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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훈풍에 3분기 수출 1850억불 ‘역대 최대’

    반도체 훈풍에 3분기 수출 1850억불 ‘역대 최대’

    올해 3분기 수출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가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결과다. 국가데이터처가 10일 발표한 ‘2025년 3분기 기업특성별 무역통계 결과(잠정)’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수출액은 1850억 달러(약 269조원)로 1년 전보다 6.5% 늘었다.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최대치다. 수출액은 지난 2분기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증가 흐름이다. 반도체가 성장세를 이끌었다. 재화 성질별로 보면 반도체가 주를 이루는 자본재 수출액이 11.2% 늘어 1110억 달러를 기록했다. 역시 역대 가장 많은 수출액이다. 자동차가 중심이 되는 소비재 수출은 4분기 연속 마이너스 흐름을 끊고 4.9% 증가한 239억 달러였다. 원자재 수출액은 화학공업 제품, 섬유류, 철강 및 금속제품 등을 중심으로 1.9% 줄어든 500억 달러였다. 기업규모별로는 대기업 수출액이 5.1% 증가한 1223억 달러를 기록하며 2015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찍었다. 대기업 수출은 원자재와 소비재에서 줄었지만, 자본재에서 늘었다. 중견기업은 자본재·소비재·원자재 수출이 고루 늘어 7.0% 증가한 323억 달러였다. 역시 역대 최대 수출액이다. 대기업은 반도체, 중견기업은 반도체 부품·장비 수출 증가의 영향이 크다는 게 데이터처 설명이다. 중소기업도 소비재·원자재·자본재 순으로 늘어나 수출액이 11.9% 증가한 298억 달러였다. 3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이며, 전(全) 분기를 통틀어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수치다. 대기업·중견기업 수출액은 2분기 연속, 중소기업은 7분기 연속 증가하고 있다. 대기업 수출이 늘면서 상위 10개 기업의 수출액 비중을 뜻하는 ‘무역 집중도’는 1년 전보다 2.6% 포인트 증가한 40.0%를 기록하며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상위 100대 기업 무역집중도는 0.2% 포인트 떨어진 67.6%였다. 대미 수출액은 3.9% 감소한 293억 달러로, 2023년 3분기 이후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밑돌았다. 3분기 연속 마이너스 흐름이다. 3분기 수입액은 1624억달러로 1년 전보다 1.5% 늘었다. 대기업(-0.9%)에서는 줄었지만 중견기업(4.6%), 중소기업(8.5%)에서는 늘었다.
  • 과자 상자의 혁신, 윤영달 회장의 ‘아트 경영’… 해마다 국악 공연도 진두지휘[2025 재계 인맥 대탐구]

    과자 상자의 혁신, 윤영달 회장의 ‘아트 경영’… 해마다 국악 공연도 진두지휘[2025 재계 인맥 대탐구]

    작품 그려 넣자 매출 30% 급증“온 국민 국악 일상화가 꿈” 후원 “하이테크에 찌든 고객을 일깨우고 그들의 지갑을 열자면 하이터치(정서적 교감)를 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예술은 곧 우리 기업의 존재 방식과 경영 철학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는 전략적 지침이 됐다.” 윤영달(80)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2014년 출간한 책 ‘AQ 예술지능’을 통해 그가 ‘아트(예술)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AQ는 ‘예술지능’(Artistic Quotient)을 뜻한다. 경영진과 직원들이 스스로 예술가가 돼 창의력을 발휘해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성숙기에 이른 국내 제과 시장의 돌파구를 고민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과자 품질이나 마케팅은 어느 브랜드든 비슷하다. 차별화하려면 고객 감성에 부합하는 고급스러운 ‘포장’이 필요했고 예술을 그 답으로 여겼다. 과자를 먹고 나면 쓰레기가 될 박스로 조형물을 만든 게 시작이었다. 이것이 진화해 크라운해태 조직 전체를 예술가 집단으로 바꾸는 데 이르게 된다. 과자와 예술을 결합해 고객과 소통하려면 직원의 예술지능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크라운과 해태라는 서로 다른 조직을 화합시켜야 할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윤 회장은 등산과 체육대회 같은 뻔한 방식 대신 예술 프로그램을 도입해 구성원 간의 벽을 허물었다. 윤 회장의 아트 경영은 실제 성과로도 이어졌다. 2007년 ‘오예스’ 포장에 심명보 작가의 ‘백만송이 장미’ 그림을 그려 넣자 연매출이 30% 이상 증가했다. 해태제과 ‘허니버터칩’의 성공도 아트 경영으로 감성을 배양한 덕이란 게 윤 회장의 설명이다. 2004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국악 공연 ‘창신제’는 윤 회장의 국악 사랑이 담긴 결과물이다. 지난달 스무 번째 창신제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공연에선 임직원으로 구성된 동아리 ‘크라운해태 한음회’도 무대에 올랐다. 2013년엔 윤 회장이 직접 임직원 100명과 판소리 사철가를 함께 부르는 ‘100인의 떼창’을 선보였다. 윤 회장은 크라운제과가 부도났던 1998년 북한산에 올라 우연히 대금 연주를 듣고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회고한다. 크라운해태가 22년간 국악 발전에 후원한 금액만 1000억원이 넘는다. 윤 회장은 지난 9~10월 열린 영동세계국악엑스포의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의 고객(소비자)인 온 국민이 국악을 일상화할 수 있게끔 하는 게 꿈이다. 아직 멀었다”며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 대 이은 가족 경영… 장남 윤석빈·사위 신정훈 3세 경영 공고화[2025 재계 인맥 대탐구]

    대 이은 가족 경영… 장남 윤석빈·사위 신정훈 3세 경영 공고화[2025 재계 인맥 대탐구]

    창업주 부인 ‘별사탕’ 개발에 일조2세 윤 회장 부인도 베이커리 경영장남 윤석빈, 부친 ‘아트 경영’ 계승사위 신정훈, 해태제과서 리더십 크라운제과는 사업 초창기부터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했다. 1950년대 말 고 윤태현 크라운제과 창업주는 2년간의 노력 끝에 당시 큰 인기를 끈 ‘울퉁불퉁 뿔이 난 별사탕’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부인 고 김순안 여사가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 여사는 별사탕을 만드는 연탄불 앞에서 장기간 작업을 도맡았고 결국 일산화탄소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평생 진통제에 의지해야 했던 그의 고통은 가족이 제과 공장을 함께 지탱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사업 초기 서울 중구 중림동 공장은 온 가족이 기계를 잡고 야간작업까지 불사해야 하는 체계였다. 가족 중심의 경영은 현재도 이어진다. 2세 윤영달(80)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2013년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으며 현재 핵심 계열사 크라운제과는 장남 윤석빈(54) 대표가, 해태제과는 사위 신정훈(55) 대표가 맡아 가족 경영의 맥을 잇고 있다. ●“여자도 경영 알아야” 창업주 철학 윤 회장은 1945년 서울에서 윤 창업주와 김 여사 사이 4남 2녀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7년 크라운제과에 입사했지만 개인 사업을 하겠다며 1977년 회사를 떠났다. 그가 다시 크라운제과로 돌아온 건 1995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서였다. 윤 회장은 1970년대 ‘죠리퐁’을 성공시켰고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는 판매망을 구축해 영업력을 입증하며 아버지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윤 회장은 25세 때 중매로 당시 이화여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육명희(76) 전 크라운해태제과 고문을 만나 그해 바로 결혼했다. 둘 사이에는 2남 1녀가 있다. 장남 윤 대표와 차남 윤성민(51) 아트밸리 대표는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며, 장녀 윤자원(50)씨의 남편이 신 대표다. 결혼 후 살림을 도맡았던 육 전 고문도 1979년부터 사업에 참여했다. 윤 창업주가 포니 자동차 한 대를 사 주면서 “여자도 경영을 알아야 하니 밖으로 나가라”고 한 것. 회사에 나가 전표를 끊고 장부를 쓰며 경리 일을 배웠다. 그는 2004년 크라운제과 고문, 2005년 해태제과 고문을 거쳐 2006년 크라운베이커리 대표이사에 올랐다. 생크림 케이크로 인기를 끌었던 크라운베이커리는 경쟁사에 밀려 2013년 가맹사업을 종료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윤 회장의 동생들도 한때 경영을 함께했다. 둘째 동생인 윤영노(77) 쟈뎅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7~1988년 크라운제과 부사장으로 일했다. 무역회사 ‘영인터내쇼날’을 창립한 그는 국내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인 ‘쟈뎅 커피타운’을 열며 원두커피 대중화를 이끌었다. 현재는 아들 윤상용(50) 대표가 쟈뎅을 이끌고 있다. 막냇동생인 윤영주(73) 나무와벽돌 대표는 윤 창업주의 부름을 받고 크라운제과에서 경영 수업을 받았으며 크라운베이커리 대표이사를 지낸 바 있다. 1995년 윤 회장이 크라운제과로 복귀하자 회사를 떠났다. 그는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우드앤브릭’이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 레스토랑이 있던 건물인 ‘가회헌’의 주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디자인 전공한 장남, 회계사 출신 사위 윤 회장의 장남인 윤 대표는 미국 뉴욕의 미술대학인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에서 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회사에서 처음 맡은 보직도 크라운베이커리 디자인실 실장이었다. 이사, 상무 등을 거쳐 2010년부터 크라운제과 대표이사에 올랐고 2020년 3월엔 장완수 대표가 사임을 하면서 크라운제과 단독 대표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2017년 지주사 크라운해태홀딩스 대표이사로도 선임됐다. 윤 대표는 식품업계 경영자 중 보기 드문 디자인 전공자로 윤 회장이 강조해 온 ‘아트 경영’을 계승할 적임자로 꼽힌다. 그는 폴카링·쿠크다스 등 제품 포장지에 명화를 새겨 넣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예술 감각을 경영에 접목했다. 신 대표는 2005년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가 합병할 당시 상무로 입사해 2008년부터 해태제과 대표로 일해 왔다. 공인회계사인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미국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수료했으며 삼일회계법인과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했다. 제과업과 무관한 경력 때문에 ‘낙하산’이란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중국산 분유에서 유해화학물질 멜라민이 검출된 파문이 해태제과의 주문자상표부착(OEM) 제품까지 번졌을 때 위기 대응을 주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4년에는 허니버터칩 출시로 매출을 반등시키며 해태제과의 부활을 이끌었다. 허니버터칩의 성공 신화가 알려지자 일각에서 장남과 사위의 경쟁 구도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신 대표는 크라운해태홀딩스 지분이 없다. 해태제과 지분 1.37%를 보유 중이다. 이런 신 대표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으니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자회사인 ㈜빨라쪼다. 해태제과는 2008년 이탈리아 ‘팔라초 델 프레도’의 한국 판권(㈜빨라쪼)을 인수했고, 2014년엔 아예 이탈리아 본사까지 인수했다. 이 과정을 신 대표가 주도했다. 하지만 한국 사업을 하는 빨라쪼는 계속 적자 행진을 이어 오고 있다. 2023년과 지난해 각각 11억 3276만원, 8억 6228만원의 순손실을 봤다.
  • ‘고래 삼킨 새우’ 20년… 글로벌 시장 노크하는 크라운해태[2025 재계 인맥 대탐구]

    ‘고래 삼킨 새우’ 20년… 글로벌 시장 노크하는 크라운해태[2025 재계 인맥 대탐구]

