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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정부·기업, 한국시장서 채권발행 길 열려”

    “외국정부·기업, 한국시장서 채권발행 길 열려”

    “우리나라가 아시아 금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놓았다고 자부합니다.” 국제 신용평가 시장은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의 판단에 국제 금융시장이 좌지우지됐다. 우리나라도 그 한마디에 울고 웃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글로벌 신평사에 국제적인 비판이 쏠리고 있다. 선진국에 편향됐던 평가가 빗나가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토종 신평사인 한신정평가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정부 신용등급 평가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브라질 정부에 대한 신용을 평가해 등급을 발표한 것이다. 글로벌 3대 신평사 체제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한 셈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이용희(61) 한신정평가 대표이사 부회장을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이번 평가 작업이 갖는 의미는. -세계적으로 정부 신용평가를 하고 있는 곳은 무디스, S&P(이상 미국), 피치(영국), R&I, JCR(이상 일본), 다궁(중국)밖에 없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정부 신용평가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 보다 다양한 의견이 제공돼 시장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경제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외국 정부와 기업들이 한국에서 국채나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우리 정부가 인정하는 신평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동안 외국 정부나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국채나 회사채를 발행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으나, 이제 길이 열린 셈이다. 국외로 투자 대상을 확대하고 있는 우리 투자자들에게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외국 정부와 기업들에 한국 시장에 뛰어들 통로를 만들어 줬다. 한국이 아시아 금융 허브로 가는 지름길은 외국 투자가들이 한국 시장에 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초석을 놓았다고 자부한다. →신용등급 평가 제안에 외국 정부들이 적극적이었나. -놀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우선 3대 글로벌 신평사들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글로벌 3대 신평사들이 금융위기를 거치며 비난을 많이 받았다. 높은 등급을 줬던 유럽의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아일랜드가 부도 위기에 빠졌다. 반면 낮은 등급을 받았던 이머징 마켓들은 아무 문제 없이 호황을 누렸다. 글로벌 신평사들의 시각이 잘못된 게 아니냐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제안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 한국 경제와 금융 시장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커지고 성숙해진 상황도 한몫했다. →해외 경제 인사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외국 정부 재경부 장관이나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두 자기 나라의 미래와 비전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짧은 시간에 고도 성장을 이루고 외환위기도 빨리 극복했다며 부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아 자부심을 느꼈다. 우리 문화와 스포츠 분야가 세계 무대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금융시장도 그만큼 성장했다. 우선 아시아에서, 나아가 전 세계에서 마켓 리더가 돼야 한다. →정부 신용평가에 대한 향후 계획은. -국내 기관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지역이 이머징 마켓이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먼저 평가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올해 안에 5~6곳을 추가로 평가한다. 10년 안에 40여개국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무디스 같은 글로벌 신평사와 경쟁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나 기업 평가 못지않게 개인 신용 문제도 중요할 것 같은데. -물론이다. 외환위기 이후 신용사회가 정착되며 개인신용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금융 소비자들은 신용카드 거래, 은행 대출, 백화점 거래 등 자신의 모든 금융 정보가 종합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평생 건강 관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용 관리를 해야 한다. 일단 세 가지부터 실천해야 한다. 카드 연체를 주의하고, 보증을 서지 말고, 충동구매를 자제해야 한다. 특히 신용이 좋을 때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공직을 떠날 당시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어쩔 수 없이 떠났지만 섭섭하기는 했다. 허전하기도 하고…. 이후 백수 생활도 겪어 보고 민간 쪽에서 일하며 세상을 많이 배우게 됐다. 공직에 있을 때 바라보는 세상과 이쪽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공직에 있을 때는 선과 정의, 명분을 찾았지만, 이곳은 모든 가치가 이익으로 통하고 이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정글이다. 요즘은 더 늦기 전에 세상에 나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공한 관료 출신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CEO로서 강조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한신정의 지배구조가 변화하는 시기에 합류해 자율과 책임을 항상 강조해 왔다. 또 인간 관계에서 상호 신뢰를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기가 먼저 희생하고 좀 더 양보하는 게 그 시작이다. 언제나 하는 이야기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불평보다 감사하는 마음과 자세를 갖고 있으면 오만과 편견이 줄어들고 일을 할 수 있는 추진력이 생긴다. 나 또한 고위 관료였다는 생각을 버리고 민간 비즈니스를 바닥에서부터 배운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이용희 대표는 이용희 대표는 독특하게도 서울대 재학 시절 전공이 천문기상학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 진출 경쟁을 펼치던 1960년대 말이 고교 시절이라 자연스럽게 우주 여행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인 1973년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과 인연을 맺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김광림·이용섭 국회의원,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행시 동기다. 정통 경제관료로 경제기획원, 재경원, 재경부 등을 거쳤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각종 정책 입안과 집행 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서 ‘코드 논쟁’에 휩쓸린 끝에 퇴진을 결심하고 2004년 30여년의 경제관료 생활을 끝냈다. 한신정평가와는 2006년 인연을 맺었다.
  • “통일로 안내하는 내비게이터 되었으면”

    “통일은 반드시 온다. 기회의 창이 열릴 때 이 책이 통일의 종착지로 안내하는 멋진 내비게이터가 되길 기대한다.” 28년째 통일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간부가 독일 통일 과정에 직접 참여한 주역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펴냈다. 양창석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회담대표는 독일 통일 직후 현지에 머물면서 만난 독일 정·재계, 학계 인사들과의 면담 내용 등을 담은 ‘브란덴부르크 비망록’을 펴냈다. 동·서독 경계지역이었던 브란덴부르크는 독일 통일의 현장이자 동서 냉전의 붕괴를 상징한다. 그는 1992년 4월∼1994년 12월, 1995년 3∼9월 각각 주독일대사관 통일연구관과 독일통일연구단 단장으로 현지에서 근무했다. 이 책은 동방정책의 설계자인 에곤바 총리실 장관과 월요 시위를 통해 시민혁명을 촉발한 라이프치히 부시장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통일 정책들을 담았다. 서독 정부는 동독의 반대에도 독일 주민에 대한 ‘유일대표권’을 유지해 동독 탈출민의 정착을 도울 수 있었으며, 콜 총리는 조지 H 부시 미국 대통령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 외교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이 밖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등 독일 통일 과정에 참여한 국가 수반들의 회고담도 담겼다. 양 대표는 “독일 통일은 기적처럼 이뤄졌다.”면서 “독일 통일 과정에서 잘됐던 것은 우리에게도 적용하도록 준비하고, 잘못된 것은 교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사설] 日은 바닷물 방사능 오염 공동조사 응하라

