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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도 인생도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詩도 인생도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 간 최하림(1939~2010) 시인을 기리는 시선집이 나왔다.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출간된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문학과지성사). 시인은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1960년대 김승옥 소설가, 김현·김치수 문학평론가와 함께 4·19 세대를 대표하는 ‘산문시대’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1964년 ‘빈약한 올페의 회상’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이후 시인은 시간과 존재, 언어와 예술에 대한 고민을 부지런히 이어 나갔다. 또한 가르침과 다독임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시인들의 시인’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는 고인을 기억하는 6명의 후배 시인들이 엮은 시선집이다. 장석남·박형준·나희덕·이병률·이원·김민정 시인이 최 시인의 시 중에서 10편씩을 골라 총 60편을 담았다. 5·18의 역사적 기억을 시의 주된 소재로 삼으면서도 동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정교한 언어의 탐구가 빛나는 초기 시, 자연의 생명력으로 조금씩 치유돼 가는 전환기의 시, 역사마저도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후기 시까지 그의 전 생애를 포괄하는 시편들이 담겼다. 칠십 평생에 시인은 시로 무언가를 부러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자체로 드러내려 애썼다. ‘나의 시가 말하려 한다면/말을 가질 뿐 산이나 나무를/가지지 못한다 골목도 가지지 못한다’(‘시’)라고 읊은 것처럼. 그는 2010년에 출간된 ‘최하림 시전집’에서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 하는 순간에 강물, 혹은 시간은 사라져 버리며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원 시인은 그런 고인의 시를 더러 이렇게 부른다. “선생님의 시는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구부리거나 자른 흔적이 없었다. 이 미지근함이 시가 갈 수 있는 한 절정이었음을 오늘에서야 깨닫는다.”(106쪽)사는 게 힘들어질 때마다 최 시인을 찾아갔다는 박형준 시인은 “강물이 흘러가는 듯한 선생님의 저음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중략) 상처 난 마음에 빨간 약이 발라져 있었다”고 회상한다. 고인의 제자이기도 한 이병률 시인은 시가 무엇인지 물으시기에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던 수업 시간을 회상한다. “스승을 떠올릴 때마다 스승을 처음 만난 3월의 그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그날 이후 내 대답의 방향이 늘 엇갈림 없이 스승을 향하고 있어서다.”(86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목숨 걸고 광복군에 무기 공급… 항일투쟁 중 사료 모아 독립사 집필

    목숨 걸고 광복군에 무기 공급… 항일투쟁 중 사료 모아 독립사 집필

    “위협과 모욕을 수없이 퍼붓다가 필경에는 온갖 악독한 형벌을 행한다. 나를 꿇어 앉힌 후에 직경 삼촌(三寸)쯤 되는 통나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양단에 두 놈이 올라서서 통나무를 디디면 형문(刑問) 다리가 부러질 듯 기절하게 되는데,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않고 당하였다.” 1929년 2월 만주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힌 김승학 선생이 고문을 받던 상황을 기록한 ‘망명객행적록’ 부분이다. 희산(希山) 김승학 선생은 만주 대한독립단에서 활약하고 독립신문 사장과 참의부 참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881년 7월 12일 평북 의주군 비현면 마산동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이웃집 방아를 찧어 주고 삯으로 등겨를 받아와 먹었다고 한다. “등겨에 백태(白太·흰콩)를 약간 섞은 것은 상미(上味)라 하여 우리 형제를 먹이고 부모님은 순전한 등겨만을 자시었다. 아침은 겨밥, 저녁은 송피 범벅, 이런 생활을 매일 계속하였다.”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했던 선생은 가난한 살림에도 7년 동안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익혔다. 1899년 선생은 명망 있던 유학자 조병준(건국훈장 독립장)의 문하생이 됐다. 조병준은 “우리는 섬 오랑캐 왜노(倭奴)와 400년 동안 원수인데 을미년에 우리 국모 명성황후를 참시(慘弑)하였으니, 우리 선비로서는 거의하여 왜노를 토벌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스승의 우국충절에 크게 감동해 서간도 지역을 다섯 달 동안 답사하며 독립운동을 꿈꾸었다. 선생은 1904년 한문박사과 시험에 응시했는데 시험 부정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에 학무국장을 찾아가 항의했다가 타협책으로 한성사범학교 입학을 제의받아 1년 남짓 신학문을 공부했다.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자 선생은 서울 종로에서 배일(排日) 강연을 하다 체포돼 석 달 동안 구금당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극명학교 등에서 근무했는데 매일같이 일경이 찾아와 “김승학과 같은 불온분자에게 교육을 받으면 순량한 자제들까지 불량자가 된다”며 이간질을 했다. 더는 고국에서 있을 수 없었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선생은 만주로 건너가 봉천성 관립 강무당에 입학, 군사교육을 받고 의병단에 가담해 6년 동안 활동했다.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하자 만주에서 대한독립단이 결성됐는데 선생은 재무부장이 됐다. 선생의 첫 임무는 국내에 잠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지단(支團)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선생은 평남북 일대를 다니며 친지, 동창들을 설득해 지단과 연통제 기관을 만들었다. 첩보를 접한 일경은 집요하게 추적했고 선생은 배추씨 장수와 좁쌀 장수로 가장해 그때마다 따돌리며 활동을 계속했다. 목숨을 건 활동 덕분에 1920년 1월까지 평안남북도 일대 52곳에 하부 조직을 만들고 독립운동 자금도 수만원을 모았다.선생은 이어 상하이임시정부에 대표로 가서 만주 독립운동 통합단체 명칭을 받고 무기를 구입해 오는 임무를 맡게 됐다. 마우저 총과 루저 권총 240정, 탄환을 상하이에서 비밀리에 구입하기는 했는데 운반이 문제였다. 철궤 4짝을 사서 포장한 뒤 누에고치 거래로 위장해 우여곡절 끝에 압록강변 안동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일경이 정보를 듣고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독립군을 도와주던 이륭양행 주인 아일랜드인 조지 쇼의 도움으로 무기는 내렸지만 선생은 야음을 틈타 상륙하다 경찰견까지 동원한 일제의 추적을 받게 됐다. 옥수수밭에 사흘이나 숨고 맨발로 산골짜기를 헤매며 천신만고 끝에 귀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 무기는 국내 동포들이 주는 것이니 제군들은 무기를 생명과 같이 사랑하여 한 발의 탄환이라도 헛되게 쓰지 말고 1탄에 왜적 1명씩 잡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1920년 광복군사령부 무기수여식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무기로 광복군사령부는 서너 달 동안 일본군과 78회 교전하면서 주재소 등을 습격해 일경 95명을 사살하는 막대한 전과를 거두었다. 일제가 한인들을 학살한 경신참변 후 선생은 임정에 상황도 알릴 겸 두 번째로 상하이로 갔다. 뜻밖에도 선생은 독립신문 사장을 맡게 됐다. 당시 독립신문 책임자였던 소설가 이광수는 변절해 국내로 돌아갔고 프랑스 조계에 있던 신문사는 일제의 방해로 인쇄 도구가 압수되고 신문 발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선생은 프랑스 영사관과 교섭한 끝에 신문을 복간, 1927년까지 6년 동안 발행을 책임졌다. 그동안 일제의 추적을 피하고자 28번이나 인쇄소를 옮겼는데 한번 옮길 때마다 마차 2량과 인력거 20여대가 필요했고 한밤중에 이사를 다니기도 했다.선생은 1924년 무렵 임정 학무부 총장 대리 등의 직도 맡았다. 그런데 당시 서간도 독립운동 단체인 통의부와 참의부의 알력이 깊어져 유혈극이 벌어졌다. 독립신문의 글 때문에 불똥이 선생에게까지 튀자 사장직을 사임했다. 그것도 잠시 선생은 임정의 임명으로 비어 있던 참의부 제4대 참의장이 됐다. 갈등을 겪으면서도 참의·정의·신민 3부는 통합을 추진했는데 통일 단체 이름은 ‘혁신의회’였다. 1929년 2월 5일 선생은 혁신의회 회의를 마치고 나오다 환인현 와니전자에서 일경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상하이에서 무기를 구입한 일, 독립신문을 발간한 일 등을 캐물으며 일경은 혹독한 고문을 했다. 특히 선생이 틈틈이 수집해서 보관하던 독립운동사 사료를 내놓으라고 추궁했다. “왜경에게 피포(被捕) 후 손발이 요절되는 수십 차 악형이 주로 이 사료 수색 때문이었다”고 선생은 밝힌 바 있다. 선생은 굴복하지 않았고 5년의 옥살이도 버텨냈다.출옥 후 선생은 다시 만주로 망명, 임정 베이징 조직을 맡고 만주 천금채에 맡겨 둔 독립운동 자료를 찾았다. 독립운동 자료는 선생에게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베이징 조직이 탄로 나는 바람에 선생은 베이징을 탈출, 70여일 동안 무려 1000㎞를 뚫고 한구에 도착했고 만주로 돌아와 은둔하다 그리던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선생은 정치 참여는 자제하고 독립신문 복간과 독립운동사 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복간은 중단됐고 ‘한국독립사’는 1964년 탈고했지만 출간 직전인 1964년 12월 17일 선생은 별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경기 고양에 있던 묘소는 2012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광복회 학술연구원장으로 있는 장증손자 김병기 박사를 만났다. 선생은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도 여러 번 감옥에 갇혔고 자손들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선생과 가족들은 피란지 부산에서 10여년을 살았는데 부두 노동자 취업도 못하게 이승만 정권의 탄압과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오리를 키우고 행상을 해서 생계를 잇는 형편이라 자손들이 포상 신청을 하자고 하자 선생은 “독립운동을 한 게 무슨 벼슬이라도 되느냐”고 화를 내며 만류했다고 한다.김 박사에 따르면 정부가 독립운동가 포상을 시작한 때가 1962년인데 처음에는 친일 역사학자들이 심사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반발해서 이듬해 독립운동사 편찬자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도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선생은 심사를 하면서 이병도 등 학자들에게 “자네들이 독립운동에 대해서 뭘 아는가”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40대에 독립운동사 연구를 시작해 만주 참의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선생의 유업을 이어받아 ‘한국독립사’를 7권으로 나눠 현대화하고 보완해 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안개와 갈대숲… 老작가를 따라 ‘나와 너의 무진’을 필사하다

