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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의 영역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 보여주고 싶어”

    “소설의 영역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 보여주고 싶어”

    “1990년에 ‘아리랑’을 쓰면서 만주에 취재를 갔었어요. 소련은 몰락했는데 왜 중국은 무너지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작정했어요. 그 사이에 중국은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저는 죽고 없겠지만 앞으로의 30년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국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소설가 조정래(70)가 신작 ‘정글만리’(해냄)를 발표했다. 16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출판 간담회를 가진 그는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극복하기 위해 ‘태백산맥’을 썼다”면서 “그때와 똑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오늘의 할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정글만리’는 중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비즈니스맨들의 이야기다. 힘 있는 중국인 관료 샹신원을 등에 업은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과 철강회사 직원 김현곤, 건설회사의 젊은 여회장 왕링링의 야심과 욕망이 복잡하게 뒤얽힌다. 여기에 의료 사고로 쫓기듯 한국 땅을 떠난 성형외과 의사 서하원과 베이징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꾼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소설은 중국이라는 정글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작가는 “분단 상황에서 작가들의 의식이 휴전선에 국한돼 있지만, 중국을 무대로 함으로써 우리 소설도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돈이다. 작가는 “인간들이 돈을 향하여 얼마나 야만성을 가지고 싸우며 돈 앞에서 얼마나 인정사정 없이 안면몰수하느냐”면서 “이런 치열한 생존경쟁의 정글이 지금의 중국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을 상징하는 만리장성에서 ‘만리’를 따와 ‘정글만리’라는 제목을 붙였다. 정글만리는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번갈아 제시하면서 중국의 다양한 모습을 한 꺼풀씩 벗겨 나간다. 중국에서 사업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꽌시’(關係·연줄이나 뒷배, 네트워크 정도의 뜻)는 물론이고 경제발전에 이은 부동산과 자동차 붐, 성형에 대한 높은 관심, 영토 문제 등 중국의 문화·경제·정치적 현안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꼼꼼한 취재를 위해 작가는 2년 동안 중국을 8번 방문했다. 이번 작품은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네이버에 연재되면서 100만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자신을 “지금도 원고지에 소설을 쓰는 원시인 ‘컴맹’”이라고 밝힌 작가는 “미국과 중국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오는 걸 보고 최첨단 과학기술의 지배력이 얼마나 엄청난가, 글로벌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절실히 깨달았다”면서 “작품을 전파하는 또 하나의 좋은 수단과 함께 수많은 기능 때문에 오히려 소설 읽기를 어렵게 하는 방해꾼도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10년 동안 장편 4편과 단편집 1권, 산문집 1권을 쓸 계획이라는 작가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후배들이 소설을 보내주면 고마운 마음으로 읽어 보지만 10페이지 이상 넘기지 못해요. 어떻게 장편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나’ 입니까. 자꾸 ‘나’, ‘나’, ‘나’ 하니까 개성이 없어지고 스토리텔링도 흔들려요. 소설이 사적인 이야기로 흘러가고 왜소해집니다. 객관적인 3인칭 소설을 쓰지 못하면 한국소설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어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민선 5기 3년! 구정의 품격] 이동진 도봉구청장

    [민선 5기 3년! 구정의 품격] 이동진 도봉구청장

    “컬처노믹스로 도봉을 일으켜 세워야죠.” 처음 본 도봉은 정감 넘치는 서민 도시였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견줘 낙후돼 상대적인 박탈감이 컸다. 국립공원인 도봉산을 빼놓고는 크게 자랑할 만한 것도 없었다. 주민들의 자괴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도봉에서 산다는 데 자부심을 갖게 해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역사와 문화에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개청 40주년을 맞아 지역 곳곳에서 자랑거리가 움을 틔우고 있다. 우선 도봉산 자락 도봉서원이 있다. 조선 중기 문화 유산이다. 서울시에 있는 유일한 사액 서원으로 조광조를 기리는 곳이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복원 사업이 한창이다. 법조인·정치가인 김병로(1887~1964), 교육가·언론인 송진우(1890~1945), 독립운동가·한학자 정인보(1893~1950), 소설가 홍명희(1888~1968), 노동운동가 전태일(1948~1970) 등의 옛 집을 길로 연결해 시대 정신을 맛볼 수 있는 역사 인물 탐방길도 만들었다. ‘한국의 간디’ 함석헌(1901~1989)이 말년을 보낸 자택도 리모델링해 기념관을 조성한다. 오는 12월 착공한다. ‘저항 시인’ 김수영(1921~1968)의 본가 인근에 있는 동 주민센터 건물을 문학관으로 꾸미고 있다. 11월 문을 연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교육가이자 문화재 지킴이 전형필(1906~1962) 고택은 민족문화 수호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 내지 공원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한국 대표 만화 캐릭터 또한 도봉의 자산이다. 둘리뮤지엄이 최근 첫 삽을 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지브리 박물관 같은 곳으로 키우겠다는 게 이 구청장의 복안이다. 도봉산도 생태 치유 공원 등을 통해 도심 내 힐링 특구로 조성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리는 중이다. 이러한 일들로 단순히 자긍심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도봉을 찾아와 지역 경제가 활성화하는 등 지역 발전과 직결된다는 게 이 구청장의 설명이다. 재정 여건이 악화일로를 걸으며 계획한 만큼 사업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구청장은 그러나, 앞으로 1년 동안 중·장기 발전 계획을 제대로 만들어 놓겠다고 자신했다. 컬처노믹스를 통해서다. 문화 인프라를 확충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단다. 도봉은 취약한 경제기반 탓에 인위적으로 빠르게 변화를 줄 수 없고, 공장을 짓고 기업을 유치하는 개발 방식은 지역 체질에 맞지 않다고 이 구청장은 말했다. 정답은 문화적인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창동역 주변 아레나 공연장 건립을 꾀하는 것도 그래서다. 현재 도봉·노원·성북·강북구 등 동북 4구 발전협의회에서 관련 용역을 발주해놨다. “도봉산 자락에 무수골이란 마을이 있어요. 그 이름처럼 근심이 없는 도봉, 따뜻한 도봉, 친환경적인 도봉, 문화가 풍성한 도봉, 힐링의 도봉으로 가는 길을 야무지게 닦겠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장학퀴즈 출연하는 의원들

