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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김일성…」아직도 곳곳에 구호·초상화(북한은 지금…:6)

    ◎김정일 「유훈통치」로 권력보전 3년째/「인덕정치」 등 새용어로 통치철학 부각 안간힘/속도전론으로 경제개입… 성장 되레 뒷걸음질 김일성은 죽었어도 그의 통치이념은 여전히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땅에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구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지교시를 철저히 관철하자」 등의 김일성의 구호와 그의 대형초상화가 곳곳에 내걸려 북한주민을 「독려」하고 있었다. 연길에서 만난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남조선 해방」과 「미제국주의 분쇄」라는 논리로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반대세력을 숙청하는 방법을 통해 북한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관측한다.『주체사상의 출발은 지난 50년대 옛 소련시절 스탈린 격하운동과 60년대 중반의 중·소분쟁에 위기의식을 느낀 김일성이 「홀로서기」를 강조하며 고안한 하나의 외교노선에서 시작됐다』고 서울신문과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심지연 경남대교수는 분석한다. 그는 『「사상의 주체」 「경제의 자립」 「국방의 자위」 등을 추가하면서 3대혁명소조운동을 통해 주체사상으로 끌어올렸다』고 덧붙인다.김정일은 바로 이 혁명소조운동을 통해 김일성을 우상화하고 후계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한 덕분에 주체사상을 수정이나 격하할 수 없는 입장인 셈이다. 중국 사회안전부의 한 관계자는 『카리스마가 없는 김정일로서는 섣불리 새로운 통치이념을 내세우기보다 유훈통치라는 「김일성의 우산」아래 숨는 게 권력보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항일투쟁경험이 없다는 게 김정일우상화의 최대약점』이라며 『이 점을 아는 북한당국이 주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베푼다는 「인덕정치」등 새로운 용어를 발굴,김정일의 통치철학으로 부각시키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그는 전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김정일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통치이념을 강조하기보다 주민에게 밥을 배불리 먹여주는 경제난해결이다.그러나 김정일이 경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북한경제는 오히려 급속히 내리막길을 걸었다.하바로프스크에서 만난 북한경제전문가는 『김정일은 60년대 후반 북한학계의 통설이던 경제규모가 커지면 발전속도가 느려진다는 「균형발전론」을 비판하며 인민의 혁명적 열의만이 발전을 가져온다는 「속도전론」을 내놓으면서 경제에 개입했다』며 『속도전론은 74년 벌어진 「70일 전투」를 통해 실물경제에 도입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호위주의 속도전론은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기술혁신의 바탕인 창의력을 말살함으로써 경제난을 부채질하는 근본원인이 된 탓에 개혁·개방 없이는 경제난해소가 요원한 상태다. 북한의 대남정책도 색깔이 없는 듯했다.북한은 유화와 강경(전)을 적절히 구사하는 「양면전략」으로 성과를 거뒀다.겉으로는 남북공존을 강조하면서,속으로는 통일전선전술로 남조선해방노선을 강화하고 한반도문제는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푼다는 이중적인 대남정책을 추진해온 것이다. 북한전문가들은 그러나 김정일이 체제유지의 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 강경한 입장으로 급선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한다.그가 75∼78년 사이에 대남비서를 지내는 동안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등의 사건주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무장공비 침투사건도 같은 맥락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동조사에 참가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김정일은 남한에 대해 강경기조 아래 공작을 시도해야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그가 주도한 대남정책은 장기구상이라기보다 즉흥적인 발상이 더 많은 것같다』고 분석한다. 김정일의 통치이념은 앞으로도 김일성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같다.부자승계 자체가 기존이념의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인 데다 후계자로 부상한 이후 여러 정책의 입안·집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등 그의 정책노선은 김일성노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김일성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점도 체제변화를 막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참여교수 시각/대남정책의 방향/정치적 긴장 조성/경제교류는 확대/이중노선 견지/한석태 경남대교수·한국정치 남북한의 국력격차가 점차 현격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정책은 과거 공세적 정책에서 수세적 내지 공존적 정책으로 변모하고 있다.그리하여 북한은 1990년대 들어 남한과의 교류와 협력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변화를 보여주었다. 비록 최근 북한이 나진·선봉 투자포럼에 남한측의 참가를 무산시키기는 했지만,그동안 경제 회생의 일환으로 남한 기업인들의 참여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유화적 제스처를 지속적으로 구사해 왔다.서방 자본으로부터의 수혈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남한 자본의 유치가 갖는 「전략적 가치」를 고려할 때 그와 같은 북한의 태도에는 앞으로도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 이면에 북한은 여전히 「남조선 해방」을 통한 통일이라는 종전의 정책목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이번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이 무력통일이나 남조선혁명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실례라 할 것이다. 그러면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양면적 태도는 어디에서 연유하며,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선 이와 같은 북한의 「양면적 태도」는 대미수교를 의식,미국이 점차 북한의 주적 범위에서 제외되는 상황에서 체제단속과 주민통제를 위해 외부와의 적당한 긴장과 대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이제 북한체제의 재생산을 위한 「적대적 의존관계」는 주로 남한에 집중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북한이 끊임없이 대남 긴장국면을 조성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남한과의 적대적 의존관계의 유지 필요성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체제유지 및 생존전략상 남한과 무조건 긴장관계를 유지하거나 사실상 남한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즉 북한체제를 위기로 몰고 있는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남한과의 일정한 관계개선과 경제특구에의 남한 참여가 필요하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따라서 북한의 대남정책이 「이중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한간의 유화­경색국면이라는 일진일퇴가반복되겠지만,남한과의 정경분리 차원의 교류·협력 또는 제한적 개방은 앞으로도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 미 대선과 이라크와 한반도(박화진 칼럼)

    이라크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분통 터질 일」일 것이다.쿠웨이트 침공의 잘못된 과거가 있긴 하지만 이라크도 주권국가다.국내 쿠르드족 공격이 미국과의 약속위반이라 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군사개입까지 하고나설 문제는 못된다고 할수있다.「강대국의 횡포」란 비판의 여지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영국을 제외한 많은 다른 나라들과 국제여론이 지지유보 내지 비판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후세인의 약속위반 및 도전에 대한 응징명분의 연이은 이라크공격을 감행하고 있다.일차적인 빌미를 제공한 것은 물론 이라크요 후세인이다.그리고 탈냉전이후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된 미국은 점점더 자국이기주의에 철저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하다.그러나 옛소련 붕괴후 어느 나라도 도전할 수 없는 세계유일의 초강국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선거때가 아니었더라면 클린턴도 이라크 군사공격을 이처럼 신속하고 단호하게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국가의 의사 및행동 결정에는 특히 투표에 의해 정권의 행방이 결정되는 자유민주국가의 경우 국익은 물론 정권이익이 우선되는 경우도 흔히 본다.미국은,냉전시대의 대소관계나 월남전의 경우에서 흔히 보았듯이,그 대표적인 국가의 하나라 할수있다.지금 미국은 대통령선거를 2개월 앞둔 시점이다.현직의 클린턴은 대북핵협상의 경우등 외교에서 나약하다는 비판을 들어왔다.후세인은 미국 국민전체의 공적으로 인식되고 있다.클린턴에게 있어 후세인 이라크 공격은 잃을 것은 적고 잘되면 적지않은 득표를 올릴 기회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이라크 공격에서 드러내고 있는 미국의 국가의사 결정패턴을 우리도 그냥 건성으로 보아 넘기기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91년 걸프전 당시 우리는 그것이 북한에 대해 「무모한 국가행동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일깨우는 교훈이자 경고이기를 기대했었다.물론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그러나 교훈과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나라는 북한뿐인가.우리도 눈여겨보고 교훈으로 삼아야할 대목은 많다.미국의 대북정책도 클린턴의 재선과연결되어 있지않는가.대북정책을 둘러싼 우리와 미국의 국익은 상당한 상충을 드러내고 있다.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된 미국은 냉전시대 자유진영의 부유하고 관대하던 이웃아저씨 「엉클 샘」역을 그만둔지 오래이기도 하다. 탈냉전이후 우리의 국제환경은 큰 변모를 보이고 있다.이른바 주변4강의 국익환경변화 때문이다.교역면에서 옛날같지 않아진 미국이 대북 정책면에서도 점점더 우리의 국익을 초월하는 미국익 중심의 행동을 고집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느낀다.세계는 물론 북한의 공산 종주국이었던 옛소련이 붕괴된 이상 공산북한의 계속적인 존재같은것은 이제 한국에는 몰라도 미국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임을 느끼게 될 때도 많다. 얼마전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평을 듣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북한 붕괴 이후」란 제하의 기사에서 향후 예상되는 한반도의 근본적인 변화는 통일을 초래할수 있는 북한의 정치·경제적 붕괴라고 전제,통일한국은 중국과 제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미국의 경계심을 드러낸 기사라 할 수 있다.일본과의 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지배적 위치를 계속 유지하려는 미국에게 있어 강력하고 반일적이며 중립 내지 친중국적일수 있는 통일한국의 출현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상황일지 모른다. 때마침 일본군함이 일본제국 해군의 상징으로,떠오르는 해를 상징하는,섬득한 기억의 욱일승천기를 당당히 휘날리며 패전 51년만에 처음으로 부산항에 입항함으로써 미묘한 우리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있기도 하다.본지에 기고하고 있는 러시아아카데미 부원장 바자노프는 「통일된 강한 한국이 중·일을 견제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러시아야말로 진실로 한반도통일을 바라는 유일 강국일지 모른다.미국은 한국민들의 분열이 끝나면 주둔병력의 철수를 요구받을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세기말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국제환경은 세기초의 구한말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서구제국들의 아시아 식민지진출 홍수에 압도당하지 않고 유일하게 국권을 지킨 경우로 자주 인용되는 태국외교의 비결을 상기하고 중·소분쟁의 틈바구니를 활용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북한외교까지도 참고로 삼아야할 오늘의 우리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클린턴의 이라크공격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지혜롭고 현명한 주도적 통일·안보·외교정책의 개발과 추진노력이 절실한 시대상황임을 실감하게 된다면 지나친 과민이겠는가.
  • 공모주 배정비율 확정/증관위 11월부터 시행

    ◎증권저축 15%·청약예금 3%·예치금 42% 증권관리위원회는 27일 오는 11월부터 1년간 공모주청약예금에 적용될 공모주 배정비율을 확정,발표했다. 증관위는 전체 배정비율이 80%에서 60%로 줄어듦에 따라 안분비례 방식으로 일반증권저축 등 증권저축은 현행 20%에서 15%로,은행청약예금은 5%에서 3%로,증권금융의 공모주청약예치금은 55%에서 42%로 각각 축소,조정했다고 밝혔다. 새 배정방식은 오는 9월 1일 이후 주간사계획서를 신규 제출하는 공개건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실제 청약기준으로는 11월 이후부터 시행된다. 증관위는 또 공개를 주관한 증권회사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시가로 모집하게 돼 있는 청약예금 배정축소분에 대해서는 이를 사들인 기관투자자가 상장후 3개월간 장외에서 비기관투자자에 매도할 수 없도록 했다.
  • 불 대기업 연구비 감축 바람/경기침체로 알스톰·불사 등 줄줄이

    ◎전문가들은 “경쟁력 약화 초래” 우려 프랑스의 대기업들이 경기침체에 대처하려고 줄줄이 연구개발(R&D)비용 감축에 나섰다.때문에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항공우주산업체인 아에로스파시알사는 업체의 특성상 올해 전체 매출액의 24.5%인 1백20억프랑(1조8천만원)의 연구개발비를 배정했다.전년에 비해 약 3%나 줄어든 것이다. 고속전철(TGV) 등을 생산하는 알카텔­알스톰사의 올해 연구개발비규모는 1백62억프랑(2조4천3백만원).매출액의 10.1%를 차지하지만 전년에 비해 한푼도 오르지 않아 사실상 동결됐다. 전자분야에서 강한 톰슨사도 연구개발비를 전년수준으로 묶었다.매출액의 13.8%에 해당하는 99억프랑(1조5천억원)이 연구개발비이다.프랑스 최대의 컴퓨터회사인 불사의 경우 연구개발비를 지난94년에 비해 12.8% 대폭 감축했다.이미 94년에 32%나 줄인터여서 연구개발비의 비중은 엄청나게 떨어졌다.감량경영에 나선 대기업들은 경영혁신을 통해 연구개발비의 감소분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이를테면 숫적으로 많은 연구원보다는 실제로 개발해낼 수 있는 능력있는 직원 위주로 기업경영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형편에서 또다시 연구개발비를 줄인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잠재적 성장면에서 상당한 위험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위해식품 9월말부터 「리콜」/복지부,입법예고

