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소설가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산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강주리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조사권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방산업체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959
  • [문화마당] 서명본전을 기다리며/손택수 시인·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문화마당] 서명본전을 기다리며/손택수 시인·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한 해 동안 쌓인 책이 채석강 퇴적층이 되었다. 서가를 넘쳐난 책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뻗쳐올라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의식 중의 하나가 이 퇴적층을 깎아 내는 일이다. 나는 변산반도를 휘감는 파도처럼 켜켜이 쌓인 층층을 남독하는 것으로 새해맞이 여행을 대신한다. 가장 많이 정체된 잡지류가 제일 먼저 뚫리고, 다음으로 출판사 증정본들이 관심사의 유무에 따라 분류된다. 마지막은 곤혹스러운 선택의 시간이다. 저자의 친필 서명본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남기고 버릴 것인가. 출산의 기쁨을 지인들과 먼저 나누고자 정갈한 마음으로 돌에 새기듯이 집중을 했을 작가들을 생각하면 저마다의 고유한 필체가 뿜어내는 숨결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담백한 서체부터 짧은 인사말을 겸하거나 낙관을 곁들이고 그림을 더해 저마다의 개성을 뿜어낸다. 이해인 수녀님의 서명본은 문방구의 반짝이 스티커들과 사인펜 꽃그림까지 어우러져서 그대로 하나의 장르라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자료적 가치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한다. 쉽지 않다. 여기에 작가들과의 친분 관계가 더해지면 장서인을 남길 책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마저 쉽지 않다. 과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그렇지 않아도 좁은 집안이 온통 책무덤이 되고 말 것이다. 문단 말석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품을 수 있는 평수의 한계가 분명해서 삼엄하고 강파른 칼날을 휘둘러야만 했다. 이사가 잦던 시절 내게 미니멀리즘은 유행하는 소비 패턴이 아니라 숨 쉴 틈을 마련하고자 하는 애면글면의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버린 책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한번은 헌책방에서 자신의 친필 서명본을 발견한 후배 소설가로부터 항의를 받고 적잖이 난감했던 일도 있다. 창작촌과 카페를 작업실로 하여 유랑하던 시절이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작품집을 내기 위해 겪었을 인고의 시간을 모르지 않았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날 밥과 술을 사며 겨우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그 뒤로 내 이름이 있는 서명본과 독하게 이별을 결심했을 때는 꾀를 내서 서명이 있는 내지를 잘라내거나 서명 부분만을 가위로 오려 내어서 파기하는 버릇을 들였다. 짓궂은 독자들이 헌책방에서 구한 서명본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봉변을 당하는 일도 간혹 일어난다고 하니 책에 상처를 내는 곤혹 따위는 어서 떨쳐 버려야 했다. 그러나 이 잔꾀가 어쩐지 떳떳치 못하고 찜찜했다. 명색이 간서치를 꿈꾸면서 책에 상처까지 내며 지켜야 할 명예란 게 무엇인가. 몇 해 전부터는 아예 내지에 따로 포스트잇처럼 별지를 붙여서 책을 손상하지 않고 떼어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한 책들이 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다. 헌책방과 고서점에서 친필 서명본은 환영을 받는다. 일본의 수집가들에겐 곱절로 유통된다고 한다. 인사동의 근대서지 전문가들도 그 가치를 인정한다. 저자의 친필 서명본일수록 폐지가 될 운명을 벗어나 새 주인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시절 인연이 다하여 떠나보낸 책들이 또 다른 공유의 장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야속한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올해는 비난을 감수하고 책에 상처를 내지 않았다. 눈 밝은 누군가 수집한 서명본전을 기획해 볼 법도 하다.
  • 새해의 시작, 다정한 음성으로 ‘너의 이름’ 불러준다

    새해의 시작, 다정한 음성으로 ‘너의 이름’ 불러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의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 ‘꽃’ 전문다정한 마음을 담아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살아가는 일이 폭폭해서, 과거의 어떤 시간들 때문에 ‘다정’은 이따금 ‘다 정리된’ 어떤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되살려 누군가의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일, 그보다 더 애틋한 마음을 얹어 ‘너의 이름’을 부른다면 아마 그것은 많은 것을 정리한 세밑을 막 지나온 새해의 시작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야말로 그 ‘다정’한 것에 가장 어울리는 시가 아닐까. 여러 겹의 다정 앞에서 기꺼이 너의 이름을 부르는 새해라니. 그것은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랑의 말이다. 우리에게 이런 의미의 시를 주고 간 사람, 꼭 그 시간과 그 자리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야만 했던 사람, 바로 시인 김춘수다.김춘수는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현 동호동)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만석꾼 집안의 장남으로서 매우 풍족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가서 니혼대학 예술학부에서 수학했다. 1943년에 일왕과 조선총독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 귀국한 1946년부터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와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하였다. 시인은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에 시 ‘애가’를 발표하고, 1948년에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출간했다. 그 이후에 ‘모나리자에게’, ‘꽃’, ‘꽃을 위한 서시’ 등의 시들을 매우 활발하게 발표하였다.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 ‘남편’, ‘비에 젖은 달’ 등을 비롯한 40여권의 시집과 7권의 평론집이 있다. 그의 시 초창기에는 실존주의적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1950년대 전후에 많은 시인들이 참혹한 시대의 현실을 직시한 시들을 발표했던 것과는 다르게 존재에 대한 인식론 등을 중심으로 시를 썼다. 자신의 시가 관념에 사로잡혀 점점 난해해져 가는 것을 지양하고자 사물에서 존재 관념을 제거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무의미 시’를 썼고, ‘언어 해체의 시’로까지 변화 발전시킨다. “김춘수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는 평자는 먼저 그의 엄청난 필력에 압도당하고 또 아무리 짧은 촌평이라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하게 된다”는 고려대 이창민 교수의 말처럼 그의 시 세계는 섣부른 해석을 한사코 경계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는 영남대 국문과에 적을 두었다. 1981년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때 신군부에 대한 시를 써서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 그 시절에 썼던 신군부 찬양시는 훗날 시인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히기도 하였는데 그때 그의 행적에 관해서는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상으로는 1959년에 아시아자유문학상을 비롯하여 경남문학상, 예술원상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문학상과 문화훈장을 받았다.김춘수는 부인과 사별한 후에 경기도 분당의 어느 아파트에 홀로 기거했다. 딸의 집과 지척인 곳에서 생활을 했다. 어느 날 무척 좋아하던 갈치찌개를 먹던 중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다. 기도폐쇄증으로 중환자실에서 투병을 하던 중에 영면했다. 그가 시의 스승이자 롤모델로 삼았던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는데, 시인 역시도 생선 가시에 찔려 죽게 된 것이다. 시로써 시대를 호령하고 또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어 우리나라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시인의 말로치고는 조금은 서글픈 이야기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탑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딜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시 ‘꽃을 위한 서시’ 전문 1945년 김춘수는 충무(통영의 옛 지명)에서 유치환, 윤이상, 심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예술운동을 전개하였다. 충무 아니 이제는 통영은 어떤 곳인가. 이백여명에 가까운 삼도수군통제사들이 모여든 곳, 그리하여 삼도(충청, 전라, 경상)의 문화가 뒤섞이고, 그 수많은 사람과 삼도의 배들이 지나던 길목을 관장하던 장소가 아닌가. 삼도수군통제사가 있던 세병관은 아직도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지리적으로는 한려수도의 중심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일어난 문화융성운동이야말로 통영 문화의 꽃이 아니었을까. 음악, 시, 미술 등으로 통영만의 ‘꽃’을 피워 낸 사람들의 중심에 시인 김춘수가 있었다.김춘수에게 통영이란 단순히 고향을 넘어서는 삶과 시의 총체였던 것이다. 2008년에 개관된 김춘수 유품 전시관은 시인의 육필원고와 사진, 생전에 사용하던 가구 및 옷과 구두, 문구류와 서인 등을 보관하고 있다. 김춘수 문학관이 세워지기 전에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유품들을 전시해 둔 장소이다. 특이하게도 시인이 생전에 기거하던 거실과 침실을 고스란히 옮겨 두었다. ‘토영 이야~길’ 제1구간 2번으로,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발걸음을 할 수 있는 곳에 만들어졌다. 토영은 통영 사람들이 통영을 편하게 발음하는 말이다. 전시관의 벽면에는 시인의 대표시인 ‘꽃’의 구절이 크게 쓰여 있다. 강구안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 멋진 곳에서 시인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사랑을 잃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매우 다정한 음성으로 ‘너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2022년은 호랑이의 해다. 꽃과 호랑이는 설핏 들으면 어쩐지 어울리지 않게도 느껴지지만 그 어떤 호랑이에게도 ‘꽃의 시절’은 분명히 있을 것이며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절에는 ‘꽃’처럼 살아가게 되는 때가 있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르지만 어느 인생에서건 그 시절은 꼭 있고, 기필코 있어야만 한다.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상대가 있을 때에 비로소 내가 나다워지는 그 시간 말이다. 새해 첫 신문에는 새해 인사와 더불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면면과 작품이 실린다. 서울신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춘문예의 역사를 가진 신문이다. 필자 역시도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이다. 신춘문예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매우 독특한 작가의 등용문이지만 그 역사와 그것을 통해서 작가가 된 이들의 면면은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올해도 역시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환한 웃음과 빛나는 작품들로 이 지면은 시작될 것이다.야행성 동물인 호랑이의 안광처럼 빛나는 모니터 앞에서 오랫동안 망설였을 시간에 경의를 표한다. 새봄의 소식을 전해 듣고 막 작가가 된 사람들에게 보내는 큰 박수. 그 몸짓의 의미는 축하 그 이상의 것일 터. 잠자던 호랑이마저도 깨울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호랑이의 기운이 샘솟기를 바란다는 말로 새해의 복을 기원드린다. 우리에게 다정이란 너 혹은 나의 ‘이름’ 그 자체니까. 존재만으로도 이 세상이 고마워지는 순간이 있다. 부르는 순간 바로 뒤를 돌아볼 당신의 ‘이름’이 그러하다. 소설가 이은선
  • 검은 호랑이를 입다, 긴 어둠의 터널 속 단단한 외투가 되어 줄…

