#문학사상사_독자_보이콧’ 등으로 동참하고, 동네서점 몇 곳은 문학사상사 책을 입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문학사상사 측은 묵묵부답이다. 서울신문은 문학사상사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매년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의 커버스토리를 담았던 ‘문학사상’ 2월호는 이번 호를 ‘시 공동 창작’ 특집으로 꾸렸다. 수년간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권영민 미국 UC버클리대 연구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상의 운용에는 관여하지 않아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작가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금=선인세’ NO… 신진 작가들, 권리 찾기로 확산 문학사상사 보이콧 사태는 다른 문학상 관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신인문학상 공모 내용을 정정했다. 상금 500만원을 두고 ‘인세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인세로 지급한다’고 공지했다가 삭제했다. 상금을 선인세로 공제하고, 출간을 전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가 아닌데도 단행본 계약을 강제한다는 데 이의 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부당한 원고 청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인 성다영 시인을 필두로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이원석·차도하·조용우씨는 문학세계사가 내는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 시를 싣는 것을 거부했다. 문학세계사가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와 관련된 출판사라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청탁을 거부하겠다는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출판계에서 ‘소정의 고료’로만 통용돼왔던 관행에 반기를 든 것이다.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이원석씨는 “올초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며 “함께 등단한 신인 작가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문학 출판 제도의 현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예술을 노동과 멀리 떨어뜨린 예술관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과거에 비해 문예지가 중심이 된 출판사의 권위 약화, 저작권 개념에 대한 문제 의식 강화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궁극적으로 해외 사례처럼 저작권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시스템을 널리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2030 세대] 다시 두 남자 이야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다시 두 남자 이야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와 윌리엄 글래드스턴(1809~1898). 익숙지 않은 이 두 남자는 영국의 수상을 지낸 인물들이다. 오랜 앙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글래드스턴은 옥스퍼드 출신의 진지하고 지적인 사내였다. 디즈레일리는 유대인, 곧 이방인이었고 화려한 옷을 즐겨 입고 소설가를 꿈꾸던 남자였다. 일화 하나.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 제니 제롬이 어느 날 이 두 남자와 저녁을 함께 했다. “글래드스턴씨 옆에 앉으니, 그가 영국에서 가장 지적인 남자라 생각되더군요. 잠시 후 디즈레일리씨 옆에 앉으니, 내가 영국에서 가장 지적인 여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두 남자의 차이를 이보다 더 명확히 꼬집긴 어려워 보인다. 1852년 천둥 번개가 치던 밤, 재무장관이었던 디즈레일리는 야심 찬 예산안을 하원에 제출하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재치 있는 연설로 의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그가 제자리를 찾을 즈음 글래드스턴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더 현란한 웅변가였다. 예산안은 산산조각 났다. 디즈레일리는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자로 글래드스턴이 지명됐다. 두 남자의 싸움이 공개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 다소 유치할 때도 있었다. 1859년 디즈레일리는 지인을 통해 글래드스턴이 코르푸섬의 고등판무관 직책을 맡도록 유혹했다. 글래드스턴의 지중해에 대한 로망을 노린 것이다.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는 즉시 의석을 잃는다는 것을 글래드스턴은 뒤늦게 깨달아야 했다.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이 둘의 다툼에 따라 영국의 정세가 들썩이고 바뀌었다. 1866년 글래드스턴은 선거권을 넓힐 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한다. 디즈레일리는 필사적으로 방어한다. 1867년 보수당이었던 디즈레일리는 자유당의 글래드스턴보다 더 진보적이고 영리한 선거 개정법안을 내고 이를 통과시킨다. 디즈레일리는 노동자와 서민의 영웅으로 올라섰다.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은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주도한 인물들로 영국에서 최고의 총리들로 기억된다(디즈레일리는 두 번, 글래드스턴은 네 번 수상을 지냈다). 다툼이라 하기엔 수준이 높았다. 산업혁명 와중 빈곤에 시달리던 영국인들을 위한 개혁으로 대영제국의 국제적인 지위를 확고히 한 위인들이다. 서로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민심에 귀 기울인 점이 같았고, 철저히 국익을 보호한다는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독일 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 이룬 성공의 원인을 경쟁(희랍어로는 아곤·agon) 문화로 봤다. 몇몇 역사학자들도 유럽의 발전 이유를 바로 이웃한 나라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꼽는다. 글래드스턴의 멋진 서재는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다. 그가 많은 시간을 머물고 사색했을 그 은밀한 공간에 글래드스턴을 내려다보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평생의 경쟁자이자 적이었던 디즈레일리의 흉상이다.
  • [황규관의 고동소리] 문학의 민주주의