    ◎판매·운송업자도 회수 의무 오는 9월30일부터 위해 식품의 제조·가공업자 뿐 아니라 운송·판매업체도 해당제품을 회수·폐기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4일 식품위생법 및 시행령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이같은 내용의 「식품 등의 회수(리콜)제도 운영규칙안」을 입법예고했다. 운영규칙안은 식품위생법에 규정된 위해식품과 각종 질병에 감염된 육류,기준규격에 맞지 않는 화학적 합성품과 첨가물,기구·용기·포장을 사용해 인체의 건강에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제품 등을 회수대상으로 설정했다. 위해식품 판정 및 회수여부 등의 결정은 식품의약품안전본부장을 위원장으로 각계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식품회수평가위원회」가 내리도록 했다. 또 회수상황은 위해의 정도에 따라 「긴급상황」과 「일반상황」으로 나누어 긴급상황일 경우 회수평가위원회의 결정을 거치지 않고 6개 지방식품의약품청과 지방자치단체의 회수담당관이 바로 회수명령을 내릴수 있도록 했다. 회수명령의 대상으로는 제조·가공·수입·소분·보존업자뿐아니라 운반·판매업자도 포함시켰다.주문자생산(OEM)방식에 따라 중소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아 자기의 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대기업들도 회수의무를 지게 됐다.
  • 「일의 중국정책 변하고 있다」/마이클 그린·폴 니츠(해외논단)

    ◎일의 중국정책 냉전이후 강경선회/중 팽창정책 경계… 미와 안보위협 강화 등 적극대응/양국관계 악화땐 아태안보 중대위험 초래 가능성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적대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양국관계의 악화로 자칫 아태전역에 큰 불안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일본이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지역분쟁에 적극개입을 다짐하는등 최근 지역안보와 관련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주목적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미국방위분석연구소의 마이클 그린 선임연구원과 존스 홉킨스대 부설 국제연구소의 폴 니츠교수가 공동집필해 미시사계간 「서바이벌」 여름호에 기고한 「일본의 중국정책이 변하고 있다」를 요약소개한다. 지난 40여년의 냉전기간에 일본의 중국정책은 기본적으로 유화적이고 저자세적인 것이었다.그런데 냉전시대가 마감되자 일본의 중국정책도 변하기 시작했다.일본은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새로운 강대국으로 탈바꿈해 팽창정책을 펴려는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가능한 한 중국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1960년대 들어 일본은 중국의 최대교역국이었고 72년 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뒤를 따랐다.89년 천안문사태이후 제일 먼저 중국에 대한 원조를 재개한 나라도 바로 일본이었다. 최근 변화의 첫번째 기점은 냉전종식이다.최근에 중국이 감행한 일련의 핵실험,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영유권분쟁이 있는 일부영토에 대한 영유권주장등을 보는 일본의 태도는 분명 예전과 다르다.60년대 중·소분쟁이후 미·일·중국은 아시아에서 소련의 팽창정책을 저지하자는 일종의 공감대를 갖게 됐다.그래서 일본은 72년 국교정상화,79년의 평화우호조약체결 때 중국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명백히 소련을 지칭하는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를 명문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냉전의 종식은 일본 안보정책의 최우선대상을 소련 대신 남북한문제,지역영유권분쟁등 지역문제로 바뀌게 만들었다.미국도 일본에 대해 지역분쟁에 보다 큰 역할을 해주도록 주문했다.그렇게 해서 76년에체택된 일본의 방위계획대강(NDPO)이 수정됐다.새 방위계획대강은 냉전이후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미·일협조관계를 한층 더 강조했다. 일본의 방위담당자들이 1차로 염두에 둔 것은 한반도의 돌발사태였다.지난 93년 미국이 북한에 대해 금수 및 봉쇄조치를 계획했을 때 일본의 효과적인 지원태세미비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돌발사태에 대한 미·일공조가 대만해협 긴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꺼림칙했다. 중국은 미·일안보동맹의 강화를 자국안보에 위협요인으로 생각했다.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이 탄도미사일방어체제인 전역미사일체제(TMD)구축에 동참하라고 일본측에 요청한 것이다.일본도 이를 필요하다고 판단했다.92년 북한이 노동1호미사일을 동해쪽으로 시험발사하자 일본으로서는 이에 대한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중국은 이에 대해 매우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미·일의 합동미사일체제가 중국의 핵억지력을 크게 위협한다는 것이다.중국은 일본을 겨냥한 다탄두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나섰다.일본 역시 무기현대화·핵실험·영토문제등과 관련한 중국의 팽창주의에 경계심을 드높였다. 일본 국내정치의 판도변화도 영향을 미쳤다.일본정계의 세대교체는 다나카 전 총리 같은 친중국인사의 영향력을 급속히 약화시켰다.사회당과 일부 언론등 일본사회의 전통적인 친중국여론층도 일제히 중국의 강대국화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과거사문제에서도 일본의 새 세대 정치인은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다.이 정도 선에서 중국도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하며 더이상 과거를 들먹이지 말라는 식이다.경제면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은 적지 않다.예를 들어 95년도 일본의 대중국 무역적자액은 1백40억달러에 달했다.적자액이 누적될 경우 자칫 중국이 일본국민감정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미군사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그래서 주일미군의 계속주둔등 미·일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재무장은 물론 집단자위권발동을 추진한다.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국에 대한 「제한적인 억지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일본은 미국뿐 아니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안보대화를 확대하고 중국이 지지해온 미얀마에도 원조를 재개했다.아울러 금년 3월 이케다외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등 러시아를 지렛대로 다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혼자서 중국을 억제하기는 힘겨우니 미국과 러시아를 적극 이용하겠다는 것이다.일본이 지향하는 바는 다자간안보체제다. 미국·중국,그리고 아세안국가등 모든 이해당사국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기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하루빨리 적절한 완충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이 두 나라가 정면충돌해 적대관계로 돌아설 경우 이는 아태국가 모두에게 손실이기 때문이다.〈미 방위분석연 연구원·우드로 윌슨연 교수/정리=이기동 기자〉
  • 엔저 순풍… 일 기업 수익 급증

    ◎제철 3년만에 흑자 전환·제지 사상최대 순익/감원·해외진출 확대 한몫… 실업률은 크게 늘어 올해들어 엔저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본 기업들의 경영실적이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올해 3월말로 95년도 결산을 맞은 기업들의 수지가 크게 개선된 것은 제조업체등이 지난해 초의 엔고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진행시킨 합리화 조치가 효과를 거두는 것과 때맞춰 엔저현상이 순풍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말 1달러당 79엔대까지 치솟았던 엔화가 올해 3월말에는 1백7엔대까지 거의 30엔 가까이 떨어진 것이 경쟁력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경제계는 최근 1달러당 1백10엔대까지 떨어진 엔화시세로 기업의 실적이 더욱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95년도 상장기업들의 경상이익은 부실채권문제로 시달리고 있는 금융기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증가세를 보였다. 신일본제철등 5대 철강회사는 3년만에 흑자를 기록했다.5사 합쳐서 경상이익은 1천6백70억엔.이는 지난 91년 신일본제철 한 회사가 기록한 경상이익 1천6백억엔 수준에 불과하지만 엔고현상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경상이익 6백40억엔을 기록한 신일본제철의 경우 지난해 비용삭감에 의한 효과가 8백50억엔 수준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이 가운데 커다란 부분은 인원삭감이었다.철강 5회사의 인원삭감규모는 94년 1만5백여명,95년 7천5백여명이었으며 채용억제에 따른 자연감소분까지 합하면 2만명 가까운 고용축소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제지업계는 대기업 6곳가운데 3곳이 사상최대의 경상이익을 기록했다.종이값이 20%정도 싸졌음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이익을 기록한 것은 인원삭감과 제조 비용의 축소에 따른 것이다. 도요타 닛산 마쓰다등 자동차 회사들도 1달러 90엔수준에 맞춘 비용절감 노력으로 이익을 확대시켰다.하청업체들은 인원삭감,사용기한 넘은 공구의 계속사용등 비용절감노력을 강요당했다.여기에 엔저현상까지 겹쳐 경상이익이 급속히 확대됐다. 전기전자업계도 반도체의 호황에 힘입어 경상흑자를 지켰다.해외로의 생산기지 이전과 국제시장에서의 경쟁격화,수입확대등 생산공동화로 가전제품분야에서는 고전하고 있지만 반도체가 전자업계를 버텨 주었다. 95년도 기업의 경상이익증대,경쟁력 회복은 설비투자와 수출증가에 따른 종래의 회복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또 종래의 경기회복국면에서는 중소기업의 실적이 먼저 좋아지던 양상과도 다르다.95년의 경기회복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그러나 경영개선을 위한 인원감축과 해외로의 생산기지 이동등으로 실업률은 사상최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중·러 관계 변화 주목한다(박화진 칼럼)

    옛소련과 동구공산권 붕괴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추구한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의 결과라는 평가를 흔히 한다.주소대사도 지낸 국제정치학자 조지 케넌이 X라는 필명으로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논문을 이론적 기초로한 이 정책은 「소련이 팽창의 욕구와 대외적인 적개심을 가졌기 때문에 미국은 그것을 봉쇄하고 내부변화를 기다려야하며 그 목적은 군사력이 아닌 서방경제발전에 의해 달성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과 서방의 봉쇄정책추구 불과 50년에 옛소련과 공산권이 자멸함으로써 이 이론과 정책은 결과적으로 적중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공산권붕괴를 가져오는데 미국과 서방의 봉쇄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또하나의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소분쟁일 것이라고 지적하는 분석들이 많다.중국과 러시아는 4천3백㎞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조건만으로도 숙명적인 분쟁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는 관계였다.제정 러시아의 동진과 청조와의 분쟁을 통해 획정된 국경에 대한 중국의 불만은 분쟁의 뇌관과 같은 것이었다.그런 의미에서 중·소 분쟁은 하나의 역사적 필연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소련과 공산중국의 제휴와 동맹가능성은 2차대전후 미국이 가장 우려하고 두려워했던 악몽의 하나였다.봉쇄정책의 기조속에서도 70년대초 중·소가 국경분쟁완화및 관계개선의 기미를 보이자 미국이 서둘러 대중수교에 나선것도 중·소화해와 제휴동맹가능성을 얼마나 경계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수있는 것이었다.군사초강의 공산종주국 소련이 붕괴되고 서방과같은 이념이며 미국과도 협력적인 민주러시아가 뒤를 이었으며 아시아공산종주국 중국도 경제적인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미국과의 경제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붉은 자본주의」로 불리는 사회주의시장경제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그러한 러시아와 중국의 화해접근과 제휴동맹 가능성도 미국으로서는 달가울리가 없을것은 물론이다. 현재 중국을 방문중인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강택민 중국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경·모스크바간 핫라인개설을 포함하는정치·군사·경제·기술·문화등 전분야에 걸친 14개협정을 체결했다.그리고 26일엔 옛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키르키스,타지키스탄등 중앙아시아 3국및 중국과 상해에서 국경지역신뢰강화 협정을 체결한다.▲상호공격불가 ▲상대방겨냥 군사훈련금지 ▲군사훈련 상호통보 ▲우호관계수립등이 골자다.탈냉전시대의 동북아질서에 또한차례 큰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중·러밀월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주목의 신호라 할수있는 것이다. 옐친은 중국과 군사동맹같은 것은 맺지않을 것이며 중국의 핵실험금지협정 동참을 촉구할 것이라는등 미국을 의식한 발언들을 하고있으나 중국이나 러시아에 있어 옐친의 방중과 러·중 정상회담및 협정체결등 관계강화는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등 4강의 상호이해가 너무도 밀접히 얽혀있기 때문에 서로가 어느 한쪽을 완전 포기하거나 적대시하게 되는 신냉전의 대결국면으로까지 발전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부터의 동북아정세는 미·일동맹과 중·러제휴의 견제와 균형속에 전개될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런 점에서 탈냉전으로 유리하게 전개되어온 우리의 안보통일환경은 상대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기본적으로 전통우방인 미국과 일본의 편에 설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이제는 우호국화했으며 우리의 안보·통일은 물론 정치·경제적으로도 미·일에 못지않게 중요해지고있는 중국·리시아를 외면할수도 없는 어려운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대만해협사태에서 우리는 이미 그것을 충분히 실감한바 있다. 우리는 옛소련 및 동구붕괴와 독일통일 당시의 서독외교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특히 잊어서 안될것은 서독의 통일·안보외교 주도권장악이라 생각한다.경제대국의 실력과 20여년간에 걸친 동방외교의 실적이 기초가 되었지만 미국을 비롯 독일통일을 두려워한 영·불등은 물론 큰 기득권을 양보하게 되는 옛소련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 마침내 통일을 일구어낸 서독정부의 인상적인 통일외교주도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북한붕괴의 기회가 왔을때 우리도 과연 서독같은 주도적 통일외교를 전개하고 질서있는 통일을 달성해낼수 있을 것인가.옐친 방중과 중·러 밀월시대의 시작 그리고 미·일과 중·러의 견제와 균형관계로 재편되는 동북아정세의 변화와 신전개를 보면서 갖게 되는 의문이요 걱정이 아닐수없다.
  • 교육개혁의 초점은(21세기 여는 15대 국회:4)