    장학퀴즈 출연하는 의원들

    국회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 4명이 ‘EBS 장학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민주당 신학용·최원식, 새누리당 김세연·강은희 의원이 각각 출신 고교 후배와 ‘2인1조’로 짝을 이뤄 실력을 겨룰 예정이다. 오는 20일에 프로그램 녹화를 하고 8월 24일 TV에서 방영된다. 이 모임은 빡빡한 의정활동 속에서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신학용 위원장이 만든 것으로, 결성 두 달 만에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김세연·유승우·강은희 의원, 민주당 이용섭·최재천·김재윤·도종환 의원 등 여야 의원 30여명이 초당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인기 모임’이 됐다. 지난 6월 첫 모임에는 당시 개봉했던 영화 ‘고령화 가족’의 원작을 쓴 소설가 천명관이 연사로 초청됐으며, 7월 모임에는 언론인 출신 소설가 김훈이 초청받아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책 읽는 모임’이 입소문을 타면서 장학퀴즈에까지 연결됐으며 도전장을 낸 의원들은 틈틈이 예상 문제를 풀어 보고 상식책을 들춰 보면서 ‘열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사설] 북, 딴 생각 말고 ‘이산 상봉’ 인도적으로 풀라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과 올 추석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을 열 것을 제안했다가 하루 만인 그제 이를 보류했다.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은 유보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만 즉각 수용하자, 북한이 “두 가지 실무회담 모두 보류”를 통보해온 것이다. 2010년 10~11월 진행된 제18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끊겼던 행사가 재개되면 혈육과의 생이별의 한을 풀 것을 기대했던 이산가족들의 실망은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1985년 서울과 평양으로 남북 고향방문단을 교환한 이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평양에서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비롯해 2010년 10월 제18차까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지만, 그동안 남한 측 상봉자는 신청당사자 기준으로 겨우 1874명이다. 7차례의 화상 상봉자 279명을 포함해도 모두 2153명이다. 1988년부터 대한적십자사가 받은 이산가족 상봉을 원하는 누적 신청자가 6월 말 현재 12만 8824명임을 감안하면, 전체 신청자의 겨우 1.7%에 불과하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7만 2864명(56.6%)으로 신청자의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 지난 한 달 사이에만도 613명이 사망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의 다수는 초고령자이다. 70대 이상 고령자가 5만 8543명으로 80.3%에 이르고, 80대가 2만 9480명(40.5%)으로 가장 비중이 높다.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이 촌각을 다투는 이유다. 1988년 이래 지금까지 매년 2200명 이상의 신청자가 북한의 가족과 상봉하지 못한 한을 품고 돌아간 것이다. 함남 원산에서 19살의 나이에 1951년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던 소설가 이호철은 2000년 이산가족 상봉 때 평양에서 여동생을 만나는 감격을 누렸다. 그러나 그 후 13년 동안 칠순이 된 여동생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추석에 임진각에서 차례를 지내던 고령의 실향민들이 점차 줄고 있다고 그는 한탄했다. 이씨와 같은 실향민들은 연간 1~2차례 상봉자로 각각 100여명을 선출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생존자들이 상봉하려면 730여년이 걸린다고 비판한다. 북한이 일과성 상봉 이벤트가 아닌, 상설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응해야 할 이유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 간 정치적 갈등으로 부침을 겪어서도 안 된다. 혈육의 상봉은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또 북핵으로 예민해진 남한에서 남북 경협 분위기를 되살릴 명분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경협 확대의 실마리는 북측이 이산가족들이 혈육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는 데 성의를 보여줄 때 풀릴 수 있지 않겠는가.
  • 17만 원에 산 가구, 알고 보니 100억 골동품

    100파운드(약 17만 원)를 주고 산 가구가 알고 보니 630만 파운드(약 107억 원)의 가치를 가진 골동품이었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는 10일(현지시간) 17만 원에 구매해 TV 받침대로 쓰고 있던 가구가 알고 보니 107억 원 가치의 희귀한 일본 골동품이라는 것이 밝혀져 화제라고 보도했다. 이 가구의 주인은 1970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해 보관함으로 사용했다. 주인이 사망한 후 그의 살림을 정리하던 중 이 가구의 가치가 밝혀졌다. 1640년 일본 교토에서 공예 장인인 나가시게 카오미에 의해 만들어진 이 수납장은 삼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일본을 묘사하는 그림이 금가루로 그려져 있다. 이 가구는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의뢰로 만들어졌으며 첫 소유주는 프랑스의 수상이었다. 이후 영국 소설가인 윌리엄 벡퍼드, 해밀턴 공작을 거쳐 마지막으로 프랑스 기술자에게 돌아갔다. 전 세계에서 10개뿐인 이 가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레이크스미술관에서 경매를 통해 107억 원에 가져가 가구 주인의 아들은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됐다. 이것은 경매에 출품한 일본 작품 중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사진=메트로 캡처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최광숙의 시시콜콜] 촌철살인도 살인이다

    [최광숙의 시시콜콜] 촌철살인도 살인이다

    최근 소설가 고(故) 박완서의 신간 ‘그리움을 위하여’를 읽었다. 작가가 2011년 세상을 떠나기 전 썼던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다. 선생의 맏딸 호원숙씨는 ‘작가의 말을 대신하여’라는 서문에서 “어머니의 단편 하나하나는 그 시대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이었다”고 썼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말로 정곡을 찌른다는 촌철살인마저 경계한 것 같다. 작가가 돌아가시기 전 딸과 나눈 대화가 그렇다. 평소 작가는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말수가 적었지만 한마디 말을 던지면 그게 촌철살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작가는 딸에게 “촌철살인도 살인이잖니? 하면 안 되는 건데…”라고 하셨단다. 평생 언어 조탁(彫琢)을 업으로 했던 노작가도 이렇듯 말을 조심했건만 요즘 세상은 너무나 말을 쉽게 많이 한다. TV에선 연예인들이 쉴새없이 수다를 떨고, 정치권은 현란하지만 실속 없는 말싸움으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다.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것도 모자라 휴대전화를 부여잡고 통화하고,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문자를 보낸다. 이런 말들 가운데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따스함이 깃든 말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언어의 살인’도 난무한다. 이런 현상은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생기면서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남들과 소통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도구가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SNS는 자칫, 잘 쓰면 약이 되고 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최근 축구선수 기성용 케이스다. 20대의 치기어린 말로 여기기에는 과하다 싶을 글들을 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결국 최강희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다. 우리 속담에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혀는 그 길이가 세 치(약 10㎝)에 지나지 않지만, 이 혀를 잘못 놀려서 큰일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 때 책 ‘태평어람’(太平御覽)에도 ‘병(病)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禍)는 입에서 나온다’고 적혀 있다. 이렇듯 입에서 내뱉어진 말들은 자칫 분란과 화(禍)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최근 53만 팔로어를 두고 힐링 전법사로 활동해 온 혜민스님이 트위터에 “너무 많은 말을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당분간 묵언(默言) 수행을 하며 부족한 스스로를 성찰하겠다”고 한 것도 ‘말의 무서움’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해 초 세계 커뮤니케이션 데이를 맞아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소통)으로 소란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침묵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말은 많이 할 때보다 절제할 때 더 빛나는 법이다. 침묵은 또 다른 언어임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작가 신달자와 떠나는 힐링여행

    작가 신달자와 떠나는 힐링여행

    신달자(70) 작가가 강서구 주민을 보듬는 힐링 강사로 나선다. 강서구는 11일 오전 10시 내발산동 구민회관에서 신 작가를 초청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주제로 제77회 지식비타민강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신 작가는 수많은 청중들을 사로잡은 명강사로 시인, 소설가, 대학교수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소설 ‘백치애인’,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을 집필해 여성과 모성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시대의 감성 멘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 작가는 이날 강연에서 천고만난(千苦萬難)을 겪은 자신의 인생 경험담을 바탕으로 여성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전수할 예정이다. 관심 있는 주민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강서구는 주민의 정신 건강과 지적 욕구 충족을 위해 2007년부터 매월 1회 국내 유명 강사를 초청, 그들의 인생과 삶의 철학 등을 배우는 지식 비타민 강좌를 열고 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당신의 책]

