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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1)부시‘고르비 정상회담

    세계 현대사의 굵은 매듭에는 어김없이 그 시대,세계를 이끌어온 지도자들의 역사적인 대좌가 있었다.살벌한 군비경쟁속에 인류를 이념의 틀에 얽어맸던 냉전체제도 강대국 정상들의 결단에 의한 회담으로 무너졌다.관계가 소원하기만 했던 나라들의 해빙(解氷)무드 역시 지도자들의 ‘만남’을 필요로했다.정상간의 대화는 묵었던 현안을 해소할 수 있는 장(場)이 될 수 있음을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6월12일의 한반도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새 천년의 기억 한편에 물러서 있는 세기의 정상회담을 돌아보고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89년 美·蘇정상회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4주 뒤인 1989년 12월2일,지중해의 휴양지 몰타해변.정박중인 소련 순양함 ‘막심 고리키’호의 카드놀이방을 개조해 임시로 만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마주앉았다.주위에는 소련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얘기가 잘 안되면 책상을 발길로 걷어 찰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좁군요.”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고르비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정상회담 얘기가 나가자 동유럽 등 지구촌 곳곳에서 커다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자주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오늘 만남도 오래전부터 이어진 대화의 연장선 같습니다.” 헝가리의 국경 개방,베를린 장벽 붕괴 등 냉전의 벽들이 무너지는 소용돌이속에서 구질서의 양대 축인 미·소의 정상은 이렇게 만났다. 부시 대통령이취임한 이후 10월 말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추진해 온 정상회담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한다면 세계는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부시는 참모진과의 협의를 거쳐 준비한 양국 무역협상 개시,소련의 최혜국 대우를 금지시킨 잭슨-바닉 수정안 해제 등 고르비 최대의 관심사항인 경제 제안들을한꺼번에 제시했다. 부시는 무기감축에 관해서도 진일보한 입장을 보였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으며 양극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우리는과거 냉전에서 얻은 교훈들을 토의할 필요가 있으며,대립의 정치학인 냉전적방법론은 전략적 패배를 맞고 있습니다.” 고르비는 다소 철학적인 답변으로대신하며 대화분위기에 신경을 썼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몰타의 기상은 최악이었다.미국의 순양함 벨크냅호와 소련 함정 슬라바호를 오가며 갖기로 한 정상회담은 폭풍우를 꺼린 고르비의 제안으로 장소가 고리키호로 변경됐다. 이튿날 회의에서 고르비는 미·소관계의 이정표를 긋는 중대한 발언을 한다.“우리는 미국이 유럽에 남아있는 것을 원하며 이것은 유럽의 장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여러분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물론 언쟁도 있었다.아프카니스탄 나지불라 정권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두고 설전이 오갔으며,동독의 변화를 서방의 가치에 기초를 둔 변화라는 부시의 언급에 고르비가 “우리도 민주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되받는 등 한때 공기가 냉랭해지기도 했다. 부시는 고리키호를 떠나지 않으려는 고르비를 위해 이틀 동안 거센 파도속에 함재정을 타고 밸크냅호와 고리키호를 오가,이를 TV로 지켜보던 미 국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몰타회담의 하이라이트는 12월3일 열린 사상 최초의 미·소 정상 공동 기자회견.고르비의 전격 제안이었다. 부시가 기자들에게 “미·소 관계개선으로 고쳐 나갈 수 없는 문제가 세계,특히 유럽에는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을 꺼내자 고르비는 “우리 두 사람은 세계가 냉전의 시대를 지나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영구적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의 시작입니다”라고 화답했다. 기자회견을 끝낸 두 사람이 전용기를 타고 몰타를 떠날 때 회담 내내 멈추지 않던 폭풍우는 빛나는 태양에 그 자리를 내줬다. 45년간 지구촌을 갈라놓은 냉전시대 구질서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조지 부시,냉전해체과정 충격없이 연착륙시킨 주역. 미국 41대(1989∼1992) 대통령.89년 1월23일 취임,동구 민주화 도미노,베를린 장벽 붕괴 등 급속한 속도로 진행된 냉전 해체 과정을 충격 없이 연착륙시킨 당사자다. 76세.매사추세츠주 밀튼 출생으로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텍사스에서 정유사업으로 부를 축적,64년 상원의원 출마로 정치에 입문했다.닉슨 대통령 시절주 유엔 대사를 거치고 75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헝가리 국경 개방 이후 선물받은 ‘헝가리 철조망조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소개해 당시 외교 결실에 따른 보람을 은근히 내비쳤다. 98년 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와 함께 당시를 기록한 회고록 ‘세계의 대전환(A World Transformed)’을 펴냈다. 동구 해체시의 위기관리 능력과 91년의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미 경제의 침체로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줄 무렵 인기가 급추락했다.아들인 조지 W부시가 공화당 후보로 올 대선에 출마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냉전해체 1등공신…90년 노벨평화상 수상.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1985∼1991년),옛 소련 대통령(1990∼1991년).명실상부한 냉전해체의 일등 공신으로 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69세.스타프로폴의 농가 출신.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52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82년 후견인인 안드로포프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공산당 서기장이 되면서 정치적 위치가 급상승했다.이때부터 부패와 비효율에 대한 개혁을 시도,명성을 얻었다. 85년 서기장으로 선출된 뒤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는 80년대 국제사회 최대의 화두였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강경파와 개혁파들 사이에서 입지가 흔들렸고 91년 8월강경파들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개방정책은 발트해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소련연방의 해체로 이어졌고 경제는 피폐해졌다.서방에서는 ‘칙사’ 대접을,러시아내에서는 러시아 추락의주범이라는 원성을 듣고 있다.지난해 9월 부인 라이사가 암으로 사망,쓸쓸한말년을 보내고 있다. 김수정기자
  • 東·西獨 하나되기까지

    독일은 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승국들의 분할통치를 거쳐 49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됐다.첨예한 동서 냉전의 상징으로 있던 동서독은 90년10월3일 분단 41년만에 재통일을 이룩해냈다.80년대 후반 소련과 동유럽을 휩쓴개혁·개방의 물결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분단 이후 끊임없이이어진 교류 시도야말로 통일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분단 고착 초기 동서독은 적대관계로 맞서며 분단을 고착시켰다.54년 서독은 나토에 가입했고 55년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55년 서독은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단절하는‘할슈타인 원칙’을 선포했고 61년 베를린장벽이 구축되면서 분단과 대결은절정에 달했다. ◆화해 국면으로 전환 빌리 브란트가 서독 총리에 오르면서 동서독간 대결은화해국면으로 바뀐다. 브란트 총리는 69년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독일에2개의 국가가 존재하나 이는 서로 외국이 아니라는 ‘1민족 2국가’론을 주창,동독과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한편 동독에 정부 차원의 협상을 제의했다. 이같은 브란트의 노력에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가 화답해 70년3월과 5월 두차례 정상회담을 열어 실무차원의 접촉을 계속하기로 했다. ◆통일의 바탕 마련 동서독간에 꾸준히 계속된 실무접촉은 조금씩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72년5월 민간인들의 상호왕래를 가능케 한 교통조약이 체결된데이어 12월에는 동서독기본조약이 체결돼 대화와 교류의 본격적인 물꼬를 트는 등 통일의 바탕이 마련됐다.73년9월 유엔에 동시가입한 동서독은 이듬해상주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서독은 튼튼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에 대한 경제지원을 계속하는한편 여행 자유화와 상호방문 기회를 확대하는 등 인적-물적 교류의 확대를일관되게 추진했다.동서독 국민들이 동질의식을 유지하면서도 동독 사회를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다. ◆싹트는 통일에의 열망 서방 TV 등을 통해 서독의 부유한 삶을 접한 동독인들은 점차 경제격차를 가져온 동독의 체제에 저항심을 갖게 됐다.이같은 저항은 85년3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의 흐름이 동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절정에 달한다. 89년8월 동독체제에 불만을 품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대탈주하기 시작됐고동독 곳곳에서 반정부집회가 줄을 이었다. 반정부집회는 자연스레 민주화와통일을 요구하는 시위로 변했으며 마침내 호네커의 사임(10월)에 이어 89년11월9일 베를린장벽의 개방으로까지 이어져 동독의 국가 해체와 독일 통일을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통일의 완성 90년5월 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동서독이 참가한 ‘2+4’회담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동서독 재무장관간에 통화-경제-사회 통합조약이 체결되고 7월1일 발효됐다.8월31일 동서독 통일조약이 조인되고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4차 ‘2+4’ 회담에서 동서독 통일에 관한 최종규정조약이조인돼 동서독 의회의 비준을 거쳐 10월3일 통일독일이 재탄생했다. ◆동서독 통일일지◆◆45년7월17일∼8월2일 포츠담회담,독일 분할통치 결정◆49년5월23일 서독 정부수립◆49년10월7일 동독 정부수립◆61년8월13일 베를린장벽 구축◆70년3월19일 동독 에어푸르트에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동독 총리간에 첫 동서독 정상회담 개최◆73년9월18일 동서독,유엔 동시가입◆81년12월11일 슈미트 서독 총리,동독 방문.호네커 동독 총리와 정상회담◆89년8월19일 동독인들,서독으로의 대탈주 시작◆89년11월9일 베를린장벽 붕괴◆89년12월19일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한스 모드로프 동독 총리,동독 드레스덴에서 정상회담◆90년7월1일 동서독 통화-경제-사회통합조약 발효◆90년8월31일 동서독 통일조약에 조인◆90년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제4차 ‘2+4’ 회담,동서독 통일에 관한 최종규정조약 조인◆90년9월20일 동독 의회와 서독 하원,통일조약 비준유세진기자 yujin@
  • 총선… 大選… 주말 지구촌 달군 유세전

