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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 일본은 방사능을 극복할 수 있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은 방사능을 극복할 수 있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지난 15일 도쿄 특파원으로 구성된 공동 취재단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을 보도한 뒤 기자에게도 여러 문의가 잇따랐다. 과연 일본은 괜찮은 것인가, 왜 이렇게 원전 사고 수습이 늦어지느냐, 후쿠시마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느냐 등의 질문이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후쿠시마 제1원전은 현재 멜트다운(노심융해)이 발생했던 1∼3호기의 압력용기 하부 온도가 38∼68도의 추이를 보이며 냉온 정지 상태에 있다. 방사성물질의 비산도 억제돼 원전으로부터 20㎞ 내 구역도 대부분 일반인의 연간 피폭 한도인 1밀리시버트(mSv)를 오르내리고 있다. 원전에서 230여㎞ 떨어진 도쿄 등에서는 평상시의 활동이 가능한 상태다. 도쿄는 사고 이전의 방사능 수치인 시간당 0.047마이크로시버트(μ㏜)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서울(0.11μ㏜)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 왜 이렇게 사고 수습이 늦을까. 성격 급한 한국인 같아서는 특공대라도 동원해 당장 원전 주변을 말끔히 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더디기만 한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폭발한 원자로를 콘크리트로 묻어 버리는 걸로 사고를 수습했다. 사고 당시 옛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원전(당시 이름 레닌 원전) 4호기에서 나오는 방사상물질을 막기 위해 원전을 가로·세로 100m, 높이 165m의 콘크리트(5000t)로 매장하는 ‘석관’(石棺) 처리를 했다. 내년까지 2만t의 철제 덮개로 낡은 콘크리트 석관을 다시 덮는 2차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인근을 폐쇄해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원전 반경 30㎞ 내는 일반인들이 살 수 없는 소개구역이자 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불과 3㎞ 떨어진 인구 5만명의 계획도시인 프리퍄티는 폐허가 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30년이 걸리든 40년이 걸리든 후쿠시마 원자로를 해체해 안전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원자로를 안정적으로 냉각시키고 방사성물질의 외부 방출을 봉쇄한 뒤 오염된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과 건물 해체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땅이 좁은 일본으로서는 원전 주변에서도 사람들이 다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다. 언제쯤 사고 수습이 완전히 이뤄질까. 일본 정부는 내년 말까지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에 있는 1500여개의 연료봉을 꺼낸다는 계획이다. 멜트다운으로 원자로 내 핵연료가 격납용기에 녹아내린 1∼3호기의 핵연료는 향후 25년간에 걸쳐 회수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핵연료를 회수하고 원자로를 해체하는 데 최장 40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사고 수습 작업의 시사점은 무엇인가. 방사능 오염 지역을 어떻게든 복구해 사람이 살게 만들겠다는 노력이다. 실제로 원전 인근을 포함해 후쿠시마 전역에서는 방사능 오염 물질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마을 구석구석에 가라앉아 있는 방사성물질을 최대한 제거해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살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요즘 일본 정부와 경제·산업계는 방사능을 제거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방사능 제거용 로봇 개발도 한창이다. 일본이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쳐 인근 마을에 사람들이 다시 살게 된다면 이것은 세계 최초의 일이 된다. 일본인들이 원전 사고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어려운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냉각된 한·일 관계로 일본을 살갑게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우익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방사능과 싸워 이기려는 일본인들은 평가해야 한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방사능 오염 제거 장치를 개발해 싸우는 우직한 모습을 말이다. jrlee@seoul.co.kr
  • 무려 3억6천만원…달에서 온 1.75kg짜리 ‘돌 조각’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불과 1.75kg밖에 되지 않는 월석 조각이 우리 돈으로 약 3억 6,000만원에 팔려 주목을 받고 있다. 16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헤리티지 운석 경매에서 1.75kg짜리 월석이 33만달러에 낙찰됐다. 2개로 나뉜 이 월석은 지난 1998년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리비아에서 발견됐으며, 지금까지 대중에 공개된 월석 중 네 번째로 큰 것이다. 특히 이 운석은 미국의 아폴로 계획이나 소비에트 연방(옛소련)의 루나 계획을 통해 우주인들이 지구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달에 소행성이 충돌해 생긴 파편이 우연히 지구로 날아온 뒤 발견된 것으로, 원래 크기는 68kg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매사 헤리티지 옥션의 운석 상담사 대릴 피트는 이 월석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자연사 박물관들과 맞먹는 가치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1950년대 美공군 진짜 ‘비행접시’ 개발 착수했다

    1950년대 美공군 진짜 ‘비행접시’ 개발 착수했다

    1950년 대 미국 공군에서 초음속으로 나는 ‘비행접시’ 개발을 실제로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기밀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1950년대 당시 미 공군은 ‘프로젝트 1794’(Project 1794)로 알려진 비밀 계획을 수립했으며 실제로 캐나다의 한 항공회사가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56년 작성된 마지막 보고서에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비행접시의 자세한 일러스트레이션도 포함돼 있다. 미 공군이 기획한 이 비행접시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기종으로 최고 비행 고도는 30km다. 또한 최고 속도는 마하 4로 당시 기술로는 파격적인 목표를 잡았다.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316만 달러(현재 환율로 2660만 달러·한화 295억원)가 투입된 이 제작 계획은 그러나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1961년 폐기됐다. 시험비행시 수직이착륙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 1950년 대 미국이 이같은 비행접시 개발에 나선 것은 당시 소련과 치열한 냉전상태였기 때문이다. 소련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미 공군의 활주로를 파괴할 것을 우려해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비행접시가 필요했으며 이를 정찰용으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한 것. 현지언론은 “소문으로만 나돌던 비행접시 개발 자료가 2박스 분량 속에 담겨있다.” 면서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비행접시와 너무나도 유사하다.”고 전했다. 인터넷뉴스팀
  • [부고] 20세기 대표 좌파 사학자 홉스봄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1일(현지시간) 런던 로열프리 병원에서 별세했다. 95세. 1917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계 영국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1933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3년 뒤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1956년 헝가리 혁명과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 당시 옛 소련의 강제 진압을 비판하면서도 공산당원 자격을 끝까지 유지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로 꼽힌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부터 1914년 1차세계대전까지의 역사를 다룬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등 역사 3부작과 그 후의 역사를 서술한 ‘극단의 시대’ 등 유명 저작을 남겼다. 특히 ‘극단의 시대’는 40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세계적으로 폭넓게 읽혔다. 생의 마감기인 지난해에도 마지막 저서가 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를 펴냈다.
  • [미주통신] 美 고교 러시아혁명 축하 퍼레이드 논란