    일본 정부가 어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사고 등급을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가운데 최악인 7등급으로 두 단계나 격상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인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등급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방사성물질의 대량 유출로 인체 및 환경에 광범위한 영향이 발생해 장기적·계획적인 대응조치가 요구된다. 직접피해는 체르노빌 때보다 아직은 경미하다. 하지만 통제력 상실로 방사능 유출이 체르노빌 수준을 넘을 것이란 우려가 나올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때맞춰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성물질 유출사고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한·일 전문가 협의가 어제 이틀 일정으로 일본 외무성에서 시작됐다. 원전 사고와 관련해 양국 전문가가 협의를 한 것은 처음이다. 한·일 양국은 1990년 원자력 안전 조기 연락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했으나 유명무실했다. 그러다 우리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초기부터 조사 참여를 요구했으나 일본이 꺼렸다. 그나마 사고 1개월 뒤에야 열리는 회의지만 결과가 충실해야 한다. 요체는 일본의 숨김없는 태도다. 협의에서는 원전의 안전관리 및 대책, 방사능 측정 및 모니터링 문제 등이 논의된다. 한국 측에서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전문가 6명과 실무자, 일본에서는 원자력안전보안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일본 측은 회의에서 한국 측이 요구하는 관련자료를 충실하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관련 사망자는 어제까지 3명, 부상자는 29명이지만 향후 피해 규모는 예측할 수 없어 우려된다. 한국은 일본 방사능의 직·간접 영향을 받는 가장 가까운 나라다. 일본 사고 사례를 연구, 한국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일본에도 중요하다. 전문가 회의는 시작일 뿐이다. 우리 전문가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 파견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바닷물 방사능 오염에 대한 양국 간 공동조사도 시급하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출로 바닷물의 방사능 오염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근해의 고등어·삼치 등 어류에서 방사능 오염이 확인됐다. 일본은 숨길 게 없다면 공동조사에 응해야 한다. 양국의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한 최소 조치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간 원자력 협력 틀이 마련되어야 상호불신이 해소될 것이다.
  • [日 방사능 공포] 日 원전사고 심각성 인정… 여진 강타땐 체르노빌 능가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이 1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등급을 최고 등급인 7로 격상함에 따라 원전 사고의 여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7등급은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이 규정하고 있는 1~7단계의 등급 중 최고 수준이다. 사고의 정도에 따라 가장 경미한 1등급부터 가장 중대한 7등급까지 7단계로 구성돼 있다. 한 등급이 높아질수록 이전 등급보다 사고의 정도가 10배 더 심각한 것으로 간주된다. 지금까지 7등급을 받았던 사고는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유일하다. 7등급은 ‘대형 사고’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는 ‘방사성물질의 대량 유출로 인체 및 환경에 대한 광범위한 영향이 발생해 계획적·장기적인 대응 조치가 요구되는 경우’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해당 국가의 기관이 잠정적으로 INES 등급을 발표한 뒤 사후 원전 전문가들이 모여 평가를 거친 뒤 정확한 등급을 부여한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7등급으로 규정한 것은 이번 사고가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일컬어지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유사한 수준이 됐다고 일본 정부가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르노빌 사고는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노심의 방사성물질이 대량 확산돼 사고 직후 56명이 사망하고 이후 9000여명이 방사선 피폭에 따른 후유증으로 숨지는 등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알려져 있다.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이 7등급으로 매긴 것은 이번 사고로 인해 방사성물질의 방출량이 많아 외부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사고 발생 초기만 해도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4등급으로 분류했다. 당시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ASN) 등 서방의 전문기관에서는 6등급 이상의 사고로 분류했다. 미국의 한 원전 연구소는 지난달 중순 “지금은 6등급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7등급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시각이 너무 안이하고 굼뜬 게 아니냐는 국제적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정부가 11일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대피지역을 ‘계획적 피난구역’과 ‘긴급시 피난 준비구역’ 등의 이름을 붙여 확대한 것에 대해서도 “너무 뒤늦은 조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7등급으로 규정하면서도 방사성물질 유출량이 체르노빌의 10% 정도 수준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요오드131로 환산한 방사성물질 유출량은 원자력안전보안원이 37만T㏃(테라베크렐=1조베크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63만테라베크렐로 각각 추정했다. 이는 어느 쪽이든 체르노빌에 비해서는 방사성물질 유출량이 상당히 적은 수준이라고 원자력안전보안원은 밝혔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정규환 선임연구원은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의 사고 등급 격상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심각성을 인정한 것”이라며 “방사성물질 유출량이 현재로선 체르노빌의 10% 정도 수준이라고 해도 여진이 계속되는 등 사고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사고 수습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원전 한달만에 최악 ‘7등급’… 30㎞밖에서 스트론튬 첫 검출

    日원전 한달만에 최악 ‘7등급’… 30㎞밖에서 스트론튬 첫 검출

    일본 정부는 1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 등급을 사고 한달 만에 7등급으로 격상했다.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등급이다.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사고 등급을 애초 5등급에서 7등급으로 높인다고 발표했다.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성물질 오염 지역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날 후쿠시마 원전 30㎞ 밖 토양과 식물에서 요오드와 세슘보다도 더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인 스트론튬이 처음 검출됐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30㎞ 밖 바다에서도 법정기준치를 초과한 요오드와 세슘이 처음으로 나왔다. 스트론튬은 몸에 들어갈 경우 뼈에 축적되기 쉬우며 골수암과 백혈병의 원인이 될 우려가 있다. 스트론튬은 기준치가 정해지지 않았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방사능 공포] 체르노빌 원자로 1기 폭발 후쿠시마는 6기 모두 불안

    [日 방사능 공포] 체르노빌 원자로 1기 폭발 후쿠시마는 6기 모두 불안

    일본 정부가 12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급을 ‘최악의 재앙’으로 남은 옛소련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수준인 7등급으로 격상하면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당장의 피해 규모만 따지면 후쿠시마 원전 상황을 ‘제2의 체르노빌 사태’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한달여간의 사투에도 일본 원전이 계속 방사성물질을 쏟아내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후쿠시마 사태가 체르노빌 때보다 인류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남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일본과 옛소련의 원전 사고는 원인부터 다르다. 체르노빌은 1986년 가동 중이던 원자로가 운영자의 실수로 출력이 비정상적으로 급상승해 원자로 내부에서 증기와 수소가 폭발, 노심의 핵물질이 뚫린 천장을 통해 대기로 뿜어져 나와 터졌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대피할 틈도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반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원전 자체의 문제 탓이 아니라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면서 각 원자로의 디젤 발전기가 물에 잠기고, 이어 냉각장치에 이상이 생기면서 원자로가 가열돼 발생했다. 또 방사성물질이 한순간에 누출되지 않고 원전 배수로 등을 통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사고 초기 대응과정에서 56명이 사망한 체르노빌 때와 달리 후쿠시마에서는 직접적 피해로 인해 숨진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원자로의 설계를 비교해도 후쿠시마 원전은 체르노빌보다 안전하다. ‘흑연감속 경수냉각로’였던 체르노빌 원자로는 불이 잘 붙는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한 데다 격납용기가 없어 폭발에 취약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은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비등형 경수로’로, 강철로 된 격납용기가 둘러싸고 있어서 비교적 안전하다. 또 방사성물질 유출량에도 차이가 있다.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12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성물질 유출량이 체르노빌 때의 1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보안원은 앞서 후쿠시마 원전의 유출량을 37만 T㏃/㎥(테라베크렐) 수준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폭발이 처음 발생한 지 한달이 넘었으나 냉각 기능이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이고 방사성물질이 계속 유출되고 있어 향후 피해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 도쿄전력측 관계자는 이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방사성물질이 계속 새어 나와 유출량이 체르노빌 때를 넘어설까 두렵다.”고 말했다. 특히 각 원자로의 격납용기가 어느 정도 파손됐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원자로 1개가 폭발했던 체르노빌과 달리 후쿠시마에서는 제1원전의 원자로 6기가 모두 불안한 것도 사고의 조기 수습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지구촌은 ‘스타워즈’

