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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 큰손 이란을 품어라”… 에너지·車·항공 벌써 물밑경쟁

    “중동 큰손 이란을 품어라”… 에너지·車·항공 벌써 물밑경쟁

    이란과 주요 6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의 핵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지난 14일 세계경제는 출렁이기 시작했다. 협상안이 순조롭게 이행돼 내년 초 이란에 대한 제재가 풀리면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는 소련 붕괴, 미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최대 규모의 경제 개방으로 평가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골드러시’에 비유했다. 애플과 GE, 푸조 시트로엥 등 다국적 기업을 일일이 거론하며 기업들이 이란 정부 못지않게 부푼 꿈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전체 구매력 평가에서 1조 달러(약 1155조원)를 웃도는 ‘큰손’으로 대접받는 이란의 거대 시장 덕분이다. 중동에선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란은 인구 7800만명으로 세계 18위 경제 대국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000달러를 살짝 웃돌지만 제재 해제 직후 국민당 실질소득은 1만 6000달러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각각 세계 2위와 4위를 자랑하는 천연가스와 원유 매장량이 원동력이다. 핵협상 타결의 부수 효과는 항공, 기계, 소비재, 금융 등 전 업종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과 미국 등의 제재 여파로 2010년 직후 이란 시장에서 철수한 서구 기업들은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기회의 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1362억 배럴 안팎으로 추정되는 원유 매장량이다. 이란은 제재의 영향으로 2011년 하루 산유량이 360만 배럴에서 280만 배럴로 감소했다. 원유 수출도 절반가량 줄어 하루 110만 배럴에 그치고 있다. 이란은 제재 해제 이후 6개월까지 하루 50만 배럴, 이후에는 100만 배럴 정도의 원유를 추가 생산할 예정이다. 생산 비용이 배럴당 10~15달러로 저렴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 구도는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도 제재 해제와 함께 50달러 밑으로 후퇴할 수 있다. 덕분에 정유와 가스 등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방의 경제제재에 막혀 기능을 상실한 ‘유정’이 상당수인 데다 187곳의 유전 가운데 40%가량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석유 수출 확대를 위해 낙후된 정유 부문을 손봐야 하는데 여기에만 2000억 달러(약 231조원)가 필요하다. 투자가치도 높아 다국적 에너지 기업의 자금과 기술 투자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의 로열더치셸과 이탈리아 ENI 등은 이미 수도 테헤란을 찾아 고위 당국자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접촉에는 미국의 엑손모빌까지 이름을 올렸다. 중동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란의 자동차 시장을 겨냥한 힘겨루기도 벌써부터 감지된다. 이란은 매년 100만대 이상의 자동차가 팔리지만 60% 이상은 중국산 조립품이다. 1979년 이란 혁명 전까지 이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는 미국산이었다. 수십년간 축적된 반미 감정이 변수로, 르노와 푸조 등 프랑스 자동차 업체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현지 업체와 합작을 추진 중이다. 항공 산업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이란 교통부 장관은 “향후 10년간 400대 이상의 민간 항공기를 구입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200억 달러가 넘는 시장 규모에 보잉, 에어버스 등 항공기 업체들은 몸이 단 상태다. 블룸버그는 “이란 항공 산업이야말로 거대한 블루오션”이라고 평가했다. 외국 계좌에 묶였던 100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돌면서 가장 활기를 띨 곳은 소비재 분야다. 애플과 같은 세계적 정보통신기술 업체들은 이란 공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주식시장도 매력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국인 지분이 1%에 불과한 이란 증시가 개방되면 수년 내에 외국인 비중이 30%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316개 기업이 상장된 이란 증시는 시가총액 1060억 달러, 하루 거래량 1억 달러를 웃돈다. 이 밖에 GE는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 등 헬스케어 제품 수출에, 시스코시스템스는 네트워킹 시스템 수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코카콜라는 현지 판매업자를 물색하고 있지만 생산 설비 등 직접 투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내부에서도 수출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천연자원 외에 ‘대박’ 수출이 가능한 효자 품목으로는 매년 5억 6000만 달러 이상 팔릴 카펫이 꼽힌다. 견과류 피스타치오도 주요 수출 품목이 될 전망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글로벌 시대] 글로벌화에 대한 단상/이옥순 인도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글로벌화에 대한 단상/이옥순 인도연구원장