    검은 호랑이를 입다, 긴 어둠의 터널 속 단단한 외투가 되어 줄…

    육십갑자를 육십 벌의 옷으로 생각하면 좀 재미있어진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오래된 옷장을 열고 그 안에서 올해의 옷을 꺼내 입는 것이다. 2021년에 우리는 ‘흰 소’라는 옷을 입었고, 2020년에는 ‘흰 쥐’를 입었다. 2022년의 옷은 ‘검은 호랑이’다. 모두가 지난해를 벗고 새해를 입는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설빔이니, 새 옷을 입지 않을 방법이 없다. 검은 호랑이를 본 적이 없기에 상상하는 것도 낯설지만, 예상 가능한 건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누구라도 검은 호랑이와 친해질 기회를 얻을 거란 점이다. 검은 호랑이의 해래요, 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아주 잠깐 ‘검은 호랑이’라는 이미지를 입게 되니까. 누군가는 검은 호랑이에게서 용맹함을 보고, 누군가는 최상위 포식자의 여유를 보고, 누군가는 친근한 캐릭터처럼 느낀다. 나는 ‘터널’을 떠올리고 있다. 검은 호랑이, 라는 단어를 입력하자마자 바로 그의 뱃속이 궁금해지는 건 아마도 그 뱃속을 무대로 삼은 전래동화 때문일 것이다. 내게 호랑이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인 셈인데, 최근에 본 드라마 ‘로스트 인 스페이스’의 어느 에피소드가 그런 인상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부부를 태운 차가 타르 구덩이에 빠진다. 자동차는 순식간에 아래로 가라앉고, 부부는 밀폐된 차 내부가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는 걸 느끼며 죽음을 예감한다. 탈출을 위한 헬멧은 하나뿐. 남편은 그것을 아내에게 씌워 준다. 한 사람이 헬멧을 쓰고 탈출을 시도하면, 열린 틈으로 타르가 쏟아져 들어올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안에 묻힐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제발 살아 달라고 부탁한다. “사랑해!”라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고백을 하면서. 잠시 후 선루프를 열면 “절대 돌아보지 말고” 위로 헤엄쳐 올라가기를 당부하면서. 이별 직전, 그들을 구원한 건 차 안에 있던 우주풍선이었다. 그것이 삶으로 이어지는 터널 역할을 한다. 그들은 헬륨가스를 가득 들이마시고 우주풍선 속을 기어 올라가 마침내 땅에 닿는다. 헬륨가스의 압력으로 타르를 밀어올린 것이다. 검은 늪을 통과한 후 땅에 닿자마자 아내가 말한다. “나도 사랑해!” 내가 진짜 좋아하는 부분이 이제 나온다. “나도 사랑해!”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헬륨가스 덕에 아주 익살스럽게 변해 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 헬륨가스표 폭소를 터뜨리는데 그게 마치 생의 축포 소리처럼 들렸다. 긴장이 풀린 몸으로 뒹굴며 생을 감각하는 지점을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우리는 지금 우주풍선 안을 통과 중인 걸까, 땅에는 언제쯤 닿게 될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읊조리면서 어느새 2021년의 끝, 2022년의 처음에 닿았다. 이제, 검은 호랑이를 입게 될 것이다. 불확실한 것투성이지만 드라마 속 우주풍선처럼, 2022년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놓인 터널일 거라고, 우리를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리는 시간일 거라고 믿어 본다. 호랑이가 어둠 속에서 사람보다 여섯 배 더 잘 본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고 싶다. 하물며 그냥 호랑이도 아니고 검은 호랑이라니, 어쩐지 야간 시력이 더 좋지 않을까? 우리에겐 어두울 때 더 멀리 보는 힘이 필요하니까.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을 한동안 쓰다가 바로 이전 폰을 부활시켰다. 서랍 속에서 2년 가까이 방전되어 있던, 2019년의 세계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 안의 풍경이 낯설었다. 마스크가 필요하지 않고, 사람들이 복닥복닥 모여 있는 식당, 활기찬 동선…. 처음엔 팬데믹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이 다 거기 있다고 생각했다. 팬데믹 이후에 사용한 스마트폰에서 사라진 것 중 하나가 항공권 검색 앱이었으니까.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적어지니 활짝 웃는 인물 사진도 줄어들었다. 배달 앱과 COOV 앱, 마스크와 위축된 궤적, 임시선별검사소의 위치 같은 것이 내 세계로 들어왔다. 옛 폰을 다시 사용한 지 일주일 만에 그 안에도 코로나 풍경이 담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암울하게만 느껴지지만 반짝이는 게 모두 사라진 건 아니고, 심지어 새로운 발견들도 있다. 지난 2년간 나는 해가 지고 밤이 내려앉는 풍경을 매일 생포하기 위해 애썼다. 수십 장의 하늘 사진을 사랑의 부스러기처럼 흘리면서. 이전에도 있었으나 이제야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된 것, 이제야 보게 된 사각지대가 지금도 우리를 위로, 위로, 밀어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언젠가 터널 끝에 닿을 것이다. 그때까지 검은 호랑이는 최대한 단단한 외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 겨울에 읽는 추리·미스터리, 오싹함 두 배

    겨울에 읽는 추리·미스터리, 오싹함 두 배

    연말연시를 앞두고 해외 유명작가의 다양한 추리·미스터리 소설이 잇달아 출간됐다. 추리·미스터리 소설이 잘 팔리는 시기는 무더운 여름으로 알려졌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독서 수요가 많아지고 인간 심리를 정교하게 묘사한 미스터리물이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계절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우선 SF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아작은 최근 ‘영국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린 PD 제임스(1920~2014)의 마지막 단편집 ‘겨우살이 살인사건’을 펴냈다. 이 책은 제임스가 생전에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쓴 미출간 단편소설 네 편을 2016년에 모은 것이다. 동명의 표제작(1991)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나’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평소 소원했던 할머니로부터 초대를 받아 사촌 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음날 서재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국 ‘리치먼드 타임스 디스패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책”이라고 평가했다.청심소는 독일 추리작가협회 ‘글라우저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소설가 유디트 타슐러의 ‘국어교사’(2013)를 펴냈다. 14년 동안 사랑했던 두 남녀가 헤어진 지 16년 만에 소설가와 국어(독일어) 교사로 재회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로 아동 유괴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파헤쳤다. 글라우저상 심사위원회는 “사랑과 배신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커다란 주제를 한 편의 실내악처럼 장인적 언어로 엮어 냈다”고 호평했다.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받은 온다 리쿠 작가의 장편소설 ‘유지니아’(비채)도 첫 출간 이후 14년 만에 전면 개정판으로 만나게 됐다. 한 일가의 잔칫날에 독극물을 탄 음료수를 마신 17명이 사망하고, 한 청년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자살하게 된다. 하지만 진범이 따로 있다는 의혹이 남아 20년 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비채 관계자는 “온다 리쿠는 3040세대에 유명한 소설가지만, 현 20대 독자들에겐 비교적 덜 알려졌다”며 “14년 만에 달라진 독자들의 어휘 감각의 변화를 고려해 교정을 봤다”고 설명했다.앞서 한스미디어는 ‘스릴러의 마술사’로 불리는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찰리 돈리의 ‘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를 선보였다. 작가의 대표작 ‘수어사이드 하우스’에 이어 자폐증을 앓는 범죄 사건 재구성 전문가 로리 무어가 주인공이다. 무어는 40년간 복역했던 연쇄 살인범의 가석방 절차를 돕게 되면서 아버지가 그의 변호를 맡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16일까지 소설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6% 늘었는데, 이 가운데 미스터리 스릴러 부문은 20.4%나 신장할 정도로 수요가 늘고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넷플릭스 등 스릴러를 다룬 영상 매체가 넘쳐 나고 장르 소설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추리 소설 출간도 계절을 타지 않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스타 탄생’ 시나리오 쓴 조앤 디디온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스타 탄생’ 시나리오 쓴 조앤 디디온

    뉴저널리즘의 기수이자 미국의 유명 작가 조앤 디디온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하지만 바브라 스트라이잰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주연한 1976년 영화 ‘스타 탄생(A Star Is Born)’의 시나리오를 남편과 함께 쓴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22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시 맨해튼의 자택에서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미국 언론들과 영국 BBC가 다음날 보도했다. 크노프 출판사는 성명을 통해 디디온이 파킨슨씨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출판사는 “디디온은 미국에서 가장 예리한 작가이자 빈틈없는 관찰자 중 한 명”이라며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소설과 회고록 등은 수많은 상을 받았고 현대의 고전으로 인정받는다”고 고인을 기렸다. 디디온은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뉴저널리즘 운동의 개척자 중 한 명이다. 톰 울프, 트루먼 카포테, 게이 탈레세 등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녀가 유일하게 여성으로 함께 했다. 뉴저널리즘이란 전통적 보도 기법에 문학적 묘사와 일인칭 시점을 결합해 소설처럼 읽히는 새로운 형식의 저널리즘을 가리킨다. 작가로서는 1960년대 미국의 사회적 격동과 5대째 태어난 고향인 캘리포니아의 문화 지형을 잘 그려낸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란 평가를 받는다. 1968년 에세이 모음집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Slouching Towards Bethlehem)’와 1979년작 ‘화이트 앨범’, 남편과 사별한 아픔을 그린 2005년작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 등이 유명하다. 인터넷을 뒤지면 국내 독자들이 ‘상실’ 번역본을 구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명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2007년 브로드웨이 제작자로 변신해 첫 작품으로 선택한 것도 이 작품이었다. 1934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난 고인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이주, ‘보그’ 잡지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1963년 첫 소설 ‘런, 리버’로 등단한 그녀는 이듬해 소설가 겸 시나리오 작가인 존 그레고리 던과 결혼했다.두 사람은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1971년작 ‘백색공포’, 1976년작 ‘스타 탄생’, 1996년작 ‘업 클로즈 앤 퍼스널’ 등 여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했다. 어릴 적부터 왜소하고 병약했던 고인은 30대부터 다발성경화증과 신경쇠약으로 고통받았다고 NBC뉴스는 전했다. 디디온은 2003년 남편이 심장마비로 숨진 뒤 느꼈던 고통을 그려낸 ‘상실’로 2005년 미국도서상 논픽션 부문 상을 받았다. 그런데 같은 해 멕시코의 한 병원에서 태어나자마자 입양해 정성껏 키운 딸 퀸타나 루가 39세 젊은 나이에 췌장염으로 세상을 뜨자 고통은 배가 됐다. 고인은 2011년 회고록 ‘푸른 밤(Blue Night)’에 연거푸 닥친 상실감을 다시 묘사해야 했다. 생전의 고인은 “우리는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고 쓴 적이 있다. 다섯 살 때부터 평생 일기를 써왔으며 “태어날 때부터 어떤 상실의 예감에 감염된 아이였다”고 돌아봤다. 그녀는 어쩌면 다른 누군가보다 훨씬 기민하고 예리하며 통찰력있게 글 쓰는 작업에 대해 발언해왔다. 차갑고 간결하며 남다른 목소리 때문에 젊은 유망 작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도서 평론가로 이름난 존 레너드는 “누구도 조앤 디디온보다 영어 산문(散文, prose)을 잘 쓰지 못한다”면서 그녀의 산문은 “얼음송곳에 레이저 빔” 같다고 표현한 적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맹렬하게 옹호하곤 했는데 말년에 접어들어선 출간 준비가 끝날 때까지 절친들에게도 미리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2013년 내셔널 메달 오브 컬처를 받았는데 오바마는 “그녀 또래 미국 작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며 “미국 정치와 문화에 대해 가장 예리하고 존중받는 관찰자”란 찬사를 들려줬다. 고인은 올해 출간한 에세이집 ‘내 말뜻을 들려줄게(Let Me Tell You What I Mean)’ 가운데 “난 세상으로 난 창문이 아니라 세상 자체이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는 문인들이 좀처럼 나서지 않는 상업광고에 얼굴을 내밀 정도로 용감했다. 1989년 청바지 브랜드 갭, 2015년 명품 브랜드 셀린 모델로 나섰다. 소설 중에는 할리우드 영화제작 풍토를 탐구한 1970년작 ‘Play It as It Lays’가 있다. 동료 작가인 마틴 애미스는 한때 그녀를 “위대한 캘리포니아인의 공허함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묘사한 일이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조앤 디디온의 초상(The Center will not hold)’을 보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 설강화 이어 후속작도 논란? “원작 ‘공산당’ 옹호+원작자는 홍콩 민주화 세력 비판”

