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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의 ‘거룩한 함성’에 이어지는 韓日 화합의 선율

    3월의 ‘거룩한 함성’에 이어지는 韓日 화합의 선율

    ‘가깝고도 멀다’는 말보다 한일 관계를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평소 별 생각 없다가도 3월이 다가오면 이 관계에 대해 곱씹게 된다. 어느 한쪽의 정답은 없다. 아픔의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도, 애써 마련한 화합을 앞으로 잘 다져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국립합창단은 3·1운동 106주년을 이틀 앞둔 오는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음악극 ‘거룩한 함성’을 세계 초연한다. 작곡가 김민아가 곡을 쓴 이 작품의 부제는 ‘뜨거운 봄날의 외침’이다. 여성 정옥분을 내세워 일제강점기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노래한다. 소프라노 조선형(왼쪽)이 정옥분을 연기한다. 시대적 상황 탓에 사랑하는 이와의 생이별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희생을 감내하는 여성이다. 조선형은 “처음 악보를 봤을 때부터 울컥했다”며 “성악가로서 무대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은 많이 해 왔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옥분의 손자이자 아마추어 소설가, 대기업 직원인 최강산은 배우 차인표(오른쪽)가 연기한다. 최강산은 현실의 차인표와도 묘하게 겹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차인표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 필수도서로도 선정된 바 있다. 차인표는 “이 공연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라며 “강제 동원 여성들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아픔을 충분히 기억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KBS교향악단은 롯데그룹의 후원으로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동연주회를 연다. 새달 2일 도쿄 오페라시티홀과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에는 한국과 일본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이가라시 가오루코가 협연자로 나선다. 두 피아니스트는 두 오케스트라와 함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KBS교향악단 56명, 도쿄필하모닉 55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무대다. 정명훈은 KBS교향악단의 계관지휘자로 올해 여러 공연을 함께할 예정이다. 지난 21일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로 포문을 열었고 이번에도 말러를 준비했다. 앞서 ‘부활’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면, 다음달 3일엔 1번 ‘거인’을 선보인다.
  • 홍상수 베를린 수상 불발…‘만삭’ 김민희엔 “내 프로덕션 매니저”

    홍상수 베를린 수상 불발…‘만삭’ 김민희엔 “내 프로덕션 매니저”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대상)은 노르웨이 감독 다그 요한 하우거루드가 연출한 ‘드림스’에 돌아갔다. 두 차례 2등 상에 해당하는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올해 황금곰상의 기대를 높였던 홍상수 감독의 수상은 아쉽게도 불발됐다.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은 2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드림스’를 비롯해 8개 부문 수상작을 발표하고 시상했다. 이 작품은 여교사와 사랑에 빠진 17세 요하네가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기록하고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 글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드라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토드 헤인스 감독은 “욕망의 원동력과 그 결과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우리가 느끼는 질투를 탐구한다. 날카로운 관찰과 인내심 있는 카메라, 흠잡을 데 없는 연기로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주목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홍상수 감독은 33번째 장편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로 8번째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는 베를린영화제에서만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로 여자배우상(김민희), ‘도망친 여자’(2020)로 감독상, ‘인트로덕션’(2021)으로 각본상, ‘소설가의 영화’(2022)와 ‘여행자의 필요’(2024)로 심사위원대상을 각각 받았다. 베를린영화제에서 5차례 상을 받은 데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초청장을 받아 어느 때보다 황금곰상 수상 기대가 컸다. 홍 감독은 2016년부터 열애 사실을 밝힌 배우 김민희와 베를린을 찾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만삭인 김민희의 이름을 언급하며 ‘프로덕션 매니저(제작실장)’이라고 지칭했다. 김민희는 ‘당신얼굴 앞에서’(2020) 이후 홍 감독 영화에 제작실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 지난 13일 개막한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가 스페셜 갈라 부문, 민규동 감독의 ‘파과’가 스페셜 부문에서 상영되는 등 한국영화 8편이 초청됐다. 23일 수상작 상영과 함께 막을 내린다.
  • 점점 희미해져도… 끝끝내 붙잡아야 할 기억

    점점 희미해져도… 끝끝내 붙잡아야 할 기억

    실종된 친구 찾는 여정 속에서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 떠올려묻어뒀던 공동체 상처 되짚으며죽음을 대하는 태도 다시금 질문 살면서 상처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그것을 빠르게 ‘치료’하는 데 급급했다. 때때로 어떤 상처에는 ‘치유’가 필요하다.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고 천천히,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상처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하나 피어오르는 질문. ‘충분히 아파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가 예소연(33)의 신작 ‘영원에 빚을 져서’는 조금은 불편한 소설이다. 너무 아파서 묻어 뒀던, 너무 힘들어서 제쳐 뒀던 기억을 불러오기에 그렇다. 그리고 독자에게 제안한다. 이거 한번 제대로 보자고. 그냥 쉬쉬할 일이 아니라고. 그랬다간 또 아파해야 한다고. 또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고. 이런 소설가의 제안이 읽는 내내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프고 힘들어서다. 그러나 여기저기 병들어 있는 우리의 진짜 문제는 어쩌면 ‘제대로 아파할 줄도 모르는’ 데 있는 것 아닐까. 여기에 공감한다면 한번 들춰 봐도 괜찮은 소설이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될 리 없어.”(93쪽)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은 크게 네 사람이다. 혜란과 동, 석, 그리고 캄보디아인 삐썻이다. 이야기는 동의 시점으로 풀어 간다. 대학 시절 동, 혜란, 석은 학점을 따기 위해 캄보디아 프놈펜 바울학교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친해졌다. 그러나 현지에서 느끼는 환멸이 점점 깊어진다. ‘봉사’라는 거창한 이름이 달린 이 활동은 정말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는가. 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앞에 서 있는 우리는 누구를 가르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이런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셋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석이 실종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석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은 바로 캄보디아. 동과 혜란도 무엇인가에 이끌려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거기서 삐썻을 만난다. 삐썻은 과거 석과 깊은 교감을 나눴던 사이. 다시 돌아간 캄보디아에서 동과 혜란은 오랜만에 만나는 삐썻과의 대화를 통해 석의 행방을 유추하기 시작한다. “참사는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거야. 이렇게 잊히기만 한다면 말야.”(60쪽) 예소연은 기어이 ‘참사’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소설의 원고가 이미 마감됐을 지난해 말에는 무안국제공항에서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179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예상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사고들이 일상에 불청객처럼 들이닥친다. 그리고 인간의 실존과 사회의 정의와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인간의 생명은 우리가 가장 나중까지 지켜야 할 지고의 가치이지만, 그것은 언제든 사고로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 동, 혜란, 석이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을 2014년,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당시 삐썻은 캄보디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 준다. 2010년 프놈펜에서 축제 기간 벌어졌던 대규모 압사 사고. 축제장에 먼저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수백명이 다리에 갇힌 채 깔려 죽었다. 석이는 당시 삐썻에게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 그런 죽음이 다 있어”(58쪽)라고 말했지만, 그런 죽음도 있는 것이다. 삐썻은 “미안해요. 그런데, 어떤 죽음은 그런 식이기도 해요. 다를 게 없어요.” 중요한 건 이런 죽음들을 대하는 공동체의 태도다. 그렇다고 예소연의 소설이 독자더러 ‘어떻게 해야 한다’는 투로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음과 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바라볼 뿐이다. 죽음도, 참사도, 아픔도 언젠간 잊힐 것이다. 그렇다고 쉽게, 일부러 잊지는 말자는 단단한 다짐. ‘충분히 아파한다는 것’은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예소연은 2021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신예다. 최근 최연소의 나이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것 외에 문지문학상, 황금드래곤문학상, 이효석문학상(우수작품상)을 받으며 탄탄한 문학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 김민희, 만삭 출국 포착…코트 속 D라인 ‘불룩’

    김민희, 만삭 출국 포착…코트 속 D라인 ‘불룩’