    1980년대 후반 구체제 붕괴 직전의 소련에서 온 기자들과 인도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국립 타스통신사에서 일하는 남녀 기자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된 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우리’라는 공통의 영역이나 실낱같은 인연을 찾아내 분위기를 띄우듯이 소련 출신의 작가, 즉 톨스토이의 ‘부활’과 ‘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노라고 말문을 열었다. 내 옆에 있던 다른 한국인 유학생도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물론 체호프의 희곡집과 단편들도 잘 안다고 거들었다. 그런데 소련 기자들은 반가워하기보다 난처한 표정을 지어서 나와 친구의 선한 의도를 수평으로 만들었다. 짧은 침묵을 삼키고 말을 시작한 그들은 그 책들을 읽은 적이 없으며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저 매일 데모가 일어나는 나라라는 정도라며 미안해했다. 문학 이야기에 이어서 무소로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논하려던 나와 동행은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그 나라 사람들보다 그 나라의 작가나 음악가에 더 정통한 우리의 세계화된 지식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15년 뒤에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란 졸저를 통해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잡은 서양의 존재를 고민하게 된 발단이 그 순간이었다. 우리의 근대화란 발전한 서양의 기술을 채택하고 그 사상과 문화를 빌리면서 이뤄졌고, 은연중에 우리는 서양을 가치와 규범의 중심에 두고 내면화하는 동시에 서구 문학과 음악을 읽고 듣는 걸 교양으로 여기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서양보다 열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자 한국인인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독일 작가 마르크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국내에 번역한 모 교수가 그 책이 독일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사랑받는다고 했을 때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조보다 더 원조 같고, 서양인보다 더 그들의 문학과 예술을 상찬해 온 우리는 오늘날에 이르러선 미국산 소프트 문화-할리우드 영화, 스타벅스 커피, 맥도날드 햄버거 등-를 향해서도 깊은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우리의 것이 잊히는 세상에서 서구적인 것이 주인공인 이런 현상이 자랑할 일은 아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의 서구화 또는 세계화는 빠르고 강렬했다. 성공을 수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진정한 글로벌화를 추구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국경 너머의 것들을 수입하고 소비하는 일방적인 짝사랑을 넘어서 우리 것을 바깥에 알리고 인정받는 것, 즉 쌍방 통행의 시기가 된 것이다. 현재 어느 정도 글로벌화한 우리 문화엔 ‘강남스타일’로 알려진 가수 싸이의 노래를 비롯한 케이팝과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은 한류 드라마가 꼽힌다. 삼성의 휴대전화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상품도 있다. 다른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는 건 유의미하다. 기억할 건 서양에 인정받고 그들이 주도하는 주류 세계에 끼고 싶은 욕망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일이다. 얼마 전 해외 여러 나라에서 작품이 번역, 출간돼 글로벌 작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작가가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을 봐도 그렇다. 그래도 글로벌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한두 명으로 조급히 추진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은 건 무의미하지 않다.
  • [일어나라 한국경제] 현대건설, 중동 탈피… 5대양 6대주 시장 공략

    [일어나라 한국경제] 현대건설, 중동 탈피… 5대양 6대주 시장 공략

    3년 연속 연간 해외건설 수주 100억 달러를 돌파한 현대건설이 5대양 6대주 건설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호주 힐사이드 구리 광산 정광 생산 플랜트 공사 수주가 대표적이다. 유가 하락으로 발주가 지연되고 있는 중동 시장에서 벗어나 중남미와 아프리카, 옛 소련독립국가연합(CIS)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고 있다. 특히 현대·기아차의 네트워크와 글로벌 인지도를 적극 활용해 수주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해외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4개 핵심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인프라환경사업본부는 해양·항만사업, 건축사업본부는 복합개발사업, 플랜트사업본부는 석유·가스사업, 전력사업본부는 순환유동층 석탄화력발전소를 핵심상품으로 선정, 고부가가치 공사를 수주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동시에 수익성 높은 사업 수주, 안정적인 현금흐름 창출을 통한 현금 확보,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 확립 등 흔들리지 않는 사업구조를 다지고 있다. 미래 성장사업 육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시너지를 활용해 6개 신성장동력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자원개발 연계사업 및 물환경 수처리사업, 그린스마트빌딩, 철강플랜트 및 원전성능 개선사업, 민자발전 및 발전운영사업 역량 확보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신성장분야와 관련한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원천기술 확보는 물론 설계·엔지니어링 역량 강화를 통한 기술개발 및 실용화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김욱동 창문을 열며] 번역 왕국의 수치