    8일 보스니아 지방선거를 필두로 9일 페루와 그루지야 대선,그리스 총선 등주말 지구촌 곳곳이 선거로 부산했다.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3선에 도전하는 페루대선에서는 원주민 출신 알레한드로 톨레도후보의 강력한 추격으로 결선투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그루지야에서는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다. ◆페루 9일 대선의 쟁점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현 대통령의 3선연임이냐,최초의 페루 원주민 출신 대통령의 탄생이냐 여부.당초 후지모리 대통령의 무난한 당선이 예고됐다가 각종 여당측 선거부정이 밝혀지면서 인디오 원주민 피를 물려받은 알레한드로 톨레도 ‘페루의 가능성’당 당수쪽으로 민심이 급격히 기울고 있다.8일 여론조사 결과는 후지모리 46.3%,톨레도 41.7%로 어느후보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6월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이 유력하다. 그러나 후지모리측이 안데스산맥 및 아마존 정글 등지에서 결과조작에 나설 경우국제 선거감시기구도 속수무책일수밖에 없어 벌써부터 정국불안 심화가 우려되고 있다. ◆그루지야 별다른 쟁점이 없는 가운데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72)의 재선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셰바르드나제 대통령외 대안은 없다는 분위기가 주조다.구소련 외무장관 출신인 현직 대통령은 고령에도 불구,5년임기재임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불태워 아슬란 아바쉬제,텐기즈 아산디체 등 두후보를 자진사퇴시키기도 했다.현재 줌버 하티아쉬빌리 구소련 공산당수가셰바르드나제 아성에 도전중이다.국제요원 150여명의 선거감시아래 300만유권자가 투표한다. ◆그리스 300석의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9일 총선에서 집권 좌파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과 제1야당인 중도우파 신민주주의당(ND)간 정권교체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2주전 최종여론조사 결과는 PASOK의 0.4% 리드로박빙의 승부를 예고중. PASOK는 지난 90∼93년 ND에 한차례 정권을 내준 것을 제외하고 81년부터 줄곧 집권해왔다. 불법이민규제,경제난 해소 등 양당 정책이 대동소이한 가운데 농촌표가 판세를 가를 것으로 예측,코스타스 시미티스총리(64)가 이끄는 PASOK는 각종농업장려금·사회보장정책 등으로 농심공략에 부심해왔다.반면 코^^스 카라만리스(43)당수의 ND는 11% 고실업률 등 집권당의 농정실패를 맹공,상당한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투표가 의무인 그리스에서 1,020만 국민가운데 유권자는 900만여명이다. ◆보스니아 8일 선거는 지난 92∼95년 내전 이후 두번째 치러지는 지방선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아래 250만 유권자가 145개 지자체 의원들을 뽑는다.서방측은 이번 선거가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회교도로 갈려 20만인명피해를 낸 내전 후유증을 치유할 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투표행태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측돼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97년 첫선거 승리지역을 각각 다시 차지할 공산이 크다.일부 크로아티아계 도시에서 세르비아계의 선거조작을 우려한 보이콧이 발생하기도 한가운데 수도 사라예보에서는 투표율 70∼80%를 기록중이다.선거결과는 10일나올 전망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 美 UC버클리大 ‘21세기 북한체제’ 세미나

    미 UC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한국학연구센터(소장 이홍영교수)는 8일 ‘21세기 북한 체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현 북한체제의 실상과 전망을 진단했다.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로버트 A.스칼라피노 UC버클리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북한은 현재 김정일(金正日) 당총비서가 당정을 확고히장악하고 “현대 기술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견해를 피력했다.다음은 주요 발표 요지. [로스앤젤레스 연합] ◆로버트 스칼라피노(UC버클리대 명예교수). 김정일 당총비서가 정권유지에 자신감이 생긴듯 최고인민회의에 예산 발표권을 부여하는등 제도화 및 법제화를 꾀하고 있다.남북간 정치적 화해가 성사되기에는아직 거리가 있으나 경제 문화 스포츠 교류는 활발해질 전망이다. 한반도 주변 열강은 모두 북한에 대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를바라고 있다.현재 북한의 내부붕괴 조짐은 없으며 지배 주체가 군부에서 민간인으로 바뀔 전망은 당분간 없다.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확대(브래들리 뱁슨 세계은행 수석고문)북한은 국제사회와 관계개선으로 21세기를 시작하고 있다.이탈리아가 지난 1월 서방선진 7개국(G7)중 처음으로 북한과 수교한 후 스웨덴,프랑스,영국등 많은 유럽국가와 호주,캐나다,필리핀 등 환태평양 국가들의 방문과 회담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긍정적인 대북 관계 정상화 논의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남북관계개선을 위한 베를린 선언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이런 움직임들은 북한 지도층이 수십년간의 고립후 북한을 국제사회에 통합시키기로 결정했음을 시사한다. 북한 정부는 앞으로 대외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다음 3가지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외국인 투자자와 무역 파트너를 유치하기 위해 환율제도와 금융시스템,대외부채,법률문제,관리와 노동관행 등 각종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특히 도로 전력 상하수도 통신은 민간투자를 유치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기간시설이다. 김대중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정부당국간 차원에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확충 의지를 표명한 것은 매우 의미있다. 둘째 개발원조국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배워야한다.북한이 정부개발원조(ODA)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가입하려면 국제금융기관들의 대주주격인 미국과 일본의 지지를 얻어야하고 이를 위해선 전제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셋째 확대된 대외경제활동의 결과를 잘 관리해야 한다.정책결정과정에서의내분과 미숙함은 투자자들과 원조국의 불만을 사고 북한 철수를 야기할 수있다.수익의 정당한 배분과 부패근절,외국인 접촉 증가에 따른 ‘문화오염’과 국내정쟁 문제에 대한 유연한 대처 등도 요구된다. ◆북한의 농업위기(히더 스미스 호주국립대 교수)북한 농업위기의 가장 큰요인은 80년대말 구 소련 붕괴 등 사회주의 블록 해체로 농업에 대한 투입량(input)이 급감한 것이다.사회주의 무역 파트너 상실로 관개와 농업화학공장,전력공급 등에 필요한 석유,비료,기계부품 수입이 감소함으로써 북한의 농업운영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또 집단농장체재의 실패로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못하고 생산잠재력을 억제시킨 것도 농업위기를초래한 주 원인이다. 물론 북한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몇년간 계속된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도 위기의 요인이 될 수 있으나 이는 2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북한이 외국이나 국제구호단체들로부터 비료와 기름을 대규모로 무상 원조받는 것은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임시로 완화할 수는 있으나 기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북한이 장기적으로 식량안보를 이룩하려면 경제구조를 비교우위 관점에서 조정하고 국제시장과 상호교류를 증진시켜야 한다.
  • 집중취재 黃砂/ 모래먼지 매년 500만톤 한반도 뒤덮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口蹄疫)이 황사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주장이 제기되면서 황사가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다.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구제역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에 포함됐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이같은 의심은 구제역이 경기도 파주·화성,충남 홍성·보령 등 모두 중국과 인접한 서해안 지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3국의 환경 현안으로 대두된 황사를 분석한다. *발생원인과 그 영향. 아시아지역의 황사는 황하(黃河) 중류의 황토지대,중국 북부와 몽골의 고비사막,중앙아시아의 타클라마칸사막 등에서 발생한다.우리나라에 날아 오는황사는 대부분 황하 중류 또는 중국 북부 고비사막이 발원지다.이들 지역은연 평균 강수량이 300∼500㎜에 불과한 매우 건조한 지역으로 하루 수 백t의 황사를 발생시키기도 한다.우리나라에 날아 오는 황사는 많을 때는 연간 500만t이나 된다.타클라마칸사막은 한반도에서 5,000㎞ 이상 떨어져 있어 영향이적은 편이지만,때때로 만주에서 발생하는 황사는 한반도에 심각한 피해를끼친다. 황사는 대개 3∼5월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1,500∼2,000㎞ 가량 이동한다. 황사는 중국 대륙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을 휩쓴 뒤 제트기류를 타고 하와이,알래스카 북부,미국의 태평양 연안까지 날아가기도 한다.중위도 편서풍대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봄만 되면 황사가 찾아온다.역사적으로 보면 신라 자비왕 21년(478년)과 효소왕 8년(700년),조선 현종 3년(1663년)에 노란 비와붉은 눈이 왔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관측되는 황사는 지름 1∼10㎛ 정도.지름 1㎛ 짜리는수 년 동안,10㎛ 짜리는 수 시간∼수 일 가량 공중에 떠다닌다.주요 성분은석영,장석,운모,고령토,알루미늄·철 등 금속류다.황사가 발생하면 대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의 농도는 부유분진 환경기준(300㎍/㎥)을 넘어선다.최고1,105㎍/㎥까지 관측된 적도 있다.황사는 또 복사열을 흡수해 지표면을 냉각시킨다.농작물과 활엽수의 기공을 막아 광합성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생육에 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기관지염·천식 등 호흡기 질환,안질,알레르기등의 질병도 일으킨다.고도의 청정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반도체 장비 등 정밀기계는 물론,심할 경우 항공기 엔진을 손상시키기도 한다. 황사는 무엇보다 중국 동부 연안의 공업지대를 통과하면서 산성비의 원인이되는 각종 대기 오염물질을 운반해 온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구제역 바이러스가 황사에 실려 왔을 수 있다는 지적은 황사의 이같은 운반 기능에 주목한 것이다.이 때문에 농림부는 올 들어 가장 심한 황사가 발생했던지난 7일 소·돼지 등이 황사를 뒤집어쓰지 않도록 축산농가에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문호영기자 alibaba@. * 중국 정부의 대책. 중국은 올 들어 사막지대인 서북부지역에 대대적인 조림사업을 하는 내용의‘전국 생태환경 건설계획’을 발표하는 등 토양 유실과 황사 방지를 위한대책을 내놓았다.인민일보는 올 1월7일자 해외판에서 중국 정부의 계획을 1면에 보도하는 등 국민들의 관심을 일깨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중국 국가임업국은 앞으로 10년 동안 1,000억 위안(元)을 들여 양자강 및황하 중·상류에 인접한 13개 성(省) 700개 지역(200만㎢)의 천연림을 보호해 토사 유실을 막기로 했다. 또 지면 경사도가 25도 이상인 20만㏊의 농지를 산림 및 초지로 전환하고,산림자원의 3분의 1이 집중된 내몽골 자치구 등에서 벌채를 금지해 2005년까지산림 면적을 지금의 2배로 늘리기로 했다.▲삼강(동강·화북·서북) 지역보안림 조성 ▲양자강 상류 보안림 조성 ▲연안 녹화 프로젝트 ▲평원 녹화프로젝트 ▲태행산 녹화 프로젝트 ▲사막지대 영림 프로젝트 ▲추하 및 태호유역 보안림 조성 ▲황하 중류 보안림 조성 ▲주강 유역 보안림 조성 ▲요하 유역 보안림 조성 등 국토 면적의 73.5%에 이르는 700만㎢의 취약지구를대상으로 하는 ‘10대 임업생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 국토자원부는 지난 99년 농경지 40만㏊의 경작을 금지시키고,내몽골 자치구·귀주성·협서성·사천성 등 서북부 지역의 농경지 35만㏊를 영림지로바꾸었다.청해성은 올해부터 2004년까지 황하와 양자강 수원(水源)지역의 농경지에 나무를심기로 했다.사천성도 지난해 9월 산림 채벌 금지령을 내려천연림 463억㏊를 보호하는 동시에,2010년까지 183만㏊에 나무를 심고 897만㏊의 산지를 개간해 364㏊의 산림을 조성하기로 했다. 한편 한국·중국·일본 3국 환경부장관은 지난 달 26∼27일 베이징에서 열린 회의에서 중국 서부지역의 사막화와 황사 방지를 위해 공동 조림사업을추진한다는데 합의했다. 이를 위해 올해 1,000그루의 측백나무를 심기로 했다.3국 환경부장관은 또산성비 및 황사 등 장거리 이동 대기 오염물질에 대한 공동 조사 및 연구를실시하기로 했다.황사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호영기자. *대기오염 분쟁 해결 사례. 황사처럼 국경을 넘어 장거리를 이동하는 대기 오염물질은 국가간 갈등을불러일으키기도 한다.피해 국가들은 대체로 오염물질 배출국에 대해 강제성을 띤 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따라서 한국과 일본이 중국 정부에 대해 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것도 황사 방지를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장거리 월경성 대기 오염에 관한협약/ 60년대 스웨덴 호수의 산성도 상승원인 중 상당 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유입된 아황산가스 때문이라는 분석이나온 뒤 스웨덴과 핀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하여금 실태를 조사하도록 했다.OECD는 오염물질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이에 관한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유럽경제위원회(ECE)는 72년 스위스에서 환경회의를 열었으며,79년 제네바에서 35개 나라가 ‘월경성 대기 오염에 관한 협약(CTAP)’에 서명했다. 80년 산성비에 의한 삼림 황폐화 및 문화재 부식 등 피해사례가 보고되자,83년 열린 CTAP 제1차 당사국회의에서 서독·프랑스·이탈리아 등은 스웨덴이제안한 아황산가스 배출량 30% 감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91년 질소산화물삭감에 관한 소피아의정서에는 그동안 대기 오염물질 이동에 관한 협약에 서명하기를 꺼리던 미국도 동참했다.