    배우 김민희(42)가 만삭의 몸으로 포착됐다. 지난 19일 BBS는 김민희와 홍상수(64) 감독이 이날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독일 뮌헨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 수속을 밟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김민희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채 롱코트를 입고 홍상수 감독과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다. 임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민희는 박시한 롱코트를 입었음에도 D라인의 배가 불룩 드러났다. 홍상수 감독은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로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장편 경쟁 섹션에 초청받았다. 이 영화는 21일 오전 3시(현지 시각 20일 오후 7시)에 해당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한 젊은 여성이 자기 남자친구를 가족들에게 소개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이 영화에는 배우 하성국과 김민희 권해효 등이 출연하며, 김민희는 제작실장으로 참여했다. 특히 이 영화는 올해 유일한 경쟁 부문 진출작이다. 홍상수 감독은 ‘도망친 여자’ ‘인트로덕션’ ‘소설가의 영화’ ‘물안에서’ ‘여행자의 필요’에 이어 경쟁 부문에 이번 영화로 무려 6년 연속 초청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은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단골 수상자로도 유명하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2017년 제67회 은곰상 여우주연상(김민희)을, ‘도망친 여자’로 2020년 제70회 은곰상 감독상을, ‘인트로덕션’으로 2021년 제71회 은곰상 각본상을, ‘소설가의 영화’로 2022년 제72회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여행자의 필요’로 2024년 제74회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바 있다. 한편 홍상수 감독과 9년째 불륜 관계를 지속 중인 김민희가 자연 임신했다는 보도가 지난달 나왔다. 올봄 출산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지난 2015년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통해 연인으로 발전, 2017년 불륜 관계를 인정했다. 홍상수 감독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 송승환·존 리·김영하, 대구 북구에 뜬다…연말까지 명사 특강