    옛 그림으로 떠나는 낚시 여행(안국진 지음, 책읽는오두막 펴냄) 옛 조상들은 능수버들 휘날리는 따뜻한 봄날 쏘가리 낚시를 즐겼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찐다”는 당나라 시가 일러 주듯 봄은 낚시의 계절이었다. 여울과 소가 만나는 지점에 돌무더기가 솟은 곳이 최고의 낚시 명당이다. 이 같은 봄의 정경을 담아낸 그림으로는 이경윤의 ‘유하조어도’를 꼽을 수 있다. 능수버들 아래 삿갓을 쓴 고운 인상의 선비가 온 정신을 모아 낚시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미소를 절로 자아낸다. 부산 토박이로 월간 ‘일요낚시’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는 김홍도의 ‘조어산수’부터 최북의 ‘한강조어’까지 옛 그림 속에서 발견한 낚시꾼들의 흥미로운 자취를 따라간다. 지친 삶 속에서 낚시로 활력을 찾는 강태공들에게 낚시의 운치를 더해 주는 책이다. 232쪽. 1만 3000원. 자본과 언어: 신경제에서 전쟁경제로(크리스티안 마라치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펴냄) 이탈리아의 저명한 좌파 경제학자가 ‘언어’라는 잣대로 금융위기의 본질을 파헤친 책. 저자는 세계 경제의 현 단계를 ‘신경제’로 진단하면서 “신경제에서는 ‘언어와 소통’이 핵심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또 언어는 금융시장에서 자료와 정보의 전송 수단이자 하나의 창조적 힘이 된다고 설명한다. 중상주의, 산업주의, 신경제의 포스트포드주의적인 흐름에 이어 자본주의의 네 번째 단계인 ‘전쟁경제’가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252쪽. 1만 7000원. 다시, 관계의 집으로(최우용 지음, 궁리 펴냄) 요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집에서부터 아파트, 기만적인 랜드마크 빌딩의 허구까지 젊은 건축가가 신선하고 매서운 시각으로 의미를 포착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외딴 수도원, 전북 완주군 불명산 자락의 화암사 극락전, 서울 남영동 옛 대공분실 등 다양한 건축물이 등장한다. 저자는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경기 일산의 밤가시초가, 제주의 테쉬폰 주택, 경산 상엿집, 기찻길 옆 공부방 등을 둘러보며 사색에 잠겼다. 이를 다섯 가지 테마에 나눠 세상과 소통하는 글로 풀어냈다. 몽상가의 눈, 관찰자의 눈, 소설가의 눈, 여행객의 눈, 건축가의 눈이 그 테마들. 저자는 사라져 가거나 변방에 놓인 건축물들에 주목했다. 이제 진정한 관계를 맺는 건축물로 이 땅을 채우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도 고민했다. 288쪽. 1만 5000원. 사고 문화재 만년제(주찬범 지음, 신성북스 펴냄) 만년 재앙이 된 연못 ‘만년제’(萬年堤). 이곳에 얽힌 역사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화성태안 3택지 개발사업’과 ‘1번 국도 대체 우회도로 사업’은 2004년 돌연 중단된다. 경기도 기념물 161호인 만년제를 침범해 공사를 벌인 탓이다. 공사는 만년제의 위치를 잘못 표기한 경기 문화유적지도를 참고해 이뤄졌다. 국가사업 중단으로 수천억원의 혈세가 낭비됐고, 관계 부처 장관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도 해결하지 못해 결국 청와대가 관리하고 있다. 만년제는 ‘정조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조선 특유의 연못 양식. 중앙에 둥근 섬이 있는 네모난 인공 연못으로 규모가 대단하다. 저자는 문화재 당국이 만년제를 농업용 수리시설로 착각한 것이 비극의 단초였다고 말한다. 만년제에는 가난과 낙후함에 저항했던 정조의 도전과 좌절이 함께 투영돼 있다는 주장이다. 228쪽. 2만 3000원.
  • [주말 영화]

    ■열혈남아(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재문(설경구·왼쪽)은 소년원에서 만난 민재와 한 조직에 몸을 담고 운명을 함께하게 된다. 조직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둘은 실수로 엉뚱한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 대가로 재문은 가장 의지하던 민재를 눈앞에서 잃고 만다. 죽어가는 민재를 두고 뒷걸음질쳐야만 했던 재문은 조직의 염려와 만류를 뒤로 한 채 민재를 죽인 대식에게 복수할 결심을 하고, 조직에 갓 들어온 치국(조한선)을 앞세워 벌교로 향한다. 도내 태권도 대회에서 메달까지 땄던 치국은 어머니의 병환으로 조직에 발을 들이게 되고, 첫 임무로 고향인 벌교에서 재문의 복수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치국은 인정머리 없이 냉혹하지만, 내면에 외로움과 따뜻함을 지닌 재문에게 측은함을 느낀다. 한편 점심은 생사를 모르는 둘째 아들 같은 느낌이 드는 재문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독립영화관-나는 노래하고 싶어, 보청기(KBS1 토요일 밤 1시 5분) 한국에 이주해 온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모여 꾸려진 다문화 다국적 노래단 ‘몽땅’의 단원들은 12월 첫 프로모션 공연을 앞두고 한창 바쁘다.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등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지닌 단원들은 매일 모여 발성 연습을 하고, 새로운 곡을 만든다. 아직은 한국어도 서툴고, 서로 문화가 낯설지만, 그들은 다른 문화 속에서 하나의 노래를 만드는 과정이 행복하기만 하다(나는 노래하고 싶어). 암 선고를 받고 죽음 앞에 서 있는 노인. 귀가 먹어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딸 지현은 노인에게 보청기를 맞춰 드리기로 한다. 하지만 제주도가 초행길인 보청기 기사의 방문은 지연되기만 하고, 지현은 안타깝다(보청기). ■미드나잇 인 파리(EBS 토요일 밤 11시)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덤스)와 파리로 여행 온 소설가 길(오웬 윌슨). 파리의 낭만을 만끽하고픈 자신과는 달리 파리의 화려함을 즐기고 싶어하는 이네즈에게 실망한 길은 결국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산책하게 된다. 매일 밤 12시, 시간을 넘나드는 로맨틱 야행이 시작된다. 12시 종이 울리는 순간 홀연히 나타난 클래식 푸조에 올라탄 길이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1920년대 파리. 그곳에서 그는 평소에 동경하던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등 전설적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매일 밤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 애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아르)를 만나게 된 길은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매혹적인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 이외수 “혼외아들 호적에 올려… 유언비어 법적대응”

    이외수 “혼외아들 호적에 올려… 유언비어 법적대응”

