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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전원일기] 묵히면 돈 되는 늙은 호박… 넝쿨째 굴러온 방문객

    [新전원일기] 묵히면 돈 되는 늙은 호박… 넝쿨째 굴러온 방문객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물방울 무늬가 가득한 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일본의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가 쓴 ‘호박에 대하여’라는 글의 일부이다. 오랫동안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질환에 시달렸던 그는 호박죽을 먹으면서 몸을 회복했고, 이러한 경험은 호박에 대한 찬미와 호박을 주제로 삼은 여러 뛰어난 작품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고 했던 현해탄 너머의 설치미술가 못지않게 호박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농부가 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에 위치한 ‘참샘골 호박농원’의 최근명(64) 대표다. 서산시가 공인한 ‘호박 명인’이기도 한 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늙은 호박의 변신은 가히 예술적이라 말할 만했다.# 4전 5기 끝에 만난 복덩이 호박 한 덩이 충남 공주 출신의 최 대표가 서산에 처음 터를 잡게 된 계기는 1980년 ‘참샘골 목장’을 설립하면서다. 그는 군 복무 시절, 부대 근처에 있던 젖소 농장에서 소젖을 짜는 농부의 모습을 보고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제가 1970년대에 군 복무를 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우유를 먹는다는 게 굉장히 생소했어요. 그런데 앞으로 우유 먹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당시 서산에는 ‘상아목장’이라는 큰 목장이 있었다. 제대 직후 그곳에 취업한 그는 3년 동안 낙농 기술을 배운 후 독립했다. 동네의 유명한 샘 이름을 따다 지은 ‘참샘골 목장’이라는 이름은 현재 ‘참샘골 호박농원’의 전신이 되는 셈이다. 낙농업이 유망한 산업이 되리라 생각했던 청년 최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1980년대 산업이 발달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유 소비가 늘어났다. 송아지 5마리로 시작한 그의 목장은 젖소 50마리까지 늘어났다. 10년간 승승장구하던 그의 목장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90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실시되면서였다. 저렴한 수입 우유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많은 축산농가가 타격을 입었다. 사료값도 못 건질 정도로 우유값이 떨어지자 목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수입 개방과 상관없는 산업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은 토종닭 사육이었다. ‘참샘골 토종닭’을 설립해 토종닭을 방사해 키웠다. “여름에는 토종닭 장사가 괜찮았어요. 그런데 겨울이 되니 닭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더라고요. 저 혼자 하는 영세업체라 유통 시스템을 갖추기도 어려웠고요. 결국 1억원 정도 손해를 보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세 번째로 도전한 우렁 양식업에서도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대형 수조 설비를 갖추고 우렁을 잘 키우는 데에만 주력한 나머지 판로 개척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통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었던 거죠.” 최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네 번째 도전이었던 느타리버섯 재배도 겨우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농업환경 변화가 큰 이유였다. “1995년부터 느타리버섯에 갈반병이라는 병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더이상 버섯이 자랄 수 없을 정도로 주변 환경이 오염돼 생긴 병이래요. 첨단 무균 재배 설비를 갖춰야 앞으로 계속 버섯사업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저 막막했죠. 이미 앞서 세 번이나 실패했던 탓에 가진 돈이 없었거든요.”수차례 실패 끝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는 갈반병이 든 것을 추려내고 얼마 남지 않은 버섯을 팔아치운 다음 농사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느타리버섯을 팔러 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난 늙은 호박 한 덩이가 그의 인생을 역전시켜 줄 복덩이가 됐다. “가락동 시장에서 호박 장수를 만났는데, 늙은 호박 한 덩이에 1만~2만원씩 파는 거예요. 왜 이렇게 비싸게 받느냐고 물었더니 가을철에 한 개 2000원이면 살 수 있는 호박이 봄과 여름철이면 값이 열 배, 스무 배까지 치솟는다고 하더군요. 저장이 어려워서 그렇대요. 호박 장수가 ‘누가 호박 저장 기술만 개발하면 그 사람은 떼돈 벌 텐데’라고 지나가는 말로 던진 한마디가 제게는 구원의 종소리처럼 들렸어요. 그래 이거다. 내가 그 기술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미래의 농업을 준비하는 선견지명 자신만만하게 도전했지만 첫해 ‘참샘골 호박농원’에서 재배한 호박은 다 썩어버려 폐기처분을 해야 했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수년간의 연구 끝에 1998년 호박 장기 저장 기술을 개발했을 때 최 대표는 천하를 모두 얻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온도 10도 내외, 습도 60%의 건습 상태, 에틸렌 가스농도 0.02ppm 이하, 그가 찾아낸 최상의 호박 저장 환경이다. 전국 최초로 호박 저장법을 개발하고,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다는 참샘골 농원의 호박 저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향긋한 호박 냄새가 165㎡ 규모의 저장실 전체에 감돌았다. 수천 통의 굵직한 호박들이 층을 지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이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자동 조절 시스템을 통해 잘 관리된 호박들은 겨울을 지나 초봄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단단하고 싱싱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노란색 늙은 호박은 모양이 맷돌처럼 둥글납작해 ‘맷돌호박’이라고도 불리는데, 비타민과 식이섬유,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60대에 접어든 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의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1990년대 농업인들 사이에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무지하던 시절에 그는 이미 ‘참샘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상표 등록까지 마쳤다. 이후 업종을 바꾸면서도 참샘골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 농촌진흥청에서 무료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준다는 공고가 떴을 때에도 가장 먼저 신청해 ‘농업인 1호 홈페이지’를 구축했다.“그때만 해도 인터넷으로 농산물을 판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인터넷 시대가 되고, 호박도 쇼핑몰을 통해 팔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든 후에도 1년이 훨씬 넘도록 단 한 건의 주문도 없었다. 그럼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주문 내역을 확인했다. 첫 주문이 들어온 것은 홈페이지 개설 후 1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조금씩 소문이 나고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주문량이 늘기 시작했다. 각 가정에 인터넷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쇼핑몰 매출도 폭증했다. “쇼핑몰에서 호박을 판매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고객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게시판을 통해 고객들이 남긴 의견을 꼼꼼하게 읽고 소통했죠. 그 과정에서 다음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호박즙과 호박죽 등 호박 가공식품 생산까지 사업을 확장하게 된 계기는 고객의 요청 때문이었다. 2002년 한 여고생이 ‘호박 달인 물이 여성 미용, 다이어트, 부기 제거에 효과적이라며 호박즙을 만들어 달라’는 글을 홈페이지에 남겼다. ‘호박 미인’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호박즙이 대박을 내면서 2차 산업으로의 진출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후 2005년 한서대 식품공학과와 산학협약을 체결해 국내 최초로 ‘레토르트 고구마호박죽’을 개발했고, 2012년에는 임신부의 배 뭉침과 조산을 막아주는 데 효과가 있다는 ‘호박손달인물 액상차’를 개발해 출시했다. 모두 고객들의 요청에 따른 제품 개발이었다. # 농원매출 6억 중 가공품 판매 85% 차지 지난해 참샘골 호박농원의 매출은 6억여원, 그중 85%가 호박 가공품 판매에서 거둔 수익이다. 이제 호박 농사보다 가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호박 저장 시설을 잘 구축해 놓은 덕에 연중 내내 호박 가공품을 일정하게 생산할 수 있다. “참샘골 가공식품이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재료인 호박이 맛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황토땅에서 서해안의 해풍을 맞고 자란 참샘골 호박은 농약과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계약 재배 중인 농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죠.” 모든 제품을 인터넷 직거래로 판매하는 참샘골 호박농원의 홈페이지 회원 수는 2만여명에 이른다. 연간 80~100t 규모의 호박이 가공식품의 원재료로 쓰인다. 최 대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어서 지역농민 여러 가구와 10만㎡ 규모로 재배 계약을 맺어 수매한 호박을 재료로 쓰고 있다. 참샘골 호박이 유명해지면서 인근 지역에서 호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최 대표에게 경쟁자가 많아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오히려 “더 늘어서 맷돌호박이 서산을 대표하는 지역 명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맷돌호박하면 서산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유명해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호박을 보고, 체험하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더 늘어나겠지요. 이 마을을 대한민국 최고의 호박 테마파크로 키우는 것이 제 꿈입니다.” # 호박체험관 운영… 마을주민과 수익 나눌 것 그동안 최 대표는 바쁜 와중에도 10년 전부터 일본을 오가며 3차 산업 진출을 준비해 왔다. 일본 규슈 지방의 후쿠오카현을 방문했을 때 소바(메밀국수) 만들기 체험을 하는 것을 보고 호박 따기 체험뿐 아니라 호박칼국수, 호박피자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3차 산업은 문화와 체험을 파는 일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앞으로 6차 산업의 시대가 올 거라는 최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갔다. 마을 주민들과 합심해 노력한 결과, 2008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았고 호박체험관을 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최 대표는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최한 ‘제1회 6차 산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방문객은 5000명 정도다. “체험관을 지으면서 3차 산업을 통해 거두는 수익은 마을 사람들과 모두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3차 산업 수익이 점점 더 커지겠지만, 그건 제 몫이 아니에요.” 향긋한 호박향이 가득한 농원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라는 속담이 참으로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호박이 수박보다 못할 이유도, 호박이 수박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호박은 호박 나름의 개성, 달콤한 맛과 향이 있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산업화 그림자에 뒤엉킨 절망과 구원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산업화 그림자에 뒤엉킨 절망과 구원