    [김욱동 창문을 열며] 번역 왕국의 수치

    낱말 하나를 잘못 번역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아마 의아해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치명적 오역 사건은 실제로 번역사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5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7월 26일 미국과 영국, 중국 연합국 수뇌들은 포츠담에서 회담을 하고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연합국 지도자들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과 ‘완전한 파멸’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협상으로 강화를 맺으려 하던 일왕 히로히토는 소련을 통해 선언문에서 ‘무조건’이라는 말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은 그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좀 더 시간을 끌면서 외교적으로 협상하려고 스즈키 간타로 당시 총리는 ‘무조건 항복 요구에 대한 답변을 당분간 보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스즈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모쿠사츠’(默殺)라는 좀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어에서 ‘묵살’이라고 하면 남의 제안을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행동, 저속한 표현으로 ‘깔아뭉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어에는 이런 뜻 말고도 ‘언급이나 논평을 삼간다’는 노코멘트의 뜻도 있다. 일본의 도메이통신은 총리의 발표문을 영문으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이 ‘묵살한다’는 말을 ‘노코멘트’(no comment)가 아닌 ‘이그노’(ignore)로 번역해 버렸다. 또 일본의 라디오방송 ‘라디오 도쿄’에서도 영어로 ‘ignore’로 보도했다. 미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요구를 묵살한다는 답변에 격분했다. 7월 30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신문들은 일본이 최후통첩을 무시해 미국 함대가 공격에 나선다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흘 뒤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허락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8월 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것이다. 얼마 전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조성한 산업혁명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하면서 가뜩이나 팽팽한 한·일 관계가 더욱 꼬였다. 제철소, 조선소, 탄광 등 스물세 곳의 시설 중 일곱 곳은 일본 제국주의가 6만명에 가까운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해 노동을 착취한 곳이다. 한마디로 일제강점기 조선 노동자들의 땀과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는 치욕의 장소다. 한국에서는 해당 산업 시설들이 세계유산의 보편적 가치에 위배된다고 반발했다. 그러자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일본 측에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명시하라’고 요구했다. 사태가 불리해지자 일본은 한국에 손을 내밀었고, 양국이 막후 협상을 벌인 끝에 일본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며칠 전 독일 본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영어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언급했다. 일본 외교관이 조선인 강제 노역을 최초로 직접 언급한 것이어서 한국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런데 일본의 산업혁명 시설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일본 측에서 강제 노동을 부인하고 나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세계유산위원회의 등재 결정 직후 도쿄에서 기자들에게 사토 대사의 언급에 대해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일부 일본 언론도 ‘포스드 투 워크’(forced to work)라는 영어 표현이 ‘강제로 노동했다’는 뜻이 아니라 단순히 ‘일하게 됐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 표현 앞에 ‘워’(were)라는 ‘be’ 동사가 있어 웬만한 일본 중학생들도 이 수동태 구절이 주체(주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타인의 힘에 굴복해 억지로 노동했다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번역에서만큼 이 속담이 그렇게 피부에 와 닿는 분야도 없다. ‘아’를 두고 ‘어’로 번역하려는 나머지 번역 왕국 일본의 자부심은 이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서강대 명예교수
  • 中 ‘7·7사변’ 맞아… 對日 역사 총공세 나선다