    설강화 이어 후속작도 논란? “원작 ‘공산당’ 옹호+원작자는 홍콩 민주화 세력 비판”

    JTBC 드라마 ‘설강화’가 민주화 운동 폄훼 등을 이유로 비판 받고 있는 가운데, 후속작으로 알려진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도 공산당 미화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미 8회까지 촬영을 마친 이 드라마는 세부적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원작 소설이 친 중국 공산당 성향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게 주요 비판점이다. 제작진은 원작의 80% 이상이 한국 상황에 맞게 각색된다고 밝혔다. JTBC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의 원작 소설은 중국의 추리소설가 쯔진천의 ‘동트기 힘든 긴 밤(장야난명)’이다. 지하철역 시체 유기 사건의 이면을 추적하다 권력의 압박에 저항해 부패 사건을 밝혀 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홍보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비판에 휩싸인 바 있다. 시진핑 정부의 정적 숙청 과정인 부패척결운동을 정당화하고 시진핑 주석의 정적의 낙마를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의혹이다. 원작자 쯔진천이 홍콩 민주화 세력을 조롱하고 폄훼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쯔진천은 지난 2019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나웨이보를 통해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은 맨날 고생할 시간이 있는 걸 보니 제대로 된 일도 없을 것”이라며 “게으르고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혁명가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이 드라마는 당초 총 16부작으로 하반기 편성 예정이었다. 평화로운 도심 한복판에 총성이 울리고 테러 용의자가 붙잡혀 이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는 이야기로, 한석규, 정유미, 김준한, 류혜영, 이희준 등이 출연한다.  하지만 현재 8부를 끝으로 촬영을 중단한 상태다. 제작진은 “완성도를 위해 재정비 중”이라며 “촬영을 언제 재개할 지는 미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JTBC는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설강화’에 대해 지난 21일 “드라마 내용상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은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요지의 반론 입장문을 내고 ‘설강화’ 방송 강행 의지를 밝힌 바 있다.
  • [열린세상] 아름다운 타협/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

    [열린세상] 아름다운 타협/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다. 재기를 꿈꾸는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의 리부팅 오디션이었다. 소위 ‘재야의 고수’인 40대 여성 재즈뮤지션이 나와 “재작년에 300번의 공연을 했는데 작년부터 공연을 할 수 없게 돼 생계가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월세를 낼 수 없지만 뮤지션으로 살기로 선택한 길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출연 동기를 밝혔다. “무명이 힘든 이유는 음악을 못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못 하게 될까 봐”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음악을 계속하려면 무명이 아니라 유명해져야 하니까”라는 말에선 더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된 음악조차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간절함을 느낄 수 있어 그의 타협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 만난 주인공 스물일곱의 무용수 프란시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뉴욕의 무용단 견습생인 그는 정식 단원이 꿈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부유한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 속에 심지어 크리스마스 공연에 설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월세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 낙담한다. 무용수를 그만두고 서무일을 보며 안무를 짜 보는 것이 어떠냐는 무용단장의 제안에 고민을 하게 된다. 결국 현실과 타협해 무용단에서 서무일을 하며 안무를 짠다. 영화는 친구들이 보는 무대에서 자신이 짠 안무로 홀로 서기에 성공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 주며 끝난다. 그녀의 타협은 꿈의 좌절이 아닌 꿈의 현실로의 진전이기에 결단코 아름답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춤 연기뿐만 아니라 격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유행과 열풍을 지나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듯하다. 사실 그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았다. 서바이벌 방식의 경쟁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시청률에 매여 예술의 순수성과 도전의 진정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내 편견과 아집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정한 가치와 정의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 내 사전에 타협은 없다며 살아온 듯하다. 늘 맞고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기합리화 속에 독선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나 반성한다. 건강한 사회에선 하나의 물음에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타협은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역지사지의 자세로 조금씩 양보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 가치까지 희생을 강요하는 무리한 요구에는 타협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다. 야합과 같이 소위 적당히 타협한다는 것은 비열한 기회주의다. 무엇보다 자신과는 쉽게 타협해서는 안 된다. 자기합리화와는 다르다. 스스로 빠져나갈 곳을 만들어 놓고 포기를 정당화하거나 잘못을 저질러 놓고 “어쩔 수 없었어. 내 잘못이 아니야”라며 자기를 합리화하는 것을 타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진정한 타협은 삶의 성숙이자 사회의 평화다. 2015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이스라엘의 유명한 소설가 아모스 오즈는 생전에 이스라엘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팔레스타인 독립을 공개적으로 찬성하고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저서 ‘광신자 치유’에서 광신주의란 나 자신만이 옳고 머릿속으로 오직 하나만을 생각하는 타협을 모르는 태도로 세상 모든 분쟁의 근원이 광신주의에 있다고 지적한다. 광신주의에서 탈출하기 위해 ‘상상하라. 서로를’이라며 타협을 강조한 그가 그저 비현실적인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냉철한 갈등 해결사로 보인다. 일단 종전선언부터 하자고 한다. 그래야 평화협정도 체결할 수 있고,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종전선언부터 관련 이해 국가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부터 생각들이 제각각이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종전선언에 무관심하고 한반도 평화에 무성의한 모습이다. 재즈 가수와 프란시스는 타협은 했지만 예술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지금 위정자들에게도 한반도 평화가 저토록 간절한 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한반도 평화를 현실화할 아름다운 타협을 꿈꾸고 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미 여성운동 ‘대모’ 벨 훅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미 여성운동 ‘대모’ 벨 훅스

    미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활동가 벨 훅스가 69세를 일기로 1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AP 통신과 일간 워싱턴 포스트(WP),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유족 측은 이날 성명을 통해 켄터키주 베리아시 자택에 머물던 훅스가 가족과 친지 품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사인이 공식 확인되지 않았으나 자매인 그웬다 모틀리는 WP에 훅스가 신부전 말기였다고 밝혔다. 측근인 린다 스트롱-리크 박사도 고인이 장기간 투병 중이었다고 설명했다.E 1952년에 태어난 그의 본명은 글로리아 진 왓킨스로 벨 훅스는 외증조 할머니 이름을 딴 필명이다. 훅스는 언제나 필명을 소문자로 기재했다. 독자가 자신이 누구인지보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했으면 하는 뜻에서였다. 시인이자 사회평론가이면서 학자로서 평생 마흔 권이 넘는 책을 낸 훅스는 미국 흑인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적 착취·억압을 끝내기 위한 운동’으로 규정한 혹스의 정의는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이라고 AP는 전했다. 그러나 사실 훅스가 성차별을 종식하는 과격한 정치운동으로만 페미니즘을 좁게 해석한 것은 아니다. 인종주의, 자본주의, 성역할, 정치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내온 혹스는 페미니즘이 인종·계급·젠더를 초월해 모두의 삶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훅스는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경제적 불평등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페미니즘의 영역을 사회 여러 분야로 넓혔다. 1981년 첫 저서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를 통해 페미니즘에서 흑인 여성이 간과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1985년 출간한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에서는 초기 페미니즘 운동이 부르주아 계급 출신 백인 여성만을 주축으로 했다고 비판하며, 소외된 이들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2년 출간한 ‘행복한 페미니즘’이 2017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번역된 것을 포함해 10여권의 저서가 국내에도 번역돼 있다. 훅스는 1973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했으며, 1976년에는 위스콘신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1983년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예일 대학과 오벌린 대학, 뉴욕시립대 영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훅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여성계, 학계와 출판계 등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베스트셀러 ‘나쁜 페미니스트’의 작가 록산 게이는 트위터를 통해 “마음이 아픈 소식이다. 훅스의 명복을 빈다. 그의 빈 자리가 얼마나 클지 가늠도 안 된다”고 애도했다. 영국 소설가 볼루 바발롤라도 트위터를 통해 “벨 훅스는 직접적으로 흑인 여성을 다룬 글을 써줬다”면서 “혹스는 우리를 향한 사랑을 저작을 통해 제대로 보여줬다”고 밝혔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뱀파이어와 고딕 장르의 부활 이끈 앤 라이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뱀파이어와 고딕 장르의 부활 이끈 앤 라이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원작 소설을 쓴 미국 작가 앤 라이스가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딕 문학 장르의 유명 소설가 라이스가 뇌졸중 합병증으로 12일(현지시간) 밤 가족들이 임종한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영국 BBC와 AP 통신이 보도했다. 라이스는 미국 대중문화를 읽는 코드 중 하나인 뱀파이어 장르물의 부활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흡혈귀 등을 주인공으로 한 30여권의 고딕 소설을 썼고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1억 5000만부 이상 팔렸다. AP 통신은 “라이스가 피를 마시는 불멸의 존재를 안티 히어로로 재탄생시켰다”고 평가했다. 라이스는 베스트셀러 ‘뱀파이어 연대기’ 시리즈 13권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1976년 출간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첫 작품이다. 이 소설은 18세기 프랑스 귀족 출신의 뱀파이어 레스타트와 그의 피를 마시고 영생불멸의 존재가 됐으나 인간적 고뇌로 가득 찬 뱀파이어 루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94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안토니오 반데라스, 키어스틴 던스트가 주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 ‘퀸 오브 뱀파이어(Queen of the Damned)’도 2002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미국 TV 드라마 ‘뱀파이어 다이어리’,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 뱀파이어 장르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AP 통신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동성애 코드를 담고 있다는 해석과 함께 “일부 비평가는 싸구려 에로티시즘이라고 평가했으나 수백만 독자와 다른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이후 뱀파이어에 대해 가장 중대한 해석을 담았다고 봤다”고 전했다. 라이스는 과거 회고록에서 자신의 소설이 “다양한 이유로 삶이 단절된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며 “따돌림을 받는 자들의 고통과 인간이 삶 자체로부터 배제되는 방식 등이 내 소설의 큰 주제”라고 밝혔다. 그녀는 뱀파이어 류 외에 앤 램플링이나 안 로켈라우레 같은 필명으로 ‘에덴으로 가는 비상구(Exit to Eden)’와 같은 에로틱 소설도 썼다. 이 작품 역시 게리 마샬 감독이 1994년 영화로 만들었다. 고인의 아들이자 작가인 크리스토퍼 라이스는 페이스북을 통해 부고를 전하면서 “어머니는 날 뒷받침하는 데 무조건적이었다. 그녀는 내 꿈을 보듬고 편안함을 거부하며 공포와 자신을 의심하는 어두운 목소리에 맞서라고 가르쳤다. 작가로서 어머니는 장르적 경계를 무시하라고 가르쳤고 강박적인 열정에 몸을 내맡기는 법을 내게 가르쳤다”고 돌아봤다.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잘 알지도 못하면서/소설가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잘 알지도 못하면서/소설가

