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소련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인력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단속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참모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체코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236
  • [씨줄날줄] 야당특사/김경홍 논설위원

    1990년을 전후해 ‘초당외교’라는 말이 유행했다. ‘1노3김’이 한치 양보도 없이 각축전을 펼치던 때다.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외교를 선언한 이후 야당은 인기몰이식 초당외교를 내세웠고,여당은 소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초당적 협력’이라는 용어로 야당들을 끌어들였다. 야당 총재들 가운데 누가 먼저 소련땅을 밟느냐도 양보할 수 없는 경쟁이었다.그 결과 1989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야당총재로는 처음으로,그리고 3당합당으로 여당대표가 된 후 1년 만에 다시 소련땅을 밟았다.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모스크바의 공항에서 입국이 무산되는 등 눈물을 삼켜야 했다.이후 김영삼 대표와 박철언 정무장관간의 ‘누가 한·소 수교의 숨은 주역인가.’하는 생색논쟁은 북방외교를 정치적 논쟁 차원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훗날 드러나게 되지만 이 과정의 초당외교는 당리당략과 정치논리로 인해 국익을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 국가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초당적 협력과 대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지금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이라크 파병,주한미군 재배치,새로운 한·미동맹관계 정립 문제 등 미묘하고,위험하고,복잡하고,불안한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정치·사회·경제 주체들도 논쟁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정당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당일색’이 아니라 ‘일당사색’에 이를 정도로 복잡하다.초당적 차원이 아니라 초국민적 차원의 고민과 협력이 필요한데도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한나라당 특사 자격으로 미국으로 떠났다.박 의원은 미 백악관과 국무부,국방부 등의 고위관료와 의회 인사들을 만나 주한미군 재배치에 관한 미국 정부의 생각을 듣고 한나라당 입장을 전달한 뒤 돌아온다고 한다.미안한 얘기지만 국내논쟁도 정리되지 않은 사안을 두고 초선의원을,국제관계에 대한 지식이 좀 있고 미국 조야인사 몇몇을 안다고,야당이 특사로 파견한 것은 국익을 놓고 본다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정부당국이나 정당들간 논의나 합의도 없이 불쑥 나서는 것은 초당외교가 아니라 당리당략이거나 인기몰이일 뿐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hok@seoul.co.kr˝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최근 미국영화연구소(AFI)와 영국의 영화 전문 월간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대부’(1972년)의 주인공 갱스터 보스 돈 코를레오네를 ‘영화 사상 최고의 캐릭터’로 선정했다.그 유명한 말론 브랜도가 소화했던 배역이다. ‘살아 있는 연기’ ‘혼(魂)이 서려 있는 열연’ 등의 칭송은 연기자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찬사다. 러시아 출신 배우,제작자,연극 이론가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창안한 ‘메소드 연기’ 또는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은 오늘날 할리우드 배우들의 필수 연기 훈련 방법이다. ‘메소드’는 배우가 자신의 유·무형의 경험을 담아 그 역할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감정적인 공감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경우에는 실생활에 뛰어드는 직접 체험을 통해 주어진 배역과 연기자가 혼연일체의 시도를 하는 연기 개발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부’의 말론 브랜도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그는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뉴욕 마피아 보스로 성공하는 돈 코를레오네의 배역을 위해 전직 갱스터 조직원에게 그 집단에서 풍겨 오는 정서를 설명받는다든가 아니면 보스의 체취를 풍기기 위해 입에 구슬을 물고 보조개 부분을 부풀려 올려 느릿느릿하고 축 늘어진 대사법을 시도했다. 이로써 돈 코를레오네역을 지켜본 관객들은 그 배역을 통해 실제 마피아 보스들의 태도와 분위기는 ‘저런 것이구나!’라는 공감을 얻게 된다.이런 캐릭터는 이후 마피아 보스의 전형으로 고착화됐다.메소드 연기의 진가는 바로 이것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창안한 메소드 연기는 본산지 소련을 거쳐 1920년대 뉴욕으로 전해졌고 1947년 리 스트라스버그가 ‘액터스 스튜디오’를 개설해 불세출의 프로 연기자들을 대거 배출해 낸다.1950년대 반항아의 대명사 제임스 딘을 비롯해 알 파치노,더스틴 호프먼,로버트 드 니로,폴 뉴먼,앤서니 퀸 등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개성 스타들은 모두 이 학교 출신 연기자들이다. 더스틴 호프먼의 경우는 흡사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듯 왜소한 체격과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탤런트로서 별다른 배역을 맡지 못하자 여장 남자로 돌변해 서서히 브라운관의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는 연기 세계 풍자극 ‘투시’(1982년)에서 완벽한 여자로 변신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로버트 드 니로는 ‘분노의 주먹’(1980년)에서 세계 미들급 챔피언 제이크 라 모타의 일대기를 묘사하기 위해 실제 권투 도장에서 6개월 이상 훈련을 받고 초콜릿 등으로 체중을 30㎏ 이상 불려 배역을 소화해 냈다는 일화를 남겼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2년)에서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유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우 스필만역을 맡은 애드리언 브로디는 몇 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은 끝에 실제 인물이 출연한 듯한 실감나는 피아노 연주 실력을 과시했다.이 영화 오프닝 장면에서는 밖에서 폭격이 이뤄지는 가운데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태연하게 피아노 치는 장면을 보여줄 때 손가락 장면에 이어 곧바로 카메라가 틸트 업(Tilt-Up:물체 하단 모습에 이어 곧바로 상단을 보여주는 촬영 기법)됐다.이 장면이 대역을 쓰지 않고 배우가 실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라는 것을 엿보게 해주었다. 이처럼 맡은 배역에 배우가 몰입돼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 주어 관객들의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가는 방식이 ‘메소드 연기’의 진가라고 할 수 있다.˝