    [미주통신] 美 고교 러시아혁명 축하 퍼레이드 논란

    미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 밴드가 소비에트 공산 혁명을 찬양하는 퍼레이드를 펼쳐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펜실베이니아주 뉴 옥스퍼드 고등학교 밴드는 지난주 열린 풋볼 경기 행사에서 구소련을 찬양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연주하면서 구소련 국기를 상징하는 망치와 낫 모양의 상징물을 들고 30여 분간 퍼레이드를 펼치는 행사를 했다. 이를 지켜본 학부모들은 “어떻게 공산주의 치하에서 수천만 명이 죽었는데 미국에서 러시아 혁명을 찬양할 수 있느냐.”며 강한 불만들을 제기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는 “이는 결코 공산주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를 나타내는 하나의 행사였다.”며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은 “그것은 단지 예술일 뿐”이라며 옹호론을 펴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낫과 망치 모양의 장식을 들고 퍼레이드까지 펼치는 것은 어느 정도 그 시대를 찬양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어떻게 이러한 일이 고등학교 행사에서 일어날 수 있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논란이 더욱 확대되자 학교 관계자는 “음악은 계속 연주하되 문제가 된 상징물은 더 전통적인 다른 것으로 대체하도록 할 예정”이라며 일단 꼬리를 내렸다. 다니엘 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러, 키르기스에 군사기지… 중앙亞 영향력 강화나서

    러, 키르기스에 군사기지… 중앙亞 영향력 강화나서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이 키르기스에서 미군 기지를 철수시키고 대신 러시아 군사 기지를 주둔시키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그 보답으로 키르기스가 러시아에 지고 있는 약 5억 달러(약 5600억원)의 채무를 탕감해 주기로 했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옛 소련권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키르기스 수도 비슈케크를 방문해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과 회담한 뒤 이같이 합의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의 키르기스 방문 기간에 양국 대통령은 2017년부터 발효될 키르기스 내 러시아 군사 기지 주둔 협정과 이 협정이 발효되기 전까지 양국 군사 협력에 관한 의정서 등 2건의 문서에 서명했다. 협정에서 양국은 2017년부터 15년간 러시아 군사 기지의 키르기스 주둔을 허용하고 양측이 합의하면 주둔 기간을 5년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러시아는 2005년과 2009년에 각각 키르기스에 제공한 1억 8800만 달러와 3억 달러의 채무를 탕감해 주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군 기지가 201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이 철수하고 난 뒤 중앙아시아 지역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비슈케크 인근 마나스 공항에 주둔 중인 미군 기지는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14년 이후 반드시 폐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1년 설립된 마나스 미군 기지는 미군의 아프간 내 대(對)테러 작전을 지원하는 물자·병력 수송센터 역할을 해 왔다. 현재 이곳에는 1500여명의 미군 및 민간인 지원 요원들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러, 北 채무 110억 달러 탕감

    북한과 러시아가 옛 소련 시절 북한이 러시아에 진 110억 달러(약 12조원) 규모의 채무를 탕감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러시아는 채무 일부를 양국 협력 사업에 투자하기로 해 남·북·러 가스관 사업 등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8일 “공화국(북한) 정부와 러시아 정부 사이의 이전 소련 시기에 제공된 차관으로(인해) 공화국이 러시아에 진 빚 조정에 관한 협정이 17일 모스크바에서 조인됐다.”며 “빚 조정에 관한 북·러 정부 간 협정이 체결된 것은 앞으로 두 나라 사이의 경제적 협조 관계를 더욱 확대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마련해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인식에는 북한 측에서 기광호 재정성 부상이, 러시아 측에서 세르게이 스토르차크 재무차관이 참석해 협정문에 서명했다. 중앙통신은 그러나 구체적인 협정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스토르차크 차관도 이날 현지 경제전문 통신사 ‘프라임’과의 인터뷰에서 “어제(17일) 북한의 대러 채무 110억 달러 해결과 관련한 협정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스토르차크 차관은 지난 5월 말 평양을 방문해 북한 재무 당국과 북·러 간 채무 문제 해결에 합의하고 부처 간 의정서에 서명했으며 정부 간 협정서를 가조인한 바 있다. 스토르차크 차관은 지난 6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대러 채무 110억 달러 가운데 90% 정도를 탕감해 주고 약 11억 달러의 나머지 채무액은 의료, 에너지 등 양국 합작 프로젝트에 재투자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었다. 따라서 북한을 경유해 남한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송전선 건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등 남·북·러 3각 협력 프로젝트 추진에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시베리아 크레이터에 ‘수조 캐럿’ 다이아몬드 매장

    러시아 시베리아에 향후 3000년은 시장에 공급할 분량의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진위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 현지언론은 “지난 주말 러시아 정부와 과학자들이 3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로 생성된 시베리아에 있는 거대 크레이터(crater·분화구 모양의 운석충돌 흔적) 탐사를 위한 첫 미팅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포피가이 에스토로블럼(Popigai Astroblem)으로 불리는 이 크레이터는 약 100km 크기로 그간 행성 충돌로 생긴 많은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이번 연구의 책임을 맡은 니콜라이 포클리넨코는 “이 크레이터에는 수조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면서 “일반 보석보다 두배나 단단하며 산업과 과학적 용도로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부가 이 크레이터에 수많은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1970년대 당시 소련 정부는 이미 이 크레이터의 ‘비밀’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판매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던 소련 정부가 가격 하락을 우려해 탐사하지 않고 그냥 묻어두었다는 것. 포클리넨코는 “아마도 이번 탐사로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이 발칵 뒤집어 질 것”이라면서 “현재 시장에 쌓아둔 다이아몬드 양의 10배 이상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동아시아 역사갈등은 위기이자 기회”