    내가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해바라기’라는 남성 듀오였다. 가녀린 미성으로 사랑 노래를 주로 부르던 해바라기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누렸다. 앨범도 여러 장 발표했는데 1985년에 나온 2집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타이틀곡인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를 시작으로 ‘어서 말을 해’, ‘모두가 사랑이에요’, ‘행복을 주는 사람’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이 여기에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얼마 되지도 않던 용돈을 아껴 모은 돈으로 구입한 해바라기 2집 LP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갖고 있다.#고운 선율에 이해할 수 없는 가사 해바라기 노래는 우선 멜로디가 쉽고 아름다워서 마음에 들었지만 그보다 앞서 리더인 이주호가 대부분 직접 쓴 가사가 내 감수성과 잘 맞았다. 그런데 2집 앨범에 들어 있는 곡 중에 유독 ‘갈 수 없는 나라’의 가사는 이해가 안 됐다. 사랑을 노래하는 대중가요에 ‘평화’, ‘정의’ 같은 생소한 단어가 들어 있는 것도 그랬지만 “네가 가 버린 갈 수 없는 나라”로 끝나는 노래 마지막 부분이 특히 이상했다. ‘갈 수 없는 나라’인데 어떻게 ‘네가 가 버린’ 것일까? 앞뒤가 안 맞는 가사다. LP 안에 함께 들어 있는 가사집을 보니 이 노래 가사는 이주호가 쓴 것이 아니었다. 조해일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작사한 것이다. 당시 나는 그 노래에 대해서 더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이주호가 쓴 가사가 아니기 때문에 내게 감흥을 못 준 것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 해바라기에 대한 기억은 조금씩 흐려졌다. 조해일이 다름 아닌 유명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나는 그것을 해바라기 노래와 연결시킬 생각은 얼른 하지 못했다. 우연히 발견한 ‘갈 수 없는 나라’라는 소설책을 읽고서야 그때 한쪽으로 치워 놨던 퍼즐 조각들을 다시 맞춰 볼 수 있게 됐다. 1970년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어울릴까? ‘군사정권’, 그리고 ‘산업화시대’일 것이다. 한편으로 문학과 영화, 음악의 시대이기도 했다. ‘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젊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쏟아냈고 해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는 히트 영화들이 개봉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다양한 장르의 대중가요가 널리 사랑받던 때도 드물다. 조해일은 바로 그렇게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던 때 활동한 히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조해일이 쓴 소설을 보면 고도성장 시기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암울한 현실을 폭로한 작품이 많다.많은 독자들이 조해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선 ‘겨울여자’라는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겨울여자’는 조해일이 1976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바로 다음해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과 함께 영화도 크게 성공했다. 연출은 1975년에 ‘영자의 전성시대’를 만들어 재능을 인정받은 김호선 감독이 맡았고, 소설가 김승옥이 각색해 시나리오를 썼다. ‘겨울여자’는 1974년에 개봉한 영화 ‘별들의 고향’보다 10만명 이상 많은 58만명이라는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웠다. 이 수치는 십여 년 후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이 나오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다.#유례없는 고도성장 속 안하무인 졸부 ‘갈 수 없는 나라’는 ‘겨울여자’의 성공 이후 1978년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연재한 소설로 단행본은 1979년 삼조사(三潮社)에서 초판을 펴냈다. 표지 그림은 조병화 시인의 회화 작품으로 꾸몄다. 소설 내용은 당시 산업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안하무인식에 돈을 물 쓰듯 하고 자기들밖에 모르는 재벌 2세들이 등장한다. 이 패거리들은 모두 다섯 명이라 자신들을 ‘오인방’(五人幇)이라 부르며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유흥을 즐긴다. 그 와중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나이트클럽에서 오인방 중 한 명이 칼에 찔려 살해당한 것이다. 우연히 사건 현장을 목격한 신문기자와 형사가 범인을 밝혀내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두 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번에도 피해자는 오인방 중 한 명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공 성장을 구가했다. 서울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말끔히 단장한 자동차 전용도로와 지하철 공사 구간 사이로 고층 건물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제조업, 무역, 부동산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흐름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조해일의 소설은 바로 이런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포기할 수 없는 구원과 희망 소설은 인기가 좋아서 꾸준히 팔려 나갔고 1980년에는 윤두수의 연출로 연극 무대에 올려졌다. 이어서 1987년에는 MBC의 미니시리즈 드라마로 방영됐다. 여기서 다시 한번 해바라기가 부른 노래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소설에 나오는 ‘배수빈’이라는 인물의 직업은 가수다. 히트곡도 여럿 있고 재벌 2세 오인방의 재정 지원을 받아 연예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갈 수 없는 나라’는 배수빈이 작사해 부른 노래다. 이야기 흐름상 중요한 부분이라 소설에는 노래 가사 전문이 그대로 나온다. 오래전에 만든 드라마라 직접 방송을 구해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 장면에서 해바라기의 노래가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해바라기의 노래 ‘갈 수 없는 나라’를 들어 보니 노래 가사가 조금 더 뚜렷이 마음에 와닿는다. 더욱이 이 노래가 실린 LP 표지도 새롭게 보인다. 사진은 두 남자가 기타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담았다. 해바라기의 앨범이지만 정작 가수의 얼굴은 보여 주지 않는다. 낙엽을 밟으며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저 앞에 보이는 별장이다. 표지는 마치 해바라기 두 멤버보다는 이들을 맞이하는 별장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소설 ‘갈 수 없는 나라’에서 사건의 결말을 짓는 중요한 장소로 나오는 곳이 숲속의 별장이다. 그리고 노래 ‘갈 수 없는 나라’ 역시 간단한 생일축하 곡과 당시 규정이라 꼭 넣어야 했던 건전가요, 이렇게 두 곡을 제외하면 음반의 맨 마지막을 장식한다. 해바라기 2집 음반이 조해일의 소설 한 장면을 멋지게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노래와 소설이라는 두 퍼즐 조각을 맞춰 볼 수 있는 멋진 경험이었다. 작가가 쓴 ‘갈 수 없는 나라’ 작품 후기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절망할 순 없었다. 무언가 우리에게 구원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믿고 싶었다. 무언가 아직도 우리에겐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었다….” 소설 속에서 오인방의 더러운 과거를 용감하게 파헤치는 인물은 경찰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이렇다 할 힘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루쉰의 말대로 대개 희망이란 그런 사람들이 함께 걸으며 만들어 가는 길이다. 우리들에게 이 믿음이 있는 한 정의와 평화가 있는 ‘갈 수 없는 나라’는 더이상 꿈속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 ‘야공작’ 유역비, 파격적인 자태 ‘송승헌이 반할만해’

    ‘야공작’ 유역비, 파격적인 자태 ‘송승헌이 반할만해’

    중국 배우 유역비의 파격적인 팜므파탈 변신으로 치명적 사랑을 그려내 화제가 된 ‘야공작’이 2일 개봉했다. ‘야공작’은 중국, 프랑스 합작영화로 중국계 프랑스인 엘사(유역비)와 운명 같은 끌림으로 치명적 사랑을 하게 된 세 남자의 얽히고설킨 사각관계를 그린다. 이번 영화 ‘야공작’에서 엘사역으로 분한 유역비의 매력에 빠진 세 남자 여명과 유엽 그리고 여소군은 각자 마룽과 젠민, 샤오린으로 분해 유역비와 호흡을 맞췄다. 공개된 예고편은 사전 영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의 아찔한 연기들이 이어진다. 대륙의 청순미를 대표하는 여신 유역비와 홍콩의 원조 4대천왕 여명, ‘초한지: 영웅의 부활’에서 주연보다 더 빛났다는 평을 받은 유엽 그리고 ‘천녀유혼’에서 영채신으로 분해 어린 나이에 연기력을 인정 받은 여소군 등이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도발적인 매력을 선보이는 19금 예고편은 본편만큼이나 높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청순의 대명사인 유역비와 중화권 최고의 남자 배우들의 파격적인 베드신과 키스신이 포함된 이번 예고편에서는 반쪽의 ‘야공작’이 그려진 유역비의 매혹적인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뒤 이어 ‘사랑은 언제나 일순간 들이닥친다’라는 도발적인 멘트가 흘러나오며 배우들의 환상적인 연기 호흡과 함께 눈을 뗄 수 없는 파격적인 씬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야공작’은 청순하면서 고혹한 매력의 청순여신 유역비의 도발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의 파격적이고, 청순하던 이미지와는 달리 아찔한 노출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그에 뒤지지 않는 연기력까지 선보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개봉 전부터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야공작’은 『D콤플렉스』로 페미나상을 거머쥐었으며, 중국 정체성의 문제를 특유의 해학과 유머로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다이 시지에 감독이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야공작’은 소설가이기도 한 다이 시지에 감독의 풍부한 감성을 대변하듯 상징과 은유로 가득 채워 아름답고 매혹적인 영화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야공작’은 오늘 디지털 최초 공개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한편 유역비는 드라마 ‘제 3의 사랑’에서 인연을 맺은 송승헌과 지난 2015년부터 연인으로 발전해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다. 사진 = ‘야공작’ 예고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부처님 첫 제자·도반의 인연… “나와 남이 맞물려 있다”

    부처님 첫 제자·도반의 인연… “나와 남이 맞물려 있다”

    불교에서 인연담은 인연이나 수행 기록을 넘어 나와 남이 맞물려 있다는 연기의 교훈을 전해 중시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스승 인연을 비롯해 도반 관계를 담은 인연담이 적지 않다. 나란히 출간된 ‘테라가타 장로게경’, ‘테리가타 장로니게경’(한국빠알리성전협회)과 ‘위대한 스승 청화 큰스님’(상상출판)은 모두 인연담을 전한 흔치 않은 성과물이다.이 가운데 ‘테라가타 장로게경’과 ‘테리가타 장로니게경’은 부처님의 첫 제자 비구 260여명과 비구니 100여명의 인연담을 기록한 책. BC 3세기쯤 기록된 팔리어 경전을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이 완역했다. 부처의 가르침을 찬탄하는 게송(偈頌)과 전생·현생 인연담 기록으로 구성돼 있으며 게송을 포함한 주석이 완역되기는 처음이다.“부처님 제자들의 삶의 스토리가 담긴 책”이라는 역자 평대로 두 경전은 당대 비구·비구니들의 출가 계기와 고난, 좌절 극복을 세밀히 볼 수 있다. 총 21장 1291수의 게송으로 구성된 ’테라가타’에는 부처님 그늘에 가려진 제자들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수행 어려움의 토로와 승단·사회의 잘못 지적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구성이 독특하다. 특히 부처님 열반 후 경전 결집을 주도한 마하가섭의 진면모가 흥미롭다. 마하가섭은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원칙주의자로 통하지만 ‘테라가타’에선 색다르다. “집 떠나 출가한 지 25년이 되었으나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큼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토로했던 마하가섭은 목숨을 끊으려까지 했고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16장 522수의 게송 모음인 ‘테리가타’는 여성 수행자들의 게송만을 묶었다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역자는 그래서 “당시 여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질곡의 삶과 수행 과정이 그대로 담겼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비구니 끼사 고따미는 “연약한 여자들이 목을 자르고 독약을 복용하기도 한다”고 여인들의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비구니 비자야는 “마음의 적멸을 얻지 못하고 네 번인지 다섯 번인지 승원을 뛰쳐나왔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런 난관을 극복하면서 희열과 행복이 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어둠의 다발이 부숴졌다”고 깨달음의 순간을 노래하기도 한다. 한편 ‘위대한 스승…’은 2003년 열반한 청화 스님의 출재가 제자 20명의 인연담을 묶었다. 불교전문작가 유철주씨(‘고경’ 편집장)가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 청화 스님과의 일화를 정리했다. 직계 상좌(제자)인 동사섭 행복마을 이사장 용타 스님을 비롯해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성우 스님과의 인연담은 물론, 전교조 위원장을 지낸 정해숙씨 등 6명의 재가 제자도 들어 있다. 청화 스님은 평생 방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一種食), 수십년간 이어간 깊은 산중에서의 토굴 정진으로 이름난 선승. 특히 찾아오는 이들을 격의 없이 만나 소통한 선지식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제자들은 한결같이 청정하고 평생 수행에 매진한 스님으로 기억한다. “큰 스님의 사상은 ‘불법은 대해’라는 말의 온전한 실현이었다”(용타 스님)고 숭앙하는가 하면 “부처님과 청화 큰스님의 ‘위대한 버림’, ‘위대한 정진’, ‘위대한 회향’을 꼭 닮아보겠다”(지선 스님)고 다짐한다. 소설 ‘청화 큰 스님’을 쓴 소설가 남지심은 청화 스님을 처음 만난 순간을 이렇게 전한다. “인사를 드리고 큰스님을 보는 데 한 3초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그 짧은 시간에 정말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구나, 도(道)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직접 느꼈어요.”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정서린 기자의 잡식주의자] 시집서점 속 보물찾기