    송승환·존 리·김영하, 대구 북구에 뜬다…연말까지 명사 특강

    국내를 대표하는 각계 저명인사들이 대구 북구 주민을 위해 강단에 오른다. 20일 대구 북구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12월까지 총 17회에 걸쳐 이어지는 특별 강연은 주민 자기 계발과 공직사회 역량 강화를 위해 마련됐다. 특별강연은 주민을 위한 ‘2025 행복북구 명사초청 아카데미’와 직원 맞춤형 강연 ‘배경지식’으로 구성됐다. 명사초청 아카데미는 다음 달 5일부터 11월까지 총 8회 열린다. 첫 번째 강연은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지낸 송승환 배우가 맡는다. 이후 경제전문가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경제 및 국제정세 분야 유튜버 박종훈 전 KBS 기자, ‘알쓸신잡’에 출연했던 현대 한국문학 대표 소설가 김영하 작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등이 강단에 오른다. 직원들에게 급변하는 사회상을 읽는 안목을 키워주기 위해 마련한 맞춤형 특별강연 ‘배경지식’은 총 9회 운영한다. 배경지식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에는 ‘배움이 경쟁력, 지식의 스펙트럼을 넓혀라’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강연은 다음 달 20일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을 지낸 미래성장산업 전문가 윤종록 교수를 시작으로 도시개발 전문가 변창흠 교수, 도시계획 전문가 마강래 중앙대 교수, ‘반도체 제국의 미래’ 저자 정인성 작가, 뇌과학 전문가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 등의 강연이 연말까지 이어진다. ‘2025 행복북구 명사초청 아카데미’는 북구 주민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개별 강의 시작 2주 전부터 북구평생학습센터 누리집이나 북구 평생학습 카카오톡 채널 ‘대구북구 배움톡’, 전화접수 등을 통해 선착순으로 사전 신청을 받는다. 배광식 대구 북구청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깊이 있는 강연을 통해 주민들과 직원들이 최신 트렌드와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자기 계발의 기회를 얻는 좋은 배움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적지 않지만 인생 역전도 애매한 5000만원에 꼬여버린 우리 [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적지 않지만 인생 역전도 애매한 5000만원에 꼬여버린 우리 [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젊은작가상 대상 ‘반의반의 반’요양원서 돈에 얽힌 마음 묘사정직하게 또박또박 질문 건네백 “신앙·공포 소설 쓰고 싶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의 대졸 초임 평균 연봉은 5001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숫자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또렷한 사실은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와 수천 명의 경쟁자를 제쳐야 비로소 1년에 5000만원의 돈을 받는다는 것. 이렇게 보면 5000만원이라는 돈은 정말 만만치 않은 액수다. 그러나 5000만원이 있으면 곧장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나. 어림없는 소리다. 가상화폐(코인)로 수억 원,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무성한 시대에 우리 삶에서 5000만원이 차지하는 위상은 어떤 것일까. ‘젊은작가상’은 젊은 소설가들이 꿈꾸는 상이다. 올해 대상작 ‘반의반의 반’은 5000만원을 둘러싼 이야기다. 분명히 큰돈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모든 욕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소설을 쓴 작가 백온유(32)를 16일 서면으로 만났다. “나에게도 5000만원은 큰돈이다. 그렇다고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돈은 아니지 않나. 그 애매함이 소설에서 재밌게 작용할 것 같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돈 때문에 천박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발버둥칠수록 그 돈에 자꾸만 연연하게 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소설 속 치매에 걸린 할머니 영실은 5000만원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손녀 현진이 폐쇄회로(CC)TV를 들여다봤더니 가장 유력한 범인은 요양보호사 수경이다. 하지만 영실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 영실을 가장 가까운 곁에서 지켰던 수경에게 혈육보다 진한 정을 느낀 것일까. 영실은 “처음부터 5000만원 같은 건 없었다”고 중얼거린다. 수경이 돈을 훔쳤는지 아닌지, ‘팩트’는 저 너머에 있다. 소설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걸 둘러싼 마음이다. “인물들은 5000만원이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한다. 2500만원만 있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아니 그것의 반만 있었어도 삶이 덜 힘들었을 텐데, 생각한다. 인물들은 ‘돈이 없어서’ 자신의 분수를 재고 따지는 날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만큼 꿈꾸는 삶의 규모도 축소됐을 거고. 제목 ‘반의반의 반’은 그렇게 쪼그라든 삶의 크기이자,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는 가족의 의미다.” 굴지의 문학 출판사인 문학동네가 주는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이하 작가들의 중단편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고른다. 올해 16회를 맞았다. 김애란, 황정은, 박상영 등 동시대 가장 뜨거운 소설가 대부분이 젊은작가상을 거쳤다. 백온유 역시 대학생 때부터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탐독하며 필사까지 했다고 전했다. 2017년 MBC 창작동화대상, 2020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백온유의 소설은 또렷한 힘을 지닌 것처럼 읽힌다. 이야기를 에두르거나 문장을 배배 꼬지 않는다. 또박또박 정직하고도 힘 있게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그렇게 완성한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앞으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다음에는 공포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언젠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냐는 질문에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소설’을 쓰겠다고 답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꾸준히 쓸 것이다.”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우리의 파안(이동욱 지음, 문학동네) “기린의 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무럭무럭 자랐다/슬픔이 되기 위해 종일 먹었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시인으로 등단한 뒤 2009년 다른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도 활동하게 된 작가 이동욱의 두 번째 시집이다. 시와 소설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단단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작가는 고요가 부서지는 순간에 발생하는 역설적인 서정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이번 시집의 주요 이미지는 내면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커다란 웃음, 파안(破顔)이다. 이동욱의 파안은 새로움이 탄생할 토대로서의 부숨이다.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를 통해 내면의 세계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124쪽, 1만 2000원. 여덟 마리 말 그림(선충원 지음, 강경이 옮김, 문학과지성사) “누구나 각자의 뜻에 따라 예배당을 하나씩 짓고 자신이 믿는 하늘을 섬긴다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학의 순수성을 고집했던 중국 작가 선충원의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여덟 마리 말 그림’은 학술적 성취를 이루고 성인군자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억눌린 욕망으로 정신적 결핍과 왜곡된 성 심리를 가진 대학교수 8명을 풍자하며 1930년대 당대 중국 지식인들의 군상을 보여 준다. 군벌 전쟁 속에서 희생된 평범한 개인들의 아픔을 살피는 작가는 근대 중국의 암울한 민낯을 가감 없이 들춰낸다. 작가의 목표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인간의 본성을 문학을 통해 회복시키는 것이다. 374쪽, 1만 7000원. 너의 섬(존 클라센 글·그림, 서남희 옮김, 주니어RHK) “이건 너의 해님이야. 너를 위해 두둥실 뜨고 있어.” 전 세계에 확고한 팬을 거느린 그림책계의 거장 존 클라센의 신작 그림책이다. 클라센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 단순하면서 무표정한 캐릭터, 간결함 속에 깃든 재치와 유머, 독특한 구성과 편안한 분위기로 독자를 매혹한다. 작가는 그림책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작은 판형과 적은 페이지의 보드북을 생각하고 완성하면서 끊임없이 상상 속 아이의 질문과 마주했다고 한다. 이 그림책은 그 대화를 옮긴 것이라고도 하겠다. ‘너의 섬’ 외에도 ‘너의 숲’, ‘너의 농장’까지 총 3권이 한꺼번에 번역됐다. 클라센의 작품세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서남희가 역자로 참여했다. 24쪽, 1만 4000원.
  • “작품 완성은 창작의 시작”… 예술 한계 넓힌 ‘현대미술의 황제’[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작품 완성은 창작의 시작”… 예술 한계 넓힌 ‘현대미술의 황제’[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예술가는 가난해야’ 편견 격파대중성보다는 실험·도전하며 혁신창조적 방식으로 예술·상업성 조화불편함·자극 강조, 각성의 철학아름다움·편안보다 충격적 메시지불의 고발, 세상 보는 방식 변화시켜천재적 재능과 끊임없는 혁신전통미술 개념 파괴, 입체주의 창안유화·조각 등 사상 최다 5만점 남겨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현대미술의 혁명가’ 이러한 찬사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신화적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그가 남긴 말속에 있다. 피카소의 명언을 통해 그가 이룬 성공 비결을 찾아보자. 첫 번째 명언.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 이 말은 이른 성공과 막대한 부를 축적한 피카소의 상황과는 상반되는 표현이다. 피카소는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였다. 피카소의 전기작가 롤런드 펜로즈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예로 들었다. “피카소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연필로 그린 데생이나 심지어 낙서조차 황금으로 변했다. 1945년 피카소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집 한 채를 샀다. 그는 이 집을 자신이 그린 정물화 한 점과 맞바꿨다. 그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건 그림을 그려 주고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독자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황금 가마를 타고 인생의 꽃길을 걸었던 피카소가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의미는 무엇일까. 역설적인 말속에는 그의 예술가적 가치관과 성공 원칙이 담겨 있다. ●성공은 창작 자유·혁신 지속하는 도구 피카소에게 성공이란 창작의 자유와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도구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술시장에는 예술가가 작품을 팔기 위해서는 대중과 타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대다수의 예술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창작을 지속하거나 반대로 상업적 성공을 위해 예술적 신념을 희생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피카소는 사진작가 브로샤이와 나눈 대화에서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성공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들은 예술가는 자신을 위해서, 혹은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만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거짓말이 또 있을까? 예술가에게는 성공이 필요하다. 삶을 꾸려 가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대중과 타협하지 않고 역행하는 성공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보통의 예술가는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하면 초심을 잃고 창작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피카소는 달랐다. 그는 가난했던 20대 초반 시절이나 성공한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예술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후에도 대중의 취향을 따르는 대신 실험과 도전을 감행하며 혁신적인 작품으로 미술시장을 이끌었다. 피카소는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편견을 깼다.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니라 부를 예술적 자유로 바꿀 줄 아는 예술가였다. 그는 ‘예술과 상업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방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직업화가의 본보기다. 두 번째 명언. “좋은 그림에는 수많은 면도날이 박혀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미술이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과 자극을 줘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그의 예술철학을 반영한다. 면도날은 무언가를 베어 내고 잘라 내는 도구로 사용되며 날카롭고 위험한 느낌을 준다. 면도날이 박혀 있는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충격과 불편함을 주게 될 것이다. 피카소에게 좋은 그림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베어 내고 생각의 틀을 잘라 내는 것이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카소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미술은 사회적 메시지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 비록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피카소의 면도날과 카프카의 도끼는 같은 의미를 지녔다. 기존의 익숙한 세계를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충격과 각성을 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그림과 도끼처럼 얼어붙은 사고를 깨뜨리는 책이 피카소와 카프카가 전하는 진정한 예술과 문학의 역할이다.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작품 1)는 면도날과 같은 예리함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좋은 그림의 예시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바스크 지방의 마을 게르니카를 주제로 삼은 이 작품은 미적 감상을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니다. 관객이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거칠고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됐다. 이 그림은 마치 면도날로 화면을 베어 낸 것처럼 보는 사람의 감정을 긁어내며 상처를 남긴다. 작품의 거대한 크기는 그림 속 사건의 규모와 파괴력을 강조한다. 사람, 동물, 사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해되고 재조합돼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는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희망과 절망 등 상반되는 요소를 부각시키며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림 속에서 말은 창에 찔려 고통스러워하고,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와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비명과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게르니카’를 보는 관객은 아름다움이나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이 작품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자극을 줘 전쟁의 잔혹함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회화는 아파트를 장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과 싸우며 공격과 수비를 행하는 하나의 전투무기이다.” 그는 미술이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예술철학을 ‘게르니카’를 통해 증명했다. 세 번째 명언.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가능하면 사람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리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유별나게 그리려고 애쓴다.” 이 말은 피카소가 왜 20세기 예술의 역사를 바꾼 혁신가로 평가받는지 알려 준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 재능을 보인 신동이었다. 그는 12세에 이미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처럼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아동 미술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13세에는 미술교사이자 화가인 아버지의 그림 실력을 뛰어넘었다. 아들이 천재라는 사실을 확인한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그림 도구를 물려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화가의 권리를 이양했다. 피카소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지는 내 손에 자신의 물감과 붓을 쥐여 주셨다. 화구들을 내게 물려준 이후에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셨다.” 14세의 피카소는 스페인 최고 미술학교 입학시험에서 하루 만에 고급반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6세에 그린 ‘과학과 자비’(작품 2)는 마드리드 국전에 출품돼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천재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의사(과학)와 수녀(자비)가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뛰어난 구도, 빛과 그림자의 활용, 인물의 감정 표현 등을 통해 인간이 과학과 신앙, 이성과 감정적 접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피카소는 19세에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 대표 작가로 선정된 이후 1900년 파리로 건너가 진보적인 예술가 집단의 주목을 받으며 전위예술을 이끌었다. 24세에 ‘장밋빛 시기’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안주하지 않고 혁신적인 입체주의를 창안했다.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작품 3)은 전통 미술의 개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각 개념을 창조한 입체주의 대표 작품이다. 르네상스 이후 예술가들은 일점 원근법을 사용해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캔버스에 재현하는 방식을 따랐다. 그러나 피카소는 기존 관습을 깨고 여러 시점에서 본 형태들을 한 화면에 배치해 시간성, 공간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개발했다. 이 작품에서도 볼라르의 얼굴과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각 부분을 기하학적 형태로 나누고 다시점에서 본 형태를 하나의 화면에 결합했다. 2차원 평면에 다중 시점, 기하학적 형태, 중첩된 공간 등을 구현한 입체주의 양식은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을 가져왔다.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의 업적을 이렇게 평가했다. “당시 모든 예술가들은 눈으로는 20세기를 보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파악한 것은 19세기의 현실이었다. 피카소는 회화에서 눈으로 20세기를 보는 동시에 실제로도 20세기의 현실을 포착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성공이란 도전하며 미래 만드는 과정 피카소는 천재로 태어났지만 그것만으로 현대미술의 황제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조각, 판화, 도예, 무용극 등 다양한 미술 양식을 탐구하며 미술의 한계를 확장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창작혼을 불태우며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유화 1만 3500점, 조각 700점, 판화, 데생, 도자기 등 5만여점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피카소가 남긴 이 말은 그의 진정한 성공 비결을 알려 준다. “한 점의 그림을 끝내자마자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림을 중단하고 더이상 손대지 않기로 결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그 아래 끝이라고 쓸 수는 없다.” 피카소의 명언은 우리에게 성공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교훈을 줬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종착지가 아닌 더 위대한 창작을 위한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의 삶과 예술이 증명하듯 성공이란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도전하며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간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비굴하지 않은 노년의 사랑인데… 왜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처럼 느껴질까