    얼마 전 중국동포 여성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첫 경험이었으므로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반 섞인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나갔다. 만나 보니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이었다. 말씨도 외모도 평범했다. 그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지 이십여 년이 지났다고 했다. 호기심이나 두려움 따위를 품은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두세 시간쯤 그녀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헤어질 즈음 우리는 노후에 대한 걱정을 서로 나누었다. 살아온 시공간이 다르고 경험도 달랐으나, 이제 그녀와 나는 막막한 미래를 향한 근심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엇비슷한 사회경제적 계층에 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에는 그렇게 느꼈다. 조선족이라고 불리던 중국동포가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나는 그들을 그저 거리에서 한약재를 파는 노점상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특이한 말씨의 사람들로만 인식하고 지나쳤다. 그들이 애초에 왜 중국으로 이주해 살게 됐으며, 어떻게 다시 한국으로 ‘이주’하는 신세가 된 것인지 그 사연을 알지 못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후로 40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중국동포와 처음으로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조선인들이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주로 일제강점기 때였다. 일제는 1910년 즈음부터 조선인에게 만주로 농업 이민을 가도록 권장했다. 남아도는 농촌의 인구를 해소한다는 명분이었으나 만주 침략을 위해 터를 닦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1931년 만주 침략 이후에는 식민 회사들을 통한 조선 농민들의 강제 이주가 본격화했다. 집단 부락으로 강제 이주한 농민들은 어렵게 개간한 농지에서 거둔 농산물을 일본군의 군량미로 수탈당했고 일본어를 쓰도록 강요당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바탕이 돼 해방 이후에도 중국에 남은 사람들은 조선어를 사용하면서 조선족 학교를 따로 세우고 살았을 것이다. 일제가 패망한 뒤 어떤 이들은 돌아왔고, 어떤 이들은 귀국하지 못했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겠으나, 분단과 6ㆍ25를 거치면서 중국에 남게 된 이들은 남한과 북한 어느 쪽 국적도 얻지 못했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중국동포가 대거 입국하게 됐고, 한국인이 기피하는 험하고 힘든 직종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미국과 서구 쪽 동포들은 F4 비자로 들어와 취업과 체류에 아무 제재가 없으나, 구소련 지역과 중국 쪽 동포들은 방문취업 비자를 따로 받아 입국해야 한다. 중국동포 여성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기사가 돼 포털에 걸렸다. 내가 쓴 기사를 훑어보다가 무심코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었다. 그리고 마음이 무너졌다. 인터뷰를 끝내고 헤어질 때 그녀와 내가 그럭저럭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게 엄청난 착각임을 깨달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나는 내 잘못 없이 혹은 내 잘못이 있더라도 그토록 차가운 혐오와 멸시의 말들을 그렇게 한꺼번에 들어 본 적이 없다. 물론 살아오면서 만난 모든 이들이 나에게 호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눈앞에서 사나운 말을 내뱉거나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호의적이거나 적어도 무관심했다. 중국에서 태어나 스무 살 무렵까지 그녀는 어떻게 살았을까. 대한민국으로 이주해서 다시 이십여 년을 살면서는 어떤 경험을 했을까. 포털의 댓글에 혐오와 증오를 쏟아내는 이들은 그녀의 삶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주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혐오와 거부를 표현할 때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타인에 대한 혐오가 환대의 태도를 압도하는 공동체는 어떻게 느껴질까. 내가 쓴 기사를 그녀가 읽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 [오늘의 서울 톡]

    동작, 흑석로 창업문화거리 조성 완료 동작구가 중앙대학교 캠퍼스타운 사업의 세부 실행계획인 ‘흑석로 창업문화가로 조성 사업’을 이달 초 모두 완료했다. 도로 정비 구간은 ▲흑석로1ㆍ2구간(중앙대병원 앞 횡단보도~중앙대 정문 앞) 430m ▲흑석로10길(중대부속초등학교 학생들의 통학로) 140m 도로변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흑석로1구간(중앙대병원 앞 횡단보도~중앙대 중문)은 ▲기존의 좁은 보도 확장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차도 미끄럼방지 포장 등을 적용했다. 중랑, 13일 낭독공연 ‘통속소설이 머…’   중랑구 중랑문화재단은 오는 13일 오후 7시 구청 대강당에서 낭독공연 시리즈 ‘망우열전’ 김말봉 편을 진행한다. 공연 제목은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다. 자신을 ‘통속소설작가’라고 말하며 대중에게 사랑받은 소설가 김말봉 선생의 생전 어투를 제목에 담았다. 김말봉 작가는 생전에 ‘망명녀’, ‘고행’ 등을 집필했다. 공연에는 이원종, 황정민, 장혁진, 양말복, 김영선, 이한희, 이진철, 신정은 배우가 출연한다. 백신 2차 접종 확인서 또는 공연 관람 2일 이내에 진행한 PCR검사 음성 확인서를 지참한 200명이 대상이며 전 좌석 무료다.  마포, 신혼·청년 공공임대 입주자 모집 마포구는 신혼부부와 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를 오는 17일까지 모집한다. 해당 주택은 홍대입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성미산로 28길 29)에 있는 지상 5층 규모의 다세대 주택으로, 총 2개 동 20가구가 거주할 수 있다. 이 중 16가구는 신혼부부, 4가구는 청년을 대상으로 입주자를 모집한다. 임대 기간은 2년으로, 재계약 요건을 유지할 경우 신혼부부는 최장 20년까지, 청년은 최장 6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은평, 이달 중순 ‘자투리땅 주차장’ 운영  은평구는 도심에 방치된 유휴지 자투리땅을 주차장으로 조성해 이달 중순 운영에 나선다. 구는 지난 9월 자투리땅 활용 주차장 조성계획을 수립했다. 예산 2200여만원을 투입해 녹번동 소재 206m² 규모 유휴지를 자투리땅 주차장으로 조성했다. 장기간 유휴지로 방치돼 차량이 장기간 방치되거나 쓰레기 무단투기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곳을 찾아냈다. 해당 토지 소유주와는 ‘자투리땅 주차장 설치 및 관리에 관한 협약’을 체결한 뒤 주차장을 조성했다. 운영은 구 시설관리공단에서 인근 주민에게 우선권이 있는 거주자우선주차로 운영한다.
  • 고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 광주 시민분향소 운영

    고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 광주 시민분향소 운영

    지난 5일 별세한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분향소가 광주에 마련된다. 6일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광주 재야 및 시민단체는 이날 오후 5시부터 7일 오후 8시까지 광주 동구 YMCA 무진관에 시민 분향소를 운영한다. 코로나19 상황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식장에서는 조화와 조문을 받지 않는다. 193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송 교수는 1978년 6월 전남대 교수 10명과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는 이 ‘교육지표 사건’으로 해직 후 1년간 복역하면서 소작쟁의를 소재로 한 소설 ‘암태도’를 집필하기도 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땐 시민수습위원회에 참여하고 학생수습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 때문에 ‘내란중요임무종사 위반’ 죄명으로 광주교도소에서 10개월간 복역해야 했다. 1984년 대학에 복직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았고,1996년에는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를 설립해 초대 소장을 맡았다. 그는 교수와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교육 민주화와 노동인권 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 유신체제에 항거한 송기숙 전남대명예교수 별세

    유신체제에 항거한 송기숙 전남대명예교수 별세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86세. 6일 전남대 등에 따르면 송 명예교수가 지난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송 명예교수는 193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학업을 마친 이듬해인 1965년 소설 ‘이상서설’을 내고 작가로 등단했다. 1978년 전남대 문리대 교수 시절 동료교수 10명과 함께 유신 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는 ‘우리의 교육지표’를 공동으로 발표했다. 이른바 ‘교육지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송 교수 등에게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이 적용돼 구속 또는 해직됐다. 시위 참여 학생 30여명도 제적 또는 정학 징계를 받았다. 송 명예교수는 2013년 ‘교육지표’ 사건과 관련해 35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불법 구금된 기간에 대한 형사 보상금(7367만7600원) 중 변호사 수임료를 제외한 6962만5332원 전액을 전남대 대학발전기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2019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후광학술상을 수상한 뒤 상금 1000만원 전액을 후학들을 위해 쾌척했다. 송 교수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학생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내란죄 명목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또 다시 해직됐다. 1984년 대학 강단으로 돌아온 뒤에는 제자 양성과 함께 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송 교수는 공동 저자로 1987년 ‘5·18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을 펴내기도 했다. 같은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의장을 역임했다. 또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의장 등을 거쳐 1996년에는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를 설립해 초대 소장을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인 2004년부터 3년 간은 대통령 직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이후 전남대 명예교수를 지내다 퇴임했다. 송 명예교수는 소설가로서도 왕성히 활동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구체화하는 작품을 통해 실천적 해결에 앞장섰다. 1920년대 반봉건적·반일본적 소작 쟁의를 소재로 한 ‘암태도’,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녹두장군’ 등이 대표작이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송 전 교수는 7일 오후 1시 서울추모공원에 안장된다.
  • 놓친 사랑의 바다, 얽힌 사랑의 사찰… 나타샤 거기 있나요