    ◎「능력 배양」 경쟁력 있는 교육을/전문­산업대 실무교육… 특성화해야/공·사립교 균형 지원… 대학 자율경쟁 유도/교사들의 과중한 행정업무 대폭 줄여야/종생부 부정소지 막게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우리 교육의 당면 현안은 특성화와 다양화이다.학생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정책과 제도를 다각도로 개발,교육 현장에 접목시켜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의 목표이며,교육의 경쟁력 강화와도 일맥상통한다.종전의 획일적인 교육방식이 「간판」만을 위한 「겉치레 교육」에 불과하다는 공감대는 교육계 전반에 형성돼 있다. 학계 출신 15대 국회의원 당선자 가운데 서울신문의 설문에 답한 10명도 이같은 지적에 공감을 표시했다.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 사회적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학교교육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모든 대학,모든 학과의 서열화를 부추기는 지금과 같은 교육풍토에서는 대학의 특성화나 다양화를 꾀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교육재정 확보의 획기적 방안이 국가적 차원에서 강구돼야 하며,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우선 대학이 특성화돼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대학마다 특정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국가의 재정지원도 각 대학의 소분야별로 이루어져야 하며 한 대학이 여러 분야의 지원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도 한 목소리를 냈다.국·공립과 사립을 엄격히 구분해 예산을 지원하는 현재의 교육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모든 대학이 국가에 기여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지원에 차등을 두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전문대와 산업대의 위상 확립을 위해 교과과정부터 일반대학과 다른 특성화·차별화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현장경험이 많은 실무교육 담당교수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서울대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대한다.응답자 10명 가운데 1명만이 찬성했다.다른 국·공립대 및 사립대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들었다.서울대만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모든 대학의 자율성과 특성화를 보장하도록 교육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개혁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방향제시로는 부족하며 구체적인 방법론이 나와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으로 단일화된 교원단체를 복수화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찬성하는 당선자들은 전교조의 합법화가 시기상조라면,교원단체를 적어도 하나 더 허용해 교육현장의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민주적으로 조직된 새로운 교원단체가 출범하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단체교섭의 일원화와 교사간의 분열을 막기 위해 반대한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학교법인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 현행 사립학교법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종합생활기록부 도입에 따른 치마바람 등 부정적인 고리를 끊는 방안으로 담당 교사가 작성한 종생부를,학교운영위원회나 교사 전체회의에 열람하는 권한을 주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재원 효율적 배분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교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수평가 제도를 확립하자는 의견도 많았다.교수를 평가하는 잣대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연구·교육·봉사의 각 영역에서 위상을 특화한 교수도 나름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세기 당선자(신한국당·서울 성동 갑)는 『천편일률적인 백화점식 대학이 경쟁력을 갖출 수 없으므로 각 대학은 학과별 특성화에 앞장서야 한다』며 『정부도 특화를 이룬 대학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학규 당선자(신한국당·광명 을)는 입시지옥에서 해방되는 교육을 강조했다.국제화·개방화에 적응하는 교육,경쟁력 있는 교육,대학을 안 나와도 생활할 수 있는 교육풍토의 조성 등을 열거했다. 서한샘 당선자(신한국당·인천 연수)는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학간 자유경쟁 체제를 유도하고 대학 학제의 탄력적 운영도 고려해 볼만 하다』고 밝혔다.사립대학의 건전한 육성을 위해 재단의 사업에 대한 특별 세제혜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단체교섭의 일원화를 내세워 복수 교원단체 허용에는 반대했다. 조웅규 당선자(신한국당·전국구)는 『명실상부한 교육자치를 위해서는 학교구성 주체들의 대표성이 반영된 민주적 방식의 이사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를 위해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위해 노력하고 교육재정을 국민총생산(GNP)의 5%로 확보,사립대학에 우선 지원토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홍문종 당선자(신한국당·의정부)는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공문발송,시간표 작성,각종 행사준비 등과 같은 행정사무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초·중·고교도 대학처럼 행정지원 체제를 구축해 교사들이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사립학교법 손질 권철현 당선자(신한국당·부산 사상갑)는 『교육개혁이 교직원 노동조합의 방식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교직원 노동조합보다는 현재의 한국교총을 「교사협의회」 같은 조직으로 개편해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교육자치를 위해 교육감과 교육위원 가운데 한쪽은 직선제를 택해야 하며 현직교사 중에서 교육위원을선출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고 주장했다. 정희경 당선자(국민회의·전국구)는 『학교 운영위원회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교육의 참모습을 위한 협의체가 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운영위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학의 엄청난 등록금 인상을 막기 위해서는 세제지원보다는 공·사립 학교간에 균형적인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성확보 중요 길승흠 당선자(국민회의·전국구)는 『서울대특별법이 논란을 빚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적으로 육성해야 할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며 유일하게 찬성했다. 배종무 당선자(국민회의·무안)는 『학교 운영위원회는 교권침해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위원 선정과 역할 등에 관한 명확한 세부규정과 도시와 농촌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세밀한 운영계획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마다 학년별 수료고사를 실시해 중도 탈락자는 직업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산·학협동을 통해 전문대와 산업대의 시설을 개선하고 우수교원을 충분히 확보해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선정에 신중 김성곤 당선자(국민회의·여천)는 『운영위원회의 위원 구성비율 등 방법론적 문제보다는 실제로 운영위가 어떤 활동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운영위가 교내 급식문제,환경교육 등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인 당선자(민주당·전국구)는 『교육개혁에 대한 교사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되 복수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의 방안에는 교육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다수의 대안 중에서 현장에 적합한 것을 선택하거나 일정하게 변형해 추진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 목소리 반영 하경근 당선자(민주·전국구)는 『교육개혁에 대한 일선교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면 전국적 규모의 교사연수나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여기서 논의되는 문제점을 파악해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학의 재정난 해소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해야 하지만 서울대 등 이른바 일류대학 위주의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김성수 기자〉
  • 공직자 재산 누가 얼마나 변했나