    비굴하지 않은 노년의 사랑인데… 왜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처럼 느껴질까

    노년의 사랑은 ‘노욕’으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신록의 아름다움, 질풍노도의 강렬함을 두루 갖춘 청춘의 사랑과 어찌 비교될 수 있을까. 소설 ‘폴란드인’은 그 위험한 도전에 나선 책이다. 노벨문학상, 두 번의 부커상을 수상한 존 맥스웰 쿳시가 스페인어로 2022년 처음 발표했다. “영어의 패권적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영어로는 그 이듬해 출간됐다. 쿳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주했다. 영어권 국가의 남자다. 한데 폴란드인의 남녀 주인공은 각각 폴란드와 스페인 사람이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을 두 나라 사람의 성정을 작가가 무척이나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쿳시는 여성 시점으로 이 책을 썼다. 그는 여성의 심리를 남성의 심리보다 잘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상찬을 듣는다. 남자의 관점에선 그 부분도 놀랍다. 둘의 사랑은 일방적이다. 노인이 첫눈에 빠진 여인에게 무작정 ‘고백 공격’을 퍼붓고, 여인은 교묘한 ‘회피 기동’으로 피해 간다. 그래서 외형은 러브 스토리지만 내용은 몹시 차갑다. 식은 커피처럼. 두 남녀 주인공이 가진 언어의 간극은 이를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또 하나. 쿳시는 “모든 글은 자서전”이란 말로 유명한 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도 그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봐야 할까. 쿳시의 나이 85세. 소설의 남주인공 비톨트는 70세, 여주인공 베아트리스는 46세다. 줄거리는 이렇다. ‘쇼팽 전문가’인 노년의 폴란드 피아니스트 비톨트가 자신의 스페인 독주회를 주선한 바르셀로나의 부유한 은행가의 아내 베아트리스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진다. 비톨트는 차갑고 핏기 없는 희멀건 피부의 노인, 베아트리스는 여전히 아름다운, 그러나 지독히 현실적인 중년 여성이다. 발단 자체가 냉랭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책의 원형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 이야기다. 단테가 아홉 살 때 경험한 한 번의 만남으로 베아트리체를 평생 사랑한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말이다. 여기에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과 자유분방한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사랑 이야기가 얹혔다. 비톨트는 베아트리스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렇다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자신이 원하던 것, 그러니까 잠자리를 얻은 이후에도 그는 베아트리스의 속내대로 그녀의 삶에서 조용하게 사라진다. 그리고 소설의 중후반쯤 들려오는 남자 주인공의 난데없는 죽음. 소설은 또 다른 국면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육욕을 ‘따로 또 같이’ 처리하는 저자의 철학적 해석이 깊고 유연하다.
  • [책꽂이]

    [책꽂이]

    천사들의 엄격함(윌리엄 에긴턴 지음, 김한영 옮김, 까치) 아르헨티나 시인이자 소설가 보르헤스, 불확정성원리로 양자역학을 완성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근대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 이들이 몸담은 분야는 문학, 물리학, 철학으로 각기 다르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와 감각하는 세계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인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철학자인 저자는 3인의 삶과 저작을 독창적으로 연결해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가 인간의 제한적인 관점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 준다. 420쪽, 2만 3000원. 두 얼굴의 중국 경제(오광진 지음, 솔과학) 중국 경제가 정점을 이미 찍어 미국을 추월하기 힘들 것이라는 ‘피크 차이나’와 여전히 전 세계 산업에 타격을 줄 만큼 강하고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차이나 쇼크’. 저자는 어느 한쪽이 아닌 상반된 두 관점으로 중국 경제의 양면성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으로 미중 간 경제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현재 중국의 모습을 정확하게 드러내 미중 갈등의 향방을 예측하고 한국이 나가야 할 길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320쪽, 2만원. 빙하 곁에 머물기(신진화 지음, 글항아리) 지질학자가 지층에 새겨진 역사를 읽듯 빙하학자는 빙하로 과거 기후변동을 읽고 지구 역사를 파헤친다. 또 미래 기후를 예측하기도 한다. 국내 유일의 여성 빙하학자인 저자는 기후변화로 빙하가 다 녹아 사라지면 직업을 잃게 된다는 웃지 못할 농담을 던지면서 기후위기는 실제 상황이며, 그 원인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뻔한 기후변화 이야기들이 아니다. 저자가 직접 극지 연구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풀어내 위기감이 한층 실감 난다. 276쪽, 1만 8000원. 한국불교와 그 미술(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옮김, 눈빛) 한국 전통문화의 많은 부분은 1000년 넘게 지속된 불교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점은 우리에게 익숙한 불교 전통문화를 외국인 전문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사학자이자 한국 불교미술 전문가인 존 카터 코벨(1910~1996)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편역자가 책에 나오는 내용을 재확인하기 위해 직지사, 용주사, 송광사 등을 직접 답사해 보완, 수정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코벨의 책이자 편역자의 책이다. 504쪽, 3만 3000원.
  • 임윤찬 협연하는 파리오케…퐁피두센터 부산은 2030년 개관 목표(종합)

    임윤찬 협연하는 파리오케…퐁피두센터 부산은 2030년 개관 목표(종합)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딱 1년 앞둔 올해 상반기 다채로운 프랑스 문화의 정수를 국내에서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파리오케스트라가 한국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함께 내한 공연을 펼친다. ‘가려진 세계를 넘어’의 저자로 한국계 프랑스어권 작가인 채세린의 문학 투어도 예정됐다. 주한프랑스대사관은 6일 서울 서대문구 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 상반기 프랑스 관련 주요 문화 행사 일정을 소개했다. 오는 6월 10~15일 내한하는 파리오케스트라는 임윤찬과 호흡을 맞춘다.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다섯 차례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앞서 4월 29~5월 2일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도 내한하는데,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와 협연으로 서울, 대구, 부천 등지에서 생상스, 비제, 라흐마니노프, 무소르그스키 등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3월 20~22일에는 피아니스트 올리비에 드 스피겔레르의 투어도 진행된다. 프랑스어권 작가인 채세린은 3월 10~14일 한국 내 알리앙스 프랑세즈 및 대학들에서 여성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신뢰와 불신, 경계,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프랑스의 유명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바루가 2월 18~23일 한국을 찾아 독자를 만난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이하는 ‘공쿠르문학상-한국’ 프로그램도 이어지는데, 2023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은 소설가 장바티스트 앙드레아가 3월 방한한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그녀를 보살피다’는 오는 3월 열린책들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행사는 3월 22~26일까지다. K팝 관련 행사도 준비돼 있다. 프랑스 국립음악센터, JYP퍼블리싱, 앰플리파이드, 리웨이 뮤직 앤 미디어와 함께 프랑스 작곡가 4명이 JYP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에서 케이팝 작곡 캠프 ‘케이팝 아뜰리에’를 열 계획이다. 프랑스 작곡가과 K팝 기획사가 힘을 합쳐 새로운 K팝 히트곡을 만든다는 포부다. 이 행사는 3월 24~30일간 이어진다. 이 외에도 프랑스 유명 인류사 박물관인 케브랑리 박물관 컬렉션에서 선별된 180점 이상의 태평양 예술 걸작을 소개하는 전시 ‘전시-오세아니아 : 대양의 예술’도 4월 20일부터 9월 14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다. 4월 4~13일은 ‘프랑스 영화주간’으로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선정된 프랑스 영화 10편을 부산 영화의전당 등지에서 단독으로 상영한다. 6월 5~8일에는 열리는 부산국제무용제(BIDF)에서도 칸느시와 협업해 안무가 에르베 쿠비와 로젤라 하이타워 콩세르바투아의 젊은 무용수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주한프랑스대사관의 요한 르 탈렉 주한프랑스대사관 문정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부산시와 협의 중인 퐁피두 센터 부산 분원의 개관 일정을 2030년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요한 르 탈렉 주한프랑스대사관 문정관은 “퐁피두 센터가 부산시와 2030년 부산 분원 개관을 목표로 논의를 주고받고 있다”며 “서울에 위치하는 퐁피두 센터는 내년 개관해 8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고 부산 퐁피두 센터는 분원으로 운영하며 상설 전시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퐁피두 센터는 현재 국내 기업 한화와 함께 서울 분원 개관을 준비하면서 부산시와도 유치를 논의 중이다. 다만 퐁피두 센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연간 수십억원의 비용이 드는 문제를 비롯해 한국에만 두 개의 분원이 생기는 것에 대해 미술계와 부산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다.
  • 유체처럼 엉키는 군중, 참사 예측해 막는다

