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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추가항모 vs 러-신형핵잠… 동북아 해양 군비경쟁

    중-추가항모 vs 러-신형핵잠… 동북아 해양 군비경쟁

    중국과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해군력을 강화하면서 동북아가 각국 해군력의 각축장이 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추가 항공모함 건조를 계획 중이고 러시아는 신형 원자력잠수함을 배치할 예정이다. ●전문가 “항모 추가 건조 어려워” 중국이 지난달 1차 시험운항을 마친 항공모함 바랴크함보다 규모가 큰 항모를 건조할 계획이라고 홍콩 문회보가 8일 미국의 군사전문 사이트 ‘스트래티지 페이지’(Strategy Page)를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은 또 “현대화 작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 해군이 항공병과에 조기경보기 배치를 시작했다.”면서 윈(運)8 수송기를 개조한 조기경보기 ‘KJ(空警)200’이 해군 항공대에 배치되거나 조기경보레이더를 장착한 윈7 수송기가 항모에 탑재될 수 있다고 전했다. 만재 배수량 6만 4000t인 바랴크함은 50여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의 군사전문가 류장핑(劉江平)은 바랴크함이 지난달 1차 시험운항을 마친 상황에서 대형 항모 건조에 착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관련 기술과 함재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형 항모를 건조하기에는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면서 “함대 작전 경험을 쌓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대형 항모 건조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전략학회 장펑(江風) 연구원은 “중국 해군이 항공모함을 만드는 주요 목적은 함대의 방공엄호를 위한 것”이라면서 “세계 주요 국가와 마찬가지로 해군의 입체적인 작전능력을 높이기 위해 항모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홍콩의 경보는 최근 중국의 첫번째 국산 항모가 2014년 진수돼 2015년부터 실전배치될 예정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미 국방부도 ‘2011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중국이 이르면 2015년에 첫 국산 항모를 취역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중국 해군은 기존의 북해·동해·남해 함대 외에 남부 하이난성을 모항으로 하는 새로운 함대 창설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새 함대에는 2개의 항모전단을 배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거리 8000㎞… 美·中 동시견제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러시아가 옛 소련 붕괴 뒤 처음으로 건조한 원자력잠수함 유리 돌고루키를 올해 안으로 태평양함대에 배치하기로 했다고 8일 보도했다. 러시아가 신형 원자력잠수함을 태평양에 배치하는 것은 노후 잠수함을 교체해 미국에 대한 핵 억지력을 유지하고,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문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지난 5일 여당인 통일러시아당 집회에 참석해 “(유리 돌고루키) 잠수함 시험이 잘되고 있어 연말까지는 태평양함대에 인도할 수 있다.”면서 “해군을 근대화해 핵 억지부터 해양권익 확보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최신형 원자력 잠수함인 유리 돌고루키는 사정거리가 8000㎞에 이르는 대륙간 탄도미사일(SLBM) ‘불라바’(철퇴)를 탑재했으며 소음을 억제해 적의 발견과 추적을 피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캄차카반도에 있는 군항을 모항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현재 극동에 배치한 약 20척의 잠수함 가운데 미국 본토를 사정에 둔 전략 원자력잠수함은 4척 정도이지만 취역한 지 30년이 넘어 작전에 지장이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신형 원자력잠수함과 함께 프랑스에서 도입한 미스트랄급 상륙함도 태평양함대에 배치할 계획이다. 미스트랄급 상륙함은 헬기 16대와 상륙작전용 차량 4대, 전차 13대, 차량 100대를 비롯해 무장병력 450명을 태울 수 있으며 69개 병상의 병원시설도 갖추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강국진기자 stinger@seoul.co.kr
  • [데스크 시각] 미국의 9·11 대처법/박찬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미국의 9·11 대처법/박찬구 국제부 차장