    [황규관의 고동소리] 문학의 민주주의

    소설가 김남일의 문학 산문집 ‘염치와 수치’(낮은산)를 읽다가 문득 김수영의 시 ‘이 한국문학사‘가 떠올랐다. 1965년에 쓴 이 시는 김수영의 시세계에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5·16 쿠데타 이후 침잠과 모색을 거쳐 의식하게 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편린 정도가 표현돼 있다. 2연에서 김수영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지껏 희생하지 않는 오늘의 문학자들에 관해서/너무나 많이 고민해 왔다.” 그러면서 김동인, 박승희, 김유정을 불러들인다. 김남일은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어 놨다. “내 아무리 젠체해도, 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한들, 그렇다, 내 싸움이 육사나 단재만 하랴. 내 가난이 서해만 하랴. 내 결핵이 유정만 하랴. 죽음을 희롱했기로서니 이상만 하랴. 그들은 봉건과 식민의 이중 굴레에서 벗어나려 고투했고, 그와 동시에 제 이름을 걸고 글을 썼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가슴에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김수영은 이미 ‘거대한 뿌리’에서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 세대는 ‘더러운 역사’를 부정하며 싸워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친일과 독재 그리고 억압과 착취의 현실에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또 그 언어들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를 쓰면서 도그마에 갇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김남일은 작품을 먼저 읽지 않고 작가들의 에세이와 삶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 나갔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먼저 그들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김남일이 이 책에서 친일 작가들의 행태를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그 작가들의 내면을 헤아려 볼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설픈 독후감이 아니다. 오늘날 문학은 철저하게 시장에 맡겨진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상품이 되지 않는 작품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실 의미란 것은 사회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회화 과정을 우리의 현실인 자본주의가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언제부터인가 독자와 소비자를 구분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따라서 일부에서 이른바 문단이나 평론가들의 승인은 이제 필요치 않고 독자들의 판단에 문학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김수영은 시인의 역할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시에는 특별한 권위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작가에게는 독자와 소비자를 판별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물론 독자와 소비자는 별도의 주체들이 아니다. 문학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에 작용하는 한 개인의 의지와 내면 상태가 아마도 독자와 소비자를 구분하는 분할선일 것이다. 동시에 독자와 소비자는 한 주체 안에 버무려져 있기도 하다. 만일 작품을 소비자의 선택에 전적으로 맡긴다면 우리는 문학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일 텐데, 소수의 권위자가 갖고 있는 것을 다수에게 돌려주자는 논리는 제법 민주주의적 원칙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소비자 파시즘’에 가까울 것이다. 작가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 속에서 평등해야 하지만 작품은 치열한 경합(agon)이라는 용광로에 던져지는 게 옳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남일의 책을 읽으면서 ‘과연 정치적 올바름만으로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비루한 삶을 산 작가가 의외의 작품을 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물론 대체적으로 비루한 삶을 산 작가들의 작품에는 어디엔가 비루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미당의 적지 않은 작품들을 나는 읽기 힘들다. 그의 삶 때문이 아니다. 그의 삶을 지탱해 준 현실에 대한 비루한 입장이 어쩔 수 없이 작품에 깊이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뛰어난가? 이 난센스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우리를 하염없이 ‘모름의 상태’로 밀어 넣는다. 문학이 민주주의를 사유하는 일은 명료한 답 대신 우리를 지옥에 서게 하는 일을 포함시킨다. 무엇보다 이 지옥을 기뻐할 수 있는 자를 나는 작가ㆍ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 [문화마당] 이만하면 괜찮아/김이설 소설가