    “역사 갈등과 영토 문제의 영역에서도 위기는 위험이자 기회입니다.” 김학준(69) 동북아역사재단 제3대 이사장은 17일 열린 취임식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영토 문제와 역사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면서 “이들 문제는 대부분 100년 이상 된 뿌리 깊은 역사 문제이자 이웃 국가들 사이의 협력과 상생을 막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재단이 담당한 임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공정 등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장기적, 체계적으로 대응하고자 정부가 2006년에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그는 “역사 갈등을 극복하고 역사 화해를 이룩한다는 우리의 이상은 올바른 방향이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우리의 더 깊은 지혜와 성찰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조선일보 기자로 시작해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제12대 국회의원, 단국대 이사장, 인천대 총장, 한국정치학회장,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 등을 거쳤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엔 공보수석 비서관 등을 지내기도 했다. 러시아 문제 전문가인 김 이사장은 대표작인 ‘러시아혁명사’를 비롯해 ‘한국정치론’ ‘소련정치론’ ‘남북한 통일정책의 비교연구’ 등의 저서를 펴냈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의 연구와 경험을 재단의 발전에 여한 없이 쏟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북한의 작가들은 체제수호 선봉장… 정형화된 글쓰기 작업에 신물 났다”

    “북한의 작가들은 체제수호 선봉장… 정형화된 글쓰기 작업에 신물 났다”

    “사회주의적 자연주의를 강조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카프)과 구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북한 문학은 세계적 조류와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김정일이 1970년대 문화예술계를 장악하면서 문학 속 우상화 작업도 마무리됐지요.” 14일 경북 경주에서 폐막한 제78차 국제펜(PEN)대회에서 정식 회원으로 가입한 ‘망명 북한 펜 본부’의 정해성(67) 이사장은 탈북 이후 작품 활동을 “감개무량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1996년 탈북 전까지 조선중앙TV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망명 북한 펜 본부에 소속된 28명의 탈북 작가 중 가장 먼저 한국에 왔고, 그런 인연으로 이사장을 맡았다. 정 이사장은 “북한 문학 속 등장인물은 한번 타락하면 벗어나지 못하는 이분법적 구조에 갇혀 있다.”며 “친일파가 회개해 해방 이후 당과 수령을 위해 목숨 바쳤다는 설정은 상상도 못하고 아예 친일 반동분자의 등장을 금한다.”고 강조했다. 문학성의 기준은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느냐이고,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해 인민의 충성을 끌어내는 정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직접 쓴 대본에서 “김일성·김정일 교시를 집행하지 못하면 밥을 먹어도 모래알 씹는 것 같다.”는 대사를 인용해 이를 설명했다. ●‘망명 북한 펜 본부’ 국제펜 정식회원 가입 이어 북한에도 시·소설·희곡 등 분과가 있는데 남측 글쓰기와의 공통점은 권선징악이며 차이점은 표현의 자유라고 덧붙였다. 김일성 가계와 관련된 작품을 창작하는 4·15 문학창작단의 현승걸 단장을 예로 들어, 그가 사석에서 “언제쯤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나.”라고 푸념했다가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적시했다. 엘리트 작가였던 정 이사장은 북한에서 즐겨 읽던 남한 작품으로 소설 장길산·토지·허준 등을 꼽았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서 발간한 ‘시대’라는 잡지에 실린 시인 김지하의 시도 모두 섭렵했다고 했다. 1970년대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희곡 특등상을 받은 이진명(59)씨는 “북한의 정형화 작업에 신물이 났다.”면서 “북한에서 문학 한다면 체제수호의 선봉장쯤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청진의 문학기자(통신원) 출신인 김정근(44)씨는 “또래인 임수경 의원이 1989년 6월 방북했을 때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남한사회를 동경하게 됐다.”면서 “체제의 위대성을 선전할 각오가 없다면 북한에선 작가나 기자의 꿈을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안전부와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일했던 림일(44)씨는 “김정일은 사실 문학에 관심이 없고 무용·노래·영화 등 극예술에 치중했다.”면서 “해외유학파인 김정은도 일종의 ‘쇼’를 하고 있고 결국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림씨는 평양출신으로 쿠웨이트의 조선광복건설회사에 파견돼 일하다 탈출해 1997년 한국에 왔다. 탈북 뒤 소설 김정일 1, 2권을 잇달아 내놓았다. ●‘절반의 성공’ 그친 경주 국제펜대회 한편, 북한출신 문인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던 경주 펜대회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 체제의 폐쇄성은 널리 알렸지만 정작 국내 문학계에 대한 정부의 압력에는 침묵했다. 진보성향의 젊은 문인들을 끌어안는 데도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글 사진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에너지·원전·플랜트 긴밀협력 지속”

    “에너지·원전·플랜트 긴밀협력 지속”

    카자흐스탄을 공식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대통령궁에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중소기업 간 협력을 비롯해 에너지·플랜트와 자원·원전 분야 등에서 긴밀한 협조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우리는 기술이 많이 필요하며, 한국 중소기업의 숙련된 기술을 원한다.”며 “분야·규모를 불문하고 한국 중소기업들이 카자흐에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이어 “한국의 중소기업이 카자흐에 진출하면 조세 혜택 등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대규모 합작 프로젝트가 원활히 진행되고 있는 점을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양국 교역이 빠르게 증가하고 투자가 러시아를 포함한 CIS(옛 소련권 국가들의 모임) 국가 중 최대 규모로, 더욱 늘어나는 데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양국은 중소기업 부분에서 협력하자는 데 합의했다.”면서 “조만간 한국의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단과 중소기업이 방문해서 협력 방안을 듣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카자흐스탄이 한국의 대북정책과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데 감사하다.”면서 “양국은 녹색성장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중앙아시아에서 녹색성장 확산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영화프리뷰] ‘레지던트 이블5:최후의 심판’ 진화하는 스케일…막강해진 10년산 좀비 액션