    친자 인지 및 양육비 청구 소송에 휩싸였던 소설가 이외수(66)씨가 최근 혼외아들을 자신의 호적에다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3일 강원도 화천군과 이씨의 트위터 글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달 27일 상서면사무소에서 혼외 아들(26)을 호적에 입적시켰다. 이씨는 이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제 셋째 아이는 지난달에 호적에 올렸다”면서 “홀트에 맡겼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어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난 2월 혼외 아들의 친자 인지 및 양육비 소송에 휘말렸으나 5월쯤 조정에 합의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열린세상] 다시 북한의 문을 두드려야/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다시 북한의 문을 두드려야/김정현 소설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訪中)은 중국 당국의 유례 없는 극진한 예우만으로도 그 성과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을 향한 양국 정상의 일치된 목소리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지난달 큰 기대를 모았던 남북 당국 간 회담이 맥없이 무산됐다. 근본적 원인은 북측의 억지였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소리도 들린다. 우리가 최초에 제기했던 ‘장관급회담’이라는 명칭에 관한 이견이다. 북한은 내각 산하에 우리 통일부와 맞상대할 장관급 부서가 없다. 김양건이 수장으로 있는 통일전선부는 당 비서국 소속 기관이다. 아는 바와 같이 북한은 내각이 아니라 당이 중심인 체제이다. 통일전선사업은 당이 직접 주관하는 사안으로, 우리 통일부와 같은 부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각종 남북회담에 ‘내각 참사’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대표단을 파견하는 근본적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격에 맞는 형식은 대화의 기본으로 신뢰의 근본 바탕이 된다는 원칙은 백번 옳다. 그렇다면, 다른 체제의 그들을 상대하려면 형식을 바꿔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를테면 ‘특사급 대화’가 그것이다. 특사는 어떤 인사를 내세우더라도 ‘특사’ 그 자체의 함의로 한층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점은 북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관이 되었건 차관이 되었건, 혹은 대통령이 신임하는 정치권 인사가 되었건, 마주하는 상대가 특사인 이상 북측도 예의를 갖출 명분이 될 것이기에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형식에서 유연성을 발휘한 다음 회담에 임하는 기본적 원칙이다. 우선, 북측이 지난 1월 선포한 정전 무효와 전시상태 발령이다. 현실이야 어떻든 그 위중한 사태는 현재까지 원상회복되거나 해제된 바 없다. 우리는 먼저 당당히 정전상태의 회복과 전시상태 해제를 요구해야 한다. 전쟁 중에도 대화의 창구는 열어야 하지만 그것은 전쟁 중단이 최우선 목적이다. 그런데 전시상태를 선포해 둔 상대와 경제문제를 우선 주제로 회담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안일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두 번째, 북측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남북합의는 무효라고 선포했고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도 게재했다. 그러면서 ‘6·15선언 기념행사’ 운운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분명히 따지고 압박해야 한다. 기존의 모든 합의가 무효인지 아닌지, 무효라면 새로운 합의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고, 회복된 것이라면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 역시 촉구해야 한다. 당국 간의 대화로 합의된 사안을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실행을 주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세 번째, 회담의 기본 주제이다. 당장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같은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에 대한 북측의 적대 의사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뢰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워 변하지 않을 기본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 남과 북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평화적 관계, 즉 정상국가로서 이웃이 될 것이냐의 문제 말이다. 정치군사 문제의 회담은 쉽지 않을 것이니 작은 문제부터 풀어 가야겠다는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의도가 모호하다면 방향을 달리해 볼 필요는 있다. 어쩌면 지금 북이 원하는 속내도 실상은 그것인지 모르는 일이다. 네 번째, 회담 상대의 문제다. 북한의 헌법상 최고의사결정기구는 엄연히 국방위원회다. 그렇다면, 특사회담으로 폭넓은 대화의 바탕을 만들어 놓은 다음의 당국자 간 회담에서 북측 당사자는 국방위원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경우, 북측의 국방위원회 구성원을 상대할 우리 대표가 반드시 군인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군이 아니라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부이기 때문이다. 기본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을 맞상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다른 체제를 인정하겠다는 그들에 대한 배려이며, 우리는 우리 나름의 원칙을 지키는 형식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원칙과 의지를 보필하는 참모들의 혜안과 더불어 다시 한 번 북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 인류의 생존, 수수께끼에 달렸다!

    인류의 생존, 수수께끼에 달렸다!

    하버드 대학의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깨어난다. 마지막으로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날 뿐 며칠간의 기억은 지워진 상태다. 담당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려는 찰나 검은 가죽옷을 입은 여성이 나타나 의사를 살해한다. 미모의 젊은 영국인 의사 시에나 브룩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병원을 탈출한 랭던은 자신의 외투에 숨겨진 최첨단 실린더를 발견한다. 실린더 안에 감춰진 것은 단테의 ‘신곡’에 나타난 지옥을 묘사했다고 알려진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다. ‘인페르노’는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이 ‘로스트 심벌’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로스트 심벌’에서 미국 워싱턴을 배경으로 비밀 결사조직 프리메이슨의 이야기를 다뤘던 그는 ‘인페르노’에서 무대를 다시 유럽으로 돌려 놓는다. 암호와 상징, 기호를 바탕으로 작품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단테와 보티첼리 등 여러 예술품을 주요한 소재로 차용하는 점은 그대로다. 이번 작품이 다루는 것은 인구 문제다. 비밀 단체 ‘컨소시엄’의 암살자와 정부가 보낸 군인들에게 쫓기던 랭던은 자신이 대규모의 생물학적 테러에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베일에 싸인 유전 공학자 버트란드 조브리스트는 세계 인구가 과잉이라며 생존을 위해서는 ‘지구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어떤 단추를 누르면 인류의 절반이 죽지만 지금 당장 누르지 않으면 100년 후에는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다. 인류를 인페르노, 즉 지옥으로 몰아넣으려는 조브리스트의 계획을 막는 것이 랭던의 임무다. 전작들처럼 ‘인페르노’ 역시 빠른 전개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를 선보인다. 작가가 6개월에 걸쳐 조사했다는 단테와 피렌체, 베네치아 등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사실들을 읽는 재미도 있다. 다만 극적 반전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설정을 욱여넣은 것은 약점이다. 작품은 출판되자마자 미국과 영국에서 20만부 이상씩 팔리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암호와 상징의 소설가답게 단테가 지옥을 원으로 묘사한 것에 착안해 원주율(3.1415)을 변형한 ‘2013년 5월 14일’을 출판 날짜로 정했다. 해외에서의 평은 다소 엇갈린다. 뉴욕타임스는 “트릭으로 가득 찬 소설”이라는 호의적인 평을 내놓았지만 옵서버는 “댄 브라운은 단순히 못난(bad) 게 아니라 미친(mad) 것 같다. 인페르노는 난잡한 속임수가 뒤섞인 끔찍한 소설”이라는 악평을 쏟아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자연에 순응한 삶터… 물 따라 구릉 따라 길들이 흘렀다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자연에 순응한 삶터… 물 따라 구릉 따라 길들이 흘렀다