    오븐 한 대 들여와 ‘영일당’ 창업크라운산도·죠리퐁 출시해 인기외환위기 때 부도, 5년 만에 회생2005년 당시 업계 2위 해태 인수지주사 아래 독립경영 20년 성과내수 의존도 높고 외연 확장 과제 2005년 제과업계 4위였던 크라운제과는 2위 해태제과식품을 인수하기로 했다. 외환위기 이후 시장점유율 경쟁에서 뒤처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윤영달(80)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결단이었다. 크라운제과(연매출 2900여억원)가 당시 연매출이 2배 이상 많은 해태제과(6400여억원)의 새 주인이 되려고 하자 주위에서는 “무리”라며 반대했다. 당시 해태제과는 외국계 투자자에게 매각된 상태였다. 윤 회장은 “전통의 제과업체를 외국계 자본에 넘기고 싶지 않다. 크라운제과라면 충분히 해태를 되살릴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인수합병(M&A)이 이뤄지자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이 뒤따랐다. 크라운해태는 단숨에 당시 업계 1위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와 양강 구도를 이뤘다. 올해는 크라운해태제과그룹이 새출발한 지 꼬박 20년이 된 해다. M&A 후에도 두 회사는 지주사인 크라운해태홀딩스 아래에서 독립 사업을 펼치고 있다. 양사는 한때 경영 위기를 겪었지만 오랜 스테디셀러 제품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창업주 “좋은 과자로 국민 건강에 기여” 크라운제과의 시작은 1947년 서울역 뒤편에 자리한 서울 중구 중림동에 세운 ‘영일당’에서였다. 고 윤태현 크라운제과 창업주는 “좋은 과자를 만들어 국민 건강에 기여하겠다”며 가게를 차렸다. 시작은 미약했다. 달랑 전기 오븐 한 대를 가지고 미군 부대 등에서 나온 도넛 가루를 매입해 빵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그는 갓 구운 빵 표면에 식용 글리세린을 살짝 발랐는데, 시간이 지나도 빵이 굳지 않고 말랑말랑해 큰 인기를 끌었다. 영일당제과가 성장을 거듭하자 윤 창업주는 1956년 상호를 크라운제과로 바꿨다. 고급 과자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크라운’(왕관)을 새 상호로 삼은 것이다. 1961년 윤 창업주가 만든 ‘크라운산도’는 당대 최고의 히트 상품이자 회사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제품이다. ‘산도’는 영어 샌드위치(sandwich)에서 나온 ‘샌드’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 윤 창업주는 비스킷을 구울 오븐과 크림 샌딩 기계를 손수 만들며 열정을 쏟았다. 크라운산도의 성공을 바탕으로 크라운제과는 1968년 법인으로 전환했다. 윤 창업주가 크라운제과의 기초를 다졌다면 부흥기를 이끈 이는 윤 창업주의 장남 윤영달 회장이다. 1967년 크라운제과에 입사한 그는 1972년 ‘죠리퐁’ 개발을 이끌며 스낵류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1969년 윤 회장은 도매상을 통한 중간 판매 방식을 직접 판매 방식으로 혁신했다. 당시 제과 판매는 중간 유통 상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윤 회장은 이들이 크라운산도를 상자 맨 아래 깔아 놓고 유사 제품만을 파는 것에 충격받았다. 품질은 크라운산도가 월등했지만 유사 상품의 이윤이 더 좋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중간 상인의 독점 폐단을 피하기 위해 윤 회장은 전국 방방곡곡 구멍가게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물건을 공급했다. 도매상을 거치지 않기에 소매상은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할 수 있었고 크라운제과의 수익은 늘었다. ●“날 죽이고 돈 잃든지 날 살려 받든지” 개인 사업을 한다며 회사를 떠났다가 1995년 경영에 복귀한 윤 회장은 슈퍼, 의약품·음료 유통까지 사업 다각화에 힘썼다. 종합 식품회사를 목표로 설비투자와 공장 신증축에 적극 나선 것이 외환위기 국면에서 화근이 됐다. 1998년 5억 6000만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크라운제과는 최종 부도 처리됐다. 크라운제과는 곧바로 서울북부지방법원에 화의(법원의 중재를 받아 채권자와 채무 변제 협정을 체결해 파산을 피하는 제도로 현재는 폐지됨)를 신청했다. 부도가 나자 사채업자들이 윤 회장의 집으로 찾아왔다. 윤 회장은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고 돈을 잃든지, 나를 살려서 돌려받든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는 서울 중랑구 묵동 공장을 매각하고 7개 공장을 3개로 축소했으며 제품 가격을 내리는 공격적인 영업도 펼쳤다. 200여개가 넘던 제품을 70여개의 주력 제품만 남긴 채 과감히 정리했다. 직원 수를 1000명 가까이 줄이는 구조조정도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윤 창업주는 “본업에만 충실하자”며 제품 개발을 독려했다. 이때 나와 대박을 터트린 제품이 윤 회장이 네덜란드산 와플 기계를 들여와 만든 ‘버터와플’이다. 뼈를 깎는 비상 경영 덕에 크라운제과는 총채무액 1675억원을 모두 상환했고 2005년까지였던 화의에서 2003년 조기 졸업했다. 크라운 품속에서 해태제과도 탄탄대로를 탔다. 1년 9개월의 연구개발 끝에 2014년 출시한 ‘허니버터칩’은 전성기를 가져다줬다. 허니버터칩의 인기 덕에 2016년 재상장에도 성공했다. 출시 10년 만에 허니버터칩 누적 매출은 5500억원을 넘어섰다. ●지주사 전환 8년, 사실상 3세 경영으로 2017년 크라운해태제과그룹은 지주회사인 크라운해태홀딩스와 사업회사인 크라운제과로 분할을 완료하며 지주사 체제를 공식 출범시켰다. 지주사 크라운해태홀딩스 대표로는 윤 회장의 장남 윤석빈(54) 대표가 단독으로 선임됐다. 윤 회장이 여전히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크라운해태는 이미 ‘3세 경영’이 자리잡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윤 대표가 지주사는 물론 2020년부터 크라운제과 대표도 겸하고 있는 데다 지분 구조상 그룹 전체를 사실상 지배하기 때문이다. 크라운제과가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발표하던 2016년 10월 윤 회장은 보유 중인 크라운제과 지분 4.07%와 3.05%를 각각 두라푸드와 윤 대표에게 넘겼다. 두라푸드는 해태 ‘연양갱’ 등을 만드는 식품회사로 크라운해태홀딩스 지분 38.08%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크라운제과·해태제과와의 내부 거래를 통한 매출 비중이 98%에 달한다. 두라푸드의 최대 주주가 지분 59.60%를 가진 윤 대표다. 즉 ‘윤석빈→두라푸드→크라운해태홀딩스→크라운제과’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가 구축된 것. 이로써 경영권 승계 작업은 마무리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2000년부터 경영에 참여한 윤 대표는 양적 성장보다 재무 안정화에 전력을 다해 오고 있다. 2017년 크라운해태홀딩스는 부채 비율 169.8%, 차입금 4403억원이었는데 올해 2분기 각각 103%, 2639억원으로 줄었다. 크라운제과도 부채 비율이 2010년 190.7%에서 올해 2분기 61.4%로 낮아졌다. 해태제과는 2020년 적자의 늪에 빠져 있던 자회사 ‘해태아이스크림’을 빙그레에 매각하며 차입금을 갚고 부채 비율을 개선했다. 과자·식품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2019년 말 210%였던 부채 비율은 올해 2분기 139.3% 수준이 됐다. 다만 아이스크림 매출이 빠지면서 크라운해태홀딩스의 연결 기준 매출은 2019년 1조 682억원에서 2020년 9232억원으로 줄었다가 2023년부터 다시 1조원대를 회복했다. ●新아산공장 완공, 글로벌 진출 잰걸음 내실은 다졌지만 영업이익 감소와 더딘 외형 성장은 숙제로 남아 있다. 2015년 892억원이었던 크라운해태홀딩스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676억원으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 매출(5372억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5220억원)보다 2.9% 늘었지만 영업이익(350억원)은 되레 12.8% 감소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탓도 있지만 주력 제품이 노후화되면서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소비 흐름과 맞지 않았다는 게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인 K푸드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해외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8% 수준이다. 해외에 생산 기지를 구축한 롯데웰푸드(25%), 오리온(68%)의 해외 매출 비중에 비하면 해외 법인과 현지 공장이 없는 크라운해태는 내수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4월 크라운제과가 36년 만에 세운 충남 ‘신(新)아산공장’은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한 목적이 크다. 2022년 7월 해태제과도 아산에 공장을 지었다. 두 공장이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은 연간 5000억원 규모다. 회사 측은 아산이 평택항과 차로 30분이면 닿는다며 해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 이재영 경기도의원, ‘G-FAIR KOREA 2025’ 현장 찾아 경기도 수출 중소기업 격려

    이재영 경기도의원, ‘G-FAIR KOREA 2025’ 현장 찾아 경기도 수출 중소기업 격려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 이재영 의원(부천3, 더불어민주당)은 10월 30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G-FAIR KOREA 2025(제28회 대한민국우수상품전시회)’ 개막 일정과 전시장 부스를 찾아 도내 수출 중소기업을 격려했다. 이재영 의원은 생활·헬스케어·소비재 등 주력 품목 기업의 전시 부스를 하나하나 방문해 제품 시연을 직접 체험하고 바이어 상담 과정을 살피며 현장의 어려움과 정책 수요를 꼼꼼히 확인했다. 이재영 의원은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수출 전 과정(제품개발–인증–물류–마케팅)을 한 번에 지원하는 ‘기업별 맞춤형 패키지’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수출기업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비용과 시간을 경기도가 묶음으로 덜어주는 것이 핵심이며, 기업당 전담 코디네이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 지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재영 의원은 “오늘 청취한 중소기업과 노동자의 생생한 목소리가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며 이날의 G-FAIR KOREA 현장 일정을 마무리했다.
  • 백범 김구 정신 잇는 ‘학구파’ 김호연… 3세 경영은 아직 시험대[2025 재계 인맥 대탐구]

    백범 김구 정신 잇는 ‘학구파’ 김호연… 3세 경영은 아직 시험대[2025 재계 인맥 대탐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친동생막대한 부채 털고 경영 능력 입증국회의원 당시 보훈법 개정 발의사재 112억 출연, 김구재단 설립광복절 캠페인으로 이미지 제고장남 김동환, 케어푸드 시장 공략차남 김동만, M&A 성공적 안착 김호연(70) 빙그레 회장은 고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의 차남이자 김승연(73) 한화그룹 회장의 친동생이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학구파 경영인으로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강대 무역학과, 일본 히도쓰바시대학원 경제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 외교안보 석사를 취득했다. 서강대에선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형제간 재산권 분할 소송 갈등 겪어 19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 독립했을 당시 형제간에 재산권 분할 소송이라는 쓰라린 갈등이 발생했다. 그룹을 이끌던 김승연 회장이 한양유통 사장이었던 김호연 회장을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시킨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김 회장은 이 처사에 대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사건 이후 6개월가량 ‘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니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결국 형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3년 6개월의 법정 공방은 1995년 모친인 고 강태영 여사의 칠순 잔치를 계기로 두 형제가 극적으로 화해하면서 끝을 맺었다. 모친은 당시 “칠순 잔치보다 가족 화합이 더 중요하다”며 잔치 비용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뜻을 밝혀 형제간의 화합을 끌어냈다. 이 사건은 김 회장이 파산 직전의 빙그레를 맡아 4183%의 부채를 해소하며 자신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기폭제가 됐다. 김 회장은 경영을 잠시 떠나 2008년 정계 진출을 공식 선언했으며, 이와 함께 빙그레의 경영 시스템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회에서 과학벨트 천안 유치 활동을 펼치는 한편 보훈 가족과 유족을 위한 국가보훈법 개정 발의 등 다양한 의정활동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제19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정계를 떠났으며, 2014년 빙그레 등기 이사로 복귀하면서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다. 김 회장은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로도 유명하다. 김 회장의 부인 김미(68)씨는 김구 선생의 둘째 아들인 고 김신 전 교통부 장관의 딸이며, 두 사람은 5년간의 열애 끝에 1983년 결혼했다. 김 회장이 공군 장교로 훈련받을 당시 김씨가 ‘러브 레터’와 ‘종이학’을 보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졌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결혼은 한화가(家)의 유일한 연애결혼이었다. 김 회장은 백범김구기념관장인 아내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민족정신 계승에 헌신했다. 그는 1993년 사재 112억원을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했으며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김 회장 부부는 김구 선생 서거 60주년이던 2009년 미국 브라운대에 ‘김구도서관’을 설립하고, 미국 하버드대와 중국 베이징대에 ‘김구 포럼’을 개설해 백범 정신을 해외에 전파하는 데 힘썼다. ●안미생 지사 건국포장 후손에 전달 김 회장 부부는 김구 선생의 맏며느리이자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미생 지사의 건국포장을 안 지사의 후손에게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안 지사는 202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으나 1947년 미국 이주 후 한국과 연락이 끊겼고, 2008년 별세하면서 안 지사의 포장이 전달되지 못했다. 이에 김 회장 부부는 국내외 인맥을 동원해 안 지사의 딸인 김효자 여사를 찾아냈고, 2023년에 포장을 전달했다. 김 여사는 이듬해 해당 건국포장을 백범김구기념관에 기증했다. 빙그레 역시 독립운동 관련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2019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캠페인 영상을 시작으로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캠페인 영상을 매년 제작하고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와 함께 전개한 독립운동 캠페인 ‘처음 듣는 광복’을 진행했다. 광복 당시 만세 함성을 인공지능(AI) 기술로 구현해 선보이는 이 캠페인은 잊혀가던 광복의 의미를 일깨우고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기획됐다. 현재는 백범김구기념관에 기증돼 역사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빙그레와 오너가의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국민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매년 제작되는 캠페인 영상은 온라인에서 높은 조회수와 긍정적인 댓글 반응을 얻으며 젊은 세대에게도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는 기업의 역사적 배경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브랜드 로열티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높이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김 회장 부부는 장남 김동환(42) 사장과 장녀 김정화(41)씨, 차남 김동만(38) 해태아이스크림 전무 등 2남 1녀를 뒀다. 김 회장 부부는 자녀들에게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강조하며 봉사 활동을 장려했다. 김 사장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때까지 6년간 매년 여름방학을 맹인 교회에서 봉사했으며, 외환위기 당시 삼 남매가 함께 노숙자 돕기 자원봉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은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EY 한영 회계법인 인수합병(M&A) 자문팀에서 경력을 쌓은 뒤 2014년 빙그레에 입사했다. 그는 회사에서 구매부 과장, 부장 등을 거쳤으며, 그사이 사내에서 만난 네 살 연하의 가혜수(38)씨와 2017년 결혼했다. 2021년 1월 임원(마케팅 전략 담당 상무)으로 승진했고, 2022년 경영기획·마케팅 총괄 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3월 사장으로 승진하며 3세 경영 승계 구도의 선두에 섰다. 경영 전면에 나선 김 사장에게는 주력 사업의 성장 정체 외에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주어졌다. 앞서 빙그레는 가정간편식(HMR)과 펫푸드 시장에 진출했으나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17년 진출한 HMR 시장에서는 2년여 만에 사업을 접었으며, 2018년에 뛰어들었던 펫사업 역시 1년 6개월 만에 철수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엔 영양식 전문 브랜드 ‘GLC 더:케어’를 론칭하며 3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국내 케어푸드 시장 공략에 나섰다. ‘헬시 플레저’(즐겁게 하는 건강 관리) 트렌드를 겨냥해 저당, 제로 슈거 제품 라인업도 대폭 강화했다. 지난해 첫 제로 아이스크림과 디카페인 커피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는 유산균 음료 ‘쥬시쿨 제로’, ‘바나나맛우유 무가당’, 그리고 커피 제품인 ‘딥앤로우’ 등 제로 슈거·저당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였다. 김 사장과 함께 3세 경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차남 김 전무의 성과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김 전무는 미국 터프츠대를 졸업하고 2011년 공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이베이코리아 G마켓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등 외부에서 경영 경험을 쌓았다. 그는 2023년 1월 자회사 해태아이스크림 임원으로 합류해 경영기획과 생산혁신 총괄 업무를 담당했는데, 해태아이스크림은 지난해 매출 1991억원, 영업이익 15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75% 급증한 것이다. 이는 해태아이스크림 인수 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M&A의 성공적인 안착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김 전무의 경영 성과로 평가된다. ●3세들 지분 0%, 1000억대 증여세 부담 빙그레는 김 회장(지분율 36.75%)이 보유한 지분과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총 40.89%나 되는 회사다. 그러나 오너 3세들은 빙그레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지 않아 승계는 여전히 복잡한 난기류에 놓여 있다. 김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으려면 현재 주가 기준 1000억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증여세를 부담해야 하는 게 가장 큰 난제로 꼽힌다. 이러한 상황에서 3세 경영 승계의 핵심 지렛대로 물류 자회사 ‘제때’가 지목된다. 물류대행 회사로 출발한 제때는 김 사장(33.34%)을 비롯한 삼 남매가 지분 100%를 보유한 오너 가족회사이며, 빙그레의 물류를 전담하며 내부거래로 성장해 왔다. 제때는 2023년 28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등 3세들의 증여세 재원 마련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제때는 빙그레 지분 2.05%를 보유하며 향후 승계 과정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때는 빙그레와의 거래가 정상적 시장 가격에 비해 유리한 조건으로 이뤄졌다는 의혹과 함께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의 동시 조사 대상이 되면서 공정성 논란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 미국인도 즐기는 ‘바나나맛우유’… K유제품 대명사 된 빙그레[2025 재계 인맥 대탐구]