    [영화프리뷰] ‘레지던트 이블5:최후의 심판’ 진화하는 스케일…막강해진 10년산 좀비 액션

    95분의 상영 시간 동안 인류의 구원은 ‘유일신’이 아닌 여주인공 ‘앨리스’(밀라 요보비치 분)에게 달려 있다. 비밀기지에서 깨어난 앨리스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며 더 강하고 악랄해진 존재들과 마주한다. 전작의 성공을 발판으로 벌써 10년간 5편의 시리즈를 쏟아낸 ‘레지던트 이블 5:최후의 심판’. 부제와 달리 시리즈의 최종회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스케일에 집중해야 한다. 풀 3D(3차원) 화면에 담긴 화려한 액션은 극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2002년 파격적인 비주얼과 스토리로 인기를 끌었던 게임 ‘바이오 하자드’를 원작으로 닻을 올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이번에도 초국적 기업인 ‘엄브렐라’가 만들어낸 T-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한다는 뻔한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폴 W. S. 앤더슨 감독은 ‘솔저’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데스 레이스’ 등에서 갈고닦은 특유의 블록버스터 연출력을 이 한 편에 오롯이 녹여냈다. 그는 “리들리 스콧이 만든 에일리언 1편이 공포 영화라면 제임스 캐머런은 액션을 가미해 2편에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면서 “(나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이처럼 변화시켜 왔다.”고 자부했다. 밀실 공포물에서 액션물, 로드무비, 좀비 영화 등으로 팔색조 연출을 해 왔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3300만 달러(약 372억원)의 제작비로 조촐하게 시작한 시리즈는 4편에서 무려 2억 9000만 달러(약 3269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회를 거듭할수록 사랑받는 블록버스터 시리즈임을 입증한 것이다. 영화는 알래스카 비밀기지에서 앨리스가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 의심하는 ‘토털 리콜’형 복선이 깔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좀비와 괴물, 추격대를 가리지 않고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도쿄, 뉴욕, 워싱턴, 모스크바 등을 본떠 만든 대형 생화학무기 실험세트가 무대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도쿄 시부야, 뉴욕 타임스 스퀘어 광장이 차례로 등장하고 앨리스는 클론(복제인간) 소녀를 구하면서 급작스럽게 모성애를 강조한다. 화려한 액션 속에서 강조한 인류애는 동일본 대지진을 연상시킨 막바지 폭파 장면에서 여지없이 의미가 퇴색한다. 깊은 생각 없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면 당분간 이만한 영화는 없을 것이다. 앨리스를 구하기 위해 급파된 남성 특공대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벌인 구 소련군 좀비와의 일당백 총격전이 압권이다. 요보비치는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 옷을 활용해 섹시하면서도 강인한 여전사의 이미지를 맘껏 풍긴다. “영화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군인이 됐을 것”이란 고백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증명한다. 3편의 가터벨트를 착용한 섹시한 의상, 4편의 코르셋을 연상시키는 방탄 조끼 등은 모두 모델 출신인 요보비치가 직접 제작했다. 영화는 13일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개봉했다. 남편이자 감독인 앤더슨과 아내이자 여주인공인 요보비치가 합작한 화려한 액션이 볼거리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화성 이주’는 그림의 떡? 2033년 ‘화성 마을’을 꿈꾼다!

    ‘화성 이주’는 그림의 떡? 2033년 ‘화성 마을’을 꿈꾼다!