  • 체첸대통령 폭사 안팎

    9일 그로즈니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아흐마드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이 사망한 사건은 ‘체첸 사태’가 계속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1999년 2차 체첸 전쟁으로 러시아가 이 지역의 통치권을 확보하고,최근들어 대규모 전투가 수그러졌으나 체첸 반군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체첸통치세력 재건 부담 이번 사고로 사망한 카디로프 대통령,발레리 바라노프 북 카프카스 지역 러시아 주둔군 사령관과 중상을 입은 엘리 이사예프 국가위원회 의장,알루 알하노프 내무장관 등은 러시아의 힘을 뒤에 업고 체첸을 통치해온 인물들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유고됨에 따라 러시아는 체첸의 통치세력을 다시 조직해야 하는 등 단기적으로 크고 작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994∼1996년의 1차 체첸전에서 러시아와 맞서 싸우던 독립투사에서 2차 체첸전 뒤 크렘린으로부터 대통령에 지명된 카디로프는 투항하는 무장 저항세력을 사면하고 전쟁으로 부서진 주택들을 보수하는 등 유화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이같은 유화 정책도 체첸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사고 발생 30분만에 카디로프 사망 이날 사고는 정교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지뢰폭탄은 디나모 스타디움의 귀빈석 바로 아래 장착돼 카디로프 대통령 등 체첸의 고위 인사들이 한꺼번에 변을 당했다. 카디로프 대통령은 폭발 뒤 30여분만에 숨졌으며,바라노프 장군은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전기념일은 옛 소련을 비롯한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행사로,사건 당시 디나모 스타디움은 군사 퍼레이드와 기념 음악회를 보기 위한 군중들로 가득차 있었다.NTV를 포함한 러시아 TV 방송들은 폭탄 테러로 크게 부서진 귀빈석 주변과 피를 흘리는 부상자,매몰 부상자 구출 장면 등을 방영했다. ●푸틴 “테러리스트에 반드시 보복” 러시아 전역에서는 매년 승전기념일 행사에 맞춰 체첸 반군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발 테러가 수년간 계속되고 있다.2002년에는 카스피해의 항구도시 카스피스크에서 폭탄이 터져 어린이 12명을 포함,43명이 사망했다. 이번 사건이 체첸의 분리를 주장하는 무장 저항세력의 소행으로 밝혀져감에 따라 1999년 이후 5년째 계속되고 있는 2차 체첸전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폭발 사건 직후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보복이 불가피하다.”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2차 대전 참전 용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오늘 우리와 싸우고 있는 자들에 대해 보복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테러리스트에 대한 응징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고이즈미 “방위력 대폭 보완”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다른 나라에 대한 공격은 포기하고 방어에만 전념한다는 ‘전수(專守)방위’ 원칙을 넘어서 “독립국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적 방위력을 보유한다.”는 이른바 ‘보통국가화’에 시동을 걸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7일 사적 자문기관인 ‘안전보장 방위력에 관한 간담회’ 첫 회의를 주재,1976년 제정한 ‘방위계획대강’의 개정심의에 착수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28일 전했다.회의에는 군사적 색채를 엷게 하기 위해 외교·경제도 연구하는 재계·학계·관계(전직) 인사 10명이 위원으로 참석했고,장소도 총리관저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국제테러 등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주체적·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 “방위력 전반의 근본적 수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일본 헌법상 금지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해당될 수 있는 자위대의 해외활동 장비 구비를 핵심의제로 거론,위헌시비로 비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들은 일본이 미국과 공동연구 중인 미사일방어(MD) 구상이 생산단계에 이르면 일본에서 제조한 미사일 부품의 대미 수출이 불가피하다고 보고,무기수출 제한을 골자로 하는 ‘무기수출 3원칙’ 개정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방위청은 자위대법상 부수적 임무로 돼 있는 자위대의 국제적 공헌업무가 본래적 임무로 격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자위대의 부대·장비 배치는 냉전시대 옛소련 군대가 홋카이도에 상륙하는 것을 가상해 이뤄져 있어 자위대의 전면 재배치도 불가피한 시점이라고 언론들은 전했다. 위원들은 월 2회 간담회를 열어 오는 10월 총리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며,정부는 이를 토대로 연내에 새로운 방위계획대강을 정한다. taein@˝
  • [CEO 칼럼] 국가경쟁력의 키워드 ‘기업가정신’/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지난 세기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다가 시장 경제체제의 완승으로 끝났다.오늘날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중국과 타이완,한국과 북한은 엄청난 삶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5000달러인데 반해 러시아는 1000달러도 안된다.일찍이 시장 경제체제를 갖춘 타이완은 1만 4000달러인 반면 중국은 연평균 8% 이상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이제 1000달러에 이르고 있다.한국은 1만달러를 넘어 2만달러에 도전하고 있는데 북한은 겨우 700달러일 뿐이다. 일해서 소득을 얻고 그 소득으로 먹고 사는데 어째서 부자와 빈자로 나눠지는가.그것은 일하는 방식과 나눔의 차이에서 연유한다.공동농장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사유지의 소출은 많다.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결국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미국의 폴 케네디는 “세계 일류국가가 되려면 국가 경쟁력의 제고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확충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도덕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당연한 주장을 한다.이런 노력은 법과 질서가 유지되는 안정화된 사회속에서 가능하다.시장경제는 저비용 고효율구조로 개선되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국가의 경쟁력은 기업의 경쟁력에서 나오고 기업의 경쟁력은 기업가정신에서 나온다. 기업가정신이 없는 사회는 퇴보한다.그 좋은 예를 옛 소련 등 공산국가에서 찾을 수 있다.기업가정신은 ‘무엇인가 이루려고 하는 정신’이다.통찰력,창의성,용기와 결단,희생과 솔선수범,끈질긴 추진력,개척정신이다.