    놓친 사랑의 바다, 얽힌 사랑의 사찰… 나타샤 거기 있나요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겨울이 잇닿아 오면, 아니 눈이 내릴 때마다 생각나는 시가 있다. ‘눈이 폭폭 쌓이는 밤’에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고 싶다던 사람과 그의 나타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물론 나는 이 시를 언어영역(요즘은 국어 영역!) 지문의 한 구절로 처음 접했다. 월북한 시인의, 해금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작품을 수능 문제로 풀어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랑은 하고 라니. 눈이 푹푹 나리거나 날리거나 사랑은 했다니. 어조사 ‘은’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중략)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깃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중략)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여가며 /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백석의 ‘통영’) 백석이 사랑하는 여인 ‘난’을 만나기 위해 자주 찾았다는 통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하늘보다 더 짙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날이었다. ‘천희’ 혹은 ‘난’을 기다렸다는 충렬사 앞은 절기는 겨울이지만 아직 가을을 품고 있는 노란 은행잎들이 빗줄기처럼 흩뿌려지는 중이었다. 이쯤에서 백석이 앉아 있던 걸까, 저 우물가에 정말로 난이 다녀갔을까 하며 통영 곳곳을 거닐었다. 사랑을 찾아왔지만, 거절당한 사람의 마음이 돼 통영 곳곳을 다녀 보았다. 그런 이가 맞는 비라니. 백석의 표현대로라면 ‘김 냄새 나는 비’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백석은 오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다. 교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탓에 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바로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못했다. 1929년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 선발시험에 붙어 일본의 아오야마학원 전문부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의 아들’이 당선된다. 언어를 배우는 능력이 비상했던 덕분에 1학년 때는 영어를, 2학년 때 프랑스어를, 3학년 때는 러시아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영어사범이 전공이었지만 독일어를 더 좋아해서 정식으로 독일어 수업을 들었다. 이런 까닭에 해방 이후 북에서 수많은 번역서를 남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조선일보에 입사해 교정부에서 일을 한다. 그와 동시에 ‘여성’의 편집을 도맡기도 했다. 이 즈음에 소설 대신 시를 쓰기 시작한다. 시 ‘정주성’(定州城)을 시작으로 수많은 시를 쏟아내기 시작했으며 신문사의 출판부로 자리를 옮겨 잡지 ‘조광’의 창간에 참여해 대성공을 이룬다. 잡지 편집자로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1936년 백석은 첫 시집 ‘사슴’을 자비로 출판한다. 당시 ‘사슴’의 가격이 2원이었는데, 다른 시집보다 두 배가량 더 비싼 가격이었다.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어 대부분 증정용으로 시집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사슴’을 구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필사해 가지고 다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시인 윤동주도 연세대 도서관에 있던 ‘사슴’을 옮겨 적어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해방 후에 고향 정주로 돌아간 백석은 그곳에서 분단이 되기까지 계속 머무른다. 남으로 가자는 동료들의 제안도 마다하고 스승인 조만식의 곁에 남아 시를 쓰고 러시아어 번역과 함께 아동문학을 연구했다. 1950년대 초까지도 북한 문단에서 꽤 권위를 인정받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 외부활동을 하지 않은 채 칩거하며 엄청난 양의 러시아 소설들을 번역했다고 한다. 1958년 백석은 “사상과 함께 문학적 요소도 중요시하자”는 주장을 했던 이른바 ‘붉은 편지 사건’으로 인해 김일성 정권의 문예정책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자아비판을 강요당한다. 이후 양강도 삼수군의 협동농장 축산반으로 쫓겨나 아예 북한 문단에서 사라지게 된다. 백석은 삼수군의 양치기와 농사꾼으로 살기 시작했지만 평양에서 유명한 시인이 왔다는 소문이 퍼져 그곳의 아이들에게 문학 교육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1996년 감기에 걸려 고생하다 갑자기 사망했다고 아내가 증언해 주어 백석의 사망이 밝혀진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통영까지 찾아갔지만 거절당한 뒤에 백석은 세 번의 결혼을 한다. 그리고 남쪽에는 그를 평생 그리워한 여인 자야(김영한)가 있었다. 김영한의 호인 ‘자야’는 이백의 시 ‘자야오가’에서 가져온 것이다. 함흥관 기생이었던 그는 백석의 애인으로 지내며 동거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모의 강요로 결혼을 한 것이다. 자야는 김숙이라는 필명으로 ‘삼천리’에 수필을 발표하기도 한다. 백석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나지만 그에 대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경성으로 돌아온다. 만주의 산징으로 같이 떠나자는 백석의 청을 거절한 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고 회상한 자야. 그 뒤로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운영하다가 말년에 법정 스님에게 요정 전체를 시주했다. 당시 돈으로 1000억원이 넘는 거액이어서 스님은 몇 번이고 고사했지만 결국 대원각을 길상사로 개조했고,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지어 주었다. “1000억원이란 돈도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는 김영한의 말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마음은 자신과 있지만 다른 여인과 결혼을 세 번이나 한 사람, 북으로 가서 연락조차 하지 않은 사람을 평생 기다리며 그의 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삶은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아직도 길상사에 오롯이 남아 있다. 최근 소설집 ‘통영’을 낸 반수연 작가는 통영 사람이다. 그에게 백석과 통영에 대해 물었다. 해금된 이후로 읽게 된 백석의 시편들 중에서 통영 연작시들을 특히 인상 깊게 읽었다고 했다. 반 작가의 친정어머니가 기거하던 맞은편 아파트에 100세를 넘긴 ‘난’의 올케언니가 살았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반 작가에게 통영, 그리고 백석의 자취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통영 기행’에 대해 물었더니 단번에 ‘세병관’을 먼저 둘러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영은 통제영의 줄임말이며 충청 전라 경상을 아우르는, 한강 이남 최고의 관청기관이 바로 세병관이라고. 300년 동안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삼도수군통제사가 190명이나 거쳐 갔다고 한다. 그들이 오가는 동안 삼도의 문화가 얼마나 많이 오갔겠는가 하는 것은 이미 너무도 유명한 사실. 문화대박람회가 이루어진 장소가 세병관이고 또 옛 건축 양식을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곳이니 통영 여행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세병관에서 충렬사, 백석의 시가 새겨진 명정 우물을 돌아 서호시장을 둘러보며 예전의 문화와 현재가 만나고 있는 것들을 즐겨 보라는 말을 전해왔다. 그것이 ‘통영’이라고도 했다.통영과 서울의 길상사는 백석과 그의 사랑들로 매우 유명해졌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이야기하기에는 거기에 서린 시간과 마음 그리고 발길이 너무 많고 깊다. 백석의 시를 따라 통영을 걷고 길상사에 서린 사랑의 마음을 읽는 일. 이루지 못한 사랑들이 아직도 꿈틀대는 그곳들을 새롭게 걸어 보는 일부터 이 겨울은 시작될 것이다. 나와 나타샤가 사랑은 하고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들어가는 그 밤에는 김 냄새 나는 비와 눈이 번갈아가며 내릴 테니까. 그때 어디선가 응앙응앙 우는 당나귀의 흰 울음소리가 들릴지 어찌 알겠는가. 그것들을 찾고 보러 통영과 서울의 길상사로 떠날 겨울이 왔다.소설가 이은선
  • [문화마당] 유종의 아름다움/김이설 소설가

    [문화마당] 유종의 아름다움/김이설 소설가

    겨울만 되면 코바늘뜨개를 한다. 뜨개질이라고 하면 주로 대바늘 두 개로 뜨는 걸 생각하는데 내가 하는 건 코바늘 하나로 단을 이어 가는 일이다. 코바늘뜨기로 처음에는 무늬와 색깔 변화를 주어 동그라미, 세모, 네모 모양의 모티프를 떴고, 다음에는 모티프를 이은 담요를 만들었다. 그다음은 케이프나 안경집, 쿠션, 가방까지 뜰 수 있게 됐다. 올해는 빨간색과 초록색, 흰색 실로 크리스마스 깔개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뜨개질을 시작한 건 근래의 일이다. 몇 년 전, 준비하던 단편 소설의 주인공이 뜨개질을 하는 여자였다.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뜨개질을 하며 슬픔을 억누르는데, 그 인물이 끝이 없는 담요를 뜬다. 그래서 나도 뜨개를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소설은 완성하지 못했다. 일단 끝이 없이 긴 담요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경험으로 터득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을 잃은 인물의 슬픔을 뜨개질로 억누를 수 있겠는가 싶은, 개연성이 나조차도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단편 소설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코바늘뜨기를 배운 건 남았다. 모든 뜨개질이 그렇듯이 그저 한 가닥의 실이 코를 만들어 내고 그 코에서 실을 걸어 떠 가며 단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한마디로 바늘로 실을 걸어 엉켜 내는 과정인데 선이 면이 되고, 선이 형태를 지니거나 입체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뜨고 있는 것은 네 가지 색을 사용한 기하학적인 무늬의 가방. 아직 3분의1도 뜨지 않았으니 올해 안에 완성이 될지 잘 모르겠다. 전문가가 아니니 작업량이 일정하지 않은 데다 기한도 정해 놓은 게 아니니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지막 코를 뜰 때가 온다. 그 마지막 코를 정리하는 순간 완성이다. 중도에 포기만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끝이 난다. 완성품을 얻는다. 유종(有終)이란 ‘시작한 일에 끝이 있음’을 말한다. 그러니 ‘유종의 미’의 사전적 의미는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맺은 좋은 결과’가 될 것이다.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게 있다면 시간’이라는 문장을 소설에 썼던 적이 있다. 남녀노소, 빈자든 부자든 어느 누구에게든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리다고 시간이 조금만 부여되고, 부자라고 많이 주어지는 게 아니란 뜻이었다. 2021년 1월 1일 우리 모두에게 365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뜨개질의 한 코 한 코를 채워 가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뜨개질의 한 코 한 코를 떠 가는 일처럼 우리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왔다. 코를 빼먹지 않고 떠야 제대로 된 완성품이 되듯이 우리는 하루하루 정직하게 살았다. 앞코와 뒤코의 연결이 자연스러운지 살피는 것처럼 우리는 하루하루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내 뜨개질이 쓸모가 있을지 고민하듯이 우리는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았다. 12월이 됐다. 이제 얼마 뒤면 당신이 떠 온 1년치의 시간이 완성될 것이다. 30일만 더 채우면 정말 올해의 끝이니까, 곧 2021년의 완성품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유종의 미를 이뤄야 할 때다. 그 결과가 멋있을지, 볼품없을지, 쓸모는 있을지, 무용한지는 당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의기소침은 금물. 아무려면 어떤가. 우리에게는 또 새해가 있다. 대신 내년의 하루하루 뜨기는 꼭 성공하시길! 그러니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어떠했는지 묻고 싶다. 성실했습니까? 즐거웠습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였습니까? 아무튼 건강하시고 무탈하시길. 또한 굳건히 건재하시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 그림에 빠지다… 그림 같은 제주