    1957년 스푸트니크 1호가 처음으로 우주를 날았다. 4년 뒤인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대기권을 넘어 우주에서 지구를 처음으로 내려다본 사람이 됐다. 그는 “하늘은 검고 지구의 둘레에 아름다운 푸른색 섬광이 비친다.”고 말했다. 다시 8년이 흐른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은 왼발을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 달에 내디딘 첫 기록을 남겼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명언과 함께였다. 미국과 구 소련이라는 강대국들의 자존심 경쟁으로 인류는 곧 우주를 정복할 기세였다. 하지만 아폴로 11호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인류는 지구에 살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살고 있는 몇몇 우주인이 있지만 그들 역시 지구 궤도를 돌고 있을 뿐 암스트롱보다도 멀리 가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향후 20년이 지나면 인류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 붉은 행성 화성에 첫발을 내민 최초의 사람은 과연 지구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 올까. 세계 각국에서는 ‘화성 탐사’를 넘어 ‘화성 이주’를 꿈꾸는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공상과학(SF) 영화에 심취한 몽상가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가 낙하산에 매달려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난달 8일 화성 착륙에 성공하자 몽상가를 보는 시선도 완전히 바뀌었다. 큐리오시티가 보내 오는 컬러 화면의 풍경들은 마치 “화성에서 살고 싶으냐고 묻는 것은 그랜드캐니언에 살고 싶으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메시지처럼 다가오고 있다. 화성과 달은 분명히 다르다. 현존하는 기술로 사람을 화성까지 보내려면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10년 뒤라고 해도 250일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원이 딸린 아파트나 캠핑카를 몰고 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타는 것은 좁디좁은 우주선이다. 그 안에서 우주인들끼리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아프거나 향수병에 걸려서도 안 된다. 중간에 내리거나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격리된 공간에서 250일 이상을 지낸 사람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러시아와 유럽우주기구(ESA)가 2010년 ‘마스500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500’은 화성으로 가는 데 걸리는 250일, 화성에서의 탐사 활동 30일, 지구로 귀환하는 240일을 합친 숫자다. 이들은 1000만 달러(약 113억원)를 투입해 러시아 모스크바 의학생물문제연구소 안에 총면적 550㎡의 철제 모형 탐사시설을 설치했다. 러시아인 3명, 이탈리아인 1명, 프랑스인 1명, 중국인 1명 등 6명이 2010년 6월 3일부터 이 안에서 화성 탐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됐고 바깥과 연결되는 인터넷과 전화는 실제 화성처럼 20분간 교신이 지연됐다. 일정에 맞춰 우주선 실내와 화성 표면을 재현한 시설에서 매일 임무가 주어졌다. 외부 센터에서는 우주인들의 건강과 심리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해 수많은 자료를 얻었다. 이들은 2011년 11월 2일에 복귀했다. 러시아와 ESA는 2030년 화성 유인 탐사를 목표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문제들이 드러났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음식이다. 우주선의 크기나 성능을 고려할 때 우주 식품은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 냉장고도 없기 때문에 가능한 건조된 형태여야 하고 우주 공간에서 바이러스나 세균의 돌연변이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철저한 처리가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이런 음식은 맛이 없다. 500일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고사하고 맛없는 음식만 먹게 된다면 우주인들의 스트레스 수치는 급격히 올라갈 것이 뻔하다. NASA 존스스페이스센터의 식품공학자 미셸 퍼코녹 박사는 “사람이 식욕을 느끼는 원인의 85~90%에 음식에서 풍기는 냄새가 작용하고 있다.”면서 “우주 식품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이라고 지적했다. 화성에 도착한 후에 풀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생체리듬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화성의 자전주기는 24시간 37분이다. 지구에서보다 하루가 40분 정도 늘어나는 셈이다. 공전주기가 2배 가까이 길어 1년은 687일 정도지만 다행히 겨울과 여름이 있는 만큼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다만 삶의 재미는 관광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태양과 모래만이 가득한 사막 세상이다. 그랜드캐니언 같은 풍경도 평생 본다면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바다 리조트 따위는 없다. 낮 시간의 하늘은 온통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다. 일출과 일몰 때는 파란색으로 물든 하늘을 볼 수 있다. 하늘과 일출, 일몰 색이 지구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인류가 화성에 보낸 탐사선들은 물의 흔적을 찾아냈다. 하지만 지금은 얼음만 있을 뿐이다. 최근 방영된 공익광고의 문구처럼 다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있지만 물은 대신할 방법이 없다. 과학자들은 화성 내부에서 얼음을 찾아 생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어컨과 히터는 필수다. 화성의 대기는 지구 대기 밀도의 1%에 불과하다. 낮 시간에는 뜨겁지만 밤에는 순식간에 100도 이상이 떨어진다. 대기가 열을 가둬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와 더불어 화성에는 자기장 역시 미약하다. 지구의 800분의1 정도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화성에도 충분한 자기장이 있었지만 40여억년 전에 소행성 충돌 등의 이유로 인해 급격히 자기장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의 자기장은 태양풍이나 방사성물질 등 우주의 유해 물질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결국 자기장이 없는 화성에서 사람이 우주복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뜻이다. 네덜란드 사업가 바스 란스도르프와 과학자 집단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마스 원’은 이 같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심지어 이들은 유럽과 NASA보다 훨씬 더 빠른 로드맵을 갖고 있다. 2023년에 최초의 화성 이민자를 출발시키겠다는 것이다. 마스 원은 내년 TV 리얼리티쇼를 통해 최초의 화성 우주인 후보 4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이들은 화성과 비슷한 구조인 사막에서 거주하며 화성 적응 훈련을 받게 된다. 이곳에서 실제 화성으로 갈 20명의 우주인이 추려진다. 2016년에는 2500㎏의 식량과 보급품을 실은 최초의 거주 시설이 화성으로 출발하고 2018년에는 무인 탐사 차량이 화성에서 최적의 거주지를 물색하게 된다. 2021년 거주를 위한 모든 시설이 도착하고 2022년 4명의 우주인이 화성으로 출발, 2023년 화성에 도착한다. 이후 2년마다 2명씩 화성으로 출발해 2033년에 최종적으로 20명으로 구성된 화성마을이 완성된다. 돌아오는 계획은 없다. 이들은 화성 개척자이자 최초의 화성인으로 남게 된다. 얼핏 SF소설처럼 들리지만 이들의 계획은 상당히 치밀하다. NASA와 ESA 출신의 유명 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켓은 미국 민간 회사의 발사체를 이용하고 우주복 등은 NASA 협력 회사의 제품을 이용하는 등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기존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 단계별로 필요한 예산은 60억 달러 수준으로 예상된다. 이달 초 마스 원은 첫 후원자들을 얻었다. 로펌인 ‘VBC 노타리센’, 컨설팅사 ‘미트인’, 호주의 검색엔진 ‘데얀 SEO’ 등이 마스 원과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란스도르프는 “우리는 꿈을 현실로 만들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첫 단계로 나아갔다.”고 선언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31개국 ‘사형 폐지’…국제적 추세

    131개국 ‘사형 폐지’…국제적 추세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의문은 잔인한 처벌이 범죄율을 실제로 낮추느냐 하는 점이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해 11월 유엔 회의에서 이란 사법부 산하 인권고등위원회의 무함마드 자바드 라리자니 사무총장은 사형 집행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란은 지난해 사형집행 건수가 공식발표된 것만 360건에 이르는 세계 2위의 사형 국가다. 그런 이란에서조차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사형을 없애는 게 국제적 추세이기 때문이라고 폐지론자들은 말한다. 국제앰네스티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말일 기준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 폐지국은 96개국이고 한국을 비롯한 35개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의 3분의2 이상이 사형을 형벌로 집행하고 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유엔 회원국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전체 193개국의 91%인 175개국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는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의 3개국에서만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제 폐지의 흐름은 유럽에서 두드러진다. 옛 소련을 포함한 유럽 전체에서 지난해 사형을 집행한 나라는 벨라루스가 유일했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 폐지를 회원국 가입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관계자는 “사형 제도가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미미하고 세계적으로 인권 우선의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로 가는 것이 오히려 강력범죄를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 1954년 통일교 창시…194개국에 신도 300만