기업의 발전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다.기업이 발전하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누가 정권을 잡든,누가 경제장관이 되든,기업은 눈치 안 보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대표적 물류회사인 이도요가도의 스스키 도시후미 사장은 성공한 전문 경영자다.그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추어라,매출 증가보다 재고를 줄여라,가설을 세우고 끊임없이 검증하라,지난날의 성공체험은 과감히 버리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사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가정신을 강조한다.회사 발전방안을 늘 생각해내고 이를 실천에 옮겨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기업 경영은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위험에 빠진다.하물며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면 위험부담이 따른다.따라서 깊은 통찰력과 추진력이 따라야 하며 안이한 투자에는 실패만이 기다릴 뿐이다.소명의식을 가지고 혼신의 노력과 자기 희생이 따라야 한다. 지금 우리경제를 이끌고 있는 5개 산업은 어디에서 왔는가.조선,철강,자동차,반도체,휴대전화의 주역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으로서 기업가정신이 투철했던 분들의 유작(遺作)이다. 울산만의 지도 한 장을 들고 일본·미국·영국시장을 누비며 자금을 빌리고 투자를 받아 조선사업을 시작한 뒤 오늘날의 자동차산업을 일군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개척정신,깊은 통찰력으로 스태프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보다 앞서 엄청난 투자를 결단하여 오늘의 반도체 강국을 이룩하게 한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선견력은 기업가정신의 대표적 사례다.또 소명의식이 투철한 제철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일찍이 방직업을 치우고 시멘트 공장을 만들 정도의 결단력을 보여준 고 김성곤 쌍용 창업자,부실기업을 불과 3년만에 모범기업으로 만든 한국전기초자의 서두칠 전 사장 등도 그런 부류이다.이밖에도 많은 기업인들이 오늘도 투철한 기업가정신으로 이 나라를 부자나라도 만들어 가고 있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
  • 한국영화계 대부 유현목 감독

    “유현목은 영화다.”“아니다,유현목은 인간이다.” 오발탄(1960년),임꺽정(61년),김약국의 딸들(63년),카인의 후예(68년),나도 인간이 되련다(69년),사람의 아들(80년)….건국 이래 한국영화 최고작으로 인정받은 ‘오발탄’을 비롯,43편의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의 미학을 이끌어온 유현목(79) 영화감독.한국영화사의 산증인이자 영화계의 영원한 ‘대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삶은 흑백과 컬러필름으로 50년 동안 모질게도 온몸을 친친 감아왔다.까닭에 ‘유현목’하면 덜도 더도 없이 한편의 ‘영화’에 비유된다.평론가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형형한 눈빛으로 한국 영화사를 관통했던 용감한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장 콕토는 ‘영화란 영상으로 쓰는 문장’이라고 했다.유 감독은 더 나아가 ‘영상으로 사고한다.’고 했다.일흔아홉의 성상은 그렇게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으며 질그릇에 켜켜이 담아왔다.이같은 그의 ‘시네마인생’을 흐트러짐없이 끄집어낼 수 있을까. 서울 남대문 옆 명지빌딩 20층에 자리잡은 ‘태평관기영회(太平館耆英會)’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태평관기영회는 학교법인 명지학원(이사장 유영규)이 지난 2002년 12월 마련한 최고 원로들의 사랑방이다.명지빌딩 자리에 있던 조선시대 외교공관 ‘태평관’과 중국 송나라 때 은퇴한 현사들의 모임이었던 ‘낙양 기영회’에서 이름을 땄다.참여멤버는 유 감독을 비롯,고병익 전 서울대총장,이영덕 전 국무총리,정원식 전 국무총리,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등 내로라 하는 원로 32명이다.유 감독은 “매월 첫째주 수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이곳에 온다.같이 늙어가는 각계 원로들과 만나 서로의 경험담을 주고받는 일 또한 공부가 아니냐.”고 했다. 근황이 궁금해졌다.그는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에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야트막한 동산을 뒤로 한 노독일처(老獨一處)인 셈이다.뒷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30평의 주말농장에서 땅을 일구는 일에도 새록새록 재미를 느낀다.시금치,쑥갓,마늘 등 28가지의 채소를 가꾸며 동네사람들에게도 나눠준다. 나들이할 때는 늘 부인 박근자 여사와 동행한다.부인은 서양화가로 현재 여류화가협회 고문이기도 하다.부인은 지금까지 ‘여보’ 대신 ‘감독님’이라고 부른다.그는 부인 얘기가 나오자 ‘무던한 순둥이’라며 웃는다. 그는 지독한 골초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루도 술을 거른 적이 없다.저녁 식사후 TV 9시 뉴스를 보고나면 반드시 맥주 3∼4병은 마신다.부인이 술을 못하기 때문에 혼자 식탁에 앉아 맥주를 들이켜며 세월을 음미한다.영화 같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즐거움에 푹 빠지는 시간이다. 그의 예술가적 역마살은 소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됐다.어느날 지방순회 공연차 온 유랑 신파극에 매료됐다.교회에서 성극대본도 쓰고 연출도 직접 했다.방학때면 동네 창고에 천막을 치고 성냥갑 몇개로 입장시키는 놀이도 했다.그렇게 모인 성냥갑으로 엿을 바꿔먹기도 했다. 1939년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의 휘문중학에 입학했다.하숙생활이 시작됐다.중학때는 기계조립에 취미가 붙었다.남산의 과학관을 다니며 ‘어린이 과학’이니 ‘학생과학’이니 하는 잡지에 탐닉했다.하루는 ‘에디슨 위인전’을 읽었다.발명왕 에디슨의 학력이 겨우 소학교 4학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중학2년 때 휴학을 했다.담임 선생한테는 중이염이라고 둘러댔다. 때마침 담임선생 아들이 만성 중이염에 따른 뇌손상으로 사망했던 터여서 휴학계를 선뜻 받아주었다.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고독의 가을을 만나면서 도화지와 수채화 도구를 둘러멨다.이리저리 쏘다녔다.흙을 반죽해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다.하루는 바이올린 곡 ‘트로이메라이’를 듣고 폐장을 쥐어짜는 듯한 슬픔의 아름다움에 도취했다.어머니한테 졸라서 ‘스즈키 7호’ 바이올린을 샀다.그걸 끼고 다시 복학의 길을 떠났다. 이 무렵 학교에서 단체로 ‘조택원 무용발표회’를 관람했다.그는 처음 대하는 육체의 선율에 반해 무용가가 되기로 다짐하고 무용연구소를 맴돌았다.그러나 피골이 상접한 모습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인 1944년 겨울이었다.조선인징병 신체 검사에서 불합격되는 바람에 졸업장을 쥐고 고향에 내려가 세무서 임시고용원으로 취직했다.그러나 숫자놀음이 격에 맞지 않아 곧 그만두고 평양을 드나들면서 헌책방에서 건축잡지를 탐독하기 시작했다.건축미술가의 꿈을 꾸었다. “하마터면 목사가 될 뻔도 했지.어머니의 성화로 인해 서울의 감리교 신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영어시험에서 낙방했어.