    <풍경1> 흐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고갯길·골목길들 육조대로·운종가 조선시대 이름이 기록된 유일한 길 현대를 도시의 시대라고 부른다. 만약 신이 인간과 자연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도시를 창조했다고 할 만큼 도시는 인간의 걸작품이다. 사대문 안 ‘원(原)서울’은 인간의 도시라기보다 마치 자연이 만든 무위(無爲)의 도시 같다. 풍수지리와 도교 사상이 저변에 깔렸다. 도성 앞뒤에 산이 있고 가운데 물이 흐르는 지형이다. 모든 인공건조물은 구릉과 물을 거스르지 않았다. 고갯길과 골목길이 자연 생성됐다. 서울 지명에 황토마루(세종로 사거리), 구리개(을지로입구), 운현(운현궁), 진고개(충무로), 박석고개(명륜동), 배고개(종로4가), 맹현(삼청동), 안현(안국동), 야주개(당주동), 무학재 등 고개(현)가 유독 많이 나오는 까닭이다. 청계천 물길을 따라 종로가 생성됐고, 중랑천을 따라 동부간선도로, 홍제천과 정릉천을 따라 내부순환도로가 지어진 것도 물길에 순응한 결과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은 산과 산이 이어지는 곳에 만들어졌다.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이 그렇다. 동서남북을 가리키되 인위적으로 배치하지 않았다. 크기나 위치에 따라 오솔길, 한 길, 두렁길, 골목길, 고갯길, 샛길이 됐다. 상태에 따라 흙길, 황톳길, 진창길, 박석길(포장길)이 됐으며 쓰임새에 따라 피맛길, 순라길이 됐다. 조선시대 서울의 숱한 길 중 정사(正史)에 지명이 등장하는 길은 단 두 개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길은 육조대로(세종로)와 운종가(종로)뿐이다. 태조실록에 운종가라는 기록이 나오고, 인조실록과 영조 당시 승정원일기에 육조대로가 나온다. 그 밖에는 관도(官道), 어가(御街)라는 불특정 길로 존재할 뿐이었다.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과천로, 시흥로, 강화로, 고양로 같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나가는 간선도로명이 기록됐다. 대한제국 시기 들어 정동을 공사관거리라고 부르거나, 황토현이나 신작로라는 길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풍경2> 좁고 불결, 그리고 황량 : 개항기 외국인 눈에 비친 도성 길 먼지·진흙 뒤범벅… ‘눈 돌리면 매혹적인 풍경’ 애정 어린 눈길도 개항 이후 길에 관한 기록의 칠팔 할은 소설이나 외국인의 여행기, 수기와 함께 전한다. 성종 때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동월(董越)은 ‘조선부’(朝鮮賦)에서 “트인 길, 트인 거리는 바르고 곧아서 구부러짐이 없다”는 인상기를 남겼다. 당시 대표 길인 육조거리와 운종가는 폭이 각각 60m, 20m로 큰길이었다. 이 길을 본 외국인의 입이 벌어졌다. 16세기 중세 도시로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예를 찾기 어려운 마치 광장 같은 길이었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 길은 대체로 좁고 지저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양 문물을 일찍 접한 실학자들이 저서를 통해 도로의 확장과 정비를 지적했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시중의 주민들이 길을 차지해 말을 탄 사람이 서로 만나면 다닐 수 없는 때도 있다”면서 가로 정비를 촉구했다. 박지원도 ‘열하일기’에서 “길이 험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 하니 이는 무슨 말인가. 수레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도로가 나빠서 그렇고 도로가 나쁜 것은 사대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실학자들과 개화파 주도로 도로의 정비 개선이 실제 이뤄졌다. 외국인들은 길이 좁고,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 차 있다고 투덜거렸다. 1883년 미국인 천문학자 로웰은 “제물포와 서울 간의 풍경은 황량하다”고 썼고, 1894년 영국인 여행가 비숍은 “네 사람의 가마꾼이 멘 가마 한 채가 지나는데도 양쪽 인가의 처마에 걸려 애를 먹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1882년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돌프는 “조악하고 교량은 드물다”, 미국인 선교사 앨런은 1908년 펴낸 ‘서울견문기’에서 “당나귀, 마차, 전차 그리고 사람들이 먼지와 진흙 속에 뒤범벅되어 있다”라고 혹평했다.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도 “좁고 불결하며 늘 오물이 널려 있다”, 미국 해군장교 보스트윅은 “하이에나의 소굴보다 더한 지독한 악취로 진동하고 있다”고 악평했다. 혹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 특유의 풍광에 반한 외국인의 칭송도 있었다. 1892년 ‘서울풍물지’를 발간한 미국인 신학자 길모어는 “한국인들은 누군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결하지 않으며 서울 근교는 산책하기 좋은 곳이 많고, 어느 방향으로 가든 눈을 매혹할 전경을 발견하게 된다”고 감탄했다. 비숍도 1897년이 되자 “인구가 25만명에 이르는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수도 가운데 하나이며, 이만큼 좋은 입지를 가진 수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면서 “내가 처음 한국에 대해 느꼈던 혐오감은 이제 거의 애정 수준의 관심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풍경3> 모든 길은 한양으로 : 지독한 도성 중심주의 상경·낙향… ‘어떻게든 사대문 안에서 살아라’ 광적인 인구집중 증보문헌비고나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서울 밖으로 나가는 길이 나온다. 주요 국도라고 보면 될 터다. 제1로는 중국 가는 길인 의주로였다. 서대문~홍제동~고양~파주~장단~개성~의주로 이어졌다. 제4로는 남대문~한강진~판교~용인~부산의 부산 가는 길이다. 이 밖에 평해 가는 길, 고성 가는 길, 상주와 통영 가는 길, 정읍을 거쳐 제주 가는 길, 강화 가는 길 등이 있다. 고전소설 ‘이춘풍전’에는 “무악재 넘어 홍제원(홍제동)에 다다르니…”라면서 개성과 평양을 지나 의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춘향전’에서 “역졸을 거느리고 숭례문 내달아 칠패 팔패 돌모루 백사장 동작강 얼른 건너”라는 구절은 한강을 건너 충청도와 경상도와 전라도로 가는 길이다. 오늘의 숭례문~이문동~청파동~노량진 구간을 이른다. 또 ‘홍길동전’에서는 “양천 강변을 지나 서울 서강으로 대령하라” 하였는데 숭례문~약현(만리동)~노고산(신촌 뒷산)~양화~서강(서강대교 북단)에 이르는 길을 이른다.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평구역 말을 갈아 흑수로 돌아드니”라고 읊은 구절은 동쪽 방면의 동대문~왕십리~살곶이다리~송파로 가는 길의 하나다. 조선시대는 한양이 곧 나라였다. 지독한 도성 중심주의가 판쳤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것을 상경(上京)이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낙향(落鄕)이라고 할 정도였다. 문외송출(門外送出)이라고 해서 죄를 지으면 성문 밖으로 내쳤다. 사대부가 서울 밖에 사는 것은 일종의 형벌이었다. 유배 살던 정약용은 “너는 사정이 어지간만 하면 한양 사대문 밖에 살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사대문 안에서 살아라…. 그것도 힘들거든 사대문 가까운 곳에서는 살아야 한다. 그래야 여러 가지 보고 듣는 게 많고 기회들이 많다”라는 편지를 아들에게 보낼 정도였다.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서울로의 광적인 인구 집중은 예고된 ‘참사’였다. <풍경4> 청계천 따라 북촌-남촌 : 계층 생활권 나뉜 이중도시 오늘날엔 한강을 경계로 강북 -강남으로… ‘스타일’ 차이 뚜렷 오늘의 서울에 강북과 강남의 문화 차이가 있듯이 조선시대 한양은 청계천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었다. 청계천 북쪽 5대 궁궐 주변 일대에는 사대부 지배층과 궁 관련 아전들이 주로 살았다. 청계천 아랫동네는 벼슬을 하지 못한 선비와 상민들의 거처였다. 청계천 변에는 하층민과 거지들이 살았다. 엄연한 계층 차이가 존재했다. 남산 기슭의 남촌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됐다. 박지원의 ‘허생전’에 묘사된 것처럼 끼니가 없으면 냉수로 주린 배를 채우고서 갓을 고쳐 쓰고 앉아 헛기침하며 글을 읽는 ‘남산골샌님’이 그들이다. 진흙탕 길에 나막신을 신어야 했기에 ‘딸깍발이’로 불렸다. 북촌과 남촌은 다시 한번 진화한다. 1935년 서울에 사는 일본인의 수가 서울 총인구의 30%에 육박하는 11만 4000명에 이르렀다. 일본인 거주 지역이 급속도로 확장된다. 남산 아래 필동, 회현동을 비롯해 후암동, 청파동 등 용산 일대가 일본인 거주지로 변했다. 북촌은 조선인, 남촌은 일본인이 사는 곳으로 양극화됐다. 일본인 거주지를 낀 본정통(충무로), 황금정(을지로), 남대문통(남대문로)에 포장도로가 깔리고, 전기와 전차, 상하수도가 갖춰졌다. 조선인 중심지인 종로는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소설가 박태원은 ‘천변풍경’에서 “전차도 전차려니와 웬 자동차며 자전거가 그렇게 쉴 새 없이 이어서 달리느냐. 어디 장이 선 듯도 싶지 않건만, 사람은 또 웬 사람이 그리 거리에 넘치게 들끓느냐”라고 남촌의 휘황찬란한 풍경을 비아냥댔다. 북촌과 남촌 간 민족적 갈등이 밤거리의 주먹 세계에서 격렬하게 분출된 시절도 있었다. 서울은 일찍부터 민족적·계층적으로 분리되거나, 생활권과 상권 그리고 문화가 갈리는 ‘이중도시’(Dual City)의 양상을 보였다. <풍경5> 일제의 길 확장 : 서울다움을 잃다 전차 궤도 부설 핑계로 도읍 상징 성곽 허물어 깊은 생채기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일제가 시행한 길 확장이 서울의 서울다움을 결정적으로 훼손시켰다. 인력거 및 자전거의 도입과 마차를 대체한 달구지, 자동차, 전차의 도입은 한양도읍의 상징인 성곽을 철거하는 구실이 됐다. 전차 궤도가 부설되기 시작한 1899년부터 동대문과 서대문, 남대문 성곽 일부가 차례차례 헐렸다. 일제는 1907년 성곽처리위원회를 구성해 동대문 북쪽 성곽과 남대문 남쪽 성곽을 뜯어냈다. 성곽의 철거는 서울의 공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곧게 뻗은 포장도로와 전차 궤도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홍보됐다. 일제는 성곽 철거를 통해 ‘낡은 도시구조’와 ‘왕조의 잔재’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역사가 살아 있는 구시가지의 파괴로 이어졌다. 이후 한국전쟁과 개발 연대를 거치면서 서울은 600년 된 전통 도시의 향기를 잃었다. joo@seoul.co.kr
  • 영어 좀 한다고 막하면 쓰나… 번역도 엄연한 문학인데