    [문화마당] 이만하면 괜찮아/김이설 소설가

    명절 연휴 동안 짬짬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들여다보면서 곧잘 질투를 느꼈다. 연휴를 맞아 여행을 떠난 이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멀게는 외국, 가깝게는 국내 여행지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사진을 보면서 하다못해 극장이나 카페, 연휴 동안 읽겠다고 쌓아 놓은 책 사진을 보면서도 배가 아팠다. 나에게 절대 주어지지 않을 풍경이기 때문이었다. 언감생심 명절에 책을 읽다니. 집집마다 가풍이라는 것이 있을 터다. 시가는 엄격한 유교주의에 따라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집안이고, 친정은 도시 핵가족의 전형인 집안이다. 결혼 전에는 나 또한 명절 연휴에 여행을 떠나는 일이 잦았다. 전시회를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내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며칠을 보내도 아무 문제없었다. 책을 쌓아 두고 읽는 일쯤이야. 결혼을 하고 겪었던 첫 명절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안의 모든 여자들이 부엌에서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손님이 끊임없이 들이닥치고, 그 와중에 모인 일가친척들의 매 끼니를 따로 챙겨야 했다. 나에게는 힘들고 낯설기만 한 가사 노동의 연속이었는데 시가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결혼한 지 15년쯤 지난 요즘은 그 시절과 많은 풍경이 바뀌었다. 우선 명절 음식 절반이 줄어들었다. 가짓수와 양을 줄였고 떡은 떡집에서 사오기 시작했다. 방문객이 적어지기도 했거니와 마음을 다한 제수가 중요하다는 마음, 일만 하는 명절 풍경을 지양해야 한다는 뜻이 모인 덕분이었다. 형식보다는 명절을 임하는 일가친척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일환으로 몇 해 전부터는 명절 전날 저녁은 짜장면을 시켜 먹는 걸로 의견을 모았다. 처음부터 흔쾌히 수용한 것은 아니다. 먹을 게 쌓여 있는데 굳이 시켜 먹는 건 낭비라는 논리부터 다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펼쳐졌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의견으로 좁혀지면서 이뤄지게 된 일이었다. 음식이 진진히 쌓인 명절의 외식이 무슨 의미냐 하겠지만, 차례 음식 외에 식사를 차리는 번거로움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결정을 왜 하게 됐는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추석과 설날 전날 저녁은 짜장면을 시켜 먹기 시작했고, 곧 풍습처럼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 됐었다. 그러자 아주 작은 변화들이 생겨났다. 각자의 시간이 생겼고, 대화의 시간이 늘었으며, 웃음소리가 조금 더 많이 들렸다. 제사나 차례를 없앤 것도 아니면서 겨우 그런 것으로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주는 편리와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가망에 대해 충분히 희망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변화이자 개혁인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가계의 일이라면 더더욱. 며느리와 딸로 보내는 명절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명절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섣달그믐 저녁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은 것도 즐거웠다. 사실 올해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명절에 짬짬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긴 내용이거나 깊게 생각해야 하는 책은 불가해 김윤정의 ‘기초 코바늘 손뜨개’에 실린 손뜨개 도안을 열심히 읽었다. 도안을 보면서 부쩍 추위를 타기 시작한 시어머니에게 무릎 담요를, 곧 아이를 낳을 후배에게는 모빌을 떠서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작고 포슬포슬한 필통을 떠 줘야지. 명절 연휴에 한 끼 시켜 먹는 것이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차리고 치우기만 하지 않아도 이렇게 여유롭게 생각을 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작은 변화를 함부로 대하지는 말 것이다.
  • 작품으로 존재 이유 말하는 남산예술센터

    작품으로 존재 이유 말하는 남산예술센터

    부동산 계약 문제로 운영 위기 놓여 예년보다 3~5편 줄여 9월까지 편성 5·18 민주화운동·성소수자 등 소재 작품성·사회성 짙은 연극 무대 올려“제가 연극이라는 것을 접한 이후로 가장 많이 드나든 극장이 이곳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곳도 이곳이죠. 이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젊은 창작자들에게 공간을 내줬다는 것도, 또 여기서 많은 창작자가 나왔다는 것 또한 이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를 만든 임성현 연출은 굳은 표정으로 남산예술센터를 반추했다. 해마다 1월이면 공연계는 그해 1년간 공연할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행사로 분주하다. ‘시즌 프로그램 발표회’로 불리는 이 행사는 단순히 어떤 단체가 어떤 공연을 한다는 성격을 넘어, 해당 예술단체가 추구하는 예술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열린 남산예술센터의 2020시즌 프로그램 발표회는 웃음기 없이 시종일관 비장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한국 창작 연극의 산실이면서도 부동산 임대차 계약 문제로 당장 올 연말 극장 존폐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남산예술센터는 한국전쟁 후 냉전시대 한미 양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현 서울예술대학교 학교법인 동랑예술원 소유로 1964년 4월 개관했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극장을 동랑예술원으로부터 임대해 공공극장으로 활용해왔는데, 동랑예술원 측은 올해 12월을 끝으로 서울시에 임대차 계약 종료를 통보한 상태다. 이런 탓에 당장 올해 시즌 프로그램은 8~10편이던 예년보다 준 5편으로 구성됐다. 4월 창작 신작 ‘왕서개 이야기’(4월 15~26일)를 시작으로 한강 소설가의 ‘소년이 온다’를 원작으로 한 ‘휴먼 푸가’(5월 13~24일)와 폴란드 극단의 ‘더 보이 이즈 커밍’(5월 29~31일),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6월 24일~7월 5일),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9월 2~13일)를 올린다.우연 극장장은 다섯 작품을 소개하면서 “올해 12월 모든 부동산 계약이 종료됨에도 현재까지 연장과 관련한 어떠한 답신도 받지 못했다”면서 “창작자에게 불안정한 환경에서 작품 올리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우선 공연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9월까지 5편만 올리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남산예술센터는 극장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올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큰 테마를 ‘1980년 5월 광주,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들’로 잡았다.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극장 존폐가 자본 논리에 내몰린 가운데 작품성과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극장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난다. 배요섭 연출의 ‘휴먼 푸가’와 폴란드 스타리 국립극장의 ‘더 보이 이즈 커밍’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는 작품으로 나란히 5월 남산 무대에 오른다. 김도영 작가와 이준우 연출은 1950년대 일본에서 사는 중국인 왕서개의 삶을 담은 ‘왕서개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진실을 묻는 여정을 보여준다.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기독교와 동성애라는 키워드를 도발적으로 다룬다. 임 연출은 작품에서 교회 예배라는 형식을 빌려 주류 기독교가 배척해온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을 그릴 예정이다. 스스로를 ‘독실한 현직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한 그는 “타락한 기독교의 부활을 위해 이 연극을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남산예술센터는 젊은 창작자에게 많은 기회를 준 곳입니다. 제 작품이 이 극장을 주제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극장의 대부흥을 다시 이뤘으면 좋겠다는 염원도 담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계속 부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대장암 투병’ 원로 소설가 최창학 별세