    안개와 갈대숲… 老작가를 따라 ‘나와 너의 무진’을 필사하다

    나에게 ‘무진’은 첫 필사(筆寫)의기억이 각인된 장소다. 언어영역의 지문으로나 보던 소설 원문을 통째로 베껴 쓰는 일이 대학에 입학한 첫 학기의 중간고사 리포트였다. 문학평론가 서영채 교수가 강의하던 현대한국문학사 시간의 일이었다. 소설 ‘무진기행’의 전문을 보는 것도 처음인데 필사라니. 처음에는 정직하게, 중간쯤에는 발랄한 필기체로 쓰다 종내에는 나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문장들을 베껴 나갔다. 단편소설은 생각보다 길었고, 분명 한글인데 이상하게 그림들 같았다. 놀다가 졸다가 연애를 시도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맥주나 마시자는 심정으로 소설을 옮겨 그렸다. 여귀(鬼)의 입김이 우리에게도 옮겨 온 것 같이 추운 밤이었다. 에어컨의 전원을 끄며 건너다본 교수 연구실의 불빛은 그날도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함께 고되게 벼락 필사를 하던 동기이자 이 여행에 동행하게 된 석양정에게 내가 물었다. “근데 교수님도 필사를 다 하셨을까?”전남 순천 무진길. 4월답지 않은 서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군락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순천문학관이 나온다. 순천시가 2010년에 개관한 이곳은 김승옥관과 정채봉관으로 나뉘어 있다. 도로를 벗어나 얼마를 더 달렸는데도 갈대숲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디쯤에 김승옥 선생께서 미리 도착해 계신다고 했다. 2003년 이문구 소설가의 장례식에 가던 차 안에서 쓰러진 뒤로 언어 능력을 많이 상실한 까닭에 일상적인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선생께서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지 않은 지도 오래였고, 공개적인 자리에 서는 일도 드물다고 했다. 선생의 건강 상태에 따라 준비해 간 질문의 답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말도 전해져 왔다. 코로나19 탓에 문학관은 잠정적으로 폐쇄된 상태였다. 선생께서 직접 순천문학관 내에 있는 김승옥관의 문을 열어 줬다. 지그려 둔 사립문을 여는 손끝이 매우 활기차 보였다. 그날 오후 우리는 내내 선생의 손끝만 따라다녔다. 음성 대신 그려 주는 손말을 해석해 가며 선생의 지난 시간을 듣는 갈대숲 속이라니. 어떤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닫힌 문을 여는 시간이면 충분했다.선생의 안내로 김승옥 전시관을 둘러봤다. 전시물들과 우리 사이에는 유리관이 있었고, 선생께서는 그 유리관에 대고 손끝으로 단어를 하나하나 써 가며 우리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줬다. 동시를 투고하기 시작했던 ‘국민학생’ 때의 일부터(선생은 1941년생이다.) 서울대 불문과 재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김이구’라는 이름으로 만화 연재를 시작한 일화, 단체 사진 속에서 선생의 친구들을 찾아 이름을 알려 주는 손끝을 따라가고 있자니 병색은 간데없고 활기차고 옛이야기 해 주기를 좋아하는 어른 한 분이 오롯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선생의 활기찬 손끝 따라 거닐다 질문마다 선생은 품에 꼭 지니고 다니던 메모지에 단어와 그림을 그려 가며 대답을 했다. 곁에 있던 에세이스트 석양정과 박진규, 김경희 소설가가 선생의 ‘새로운 창작물’에 해석을 곁들여 줬다. 선생의 근황을 여쭙자 “서울에서 3일, 순천에서 사나흘 정도를 지낸다”고 했다. 4월에는 그림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순천시청에서 ‘무진기행’ 관련 그림 30부를 요청해 5월 전시를 준비하고 있지요.”혹 엿보기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 작업 진행 여부를 물었는데 “이제부터…”라며 말끝을 흐렸다. ‘역시 작가를 움직이는 건 마감 시간인 건가’라는 동의였는지 동석한 작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작가 “순천문학관이 2010년 개관된 이래 계속 이곳에서 생활을 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곳 자랑 좀 해 주세요.” 김 선생 “순천은 갈대가 유명하고요. 포구에 들어오는 배와 철새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순천만 갈대 습지의 탐방로를 따라가면 용산전망대가 나오는데, 그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순천만의 노을이 매우 일품입니다. 그리고 순천문학관에는 정채봉과 김승옥이 있지요.” 이 작가 “이곳 풍경은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무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시대적·개인적 슬픔이 무진기행 쓰게 만들어 김 선생 “무진은 평양과 서울, 부산 등 한반도의 모든 지명을 포함한 이름이에요. 이곳이기도 하고, 이곳이 아니기도 하죠. 신과 악마가 남녀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어머니와 태중의 아기 그리고 현재와 미래가 섞인,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장소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신과 악마의 사이에서 급기야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소설 ‘무진기행’의 맨 마지막 문장)고 토로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쓰던 당시에는 제게 어떤 슬픔 같은 것이 컸어요. 외교관이 되려던 꿈이 좌절됐고, 두 살 연상의 연인과 결별을 겪었지요. 시대적 아픔도 컸고요. 가족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 슬픔이 내게 그 소설들을 쓰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작가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소설을 한 번쯤 필사하거나 문장을 외워 가면서 습작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도 일어나고, 교과서에도 실리고, 언어영역의 지문으로도 활용됐는데, 그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 선생 “제가 소설을 쓴 것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아주 짧은 시기입니다. 그 이후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제 작품을 읽어 주고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려고 노력해 줘서 매우 고맙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더 큰 말을 찾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제 소설로 된 문제를 풀어 본 적은 없습니다. 하하.”이 작가 “아까 전시관에서 유독 친구분들과의 사진을 오랫동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쭤도 될까요?” 김 선생 “김현, 최하림, 김치수, 최인훈, 최인호, 박태순, 이문구…. 친구들이 다 먼저 갔어요. 그중에 김현은 가끔 꿈에도 나와요. 많이 보고 싶어서 그렇죠.” 이 작가 “올해 선생님의 SF소설 ‘2020년, D9 기자의 어느날’(동아일보 1970년 4월 1일자, 창간 50주년 특집호)이 발표된 지 50주년이 됐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선생님 소설에 대한 오마주 형식으로 앤솔러지 한 권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김 선생 “후배들이 좋은 소설을 쓰고 있다니,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저도 천천히, 조금씩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끝내 그럴 겁니다.”