    중국이 10일 쓰촨성 시창(西昌) 위성발사센터에서 중국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인 베이더우(北斗) 구축을 위한 8번째 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올렸다. 이번 성공은 중국판 GPS의 기본 틀이 완성됐음을 의미한다고 인민일보 등은 평했다. ●美, 우주안보 10개년 전략 수립 12일로 세계 최초 유인우주선 발사 50주년을 맞는 지구촌의 우주공간 활용·선점을 위한 레이스는 더욱 달아올랐다. 경쟁을 주도하던 미·러 ‘양강 구도’가 중국의 급성장에 흔들린 뒤로 이에 자극받은 일본과 유럽, 인도가 가세하면서 이제 우주 경쟁은 다극화 체제로 접어들었다. 미·러 선두 구도를 뒤흔든 중국의 추격은 맹렬하다. 올 한해만도 20여기의 위성, 탐사선, 우주선, 소형 우주실험실 등을 쏘아올리겠다며 의기양양하다. 하반기에 소형 우주실험실인 톈궁(天宮) 1호에 이어 그 두달 뒤에는 무인우주선 선저우(神舟) 8호를 보내 도킹 실험을 실시한다. 11월에는 화성탐사선 잉훠(螢火·반딧불) 1호를 쏘고, 내년에 무인우주선 선저우 9호, 2013년 유인우주선 선저우 10호를 잇따라 올려보내 톈궁 1호와의 도킹 실험을 계속하겠다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늦어도 2020년까지 우주인이 오랫동안 거주할 수 있는 우주정거장을 지구 궤도 상에 건설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우주 기술이 첨단 군사기술 및 전략 경쟁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국의 급성장과 속도전에 다급해진 미국은 지난 2월 우주안보 10개년 전략인 국가안보우주전략(NSSS) 수립을 알리며 우주 무기 개발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러, 올 사상최대 79억弗 투자 금융위기의 여파와 천문학적 적자 재정으로 살림이 거덜난 미국 정부는 케네디우주센터 인력을 반으로 줄이고, 유인 우주탐사계획 ‘컨스텔레이션’도 중단했지만 ‘민간 주도의 기술 개발’이라는 새 개념을 내세우며 주도권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10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줄어든 미항공우주국(NASA) 예산을 민간 우주개발에 투자하는 법안에 서명한 것도 그래서다.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 50주년을 맞는 러시아는 올해를 ‘우주의 해’로 정해 각종 축하 행사를 계획하며 어느 누구보다도 우주개발 열기에 빠져 있다. 올 우주 분야에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최대 규모인 79억 달러를 쏟아부으면서 중국과의 거리 유지를 위한 고삐를 조였다. 지난 7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주재로 우주 개발 관계자 회의를 열고 내년까지 차세대 우주선 ‘클리퍼’를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른 차세대 로켓 앙가라에 실어 쏘아올리겠다며 자존심을 세웠다. 극동 아무르 새 우주발사기지 건설(2015년), 핵 엔진을 이용한 화성비행(2019년), 유인우주선 달 탐사(2020년), 달 우주기지 건설(2030년), 화성에 우주인 진입(2040년) 등 중국보다 한발 앞서 주요 우주 계획을 시행한다는 각오를 밝혔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도 지난해 세계 최초의 지구 외 행성 기상 관측용 위성 ‘아카쓰키’(새벽)와 태양풍으로 항해하는 우주범선(요트) ‘이카로스’를 발사하는 등 우주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유엔은 지난 7일 가가린이 우주비행에 성공한 12일을 인류 우주비행 국제 기념일로 지정했다. 이석우 전문기자·베이징 박홍환특파원 jun88@seoul.co.kr
  • “日 정보 은폐… 고지의무 위반”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도 ‘무과실 책임주의’를 적용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면서 “일본 정부는 상당 기간 관련 정보를 은폐해 왔으며, 이는 국제법상 사전 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경향은 무과실 책임주의 →손해배상이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국제적으로 환경책임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엄격해졌다. 이 사고 이후 원전 등 위험한 사고의 경우 국가 간 사전 통보 의무가 법제화됐다. →지진, 쓰나미는 천재지변이 아닌가. -과거에는 과실 책임주의였으나, 최근 국제법의 경향은 무과실 책임, 즉 과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국에 피해를 줬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의다. 지진은 자연재해지만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위해가 가해져 방사능이 유출될 가능성을 일본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를 주변 국가들에 빨리 통보해 주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도록 했어야 한다. 일본이 상당 기간 동안 정보를 숨긴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주변 국가들이 구체적인 피해가 있으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피해 범위를 어떻게 봐야 하나. -심리적·물리적 재산상의 사전 조치를 취하지 못한 부분도 포함된다. 농작물 피해, 어업·수산업 피해는 물론이고 심리적 불안감,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사람이 줄고 투자가 감소한 부분도 모두 산정할 수 있다. 손해배상에 대한 국제적 방식이 있다.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제법에서는 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져야 할 권리, 의무가 있다. 독립권, 자유권, 불간섭 의무 등 국제 협력 의무 가운데 하나로 국제법 준수의 의무가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져야 할 책임과 사전에 주변 국가들에 알려줘야 할 고지의 의무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금전적인 손해배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日, 여론 압박 땐 성의 보일 것 →일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까. -체르노빌 사건의 경우 당시 소련이 개혁·개방으로 어려웠고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적인 여론의 압박을 받으면 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느 정도 성의 표시는 해야 할 것이다. 중국·미국과 연대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사설] 일본 대지진 한달… 원전 안전을 생각한다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3·11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한달을 맞았다. 피해가 워낙 커 복구는 아직 시작단계일 뿐이다. 그보다 더 세계인의 눈길을 끈 것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 사고다. 지진 다음 날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에서 수소폭발로 건물 외벽과 지붕이 붕괴된 뒤 3, 4호기도 폭발했다. 이후에도 해결 전망이 안 보여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방사능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방사능 위험을 둘러싼 색깔논쟁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일본 국민은 지진 초기에는 남들을 먼저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며, 침착함을 보여 전 세계인으로부터 “인류 정신의 진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반면 일본 정부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채 허둥댔다. 매뉴얼에만 매달려 구호물품 현장 도달이 지연됐고, 방사능 정보 은폐에만 급급하다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일본 정부가 통제력을 잃었다는 지적까지 낳았다. 1979년 3월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를 넘어 19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버금가는 사태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진으로 인근 도호쿠전력의 오나가와 원전에서도 오염된 냉각수가 일부 유출됐다. 히가시도리 원전도 외부전원이 일시 끊겼고,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시설의 냉각장치도 1시간 정도 가동이 중단됐다. 원전 안전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원전사태 조사를 위한 전문가 파견을 하루빨리 성사시켜 신속한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방사능 공포를 누그러뜨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최근의 ‘색깔 논쟁’은 당장 멈춰야 한다. 좌파 일각에서 방사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얄팍한 지식으로 자극하고 부추겨 정권 공격용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무책임하다 못해 졸렬한 짓이다. 그렇다고 ‘2008년 광우병사태 때처럼 방사능 괴담을 유포시키는 불순 세력’ 운운하면서 색깔론을 제기한 것 역시 지나치다. 좌·우 양극단의 색깔 논쟁은 방사능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자력에너지 안전 문제를 재점검하고 보완할 것은 철저히 보완해야 한다. 괴담에 흔들리지 말고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원자력에너지 안전 문제를 진지하게 다잡는 것이 옳은 길이다.
  • 일반 메기의 10배 크기 ‘체르노빌 괴물메기’ 논란