    ◎입법부/1억이상 증가 국회의원 24명·행정부 40명/김진재 의원 50억 줄어 감소1위로 역전/야 지도부 대부분 소폭 감소… 21명 무변동 ○…현역 국회의원 2백88명 가운데 재산 감소자는 1백9명.지난해 공개 때의 감소자 94명보다 15명이 늘어난 규모. 이 때문에 상당수 의원이 오는 4월11일 총선을 앞두고 선거자금을 따로 비축한 것이 아니냐 하는 관측이 대두하기도. 재산 무변동자는 지난해 22명에 이어 이번에도 21명으로 나타나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그러나 증가자는 전체의 54.8%인 1백58명으로 문민정부 출범후 정치자금 조달난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직은 경제적으로도 「플러스」임을 반영. 지난해 1억원 이상 증가자는 26명으로 지난해 공개 때보다 9명이 줄어든 반면 1억원 이상 감소자는 지난해보다 4명 늘어난 38명. ○…재산증가 1위는 무소속 정몽준의원.48억9천6백만원이 늘어나 총재산은 8백33억원으로 증가.정의원은 현대상선 주식상장으로 보유주식 가액이 32억원 늘어나고 현대해상화재 등의 유상증자도 받은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2위는신한국당 김찬두의원으로 12억1천5백만원이 늘어났다.김의원은 기아자동차·삼성전자 등 보유주식 배당금 8억6백만원을 주요 증가 요인으로 제시. 3위와 4위는 신한국당 공천에서 탈락한 노인도(3억8천6백만원),신재기의원(3억6천7백만원)이 각각 올라 눈길.노의원은 토지매각 선수금,신의원은 임대료와 이자저축 등을 이유로 설명. ○…재산 감소자 1위는 신한국당 김진재의원으로 50억3백만원이 감소.김의원은 지난해 53억1천4백만원이 늘어나 증가 1위를 기록했으나 이번에는 반대로 1위를 차지.김의원은 가액 4억5천9백만원 상당의 부산 동래구 안락동 부지를 복지시설로 헌납하는 등 자신과 장남 명의 부동산 17건이 변동됐다고 신고. 감소 2위는 자민련 양순직의원으로 29억3천9백만원이 줄었으며,감소 3위는 13억5천6백만원이 줄어든 국민회의 김명규의원.그는 인천시 남구 주안동 토지를 33억2천만원에 매각했다고 신고. 13억3천7백만원이 감소,4위를 기록한 자민련 유수호의원은 11억9천만원을 의정활동비 등에 사용했다고 설명.그러나 9억7천8백만원이줄어들어 5위에 오른 무소속 김동권의원은 쌍용양회 유가증권 12억6천만원 어치를 매각했지만 그 대금의 행방은 공개하지 않아 주목. ○…여야 지도부 가운데 신한국당 김윤환 대표위원은 2천1백60만원,강삼재 사무총장 1천7백60만원,김종호 정책위의장 1천7백90만원,서정화 원내총무 4천6백20만원 등으로 모두 소폭이지만 증가. 그러나 국민회의와 민주당 지도부는 대부분 감소했다고 신고.국민회의 김상현 지도위의장은 가계비 지출 명목등으로 9천6백만원,정대철 부총재는 2천7백만원,조세형 부총재는 8백40만원이 줄었다고 신고했다.당 3역가운데 조순형 사무총장은 8백만원,손세일 정책위의장은 2천4백만원이 줄었으나 신기하 원내총무는 강의료 수입 등으로 8천5백만원이 늘어 대조. 민주당에서는 이기택 상임고문이 마포구 서교동 상가 전세보증금 부채 증가로 2억6천1백80만원이 줄어 유일한 억대 변동자였다.김원기 공동대표는 무변동을,제정구 사무총장은 3천1백40만원 감소를 신고.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변동없음」,김동길 고문(1억2천40만원),김복동 수석부총재(3천5백만원),한영수 총무(1천9백만원)등은 증가로 신고. ○…국회의장 가운데 황락주의장과 홍영기 부의장이 2억원 이상 증가를 기록해 눈길.황의장은 용산구 후암동 단독주택을 매각한 대금 7억원중 6억원을 현금으로 일시 보관하고 있으며,월급 6백60여만원을 저축.부인도 저축 3천1백19만여원등 7천3백80여만의 현금을 보유. 홍부의장은 변호사 수익금 2억1백68만여원을 비롯,시중은행의 저축이자가 증가요인라고 설명. ○…12·12,5·18과 관련돼 구속된 4명의 의원 가운데 무소속 정호용·허화평의원과 자민련 박준병의원은 증가한 반면,무소속 허삼수의원은 2천2백여만원이 증가해 대조. 3억8천6백여만원이 줄어든 정의원은 과천 주암동의 단독주택을 팔아 대구에 사무실을 얻고 예금을 생활비로 충당한 게 주원인이었으며,박의원은 채무변제 및 생활비로 3억8천만원을 사용한 것이 감소분의 전부.허화평의원은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로 4천5백만원이 감소. 반면 허삼수의원은 3백73만여원의 세비 저축과 자녀들의 헬스회원권 매입에 따라 2천1백50여만원이 증가. 씨프린스호 기름유출사건과 관련,호유해운으로 부터 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국민회의 신순범의원은 『재산에 변동이 없다』고 신고. 알선수뢰 혐의로 구속됐다 최근 집행유예로 풀려난 국민회의 최락도의원은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써 2천만원이 감소했다고 설명. ○…자민련의 양순직의원과 무소속 임춘원의원은 서로 재산이 얽혀 주목.양의원은 경기 군포 부곡동 임야와 대지등 22억여원의 재산을 세림의료재단에 무상 기증했다며 29억3천9백만원이 줄었다고 신고.그러나 이 재산이 『독지가로 부터 받았다』며 임의원이 신고한 재산목록에 포함. 양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69년 한평에 4백만원씩 주고 산 땅인데,몇년뒤 그린벨트로 묶여 팔리지도 않는데다 무거운 세금만 물어 지난해 3월 동향출신이 대표로 있는 세림재단에 무상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설명. 임의원도 『세림의료재단을 사실상 운영하다 지난해 제3자에게 넘겼다』며 『그 땅과 나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부인.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민당사 매각을 둘러싼 거래가 아니냐는 추측도. ○…이번 공개 과정에서 일부 의원은 증감분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 의혹이 제기. 6억6천5백여만원이 줄었다고 신고한 신한국당 최영한의원은 감소이유로 빌딩매입에 8억2천만원을 썼다고 밝혔으나 매입한 빌딩은 증가분에서 누락. 또 신한국당 최돈웅의원도 7억1천2백여만원이 줄었다고 신고했으나 건물신축 부분과 주식증가 및 예금 증가액이 나타나있지 않았으며,자민련 이학원의원도 막연히 자녀유학비·생활비등으로 4억3천여만원을 사용했다고 주장. ○…정계를 은퇴한 이춘구 전 민자당대표는 연금 및 이자수익 증가로 4천1백만원이 늘었으며,정순덕의원은 본인과 자녀들의 저축증가로 7천7백만원이 증액. 한편 15대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효영의원(신한국당)은 지난해 장남 이름으로 명의신탁했던 빌딩이 부도로 임의경매되는 바람에 여전히 서류상으로 49억4천만원의 부채를 진 것으로 기록. ◎청와대/김 대통령 가족 1억5천만원 늘어/김홍조옹 이웃돕기 등으로 1억여원 사용/손 여사 변동없고 현철씨 인세로 재산 증식 김영삼 대통령은 부친 김홍조옹과 자녀를 포함,지난 한햇동안 모두 1억5천1백20만3천원의 재산이 늘어났다고 신고했다. 김대통령 본인의 재산증가분은 봉급을 고스란히 상업은행에 예금한 4천4백95만3천원이다.부인 손명순여사는 재산변동이 없었다. 김옹은 올해 거제도어장에서 9천3백21만원의 수익을 올려 경남은행과 한국투자신탁에 예금했으나,출어경비와 생활비·불우이웃돕기로 1억2천7백51만원을 쓰는 바람에 3천4백54만1천원이 오히려 줄었다. 김옹의 어장을 돌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남 은철씨는 위탁판매 수입금 8천9백53만원을 예금하고 은행 대출금 5천만원을 상환,5천8백95만3천원이 늘었다.은철씨 부인은 부동산을 임대,3천2백60만4천원을 늘렸다고 신고했다. 차남 현철씨는 지난해 출간한 「하고싶은 이야기,듣고싶은 이야기」의 인세로 받은 3천7백64만4천원이 늘어났다. 또 김대통령의 장손녀는 장학적금을 해약하고 용돈을 모아 국민·기업·주택·한일은행 등 4곳에 1천1백21만원을저축했다고 신고했다. 이에 따라 김대통령의 총재산은 직계가족분을 합쳐 모두 26억3천3백만원이 됐다. ◎행정부/외무부 1억이상 9명으로 최다/안 중수부장 상속주식 팔아 급증 행정부의 1급 이상 공직자 가운데 지난해 1억원 이상 재산이 늘어난 사람은 모두 40명으로 2억원 이상 늘어난 사람도 9명이다. 지난 94년에는 1억원 이상 늘어난 사람이 24명,2억원 이상은 7명이었다. 1억원 이상 재산이 늘어난 사람이 가장 많은 부처는 외무부로 9명이었고,대학총학장과 군장성도 각각 5명과 3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재산증가 1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수사로 널리 알려진 안강민 대검중앙수사부장으로 16억8천4백여만원을 신고했다. 안부장의 재산 증가는 액면가 5천원에 신고돼 있던 여수문화방송 비상장 주식 2만9천여주를 10배 이상인 16억6천여만원에 판데다 부산 민락동 임야를 수용당하고 보상금 3억8천만원을 받은데 따른 것이다.안부장은 이들 재산을 여수문화방송사장이었던 부친으로 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8억6천만원으로 재산증가 2위를 기록한 최규학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제1조정관 역시 8억9천만원짜리 화곡동 상가와 은행예금 등을 부친으로 부터 상속받았다. ○…2억2천8백만원이 늘어난 한완상 한국방송통신대총장은 증가액 모두가 이자수입이다. 한총장은 자신의 명의로 된 제일·국민은행·우체국·한국투자신탁 통장의 증가분 1억9백53만원,부인의 명의로 된 제일은행·한국투자신탁 통장 증가분 1억2천3백25만원이 모두 정기적금의 이자라고 신고했다. ○…장관급에서 재산증가 1위는 오인환 공보처장관으로 은행 장기신탁 해지에 따른 원가이익 및 부인의 약국경영 수입 등으로 8천만원을 신고했다. 그러나 재산총액이 66억원이 넘어 행정부 최고의 재력가로 통하는 나웅배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은 6천6백만원이 늘었다고 신고,장관급 가운데 4위를 기록했지만 전체 재산 규모로 보면 상대적으로 증가액은 많지 않은 편이다. 김장숙 정무제2장관은 봉급저축보다 차량구입용 차입금이 더 많아 막상 본인의 재산은 줄었으나,아들과 손자의 전세금 수입과 주식매도금·예금이자소득이 늘어 전체적으로 7천4백만원이 증가했다. ○…박송규 법제처차장은 2억1천8백만원이 늘어 장·차관 가운데 유일하게 억대 증가자로 나타났다. 박차장의 재산이 크게 늘어난 것은 7억3천3백만원으로 등록한 청주시 가경동 밭 1천3백여평이 수용되면서 보상금으로 11억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진 가운데 증가 1위는 김기수 수행비서,감소 1위는 박세일 사회복지수석으로 나타났다. 박수석은 전반적인 주가약세속에서도 삼성전자의 주가상승으로 1억5천3백만원의 재산증가를 기록한 반면 박수석은 지난해 영등포동에 있는 8억3천9백만원 상당의 대지를 김세중 기념사업회에 헌납,7억7천3백만원의 재산이 줄었다고 신고했다. 김석우 의전수석은 1억3천8백만원이 늘었다고 신고했는데 재산증가의 이유를 지난 94년에 이어 「장인의 송금」이라고 밝혔다. 이원종 정무수석은 분양가 4억5천만원짜리 홍은동빌라의 중도금 1억원을 불입하는 등 5천2백만원이 늘었다. ○…군장성으로 억대재산증가자 대열에 낀 김동진 합참의장은경기도 소래의 임야 1천4백여평에 대한 보상금으로 현금 1억원과 채권 1천4백만원 등을 보상받았다고 신고했다. ○…외무부는 올해도 1억원 이상 늘어난 사람이 행정부내 40명 가운데 23%인 9명을 차지했다. 2억5천3백만원을 신고한 장선섭 경수로기획단장은 자신과 부인 명의로 갖고 있던 오뚜기식품 주식이 상장되는 바람에 1억2천6백만원과 1억1천5백만원이 각각 늘어났다. 이밖에 1억원 이상 증가자는 김흥수 주교황청대사,이원영 주페루대사,김승호 주리비아대사,정경일 주말레이시아대사,김창근 주카자흐스탄대사,김태지 주일본대사,이정수 주코스타리카대사,박동순 주이스라엘대사 등이다. ◎사법부/윤관 대법원장 가족 4천여만원 불어나/조용완 서울지법 서부지원장 6억 증가/조무제 창원지법원장 작년 이어 최하위 ○…사법부의 재산공개 대상자는 판사 106명과 일반직 1명 등 모두 1백7명이다. 재산이 늘었다고 신고한 법관은 71명,줄었다고 신고한 법관은 26명,변동 없음은 9명이다. 윤관 대법원장은 지난해 본인·가족들의 예금 등 4천2백87만원이 늘어 재산 총액이 6억3천2만원으로 불었다. ○…가장 많은 재산 증가액을 신고한 법관은 조용완 서울지법 서부지원장으로 토지수용보상금 등 5억9천8백4만원을 신고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은 재혼한 배우자의 재산 3억8천1백여만원을 포함,4억4천1백여만원을 신고해 2위를 기록했다. ○…국내 최초로 여성 고법부장판사로 승진한 이영애 대전고법 부장판사는 재산 감소에서 1위를 차지,눈길을 끌었다.3억5천여만원을 은행에서 빼내 세금 납입·생활비 등으로 사용,4억4천만원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법조 주변에서는 이부장판사가 얼마전까지 신한국당 서울 서초갑 지구당위원장으로 총선출마를 준비해 온 남편 김찬진 변호사의 「지역구 관리비용」으로 이돈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12 및 5·18사건의 재판을 맡은 서울지법 형사30부 김영일 부장판사는 생활비 등으로 2천2백만원이 줄었다고 신고했다. 지난 93년 첫 재산공개 때 5천만원짜리 집 한채를 비롯,6천4백만원을 신고해 최하위를 기록한 조무제 창원지법원장은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재산변동이 없어 재산 보유 「꼴찌」를 기록했다.
  • 과기정책/정근모 장관 인터뷰(올해 국정 이렇게)