같은해 11월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월경성용매의 규제에 관한 의정서에는 21개 나라가 서명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산성비 분쟁/ 70년대 이후 캐나다 동부와미국 동북부의산성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캐나다는 산성비의 50%가 미국 동북부 공업지대에서 날아온 아황산가스에 기인한 것이라며 미국에대책 마련을 요구했다.캐나다는 특히 산림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매우 강경한 태도를 견지했다.두 나라는 공동 연구를 실시한 뒤 80년 산성 물질 침전 문제에 대한 의향각서를 체결했다.또 91년 3월 아황산가스 등 산성비를 유발하는 물질의 대폭 삭감을 권고하는 내용의 대기협정을 맺었다. ■미국과 캐나다 제련소 간의 아황산가스 피해 분쟁 / 20세기 초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 트레일에 있는 제련소에서 발생된 아황산가스 등 오염물질로미국의 워싱턴주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27년 미국은 캐나다에 손해 배상을요구했고,캐나다는 41년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소련과 핀란드의 산성비 협정/ 핀란드는 소련과 인접한 국경지대의 산성도가 높아지자, 소련에 아황산가스 배출 억제를 요구했다.그결과 87년 핀란드 전역과 핀란드에 인접한 소련 영토에서 아황산가스 배출량을 50% 감축하는내용의 협정을 맺었다. ■미국과 멕시코의 환경협정/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의 동(銅)제련소에서 배출된 대기 오염물질이 미국으로 이동하자,미국과 멕시코는 74년 심포지엄을개최했다. 그 뒤 83년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지역의 환경 보호 및 향상을위한 협조 협정’을 체결했다.87년에는 두 나라 국경지역의 대기 오염을 규제하기 위한 의정서가 협정의 부속서로 채택됐다. 문호영기자. *역기능과 순기능. 봄의 불청객 황사는 호흡기 및 안과 질환을 유발하고 식물의 기공을 막아광합성을 방해,생육을 저해한다.그러나 황사는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등효자노릇도 한다. 황사 속에는 알칼리성 물질이 많이 포함돼 있어 산성비를 중화시킨다.우리나라에 내리는 산성비가 함유한 산성 물질의 양은 강(强)산성비가 내리는 북미 지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수소이온농도(pH)는 북미 지역보다 약(弱)하다. 황사 중의 석회성분이 산성비를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매년 한반도에 쌓이는 200만∼500만t의 황사에 포함된 석회성분은 대략 10%. 북미 지역이 토양과 호수의 산성화를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엄청난양의 석회를 뿌리는 데 반해,우리나라는 공짜로 20만∼50만t의 석회를 골고루 뿌리는 셈이다.이같은 양은 pH4.7의 산성비 1,300㎜를 중화시킬 수 있다. 연세대 화학과 이동수 교수는 “최근 5년간 서울에 내린 비의 평균 산도가 pH4.9인 점을 감안할 때 한반도에 유입되는 황사만으로도 전국 호수의 산성화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사에는 식물 생장을 돕는 마그네슘과 칼륨 성분도 많이 들어 있다.천연비료가 되는 셈이다.지난해 3월 말 서울에서 포집한 부유분진을 분석한 결과,마그네슘과 칼슘 성분이 1㎥당 0.25㎍과 3.13㎍으로 조사됐다.황사는 또 해양 플랑크톤에 무기염류를 공급함으로써 바다의 생산력을 높이기도 한다. 문호영기자
  • 부음/ 조만식선생 미망인 전선애여사

    독립운동가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선생의 미망인인 전선애 여사가 29일오전 7시 45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96세. 고인은 1904년 개성에서 태어 나 개성 호수돈여고와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교사생활을 하다가 37년 고당 선생과 결혼했다.해방 후 고당이 소련 군정에 의해 연금되자 선생의 머리카락을 간직하고 세 자녀와 함께 월남했으며일신감리교회 장로와 선인중·고 교장 등을 역임했다.91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조만식 선생 추모·안장식때 선생의 유해 대신 40여년간 간직해 온 머리카락을 묻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선영(62) 연흥(60·조선일보 제작국장 겸 이사) 연수씨(58) 등2남1녀가 있다.발인 31일 오전 9시 (02)363-9699
  • 특파원 수첩/ 美 ‘푸틴의 러시아’ 기대반 우려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블라디미르 푸틴이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러시아를보는 미국의 시각에는 우려와 기대가 반씩 섞여 있다.공식적으로 러시아정부에서 이름이 거론된지 8개월만에 대통령이란 최고 자리에 오른 푸틴에 대해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눈매에 무엇인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띤 그의 얼굴에서 경제적 가난과 사회적 병리현상에 찌든 러시아의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엿보는듯 하다가도 동시에 옛 소련 시절 권력에 맹종하면서 잔인성을 보여준 KGB의그늘도 느끼고 있다. 러시아가 어디로 흘러가겠느냐는 이제 52%의 국민적 지지를 받은 48세의 젊은 푸틴이 휘두를 권력의 향배에 전적으로 달렸기에 미국은 그의 미세한 언행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26일 대통령직에 당선되던 날 클린턴 대통령도 일단 당선축하 인사를보낸 뒤 러시아의 민주주의 신장과 국제사회와의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기를기대한다고 촉구하면서 이같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전달했다.또 당선 직후 그가 경제개혁과 법치 회복,부패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에 대해 일단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러시아가 보여주고 있는 혼란스런 모습에서 그가 무슨 일을 하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합된 국가 행정권력이다.미국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것도 바로 이 점.혼란을 추스리고 국가의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추구할 권력의 정비 와중에 흔히 보았던 독재와 권력전횡이 동전의 앞뒤처럼 언제든함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문제,자유로운 언론의 보장 등 민주주의가 신장되지 않은 국가권력의집중현상은 혼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또하나의 나치즘,파시즘의 등장이요,옛 소련의 재등장보다 더 세계가 원치 않는 것이다.미국으로선 당장 푸틴이 제대로 권력을 정비,당장 어려운 경제를 회복시키고 협력의 파트너로 등장하도록 협조한다는 방침이나 CIA가 러시아를 알듯 KGB 출신으로 미국을 알고 있는 그가 미국을 어떻게 대할지는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다. hay@
  • [사설] 푸틴시대, 러시아의 앞날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권한대행이 투표자의 과반수가 넘는 지지로 당선됐다.40대의 젊은 지도자를 선택한 러시아의 새로운 앞날과 변화를 세계는 기대와 우려 속에 주목하고 있다. 푸틴 대행의 당선은 이미 예상됐던 결과였다.지난해 8월 옐친 전대통령에의해 총리로 임명되기 전까지 대중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푸틴이 불과 7개월여 만에 강한 추진력과 젊음으로 대권을 잡게 된 것이다.지난 9년여의 옐친 통치기간에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던 러시아 국민들이 젊은 푸틴의 강력한 지도력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푸틴 당선자는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들이 많다.국내적으로는 옛소련 해체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개혁과정에서 초래된 혼란과 부패를 추방하고 경제난을 해소하는 일이 당장 시급할 것이다.그가 약속한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는 크지만 그의 능력과 수단은 아직미지수다.옛소련의 국가안보위원회(KGB) 출신이라는 경력과 체첸전쟁의 강행이강력한 독재통치 우려까지 나오게 만든다.러시아가 그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법과 질서를 되찾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착실히 진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푸틴 시대의 개막은 대외정책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지난해 12월 옐친 대통령의 전격적인 사임 이후 권한대행을 맡아왔기 때문에 대외정책의 큰 줄기는 그대로 유지하겠지만 머지않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러시아의 힘을 나타내려 할 것이다.푸틴 권한대행 주도로 지난 1월 채택된 러시아의 ‘신 국가안보개념’이 미국 중심의 일극(一極)주의 견제를 목표로 대통령의 안보정책에 대한 권한을 대폭 강화시킨 것도 이러한 우려를 크게 만들고 있다.오는 11월의 미국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러시아의 경쟁의식은 더욱 가속화될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러시아의 대외정책 변화는 동북아정세 및 한반도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끼칠 수 있다.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가 해결해야 하고 이를 위해 남북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푸틴 시대에도 러시아의 이러한 한반도 정책에 변화는 없을 것으로기대한다. 올해로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 10주년을 맞는다.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은 궁극적으로 러시아의 국익과도 부합한다.한국과의 경제협력은 러시아의 경제회복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푸틴 시대 개막을 계기로 한·러 관계가 더욱가까워지기를 바란다.아울러 정부는 러시아의 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주의깊게 지켜보며 적절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 안중근의사 순국의 현장

    *뤼순감옥의 안중근과 신채호. 안중근의사 순국일인 3월 26일 중국 요령성 뤼순시 향양가 139호 원호방에자리한 뤼순감옥은 90년전 동양천지를 진동한 의사(義士)의 죽음을 아는지모르는지 이날따라 많은 중국인 참관자들로 하루종일 붐볐다. 봄기운 완연한 따사한 햇살아래 사위가 붉은 벽돌 담벽으로 둘러싸인 고색창연한 뤼순감옥은 일제에 저항한 수많은 중국애국자들의 수난의 장소지만지금은 역사관광지가 되고있다. 워낙 큰사건 큰인물이라 안의사가 순국한 날까지 갇혀있던 ‘특설감방’은의사가 5개월동안 머물면서 사용했던 지필묵과 몇가지 유품이 전시되고 벽에는 휘호 두점이 걸려있었다. 의사 순국 90주년을 맞아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이사장 박보희)간부들이 안의사의 흔적이 깃든 감방에서 간소한 추념식을 갖고 서울에서 만들어온안내판 현판식을 거행했다. 뤼순감옥은 중국정부가 국가지정 중요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관리하고 있다. 공식 명칭은 ‘여순일아감옥구지(旅順日俄監獄舊址)진열관’이다. 50여만명의 중국 항일정치범과 사상범그리고 일부 한국독립운동가가 이곳에서옥살이를 하고 상당수는 처형되거나 옥사했다. 일제는 ‘국사범’또는 ‘회유’의 차원에서 일반 재소자의 감방이 아닌 간수사무실 바로 옆에 특별감방을 만들어 안의사를 수감했다. 이것을 근년에복원하여 요즘 ‘특별관리’하고 있다. 중국정부도 안의사의 인격과 거사를높이 평가하여 외국인 중에는 유일하게 ‘안의사감방’을 보존·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채호선생도 이곳에서 옥사 뤼순감옥은 뤼순시의 역사와 함께 제국주의 침탈의 고난의 사력(史歷)을 간직한 곳이다. 원래 러시아제국이 1902년 동북3성을 장악하고 저항하는 양민들을 수감하고자 신식감옥을 신축한 것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확장공사를 하여 1907년에는 감방 253칸, 중벌수형자용 독감방4칸 등 2천여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감옥을 만든것이 오늘에 이른다. 우리가 뤼순감옥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안의사의 순국과 함께 신채호선생이 이곳에서 8년 옥고끝에 옥사당한 사유때문이다. 단재는 안의사가 순국한지 18년이 지난 1928년 5월 대만 기륭항에서 일본 수상서원에게 체포되어 이곳에 수감되었다. 대련(大連)법정에서 10년형의 선고를 받고 뤼순감옥으로 압송되어 복역한 것이다. 단재는 죄수번호 411번으로 붉은 수의를 입고한많은 옥살이를 이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이른바 위채(爲채)사건으로 그와함께 수감된 임병문은 26세로 재판과정에 고문으로 숨지고 이지영 ·이종원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 감옥살이 8년만에 단재는 건강이 심히 악화되었다. 형무소측의 병보석 출감회유에도 친일파에게 몸을 맡길 수 없다는 대의를 내세워 단호히 거절하다가 1936년 2월 18일 파란만장한 생애를 접었다. 옥사한 것이다. 유해는 곡절끝에 충북 청원군 향리에 모셔졌다. 