    [정서린 기자의 잡식주의자] 시집서점 속 보물찾기

    시인이 신촌에 시집서점을 낸다. 이 솔깃한 한 문장에 주소 하나 받아 들고 이대 거리를 찾았던 지난해 초여름이 생각납니다. 기사로는 흥미로웠지만 솔직히 고백해야겠습니다. 가는 길 내내 반신반의하며 걸었다는 것을요. 채 단장을 마치지 않은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 들어서니 신촌 기차역이 건너다 보였습니다. 한때 대형 쇼핑몰이었던 건물은 폐가처럼 서서 활기 잃은 상권을 말해 주고 있었고요.서점 주인장 유희경 시인을 만나 제일 먼저 꺼낸 단어는 부사였습니다. ‘어쩌다가….’ 갖가지 책에 굿즈를 부려 놓아도 안 팔리는데 시집서점이라니요. 시인도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안다는 듯 멋쩍게 웃었습니다. 동료 시인들은 “편이 되어 주겠다”고 환영했다지만 시인은 냉정한 판단이 서 있었습니다. “시인들이 좋다고 하니 용기는 많이 얻었는데 시인들이란 돈 셈을 못 하니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더라”며 웃던 그는 “안 망할 순 없을 것 같고 2년 정도 갈 것 같다”고 내다봤죠. 이제 막 움트는 서점의 생존 기간을 고작 2년으로 잡는 시인의 말에 멈칫했습니다. 그게 책과 서점이 당면한 현실이니 괜한 희망의 말은 보태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믿는 구석도 생겼고요. “시를 사는 공간이 아닌 시를 얻어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나만 알고 있고 숨겨 놓고 싶은 보석 같은 시집을 큐레이팅해 놓겠다”는 그의 바람과 열의가 ‘지지 않겠다’는 말로도 들렸거든요. 최근 한 소설가와 인터뷰를 하다 서점의 새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품 낭독회 장소가 위트앤시니컬 2호점(합정점)이라고요. 생존 기간 2년을 바라본 서점이 2호점을 낸다니, 9개월 전 서점에서 바라보던 막막한 풍경이 겹치며 반가운 마음이 솟았습니다. “잘되나 보다”고 넘겨짚으니 유희경 시인은 “‘잘돼서’가 아니라 ‘잘되기 위해서’ 내는 2호점”이라고 했습니다. 수익을 따져 보자면 보잘것없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달 평균 1200~1300권의 시집이 팔려 나가고 한 달에 2~3회 여는 문인들의 낭독회 티켓은 대부분 ‘완판’을 기록합니다. 지난 17일 2호 서점에서 처음 열린 유희경 시인의 시집 낭독회는 손님들도 직접 시를 읽어야 하는 ‘미션’을 떠안았는데요. 35명 정원에 50명 넘는 자원자가 몰려 사연으로 참가자를 골라내야 했다고요. 주인도 장담 못하던 서점의 순항을 가능하게 한 건 무엇일까요. 서점을 찾은 독자들, 문인들의 반응을 들어 보니 모아지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내 기분과 상황에 맞게 시인이 직접 시집을 추천해 준다면, 서점에서 우연히 익숙한 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면, 시인과 함께 시를 낭독하며 ‘나만의 시’를 추억으로 가져 본다면, 맥주 한잔을 마시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써 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위트앤시니컬에서 문학과 독자가 교감하는 여러 풍경입니다. 문학을 만나며 나를 돌아보고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랄까요. 그래서 누군가는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누군가는 “보물찾기 하듯 발견의 재미가 있는 공간”이라고도 하더군요. 일상에 매몰된 내가 보일 때 한 번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시집서점 속 보물찾기를요. rin@seoul.co.kr
  • [新전원일기] 개구리가 펄쩍, 동심이 팔딱… 곤충과 오감을 나누다

    [新전원일기] 개구리가 펄쩍, 동심이 팔딱… 곤충과 오감을 나누다

    ‘충사’(蟲師)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형의 존재인 벌레와 인간의 세계를 몽환적이고 신비하게 그려 나간다. 각 화마다 다른 에피소드를 보여 주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다루고 있는 주제나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것이 보여 주는 철학적 깊이도 눈여겨볼 만하다. 자연과 생명이라는 대전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본능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서도 고민할 계기를 만들어 주니 말이다.‘충사’에서 다루고 있는 벌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곤충과 다르다. 다양한 성질과 힘을 지닌 가장 원초적인 생명체로서 인간 세계에 기이한 현상을 일으킨다. 이런 낯선 생명체와 인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주인공 ‘긴코’라는 인물이다. 긴코는 벌레와 인간을 이해하고 두 존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한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묘사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숲과 바다, 갖가지 꽃과 곤충과 동물들을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빛이 감싸 안는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시초였던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다. 최근 ‘김포곤충농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내내 ‘충사’의 이미지에 사로잡혔다. 벌레라는 단어의 쓰임새는 다르지만 곤충농장의 장동귀(55) 대표 역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는, 깅코와 같은 인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잊고 살아가는 것들이 품은 세계 김포곤충농장은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김포 IC를 거쳐 아파트촌을 빠져나오면 거짓말처럼 시골 향기가 물씬 풍기는 농장이 펼쳐지고, 입구에 자리한 익살스러운 매표소에서는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매표소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잇대고 페인트칠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 모두 가족이 힘을 합했기 때문일 테다. 딸 셋의 아버지이기도 한 장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친화적인 삶이다. 우리는 모두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니만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 대표가 서울에서의 삶을 접고 김포에 곤충농장을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그래도 마음 한쪽을 채우고 있는 것은 어릴 적 뛰어 놀던 고향 산천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요. 너무도 소중한 그 추억들을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아이들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싶었어요. 삭막한 도시 문명 속에서 그나마 동심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죠.” 장 대표는 땅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랜 시간 고민했다. 농사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용 작물을 키울 깜냥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TV를 보던 딸의 말에 이끌려 곤충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우와, 저거 귀엽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이 장수풍뎅이였던 것이다. 곤충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곤충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던 장 대표로서는 무모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무언가 키우는 것에 재미를 느껴 왔던 터라 시도를 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았다. 결심이 선 후 곧장 곤충연구센터나 농업기술원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곤충에 대해 공부했고 도서관에 가서 곤충 관련 책자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애완 곤충과 관련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고 일반인이 곤충을 사육하고 분양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나라의 경우 애완 곤충에 대한 관심과 보급률이 컸지만 역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자료가 없어 참고로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장 대표는 우선 하우스 한 동에 사육장을 마련하고 2004년 8월에 김포곤충농장을 정식 오픈했다. 어떤 일이든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는 더 단단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입구에 플래카드를 걸어 놓은 게 전부였지만 곤충을 키우는 데는 전력을 다했다. 처음에는 부화가 되지 않거나 유충으로, 혹은 성충이 돼서도 금세 죽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점차 실패가 줄었고 장 대표의 기쁨도 커졌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부조리한 사회에 항거한 함석헌 선생 역시 “자유는 감옥에서 알을 까고 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를 둘러싼 보편적인 속성과 부조리함을 깨야 새롭고 자유로운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의미일 텐데, 이는 애초에 그 알이 새로움과 자유를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알이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가 성충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역시 우리가 잊고 있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경이로움과 같지 않았을까.# 함께 나누고 자연을 이해하다 시행착오 끝에 2005년과 2006년에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사육이 크게 늘었고 연매출도 1억원으로 급신장했다. 때마침 애완 곤충에 대한 관심도 점차 증가해 매스컴에서 다루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는 장 대표에게 양날의 검이 됐다. “TV나 지면에서 다루는 일이 많아지니까 매출이 눈에 띄게 늘더라구요.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자연산 곤충이 대량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퇴비에 곤충들이 알을 까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채집해서 도심 대형마트나 대형 행사장에 납품을 하는 거죠. 매출이 반으로 줄더라구요. 그래서 2006년부터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장 대표는 곤충 체험은 물론이고 동물 체험, 농촌 체험도 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농장 한켠에 동물원을 꾸며 양과 염소, 토끼와 닭, 거위와 오리 등 여러 가지 동물과 함께 뛰놀 수 있도록 했고 주변 농가와 연계해 감자와 고구마, 배추 등을 직접 심고 캐거나 겨울에는 김장 김치를 담그는 시간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이용해 곤충 표본이나 액자를 꾸미는 식의 만들기 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이에 소비되는 나무는 모두 장 대표가 직접 벌목하고 다듬어 놓은 것들로, 그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물고 빨아도 인체에 전혀 무해하단다. 올봄부터는 숲체험도 가능해졌다. 농장 주변에 예쁘게 살아 있는 숲 속에서 한 마리 사슴처럼 뛰놀거나 숲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야생의 생물들과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모든 체험은 오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접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는 등의 감각적인, 살아 있는 체험만이 유의미하다는 생각에서다. 충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감각을 나누기란 힘든 일이지. 상대가 만져 보지 못한 감촉을 상대에게 그대로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 세계를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야.” 이 대사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감각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하는 장 대표의 철학이 그대로 묻어나는 부분이다. “저는 농장이 가급적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도 자연 상태로 지냈으면 하구요. 농장 주변에 약을 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에요. 풀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와도 절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요. 자연의 생명력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것들이 많을수록 좋고 아이들에게도 해가 되지 않아야 하니까요.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손으로 풀을 베요. 사흘이 꼬박 걸리지만 그게 좋아요.” 장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이 야생마처럼 뛰어노는 모습이다. 등나무 넝쿨과 풀숲에서 이름 모를 애벌레를 발견하며 탄성을 지르거나 벌집을 발견하고 메뚜기처럼 튀어 오르거나 손등에 곤충을 올려놓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다.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도 장 대표를 행복하게 만든다. 곤충의 생육조건을 묻는 전화도 기껍지만 가장 흐뭇한 것은 아무래도 데려간 애벌레가 성충으로 변태한 것을 알려오는 전화다.# 곤충이 자라는 만큼 아이들 웃음도 커간다 “징그럽다면서도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애벌레를 데려가는 부모님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이 소식을 전해 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쌀벌레만 하던 것이 손가락 마디만큼 자라고 그게 또 손가락만 해지고, 그러다 어느 날 그놈이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로 변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대요. 짝짓기하고 알을 낳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요. 녀석들 때문인지 아이들 짜증도 줄고 주변 것들 모두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 같다며 고맙다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장 대표는 2011년 곤충농가시설지원사업에 선정돼 시설을 보강했다. 현재는 곤충사육장과 제1학습장(작업실, 만들기실), 곤충·파충류 전시관, 휴식공간, 밤나무숲터 등 하우스 5개동 외에도 연못과 동물원 등 야외시설과 주차장을 포함해 5000여평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동종 업계에서 자기 살 깎아 먹기 식의 가격 경쟁을 하는 통에 운영이 수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필요한 만큼만 사육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대량 사육하고 판매로를 찾지 못해 곤충을 떼죽음하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기 때문이다. 방문객에 한해 판매를 한 뒤 지속적인 관리를 해 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장 대표에게 곤충과 자연은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낮이 제법 길어졌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도 커졌다. 봄이 시작되는 3월에는 장 대표의 가족이 함께 만든 매표소도 문을 열 것이다. 봄꽃이 지천인 곳에서 아이들이 새떼처럼 지저귀고, 자연을 어루만지며 사방을 웃음소리로 물들일 것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생명의 깊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의 소중함을 깨우쳐 나갈 아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런 자리를 마련해 준 김포곤충농장에도.글쓴이 소설가 진연주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방’(房)으로 등단.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장편소설 ‘코케인’ 출간.
  • ‘야공작’ 유역비, 팜므파탈 보도스틸 공개

    ‘야공작’ 유역비, 팜므파탈 보도스틸 공개

    유역비의 파격적인 팜므파탈 변신으로 화제가 된 ‘야공작’이 오는 3월초 개봉을 앞두고 보도스틸을 공개했다. 영화 ‘야공작’은 중국, 프랑스 합작영화로 중국계 프랑스인 엘사(유역비)와 치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 세 남자의 얽히고설킨 사각관계를 그렸다. 유역비와 여명, 유엽, 여소군이 호흡을 맞췄다. 공개된 보도스틸을 통해 프랑스와 중국의 아름다운 배경을 볼 수 있다. 또 클럽, 물속, 방안, 거리 등 일상의 공간이 섬세하고 세련되게 담겨 있다. 특히 수영장 장면에서의 매혹적인 유역비 모습은 그 자체로 시선을 모은다. 또 홍콩의 4대 천왕인 여명, 연기파 배우 유엽 그리고 제2의 장국영이라 불리는 여소군의 매력이 담긴 스틸 역시 눈길을 끈다. 영화 ‘야공작’은 중국 정체성 문제를 특유의 해학과 유머로 섬세하게 그려내 인정받은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다이 시지에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오는 3월 개봉될 예정이다. 15세 관람가. 84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오전 5시 ‘책 주가’ 따라 울고웃는 출판사

