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탈출구 막혔다” 사자의 증언
◎「삼풍」 희생자 위치로 본 당시사황/계단이 상품쌓여 입구 못찾고 뒤엉켜/대부분 비상구쪽으로 손뻗은채 숨져
최후의 3분이 삶과 죽음을 갈랐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인명구조 및 사체발굴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사고직전 붕괴위험을 눈치챈 백화점직원과 고객이 사고직전 3분여동안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드러나고 있다.
발굴된 대부분의 사체는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무너진 A동과 B동의 지하 1·2·3층 엘리베이터와 비상구부분에 몰려 있어 사고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짐작케 하고 있다.
수습된 사체는 하나같이 손을 비상구와 엘리베이터쪽으로 향해 있었고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비극의 전주곡은 사고 3분전인 29일 하오5시47분쯤부터 시작됐다.A동 지하 1·2층 의류매장과 식품점·잡화점을 찾은 손님들은 갑자기 바닥이 울렁하며 기둥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악,악』 사방에서 여직원들과 30∼40대주부들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다.비극을 예감한 것일까.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30여m 떨어진 비상구와 엘리베이터쪽으로 내달았다.
사고 2분전,천장과 벽에 금이 갈라지면서 이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비상구가 어느 쪽이죠』 당황해서일까 사방을 둘러봐도 비상구계단이 보이지 않았다.대신 원색의 화려한 옷더미와 물건을 담은 박스가 수북이 쌓여 앞을 다투는 직원과 고객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면서,밀고 밀리면서 지하매장과 비상구주위는 아수라장이 됐다.탈출로를 알리는 단 한차례의 안내방송도 없었다.
엄마손을 「잃어버린」 아기는 유모차를 붙잡은 채 자지러질 듯 엄마를 찾고 찾았다.주인을 잃고 여기저기 흩어진 장바구니에서는 찬거리와 주방용품·초콜릿이 나뒹굴었고 아기의 인형은 어른들의 발걸음에 처참히 짓밟혔다.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유난히 더웠던 지하매장은 살려는 안타까움이 뒤엉킨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비슷한 시각 지하 3층 사원식당에서 간식을 하던 3백여명의 여직원도 젓가락을 내동댕이치고 비상구쪽으로 몰렸다.『언니 먼저 가』 떼밀려가는 선배사원의 등에 대고 외친 마지막 말이었다.
B동 지하 3층 주차장에도 낌새를 눈치챈 주부운전자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떨리는 손으로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사고 1분전 지하 1층 매장.마치 구름다리를 탄 듯 흔들림이 더욱 심해졌다.가까스로 엘리베이터단추를 눌렀으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손바닥으로 마구 두드려댔으나 마찬가지였다.
앞서 올라간 엘리베이터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쏟아져내렸다.전기가 끊어진 엘리베이터에서 흘러나오는 절규였다.
30초전,『이젠 끝인가』 『그래도 설마』 『아가야』 『엄마』 『…』
20초전,어디선가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A동이 무너진다』
『오,하느님』
「콰르르 쾅쾅」
그리곤 정적만이 감돌았다.
구조대원들은 5일 사체의 부패냄새가 가장 심한 중앙통로쪽 A·B동의 엘리베이터와 비상구계단을 1주일째 집중수색하고 있다.이날 하오 B동 지하 2층 엘리베이터부근에서 20대여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지상으로 올라온 한 소방구조대원은 「저승」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눈물부터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