    그림에 빠지다… 그림 같은 제주

    제주에 몰입형 미디어 아트가 유행이다. 빛으로 재현한 해외 거장들의 미술 작품을 배경으로 휴대전화만 들이대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곳곳에 후발 전시장이 들어서고 공공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등 유행이 확산되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공간도 늘었다. 해녀 공연을 보며 식사를 하거나 중력을 이용해 카트 레이싱을 즐기기도 한다. 이번 여정은 이처럼 새롭고 이색적인 제주의 문화예술 지대를 찾아간다. 아, 미처 알지 못했던 공간도 새로운 것의 범주에 넣고 돌아보기로 한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뒤늦은 앎에도 가치는 있는 거니까. 또 하나 기억해 두자. 방문하는 예술 공간 대부분이 제주건축문화대상 등의 상을 탄 곳들이다. 그림 같은 곳에서 그림을 감상한달까. 건물 스스로 빛을 낸다고 할 만큼 멋지다.‘몰입형’은 이머시브(immersive)라는 영어 단어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직역하면 ‘에워싼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영상이나 소리로 관객을 에워싸는 전시 기법이 ‘몰입형 미디어 아트’다. 작품을 앞에 두고 몰입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만, 전문가들이 분류한 장르이니 군소리 없이 따르기로 한다. 몰입형 미디어 아트가 표출하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미술 작품을 전시장 내부의 벽과 바닥, 기둥 등에 프로젝션 매핑(대상물 표면에 영상을 투사하는 기술)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빛으로 재현한 명화’를 감상한다고 보면 틀림없겠다. 화가들이 포착했던 순간들이 3차원으로 되살아나는 동안 관객들은 그저 첨단의 전시 기법이 선사하는 감동을 몸 전체로 느끼기만 하면 된다. ●거장들의 명화 영상 흐르는 서귀포 ‘빛의 벙커’ 서귀포 ‘빛의 벙커’는 제주도 최초의 몰입형 아트 전시공간으로 꼽힌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할 만큼 몰입형 미디어 아트의 국내 정착에 큰 영향을 준 곳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빔 프로젝터에서 투사하는 거장들의 명화 영상이 벽과 바닥, 기둥 등에 흐르는 독특한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전시는 1, 2부로 나뉜다. 파트Ⅰ은 ‘지중해로의 여행’이 테마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모네의 ‘수련’과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등 약 20명에 달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모두 9개의 시퀀스(챕터)를 통해 35분 동안 빛으로 구현된다. 시퀀스마다 작품과 어울리는 음악계 거장들의 음악이 어우러진다. 파트Ⅱ는 파울 클레의 ‘음악을 그리다’이다. 10분가량 클레의 작품이 표출되는 동안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전시를 즐기는 방식은 ‘각자 원하는 대로’다. 가장자리의 의자에 앉아서 볼 수도,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작품 속 주인공들과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바닥에 앉거나, 심지어 비스듬히 누워 감상할 수도 있다. 거울로 이뤄진 작은 미러룸, ‘ㄷ 자형’ 갤러리룸 등을 기웃대는 재미도 쏠쏠하다. ‘빛의 벙커’ 누리집 등에서 소설가 김영하, 뮤지컬 배우 카이 등의 오디오 도슨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품 해설이 필요한 이들에게 유용할 듯하다. ‘빛의 벙커’에 높은 점수를 주는 건 첫 번째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버려진 공간을 새로이 활용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빛의 벙커’는 이름에서 보듯, 한때 국가 기간통신망 운용시설이던 비밀 벙커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1990년 완공 이후 주민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극도의 보안이 유지됐다. 그러다 2000년 쓰임새를 잃었고, 한동안 공연장 등으로 활용되다 2018년 ‘빛의 벙커’로 문을 열었다. 벙커는 겹겹이 다중 구조로 건설돼 요새처럼 튼튼하다. 외부로 빛 한 줌 새어 나가지 못하는 폐쇄성이 오히려 작품 감상에 최고의 조연이 됐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국내 최대 몰입형 미디어 아트 공간 ‘아르떼뮤지엄 제주’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국내 최대’를 강조하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공간이다. 옛 스피커 제조공장을 개조해 빛과 소리로 만든 작품들을 전시했다. 애월에 있다. 노형동의 ‘노형수퍼마’도 요즘 ‘뜨고 있는’ 미디어 아트 전시장이다. 다만 ‘가성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저지리의 문화예술인마을은 이름 그대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머물고 있는 마을이다. 곳곳에 공공과 개인의 전시 공간이 많다. 제주에선 한라산 중산간 마을을 ‘웃뜨르’라 부른다. 저지리는 그 웃뜨르 중의 하나다. 거주공간들의 경계 역할을 하는 숲 사이로 자박자박 걷는 맛이 일품이다.마을의 중심 공간은 제주현대미술관이다. 진입로에 배치한 여러 조형미술 작품들이 관람객의 기대를 한껏 높인다. 무엇보다 특별전시실의 김흥수 화백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음양 철학에 기반한 여성의 누드, 구상과 추상이라는 이질적 화면의 공존 등을 통해 음양조형주의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이끌어 낸 화가다. 무려 43세 연하 화가와의 결혼으로 세간을 놀라게 한 기억도 있다. ‘7월 7석의 기다림’, ‘사랑을 온 세상에’ 등 강렬한 인상의 작품들과 마주할 수 있다. 미술관 외부는 조각공원이다.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곁에 두고 차분히 쉬기 좋다.●AR 등 차별화된 콘텐츠로 유혹 ‘문화예술 공공수장고’ 현대미술관 맞은편은 작품을 보관하는 문화예술 공공수장고다. 올해 처음 개방된 이곳에도 몰입형 미디어 아트 열풍이 불어닥쳤다. 현대미술관 입주 작가들의 작품과 김흥수 화백의 작품 등을 미디어 아트 형태로 전시하고 있다. ‘빛의 벙커’ 등에 견줘 규모는 작지만 증강현실(AR) 등 차별화된 콘텐츠로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다.길 건너는 김창열미술관이다. ‘물방울 화가’로 불리는 김창열 화백의 작품이 망라됐다. 6·25전쟁 당시 제주에 머물렀던 김 화백이 제주도에 ‘물방울’ 등 자신의 대표작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2016년 건립됐다. 올 초 세상을 뜬 ‘물방울 화가’의 대표작들과 그의 은사였던 김환기, 이응노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압도적 층고의 전시 공간이 안겨 주는 개방감도 일품이다. ■여행수첩 제주 전시 공간 가운데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 상당수다. 섬 전체가 관광지나 다름없어 코로나19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가장 까다로운 곳은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이다. 예약제에 입장 정원까지 통제한다. 일반적으로는 예약제라 해도 현장 매표를 병행하는데 이 미술관은 온라인 예약자만 입장할 수 있다. 현재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컬렉션 중 이중섭 작품 일부가 전시되고 있다. 미디어 아트 전시장 중에서도 현대미술관 공공미술수장고처럼 입장 시간을 엄격히 제한하는 곳이 있다. 오전 10시부터 30분 단위로 전시가 진행되는데,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입장할 수 없다. 상업 시설인 ‘해녀의 부엌’ 역시 예약자라 하더라도 공연이 시작되면 입장할 수 없다. 공연 1막이 끝난 뒤 후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기당미술관처럼 예약제와 현장 발권을 병행하는 곳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전시장의 누리집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 [글로벌 In&Out] 한국 문학에서 발견하는 인도네시아/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글로벌 In&Out] 한국 문학에서 발견하는 인도네시아/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따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가 11월에 개최한 ‘아시아 문화축제-인도네시아 편’ 행사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으로서 인도네시아와 한국 사회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졌다. 그 행사에 참여하면서 깨닫게 되고 감동을 받은 것은 인도네시아 출신인 나보다 인도네시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알고 있는 한국인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행사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정보를 얻게 돼 제 나라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던 자신을 질책하면서도 스스로 공부가 된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발표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으며 그중에서 흥미롭게 준비한 주제는 바로 한국 문학에 나타난 인도네시아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 문인들이 인도네시아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이다. 한국 문학을 공부하면서 여러 작품이나 글에서 인도네시아가 거론된 것을 발견할 때 신기함을 느낀다. 인도네시아는 과거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를 거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없어 한국 문학에서는 인도네시아가 자주 거론되거나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인도네시아를 거론하는 문학 작품이나 비평을 접할 때 늘 눈여겨보게 된다. 그중 지난해 문학사 수업에서 공부한 이철범이라는 문학평론가의 글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철범의 책 중에 ‘반체제의 논리’(1985)라는 게 있는데 제3세계와 관련한 주제에 초점을 맞춘 저서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그 안에서 ‘동남아시아의 평화사상’이라는 글이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으며 ‘동남아시아’를 제목으로 정한 저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깊게 공부하고 싶어졌다. ‘동남아시아’라고 하면 먼저 인도네시아를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이철범은 인도네시아와 관련한 정보를 거론했다. 이 글은 인도의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의 ‘아시아 평화의 기조’ 문헌으로 시작된다. 이 문헌은 ‘신동아’에 실린 글이며 1955년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반둥회의’(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앞서 발표됐다고 한다. 한국 문인이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인식은 ‘반둥회의’에 대한 거론이 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반둥회의’는 1955년 4월 8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렸다. 갓 독립한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에는 상당히 중요한 회의였다. 네루의 문헌을 언급하면서 이철범은 베트남 시인 단 호아이, 레바논 시인 아드니스의 시와 팔레스타인 민족시를 다루었다. 여러 나라 시의 핵심 주제가 ‘영토’와 ‘난민’으로 모아지고 특히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강조하려는 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은 동남아시아에 속하진 않지만, 이철범은 ‘반둥회의’와 ‘반둥정신’에 초점을 두면서 그 당시 아시아 국가 중에서 여전히 ‘반둥정신 10개의 원칙’을 실현하지 못한 나라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이철범이라는 문인에게 독립과 영토, 난민을 키워드로 한 ‘반둥회의’는 한국에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나 상상해 본다. 반둥에서 태어난 나에게 “1950년대부터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는 한국 비평 글에서도 거론됐구나”라고 아주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이후 반둥회의 자료를 더 찾고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행사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은 각 나라의 문학을 비교하는 작업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설가 염상섭과 인도네시아의 작가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의 작품을 비교하고 소개하는 일이다. 설혹 두 작가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더라도 두 나라의 문학을 비교해 봄으로써 그 나라의 사회도 비교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한국에서 유학하는 인도네시아인으로서 두 나라의 교류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하루 숏사이즈 커피 2~3잔, 치매·뇌졸중 예방에 좋아요

