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법률이란 나귀처럼 어리석은 것/알란 팀블릭 서울시 글로벌센터장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 등장하는 범블은 자신의 아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자 “법률이란 나귀처럼 어리석다.”고 응수한다. 나귀(Ass)는 어리석은 것, 즉 준수할 만한 값어치가 없는 법이나 규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국제 투명성 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180개 국가 여론조사결과를 기초로 발표하는 부패인식수치(CPI:Corruption perception index)는 한국의 법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척도가 된다.
이 조사에서 2008년 한국은 40위, 덴마크, 뉴질랜드, 스웨덴이 공동 1위, 소말리아가 최하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아시아의 다른 국가, 즉 싱가포르(4위), 홍콩(12위), 일본(18위), 타이완(39위)보다 순위에서 밀렸다. 상위권 국가들이 9.3(10점 만점) 이상이었던 반면, 한국은 5.6점에 불과했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으며, 법 준수 또는 법에 대한 존중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의미한다.
이는 심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어느 국립 연구소에서는 실제 법과 질서 존중 결여가 1990년대 초부터 매년 1%씩 국내 경제성장률 감소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아직까지 어느 나라보다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는 한국에서 이는 도덕성 결여를 의미하며, 전통적으로 유교에서 요구하는 높은 윤리 기준에 반하는 것이라고 단정짓는 이들도 있다. 반면 유교에서 말하는 3대 덕목 즉, 군자학, 윤리 도덕관, 그리고 청렴 등이 여전히 한국에서 간직하고 있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한국 국민들의 태도를 탓할 게 아니라, 그들이 따라야 하는 법 자체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법은 사회의 기초이며,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다스린다. 그렇기에 법은 전체 사회에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해당 사회 전원에게 공통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법을 제정하는 쪽에서는 형평성과 공정성을 숙고하여 본래의 취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 집행해야 한다.
간단한 예로 교외 횡단보도가 타이머로 작동되어 4분 간격으로 차량이 정지한다고 하자. 한밤중에는 십중팔구 주변에 보행자가 없을 것이고, 지각없는 이에게는 분명 녹색등에 멈춰서는 것이 바보같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법을 위반한다는 양심의 가책 없이 신호를 무시하고 조심스레 주행하려 하기 쉽다. 그렇다면 보행자가 있을 경우에만 작동할 수 있도록 신호 길이를 조절하는 횡단보도 버튼을 설치하는 것이 더 좋은 법이 아닐까.
더 치명적이고 의도에 반하는 결과를 낳는 법들도 있다. 계약직의 임기를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 비정규직법은 원래 비정규직 인력을 영구 인력으로 흡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인건비 증가의 우려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기업 상황에서 한국은 대량실업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불법 도박, 건축 규정 위반, 인도를 주행하는 오토바이, 차량 공회전, 식당과 바 등에 해당되는 인가 제한 등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위법이 저질러진다. 스스로 물어보자. 무엇이 문제인가. 시민 정신인가. 아니면 법 자체인가.
해결 방안 중 하나로 바람직하거나 의도한 결과에 최대한 근접한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법률안을 기초할 수 있도록 법 제정자들이 인간 행동의 원리를 배우는 방법이 있다. 단순히 법을 따르는 것은 법 존중과 엄연히 다르다.
법 존중에는 물론 법 준수도 포함되나, 보다 나아가 부정적인 것을 피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중이란 법이 사회 구성원과 개인 모두에게 가치있음을 자각하고 법에 대한 경외심과 존중을 갖고 행함을 뜻한다.
알란 팀블릭 서울시 글로벌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