    유체처럼 엉키는 군중, 참사 예측해 막는다

    군중 1㎡당 9명 임계밀도 넘어서면외부 자극 없이도 유체처럼 움직여“집단 행동 예측해 사고 예방 도움” 콘서트나 축제에서 갑자기 수백~수천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질식이나 압사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은 대규모 군중 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 그렇지만 콘서트장이나 야구장 관객 수와 달리 광장처럼 개방된 공간에서 모이는 인원을 비교적 정확히 추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군중의 움직임을 예측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리옹 고등사범학교(ENS), 클로드 베르나르 리옹1 대학, 스페인 나바라대 응용수학·물리학과 공동 연구팀은 특정 지역에서 일정 인구밀도를 넘어서면 대규모 군중의 집단적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수리 예측 모델은 제한된 환경에서 위험한 군중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네이처’ 2월 6일자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스페인 팜플로나의 전통 행사인 산 페르민 축제에 모이는 사람들을 4년간 관찰했다. 산 페르민 축제는 스페인 북부 나바라주 수호성인 성 페르민을 기리기 위해 주도 팜플로나에서 매년 7월 6일 정오에 시작해 14일 밤 12시까지 열린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매년 100만 명 이상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연구팀은 산 페르민 축제가 열리는 길이 50m, 폭 20m 광장 두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약 5000명으로 추산되는 군중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연구팀은 영상 자료와 유체역학을 이용해 군중을 유체처럼 하나의 연속체로 취급하는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분석했다. 그 결과 축제 시작 1시간 전에는 1㎡당 2명이었던 군중 밀도가 축제가 시작되면 1㎡당 6명으로 늘어나는 것이 관찰됐다. 축제 시작 후 30분~1시간 이내에 군중 밀도가 순간적으로 최대 1㎡당 9명까지 급증하는 것도 확인됐다. 1㎡당 9명은 임계 밀도로, 이 수치를 넘어서면 위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임계 밀도에 도달하면 수백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밀거나 갑자기 넘어지는 등 외부 자극 없이도 18초 단위로 진동하는 유체처럼 움직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런 예측 결과가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산 페르민 축제의 영상과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음악 축제 ‘러브 퍼레이드’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장면을 비교 분석했다. 러브 퍼레이드 압사 사고는 행사장으로 연결된 경사진 통로에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엉켜 넘어지면서 21명이 숨지고 약 650명이 다친 참사다. 연구팀은 러브 퍼레이드 군중이 산 페르민 축제와 비슷한 군중 밀도로 변하는 것과 똑같은 유체 진동을 발견했다. 특히 참사가 임계 밀도를 넘어서는 순간 발생한 것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데니스 바르톨로 리옹 고등사범학교 교수(유체역학·집단 역학)는 “수천 명이 모인 집단에서 역학 관계를 반복적이고 안전하게 실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측 모델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이번 연구는 일종의 ‘닫힌계’(closed system)에서 군중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예측해 참사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주인공 빼곤 이해 안 가는 인물들의 향연, 그나마 액션 볼만한 ‘브로큰’

    주인공 빼곤 이해 안 가는 인물들의 향연, 그나마 액션 볼만한 ‘브로큰’

    하나뿐인 동생이 죽고 동생의 아내는 자취를 감췄다. 동생이 죽은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게다가 동생의 죽음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에 이미 예견됐다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5일 개봉하는 ‘브로큰’은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달려 나가는 형 민태(하정우)의 고군분투를 그렸다. 동생 석태(박종환)를 누가 죽였는지, 동생의 아내 문영(유다인)은 왜 자취를 감췄는지, 베스트셀러 소설가 호령(김남길)은 어째서 문영을 쫓는지, 그리고 자신이 몸담았던 폭력 조직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폭주의 동력은 분노와 폭력이다. 민태는 작은 배관용 쇠 파이프 하나만 들고 과거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은 물론 라이벌 조직의 조직원, 사라진 문영과 호령 등을 찾아가 진실을 말하라며 위협하고 두들겨 팬다. 다소 폭력적인 방식이긴 하나, 동생의 죽음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민태의 행위에 공감이 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의 온도는 이야기의 비밀이 풀리는 후반부에서 급격하게 식어 버린다. 다른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동기가 민태에 비해 훨씬 약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협박당했거나, 연락이 안 돼 진실을 몰랐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관객으로선 맥이 풀리게 마련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는 탄식이 나온다. 뭔가 큰 음모를 기대했지만 숨어버린 동생의 아내나 명예를 지켜야 하는 소설가, 조직을 위해 진실을 묻어버린 보스, 그리고 민태와 동행한 조직원 등은 영화 제목처럼 그저 ‘망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이야기는 허무하게 주저앉지만 하정우의 섬세한 감정선이 돋보인다. 좌충우돌하는 인물인데도 분노를 꾹꾹 누르고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나마 볼 만하다. 하정우는 “정제되어 있지 않은 민낯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부분 로케이션 촬영이어서 현장 분위기에 도움을 받아 바로 그 순간에 느낀 것들을 표현했다”며 “동생 죽음 후 모든 것이 산산이 조각나버린 민태를 본능에 따라 충실히 소화했다”고 밝혔다. 성긴 이야기의 틈을 액션이 힘겹게 메운다. 특히 민태가 들고 다니는 ‘ㄱ’자 모양 쇠 파이프가 눈에 띈다. 연출을 맡은 김진황 감독이 단편영화 제작비를 벌고자 배관 설비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경험에서 나왔다고 한다. “차가운 파이프를 보면서 날 선 이미지가 떠올랐고, 맞으면 많이 아프겠다고 생각해 사용했다”고 밝힌 감독의 말처럼 영화 내내 강렬하다. 언뜻 ‘올드보이’(2003)의 장도리 액션이 떠오를 법하다. 99분. 15세 이상 관람가.
  • “역사 교훈에 재미 더해”… 30년간 빛난 ‘명성황후’

    “역사 교훈에 재미 더해”… 30년간 빛난 ‘명성황후’

    100만 관객 누적·1000회 공연 기록“안무·소품 등 꾸준히 변모하며 발전” 국내 대표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구한말 일본의 침략과 위태로워진 나라의 명운을 둘러싼 조선 왕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1995년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공연한 뒤 창작 뮤지컬 최초로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고 1000회 공연 기록을 달성했다. 초연부터 30주년 공연까지 제작에 참여한 윤호진 예술감독은 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명성황후’ 프레스콜에서 이 작품의 흥행 비결에 대해 “역사의 교훈과 재미, 보편성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 100년, 200년 갈 수 있는 뮤지컬이 되도록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명성황후’는 1997년 한국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다. 윤 감독은 “‘명성황후’가 저에게는 효녀 같은 작품이지만 흥행 실패로 빚을 떠안기도 하고 해외 공연 당시 외국에서 수모를 겪은 적도 있었다”면서 “꾸준히 극장을 찾아 주신 관객들 덕분에 긴 세월 공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명성황후’는 넘버 ‘수태굿’과 ‘무과시험’ 등이 추가되는 등 지난 30년간 꾸준히 변모해 왔다. 윤 감독은 “그동안 단 한 번도 같은 작품을 올린 적이 없고 가사와 안무, 무대와 조명, 의상이나 소품 등에 변형을 줬다”면서 “좋은 작품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성원해 주신 관객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30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배우 김소현, 신영숙, 차지연이 명성황후를 맡았으며 강필석, 손준호, 김주택이 고종을 연기한다. ‘명성황후’에 처음 출연하는 차지연은 “이번 ‘명성황후’는 더 자애롭고 따뜻한 모습을 부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는 어린이 관객들의 극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 자막을 제공한다. 한편 이날 프레스콜을 마친 후 30년간 작품을 만들어 온 창작진과 배우에게 감사를 표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뮤지컬의 원작이 된 희곡 ‘여우사냥’을 집필한 이문열 소설가는 “윤 감독이 2년 가까이 하도 졸라서 여관방에서 극본을 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이 작품이 30년간 공연되다니 감개무량하다”고 전했다. 김희갑 작곡가와 양인자 작사가는 함께 무대에 올라 “‘명성황후’의 일원이라는 것이 뿌듯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1997년부터 17년간 작품에 출연해 감사패를 받은 배우 이태원은 “‘명성황후’는 재미 교포였던 저를 한국에 돌아와 살게 해 준 고향 같은 작품”이라면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이번 공연은 다음달 3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어진다.
  • 문학동네, 제16회 젊은작가상 대상에 소설가 백온유