    오전 5시 ‘책 주가’ 따라 울고웃는 출판사

    책 사재기로 인한 수치 조작 거의 불가능 도서 정렬 순서·웹 노출·검색순위 결정 출판사 ‘책 주가’따라 마케팅 긴급 처방 알라딘 “초베스트셀러 징조도 예견 가능” 서울의 한 출판사 사장 김모씨는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면 컴퓨터부터 켠다. 인터넷 서점인 예스24와 알라딘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자사 책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경쟁사 책들의 판매 동향을 확인하기 위해 ‘특정 숫자’를 주시한다. 또 다른 출판사 사장은 “그날그날의 희로애락이 이 숫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매일 등락하는 기업의 주가처럼 국내에 출간된 모든 책에도 ‘주가’가 있다. 예스24의 도서 ‘판매지수’와 알라딘의 ‘세일즈 포인트’다. 두 인터넷 서점이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이 수치는 매일 바뀐다.지난 10일 자정 방탄소년단의 신작 뮤직비디오 ‘봄날’ 티저가 공개된 후 출판계의 이목은 미국의 SF 판타지 작가 어슐러 르 귄의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에 쏠렸다. 2014년 12월에 출간된 후 줄곧 1000여 포인트에 머물던 이 책의 예스24 판매지수와 알라딘의 세일즈 포인트는 뮤비 공개 사나흘 만에 3만 포인트로 급상승했다. 이른바 ‘대박 시그널’이다. 하루 5~6권 남짓 팔리던 르 귄의 단편집은 주말 새 시중 서점에 출고된 책들이 싹쓸이되면서 일주일도 안 돼 7000부가 나갔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에 르 귄의 소설 속 가상 도시 이름인 ‘오멜라스’가 등장하면서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두 인터넷 서점 모두 매일 오전 5시 정각에 자사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계산된 ‘업데이트 수치’를 공개한다. 가령 소설가 김훈의 신작 ‘공터에서’의 경우 지난 20일 예스 24에서는 24만 4908포인트, 알라딘에서는 11만 8500 포인트였다가 23일에는 각각 25만 9194포인트, 11만 7285포인트로 한쪽은 오르고 한쪽은 하락했다. 일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출간된 지 4년이 넘었지만 웬만한 국내 작가의 신간보다 포인트가 높다. 독자들이 꾸준히 책을 구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수치가 책 판매량은 아니다. 두 서점 관계자들은 자신들만의 알고리즘을 통해 수치를 산출한다고 설명했다. 영업 기밀이자 각사의 노하우인 셈이다. 알라딘의 경우 특정 책의 어제와 1주일, 보름, 한 달, 3개월, 6개월 등 시기별 판매량에 ‘기간 가중치’를 부여해 산출한다. 예스24도 일일 판매량, 주·월·연 단위의 주문건수와 기간 가중치 등을 종합한다. 출판사의 사재기로 인한 수치 조작을 막기 위한 장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특정 책을 100건 주문하는 것과 100명이 100건을 사는 경우의 가중치를 차별하는 식이다. ‘절대 평가’는 불가능하고, ‘상대 평가’만 가능한 이 수치는 그러나 출판사의 책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두 서점이 각자 산정한 포인트를 기준으로 웹에 노출되는 책의 정렬 순서나 검색 순위를 정하기 때문이다. 일반 독자들도 같은 장르나 주제의 책 중 어느 책이 더 많이 선택받고 있는지 포인트 비교만으로 알 수 있다. 국내에 유통되는 도서 판매량은 각 출판사들의 영업 비밀이다. 그러다 보니 주먹구구식의 ‘숫자 전쟁’이 벌어진다. 출판사마다 자사 책의 포인트 정보와 판매량을 토대로 자체 ‘공식’을 만들어 경쟁사 책들의 판매량을 추산한다. 한 단행본 출판사 편집자는 “경쟁 책이 더 팔린다고 판단될 경우 자사 책의 마케팅 활동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노출을 강화하는 식의 긴급 처방을 한다”고 전했다. 알라딘 관계자는 “출판사마다 꿈꾸는 초베스트셀러 징조도 포인트 등락을 통해 예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출판계에서 포인트를 판매량으로 변환하는 공식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출판사 자체 집계는 거의 공신력이 없다”며 “사람이 계산할 수 없어 컴퓨터 시스템에 맡길 정도로 산출 공식이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상의 황금시대는 어디에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상의 황금시대는 어디에

    정녕 좋은 시절이란 유한한 것일까. 연이은 테러와 폭동으로 파리의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고 루브르의 관람객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은 날 모두가 동경하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를 떠올리며 문득 든 생각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낭만과 사랑 그리고 예술의 도시로 파리가 자리잡은 것은 산업혁명 이후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끝낸 1871년부터이다.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몰려와 예술지상주의에 빠져들었고, 이런 분위기는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인 1930년대까지 이어진다. 역사가들은 특히 1871년부터 1914년까지를 ‘황금시대’라 명명했다. 이 시절 파리는 경제적 풍요로 낙천적 분위기와 힘찬 시대적 에너지가 넘쳐났다. 문화예술계에서도 데카당스한 댄디보이들이 세기말의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이들은 병적인 상태를 탐하고, 기괴한 주제와 소재를 반기며, 관능적이고 과민한 자의식으로 현실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를 위해 예술을 위한 예술을 강조하며 자연미를 거부했다. 우디 앨런은 이 시기의 파리를 찬미하고 그리는 영화를 만든다.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다. 이 영화도 산만하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큐 ‘우디 앨런: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서처럼 복잡하고 산만한 구성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더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그는 시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통해 행복하고 낭만적인 그때의 파리로 데려간다. 그리고 관객들의 ‘파리앓이’가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황금시절은 있는 법이고 오늘보다는 지난 과거를 대부분 황금기로 여긴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오늘이 지나면 어제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언제나 사람들은 오늘은 힘들고 어렵고, 지금보단 어제가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까칠하고 섬세한 우디 앨런은 ‘옛날도 좋았지만’ 가장 ‘좋은 시절’은 ‘지금’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오언 윌슨이 연기한 ‘길’이다. 소설가를 원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영화대본을 쓰는 그는 자신의 재능을 몰라 주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상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20년대를 동경한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약혼녀 ‘이네즈’는 매우 현실적이다. 이렇게 생각이 다른 한 쌍이 파리를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영화의 줄거리다. 아니 영화의 전부다. 파리의 낭만을 즐기려는 길은 쇼핑을 하고 싶어 하는 이네즈를 두고 혼자 나왔다 길을 잃고 만다. 낯선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는데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앞에 1928년 나온 멋진 구형 푸조 ‘랑듀레 184’가 나타난다. 멋진 자동차에 몸을 맡기고 얼떨결에 도착한 곳은 전설적인 작곡가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고 노래 부르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 부부가 헤밍웨이와 잡담하는 그곳, 1920년대 파리의 한 파티장이다. 즉 황금시대의 중심인 것이다. 그 후 길은 자정만 되면 버릇처럼 1920년대로 길을 나선다. 이곳에서 마크 트웨인을 만나 작품 얘기를 나누고 당대 최고의 비평가이자 소설가며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의 작품을 읽고 칭찬해 준다.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와 만나 현실의 연인 이네즈를 잊고 환상 속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우디 앨런이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1920년대 파리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모든 예술가들을 불러모아 연 파티가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이 시절 파리는 인간상실의 시대에 절망한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욕망과 탐욕의 시대를 벗어나 이룬 ‘해방구’였다. “선한 미국인은 죽어서 파리에 간다”고 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특히 많은 미국의 문인, 예술가들은 파리로 떠났고 일부는 그곳에서 살고 뼈를 묻을 만큼 파리는 동경의 땅이자 예술적 열정으로 가득한 땅이었다. 그리고 파리는 시대적 아픔을 치유, 아니 잊을 수 있는 낭만적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래서 수많은 카페와 바 그리고 아틀리에를 전전하는 파티는 초라했지만 매일매일 토론과 열정으로 잘 차려진 성찬이었다. 이렇듯 미국의 지식인·예술가들에게는 뜨거운 파리였지만 토박이들에게는 권태롭기 그지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우울하고 염세적인, 그러나 피는 뜨거웠던 ‘파리의 황금시대’를 매우 적나라하게 그려 낸 로트렉이 스케치를 하고 있는 물랭루주의 한 바에 나타난 드가에게 고갱이 한마디 날린다. “이 시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어. 르네상스 때야말로 최고의 시대였지!”라고. 우디 앨런은 현실에서 작품을 인정받지 못해 불만인 길에게 1920년대 문화예술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파리도 당시 고갱에게 불만이었던 것처럼 “지금, 여기”와의 대비를 통해 ‘현실도 꽤 괜찮은 살 만한 곳’이라는 쪽지를 슬그머니 손에 쥐여 준다. 영화 속 황금시대의 파리는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운집해 있다. 장 콕토, 투우사 벨 몬테, 모딜리아니, 계속해서 코뿔소를 외치는 달리와 그의 친구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사진가 만 레이, 시인 T S 엘리엇, 조세핀 베이커, 주나 반스, 코코 샤넬 등등이 마치 20세기 초를 구가한 문화예술인 인명사전의 색인처럼 등장한다. 이 시절 파리로 모였던 많은 화가들을 ‘에콜 드 파리’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는 이민 또는 난민 화가들의 천국이었다. 파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누구든 ‘톨레랑스’라는 이름으로 받아 주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모딜리아니, 러시아의 샤갈, 리투아니아의 수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전쟁을 피해 파리로 스며들어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시대를 거스르는 연어처럼 펄떡이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살랐다. 내일은 없다는 듯 보헤미안처럼 그날그날에 충실했다. 멜랑콜리한 정서와 반항적인 기질, 감상적인 성격과 취향이 같았던 이들은 로맨틱하고 서정적이거나 우아한 애수가 함께하는 섬세한 관능미를, 때로는 분노와 열정을 자제함이 없이 화폭에 폭발적으로 펼쳐내기도 했다.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카데미즘을 일거에 무너뜨린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이다. 각기 다른 다양한 작품의 바닥에는 불안과 고뇌라는 공통점이 도사리고 있었고, 여기에 샹송을 보태며 그들은 더욱더 충실하게 오늘을 살았다. 영화에서 포크너는 말한다. “과거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디 앨런은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바로 황금시대”라고 말한다. 아마 그가 한국인이라면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을 터이다. 그렇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굴러 보자. 황금시대는 다시 올지니.
  • “헌재가 여자 편 안 들고 국회 편들어”…김평우의 변론 들어보니

    “헌재가 여자 편 안 들고 국회 편들어”…김평우의 변론 들어보니

    최근 박근혜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에 합류한 김평우(사진·72) 변호사의 발언이 거듭 논란이 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내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헌재 재판관과 국회 소추위원단을 꾸짖는가 하면, 자칫 협박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22일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에서도 김 변호사는 “(국회가) 무슨 영문인지 ‘섞어찌개’ 범죄를 만들어 (박 대통령을) 탄핵소추했다”랄지 “국회의원들이 야쿠자(일본 조직폭력배)입니까”라는 등 막말을 쏟아냈다. 김 변호사는 앞서 지난 20일 열린 15차 변론에서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변론 종결 선언 후에도 추가 변론을 하겠다면서 ‘고성 난동’을 부린 적이 있다. 이날 변론 때 김 변호사가 했던 주요 발언들을 모아봤다.“이 사건(대통령 탄핵심판)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사건이다. (재판관) 9명 전원 이름으로 선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내란 상태로 들어간다.” (현재 헌재 재판관 숫자는 8명이다.)“(국회가 헌재에 제출한) 탄핵소추장을 보면, 비선 조직을 이용한 국정 농단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뜻을 알고 (국회가) 썼느냐. 비선 조직은 깡패 조직, 첩보 조직에서 쓰는 말이다.”“법관은 약자를 생각하는 것이 정도(正道)인데, 약한 여자(박 대통령을 가리킴) 하나 편드는 게 아니라 똑똑하고 강한 변호사들(국회 소추위원단 대리인단을 가리킴)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은 법관이 해선 안 될 일이라고 믿는다.”“강일원 헌재 재판관이, 국회 측이 질문하고 끝낸 것을 뭐가 부족하다고 한술 더 뜨고 있다. 강일원 재판관은 청구인(국회)의 수석대변인인가.” (이 발언을 들은 이정미 재판관이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다”고 강력 경고했다.) 이정미 재판관도 문제가 있다.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심판이 이정미라는 특정 재판관의 퇴임 일자인 3월 13일 선고에 맞춰서 과속으로 졸속 진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이분들이(국회 소추위원단)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 소추안을 만든 것이 고의라면, 재판관과 ‘5000만 국민’을 속이려고 한 것으로 무고한 박근혜 대통령을 쫓아내고 조기 선거로 정권을 잡겠다는 사기극이며, 국정 농단의 대역죄다.” “여러분, 위키피디아를 들어가 보라. 미국의 어느 탄핵 소추장에도 두 가지 범죄를 섞어서 소추한 예는 없다. 한국 국회는 안하무인으로 동서고금 세계 역사에 없는 섞어찌개를 개발해 (탄핵소추 사유) 13가지를 만들어 또 하나의 큰 통(탄핵소추 의결서)에 넣었다.” “세월호 피해자를 구조해야 할 책임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있나. 대통령에게 머리도 깎지 말고 밥도 먹지 말라고 하고, 국회의원은 놀고 술 먹어도 되나. (중략) 더군다나 여자 대통령에게 10분 단위로 보고하라는 건 세상 사람이 알면 웃을 일이다.” “헌재가 없으면 시가전(戰)이 발생하고 내전 상태에 들어간다. 영국 역사에 크롬웰의 혁명으로 수십만명이 죽었다. 국회파와 대통령파가 직접 충돌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 분명하다.”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아들인 김 변호사는 1972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한 판사 출신으로, 서울형사지법과 청주지법 충주지원 판사 등을 거쳐 1980년대 변호사 개업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또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적도 있다. 그는 최근 ‘탄핵을 탄핵하다’라는 책을 내놓고 박 대통령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대통령측 “20여명 추가 증인 신청” 국회측 “전형적인 탄핵지연 전략”