그런데 외가집 소개로 아펜젤러 박사를 만나 연희전문학교 백남준 교장에게 입학시켜달라는 메모까지 받게 됐지.목사가 다 된 기분이었어.그런데 그만 메모쪽지를 잃어버렸지 뭐야.하나님께서 나를 목사자격 없는 놈으로 계시하신 줄 알고 포기했지.” 1946년 소련군이 진주하자 그는 다시 서울로 왔다.거리 곳곳에는 연극포스터들이 쫙 붙어있었다.그는 빼놓지 않고 관람했다.연극 연습장 한구석에서 하루종일 지켜보는 것이 한없이 즐거웠다. 결국 그 이듬해,희곡공부를 위해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했다.이 무렵 그는 프랑스의 피에르 슈날 감독의 영화 ‘죄와벌’을 관람했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 열 네번이나 미친 듯이 봤다.강의가 끝나면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죄없는 전선’ 촬영현장을 찾아다녔다.덕분에 여러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다.무성영화였던 임운학 감독의 ‘홍차기의 일생’에 조감독 겸 출연까지 했다.이때 영화감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빠졌다.미술,음악,무용,문학,건축,연극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라는 답을 얻었다. 1948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재학시절,한국대학에선 처음으로 ‘영화예술연구회’를 창설해 ‘해풍’이란 영화를 만들었다.가난한 어촌을 무대로 풍파에 아버지를 잃고 미치광이가 된 젊은 아들의 이야기이다.이는 배우로서 데뷔작이며 마지막인 셈이다. “납북된 시인 김기림 선생이 지도교수였지.당시 신문기사에는 영화과가 없는 대학에서 이같은 유성(토키)대작을 만든 것은 동양에서 처음이라고 하더군.양주동 선생은 ‘배짱 하나 컸군,내 막걸리 한 잔 사지.’라고 거들기도 했어.돌이켜 보면 선무당이 사람잡는 모험이었으나 오늘날의 길을 굳혀준 출발점이기도 하지.” 그는 50년 영화인생을 뒤돌아볼 때 가장 아끼는 작품은 ‘오발탄’이라고 했다.그도 그럴 것이 ‘오발탄’은 1984년 영화진흥공사의 ‘광복40년 베스트 10’에서 1위,98년 ‘건국50년 영화,영화인50선’에서 1위,99년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명작’에 1위로 뽑힐 정도였다.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섬세하게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백발홍안’의 노(老)감독.예나 지금이나 술이 얼큰하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베마리아’를 부른다.집앞 골목에 이르면 정지용의 시에 채동선이 작곡한 ‘고향’을 부른다.그러면 기다리던 ‘무던한 순둥이’가 마중나와 팔짱을 낀다.이렇게 영화같은 그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 ▲1925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45년 휘문고졸.49년 동국대 문과졸.64년 동국대 강사. ▲73년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장.76∼90년 동국대연극영화과 교수.80년 유네스코 문화위원. ▲81년 예술원회원(현).89년 한국영화학회장.90년 동국대예술대학장. ▲97년 부산국제영화제심사위원장,99년 춘사영화제 심사위원장.2000년 영화감독협회 고문(현). ▲주요 수상=서울시문화상,대한민국예술상,예술원상,대종상 등. ▲주요 작품=‘오발탄’‘인생차압’‘잃어버린 청춘’‘막차로 온 손님’‘카인의 후예’‘사람의 아들’‘불꽃’‘장마’ 등 43편. 김문기자 km@seoul.co.kr˝
  • 美, 70년대말 對北 핵대응 검토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이 카터 행정부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의 침공시 전술 핵무기로 대응한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기밀 해제된 국방부 문건 ‘DNA 4570F-1,2’에 따르면 당시 미 국방핵전략국(DNA)은 비무장지대를 넘어 한국을 공격하는 북한의 기갑사단에 공중에서 폭발하는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 방침에 따라 미 육군 및 예하 정보분석그룹(IAG)과 합참부의장 소속의 핵 계획·정책본부가 관련 자료를 제공하며 타당성 조사에 참여했고 ‘과학응용’이라는 민간연구소가 1978년 ‘북한군의 취약성’이라는 제목의 최종 보고서를 마련해 국방부에 제출했다. ‘정보자유법안’에 따라 지난달 노털리스 연구소가 입수한 이 보고서는 ‘전술 핵무기에 대한 북한군의 취약성 평가’와 ‘한국에서의 (전쟁)시나리오와 공격대상’이라는 2개로 나눠졌으며 북한의 침공에는 전술 핵무기로 공격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보고서는 전술 핵무기의 사용시 북한군에 미치는 요인과 북한군의 공격 능력을 파악하고 당시 소련의 핵 대응수준도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의 기갑사단이 군사 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15㎞에 이르거나 또는 그 이전에 공격할 것을 제안,초기 대응을 강조했다.이는 서울에서 20㎞도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다. 미국의 첫 핵 원자력 잠수함 이름을 딴 노털리스 연구소는 북한이 미국의 핵 공격에 큰 위협을 받아 오늘날까지 스스로 핵 무기를 지녀야 한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과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전술 핵무기 배치와 관련,‘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정책(NCND)으로 일관했으나 이번에 드러난 문건을 통해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가 실전배치됐다는 사실이 처음 입증된 셈이다. 워싱턴의 군사소식통은 1990년대 초반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는 북한군의 침공시 전술 핵무기로 대응한다는 방침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으며 과거에 그런 계획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고 밝혔다. mip@˝
  • [기네스코너]

    ●21일간 자동차로 세계일주 자동차로 최단기 세계일주를 한 기록은 21일 2시간14분동안 2만 9522㎞를 간 것이다.1997년 10월1일부터 12월11일까지 게리 소워비,콜린 브라이언트,그라함 맥가우가 복스홀 프론테라를 타고 달성한 기록이며 출발지와 도착지는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였다. 최초의 최단기 자동차 세계일주 기록은 인도 콜카타 출신의 모하메드 살라후딘 추드후리와 니나부부가 세운 69일 19시간5분으로 거리는 4만 750㎞이다.이것은 1989년과 1991년 적용 기준에 의거해 적도를 한바퀴 돌고도 남는 거리로 그들은 1989년 9월9일 인도 뉴델리를 출발해 11월17일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차종은 1989년형 힌두스탄식의 ‘콘테사 클래식’이었다. ●최연소 자동차 사고 생존자 1999년 2월25일 아르헨티나 미션즈에 사는 버지니아 리베로는 자신의 집에서 산고를 느꼈다.두 남자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지나가는 택시에 탈 수 있었다.그녀는 뒷좌석에서 여자아이를 출산했고 운전사에게 쌍둥이 둘째아이가 곧 나올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다급해진 운전사는 앞차를 추월하다 그만 다른 차와 충돌하고 말았다.산모와 아이는 다행히 경미한 부상을 입고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산모는 다시 지나가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갈 수 있었고 또 한명의 건강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80일만에 구조된 고양이 1999년 12월9일 2400명의 생명을 앗아간 지진이 타이완을 강타한 지 꼭 80일이 되던 날 타이쭝에 있는 건물 잔해에서 살아있는 고양이 한마리가 발견되었다.