    일반 메기의 10배 크기 ‘체르노빌 괴물메기’ 논란

    정상 크기 메기의 10배인 ’체르노빌 괴물메기’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인근 바다에서 잡은 어류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면서 ’체르노빌 괴물메기’ 동영상이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최근 동영상 매체인 유튜브에는 발견 당시 구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사(1986년 )고로 인한 돌연변이로 추정됐던 괴물 메기의 모습들이 공개됐다. 러시아의 한 유명 블로거가 이 괴물메기를 처음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르노빌 인근에 서식 중인 메기들로, 30~50cm의 일반 메기보다 무려 10배나 큰 3~4m 정도다. 네티즌들은 방사능 영향에 따른 유전자 변형이란 추측과 함께 ‘체르노빌 괴물메기’로 이름을 붙였다. 몇년 전에는 이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도 몰렸다. 네티즌의 관심은 무척 뜨겁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때의 방사능 누출로 정상 크기의 메기가 돌연변이로 ’괴물 메기’가 됐다는 것. 네티즌들은 “방사능의 위험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유전자 변형 때문에 저렇게 커진 건가” “일본도 저렇게 될까봐 걱정이다.” “소름끼치게 무서운 일이다.”라는 등의 우려섞인 반응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편 체르노빌에서는 뱀보다 큰 1m 길이의 ‘거대 지렁이’가 발견됐다거나 사람 크기의 ‘거대 나방’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기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년 앞두고/박종효 모스크바대학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기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년 앞두고/박종효 모스크바대학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1986년 4월 26일 새벽에 발생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년이 눈앞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기념하는 대규모 국제학술대회를 올해 개최할 예정이다. 러시아 언론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재판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체르노빌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피해 규모는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는 소련 공산당 시절이라 피해 정보가 통제돼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제 점차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벨라루스·러시아 3개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사고 지역에서 가까운 유럽에도 큰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다. 사고 원전에서 발생한 다량의 수증기와 방사성 침전 물질이 구름을 형성해 북쪽으로는 스위스에서, 서쪽으로는 터키와 그루지야, 그리고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에까지 미쳤다고 한다. 러시아 그린필드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에서 약 2만명의 기형아가 출생했으며 우크라이나·벨라루스·러시아 3개국에서는 수만명이 사망하고 수십만명이 장애인이 되거나 불치병에 걸렸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토의 약 70%가 방사성물질에 오염돼 있으며 오염된 토양은 수백년 또는 1000년이 간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어(語)인 체르노빌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쑥’인데 한국의 속담처럼 체르노빌 주변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방사성물질의 누출을 막고 발전소를 폐쇄하는 데 소련 군인을 포함해 내외 전문가가 60만명이나 동원됐다. 당시 사고 수습에 나섰거나 사고 지역에 살던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당국의 권유에 따라 생활도구만 지참해 허둥지둥 각자 희망에 따라 휴양소 등에 보내졌다고 한다. 사고 지역에서 소개된 총인원은 31만 6555명이라고 한다. 사고로 피폭된 사망자는 당일에 1명이었으며 다음 날 또 1명이 사망했다. 사고 후 3개월 만에 31명이 발병해 27명이 사망했고, 15년 만에 80여명이 숨졌다. 특히 발병한 유형을 보면 신장암, 정신병, 피부암, 식도암, 호흡기 질환 환자가 많았다. 러시아에는 식도암 환자가 1만명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소개된 사람들은 이 통계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체르노빌 원전 사고 원인은 110가지나 된다고 하나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당일 4호기 근무자들의 실수였으며, 둘째는 사고에 대비한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420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미국 104개, 프랑스 59개, 일본 55개, 러시아 31개, 영국 23개, 한국이 20개다. 이어 캐나다 18개, 독일 17개, 우크라이나 15개 순이다. 한국은 세계 제6위의 원자력발전소 보유 국가다. 이제 한국도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강 건너 불로 볼 수 없게 됐다. 원전 사고는 일어나면 전쟁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예방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글로벌 시대] 무한한 가치를 가진 기억/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글로벌 시대] 무한한 가치를 가진 기억/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우주의 콜럼버스, 지구의 사신, 최초의 우주인. 인류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유리 가가린은 이렇게 다양하게 불린다. 오는 12일은 가가린이 역사적인 우주 비행에 성공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가가린은 우주비행선 ‘보스토크-1’에 탑승하여 중력을 극복하고 지구 궤도에 진입하여 지구를 한 바퀴 돈 뒤에 지상으로 귀환했다. 이 공적으로 소련 영웅 칭호를 받았다. 우주비행을 준비하는 데는 수년이 소요되었다. 가가린 이외에도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을 할 후보들이 20명 선발되었다. 그들은 시험비행 조종사들 가운데 선발된 사람들로, 모두 중력가속도, 스트레스 상황, 급격한 압력 변화에 익숙한 조종사들이었다. 우주비행사 제1진은 의학적, 심리적 기준 및 기타 기준들에 따라 선발되었다. 20명의 후보 가운데 6명이 선발되었고, 그들 중에서 다시 2명, 즉 유리 가가린과 그의 대체 우주비행사로 게르만 티토프가 선발되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우주선 개발자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1961년 4월 20일 유인 우주선을 발사할 계획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련은 4월 11일에서 17일 사이에 우주선을 발사하기로 계획했고, 결국 12일로 발사일이 확정되었다. 우주선 발사에 앞서 소련의 타스 통신은 세 가지 보도를 준비했다. 첫째는 ‘발사 성공 보도’, 둘째는 가가린이 공해 또는 타국 영토에 착륙할 경우에 대비한 ‘외국 정부를 위한 보도’, 셋째는 가가린의 우주비행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 대비한 보도였다. 그러나 가가린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프트니크-1’이 우주로 발사된 지 4년 만에 유인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108분 동안의 우주비행이 가가린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의 우주비행에 관한 뉴스는 순식간에 전세계에 퍼졌고, 소련의 산부인과 병원들에서는 수많은 산모들이 아기의 이름을 유리라고 짓기도 했다. 가가린은 계획되었던 착륙 지점이 아닌 사라토프 주에 착륙했다. 그곳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후에 가가린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나는 우리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여, 저 아름다움을 파괴하지 말고 보존하여 더 키워 나가자.” 특히 오늘날 그의 이 말은 더욱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가가린은 그 후 수년 동안 많은 나라를 방문하며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벌였다. 1961년 한 해만 해도 30개 국가를 방문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하루에 18~20차례 연설을 했다. 이는 당시 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자 가가린은 다시 우주비행사로 복귀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운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8년 3월 27일 가가린은 동료 조종사와 신형 전투기를 조종하다가 츠칼롭스키 비행장 근처에서 추락했다. 소련은 국장(國葬)을 선포했다. 국가 원수가 아닌 사람이 사망한 경우 국장을 선포한 것은 소련 역사상 처음이었다. 가가린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아주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인류의 우주개발사상 최초의 거대한 도약에 관한 기억을 남긴 것이다. 이제 경쟁적인 우주개발 시대는 과거가 되었다. 우주개발 분야의 기술 수준과 투자 규모가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지구 궤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우주정거장이 운용되고 있으며, 러시아는 우주개발 분야에서 많은 나라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한 이후 약 50년 동안 500명 이상이 우주비행을 했고, 35개 국가가 우주비행사를 배출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독자적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기술수준을 확보했다. 그리고 2008년 4월 8일 우주비행사 이소연이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다녀왔다. 이제 한국과 러시아 전문가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 우주선이 높이 날아오를 날도 머지않았다.
  • ‘박근혜·유시민 복지론’ 밑그림 제공 안상훈 서울대 교수 인터뷰