    ‘대장암 투병’ 원로 소설가 최창학 별세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내며 문인들을 키워 낸 소설가 최창학이 지난 27일 별세했다. 79세. 도서출판 상상은 28일 2017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하던 고인이 전날 밤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은 194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8년 ‘창작과비평’에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중편 ‘창’(槍)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10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물을 수 없었던 물음들’과 ‘바다 위를 나는 목’, 장편소설 ‘긴 꿈속의 불’, ‘아우슈비츠’, 선집 ‘최후의 만찬’ 등이 있다. 1997년 이후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2017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 항암 주사를 맞으면서 지난해 말 자전적 장편소설 ‘케모포트’를 펴내기도 했다. 제자들과의 에피소드, 후배 시인과의 불륜, 조울증을 앓던 여제자와의 스캔들로 교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일까지 고백한 유언장 같은 작품이다. 1978년부터 30여년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소설가 신경숙, 하성란, 강영숙, 김기우, 이나미, 신승철, 조경란, 천운영, 윤성희, 편혜영 등 수많은 제자를 소설가로 양성했다. 빈소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30일 오전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소설가 카뮈를 있게 만든 부조리, 반항 그리고 사랑

    소설가 카뮈를 있게 만든 부조리, 반항 그리고 사랑

    카뮈/최수철 지음/아르테/284쪽/1만 8800원20세기 최고의 문제작 ‘이방인’, ‘페스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카뮈’는 불세출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생애를 최수철 작가가 직접 답사한 흔적이다. 불문학 전공자인 최 작가는 ‘이방인’을 번역하고, ‘페스트’에 영감을 받아 동명의 소설을 썼다. 카뮈의 인생은 전반기 무대인 알제리와 후반기 무대인 프랑스로 나뉜다. 프랑스 이민자 3세대로 가난한 포도주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성장기 대부분을 보냈다. 가족들 대부분은 문맹이었고, 어머니와 외삼촌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다 말을 못 했다. 질곡 같은 가난 속에서 카뮈가 탐닉한 것은 오로지 지중해의 태양과 바다였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스승 제르맹에 의해 그는 상급학교에 진학한다. 가난과 질병, 프랑스인이자 알제리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에 시달렸던 카뮈는 어딜 가나 ‘이방인’이었다. 가난을 수치스러워하는 한편, 그런 감정을 가진 자신이 수치스러웠던 그는 스스로에게도 거리를 뒀다. 그에 대한 최 작가의 진단은 이렇다. ‘카뮈의 말대로, 우리가 자신을 삶을 연기하는 배우로 인식하면 세상은 달리 보인다. 세상과 우리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서 좀더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되기 때문이다.’(31쪽) 카뮈의 작품을 만난 독자들의 오랜 미스터리, ‘이방인’이나 ‘페스트’는 왜 이렇게 불친절한가에 대한 해답도 그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짐작이 간다. ‘작가수첩’에 카뮈는 이렇게 썼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 진정한 예술 작품은 가장 말이 적은 작품이다.(중략) 예술 작품이 경험 속에서 다듬어낸 어떤 몫, 내적인 광채가 제한되지 않은 채 요약되는 다이아몬드의 면 같은 것일 때 (중략) 온갖 경험의 암시로 인하여 풍요로운 작품이 생겨나는 것이다.’(126~127쪽) 역설적으로 카뮈는 가장 적은 말로, 가장 많은 말을 하고자 했다. 최 작가가 결론 내린 카뮈의 여정은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으로 가는 도정’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객관적으로 세상을 응시하려는 태도, 삶의 유한성과 존재의 하찮음을 존중하는 감각을 거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카뮈를 다시 읽으며 최 작가의 글을 상기한다면, 더이상 ‘이방인’은 ‘의무감에 읽는 고전’이 아닐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패권의 차가운 동반자, 따뜻한 감성 메이트로 돌아왔다