    400년 전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처음 이주한 사람들에게 ‘안전’은 낯선 대륙에서의 생존을 위한 최고의 가치였다. 황량한 들판에 집을 짓고 울타리로 영역을 표시한 이주자들에게 ‘총기’는 나와 가족을 지키는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안전을 담보하던 총기는 ‘개척’이란 이름 아래 원주민을 토벌하고 학살하는 수단으로 탈바꿈해 버린다. 방어적인 총기는, ‘잠재적 위험’이라는 명분으로 원주민을 몰아내는 공세적·침략적 도구로 돌변했다. 1890년 운디드니 대학살 사건으로 최후를 맞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비극적 역사는 미국인이 주창하는 안전과 자유의 이율배반을 보여준다. 수세대가 지난 뒤 슈퍼 파워로 등극한 필그림의 후손들은 전 지구촌을 상대로 예의 안전과 자유를 설파하게 된다. ‘설’(說)파는 말에만 그치지 않고, 종종 첨단 기술과 무기를 동반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소련의 붕괴를 유일무이한 지구촌 수비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로 삼는다. ‘공세적 안전’이라는 종교를 신봉하는 미국인에게 2001년 9·11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음에 분명하다. 당시 희생자들의 마지막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는 이들과의 순간순간, 영문 모를 죽음에 대한 존재적 공포, 안전이 무너지고 허공에 남겨진 극심한 불안감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최후에는 태어날 당시의 원천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이들에게,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정치 역학으로서의 안전과 자유가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다시 생각게 하는 9·11 10주년이다. 그날 이후 미국의 대처법은 공세적 안전과 일방주의 안보의 전형을 보여준다. 반(反)테러는 동전의 양면으로 지구촌에 다가왔다. 끝내 신용등급 하락을 맞은 미국의 반테러 비용은 10년 동안 3조 2280억 달러, 한화로 3450조원에 이른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는 6000명이 넘는 미군이 숨졌고, 적어도 25만명이 부상했다. 세계 각국도 미국발(發) 반테러 바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AP통신은 10년 동안 66개 국가에서 12만명이 테러용의자로 붙잡혔고, 이 가운데 적어도 3만 5000명이 기소됐다고 전했다. 9·11 이전에 테러 혐의를 받고 기소된 용의자는 한해 수백명에 불과했다고 통신은 적시했다. ‘잠재적 위험’에 대한 과민 반응이라 할 만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시위 현장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시민들까지 반테러의 덫에 걸렸다. 심지어 터키와 중국은 테러 관련법으로 수천명의 반체제주의자들을 옭아맨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러니다. 모순이고 부조리다. 경제와 생명의 손실, 표현과 시위의 억압, 권위주의 정권의 체제 강화…. 안전과 안보의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하기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미국의 반테러전에 동원된 아프간 자국 군인 가운데 2만 4000명이 올 들어 6월까지 생업으로 돌아가기 위해 탈영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지난해의 2배 수준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리더십이 부족한 현장 사령관들의 부패와 휴가 금지 조치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비단 미국의 반테러 전쟁이 아니더라도, 지구촌은 치유가 쉽지 않은 중병을 앓고 있다. 남반구는 고질적인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고, 북반구는 금융과 재정의 위기로 휘청이고 있다. 종교 간, 좌우 간, 부족 간 테러는 갈수록 비(非)인간화의 양태를 띠고 있다. 급기야 유럽 지식인층에서는 세계화의 말기적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탈(脫)세계화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중병의 근저에는 ‘워싱턴 프로세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역풍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백수십년 전 운디드니의 교훈으로 돌아가면, 미국의 새로운 대처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공존과 공생이다. 개인과 공동체, 국가와 지구촌, 이윤과 인성, 일방과 쌍방향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전체와 부분의 조화 속에 안전을 공유할 수 있는, 더디지만 견고한 디딤돌이 될 터이다. 주먹을 쥐지 말고 손바닥을 넓게 펴야, 멀리 오래 갈 수 있는 법이다. ckpark@seoul.co.kr
  • 軍 “北해안포 파괴용 스파이크 미사일 도입”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인접한 북한 서해안에 집중적으로 배치된 해안포를 파괴할 수 있는 스파이크 미사일 60여기가 내년 하반기에 도입된다. 군 관계자는 6일 “이스라엘이 개발한 스파이크 NLOS 미사일을 도입하는 계약이 지난 7월 이뤄졌다.”면서 “내년 하반기에 미사일이 도입되어 서북도서에 배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파이크 NLOS는 사거리 25㎞, 중량 70㎏으로 은닉된 갱도 속 해안포를 정밀타격하는 성능을 갖췄다. 가격은 1발당 30만 달러에 이른다. 군은 이 미사일 60여기를 도입해 백령도와 연평도 등에 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도입되는 스파이크 NLOS는 적외선 탐지장치에 의해 목표물을 타격하는 4세대형과 달리 인공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한 5세대형으로 정밀타격 능력이 대폭 향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그간 군은 적외선 추적장치 대신 입력된 좌표를 따라 유도되는 미사일을 연평도 등에 배치하길 원했다.”면서 “GPS가 장착된 5세대형 스파이크 미사일은 최신형으로 북한군의 해안포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라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은 최근 최대 교란거리가 100㎞ 이상인 GPS 교란기 등 신형 전자전 공격장비를 자체적으로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50~100㎞ 지역을 교란할 러시아제 전파방해(재밍) 장비를 도입해 군사분계선(MDL) 인근 2~3개 지역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국방부가 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북한의 전자전 공격·교란무기’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과거 소련으로부터 도입한 다양한 통신·레이더 교란 장비 20여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신형 교란 장비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북한은 전자전 장비 개발에 비교적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반면 우리 군의 고성능 장비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어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힘써 왔으며 평양권에 1개 연대, 전방 군단에 각 1개 대대 규모의 전자전 부대를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또 적군의 전자기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전자기펄스(EMP)탄을 북한군이 보유했는지에 대해서도 “확인된 첩보는 없지만 북한의 신형 전자전 장비 개발 추세와 각국의 EMP탄 개발 추세를 고려할 때 북한도 향후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日 간 前 총리 “원전사고는 인재… 도쿄 궤멸 위기 느꼈다”

    일본의 간 나오토 전 총리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시뮬레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인재’였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사고 당시 도쿄가 궤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느꼈다고 회고했다. 간 전 총리는 6일 도쿄신문 등이 보도한 인터뷰에서 “원전 사고 전부터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는데 견실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재”라고 규정했다. 그는 “원자력안전·보안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전원상실 등을 예상하지 못해 대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도쿄전력에 대해서도 “격납용기 내의 증기를 방출하도록 지시를 내려도 실행하지 않고 우왕좌왕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동일본대지진 4일 후인 3월 15일 오전 당시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으로부터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직후 원전에서 직원들을 철수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고 바로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을 불러 원전을 사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간 전 총리는 당시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과 제2원전에서 철수하도록 방치했었다면 수십 시간 내에 냉각수가 고갈돼 원자로의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진행되면서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의 수배, 수십배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간 총리는 “도쿄전력이 원전에서 손을 뺐다면 지금 도쿄는 인적이 없는 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며 “당시는 일본이 국가로서 성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였다.”고 강조했다. 간 총리는 “10만명, 20만명이 피난하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3000만명(수도권 인구)이 피난하게 된다면 피난할 곳이 없기 때문에 , 이런 리스크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며 탈(脫) 원전으로 선회한 배경을 설명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9·11 테러, 그 후 10년] (하) 끝나지 않은 전쟁