    ‘박근혜·유시민 복지론’ 밑그림 제공 안상훈 서울대 교수 인터뷰

    “오해의 결이 워낙 두껍게 쌓여 있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안상훈(42)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2006년 6월 내놓은 대답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중한 인터뷰 거절이었다. 사정은 이랬다. 당시 스웨덴 집권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총선에서 참패했다. 멀리 북유럽 국가의 선거 결과를 두고 더 흥분한 것은 한국 언론들이었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델로 손꼽히는 스웨덴에서마저 사민당이 패배한 사실을 들어 ‘어쭙잖은 좌파’ 노무현 정권을 향한 맹공이 쏟아졌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냉소했다. 그래서 스웨덴 모델에 대해 냉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았다. 그래서 안 교수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복지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의 몇 안 되는 학자다. 하지만 “두터운 오해의 결”을 내세워 거절했다. “그때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 많이 받았지요. 지금도 입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28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안 교수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은 시쳇말로 ‘기업 팔을 비틀어대도’ 이념 공세에서는 자유로운 이명박 정권 아닌가. 차기 대통령 선거 주자 ‘부동의 1위’를 달리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현 국회의원)도 ‘사회복지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자신만의 복지구상을 밝혔다. 이른바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출산에서 노후까지 생애 주기를 구분해 소득보다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개념)다. 야당인 민주당도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묶어 3무(無) 정책으로 내놨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참여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아 ‘사회투자국가론’(복지 지출이 성장과 융합하기 위해 성과를 내는 투자 형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외치고 있다. 박근혜·유시민 두 사람의 복지 방안에는 안 교수의 주장이 상당 부분 녹아 있다. 특히 박 전 대표가 내놓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는 안 교수가 10년째 강단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판박이다. 이렇게 우호적인 분위기인데도 안 교수는 왜 입 떼기가 여전히 어려울까. 그가 최근 ‘현대 한국복지국가의 제도적 전환’(서울대출판문화원 펴냄)이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낸 것을 명분 삼아 어렵사리 만났다. →스웨덴 모델이 다시 화두다. 소회가 남다를 듯싶은데. -2006년과는 또 다르게 답답하다. 지금 당장 한국에서 스웨덴 모델은 불가능하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수준이 스웨덴과 다르다. 비유하자면 초등학생이 대학생 옷을 입고 멋 내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한국은 초등학생이 유치원 옷을 입고 있는 격이다. 이런 마당에 작은 옷이 싫다고 갑자기 너무 큰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짚어 달라. -스웨덴 모델이 인기를 끌면서 스웨덴을 다룬 대중서들이 참 많이 나왔다. 나도 가끔 보는데 결국 각자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나서 일방적으로 얘기한다. 스웨덴을 천국처럼 묘사하는 이들은 주로 1970년대, 그러니까 스웨덴 모델의 최전성기 때까지만 얘기한다. 1990년대 들어서 사민당마저 복지 다이어트에 나서면서 스웨덴 모델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세밀하게 접근하기보다 한때 유행했던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식의 논쟁만 남았다. 글쓰기 내공이 더 쌓이면 스웨덴 모델에 대한 대중서를 내가 직접 쓰고 싶을 정도다. →그러면 (스웨덴에서) 어떤 부분을 배워야 하나. -가장 배워야 할 부분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복지 그 자체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지속 가능한 복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점이다. →‘사회서비스’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무슨 얘기인가. -복지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현금을 주는 것과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현금을 쥐여 주는 것은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지만 ‘근로 동기 침해’라는 문제점도 있다. 반면, 사회 서비스는 근로 동기 침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예컨대 실업자에게 실업수당 명목으로 150만원을 준다면 일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육비나 교육비로 150만원 지원하면 그 이유로 놀지는 않는다. 서구의 복지 선진국들은 사회 서비스 대 현금 서비스 비율이 1대2 정도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대4, 1대5 정도 된다. 사회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 서비스가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워크페어=Work+Welfare)나 노무현 정권의 ‘참여형 복지’(사회투자국가론)와 어떤 차이가 있나. -이전 정권에서 거론한 사회 서비스 강화는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제3의 길’ 저자)에게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너무 부분만 얘기했다. 생산적 복지는 일하면 돈을 더 주겠다는 것, 즉 자활 개념이 들어가 있다. 복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다. →무슨 뜻인가. -복지를 자꾸 저소득층을 도와주는 개념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식으로 복지를 받아들이면 결국 현금 중심 지원에 머물게 되고, 그 결과는 ‘복지병’에서 보듯 근로 의욕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국가 재정 문제를 낳게 된다. 우리나라도 각종 연기금 문제에 대한 우려가 많지 않은가. →그래도 노무현 정권이나 유시민 대표의 사회투자국가론은 사회 서비스를 내세우지 않았나.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가 현금 지원에 자활을 합친 것이라면, (노무현 정권의) 사회투자론은 사회 서비스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한발 전진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유 대표의 주장을 보면 여전히 복지를 (저소득층에 대한) 시혜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상복지’ 시리즈를 내건 민주당과 마찰이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에 정말 사회 서비스를 통한 보편적 복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면, 이것저것 건드리지 말고 교육이면 교육, 보육이면 보육 딱 한 부분만 골라서 일단 시행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런 맥락에서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 시리즈는 어떤가. -조금 더 차근차근 제시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무상 대상으로) 급식, 의료, 교육을 내세웠는데 그 세 가지를 왜 고르고, 왜 정책적 우선순위를 뒀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왜 무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설명도 충분치 않다. 복지 정책의 정치적 기대치를 너무 높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와, 공짜다.” 하다가 “에이, 이게 뭐야.”로 가게 된다. 그런 실망감이 누적되면 다음 정책 추진 때 어려워진다. 정권만 잡으면 전부 다 해 줄 것처럼 얘기하지 말고 왜 이 항목을 골랐고 어떤 방식으로 실천해 나갈 것인지 좀 더 깊은 고민과 논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안은. -내가 보기엔 가장 진보적이다. 아무래도 박 전 대표는 아버지(고 박정희 대통령) 영향 때문인지 국가가 선도적으로 나서서 개량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유시민 대표가 영미식 제한적 복지에 그쳤다면, 박 전 대표는 좀 더 전폭적이고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복지 정책을 연구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대목은 우리나라 복지 프로그램에 없는 건 없다는 거다. 있을 건 다 있는데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찔끔찔끔 백화점식으로 늘어만 놓지 말고 핵심을 정해 국민을 설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복지 제도에 대한 전면적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내 주장이었고 박 전 대표가 이를 많이 받아들였다. →학자로서 이론 전파에 일정 부분 성공한 셈인데 어떻게 (정치권과) 인연이 닿았나. -정치권과 직접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강단에서 늘 해 왔던 주장들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 때 복지부 정책평가위원으로 일한 적은 있다. 이때 논의한 내용들이 유 대표에게 전달된 것 같다. 박 전 대표 경우는, 대학 은사(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께서 우리나라 복지 정책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며 (박 전 대표의 정책) 브레인으로 참여하셨는데 제자된 도리로 옆에서 조금 거들어 드렸다. →결국 복지 정책에 있어서 ‘빨갱이’ 취급을 당하기 쉬운 진보보다 공동체 복원을 내세운 보수가 더 유리한 셈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진보가 없으면 복지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도 없다. 진보의 역할이 크다. →진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강남 좌파’니 ‘분당 우파’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어떻게 보나. -말 장난이다. 언론이나 정치계가 자꾸 그런 말을 만들어 내는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의 정교함이나 어느 게 국민에게 이로운가를 따져야지…. 언론은 그렇다 치고 대학 교수들까지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말씀을 들어보니 강남에 안 사나 보다. -하하. 굳이 따지자면 강남에 전세 사는 중도파다. →박 전 대표의 보수적 색채 때문에 집권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당장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그의 공약은(세금과 정부 규모는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는 ‘풀’고, 법 질서를 ‘세’우자는) ‘줄푸세’였다. -박 전 대표의 구상 자체는 진보신당 대표를 지낸 노회찬 의원이나 참여정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용익 서울대 교수 등 반대 진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 남는 것은 진정성인데, 그건 학자인 내가 언급할 문제는 아니다. 학자로서 얘기하자면 가능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봐라. 이명박 정부가 잘해서 그 위기를 넘겼느냐, 그건 아니다. 1998년 이후 뒷정리를 잘 해둔 김대중 정부의 공덕이 크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치열하게 고민해서 세팅을 잘해야 한다. 어느 누구 하나의 공으로 될 일이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스웨덴 모델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스웨덴의 특수성, 예컨대 이웃 소련의 압박, 적은 인구, 유럽이라는 거대 단일 시장 등이 있었기에 (스웨덴 복지가) 가능했던 것 아닌가. -맞다. 스웨덴은 1·2차 세계대전 때 어디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초토화된 유럽을 상대로 전후(戰後) 보급기지 역할을 맡았다. 인구도 1000만명이 채 안 된다. 스웨덴 사람들은 일본인들처럼 남에게 욕먹고는 못 산다. 스웨덴 모델이 안 된다는 사람들은 은근히 미국을 내세운다. 미국이 복지 후진국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인종 문제(흑백 갈등)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인종 문제가 있나? 아니다. 심지어 평등 지향적 의식이 엄청 강하다. 그렇기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복지를 구상할 수 있고, 해낼 수도 있다. →그럼 무엇부터 손대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빨리’다. 지금 안 바꾸면 나중에 큰 골칫덩이가 된다. 프랑스를 봐라. 연금 체계가 굳어버린 뒤 뒤늦게 손대려 하니까 총파업이 터져나오는 고통을 겪지 않나. 우리는 갖춰진 게 없다. 그나마 이 점이 다행이다. 정해진 틀이 없으니까 이제부터 잘하면 더 좋은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다. 스웨덴 모델 성립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노동운동, 즉 조직화된 노조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건 산업화 시대의 모델이다. 지금 같은 탈산업시대에는 지식이나 교육 분야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늘려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쉽게 말해 아이가 있는 젊은 여성과 그 여성에 연계된 젊은 남성의 표를 어떻게 유혹할 것인가, 하는 거다. 내 꿈은 한국이 이 과정을 잘 설계해서 스웨덴이 한국 모델을 배우기 위해 역방문하는 것이다. →이러다 나중에 복지부 장관이나 국무총리로 입각하는 것 아닌가. -하하. 나는 학자로서 복지국가 논의의 물길을 트는 데 관심 있다. 5년 단임정부에 들어가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100살까지 서울대 교수하면서 복지국가를 연구하고 싶다. 스웨덴은 학비가 공짜라 유학생을 잘 안 받아 준다. 그래서 스웨덴 모델에 관심 있는 학자들도 방문연구원 형식으로 몇 년 머무는 정도가 전부다. 내가 (스웨덴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1992년 사회복지학회 주최로 서울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에스핑 앤더슨(복지국가유형론으로 유명한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복지정책학자) 등 유명 학자들의 ‘시중’을 들었다. 관련 논문도 번역해 주고 길 안내도 하고…. 그게 인연이 돼 공부의 길로 이어진 만큼 배우고 익힌 이론을 제대로 전달해 보고 싶다. →입각보다 100살까지 교수하는 게 더 어려운 것 아닌가. -하하하. 그건 쓰지 마라. 나 잘릴지도 모른다.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1969년 서울 출생 ▲1992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1996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비교사회정책 석사 ▲2000년 스웨덴 웁살라대학 비교사회정책 박사 ▲2001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5~2007년 보건복지부 정책자문위원 ▲2006~2008년 대통령 자문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9년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장
  • 러시아에 다시 뜨는 ‘인간 별’ 가가린