    중국이 중·일전쟁의 계기가 된 ‘7·7사변’(溝橋·노구교 사건) 발생일인 7일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를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일 역사 총공세는 9월 3일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을 정점으로 만주사변이 터진 9월 18일, 대만 광복 70주년인 10월 25일, 난징(南京)대학살이 일어난 12월 13일 등 연말까지 계속된다. 7·7사변 78주년 기념일인 이날 베이징시 노구교 인근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서는 ‘위대한 승리, 역사적 공헌’을 주제로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이번 전시회에는 일제의 만행과 중국인의 항일전쟁 모습을 담은 1170점의 사진과 2834건의 문헌·사료 등이 전시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이 소련군에 참여해 전투를 수행한 기록도 포함됐다. 전국 각지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노구교 사건은 1937년 7월 7일 밤 베이징 남서쪽 외곽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야간 훈련 도중 일어난 병사 실종 사건을 중국군 탓으로 돌리며 베이징으로 연결되는 요충지인 노구교를 점령한 사건이다. 병사는 20여분 뒤에 원대 복귀했지만 일본군은 이 사건을 빌미로 중국 침략을 본격화했다. 중국은 2차 국·공합작을 이뤄 항일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특히 오는 8~9월 150여개국과 유엔 본부 등에서 ‘평화를 위한 기념’을 주제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항일전쟁과 제2차대전 승리, 유엔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과거사 공세 무대를 세계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또 항일전쟁 관련 영화 10편이 개봉되고, ‘동북항일연군’을 비롯한 12편의 항전 드라마와 20편의 다큐멘터리가 전파를 탄다. 일본군 전범들의 자백서도 출판될 예정이다. 9월 3일에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각국 지도자를 초청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휘하는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아하! 우주] 오퍼튜니티의 11년 ‘화성탐사실록’ 영상으로 보다

    [아하! 우주] 오퍼튜니티의 11년 ‘화성탐사실록’ 영상으로 보다

    지난 2012년 8월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탐사로봇 '큐리오시티'(Curiosity)가 화성에 성공적으로 내려앉으며 전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큐리오시티가 인기를 독차지 하고있던 그 시간 오래 전부터 나홀로 화성 땅을 누비던 '선배'가 있었다. 바로 NASA의 탐사로봇 ‘오퍼튜니티’(Opportunity) 이야기다. 최근 NASA 측이 오퍼튜니티의 길고 긴 임무 과정을 한 편의 영상으로 공개해 관심을 끌고있다. 유튜브에 단 8분 길이로 공개된 이 영상에는 오퍼튜니티의 11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지난 2004년 1월 화성의 메리디아니 평원에 오퍼튜니티가 내려앉았다. 1997년 소저너(Sojourner), 오퍼튜니티 보다 20일 먼저 화성에 착륙한 '형제' 스피릿(Sprit)에 이어 3번째 방문이었다. 당초 90솔(SOL·화성의 하루 단위로 1솔은 24시간 37분 23초로 지구보다 조금 더 길다)의 기대 수명이 예상됐던 오퍼튜니티는 이를 비웃듯 놀랍게도 11년이 지난 지금도 임무를 수행 중이다. 앞선 선배들이 각각 83일, 2,269일을 살아남은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일. 그리고 지난 3월 말 역사에 길이 남을 신기록이 작성됐다. 오퍼튜니티가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를 주파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NASA 측이 공개한 영상은 지난 2004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총 42.2km의 여정을 한 편의 영상으로 편집한 것이다. 영상을 보면 마치 애니메이션 ‘월-E’ 처럼 긴 세월 동안 나홀로 임무 수행 중인 오퍼튜니티의 ‘노력’이 느껴진다. 마라톤 선수라면 2시간 이상이면 완주할 코스지만 오퍼튜니티는 무려 11년의 시간을 굴러야 했다. 물론 오퍼튜니티에게 있어 마라톤 코스처럼 종착지란 없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 측은 "이 영상은 오퍼튜니티에 장착된 해즈캠(Hazcam)이 촬영한 화면을 편집한 것" 이라면서 "오른편 화면은 지금까지 오퍼튜니티가 탐사해 온 경로를 표시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오퍼튜니티는 수많은 과학적 성과를 지구로 전송했다” 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지난해 오퍼튜니티는 화성 착륙 10년 만에 40km 주행거리를 돌파해 인간이 만든 기계 중 지구 이외의 장소에서 가장 먼 거리를 달린 기록을 세웠다. 기존 기록은 1973년 달에 착륙한 구소련의 무인 월면차 루노호트 (Lunokhod) 2호였다. 이 월면 차 역시 무려 39km를 이동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광주 U대회 개막 D-2] 148개국 1만 3182명 선수단 등록