고양이는 동물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치료를 받은 후 완전히 정상을 회복했다.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는 발렌티나 블라디미로브나 테레슈바코(구 소련)이다.1963년 6월16일 그녀는 카자흐스탄의 코스모드로메 기지에서 발사된 우주선 ‘보스토크6’에 탑승했다.‘보스토크6’은 2일 22시간50분동안 지구 궤도를 48번 선회하고 1963년 6월19일 다시 지구로 돌아왔는데 총 비행거리는 197만 1000㎞였다. ●세계인구 1/3은 기독교인 기독교는 세계 최대의 종교로서 1999년 신도수가 약 20억에 육박해 세계인구의 33%를 차지했다.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종교 통계에는 다양한 변수가 늘 산재해 있기 때문에 다분히 시험적인 요소가 강하다. ●30년간 전쟁 최장기전은 1618년에서 1648년까지 유럽 여러 나라들 간에 일어났던 ‘30년 전쟁’이었다.무어인들에게 빼앗긴 이베리아 반도를 탈환하려는 스페인의 ‘레콩키스타’운동은 718년 시작된 이래 1492년 스페인이 그라나다를 탈환할 때까지 774년 동안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정명환 등 지음

    프랑스는 한국전쟁에 참여했을까? 답은 물론 ‘참전했다’다.갑자기 우문을 던진 이유는 한국전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혹은 집단의식 속에는 늘 미국과 소련의 ‘망령’만이 너울거린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민음사 펴냄)은 이런 문제의식이 담긴 연구서다.나아가 제3의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조망하면서 ‘우리의 상처’에 대한 시야를 넓히려고 시도한다. 책은 장 폴 사르트르,메를로 퐁티,알베르 카뮈,레이몽 아롱 등 4명의 대표적 지식인을 모델로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념논쟁과 한국 전쟁과의 관련성을 살핀다.불문학자 세 명과 프랑스인 교수 등 4명의 필자는 당시 문학작품과 잡지·신문에 실린 기사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다.변광배 박사는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가 한국전쟁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 뒤 2차대전 당시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아롱과 카뮈에 맞서 논쟁했던 두 사람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서서히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은 흥미롭다.그에 따르면 전쟁 초기 남한의 북침설에 동조한 사르트르는 구소련에 가까워지고,아롱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대표집필자인 정명환 가톨릭대 대우교수는 서론에서 프랑스 지성사를 개괄한다.사르트르,미셸 푸코,아롱 등 세 명의 지식인을 모델로 정치 참여의 세 유형을 정리하는데 ‘앙가주망’으로 대변되는 사르트르는 혁명적 유토피아주의,푸코는 이상주의적 아나키즘,아롱은 비판적 현실주의로 규정한다. 프랑스 지성사에 깔려 있는 세 흐름에 대한 분석으로 연구의 토대를 다진다.이어 파리국립정치학교의 시리넬리 교수는 1945년부터 프랑스 지식인들이 급격히 좌파쪽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한다.이런 편파성은 1965년 헝가리 사태를 계기로 구소련에 등을 돌릴 때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한다.1만 60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中企 ‘러시아서 재미 쏠쏠’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수출도 할 수 있는 러시아 시장을 뚫어라.’ 요즘 국내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내수부진 속에 기초기술과 연구개발(R&D) 여력마저 부족해 수출전선에서도 대기업과 달리 찬밥신세다.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옛소련 시절에 축적한 전자·화학·바이오 등 기초과학 기술력을 헐값에 해외에 제공하고 있어 중소기업들에는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가계소비와 수입물량이 연간 10% 이상 신장되고 있어 수출시장으로서도 국내 중소기업에 훌륭한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 크리스털 가공업체인 ㈜유성글로벌은 러시아의 3차원 형상각인 기술을 도입,지난해에만 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러시아의 레이저 전문연구소인 ‘폴리우스’가 개발한 이 기술은 크리스털과 같은 유리재질에 레이저를 쏘아 그래픽,초상화,문자 등이 2,3차원 입체형상으로 보이게 하는 첨단 기술.지난해 기념품 등을 제작해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올해에는 건축용 유리,유리 용기,반도체 관련 제품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용품으로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광학업체 ㈜웨이텍은 러시아 국가연구소의 기술고문을 사외이사 격으로 영입,홀로그램 응용기술을 이용한 초소형 렌즈를 만들었다.최근 휴대전화의 카메라폰이 각광받으면서 이 회사는 일반 렌즈보다 작고 화질이 매우 뛰어난 홀로그램 렌즈를 삼성전자 등에 납품,지난해 하반기에만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술 이전료는 러시아인 기술고문의 월급을 송금하는 게 전부다.웨이텍은 러시아 전투기 조종석의 ‘HUD시스템’을 자동차에 적용,전투기처럼 운전석 유리창에 계기판 등이 한눈에 보이는 제품도 개발했다. 반도체 장비업체 ㈜에쎌텍도 러시아의 레이저공학 전문가로부터 레이저 절단기술을 도입해 최근 세계 최초로 7세대 LCD유리 레이저 절단기술로 응용 개발,주목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삼성·LG·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러시아에 진출,기술협력사업 등을 통해 러시아 소비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다.그러나 중소기업 진출은 전자저울로 유명한 ㈜카스 등 20여개 업체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러시아에 16억 5911만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출,전년 대비 56%의 증가율을 기록했다.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직접투자는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124건 1억 8093만달러에 불과하다. 한편 중진공은 국내 중소기업에 러시아의 기술협력 기회를 주기 위해 오는 2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에서 러시아 산업기술전시회를 갖는다.국내에서 상용화됐을 때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230여개 기업 및 기술연구소의 기술들이 소개된다. 중진공 국제협력팀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막연히 내수회복만 기다릴 게 아니라 러시아의 원천기술을 상용화해 마케팅 능력이 있는 국내 대기업들에 납품하거나 러시아에 수출하는 방안을 강구할 때”라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는 금융 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에 기술도입이나 시장개척에 따른 대금결제를 할 때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러 ‘나토 확장’ 발끈