    패권의 차가운 동반자, 따뜻한 감성 메이트로 돌아왔다

    ‘극단의 시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진단한 20세기의 모습이다. 세계는 무수한 갈래로 나뉘어 저마다 극한 경쟁을 벌였다. 그 역사를 오롯이 반영하는 소품이 있었으니, 바로 만년필이다. 둔탁하고 육중한 만년필은 패권을 쟁취한 자의 손에서 그들의 의지대로 역사를 기록했다. 그랬던 만년필이 이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더 가볍고 더 컬러풀하게. 만년필 소비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다.●역사의 궤를 같이한 미국의 만년필 현대적인 만년필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명됐다. 1883년 미국의 보험판매원 루이스 워터맨이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고안한 것이 시작이다. 제품이 인기를 끌자 이듬해 특허를 받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글로벌 만년필 브랜드 ‘워터맨’의 탄생이다. 그가 만년필을 개발하게 된 일화가 전해진다. 중요한 계약을 앞둔 워터맨은 실수로 계약서에 잉크를 쏟는다. 정리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경쟁자가 나타나 계약을 가로챈다. 절치부심한 워터맨이 ‘절대로 잉크가 쏟아지지 않을 필기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그 결과가 만년필이라는 것. 물론 이야기의 진위는 확인 불가다. 분명한 것은 ‘발명신화’까지 만들 만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회사를 키운 워터맨이 탁월한 수완을 지닌 사업가라는 점이다. 패권은 서명으로 완성된다. 만년필이 20세기 역사 곳곳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만년필의 발전은 미국이 패권을 확립하는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898년 ‘미서전쟁’은 만년필이 처음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다. 쿠바섬을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이 벌인 전쟁이다. 4개월 만에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양국은 같은 해 12월 파리에서 ‘파리 평화조약’에 서명한다. 스페인이 쿠바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스페인 제국의 몰락과 미국의 부상. 두 가지 의미에서 세계인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위대한 미국’의 서막을 알린 이 사건에서 사용된 필기구는 워터맨의 경쟁사인 미국의 ‘파커’ 만년필이다. 미국산 만년필은 20세기 역사를 통째로 수놓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나고 맺은 ‘포츠머스 조약’에선 워터맨 만년필이 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한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 손에도 워터맨 만년필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파커의 전성시대였다. ‘20세기 최고의 만년필’이라는 찬사를 듣는 ‘파커51’이 가장 유명하다. 회사의 트레이드마크인 화살 모양의 클립과 심플하면서도 날렵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는 창공을 가르는 항공기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고 훗날 미국 대통령까지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애용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서명한 마크 클라크 장군도 파커51을 썼다. 다른 제품도 있었다. ‘인천 상륙작전’의 주인공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보다 중후한 느낌의 ‘파커듀오폴드’를 사용했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 1987년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는 ‘파커75’가 쓰였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잠식하던 시기였다. 중요한 서명은 언제나 미국산 만년필의 차지였다.●표준에 인문을 담다… 독일의 만년필 뼈를 깎는 노력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도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조용히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고 마침내 성공했다. 독일 만년필 회사 ‘몽블랑’ 이야기다. 몽블랑은 후발 주자였다. 미국 회사들이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한 반면 몽블랑은 1900년대 와서야 비로소 회사의 꼴을 갖추고 필기구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술 혁신은 매번 한 발짝씩 늦었다. 미국에 밀려 언제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역전의 순간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독일 만년필에 집중된 순간. 바로 1990년 동·서독의 통일이었다. 서독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는 몽블랑 ‘마이스터스튁149’를 손에 쥐고 통일 조약에 서명했다. ‘마이스터스튁’은 걸작이라는 뜻의 독일어다. 몽블랑이 스스로 걸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1952년 출시한 마이스터스튁149는 당대 모든 만년필 기술의 총합이었다. 후발주자 몽블랑은 앞서가기보다는 ‘제대로’ 완성하기를 목표로 삼았다. 당대의 기술들을 모아 하나의 제품에 집약시켰다. 그렇게 ‘걸작’이 탄생했다.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제품을 조금씩 계속 발전시켰다. 자신들만의 입지를 다졌다. ‘조용한 혁명’의 진가는 훗날 발휘됐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독일 통일을 계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출시된 지 40년 만에 빛을 본 것이다. 고급스러운 검은 광택에 둥그렇고 두툼한 몸체. 마이스터스튁149는 이제 ‘만년필의 표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자신감을 얻은 몽블랑은 만년필의 외연을 확장한다. 만년필에 ‘예술적 감수성’을 덧씌우기로 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작가 에디션’을 선보인 이유다. 기실 만년필은 많은 인문학적 영감의 원천이요 문학의 산실이었다. 몽블랑은 여기서 착안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반드시 만년필을 소유해야 할 이유를 제시한 것이다. 1992년 작가 에디션 첫 번째 주인공은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간결한 문장으로 인물과 세계의 진실을 담은 ‘하드보일드 문체’로도 잘 알려진 그를 몽블랑은 첫 번째 작가로 선택했다. 헤밍웨이가 몽블랑 만년필을 사용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저 자신감의 발로였던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등 다양한 작가들을 콘셉트로 한 한정판 만년필을 내놓으면서 애호가들의 소장 욕구를 들끓게 했다. 에디션이 거듭되면서 작가의 영역도 넓혔다. 미국의 만화영화 제작자 월트 디즈니, 영국의 록 밴드 비틀스,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 등을 주제로 한 만년필이 나오면서 더욱 풍성해졌다.●가벼움에 컬러를 입히다… 여성의 만년필 그동안 만년필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최근 이런 고정관념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만년필의 주요 소비층으로 여성이 새롭게 등장한 것. 캘리그래피 문화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한 2015년을 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변화를 제대로 감지한 회사는 몽블랑의 영원한 맞수인 독일의 ‘펠리컨’이다. 2015년 기존 모델보다 가볍고 흰색과 분홍색을 조화롭게 배치한 ‘소버린 M600 핑크’를 출시해 여심을 사로잡았다. 펠리컨은 지난해에도 여성들을 타깃으로 은은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소버린 M600 퍼플화이트’를 선보였는데 며칠 만에 동이 날 정도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박종진 만년필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만년필 시장의 전망을 이렇게 내다봤다.“만년필은 시대를 반영합니다. 최근 펠리컨의 성공은 만년필 시장의 주도권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가는 전주곡이었죠. 여성들의 소비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천하의 몽블랑조차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기존의 둔탁하고 무겁고 차가운 만년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금속이 덜 들어가서 가볍고 따뜻한 재질의 감촉이 좋은 만년필이 앞으로 유행할 거라고 봅니다. 그것에 발맞춰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브랜드가 결국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씨줄날줄] 육포/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육포/이동구 수석논설위원