    미국인도 즐기는 ‘바나나맛우유’… K유제품 대명사 된 빙그레[2025 재계 인맥 대탐구]

    계열 분리 당시 부채 비율 4183%김호연 회장 ‘일방통행 경영’ 강조과감한 가지치기 덕 부채 20%로가공유로는 처음 연매출 1000억원자재값 올라 영업익 39% 급감재고자산 회전율 낮아 리스크로지주사 전환 불발, 승계 난항 예상 1967년 주식회사 대일양행으로 출발한 빙그레는 지난 58년여간 국내 유가공 산업 발전의 주축을 담당해 왔다. ‘K푸드’ 돌풍에 힘입어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가고 있지만 지금의 빙그레가 되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1992년 한화그룹에서 분리 독립할 당시에는 부채 비율이 4183%에 달하는 심각한 재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는 당시 산업계 평균 부채 비율이나 기업 평균의 10배를 웃도는 수치였다. ●“한번 들어서면 돌아갈 수 없다” 당시 파산 직전의 회사를 이끈 건 고(故) 김종희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호연(70)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한번 들어서면 뒤를 볼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강력한 ‘일방통행론’ 경영관을 펼쳤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라는 확고한 판단 아래 수익성이 개선될 여지가 없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가지치기’를 시행했는데, 여기에는 ‘썬메리’ 베이커리 사업 매각과 냉동식품, 초코 케이크 등 비주력 사업 철수가 포함됐다. 김 회장은 재무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기 위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사옥과 종로구 삼청동 사옥 등 회사의 상징적 자산까지 과감히 매각하고, 확보한 현금을 부채 상환에 집중 투입했다. 이러한 처절한 구조조정 끝에 빙그레의 부채 비율은 1997년 360%, 2004년 53.7%, 2018년 말에는 20%까지 감소하며 우량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이처럼 부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성 적자를 기록하던 라면 사업도 결국 2003년 3월 철수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던 라면 사업은 매년 30억~40억원씩 적자를 기록하며 빙그레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비록 사업은 철수했지만, ‘매운콩라면’ 등으로 알려진 빙그레 라면은 대중에게 오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레트로 열풍을 타고 2021년 상표권이 다시 출원됐고 재출시 논의가 있었으나, 파트너사 논의 끝에 지난해 결국 재출시 계획이 무산돼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재무 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진 빙그레는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를 구축했다. 특히 1974년 12월 출시된 ‘바나나맛우유’는 국내 최고 인기 가공유로 손꼽힌다. 소비자들에게 ‘단지 우유’로 불리는 달 항아리 모양의 이 바나나맛우유는 출시되자마자 가공유 판매 1위에 등극했다. 가공유 제품으로는 사상 최초로 연매출 1000억원을 기록했으며, 2018년에는 수출을 포함해 연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산업의 브랜드파워(K-BPI) 가공 우유 부문에서 18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바나나맛우유는 최근에는 해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한국 관광 때 반드시 먹어 봐야 할 제품으로 통한다. ●투게더·메로나 등 효자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분야에서는 빙과류가 득세하던 시절 높은 우유 함유량으로 고급화 전략을 내걸었던 ‘투게더’와 산뜻한 멜론 향을 가미한 ‘메로나’가 국민적 인기를 끌며 대표적인 효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2020년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며 빙과 시장에서의 시너지를 극대화했다. 인수를 통해 ‘부라보콘’, ‘마루’ 시리즈 등 해태의 스테디셀러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며 시장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다. 해태아이스크림의 생산·물류 시설을 통합 운영하면서 생산 효율성과 유통망 장악력이 강화된 것은 물론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의 계절적 변동성을 흡수하고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빙그레는 저출산에 따른 국내 빙과 시장 침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시장 확대를 핵심 동력으로 삼았다. 1993년 미주 지역과 러시아 수출에서 시작해 전 세계 30여개국으로 판매를 확대했고, 그 결과 지난해 빙그레의 수출액은 154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2.9% 늘어났다. 전체 매출에서의 수출 비중도 12%까지 상승했다. 특히 미국 시장의 성과가 두드러지는데, 지난해 미국 법인 매출은 80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4.6% 증가했다. 특히 ‘메로나’는 미국 코스트코, 월마트 등 현지 대형 마트에 입점하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는데 미국 내 한국 아이스크림 시장점유율 70%로 1위를 차지했다. 한편 유럽 시장에는 수년간의 연구 끝에 유성분을 식물성 원료로 대체한 ‘식물성 메로나’를 개발해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빙그레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 4630억원, 영업이익 1313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이뤄 냈다. ●대내외 삼중고에 수익성 악화 위기 그러나 올해 들어 빙그레의 경영 상황은 심각한 수익성 악화 국면에 진입했다.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40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38.9%나 급감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이 7181억원으로 소폭(1.4%)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결과였다. 수익성 악화는 코코아, 커피, 혼합탈지분유 등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과 통상 임금 확대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가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여기에 재무 리스크도 가중됐다. 회사의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빙그레의 재고 자산은 153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고 자산 회전율은 2021년 13.0회에서 2023년 7.5회, 지난해 연환산 6.46회로 하락세를 보였고 올 상반기에는 7.6회를 기록했다. 재고 자산 회전율이란 기업이 보유한 재고(원재료·재공품·완제품)가 1년 동안 몇 번이나 판매돼 현금으로 회수됐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횟수가 낮을수록 재고가 창고에 오래 쌓여 있거나 생산된 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고 회전율 하락은 재고 유지 비용(운송·보관료 등) 증가와 직결돼 판매·관리비 부담을 키운다. 이는 수익성 악화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새롭게 진출한 가정간편식(HMR) 및 펫푸드 등 신사업 부문이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실패하면서 막대한 투자금만 날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이렇다 할 신제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빙그레가 당면한 과제다. 대외적으로는 다음달부터 미국 정부가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의 가격 경쟁력 약화라는 복합적인 난관에 빠졌다. 빙그레는 지배구조 단순화와 경영 효율성 증대를 목표로 지난해 11월 인적 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 계획은 존속법인 ‘빙그레홀딩스’가 신규 사업 투자와 자회사 관리를 맡고, 신설법인 ‘빙그레’가 기존 유가공 제품 생산 등 주력 사업에 집중하는 이원화 구조를 목표로 했다. 특히 주주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유 중인 자사주 약 100만주(발행 주식의 약 10.3%)를 전량 소각하겠다는 파격적인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발표 두 달여 만인 올해 1월 24일 이사회를 통해 전격 철회됐다. 회사 측은 “더 명확한 주주 가치 제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사유를 밝혔으나, 재계에서는 김 회장 자녀들이 빙그레 지분을 직접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적 분할을 추진할 경우 지배주주 이익만 커지고 일반주주 권익은 훼손될 수 있다는 개정 상법의 규제 리스크가 작용하면서 계획이 무산된 것으로 분석했다. 지주사 전환은 승계를 위한 지분 확보와 그룹 전체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 중 하나였기에, 지주사 전환 계획이 좌초되면서 승계 로드맵은 난항을 겪게 됐다. ●40년 ‘정통 빙그레맨’ 김광수 대표 체제 빙그레는 이러한 내우외환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6월 물류 자회사 ‘제때’의 김광수(68)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 겸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김 대표는 1985년 빙그레에 입사해 40년간 근무한 ‘정통 빙그레맨’이자 ‘물류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2015년부터 10년간 물류 자회사 제때를 이끌며 연매출을 860억원에서 올해 추정치 5704억원으로 6배 이상 성장시키는 탁월한 경영 성과를 입증했다. 김 대표는 불발됐던 지주사 전환 작업의 재개와 해외시장 중심의 전략 확대 등 핵심 숙원사업을 이끌어 갈 예정이다. 당장의 수익성 악화와 같은 단기적인 위기 극복 및 지배구조 재편 임무를 김 대표가 맡는 동안 3세 경영진은 장기적인 신사업 발굴과 핵심 브랜드 관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 韓, 中에 한화 제재 해제 촉구…“G2 경쟁서 미국의 유일한 우위는 ‘금융 핵폭탄’”

    韓, 中에 한화 제재 해제 촉구…“G2 경쟁서 미국의 유일한 우위는 ‘금융 핵폭탄’”

    韓, 중국에 한화 제재 우려 표명…해제 촉구 (홍콩 명보)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협상대표 리청강과 한국 무역대표 여한구 본부장이 22일 화상회의를 통해 양국 간 경제 및 통상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 측은 중국이 한국 조선업계 거물인 한화오션의 미국 내 5개 자회사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행위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전달하고 조속한 제재 해제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제3국인 한국의 핵심 산업에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와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나아가 한국 산업계의 우려를 반영하여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으며, 양국 간 기존 소통 채널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 방안을 긴밀히 협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대중국 경제 의존도와 대미 동맹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적 난관에 직면해 있습니다. 日, 다카이치 신내각 출범과 매파적 안보 드라이브 (중국 관찰자망·미국 National Interests) 일본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를 필두로 한 ‘결단과 전진 내각’이 출범하며 동북아 안보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내각 구성부터 외교·안보 정책에서 경험과 안정성, 세대교체를 동시에 고려했으며, 내각 전체에 매파적·보수적 성향이 뚜렷하게 반영되었습니다.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면서도, 안보 분야에서는 기시다 내각 시절 발표된 ‘안보 3문서’ 개정을 통한 ‘반격 능력’ 강화를 명확히 제시하고 5년간 약 43조엔약(약 404조원) 규모의 방위 예산 확보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특히 대만 사태 발생 시 이는 “일본의 비상사태”가 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자위대를 헌법에 군사 조직으로 명시하겠다는 야망을 확고히 밝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대한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이는 미국의 아시아 억지력 구축 비전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트럼프발 무역 협상 불확실성과 의제 (미국 블룸버그·러시아 РИА Новост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무역에 대한 ‘좋은 합의’를 예측하면서도 “아마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회담 성사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남겼습니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언제든 변동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로는 중국의 전략적 자원인 희토류, 미국의 관세 정책,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문제, 그리고 대만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구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유로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는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를 둘러싼 지정학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중국의 ‘기술 자율’ 최우선과 대외 개방의 이중 전략 (프랑스 rfi·중국 CAIXIN) 중국공산당은 제20기 중앙위원회 4중전회를 열고 과학, 기술 및 혁신을 새로운 5개년 계획의 최우선 의제로 확정했습니다. 이는 미국과의 경쟁 심화, 특히 첨단 칩 및 기술 봉쇄에 맞서 기술 자율성과 핵심 돌파구 확보를 국가 생존 전략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허리펑 부총리는 애플 CEO 팀 쿡 등 다국적 기업 경영진과의 회의에서 “고수준 개방”과 통합된 국가 시장 발전을 약속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는 기술 자립을 추구하면서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역할을 유지하려는 이중 전략입니다. 실제로 에어버스사는 중국 톈진에 A320 시리즈 항공기 최종 조립 라인을 추가 가동하여 중국 생산 능력을 전 세계의 5분의 1로 확대하는 등 중국 시장에 대한 글로벌 기업의 투자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美 유일한 우위는 ‘금융 핵폭탄’ 카드 (영국 FT) 미·중 경쟁 구도에 대한 분석에서 한 전문가는 미국이 표면적으로 경제, 과학기술, 군사 등 6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대부분이 허상화되었다고 진단했습니다. 미국의 기술 제재는 중국의 첨단 칩 개발에 병목 현상을 일으켰을 뿐, 중국의 자체 연구개발 과정을 가속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 분석가는 미국이 중국과의 직접 대결에서 가진 유일한 실질적 우위는 금융 분야뿐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다만 중국은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제조업이 전 세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어, 미국이 중국을 SWIFT 체계에서 배제하는 등 ‘금융 핵타격’을 가하면 전 세계 공급망이 붕괴되고 각국이 ‘탈달러화’ 과정을 가속화하며 대체 결제 체계를 모색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중·러, 에너지 및 식량 협력 강화하며 연대 심화 (러시아 이즈베스티야·러시아 모스크바 타임즈) 중국과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 속에서도 경제적 연대를 심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북극 LNG-2 프로젝트에서 10번째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을 인수했습니다. 이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동시에 러시아는 중국 식품 시장에서 미국을 대체하며 육류, 생선, 곡물 등 식량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첫 호밀가루가 운송되는 등 양국 간의 경제적 상호 보완성이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네덜란드 칩 갈등, 유럽 자동차 산업에 직격탄 (영국 로이터) 네덜란드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칩 제조사 넥스페리아 BV의 지배권 장악에 나서자, 중국은 이에 대응해 중국 공장 완제품 수출을 차단하는 보복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에 따라 넥스페리아 칩에 크게 의존하는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생산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이 중국 측과 통화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착 상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서, 기술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이 글로벌 공급망과 최종 소비재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부각되었습니다. 中 BYD, 글로벌 시장 공략 가속화 (일본 니케이) 중국 전기차 선두주자인 비야디(BYD)는 일본 시장에서 세단 ‘SEAL’의 가격을 33만 엔 (약 310만원) 인하하고 기본 사양을 확대하는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인하 후 시작 가격이 495만 엔 (약 4658만 원)부터 형성되어, 일본 기업들의 전기차 가격 경쟁에 맞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일본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개선된 ‘SEAL’ 모델은 10월 30일 출시되며, 일본 모빌리티 엑스포 2025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 韓, 中에 한화 제재 해제 촉구…“G2 경쟁서 미국의 유일한 우위는 ‘금융 핵폭탄’” [한눈에 보는 중국]