    “갑시다.” 유리 가가린이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자 카자흐스탄의 우주기지에서 그를 태운 소련제 로켓은 하늘 높이 치솟았고, 그는 우주를 다녀온 첫번째 인간이 됐다. 유난히 화창했던 1961년 4월 12일 오전 9시 6분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새로운 장을 열었다. 목수의 아들로 당시 27살의 청년이었던 가가린은 108분의 우주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낙하산으로 귀환했다. ●러시아인 35% 롤 모델로 뽑아 가가린이 우주를 난 지 50주년을 코앞에 둔 요즘 러시아에는 ‘가가린 열풍’이 불고 있다고 러시아의 ‘로시스카야 가제타’ 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가 가가린 비행 50주년을 맞아 이 러시아 신문(영어판)을 특별히 미국 가정에 배달했기 때문에,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초반에 밀렸던 미국인들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50년 전을 회고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신문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인의 35%가 가가린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슈퍼스타가 즐비한 요즘에도 그는 여전히 우상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소련이 배출한 우주인 중 한 명인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가가린은 인류가 우주에 파견한 첫번째 특사이자 인간 별(star)”이라고 했다. 이어 “어떤 심리학자나 정치인도 가가린의 우주비행이 세상에 끼친 영향을 예측하지 못했다.”면서 “그의 비행은 무기경쟁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경쟁이었다.”고 했다. ●러 정부 ‘新우주경쟁’ 촉매 기대 러시아 정부는 가가린의 비행 50주년을 맞아 들썩이고 있는 민심을 우주경쟁에서의 옛 영화(榮華)를 되찾는 계기로 삼고싶은 눈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우주는 우리의 최우선 관심대상”이라고 이미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러시아의 연간 우주사업 예산은 30억 달러로 미국의 190억 달러에 한참 못미친다. 하지만 러시아는 최근 ‘오일 머니’를 앞세워 투자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반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경제위기로 우주예산을 삭감했다. 가가린은 1968년 두번째 우주비행을 위해 훈련비행을 하던 중 사고로 숨졌고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 묘 근처에 묻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동 민주화 혼란 틈타 알카에다 세력 키우나

    중동 민주화 혼란 틈타 알카에다 세력 키우나

    지난달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반정부 시위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뒤 정권 퇴진 운동의 배후로 알카에다를 지목했다. 이후 그는 같은 주장을 반복했지만 시위의 발단을 지켜본 국제사회는 이를 비웃었다. 하지만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반정부 운동이 계속되고 있는 예멘에서 알카에다 조직이 정부군과 잇따라 충돌하면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테러 조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서 공화당 소속 제임스 이노프(오클라호마) 의원이 리비아에서도 알카에다가 활동할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자리에서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나토군 사령관은 “미 정보당국이 리비아 반군 내에 알카에다가 있다는 징후들을 포착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현재로서는 반군 사이에 상당한 수의 알카에다 혹은 다른 테러 조직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그 규모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반면 미국 정부는 리비아 반군 내 알카에다 존재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한 정부 관리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대규모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리비아 반정부 운동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골초로 유명했던) 윈스턴 처칠이 평생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테러 조직 배후설을 일축했다. 진 크레츠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는 카다피의 주장은 반군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진짜로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반군도 (카다피의 의도를) 다 파악하고 있다.”며 시위 초반에 알제리의 알카에다 연계 조직원 3, 4명이 잠입을 시도했다가 결국 들통났다고 전했다. 반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직 항공사 엔지니어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알카에다의 수장인) 빈 라덴, 히틀러 모두 같다.”면서 “우리는 평범한 시민이지 알카에다가 아니다.”라며 테러조직의 배후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반군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라고 밝힌 것처럼 미 정부도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또 리비아 반정부 시위 역사에 비춰볼 때 알카에다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뿐 현재 추정하는 것 이상의 규모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리비아이슬람전사그룹(LIFG)이 이번에도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IFG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과 싸우고 돌아온 이들이 1995년 가을 구성한 조직으로 카다피 정권에 강하게 저항해 왔다. 이들은 알카에다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엔이 활동을 금지한 조직 중 하나다. 예멘은 리비아와 상황이 다르다.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는 테러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반정부 시위 이전부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친미 성향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미국의 대테러 작전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열린세상] 중국 한반도 정책의 미국 요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열린세상] 중국 한반도 정책의 미국 요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의 내전이 격화되자 서둘러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공군력·해군력 사용을 핵심으로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상군 투입은 미국의 주저와 중국의 반발로 배제되었다. 그러나 ‘민간인 보호를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에 따라 카다피 군에 대한 폭격이 실시됐다. 미국은 카다피 축출을 개입의 목적으로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습의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는 강대국 정치에 민감한 한반도의 안정, 평화와 통일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소련·북한·중국이 6·25전쟁 공모 시 미국이 군사개입한다면 중국은 군대를 보내 김일성을 도울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의 참전은 한국군이 아닌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할 때 결정되었다. 휴전회담 초기에 중국은 한반도에서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주장했지만 미국의 강한 반발로 철회했다. 1972년 중국은 미국과의 수뇌회담을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받고 타이완으로부터 모든 미군과 전술핵무기의 철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지만 주한 미군의 존재를 묵인한다. 그후 중국은 주한 미군을 중국 안보의 위협보다는 한반도 통일의 방해요인으로 선전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중국의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중국은 주한미군의 공식적 철수 주장은 미국 패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이유로 자제하면서 주한미군 증원이나 새로운 첨단 무기 도입 및 한·미 연합훈련의 강화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다. 중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의 발생 가능성을 부인한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조성,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국은 북한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할 의사가 있으나 북한 급변사태 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꺼린다.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 시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하며 외세의 개입이 없다면 중국도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개입한다면 유엔의 결의를 거쳐야 함을 강조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를 통일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한국 일부 언론의 보도를 의식한 듯 중국 정부가 지지하는 통일 원칙, ‘당사자 간에 자주·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상기시킨다. 통일한국은 비핵화, 외교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한미군의 향방에 대해서도 논의를 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의 단일 국가 등장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안정된 관계를 유지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강대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동북아 정세의 안정과 지역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중국은 북한의 핵문제로 미국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국의 주장에 따라 북한을 압박하기보다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을 위해 관련국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 전문가들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지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경제가 궁핍해지고 내정이 불안정해지는 사태를 더욱 우려한다. 중국은 이러한 사태의 예방을 위해서도 중국이 북한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북한의 리더십 안정과 경제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안정과 비핵화 중 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북한의 핵 무장은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고 미국·일본·한국 간의 안보협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붕괴는 동북아 세력균형을 중국에 불리하게 만들어 미국의 패권질서를 강화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의 대비는 일차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 한·미의 군사 대비가 언론에 과도하게 노출되다 보니 북한 붕괴를 겨냥한 통일이 목표인 양 오해 받기 쉽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의 원인이 핵과 선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북한의 노선에 있음을 직시하고 정책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또 유사시 북한이 중국의 내정불간섭 원칙의 예외지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내부 폭발이 국제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외교적 대비가 필요하다. 주변국이 납득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외교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 “2주뒤 日 방사성물질 한국 올 것… 인공강우 등 대책을”