    [광주 U대회 개막 D-2] 148개국 1만 3182명 선수단 등록

     개막 이틀을 앞둔 제28회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U 대회)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48개국 1만 3182명의 선수단이 등록을 마쳤다. 2013년 러시아 카잔 대회 162개국 1만 1759명과 비교하면 참가국은 적지만, 인원은 더 많다. 스포츠 강국답게 매머드급 규모를 자랑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단 한 명만 등록한 ‘나홀로 국가’도 있다.  30일 광주 U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가장 많은 선수단을 등록한 국가는 러시아로 927명에 이른다. 카잔에서 개최국 프리미엄을 누린 러시아는 전체 351개의 금메달 중 무려 155개를 휩쓸며 압도적인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광주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인 러시아는 리듬체조 간판 야나 쿠드럅체바(18) 등 정상급 선수들을 다수 출전시켰다.  러시아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가는 이웃 일본(679명)과 중국(611명)이다. 카잔 대회에서 24개의 금메달을 딴 일본은 한국(17개)을 따돌리고 종합 3위를 차지했으며, 이번에도 같은 순위를 노린다. ‘사격 신동’ 양하오란(19) 등이 포함된 중국은 러시아와 우승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1999년 스페인 팔마 대회 이후 16년째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미국은 네 번째로 많은 605명의 선수단을 광주에 보내 명예 회복을 노린다. 대학농구 최고 명문인 캔자스대 팀은 자국 내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러시아와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한국은 역대 최대인 553명의 선수단을 꾸려 다섯 번째 규모다. 이용대(배드민턴)와 기보배(양궁), 양학선(기계체조), 손연재(리듬체조) 등 스타들이 출전해 금메달 25개와 종합 3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각각 한 명씩만 등록해 의문을 낳았다. 두 나라는 카잔 대회 때 수십명을 파견했던 터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출전을 꺼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지아 선수단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등록한 한 명도 사진이나 여권번호 등이 제대로 기재돼 있지 않아 실제로 참가할지 미정”이라면서 “여러 차례 참가를 독촉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UAE 선수단 담당자도 “등록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 밖에 내전을 겪고 있는 이라크와 독립국가 건설을 꿈꾸는 팔레스타인은 각각 5명의 선수단을 등록해 대회에 함께할 뜻을 내비쳤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朴대통령 관례 깨고 日보다 中 먼저 방문… 최악 갈등의 ‘서막’

    [새로운 50년을 열자] 朴대통령 관례 깨고 日보다 中 먼저 방문… 최악 갈등의 ‘서막’

    2013년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미국 다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자 일본 언론들은 “한국이 중국과 밀착해 일본을 소외시키는 것 아니냐”며 들끓었다. 일반적으로 우방인 미국 다음으로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의 한·일 관계는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에 비유된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부터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 6월 이전까지 일본은 적대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양국은 1965년 국교정상화 후 군사동맹을 맺지 않았지만 우호협력적 안보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 과정에서도 왜곡된 역사 인식 등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제일주의와 경제 실리 외교를 표방했고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는 데 기대를 걸었다. 박 대통령은 1964년 1월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가 “자유 진영 상호 간의 결속을 강화해 극동의 안전과 평화유지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6·3 사태로 불리는 대규모 대학생 시위 등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문제는 한국 내 부정적 대일 여론 못지않게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우월감도 심각했다. 국교정상화를 추진했던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상도 1963년 “조선과 대만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는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일본 주요 정치가의 역사에 대한 성찰은 결여돼 있었다. 1970년대에는 일본 한복판에서 중앙정보부가 당시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씨를 납치한 사건(1973년), 재일 교포 문세광이 영부인이던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사건(1974년) 등이 겹치며 한·일 관계는 단교 직전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80년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일본에 대한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워 경제적 실익을 얻고자 했다. 1981년 당시 노신영 외무부 장관은 일본 정부에 “한국이 소련, 중국, 북한의 위협 속에서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해 일본의 안보를 지켜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일본은 한국에 안보 경제협력 자금으로 100억 달러를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본은 이 구상에 반발했지만 결국 1983년 1월 한국에 40억 달러의 경제협력 차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시 미국과 소련 간 신(新)냉전이 격화된 시기라 가능했던 일로 평가받는다. 한·일 양국은 1982년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3·1 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한 일본의 고교 역사교과서 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해 사실상 처음으로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는 평이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는 1990년대 탈냉전을 맞아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하자 한·일 간 경제뿐 아니라 외교안보 관계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때는 일본의 군사력 확대와 군국주의 회귀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는 시기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됐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8월 일본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이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고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하는 등(무라야마 담화) 한·일 관계가 순풍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1996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자 김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고 강력히 반발하며 양국 관계는 다시 극도로 악화됐다. 1998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국제적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악화된 대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1998년 8월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본토 상공을 지나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도 한국과의 안보 협력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 대통령은 1998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미래지향적인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하며 한·일 간 장관급, 실무 국장급 교류와 재해 구난을 위한 공동 훈련(SAREX)을 실시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집권하면서 역사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다시 갈등의 핵으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시마네현이 독도 영유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파동을 겪었다. 고이즈미 총리 본인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등 일본의 도발이 잇따랐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 노무현 정부에서 악화됐던 한·일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는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2009년 9월부터 집권한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총리가 역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일본 노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정면 충돌했다. 2012년 6월 양국 정부가 체결하려던 군사 정보보호협정은 국내 여론의 압박에 무산됐다. 같은 해 8월 이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적으로 방문하면서 일본 내 반한 감정에 불이 붙었다. 이후 일본 자민당의 총선 승리로 재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기 위해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밝혀 한·일 관계는 다시 얼어붙게 됐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28일 “지난 50년간 한·일 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갔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는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부 차원에서 이를 쉽게 봉합할 수 있었다”면서 “21세기 들어서 여론이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를 의식한 정치 지도자들이 악화된 한·일 관계를 봉합하기 어려워진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부고] 프리마코프 前 러시아 총리