애국자들의 혼령 깃든 곳 뤼순감옥 수인묘지 어딘가에 묻혀있을 안의사의 유해는 순국 90주년이 지난지금까지도 찾을 길이 막막하다. 1986년 7월 북한에서 유해발굴단이 수인묘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신채호선생이 8년동안 옥고를 치룬 감방은 위치가 어디쯤인지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제가 쫓겨가면서 모든 자료를 불사른 때문이다. 다행이 진열관의 낡은 서류철에서 찾은 뤼순감옥에 입감할 때 찍은 퇴색한 한장의 사진이 그나마 ‘존재증명’이랄까. 옛날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인 뤼순의 언덕받이에 자리한 감방에서 남다른애국심과 역사의식이 투철했던 안의사와 단재 선생 그리고 무명지사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이역에서 몸을 불살랐을까. 안의사의 유해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현지에서 새삼 절감했다. 중국측의 태도도 아직은 미지수다. 그렇지만 더 늦기전에 남북이 협력하여 중국정부를 설득해서라도 반드시 유해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단재 선생이 옥고를 치룬 감방의 위치라도 알아야 한다. 역사의 정의를 위해서. 뤼순에서. kimsu@. *인근 거주 중국인 증언.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유해는 뤼순감옥에서 동쪽방향으로 500∼600m 지점에 있습니다, 최근 일본전문가들이 발견한 지도에 나온 뤼순감옥 동남쪽 300m 지점에서 동북쪽으로 200~300m 더 가야 합니다” . 중국인 탄충쿠이(潭忠魁·79)씨는 “안의사께선 순국당시여순 고등법원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800m 지점에 묻히셨다”고 증언했다. 안의사의 순국추모식이 열렸던 지난 26일.기자는 뤼순감옥 부근에 살고있는탄 노인을 만나 그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그는 일제(日帝)때부터 뤼순감옥 주변 마을인 위엔바오지에(元寶街) 56호에 살아온 이곳 토박이.그 역시안의사의 순국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감옥 관계자,당시 지역 노인,일본인관계자들로부터 안 의사의 묘지 위치를 여러차례 확인해 지금까지 기억하고있다고 밝혔다. □45년 당시 상황은. 일제가 패망하고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감옥과 일반 묘지에 대한 파괴행위는없었다.다만 일본인 납골당과 군인 묘지는 폭파시키고 떠났다.한국인과 중국인 수감자들의 유해는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안의사의 유해도 마찬가지다. □이후 훼손됐을 가능성은. 일제 패망직후 소련군이 진주해 점령했지만 훼손 행위는 없었다.1970년이후이 지역의 개발이 가속화됐지만 유해가 묻혀있는 지역은 포함돼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다렌(大連)의 일본학교를 졸업한뒤 지난 1942년부터 조선은행에서 일하면서 많은 조선사람들과 접촉하며 친분을 쌓으면서 안중근을 존경해 왔다.일본패망전에 일본인들로부터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묘소와 관련한 다른 정보는. 지난 85년 판우충(潘茂忠)뤼순감옥 전시관 연구원은 안의사의 묘지를 표시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당시 미국에 있던 안중근 의사의 손자들이 감옥전시관에 전달해온 자료였다.판 연구원의 일본어 선생인 나는 안의사의 유해에 대한 많은 토론을 나눌 수 있었다. □안의사 유해발굴에 대한 북한의 관심은. 지난 86년 북한의 당정(黨政)대표단이 방문,안의사의 유해의 위치를 확인한적이 있다. 판 연구원은 안의사의 묘지 표시도를 근거로 북측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유해발굴에 북측도 높은 관심을 밝혔었다. 뤼순 김삼웅 주필@kdaily.com. *뤼순감옥은 어떤곳. 한민족의 비통과 투쟁의 숨결이 담긴 뤼순(旅順)감옥.50여년의 풍상속에서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뤼순시 외곽 위안바오방(元寶房)지역에서 지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민족의 스승인 단재 신채호(申采浩)선생과 안중근 의사가 의로운 삶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총 면적 22만6,000㎡.감옥주위에는 높이 4m ,둘레 725m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회색 벽돌건물은 러시아가 지은 것이고 붉은 벽돌건물은 일제가건축했다.감방수는 253칸.한 칸이 가로 5.6,폭 2.7m였다.일제말기 감독원만120명 가량됐다. 각종 고문도구와 고문실,햇볕이 통하지 않는 암실 등도 발견됐다.교수형을 집행하는 곳도 그대로 남아있다. 1939년부터 일제에 의해 ‘여순 형무소’라고 불렸다. 제정러시아가 얼지않는 항구를 찾아 남하정책에 박차를 가하던 19세기말부터의 역사를 담고 있다. 1898년 3월 차르 황제의 러시아제국이 다롄(大連)과 뤼순(旅順)을 조차한뒤 이곳에 관동주(關東州)총독부를 설치했다.그뒤 1902년 식민지배를 위한감옥을 건설한다. 러·일전쟁이후 이곳을 점령한 일제는 러시아가 지어놓은 85칸의 감옥을 257칸으로 늘리고 ‘관동도감부 감옥서’(關東都督府 監獄署)라고 불렀다.그뒤1920년에는 관동청 감옥(關東廳 監獄)으로,1926년에는 ‘關東廳 형무소’ 로,1934년 ‘관동 형무소’로 개칭한다.일제의 식민지배가 강화될수록 형무소가 커지고 수형자에 대한 탄압도 강화됐다.
  • 러시아 대선 D-2/ 판세와 향후 전망

    러시아 대통령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26일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1시)실시되는 이번 대선은 소연방 해체 후 세번째 치러지는 선거로 포스트 옐친 시대의 러시아 진로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행사다. 이번 선거 최대의 관심사는 지난 12월 31일 전격 사임한 옐친이 후계자로지명한 뒤 지지율에서 독주를 계속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47)대통령 직무대행이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지을지 여부.1차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후보가 총 투표수의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오는 4월 16일 1·2위간결선투표를 치르게 된다. 지난해 12월 19일 총선에서 푸틴의 통합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뒤 푸틴은 지지율 60%이상을 유지,1차 투표에서 무난히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점쳐졌다.그러나 최근 “옐친과 다른 게 없다”“구 소련체제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정서가 생겨나면서 지지율이 50%이하로 하락,과반수 지지 획득여부가 불확실해지고 있다. 알렉산드르 베시냐코프 중앙선거관리 위원장은 22일 일간 이즈베스티야와가진 회견에서 푸틴의 지지도가 1차투표 승리에 필요한 50%에 못미친다는 여론 조사를 언급하며 “2차투표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하지만 2차 투표가 치러진다 하더라도 푸틴의 승리는 확실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초 출마를 선언한 후보는 12명.후보 사퇴 마감시한인 21일 대통령 행정실출신의 사보스티야노프가 야블린스키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후보는 11명이됐다.실질적으로 푸틴과 맞서는 후보는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뿐이다. 3번째 대선에 출마한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유일한 여성후보인 엘라 팜필로바 등 군소후보들은 지지율이 5%에도 못미치고 있다. 96년 대선에서 옐친에 맞서 2차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주가노프는 최근 지지율이 상승,28%를 넘나들고 있다. 푸틴 인기의 비결은 대 체첸 강공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강한 러시아’가부활될 것이란 희망을 심어준데서 찾을수있다.부패척결,깨끗하고 효율적인정부,법질서 확립등을 공약으로 내건 푸틴은 러시아 산업의 70%를 차지하는군사산업을 부활시키는 동시에 공무원의 최저생계비를 인상하겠다는 공약등을 내걸었다.또한 러시아내 기업인들과 친서방 유권자들을 의식,‘글로벌 러시아’를 내걸고 있다.그러나 크렘린내 가신그룹을 포함한 정재계 기득권 세력의 지원으로 권좌에 오른 푸틴의 태생적 한계,국가경제개입 및 언론 통제·정보감시기구 강화 등 그가 최근 보여준 행보는 앞으로 푸틴의 러시아가옐친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어떻게 치러지나. 러시아 대권은 1차 투표와 결선투표를 통해 향방이 결정된다. 1차 투표에서 투표자 50% 이상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나오지 않을 경우,상위 득표자 2명을 놓고 3주 후인 4월 16일 결선투표를 실시한다.결선 투표에서단순 다수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전체 유권자수는 83만 9,000명의 재외 유권자를 포함,1억 794만명.전국에 9만 4,500개,재외 공관 등지에 358여개의 별도 임시 투표소가 설치됐다. 투표시간은 각지역에서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8시에 완료된다.모스크바와 한국과의 시차는 5시간이다.1차 최종 결과는 27일 오전 8∼9시(한국시간 오후 1시∼2시)에 나올 예정이며 확정 결과는 4월 4일 이전에 발표될 예정이다.300여명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의원연맹이 선거 주참관인단으로 참관한다. 넓은 영토 탓에 극동 어촌과 군함 및 어선,군사지역,체첸 등지의 약 50만유권자들은 지난 15일부터 투표에 들어갔다.남극지방의 5개 기지와 2척의 선박에 위치한 365명도 18∼22일 투표를 실시했다. *푸틴은 누구인가. 이변이 없는 한 러시아 대권을 거머쥘 것이 확실시되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47) 현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99년8월 총리직에 전격 발탁돼 혜성처럼 중앙정가에 등장하기 전까지 그에 대해선 KGB(국가보안위원회·구 소련 비밀경찰)출신이라는 점 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하지만 유력 대권후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과거행적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푸틴 이해를 위한 키워드는 역시 17년 KGB 경력이 아닐수 없다.75년 상트페테르스부르크 국립대 법학부를 나온 뒤 곧바로 KGB 첩보원이 된 푸틴은 84년 구동독에 투입돼 동독붕괴 뒤인 90년 말까지 상주했다. 전문가들은 89년 동독붕괴는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90년대 초반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시에서 당시 소브차크 민선시장의 측근으로 푸틴은 독일 등으로부터의 외자유치,비효율 사업체의 민영화 등 자유경쟁을 적극 도입했다.KGB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푸틴은 98년 7월 KGB 후신인 FSB(러시아연방보안국)국장 취임 이후 99년말 옐친으로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낙점받기까지 벼락출세가도를 달려왔다. 그는 취임 이후 인기만회를 노려 옐친의 둘째딸이자 대외이미지 담당관인타티아나 디아첸코를 전격 해임하는 책략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결정적으로 체첸전을 불붙여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는 데 이용했다.상트 페테르스부르크 시장 보좌관 시절의 무역대금 횡령의혹,체첸전 잔혹상 등에 대한 비판도 있다.승무원 출신인 부인 류드밀라와의 사이에 연년생 딸 둘을 둔 그는유도 등 무술에 남다른 취미가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차기대통령 풀어야할 과제. 살인사건 발생률 세계 최고,인구의 절반이 빈곤상태에서 생활하는 경제,남성 평균 수명 60.8세…. 차기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러시아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경제 91년 소 연방 붕과 이후 러시아 경제는 폐허 그 자체다.만연한 부패,권력에 유착한 특권층의 할거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국민총생산은 90년대절반으로 떨어졌다.지난해 1억5,000만명 인구의 경제생산량은 1,000만 인구의 벨기에보다 낮다.대외부채는 1,660억달러에 이른다.공식 실업률은 12%.실제론 이를 훨씬 넘어선다.소득 829루블(34달러)이하의 빈곤층이 6,000만명. ■범죄 러시아 경제붕괴는 범죄 폭증을 불러왔다.납치 살인 달러위조 마약거래 등 마피아들의 조직범죄는 극을 달하고있다.98년 살인사건 발생은 인구 10만명당 20명.10만명당 6.3명인 미국의 3배다.자본과 결탁한 마피아세력의정치세력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 ■공중보건 경제와 법질서 붕괴로 공공보건 시스템 역시 무너졌다.지난해 러시아 남성의 평균 수명은 60.8세.94년 57.4세보단 그나마 나아진 상황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등도 2년사이 2배나 증가했다.여성들이 자녀출산을 꺼리면서 신생아수가 92년보다 300만명이 줄었다. ■체첸 사태 체첸공화국 분리투쟁을 비롯한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 지방 이슬람권 공화국의 분리 투쟁과 내전은 앞으로 해결해야할 최대 과제다. 체첸 난민 지원문제와 이들의 인권유린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비등하는 비난도 큰 짐이다. 김수정기자