    미국의 단편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은 부부의 사랑과 함께 선물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남편은 아내에게 예쁜 머리핀을 선물하기 위해 소중히 간직해 오던 시계를 팔고, 아내는 남편의 시계에 잘 어울리는 근사한 시곗줄을 선물하기 위해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을 잘라 판다. 가난한 부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렸지만 뜻밖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향한 애틋한 사랑은 독자들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로 기억되고 있다. 선물은 상대방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거나 축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명절이나 기념일 등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행동이다. 국가나 조직, 개인 간의 예를 표하는 의미에서 주고받는 윤활유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선물이 지나치면 뇌물이 되거나 화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꽃 선물은 인류의 공통점이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할 리 없다. 하지만 색깔에 따라 호불호는 달라진다. 흰색의 국화나 백합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물로 사용하지 않는다. 멕시코인들은 장미꽃이라고 해도 노란색은 싫어한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흰색과 함께 파란색, 검은색도 꽃이나 옷, 포장지 등에 사용치 않는다고 한다. 모두가 죽음, 장례식 등을 연상시켜 일상사의 선물로는 부적절하다고 여긴다. 종교·문화적인 차이로 금기시되는 선물은 부지기수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소나 돼지와 관련된 가죽제품 등을 선물하는 것은 결례로 통한다. 남미인이나 일본인에게 칼을 선물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단절, 자살의 의미가 있다며 선물로 주고받기를 금기시한다. 새 사업을 시작한 중국인 친구에게 괘종시계를 선물하면 욕을 먹는다고 한다. 종은 ‘끝내다, 망하다, 죽다’의 의미를 가진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선물은 상대방의 문화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본래의 취지를 크게 곡해할 수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불교계에 전하려던 설 선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육식을 금하는 불교계에 소고기 등을 말린 육포를 선물한 것이 화근이 됐다. 지난 17일 서울 견지동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등에 설 선물로 황 대표 명의로 포장된 육포가 배송된 것. 해명과 함께 육포는 급히 회수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 대표가 지난해 5월 ‘부처님오신날’에 홀로 불교식 예법인 합장을 하지 않아 불교계 홀대 논란 등을 일으킨 적이 있어 이번 소동을 지켜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다. “세심한 주의와 배려라는 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yidonggu@seoul.co.kr
  • 하동 평사리 들판서 2월 15·16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

    하동 평사리 들판서 2월 15·16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

    박경리(1926∼2008) 소설가의 대하소설 ‘토지’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들판에서 겨울에 남여노소가 함께 펼치는 ‘평사리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가 열린다.하동군은 평사리 들판 논두렁 축구대회가 다음달 15·16일 이틀간 넓은 평사리들판 특설경기장에서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 주관으로 열린다고 18일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인 올해 논두렁축구대회는 ‘겨울을 녹여 버리자’, ‘동심을 되찾아 오자’, ‘들판을 땀나게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남성부, 여성부, 혼성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등 모두 6개 리그로 나누어 진행된다.군은 논두렁 축구대회 각 리그에 참가할 100팀(외국인 포함)을 다음달 7일까지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비는 팀당 7만원이며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3만원을 돌려준다. 팀당 선수는 7명이다. 경기시간은 전·후반 구분 없이 20분이며 짚풀공예로 만든 공을 전용구로 사용한다. 시상금은 각 리그별 우승 50만원, 준우승 30만원, 3위 10만원 등 모두 700만원이다.참가신청은 놀루와 홈페이지(www.nolluwa.co.kr)나 전화(055-883-6544)로 하면 된다. 군은 축구대회 행사경비는 ‘구단주’ 모집을 통한 펀딩 형태로, 1구좌 1만원부터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구단주를 모집해 조달한다고 밝혔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하동 평사리 들판서 2월 15·16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