    대통령측 “20여명 추가 증인 신청” 국회측 “전형적인 탄핵지연 전략”

    박근혜 대통령 측이 최종변론만 앞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박한철 전임 헌재소장 등 증인 20여명을 22일 무더기로 신청했다. 국회 소추위원단측은 “전형적인 탄핵지연을 위한 전략”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는 이날 열린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서 “박 전 소장의 (3월 13일 이전 선고) 발언이 정말로 평지풍파를 대단히 일으켰다. (그는)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며 “박 전 소장을 증인으로 불러 어떤 취지로 발언했는지 듣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헌법학계 권위자인 허 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석좌교수 등 학자 3명을 불러 헌재가 위헌적인 심판 진행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정세균 국회의장, 김무성·유승민·황영철 바른정당 의원, 정진석·나경원·김도읍·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 우상호·박완주·이춘석·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지원·김관영 국민의당 의원 등을 불러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는 데 절차적 위법을 저질렀음을 밝히겠다고 강변했다. 이 밖에도 김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정당성에 대해 소설가 복거일씨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인권 유린과 관련해 ‘비선 의료진’ 김영재 원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증언대에 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이날 김 변호사의 증인 신청은 20명에 달하는 대통령 측 전체 대리인 중 김 변호사와 정기승 전 대법관만이 동의한 것으로 보여 실제 헌재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브런치] 갑질, 그 완장의 심리학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브런치] 갑질, 그 완장의 심리학

    여자가 남자와 만났을 때 제일 지루해하고 듣기 싫어한다는 얘기로 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맞다. 옛날 군대 얘기다. 작대기 네 개, 병장이 되면서 어깨에는 5분대기조 분대장을 의미하는 초록색 견장이 올라갔다. 분대장 견장이 붙으니 식당까지 이동할 때 줄 서서 군가를 부르며 가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제일 좋았던 점은 식당에 들어가면 취사반 선임이 식판에 밥을 담아 자리 앞에 갖다 바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밥 위에 노른자가 선명한 달걀 프라이까지 얹어 나오는, 이런저런 소소한 혜택들이 딸려 왔다. 여기에 소대장과 중대 선임하사의 태도까지 하대에서 존중으로 바뀌니 견장은 무소불위의 권위의식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휴가 나왔을 때 만난 여자 후배들이 “그래 봐야 수많은 군바리들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무심히 던진 한마디에 알량한 권위 의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1989년 탤런트 조형기씨가 완장 찬 동네 한량으로 나왔던 드라마로 더 잘 알려진 소설가 윤흥길의 ‘완장’에는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라는 말이 나온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완장’은 마약이다. 그중 가장 강력한 약효를 보이고 사회를 좀먹는 것은 비뚤어진 권위 의식이란 완장이다. 이 완장은 본인보다 약해 보이거나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유독 힘을 발휘한다. 권위 의식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개인의 성격인가, 사회 시스템 문제인가. 권위와 복종에 대한 행동실험 중 유명한 것은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수행한 ‘스탠퍼드 감옥실험’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청년들을 모집해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로 분류했다. 교도관이 된 피실험자들은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만에 공격적으로 변했고, 수감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관찰했다. 수감자의 일부는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 2주로 예정됐던 실험은 엿새 만에 끝났다. 최근 캐나다 맥마스터대 신경과학과 연구진이 감옥실험을 변형한 연구를 했다. 그 결과 평상복을 입었을 때보다 경찰 제복을 입었을 때 사회적 지위가 낮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사회심리학 및 행동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심리학의 최첨단’ 최신호에 실렸다. 짐바르도 교수와 맥마스터대 연구진의 실험에서는 권위 의식과 맹목적 복종의 원인이 개인의 성격보다는 사회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갑질’이라는 신종 완장 문화가 만연해 있다. 갑질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아지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위에 있어야 한다’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갑질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사회 구조를 좀먹는 갑질이란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아닌 협업과 상호부조라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과학은 알려 주고 있다. edmondy@seoul.co.kr
  • [新전원일기] 애들 돌 반지 팔아 ‘허브 공부’ 올인…농촌·도시 경계 허물 거라 믿었기에

    [新전원일기] 애들 돌 반지 팔아 ‘허브 공부’ 올인…농촌·도시 경계 허물 거라 믿었기에

    겨울의 끝자락, 어디를 둘러봐도 메마른 풍경이다. 잿빛 먼지로 뒤덮인 아스팔트와 건물들, 앙상한 나뭇가지로 경계가 흐릿해진 산등성이와 누렇게 얼어붙은 들판에도 봄이 오긴 오는 걸까. 마음마저 스산해지며 벌써 초록이 그립다. 서울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남짓, 수원역에서 내려 원평리를 경유하는 버스로 갈아탄다. 금세 도심을 벗어나 차창 밖 풍경이 바뀐다. 원평 정류장에서 내려 마주 보이는 2차선 도로를 따라 100여m쯤 걸어 들어가자 통나무를 잘라 촘촘하게 이어 붙인 나무판자를 외벽처럼 두른 비닐하우스 몇 동이 나타난다. 이종노(57) 대표와 그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화성시 매송면 ‘원평허브농원’이다.#국내 유일 입장료 없는 허브 농원 입구에서부터 축축한 흙냄새, 상큼한 허브 향기가 훅하고 끼쳐 든다. 실내로 들어서자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초록으로 뒤덮인 세상이 펼쳐진다. 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노랑, 연두 깃털 고운 앵무새들이 지저귄다. 원목으로 짠 벤치와 탁자가 곳곳에 놓여 있어 규모가 제법 큰 정원 카페, 내지는 식물원을 연상시킨다. 신발을 벗고 앉아 쉴 수 있는 평상이 있고, 아이들이 놀기 좋은 버섯 동산과 미니 미끄럼틀과 그네도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농원이고 쉼터다. 입장료도 없고, 따로 허브티 코너가 있지만 음료는 주문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김밥이나 과일 등의 냄새가 심하지 않은 종류에 한해 음식물 반입도 가능하단다. “오는 사람들마다 얼마라도 입장료를 받으라고 난리인데, 내가 여기 일에 관여하고 있는 동안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공간을 삭막한 도시 생활로 지친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거든요.” 농원이 개장한 것은 1999년. 벌써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소나무처럼 늠름하게 자란 밑동 굵은 로즈마리와 라벤다, 율마 등의 짙은 향과 자태가 그 세월을 가늠하게 해 준다. #결혼하며 귀농… 열무·상추 농사부터 시작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서울 토박이가 1988년 올림픽 준비로 한참 들뜬 서울을 뒤로하고 결혼과 더불어 귀농한 것은 도시 생활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농촌에 대한 동경이나 농업을 위한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먼저 귀농하신 어머니, 아버지가 생경한 농사일에 힘겨워하시는 모습을 더이상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뵙고 갈 때마다 수원역 앞에 눈물도 참 많이 뿌렸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건데, 처음에는 손가락만 한 열무를 첫 작품이랍시고 아주 자랑스럽게 도매시장으로 가져가서는 상인들을 어이없어 웃게 하기도 하고, 상추는 무조건 크면 좋은 건 줄 알고 부채만 하게 키워 당당하게 갖고 나갔다가 한 박스도 못 팔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던 거죠.” 게다가 자연 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폭설로 작물이 잔뜩 들어 있는 비닐하우스가 폭삭 주저앉기도 하고, 부모님 살림집으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가 누전으로 몽땅 타 버리기도 했다. 홍수가 나서 농장이 온통 흙속에 파묻혀 버린 적도 있었다. 장대비를 맞으며 짐을 실은 경운기를 몰고 가다가 신호 대기로 교차로에 서 있는데, 맞은편 승용차 안의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돌아보게 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뜨거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주어진 현실을 꿋꿋하게 견디며 동틀 무렵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했다.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쌓였다. 수원 도매시장에서는 성실한 사람, 신용이 있는 사람으로 통하게 됐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가족의 기본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게 됐고, 자식들을 위해 허리 한 번 펴지 못하며 고생하신 부모님도 가끔은 낮잠을 자고 마을 어른들과 함께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상추값이 폭락하기 전까지는. “그해 상추가 정말 예쁘게 잘 자라더라고요. 꿈에 부풀었죠. 이게 다 돈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농산물 가격이라는 것이 생산자인 우리가 결정하는 시스템이 아니잖습니까. 출하를 해 보니 4㎏ 한 박스가 250원에 낙찰되더군요. 그것도 다 팔지 못해 썩어 나가는 게 태반이었죠.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어떤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서 농촌과 농업의 잠재적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할 결심을 그때 하게 된 거죠.” 대학원에 가겠다는 그에게, 아내 이덕화(55)씨가 아이들의 돌 반지를 팔아 학비를 마련해 줬다. 외환위기로 한창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였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찬물로 샤워하고 책상 앞에 앉아 공부했지만 갈등도 컸다. “장학금을 타기도 했지요.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있고,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굳어진 머리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가 들기도 했죠. 그때마다 아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습니다. 적금을 깨고, 아이들 보험까지 해약해 가며 제 학비를 다 대주었으니까요.” 그렇게 만난 것이 허브였다. 허브라는 식물과 유용성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때였는데, 수업 시간에 본 해외 영상 자료가 잊혀지지 않았다.#처음엔 하우스 귀퉁이에 어렵게 구한 모종 심어 하우스 한쪽 귀퉁이에서 허브 재배를 시작했다. 광주의 친구에게 부탁해 어렵게 구한 모종을 가꾸고, 삽목 가지들을 얻어 아내와 함께 밤새 다듬어 새벽에 심었다. 허브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하우스 하나를 통째로 비워 흙을 돋우고 자갈을 깔고, 통나무를 잘라 칠해 가며 하나씩 하나씩 허브 정원을 꾸며 나갔다. 부모님과 이웃 농민들의 눈에는 당연히 헛심 쓰기, 혹은 고급 취미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반대가 거셌고, 압박이 너무 심해 한때는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일단 밀어붙였다. 이 대표에게는 허브가 단순한 1차 작물이 아니라 농민과 도시민이 유기체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새 자원으로 보였다. 석사 논문도 허브로 썼다. “석사 학위증을 부모님 앞에 놓고 큰절을 하는데, 정말 눈물이 펑펑 나더라고요. 아내도 ‘여보 수고했어요’ 하고 말끝을 흐리며 우는데….” 채소 농사를 짓던 온실에서 그대로 허브를 가꾸었던 터라 처음에는 실패도 많았다. 모종 5만본을 그대로 버린 적도 있었다. 홍보할 방안을 알지 못하니 판로도 마땅치 않았고, 방문객 역시 있을 리 없었다. 1999년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온실 위에 쌓인 눈을 쓸어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지나가다 안을 살펴보더니 물었다. “홈페이지 하나 만드실래요?” “그거 공짜예요?” 당시 이 대표는 홈페이지가 뭔지도 몰랐다. “물론 공짜지요.” 그는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이었다. 이후 농림축산식품부의 도움으로 어렵게 홈페이지(www.herbsfarm.co.kr)를 만들어 개설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에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성심껏 답변하느라 하루 서너 시간도 자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의 진정성 있는 답변을 받은 사람들이 농원으로 직접 찾아오고, 꾸밈없고 소박해서 좋다는 입소문을 타며 동호회 등이 결성돼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누적 방문객이 수만 명에 이르게 되고 신문과 잡지와 방송 등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이종노가 일약 허브계의 스타가 돼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허브가 막 소개돼 붐이 일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아직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허브 가공품 생산과 판매를 위해 2000년 12월에는 ‘허비너스’라는 법인도 설립했다. 유명세를 타고 나니 해외 허브 제품을 수입하는 업자들이 찾아와서 판매를 종용하는데, 허브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더란다. “우리가 재배한 허브로 우리 제품을 만들면 되는데, 왜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요? 그래서 또 연구를 시작한 거죠. 특별한 방법으로 추출한 오일은 물론이고 허브 소금, 비누, 양초, 샴푸 등 제가 개발한 향과 원료를 바탕으로 지역의 기업과 협력해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허브 아토피·비염 치료제 등 특허도 여러 개 허브를 함유한 아토피 치료제, 비염 치료제, 두피 보호제 등 여러 특허를 획득해 벤처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국내외 각종 박람회에 참여해 허브 소금 등을 수출하기도 했다. 내방객들이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미리 예약한 단체 손님에 한해 허브를 이용한 음식들을 제공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장려하기 전에 이미 그는 허브로 6차 산업의 비전을 보고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경기도지사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등 유수의 상을 비롯해 각계로부터 표창장과 감사패를 받았다. 허브와 관련된 강연뿐 아니라 귀농, 귀촌에 대한 교육, 농산물 홍보와 마케팅 및 컴퓨터 활용법 등 농촌 생활 전반에 걸쳐 각 교육장마다 강사로 나가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농림부 베스트 강사 상을 받기도 했다. #“성공 비결, 두려움 없는 도전… 그리고 진정성” 원평허브농원은 5000평 규모의 시설에서 연간 3억 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대표는 성공 비결을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도전 의식과 성실과 진정성에서 찾는다. 항상 메모지를 갖고 다니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하고 실행에 옮겼단다. 거기에 입장료도 없이 농원을 개방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 따로 고객 관리라는 것을 할 필요도 없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대했다고 한다. 현재 농원 운영은 거의 세 자매가 맡고 있다. 어릴 때부터 흙과 허브와 함께 자란 첫째가 결혼해 사위와 함께 농원을 가꾸고 분화를 생산하고, 둘째 딸이 허브 차와 제품 판매 및 체험 프로그램을 맡고, 올해 대학에 들어간 셋째 딸이 아르바이트로 틈틈이 농원 일을 돕는다.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사라지고, 도시민과 농민이 소통하고, 세대를 넘어 젊은 농부들이 꿈을 펼치는 곳,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루고 그들이 이어 가는 우리 농촌의 미래가 밝다. 이번 주말에는 짙은 허브 향에 싸여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산뜻하고 담백하게 마음의 평안까지 얻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 역시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그곳이 벌써 그립다.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이 있다.
  • 바둑 정복한 AI… ‘인간 번역’은 못 넘었다