    韓, 中에 한화 제재 해제 촉구…“G2 경쟁서 미국의 유일한 우위는 ‘금융 핵폭탄’” [한눈에 보는 중국]

    韓, 중국에 한화 제재 우려 표명…해제 촉구 (홍콩 명보)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협상대표 리청강과 한국 무역대표 여한구 본부장이 22일 화상회의를 통해 양국 간 경제 및 통상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 측은 중국이 한국 조선업계 거물인 한화오션의 미국 내 5개 자회사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행위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전달하고 조속한 제재 해제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제3국인 한국의 핵심 산업에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와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나아가 한국 산업계의 우려를 반영하여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으며, 양국 간 기존 소통 채널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 방안을 긴밀히 협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대중국 경제 의존도와 대미 동맹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적 난관에 직면해 있습니다. 日, 다카이치 신내각 출범과 매파적 안보 드라이브 (중국 관찰자망·미국 National Interests) 일본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를 필두로 한 ‘결단과 전진 내각’이 출범하며 동북아 안보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내각 구성부터 외교·안보 정책에서 경험과 안정성, 세대교체를 동시에 고려했으며, 내각 전체에 매파적·보수적 성향이 뚜렷하게 반영되었습니다.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면서도, 안보 분야에서는 기시다 내각 시절 발표된 ‘안보 3문서’ 개정을 통한 ‘반격 능력’ 강화를 명확히 제시하고 5년간 약 43조엔약(약 404조원) 규모의 방위 예산 확보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특히 대만 사태 발생 시 이는 “일본의 비상사태”가 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자위대를 헌법에 군사 조직으로 명시하겠다는 야망을 확고히 밝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대한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이는 미국의 아시아 억지력 구축 비전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트럼프발 무역 협상 불확실성과 의제 (미국 블룸버그·러시아 РИА Новост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무역에 대한 ‘좋은 합의’를 예측하면서도 “아마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회담 성사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남겼습니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언제든 변동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로는 중국의 전략적 자원인 희토류, 미국의 관세 정책,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문제, 그리고 대만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구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유로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는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를 둘러싼 지정학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중국의 ‘기술 자율’ 최우선과 대외 개방의 이중 전략 (프랑스 rfi·중국 CAIXIN) 중국공산당은 제20기 중앙위원회 4중전회를 열고 과학, 기술 및 혁신을 새로운 5개년 계획의 최우선 의제로 확정했습니다. 이는 미국과의 경쟁 심화, 특히 첨단 칩 및 기술 봉쇄에 맞서 기술 자율성과 핵심 돌파구 확보를 국가 생존 전략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허리펑 부총리는 애플 CEO 팀 쿡 등 다국적 기업 경영진과의 회의에서 “고수준 개방”과 통합된 국가 시장 발전을 약속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는 기술 자립을 추구하면서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역할을 유지하려는 이중 전략입니다. 실제로 에어버스사는 중국 톈진에 A320 시리즈 항공기 최종 조립 라인을 추가 가동하여 중국 생산 능력을 전 세계의 5분의 1로 확대하는 등 중국 시장에 대한 글로벌 기업의 투자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美 유일한 우위는 ‘금융 핵폭탄’ 카드 (영국 FT) 미·중 경쟁 구도에 대한 분석에서 한 전문가는 미국이 표면적으로 경제, 과학기술, 군사 등 6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대부분이 허상화되었다고 진단했습니다. 미국의 기술 제재는 중국의 첨단 칩 개발에 병목 현상을 일으켰을 뿐, 중국의 자체 연구개발 과정을 가속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 분석가는 미국이 중국과의 직접 대결에서 가진 유일한 실질적 우위는 금융 분야뿐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다만 중국은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제조업이 전 세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어, 미국이 중국을 SWIFT 체계에서 배제하는 등 ‘금융 핵타격’을 가하면 전 세계 공급망이 붕괴되고 각국이 ‘탈달러화’ 과정을 가속화하며 대체 결제 체계를 모색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중·러, 에너지 및 식량 협력 강화하며 연대 심화 (러시아 이즈베스티야·러시아 모스크바 타임즈) 중국과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 속에서도 경제적 연대를 심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북극 LNG-2 프로젝트에서 10번째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을 인수했습니다. 이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동시에 러시아는 중국 식품 시장에서 미국을 대체하며 육류, 생선, 곡물 등 식량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첫 호밀가루가 운송되는 등 양국 간의 경제적 상호 보완성이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네덜란드 칩 갈등, 유럽 자동차 산업에 직격탄 (영국 로이터) 네덜란드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칩 제조사 넥스페리아 BV의 지배권 장악에 나서자, 중국은 이에 대응해 중국 공장 완제품 수출을 차단하는 보복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에 따라 넥스페리아 칩에 크게 의존하는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생산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이 중국 측과 통화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착 상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서, 기술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이 글로벌 공급망과 최종 소비재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부각되었습니다. 中 BYD, 글로벌 시장 공략 가속화 (일본 니케이) 중국 전기차 선두주자인 비야디(BYD)는 일본 시장에서 세단 ‘SEAL’의 가격을 33만 엔 (약 310만원) 인하하고 기본 사양을 확대하는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인하 후 시작 가격이 495만 엔 (약 4658만 원)부터 형성되어, 일본 기업들의 전기차 가격 경쟁에 맞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일본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개선된 ‘SEAL’ 모델은 10월 30일 출시되며, 일본 모빌리티 엑스포 2025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 시장 개척 나선 김태흠 지사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 시장 개척 나선 김태흠 지사

    충남도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케이(K)-팝을 들고 일본을 찾는다. 김태흠 지사는 도내 20개 중소기업과 일본 시장 개척에 나선다. 22일 도에 따르면 김 지사 등 방문단이 수출상담회, 문화교류 행사, 한일 문화 세미나 참석 등을 위해 3박 4일 일정으로 23일 일본 출장길에 오른다. 김 지사는 23일 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도가 뉴오타니호텔에 마련한 수출상담회장을 찾아 현지 바이어에게 충남 K-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한다. 이번 상담회에는 건축자재와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소비재와 산업재 생산 20개 기업이 시장 확대 개척에 도전한다. 김 지사는 이어 나라현으로 이동해 야마시타 마코토 지사와 다나카 타다미쓰 의장 등 나라현 관계자 등과 충남과의 우정을 재확인할 예정이다. 24일 오사카 야마토대학에서는 김 지사가 대학 정치경제학부 1학년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청년 세대가 만드는 한일의 미래’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충남-나라현 문화교류 행사도 열린다. 행사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및 충남-나라현 우호 교류 협정 체결 15주년을 기념해 양 도·현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K-팝과 J-팝 공연, 양국 전통 공연이 번갈아 가며 펼쳐진다. 양 지역 간 교류·협력 강화 공동선언도 내놓을 예정이다. 도 관계자는 “김 지사의 이번 출장은 백제와 인연이 깊고, 충남과 15년째 우호 협력을 이어오고 있는 나라현과 관계를 강화하고, 양 지역 미래 세대가 화합 한마당을 펼치는 의미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 삼립에서 분가해 더 키웠다… ‘사실상 창업주’ 허영인 회장 [2025 재계 인맥 대탐구]

    삼립에서 분가해 더 키웠다… ‘사실상 창업주’ 허영인 회장 [2025 재계 인맥 대탐구]

    대학 때 전국 돌며 제빵 동향 파악미국제빵학교서 직접 기술 취득도‘샤니’로 독립, 삼립 제치고 정상에트럼프 대통령 2기 취임식 참석도차기 후계 두 아들 진수·희수 유력 대한민국 빵의 대중화를 이끈 SPC그룹이 ‘사실상 창업주’인 허영인(76) 회장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3세 경영인들이 국내외 사업을 분담하며 차세대 리더십을 다지고 있다. 허 회장 가족이 탄탄한 인맥을 기반으로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 철학을 펼치고, 인재 영입에 힘을 쏟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고 허창성 명예회장은 6남 1녀를 뒀다. 허 명예회장의 5남인 허영한(67) 국립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을 제외하고 모두 SPC그룹 계열사에 몸을 담았지만 지금은 차남인 허 회장을 빼고 모두 그룹 경영과 관련이 없다. 허 회장은 부친이 “너는 부지런하니까 제빵 사업이 맞을 수 있다”고 했을 정도로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허 회장이 경희대를 다닐 때 부친을 졸라 차를 사서 전국을 누비며 제과·제빵업계 동향을 보고해 부친을 감동하게 한 건 유명한 일화다. ●“경쟁력은 품질에서 나온다” 신념 허 회장은 가업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대학 재학 중이던 1969년 삼립식품공업에 입사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75년 삼립식품 영업담당 상무로 재입사한 허 회장은 1976년 전무, 1978년 부사장을 역임했고, 1981년 1월 삼립식품 사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그는 “회사 경쟁력은 품질에서 나온다. 기술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1981년 8월 미국 캔자스시티의 미국제빵학교(AIB)로 유학을 떠났다. 1983년 3월 계열사인 샤니의 대표이사로 복귀한 허 회장은 같은 해 삼립식품의 성남공장으로 시작한 샤니를 삼립으로부터 분가하는 제2의 창업을 했다. 당시 샤니는 ‘샤니케익’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중소식품회사에 불과했으나 허 회장은 1995년 고급 빵 ‘팡’을 선보이며 제품 기술력 혁신과 관리 합리화를 통해 1997년 삼립식품을 제치고 양산 제빵업계의 정상에 올랐다. 2010년 인기를 끈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실제 모델이 바로 허 회장이다. 허 회장의 친화력은 남다르다. 그는 2005년 파리바게뜨의 미국 진출을 계기로 한미 경제협력 활동을 활발히 펼친 공로로 한미동맹친선협회의 추천을 받아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받았다. 특히 허 회장은 코오롱그룹, 두산그룹, 애경그룹과 각각 혼사를 통해 재계에 인맥을 구축했다. 허 회장의 부인 이미향(71)씨는 고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막내딸이자 고 이동찬 코오롱 선대회장의 여동생으로 이웅열(69) 코오롱 명예회장의 고모다. 이씨는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미적 감각을 살려 그룹의 디자인 관련 분야에 도움을 줬다. 파리바게뜨는 케이크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를 얻었다. SPC그룹은 신입 사원 채용에서 미각을 테스트하는 ‘관능 면접’과 디자인 감각을 테스트하는 디자인 역량 평가를 도입했다. 본사 1개 층 전체를 ‘디자인 센터’로 사용하도록 했다. 허 회장의 두 아들도 포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 허진수(48) 파리크라상 사장은 연세대 생화학과,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거쳐 부친과 마찬가지로 AIB를 마치고 2005년 파리크라상 상무로 입사했다. 이후 SPC그룹 전략기획실 전략기획부문장, 글로벌 BU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2008년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막내인 박용욱(65) 이생그룹 회장의 장녀 박효원(39)씨와 결혼해 아들 2명을 뒀다. 허 사장의 처제인 박예원(38)씨는 최진민(84) 귀뚜라미그룹 회장의 차남인 최영환(44) 귀뚜라미·나노켐 상무와 결혼해 허 사장과 최 상무는 동서지간이다. 허 회장의 차남 허희수(47) 비알코리아 부사장은 호주에서 유학한 뒤 형보다 2년 늦은 2007년 파리크라상에 입사해 마케팅본부장과 그룹 전략기획실 미래사업부문장 등을 거쳐 비알코리아 총괄임원 등을 역임했다. 허 부사장은 채은정(62) 전 애경산업 이노베이션센터 고문과 안용찬(66) 전 애경그룹 부회장의 장녀 안리나(39)씨와 결혼해 딸 셋을 두고 있다. 결혼으로 맺어진 두산과의 인연은 2018년 3월 쉐이크쉑 버거 동대문 두산타워점 개점 당시 박용만(70) 전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서원(46) 두산 유통전략담당 전무가 참석해 햄버거를 시식하며 1시간가량 허 부사장과 친교를 나눈 점에서 드러난다. 앞서 2017년 쉐이크쉑 AK플라자 분당점 개장식에는 마찬가지로 사돈인 채동석(61) 애경그룹 부회장이 참석했다. 애경그룹이 운영하는 제주항공 기내식에도 파리바게뜨와 배스킨라빈스가 협업하고 있다. ●장남은 제빵, 차남은 외식 승계 가능성 형제는 대외 활동과 성과로 SPC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거듭나고 있다. 2021년 12월 지주사인 파리크라상 사장에 오른 허 사장은 핵심 브랜드인 파리바게뜨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가맹점 확대와 제빵 공장 신설 등 글로벌 사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허 부사장은 배스킨라빈스·던킨 등 국내에서의 외식 사업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허 사장은 미국과 중국에서 직접 가맹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매장이 247개, 중국 매장이 341개인데 양국 매장의 90% 이상이 직영점이 아닌 가맹점일 정도로 시장에 안착했다. 허 사장은 지난해 8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와 예비 가맹점주 등을 초청해 해외 첫 가맹점 간담회를 열었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현 262개인 파리바게뜨 매장을 2030년까지 1000여개로 늘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지난달 착공한 텍사스주 제빵공장을 중미 시장의 교두보로 삼고, 생산과 물류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허 사장은 지난 2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단 토트넘 홋스퍼와 제휴해 홈 경기장에 파리바게뜨 빵과 커피를 판매하고, 주요 선수들이 등장하는 미디어 광고 콘텐츠를 제작해 국내 소셜미디어(SNS)와 매장에 공개했다. 2023년에는 프랑스 명문 축구클럽 파리 생제르맹(PSG)의 스폰서로 경기장 LED 광고판에 ‘안녕! 파리바게뜨’라는 한글 메시지를 전달하고, PSG 스타 선수들이 빵을 즐기는 영상을 제작해 한국광고주협회 선정 ‘광고주가 뽑은 올해의 마케터상’을 받기도 했다. 허 사장은 지난 7월 출범한 SPC변화와혁신추진단 의장을 맡는 등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동생인 허 부사장은 외식 사업 계열사인 비알코리아와 빅바이트컴퍼니를 이끌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허 부사장은 2016년 쉐이크쉑 버거를 성공적으로 도입해 최고급 레스토랑과 캐주얼 식당의 장점을 접목한 외식 트렌드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위해 허 부사장은 2011년부터 꾸준히 미국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쉐이크쉑 미국 본사와 신뢰를 쌓아 왔다. 허 부사장은 2022년부터 비알코리아 부사장을 맡아 미국의 대표 멕시코 음식 브랜드 ‘치폴레’를 내년에 도입한다. 허 부사장은 디저트 브랜드인 던킨과 배스킨라빈스의 국내 사업도 담당한다. 던킨은 지난해 국내 출범 30주년을 맞아 콘셉트 매장 격인 ‘원더스’를 공개했다. 이전과 달리 개방감 있는 공간으로 꾸몄고 도넛을 취향에 따라 추천해 주는 큐레이션 시스템도 선보였다. 허 부사장이 브랜드 로고 디자인부터 메뉴 개발 등 전 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스킨라빈스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소비자에게 맞춤형 아이스크림을 추천해 주는 매장을 내놨다. ●삼성맨·진보 법조인 등 능력 따라 중용 3세 경영권 승계는 별다른 잡음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장남 허 사장의 파리크라상 지분(20.3%)은 허 부사장(12.8%)보다 앞서 있고, 형제의 지분은 총 33.1%다. 형제는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인 SPC삼립 지분도 각각 16.3%, 11.9%씩 가지고 있다. 일각에선 허 회장이 파리바게뜨·파리크라상을 비롯한 제빵 사업은 허 사장에게 승계하고, 비알코리아와 빅바이트컴퍼니 등 외식 사업과 IT 계열사 섹타나인 등은 허 부사장에게 넘기는 방안을 거론하기도 한다. 파리크라상이 2023년 12월 쉐이크쉑 사업부를 별도법인 빅바이트컴퍼니로 나눈 것도 ‘교통정리 차원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앞으로 두 형제의 경영 성과에 따라 승계 구도 향방이 바뀔 수 있다. SPC그룹 경영진의 특징은 능력 중심과 신구 인력 간 조화로운 배치에 있다. 도세호(67) SPC 및 비알코리아 대표이사는 1987년 입사 이후 샤니 대구공장장, SPC팩 대표 등을 거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물이다. 2021~2023년 비알코리아 대표이사를 역임한 후 퇴임 8개월 만에 다시 대표로 복귀할 정도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경재형(61) 파리크라상 대표이사는 1989년부터 27년간 삼성전자에 몸담은 ‘삼성맨’으로, 2017년 SPC삼립 경영관리본부장으로 영입됐다. SPC그룹은 지난 7월 윤리·준법 관련 정책과 규정을 심의·의결하는 ‘SPC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위원장에 진보 성향의 법조인 김지형(67) 전 대법관을 선임했다.
  • 세계시장 공략하는 K베이커리… 자산 5조원 눈앞 SPC [2025 재계 인맥 대탐구]