    하동 평사리 들판서 2월 15·16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

    소설가 박경리(1926∼2008)의 대하소설 ‘토지’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들판에서 겨울에 남녀노소가 함께 펼치는 ‘평사리 논두렁 리그’ 축구대회가 열린다. 하동군은 이번 논두렁 축구대회가 평사리 들판 특설경기장에서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 주관으로 열린다고 18일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인 올해 논두렁축구대회는 ‘겨울을 녹여 버리자’, ‘동심을 되찾아 오자’, ‘들판을 땀나게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남성부, 여성부, 혼성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등 모두 6개 리그로 나누어 진행된다. 군은 논두렁 축구대회 각 리그에 참가할 100팀(외국인 포함)을 다음달 7일까지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비는 팀당 7만원이며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3만원을 돌려준다. 팀당 선수는 7명이다. 경기시간은 전·후반 구분 없이 20분이며 짚풀공예로 만든 공을 전용구로 사용한다. 시상금은 각 리그별 우승 50만원, 준우승 30만원, 3위 10만원 등 모두 700만원이다. 참가신청은 놀루와 홈페이지(www.nolluwa.co.kr)나 전화(055-883-6544)로 하면 된다. 군은 축구대회 행사경비는 ‘구단주’ 모집을 통한 펀딩 형태로, 1구좌 1만원부터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구단주를 모집해 조달한다고 밝혔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토지문화재단 ‘창작실 지원’ 공모

    토지문화재단은 국내외 문인에게 창작 공간을 지원하는 ‘창작실 지원사업’ 대상자를 공개 모집한다고 14일 밝혔다. 응모 기간은 오는 31일까지이며, 선정된 문인은 최대 3개월, 나머지 예술인은 최대 2개월까지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 창작실’을 무료로 쓸 수 있다. 토지문화재단은 강원도, 원주시와 함께하는 이 사업을 통해 지난해 문인 52명, 예술인 18명, 해외 작가 5개국 9명에게 창작실을 무료로 지원했다. 시인 전동균, 소설가 이재은·표명희, 극작가 손기호·이난영 등은 토지문화관 창작실에서 창작한 작품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신청을 원하는 사람은 토지문화재단 홈페이지(tojicf.org)에서 해당 분야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뒤 이메일(tojicul@naver.com)로 보내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전화(033-766-5544)로 문의.
  • 달로 떠나는 일본 재벌 “함께 갈 ‘영혼의 짝’ 찾아요”

    달로 떠나는 일본 재벌 “함께 갈 ‘영혼의 짝’ 찾아요”

    일본의 패션 재벌 마에자와 유사쿠(44)가 달로 떠나는 스페이스X 사의 처녀 여행에 함께 할 삶의 동반자를 찾는다고 영국 BBC가 13일 전했다. 1972년 미국의 달 탐사가 중단된 뒤 처음으로 2023년에 출발할 예정인 스페이스X의 우주 비행을 예약해 화제가 됐던 마에자와는 온라인에 띄운 글을 통해 그 짜릿한 경험을 함께 할 특별한 여성을 고르고 싶다고 알렸다. 재산이 20억 파운드(약 3조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최근 여배우이자 여자친구였던 고리키 아야메(27)와 헤어졌는데 여성들에게 자신의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짝짓기 이벤트”를 통해 선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패션 브랜드 ‘ZOZO’를 창업한 마에자와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외로움과 공허함이 서서히 날 짓누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오직 한가지는 한 여인만을 계속 사랑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일생의 짝을 찾고 싶다. 미래의 파트너와 함께 외계로 나가 사랑과 세계평화를 외치고 싶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에는 응모가 가능한 여성의 자격으로 미혼에다 20세는 넘어야 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외계로 나아가는 일에 대해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3개월에 걸친 응모 과정에 대한 안내가 돼 있다. 오는 17일까지 신청을 받아 최종 결정은 3월 말에 내리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하드코어 록 그룹의 드러머를 맡을 정도로 그는 예술이나 예능에 관심이 많았다. 또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일도 많이 벌였다. 이달 초 자신의 트윗을 공유하는 100명을 무작위로 골라 1억엔을 나눠주겠다고 공언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날 팔로우 맺고 이 트윗을 리트윗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2년 전에는 역시 억만장자 엘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 사의 달 여행 프로젝트에 민간인으로는 처음 함께 하기로 예약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는 자신이 여행의 대가로 지불하는 액수를 밝히지 않았으며 머스크 회장은 “많은 돈”이라고만 밝혔다. 또 머스크 회장이 10명 정도 데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8명의 예술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음악가, 화가, 무용가, 소설가, 건축가, 조각가, 패션 디자이너, 사진작가, 영화감독이었는데 이제 다른 한 명으로 삶의 동반자를 찾게 됐다. 스페이스X는 달 착륙을 시도하지는 않고 달 궤도에 들어가 달의 반대편에서 지구가 떠오르는 이른바 ‘어스 라이즈(EARTHRISE)’를 목격하게 하고 귀환할 예정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요요미, 이외수 인증샷 악플에 “다른 표현 존중” [종합]

    요요미, 이외수 인증샷 악플에 “다른 표현 존중” [종합]