    영어 좀 한다고 막하면 쓰나… 번역도 엄연한 문학인데

    “‘프린스’(prince)라고 하면 우리는 다 왕자라고 번역하죠?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프린스가 왕자인 경우는 10분의1도 안 돼요. ‘벤허’에선 족장이고 마키아벨리 저서에선 군주, ‘전쟁과 평화’에서는 대공이라는 뜻이죠. 미남, 동네왕초라는 뜻도 있고 이렇게 프린스의 의미가 15가지나 되는데 우리는 한 가지만 외워 놓고 10가지를 써먹으려 하는 거지.” 이윤기와 함께 ‘1세대 번역가’로 꼽히는 소설가 안정효(72)의 입에서 오역 사례가 줄줄 나왔다. “번역도 문학”이라고 믿는 그에게 단어의 한 가지 뜻에만 기대어 언어의 깊은 감각을 간과하는 오역은 분통 터지는 일이다. 그래서 40여년 번역 인생을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10년간 수집한 3000여편의 영화 자료, 2000여개의 오역 사례를 모은 ‘안정효의 오역사전’(열린책들)이다. 832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편집자들이 몇명이나 나가떨어진 목침만 한 책’이다. 그는 “영어 조금 한다고 푼돈이나 벌어야지 하고 번역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좋은 직업을 엉터리로 해서 되나 하는 생각에 진짜 교과서, 성경 쓰는 기분으로 썼다”고 했다.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 게 뭐냐면 난 영어를 잘하니까 번역하겠다는 거예요. 샘 해밍턴이 한국말 잘한다고 번역 잘할 것 같아요? 어림도 없어. 번역은 우리말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에서는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소명의식을 갖고 번역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번역을 하는데 우리는 그냥 무성의하게 한글로 옮기면 되는 줄 알아요. 번역의 개념이 없던 초창기엔 책 하나를 6~7명에게 나눠서 번역을 시키고, 문장을 마음대로 자르고 고치는 출판사들과 싸움도 많이 했죠.” 1970년대 중후반 영자지 문화부장을 지낸 그를 번역의 길로 이끈 건 당시 ‘문학사상’ 주간이었던 이어령 선생이었다. 그가 대학 시절 영어소설을 7편이나 썼다는 소문을 듣고 197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패트릭 화이트의 ‘폭풍의 눈’ 번역을 맡긴 것이다. 그는 꼬박 밤을 지새워 하루 만에 원고지 100장 분량의 번역본을 넘겨 이어령을 놀라게 했다. “몇 달 뒤에 문학사상에서 ‘백년동안의 고독’을 연재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원래 하기로 했던 스페인어 번역자가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진 거야. 시간은 촉박하니 나한테 영어책으로 번역해 달라고 한 거죠. 그런데 번역이라는 건 쉬었다가 하면 안 돼. 내친김에 해야 얘기가 연결이 되지. 원고지 3000장짜리를 40일 동안 해서 007가방 2개에 넣어 갖다줬어요. 이어령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직원들한테 ‘야, 그거 앞뒤 줄거리 맞나 읽어 봐라’ 고 하셨죠(웃음).” ‘가시나무새’, ‘캐치 22’ ‘가브리엘라’ 등 그가 먼저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해 국내에 소개한 해외 명작도 부지기수다. 그도 그럴 것이 서강대 재학 시절 그는 영문학 교수였던 외국인 신부가 인정하는 ‘원서 킬러’였다. 방학 때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서관에 나가 서가의 책을 모두 읽어 치웠다. 더 읽을 것이 없자 손을 댄 게 영어 원서였다.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해요?’하고 물으면 신부님은 ‘안정효처럼 하라’고 하셨대요. 저한텐 영어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요. 배울 게 없으니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자기 관리에 엄격하다. 매일 새벽 3~4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까지 일에 매진한다. “자유업이라는 게 사장도 없지, 자기 마음대로 아니에요? 그러니 내가 스스로 통제해야지. 하루 할 일을 정해 놓고 어겨본 적이 없어요.” 재게 움직이는 건 아직도 구상해 놓은 책이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펴낸 소설 ‘솔섬’에서 갈라진 얘기를 장편소설 ‘선지자’로 낼 계획이고, ‘할리우드 키드’라는 별명을 지닌 영화광인 만큼 세계 명배우 열전도 펴낼 생각이다. 만화가였던 예전 꿈을 살려 만화수상록도 내고 싶다는 그는 문득 빵 얘기를 꺼냈다. “좋은 빵을 만들려고 밀 농사를 직접 짓는 제빵사가 있더군요. 번역도 그렇게 공을 들여야 좋은 문학이 나와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완득이’ 작가 김려령, 어른들의 사랑 그리다

    ‘완득이’ 작가 김려령, 어른들의 사랑 그리다

    ‘완득이’의 성공은 작은 족쇄였다. 고등학생 ‘완득이’와 담임교사 ‘똥주’에 대한 이야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동안 김려령(42)의 소설에는 ‘청소년 문학’이라는 딱지가 앉았다. 전작인 ‘기억을 가져온 아이’와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동화책이었다. ‘완득이’ 이후 펴낸 ‘우아한 거짓말’과 ‘가시고백’에서도 주인공은 10대였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그의 소설은 청소년 문학의 외피를 빌렸을 뿐 늘 결핍과 외로움을 자양분 삼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완득이가 자라는 만큼 똥주도 변하듯이. 김려령의 신작 ‘너를 봤어’(창비)는 성인 소설이다. 한 손에는 사랑을, 다른 한 손에는 폭력과 죽음을 움켜쥐었다. 25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식당에서 출판간담회를 가진 그는 “‘완득이’를 성장 소설이라고 구분해 본 적은 없다”면서 “풋풋해서 가슴 설레는 사랑이 아니라 인생을 조금 산, 30~40대들이 겪는 사랑 이야기로 첫 번째 소설을 발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내가 처음 소설을 쓴 동기는 매우 불온하다. 나와 직접 관련이 있든 없든,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중략) 펜을 사용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죽음의 정조를 강하게 드리운다. 주인공 ‘수현’은 대중과 평단 모두의 인정을 받는 중견 소설가이자 유명 출판사의 편집자이다. 그에게는 지옥 같은 과거가 있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극심한 폭력을 휘두른다. 아버지의 폭력을 대물림한 형은 주먹을 휘두르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도 모르는 새 괴물을 품게 된 수현은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애정을 갈구하는 아내를 은연중에 자살로 내몬다. 나락에 빠져드는 그에게 어느 날 후배 작가 ‘영재’가 나타난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애정을 경험해 보지 못한 수현에게 영재는 그가 만난 유일한 사랑이다. 소설가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작품에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다. 2006년 건축가를 주인공으로 했다가 “서사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다시 썼다. “뭔가 고아하고, 깊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문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어떤 면에서 영재는 저와 닮아 있어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엄청나게 많이 쓰면서 화가 나면 (원고를) 버리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으면 또 버렸죠. 배고프면 밥을 먹듯, 소설에 허기가 지면 글을 썼어요. 소설은, 저한테는 밥 같은 거였어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시론] ‘튀기’에서 ‘코피노’까지/하성란 소설가