    [9·11 테러, 그 후 10년] (하) 끝나지 않은 전쟁

    지난 7월 해외 출장을 마치고 브라질 상파울루를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비행기를 탔던 기자는 중간 기착지인 미국 LA공항에서 한순간에 ‘잠재적 범죄자’가 됐다. 각종 신상정보를 입력한 전자여행인증시스템(ESTA)을 유료로 발급한 것까진 그렇다 하더라도 정식 입국이 아닌 중간 기착일 뿐인데도 공항 검색대에서 열 손가락 지문과 홍채 정보까지 입력해야 했다. 내 돈 내고 내 생체정보를 미국 국토안보부에 갖다 바친 꼴이다. 생체정보를 어떻게 이용한다거나 언제까지 보관한다거나 하는 설명은 전혀 없었다. 9·11이라는 전무후무한 테러 사건으로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외국인들이 쉽사리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미국은 즉각 밖으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형태의 보복전쟁에 나섰고 안으로는 국토안보부를 신설하는 등 안보체계를 강화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국 공항에서 외국인들은 미국의 불안감과 함께 자신이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 안보를 강화할수록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진 셈이다. 테러와의 전쟁도 미국에 대한 거부감만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시켰다. 미국이 “해방”을 말하면 세계는 “침략”으로 듣는다. ‘자유’가 아니라 ‘전쟁’이 미국의 상징이 된 형국이다. 신뢰가 없으면 헤게모니도 없다. 결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 이후부터 외국 시민들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한 공공외교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경제력 약화는 미국의 쇠락에 치명타를 날리고 있다. 최근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최우량 등급(AAA)에서 한 단계 낮춘 것은 미국이 보증하는 국채조차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대테러 전쟁’은 여기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총 부채는 14조 3000억 달러를 넘는다.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2001년 부시 대통령 취임 당시만 해도 5조 8000억 달러였지만, 그의 재임 8년 동안 6조 1000억 달러나 되는 빚이 새로 생겼다. 미 브라운대학교 왓슨국제문제연구소는 지난 6월 전쟁비용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미국이 전쟁에 투입한 직접 비용만 3조 2000억~4조 달러라고 밝혔다. 오사마 빈라덴은 지난 2004년 공개된 비디오를 통해 1980년대 소련처럼 “미국이 피를 흘리며 파산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9·11테러 진상조사위원회가 추산한 9·11테러 비용이 40만~50만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사마 빈라덴은 엄청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부시 대통령이 20 01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한 대규모 감세정책이었다. 한국은행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부시정부 이전까지는 전쟁을 벌이는 동안엔 한시적으로 세율을 인상해 전쟁비용을 충당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에 소득세율을 10% 인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두 전선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감세정책을 고수했다. 예산·정책우선순위 센터(CBPP)는 최근 보고서에서 천문학적인 정부부채 증가 원인으로 ▲경기침체 ▲구제금융 ▲감세 ▲전쟁을 지목했다. 이 가운데 감세는 전쟁 비용보다도 미국 재정에 더 큰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단독] 옛 소련, 1963년 한국과 수교 검토했다

    [단독] 옛 소련, 1963년 한국과 수교 검토했다

    옛 소련이 1963년 우리나라와의 수교 여부를 검토한 정황이 담긴 외교 문건이 발견됐다. 양국이 1990년 9월 공식 국교를 수립한 시점보다 27년 앞선 일로 이 같은 정황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지난달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극동지역에서의 러시아 역할이 재조명 받는 가운데 1960년대 막후에서 펼쳐진 동북아 외교전의 실체를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된다. 미국 워싱턴DC 외교안보전문 연구소인 우드로윌슨센터가 발굴, 서울신문이 4일 입수한 이 문건은 평양 주재 체코 대사인 모라베츠가 1963년 8월 22일 평양에서 소련 대사와 나눈 대화 내용을 이틀 뒤인 24일 자국 외교부에 보고한 외교 전문이다. 전문에 따르면 바실리 모스코프스키 당시 평양 주재 소련 대사는 휴가차 본국에 돌아가 소련 외교부에 북한 정세 등을 보고했다. 당시 외교부는 모스코프스키 대사에게 “남한과의 수교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이미 외교부 내에서 어느 정도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련 당국은 당시 남한과 최소한 교역관계를 맺거나 특파원을 교환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고 모스코프스키 대사가 외교부 내 분위기를 전했다. 박상남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1963년은 친미 성향인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뒤 박정희 군부가 5·16 정권을 일으킨 지 2년 뒤로, 소련이 남한을 최소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의) 중립지대로 만들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냉전시대의 북한 알아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 가능”

    “냉전시대의 북한 알아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 가능”