    ◎“G7 프로젝트 등 첨단기술개발 역점”/과기특별법 마련… 과학선진화 부축/원자력 연구개발기금제도 곡 도입/고등과학원 설치,창조적 과학연구 정근모 과학기술처장관은 올해를 「창조력강화」의 원년으로 정해 창의성과 자율성이 최대한 발휘되는 연구개발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정장관은 이재일 본사 과학정보부장과 가진 인터뷰에서 『원자력사업체제개편은 과학기술자가 도전적인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원자력연구개발기금제도」설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22개 정부출연연구소의 개편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통폐합은 80년대적 사고방식」이라고 가능성을 일축하고 『그러나 과학기술계는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지도그룹으로서 변화와 개혁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장관과의 인터뷰내용이다. ­올해 과학기술처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올해는 21세기를 준비하는 마지막 5년의 첫해로서 20 00년대초까지 과학기술 7대선진국 진입을 위한 기틀을 확고히 다져야 할 의미 있는 한해입니다.이에 따라 과기처는 「세계화에 앞장서는 과학기술」「모방에서 창조로의 과학기술」「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과학기술」이라는 3대기본방향 아래 7가지 역점사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7개 사업 중점 추진 첫째 17개 선도기술개발사업(G7프로젝트)과 우주기술·핵융합기술등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수적인 첨단·원천기술개발을 적극 추진하고,둘째 출연연구소를 국제경쟁력 있는 세계 일류기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과제중심 운영제도(PBS)를 정착시킬 계획입니다.셋째 고등과학원과 기술경영대학원을 설치해 미래 과학기술발전을 선도할 창조적 과학인재양성기반을 확충하고,넷째 APEC 과학기술각료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남북기술협력의 핵심적인 축을 만들고 KIST·유럽,한·미과학협력센터개설 등을 통해 과학기술세계화의 교두보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투자비가 1백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과학기술을 일류화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과학기술자의 창의성과 자발성에 투자하는 연구개발정책을 펼 의향은 없는지요. ▲다가올 21세기에는 남의 기술을 모방하는 전략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으며,세계적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고유의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과 국가만이 치열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따라서 정부는 올해를 「창조력강화의 원년」으로 정하고 창의성과 자율성이 최대한 신장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정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국내외 석학이 모여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을 연구할 「고등과학원」의 설립이나 대학소재 우수연구센터를 내실화해 창의적 기초과학연구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그 첫 실천방안이 될 것입니다. 또 새로운 국가연구개발 프로그램으로 「창의적 연구개발지원사업」을 발굴,추진할 계획입니다.이는 지금까지의 모방위주의 연구행태를 일신,창의적 연구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안을 현재 마련중입니다. ­장관께서는 취임후 연구과제중심 운영제도도입,핵융합국가연구개발사업,고등과학원설립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습니다.과기처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습니다만. ○세계화 교두보 구축 ▲저는 2000년대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재를 보면서 「세계중심국가」라는 말이 헛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지난해 북경에서 열린 APEC장관회의 때도 그것을 느꼈고 멀잖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도 우리나라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겁니다.우리가 이렇게 광활한 천지에 뛰어나가 일을 하자면 누군가 앞장서서 끌어주는 분야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것을 과학기술계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계가 스스로 변화와 개혁을 해야 합니다.개인의 이익,기관의 이익을 따지기에 앞서 국가의 요구가 뭔가를 생각하고 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부출연연구소개편설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지요. ▲연구소 통폐합론은 80년대에 앓던 병입니다.물리적인 통폐합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그러나 유기적인조직을 운영하면 변화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변화를 이용해 환경에 적응하는 시스템이 되지 않고는 격변하는 세계조류에 적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스템공학연구소 소관문제나 항공우주연구소 독립문제등 현안도 있지 않습니까. ▲시스템공학연구소는 소프트웨어 관련업무를 정보통신부에 일원화한 94년의 정부조직개편취지에 따라 지난 11일부로 소관부처를 과기처에서 정보통신부로 바꾸기로 했습니다.항공우주연구소는 국가우주개발사업의 핵심이 될 중요한 연구기관입니다.그러나 독립에 따르는 득실이 여러가지 있어 가장 효율적인 체제가 무엇일까를 연구중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를 전격 도입하면서 보완책으로 추천연구원제도,기관고유사업제도를 내놓았습니다.이것으로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의 사기가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는지요. ○창조력 강화의 해로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의 취지는 열심히 일하고 연구결과를 내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안정적인 것을 원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게 전세계적인 현실 아닙니까.앞으로는 연구소장도 아이디어를 갖고 열심이 뛰어야 할 것입니다.정부도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뛰는 연구소는 힘껏 지원할 생각입니다. ­원자력사업체제 개편작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원자력사업부문을 사업자에 넘기라고 하니 연구소측 분위기가 무척 침통한 것 같습니다만 사실 우리는 원자력과학기술을 너무 단편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원자력연구분야는 원자력발전소뿐만 아니라 동위원소분야,중성자 빔을 이용한 연구분야같이 많은 분야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원자로만 하더라도 기성제품이 아닌 차세대원자로등 개발분야가 무궁무진합니다.이제 기술은 사업자에 넘기고 과학자는 우수한 두뇌를 새로운 도전에 이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도전에 누가 투자하느냐,국가전략적인 필요가 있는 연구비조달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겠는데요. ○정부투자 확대 모색 ▲그렇습니다.그래서 정부는 연구자가 장기적인 대형연구도 안정적으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원자력연구개발기금」제도를 도입할 계획입니다.원자력발전소의 시간당 발전량을 기준으로 일정금액을 연구개발기금으로 확보하자는 것입니다.과거 방사성폐기물처리기금은 시행이 잘 안됐지만 이것만큼은 꼭 성사시켜 원자력분야 국가연구개발재원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방사성폐기물처리사업은 사용후 핵연료까지 사업자에 이관할 계획이십니까.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도 폐기물처분장 운영처럼 루틴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다만 사용후 핵연료가 자원으로 변할 때는,예를 들면 듀픽기술을 실용화시키는 일은 과학자가 손을 대야 하겠지요. ­「과학기술특별법」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됩니까. ▲정부는 오는 98년까지 우리나라 연구개발투자 총액중 정부부문을 4%까지 올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고 민간기업의 기술개발투자가 급증해 정부가 이를 지키기가 매우 힘든 형편입니다.특별법에는 이와 같은 국가투자계획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약속을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또 산업단지등에 과학기술연구기관이 입주할 때 금융세제혜택을 주는 방안,과학기술개발활동에 대한 획기적인 금융세제지원,국방부의 민·군겸용기술개발에 대한 특례근거마련등 다양한 계획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가과학기술투자는 60%가 과기처 아닌 타부처를 통해 수행되고 있는 만큼 「과학기술특별법」은 범부처적인 특별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각계 의견을 수렴해 선언적인 법보다는 알맹이 있는 법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회견 언저리/「영원한 과학도」 정장관/24살때 미 미시간대학서 박사 딴 수재/“과학계도 미래지향적 개혁 필요” 역설 정근모 과기처장관은 언제 보아도 웃는 얼굴이며 젊어 보인다.얼굴에는 웃음 때문에 생긴 주름살이 꽤 있지만 우리 나이로 올해 58세라면 믿기 힘들 정도다. 자그마한 키에 사람 좋은 귀공자타입의 인상을 풍기는 정장관.그러나 자신의 신념에 관한 한 독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집착과 추진력이 대단하다. 대통령도 그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고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언제나 실천에 옮겨지곤 한다.남이 한번도 하기 어렵다는 장관을 두번째 하고 있는 이유를 알 만하다. 국내 과학기술계가 엄두도 못내던 핵융합연구개발사업을 지난해 국책사업으로 확정지은 일,그리고 최근 과학기술계의 숙원인 「과학기술특별법」의 제정을 검토하게 된 일도 정장관의 공으로 알려져 있다. 정장관을 난초 몇 그루가 소담스럽게 놓여져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을 때 그가 24살의 젊은 나이에 미시간주립대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라는 이미지와 얼른 맞지 않아 약간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경기중·고교 수석입학,고1때 검정고시 수석합격,서울대 물리학과 차석입학이라는 그의 경력답게 또렷또렷한 눈망울과 이지적인 그의 외모에서 수재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정장관은 1주일에 두번씩이나 교회에 나갈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몇년전 아들에게 자신의 콩팥을 떼준 사실도 아는 사람은 잘 알고 있다.이처럼 그는 다른 수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엇」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장관을 만나는 동안 그가 단호히 강조한 대목은 『과학기술계도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우리나라의 과학이 발전하려면 과학자가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올해를 무엇보다도 의미 있게 새기고 있는 것은 우선 한국 최초의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된 지 30년이 되는 해인데다 과학기술분야에 투입되는 예산이 올해 처음으로 1백억달러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이는 2000년대초까지 세계 7대 과학기술선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제 과학선진국으로 가는 이정표를 세웠음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신문이 새해 들어 사회발전캠페인으로 연재하고 있는 기획시리즈물 「G7으로 가는 길­창의력을 키우자」가 시의적절한 것이라며 찬사를 표했다.그는 언론에서 진작에 이런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었어야 했다며 더 좋은 기사와 함께 「특별취재단」의 건투를 당부하기도 했다. 조용하면서도 한번 세운 계획은 끝까지 밀고 나가 관철시키는 정장관의 스타일로 미루어볼 때 지금 그가 열성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갖가지 「G7과제」는 뜻대로 결실을 거두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 보일러 검사 면제범위 확대/에너지 관리공단/민원업무 대폭 개선

    에너지관리공단이 올해부터 압력용기에 대한 검사주기를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고 보일러 검사의 면제범위를 확대하는 등 열사용기자재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규제기관에서 봉사기관으로 변신하고 있다.또 공단에서 일정 교육만 받으면 취급할 수 있는 대상기기도 늘렸으며 우편이나 팩스,은행지로를 이용해 검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민원업무도 개선했다. 공단측은 『이같은 규제완화로 약 3만대의 보일러 및 압력용기가 검사대상에서 제외돼 검사수수료 수입감소로 연간 예산의 15%에 이르는 결손이 예상된다』며 『수입감소분은 에너지와 환경이 연계된 신규 사업개발로 메워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열사용기자재에 대한 안전검사를 주로 맡아온 공단측은 그동안 검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형식적인 검사라는 지적과 함께 열사용기기의 점검보수 기간과 생산일정이 맞지 않아 업체들에게 불편을 주어왔다.
  • 강 주석 군시찰 언제 끝나려나/최두삼국제1부장(서울논단)

    중국대륙과 대만 사이의 양안간 파고는 올해 들어서도 더욱 거세질 것 같다.오는 3월의 대만총통선거를 둘러싼 미·중·대만간 힘겨루기는 북한의 기근문제와 더불어 올봄 동북아정세의 흐름을 주도하는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연초부터 북경이나 대북·홍콩 등지로부터 들어오는 뉴스는 대체로 섬뜩한 것들이다.중공당 중앙군사위가 오는 2000년까지 항공모함을 건조토록 지시했고 대만을 회복하기 위해 향후 15년간 세계 최고수준의 무기개발계획을 승인했다고 한다.대만을 바라보고 있는 남경전구구 복건군구에는 돌발사태에 대비하라는 명령이 하달됐고 「해경(고래)」이라는 암호명의 해상봉쇄훈련이 준비중인데다 심지어는 「김문·마조도에 대한 기습침공」과 같은 군사행동도 고려중이라는 뉴스도 들어온 바 있다. ○군관련 뉴스에 “섬뜩” 지난해 이등휘 대만총통이 미국방문비자를 발급받으면서 야기된 미·중·대만간 갈등이 아직 사그러들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거기에다 최근에는 이원족 대만부총통이 또다시 미국측으로부터 비자를 발급받게 되자 더욱 악화돼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강주석이 군부를 너무 편애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서 국외자에겐 예사롭지 않게 비쳐지고 있다.지난 89년 당총서기로 실권을 장악한 이래 한동안 조용히 보내던 그가 92년말부터 군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약 3백명에 이르는 「양가장(양상곤 전 국가주석과 그의 이복동생 양백빙 일가친척내의 장군집단)」을 제거하고 93년에는 6명의 중장을 인민해방군 최고계급인 상장(3성장군)으로 무더기 진급시킨 데 이어 94년에는 무려 19명에게 상장계급장을 손수 달아주었다.그런가 하면 준군대조직인 80만 무장경찰의 경우 8명의 간부를 동시에 장군으로 승진시키고 그 총수에는 자신이 상해시장때 거느리던 상해경비사령관 파충담을 전격기용했다.동시에 무장경찰의 지휘권을 이붕총리의 국무원으로부터 당중앙군사위로 넘겨 자신의 직할부대로 재편성하기까지 했다. ○실권장악 어려움 이해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총구를 손에 넣어야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왔다.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군대배경이없는 강주석이 실권장악을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나를 이해할 수가 있다. 좀 지나친 점이 있었다면 지난 연말연시를 대만 맞은편 복건성쪽에 있는 군부대내에서 보내면서 병사와 함께 대만과의 통일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는 사실이다.차라리 이 뉴스는 오보였으면 하는 게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강주석이 근래에 들어 군부와 가까이 하고 있는 이유가 권력장악의 한 과정이든 대만을 혼쭐내 중국에서 독립해나가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든 필자로선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다.다만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군부와의 지나친 밀착은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어서 뜻밖의 악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그럴 경우 중국과 그 주변국가와의 관계가 부드럽고 원만하게 유지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 이웃나라 국민의 한사람 입장에서 보면 호혜평등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평화5원칙 외교는 크게 호감이 가는 대목이다.그런가 하면 중·인분쟁,중·소분쟁등 각종 국경분쟁과 베트남 침공,특히 지난 92년 군부의 논리에 밀려 영해법을 만들어 동남아국가와의 분쟁수역임을 뻔히 알면서도 남사군도일대를 자기네 영해로 선포해버린 사실등은 아직도 불쾌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웃나라의 한 주민에 불과한 필자로서는 강주석이 과거 등소평이나 조자양·호요방등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현대화를 위해 경제재건에 전념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그래서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주도하는 중심국가가 되어 이웃 한국이나 일본과 함께 투쟁이나 분쟁이 아닌 화친과 태평성대속에 발전해가길 기대하고 있다. ○지나친 군부밀착 우려 대만과의 통일문제만해도 벌써 50년 가까이 참아온 터에 그렇게 초미의 급박한 사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그래서 주변국가를 안심시킨다는 뜻에서도 강주석이 하루빨리 인민해방군부대 시찰에 종지부를 찍고 대신 공장지대 시찰로 발길을 돌리길 기대해본다.
  • 고법원장 4명 전보

    ◎서울 한대현/대전 최공웅/대구 지홍원/광주 이철환 대법원은 20일 공석중인 서울고등법원장에 한대현 대전고등법원장을 임명하는 등 고법원장 4명,지법원장 1명,고법부장 1명 등 6명에 대한 전보 또는 승진인사를 오는 23일자로 단행했다. 대전고법원장에는 최공웅 대구고법원장,대구 고법원장에는 지홍원 광주 고법원장이 전보발령됐고 광주 고법원장에는 이철환 춘천지법원장이 승진·임명됐다. 또 춘천지법원장에는 양인평 서울 서부지원장,서부지원장에는 조용완 서울 고법부장판사가 각각 임명됐다. ◆신임 고법원장 프로필 ◎한대현 서울고법 원장/합리적 사고로 신망높아 균형있는 사고방식과 해박한 법률지식,다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 등으로 선·후배 법관 사이에 인기가 높다.전형적인 법조가족으로 고 한성수 대법관이 부친이며 이회창 전 총리의 처남이다.고시 15회의 선두를 줄곧 달려왔으나 대법관 인선에서 두번씩 탈락해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경남 산청·53세 ▲경기고·서울법대 ▲서울동부지원장 ▲인천·서울 형사지법원장 ▲대전고법원장 ◎최공웅 대전고법 원장/친근감 주는 학자풍 법관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친근감을 주는 학자풍의 법관.서울 가정법원장 때는 가사조정전담 판사제를 신설해 가사사건을 신속·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국제사법에도 밝아 이 분야의 「바이블」로까지 일컬어지는 「국제소송」의 저자다. ▲서울·55세 ▲경동고·서울법 ▲고시 14회 ▲서울민사지법 부장 ▲대구·서울고법 부장 ▲청주·전주·서울 가정법원장 ◎지홍원 대구고법 원장/민소분야 이론·실무 밝아 깔끔한 용모와 깨끗한 매너로 누구나 호감을 갖게 하는 신사.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는 일이 없어 법원 내에서 「생불」로 통한다.민사소송법 분야의 이론과 실무에 밝아 「소송물에 관한 소고」,「의료상의 과실에 관한 조사」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고교 재학시 국전에 입상했을 정도로 그림솜씨가 뛰어나다. ▲경북 청도·56세 ▲경북고·서울법대 ▲고시 14회 ▲서울북부지원장 ▲창원지법원장 ▲서울 가정법원장 ◎이철환 광주고법 원장/재산많아 한때 누명도 훤칠한 키에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온화한 인상을 준다.93년9월 재산공개 당시 73억여원을 신고,사법부내 1위를 차지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그러나 부산굴지의 재벌기업인 (주)삼화의 맏사위로 대부분 상속받은 재산임이 확인돼 누명을 벗었다.등산을 즐기며 김영희씨와 1남2녀를 두고 있다. ▲부산·57세 ▲경남고·고대법대 ▲고시15회 ▲부산·대구지법 부장 ▲창원·부산·인천·제주·춘천지법 원장
  • 여름철 목욕과 피부보호(최선록 건강칼럼:75)