  • “푸틴 승리땐 舊蘇체제 회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직무대행이 26일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러시아가 과거 소련과 유사한 체제로 되돌아 갈지도모른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1일 보도했다. 포스트는 이날 모스크바발 보도에서 러시아의 정치분석가 및 비판가들의 말을 인용,푸틴 직무대행의 정책이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상반되는 것이라면서그가 선거에서 승리하면 공산정권 붕괴 이후 경험했던 다원적인 민주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러시아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옛 소련 비밀경찰 국가안보위원회(KGB)요원 출신으로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 당선이 예상되는 푸틴 직무대행이 러시아의 진로를 바꿀 것인지가 주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소개하고 많은 정치 분석가들은 그가 러시아의 진로 변경을 바라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푸틴 직무대행 집권 이후 지금까지 드러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중의하나가 박해와 기만으로 체첸전쟁에 대한 언론의 취재·보도를 통제하려는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푸틴 직무대행은 이밖에도 지방 행정책임자를 민주선거 대신 크렘린에서 임명할 것임을 시사했고 비밀정보기관의 수사권한을 확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는가 하면 체첸에서 러시아군이 자행한 인권침해사례 보고서를 묵살하는 등강권통치를 시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포스트는 덧붙였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 [시베리아 대탐방](13)시베리아의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

    시베리아의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고려인(카레이스키)들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른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간난(艱難)과 신산(辛酸)의 세월을 이겨내고 제법 여유있는 생활을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닦아 놓은 덕분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중심가에위치한 한국 음식점 오아시스는 고려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이곳에 들어가면 건설업체 KPP를 경영하고 있는 김우광(金佑光) 사장(66) 등 고려인 1∼3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봉용 고려인 문화관장(53)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1세대들은 기후와토양이 다른 이곳에 적응하기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며 “그러나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현재 시베리아 지역에 살고 있는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인들보다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하기까지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사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구한말(舊韓末)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연해주로,1937년 스탈린의 추방정책으로 다시 연해주에서 시베리아,중앙아시아로 쫓겨났던 고려인들의 유랑은 지난 1863년부터 시작됐다. 피폐한 한반도에서 굶주림을 못이겨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간 초기 고려인들은 순탄하게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1919년 3·1운동 후 월경자가급격히 늘어나자 옛 소련 당국이 국경을 봉쇄했다. 당시에는 연해주 18만여명의 고려인들은 그리 넉넉한 생활을 영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만족하며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잡자마자 불행하게도 비극이 찾아왔다.스탈린이 연해주고려인들을 시베리아 등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은 1937년 9월9일. 1937년 8월21일 공산당 중앙위 서기 스탈린과 인민위원장 몰로토프가 서명한 ‘극비 문서 1428326’에서 비롯된 강제 이주의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과의 공모,또는 스파이 혐의’였다.그러나 실제로는 스탈린이 자행한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하나였을 따름이다.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은 이날 느닷없이 날아든 소련당국의통지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하나둘 모여들었다.일부 가재도구만 챙긴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시베리아 열차속에 짐짝처럼 부려졌다.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고려인들의 앞날에는 척박한 시베리아의 황무지가 저승사자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37년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해였습니다.할아버지는 19세기말 연해주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었습니다.그러나 일본말을 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종적도 모르는 곳으로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고려인 1세인 이학로씨(가명·77)가 털어놓은 비극적인 삶의 고백이다.고려인들은 밀폐된 화물 열차에 태워져 3개월동안의 ‘죽음의 여정’을 거쳐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와 알마타 등으로 옮겨졌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노약자와 어린이 등 이주민들의 20%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노보시비르스크의 교회에 병든 몸을 의탁하고 있는 김 나제즈다씨(70·여)는 “영하 60도 가까이 내려가는 혹독한 겨울이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야쿠트공화국에 몰려와 엄청난 추위와 참을 수 없는 굶주림,전염병으로 어린아이들이 죽어나갔다”며 “카마 마루스카(경찰차)가 돌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어느새 김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데다 밥이 아닌 빵으로 연명하다 보니 많은 고려인들이영양실조에 걸렸고 위장병과 간장병에 시달렸다.그러나 약도 없었고 치료도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씨는 당시 가장 슬픈 기억중 하나가 쓰레기통을 뒤져버려진 감자껍질을 찾아 씹어 먹던 일이라며 그때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병으로 지금까지 고생하며 거동이 불편하다고 전한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해에는 고려인들이 수확한 쌀 전량을 옛 소련 당국이 빼앗아 군대로 보내버린 일도 있었다.한번 잘 살아보려던 고려인들의 열망과 의욕은 또 한번 산산이 깨져버린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시베리아의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를 짓고 각종 채소를 재배해 옛소련 당국을 놀라게 했다.고려인들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높은 교육열로 거주제한 등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시베리아를 옥토로 바꿔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 강제 이주를 체험한 고려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날이 가져다준생채기가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생존자들 대부분은 이제 60대 후반이나 70대의 고령자들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가슴속에는 아직도 그때의 생채기가 자리잡고 있어 이들에게는 진정한 고향도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고려인들은 당시 이주가 불법이었다며 러시아 정부에 ‘고려인들의 명예회복’을 호소하고 있다.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 마음 편하게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김규환 특파원 khkim@. *강제이주 金나제즈다씨. “조국 한국의 품에 안겨 마음 편하게 남은 삶을 살아보는 게 나의 조그마한 소원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 간 1930년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역사를 대변하는산증인 김 나제즈다씨(70·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기위해 이름도 ‘나제즈다(소망이라는 뜻의 러시아어)’로 지었다. 김씨가 옛 소련 스탈린의 추방정책에 따라 강제 이주당해 시베리아로 떠돈60여년의 유랑생활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이다.러시아극동 우수리스크 인근 수후사에서 부모형제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1937년정치·사상범으로 몰려 아버지와 어머니,남동생과 함께 가장 추운 야쿠트공화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당시 그곳에는 강제 이주돼온 고려인 100가구가 있었어요.그때 아무런 이유없이 아버지는 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아버지는 형무소에서 얻은 지병으로 37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기 위해 집을 나선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때 나이가 겨우 8살이었어요.나의 기억으로아버지 친구들은 당시 모두 총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언니도 이때 영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고아가 된 김씨는 남동생과 함께 지금의 야쿠트공화국내 ‘알단고아원’에맡겨졌다.“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잘 기억할 수 없어요.나중에 들은얘기로는아버지가 독립군이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김씨의 고아원 생활은 순탄했다.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공부를 제법 잘하고모든 일에 앞장서 고아원 일을 도와줘 고아원 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 덕분에 고아원 원장의 도움으로 마가단 광산전문대학에도 진학하게 됐다. 광산전문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59년 마가단에서 만난 러시아인과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두명의 아들을 낳으면서 행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달콤한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첫째 아들을 여의는 아픔을 겪었던 까닭이다.76년에는 남편과 사별하면서 생활마저 궁핍해졌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릴 때의 고아원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나이가 들어영양결핍 증세를 보이며 시력이 약화돼 지금은 실명 상태나 다름없다. “국가에서 연금으로 20달러를 받아요.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그동안 지난(至難)한 칠십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아직도 강제이주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로운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 김규환 특파원
  • [대한시론] 정치의 인간화