    트로트 가수 요요미가 소설가 이외수와의 인증샷 게재 이후 악플을 받은 가운데, 이와 관련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지난 6일 요요미 공식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는 이외수와 요요미가 나란히 있는 사진이 게재됐다. 하지만 이를 본 일부 네티즌들이 악플을 달면서 댓글 창은 댓글 전쟁터로 변했다. 이어 구독을 취소하겠다는 댓글도 이어졌다. 이와 관련 요요미는 9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과 찍은 사진에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공개했다. 요요미는 “대한민국은 생각의 자유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걸 존중한다”며 “단 생각에는 제한이 없지만 표현에는 책임이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또한 “전 팬 여러분과 제 생각이나 감정을 소통하고 싶지 않다”며 “팬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은 건 모든 인류가 절대 같을 수 없는 생각이나 학습된 이성, 개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같은 원초적인 본능, 희노애락의 감성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팬 여러분들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같은 것 보다는 다른 게 좋다. 팬 여러분과 같을 수도 있는 건 요요미 음악만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요요미는 끝으로 “저는 여러분들의 생각이 담긴 어떠한 글도 삭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러분들의 의견 표현을 항상 존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저는 상상도 못 했던 다른 생각들을 보면서 한참 모자란 부분들을 배워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트로트 가수 요요미는 지난 2018년 싱글 앨범 ‘첫 번째 이야기’로 데뷔했다. TV조선 ‘미스트롯’ 현역부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한 후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 “대본을 읽다 보면 눈물이 차올라요”

    “대본을 읽다 보면 눈물이 차올라요”

    “얘가 걔였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필구, ‘호텔 델루나’ 속 어린 구찬성, ‘미스터 션샤인’의 어린 유진 초이. 이 다양한 인물을 한 소년이 연기했다는 걸 알아본 시청자들은 으레 이런 감탄을 터뜨린다. 맞다. 그 아이가 이 아이, 배우 김강훈(11)군이다. 적지 않은 드라마에서 주인공 아역을 도맡는 동안 연기력도 키만큼 몰라보게 컸다. 최근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만난 김군에게 뜨거운 인기가 어떤지 물었더니 수줍게 웃었다. “동백꽃 이후 훨씬 많은 분들이 알아보고 사진 촬영 요청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유명해졌나 신기하고, 조금 부끄럽기도 해요.” 김군이 처음 연기자로 카메라 앞에 선 건 2014년 MBC ‘오만과 편견’에서다. 연기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던 다섯살짜리 꼬맹이가 새 얼굴을 찾던 연출자의 시선을 잡았다. 이후 2016년 jtbc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2017년 KBS ‘김과장’에 이어 지난해 ‘로맨스는 별책부록’, 영화 ‘엑시트’와 ‘변신’, ‘블랙머니’까지 부지런히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올해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 MBC ‘더 게임: 0시를 향하여’ 등 출연을 확정했다.어른스러움과 천진함을 넘나드는 김군의 표현력은 ‘차세대 유승호·여진구’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다. 속 깊은 ‘애어른’을 능청스레 소화하는 비결을 물으니 “대본을 열심히” 본단다. 다소 심심한 첫말에 곁들인 설명이 ‘7년차 배우’답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읽어요. 제 대사는 엄마나 두 살 차이 남동생과 맞춰 보고요. 같은 장면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연습하다 보면 대사도 저절로 외워져요.” 긴 호흡의 대본이 지루할 법도 한데, 새 단어를 배우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훨씬 크단다. 좋아하는 과목도 국어와 역사다. 김군은 “최근에는 527쪽짜리 역사책을 여러 번 읽었다. 중요한 부분은 따로 옮겨 적는다”며 “책이 떨어지면 꼭 서점에 간다”고 했다. 역사 인물 중에는 유관순 열사를 가장 좋아한다. “저랑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데 어떻게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지 놀랍고도 슬퍼요.” 김군의 목소리가 커졌다. 공책과 펜을 갖고 다니며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랩 가사를 적기도 한다. “소설가처럼 글을 꼭 써 보고 싶다”는 야무진 꿈도 있다. 이야기에 대한 몰입 덕분일까. 그의 크고 동그란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면 어른들도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린다. ‘동백꽃’ 임상춘 작가는 “우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필구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김군은 “대본을 보면 자연스레 감정에 빠져들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사연 많은 극 중 역할과 달리 김군은 축구와 ‘방방장’을 좋아하는 평범하고 밝은 ‘초딩’이다. 촬영이 새벽에 끝나도 아침 7시면 집 근처 풋살장에서 친구들과 공을 찰 정도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 때처럼 이제 제 나이답게 개구쟁이, 사고뭉치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어머니 유시정(39)씨는 “강훈이가 연기 활동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고 밝아졌다”고 했다. 현장에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는 게 재밌어 지칠 줄 모른다. 사람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김군의 목표는 인성 좋은 배우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춰 인사하고 늘 웃는 강하늘 형이 롤모델이다. “연기는 못해도 인성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기력은 이미 증명했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그의 성장을 지켜볼 일만 남았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해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 ■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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