    ◎외출후엔 비누질 한번만… 사우나탕 5분내로/깔깔한 때수건 무리하게 쓰면 무좀·종기 유발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면서 찜통 더위가 더욱 위세를 떨친다.너와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차가운 물이 그리워지고 하루에도 몇차례씩 목욕으로 흘린땀을 씻어낸다.여름철의 목욕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위생적이고 몸에 이로움을 줄 수 있을까. 인체를 보호해주는 피부표면은 수많은 땀샘으로 덮여있다.땀샘에서 분비된 땀방울은 체내의 열을 식혀주는 체온의 조절기능 이외에도 노폐물을 밖으로 배출하고 전해질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편 몸에 생기는 때는 피부각질층 표면의 죽은 세포층과 흙먼지 및 탄소분말 등이 기름기와 섞여 혼합된 물질이다. 목욕은 살갗 자체를 윤택하게 해주고 표면에 쌓인 소금기나 노폐물을 제거해줌으로써 피부의 세포가 원활한 호흡작용과 신진대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여름철 목욕은 비누질을 자주 안하는 것이 피부보호에 큰 도움을 준다.아침이나 대낮의 더위를 식히는 목욕은비누질 없이 물만 끼얹는 것으로 충분하다.그렇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서 하는 저녁 목욕은 비누질을 한번만 하여도 온종일 살갗에 붙어있던 먼지와 기름기를 제거할 수 있다. 땀에 붙은 때가 목욕후 계속 나오더라도 손바닥이나 손끝으로 가볍게 문질러 떨어지는 것만 제거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흔히 때를 벗긴다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피부를 세게 문지르게 하거나 자극성 있는 비누,세제 그리고 깔깔한 때수건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때가 빠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피부의 피지막이나 각질층의 일부분까지 손상,세균감염으로 무좀이나 종기 같은 염증이 생기기 쉽다. 여름철의 목욕물은 실내 수영장의 수온과 비슷한 섭씨 25∼28도 안팎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그러나 사람에 따라 섭씨 16∼20도의 냉탕이나 36∼39도의 미원욕을 즐길 수 있다.온탕과 냉탕을 너무 자자 왔다 갔다 하거나 사우나탕에 5분 이상 있으면 피부를 통해 비타민의 과잉방출로 권태와 무력감이 생기고 체력소모가 많아진다. 목욕비누는 자극성이 별로 없는 중성세제가 좋다.빨래비누나 합성세제와 같이 자극적이고 세척력이 강한 것은 자칫 피지막을 송두리째 제거,곰팡이균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 빗물이나 개울물 같은 산물로 머리를 감거나 세수 및 목욕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이러한 자연수는 광물질이 다량 함유된 센물(경수)이므로 비누와 화학반응·염이 생성될 수 있다. 염은 피부에 남아 습진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목욕전에 물을 끓이거나 붕산을 조금 타 녹인 다음 사용하면 수돗물과 비슷한 목욕물이 된다.
  • 깊어가는 중·소 불신(모스크바 새 증언:22)

    ◎「중국군 무기지원」 싸고 모·스탈린 반일/스탈린­북경측 잇단 고문단 파견 요청 등 계속 거절·김일성에 전문… 모에 대한 불편한 심기 토조 51년 7월 10일을 기해 개성에서 휴전협상이 시작되자 전쟁은 막바지 소모전 양상을 띠고 전개됐다.미군의 공습이 기세를 수그러뜨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군사고문단 파견과 추가 무기원조를 거듭 요구했다.모택동은 9월20일자로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고문단 파견 외에 무기 추가인도를 거듭 촉구했다.(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24110) 『우리는 현재 새로운 군조직개편안에 따라 구성된 10개 사단의 훈련계획을 세워 51년 8월부터 시행하고 있음.따라서 이전에 스탈린동지께서 약속한 10개 사단용 탄약,장비의 지급계획은 차질없이 이행해 주기 바람.10개 사단 훈련은 52년 3월까지 끝내고 그때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이들을 조선에 투입하겠음.특히 포탄,대전차포,탄약등 추가무기를 가능한한 빨리 조선전선으로 보내주기 바람』이와함께 모택동은 필요한 장문의 무기목록을 전문에 첨부했다. ○탄약지원 재차 요구 그러나 스탈린은 이번에도 모의 지원요청을 대부분 거절했다.9월26일 모에게 보낸 답전을 통해 이 크렘린의 주인은 『조선에 파견된 중국의용군 총사령부에 10월 초순까지 5명의 군사고문관을 파견할 용의는 있다.하지만 모택동동지가 요청한 군단위까지 고문단을 파견하는 데는 반대한다』고 밝혔다.(전문번호 N5542.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낸 전문) 그러나 모택동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모는 10월5일 스탈린 앞으로 전문을 보내 고문단건에 대해서는 일단 그의 입장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하지만 추가 무기,탄약지원은 자신이 요구한대로 반드시 이행해 줄 것을 재차 요구했다.(전문번호 N24547) 『대공포,포탄,대전차 수류탄 추가공급이 절실함.또한 60개 사단 무장계획을 연기시키지 말기 바람.당초 이 무장계획은 54년 상반기중 완료하기로 한 것인데 이제와서 54년말까지 하겠다고 미루는 것은 곤란함.51년 6월 고강이 모스크바에서 서명한대로 8년 상환 군사차관으로 지급키로 한 위의 지원무기는 당초 약속대로 인도해주기 바람』 그러나 스탈린은 이 요구에 대해 매우 언짢은 심기를 내보였다.10월 7일 모앞으로 보낸 전문에서 스탈린은 그의 요구가 당초 약속에 없는 무리한 것이라고 공박했다.(전문번호 N2332) 『모택동동지앞.10월4일자로 보낸 전문에서 동지는 당초 약속에 없던 차량장비를 군사차관에 포함시키자고 요구했음.…중략…그리고 동지가 제시한 차관 상환방법은 이전에 양국간 합의한 내용과 서로 상반되는 것임.우리의 재정,군사기관들은 이전에 중국과 체결한 협정문안에 명시된 모든 조건들을 수정하는 데 반대함』 모택동은 지지 않고 추가 3개 여단으로 구성되는 1개 대공포사단의 파견과 3개 제트전투기 사단,3개 항공기술대대의 추가파견등을 요청했다.다음은 10월24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관련전문.(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N25187) 『1.현재 적공군기의 주목표는 아군 통신망을 파괴하는 데 있음.로보프장군이 지휘하는 항공부대와 중국공군부대는 공중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고 소련,중국군의 대공포 부대 또한 통신망 보호에 큰 공헌을 하고 있음.하지만 아군의 전력규모는 보급품수송을 확고히 지켜줄 만큼 충분치 못함.따라서 3개 여단으로 구성되는 1개 소련군 대공포사단을 추가로 조선에 파견해 안수지역의 활주로와 철도보급로 공중방어를 강화해주기 바람. 2.중국동북부에서 전투훈련을 마친 중국비행부대가 조선으로 투입되기 위해 대기중임.이들이 조선에 투입될 경우 중국내 방공수단이 부족해짐.특히 51년 11∼12월 사이 4백63명의 조종사들이 중국항공학교에서 야크­11기 훈련코스를 마칠 예정임. 스탈린동지께서 이전에 명령한 계획에 따라 3개의 미그­9 전투기사단,TU­2 폭격기사단 1개,IL­10 공격사단,LA­11 첩보여단,LA­9전투여단,LI­2수송여단,LI­2수송여단등을 창설키로 결정했음. 현재 우리 공군력 수준으로는 자력으로 위에 열거한 사단,여단 창설 뒤 조종사들의 훈련을 감당할수 없음.따라서 본인은 소련정부에 다음 사항의 원조를 부탁함. (a)중국에 3개 제트기사단과 3개 항공기술대대를 파견해 줄 것.이 항공기술대대는 3개의 중국전투기사단과 6개의 미그­9 항공기술단을 훈련시킬 장비를 갖춤.이들은 북경,상해,광동지역의 대공방어를 강화하는 데 투입됨. (b)2개의 중국 첩보여단과 2개의 LA­11 항공기술단을 훈련시킬 장비를 갖춘 항공기술 대대 1개와 1개 여단(장비 없이)인원을 중국에 보내줄 것』 이 전문에는 이밖에도 크고작은 지원요청이 여럿 들어있었다. ○모태도에 못마땅 거듭되는 지원요청에 스탈린은 매우 못마땅했다.51년 11월 13일 김일성에게 전문을 보내 모택동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전문번호 N102522) 『김일성 동지앞.본인은 오래 전부터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와있음.3개 조선사단의 무기지원요청에 대한 본인의 답이 늦은 것은 이 때문임.모스크바 회담에서 우리는 30개 중국군사단에 무기를 공급키로 합의했음.중국동지들은 이 무기 중에서 3개 사단분을 조선군에 공급키로 돼있음.후에 중국동지들은 30개 사단이 아니라 60개 사단용의 무기공급을 요청해 왔음.따라서 이 무기중 조선군 3개 사단에 무기를 공급할 가능성은 더 커졌음. 만약 중국동지들이 어떤구실을 달아 귀하의 요청을 거절한다면 본인에게 그 사실을 통보해주기 바람』 이 전문을 받은 김일성은 서둘러 모택동에게 전문을 보내 스탈린의 심기를 전하고 3개 사단분 무기인도를 요청했다.51년 11월 14일 북한 주둔 소련군사고문단장은 스탈린에게 다음과같이 보고했다.(전문번호N503396sh) 『본인과 가진 개별면담에서 김일성은 중국동지들에게 소련으로부터 받은 무기중 일부를 조선군 3개사단 몫으로 인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음.오늘 김일성은 3개 사단 몫 무기를 인도할 것을 요구하는 전문을 모택동에게 보냈음』 이 보고를 접한 후에야 스탈린은 비로소 모택동에게 연락을 취했다.스탈린은 10월24일자로 모택동이 무기,고문단의 추가지원을 요청한 전문에 대해 그때까지 아무 응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다음은 11월 14일 스탈린이 중국 주둔 소련군사고문단장 크라소프스키장군을 경유해 모택동에게 보낸 전문.(전문번호N6618) 『모택동동지앞.귀하가 보낸 10월24일자 전문은 받아보았음.본인이 모스크바에서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답이 늦었음. 1.북조선의 통신망 방어는 공격비행단이 맡아야함.따라서 활주로건설에 박차를 가해줄 것을 강력히 주문함.대공포부대는 주요시설물 방어만 전담할 것.현재 소련군 2개 대공사단도 그렇게 하고있음.이 대공방어망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국군은 소련이 제공한 180정의 각종 포,및 각종 대공 자동화기를 조선에 제공할 것.이미 약속한대로 12월중 120정의 대공포(85㎜캘리버)등을 중국에 제공하겠음. 2.소련군 제트전폭기 3개 사단을 조종사와 함께 보내고 3개 항공기술대대를 중국에 보내라는 요청은 들어줄수 없음.미그­9기는 더 이상 지원할수없음.만약 미그­9기 조종사 훈련을 위해 소련 조종사들이 필요하다면 지금 중국에 파견돼 있는 소련전투기 사단내의 교관을 3개월동안 이용할 것.현재 중국군 미그­9조종사 훈련을 위해 중국에 일시 체류중인 이들 소련교관들은 반드시 예정기한내에 본국으로 귀환할수 있도록 조치할 것』 ○모 발언권 크게 강화 매우 엄하고도 딱딱한 내용의 전문이었다.스탈린은 특히 이 전문을 크라소프스키 중국 주둔 소련군사고문단장을 통해 모택동에게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감추려하지 않았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로 짐작할수 있듯이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한국전쟁을 둘러싸고 모택동의 발언권이 전쟁초기보다 상당히 강화됐음을 알수 있다.스탈린이 발을 빼는 기미를 보이면서 모택동이 전쟁 마무리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 밝혀진 사실/모­스탈린 서로 노골적 비난·반박/「중·소 분쟁」 비밀 풀어줄 중요 자료 스탈린은 전쟁을 동의,결정해놓고도 모택동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기지원을 주저하거나 거절하고 있었다는 점이 상세하게 밝혀져 있다.그는 소련군 고문단의 파견도 요구대로 들어주지 않았다.이는 모택동으로 하여금 스탈린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키워주었음에 틀림없다.그들은 요구­거절­재요구­재거절 등의 악순환을 반복하는가 하면 아예 은유적 표현속에 감추어진 상대방에 대한 적의까지 읽을 수 있는 상호 반박과 비난의 내용까지 들어있다. 이러한 내용은 한국전쟁은 물론 스탈린과 모택동,소련과 중국의 관계를 연구한 저서들에서도 밝혀진 적이 없는 새로운 사실들이다.모택동과 스탈린은 사실상 또다른 내부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는 한국전쟁은 물론 앞으로 20세기 냉전사 연구에 하나의 중대한 전환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는 사실들이 아닐 수 없다.20세기 세계사에서 풀리지 않는 중요한 비밀중의 하나가 중소분쟁이었고,그중에는 그것의 구체적인 역사적 계기가 언제부터였느냐는 점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번자료는 그 비밀을 풀어줄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회에는 또한 스탈린이 자신의 모택동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김일성에게까지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모택동이 김일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이를 자신에게 이야기하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이는 스탈린의 모택동에 대한 불신과 감정의 정도를 읽을 수 있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가 사실상 모택동과 김일성을 중간에서 조정하고 있다는 점까지 시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번 자료를 통해 전쟁의 결정과 시작,그리고 초전 승세기 동안어렵게 유지되던 스탈린과 모택동의 관계는 전세 역전과 중국군참전을 계기로 상당히 어려워지기 시작하였고,휴전협상의 시작과 함께 거의 적대적일만큼까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이 자료의 공개를 계기로 스탈린­모택동 관계를 비롯한 세계 냉전사는 상당 부분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한반도정책 급선회(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20)