    바둑 정복한 AI… ‘인간 번역’은 못 넘었다

    문학·비문학·한영·영한 분야 AI, 문장 80~90% 어법 틀려 맥락·뉘앙스도 이해 못해“스티브가 청바지 꼬마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최초의 아이폰을 꺼냈지” 하고 존 도어가 내게 당시 상황을 들려주었다.” (인간 번역사) “스티브는 청바지의 맨 윗주머니에 손을 들어댔고 첫 아이폰을 꺼냈다라고 도어는 나에게 말했다.”(인공지능 번역기) 인공지능(AI) 번역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 번역사를 꺾은 ‘제2 알파고’는 없었다. 2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국제통·번역협회(IITA)와 세종대, 세종사이버대 공동 주최로 열린 ‘인간 대 기계의 번역 대결’에서 인간 번역사가 AI 번역기에 압승을 거뒀다. 최근 기계번역은 문장 전체의 문맥을 고려해 번역하는 인공신경망번역기술(NMT)이 상용화되면서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텍스트의 맥락과 뉘앙스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정확도에서도 인간을 넘지 못했다. 이날 대결에서 인간 대표로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출신의 전문 번역사 4명이, AI 대표로는 구글과 네이버, 시스트란의 번역기가 각각 ‘등판’했다. 문제는 문학과 비문학에서 각각 한·영 번역과 영·한 번역이 제시됐으며 한글 지문으로는 한국일보에 실린 소설가 김서령의 수필 ‘셀프빨래방’과 소설가 강경애의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 영어 지문으로는 장난감 브랜드 ‘레고’와 영화 ‘레고무비’에 관한 폭스뉴스 경제 기사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에 실린 글이 발췌됐다. 인간 번역사에게는 한 지문당 50분의 시간이 주어졌고 번역 과정에서 인터넷 검색이 허용됐다. 평가 기준은 ▲오역 및 누락 여부 ▲심층적 의미 파악 여부 ▲어법에 맞는 표현 ▲어휘 선택과 표현의 적절성 및 명료성 ▲내용의 논리성과 타당성 ▲전후 맥락 고려 여부 등 6개 항목이었다. 총 60점 만점에 인간 번역사는 49점을 받았으나 3개의 AI 번역기는 각각 28점과 15점, 17점을 받는 데 그쳤다. 2개의 AI 번역기는 80~90% 이상의 문장이 어법에 맞지 않았다. 인간 번역사가 “휴대전화 앱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The mobile phone app industry exploded)고 옮긴 문장을 3개의 AI 번역기 모두 “휴대전화 앱 산업이 폭발했다”고 옮기는 등 원문의 성격이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채 단순 번역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어의 고유 의미나 영어 단어의 다의어적 성격을 감안하지 않아 오역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 채점과 평가를 총괄한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장은 “인간의 말에 담긴 감정은 그 뉘앙스가 바둑의 수보다 많지만 아직 AI가 정복하지 못했다”면서 “특히 문학에서는 번역 품질이 크게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통·번역계와 산업계는 AI가 번역의 속도와 생산성을 높이고 인간은 텍스트의 함축적 의미를 전달하는 식의 협업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곽은주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는 “인간 번역사는 각 텍스트의 종류와 맥락, 성격에 따라 최적의 번역기를 골라내는 ‘소믈리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번역 시장이 확대되고 번역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서로가 서로의 빛이 된…

    서로가 서로의 빛이 된…

    타인을 감각하는 게 소설가의 본령이라면, 조해진(41)은 그 본령의 심연에 한발 더 다가갔다. “인간다움을 되새기고 싶었다”는 세 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창비)에서다.조해진 소설의 거주자들은 대개 뿌리 뽑힌 존재들이다. 유학생, 이주노동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용역업체 직원, 입양아 등 도시의 구석방에 매몰된 이들이다. 작가는 부초처럼 부유하는 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선의나 증여로 서로가 서로를 살게 하는 빛의 순간을 포착한다. 야만의 역사가 개인의 삶에 치명상을 입히고 난 자리를 끈질기게 응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확신한다. “나와 나의 세계를 넘어선 인물들, 그들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소통했고 유대를 맺었다. 그들은 나보다 큰 사람들이었고 더 인간적이었다. 이제야 나는, 진짜 타인에 대해 쓸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빛의 호위’에는 이처럼 국경과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타인과 나를 겹쳐 보는 9편의 단편이 묶였다. 지난해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산책자의 행복’은 “이 시대에 호응할 수 있는 문학적 상상력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환기한 작품”이라는 심사평대로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인물의 내면을 치밀하게 증언한다.철학과 강사였던 홍미영은 학과 통폐합으로 일자리를 잃고 어머니의 수술과 입원으로 파산하며 기초생활수급자로 내몰린다. ‘하나의 세계는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를테면 불행이란 진실을 사유하는 데 필요한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혹은 진정한 행복을 완성하는 부속품이라고 여기던 세계는 단단하게 셔터를 내린 것이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에 의탁해야 하는 세계, 수치심은 사치가 되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최후의 보루조차 될 수 없는 세계, 그녀 앞에 새로 펼쳐진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120~121쪽)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게 된 그는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 주는 직업에 연연하지 말라”던, “속된 세계로의 편입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지키는 한 어떤 형태의 가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던 강사 시절 자신의 말이 ‘배교자의 언어’였음을 차갑게 실감한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던 학생에게 이렇게 되묻고만 싶다. “사는 게 원래 이토록 무서운 거니?” ‘사물과의 작별’, ‘동쪽 伯의 숲’은 이야기꾼으로서 조해진의 깊어진 품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각각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1967년 동백림 사건 등 현대사의 장면을 이야기 안으로 불러온 소설들은 역사의 파고에 ‘유실물’이 되고만 개인이 끝끝내 지키려 했던 존엄을 직시한다. ‘사물과의 작별’은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의 형들인 서준식·서승 형제, ‘동쪽 伯의 숲’은 동백림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떠올렸다는 작가는 ‘증언의 욕망’이 글의 동력이었다고 했다. “혼자 알고 잊기에는 불합리한 역사가 개인에게 남긴 상처와 피폐함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너무 커서 소설을 통해 증언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 무수히 일어나고 해도 안 바뀌는 경험이 일상이 된 시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무력감이 오히려 증언에의 욕망을 부추겼죠. 역사의 폭력이 개인에게 남긴 상흔은 장편으로도 계획 중이에요.” 소설집 전체와 작가의 진로는 소설 속 인물의 한마디로 압축된다. “당신의 신념은 나의 것이기도 하다. 개인은 세계에 앞서고,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억압할 수 없다.”(111쪽)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1> 여성잡지 ‘엘레강스’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1> 여성잡지 ‘엘레강스’