    하루 숏사이즈 커피 2~3잔, 치매·뇌졸중 예방에 좋아요

    “커피 한 모금이 위 속으로 떨어지면 모든 것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생각은 전쟁터의 기병대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기억은 기습하듯 살아난다. 작중 인물은 즉시 떠오르고 원고는 잉크로 덮인다.”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등 작품으로 사실주의를 이끈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가 커피에 대해 평가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을 시작하기 전 멍한 두뇌를 깨우고, 점심 식사 직후나 오후에 밀려드는 나른함을 쫓아내기 위해 커피를 찾는다. 또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날씨가 쌀쌀해지면 통유리의 전망 좋은 카페에서 갓 내려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낙엽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런 낭만과 실용적 측면을 떠나 과학자와 의학자들은 커피의 다양한 성분과 효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한다. 중국 톈진의학대, 미국 예일대 생물통계학과 공동연구팀은 하루 세 잔 안팎의 커피나 차를 마시는 습관이 심혈관질환과 퇴행성 뇌질환을 예방해 준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메디슨’ 11월 17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50만명 이상이 등록된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 빅데이터 ‘영국 바이오뱅크’를 활용했다.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데이터 중 50~74세 남녀 36만 5682명을 대상으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생활습관과 질병 발병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특히 연구팀은 성별, 나이, 인종, 사회경제적 지위, 체질량지수(BMI), 신체활동 여부, 흡연 및 음주 여부, 식습관, 암과 당뇨 등 병력 등의 영향을 보정해 순수하게 커피와 차 소비가 뇌졸중, 치매 발병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주목했다. 조사 기간 동안 5079명이 치매에 걸렸고 1만 53명은 최소 한 번 이상 뇌졸중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분석 결과 하루 커피 2~3잔이나 차 3~5잔을 마시거나, 커피와 차를 4~6잔을 마신 사람들은 뇌졸중, 치매 발병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나 차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하루 2~3잔의 커피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뇌졸중 발병 위험이 32%, 치매 위험은 28%나 낮았다. 또 뇌졸중이 발병했다고 하더라도 하루 3~6잔의 커피나 차를 마신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도 확인됐다. 이번 연구에 앞서 하루에 커피를 3~5잔 꾸준히 마시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 사람들보다 심장병, 파킨슨병, 성인 당뇨병, 뇌졸중에 따른 조기 사망 등의 위험이 줄어들고 자살 가능성도 낮아져 평균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 또 커피가 간 효소의 수치를 낮춰 간경변과 간암을 예방해 준다는 연구도 발표된 바 있다. 이처럼 커피의 효과에 대해서는 계속 연구되고 있지만 커피의 비밀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커피 속에는 각성 효과를 내는 카페인과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 성분을 비롯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백 가지의 다른 화학 성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 속 화학 성분들은 커피콩을 볶는 로스팅 과정에서 변하기도 하는데 이것들이 암부터 충치 예방까지 다양한 효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궁금증은 과연 많은 연구에서 말하는 커피 한 잔은 어느 정도 양일까. 미국 심장협회 권고안 기준에 따르면 커피 한 잔은 8온스(236.5㎖)다. 별다방이라고 부르는 커피 브랜드에서 가장 작은 숏사이즈(237㎖)가 연구 논문들에서 제시하는 커피 딱 한 잔 분량이다. 참고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 때 사용하는 종이컵 하나의 부피는 약 180㎖이다.
  • 이번 역은 가을도 봄이 되는 ‘청춘역’입니다…내리실 문은 낭만 오른쪽, 힐링 왼쪽입니다