    “냉전시대 북한사를 이해해야 현재의 대북정책도 옳게 세울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1963년 남한과의 수교 가능성을 논의했던 정황이 담긴 외교문건을 발굴한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사 연구는 죽은 역사 연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기밀문서 발굴·연구사업’(NKIDP)은 어떻게 시작됐나. -20년 전부터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체코, 폴란드, 동독, 루마니아 등 옛 공산권 국가의 문서보관소 외교 문건들을 통해 냉전 시대에 대해 ‘반대편’으로부터 배우자는 취지다. 경남대와 함께 북한의 외교관계, 경제 발전, 핵프로그램의 기원 등에 대한 광범위한 문건을 수집 중이다. →NKIDP 연구의 성과는. -북한과 소련 등의 관계 연구를 통해 북한의 냉전사를 알아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북한 정책을 이해하고 현재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일성 북한 주석은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의 대화에서 “중국이 북한 국내 문제에 자꾸 간섭해 걱정된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현재 많은 전문가가 중국을 이용해 북한을 설득하자고 하는데 북한은 중국이 이미 이 같은 시도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집한 문건 규모는. -약 6만쪽가량 된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을 끝낸 것은 2~3%에 불과하다. →연구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연구 비용 문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990년대 초부터 많은 지원을 해줘 관련 연구 기반이 조성됐으나 해석해야 할 문서가 워낙 많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냉전시대의 북한 알아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 가능”

    “냉전시대의 북한 알아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 가능”

    “냉전시대의 북한사를 이해해야 현재의 대북정책도 옳게 세울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1963년 남한과의 수교 가능성을 논의했던 정황히 담긴 외교문건을 발굴한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사 연구는 죽은 역사 연구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다음은 퍼슨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북한 기밀문서 발굴·연구사업’(NKIDP)은 어떻게 시작됐나.  -우리 연구소는 20년 전부터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체코, 폴란드, 동독, 루마니아 등 옛 공산권 국가의 문서보관소의 외교 문건들을 통해 냉전 시대에 대해 ‘반대편’으로부터 배우자는 취지다. 특히, 북한과 소련 등의 관계를 연구하면 북한의 내·외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의 경남대와 함께 북한의 외교관계, 경제 발전, 핵프로그램의 기원 등에 대한 광범위한 문건을 수집 중이다. NKIDP 연구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나.  -북한과 소련 등의 관계 연구를 통해 북한의 냉전사를 알아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를 통해 당시 북한 정책을 이해하고 현재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일성 북한 주석은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의 대화에서 “중국이 북한의 국내 문제에 자꾸 간섭하고 끼어들어 걱정된다.”고 솔직히 표현한 적이 있다. 이 정보는 현재 정책을 세울 때 매우 유용하다. 미국 정계 등의 많은 전문가가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으니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야한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이미 이같은 시도를 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문건이 수집됐나.  -가장 최근에 집계했을 때 6만 페이지 분량을 가지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1945년부터 1993년까지의 문건이 수집 대상이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을 끝낸 것은 2~3%에 불과하다. 연구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연구 비용 문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많은 1990년대 초부터 많은 지원을 해줘 관련 연구 기반이 조성됐으나 해석해야할 문서가 워낙 많다. 그동안 NKIDP 사업을 통해 밝혀진 대표적 역사적 사실은.  -매우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체제로 넘어가기 전 미국에 앞서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에게 이 계획을 알렸던 사실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성철은 1972년 5월 서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공식 면담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2011 대구세계육상] 씁쓸한 ‘美笑’

    이번에도 미국이 웃었다. 4일 끝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미국이 금메달 12개, 은 8개, 동 5개로 종합 1위를 기록하며 1983년 헬싱키 대회 이후 1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미국 육상의 자존심이었던 남자 단거리에서 자메이카에 패권을 넘겨줬을 뿐 아니라 ‘영원한 라이벌’ 러시아의 추격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트랙 부문에서 7개의 금메달을, 필드에서는 남·여 높이뛰기, 남자 멀리뛰기와 세단뛰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남자 10종경기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문제는 남자 단거리에서 자메이카에 완전히 밀렸다는 것. 자메이카는 남자 100m에서 요한 블레이크, 남자 200m에서 우사인 볼트가 우승해 지난 대회에 이어 타이틀을 석권했다. 400m 계주에서도 자메이카가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따는 동안 미국은 바통터치에 실패하며 레이스를 끝마치지도 못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스프린터 왕조’로 군림했다. 100m의 경우 1983년부터 1991년까지 칼 루이스가 3연패했고, 1997~2001년 모리스 그린이 다시 3연패를 달성했다. 200m에서도 모리스 그린(1999년), 존 카펠(2003년), 저스틴 게이틀린(2005년), 타이슨 게이(2007년)가 정상을 지켰다. 그나마 여자는 상황이 좀 낫다. 400m 계주에서 자메이카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고, 100m에서 카멀리타 지터가 우승해 자존심을 지켰다. 그러나 200m에서는 베로니카 캠벨브라운(자메이카)에게 밀려 4연패에 도전한 앨리슨 펠릭스가 동메달로 무너졌고 지터도 은메달에 그쳤다. 2013년 모스크바 대회를 개최하는 러시아의 도전도 거셌다. 러시아는 9개의 금메달을 따며 종합 2위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까지 포함하면 1983년 1회 대회 이후 2009년 베를린 대회까지 획득한 메달 수가 208개(소련 75개)로 미국(250개) 다음으로 많은 육상 강국이다. 케냐도 중·장거리 종목과 남·여 마라톤에서 모두 7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3위에 올랐다. 아시아권에서는 중동 국가들의 부진으로 트랙에서 전멸했으나 중국과 일본이 필드에서 금메달을 한 개씩 수확하며 7위와 11위에 올랐다. 대구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소련, 1963년 한국과 수교검토 왜