    29일(현지시간) 구(舊) 공산권 7개국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으로 나토가 유럽의 동·서를 아우르는 26개 회원국을 가진 기구로 확대됨에 따라 러시아가 나토의 동진(東進)을 우려하며 무력 대응을 경고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불가리아를 비롯해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 등 나토 신입 회원국은 모두 과거 소련의 지배를 받은 국가들이다.그중 러시아의 신경에 가장 거슬리는 국가들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 3국’은 불과 15년 전까지 소련군 10만여명이 진주했던 곳으로 지금도 많은 러시아인이 살고 있다.나토 가입으로 F-16 전투기 4대가 리투아니아에 배치돼 이들 3개국을 상대로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정기적인 정찰 비행을 할 계획이 알려지자 러시아는 군사적 대응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유럽의 안보를 위해선 위협 요소와 갈등을 나토와 러시아가 공동 해결하는 방식으로 나토를 전면 개편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다음달 2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회의에서 기존의 재래식 무기협정에 새 회원국들을 참여시키는 합의를 나토와 이뤄내길 바란다.”며 나토를 압박했다. 러시아는 다음달 7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크렘린을 방문하는 야프 데 호프스헤페르 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거론할 방침이다.나토와 미국은 규모 확대가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며 나토는 러시아의 동반자라고 크렘린측에 강조하고 있다. 한편 나토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 하에 이라크에서 군사적 역할을 수행할 뜻을 밝히면서 또다시 미국의 청소부 역할을 떠맡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나토는 경쟁자였던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와 냉전 종식에 따라 분쟁지역의 평화유지 활동 등을 수행하며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 왔지만 번번이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뒤처리를 도맡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미학오디세이 3/진중권 지음 문화비평가인 저자가 10년 만에 완간한 ‘미학오디세이 시리즈’ 마지막 권.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판화가였던 피라네시의 작품을 중심으로 ‘탈근대 미학’의 세계를 살핀다.피라네시는 현대예술을 잉태한 바로크와 낭만주의 두 사조에 다리를 놓은 선구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다.저자는 피라네시의 상상을 문학적으로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람은 보르헤스라고 주장한다.특히 ‘바벨의 도서관’이나 ‘죽지 않는 사람들’ 같은 소설 속의 환상은 피라네시 없인 생각할 수 없다는 것.저자는 구소련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 또한 피라네시에 열광했다고 밝힌다.1만 4000원. ●Knowledge Driver/장대환 지음 오늘날 우리는 지식사회에 살고 있다.사회가 지식에 의해 주도된다는 뜻이다.그러면 이런 지식을 보유하고 활용하고 창조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바로 지식 드라이버다.지식 드라이버란 지식사회에서 지식을 보유하고 활용하고 창조하는 주체,즉 지식사회의 리더 역할을 하는 개인이나 조직을 말한다.이 책은 지식 드라이버가 주도하는 세계에 대한 입문서다.저자(매일경제신문사 회장)는 자신이 구상하는 교육과 자기개발의 지식경영 로드맵을 밝힌다.저자는 지식경영은 지식 드라이버에겐 ‘변신합체로봇’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1만원. ●장사의 신 호설암/증다오 지음 ‘중국의 상성(商聖)’으로 불리는 호설암의 경상지법(經商之法),즉 경제와 상업의 지혜로운 법칙을 정리했다.19세기 말 청나라 상계를 주름잡은 호설암은 전장과 상단을 거점으로 전국적인 금융점포망을 형성하고 ‘호경여당’이란 약재상을 운영하며 민심을 사로잡았던 인물.상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관직인 ‘홍정상인’과 황마괘를 하사받기도 했다.호설암에게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란 자본 축적만이 아니라 사회안정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그가 큰 돈을 벌고 나서 맨 처음 한 일은 고향의 강가에 나루터를 지어 사람들이 오가기 편하게 한 것이었다.1만 5000원. ●에도시대의 일본미술/크리스틴 구스 지음 일본미술 하면 우리는 흔히 유녀나 가부키 배우를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목판 에혼(繪本) 형식으로 이같은 극장과 유곽지대의 생생한 문화를 반영하고 형상화한 게 바로 에도시대의 미술이다.250년에 걸친 도쿠가와 바쿠후 통치기간 동안 일본의 주도적인 미술형식들은 대부분 에도와 교토의 발전을 통해 이뤄졌다.이 책은 에도시대의 미술을 당시 사회적 상황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꾸몄다.에도의 미술가들이 교토와 달리 빈정거림이나 유머,풍자 같은 반체제적 형식에 관심을 기울인 건 미술에 대해 엄격하게 간섭했던 바쿠후의 영향 때문이다.1만 9000원. ●성서 속의 생태학/A P 휘터만 지음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살았던 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덥고 건조했으며,거름을 주지 않거나 벌목이라도 하면 금방 사막으로 변하는 땅이었다.또한 강한 민족들이 주변을 차지해 영토도 넓히지 못한 채 비좁은 곳에서 살아가야 했다.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그것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생태규칙을 지켜왔기 때문에 가능했다.이 책은 성서가 자연친화적인 율법과 지속가능성의 원형을 담고 있음을 밝힌다.출애굽기나 레위기,신명기 등에서 볼 수 있는 자연친화적 규칙들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1만 2000원.˝
  • [씨줄날줄] 후폭풍/이기동 논설위원