    문학동네, 제16회 젊은작가상 대상에 소설가 백온유

    문학동네는 제16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으로 소설가 백온유의 작품 ‘반의반의 반’을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경위를 집필한 문학평론가 인아영은 “기대가 어느새 원망으로 뒤바뀌고 의심이 오히려 믿음이 되곤 하는 인간사의 질긴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고 했다. 젊은작가상은 대상 1편을 선정하되, 젊은 작가들을 조명하고 격려하자는 취지에서 7편 모두를 수상작으로 본다. 대상을 포함한 수상자 7명에게는 차등 없이 상금 700만원과 트로피가 주어진다. 수상작품집 단행본은 오는 4월 출간되는데, 이 책의 인세(10%)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한 인세를 수상자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지급한다. 백온유 외에도 강보라의 ‘바우어의 정원’,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 성해나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성혜령의 ‘원경’, 이희주의 ‘최애의 아이’, 현호정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이 수상작으로 정해졌다. 심사평과 대상 수상 작가 인터뷰는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실린다.
  • 책벌레 흔적이 흩날리는 눈으로… 영감은 또 다른 영감이 됐다

    책벌레 흔적이 흩날리는 눈으로… 영감은 또 다른 영감이 됐다

    벌레 먹은 구멍이 마치 흩날리는 눈처럼 보여 관람객을 사로잡던 18세기 그림이 그 느낌을 살려 복원되고, 이 과정이 영감이 돼 그림책으로, 그림책은 또 소설 창작으로 이어져 눈길을 끈다.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1707~1769)의 ‘삼일포’와 이수지의 그림책 ‘눈 내리는 삼일포’, 김연수의 동명 단편소설 이야기다. 릴레이의 시작은 202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은 소장품 일부를 복원·보존 처리해 전시회를 열었다. 여기에 ‘삼일포’도 포함됐다. 삼일포는 금강산에서 흘러나온 신계천이 36개 봉우리에 가로막혀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신라 화랑들이 들렀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사흘 동안 머물렀다고 해 삼일포란 이름이 붙었다. 원래 그림은 쪽빛 배경 곳곳에 하얗고 동글동글한 눈이 내리고 있어 운치를 더했다. 사실 눈처럼 보이는 흰 점은 넓적나무좀이 갉아 먹어 구멍이 난 흔적이었다. 화첩 형태의 ‘해동명화집’ 속에 접혀 있던 까닭에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대칭으로 구멍이 났다. 간송미술관은 전시를 앞두고 이 구멍들이 보이지 않게 메울 것을 고민했지만 그동안 관람객들이 그림의 일부로 사랑해 온 역사를 감안해 결국 눈 내리는 모습을 유지한 채 복원했다. 간송미술관 측은 “일반적으로 결손부의 보존 처리는 작품과 유사한 재질로 메운 뒤 색 맞춤을 한다”면서도 “이 작품의 경우 관람객이 오래전부터 눈 내리는 모습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에 더 연한 색으로 칠해 줌으로써 눈 내리는 느낌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이수지는 지난해 ‘눈 내리는 삼일포’라는 그림책을 선보였다. 그는 ‘삼일포’의 장면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살을 붙여 그림책을 완성했다. 조금씩 내리던 눈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쌓여 가더니 마침내 화면을 온통 하얗게 채우면서 끝난다. 구멍이 뚫린 표지도 인상적이다. 이수지는 “오랫동안 관람객의 사랑을 받았던 그대로 구멍을 눈처럼 보이게 한 점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며 “그림이 심사정과 벌레와 미술관의 합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그림책에서 영감을 받은 김연수는 지난 1월 출간된 ‘현대문학’ 70주년 기념 특대호에 단편 ‘눈 내리는 삼일포’를 실었다. 그는 주석에 “서울 서촌의 한 음식점에서 이수지 작가가 한 장씩 넘기며 ‘눈 내리는 삼일포’를 보여 줬다. 이 소설은 그 순간부터 쓰이기 시작했기에 이렇게 밝혀 둔다”고 적었다. 17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어의에게 학질(말라리아)에 걸린 딸을 살려 달라며 ‘덕암’이라는 남자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거듭되는 거절에도 덕암은 왕세손에게 쓴 약재를 얻고자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어의에게 좀이 슬어 구멍이 숭숭 뚫린 것으로 보이는 당대 유명 화가 ‘선재’의 그림을 내놓은 덕암은 그림이 훼손된 게 아니라 일생의 깨달음을 얻은 작가가 직접 구멍을 뚫은 것이라며 그의 말을 전한다. “지금 인생의 풍파에 흔들리고 있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게나. 빛은 거기로 스며드는 것이니까. 자네의 눈으로 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고 해 보게나. 자신의 올바름을 의심할 때, 새로운 길은 열리는 법이라네.” ‘삼일포’ 복원에 참여했던 이선형 간송미술관 유물관리팀장은 “그림책에서 소설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굉장히 신기하다”며 “한 예술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립적인 주체로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 걸쭉한 사투리에 소박한 그림, 책장 넘기다 갑자기 코끝이 찡~

    걸쭉한 사투리에 소박한 그림, 책장 넘기다 갑자기 코끝이 찡~

    “아부지, 우리도 소 한 마리 사불어.” “염병할, 소가 토깽이냐? 사고 잡다고 달랑 사게. 당장 저 도짓소라도 읎으믄 니하고 니 성, 핵교도 끝이여. 그란다고 니놈이 목에다가 멍에를 걸그냐?” 글을 읽고만 있는데도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귀에 착 감긴다. 소가 있는 농촌의 고즈넉한 풍경을 담은 그림은 이야기를 무심하게 받치고 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미소를 짓다가 끝에 가서 코끝이 찡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소설가 전성태의 단편소설에 그림책 작가 한병호가 그림을 얹었다. 동화 ‘소를 줍다’(길벗어린이)는 어른의 눈으로 봐도 읽는 맛이 있는 도톰한 그림책이다. 이미 여러 교과서에도 수록된 작품이지만 거기에 우리 농촌의 소박함을 아름답게 담은 그림이 더해지니 새롭게 읽고 싶은 마음이 무장무장 일어난다. “나가 소를 줏었당께. … 옥강이서 줏었당께요. 다 죽어 가는 걸 나가 생똥을 싼시롬 건져내 부렀어요. 인자 요것은 우리 것이에요.” ‘시양치’(송아지를 뜻하는 전남 방언) 한 마리 기르고 싶었던 동맹이는 어느 날 물살이 불어난 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소 한 마리를 발견한다. 소를 구해서 집으로 끌고 온 동맹이는 ‘소를 주워 왔으니 이제 우리가 키우자’고 생떼를 쓴다. 소는 어쩌다 물에 빠지게 됐을까. 동맹이는 이 소를 무사히 키울 수 있을까.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서영인은 “소를 주운 대가로 보상이나 받아 보려던 속셈이었던 아이는 소가 자라는 과정을 함께하며 점점 더 소를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며 “이것은 소를 주운 아이의 마음이 자라는 과정”이라고 했다. 동맹이 아버지는 흥정에는 재주가 없고 농사도 대충 짓지 않아 또박또박 정성을 다하느라 손이 무척 느리다. 그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에 동맹이는 한 뼘 더 자라난다. 동맹이뿐일까. 아직 아버지의 호통을 들어야 할 어른들도 여럿일 터다. “네이…. 아부지가 뭐라고 하디? 입구녕이 너무 허황되게 넘의 밥그럭을 넘보는 고것을 뭐라고 하디?”
  • 장원영 입김 ‘이 정도일 줄이야’…서점가 돌풍 일으킨 책