    1954년 통일교 창시…194개국에 신도 300만

    3일 별세한 문선명 통일교 총재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종교 지도자, 평화운동가, 사회사업가, 교육사업가, 기업가…. 1991년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문 총재를 ‘20세기를 만든 1000명의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았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이름을 떨친 문선명. 그의 생애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철학이자 신념은 다름 아닌 ‘통일원리’와 ‘통일사상’, 그리고 ‘참사랑’이다. 문 총재가 평생 꿈꿨던 세상은 ‘인간 조상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연의 평화이상세계’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문선명은 14세가 될 때까지 서당에서 공부를 했다. 어릴 적부터 ‘세 개 이상의 박사를 취득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었던 그는 늘 중심에 서야 직성이 풀리는 강한 사람이었다. 평양장로회신학교를 나와 덕흥·이언·연봉교회에서 목회를 했던 종조부 문윤국(1877~1958)을 비롯해 적지 않은 조상들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일까. 정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엔 교회 유년주일학교 반사로 어린이들을 지도했고 학생들 앞에서 설교할 때면 목사와 장로들이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세계 194개국에 300여만 신도를 거느린 통일교 교회를 세운 종교 지도자. 그의 종교 인생은 16세가 되던 해인 1935년 부활절 날 예수님과의 영적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부활절 아침, 오랜 시간 눈물어린 기도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많은 계시와 교시를 주셨습니다. 지상에서의 하나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사양했지만 결국 대명을 받아들였고 그 대명은 인류구원사업이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친 문 총재는 3년간에 걸친 일본 도쿄 유학(와세다대학 부속 와세다고등학교 전기과) 시절 ‘통일원리’ 구명에 모든 것을 쏟았다. 유학 길 부산으로 가는 열차에서 “학업을 마치고 오는 날 나라를 찾아 세우리라.”고 다짐했던 그의 실천은 해방 이듬해 평양행으로 이어진다. 공산체제하 종교인의 생활은 당연히 가시밭길. 이승만 대통령이 밀파한 간첩으로 지목돼 흥남형무소에서 2년8개월의 혹독한 수감생활을 마치고 월남해 1954년 5월 1일 서울 성동구 북학동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해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사실상 통일교의 태동이다. 이후 그에게 이어졌던 시련은 통일원리가 씨앗이다. ‘태초의 이상세계는 모든 인류가 한 하나님 아래 한 가족이며 인간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부모, 부부, 자녀가 4위기대의 가정을 형성해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려드리는 데 있다.’ 그리고 그 통일원리에 바탕을 둔 통일사상은 바로 좌익과 우익의 대안인 ‘두익사상’이다. 인류의 참 평화는 좌익이나 우익으로는 안 되며 머리와도 같은 중심사상인 공생공영공의의 두익사상으로 남과 북의 가치관을 통일함으로써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일찍부터 ‘공산주의 종언’을 선언했던 그가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고 평양으로 김일성 주석을 찾아간 것이나 민간예술단으론 분단 이후 처음인 리틀엔젤스예술단의 평양공연을 성사시킨 것도 바로 그 통일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분열과 갈등, 전쟁으로 점철된 종교로는 세계평화와 인류 구제사업에 한계가 있다던 문 총재가 눈을 돌린 것은 참가정 운동이다. 인류시조가 타락으로 잃어버린 순결을 되찾아 참사랑의 역사를 출발시킨다며 거행해 온 국제축복결혼식은 국제적으로 눈길을 끈 세기의 이벤트이다. 그는 2007년 미수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불쌍하신 하늘을 위해, 그리고 사망 권에서 허덕이는 타락인류를 구해 주기 위해 혀를 깨물며 참고 살아온 비참한 생애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이런 심정의 내연을 들여다보고 한마디만 던져도 본인의 눈물은 폭포수가 될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그가 일군 통일교의 위상은 한국 기독교에선 이단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당신의 재능, 내일의 과학자에 기부하세요

    당신의 재능, 내일의 과학자에 기부하세요

    강사료도, 장소 대여료도 없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려는 사람들과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있을 뿐이다. 과학자들이 펼치는 국내 최대의 재능기부 프로젝트 ‘10월의 하늘’이 10월 27일 오후 2시에 전국 도서관에서 일제히 열린다. 올해로 벌써 세 번째다. 10월의 하늘은 지난 2010년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트위터에 “1년 중 단 하루만 자신의 재능을 나누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정 교수는 ‘오늘의 과학자가 내일의 과학자를 만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채 한달도 되지 않아 과학자 69명이 전국 29개 지역 도서관에서 강연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43개 도서관에서 96명의 과학자·공학자·의사·과학저술가·과학기자들이 참여했다. 강연을 들은 초·중학생은 5000명을 넘어섰다. 강연자 중에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윤송이 부사장 부부 등 유명인들도 있었다. ‘10월의 하늘’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은 1999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옥토버 스카이’(October Sky)에서 따왔다. 영화는 1957년 10월 어느 날, 미국 탄광촌에 살던 소년 호머 힉캠이 당시 소련에서 인공위성이 발사됐다는 뉴스를 보고 로켓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 뒤 마침내 미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가 된다는 실제 내용을 담고 있다. 10월의 하늘 강연을 들은 학생들이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10월의 하늘의 가장 큰 장점은 순수성이다. 강연비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행사에 필요한 각종 준비 비용과 도서관을 찾는 차비까지 강연자들이 각자 부담한다. 100% 재능기부로 이뤄지는 행사이다 보니 강연자와 도서관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 두번의 행사에 이어 올해도 SNS 관리와 홍보, 강연자와 도서관을 매칭하는 일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한 봉사자들의 손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 교수는 “9월 중순까지 참여 도서관과 재능기부를 해줄 강연자를 모집한 뒤 10월부터 본격적인 강의 프로그램을 짤 계획”이라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수화 강의를 시도한 것처럼 올해도 더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연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에게 참여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과학 전공자나 전문가가 아니라도 행사 진행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책을 기부할 수도 있다. 참가신청은 홈페이지(www.nanumlectures.org)를 통해 가능하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미주통신] 美 에어쇼 도중 제트기 추락 폭발 사고

    수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에어쇼를 벌이던 제트기가 항로를 이탈하면서 추락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충격을 주고 있다고 2일(현지시각)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사고는 지난 1일 주말 오후 미국의 아이오아주 데번포트에서 개최된 쿼드 시티 에어쇼에서 일어났다. 베테랑 곡예 조종사 글렌 스미스는 과거 소련시대의 퇴역한 전투기를 몰고 곡예비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륙 후 전투기 제어를 하지 못하고 편대를 이탈하여 곧바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으며 조종사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고 이를 지켜보던 수천 명의 관중은 이내 혼비백산이 되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다행히 관중과 동떨어진 곳에서 폭발하여 조종사 외에 다른 인적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해당 제트기의 비행 장면과 추락 및 폭발 장면이 가정용 홈비디오에 그대로 녹화되어 이를 본 시민들의 충격이 더하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현지 경찰과 연방조사관은 사고원인을 밝히기 위해 폭발 장소 인근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잔해들을 수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에어 쇼는 사고 직후 중단되었으나 3일 오전 조종사가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사고지점을 일단의 제트기가 애도 배행을 한 후 다시 재개되었다. 이번 사고는 공교롭게도 미 연방항공국이 작년 9월에 네바다 주에서 발생하여 관중 등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어쇼 대 참사에 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발생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다니엘 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맥아더는 한민족 은인도, 전쟁광도 아닌 승리추구 전형적 군인이었을 뿐”