    국내에서도 방영된 니컬러스 메이어 감독의 1983년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는 핵폭발이 가져오는 인류의 대재앙을 소재로 한 작품.한차례의 섬광에 이은 가공할 후폭풍의 위력에 미국 중서부 일대가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핵폭탄 낙하지점 주변은 일순간에 방출되는 엄청난 빛과 열에 모든 물체가 증발하듯 사라지고 주변 반경 수㎞는 가공할 열공기 기둥이 휩쓸어 초토화시킨다.바로 후폭풍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심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지지율에서 두 야당과 열린우리당의 희비가 교차되고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의 탈당 도미노가 이어지고 있다.열린우리당은 표정관리중.당원들에게 촛불시위에 가지 말고 노란점퍼도 입지 말라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정치도 민심도 살아있는 생물체.이 분위기가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면 단견이다.후폭풍이 어떻게 불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지구촌에서 정치적 후폭풍의 최대 희생자는 스페인 집권 국민당이다.압승이 예고됐던 분위기가 총선 직전 터진 열차테러로 한순간에 뒤바뀌며 야당에 승리를 내주었다.1700여명의 사상자를 낸 테러가 알카에다 소행이라는 설이 불거지면서 반전(反戰)민심이 몰아친 것.바로 테러 후폭풍의 위력이다.하지만 반전공약으로 당장 박수야 받겠지만 테러행위를 둘러싼 여론의 후폭풍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고르바초프는 개혁의 판도라 상자를 열면서 그 후폭풍에 희생된 지도자다.개방의 맛을 본 당시 소련국민들은 더 큰 개방을 요구하며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일으켰고 그 후폭풍에 고르비는 무너졌다.북한의 지도자가 이리 갈까 저리 갈까를 놓고 지금 뜸들이는 것도 이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철학자 헤겔은 정·반·합의 변증법을 통해 역사가 발전한다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변증법의 역사도 이런 후폭풍들이 쌓여 이루어낸다. 다만 파괴적인 후폭풍은 역사의 전진이 아니라 후퇴를 부를 것.부정(否定)은 부정을 낳는 법이다.하늘 아래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 부정이 있을 수 있을까.노 대통령도 탄핵사태를 겪으며 이 사실을 깨달았으면.타의로 장기휴가중인 노 대통령이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는다고 해 화제다.칼의 날을 세우는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포용을 통해 후폭풍의 잠재적 뇌관을 해소해 나가는 게 현명한 지도자의 길임을 역사는 보여준다. 이기동 논설위원
  • 푸틴 재선 확실시

    러시아의 제4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14일 실시됐다.이번 선거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의 재선이 확실시된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국가두마(하원) 총선에서도 여당인 러시아통합당이 전체 의석 450석의 3분의2를 넘는 압승을 거둠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무난히 승리하면 권력을 한층 강화하게 될 전망이다. 알렉산드르 베슈냐코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투표가 진행되던 이날 오후 4시 “투표율이 법적 유효선인 50%를 넘어섰다.”고 밝히고 “최종 투표율은 60%를 상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표는 해가 먼저 뜨는 극동 지방에서 시작돼 시간대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며 순차적으로 실시돼 발트해 연안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주를 끝으로 무려 22시간 동안 진행됐다.러시아의 유권자 수는 주변 독립국가연합(CIS·옛소련) 국가들에 거주하는 130만명을 포함해 모두 1억 900만명이며,투표소는 전국 89개 자치공화국과 자치구,주에 모두 9만 5000개가 설치됐다. 투표는 투표소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 진행됐으며,최초 출구 조사 결과는 칼리닌그라드주 투표가 끝나는 시점(모스크바 시간 14일 오후 9시·한국시간 15일 오전 3시)에 발표된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하는 잠정 개표 결과는 15일 오전 5시쯤(모스크바 시간) 공개될 예정이며,공식 투·개표 결과는 오는 25일쯤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대선에는 푸틴(52) 대통령과 공산당의 니콜라이 하리토노프(55),무소속의 세르게이 글라지예프(43),이리나 하카마다(48·여),세르게이 미로노프(51) 연방회의(상원) 의장,자유민주당(LDPR)의 올레그 말리슈킨(52) 등 6명이 출마했다.푸틴 대통령은 최하 60% 이상을 득표할 것으로 예상된다.당초 출마를 선언했던 자유 러시아당의 이반 리브킨(57) 후보는 납치 소동을 빚은 끝에 중도 사퇴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치 및 경제 개혁 가속화와 국민소득 증대,안정적 국정 운영 등을 약속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유도했다.그는 지난 11일 TV를 통해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들만이 미래의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하리토노프와 하카마다 등 야당 후보들은 그러나 푸틴 대통령 진영이 대규모 관권,언권(言權) 선거를 획책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며 표를 통해 심판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도운기자 dawn@˝
  • [TV하이라이트]

    ●이제는 말할 수 있다(오후 11시55분) 1945년 8월15일 광복된 한반도,그것이 진정한 독립은 아니었다.38선이 그어졌고,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되었다.한반도에는 미소,좌익과 우익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한반도 분단의 기원은 무엇이며 한국의 분단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를 집중 취재한다. ●클릭!자동차생활(오전 11시25분) 교통방송 진행자 성우 배한성씨를 만난다.자동차가 아들과의 대화의 매개체가 됐다는 그의 자동차 인생을 엿본다.3초만에 결정되는 안전벨트 착용과 미착용.그러나 사고가 일어나면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다.안전벨트 착용과 관련된 연구분석을 통해 안전벨트 착용 필요성을 짚어 본다. ●사이언스대전(오전 11시20분) 슈퍼맨 3종경기는 도구를 이용하여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3종 경기는 던지기,높이뛰기,멀리뛰기.동력 사용을 금하고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만 도구를 사용해서 경기에 참가해야 한다.경기는 9팀이 3종 경기에 모두 참여,종목별 순위를 가린다. ●게릴라 리포트(오후 10시30분) 전체 여성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70.7%.비정규직은 날로 확대되고 있고,일차적 피해는 바로 여성들이 받고 있다.여성은 저임금 구조와 고용 불안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이런 고용 불안 속에서 힘들어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갖는다. ●폭풍속으로(오후 10시) 미선은 호텔 스위트룸을 예약하고 현준과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다음날 미선은 현준과 호텔을 나서는데 로비에서 지연과 마주치고 지연은 태연한 척하지만 심기가 불편하다.한편 현준은 국선변호인 자격으로 사건을 배당받고 최선을 다하지만,재판이 있던 날 피고인이 자살을 하고 만다. ●진주목걸이(오후7시50분) 인숙은 기남과 난주 앞에서 진심으로 참회하고 숨을 거둔다.며칠 뒤 기남에게 인숙이 자신과 난주 앞으로 조이로를 상속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태훈은 기남이 준비중인 뮤지컬을 조이로에서 올려줄 것을 부탁한다.인숙의 죽음과 새로운 가족 속에서 방황하던 난주는 유학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무인시대(오후 10시30분) 아지는 최충헌을 찾아가 ‘자운선’이라는 기명을 받고 최충헌의 대의에 몸을 바칠 것을 맹세한다.황도로 올라온 자선과 김사미는 황룡의 대업을 잊은 이의민에게 실망하고 미타산만의 거병을 계획한다.홍련화는 지영형제를 기방으로 불러 자운선의 머리를 올려달라 부탁한다. ˝