●선생의 크고 단단한 발음으로 “좋다” 인터뷰는 오랜 시간에 걸쳐 띄엄띄엄 건네 오는 단어로 진행됐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건넨 시간이었다. 선생께서는 그림과 단어들에 어떤 한계가 있다고 느꼈던지 우리에게 다시 ‘인터뷰 답변지’를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내 사정을 알고 있던 김경희 작가가 ‘이 작가가 지금 첫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말을 전하자 막 걸음을 떼려던 선생은 나를 돌아보며 “좋다”고 크고도 단단한 발음으로 말씀해 주셨다. 그날 내가 들은 선생의 언어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도 호쾌한 발음이었다. 인터뷰를 위한 현장에서는 ‘김승옥 다큐’ 작업이 한창이었다. 4년 전부터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에 담고 있는 김병수 PD(아르띠잔)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로 그날도 선생의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옛날 선생께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영화 연출을 하던 시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와 ‘겨울여자’, ‘영자의 전성시대’를 비롯해 16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썼고, ‘감자’는 시나리오는 물론 직접 연출까지 한 이력이 있는 선생에게는 오히려 영상에 담기는 것보다 영상 밖에서 ‘김승옥’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선생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TV와 영화로 상영될 예정이란다. 거장의 옛날을 예우하는 사람들의 혼신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무진’의 갈대숲이었다. 월요일이 됐지만 약속한 답변지는 도착하지 않았다. 화요일이 돼도, 금요일까지도 답변지는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갈대숲에서의 대화를 하나씩 곱씹던 나는 급기야 선생이 답변지를 한 30년 정도 늦게 줘도 괜찮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고야 말았다. 선생은 다시 ‘다음 월요일까지 답변지를 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따름이었다.●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하는 삶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돼 보니 스무살 적에 도서관에서 가졌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굳이 몰라도 될 것만 같다. 세상에는 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를 하는 삶이 있기 마련이고, 게다가 그 시간은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우주선들의 도킹 같은 것이니 말이다. 누군가를 무진으로 초대하는 일은 한 세계가 다른 세계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우리는 김승옥 선생과 그의 소설로부터 꽤 괜찮은 시간을 부여받은 셈이라고, 무진이라는 시공간 안에서는 어떠한 해석도 무방하다고 여기면 어떨까. 나는 훗날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너의 출생을 축복해 준 안개와 갈대숲의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리라 마음먹었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줄 답변지를 고르느라 갈대숲 속에서도 아주 많이 바쁘시다고, 무진의 안개를 그려 낼 시간조차도 답변지를 작성하는 데 쓰고 계시다는 사실도 넌지시 전해야겠다. 내 아이는 언제쯤 소설을 필사하고, 삶과 시간이 주는 비의에 기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 그곳과 여기 그리고 나와 너의 무진에서.
  • 국회의원 연 소득 1억 4052만원… 초임은 ‘최고’

    국회의원 연 소득 1억 4052만원… 초임은 ‘최고’

    국내에서 평균 소득이 가장 많은 직업은 기업 고위임원으로 조사됐다. 2위는 국회의원이었다. 19일 한국고용정보원의 ‘2018 한국 직업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기업 고위임원의 평균 소득(연봉 또는 연 수입)은 1억 5367만원이었고, 국회의원은 1억 4052만원이었다. 국회의원은 해마다 평균 소득 최상위권에 들었는데, 2017년 조사에서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연소득은 기업 고위임원보다는 적었지만 초임 수준은 1억 4052만원으로 전 직업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이 밖에 외과 의사(1억 2307만원), 항공기 조종사(1억 1920만원), 피부과 의사(1억 1317만원) 등이 평균 소득 상위 5위권에 들었다. 소득이 가장 적은 직업은 자연·문화해설사로 1078만원이었고 시인(1209만원), 소설가(1283만원), 연극·뮤지컬배우(1340만원), 육아 도우미(1373만원) 순으로 낮았다. 직무 만족도(5점 척도)는 ‘보건·의료직’이 평균 3.75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경영·사무·금융·보험직’(3.66점), ‘교육·법률·사회복지·경찰·소방직 및 군인’(3.62점)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직무 만족도가 가장 낮은 직종은 ‘건설·채굴직’(3.19점)이었으며 ‘영업·판매·운전·운송직’(3.24점), ‘농림어업직’(3.24점)이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향수‘ 쥐스킨트 명작들 양장본으로 다시 만난다

    ‘향수‘ 쥐스킨트 명작들 양장본으로 다시 만난다

    장편소설 ‘향수’로 유명한 독일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명작들을 엄선한 양장본 개정판(사진)이 나왔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은 새롭게 편집하고 디자인도 바꾼 ‘쥐스킨트 리뉴얼’을 펴낸다고 17일 밝혔다. 이 시리즈는 49개 언어로 번역돼 2000만부가 넘게 팔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쥐스킨트를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린 ‘향수’를 비롯해 모두 8권이다. 한국에서 더 인기를 끈 ‘좀머 씨 이야기’,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콘트라바스’와 ‘깊이에의 강요’, ‘사랑’, ‘비둘기’, ‘승부’, ‘로시니’를 포함했다. ‘콘트라바스’와 ‘승부’는 새롭게 번역했다.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과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젊은 시절부터 단편을 습작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쥐스킨트는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문학상 수상과 인터뷰를 모두 거절하고 사진 촬영조차 꺼리는 은둔의 작가로 알려졌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불멸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내일 밤 유튜브 무료 상영