    [시론] ‘튀기’에서 ‘코피노’까지/하성란 소설가

    그 애가 지나가면 우리는 ‘튀기’라고 수군댔다. 좁은 양미간과 오똑 솟은 코, 고수머리와 흰 피부 등 그 애는 한눈에 띄었다. 몇몇 어른들은 ‘아이노쿠’라고도 불렀다. 나중에야 일본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 족’을 일컫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내뱉던 그 말이 암소와 수탕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을 뜻한다는 것도 알았다. 노새와는 달리 튀기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암소와 수탕나귀의 형질을 반반씩 닮았을, 그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형질이 툭 발현되었을지도 모를 그 모습, 기괴했을 듯하다. 한국 전쟁 직후 서양인들의 외모와 피부를 닮은 채 태어난 아이들의 모습에 놀란 한국인들의 모습도 쉽게 그려진다. 얼마나 신기했으면 ‘튀기’란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그 애는 김치볶음을 좋아하고 우리말도 우리만큼 잘하는, 다 같이 웃어야 할 때를 놓치고 한 박자 늦게 웃은 적도 없는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 애는 우리와 섞이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전쟁의 그림자는 너무도 넓고 깊었다. 어디 살고 있을까. 어쩌면 김치볶음의 붉은 기름이 반지르르 묻은 야무진 입술을 벌려 전상국 선생의 소설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의 수지처럼 한국과 제 어머니를 부정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지금 필리핀에는 ‘코피노’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필리핀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튀기’처럼 모욕적인 말이 아니지만 이미 그 말 속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의 한 단면과 함께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야만성이 들어 있다. 그 애들은 축복 받아야 할 탄생의 순간, 이미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다. 초창기 그들의 아버지는 물가와 교육비가 싸다는 이유로 어학 연수를 온 학생들이었다. 한순간 일탈에 빠져들었던 그들은 필리핀 애인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한국으로 줄행랑을 쳤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누구도 그 애들에게 책임을 따져 묻지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한국 사업가들의 현지처가 된 여성도 있었다. 코피노 수의 증가에는 피임과 낙태를 철저히 금하는 가톨릭 문화의 영향도 있었다. 낮에는 골프 여행, 밤에는 환락가. 필리핀을 찾는 한국의 남성 수가 급증했다. 단순히 쾌락과 욕망만이 남았다. 그들 중에 피임 기구를 착용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고 그 때문에 나이 어린 10대 여성을 찾는 추태가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예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코피노들도 급증했다. 많은 코피노들에게 아버지란 자신을 버린 사람일 뿐이다. 한국은 더 이상 아버지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반감을 가지는 필리핀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 다음 돈을 많이 벌어 한국의 아버지를 찾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듯하다. 한 사회단체에서 코피노들의 아버지 찾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코피노들 대부분이 극빈층이다. 어머니가 돈을 벌러 집을 떠나 있는 동안 학교에도 가지 못한 코피노들이 거리를 떠돈다. 돈을 벌기 위해 제 엄마처럼 윤락가로 흘러드는 아이들도 있다. 악순환이다. 한국의 아버지를 찾아 최소한의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이 취지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정부는 개인의 사생활이란 생각으로 방관하고 있었다. 하룻밤 대가치고 너무도 큰 대가라고 억울해할 남성이 많을는지 모른다. 필리핀 여성들이 돈을 노리고 일부러 접근해 임신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한동안 책임 공방으로 시끄러울 듯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한국의 아버지를 찾아주기로 했다는 소식에 가슴 한쪽이 내려앉았을 당신. 그렇다. 당신이 진작 느꼈어야 할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지금까지도 일말의 거리낌이 없이 잠잠한, 이미 죽어버린 건지도 모를 당신의 양심이다.
  • 군인이자 문인이에요

    군인이자 문인이에요

    소설책을 읽기에도 정신적·육체적으로 버거울 법한 현역 장병이 아예 소설집을 출간해 화제다. 국방대학교 근무지원대 소속 김원재(23) 육군 상병이 주인공이다. 김 상병은 최근 ‘숲 속의 푸른 조약돌’, ‘티모시’, ‘츠루바시씨의 우메’ 등 5개의 단편과 1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구름을 칠하는 사람들’(왼쪽·라온북)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그는 지난해 ‘제11회 병영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에 응모해 ‘전장에 드리운 석양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미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현역 소설가다. 김 상병은 23일 “개인 정비 시간, 일과 후 휴식시간 등을 활용해 글을 썼다”면서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기보다는 진솔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 상병은 판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도 병영문학상 상금 300만원을 국방대 인근 고아원 등에 기부했다. 김 상병은 한국외대 부속 용인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을 다니다가 입대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문화마당] 우리에게 별일이란/백가흠 소설가

    [문화마당] 우리에게 별일이란/백가흠 소설가

    몇 년 전 파리 여행을 한 적이 있다. 5주 동안 허름한 아파트를 빌려 살았다. 낯선 도시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때는 겨울이었는데, 우리의 겨울과는 좀 달라서 적잖이 당황했다. 영하의 기온도 아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뼛속까지 추위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계속됐다. 아침에 산책을 나가선 해질 무렵까지 걷곤 했다. 5주 동안의 무료했던 나날 중 기억에 남는 하루가 있다. 불어를 전혀 모르니 TV 볼 일이 없었는데, 그날은 사람 목소리라도 들어볼 양으로 아침부터 TV를 켜 놓았다.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뉴스가 반복되고 있었는데,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무슨 사고가 난 모양으로, 구급차가 바쁘게 움직이고 사람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뉴스에 반복적으로 나왔다. 테러가 난 것은 아닐까, 인질극이 벌어진 것일까, 상상력은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하루를 참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아파트를 빌려준 집주인뿐이었으므로. 집주인이 뉴스 내용을 말해줬다. 음주운전 사고가 났는데, 안타깝게도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 아,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별일 아니겠죠? 집주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래, 언제나 그랬듯이 한국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은 언제나 별일이 진행 중인 나라가 분명하다. 미국에 사는 한 친구와 한동안 같이 지낸 적이 있다. 어느 날 내게 무슨 일이 난 것이냐고 물었다. 우리의 뉴스를 보며 내가 겪었던 비슷한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내용을 말해줬더니, 그가 말했던가, 한국은 정말 다이내믹한 나라 같다고. 오늘의 뉴스를 보면 이렇다. 원세훈 국장을 비롯해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의혹이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가 하면, 서울대생들은 이와 관련해서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한다. 성 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차관은 네 차례나 소환에 불응하여 경찰은 결국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하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물리치며 국민적 관심을 차지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박지성의 열애설. 오늘 아침은 왠지 박지성이 어떤 희생의 도구로만 느껴지는 참이니, 지난 정권에서 주로 써먹던 물타기 권법의 공격이 도래할 것 같은 예감은 필자의 오버인가. 무엇보다도 주말에 일어난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건 하나가 언론의 동업자적인 정신으로 묻히고 있으니, 모 중앙일간지 사측이 용역을 동원하여 편집국을 탈취한 사건이 그것이다. 사측은 기자 130여명을 퇴사처리하고 편집국을 몇몇이 장악하여 문을 걸어잠근 채 신문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기자 없이 신문이 제대로 나올 리 만무함은 물론 대부분의 기사를 연합뉴스에서 받아다가 지면을 채우고 있다. 동업자 정신이라 함은 기자들의 동료애인 줄 알았겠으나, 언론사 사주들의 동업자 정신이 맘껏 발휘된 사건이라 하겠다. 이 와중에 한 보수논객은 언론사 사주와 동업자 정신을 발휘, 자기에게 맡겨주면 3년 내 1등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신문사를 장사꾼 마인드로 바라보는 몰상식의 극치인 셈이다. 사측에 맞선 기자들의 외로운 싸움이 승리하길 기원한다. 필자도 기자들을 지지하며 그 신문에 기고하던 칼럼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별일이 정말 별일이 되는 사회는 정말, 우리의 미래엔 없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함이 신문 가득 묻어나는 아침, 별일도 아니라면 별일도 아닌 아침이다.
  • ‘세계대전Z’ 영화화 뒤 판매 5배 늘어