  • 푸틴 ‘유권자 무관심’ 어쩌나

    이렇다 할 경쟁자 한명 없이 14일(현지시간)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투표율 문제가 최대 난제로 등장했다.정치적 무관심이 갈수록 팽배해지는 상황에서 투표율이 50%에 못 미칠 경우 현행법에 따라 재선거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선거 직전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각양각색의 불법 선거운동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 1999년 국가두마(하원) 총선에서 62%였던 투표율은 지난해 12월 총선에선 56%에 그쳐 갈수록 하향세가 뚜렷해지고 있다.최근 여론조사 결과 60%를 웃도는 지지율을 기록,다른 5명의 후보들을 압도적 차이로 앞섰음에도 푸틴 대통령측이 긴장하는 이유다.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사회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해지자 지난해엔 친여 정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당수가 투표를 의무화하자고 나서기도 했다. 현재 푸틴 대통령은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방송과 공무원 조직을 활용,독점적인 선거전을 이끌고 있다.다른 후보들과의 TV토론은 거부한 채 국영TV의 메인 뉴스를 거의 빼놓지 않고 장식하고 있다.크렘린측이 ‘70% 이상의 투표율과 70% 이상의 푸틴 지지’를 확보하라며 각 지역 공무원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조국당 소속 대선후보 세르게이 글라지예프는 “(공무원에 대한)압력이 대통령측에서 직접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극동 하바로프스크 국립병원들이 부재자 투표용지를 기재해오지 않을 경우 진료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정부가 나서 질타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공무원들이 옛소련 시절처럼 과잉충성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이 11일 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
  •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한반도 분단’ 피할 수 없었나

    민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한반도 분단과 좌·우 대립.그 기원은 무엇이며,왜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분단의 기원’은 14일 밤 11시30분 미국과 소련의 기밀문서와 증언을 통해 해방 이후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집중 조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15일 한반도는 해방되지만,허리에 38선이 그어지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된다.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잠정적 군사분할선이었던 38선을 사이에 두고 미·소,좌·우익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제작진은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소련의 참전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하여 펼쳤던 ‘화평공작’의 전모,해방 당시 소련군이 서울까지 들어와 일부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던 사실 등을 방송 최초로 공개한다.김일성과 함께 소련군 88여단 소속이었던 바실리 이바노프의 증언을 통해 스탈린이 1946년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직접 지명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공개한다. 또 미 군정의 실상과 실책을 비판한 ‘미국의 배반’의 저자 리처드 로빈슨과도 독점 인터뷰했다.로빈슨은 미 군정이 친일파와 우익에 의존하는 바람에 점령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는 주장을 편다.그는 “당시 미국의 최고 목표는 한국의 민주적 통일정부 수립이 아닌,소련의 세력과 공산주의를 막는 것”이었다고 말한다.이 때문에 미국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계획을 세우고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결국 1947년 9월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키로 결정한 가운데 통일된 한반도를 주장하던 민족주의자들은 하나둘 암살되고,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분단 상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제작진은 설명한다. 이영표기자 tomcat@˝
  • [2004 LA마라톤대회] 49세 포즈냐코바 2연패

    8일 열린 2004 LA마라톤대회에서 49세의 ‘아줌마선수’ 타티아나 포즈냐코바(우크라이나)가 여자부 정상에 올랐다.2시간30분16초의 기록으로 그것도 지난 대회에 이어 2연패를 차지했다.우승상금 5만달러 외에 ‘아줌마의 투혼’을 인정받아 2만 5000달러를 보너스로 받았다. 포즈냐코바가 5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낸 것은 아테네올림픽 때문이다.1955년 3월생으로 15세 때인 70년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뜀박질로 34년의 세월을 보낸 셈이다.그러나 아직 올림픽엔 출전하지 못했다. 물론 처음부터 마라톤을 한 것은 아니다.800m와 1500m가 주종목인 중장거리 선수였다.육상강국이었던 구소련 대표선수로 10년 이상 활약했다.그러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고,운도 따르지 않았다.포즈냐코바는 “80모스크바올림픽을 앞두고 1500m에서 3분56초50이라는 좋은 기록을 세워 올림픽출전을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다른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는 바람에 선발되지 못했다.”면서 지금도 아쉬움을 드러냈다.포즈냐코바의 당시 기록은 24년이 지난 현재까지 역대 랭킹 23위에 올라있을 정도.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96년 41세의 나이에 첫 아이를 낳았다.체력을 고려해 출산 이후 장거리를 포기하고 중거리로 전향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엄마가 된 뒤 더 자신감이 생겼다.그래서 오히려 거리를 늘려 1만m에 도전했고,이후에 본격적으로 마라톤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직 은퇴는 생각하지 않는다.나이가 들수록 기록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소속사도 없고 전문코치도 없다.남편 알렉스 자호루이코가 유일한 운동친구다.그러나 남편은 절대적인 후원자이고 든든한 코치다.러시아에서 출생했지만 남편을 따라 국적도 바꿨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지난 96년 금지약물 복용으로 2년간 자격정지를 당했다.길거리에서 구입한 감기약에 금지약물인 에페드린이 포함된 줄 모르고 먹은 것.그러나 99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높다.기록 인정기간(2003년 1월1일∼2004년 8월9일)에 세운 개인최고기록은 2시간29분40초(2003년 3월)로 올림픽 A기준기록(2시간37분)을 넘어섰다. 박준석기자 pj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