    불멸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내일 밤 유튜브 무료 상영

    불멸의 명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온라인 무료 상영회 대열에 합류했다.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72)는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을 17일 오후 7시(현지시간)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에 공개한다고 16일 밝혔다. 한국 시간으로는 18일 새벽 3시부터 48시간 동안 전막 실황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이번에 공개하는 공연 영상은 2011년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 무대에 오른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이다. 유령 역은 라민 카림루가 연기하고, 크리스틴 역은 초연의 사라 브라이트만 이후 최고의 캐스팅으로 꼽히는 시에라 보게스가 맡았다. 웨버는 코로나19로 전 세계 공연시장이 얼어붙자 지난 3일 유튜브에 이 채널을 만들어 매주 금요일 자신의 인기 뮤지컬을 한 편씩 공개하고 있다.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앞서 상영됐다.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파리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작곡가 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귀족 청년 라울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30년 이상 공연된 유일한 작품으로, 전 세계 41개국 183개 도시에서 누적 관객수 1억 4000만명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2001년 한국 출연진의 라이선스 공연으로 처음 관객을 만났고, 2005년과 2012년에 이어 2019년 12월 부산을 시작으로 월드투어 팀의 내한 공연이 진행 중이다. 서울에서는 지난달 14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개막해 공연을 이어왔지만, 앙상블 배우 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지난 1일부터 공연을 중단했다. 최근 모든 출연·제작진의 건강상태와 공연장의 안전상태를 확인한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측은 3주 이상의 격리 기간을 가진 뒤 오는 23일부터 공연을 이어간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부고]

    ●박정이씨 별세 하승우(SK증권 경기PIB센터장)씨 장모상 16일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6시 (02)797-4444 ●차금열씨 별세 차석원(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국제협력부본부장)·석모(동대문구청 보건소 의약과)씨 부친상 남언정(킨더뮤직코리아 이사)·장인회씨 시부상 16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6시 (02)2072-2020 ●손세명(전 한국투자신탁 이사)씨 별세 손창환(석영에스텍 부장)·수연씨 부친상 조근수(삼성전자 경영지원실 부장)씨 장인상 16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오전 6시 (02)2258-5919 ●이화자(소설가 고 장용학 배우자)씨 별세 장한철(예금보험공사 부사장)·한성(일진머티리얼즈 기술고문)·한기(두산인프라코어 자문)씨 모친상 16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18일 (02)758-0707
  • [책꽂이]

    [책꽂이]

    재미난 사람들의 쓸쓸한 얘기(류보상 지음, 천우 펴냄) 극작가이자 소설가, 극단의 고문인 작가의 세 번째 희곡 선집. 단국문학상, 탐미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던 작가는 ‘어르신 때문에’, ‘처제의 계산법’, ‘아버지와 아들’, ‘꽃가게 집 노처녀’ 등 8편의 희곡 작품에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얘기들을 담았다. 231쪽. 1만 5000원.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은행나무 펴냄) 물리학자이자 이탈리아의 양대 문학상 수상 작가가 조명한 코로나19 사태. 그는 오늘날을 ‘전염의 시대’라고 진단하며 이는 보편적인 고독을 가져온 동시에 바이러스 앞에서 모든 인류는 공평하며 각자의 운명은 연결돼 있음을 일깨우기도 했다고 말한다. 특히 “사람들의 극심한 공포는 ‘숫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불신’의 고리에서 나온다”며 거짓 정보에 유의할 것을 강조한다. 96쪽. 8500원.뭉클(강윤중 지음, 경향신문사 펴냄) 현직 사진기자인 저자가 렌즈 너머로 바라본 세상. 세월호 참사와 노동자들의 장기농성장, 로힝야 난민을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담았다. 사건의 현장뿐 아니라 이 땅의 계절, 유명인들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 등 뷰파인더로 본 세상의 스펙트럼이 넓다. 304쪽. 1만 5500원.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용주 지음, 양철북 펴냄)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작정 아프리카로 떠난 마도로스의 이야기. 그곳에서 물 한 방울을 찾기 위해 섭씨 60도가 넘는 한낮에 7시간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을 만난 저자는 식수 전문 국제구호 단체인 팀앤팀을 만들었다. 척박한 땅 남수단 마을에 물이 들어가기까지 과정을 사진 자료와 함께 기록했다. 256쪽. 1만 3000원.미술시장의 탄생(손영옥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한국 근대 미술시장의 태동부터 완성까지 살펴보는 저작. 국민일보 미술·문화재전문기자인 저자는 한국 미술시장이 전근대적 성격을 벗어나 근대적인 자본주의 생산 방식으로 이행한 시점을 개항기라고 본다. 이후 1905년부터 1920년대까지를 일제 ‘문화통치’ 전후, 1930년대부터 해방 이전을 ‘모던의 시대’로 명명하며 한국 미술시장 형성사의 세세한 풍경을 탐색한다. 424쪽. 2만 7900원.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김금숙·정철훈 지음, 서해문집 펴냄)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노동 인권과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한 김알렉산드라의 생애를 그래픽노블로 담았다. 언론인 출신 소설가인 정철훈 작가의 원작 ‘소설 김알렉산드라’를 김금숙 작가가 재탄생시켰다. 러시아 이주 한인들의 고단했던 삶과 혁명기의 격동했던 시대적 상황이 김알렉산드라의 비극적인 짧은 생애 속에 응축돼 있다. 240쪽. 1만 6000원.
  • [부고] 연주흠씨 부친상, 차석원씨 부친상, 손세명씨 별세, 장한철씨 모친상

    ●연규헌씨 별세, 연주흠(청주시 주택정책팀장)씨 부친상, 김서형(청주시 공원행정팀장)씨 시부상, 15일 오후 11시, 청주 성모병원 장례식장 특2실, 발인 17일 오전 8시 30분. 043-210-5444 ●차금열씨 별세, 차석원(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국제협력부본부장)·차석모(동대문구청 보건소 의약과)씨 부친상, 남언정(킨더뮤직코리아 이사)·장인회씨 시부상, 16일 오전 2시,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5호실, 발인 18일 오전 6시. 02-2072-2020 ●손세명(전 한국투자신탁 이사)씨 별세, 손창환(석영에스텍 부장)·손수연씨 부친상, 조근수(삼성전자 경영지원실 부장)씨 장인상, 16일 오전 9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 발인 18일 오전 6시. 02-2258-5919 ●이화자(소설가 故장용학 배우자)씨 별세, 장한철(예금보험공사 부사장)·장한성(일진머티리얼즈 기술고문)·장한기(두산인프라코어 자문)씨 모친상, 16일,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18일. 02-758-0707
  • 뻔한 가난보다 상대적 박탈감, 그게 더 아프다