    옛 소련이 남한과의 수교·경제 교역 가능성을 검토한 1963년은 러·일 전쟁 패전(1904년)으로 소련이 한반도에서 발을 뺀 지 59년 되던 해다. 전문가들은 당시 공산주의 진영의 거두인 소련이 우리나라와 교류를 꾀하려 한 의도는 당시 국내외 정세를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소련이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두고 미·소가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상황)를 평화롭게 해결한 소련은 이듬해 미국 등과 ‘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을 체결하고 한국 등 자본주의 진영 국가에 협력의 손길을 뻗었다. 우선 ‘수교·교역 검토’의 배경에는 당시 소련 1인자였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의 ‘평화공존’ 노선이 깔려있다. 1953년 권좌에 오른 흐루쇼프는 전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1인 독재’를 비판하며 ‘적대세력과의 화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연스레 자본주의 진영과의 수교·교역 확대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남한과의 수교 검토도 이 같은 대외정책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박상철 전남대 교수는 4일 “흐루쇼프의 소련은 미국과의 ‘체제대결’이 아닌 ‘체제경쟁’을 원했다.”라면서 “이 때문에 소련은 핵무기 개발 등에는 힘썼지만 재래식 병력은 줄이려 했고 이를 위해 남한과의 평화협력이 필요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급변하던 동북아 정세도 소련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소련은 중국과 이념분쟁을 벌이며 사사건건 충돌했지만, 중국과 북한은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소련으로서는 극동 지역에 일종의 ‘안전판’을 만드는 것이 시급했다. 신종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과 일본은 1960년 방위조약을 체결했는데 소련은 자신을 타깃으로 한 ‘반공 군사 동맹’으로 봤다. 그래서 남한에도 하나의 지렛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련의 수교 움직임에는 당시 남한의 정세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63년은 2년 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정’이 남한의 실권을 쥐고 있을 때다. 소련은 좌익활동 전력이 있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대해 친미파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달리 대화가 가능한 인물로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한·소 수교가 실제 이뤄졌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이 급속도로 와해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소련이 남한과 수교하고 미국도 북한과 국교를 맺어 교차수교를 했더라면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면서 “우리나라도 동방정책(서독이 추진한 소련 등 동유럽국과의 관계정상화 정책)을 펼친 서독식 평화유지 방식을 따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한·소 수교 논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흐루쇼프가 1964년 실각했고, 1963년 10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반공을 국시로 내걸면서 우리나라와 공산권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광주비엔날레] 시내 10곳에 폴리… 세운상가 모형 눈길

    [광주비엔날레] 시내 10곳에 폴리… 세운상가 모형 눈길

    기아자동차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를 영입해 대히트를 친 ‘K5’ 3대를 나란히 배치해 뒀다. 한 대는 디자인 모델, 한 대는 실제 생산한 차량, 다른 한 대는 택시다. 머릿속 디자인이 실제 상품으로 현실화돼 나왔을 때, 다시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대상이 되는 순간 디자인이 더 이상 디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전시 주제를 재밌게 잡아냈다. 노자 도덕경의 첫 구절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패러디한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를 화두로 던진 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2일 개막됐다. 디자인을 디자인이라 하는 순간 디자인이 아니라는 주제 의식은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때문에 산업디자인, 상업디자인, 공공디자인 같은 말 대신 ‘장소’와 ‘이름’을 키워드로 던졌다. 앞서 지난 1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승효상 총감독은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 비엔날레답게 기존 디자인에 따르는 관습적인 체계나 분류를 전혀 따르지 않았을뿐더러 전시공간 자체도 작품을 곳곳에 흩뿌려 놓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5개관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언뜻 특별한 주제 의식 없이 마구 나열된 듯 느껴진다. 여기에다 10개의 광주 폴리(Folly)는 아예 전시관 자체를 벗어나 광주 시내 곳곳에 배치했다. 폴리는 정원기법에서 나온 것으로 분위기를 살짝 띄워 주는 소형 건축물을 말한다. 어렵다. 승 감독은 “어려운 개념인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대체할 우리말이 없다.”면서 “화이트큐브라는 경계를 허물어 디자인의 한계를 탐색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내로 나가 보면 의외로 쉽게 이해된다. ‘5·18 성지’ 금남로공원은 스페인 건축가 알렌한드로 자에라 폴로가 손댔다. 지하상가 입구를 개방적으로 트면서 테라스 형식으로 만들어 뒀다. 장동 4거리 ‘소통의 오두막’은 구불구불 배치된 전등 아래 돌로 된 긴 탁자들을 배치해 뒀다. 옛 시청사거리 ‘열린 공간’은 정자처럼 사방이 터진 공간이다. 상당히 개방적이다. 이런 방식으로 뭔가 특별하다거나 톡톡 튄다기보다는 다들 그 지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건축가 김수근의 세운상가를 모형으로 만들어 둔 작품이다. 박정희 정권 때 지어진 이 상가는 도로와 주차장, 상가와 녹지공간, 주거공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혁신적 건물이다. 여기엔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세운상가 같은 집단거주지 아이디어는 서구 선진국에서 나왔지만, 실제 많이 지어진 곳은 소련이었다. 급격한 공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심신이 건강한 노동자 집단이 필요했고, 당연히 대단위 생산기지 근처에 밀집된 형태이면서도 녹지 등 인간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거주지가 필요했다. 지하에 주차장을 밀어넣고 녹지를 확충하는 데 여념이 없는, 그것을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내세우는 요즘의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도 박정희 시대의 세운상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묘한 아이러니다. 10월 23일까지. (062)608-4224. 광주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러·日 ‘국가 이미지 개선’ 공공외교 총력