    “맥아더는 한민족 은인도, 전쟁광도 아닌 승리추구 전형적 군인이었을 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 퇴역 연설에서.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유엔군사령관은 한국전쟁을 수행하던 1951년 4월 11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전격 해임당했다. 트루먼 대통령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태평양전쟁의 영웅이자 공화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맥아더가 전격 해임되자 온갖 소문이 떠돈 탓에 그해 5~6월 의회에서 ‘맥아더 청문회’도 열렸지만, 맥아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中부상 등 태평양 중심 세계 재편 예견 그 맥아더는 정치의 계절이 오면 한국에 망령처럼 떠돈다. 지난 21일 인천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동상 앞에서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진보단체와 이를 저지하는 보수단체가 대치하며 또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진보단체에게 맥아더는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려 했던 전쟁광’이라면, 보수단체에게 맥아더는 ‘민족의 은인이자 반공의 보루이자 기독교의 전파자’인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인식의 차이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이상호 박사가 최근 펴낸 ‘맥아더와 한국전쟁’(푸른역사 펴냄)은 ‘한국인 시각에서 처음으로 분석해 본 맥아더’라고 한다. 박사 논문을 일반인이 읽기 쉽도록 풀어 써 낸 것으로, 각주가 448쪽짜리 책에서 무려 104쪽으로 4분의1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온갖 국내외 문헌을 총동원해 맥아더를 객관적으로 조명한 책이라는 의미다. 방대한 문서를 돌린 결과가 “맥아더는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한 전형적인 군인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343쪽)는 결론에 이르게 되니 상당히 맥이 빠진다. 이 책은 박사 논문답게 337~343쪽에 요약본을 결론으로 실었는데, 감히 조언한다면 결론은 각종 문서로 어수선해진 머리를 가다듬는 작업을 위해 읽어야지 결론부터 읽거나 결론만 읽으면 가장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게 된다. 특히 저자가 주장하는 ‘맥아더=전형적 군인’이란 결론에는 동조할 수가 없다. 맥아더는 50여년의 군인생활 중 20여년을 아시아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20대에 아버지 아더 2세의 부관으로 일본 도쿄에서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과 일본 등을 거치며 태평양전쟁을 치렀다. 그는 당대 미국에서 아시아의 정치·문화·군사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시아에 매료됐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고, 미국 정계에서 ‘아시아주의자’ ‘태평양주의자’로 불리었다. 미국이 유럽을 중심에 놓고 세계 전략을 짜던 시기에 그는 “태평양을 지배하는 힘은 곧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라고 발언한 알버트 베버리지 연방 상원의원(인디애나주·1899~1911)에게 동의했다. 맥아더는 “미국의 존재 자체는 물론 장래까지도 아시아, 그 주변 섬들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60쪽). 이때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은 타이완과 일본이고, 한국은 일본의 이익이 걸린 지역으로 분류됐다.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일명 ‘애치슨 선언’이 나온 배경이다. 중국이 주요 국가 2위(G2)에 올라서는 등 21세기가 태평양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을 보면 맥아더는 너무 빨리 세상을 내다본 셈이다. ●‘한국에 우호적 태도’ 진정성 회의 아시아를 잘 알고 있다는 맥아더는 그러나 오판도 자주 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에 앞서 맥아더는 1939년 일본이 필리핀을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 보고에 대해 “일본인의 정서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오판해 경을 쳤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38선 이북으로 진격을 결정할 때 중국이 참전을 공개적으로 천명했지만, 맥아더는 ‘중국의 허세’라고 오판했다. 중국 참전에 대한 오판은 뼈아픈 것으로, 결국 미국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확대돼 불명예 제대까지 하게 되니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 점령군으로 간 맥아더는 기독교와 반공주의를 전파하고, 신도의 국교화를 허용하지 않는 등 일본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1947년 종료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반공 전진기지로서 일본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략은 때때로 모순되기 짝이 없다. 일례로 한국이 해방된 뒤 친일·부일 세력을 기용하지 말라는 내용과 친일·부일 세력을 써도 된다는 내용, 한국을 점령지로 하라거나 해방지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한 문서(미 3부조정위원회(SWNCC)176/1~176/30) 안에 공존하는 식이다. 맥아더의 여러 가지 군사전략과 정책은 미국 국방부(군인)와 국무부(민간)의 갈등 사이에서 채택되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한다. 맥아더가 38선을 뚫고 올라가려고 할 때 미국은 3차대전에 대한 우려로 소련의 참전에 엄청난 신경을 쓴다. 결국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만약 북한이 붕괴되고 중국과 소련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맥아더로 하여금 유엔의 후원을 받아 북한을 점령하게 한다.’라고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10월 12일 유엔은 맥아더에게 38선 이남에 머물 것을 명령한다. 미국 정부는 유엔의 명령에 따랐고, 맥아더도 따라가야만 했다. 민간의 통제에 따르는 군인의 모습이다. 이 박사는 결론에서 “맥아더가 한국전쟁 수행 전략에서 보여준 한국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과연 진정성이 있었던 것인지 회의하게 한다.”면서 “오히려 한국인들의 맥아더에 대한 선의의 일방적 해석은 맥아더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진보·보수는 쓸데없이 더 싸울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美엔 자존심·인류엔 신기원 찾아준 영웅 ‘고요의 바다’로