    뻔한 가난보다 상대적 박탈감, 그게 더 아프다

    한국 문학에서 서울로 상경한 여성 청년들의 서사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 ‘외딴방’(1994)은 주경야독하는 구로공단의 여공 이야기였다. 최근 그레타 거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한 고전 ‘작은 아씨들’도 따지고 보면 ‘조’라는 인물의 뉴욕 상경기다.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유담(37) 작가의 첫 소설집 ‘탬버린’(창비)에도 그런 인물들이 한아름 등장한다. 이는 ‘부산 출생, 밀양 출신, 서울로 유학’이라는 작가의 인생과 닮아 있다. 최근 서울 서교동 까페창비에서 만난 작가는 “흔한 얘기라는 비판을 들을까 걱정했다”면서도 “제가 가장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얘기였기 때문에 썼다”고 밝혔다. “그레타 거위그 같은 감독을 보면서 힘을 내기도 했고요. 이게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이 갈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는 생각을 했어요.” ‘흔한 얘기’라고 했지만, ‘탬버린’ 속 인물들은 다 같은 ‘지방러’가 아니다. 작가는 하나하나 미묘하게 다른 인물들의 결을 크레이프처럼 겹겹이 쌓아 올렸다. 인물들은 성별·경제적 수준 등에 따라 묘하게 다른 입장, 다른 처지를 지닌다. 가령 단편 ‘가져도 되는’에 나오는 인희와 승규 부부는 둘 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온 캠퍼스 커플이다. 그러나 인희는 월 28만원짜리 여성 전용 고시원에 살고, 승규는 40만원짜리 하숙집에 산다. 취업 시장에서도 남자라는 스펙을 가진 승규에 비해 ‘B형 간염 보균자’라는 결격사유를 하나 더한 인희는 번번이 어려움을 겪는다. 인생에 있어 일견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는 승규와 달리 천신만고 끝에 9급 공무원이 된 인희는 어렵게 쌓아 올린 자신의 현실을 더욱 그악스럽고, 야무지게 움켜쥔다. 같은 ‘상경 서사’라도 이전과 다른 이유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밥을 굶는 수준의 가난한 인물은 제 소설에 안 나오죠. 지방에서 꽤 잘산다고 했는데 서울에 오니 가난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뭔가를 더 해보기에는 잘 안 되는 정도인 거죠. 그런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요즘 세대들한텐 더 큰 거 같아요.”이는 같은 자리에서도 차이와 차별을 미묘하게 감지하는 작가의 관찰력에서 비롯됐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회식 자리 가면 사원 마음 다르고 팀장 마음 다르잖아요? 피라미드처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나한테 할 수 있지만, 나는 할 수 없는’ 그런 관계들을 예민하게 살펴보는 거 같아요.” ‘사원 마음 다르고, 팀장 마음이 다른’ 현실은 표제작 ‘탬버린’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회사 대표의 인솔하에 찾아간 노래방에서 쉴 새 없이 탬버린을 흔들 수밖에 없는 사원인 ‘나’와 그를 둘러싼 복잡한 셈법을 작가는 세밀하게 그려 냈다. 작가가 선망해 마지않는 김애란 작가는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김유담의 소설은 정확하다 못해 가차 없다는 느낌을 준다. 가령 이런 문장. ‘체력이 좋은 암 환자, 듬직한 신용불량자, 젖이 나오지 않는 수유부, 소설을 손에서 놓은 소설가가 커다란 불판 하나를 둘러싸고 장어를 굽고 있었다.’(272쪽) IMF 이후 실패만 거듭하다 암 환자가 돼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두고두고 후회’의 한 대목이다. “좀더 아름답게 그리고도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제 성격이 소설에 반영되나 봐요. 제가 항상 관계에 있어서도 머뭇거리는 편이고, 대책 없는 해피엔딩을 못 보거든요.” 그렇다고 무조건 해피엔딩이면, 독자는 행복할까. 더욱 부아만 돋우는 소설이 아닐는지. 김유담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정확한 가차 없음’으로 우리는 되레 위로를 받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인터뷰 도중 ‘서바이브’(Survive·생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서울로 유학한 ‘지방러’로서도, 신춘문예에 갓 등단한 신인으로서도 ‘서바이브’하기 위해 줄곧 노력했다는 뜻이다. ‘나’와 비슷한 생존기를 들으면,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지방러’도 경제 수준 따라 달라… 짠내나는 생존 노력 그려”

    “‘지방러’도 경제 수준 따라 달라… 짠내나는 생존 노력 그려”

    첫 소설집 ‘탬버린’ 펴낸 김유담 작가 자전적 경험 기반한 ‘청년 상경 서사’ 더욱 세밀한 상대적 박탈감 ‘직조’한국 문학에서 서울로 상경한 여성 청년들의 서사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 ‘외딴방’(1994)은 주경야독하는 구로공단의 여공 이야기였다. 최근 그레타 거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한 고전 ‘작은 아씨들’도 따지고 보면 ‘조’라는 인물의 뉴욕 상경기다.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유담(37) 작가의 첫 소설집 ‘탬버린’(창비)에도 그런 인물들이 한아름 등장한다. 이는 ‘부산 출생, 밀양 출신, 서울로 유학’이라는 작가의 인생과 닮아 있다. 최근 서울 서교동 까페창비에서 만난 작가는 “흔한 얘기라는 비판을 들을까 걱정했다”면서도 “제가 가장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얘기였기 때문에 썼다”고 밝혔다. “그레타 거위그 같은 감독을 보면서 힘을 내기도 했고요. 이게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이 갈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는 생각을 했어요.” ‘흔한 얘기’라고 했지만, ‘탬버린’ 속 인물들은 다 같은 ‘지방러’가 아니다. 작가는 하나하나 미묘하게 다른 인물들의 결을 크레이프처럼 겹겹이 쌓아 올렸다. 인물들은 성별·경제적 수준 등에 따라 묘하게 다른 입장, 다른 처지를 지닌다. 가령 단편 ‘가져도 되는’에 나오는 인희와 승규 부부는 둘 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온 캠퍼스 커플이다. 그러나 인희는 월 28만원짜리 여성 전용 고시원에 살고, 승규는 40만원짜리 하숙집에 산다. 취업 시장에서도 남자라는 스펙을 가진 승규에 비해 ‘B형 간염 보균자’라는 결격사유를 하나 더한 인희는 번번이 어려움을 겪는다.인생에 있어 일견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는 승규와 달리 천신만고 끝에 9급 공무원이 된 인희는 어렵게 쌓아 올린 자신의 현실을 더욱 그악스럽고, 야무지게 움켜쥔다. 같은 ‘상경 서사’라도 이전과 다른 이유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밥을 굶는 수준의 가난한 인물은 제 소설에 안 나오죠. 지방에서 꽤 잘산다고 했는데 서울에 오니 가난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뭔가를 더 해보기에는 잘 안 되는 정도인 거죠. 그런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요즘 세대들한텐 더 큰 거 같아요.” 이는 같은 자리에서도 차이와 차별을 미묘하게 감지하는 작가의 관찰력에서 비롯됐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회식 자리 가면 사원 마음 다르고 팀장 마음 다르잖아요? 피라미드처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나한테 할 수 있지만, 나는 할 수 없는’ 그런 관계들을 예민하게 살펴보는 거 같아요.” ‘사원 마음 다르고, 팀장 마음이 다른’ 현실은 표제작 ‘탬버린’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회사 대표의 인솔하에 찾아간 노래방에서 쉴 새 없이 탬버린을 흔들 수밖에 없는 사원인 ‘나’와 그를 둘러싼 복잡한 셈법을 작가는 세밀하게 그려 냈다. 작가가 선망해 마지않는 김애란 작가는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김유담의 소설은 정확하다 못해 가차 없다는 느낌을 준다. 가령 이런 문장. ‘체력이 좋은 암 환자, 듬직한 신용불량자, 젖이 나오지 않는 수유부, 소설을 손에서 놓은 소설가가 커다란 불판 하나를 둘러싸고 장어를 굽고 있었다.’(272쪽) IMF 이후 실패만 거듭하다 암 환자가 돼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두고두고 후회’의 한 대목이다. “좀더 아름답게 그리고도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제 성격이 소설에 반영되나 봐요. 제가 항상 관계에 있어서도 머뭇거리는 편이고, 대책 없는 해피엔딩을 못 보거든요.” 그렇다고 무조건 해피엔딩이면, 독자는 행복할까. 더욱 부아만 돋우는 소설이 아닐는지. 김유담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정확한 가차 없음’으로 우리는 되레 위로를 받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인터뷰 도중 ‘서바이브’(Survive·생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서울로 유학한 ‘지방러’로서도, 신춘문예에 갓 등단한 신인으로서도 ‘서바이브’하기 위해 줄곧 노력했다는 뜻이다. ‘나’와 비슷한 생존기를 들으면,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화마당] 아침 드셨습니까/김이설 소설가