    영국 역사가 크리스토퍼 도슨은 현대사회가 급격하게 정치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산업화가 진척할수록 정치의 영향은 경제,교육,문화,사상 등인간생활 전 영역에서 크게 증폭하기 때문이다.사회가 전적으로 정치화된 사례는 과거 소련체제에서 볼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북한이 극단적으로 정치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4·13총선을 눈 앞에 둔 오늘,우리 모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크게 고조시켜야 할 때이다.바른 지도자들을 국회에 보내야만 한다.그러나 우리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질수록 오늘의 정치현상은 우리에게 낙담을 준다.‘정치인’이란 낱말은 마치 ‘부패한,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말과 동일하게 일반시민의 마음 속에 떠오른다.1969년 전 미국 대통령 제럴드포드는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정치적 지도자들의 말을 국민이 전혀 믿어주지 않는 것―신용의 갭―에 있다고 지적했다.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상이다. 그러면 정치란 무엇인가.많은 사람들은 오늘의 정치를 마키아벨리즘으로 혼돈하고 있다.16세기 초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는“정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쟁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그러나 우리 조상들은정치를 正(바른 정)과 父(아비 부)의 합성어로 생각했다.즉 정치는 ‘바른일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정치에서 바른 것을 빼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고 권력의 횡포에 불과하다. 데모크라시(Democracy)라는 말의 어원이 고대 희랍어 데모스(Demos·민중)와 크라토스(Cratos·통치)의 합성어인 것에 비추어볼 때 정치는 민중이 자기들의 진정한 뜻을 발표할 수 있고,또 지도자들은 겸허하게 그 말을 경청하고 시행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대 이스라엘의 정치를 보아도 그 원리가첫째,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특수한 존재로서 생존권과 자유권을향유해야 하며 둘째,법 밑에서는 만인이 평등해야 하며 셋째,정치 지도자들은 민중과의 계약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기본원리가 있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도 이런 원칙을 바르게 지켜 나가기 바란다.이를 위해서는 민중의 각성이 참으로 요구된다.오늘의 선거장은또다시 구태의연한모습이 재현되고 있다.지역감정,색깔론 등으로 표 몰이를 강행하는 경우가많다.정치 현장에 뛰어든 사람들로서는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바른 선거전을 하기에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그럴진대 이러한 정치 혼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과 양식에 달려 있다고할 수 있다. 1776년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할 때 역설한 바와 같이 사람이 갖고 있는 양도할 수 없는 인권―생명권,자유권,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을 보장,신장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 과업이다.남북전쟁 당시 링컨 미국 대통령이 이야기한 대로 정치는 ‘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새 천년이 개막되었는데도 정치에는 새로움이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정당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비난하고 물고찢는 싸움은 하고 있으면서도 21세기 조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확실한 비전을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새 천년의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세계화,정보화 등의 말이 논의되기는 하지만 그런 과업들은 좀더 높은 이상 곧‘인간화’를 이루기 위한수단이지 결코 종국적 목표가 될 수 없다. 모름지기 이번 4·13총선은 정치가 국민 모두의 생존권,자유권,평등권 등을 신장하여 민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정부를만드는 역사적 전환이 되기 바란다.그러한 비전이 우리 모두의 마음깊이 심어질 때 참된 민주통일의 새벽이 밝아올 것이다. 李元卨 前 한남대 총장 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
  • [타이완 총통선거] 집권당 인기 추락… “바꿔 바꿔” 목청

    [타이베이 김규환특파원] 18일 치러지는 타이완 총통선거가 유례없는 혼전으로 치닫는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은 전하고 있다. 제1야당인 민진당의 천수이볜을 선두로 무소속의 쑹추이 후보와 집권 국민당의 롄잔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2,3위를 다투고 있어 누가 당선될지 점치기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혼전 속에서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51년간 타이완을 지배해온 국민당의 시대가 이제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는 천수이볜과 쑹추이 가운데 누구를 총통으로 지지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둘다 롄잔만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고 타이베이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말한다. 그는 이어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변화다”고 덧붙였다.인터넷회사에 다니는캐롤 황양(22)도 “롄잔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라도 찍겠다.롄잔의 얘기에서국민당을 지지해 달라는 말을 빼면 들을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40년 가까운 계엄령,오랜 일당 독재에 따른 부패의 만연과 금권의 야합 등으로 국민당의 인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국민당에대한 염증과 함께 민주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난 젊은 층의 확산은 타이완 국민들간의 화두를 변화로몰아가고 있다. 이처럼 ‘바꿔보자’는 분위기에 힘입어 18일의 총통선거는 타이완이 새 시대로 접어듦을 알리는 서막이 될 것이다. 타이완 총통선거를 보는 국제사회의 관심은 온통 중국-타이완 관계가 어떻게 정립되느냐는 데에만 쏠려 있다. 그러나 타이완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현 집권 국민당이 본토로부터 건너온 것은 사실이지만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지금의 현실을 바탕으로 양안관계가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거듭되는 무력위협에 대해서도 대다수의 타이완 국민들은 누가 당선되든 중국이 타이완을 무력공격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무력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한 해결 방식이 모색될 것이란 얘기다. 전쟁은 타이완은 물론 중국과 아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 모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관심은 오히려 부패 청산,관료주의 종식,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증대와 같은 생활에 직결된 부문에쏠리고 있다. 18일의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힘들다.그러나 타이완에서도 이제 변화에 대한 욕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추세다. 그런 점에서 횡령 스캔들로 타격을 받은 바 있는 쑹추이 후보보다는 타이베이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일으켰던 천수이볜 후보쪽이당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khkim@. *국민당 51년史…정치탄압속 경제성장 이뤄. 장제스(蔣介石)가 1949년 국공 내전에서 마오저뚱(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에 패배,타이완(臺灣)으로 불명예 퇴각한 뒤로 국민당은 타이완을 51년째 장기 통치해오고 있다. 국민당 군대와 정부 관료 등 200만명의 피난민을 이끌고 타이완으로 옮겨온장제스의 국민당은 쑨원(孫文)의 삼민주의(민족·민주·민생주의)에 기초를두고 있다. 국민당은 중국본토 회복이라는 목표 아래 같은 해 12월 타이베이를 중국의 임시 수도로 정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계엄령은 87년 해제될 때까지 37년이나 지속되면서 국민들의 정치·사회적 자유를 제한했다.국민당은입법 뿐아니라 사법·행정의 3권을 장악해 실질적인 ‘일당독재 체제’를유지해왔다. 극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는 보루로 인식,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군사·경제 원조를 받으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누렸다.그러나 이후 국제사회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가시화됐고 71년 10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중국에게 넘겨주고 유엔에서 탈퇴했다.72년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타이완과는 단교했다. 75년 장제스 총통이 사망하자 아들인 장징궈(蔣經國)가 대를 이어 후임 총통에 올랐고 89년 타이완인 출신의 리덩후이(李登煇)가 처음으로 총통에 취임했다. 국민당 집권 51년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놀랄 만한 경제성장.국민당은 집권기간 동안 인구 2,200만명의 타이완을 경제규모 세계 19위,무역규모 14위,1인당 GNP 세계 25위에 올려놓았다.반면 오랜 계엄 치하에서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언론(표현)·결사·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절저히 제한해 왔다. 정치적 반대파를 수천명씩 투옥,처형하고 타이완 방언의 사용을 금지하는 등타이완 원주민에 대한 탄압은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86년 첫 야당인 민주진보당이 등장했을 정도다. 김균미기자 kmkim@. *中 ­타이완 ‘급속 냉각’예고. “타이완(臺灣)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다.나라명은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아니다.두 국가는 같은 문화와 조상을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더 친하고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뿐이다.”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타이완의 독립국 선포 필요성을 주장,21세기 중국-타이완관계의 극단적 냉각을 예고하며 막판 세몰이를 하고 있는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49)후보.‘독립강령’으로 불거진 선거전의 ‘북풍’과 중국지도부의 무력위협 속에서도 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후보와 무소속 쑹추위(宋楚瑜) 후보를 앞서고 있다. 중국의 무력위협으로 기득권·보수세력의 반발 바람이 거세지자 “중국이무력침공을 하지 않는 한 독립선포는 하지 않겠다”며 물러서긴 했다.그러나 표를 의식한 일시적인 수위조절용 발언이라는 게 중론이다. 천 후보의 중국관은 전체주의국가 중국과 민주주의국가인 타이완은 주권과통치 사법체계에서 완전히 다른 나라이므로 1국가2체제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이때문에 중국 정부는 천을 당선기피 후보 1호로 꼽는다. 94년 타이베이시 민선 시장에 당선된 40대의 천 후보는 개혁적 이미지로 젊은 층과 농촌지역·도시 저소득층 유권자의 인기를 얻고 있다.타이완 남부의 가난한 사탕수수농가 출신으로 타이완국립대 법대를 졸업했다.선박회사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 80년 반정부인사들의 인권변호에 나서면서 명성을 얻었고 89년 국회의원에 진출한 뒤 의회내 국가안보위 공동의장을 맡으면서 민진당내 총아로 등장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3人후보 ‘하나의 중국’ 반대. 총통선거를 앞둔 타이완(臺灣)에서 독립열기가 뜨겁다. 주요 후보들은 16일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15일 타이완(臺灣)유권자들에게 독립주의자 후보를 선출할 경우 좌시하지 않고 전쟁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데 대해 일제히 선거에 간섭하지 말라고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타이완을 중국 본토의 일부로 통일돼야 할 ‘반도들의 성(省)’으로 여겨 존재는 인정하되 독립국가의 지위는 부인하는 ‘1국2체제’ 입장을 갖고 있다. 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 후보와 무소속의 쑹추위(宋楚瑜) 후보는 타이완이 주권국가임을 내세워 주총리의 경고를 받아쳤다.중국의 1국2체제를 거부하는 국민당의 ‘양국론(兩國論)’ 노선을 따르고 있는 렌 후보는 이날 시내 웨스틴 타이베이 호텔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타이완은 주권독립국가로서 어떤국가도 선거결과에 대해 간여할 수 없다”며 주총리를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양안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그와 유권자를 ‘중국인’이라고 불러 대륙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다.이번 총통선거에서 유일하게 대륙출신(중국 호북성)으로 중국과준(準)국가관계 수립을 내세우고 있는 쑹추위 후보도 주총리를 비난하기는마찬 가지였다.그는 이날 저녁 타이베이 시내에서 가진 유세에서 “주권독립국가인 우리는 대륙과의 담판을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의 반발 수위가 가장 높았다.그는 16일 핑퉁(屛東)에서 가진 유세에서“1국2체제는 수용할 수 없으며 타이완이 홍콩이나 마카오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그는 하루전 가우슝(高雄)에서도 “주총리가 ‘테러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면서“유권자들은 협박당하지 않을 뿐더러 베이징의 ‘1국2체제’하에서는 통일은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주총리를 맹비난했다. 천후보는 이와 함께 자신이 렌잔이나 쑹후보와는 달리 타이완인임을 내세워 중국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30세 미만의 젊은층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중국본토 출신은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하며 30세 미만은 유권자의 4분의 1정도다.한편 타이완 대륙위원회의 쑤치(蘇起) 주임(통일부장관격)도 15일 주 총리의 발언은 명백한 선거간섭이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어떤 기도에도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박희준기자 pn