    장원영 입김 ‘이 정도일 줄이야’…서점가 돌풍 일으킨 책

    서점가에 ‘장원영 입김’이 거세다.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이 언급한 책 ‘초역 부처의 말’이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교보문고가 31일 발표한 1월 넷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코이케 류노스케의 ‘초역 부처의 말’이 지난주보다 두 계단 상승하며 2위까지 올랐다.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3주 연속 1위를 지켰지만, 지난 12주간 2~3위 자리를 지켰던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 계단씩 내려앉았다. 지난해 5월 출간된 ‘초역 부처의 말’은 장원영이 지난 15일 한 방송에 나와 최근 애독서로 이 책을 소개하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전주 대비 판매량이 56.3% 상승했다. 장원영이 언급한 또 다른 책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도 전주보다 두 계단 올라 20위를 차지하는 등 서점가에 ‘장원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또 다른 국내 대표 서점 중 하나인 예스14 베스트셀러 순위에선 ‘초역 부처의 말’이 ‘소년이 온다’를 꺾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예스24는 “인기 아이돌 장원영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이후 지난 15일부터 29일까지 판매량이 전월 대비 약 29배인 2829.9% 급증했다”고 밝혔다.
  • 외국어와 모국어 사이, 언어의 바다를 항해하다

    외국어와 모국어 사이, 언어의 바다를 항해하다

    독일 강연 한국어로 옮긴 ‘변신’외국서 경계인으로 살아온 작가번역된 언어, 제대로 가닿고 있나사라진 섬나라로 여행 ‘태양제도’인종·국가 넘어 ‘인간’ 의미 찾아서‘Hiruko 여행 3부작’ 마지막 작품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놓인 커다란 바다. 다와다 요코(65)는 이 언어의 망망대해를 기꺼이 항해하는 작가다. 안온한 모국어도, 낯선 외국어도 그의 목적지는 아니다. 그저 그 바다에서 영원히 항해하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와세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활동하는 다와다는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소설가다. 모국어는 일본어지만 일본어뿐만 아니라 독일어로도 글을 쓰는 그가 천착하는 주제는 분명하다. 모국어의 바깥을 유랑하면서 마주하는 마찰들, 그 말의 경계에서 작가는 장난을 친다. 그러나 마냥 장난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가 포착한 말놀이에는 어쩌면 인간의 언어가 분할되기 이전의, 그러니까 인간이 바벨탑의 죄를 짓기 전에 사용하던 언어의 희미한 빛이 담겼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낯선 나라에서 말하면 목소리가 이상하게 고립되고 벌거벗은 채로 공중에 떠다니게 됩니다. 마치 단어가 아니라 새를 내뱉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새의 목소리 또는 낯섦의 문제’·9쪽) 다와다가 독일 튀빙겐대에서 펼친 강연을 한국어로 옮긴 강연집 ‘변신’의 첫 문장이다. 평생 경계인으로 살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였던 다와다는 그 누구보다 ‘변신’(變身)의 감각을 예리하게 벼린다. 이 문장은 언뜻 외국어로 말해야 하는 외국인의 고충처럼 보이지만, 실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언어의 목적은 소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가.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정확히 그가 발화한 의도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반대로 나의 말은 내가 생각한 대로 정확히 타인에게 가닿는가. 의심스럽다. 비단 한국어, 일본어, 영어, 독일어의 문제가 아니다. 발화된 언어는 그것의 외양이 어떻든 언제나 번역의 대상이 된다. 철학자 발터 베냐민(1892~1940)은 에세이 ‘번역자의 과제’에서 “번역 속에서 원작은 언어가 살아 숨 쉴 보다 높고 순수한 권역으로 성장한다”고 썼다. 언어의 힘은 번역으로 추동된다. 다와다는 연설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낯선 혀로 말하는 사람은 조류학자이자 한 마리의 새입니다.”(‘새의 목소리 또는 낯섦의 문제’·33쪽) 장편 ‘태양제도’는 앞선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별에 어른거리는’에 이어지는 이른바 ‘Hiruko 여행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굳이 알파벳으로 이름을 쓴 주인공 Hiruko(히루코)와 그가 창조한 인공언어 ‘판스카’로 인연을 맺은 친구들이 함께 배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들의 목적지는 Hiruko가 태어나서 자랐지만 이제는 사라진 섬나라다. 그곳이 일본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지만 그런 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그들 모두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에스키모 나누크는 코펜하겐 병원에서 괴팍한 의사와 성격을 교환했다. 인도인 아카슈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性) 간’ 여행길에 올랐다. 모국어와 외국어, 언어와 언어 아닌 것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이어지는 토론은 대단히 철학적이다. 넘나듦의 유희를 통해 인물들은 인종과 국가 같은 것을 뛰어넘어 인간 그 자체의 의미를 향해 나아간다. 인생은 타인에게로 나아가는 기나긴 여행. 때때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앓기도 하지만 고향 같은 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되돌아갈 곳은 없다. 자아가 망명할 곳은 언제나 타자다. “너무 긴 여행을 떠나면 어느 순간 여행 자체가 목적지가 돼.”(‘태양제도’·21쪽)
  • 아득한 한탄강, 발끝에 멈춘 아늑함… 새콤한 메밀꽃, 혀끝에 맴도는 겨울[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아득한 한탄강, 발끝에 멈춘 아늑함… 새콤한 메밀꽃, 혀끝에 맴도는 겨울[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어제는 책 한 권을 읽다가 ‘따뜻한 얼음’이라는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온몸이 찌릿하도록 시렸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글의 결정이 온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겨울은 따뜻하신가요? 한탄강의 얼음장 옆 물윗길을 걷다가, 반세기 넘은 노포의 막국수를 후루룩 비벼 삼키다가 저는 박준 시인이 말한 여름밤 철원의 ‘화기’(火氣)를 떠올립니다. 어떤 그리움은 늘 지구 반대편의 시간에 속한 듯합니다.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강원도 철원에 있습니다. 내륙 깊은 분지라 겨울 추위가 매섭습니다. 산지의 찬 공기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평지로 흘러내립니다. 해발고도가 낮을수록 추워지는 기온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지요. 그런 이유로 이곳의 여름은 ‘밤이 되어도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겠습니다. 박준 시인은 시 ‘메밀국수’를 쓴 그해 더운 여름을 철원에서 보냈나 봅니다. 이 시에는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편지처럼 읽힙니다. 아니 시처럼 쓴 편지입니다. ‘분지의 여름밤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시인이 첫인사를 건넵니다. 그러고는 여름밤 더위를 피해 밥 대신 메밀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동송의 30년 된 막국숫집과 갈말의 60년 된 막국숫집을 두고 그 시차를 생각하다 혼자 즐거워하기도 하고요. 또 막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길, 철원 사람들은 시인에게 자꾸 저녁 안부를 묻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저녁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든지. 그가 그린 귀갓길은 ‘철(鐵)’원이란 글자의 차가운 이미지를 따뜻하게 녹여 냅니다. 저는 지금 막국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박준 시인의 시 한 편에 끌려 이곳에 왔습니다. 늦은 점심이라 군침이 넘어갑니다. 철원에는 막국수 맛집이 여럿입니다. 철원막국수, 내대막국수, 풍전면옥 등이 소문났지요. 시인처럼 동송과 갈말을 두고 고민하다 갈말로 왔습니다. 동송의 30년 된 막국숫집이 몇 해 전 문을 닫은 탓이기도 하고요. 60년 넘은 갈말의 노포는 네모난 마당을 가진 옛집입니다. 다른 계절에는 마당과 입구에 크고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하죠. 막국수를 먹으며 하얀 메밀꽃이 이는 장면을 떠올린 기억이 납니다. 꽃에 기울인 정성이 메밀면인들 다를까요. 