    [문화마당] 아침 드셨습니까/김이설 소설가

    한국인의 밥 사랑이야 유명하다. 오죽하면 밥에 대한 인사말이 있을까. 식사 하셨습니까, 언제 식사나 한번 합시다는 물론이고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까지 있으니 말이다. 집에만 있다 보니 하루 세 끼 차리는 일이 마치 하루의 전부 같다. 개학이 다시 연장됐고, 재택근무 등으로 식구들 식사를 챙겨야 할 횟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 끼 먹고 치우고 나면 다음 끼니를 걱정한다. 적어도 내 경우는 하루 종일 머릿속에 뭐 해먹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비단 나뿐만은 아닐 터다. ‘아침밥은 먹기 쉽지 않다. 밥을 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동일할 때, 아침은 가장 먼저 생략되는 끼니다. 아침밥이 중요하다는 말, 아침을 거르는 법이 없다는 말에는 여유 있는 아침시간이 확보되어 있다거나 아침을 차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속뜻이 있을 때도 적지 않다.’ 에세이 ‘조식: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의 한 구절이다. 지은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나온 숱한 날들의 아침 풍경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기억의 편린’을 펼친 책인데 그중에서도 아침 식사에 관한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하루 첫 끼니인 아침 식사로 밥과 국, 따스한 계란찜 등으로 차린 밥상이나 빵과 샐러드, 시리얼, 그도 아니면 방울토마토 세 알이나 사과 두 쪽이라도 먹이고 싶은데 아이들은 앙다문 입술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기어이 빈속으로 등교를 하곤 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요즘도 아침밥을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는 매한가지다. 나도 이제는 이력이 생겨 두어 번 권하다 만다. 한 끼 거른다고 난리 나겠냐 같은 심보랄까. 아침을 먹어야 두뇌 회전이 잘된다는 이야기를 몰라서가 아니다. 아침부터 입맛이 있을 리 없고, 아침 공복의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며, 먹기 싫은 걸 억지로 인상 쓰면서까지 먹는 걸 보기 싫은 마음도 얼마간은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아침밥을 안 먹는 아이였다(내 아이들은 나를 닮은 것이다). 차려 놓은 밥상을 외면하고 현관문을 뛰쳐나갔다. 엄마가 되고서야 새벽에 일어나 애써 상을 차린 엄마에게 못된 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어 달라고 사정하는 엄마가 돼 버렸다. 벌 받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사람들은 으레 엄마의 밥상을 최고로 꼽는다. 나는 엄마가 밥하는 소리를 더 좋아했다. 선잠에 깨어 눈을 끔벅이다 보면 부엌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칼질 소리나 달그락거리는 냄비 뚜껑 여닫는 소리,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마찰음이, 그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식구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엄마의 동동거리는 발걸음 소리는 그래서 내게는 안락과 평온의 다른 표현이다. 곧 뭉근한 밥내가, 된장찌개 냄새가, 꽈리고추볶음 냄새가 풍겨 오고 그럼 부스스 일어나 밥상 앞에 앉아 그날만큼은 어서 밥 달라고 조르는 딸이 되곤 했던 것이다. 엄마가 되고 나니 식구들을 위해 새벽잠을 떨치고 일어나 부엌에 들어서는 일이 정말 수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겠다. 정성을 담뿍 담은 아침 밥상이든, 과일 한 쪽이든 간에 식솔들을 위해 밥을 짓는 일 자체가, 끼니를 챙기는 일이 말이다. 그러니 차려 놓은 밥상을 외면하더라도 그걸 차린 사람의 새벽을 기억해야 한다. 아침을 차리기 위해 전날 밤부터 재료를 준비했던 성의가 있었다는 것도. 가족이 차리는 아침상이 당연하다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누구든 아침 먹고 가라는 말을 들었다면, 거절하지 말고 밥 한 술이라도 뜨고 식빵 한 입이라도 베어 물고 나서길 바란다. 당신의 건강과 부엌에서 아침을 차린 사람의 마음을 위해서라도.
  • 남산예술센터서 즐겼던 명작 6편 안방에서 ‘NFLIX’해 버렸지 뭐야

    남산예술센터서 즐겼던 명작 6편 안방에서 ‘NFLIX’해 버렸지 뭐야

    서울문화재단은 코로나19로 위축된 연극인과 관객을 위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남산예술센터 연극 6편의 공연 실황 녹화 영상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제공하는 ‘남산예술센터 NFLIX’ 상영회를 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진행한다. 첫 번째 상영작은 소설가 장강명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9~12일)이다. 대사와 함께 배우들의 다양한 몸짓을 통해 기억과 시간, 고통, 속죄의 의미를 생각하는 작품이다. 2018년 초연 이후 제5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등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가장 먼저 이름이 오른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13~15일)도 재택 관객을 만난다. 군인이 등장하는 4개 이야기를 엮어 국가폭력을 비판하며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어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엄마들을 소재로 한 ‘그녀를 말해요’(16~19일), 삼성 백혈병 사건과 군 의문사를 다룬 ‘7번 국도’(20~22일), 삼국유사 웅녀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처의 감각’(23~26일), 기간제 교사 차별과 학교폭력 등 고등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 등을 그린 ‘파란나라’(27~30일) 등이 이어진다. 상영 시간은 시작일 오전 10시부터 종료일 오후 10시까지이며, 서울문화재단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TV에서 볼 수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독자 분노 부른 佛 유명작가들의 ‘동화 같은 피난기’

    독자 분노 부른 佛 유명작가들의 ‘동화 같은 피난기’

    코로나19로 하루 만에 800명이 넘게 사망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유명 작가들이 정부의 이동 제한을 피해 한적한 별장에서 동화 같은 피난기를 연재해 독자와 동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6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소설 ‘달콤한 노래’로 2016년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은 레일라 슬리마니(38)는 르몽드에 연재 중인 ‘격리일기’에서 지난달 13일부터 아이들과 함께 파리를 떠나 별장에 격리되는 과정을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같다고 표현하면서 “오늘 밤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침실 창문을 통해 산 너머로 동이 트는 걸 봤다. 풀잎에 서리가 내리고, 라임 나무 가지엔 첫 싹이 돋아났다”고 썼다.2013년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소설로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가 마리 다리외세크(51)는 주간지 르푸앙에 쓴 글에서 바스크 지방에 있는 별장에 도착한 뒤 파리 번호판이 달린 차를 차고에 숨기고 오래된 다른 차를 사용한 일을 언급하며 “‘75’(파리 지역 번호)를 뒤에 달고 운전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느꼈다”고 적었다. 다리외세크 역시 별장 생활에 관해 “두 마리 암사슴이 정원에 들어와 풀을 뜯는다”며 “우리는 바다를 보러 나간다. 바다는 무겁고 강하고 무관심하게 요동쳤다. 해변엔 인적이 끊겼다. 나는 인간이 없는 행성에 온 것 같다”며 동화 같은 감상을 남겼다. 프랑스 국민 대부분이 좁은 집안에서 답답한 격리 생활을 하는 가운데 두 ‘부르주아 작가’의 한가로운 감상은 당연히 환영받지 못했다. 이날 현재 프랑스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9만 8000명을 넘어섰으며 하루 만에 833명이 숨져 사망자가 8900여명에 이르렀다. 앞서 정부의 이동제한 발령 직전 주말 파리, 리옹 등에 거주하는 부유층이 한적한 지방 마을과 관광지로 몰려들어 원주민들의 불만이 이미 치솟은 상황이기도 하다. 독립언론인 니콜라 케넬은 “안녕, 가난한 사람들, 15㎡ 아파트에서 셋이 살기 괜찮은가”라면서 “시간을 보내고 갇혀 있는 압박감을 덜기 위해 시골 별장에 있는 작가의 일기를 챙겨 읽길 권한다”고 비꼬았다. 소설가 디안 뒤크레는 “내 창문에선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맞은편 건물은 더럽고 텅 빈 거리는 나를 맹렬한 불안으로 채운다”고 썼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북 토크’ 홈쇼핑에서 만나는 고전 ‘데미안’