  • 국립·유니버설 발레단 새봄 여는 ‘갈라’ 맞대결

    한국발레의 두 기둥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새봄 맞대결을 벌인다.두 발레단의 이번 공연은 ‘하이라이트 모음’인 갈라 형식.해마다 연말 같은 기간에 ‘호두까기인형’을 각각 무대에 세워 손님끌기 경쟁에 나서곤 했지만 개막 시즌에,갈라로 맞붙기는 좀처럼 없는 일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국립발레단은 97회 정기공연으로 ‘새봄을 여는 클래식 앤 모던 발레’를 23∼26일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 올린다.23·24일 오후7시30분,25일 오후 4시·7시,26일 오후4시.(02)2274-1162. 제목에서 보이듯 고전발레 둘,현대발레 다섯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여줘 비교·감상하게끔 했다.고전발레는 마리우스 프티파의 ‘파키타’,쥘 페로의 ‘에스메랄다’중 그랑 파드되이고 현대발레는 ‘에테르니테’가운데 ‘질투’,그리고 지난해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에서 초연해 호평받은 토루 시마자키의 ‘너의 바닷가’등이다. 이 가운데 ‘에스메랄다’와 게이코 야가미의 ‘조화’‘얼어붙은 눈(Frozen eyes)’등 3편은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안무는 김혜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최태지 국립발레단장등 5명이 맡았다.남녀의 사랑이야기,권선징악,동화적 환상 등 대중이 좋아할만한 작품을 고루 섞은 것이 장점.또 하나 관심끄는 점은 국립발레단의 ‘스타시스템’이 변한다는 사실.김지영과 짝을 이뤄 최고 인기를 누리던 김용걸이 파리오페라단에 들어간 뒤 첫 공연이어서새 커플이 여럿 등장한다.김지영은 이원국과,김주원은 최세영과 새짝을 이루었다.또 새내기로 김보연-원자승 커플이 무대에 선다. 한편 유니버설은 ‘러시아 전통발레 걸작선’으로 올해 두번째 공연을 갖는다.23·24일 오후3시 리틀엔젤스예술회관.(02)1588-7890. 13작품의 진수를 하나씩 펼쳐낸다.‘돈키호테’‘백조의 호수’‘베니스의축제’‘호두까기인형’‘잠자는 숲속의 미녀’같은 고전대작의 그랑 파드되가 이어진다.또 옛소련 때 만든‘님프스’‘알비노니 아다지오’‘고팍’도프로그램에 들어 있다.국내에서 처음 보는 작품이 적지 않다. 발레단은 오는 29일부터 50여일 미국·캐나다를 순회하면서 이 작품과 ‘잠자는 숲속의 미녀’‘심청’등 3작품을 공연할 예정이다. 이용원기자
  • [21세기 과학 대탐험](8)미래의 수송수단

    2030년 3월 어느 날 미래교통기술주식회사의 김 부장은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릿속으로 내일의 일과를 점검해 본다. 내일 오전에는 뉴욕에서 교통기술 전문가와의 면담이 있다.오후에는 부산에서 새로 건조한 선박 발표회에 참석해야 하고,저녁에는 아내의 생일축하 가족 파티가 있다.몹시 바쁜 하루가 되겠지만 각종 첨단 교통수단을 적절히 이용하면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에 아버지께서 “정말 세상 좁아졌다”고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30년 전에는 서울서 뉴욕을 가려면 직항 점보 제트기를 이용했는데속도가 마하(음속의 몇 배를 나타낸다) 0.8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15시간이상 걸렸지만 모두 이것을 이용했다고 하셨다.물론 그때에도 마하 2의 속도로 뉴욕과 파리 사이를 3시간만에 운행하는 콩코드 기가 있었지만 경제성,소음 및 배출 산화질소 등의 환경문제(산화질소는 지구 성층권 오존층에 치명적이다)로 제한적인 항로를 운항할 수 밖에 없어 사업적으로 실패했다. 내일 김 부장은 마하 5의 속도로 운항하는 300인승의 극초음속 항공기‘동양특급(Orient Express)’을 이용할 예정이다.대륙간 운항전용으로 2025년에실용화된 이 극초음속항공기는 서울과 뉴욕간을 2시간만에 왕래한다. 인천국제공항(인천 국제공항은 이미 2020년 2단계 공사가 완공돼 동북아의 중심공항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을 아침 8시에 출발하면,2시간만에 뉴욕 JFK 공항에 도착(뉴욕 시간으로 저녁 7시)하게 된다.뉴욕 시내에서 2시간 정도일을 본 뒤 다시 동양특급을 이용해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영종도에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2시. 다음 날 아침,김 부장은 집을 나와 자동차에 올랐다.그의 자동차는 각종 전자장치,센서 및 컴퓨터를 활용하여 완전히 지능화된 최신형 자동차다.음성인식은 기본.동네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로 들어서면서 음성인식장치에 “인천국제공항으로 가자”고 지시했다.자동차는 “네,인천 국제공항으로 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자동운전으로 인천 국제공항 고속도로를 거쳐 국제공항 주차장에 도착했다.그동안 김 부장은 서류를 정리하고 자동차 TV를 통해 아침뉴스를 볼 수 있었다.물론 이 자동차는 30년 전의 휘발유나 디젤을 사용하는엔진형 자동차가 아니라 배기 가스에 의한 공해문제를 완전히 배제한 전기자동차이다. 지난 30년간 하늘에서만 교통수단의 혁신을 이룬 것이 아니었으며,지상에서도 자동차와 도로 등에서 매우 큰 기술적인 진전이 있었다. 일반도로에서 주행하고 있는 자동차의 종류,속도,밀도 등을 파악하여 도심의 교통흐름을 원활히 최적으로 제어해 주는 도로교통 관제 시스템은 이미 2010년에 보급됐으며,덕분에 도심내의 혼잡도는 크게 개선됐다. 자동차와 고속도로는 2020년경부터 모두 지능화됐다.교통량에 따라 속도가자동으로 조절돼 운전되며 목적지까지 승객을 태워다 준다.고속도로가 지능화되고 자동차가 무인운전 방식으로 운전되면서 고속도로에서의 교통사고는먼 옛날의 얘기가 됐다.“과거에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다치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했다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묻는 아이들도 많다. 21세기 초에 등장한 개인용궤도교통 시스템(Personal Rapid Transit System)도 도심내의 교통혼잡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원래 자가용 승용차는 교통혼잡을 유발한다는 문제만 없다면 ‘문 앞에서 문 앞까지’를 연결,이용자에게는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다.이를 보완한 것이 PRT 시스템이다. 3∼4인의 소수 승객을 태우는 복합재 차체의 소형 경량차량으로 도로변에 설치된 초경량 고가 궤도선로 위를 선형전동기에 의해서 시속 45∼60㎞으로 무인자동운전,목적지까지 승객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대중궤도교통시설이다.주로 근거리에서 이용되며,주요 지하철 등의 간선 대중교통수단에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교통망이다.이 PRT는 이미 20세기말에 컴퓨터 및 관련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기술개발이 됐으며,21세기 들어서면서 실용화가 이루어졌다. 고속도로가 지능화되어 있고,자동운전이 가능하지만,김 부장은 부산을 가는데 고속전철을 이용할 생각이다.요즈음의 고속전철은 최고운행속도가 시속 400㎞로 대전까지 30분만에,부산에는 80분만에 도착한다.고속전철은 시간적으로만 편리한 것이 아니라,센서 및 컴퓨터 제어에 의해 지능화된 철도차량으로 인해 승차감이 좋고 내부의 소음이나 실내환기,온도는 물론 압력도 제어돼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각종 정보통신 시설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각 좌석에서 수십 채널의 TV를 볼 수 있을 뿐만아니라 각각의 좌석에 마련된 컴퓨터 단말기를 이용해 인터넷 사용도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고속전철 이외에도 자기부상열차가 실용화돼 운행되고 있다.이자기부상열차는 초전도를 이용한 형식으로 최근의 최고속도는 시속 800㎞까지 향상됐다.고속전철이나 자기부상열차 모두 그 동안 에너지 효율이 대폭향상됐고,환경소음,지반진동,전자파 장애 등의 환경영향도 최소화하는 기술개발이 완료돼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부산에 가는 것은 위그(Wig)선이라고 불리는 표면효과익(表面效果翼) 선박발표회가 있기 때문이다.시속 500㎞ 속도로 여객과 긴급한 화물을 실어 나르게 된다.원래 위그선은 옛 소련이 개발하여 카스피해에서 운행했던 시스템이다.20세기 중반의 미·소 냉전시대에는 미국의 첩보위성에 의해 발견되어 카스피해의 괴물로 알려졌던 것이나,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해상용으로 개발됐다. 서울을 떠날 때는 이른 아침이고,뉴욕에 도착하면 저녁 때,서울에 돌아오면같은 날 이른 오후 시간이다. 오늘 서울을 출발했고, 어제 날짜로 뉴욕에 도착했다가,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오늘인 셈이다.김 부장은 비행기에 오르며생각해 본다. 지구가 반나절 생활권이 됐으니 각국의 날짜나 시간을 통일할필요가 있다고…. ■宋 達 鎬 ▲53세 ▲서울대 기계공학과 ▲미 리하이대 공학박사(응용역학) ▲한국기계연구원 기계공학부장,신기술교통부장 역임 ▲경부고속철도 차량형식 평가작업 및 G-7 고속전철 기술개발 과제 연구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dhsong@kimm.re.kr). *항공분야 '보다 빠르게' 경쟁 가속. 라이트형제가 1903년 인류 최초의 동력에 의한 비행에 성공한 이래 항공분야의 최대 테마는 ‘보다 빨리’였다.현재 취항 중인 여객기에서 가장 빠른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개발한 ‘콩코드’.마하 2.02,즉 음속의 2배로 하늘을 날아 통상 8시간 정도 걸리는 파리∼뉴욕을 3시간45분에 주파한다.그러나연비의 약점,짧은 항속거리,100석에 불과한 좌석수,이착륙시의 소음 등으로세계의 하늘을 석권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기술 선진국들에서는 콩코드의 결점을 모두 해소한 완성도 높은 극초음속여객기(HST) 개발이 한창이다.일본은 마하 2.2,좌석수 300석,약 1만㎞의 항속거리를 갖추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소음기준을 극복하며 질소산화물도 대폭 줄인 차세대 초음속여객기 SST를 민관합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86년 레이건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마하 4∼6인 극초음속여객기 구상을 발표하면서 연구가 본격화됐다.지구상의 어느 도시이든 2시간 이내에 날아갈 수 있는 마하 5 정도의 극초음속항공기를 개발하려면 극한환경에 견디고 가벼운 재질을 개발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하 5정도면 기체는 마찰열로 섭씨 1,000도의 온도에 노출된다.일본 경제기획청의 기술예측에따르면 마하 5의 HST 실용화시기는 2020년쯤이다. 미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는 지난 98년 마하 10정도로비행할 수 있는 ‘하이퍼소어(Hypersoar)’라는 극초음속비행기 개발계획을발표했다.하이퍼소어는 초음속비행 중 비행기 동체에서 발생하는 열을 훨씬줄였고,돌멩이가 물위를 스쳐날아가는 것처럼 지구대기권 밖으로 비행한다. 대기권을 벗어나 고도 13만피트까지 상승하면 엔진을 끄고(대기권밖에서는공기를 흡입해 작동하는 제트엔진을 작동할 수 없다) 비행기의 관성에 의해대기권 바깥쪽 끝 단을 비행한다.비행기가 지구중력에 이끌려 대기권 안으로들어오면 엔진을 가동, 다시 대기권 밖으로 벗어난다. 미국 중서부를 출발해서울에 오려면 25차례 정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 된다.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반. 하지만 하이퍼소어로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즐기기는 어렵다.대기권 밖에서 안으로 이끌려 오고나서 엔진을 가동해 대기권 밖으로 나갈때 승객들은중력의 1.5배에 해당하는 힘을 받게 되고, 대기권을 스쳐가다가 하강하기 직전에는 무중력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를 탄 기분을 비행 내내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개혁론 맞서 IMF위상 재정립 시급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자리를 놓고 벌어졌던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신경전이 일단락됐다.유럽측 후보에 까다롭게 굴었던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13일 EU가 지명한 호르스트 쾰러(Horst Koehler·57)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총재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미국의 지지를 얻게됨에 따라 쾰러총재가새 IMF총재로 선출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IMF의 기능 축소 등 IMF의역할 및 위상에 대한 재편논의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국제적인 금융기구로서얼마만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신임 총재의 지도력과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쾰러 총재는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밑에서 성장한 직업 공무원으로 국제금융 및 협상 경험이 많다.현재의 폴란드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69년 독일 남서부 튀빙겐에 있는 응용경제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재무부의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고 경제·통화 분야 노조측과의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對)유럽공동체(EC) 협상과 옛 동독 기업들의 민영화 문제 등에 관여했다.옛 소련 동맹국들이 독일 마르크화를 공식 통화로 채택한 90년 7월1일부터동서독의 통화통합을 성사시키는데 기여했다.독일연방저축은행 총재로 지명돼 92년 재무부를 떠날 때까지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 등 각종 국제회의 실무팀장을 맡았다. 신임 총재는 미국 등을 필두로 국제적으로 거세게 일고 있는 IMF의 개혁론에 맞서 IMF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로런스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 등은 IMF가 최근 아시아와 남미의 금융위기를지원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해당 국가의 경제정책에 간여했다고 비난했다.앞으로의 역할도 중장기 차관보다는 회원국의 일시적인 금융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단기차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일부에서는 IMF의 또 다른 주요 역할인 빈곤국에 대한 개발계획 지원 등은 세계은행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