    이번 역은 가을도 봄이 되는 ‘청춘역’입니다…내리실 문은 낭만 오른쪽, 힐링 왼쪽입니다

    강원도 춘천은 낭만의 도시다. 서정적 호수(의암호), 고불거리는 강(소양강), 강 따라 흐르는 철도(경춘선), 심지어 ‘봄내’라는 이름까지. 온갖 낭만적인 요소는 모두 가졌다.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은 노래 ‘춘천 가는 기차’(1989)에서 지친 일상을 떠나 춘천으로 향하는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무작정, 정말 그리하기 좋은 곳이다. 춘천은. 시간은 30여년도 더 지나 기차는 전철로 바뀌었고 근사한 ITX고속열차도 생겼다. 하지만 구불거리는 북한강도 강촌역도 여전히 꿰고 다니니 추억을 곱씹거나 없었다면 새로 새길 수 있다.책 한 권이 있다면 더욱 근사하다. 이왕이면 춘천에 관한 책이면 좋겠다.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도 좋고 이외수의 책도 어울린다. 김유정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인 소설가 전상국이 쓴 ‘춘천 사는 이야기’나 봄봄의 후편 격인 ‘다시 봄봄’ 등이 좋을 듯하다. 차로 가도 나쁘지 않다. 막혀도 고작 두어 시간이다. 과정도 목적지도 좋으니 만추와 조동이 스치는 계절에 뭔가 로맨틱한 자극이 필요하다면 춘천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곳은 늘 봄처럼 낭만적이니 말이다. 춘천의 춘(春)은 젊음과 낭만을 상징하는 게 맞다. 청춘이라지 않았던가. 차창 밖으로 스미는 나른한 오후 볕에 깜박 잠이 든대도 좋다. 춘천이 종착지다. 철 바퀴가 레일을 지치는 리듬이란 꼭 엄마 뱃속에서 듣던 심장박동이나 이발소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 같아 퍽 잠이 온다. 풍물시장을 들를라 치면 남춘천역이 좋고 바로 소양강을 보고 싶다면 춘천역이 낫다. 춘천낭만시장(중앙시장)에도 가 봐야 한다. 총떡과 막국수 한 그릇에 비로소 여행 온 기분을 낸다. 총떡은 춘천에서 메밀을 얇게 부쳐 고기와 채소를 볶아 넣고 총구처럼 돌돌 말아 낸 전병이다. 매콤새콤하고 구수하니 이곳까지 와서 아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시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육림고개 역시 요즘 핫플레이스로 뜨는 지역이다. 이름의 유래가 된 육림극장이 있었고 값싸고 독특한 물건을 파는 오래된 점포와 식당들이 많았다. 막걸리를 파는 전집부터 신기술로 빛바랜 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관, 주인이 경상도 울진 출신임을 강조하는 미용실 등이 남아 있다. 서양식 레스토랑, 일식 주점, 근사한 카페들도 터주가 떠나버린 빈자리를 메우며 공존의 고갯길을 열어 놓았다. 낭만은 시장 안에도 깃들었다. 중앙시장에는 예의 전통시장 분위기에 매료된 젊은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점포들이 들어왔다. 장바구니 대신 빵을 사도 좋고 차를 마셔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접 부친 전이나 조잔부리를 챙기는 재미가 있다. 시장 옆은 명동이다. 춘천에도 명동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전기가 일찍 들어와 번쩍번쩍한 번화가를 거개 명동(明洞)이라 불렀다. 춘천에서도 유일한 시내가 ‘명동’이다. 이리저리 이어진 명동의 좁은 골목에 닭갈비거리가 버티고 섰다. 오늘날 ‘춘천닭갈비’의 명성을 있게 한 곳이다. 여기서 갈비란 늑골 부위를 이르는 게 아니다. 고기 하면 으레 갈비를 최고로 꼽던 시절에 닭을 썼대서 닭갈비다. 돼지갈비만 못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역 대표 메뉴로서 위상을 단단히 수성하고 있다. 요즘이야 철판에 닭고기와 양배추, 고구마, 당면 등을 넣고 볶아 먹는 형식이 대표적이지만 사실은 연탄불에 닭갈비와 살코기 부위를 구워 먹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 소양강댐이 건설되며 많은 외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여기저기 소문을 낸 것이 전국적 명성을 얻기에 이르렀다. 종류도 다양해져 요즘 춘천에는 숯불닭갈비와 철판닭갈비, 뼈 있는 것, 없는 것 등 다채로운 식문화가 생겨났다.시민들에게나 관광객에게나 춘천의 대표적 낭만 스폿 중 하나는 공지천이다. 이른 아침 운동 코스로도 좋고 야경을 감상하는 저녁 산책 코스로도 딱이다. 공지천을 지나치자면 살짝 커피향이 느껴진다. 6·25전쟁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군 기념탑과 기념관이 이곳에 있어, 예가체프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산 커피 원두 또한 어느 곳보다 춘천에 가장 먼저 상륙했다.이곳엔 1968년 개업, 국내 최초로 로스팅한 원두커피를 팔아 온 집이 있다. ‘이디오피아 벳(집)’이다. 6·25전쟁 참전을 기념해 세운 커피집으로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팔고 있다. 공지천 강물에 반쯤 걸터앉은 이 클래식한 분위기의 커피숍은 커피 마니아들의 순례 코스일 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황제와도 연관 있는 곳이다. 1968년 에티오피아 황제가 춘천 공지천 참전기념탑을 방문한 후 양국 간 문화교류를 위한 ‘이디오피아 벳’이 생겼다. 커피 원두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는 황실에서 사용하는 원두를 이곳에 보내왔고, 덕분에 무려 53년 전에 로스팅 원두커피를 서울도 아닌 춘천에서 마실 수 있게 됐다. 과연 오리지널이다. 맛있고 향기롭다. 창밖으로 보이는 춘천 풍경은 뜨거운 커피를 더욱 맛나게 한다. 6·25전쟁에 에티오피아군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놀랍다. 그저 터키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16개국 중 하나려니 했다.(물론 그중 룩셈부르크와 그리스, 콜롬비아, 태국은 생경하다.)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대에서 선발한 칵뉴 부대가 주인공이다. 현지어로 ‘적을 섬멸한다’는 뜻의 칵뉴부대는 1951년 5월 7일 한국에 도착해 총 253번의 전투를 치렀다. 와중에 전사자 121명에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진 바 없고 단 1명의 포로조차 허용하지 않은 ‘무적의 전승 부대’였다. 중동부전선(철원~양구) 등에서 무패 신화를 세우고 1956년까지 춘천에 주둔했다. 참전 군인 중에는 1960년 도쿄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비킬라 아베베도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스러져 간 고마운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이름이 전사(戰史)와 업적, 유품과 함께 이곳에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 전통 가옥 형태로 지은 한국전참전기념관에 가면 자세한 사연을 확인할 수 있다. 공지천에는 커피 외에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3대가 가업을 이어받은 노포 햄버거집이다. 햄버거가 3대라니. 라모스 버거는 MZ세대 관광객들로부터 춘천의 명물로 손꼽히는 수제버거집이다. 뉴욕치즈의 여신, 소양강버거 등 각각 특색 있는 버거의 맛이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특히 치즈와 블루베리 소스의 조화가 인상적인 줄리엣버거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비대면 로봇 서비스 역시 볼거리로 인기만점이다.춘천 중심부에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의암호가 있다. 강물 위에 우뚝 서 있는 ‘소양강 처녀상’이 랜드마크다. 의암호에는 스카이워크가 두 곳이다. 하나는 소양강 스카이워크, 또 하나는 의암호 스카이워크다. 시내와 가깝고 소양강 처녀상 옆에 자리해 야경이 특히 아름다운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길이 174m의 현수교 모양이다. 투명 바닥 구간만 무려 156m에 이른다. 아찔하니 발바닥이 근질근질 오그라들고 머리는 ‘손오공 머리띠’ 같은 것이라도 씌운 것처럼 저릿저릿하다. 공포의 10m 높이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며 걷는 기분이란 게 꼭 그렇다. 의암호 스카이워크는 좀더 길다. 길이 190m에 이르는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맑은 물을 바라보며 호숫가 바람을 실컷 쐴 수 있다. 의암호를 바라보며 예술과 더불어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KT&G 상상마당도 들러볼 만하다. 유럽의 여느 공원처럼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도심을 둘러봤으니 드라이브 삼아 외곽까지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더할 나위 없다. 춘천댐은 생각보다 넓지만 ‘춘천댐 매운탕골’은 의외로 가깝다. 행정구역은 ‘오월 1리’다. 또다시 봄의 기운을 발견했다. 춘천의 겨울은 습하고 싸늘하다. 뜨거운 쏘가리 매운탕이 절실할 때가 있다. 예닐곱 곳의 매운탕집이 몰려 있다. 송어회나 향어회도 판다. 집집마다 단골을 두고 오랜 시절을 영업해 온 집들이다. 이 중 동춘횟집은 쏘가리나 빠가사리(동자개)와 메기, 잡어 등을 매콤하게 끓여내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매끌한 수제비와 함께 국물을 떠넘기다 밥을 말면 그 맛에 허기와 한기가 사라진다.배가 불룩 나오면 피부를 당기니 눈이 커져 전보다 훨씬 잘 보이는 모양이다. 중도에는 카누 카야킹과 웨이크보드 등 수상 레포츠 시설도 있다. 아이들에게 인기만점 애니메이션박물관과 토이로봇관, 강원도립화목원 등 관광지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니 함께 다녀보기에 딱이다. 이젠 내려가자. 여기도 낭만이 있고 봄이 있다. 남춘천역 인근에 ‘김유정역’이 있다. 원래 ‘신남’역이었는데 ‘봄봄’의 김유정이 살았던 실레 마을이 있던 곳이라 국내 최초로 인명을 딴 역명으로 고쳤다. 역은 2개다. 괄괄한 ITX청춘이 쏜살같이 내달리는 경춘선 역도 있고 지금은 폐역이 된 구 역사가 있다. 김유정역에서 내려 폐철로를 걷다 보면 인형의 집처럼 앙증맞은 김유정역이 나온다. 이 역사(驛舍)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지만 역사(歷史)가 깃들었다. 신문 한 장을 모두 펴기에도 좁은 작은 역사 안에는 옛 열차시간표, 역무원 소품을 비롯해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인근에는 김유정의 삶과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폐병에 걸린 춘천 태생 스물아홉 살 소설가는 운명하기 열흘 전 친구에게 편지를 남겼다. 가난과 병마와 싸우던 그는 소설 번역이라도 하겠다고, 그래서 돈이 생기면 닭도 사고 구렁이도 사서 삶아먹고 어서 나아야겠다고 썼다. 그러나 답장이 닿기 전에 김유정은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그의 작품엔 ‘나’와 ‘점순이’가 자주 등장한다. ‘봄봄’에도 나오고 ‘동백꽃’에도 있다. 주요 명장면을 조각으로 만들어놓았다. 점순이가 아직 키가 작아 시집을 못 보내니 클 때까지 일을 더 시키던 ‘열정 페이’ 봉필 영감(‘봄봄’)도, 괜스레 ‘썸타기 위해’ 애꿎은 닭싸움을 붙이던 또 다른 점순이(‘동백꽃’)도 정원을 지키고 있다. 신남마을 레일파크에 따뜻한 늦가을 볕이 한 가득이다. 책 모양 건물 옆을 지날 제 낙엽이 날고 있다. 분명히 가을인데 봄기운이 돈다. 기이하다. 봄내(춘천)골은. 시인 유안진은 말했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고.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이니까.”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 옛날식 석쇠 닭불고기·뉴욕치즈 여신버거·감자빵… 강추! 춘천 8味■샘밭막국수=숯불닭갈비와 막국수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풍경맛집. 주차장도 널찍하고 실내공간도 넓어 가족단위 방문객에게 적합. ■이디오피아 벳=정통 에티오피아 원두 로스팅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 직접 내리는 드립커피① 한잔에 공지천을 바라보며 쉬어 갈 수 있는 곳. 무려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원조숯불닭불고기=옛날식 석쇠 닭불고기(②닭갈비)를 부위별로 맛볼 수 있는 노포. 뼈의 유무와 내장과 살코기, 오돌뼈 등 다양한 부위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예전부터 춘천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한잔 코스로 인기를 이어 오고 있다. 숯불에 올린 신선한 닭고기가 전국 어디서도 쉽게 보기 힘든 맛의 세계를 선사한다. 춘천 아니랄까 봐 곁들이는 된장과 막국수도 전문점 정도는 한다. ■라모스버거=3대가 하는 햄버거 노포. 번부터 패티, 소스까지 수제로 만들어 다양한 테마로 즐길 수 있다. 치즈를 듬뿍 끼얹은 뉴욕치즈의 여신버거③는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팔도실비집=애막골에서 전국 맛을 즐길 수 있는 실내포차. 대구 북성로 불고기부터 서울식 소불고기, 오징어숙회 등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동춘횟집=춘천댐 매운탕골에 위치한 민물고기 매운탕 맛집. 룸과 평상으로 구성돼 여유 있게 한끼 즐길 수 있는 곳. 송어회 등 회와 쏘가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잡어 매운탕이 있다. ■감자밭=감자와 똑같이 생기고 속은 더욱 맛있는 감자빵④을 파는 집. 쫄깃한 겉에 부드럽고 진한 감자맛을 내는 소가 들었다. 실내외 카페 공간이 있어 한숨 쉬어 가기에도 좋다. ■동해막국수=남춘역 앞에서 오래 운영해 온 막국숫집. 메밀 함량 높은 막국수에 감자전, 묵 종류가 있고 춘천식 메밀총떡도 판다.
  • 담담함, 의연함… 이것이 박수근

    담담함, 의연함… 이것이 박수근

    ‘이건희 컬렉션’ 33점 등 174점 역대 최대독특한 질감 속 서민 향한 따스한 시선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지난 11일 개막한 박수근(1914~1965) 회고전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국민화가로 알려진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총 174점의 유화, 수채화 등 작품뿐 아니라 박수근이 직접 잡지나 그림을 모아서 만든 스크랩북, 스케치, 엽서 등 자료 100여점까지 역대 최대 규모의 자료를 전시한다. 흔히 박수근의 그림이 투박하고 서민적이라고 하지만, 생애를 따라 모두 4부로 구성된 전시를 보면 그가 그림의 구도 하나하나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했는지 알 수 있다. 10대 시절 밀레 같은 훌륭한 화가를 꿈꾸며 그리던 수채화부터 1950년대 초기 유화, 해방과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1960년대 한국 풍경을 진솔하게 담아낸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전시는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불우한 화가였다는 그간의 고정관념과 달리 박수근이 얼마나 ‘성실한’ 화가였는지에 주목한다. 그의 그림은 흙벽을 연상시키는 거칠한 질감, 어둡고 흐린 색감과 토속적 이미지로 유명한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래 여러 색이 겹겹이 쌓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한 작가’, ‘순응적 작가’로 불리지만,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고수하며 독특한 재질감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심했다는 흔적이다. 말년에 그린 ‘모란’ 같은 작품은 색을 최대 22겹까지 쌓았다. 당시는 서구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돼 국내 화단을 풍미하던 시대였지만, 그는 서구 모더니즘 경향을 소화하면서도 서민들의 일상 생활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보통 인물 중심으로 표현하는 당대 화풍과 달리,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캔버스 전체를 차지하다시피 하는 ‘고목과 여인’에선 대담한 구도를 엿볼 수 있다. 아기 업은 소녀, 절구질하는 여인, 시장 사람들 등을 그린 작품은 전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웃을 보는 따스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너무나 단순하고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이를 포착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승화한 것이다.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고단한 삶의 모습이지만 너무 비참하거나 슬프지 않고, 담담함과 의연함이 엿보인다”며 “가난하고 부정적인 이미지 대신 ‘생활인’으로서의 박수근을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전체 전시 작품 중 유화 7점과 삽화 원화 12점 등 19점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도 33점 포함됐다. 전시에선 박수근의 작품과 함께 당대를 생생하게 묘사한 소설가 박완서의 글귀와 사진작가 한영수의 사진도 볼 수 있다. 내년 3월 1일까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