    ‘북 토크’ 홈쇼핑에서 만나는 고전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고전 ‘데미안’을 북 토크 형식의 홈쇼핑에서 만난다. 문학동네는 세계문학전집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롭게 선보이는 특별판 ‘데미안’을 홈쇼핑 업체 K쇼핑의 북 토크쇼 ‘K의 서재’를 통해 판매한다고 27일 밝혔다. ‘K의 서재’는 아동 전집류나 학습물 도서가 아닌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북토크 형식의 홈쇼핑 프로그램이다. 첫 방송을 문학동네와 제휴, 한정판 굿즈 세트와 함께 ‘데미안’을 선보인다. 문학동네에서 펴낸 ‘데미안’은 인문학자 안인희가 번역했다. 서문은 헤르만 헤세의 절친한 친구였던 독일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토마스 만이 썼다. ‘K의 서재’는 방송인 박경림이 진행을 맡고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책 유튜버 김겨울이 함께 한다. 수익금 일부는 아동 공동생활시설에 기부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화마당] 2020 문학, 혁신을 요구받다/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2020 문학, 혁신을 요구받다/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계간 ‘자음과모음’ 봄호 특집 ‘작가-노동’이 화제다. “원고료로 생활이 가능한 ‘전업 평론가’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문학평론가 장은정이 구체적 숫자로 답했기 때문이다. 2009~2019년 11년 동안 그가 발표한 글은 176편, 원고 매수로 5728매다. 대가는 총 3390만원, 한 달 평균 46만원이다. 이른바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에 속해 상당히 많은 발표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 정도다. ‘전업 평론가’는 불가능하다.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창비 등 주요 문학 출판사의 내부 독회에 바탕을 둔 차세대 평론가 운영 체제를 말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들 출판사는 내부 편집위원, 편집자, 외부 평론가 등과 정기 독회를 갖췄다. 여기서 문예지 발표작, 단행본 시집과 소설집, 장편소설을 토론하고 작품성·대중성·가능성 등을 고려해 잡지에 청탁하거나 단행본 계약을 한다. 이때 참여하는 외부 평론가는 등단 5년 이내 ‘젊은 평론가’들이다. 이유는 두 가지. 우선, 한 사람이 모두 좇아서 읽지 못할 정도로 작품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이들이 분담해 읽고 일정한 논의 구조를 거쳐 좋은 작가를 가리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다음, 차세대 육성이다. 평론가는 20대 후반 등단한 후 학계에 자리잡을 때까지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논문 중심 체제가 강화된 2000년대 들어 교수가 현장 평론을 하는 건 힘들어졌다. 자사 발행 작품을 잘 읽어 줄 평론가가 충분하지 않자 출판사 입장에선 ‘좋은 평론가’ 자체를 길러내는 게 나았다.(시인-서평가, 소설가-서평가가 늘어난 것도 같은 사정에서다.) 장은정에 따르면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에는 근본적 결여가 있었다. 젊은 평론가한테 주어진 기회는 대부분 ‘리뷰’였다. “잡지를 운영하는 편집위원들이 정해 준 텍스트”에 대한 글이었다. 젊은 평론가에게는 선배 평론가들의 ‘좋음’에 복속해 그 과업을 잘 수행할 의무만 있었다. 평론가가 “어떤 텍스트가 다시 읽힐 만한 비평적 가치가 있는지를 선별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출판산업이 평론을 내부의 한 영역으로 포획해 버린 것이다. 출판산업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비평가가 드물어지자 문학권력이 작품 생산에서 평가까지 모두 장악하면서 무분별한 작동을 시작한다. 장삿속이 노골화돼 작품에 대한 긍정 비평, 즉 ‘세밀한 읽기’만을 조장하고 작품의 질에 대한 근본 질문, 즉 ‘비판적 읽기’를 둔화시킨다. 우정의 리뷰만 가능하고 도발적 비판이 좀처럼 존재하지 못한다. 비판 없는 권력은 균형을 잃는다. 장은정이 보기에, 타락한 권력이 봉합된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 버린 것이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다. 신경숙을 옹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언어가 동원됐는가. 이후, 올해 초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더이상 “세밀한 읽기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났다. 문학제도 자체의 혁신을 위한 문제제기가 절실해졌다. ‘작가-노동’도 한 이슈다. 출판이 작품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느냐는 오래된 질문이다. 예술성과 시장성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래 좋은 답이 없다. 작가의 바람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집에 살며, 3800원짜리 마카롱을 사 먹고, 집 앞 근사한 카페에서 드립 커피 정도는 살 수 있는 삶”이다. 십여년 넘게 동결된 원고료 인상 등 실제 대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작가가 진짜 바라는 것은 문학제도가 자존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작동하는 것 같다. 작가와 출판사가 같은 길에 있다는 느낌이 무너졌다는 심각한 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2020년대 문학은 혁신의 과제를 무겁게 짊어진 채 출발하게 됐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거미 여인의 키스’ 맥널리 코로나19로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거미 여인의 키스’ 맥널리 코로나19로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를 다룬 연극 ‘마스터 클래스’, 뮤지컬 ‘거미 여인의 키스’, ‘풀 몬티’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브로드웨이 극작가 테렌스 맥널리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와 영국 BBC 등에 따르면 2011년 폐암 진단을 받고 두 차례 수술을 받았던 맥널리는 2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한 병원에서 82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부음을 언론에 알린 이는 동성 남편 톰 커다히. 2003년 동성 혼인이 허용된 버몬트주에서 혼인 신고를 한 뒤 2010년 워싱턴 DC에서 결혼 예식을 올렸다. 그의 희곡 소재가 동성애, 호모포비아, 사랑, 에이즈 등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order)을 갖고 있었는데 코로나19에 결국 스러졌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토록 사랑하던 브로드웨이와 뉴욕 극장가가 일주일 이상 폐업한 상황에 인생의 막을 내렸다. 1938년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태어난 맥날리는 텍사스주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여덟 살 때 브로드웨이에서 본 뮤지컬에 감명 받아 학생 때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한 그는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 재학 중 소설가 존 스타인벡에게 재능을 인정받은 일로 유명하다. 스물네 살이던 1964년 극작가로 데뷔한 그는 60년 가까이 36편의 연극, 10편의 뮤지컬, 4편의 오페라, 3편의 영화 시나리오, 4편의 TV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 2018년 발레 뤼스를 이끈 디아길레프를 다룬 희곡 ‘불과 공기’를 선보이는 등 말년에도 창작욕을 불태웠고, 지난해 7월에도 클레어 드 룬 극장 무대에 오드라 맥도날드 주연의 ‘프랭키와 자니’가 리바이벌 상연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다양한 소재를 다룬 그의 대본은 늘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 받았다. 연극 ‘마스터 클래스’ ‘사랑 용기 연민’, 뮤지컬 ‘거미 여인의 키스’ ‘래그타임’으로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을 네 차례나 수상했으며 TV 드라마 ‘안드레의 어머니’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3년 LA 스테이지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나보다 재능도 많고 똑똑한 사람들, 내가 뭔가 게으름을 피울 때 전화를 걸어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했다. 수많은 이들이 삶에서 배우는 것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의 브로드웨이 초기는 온갖 신랄한 비평에 상처 받은 시기였다. 데뷔작 ‘And Things That Go Bump in the Night’에 대해 일간 뉴스데이는 “추잡하고 변태적이며 역겨운” 작품이라고 짓밟았고, 그 결과 3주도 안돼 막을 내렸다. 1995년 잡지 ‘보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최악을 가려 뽑거나 장난 삼아 내지르는 리뷰 콘테스트가 있다면 내가 당연 일등”이라고 자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버텼고 시대가 바뀌자 시대를 앞서간 작가란 평가를 들었다. 지난해 토니상 평생공로상을 거머쥔 뒤 턱시도 차림에 폐에 산소를 공급하는 튜브를 달고 나선 그는 되레 상찬의 “순간이 너무 빨리 온 게 아닌가“라고 뼈 있는 농을 한 뒤 “극장도 변심한다.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살았던 비밀스러운 곳이니까. 세상은 진실과 아름다움, 친절함이란 게 정말 무엇인지를 더 일깨우는 예술가들을 필요로 한다”란 의미심장한 소감을 남겼다. 그게 거의 유언이 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황교안 “민주 비례후보는 불공정의 아이콘 조국 수호 인사들”