    세계시장 공략하는 K베이커리… 자산 5조원 눈앞 SPC [2025 재계 인맥 대탐구]

    출발은 옹진에 세운 빵집 ‘상미당’ 국내 첫 비닐 포장 크림빵 큰 성공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로 인기배스킨라빈스·던킨 등 사업 확장비알코리아 수익 개선 필요안전경영 강화도 당면 과제 창립 80주년을 맞은 국내 제빵업계 대표 기업 SPC그룹이 지난달 미국 텍사스주 벌리슨시에서 제빵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반도체와 자동차뿐 아니라 ‘K베이커리’도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SPC의 명칭은 삼립과 샤니의 영어 약자 ‘S’와 파리크라상의 ‘P’, 다른 계열사(Company)를 뜻하는 ‘C’에서 비롯됐다. 제빵으로 시작해 아이스크림, 도넛, 햄버거 등으로 확장하며 K베이커리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술 배워 자립” 창업주 부친의 교훈 SPC그룹의 뿌리는 황해도 옹진군 출신 고 허창성(1921~2003년) 명예회장이 1945년 옹진에 설립한 빵집 ‘상미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허 명예회장은 보통학교(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상급 학교 진학을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 제과점 점원으로 취직해 기술을 배웠다. 21세이던 1942년 동향 출신의 고 김순일(1923~2023년) 여사와 결혼한 그는 “기술을 배워 자립하라”는 부친의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상미당을 창업했다. 1948년 서울 을지로로 본거지를 옮긴 허 명예회장은 생산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무연탄 가마’를 개발해 인기를 끌었다. 1959년 삼립제과공사로 이름을 바꾸고 제빵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회사는 1964년 국내 제빵업계 최초로 비닐 포장 제품이었던 크림빵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68년 삼립식품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71년 ‘삼립호빵’, 1976년 ‘보름달’ 등 히트 상품을 잇달아 내면서 국내 양산빵 시장을 선도했다. 국민소득이 조금씩 오르자 1972년 경기 성남시에 고급 케이크를 생산·판매하기 위한 한국인터내쇼날식품을 설립했다. 한국인터내쇼날식품은 1977년 샤니로 상호를 변경했다. 1981년 장남 허영선(81) 전 회장이 삼립식품 대표이사에 취임하고 차남인 허영인(76) 회장은 1983년 샤니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하지만 삼립식품은 리조트 등 레저 분야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 자금난에 빠졌고,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반면 허 회장이 맡은 샤니는 1980년대 소비자의 취향 고급화에 발맞춰 기존 양산빵이 아닌 ‘윈도 베이커리’ 시장에 주목했다. 프랑스 정통 고급 빵을 즉석에서 구워 제공하는 파리크라상 1호점을 1986년 서울 반포에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파리크라상 콘셉트를 가맹 사업에 도입하기로 하고 1988년 프랜차이즈 제과점 파리바게뜨를 열었다. 파리바게뜨 국내 매장은 현재 3400여개에 이른다. 매장에서 굽기만 하면 되는 휴면 반죽을 본사가 가맹점에 제공해 소비자에게 갓 구워 낸 신선한 제품을 판매한다는 전략이 주효했다. ●해외법인 포함, 69개 계열사로 성장 허 회장은 디저트 문화에 주목해 1985년 세계적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와 손잡고 비알코리아를 설립했으며, 1986년 명동과 종로에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내고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을 열었다. 비알코리아는 1994년에는 세계적 도넛 브랜드 던킨과 기술을 제휴해 도넛 사업을 펼쳤다. 던킨은 고객이 제품을 직접 골라 담는 셀프서비스 전략을 도입해 호응을 얻었고, 국내 점포 수 660여개의 대표 도넛 브랜드로 성장했다. 허 회장은 2002년 법정관리 중이던 삼립식품까지 인수한 뒤 2004년 1월 현재의 SPC그룹을 출범시켰다. 현재 해외 법인을 포함해 69개 계열사를 거느린 SPC그룹의 자산은 4조 8995억원으로 조만간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 대상 기업집단(5조원 대기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허 회장이 오너 2세이지만 사실상 창업주로 인정받는 배경이다. SPC그룹 계열사는 파리바게뜨, 파스쿠찌, 파리크라상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과 제빵 사업뿐 아니라 육가공 및 신선편의식품으로 영역을 넓힌 종합식품기업 SPC삼립, 배스킨라빈스와 던킨 브랜드를 운영하는 비알코리아가 대표적이다. ㈜파리크라상과 SPC삼립, 비알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1조 9307억원, 1조 6470억원, 7125억원 수준이다. SPC그룹 계열사들은 수직 계열화돼 있다. 파리크라상이 전국 3400여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빵을 팔고 SPC팩(제품 포장용품 제조)과 SPC GFS(식자재 소싱 및 유통) 등이 지원한다. SPC삼립은 대형 마트 등으로 납품하는 빵에 더해 샐러드·육가공 등 다양한 식품까지 만들고 있다. 기존에는 양산빵에 집중했으나 2010년대 이후 카테고리가 확대되며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했다. SPC그룹은 2016년 국내에 쉐이크쉑 버거를 도입해 현재 33개 매장을, 사업권을 획득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해외 14개 매장까지 합하면 4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SPC그룹은 허 회장 일가가 지주회사인 ㈜파리크라상을 지배하고 파리크라상이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파리크라상 지분 구조를 보면 허 회장이 63.4%, 허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 20.3%, 차남인 허희수 비알코리아 부사장 12.8%, 허 회장의 부인 이미향씨가 3.5%를 보유하고 있다. SPC그룹은 해외에서 약진하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2004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등 15개국에 걸쳐 689개의 해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미국(247개)과 캐나다(15개)에서 262개 매장을 운영하고 텍사스주 현지 공장 건설에는 2억 800만 달러(약 2900억원)를 투자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파리바게뜨는 최근 미국 전문지 ‘앙트러프러너’가 선정한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 순위에서 42위에 올랐다. ●‘바게트의 본고장’ 파리에 성공적 안착 동남아시아에서도 순항 중이다. SPC는 싱가포르를 동남아 시장의 거점으로 삼아 주변 국가로 진출하고 있다. 올해 들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파리바게뜨 게이트웨이 KLIA점을 개점하는 등 말레이시아에만 17개 매장을 열었다. SPC그룹은 지난 2월 ‘할랄 식품’(이슬람 율법에서 허용된 음식) 시장 공략을 위해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 할랄 인증 제빵공장을 준공했다. 조호르 생산센터는 하루 최대 30만개(연간 최대 1억개)의 베이커리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여기서 계열사인 SPC삼립의 수출용 할랄 인증 제품을 생산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눈에 띄는 점은 2014년 ‘바게트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 국내 제빵업계 최초로 파리바게뜨가 진출한 것이다. 파리바게뜨 1호점인 샤틀레점은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파리 미식의 중심지인 생미셸에도 매장을 열어 프랑스에 총 6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SPC그룹은 맛과 건강을 함께 잡고자 최근 프리미엄 브랜드 ‘파란라벨’을 출시해 건강빵 대중화에 나섰다. 허 회장이 원천 기술 확보와 기초 소재 연구를 위해 2005년 설립한 SPC 식품생명공학연구소는 기존 건강빵이 풍미가 떨어지고 식감이 거칠다는 편견을 없애고자 2020년부터 핀란드 헬싱키대학과 공동 연구를 진행한 끝에 통곡물 발효종인 ‘SPC x 헬싱키 사워도우’와 ‘멀티그레인(통곡물) 사워도우’ 개발에 성공했다. 통곡물빵의 거친 식감을 부드럽게 개선했다. 배스킨라빈스도 올해 출시한 ‘레슬리 에디션’으로 인기 아이스크림의 열량을 기존 대비 47%, 당류는 39% 낮췄다. SPC그룹은 가맹점과의 상생으로 2020년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을 만큼 사회 공헌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강화해 왔다.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 개편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SPC그룹과 계열 가맹점들이 전국 사회복지 시설에 제품을 기부하는 푸드뱅크 사업의 누적 기부 실적은 327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안전 문제는 여전히 아킬레스건이다. 허 회장은 2022년 작업장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안전 경영 강화 선언’을 발표했고, 연 1회 이사회에 보고되던 안전 경영 계획을 분기 단위로 확대하면서 안전보건경영책임자(CSO)를 새로 선임했다. 그럼에도 지난 5월 경기 시흥시 SPC삼립 공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는 이러한 안전 관리 조치들의 실효성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배스킨라빈스와 던킨을 운영하는 비알코리아가 지난해 영업손실 99억원으로 2년 연속 적자인 점도 과제다. 우유와 초콜릿 등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에 벤슨, 벤앤제리스 같은 경쟁자들이 등장해 SPC그룹의 향후 대응 전략이 주목된다.
  • 구로구, 23일 G밸리 해외바이어 초청 수출 상담회

    구로구, 23일 G밸리 해외바이어 초청 수출 상담회

    서울 구로구가 오는 23일 서울경제진흥원·금천구·한국산업단지공단과 함께 ‘G밸리 해외바이어 초청 수출상담회’를 연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수출상담회는 해외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수출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구로구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에서 진행되며, G밸리(구로·금천) 및 서울시 소재 정보기술(IT)·전자기기·소비재(뷰티·헬스) 분야 중소기업 63개사가 참가한다. 초청 대상은 미주·동남아·중동지역 등 해외 주요 바이어 30개사로 국내 참가기업과 해외 바이어 간 일대일 맞춤형 수출 상담이 진행될 예정이다. 참여기업은 사전 매칭과 개별 상담(컨설팅)을 통해 기업별 수출 전략을 구체화하고 제품 전시 공간과 국문·영문 홍보자료(브로셔) 제작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장인홍 구로구청장은 “이번 수출상담회가 우수한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해외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 기반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AI로 방향 트는 ‘백발 청춘’ 서경배… 두 딸 민정·호정 차기 경쟁[2025 재계 인맥 대탐구]