    헌책방에서 잠자던 옛 책을 발굴해 그 시대의 문화상을 발랄하고 경쾌하게 조명하는 새 연재물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박물관’이 격주로 독자들과 만납니다.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들도 충분히 곱씹어 볼 만한 문화의 자취를 느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을 좋아해 그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한 책방을 연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는 ‘탐서의 즐거움’, ‘내가 사랑한 첫 문장’,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를 쓴 자칭 애서가이자 활자 중독자입니다.오래된 책들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길 게 없다. 그중에서도 내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보던 대중잡지다. 대중잡지는 당시 문화와 시대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매체다. 특히 텔레비전이 보편화되기 전인 1980년대 이전 잡지는 사건 사고에서부터 정치, 경제, 문화, 연예계 이야기는 물론 가벼운 가십거리까지 꽉꽉 들어차 있어 시대의 축소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이런저런 잡지들이 많은데 멀티미디어 매체라는 게 아예 없었던 당시에 잡지의 힘이란 그야말로 대단했다. 얼마 전 가끔 들르는 책 경매장에서 ‘엘레강스’라는 여성 잡지가 한 권 출품되어서 구입했다. 평소에 옛날 잡지를 좋아하는 내게 1960~70년대에 나온 대중잡지는 무엇보다 반가운 책이다. 이날 구입한 잡지는 1976년 6월호로 잡지 제목 위에 “미혼여성·여대생의 잡지!”라는 문구가 쓰인 걸로 봐서 젊은 여성을 주 독자층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잡지를 발행한 곳은 ‘주부생활사’다. 주부생활사는 1960년대부터 여성 독자를 위한 책을 많이 출판한 곳이다. 펴낸 책 대부분은 각종 음식 만드는 방법, 집안 살림, 옷 만들기, 육아, 꽃꽂이 등에 관한 것으로 그 당시 여성이 알아야 할 지식이 대체로 어떤 분야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미혼 여성 ‘신부수업’ 받던 그 시절 확실히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은 ‘결혼해서 살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컸다. ‘신부수업’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쓰던 때였다. 몇 년 전에 ‘지리산’, ‘관부연락선’ 등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이병주의 칼럼 모음집 ‘1979년’을 봤는데 여러 글들 중에서 “여자는 대학을 나와야 하는가”라는 것도 있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가가 1970년대에 쓴 글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땠는지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여성이 대학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에 더해서 강한 목소리로 여성에게 고학력은 아무 쓸 곳이 없을 뿐 아니라 취직하는 것에도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당시 사회가 그랬다. 문화, 사회,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남성이 움직이고 있었으니 여성의 존재는 그만큼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1960년대 이전으로 내려간다면 이런 분위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대중들 반응에 가장 민감한 매체인 영화만 보더라도 1960년대에는 말하자면 신성일의 시대였다. 영화 내용도 사나이들의 모험과 의리 같은 것을 그린 내용이 많았지만 1970년대에 히트한 영화들은 대개 이야기 중심에 여성이 있었다. 최인호 소설을 각색한 ‘별들의 고향’(1974)을 보기 위해 46만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영자의 전성시대’(1975)와 ‘바보들의 행진’(1975), ‘겨울여자’(1977)도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히트 영화가 유명한 원작 소설들과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유행 때문이었는지 인기 소설가와 젊은 영화감독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다. 문화를 즐기는 계층은 남성 중심에서 여성 쪽으로 조금씩 무게가 이동했다. 자연스레 대학생 또는 사회에 진출한 젊은 여성을 위한 잡지도 늘어났다. ‘엘레강스’ 1976년 6월호 목차를 살펴보면 문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성 독자를 겨냥해서 인기 있는 소설과 영화, 외국에서 유행하는 팝송 소개 등으로 지면을 구성했다. 여성 예술가로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천경자 화백의 작품 설명과 컬러 화보가 잡지 앞쪽에 실렸다. #독자 참여 방식으로 차별화 전략 또 하나 특별한 점은 당시에 나왔던 여러 여성 잡지에 대한 차별화 전략으로 일반 독자를 잡지에 직접 참여하게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번 호 표지를 장식한 모델은 인기 연예인이 아니다. 올해 스물네 살이 된 박옥경씨로 고려대 의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다. 취미는 스포츠이고 장래 꿈은 선장(船長)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덧붙여 편집부는 박옥경씨를 “나이팅게일을 꿈꾸는 대학가의 주인공”이며 “안 보고도 데려간다는 셋째 딸” 이라고 설명한다. 멋진 설명인 것 같지만 가만히 읽어 보니 좀 이상하다. 여성을 위한 잡지라고는 하지만 설명은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이다. 이런 모습은 남성이 문화 소비의 중심이던 사회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잡지에 실린 주요 콘텐츠도 남성들이 지면을 채웠다. ‘엘레강스’ 1976년 6월호를 보면 최인호, 고은, 박두진 등 유명 작가들이 쓴 칼럼이 곳곳에 배치되었고 잡지 끝부분에는 조해일, 이동하 작가의 연재소설이 실렸다. 이 잡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기사는 “청춘파(靑春派) 감독이 말하는 영상 속의 미혼의식(未婚意識)”인데 이 역시 남성 감독 두 명과 인기 소설가 한 명의 좌담회를 글로 풀어 옮긴 것이다. 사실은 내가 경매에서 이 잡지를 구입한 이유가 바로 이 흥미로운 좌담회 때문이다.좌담회에 참석한 이들은 다음과 같다. ‘별들의 고향’을 히트시킨 이장호 감독, ‘영자의 전성시대’를 연출한 김호선 감독, 그리고 소설가로도 인기를 누렸지만 1968년에는 대종상 각본상을 거머쥐며 영화 쪽에도 재능을 인정받은 김승옥 작가 이렇게 세 명이다. 1970년대 중반은 청춘 영화의 시대였으니 두 히트 감독과 이들의 영화를 각색한 소설가를 섭외하는 기획은 참신하다. 그리고 잘나가는 세 남성을 모셔 놓고 요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이라면 고개가 갸우뚱할 일이지만 그때는 이 특집 좌담회 기사를 읽기 위해 잡지를 구입했을 사람들도 꽤나 있었을 것이다. 좌담회 기사 부분을 펼치면 우선 세 참석자가 한 곳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이 큼직하게 한쪽을 차지한다. 이장호, 김호선 감독은 손질을 언제 한 건지 알 수 없는 더벅머리이고 사진 왼쪽으로 정면 얼굴이 나온 사람이 김승옥 작가다. 손가락에는 담배를 끼우고 턱을 괸 상태로 두 감독 쪽을 바라보는 모습인데, 멋지게 나온 사진이라서 좌담회 이후에 이 사진은 김승옥 작가의 공식 프로필 사진처럼 여기저기서 다시 쓰이게 된다.#결국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만 알려줘 이야기는 대부분 두 감독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고 김승옥 작가는 사회자 격으로 좌담회 흐름을 이끌어 간다.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참석자 세 명이 감명받은 영화중에 인상 깊은 여성상을 담고 있는 작품을 꼽는 것이다. 두 감독은 ‘초원의 빛’, ‘젊은이의 양지’, 김승옥 작가는 아일랜드 영화 ‘라이안의 처녀’를 예로 들었다. 그다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러면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어떻게 미혼 여성의 이미지를 다룰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눈다. 놀랍게도 두 감독은 약간씩 방향은 다르지만 더욱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창조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다.그러나 이 사회 구조는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좀처럼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들 젊은 예술가들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김호선 감독은 “이미 사회 통념상 묵인되어 있는 사실을 영화화하면 꼭 부도덕하다는 비난이 들어온단 말이에요”라며 한탄한다. 이에 김승옥 작가는 “편견을 타파하도록 꾸준히 해보는 것, 이게 우리의 할 일이겠죠” 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그는 여성들이 앞으로 더욱 힘을 내서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가라고 주문한다. 두 감독에게도 “수많은 여자들이 삶의 보람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생, 그 자체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리얼하게” 나타나도록 연출해 달라고 당부한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1970년대 우리 사회 모습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앞서나간 지식인다운 면모다. 이로부터 시대는 많이 흘렀고 지금 ‘엘레강스’같은 여성 잡지를 펼쳐 보면 내용이 유치하다며 쓴웃음을 짓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힘을 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우아함을 내세운 ‘엘레강스’도 몇 년 후에는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여성자신’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변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몇십 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누군가도 지금 우리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길 수 있다. 옳고 그른 문제는 당장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이 시대를 반성하며 변화하려고 노력했는지, 그것이 미래의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작은 실천이라 믿는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지하철 여행을 떠나요, 동네 책방으로