    공공외교라는 잣대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여러 모로 닮은꼴이다. 양국은 상대적으로 오랜 공공외교의 전통을 갖고 있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국가적 관심사로 공공외교에 주력해 왔다. 지나친 국가 주도, 통제와 폐쇄성, 인권문제 등 근본적인 문제점이 바뀌지 않는 한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공통점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자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공공외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개혁·개방 정책과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정부는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했다.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2009년에만 450억 위안(약 7조 6000억원)을 투입했을 정도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자학원이다. 중국어 교육을 통해 중국의 가치와 문화를 전파하고자 하는 공자학원은 2004년 한국에 처음 설립됐다. 이후 2010년 현재 96개국에 332개의 공자학원과 369개의 공자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러시아의 공공외교는 소련 붕괴 이후 금융위기를 겪는 등 혼란이 계속되면서 극도로 위축됐다가 2000년대 들어서야 시스템을 다시 정비하기 시작했다. 인도주의 협력청을 2008년 설립하고 지난해에는 향후 20년을 조망한 장기계획도 내놓았다. 인도주의 협력청은 러시아에 대한 호감과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 문화학술교류를 담당하는 문화외교 주관 기관으로, 세계 50여개 지역에 문화·과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가 현재 전 세계 50여곳에 문화과학센터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러시아문화원을 2020년까지 100곳으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내년에 문화원이 들어선다. 인도주의 협력청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된 알렉세이 말롤레트코는 “문화과학센터 설립은 러시아의 연성권력(소프트파워)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라면서 “현재 한국에선 러시아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때문에 지금은 문화·학술 교류와 초청 등 낮은 수준의 관계 증진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국진·정서린기자 betulo@seoul.co.kr
  • “日 원전사고 사망자 100만명 이를 듯”

    “日 원전사고 사망자 100만명 이를 듯”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앞으로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6가지 항목에 걸쳐 비교하면서 이같이 전했다. 신문은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5년간 20만명에 달했다면서 후쿠시마 사고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밝혔다. 영국 얼스터 대학의 크리스 버스비 교수는 “체르노빌 원전은 한 번에 폭발했지만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지금도 방사성물질이 나오고 있다.”면서 “앞으로 100만명 이상이 숨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종 방사성 물질의 유출량 등을 감안할 때 후쿠시마 사고가 히로시마 원폭보다 7만 2000배나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로 유출된 방사성 세슘의 양이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68.5배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냈다. 방사성 세슘은 암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방사성물질로 반감기가 30년이다. 경제적 피해로 볼 때도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액은 1440억 파운드(약 253조원)로 추산되지만, 일본 당국은 재건 비용으로 1880억 파운드(약 330조원)를 책정하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남·북·러 가스관’ MB 20여년 전부터 구상했다

    ‘남·북·러 가스관’ MB 20여년 전부터 구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 천연자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 시절부터로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이던 1989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주강수(한국가스공사 사장) 당시 현대종합상사 상무 등과 함께 한·소련 경제협회 창립을 실무적으로 준비하며 북방 진출을 주도했다. 이 같은 경제협력이 발판이 돼서 결국 이듬해(1990년) 우리나라는 소련과 공식수교를 맺게 된다. 당시 이 대통령과 함께 한·소 경제협력을 준비하던 주 사장이 현재 남북 가스관 사업의 실무책임자를 맡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주 사장은 이 대통령의 이번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도 수행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은 기업인 시절부터 시베리아의 풍부한 오일·가스, 임산자원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방안을 찾는 데 몰두해 왔고,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08년 9월 러시아를 방문해 2015년부터 매년 최소 10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한동안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5일 주강수 사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산 가스를 한국에 공급하는 프로젝트와 관련한 ‘로드맵’에 서명했다고 한다. 이어 8일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남북 가스관 사업에 대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이 같은 내용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만간 사업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남북 가스관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은 지금처럼 배로 액화석유가스를 들여올 때보다 운송비를 3분의1 이상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서는 안정적인 수출시장을 확보할 수 있고, 북한은 통과 비용을 받을 수 있어 3국 모두에게 윈윈 사업이라는 것이다. 다만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른 리스크가 크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이다. 협상이 진전돼 오는 11월쯤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청와대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후쿠시마 원전 사망자 100만명 예상