    ◎모·스탈린 “휴전협상” 합의… 김일성 당황/중,말리크 소 대사의 「유엔 제의」 전폭 지지/평양측,북경에 「미국 호응때의 전략」 문의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보낸 51년 6월13일자의 이 전문에서 중국공군 8개 비행사단의 전선투입을 최우선 요구로 내놓았다.다음은 이 전문의 계속.『최소한 8개 중국군 전투비행사단의 투입이 시급함.2∼3개의 미그 15 비행사단과 중국 중남부에 배치돼 있는 5∼6개의 미그 9 비행사단을 투입시켜주기 바람.특히 미그 9기는 적폭격기에 맞설 최고기종임.이 8개 사단만 출정하면 전선사정이 호전될 것임』.스탈린은 이 비행사단들이 이미 출격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하며 가능한한 조기출격시켜 줄 것을 모택동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아울러 스탈린은 영·미군이 남조선을 위해 참전중인 16개국 군대를 대표해 휴전제의를 해올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주고 미확인 첩보임을 전제로 『이들이 휴전협상 제의 직전 대규모 공격작전을 개시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에 대비하라』고 모택동에게 당부했다. 이 전문을받은 모택동은 같은 날 즉시 답전을 띄웠다.(51년 6월13일.전문번호 N20772.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 ○“미 휴전제의 가능성” 『스탈린동지의 전문을 받은 날 고강,김일성동지로부터도 전문이 당도했음.우리의 휴전협상 전략은 고강동지가 스탈린동지께 직접전달한 그대로임.전선의 팽덕회동지는 소련군사고문단 파견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음.가능한 빨리 이들을 파견해 주기 바람.8개 비행사단 투입은 출정계획을 세울 것을 이미 총참모부에 지시했음.팽덕회에게는 제2,제3의 방어선을 확고히 사수할 것을 지시하고 아울러 새방어선 구축을 지시했음.6월에 아군전력은 적에 비해 약했음.하지만 7월이면 6월보다는 호전될 것이고 8월이면 더 강해질 것임.8월중 적에게 매우 강력한 타격을 가할 준비를 세우고 있음』. 이 전문이 오간 바로 이튿날인 6월14일,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던 김일성은 고강과 연명으로 스탈린앞으로 다음과 같은 서신을 제출했다.(대통령문서보관소) 『모택동동지가 보낸 답전을 스탈린동지께 전달하고자 함.시간이 허락한다면 오늘 스탈린동지를 면담하고 싶음.그게(면담이) 가능하다면 우리 일행은 동지의 지시사항을 가지고 내일 귀국하고자 함. 공산주의의 인사를 전하며. 고강 김일성』 그리고 두사람은 이 서신에다 모택동이 6월13일자로 자기들 앞으로 보낸 전문사본을 첨부했다.앞으로 휴전협상에 임할 중국의 입장을 상세히 담은 내용이었다.구체전략으로 모는 다음의 5가지 방안을 지시했다. 『1.적이 휴전제의를 할 때까지 기다릴 것. 2.단 소련정부가 미국정부를 상대로 휴전협상 제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함.즉 두가지 방향에서의 동시접근이 가능함.한편에서는 소련정부가 휴전제의를 하고 또 다른 한편,적이 휴전제의를 먼저해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북조선과 중국정부가 이에 응하는 것임.이와 관련,필리포프동지의 의견과 지시를 받을 것. ○“38선을 국경으로” 3.휴전의 조건:38도선을 국경으로 회복할 것.38도선 양측에 소규모의 중립지대 설치.북쪽에만 중립지대를 설치하는 것은 절대반대.중국의 유엔가입이 휴전협상의 전제조건은 아님.왜냐하면 중국정부는 유엔이 사실상 침략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유엔가입문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음.협상전략상 대만문제는 제기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함.만약 미국이 이 문제를 분리처리하자고 제의하면 우리도 적절한 양보를 하겠음. 4.현전선 사수명령을 내렸음.만약 적이 추가병력을 파견하거나 상륙작전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8월중 아군전력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것임. 5.비행사단은 즉시 전선으로 투입하겠음. 모택동』.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모택동은 당시 휴전협상에 매우 적극적으로 임할 자세를 보였다.스탈린은 무엇보다 중국군 비행사단의 투입을 최우선 목표로 기다리고 있었다.이것이 차일피일 늦어지자 스탈린은 6월 16일 북경에서 중국공군을 지도하는 소련고문단 앞으로 매우 신랄한 질책을 담은 전문을 보냈다. 고강으로부터 스탈린과의 면담결과를 보고받은 모택동은 추가지원 무기의 조속한 인도를 스탈린에게 요구했다.다음은 6월21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내용.(전문번호 N21039). 『1.귀국한 고강동지로부터 여러 문제에 대한 스탈린동지의 견해를 전해들었음.동지의 의견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함. 2.8개월동안 조선에서 전투를 해본 결과 중국군은 장비면에서 적과 비교해 현격한 열세에 있음을 알게 됐음.우리 군의 장비개선이 절실함.고강동지를 통해 스탈린동지께 60개 사단에 필요한 무기공급을 요청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임.이는 동지께서 동의한 바 대로임.이는 조선에 나가 있는 우리 군대가 금년도에 필요한 최소분의 무기임. 3.북조선으로부터의 보고에 의하면 소련 총참모부에서는 금년도에 16개 사단분 무기만 인도하고 나머지 44개 사단분은 1952­53년중에 인도할 예정이라고 함.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무기량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임. 4.본인은 동지께 7월부터 금년말까지 우리가 요청한 무기를 매월 6분의 1씩 인도해 줄 것을 부탁함. 물론 수송문제 등에 있어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나 가능한한 빨리 무기를 인도해줄 것을 요청함』. 그러나 이 전문을 받은 스탈린은 그해말까지 60사단분 무기를 다 인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적어도 53년도 이전에 무기인도를 완결짓기는 어렵다고 분명히 밝혔다.다음은 6월24일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낸 전문.(전문번호 N635177). 『1.우리가 제기한 휴전협상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음.우리는 말리크대사(유엔주재 소련대사)가 유엔에서 휴전협상을 제의함으로써 이 문제를 제기하기로 한 귀측과의 약속을 지켰음. 2.60개 사단 무기공급건은 솔직히 말해 이를 금년중에 마무리짓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우리 산업체 종사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은 51년중 10개 사단분 이상을 공급키는 불가능하다고 말함.60개 사단분을 모두 보내는 것은 워낙 어려운 일이고 열심히 해도 54년도 상반기는 돼야 완료될 수 있을 것임』. ○의견 긴급통보 간청 모택동은 무기인도에 관한 스탈린의 이 주장을 이의없이 받아들였다.그러나 말리크대사의 유엔발언과 때를 맞춰 스탈린,모택동,김일성 3인의 주관심은 휴전협상쪽으로 급선회하기 시작했다.위 전문에서 모택동은 휴전협상대표는 정부대표나 군사령관들이 돼야한다는 말리크 대사의 제의가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동의했다. 스탈린,모택동양자간 사전합의에 의해 분위기가 휴전협상쪽으로 급선회하자 가장 당황한 것은 김일성이었다.김일성은 휴전협상에 임할 전략자문을 구하기 위해 모택동에게 긴급전문을 띄었다.다음은 51년 6월29일 김일성이 모택동에게 보낸 전문내용.(전문번호 21336) 『6월 26일 말리크대사의 연설로 미국도 휴전협상에 관심을 갖게됐음.…중략…뉴스보도에 따르면 리지웨이장군은 미국방부의 지시가 내려지는데로 북조선군 사령관과 휴전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함.만약 리지웨이가 휴전협상제의를 해올 경우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동지의 구체적인 의견을 긴급히 통보해 주실 것을 간청함. 김일성』. ◎새로 밝혀진 사실/휴전협정의사 모택동이 먼저 제기/소선 소극적… 스탈린 사후에야 종전 이번 자료에는 1951년 소련이 휴전협상을 제의하게 되는 과정이 나와있다.우선 모택동이 이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소련의 의사표시에 앞서 모택동이 먼저 적극적으로 휴전협상의사를 표현하고 있음이 밝혀져 있다.우리는 이에서 하나의 논쟁적인 사실에 대한 해답을 유추할 수 있다.왜 한국전쟁은 3년이나 끌다가 스탈린이 사망한 직후에야 종전이 되었느냐는 점이다(스탈린의 사망은 1953년 3월,한국전쟁의 종전은 1953년 7월).이는 곧 스탈린이 이 전쟁의 종결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러한 사실에 대한 자료적 뒷받침을 이번 자료에서 볼 수 있듯 휴전협상의 개시여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모택동은 소련의 군사지원이나 휴전협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에 비해 스탈린은 중국군 비행사단의 투입에 더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점도 밝혀져 있다.스탈린은 중국군 비행사단의 투입이 늦어지는 데 대해 신랄한 질책을 가하고 있기 까지 하다.스탈린은 모택동의 지원요청에 대해 완곡하게 거절하고 있기까지 한 것이다.이번 자료를 통해볼 때 중국과 소련간의 중소갈등의 뿌리가 한국전쟁에서 놓여졌다는 그동안의 해석은 전적으로 옳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미국이 소련의 휴전제의를 받아들이자 김일성이 이에 당황하여 모택동에게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문의하는 장면도 흥미롭다.이는 이미 언급한대로 전쟁이 김일성의 손을 떠났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 테러대응 세계공동의 노력을(사설)

    독가스와 폭탄에 의한 테러가 4월의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일본에선 도쿄에 이어 요코하마에서 또 지하철독가스 테러가 발생했으며 미국에서는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정부 건물이 폭탄차테러를 당해 많은 희생자가 났다.충격적이고 개탄스런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탈냉전후 세계의 대국적질서는 평화구도를 지향할 것이나 문화·인종·종교차원의 불화·갈등에 따른 군소분쟁및 테러는 오히려 증대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이 있어왔다.중동및 옛공산권지역등의 분쟁은 이미 그런 예측을 뒷받침하는듯 했다.최근 일련의 테러도 같은 범주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경계되는 것은 테러수법이 갈수록 잔인해지고 독가스같은 무차별적 대량살륙 수단까지 동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종교적 광신주의 목적을 위한 테러까지 등장한 것은 불길한 조짐이 아닐수 없다.오클라호마시티의 폭탄차테러는 중동서 시작된 테러유형이다.93년 뉴욕 국제무역센터 테러나 이번의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일본에서 시작된 독가스테러 유형이 세계로 확산된다면 사태는 심각하다.우리는 어떤 목적이나 수단의 테러도 단호히 반대한다.테러는 무고한 인명을 무차별적으로 볼모 혹은 희생의 제물로 삼는 독선적인 반인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류 공적이기 때문이다.그동안의 대표적인 테러수단은 항공기납치 혹은 폭파였다.세계적인 강력·공동 대응결과 다행히 최근엔 억제되는경향을 보이고 있다.대신 폭탄차및 자살테러 유행에 가공할 독가스 수법이 새로이 등장한 것이다. 폭탄이나 독가스테러에 대해서도 항공기 납치·폭파테러에 대한 경우와 같은 유엔중심의 강력한 세계공동 대응책 강구가 시급하다.KAL(대한항공)기 공중폭파및 외국방문 국가원수에 대한 폭탄테러등을 당한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도 그것은 남의 일일수 없다.적대적인 북한은 사린 등 독가스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북한테러 가능성에대한 경계를 새로이 하는 경각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유전·가스전 미서 재개발 붐/첨단기술 이용 3급을 1급으로