    AI로 방향 트는 ‘백발 청춘’ 서경배… 두 딸 민정·호정 차기 경쟁[2025 재계 인맥 대탐구]

    구조조정 결단력에 형 제치고 승계CES 직접 챙기고 MS CEO 독대도구내식당 자주 들러 ‘식판 경영’ 즐겨통합 뷰티 솔루션 등 5대 기조 발표신흥 강자 에이피알 성장세로 위협외연 확장과 이미지 혁신 등 과제로 “아름다움의 영역을 개척하고 창조해 온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몸과 마음의 조화에서 비롯돼 나이와 시간을 초월한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선보이겠습니다.” 지난달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열린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서경배(62)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발언은 화장품 산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지를 보여 준다. 백발에 캐주얼 정장, 흰 운동화 차림으로 사원들 앞에 선 서 회장은 ▲글로벌 핵심 시장 집중 육성 ▲통합 뷰티 솔루션 강화 ▲바이오 기술 기반 항노화 개발 ▲민첩한 조직 혁신 ▲인공지능(AI) 기반 업무 전환 등 5대 기조를 발표하며 뷰티 시장의 격전지에 내몰린 각오를 다졌다. ●부친 마당발 인맥 덕 화려한 혼맥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운 고 서성환 창업주와 고 변금주 여사 사이에는 2남 4녀가 있지만 장남인 서영배(69) 태평양개발 회장과 서 회장을 제외한 자매들은 경영 일선에서 빠졌다. 재계는 물론 정계와 언론계 등 넓게 퍼져 있는 서 창업주의 인맥을 바탕으로 자녀들의 혼맥도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첫째 서송숙(78)씨는 고 박세정 대선제분 회장의 아들인 고 박내회 서강대 명예교수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현재는 미국 국적이다. 둘째 서혜숙(75)씨는 이승만 정부에서 내무·교통·상공부 장관을 지냈던 고 김일환 전 장관의 3남 김의광(76) 목인박물관장과 결혼했다. 김 관장은 태평양 계열사였던 장원산업 회장을 지내며 4명의 사위 중 유일하게 장인 회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3녀 서은숙(72)씨는 공화당 소속이었던 고 최두고 전 국회의원의 차남 최상용(73) 전 고려대 의과대 학장과 결혼했다.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근무했던 최 전 학장은 간 이식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의로 통했다. 장남인 서영배 회장은 고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의 장녀인 방혜성(65)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서 회장은 태평양증권 부사장을 거쳐 태평양개발 회장에 올랐다. 서 회장과 방씨는 현재 성덕여중·성덕고가 소속된 태평양학원의 이사장과 이사를 각각 맡고 있다. 서 창업주로부터 금융과 건설 등 비화장품 계열사를 물려받은 서영배 회장은 태평양건설만을 독자 경영해 왔다. 동생인 서 회장과 함께 태평양화학공업사에 입사해 경영권을 두고 다툼을 벌였지만, 서 창업주는 계열사를 과감하게 구조조정한 서 회장의 결단력에 손을 들어 준 것으로 전해진다. 4녀인 서미숙(67)씨는 고 최주호 우성그룹 회장의 4남인 최승진(70) 전 우성그룹 부회장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서 회장은 부친인 서 창업주와 신춘호 농심그룹 선대회장의 인연으로 1990년 신 선대회장의 막내딸인 신윤경(57)씨와 결혼했다. 신씨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고문을 지내며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휴직 중인 민정씨, 오설록 합류 호정씨 서 회장과 신씨는 슬하에 장녀 민정(34)씨와 차녀 호정(30)씨를 뒀다. 2009년 모교인 연세대 경영대의 동문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해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민정씨에게 직접 칵테일을 타 줬다고 밝힐 만큼 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006년 이미 민정씨에게 태평양의 우선주를 처음 증여하기도 했다. 서민정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의 컨설팅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했다. 2017년 6개월간 아모레퍼시픽 오산공장에서 짧은 경력을 쌓은 뒤 중국의 장강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거쳤다. 2019년 아모레퍼시픽에 재입사한 민정씨는 고가 브랜드 라인인 럭셔리 디비전AP팀에서 근무하며 순조로운 승계 작업을 거치는 듯 보였다. 승계 구도에 지각 변동이 생긴 것은 민정씨가 2021년 보광그룹 3세인 홍정환(40) 폴스타파트너스 대표와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이혼한 이후부터다. 민정씨는 2023년 7월 개인적인 사유로 휴직계를 낸 뒤 현재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7월 둘째인 서호정씨가 계열사인 오설록 제품개발(PD)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2018년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으나 아모레퍼시픽그룹의 8개 주요 자회사 중 아모레퍼시픽 다음으로 성장률이 높은 오설록을 통해 경영 실무에 뛰어든 것이다. 2023년 서 회장이 호정씨에게 주식을 대거 증여하며 언니인 민정씨와의 지분 격차를 줄인 것도 자매의 승계 경쟁 구도에 불을 지폈다. 올해 8월 기준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홀딩스 지분은 민정씨가 2.8%, 호정씨가 2.6%로 약 0.2% 포인트 차다. 주요 계열사로 넓히면 민정씨가 이니스프리를 8.7%, 호정씨가 아모레퍼시픽을 0.01% 보유해 격차가 벌어지지만 이니스프리가 실적 악화를 털어 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민정씨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분석이다. 2016년 매출 7700억원을 기록하며 에뛰드·설화수·마몽드·라네즈와 함께 그룹 내 ‘글로벌 5대 챔피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던 이니스프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타격을 입은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246억원, 영업이익 16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8.0%, 84.5% 감소했다. 반면 오설록의 성장세는 꾸준하다. 오설록의 지난해 매출은 937억원, 영업이익 92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1.7%, 68.7% 증가했다. 올해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말차 열풍에 주문량이 급증해 처음 배당을 실시했다. 상승세에 힘입어 추석 직전 가격 인상도 무리 없이 해내면서 올해 오설록의 호실적은 이미 예견돼 있다는 평가다. 다만 승계 경쟁 초읽기에 들어선 것일 뿐 아직 일선 현장을 적극적으로 뛰는 서 회장의 경영 능력은 여전히 ‘백발의 청춘’이다. 현장성을 중시하는 서 회장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를 처음 참관했다. 특히 뷰티 테크, 뷰티 디바이스 등 자사의 대내외적 AI 전환을 강조하는 서 회장은 직속으로 ‘이노베이션센터’를 만들었을 만큼 차세대 전략으로 AI 혁신을 적극 밀었다. 지난 3월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와 독대하기도 했다. 조직 관리에는 엄정하지만 사내 소통에는 개방적이다. 수평적인 사내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면서 서 회장 역시 직원들에게 ‘서경배님’으로 통용된다. 구내식당에도 자주 등장해 직원들과 ‘식판 경영’을 할 만큼 소탈하고 격의 없는 소통을 즐긴다. 매달 전사에 송출되는 정기 조회 ‘아모레 블루밍’에도 분기에 한 번씩 등장한다고 한다. ●1970년대생 젊은 대표들에 계열사 맡겨 아모레퍼시픽그룹 주요 계열사에는 주로 1970년대생의 젊은 대표들이 포진해 있다. 대부분 2021년 부진했던 실적을 만회하고 혁신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해 그룹 전반에 걸쳐 세대 교체를 단행한 여파다. 일각에선 아직 30대인 두 딸의 원활한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김승환(56)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아모레퍼시픽에서 경영전략팀장과 인사조직 유닛장,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에서 대표이사와 전략 유닛 전무를 지내며 인사·전략 분야에 오래 몸담았던 인물이다. 대표직을 맡은 이후 해외 비즈니스 확장과 조직 개편에 주력했다. 이니스프리는 최민정(47) 대표가 이끌고 있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과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19년 아모레퍼시픽그룹 전략실로 합류했다. 에스쁘아 대표를 역임한 최 대표는 이니스프리의 리브랜딩을 이끌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전략통으로 통한다. 아모레퍼시픽 공채 신입사원부터 시작한 이수연(49) 에뛰드 대표는 아이오페, 마몽드 등 아모레퍼시픽의 주요 브랜드에서 마케팅을 담당해 왔다. 젊은 대표가 이끄는 색조 브랜드 이미지에 맞게 인플루언서 협업 등 새로운 마케팅 방식에 적극적이다. 오설록은 2019년 독립법인으로 분사하면서부터 서혁제(53) 대표가 이끌어 왔다. 아모레 설록사업부로 입사한 서 대표는 설록차 등 아모레퍼시픽그룹의 티 브랜드에서 상품 개발, 마케팅 등 여러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K뷰티의 부흥으로 어느 때보다 한국 뷰티 산업의 미래가 밝은 현시점에 한때 경쟁자조차 없이 업계 선두를 달렸던 아모레퍼시픽은 외연 확장과 자력 성장, 구세대적 이미지 탈피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 K뷰티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 신흥 브랜드들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것 또한 아모레퍼시픽에는 위험 요인이다. 80년간 쌓아 온 아모레퍼시픽의 공력이 오히려 트렌디함이 중요한 뷰티 업계에서 브랜드 이미지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굳혀 왔던 국내 화장품 업계의 양강 구도를 상장한 지 2년도 안 된 신흥기업 에이피알이 흔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국내 최초의 역사를 써 온 뷰티업계의 ‘맏형’ 아모레퍼시픽이 세계 시장에서 선보일 또 다른 혁신에 관심이 쏠린다.
  • ‘구리무’ 80년, K뷰티 선봉에… 북미·유럽 녹이는 아모레퍼시픽[2025 재계 인맥 대탐구]

    ‘구리무’ 80년, K뷰티 선봉에… 북미·유럽 녹이는 아모레퍼시픽[2025 재계 인맥 대탐구]