    “2주뒤 日 방사성물질 한국 올 것… 인공강우 등 대책을”

    “2주 뒤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이 한국 쪽으로 올 것이다.” 러시아의 알렉세이 야블로코프 박사는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 빌딩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바람에 실려 태평양 쪽으로 갔던 방사능이 곧 아시아 쪽으로 올 것”이라면서 “한국, 중국과 러시아 극동 지역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각국 정부가 협력해 인공 강우 등의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블로코프 박사는 1986년 4월 소련 연방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사고 관련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생태학자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을 때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부에서 환경 관련 고문으로 활동했던 그는 당시 경험을 토대로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 상황을 장기간에 걸쳐 조사, ‘체르노빌, 대재앙의 결과’라는 공동저서를 2009년 발간했다. 현재 러시아 과학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체르노빌 사고 25주년을 맞아 반(反)원자력 관련 세미나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방사능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체르노빌 사고로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들이 각종 암과 백혈병, 유전적 장애, 뇌 손상 등의 피해를 입은 사례가 나타났다. 특히 어린이들은 지능발달에 문제를 일으켰다. 방사능에 의한 피해는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무려 7세대에 걸쳐 나타난다. 체르노빌 사고는 누출된 방사능의 강도가 5000만 퀴리(Ci)였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200만 퀴리로 차이가 크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고, 특히 방사능을 훨씬 많이 배출하는 플루토늄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더 큰 피해가 확인될 수 있다. →7세대까지 피해가 유전된다는 주장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한번 오염이 되면 유전된다는 게 유전학으로 입증됐다. 오염 지역 어른들이 낳은 아이들에게서 이미 유전적 질병이 나타났다. 이것이 증거다. 2세대 만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오래 영향을 미치나. -방사능이 공중에서 떨어지면 땅 속으로 스며든다. 이로 인해 식물 뿌리와 물이 오염된다. 이런 땅에서 자란 풀을 먹은 동물도 오염된다. 지난해 스웨덴에서 엘크(초식동물)가 방사능에 오염된 게 확인됐다. 그래서 그 지역 토양을 측정해 보니 20여년 전 체르노빌 방사능이 날아온 직후의 오염도와 똑같이 나왔다. 오염 지역의 물, 우유, 채소 같은 것을 먹으면 안 된다. →요오드화 칼륨을 복용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나. -요오드화 칼륨 복용이 쉽고 간단한 보호 대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 약이 피해를 완벽하게 예방한다는 공식 데이터가 없다. 방사능은 매우 위험하다. 극소량의 플루토늄에 노출돼도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일본인들은 잘 대처했다고 보나. -내가 보기에 그들은 늦었다. 요오드화 칼륨은 방사능에 노출되기 전에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 조금이라도 방사능에 노출되면 엄청나게 해롭다. 방사능 피해는 오랫동안 잠복하다가 서서히 나타난다. 10년, 20년 후에도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본 정부가 국민들을 소개(evacuate)시켰어야 했나. -그렇다. 일본 정부가 실수했다. →일본 정부가 방사능의 피해 가능성을 축소했다고 보나. -그렇다. →체르노빌 사고와 후쿠시마 사고의 결과가 비슷할 것이라고 보는가. -지금은 똑같지 않지만 몇년 뒤에는 매우 비슷해질 것이다. 특히 후쿠시마는 인구가 밀집돼 있어 큰 피해가 우려된다. 체르노빌 사고 때 방사능이 날아간 거리를 생각해 보면, 일본 전역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한국도 피해를 입을 수 있나. -그렇다. 한국, 중국 그리고 러시아 극동 지방이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 지금은 방사능이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날아가서 태평양 쪽에 있다. 그것이 다시 2주 후면 아시아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방사능이 그렇게 멀리 가나. -체르노빌 사고 때는 독일, 스웨덴은 물론 스코틀랜드까지 방사능이 날아갔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후쿠시마와 아주 가까운 거리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방사능이 육지에 도착하기 전에 비행기를 이용해 방사능을 머금은 구름에 인공강우를 일으켜 바다 위로 떨어뜨리면 된다. 체르노빌 사고 때도 그런 방법으로 피해를 줄였다. 주변국들과 협력해서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비행기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할 텐데. -아니다. 몇대로 충분하다. →한국인들이 다 대피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인공 강우를 빨리 실시하면 된다. →한국이 원전을 계속 가동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당장 문을 닫아야 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즉각 원전 가동을 중단시키지 않았나. 특히 오래된 원전은 매우 위험하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건강에 안 좋은 것 아닌가. -사람만 질병에 걸리는 게 아니라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에서 자란 식물을 먹은 동물까지 오염된 게 확인됐다.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한가. 그런데도 우려를 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당신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들어본 적이 있나.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토론을 제의해도 그들은 거절한다. 그렇다고 내가 침묵을 지켜야 하나.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서울광장] 리더십의 세계화/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리더십의 세계화/최광숙 논설위원