그런 까닭으로 이곳의 주인장은 막국수라는 단어가 못내 섭섭할지 모르겠습니다. ●메밀·배추의 시차, 한겨울 막국수의 맛 메밀과 배추의 시차 막국수는 메밀국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지요. 어원에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막 만들어 냈다 해 그리 부른다는 설도 있지요. 이때 막은 ‘마구’와 ‘금방’의 의미가 있어요. 아무렇게 금방 만들어 먹는 국수라고 할까요. 그런 음식이 30년, 60년씩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마구 만든다고 불러도 시차는 거짓이 없습니다. 먹음직스러운 비빔막국수 한 그릇이 식탁 위에 놓입니다. 육수만 담은 양은그릇 하나도 무심히 건네집니다. 비빔과 물을 두고 갈등하던 제 말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시인에게 저녁을 먹었냐 묻던 그해 여름 철원 사람들의 모습이 겹칩니다. 하지만 막국수의 제철은 역시 겨울입니다. 먹을 것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가을 메밀을 수확해 겨울에 국수로 빚어 먹었지요. 이곳의 메밀면은 통메밀과 속메밀을 섞어 거뭇한데 그럼에도 면이 푸석하지 않습니다. 한입 덜어 씹으니 메밀 특유의 식감이 입안에서 헤엄칩니다. 과일로 단맛을 낸 양념장은 매운맛이 불편하지 않아 좋습니다. 겨울 한기가 매콤하게 잊힙니다. 박준 시인은 ‘메밀국수’의 말미에 배추 파종 이야기를 꺼냅니다. 겨울에는 그 배추로 만두소를 만들 것이라 말하지요. 갈말에서 막국수를 드셨다면 동송에서 만두를 맛봐도 좋겠습니다. 동송에는 이북 만두를 맛있게 내는 어랑손만두국과 손만두버섯전골을 잘하는 솔향기가 있습니다. 어랑은 함경도 도시의 지명입니다. 배추가 씩씩하게 씹히지 않아도 맑은 탕을 떠올리게 하는 국물이 좋습니다. 솔향기는 전골에 끓인 김치만두가 맛있지요. 만두피는 옥수숫가루를 넣어 노란색이고요. 시인은 겨울 만두까지는 맛보지 못하고 철원을 떠난 듯합니다. 대신 ‘요즘은 먼 시간을 헤아리고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편지를 갈무리합니다. ●꽁꽁 언 겨울에만 걷는 ‘한탄강 물윗길’ 언 강 위를 걷는 물윗길 철원에는 ‘먼 시간을 헤아려 생각해 보기 좋은’ 여행지가 있습니다. 한탄강 물윗길입니다. 철원과 경기도 연천, 포천에 걸쳐 흐르는 한탄강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입니다. 철원용암대지는 약 54~12만년 전 여러 차례 화산 폭발로 생겨났고요. 까마득한 시간이 타임랩스처럼 흐릅니다. 하지만 물윗길을 완주하는 데는 3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저는 수십만년과 3시간의 시차를 생각하다 시인처럼 혼자 피식 웃고 맙니다. 한탄강 물윗길은 일 년 내내 개방하지는 않습니다. 10월부터 3월까지만 열립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겨울을 고집해요. 강 한가운데 부교를 놓아 만든 물 위 구간 때문일 겁니다. 저는 순담계곡 쪽에서 출발합니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드르니까지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따라 걸었을 테지요. 절벽에 기댄 잔도의 짜릿함을 누리면서요. 하지만 겨울은 강변의 물윗길을 향합니다. 곧장 협곡 사이 부교가 펼쳐집니다. 첫발을 디디자 아득함 속 아늑함으로 인해 안도합니다. 켜켜이 쌓인 좌우의 지층은 세월의 주름처럼 우리를 안위하지요. 부교는 플라스틱 부표들이 모여 다리 길을 만듭니다. 주상절리와 현무암 계곡 사이로 퉁퉁대는 울림을 딛고 나아가죠. 발끝이 닿는 부교 곁에는 ‘얼음’하고 굳은 강입니다. 마치 작은 기적이 일어난 듯 고요히 멈춰 선 시간입니다. ●송대소, 높이 30~40m 주상절리 명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면 고석정까지 걸으세요.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여도 한 시간이면 족하지요. 고석정은 높이 약 15m의 외로운 바위와 정자를 이릅니다. 임꺽정이 은신한 곳으로 알려졌지만 화강암층과 현무암층이 마주하는 지질이 흥미롭습니다. 고석정을 지나 조금 더 걷겠다면 승일교가 다음 목적지입니다. 6·25전쟁 전에 북한이 절반을, 전쟁의 끝 무렵에 미군과 노무단이 나머지 절반을 지어 완성한 다리입니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두 글자를 딴 콘크리트 아치교는 왠지 악수하는 다리 같아 뭉클합니다. 부교 구간의 아름다움은 마당바위 지나 은하수교~태동대교 구간도 뒤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은하수교 위에서 송대소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어요. 송대소는 물윗길 주상절리 명소입니다. 높이가 30~40m에 이르러요. 다각형의 기둥은 절벽에 기대 기이한 형성을 연출해 시선을 끕니다. 물론 물윗길을 걸을 때는 은하수교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거대한 스케일을 선보입니다. 한탄강의 진짜 주인공은 그들이고 우리는 그저 그 물길을 빌려 잠시 다녀갈 뿐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엔 태봉대교 매표소에서 순담계곡 매표소까지 셔틀버스가 오갑니다. 은하수교와 고속정 등을 경유하지요. 참, 물윗길을 걸을 때는 물이나 따뜻한 음료를 꼭 챙겨 가길 권해요. ●소설가 이태준의 편지 쓰는 법 철원의 편지는 박준 시인 이전에 소설가 이태준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그는 ‘한국의 체호프’라 불린 철원 태생의 작가입니다. ‘운문은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서울 수연산방이 그의 집터입니다. 1933년부터 머물며 정지용, 이효석, 이상 등과 구인회 활동을 한 곳이고요. 그는 1943년 다시 철원으로 돌아와 몇 해를 삽니다. ‘서간문강화’(깊은샘)는 그때쯤 출간한 책입니다. 편지 쓰는 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여행 중에 흔히 쓸 편지들’이란 장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는 ‘여행맛을 여러 사람에 보이는 미덕’이라며 ‘감흥이 솟는 만치는 표현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이라고 덧붙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그의 소설 ‘촌띄기’를 따라 걷는 촌뜨기길이 철원에 있었지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철원읍 관전리 철원경찰서(터) 등을 엮은 길이었습니다. 옛 철원경찰서는 노동당사 옆입니다. 그의 고향마을 용담이 멀지 않아요. 지금은 소이산 옆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촌뜨기길의 아쉬움을 달랩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1930년대 옛 철원읍 시가지를 재현한 공원입니다. 철원금융조합, 철원공립보통학교, 관동여관, 철원극장, 철원역 등이 도열합니다. 김남길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도적: 칼의 소리’를 촬영하기도 했다지요. 철원양장점에서는 옛 옷을 입고 무료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철원극장에서는 주말 무성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요. 철원역에서는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다. 해발 362m의 야트막한 산은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DMZ)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점점이 사라진 옛 철원 시가지의 흔적이 그곳에 있겠지요.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도, 금강산을 향하던 철길도 그곳에 있었겠지요.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 터도, 6·25전쟁에서 산화한 백마고지의 선령들도 그곳에 잠들었겠습니다. ●느린 편지에 담긴 겨울의 철원 철원군은 6·25전쟁을 거치며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보통 군의 지명은 제일 큰 읍의 지명을 따르지만 철원읍은 민통선 안에 있지요. 그래서 철원군은 동송읍과 갈말읍이 제일 큽니다. 박준 시인이 동송과 갈말 사이 막국숫집을 두고 고민한 것도 그런 연유겠습니다. 아직은 갈 수 없는 먼 북녘의 겨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소이산을 내려옵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을 떠나기 전에는 옛 철원우체국을 발견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옛 집배원 제복과 우편배달용 빨강 자전거와 그 시절 누군가 썼던 엽서가 눈길을 끕니다. 우체국에 왔으니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우편 접수대 앞에는 발송용 엽서와 보관용 엽서가 보입니다. 발송용 엽서는 3개월 후 수신인에게 보내고, 보관용 엽서는 철원우체국이 보관했다 일부를 선정해 ‘느린 우편’ 책자로 제작한다네요. 발송용 엽서를 받아서는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에 답장합니다. 여름에 쓴 철원의 편지(시)를 받고 겨울에 쓰는 편지겠습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다 그의 고향이라서 이태준의 ‘무서록’(청색종이)을 떠올립니다. ‘두서없이 쓴 글’이라는 제목이 좋기도 하고요. 그 가운데 ‘매화’의 한 문장을 빌립니다. ‘겨울이 차다는 것은 우리의 체온이 너무 뜨거운 때문’ 이 편지가 다다를 때쯤은 봄일 테고, 그때의 저는 또 겨울의 철원을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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