    창업주 모친의 머릿기름이 시초업계 최초 방판으로 인지도 키워사업 확장해 한때 계열사 25개로2세 서경배 회장 ‘미와 건강’ 집중설화수·아이오페 잇단 성공 가도중국 의존도 낮추고 시장 다변화“2035년까지 매출 15조 달성할 것” ‘K뷰티’ 시초 격인 아모레퍼시픽은 ‘구리무’(크림)에서 출발해 최초의 한방 화장품 출시, ‘방문판매제’ 도입, 쿠션 카테고리 발명 등 독자적인 기술과 브랜딩으로 국내외 뷰티 산업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설화수·에뛰드·이니스프리 등 대표 브랜드의 잇따른 성공으로 업계를 선도했지만 최근에는 화장품주 시총 1위 자리를 에이피알에 내주며 승부수를 띄워야 할 상황을 맞았다. 올해로 창사 80주년을 맞아 ‘크리에이트 뉴 뷰티’(새로운 미를 창조)를 새 슬로건으로 내세운 아모레퍼시픽은 해외시장 공략과 인공지능(AI) 혁신을 축으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전신인 태평양화학공업사의 뿌리에는 고 서성환 창업주의 모친 고 윤독정 여사가 있다. 서 창업주는 1924년 북한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에서 부친 고 서대근씨와 윤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격동의 시기 6남매의 생계를 책임졌던 윤 여사는 서 창업주가 소학교에 다니던 1930년 상업이 가장 번화했던 개성으로 이사한다. ●메로디크림·ABC포마드로 판 뒤집어 등잔 기름, 염색 물감 등을 떼어 와 팔던 윤 여사는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이 쪽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던 머릿기름에 천착해 직접 제조했다.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윤기가 오래가는 동백나무를 원료로 한 윤 여사의 머릿기름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탔다. 동백기름의 인기가 커지자 윤 여사는 지금의 스킨·로션 격인 미안수부터 구리무, 백분(파우더) 등 품목을 하나둘 늘려 가며 사업 확장에 나섰다.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가게에는 ‘창성상점’이라는 정식 명칭이 붙었다. 개성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김재현백화점’에 입점할 만큼 사업이 크게 불어났을 시기 윤 여사는 가업을 돕기 위해 새벽부터 도시락 3개를 들고 개성에서 서울로 원료를 구하러 다니던 서 창업주의 자질을 눈여겨보고 직접 백화점 판매를 시켰다. 고급스러운 포장과 더 나은 품질의 제품들을 보고 익힌 서 창업주는 김재현백화점의 화장품부에 코너를 개설하는 데 성공했다. 광복 후 개성으로 돌아온 서 창업주는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우고 창성상점의 이름을 ‘태평양상회’로 바꿨다. 1947년 개성을 떠나 익숙한 남대문시장 근처인 서울 남창동에 자리를 잡은 뒤 부인인 고 변금주씨를 만나 결혼했다. 1948년 태평양화학공업사가 내놓은 1호 제품인 ‘메로디크림’은 모조품과 위조 화장품이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 초까지 인기리에 판매됐다. 한국전쟁 이후 남성 소비자를 겨냥해 출시한 식물성 제품 ‘ABC포마드’는 국내 남성용 헤어 시장의 판을 뒤집었다. 동백나무만을 고수하던 윤 여사의 엄격한 기준에서 품질의 중요성을 배운 서 창업주는 1954년 서울 후암동 공장 한쪽에 업계 최초의 화장품 연구실을 설립하며 연구개발(R&D)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사업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선 장사 수완과 경험칙을 넘어 명확한 이론과 계량된 데이터,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과학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본 동경공업고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한 구용섭씨를 초대 연구실장으로 앉힌 서 창업주는 서울대 약학대학 출신 인재들을 영입하고 당시 잘 팔리던 화장품을 가져와 실험을 거듭하며 화장품의 기술적 기반을 닦았다. 현재의 그룹명인 아모레퍼시픽 중 ‘아모레’라는 브랜드명이 이 무렵 탄생했다. 오원식 전 부사장이 1961년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이탈리아 가곡 ‘시노 메 모로’의 첫 구절 ‘아모레미오’(난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첫 구절에서 따왔다. 업계 최초로 육성한 방문판매원들은 ‘아모레 아줌마’로 불리며 인지도를 넓혔다. 시대적 배경도 성장 가도에 한몫했다. 195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처음 열리면서 국내 화장 문화가 태동했다. 전쟁이 끝난 뒤 생계가 막막해진 여성들을 대상으로 제품 지식과 미용법 등을 교육하며 방문판매원으로 키웠다. 1968년 매출 14억 2800만원으로 창업 이후 처음 10억원대를 돌파했다. 방문판매 전성기였던 1980년 특약점과 영업소는 664곳, 판매원은 1만 6571명이나 됐다고 한다. 파죽지세로 성장하던 서 창업주의 태평양화학공업사는 1980년대 화장품 수입 시장 개방으로 업계가 격변하자 녹차 사업, 패션, 제약, 증권, 생명보험, 전자, 금속, 광고에 이르기까지 계열사만 25개를 거느린 ‘태평양그룹’으로 몸집을 불렸다. ●1980년대 문어발식 확장 되레 독으로 그러나 치열해진 업계 환경에서 단행한 문어발식 확장은 되레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적자에 허덕이는 부실 계열사가 늘었고 1973년 73%에 달했던 태평양의 화장품 산업 시장점유율은 1991년 19%까지 떨어졌다. 태평양 노조는 25일에 걸친 본사 점거 농성을 하기도 했다. 1987년부터 태평양화학에 입사해 승계 가도를 따르던 서 창업주의 차남인 서경배(62)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기획조정실장으로 계열사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서 회장은 10년 전 발간한 부친 회고록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에서 “1991년 파업이 태평양 역사상 최대의 위기이자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회장님과 저는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고민했다”며 “그때 회장님은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고 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길이 보였고, 할 일이 눈에 들어왔다”고 회고했다. ‘미와 건강’ 두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화장품 산업에 몰두한 태평양은 서 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한 1997년 인삼을 바탕으로 한 최초의 한방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를 성공시키며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는다. 고급 한방 화장품 설화수, 2030여성을 겨냥한 마몽드, 주름 개선 기능성 브랜드 아이오페 등 브랜드마다 고유의 콘셉트를 살린 사업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2002년 사명을 아모레퍼시픽으로 바꾸고 2006년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홀딩스)을 지주회사로, 아모레퍼시픽을 사업회사로 분리했다. 매해 백화점 매출 1위를 석권한 설화수의 영향력으로 2007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에 처음 포함됐다. 최초의 쿠션 카테고리를 선도한 아이오페의 ‘에어쿠션’도 출시 직후 단일 품목으로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연이은 성공 신화를 썼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가 중국 유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차 호황기를 맞는다. 설화수의 한 해 매출액만 1조원을 달성했던 2015년 서 회장은 보유 주식 평가액이 6개월 만에 6조원 넘게 오르며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제치고 국내 주식 부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대표이사에 취임한 지 20년 만에 매출액 10배, 영업이익 21배를 기록하며 순항하던 ‘서경배호’는 중국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국면에서 위기를 맞는다. 2016년 5조 6000억원을 넘어섰던 아모레퍼시픽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코로나19의 불황기를 겪으며 2023년 3조 6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지난해 재계 순위는 59위로, 한때 43위까지 올랐다가 5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사드·코로나 여파로 바닥 찍고 재도약 서 회장은 2021년 신년사에서 “고객과 유통의 변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며 경영 방침을 ‘위닝 투게더’(함께 이겨 나가자)로 잡았다. 불안정한 수출 시장과 위축된 국내 소비 시장 사이에서 기업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드러난 대목이다. 주요 계열사의 경영진을 교체하며 조직 개편에 나서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수출 판로 다각화와 전략적인 인수합병(M&A)으로 해법을 모색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북미와 유럽 등으로 눈을 돌리고 해외 매출 증가에 열을 올렸다. 실제로 2021년 37%였던 해외 매출 비중은 지난해 43%로 증가했다. 라네즈는 지난해 미국 대표 뷰티 편집숍인 ‘세포라’에서 스킨케어 부문 상위 3개 브랜드에 올랐고 영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매출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2023년에는 민감 피부 전문 스킨케어 브랜드인 ‘코스알엑스’를 매입하는 등 M&A를 통한 사업 확장에도 나섰다. 덕분에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아모레퍼시픽의 미국 매출은 처음으로 중국 매출 비중을 넘어섰다. 이미 바닥을 찍은 것으로 평가받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1조 9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9% 증가했다. 서 회장은 지난달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2035년까지 매출 15조원을 달성하고 해외 매출 비중을 70%까지 확대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 지투지인터내셔날, 상해 난징동루 HBAF 매장 국경절 기간 방문객 8만명 넘겨

    지투지인터내셔날, 상해 난징동루 HBAF 매장 국경절 기간 방문객 8만명 넘겨

    한국 소비재 수출 전문기업 지투지인터내셔날(대표 김성겸)이 중국 상해 난징동루(南京东路)에 선보인 HBAF 오프라인 플래그십 매장이 국경절 연휴(10월 1일~7일) 기간 동안 총 8만 2천여 명의 방문객을 기록하며, 하루 최대 1만 4천 명이 몰리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번 성과는 지투지인터내셔날이 한국 대표 간식 브랜드를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상징적인 사례로, 중국 내 프리미엄 스낵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지투지인터내셔날은 2017년부터 HBAF의 중국 시장 진출을 총괄하며, 제품 현지화·유통망 구축·디지털 마케팅 전략을 통합적으로 실행해왔다. 특히 상해 난징동루 매장은 중국 내 핵심 상권에서 브랜드 체험 중심의 리테일 전략을 실현한 첫 번째 사례로, 단순 판매를 넘어 한국의 K-FOOD 식품 문화를 알리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경절 기간 동안 매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HBAF의 다양한 아몬드 스낵과 신제품을 직접 시식하며, 매장 내 포토존 및 체험공간에서 콘텐츠를 제작해 SNS에 자발적으로 공유했다. 이로 인해 ‘HBAF 난징동루점’ 관련 게시물이 샤오홍슈(Xiaohongshu), 도우인(Douyin) 등 주요 플랫폼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브랜드 인지도 상승에 기여했다. 지투지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이번 국경절 기간의 방문객 수치는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국 브랜드가 얼마나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며, “앞으로도 한국의 우수한 제품과 문화를 중국 현지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오프라인 체험 공간과 온라인 콘텐츠를 결합한 브랜드 확장 전략을 지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투지인터내셔날은 이번 성과를 기반으로 북경·상해 등 주요 도시로 팝업 매장 확장을 검토 중이며, 동시에 티몰(Tmall)·도우인(Douyin)·샤오홍슈(Xiaohongshu)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통합 브랜딩을 통해 중국 내 시장 입지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 코스피 사상 첫 3600 돌파…삼전·하닉 나란히 신고가

    코스피 사상 첫 3600 돌파…삼전·하닉 나란히 신고가

    긴 휴장 기간을 마친 코스피가 사상 처음 3600선 기록을 썼다. 외국인 순매수세가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삼성전자는 9만 4300원, SK하이닉스는 42만 7000원까지 올라서며 나란히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1분 현재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0.06 포인트(1.40%) 오른 3597.80에 거래되고 있다. 전 거래일 대비 48.90 포인트(1.38%) 오른 3598.11에 장 시작하고 곧바로 3606.86까지 올라서며 3600선을 돌파했다. 그 뒤 상승 폭을 약간 줄여 3600을 눈앞에 두고 등락하고 있다. 외국인이 4549억원어치 순매수한 반면 개인과 기관은 각각 279억원, 4263억원어치 내다 팔고 있다. 장 초반 순매수하던 개인은 외국인 순매수세가 거세자 장중 순매도 전환했다.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5%대, 7%대 상승률로 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다. 삼성전자는 장 초반 전 거래일 대비 5.60% 오른 9만 4300원까지 올랐다가 현재 9만 3400원에 거래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 대비 7.42% 오른 42만 7000원까지 올랐다가 현재 42만 5000원에 거래 중이다. 두 종목 모두 신고가 경신했다. 이외 시가총액 상위 종목은 종목에 따라 편차가 큰 종목 장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1.19%), 삼성전자우(5.71%), 두산에너빌리티(4.17%) 등이 상승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9.90%), 한화에어로스페이스(-5.20%), HD현대중공업(-2.27%), 현대차(-0.23%), KB금융(-3.34%) 등은 하락했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에는 반도체 랠리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며 “반도체·전력인프라, 인바운드 소비재 등 연휴 기간 뉴스의 수혜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의 괴리가 커질 것으로 생각되며, 이후에는 기술주 과열, 관세 협상, 셧다운 장기화 문제, 실적발표 기간 등을 소화하는 시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10년 새 바뀐 ‘수출 효자’… 디젤차·TV 지고, 전기차·화장품 떴다

    10년 새 바뀐 ‘수출 효자’… 디젤차·TV 지고, 전기차·화장품 떴다

    전기차 70배 성장… 46위→2위로식품·화장품·중고차 10위권 진입디젤차 11위·TV 77위 ‘격세지감’美 수출 비중 늘고 中 비중은 줄어 우리나라 수출 효자 상품이 10년 전 디젤자동차, TV 등에서 최근 전기차·식품·화장품·중고차 등 K콘텐츠와 결합한 신흥 소비재 품목으로 변화했다. 친환경차에 대한 수요와 더불어 식품, 화장품 등에서도 한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미국에 대한 소비재 수출 비중은 늘어난 반면 중국 수출 비중은 줄었다. 3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의뢰해 분석한 ‘최근 소비재 수출 동향’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전기차, 식품, 화장품류, 중고차(가솔린) 등 4개 품목이 수출 상위 10위권에 새로 들어왔다. 전기차 수출액은 2014년 1억 4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01억 1000만달러로 10년 만에 70배 성장하며 46위에서 2위로 도약했다. 식품은 11억 2000만달러(11위)에서 33억 4000만달러(6위)로, 마스크팩·탈취제·목욕용품 등의 화장품류는 6억 달러(16위)에서 32억 2000만 달러(7위)로 성큼 뛰어올랐다. 중고차(가솔린)는 5억 8000만달러(17위)에서 28억 9000만달러(9위)로 성장했다. 반면 과거 수출 효자 품목으로 꼽혔던 디젤차(2위→11위), TV(7위→77위), 세제·비누 등 기타 비내구소비재(8위→13위), 패션 액세서리 등(9위→20위)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대한상의는 “자동차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출 소비재 1위 품목이지만, 글로벌 탈탄소 기조와 친환경 차량에 대한 수요 확대로 가솔린·디젤차 수요가 전기차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재 수출 지형은 10년간 미국 중심으로 더욱 확대됐다. 대미 수출액은 387억 3000만 달러 규모로, 전체의 39.1%를 차지했다. 10년 전(203억 1000만 달러)보다 비중이 12.6%포인트 늘었다. 반면 수출 비중 2위를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은 1.6%포인트 감소한 6.7%(66억 9000만 달러)에 그쳤고, 일본도 0.7%포인트 하락했다. 전체 수출의 45%를 차지하는 미국·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는 자동차, 가전제품 같은 내구소비재가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 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식품, 담배 같은 직접 소비재와 화장품, 의류 등 비내구재 품목이 주를 이뤘다. 소비재 수출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2.6%씩 성장하며 전체 수출 증가율(1.8%)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재는 상대적으로 경기 변동에 덜 휘둘리고, 한국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해외 진출 기반도 안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과감한 ‘열린 경영’ 김윤 스타일… 4세 승계 염두, 새 100년 구상 [2025 재계 인맥 대탐구]

    과감한 ‘열린 경영’ 김윤 스타일… 4세 승계 염두, 새 100년 구상 [2025 재계 인맥 대탐구]