  • [대한포럼] 베를린 자유대학

    독일 베를린의 자유대학(Free University)은 독일내 300여개 대학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독일은 중세이후 군주들이 영지별로 학교를 설립,오늘에 이르러 대학들마다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세계대전후 서베를린을 관할하게 된 연합국은 구소련 관할지역에 있는 훔볼트대학에 상응하는 대학의 필요성이 절실했다.서방진영,특히 포드재단이 주도해 1948년 개교한 자유대학은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는데 앞장서 왔다. 냉전시대 서방의 필요에 의해 미군사령부 인근에 설립된 자유대학은 처음부터 200년 전통을 가진 훔볼트대학과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프로이센제국이 설립,언어학자이자 교육개혁가의 이름을 딴 훔볼트대학은 연륜과 더불어법률·의학·철학·신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철학자 헤겔·피히테와 칼마르크스가 이 대학서 강의했으며 아인슈타인등 노벨상 수상자 29명을 배출했다. 서베를린의 자유대학은 그러나 냉전중 자유민주사상의 전파자로서 독보적인위치를 굳혔다.자유대학은 훔볼트대학이 공산정권에 접수된뒤 마르크스주의를강요받자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탈출해 옮겨옴으로써 짧은 기간내 명문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자유대학은 인문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시장경제와 민주제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미국식 캠퍼스 유형을 도입한 자유대학은 냉전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엔 반공산,반동독 학생운동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베를린 봉쇄기간인 63년 케네디미국대통령이 방문해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고 자유대학에서 메달을 받은뒤 학생들의 반소운동이 절정을 이루자 당황한 연합군측이 이를 완화하도록 학교당국에 압력을 가한 것은 이 대학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그후 학생수가 2만여명으로 늘었으며 베를린 장벽이붕괴된 80년대말에는 5만명에 이르렀다. 학교 건물도 자유대학은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인데 비해 훔볼트대학은 고풍스러운 모습이다.통일후 두 대학 모두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히 자유대학은 민간단체의 지원이 크게 줄고 학생들이 훔볼트대학을 선호하고 있어려움이 더욱 크다.이같은 어려움은 시대적 변화이기도 하나자유대학의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변함 없으리라는 것이 베를린 시민들 믿음이다. 베를린은 유럽 중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역사적으로 갈등과 화해의 중심무대가 되어 왔다.냉전시대엔 동서의 지도자들이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는 무대로,데탕트이후에는 화해와 협력의 현장으로 베를린이 갖는 의미는 크다. 베를린은 장벽의 붕괴라는 상징적 의미때문에 화해와 통일의 현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독일통일의 배경에는 자유대학과 훔볼트대학이 정신적 뒷받침이되어 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자유대학은 자유와 민주의 상징이다. 유럽을 순방중이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0일 자유대학에서 남북정부당국간 대화를 제안한 것은 베를린의 지리적 특성과 자유대학의 상징성을 담고 있어 유럽순방 외교의 절정으로 꼽힌다. 특히 김대통령이 이 대학 교수와 학생 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문제’라는 주제로 진행한 연설에서 “베를린 자유대학과이 대학 출신들이 개교이래 동서독간의 화해와 협력,독일통일을 앞장서이끌어온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여러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위해 이 대학을 찾았다”고 운을 뗀 것은 베를린과 자유대학의 상징성으로인해 의미가 더욱 큰 것으로 평가된다. 김대통령이 “뜻깊은 자유대학을 방문한 이 자리를 빌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와 남북간의 화해 협력을 이루고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며 정부당국간 협력 및 특사 교환 등4가지 ‘베를린선언’을 발표한 것은 극적 감동을 더했다고 하겠다.연설이끝나자 좌석에 앉아있던 교수와 학생들이 기립박수를 보낸 것은 단순히 한외국지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이 대학의 역사적 배경과 연설이 일치했기때문이라 하겠다. 이기백 논설위원 kbl@
  • [김삼웅 칼럼] 신탁통치 문제의 역사인식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가 “찬탁인사가 정부요직에 있다”고 한 발언으로불거진 색깔론은 선거때면 나타나는 고질의 하나로 치면 그만이지만,신탁통치문제를 정략으로 삼는 정치인들의 역사인식에는 아쉬움이 따른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 해방공간에서 있었던,어느 측면 민족분단의 계기가된 탁치(託治)문제가 반세기도 한참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그것도 학술토론아닌 총선전략으로 제기되는 것은 우리 정치풍토가 얼마나 비지성적인가를보여준다. 한반도의 탁치문제가 외교석상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1943년 영국총리이든과 미국대통령 루스벨트의 워싱턴회담에서였다.그후 카이로·테헤란·얄타·포츠담회담을 거치면서 구체화되었다.원래 한반도 탁치안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루스벨트에 의해 구상되었다.그는 1942년 이래 전후 식민지에 신탁통치라는 새로운 제도를 적용시킬 것을 구상했다.식민지 국민은 자치능력이 부족하므로 일정기간의 교육을 통한 준비기,즉 국가의 신탁통치를 거친후 독립시킨다는 구상이었다. 1943년 11월 말 테헤란에서 열린 미·소 양국회담에서 루스벨트가 한국의탁치안을 제시하여 합의되었다. 이후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탁치안을 구체화하려했다.그러나 일본의 패망이 예상외로 빨라 한반도를 미·소 양국이 분할점령하게 되고,한반도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모스크바 3상회의가 열렸다.여기서미국이 제시한 탁치안에 소련이 수정안을 내어 채택되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 탁치안 1945년 12월 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영국의 베빈 외무장관,소련의 몰로토프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서 결정한 탁치안의 요지는 ⓛ한국을 독립국가로 재건하기 위해 임시적인 한국민주정부를 수립한다 ②한국임시정부 수립을 돕기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③미·영·소·중의 4개국이 공동관리하는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이 국내에 알려지자 정치세력은 찬반양론으로 분열되고 격렬한 찬반투쟁이 전개되었다.3상회의 내용이 국내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45년 12월 27일이다.미국발 보도로알려진 이 소식은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하며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내용이었는데,이는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탁치와 독립을 은연중 대립시키는 내용이었다. 이에 김구와 임정계열은 반탁과 즉각독립을 내걸고 반탁운동의 선두에 나섰다.김구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과도정부수립”을 천명하면서 미군정에 대응하고 나섰다.이러한 반탁운동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초기반탁입장을 취했던 좌익세력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통일위원회 설치를 제의했으나,임정측이 비상정치위원회의 소집을 통해 통일정부를 추진하고자 하여 결렬되었다.그러나 이른바 ‘인민공화국’과 조선공산당은 46년 1월 2일3상회의 지지를 선언하고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을 결성,좌익만의 통일전선을 이루었다. 한편 우익은 임정을 중심으로 비상정치회의 준비회를 열고,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이에 합세,좌익이 불참한 가운데 비상국민회의를 개최했다. 이로써 좌우분열은 극에 달했다. 실제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은 ‘신탁통치와 임시정부수립및 그를 통한독립’이라는 내용이었으나 이를 둘러싸고 친일세력과 민족세력간의 대립구도가 좌·우익간의 대립구도로 바뀌고,김구 등의 통일정부수립 노력이 이승만의 단독정부수립 노선에 의해 좌절됨으로써 결국 탁치안은 친일분자 및 우익세력에게 도덕적 명분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찬·반투쟁 과정에서 정파간의 격렬한 대립을 벌이게 되어 민족분열의 계기를 만들었다. 민족·반민족에서 좌·우대결로 3상회의 결정에는 한반도의 분단보다 통일정부 수립을 가능케 할 구상이 많이 포함돼 있었음에도 당시 정치지도자들은 ‘신탁통치’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미·소의 타협을 유도하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다.지도자들이 국제적 식견이 있었다면 이 제안을 통일정부수립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인데도그러지 못하고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가져온 것은 민족사적 비극이다. 비슷한 시기 4개국 관리체제에 놓인 오스트리아 지도자들은 정파간의 협력과 외교력으로 통일정부를 수립했다.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김삼웅 주필
  • [2000美 대통령 선거] 고어·부시 외교안보팀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가 다른 나라에 관심이 되는 것은 선거 이후 그들이 어떤 대외정책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이익 향방이 갈리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후보로 굳어진 민주당의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W.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대외정책 기조는 현재 그들이 자문받는 선거팀에 의해 조율되고 발표되며,선거에서 승리하면 이들이 바로 주요 정책 포스트에 기용된다. 민주당의 고어 후보는 이미 지난 두 임기 동안 백악관의 제2인자로 외교정책에 깊게 관여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외교에는 해박한 입장이다.고어진영의 경우 외교정책노선을 진두에서 조언하는 이는 고어의 수석정책보좌관인일레인 캐막 전 민주당 지도위원회 위원.하버드대 캐네디 스쿨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외교분야 수석보좌관인 리언 피어스트와 호흡을 맞추면서 고어 후보를 돕고있다. 중국과 적극 협력하되 인권제고를 강력히 요구하는 현 대중국 외교 기조와98년 이라크 공격,ABM조약내에서의 SDI개발 등 노선을 취하는 고어팀은 국제적 위협이 되고있는 북한 등 불량배 국가들(rogue states)을 달래면서 대량파괴무기 개발저지 등의 정책을 일궈내고 있다. 고어에 비해 외교경험이 다소 뒤지는 부시는 스탠퍼드대 학장 출신인 콘돌레사 라이스 교수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있다.라이스 교수는 부시 전대통령시절 옛 소련 전문가로 국가안보위원회를 담당하기 했던 외교정책통이다. 라이스 교수는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폴 월포비츠 전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리처드 체니 전국방장관등과 함께 레이건·부시 대통령 시절 정책노선을 기조로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고어 진영이 불량배 국가들을 상대로 끌어들이기,혹은 포용정책(engagementpolicy)을 기조로 한다면 부시 진영은 쿠바무역반대 등 강력한 국방을 전제로한 채찍정책을 구사,다소 강경파로 분류된다. 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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