    후쿠시마 원전 사망자 100만명 예상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앞으로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6가지 항목에 걸쳐 비교하면서 이같이 전했다. 신문은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5년간 20만명에 달했다면서 후쿠시마 사고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밝혔다.  영국 얼스터 대학의 크리스 버스비 교수는 “체르노빌 원전은 한 번에 폭발했지만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지금도 방사성물질이 나오고 있다.”면서 “앞으로 100만명 이상이 숨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종 방사성물질의 유출량 등을 감안할 때 후쿠시마 사고가 히로시마 원폭보다 7만 2000배나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로 유출된 방사성 세슘의 양이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68.5배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냈다. 방사성 세슘은 암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방사성물질로 반감기가 30년이다.  경제적 피해로 볼 때도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액은 1440억 파운드(약 253조원)로 추산되지만, 일본 당국은 재건 비용으로 1880억 파운드(약 330조원)를 책정하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체르노빌의 방사능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을 10년 남짓 연구한 팀 무소 남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우리는 방사능의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분명한 사실은 방사능 노출이 지속되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체르노빌에서는 곤충과 거미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새들의 뇌 크기가 작아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뒤집어 읽은 이슬람 문명

    무슬림들은 지금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어쩌다가 세계는 전쟁과 테러의 악순환에 빠지게 됐나.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슬람의 눈으로 지난 1500년의 세계사를 그려냈고, 현대사를 해석했다. 냉전 종식을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로 해석했지만 이슬람 급진 근본주의자들은 “대결해 온 두 제국주의 세력(소련식 사회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 가운데 하나를 해치웠고, 이제는 하나만 남게 됐다.”고 풀이했다. 저자는 2001년 9월 11일을 두 개의 세계사의 충돌로 규정하면서 ‘서구 민주주의의 승리, 역사의 종말’이란 주장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슬림사회가 한 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한 상류 계층과 그렇지 않은 다수로 갈라지고, 그 골이 갈수록 커지면서 급진 무장세력과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국력과 경제가 발전하고, 교육이 확산되면 무슬림 사회의 소외 계층과 급진주의자들이 사라지고, 세속적인 선진 근대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란 낙관도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이슬람 세계의 세속 근대주의자들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에서 비종교적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하마스라는 종교적인 이념가들에게 자리를 내줬고, 종교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둔 이슬람 지하드라는 과격단체가 세력을 키우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이 바스당과 전쟁을 치르며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도 이슬람 사회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닥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9·11 테러로 최전선에 나섰지만 이슬람 세계에는 다른 가닥들이 여태까지 그랬듯이 지금도 건재하다. 그 다양한 주제와 세력들은 이슬람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사회적인 힘을 두고 수 세기 동안 경쟁해 왔다.” 저자는 한때는 그 다른 세력들이 이슬람 내에서 더 지배적인 시대가 있었음도 상기시켰다. 이제는 신기술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 ‘페이스북 세대’가 무대로 몰려오고 있음도 지적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박탈당한 채로 현재에 도달한 것이 아니며 전통 위에서 현대를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이슬람 세계는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의 다른 판본도 아니며, 서구를 잉태한 문명이자 다만 발전 과정이 다른 문명이라면서 우리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만 8000원.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經協 매개로 북한 이끌어내 동북아 평화보장 지렛대로”

    “經協 매개로 북한 이끌어내 동북아 평화보장 지렛대로”

    사할린 가스관 연결, 시베리아 횡단 철도 등을 골자로 한 북한과 러시아의 경제협력 방안은 지난 참여정부 동북아시대위원회에서 마련했던 동북아경제공동체방안의 일부다. 당시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수훈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할린에 진출한 석유 메이저들이 가스관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직간접적으로 의사타진도 이뤄졌었다.”면서 경협사업의 성사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는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을 동북아 지역사회로 이끌어 내고 동북아 지역 평화와 안보를 보장받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 “이제 남은 것은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협의를 잘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동북아경제공동체안 2006년 첫 보고 →동북아시대위원회의 구상은 무엇이었나. -큰 화두는 가스, 원유, 전력, 철도 분야의 협력을 통해 북한을 동북아 사회로 이끌어 낸다는 것이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실무적으로 깊이 검토해 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아이디어를 상당히 세밀하게 다듬은 수준까지 갔으나, 북한 핵문제가 악화되고 남·북·러 간의 협력이 어려워 실제 진척까지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성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경제협력은 어느 정도까지 추진됐었나. -철도연결은 러시아 철도공사와 코레일이 자주 회동을 가졌었다. 천연가스 사업은 가스공사가 사할린에서 연간 150만t을 들여오기로 하는 성과도 있었다. 당시 사할린에 진출한 다국적 석유 메이저들이 관심이 많았다. 특정 회사와는 직간접적으로 의사타진도 했다. 복합 물류사업은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철도와 해상물류를 연결하는 복합물류 사업은 부산항~나진항을 러시아·유럽 철도망과 잇는다는 구상이었다. 대규모 물류, 해운회사가 참여하는 1차 컨소시엄까지도 구성됐었다. ●北은 中의존 벗고 러는 존재감 회복 →남북한과 러시아의 경제협력 사업이 잘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나. -만성적으로 에너지가 부족한 북한은 에너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우리는 안보 레버리지가 생기는 것이다. 협력사업에는 항상 대화와 실무 접촉이 일어나야 하고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기능적으로 신뢰가 쌓이면 북한이 도발을 일으키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협력사업을 많이 하면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도 보장이 되고, 남북한에도 여러 측면에서 이득이 된다. ●북·러는 합의… 남북 대화만 남아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이라고 보나.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려면 러시아를 잡는 게 방법이다. 러시아도 북한을 잡음으로써 동북아 지역에서 소련 붕괴 후 잃었던 존재감을 다시 확보할 수 있다. 러시아는 나진항에도 깊은 전략적 필요성을 갖고 있다. 러시아 접경지역인 하산과 북한 나진 사이에는 철도가 연결돼 있다. 중국이 나진에 도로와 철도를 놓는다는 것은 러시아가 수수방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는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으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회의에 초청할 수도 있다. 중국을 적절히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 →남·북·러 경제협력사업이 잘되려면? -수행원 명단에 강석주, 김계관이 있다는 것은 6자회담과 핵문제의 앞날에 대해 더불어 얘기하자는 뜻이다. 가스관 사업이 잘되려면 이런 것들(핵문제 등)이 패키지로 묶여서 풀려야 한다. 지난 한·러 외교장관회담에서 원론 수준의 합의가 있었다고 본다. 북한과 러시아도 합의를 했으니 이제 남은 건 남북이 대화를 잘 해서 이 문제를 실무차원에서 협의하는 것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北, 소련제 무기 부품·기름 절실…군수분야 협상 주도할 듯