    美엔 자존심·인류엔 신기원 찾아준 영웅 ‘고요의 바다’로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일지 모르지만 인류 전체에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 20일. 당시 전세계 인구의 5분의1에 해당하는 6억명은 인류 최초로 우주 왕복선인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 표면을 밟은 한 남자의 소감을 들은 뒤 환호했다. 세계 역사상 오래 기억될 이 결정적 순간의 주인공이자 미국인들의 ‘우주 영웅’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25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82세. 암스트롱은 관상동맥 협착 증세로 이달 초 심장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뒤 발생한 합병증 때문에 사망했다고 그의 가족들이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가족들은 “그를 잃은 것은 애석하지만 그의 삶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1930년 오하이오주의 와파코네타에서 출생한 암스트롱은 어린 시절부터 하늘을 나는 것에 관심이 많아 16살에 운전면허증을 따기도 전에 비행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항공 우주의 매력에 빠진 암스트롱은 1947년 퍼듀대학에 입학해 항공공학을 전공했다. 1949년 대학 재학 중 해군에 입대해 한국 전쟁에 참전했고 78차례의 전투 비행 임무를 완수한 뒤 1952년 제대했다. 한국 전쟁 당시 서울 수복에 큰 공을 세워 3개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16살때 차보다 비행자격증 먼저 따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다시 대학에 돌아가 1955년 졸업한 뒤 1958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시험 비행조종사로 일을 시작했다. 1962년 9월 NASA의 제2기 우주비행사로 선발돼 1966년 ‘제미니 8호’의 지휘 조종사로서 아제나 위성과 최초의 도킹에 성공했다. 3년 뒤 1969년 7월 16일 에드윈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와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달을 향해 출발한 암스트롱은 7월 20일 오후 10시 56분(한국시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에 ‘고요의 바다’라고 불리는 달 표면에 무사히 착륙했다. 그의 달 착륙 성공은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면서 우주 개척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옛 소련으로부터 미국이 자존심을 되찾아오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주 탐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소 ‘영웅으로 불리기를 꺼리는 영웅’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겸손했던 암스트롱은 달 착륙 임무를 완수하고 난 4개월 뒤 두 동료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으며, 1971년 NASA에서 은퇴해 1979년까지 신시내티대학에서 우주 공학을 가르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암스트롱은 그가 살았던 시대뿐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미국의 위대한 영웅”이라며 “그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뎠을 때 인류에게 절대 잊혀지지 않을 성취의 한 순간을 전했다.”고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 역시 성명을 통해 “달은 첫 번째로 자신을 방문한 지구의 아들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동료 올드린 “달 볼때마다 떠올릴 것” 암스트롱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버즈 올드린은 “달을 볼 때마다 40여년 전 달을 밟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며 “2019년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세 명이 함께 만나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백발 거장의 첼로선율, 클럽비트를 싣다

    백발 거장의 첼로선율, 클럽비트를 싣다

    “이곳에 서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 클래식은 보수적이고 구식이란 이미지를 벗어던져야 한다. 새로운 팬들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의 시도가 훌륭한 첫걸음이 될 거다.” 지난 23일 오후 8시 40분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엘루이호텔의 클럽 무대에 아인슈타인 헤어스타일을 한 백발의 사내가 첼로를 들고 나타났다.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라트비아(옛 소련) 출신 ‘마에스트로’ 미샤 마이스키(64)가 주인공. 가벼운 검정 재킷을 입은 마이스키는 잠깐 좌중을 훑더니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연주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이곳을 찾은 2000명의 웅성거림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가벼운 칵테일 또는 맥주를 홀짝거리는 이들도, 담배를 피워 문 사람도 있었지만, 시선은 무대 위로 집중했다. 금·토요일마다 고막과 심장을 들썩거리게 하는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가득 찼던 지하 공간을 어느새 바로크의 공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마이스키의 두 번째 연주를 기다리는 동안 DJ 하임(haihm)이 무대에 올랐다. 일렉트로닉 음악과 클래식의 괴리를 줄이려고 대중적인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에 드럼 소리를 섞은 음악을 들려줬다. DJ 하임은 “클래식이 익숙치 않은 관객도 지루하지 않도록 재밌고 유머러스하게 클래식에 비트를 넣어 봤다.”고 설명했다. 막간을 이용해 일부 관객들은 요절한 예술가의 무덤이자 새로운 탄생의 공간을 콘셉트로 한 설치미술가 우국원의 작품 ‘홈 스위트 홈’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잠시 뒤 마이스키는 재킷을 벗은 채 목에 치렁치렁한 금목걸이와 자신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검은색 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첫 번째 연주에서 묵직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던 것과 달리 알베니스의 ‘탱고 에스파냐’, 라벨의 ‘하바네라’ 등 흥겹고 빠른 템포의 곡을 선보였다. 한국 가곡 ‘청산에 살리라’에 이르러선 갈채가 터져 나왔다. 마에스트로를 클럽으로 이끈 것은 음반사 유니버설뮤직이 2004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한 ‘옐로라운지’ 프로그램이다. 클래식 인구의 고령화가 심각한 유럽에서 ‘공연장 밖의 클래식’을 콘셉트로 내걸고 젊은 층을 클래식과 친해지도록 하려는 도발적인 시도다. 클래식은 물론 디제잉과 영상, 설치미술을 접목시켰다. 베를린의 성공 이후 암스테르담과 런던, 잘츠부르크에서도 성황을 이뤘다. 힐러리 한, 안네 소피 무터(바이올리니스트), 베냐민 누스, 유자 왕(피아니스트) 등이 공연의 취지에 공감해 무료 출연했다. 물론 이날 마이스키 역시 무보수로 참여했다. 지난 5월 아시아에서 첫 ‘옐로라운지’(기타리스트 밀로시 카라다글리치 공연)가 열린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박재원 엘루이 기획총괄이사는 “마이스키를 이미 아는, 혹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격식 없이 좋은 공연을 보여 주자는 게 첫 번째 의도라면 두 번째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이들이 익숙한 공간에서 클래식과 만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달 전쯤 클럽에 놀러 왔다가 공연 포스터를 보고 찾아왔다는 김재연(28)씨는 “처음엔 ‘마이스키가 클럽에서 연주한다는 게 말이 돼?’라는 생각부터 들었는데 막상 보니까 2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같이 온 친구는 마이스키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빠져들더라.”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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