    황교안 “민주 비례후보는 불공정의 아이콘 조국 수호 인사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인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은 24일 자신이 작성한 ‘검찰 명단’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위한 ‘복수 리스트’가 아니냐고 지적한 데 대해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황 후보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진중권 교수는 소설가”라고 비판하자 진 전 교수는 “이 분이 개그를 하시나”라며 설전을 벌였다. 황 후보는 “내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거론되다 미끄러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것을 예상하고 ‘검찰 명단’을 작성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의 후임인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업무보고를 하고난 뒤 이미 사의를 표했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애당초 검찰국장은 안중에도 없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공개한 리스트는 퇴직한 후인 올해 1월 추 장관 하에 이뤄진 검찰 고위 간부 인사까지 포함해서 만들었다”며 “‘정치 검사 리스트’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또 “조 전 장관이 무죄판결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조 장관을 이용하여 정치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러나 그가 부당하게 그리고 과도하게 매도당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만든 검사 리스트가 조 장관의 복수를 위한 것은 아니란 주장이다. 앞서 황 후보는 지난 22일 “2019 기해년 검찰발 국정농단 세력, 검찰 쿠데타 세력 명단 최초 공개한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해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 여환섭 대구지검장,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 등 14명을 지목했다.이에 대해 진 전 교수는 “소설은 자기(황 후보)가 썼다”며 “‘조국=조광조’, ‘윤석열=대윤’에 비유한 것은 역사 판타지 소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황 후보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시점은 나중에 검찰에서 밝혀야 할 일이고 본인의 해명에는 블랙리스트 작성의 ‘동기’가 전혀 안 나타나 있다”고 밝혔다. 리스트를 국회의원 출마용으로 만든 거냐며 ‘정치 검사 리스트’ 중 검찰에 있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유일한 이가 황 후보라고 비난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정당들의 비례 후보들에 불공정의 아이콘 조국 수호를 자처했던 친문 인사들이 전면에 배치됐다”며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소설가 이외수 뇌출혈로 수술…중환자실서 회복 중

    소설가 이외수 뇌출혈로 수술…중환자실서 회복 중

    소설가 이외수(74)씨가 뇌출혈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수씨는 지난 22일 오후 6시쯤 강원 화천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일 문화운동단체 ‘존버교’ 창단 선포식을 열고, 다음 날 이를 소셜미디어에 알리는 등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앞서 이외수씨는 2014년 위암 2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우리들의 선한 영웅들/최여경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우리들의 선한 영웅들/최여경 문화부장

    “만약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면 이렇게까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제 우리에겐 ‘선한 영웅’이 필요하거든.” 각계 작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드라마작가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가수 양준일의 ‘선한 영향력’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얘기를 하던 참이었다. ‘탑골지디’로 관심을 끌던 양준일이 연예계 활동을 접은 지 18년 만에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의 성품에 매료됐다. 당시 방송가의 무리한 요구나 부당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삶을 묵묵히 일군 소탈함과, 말마다 묻어나는 순수함에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았다. 아카데미시상식 4관왕으로 대미를 장식한 봉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한참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불쑥 튀어나온 시인의 이름은, 우리가 한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 준 척도가 되기에 충분했다.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시인을 향한 수상 기대감은 티끌 정도 될는가. 설령 받더라도 예전만큼 열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분명 문단 권력이자 ‘문학 영웅’이었을지 모르지만 차마 ‘선한 영웅’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탓인지 영웅 하면 ‘슈퍼 히어로’들이 떠오른다. 2008년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가 영화로 나온 뒤 매년 슈퍼 히어로들이 찾아왔다. 아이언맨, 헐크,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 수많은 영웅 캐릭터를 만들어 낸 스탠 리는 슈퍼 히어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어떤 힘보다 더 뛰어난 힘이 필요하며 그 힘을 사용해 선행을 완수해야 한다.” 소설가 손지상은 월간지 ‘기획회의’에서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에 대해’라는 글을 쓰면서 한국과 미국, 일본의 영웅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영웅은 고결한 혈통을 가졌다가 강인한 육체와 과학지식을 갖춘 초인 영웅으로 진화해 갔다. 전자가 타잔(귀족)이나 코난(아틀란티스 왕족) 등이라면, 후자는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이다. 일본의 영웅은 요술을 부리면서 요괴들과 싸우는 닌자이거나 거대한 괴수와 맞붙는 ‘후레시맨’ 같은 특수촬영물 캐릭터로 나타났다. 한국에선 사회적 상황에서 서민들에게 쾌감을 주는 인물로 영웅이 등장했다. 16세기 조선 지배층의 착취에 대항하고 가난한 자들을 구휼한 홍길동이나, 일제강점기에 민족을 구하는 각시탈(허영만 만화)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반공 의식을 심으려 열 올리던 1980년대, ‘북한 수괴’를 때려잡은 똘이장군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영웅이었다. 영웅은 항상 난세에 나타나 세상을 구하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희망을 준다. 요즘은, 그런 영웅이 꼭 ‘특수한 힘’을 갖거나 ‘평범한 사람은 할 수 없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농사를 지으면서 한 푼 두 푼 모은 100만원을 코로나19 성금으로 쾌척한 시민이나, 감염병에 고생하는 대구시민을 위해 봄배추 800㎏을 보낸 전남 진도 주민들이 영웅 아닌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뜬눈으로 밤새우는 정부부터, 현장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졸업·임관과 동시에 대구로 달려간 간호장교들, 수억원을 선뜻 기부한 연예인들까지 영웅으로 불려도 좋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영웅’은 우리 이웃에 살고 있다. 살가운 접촉이 두렵고 인간관계가 고립되는 이런 때에, 평범하지만 선한 영웅들의 소식이 속속 들려와 행복하다. cy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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