    北, 소련제 무기 부품·기름 절실…군수분야 협상 주도할 듯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한 가운데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총참모장 출신인 김 부장이 과거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대량으로 들여온 재래식 무기와 관련된 협상을 맡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정부 소식통은 23일 “국방위원회 산하 인민무력부를 총괄하고 있는 김 부장의 수행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김 부장을 비롯해 박도춘 당 비서, 주규창 당 기계공업부장이 수행단 명단에 포함된 만큼 이들이 소련식 재래식 무기 부품 및 훈련을 위한 기름 제공 등 군수 분야 협상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지난 2001년과 2002년 김 위원장의 방러 때도 수행했던 만큼 러시아 측과 군수 분야 협상을 심도 있게 진행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 측이 북한 측에 신무기 및 신기술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측도 재래식 무기 관련 협상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60~70년대 소련으로부터 포·장갑차·탱크·항공기 등 재래식 무기를 대량으로 수입했으며, 이를 모방해 비슷한 무기를 자체 제작해 사용해 왔다. 한 군수 전문가는 “북한 해·공군의 상당수 기종이 소련제이며, 최근에도 러시아 공장으로부터 항공기 등을 수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품 공급이 끊겨 가동률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이며, 설상가상으로 기름 공급 사정도 악화돼 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측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부품과 기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러가 가스관 연결과 재래식 무기 협력을 맞교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김정일, 무기 안준다는 러시아 붙들고 무기협상 요구할 듯

    北김정일, 무기 안준다는 러시아 붙들고 무기협상 요구할 듯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한 가운데,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총참모장 출신인 김 부장이 과거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대량으로 들여온 재래식 무기와 관련된 협상을 맡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 때문이다.정부 소식통은 23일 “국방위원회 산하 인민무력부를 총괄하고 있는 김영춘 부장의 수행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김 부장을 비롯, 박도춘 당 비서, 주규창 당 기계공업부장이 수행단 명단에 포함된 만큼 이들이 구소련식 재래식 무기 부품 및 훈련을 위한 기름 제공 등 군수 분야 협상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지난 2001년과 2002년 김 위원장의 방러 때도 수행했던 만큼 러시아 측과 군수 분야 협상을 심도 있게 진행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 측이 북한 측에 신무기 및 신기술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 측도 재래식 무기 관련 협상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60~70년대 구소련으로부터 포·장갑차·탱크·항공기 등 재래식 무기를 대량으로 수입했으며, 이를 모방해 비슷한 무기를 자체 제작해 사용해 왔다. 한 군수 전문가는 “북한 해·공군의 상당수 기종이 구소련제이며, 최근에도 러시아 공장으로부터 항공기 등을 수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품 공급이 끊겨 가동률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이며, 설상가상으로 기름 공급 사정도 악화돼 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 측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부품과 기름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러가 가스관 연결과 재래식 무기 협력을 맞교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북·러 회담 단기적 성과 어려워 6者재개 북·미 남·북 대화 중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남북한과 러시아 간 3각 경제 협력과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러시아의 역할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과거 6자회담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러시아가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점이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러나 남북 간 신뢰 구축 및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단기적인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한·미·일 vs 북·중·러’ 우려 정부 당국자는 22일 “지난 3월 북·러 외교장관회담에서 러시아 측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사전조치를 북측에 전달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해왔다.”며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 측이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역할과 의지를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6자회담 재개는 러시아의 역할보다 북·미, 남북 간 대화 진행 과정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며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6자회담 재개에 단기적인 성과를 가져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6자회담 재개 등 비핵화는 북·미 관계가 풀려야 가능하기 때문에 북·미 간 접점을 찾는다면 이번 북·러 회담이 6자회담 과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북·미 간 해결이 지연될 경우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新) 냉전구조를 굳히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남·북·러 가스관 및 철도 연결, 송전선 구축 등 3대 경협에 대한 전망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한반도 정세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장기과제로 추진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3대 경협 전망도 신중론 우세 한 대북 소식통은 “북·러 경협이 진전되려면 러시아의 대북 투자가 필요한데 러시아 국내법상 북한의 구소련 채무(90억 달러 규모)가 해소돼야 가능하다.”며 “남·북·러 가스관 사업도 기업 간 협력은 가능하겠지만 5·24조치가 유효한 상황에서 당국 의지가 포함된 구체적인 논의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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