    지하철 여행을 떠나요, 동네 책방으로

    바야흐로 개성있는 동네 책방 전성시대입니다.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랑방, 복합문화공간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로 다녀올 수 있는 보물같은 동네 책방들을 소개합니다. ◆1호선 신설동역 ‘고양이책방 슈뢰딩거’세 마리 고양이들의 집사인 책방지기가 운영하는 고양이 전문 책방입니다. 3년 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김미정 대표는 지금의 고양이 책방을 차리기 전 고양이 도서관 개관을 꿈꿀 정도로 고양이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고 합니다. 사람과 교감할 줄 알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한 점이 그녀를 ‘냥덕’(고양이 마니아)의 길로 이끌었다고 하네요. 김 대표의 말처럼 이 책방도 개성이 뚜렷합니다. 국내 일반 단행본, 해외 화보집, 중고 서적, 독립 출판물 500여권 외에도 엽서, 일러스트, 간단한 문구들도 취급합니다. 물론 모두 고양이에 관한 것들입니다. 심지어 책 내용이 고양이와 관련이 없어도 표지에 고양이가 등장한 책도 다룹니다. 책방지기와 고양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도 서로 교환하고 실용서적을 직접 추천받을 수도 있어 애묘인을 비롯한 고양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꼭 한 번 들르면 좋을 책방입니다. 수익의 일부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등 동물보호단체에도 기부한다고하니 책 구매를 통한 착한 소비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매장을 확장하면 소모임, 상영회 등 고양이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도 할 계획이랍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숭인동길 68 *운영시간: 화~토요일 오후 3시~9시 (일·월요일 휴무)*문의: 070-5123-2861 ◆2호선 문래역 ‘청색종이’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해 ‘로큰롤 헤븐’, ‘코끼리 주파수’ 등의 시집을 낸 김태형 시인이 운영하는 출판사 겸 작은 책방입니다. ‘청색종이’라는 상호는 김태형 시인이 생각하는 청색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담아 지었습니다. 청춘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울하거나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담은 ‘청색’을 찾아오는 분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기를 원한다고 하네요. 처음 책방을 차릴 때 시집 전문 서점을 표방한 것은 아니지만 김태형 시인이 시를 공부하는 데 필요한 책을 구입해 모으다보니 아무래도 시집이 많습니다. 시집을 비롯한 인문 과학 서적이 중심이고 헌책과 절판된 책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송재학 시인의 ‘기억들’ 등 절판된 책을 복간하기도 합니다. 매주 독서모임, 시읽기 수업, 인문독회 등 다양한 강좌도 열립니다. 이름은 잘 알고 있지만 지금껏 읽어보지 못한 고전을 비롯해 특히 어렵게 여긴 탓에 그동안 접하지 않은 시집 등을 모여서 함께 읽으며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4종의 책을 출간한 작은 출판사로서 곧 독일 번역소설과 국내 극작가의 희곡집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네요. *주소 :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 8-6*운영시간 : 월~토 오후 1시~9시 (일요일 휴무)*문의 : (02)2636-5811 ◆3호선 안국역 ‘베란다북스’서울 종로구 계동길 끝자락에 위치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방입니다. 아트북, 그래픽노블 등 시각예술 서적을 기반으로 한 그림책 전문 서점으로 일러스트레이터 노준구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화초와 빛이 가득한 집안 베란다처럼 서점에 머무는 분들이 편안하게 쉬어가는 곳이 되길 바라는 부부의 마음이 담긴 공간입니다. 시각예술분야 국내 작가 서적이 중심이지만 외국 작가 번역 서적도 마련돼 있습니다. 최근에는 문예지, 에세이, 시집 등 베란다북스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독립출판물로 장르를 조금씩 확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문학 서적처럼 그림책에서도 삶에 대한 시각과 철학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노 대표의 말처럼 아이들의 책으로만 여겨졌던 그림책 속에서 마음을 달래는 따뜻한 위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책 뿐만 아니라 아트프린트를 비롯해 판화, 엽서, 카드, 에코백 등의 상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예술 관련 강사와 함께하는 세미나를 시작으로 앞으로 그림책 작가와의 대화 등 책방을 찾는 손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도 열 계획입니다. *주소 : 서울 종로구 계동길 120*운영시간 : 화~토요일 오후 12시~6시 (일·월요일 휴무)*문의 : (02)747-3742 ◆4호선 혜화역 ‘얄라북스’사진을 전공한 세 명의 주인장이 사진 스튜디오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서점입니다. ‘얄라’는 아랍어로 ‘함께 가자’의 의미를, 우즈베키스탄어로는 ‘노래하다’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프랑스의 한 수녀가 이슬람권 국가에서 얄라 운동을 펼친 것을 본보기 삼아 얄라북스를 찾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었다고 합니다. 현대미술 중에서도 시각예술 분야의 독립출판물을 주로 취급합니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한 인문 도서들까지 포함해 4000~5000권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진, 회화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와 세미나도 많이 열립니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본인의 작품을 알리고 소통하는 장소가, 손님들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현대 미술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죠. 김지훈 실장은 “대형서점 직원들에게 세세히 물어보기 힘든 것도 이 곳에서는 마음 편히 질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인지 예술을 공부하는 지방 대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손님의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특히 한국 작가 작품집을 사가는 외국인들도 많다고 하네요. *주소 :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3길 11 지하 1층*운영시간 : 월~금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토요일 오후 12시~7시 (일요일 휴무)*문의 : (02)745-3330 ◆5호선 신금호역 ‘프루스트의 서재’박성민 대표가 어린 시절부터 산 동네에 차린 빨간 벽돌로 된 작은 책방입니다. 대부분의 책은 중고서적이고 소규모 출판물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대형 서점 등에서 10년 넘게 일했다는 박 대표는 책을 많이 보고 싶어서 입사한 서점에서 정작 책을 읽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직접 책방을 차렸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처럼 자신만의 서점에서 책을 읽고 나누며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공간이죠. 프루스트의 서재는 책을 파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최 대표는 본인의 책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의 좋은 작품을 펴내는 작업도 할 계획입니다. 매주 화요일, 토요일에는 여럿이 모여 낭독 모임을 가집니다. 참석자가 돌아가면서 책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천천히 읽는 시간을 갖습니다. 동네 분들과 타지역에서 오신 분들로 이루어진 모임에서 친목을 다지기도 합니다. 때때로 책방 공간을 이용한 사진, 그림 전시회도 열고 있습니다. *주소 : 서울 성동구 무수막길 56 *운영시간 : 화~일요일 오후 12시~8시 (월요일 휴무)*문의 : 010-8988-2682 ◆6호선 한강진역 ‘다시서점’낮에는 서점으로, 저녁에는 바(Bar)로 운영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가수 윤선애의 노래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에서 따온 서점의 이름은 ‘다시 한다’는 뜻과 더불어 ‘시가 많다’(多詩)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시집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입니다. 올해부터는 특정 시인을 정해서 그 시인의 시집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인 백석을 시작으로 앞으로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등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을 다룬다고 합니다. 김경현 대표는 “돌아보면 학창시절 시를 교과서에서 재미없고 어렵게 배운 것 같아 다른 방식으로 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책을 비치한 작은 공간을 돋보이게 하는 뚫린 벽 인테리어 덕분에 찾는 손님들이 흥미로워한다고 하네요. 간혹 인테리어가 예뻐 사진만 찍고 가는 손님들도 있지만 김 대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다가 자신의 감성을 풍성하게 만드는 한구절이라도 얻어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답니다. 저녁 6시가 되면 맥주와 차 등을 판매하는 ‘초능력’이라는 이름의 바로 변신합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독립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다시서점 신방화점도 문을 열었습니다.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2길 34 지하 1층*운영시간 : 화~일요일 오후 12시~6시 (월요일 휴무)*문의 : 070-4383-4869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 ‘대륙서점’1987년에 문을 연 동작구 상도동 ‘동네 사랑방’ 서점입니다. 대륙서점을 연 이전 사장님 부부에 이어 새로운 사장님 부부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혼 보금자리를 마련한 동네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했던 부부는 대륙서점이 여러 사정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점을 인수해 2015년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동네 서점이 변치 않고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랐던 부부는 그래서 간판도 원래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등의 추천을 받은 도서를 주제에 맞게 비치합니다. 동네분들이 읽고 싶어하는 추천 도서들도 많이 갖추고 있는데 특히 마을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동네의 특성상 마을, 협동조합, 생태 등과 관련한 도서가 많습니다. 책 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 취미 소모임, 작가 강연, 다큐 상연회까지 열리니 그야말로 동네 복합문화센터입니다. “삶의 여유가 없는 요즘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집 근처에서 쉽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서점”이 되길 바라는 사장님 부부의 염원이 담긴 공간입니다. *주소 : 서울 동작구 성대로 40 *운영시간 : 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10시*문의: (02)821-8878 ◆9호선 선유도역 ‘프레센트.14’향기 관련 일을 하던 최승진 대표가 책과 향을 접목해 차린 향기 파는 책방입니다. 마치 카페처럼 생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향긋한 향기가 먼저 손님을 반깁니다. ‘선물’(present)과 ‘향기’(scent)라는 단어가 합쳐진 상호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책을 특별하게 선물하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은 곳입니다. “책만 선물하면 뭔가 허전해 색다른 느낌을 주고 싶어 향기를 선택했다”는 최 대표는 선물받는 사람이 좀 더 책을 소중하게 여기고 특별하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총 900여권의 책 중 스테디셀러가 대다수이고 나머지는 독립출판물입니다. 책의 주제를 테마로 한 최 대표가 직접 만든 향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 알랭 드 보통의 ‘키스 앤 텔’,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등 책 6권과 더불어 영화 ‘4월 이야기’를 테마로 만든 향기입니다. 앞으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책을 중심으로 책에 어울리는 향기를 만들 계획입니다. 책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에 적힌 몇 개의 키워드만 보고 고르는 ‘블라인드 북’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최근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옛날 책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대할 수 있도록 한 시도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라면 환불, 교환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주소 :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22라길 1 대우미래사랑2차 104동 105호*운영시간: 월~목요일 오전 11시~오후 11시, 금~일요일 오후 12시~9시*문의 : (02)2679-1414 . 사실 동네 책방은 대형 서점보다 골목 깊숙이 있거나 주택가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찾기 힘들고 규모도 작아서 책을 감상하는 데 불편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혹은 동네 주민에게 물어가며 열심히 찾아간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그 책방에 더 오래 머물게 되실 겁니다. 보물찾기를 하듯 미지의 책방을 알게 된 기쁨은 덤입니다. 개성있는 책들을 한 권씩 구경하다보면 어느덧 시간가는지도 모르죠. 책방지기에게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조언과 추천을 받는 것도 수월합니다. 책 말고도 독서 모임, 낭독회, 전시회, 영화 상영, 세미나 등 다양한 활동도 즐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복합문화공간인 셈입니다. 다가오는 주말 지하철을 타고 가까운 책방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글·사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벌거숭이들(에쿠니 가오리 지음, 소담 펴냄)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선, 사람과 사람 사이 민감한 역학을 예리하게 포착한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소설. 336쪽. 1만 3800원.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아사쿠라 마유미·노부타 사요코 지음, 김윤경 옮김, 북라이프 펴냄) 여자의 진정한 자유는 엄마와의 적정 거리를 두는 데서 시작된다고 조언하는, 수많은 착한 딸들을 위한 책. 208쪽. 1만 3000원. 당신에게 말을 건다-속초 동아서점 이야기(김영건 지음, 정희우 그림, 알마 펴냄) 1956년부터 3대째 이어져 온 강원도 속초의 동아서점이 60년간 인연을 맺어 준 사람과 책 이야기. 200쪽. 1만 1500원.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이화경 지음, 행성B잎새 펴냄)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등 시대의 아웃사이더이자 여성들에게 삶과 예술의 추동력이 돼 준 여성 작가 열 명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다. 272쪽. 1만 4000원. 동백 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이영미 지음, 대중문화사 펴냄) 동백 아가씨, 아침 이슬, 조국 근대화, 포크, 대마초 사건 등 박정희 시대 대중 문화의 욕망을 읽는다. 400쪽. 1만 8000원. 문재인 스토리(함민복·김민정 엮음, 모악 펴냄) 시인 안도현, 함민복, 김민정, 소설가 백가흠 등 문재인과 인연을 맺은 문인들의 이야기가 모여 문재인과 그가 꿈꾸는 세상을 보여 준다. 266쪽. 1만 3000원.
  • 대통령 대리인단 세불리기…이번엔 김평우 전 변협 회장 합류

    대통령 대리인단 세불리기…이번엔 김평우 전 변협 회장 합류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참여하는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대리인 신규 합류’ 카드를 계속 꺼내고 있다. 이번엔 김평우(72·사법시험 8회)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다. 최근 김 전 회장은 지난 13일 ‘탄핵을 탄핵하다’라는 책을 내놓고 박 대통령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대리인단은 앞서 헌법재판관 출신 이동흡(66·사법시험 15회) 변호사를 지난 12일 대리인으로 선임하더니 이번에는 김 전 회장을 합류시켰다. 대리인단이 중량감 있는 법조인을 추가하면서 세를 불리는 모양새다. 이것이 탄핵심판 변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리인단의 이중환 변호사는 16일 “김 전 회장이 변호인 선임계를 접수했다”면서 “오늘 대심판정엔 출석하지만 변론은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아들인 김 전 회장은 1972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한 판사 출신으로, 서울형사지법과 청주지법 충주지원 판사 등을 거쳐 1980년대 변호사 개업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그는 최근 다른 법조 원로 8명을 주도해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 내용의 광고를 지난 9일자 조선일보에 싣기도 했다. ‘탄핵심판에 관한 법조인의 의견’이라는 제하의 광고 글에는 김 전 회장의 이름과 함께 정기승 전 대법관, 김두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이종순 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회장, 이시윤 전 헌재 재판관,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종표 원로 변호사, 김문회 전 헌재 재판관, 함정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의 원로 법조인 이름이 적혀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씨줄날줄] 지문 전성시대?/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지문 전성시대?/박건승 논설위원

    만인부동(萬人不同)과 종생불변(終生不變), 즉 사람마다 다르고 일생 변치 않는다. 지문의 특성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는 서명은 사람의 지문’이라고 했다. 지문은 임신 4개월째 유전적 체계에 따라 피하층에서부터 만들어지므로 한 번 생겨나면 바뀌지 않는다. 지문이 만들어지는 데는 압력의 비율, 모태 속 태아의 위치 등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르다. 지문이 일치할 확률은 10억분의1에서부터 640억분의1, 870억분의1까지 학설이 무척 다양하다. 세계 인구가 74억명이니 100억분의1을 넘어서면 지구상에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개나 고양이는 지문이 없지만 영장류인 원숭이·침팬지·오랑우탄은 지문이 있다. 유대류(有袋類)인 코알라는 뚜렷한 지문을 가진 몇 안 되는 포유류다. 코알라의 지문은 놀랄 만큼 인간의 지문과 흡사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지문이 생겨난 이유는 뭘까. 지금까지의 정설은 지문이 손가락과 물체 표면의 마찰력을 높여 무언가를 더 단단히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컵을 잡았을 때 젖은 컵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지문이 타이어의 홈처럼 막아 준다는 것이다. 지문은 사람을 구별하거나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중국이 지난주부터 14~70세 입국 외국인의 지문을 채취하는 것도 사람을 구별하는 데 그만한 수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지문 인식을 활용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요즘 들어선 지문 검사로 유아 적성을 파악해 장래 진로까지 추천해 준다는 ‘지문 적성검사’가 학부모 사이에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 강남·목동 등 교육특구를 중심으로 30여곳이 성업 중이다. 상담 업체들은 열 손가락 끝의 지문만 보고 유아들의 선천적인 성향과 소질, 적성, 진로 방향을 미리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아의 뇌 발달 시기에 지문이 형성되는데 이때 유전자적 특징이 반영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주로 언어 능력, 수리·논리 능력, 음악 능력, 자기이해 능력, 대인관계 능력을 파악한다. 예컨대 ‘공간지능이 뛰어난 예술가형이니 조형미술에 관심을 두고 준비해야 한다’는 식이다. 아무리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해도 적성, 장래 진로와 연관 짓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심리학계는 “지문과 재능·진로의 관계를 입증한 논문이 공인 학술지에 실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선진국에서도 정부·공공기관이 공인한 지문 적성·심리검사는 전무하다. 섣불리 특정 재능을 강조한 나머지 아이의 미래를 단정 짓는 것은 다른 가능성을 막는 꼴이 될 수 있다. 이제 사설 상담 업체들이 지문 적성검사의 신빙성이 높다는 증거를 내놓을 차례다. 세상 모든 이치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잖은가라는 식은 곤란하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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