    지난 2009년 9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인 이 대학 제럴드 커티스 교수의 ‘일본 현대정치’ 강의를 관심을 갖고 들었다. 그는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의 내정 소식을 전하며 “총리를 할 만한 인물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일본 내각평을 듣고 다소 놀랐다. 그가 일본통이라고는 해도 일본 정치, 아니 일본 정치인 개개인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소 전 총리는 취임 후 1년이 채 안 돼 중도퇴진했다. 그것도 중의원 선거에 패배해 54년 만에 자민당의 간판을 내리게 하고 정권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태평양 건너 멀리 미국에서도 정확한 정보만 있으면 일본 정치인의 리더십을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커티스 교수처럼 미리 알수 있느냐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은 대통령·총리 같은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야 리더십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성군(聖君)은 태평성대 같은 호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백척간두 같은 엄청난 위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자잘한 위기에도 한방에 가는 이가 나오기 마련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그렇다. 일본 대지진 참사를 겪으면서 그의 허약한 리더십을 전 세계가 알게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 그가 보인 위기 대응 능력은 아마추어 그 자체다. 문제는 이제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그 나라에만 영향을 주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 듯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경을 뛰어넘는 ‘리더십의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환경 문제 이상으로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지구촌 사람들을 급속히 하나의 운명체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웃 나라 총리의 원전사태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 우리 식탁에 오르던 일본산 명태와 같은 먹거리를 사라지게 한다. 각종 부품과 소재 품귀로 공장의 생산라인이 중단될 수도 있다. 저 멀리 카다피의 독재권력이 촉발한 리비아 사태도 일본 참사와 함께 가뜩이나 불안정한 원자재 가격을 올려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하고 있다. 중동의 한 국가가 민주화되느냐 않느냐는 그 나라 국민만의 문제를 떠나 당장 우리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최고의 리더라면 위기시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쿠바 미사일의 위기를 넘긴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을 보라. 그가 1962년 10월 16일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알고 난 뒤 소련의 미사일 철수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3일이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을 정점으로 행정부의 정책 결정 시스템을 긴박하게 움직인 결과였다. 그는 해상봉쇄령부터 시작해 소련 흐루쇼프와의 비밀협상 등 ‘Presidential Resource’(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를 모두 활용했다. 그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 여차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사태를 막은 것이다. 내년에 대선이 있다. 박근혜·오세훈·김문수·손학규·유시민 등 거론되는 대권 후보들이 경제·안보·재난 등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인물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 작은 위기에도 맥없이 무너질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큰일이 터졌을 때 정보체계를 장악하고 독자적인 정책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을 가려내야 한다. 특히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감안하면 국제관계까지 챙길 수 있는 글로벌 역량을 갖춰야 한다. 남북문제를 잘못 다뤘다가는 자칫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동반성장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고, 선진국 반열에 올릴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의 리더,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가 될 만한 인물을 바란다면 과욕인가. bori@seoul.co.kr
  • 美·英, 토마호크 110여발 쏴… 佛, 라팔 등 100機 출격대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리비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허락받은 다국적군이 19일(현지시간) 본격적인 공습에 나서면서 그 구성과 전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작전에서는 군사 최강국인 미국을 포함해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주력국이 총출동하는 등 화려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다국적군은 1999년 코소보 사태 때도 비행금지구역 작전을 성공적으로 실행했던 만큼 경험을 살려 하루빨리 리비아 정부군의 ‘항복선언’을 받아내겠다는 복안이다. ‘오디세이 새벽’ 작전에 참여한 국가는 모두 5개국이었다. 군사 개입에 앞서 이날 파리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작전을 조율한 미국과 영국, 프랑스군이 순항미사일과 전투기를 동원해 공습을 주도했고 캐나다와 이탈리아는 해상봉쇄임무 등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벨기에,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의 공군전력은 물론 일부 아랍국까지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혀 다국적군의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미국은 공습 첫날 공격무기인 토마호크 미사일을 트리폴리와 벵가지 인근의 리비아 정부군 방공시설에 쏟아부어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토마호크는 1980년대 초반 개발된 대표적인 순항미사일로 해상의 함정에서 발사할 수 있도록 만든 장거리 공격무기다. 1990~91년 ‘사막의 폭풍’ 작전과 2003년 ‘이라크의 자유’ 작전 등 두 차례의 이라크전에서 수백발의 토마호크를 쏟아부으며 중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미국은 다시 한번 토마호크를 이용해 기선을 제압했다. 또 배리함과 스타우트함 등 구축함 2척을 지중해로 보냈고 이탈리아 시칠리아에도 F15와 F16 전투기가 대기하고 있어 상황에 따라 개입 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전자전 등 최첨단 전투 역시 미군의 몫이다. 프랑스는 자국 전투기를 리비아 상공에 처음 출동시켜 국제사회의 군사행동 개시를 알리는 등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공군의 주력기인 라팔과 미라주 2000 등 전투기 100대가 모두 비상출격을 준비 중이며 리비아 상공을 장악해 카다피군의 힘을 빼놓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후보 중 하나였던 라팔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육지의 시설을 정밀타격할 수 있어 카다피 정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프랑스군은 또 전투기 15대를 탑재한 샤를 드골 항공모함도 리비아 인근 해안에 배치했다. 영국 역시 자국의 최신형 전투기를 신속히 출격시키는 등 프랑스와 함께 리비아 작전의 ‘쌍두마차’로 나섰다.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만든 토네이도 전투기와 1994년 개발한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이 주력 전투기다. 비행 중 연료를 주유하는 공중급유기도 보유하고 있어 다국적군의 전투력 극대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리비아와 맞대고 있는 이탈리아는 자국 내 공군기지 7곳을 전초기지로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우방 캐나다 역시 주력기인 CF18 전투기 6대를 리비아 인근에 배치시켰고 덴마크군과 노르웨이군 등도 F16 전투기와 수송기를 현지에 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리비아의 공군력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옛 소련으로부터 사들인 수호이 22와 미그 23 등 400여대의 전투기와 헬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너무 낙후해 출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장거리 대공 미사일도 200여기가량 보유했으나 구식 기종인데다 명중률이 떨어져 큰 위협은 되지 못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나와 통일] (4)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부소장

    [나와 통일] (4)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부소장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뒤, 나는 미국의 많은 고위관리들이 사견으로 북한 정권이 몇 개월내 혹은 몇년 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나는 그들 스스로가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그들은 단순히 북한을,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됐던 소련과 동유럽의 상황과 비교했고, 이 같은 상황이 매우 다른 환경의 북한에서도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북한정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망할 것이라는) ‘희망적 생각’(wishful thinking)도 이런 일치된 예측에 기여했다. 요즘 북한에서 권력 승계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 정권의 ‘붕괴’에 대해 다시 추측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명확한 사실은, 누구도, 심지어 평양에 있는 사람도, 거기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북한 정권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정권이 수십년 더 지속하는 것이 가능하다고도 생각한다. ●北시스템 강한만큼 깨지기도 쉬워 전직 동료인 윌리엄 뉴콤(전 미 재무부 경제자문관)은 최근 북한 상황을 ‘단층대를 따라 고조되는 압력’에 비유했다. 그는, 누구도 어떤 특별한 지진이 언제 발생할 것이고 얼마나 클 것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은 대규모 지진이 불가피하게 어느 지역에서 결국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평양은 정말로 이런 상황과 같다. 나는 조만간 북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시스템은 매우 강할 수 있지만 역시나 매우 깨지기 쉽다. 민주주의적 선거 과정과 표현의 자유 없이, 사람들의 수요와 변하는 환경을 충족시키기 위한 평탄하고 단계적인 조정은 불가능하다. 평양에서 ‘정치적인 지진’이 조만간 일어나든 아니든,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북한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경우 한국을 도울 것이다. 그러나 남한과 남북한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가장 위험을 감수하고, 가장 많은 이득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변화가 언제 어떻게 올지, 그것의 모습이 무엇일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때문에 남한 사람들과 동맹국들, 우방들은 지금부터 많은 가능성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나는 일부 남한 사람들이 그런 논의가 북한을 화나게 할 것이고 북한 내 문제를 유발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는 것의 결과는 훨씬 나쁠 수 있다. 이것은 붕괴를 재촉하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맞닥뜨릴 위험과 기회에 대해 신중하게 준비해 나가야 하는 문제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결국 무슨 일이 발생하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혜와 자원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민간에서 통일을 포함, 한반도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위기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더 많은 철저한 연구와 논쟁이 필요하다. 나는 독일 통일 직후 미 국무부에서 독일 담당 업무를 했다. 당시 독일 정부가 용감하게 노력했지만 심각한 실수를 많이 한 것을 관측했다. 화폐 단일화, 임금, 연금, 재산권 등과 관련된 정책들이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맴돌고 있는 국민 고통과 문제를 야기했다. 한국의 관료들과 대중 가운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신속 대응위한 지혜·자원 공유를 많은 남한 사람들이 독일 통일로부터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이는 것들 중 하나는, 통일은 매우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것이다. 통일이 이뤄질 때 위험과 비용은 당연히 클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남한 사람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준비가 돼 있든 아니든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용은, 주의 깊게 계획된다면, 실제로는 투자가 될 것이다. 게다가 위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이득을 위한 기회도 있을 것이다. 통일된 한국은 단지 북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을 더 강하고, 안전하고, 번영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해 준비되지 않은 아이티를 강타한 지진의 엄청난 피해를 기억한다. 최근 일본의 대지진은 아이티 지진보다 1000배 강력했다. 일본이 준비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지 상상해 보라. 이제 남한은 한반도의 정치적 지진에 대해 심각하게 준비해야 한다. 번역·정리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약력 ▲57세 ▲미 루이빌대·하버드대 박사과정 ▲주서독 미대사관 근무 ▲주한 미대사관 근무 ▲주일 미대사관 근무 ▲미 국무부 독일팀장 ▲주한 미대사관 공사참사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일본과장 ▲미 존스 홉킨스대·서울대 강의 ▲현재 미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한국학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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