    ‘세계대전Z’ 영화화 뒤 판매 5배 늘어

    ‘세계대전Z’, ‘코스모폴리스’, ‘빅픽처’ 등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한다. 먼저 20일 개봉하는 ‘월드워Z’는 2006년 출간된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황금가지 펴냄)를 원작으로 했다. 좀비의 행동방식과 약점, 퇴치법 등을 설명한 2003년 작품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후속작으로 온라인 서점 아마존닷컴에서 50주간 전쟁 장르 1위를 기록하며 밀리언 셀러가 됐다. 브래드 피트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치열한 판권 경쟁을 벌이며 제작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판권 가격은 100만 달러(약 1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개봉하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코스모폴리스’는 돈 드릴로의 동명 소설(새물결 펴냄)을 바탕으로 했다. ‘화이트 노이즈’와 ‘리브라’ 등을 쓴 드릴로는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필립 로스와 함께 ‘미국 현대 문학의 4대 작가’로 꼽히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소설가다. 영화는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자산 전문가 에릭 패커가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이면을 파고든다. 감독이 6일 만에 완성한 시나리오에 대해 드릴로는 “책과 아주 흡사하다. 원작의 정신을 잘 살렸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과 쥘리에트 비노슈 등을 캐스팅하며 화제가 됐다.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빅픽처’는 2010년 6월 국내에 출간되며 무려 153주간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킨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밝은세상 펴냄)을 각색했다. 프랑스 영화인 만큼 소설 속 배경인 월스트리트는 파리로 옮겨갔지만 잘나가던 변호사가 아내와 불륜에 빠진 사진 작가를 살해한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진 작가로 대신 살아간다는 큰 틀은 그대로 가져왔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면서 출판사들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영화 개봉 직후 판매량이 크게 뛴 ‘위대한 개츠비’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세계대전Z’를 출간한 황금가지 관계자는 “지난해 대비 5배 정도 판매량이 늘었다”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나 ‘나는 전설이다’ 등의 사례를 볼 때 유명한 영화일수록 원작 소설의 판매량도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더 독해진 ‘문단의 이단아’ “28일간의 지옥 맛볼래요?”

    더 독해진 ‘문단의 이단아’ “28일간의 지옥 맛볼래요?”

    “나무가 있다. 그러면 주인공을 몰아서 나무 위로 올려놓고 다시 돌을 던져 내려오게 해요. 거칠게 말하면 그게 서사거든요. 우리나라엔 잔잔하게 흘러가는 순문학이 많다 보니 제가 튀어보이나 봐요.”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7년의 밤’으로 30만부를 팔아치운 무서운 작가 정유정(47)이 이번엔 도시 하나를 통째로 무저갱(無底坑)에 빠뜨렸다. 인구 29만의 도시 화양에서 개와 사람은 인수공통전염병에 걸려 삽시간에 죽어나간다. 정부는 군대로 도시를 봉쇄한다. 시민들은 도시 밖으로 한 발짝 제겨딛는 순간 주검이 되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힌 개들은 울부짖다 차갑게 식는다. ‘무간지옥’ 화양에서 벌어지는 28일간의 기록, 그의 신작 ‘28’(은행나무 펴냄)이다. 그는 왜 매번 주인공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걸까. “인물을 엄청난 압박 아래 두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진짜 인간성, 진정한 캐릭터를 볼 수 있어요. 그 선택이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동력이 되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정부가 군대로 에워싼 화양은 1980년 광주와 겹친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작가가 14살 때부터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8’에서 읽히는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시각은 그가 살로 부딪힌 경험과 맞닿아 있다. “15살 때 5·18 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어요. 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주먹밥, 김밥 싸서 나르고 간호사, 의사들이 총맞고 들어온 사람들을 미친 듯이 밤새워 치료했어요. 이런 광경을 봤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그들 자신이지 정부, 소위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는 거죠.” 정유정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사전 공부와 취재다. 2년 3개월의 준비 기간 가운데 6개월을 취재에 매달렸다. 전염병, 재난 상황 등을 실감나게 그리려고 자연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수의학·응급의학과 교수, 특전사 장교, 도 방역과 수의사 등을 만나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 공수부대 움직임, 명령계통 등을 파악하기 위해 5·18 기록집까지 뒤졌다. 소설을 쓸 때마다 그는 도시설계사로도 변신한다. ‘7년의 밤’에서는 거대한 댐을 품은 세령마을을, ‘28’에서는 의정부를 모델로 한 화양시를 축조했다. 작가는 “그게 진짜 ‘노가다’”라며 깔깔댔다. 의정부를 답사한 그는 한 달을 꼬박 스케치북에 화양시 지도를 그려나갔다. “상하수도, 관청, 도로망, 하천 등을 이야기에 맞게 배치하고 그걸 다시 머릿속에 완전히 입력시켜 소설을 써요. 공간을 장악해야 이야기를 밀고 나갈 수 있거든요. 후배한테 나를 화백이라고 불러달라 했어요.”(웃음) 소설은 5명의 주인공과 늑대개 1마리의 시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나아간다. 생생한 늑대개의 시점, 감정,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그는 실제로 늑대와 살았던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동물의 역습’ 등 개 행동학, 심리학 책까지 독파했다. 늑대개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결심을 한 건 구제역 때문에 산 채로 묻힌 돼지들을 보고나서였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삶을 선택하고 자기의 존재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인간과 동물이 똑같은 생명이고 본질적인 가치를 가진 존재인데, 왜 동물을 인간의 복리에 기여하느냐에 따라 판단하고 유해동물 개체수 조절한다고 쏴 죽이고 하느냐는 거예요.” 소설의 끝에서 화양 시민들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우리는 개가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작가는 “동물과 인간이 같은 운명이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인수공통전염병은 결국 동물을 해하면 우리도 자멸하게 된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토록 참담한 서사를 밑바닥까지 긁어내 보여줬지만 그는 “‘28’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 했다. ‘간호사 출신 소설가’, ‘41살에 데뷔한 늦깎이 작가’는 그간 정유정을 수식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꼬리표는 떼어 줘야 할 것 같다. 이 타고난 이야기꾼이 들려줄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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