    부친·숙부 뒤이어 그룹 수장 올라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0명’ 신화2011년 지주회사 체제로 대전환동생·사촌동생, 그룹 부회장 맡아3인 최고경영위, 굵직한 의사결정‘최초’ 기록 많지만 인지도는 낮아 ‘3세 경영’ 선두에 선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은 삼양그룹의 주축인 식품, 화학, 의약·바이오의 ‘스페셜티’(Specialty·고기능성) 사업 구조를 만들고 20년간 이끌어 온 인물이다. 부친 김상홍 명예회장, 숙부 김상하 명예회장과 마찬가지로 바닥부터 경영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부친의 지시로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는데,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후일 “김 회장님 큰 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 주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삼양그룹의 일본 도쿄 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해외 사업을 챙겼고 귀국한 뒤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삼양그룹 이사, 상무, 전무, 사장, 부회장 등을 거쳤다. ●젊은 사원 건의 따라 복장 자율화 정착 김 회장은 2004년 3월 삼양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 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다.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했다. 이후 8개월에 걸쳐 미국 매킨지 컨설팅을 받아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개 부문을 그룹 핵심사업으로 확정했다. 화학과 의약 부문을 성장의 두 축으로 놓고 신사업 부문에서는 브랜드, 맨파워, 연구개발 등 무형자산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식품 사업 부문은 기존 사업을 발전시키되 B2C 분야로 확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김 회장에게는 ‘과감한 추진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외환위기 당시 큰 힘을 발휘했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 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섬유·식품·화학 핵심 사업군으로 계열사를 재편했다.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고 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때 ‘구조조정 0명, 임금 삭감 0원’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른바 ‘열린 경영’을 내세우며 현장에서 직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경영에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996년 삼양사 사장에 취임할 때 과장급 이하 사원 15명으로 구성된 ‘C&C보드’(사원 이사회)를 조직하고 회사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 아이템 등을 직접 보고받았다. C&C보드에서 의견을 내 2014년 ‘복장 자율화’가 회사 문화로 정착되기도 했다. 삼양그룹은 2011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삼양사를 삼양홀딩스, 삼양사, 삼양바이오팜 3개사로 인적·물적 분할했다. 삼양홀딩스가 지주회사가 되고 산하에 사업 회사인 삼양사를 비롯해 화학 부문 계열사 7개, 식품 부문 계열사 6개, 의약·바이오 부문 1개사를 두도록 했다. 최상위 법인 한 곳만 지배해도 산하 여러 계열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수직적 지배체계로 만든 것이다. 김 회장이 삼양홀딩스 회장을 맡고 김량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원 삼양사 사장이 삼양사 부회장에, 김정 삼양제넥스 부사장이 삼양사 사장에 선임됐다. 김 회장과 김량·김원 부회장 3인이 주축이 되는 의사결정기구인 ‘최고경영회의’를 신설했다.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과 인수합병(M&A)을 포함한 주요 투자 등을 결정하는 컨트롤타워다. 그룹사를 식품, 화학, 의약·바이오, 운영 4개 부문으로 재편하고 각 부문에 그룹장을 두는 ‘그룹장 제도’도 만들었다. 2011년 11월 삼양홀딩스가 공식 출범하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됐고 12월 삼양사 재상장과 삼양홀딩스 변경 상장을 동시에 추진해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했다. ●장남 김건호 사장 선임해 4세 경영 첫발 김상하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원 삼양사 부회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 김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김 회장은 부친 김상홍 명예회장과 달리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는다. 반면 김원 부회장은 부친 김상하 명예회장과 달리 묵묵한 성격으로, 관리 쪽에 무게를 실은 경영 스타일로 알려졌다. 김량 삼양사 부회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김 회장의 동생이다.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유통 부문에서 역량을 쌓았고 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가업에 뛰어들었다.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 삼양패키징 부회장은 김상하 명예회장의 차남이자 김원 부회장의 동생이다. 1997년 삼양사에 입사해 삼남석유화학 부사장, 삼양제넥스 사무총괄, 삼양사 사장, 삼양홀딩스 사장을 거쳐 현재 삼양패키징을 이끌고 있다. 삼양그룹은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2023년 12월 김 회장의 장남인 김건호(42) 경영총괄사무를 삼양홀딩스 사장으로 선임하며 4세 경영의 문을 열었다. 김 창업주의 증손자인 김 사장의 현재 직책은 전략총괄로, 그룹의 성장 전략과 재무를 책임진다. 앞서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2014년 삼양사에 입사한 뒤 해외팀장, 글로벌성장팀장을 거쳐 삼양홀딩스 글로벌성장PU장, 휴비스 미래전략주관(사장) 등을 역임하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삼양그룹은 지난해 12월 화학그룹을 화학1그룹과 2그룹으로 분리했는데, 이 중 김 사장이 화학2그룹장까지 겸직하며 관련 사업을 지휘하게 됐다. 화학2그룹은 국내 최대 규모의 반도체 포토레지스트(PR) 소재 전문기업 삼양엔씨켐과 뷰티&퍼스널케어 소재 전문기업 삼양케이씨아이(KCI), 2023년 인수합병한 글로벌 화학기업 버든트 등을 계열사로 구성했다. ●국내외 계열사 27곳… 경영 투명성 지적 삼양그룹은 다른 대기업과 달리 이른바 장자 승계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김 창업주에 이어 두 아들 김상홍(3남)·상하(5남) 명예회장이 차례로 직을 물려받았고, 이후엔 형제·사촌 경영 구도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와 사촌이 경영권을 놓고 다투는 모습이 외부로 노출된 적이 거의 없었다. 올해 창립 101주년을 맞은 삼양그룹은 일제강점기에 창업해 광복과 분단을 거쳐 지금까지 역사적 부침과 굴곡진 근현대사를 겪으며 가업을 일궜다. 1924년 국내 최초 근대적 기업형 농장 설립, 1955년 국내 최대 제당 공장 준공, 1989년 국내 최초 폴리카보네이트 생산, 1993년 국내 최초 수술용 녹는 실 개발, 1995년 국내 최초의 식물세포 배양 항암물질 대량 생산, 2016년 대체 감미료인 알룰로스의 대량 생산 체계 확보, 2022년 국내 최초의 친환경 바이오매스 소재인 ‘이소소르비드’ 상용화 등 최초 기록을 수없이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화학, 식품, 의약·바이오, 패키징 분야 사업을 축으로 하고 여기에 정보통신(IT)과 코스메틱까지 확장해 사실상 생활기업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2011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한 해 뒤인 2012년 삼양제넥스바이오를 설립하고 이어 2013년 삼양바이오팜과 합병했다. 2014년에는 삼양에프앤비, 삼양패키징을 설립했다. 2017년에는 화공약품을 다루는 메디켐과 퍼스널케어 소재 전문회사 KCI를 인수했다. 2020년에는 삼양사와 합성수지 제조 사업체 크리켐을 합병하고 2021년에는 삼양바이오팜과 메디켐을 합병했다. 또 삼양홀딩스와 삼양바이오팜을 합병하고 반도체용 정밀화학 기업 엔씨켐을 인수했다. 미국과 중국, 헝가리, 베트남 사업체를 인수합병하면서 현재 계열사가 국내 13곳, 해외 14곳 등 27곳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경영 투명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지난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지배구조 보고서를 제출한 자산 5000억원 이상의 비금융 상장사 501개를 조사한 결과 삼양홀딩스의 핵심지표 준수율은 26.7%에 그쳤다. 전체 평균이 54.4%인 점을 볼 때 절반도 안 되는 셈이다. 101년이라는 역사에 비해 일반 소비자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라면 만드는 그 회사 아니라고!”라는 기업 광고가 히트했지만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 세기를 넘긴 대한민국 대표 장수기업은 이제 4세 경영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시작할 출발점에 서 있다.
  • 형제·사촌 경영으로 101년… 화학·의약·식품·신소재 삼양의 미래 [2025 재계 인맥 대탐구]

    형제·사촌 경영으로 101년… 화학·의약·식품·신소재 삼양의 미래 [2025 재계 인맥 대탐구]

    김연수, 1924년 ‘삼수사’로 창업광복 이후엔 염전·제당공장 짓고주식회사 ‘삼양사’서 아들들 수업 2세 김상홍 체제 때 신소재 발굴동생 김상하, 화학·의약 집중 육성현재는 그룹 회장+사장 체제 정착 삼양그룹이 지난 6월 배우 박정민을 내세워 선보인 기업 광고 ‘스페셜티’ 편이 큰 인기를 끌었다. “라면 만드는 그 회사 아니라고!”라는 대사가 화제를 모으며 석 달 동안 유튜브 조회수 1400만여회를 기록했다. 삼양그룹과 삼양식품은 ‘삼양’(三養)을 이름으로 쓰는 데다 한자마저 같아 종종 오해받지만, 두 회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음달 1일 101주년을 맞는 삼양그룹은 창립 초기 식품과 섬유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식품과 화학, 의약·바이오 사업을 모두 아우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고(故) 김연수 창업주와 2세인 고 김상홍·김상하 명예회장의 ‘형제 경영’ 체제에 이어 3세 김윤(72·김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삼양홀딩스 회장과 김량(70·차남) 부회장, 김원(67·김상하 명예회장의 장남)·김정(65·차남) 부회장 간 ‘형제·사촌 경영’으로 이어 온 한국의 대표 장수 기업이다. ●“라면 그 회사 아니라고” 광고의 역설 김 창업주는 1896년 10월 1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인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김 창업주의 형인 고 김성수 전 부통령은 경성방직과 동아일보사를 설립하고 고려대를 인수해 운영했으며,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으로 우리 근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김 창업주는 호남지역 거부였던 부친의 부를 기반으로 1924년 10월 1일 전남 장성군 남면의 장성농장 정미소에 ‘삼수사’(三水社) 현판을 내걸고 창업했다. 1931년까지 모두 7개의 농장을 조성했는데, 우리나라 근대 기업의 첫발이었다. 그해 4월 사명을 ‘기른다’는 의미의 ‘양’(養)으로 바꿔 ‘삼양사’(三養社)로 변경했다. 1936년 만주 봉천에 최초의 해외 기지인 삼양사 봉천사무소를 설립하고, 1940년에는 맥주 제조사인 오리엔탈맥주합자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광복 이후에는 만주와 38선 이북에 있던 모든 사업 및 자산 일체를 포기하고 남하했다. 사업 기반을 잃었지만 1947년 2월 전북 고창군 해리면에서 염전 축조 공사를 시작하며 다시 일어섰다. 1949년 천일염 8998가마를 처음 수확했는데, ‘삼양소금’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국으로 나갔다. 광복 이후 김 창업주는 한국전쟁으로 다시 타격을 받았다. 식품과 섬유 분야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는데, 전쟁이 끝나면 의식주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울산읍 매암리(현 울산시 매암동)에서 바다를 매립하고 임야를 깎아 조성한 32만 740㎡ 부지에 1955년 12월 삼양의 제조업 진출 출발점인 울산 제당공장을 완공했다. 1956년에는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김 창업주가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하고 사장에 3남 김상홍 명예회장, 상무에 5남 김상하 명예회장을 각각 앉혔다. 당시 삼양사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해리 염전을 삼양염업사라는 별개 회사로 독립시키고 맏아들 김상준을 사장으로 임명해 경영을 맡겼다. 차남 김상협에게는 삼양염전 지분 25%를 떼어 주며 경영권을 일찌감치 정리했다. 김 창업주는 1962년 삼양수산을 설립했는데 냉동선만 21척을 보유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제당과 수산 등 식품 사업에서 성공하며 경영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1963년 전주방적사를 인수하며 섬유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폴리에스터는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던 터였다. 애초 울산공장 유휴지를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전주시의 요청으로 1969년 전주공장이 들어선다. 김 창업주는 197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삼양사 회장에 김상홍 명예회장, 사장에 김상하 명예회장을 임명하면서 ‘2세 경영’을 출범시키고 80세에 은퇴한다. 그 후 1979년 12월 4일 그는 84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감했다. 1956년 34세에 삼양사 회장으로 취임한 김상홍 명예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부친에게 철저한 경영 수업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었을 때 김 창업주가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 농장에서 일을 시켰는데,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김상홍 회장과 김상하 사장 체제 이후 10여년간 삼양그룹은 제당, 수산, 배합사료, 화학섬유, 이온교환수지, 주물 및 산업기계, 그리고 전분 및 전분당 등을 생산하는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1984년에는 2393억원의 매출을 실현하며 50대 재벌 가운데 매출 순위 34위에 올랐다. ●안정 지향해 탄탄한 재무구조 유지 김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에는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 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1960~ 19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은 정치권과 야합하고 차입 경영으로 성장한 사례가 많은데, 김 명예회장은 안정을 지향했다.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식품과 섬유를 중심으로 사업 영역과 규모를 확대했지만, 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첨단 산업으로 사업 분야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었다. 김 명예회장이 선택한 것은 첨단 신소재였다. 1986년 12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는 “앞으로는 그동안 쌓아 온 화학 기술을 기초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비롯한 신소재 개발에 노력하고, 이온교환수지 기술을 토대로 한 정밀화학 분야에도 기술력을 집중시킬 것”이라며 신소재 및 석유화학 부문 진출을 선포했다. 이어 전주 2공단에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콤파운드 공장과 폴리부틸렌 테레프탈레이트(PBT) 중합 공장을 신설하고, 테레프탈산(TPA) 생산을 위해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폴리카보네이트수지(PCR)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삼양화성 설립도 추진했다. 식품 부문에서는 신한제분을 인수해 품종 다양화를 꾀했다. 1988년 3월 1일 그룹 경영 체제로 전환한 ‘삼양그룹’이 공식 출범했다. 식품·섬유·화학·사료를 주로 생산하는 모기업 삼양사를 필두로 삼양중기(기계), 선일포도당(식품), 신한제분(식품), 삼남석유화학(화학), 삼양화성(화학)의 5개 계열사와 육영재단(양영회·수당장학회)으로 재편했다. 그룹 회장제를 도입해 김상홍 삼양그룹 회장과 김상하 삼양사 회장 체제를 확립했다. 이어 이듬해 4월 삼양그룹은 총자산 4000억원 이상인 신규 기업집단에 포함됐다. 김상홍 회장은 1996년 동생인 김상하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겨 줬다. 김상하 명예회장은 형인 김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에게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명예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담은 뒤 줄곧 부친과 형을 도왔다. 1952년 삼양사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공장 설계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며 삼양사를 국내 최대 폴리에스터 업체로 만들었다. 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폭넓은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 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담장 너머 살 정도로 우애 깊은 형제 형제여도 성격이 매우 달랐다고 한다. 김상홍 명예회장은 조용한 성품이었지만 김상하 명예회장은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했다. 그룹 경영과 관리는 꼼꼼한 김상홍 명예회장이 맡고, 활동적인 김상하 명예회장이 영업 최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 분담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특히 김상하 명예회장은 1988년부터 12년 동안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는데, 당시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쳤다. 성격이 달랐지만 형제간 우애는 돈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담장 하나를 두고 함께 살았을 정도였으며, 담장에 쪽문이 있어 수시로 오갈 수 있었다고 한다. 동생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형에게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김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고 소개했다. 김상하 명예회장은 2004년 김상홍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겼다. 아들인 김원 삼양사 부사장이 사장이 되면서 3세에서도 ‘그룹 회장+사장’ 체제를 유지하도록 했다. 1975년부터 30년간의 2세 형제 경영에 이어 3세에서는 ‘형제·사촌 공동 경영 시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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