    ◎중소업체서 수천개 공략… 해외감산 보충 미국에 유전 및 가스전 재개발 붐이 불고 있다. 미국의 중소 석유회사들은 아모코나 텍사코등 대자본이 매각처분하는 수천개의 유전과 가스전을 사들여 특유의 인내심과 첨단기술을 이용,졸아드는 유정을 콸콸 넘치게 하고 있다.이들의 활동은 미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져 업계에서는 국내생산 감소 속도를 늦추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아파치 코퍼레이션,벌링턴 리소시즈,아나다르코 페트롤리엄 코퍼레이션등 비메이저(석유대자본) 회사들의 활동은 특히 눈에 띈다.이중 공세적 전략을 펴고 있는 아파치는 지난해 텍사코사로부터 3백여개의 유전과 가스전을 6억달러에 사들였다.아파치가 이같은 공세적 매입에 치중하는 이유는 4년전 아모코사에서 사들인 3백개의 가스전과 유전에서 크게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윙클러 카운티(텍사스주)의 한 유전의 경우 4년전에 비해 하루 산유량이 1천1백배럴정도 늘어났다.4년전 사들여 재개발한 헤스팅스 유전의 경우 일부 유정이 30년이 넘었지만하루 4백배럴 이상 늘어난 4천배럴을 생산하고 있고 연간 1백만달러의 추가수입을 가져다 주고 있다. 이밖에 아나다르코는 캔자스주 그랜트 카운티에서,벌링턴은 2년전 모빌사에서 사들인 텍사스주 다스트 크릭 유전에서 증산에 성공했다.아나다르코는 대략 1천배럴 이상,그리고 벌링턴은 두배정도를 더 퍼올리고 있다. 중소회사들이 「노쇠」판정을 받았거나 채산성이 별로 없는 유전과 천연가스전에 벌인 활발한 재개발 활동으로 미국내 석유와 가스 공급물량을 늘렸고 특히 가스가격의 인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모빌 등 대자본들은 여전히 미국내 최대의 석유생산자로 군림하고 있고 자기들이 매각하는 유전이 아직도 수명이 다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다만 해외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어 국내투자는 가급적 피한다는 설명이다.90년부터 대자본의 해외프로젝트 투자비는 13% 는 반면 국내유전에 대한 지출은 23%나 급락했다.이는 곧 비메이저들에게는 「기회」로 작용한 것이다. 휴스턴의 한 경영자문회사의 조사에따르면 독립 석유회사들은 이같은 틈을 이용,국내 탐사와 개발비를 꾸준히 증가시켜 93년 한햇동안 전년대비 21% 늘어난 58억달러를 지출했다.반면 대기업들은 5% 늘어난 87억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이같은 과감한 투자는 아파치의 경우처럼 3차원 지질검사등 첨단기술,인력감축,지질학자와 엔지니어로 구성된 감독팀 운영등과 결합해 증산효과를 거뒀다.이에 따라 중소업체들의 국내비축물량은 4년동안 15% 늘어난 58억배럴로,같은 기간에 12% 감소해 2백83억배럴로 물량이 줄어든 대기업의 공급감소분을 보충했다. 중소업체의 성공은 그러나 경매에 붙여지는 유전가격을 올려놓았고 「너코 오일 앤 개스」의 경우처럼 80년대말 최고가로 매입한 유전의 생산량이 기대에 못미쳐 결국 모기업이 회사를 팔아치워버리는 경우도 있어 유전재개발이 결코 평탄한 길만은 아니다.
  • 해방정국의 혼란(새로쓰는 한국현대사:6)

    ◎송진우,「건준」 맞서 「국민대회준비위」결성/여운형 내세운 우익의 「합작」노선 반대/“「임정」지지”표방… 고하 피살로 좌익 타격/하지, “「인공」은 소련과 밀접한 관계… 활동 중지”명령 1945년 해방정국은 아주 혼란스럽게 저물어갔다.당시 사회상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미 국무성이 J R 하지 중장에게 파견한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일 것이다.미군이 진주한 이후 9월15일에 작성한 이 보고서는 「조금만 불똥이 튀어도 폭발할 화약통,그것이 남한의 상황」이라고 기술했다. 그의 말대로 남한은 과연 화약통이었을까.어쨌든 1945년이 세밑에 다가선 12월30일 상오6시 송진우를 저격한 서울 원서동 76의 총성을 시발로 정치테러가 잇따랐다.뒷날 여운형·장덕수·김구로 이어진 암살사건은 해방정국의 혼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송진우는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하자 이에 맞섰다.그래서 건준이 인공을 선포한 다음날인 9월7일 우익지도자 3백80명과 함께 국민대회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아직 중국 중칭(중경)에서 돌아오지 못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를 지지하고,국민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모임이었다.송진우의 죽음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다만 건국대회준비위원회는 9월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창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 해방정국의 판도를 선점한 인공의 실체를 먼저 딛고 넘어가는 것이 당시 사회상을 돌아보는 수순이 될 것이다.인공이 병아리라면 달걀 격이기도 한 건준은 194508월15일 발족되었다.여운형은 8월14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으로부터 일본 패전소식을 들은데 이어 다음날 15일 아침에는 정무총감 엔도(원등륭작)의 방문을 받는다.행정권을 이양할 테니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온 것이다.이를 수락한 여운형은 그날밤 자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부위원장은 안재홍이 맡았다.이와 더불어 5개의 부서를 두고 2천여명의 청년·학생으로 건국치안대도 조직되었다. 건준에 송진우·장덕수등은 불참했으나 안재홍·김병로·이인등 우익및 중간노선의 인물과 박헌영계열의 좌익세력,정백 중심의 장안파 공산당계열이 들어왔다.말하자면 좌우합작성격을 띤 건준은 지방조직도 확대,8월말까지 1백45개의 지부조직이 이루어질 정도였다.그러나 건준은 건국에 실패하고 말았다.좌익계열이 재빨리 조직을 확대,건준을 장악하고 미군이 진주하기 이틀전인 9월20일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한 것이다. 미군이 서울에 진주한 이후 9월12일 하지장군이 시공관에서 정치인들과의 대화를 모색할 때 33개 정당대표가 등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이렇듯 복잡다단한 정치상황은 하지의 정치고문 베닝호프가 9월15일 미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에 나타난다.그는 9월말에 가서 이들 정당을 두 집단으로 분류했는데,민주적 보수집단과 급진 또는 공산주의가 그것이다.특히 미군정은 급진주의 주요세력으로 인민공화국을 주목했다. 그래서 미군정은 인민공화국을 도전세력으로 간주하게 되었다.이는 공식명칭에 국가를 상징하는 「국」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유일한 정부를 표방했기 때문이다.더구나 인공은 1946년3월1일 총선거 실시를 골자로 하는 특별조치까지 마련해놓은 상태였다.이에 대해 군정장관 아놀드는 10월10일 한국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군정이 남한의 유일한 정부』라고 못박고 『군정은 다른 형태의 모든 정부를 통제할 권한을 갖는다』고 선언했다. 인공은 이에 맞서 11월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에서도 공화국명칭을 여전히 사용했다.하지는 맥아더에게 보낸 보고서(미 외교문서시리즈 제6·1945년)에서 「인공은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지지세력이고 소련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전했다.그리고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닌 상당수의 좌익세력이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인공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한 하지는 맥아더에게 이 대목에 대한 평가도 구했다. 맥아더로부터 「어떠한 결졍을 내려도 지지할 것」이라는 회신이 돌아왔다.하지는 마침내 인공에 대한 활동중지명령을 내린다.이에따라 주한미군 방첩대(CIC)는 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간판을 떼어버렸다.이렇듯 인공은 미군정 아래서 좌익세력규합 이외에 다른 의미를 거두지 못한 채 사실상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는 인공중앙인민위간판이 내려지기 얼마 전에 귀국했다.이승만은 10월16일,김구는 11월23일에 각각 돌아왔다.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귀환문제,특히 이승만문제는 워싱턴·토쿄(맥아더사령부)·서울(미군정) 사이에 사전조율되었다(미 육군작전국문서 한국편 1945년10월).하지는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이승만·김구·김규식의 귀환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 국무성은 중국 중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망명지로부터 귀환이 허가되었음을 통보하면서 어디까지나 개인자격 귀환임을 강조했다.여기에는 이승만도 포함되었다.미 국무성은 귀환자들에게 「38도선 이남지역에 머무는 동안 군정당국의 법과 규칙을 준수한다」는 서약서를 받도록 하는 조치도 잊지 않았다.이승만은 귀국 2주만에 반소(반소)논쟁을 벌였다.이에 국무성은 서약을 유의토록 환기시키면서 곧 소련과 가질 교섭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반응을 즉각 보였다. 국제간에 이해가 엇갈린 정치전략은 변화무상한 것인가.철저한 반공주의자에다 항일운동가라는 점을 들어 서둘러 귀국시킨 미국이 이승만에게첫 제동을 건 것이다.김구 역시 이승만과 같은 이유로 여의도 군용비행장을 거쳐 조국땅을 밟았으나 그다음 12월2일 군산비행장에 내린 임정요인들은 고국의 산하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미군 장갑차에 실려 서울에 왔다.이승만과 김구의 환국은 다른 정치판도의 변화를 예고하는 서막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승만의 존재는 하지로 하여금 각양각색의 정치단체통합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당시 이승만의 명성은 대단해서 모든 정당이 거의 다 의장직 수락을 제의해올 정도였으니까….이승만은 귀국한 지 1주일도 안되는 10월23일까지 50여개 단체대표를 만났다.그 결과는 독립촉성중앙회 결성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인공과 공산주의자들이 등을 돌려 좌우익 골은 더욱 깊어갔다. 한편 38도선 이북 소련군 점령지역 평양에서는 9월3일 국내파 공산주의 중심인물의 하나인 현준혁이 암살되는 것으로 정치투쟁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원장 조만식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그의 죽음은 한반도 해방정국의 암살1호로 기록된다. 이에 앞서 소련군사령관 치스차코프의 명령에 의해 10월8∼10일 평양에서 북조선 5도대회가 열린데 이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립(10월13일)되었다.그리고 김일성이 모습을 드러낸 평양시민대회(10월14일)가 열렸고,들러리정당 조선민주당이 창당되는등 소련의 의도대로 착착 돌아갔다. 역사에는 결코 가정이 없다고 한다.하지만 이런 명제를 무시하고 남북한의 많은 세력이 구심점을 갖추었거나 연합전선을 폈더라면 외세에 의한 분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해방정국은 건국의 옷을 입기는커녕 첫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뒤 「첫 정치희생자」는 현준혁/「사회장사진」국내 첫 발굴/「송진우 저격」 3개월여전 평양서 적위대에 피살/「9월3일 암살」 묘비서 확인… 「소관련」시사 논문도 우리는 해방정국에서 암살1호하면 45년 12월30일에 숨진 송진우를 흔히 떠올린다.그러나 사실상의 첫 희생자가 이보다 3개월이나 앞서 9월3일 평양에서 소련 민정당국과 결탁한 반대파에 암살된 공산주의자 현준혁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흔치않다. 그는 1906년 평남 개천의 소지주 집안출신으로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서 교수를 지낸 인물.8·15해방을 서울에서 맞아 장안파공산당의 평안남도 책임자로 임명됐다.그달 18일 평양에 도착한 직후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와 적위대를 조직했다.소련군이 진주한 무렵 다른 공산주의 세력을 압도하고 8월27일 조직된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될 정도였다.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남의 공산주의 세력은 소련파·화요파·적색노조파등이 복잡하게 얽힌 형국.소련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하던 그는 소군정과 관계가 좋지 못했고 이를 빌미로 반현준혁파들은 그를 반소분자나 부르주아로 몰아세웠다. 그가 심하게 마찰을 빚었던 상대는 평양 보안서장을 거쳐 평양시 적위대장에 임명된 송창겸과 일제때 포목조합 이사장을 지낸 장시우등 소련파.김일성 영입 계획을 추진하던 소련 민정당국은 결국 송창겸과 장시우등 친소적인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현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9월3일하오1시 소련 민정사령부서 회의를 마치고 소련제 스리쿼터를 타고 돌아가다 적위대 복장의 괴한에게 총을 맞고 숨졌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일본 도쿄대 와다 하루키(화전춘수)교수는 자신의 논문 「소련의 대북한 정책」에서 「암살범이 누구이든 현준혁의 죽음은 소련측으로는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고 기술했다. 현준혁의 암살날짜가 지금까지는 9월28일로 알려졌으나 최근 하와이대 서대숙교수가 평양에서 촬영한 묘비 기록을 통해 9월3일로 확인되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소련당국이 의도적으로 현준혁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러준 당시의 사진도 긴급 입수했다. 이날 암살에 대한 또 다른 설은 당시 민족주의 진영의 거목인 조만식 휘하의 반공주의자들의 거사란 주장도 있다.그러나 현준혁은 당시 조만식을 신뢰하는 사이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는 반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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