    [부고] 프리마코프 前 러시아 총리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가 26일(현지시간) 85세를 일기로 숨졌다. 현지 통신사 리아노보스티에 따르면 프라마코프는 최근 고령에 따른 건강 악화로 병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마코프는 1990년대 옐친 정부에서 외무장관, 총리 등을 두루 역임하며 소련 붕괴 후 약화되는 러시아의 국제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러시아 최고 중동전문가였던 그는 1990년과 2003년 두 차례 이라크에 특사로 파견돼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막으려 했으며, 1999년에는 코소보 분쟁에 따른 나토의 세르비아 공습을 저지하려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다락방에 방치된 피카소 추정 작품과 러브스토리

    다락방에 50여년 간 방치돼 있던 그림, 과연 진짜 피카소의 작품일까? 최근 영국언론에 피카소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 한 점과 이에 얽힌 러브스토리가 보도돼 화제에 올랐다. 아직 그림의 진위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얽힌 이야기 만큼은 진실된 이 사연의 주인공은 스코틀랜드 메틸시에 사는 도미닉 커리(58). 그는 얼마 전 15년 전 작고한 어머니가 살던 집 다락방을 청소하던 중 오래된 가방을 발견했다. 아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열어 본 가방. 오랜 세월만큼이나 많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그 속에는 편지와 사진, 옛날 신문 그리고 문제의 그림이 들어있었다. 바로 이 그림이 피카소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예술가 직업을 가진 커리는 한 눈에 범상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이 그림 하단에 써있는 '피카소'라는 서명까지 찾아냈다. 현재 이 그림은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넘겨져 진위 여부를 감정 중인 상태다. 또 하나의 관심은 왜 이 그림이 가방 속에 보관돼 있느냐는 점이다. 사연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9살이었던 커리의 모친 아네트는 폴란드로 휴가를 갔다가 구 소련의 군인이었던 니콜라이 블라디미로비치를 만났다. 둘은 뜨겁게 사랑했으나 만나기에는 먼 거리와 서구와 냉전 중이던 소련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주로 서신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신세였다. 바로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커리다. 문제는 아들을 홀로 키우는 아네트에게 아빠인 니콜라이가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 이에 니콜라이가 팔면 큰 돈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아네트에게 남긴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그러나 그림의 문외한이었던 아네트는 이 그림을 가방에 넣어 보관했으며 이후 다른 남자와 결혼해 니콜라이와의 인연은 끝이났다. 이미 피카소의 진품으로 확신하고 있는 커리는 "부모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은 기분" 이라면서 "감정에 6-8주 정도 걸리는데 진짜로 확인되면 생부의 말처럼 경매에 출품해 판매할 것" 이라고 밝혔다. 현지언론은 얼마 전 피카소의 작품 ‘알제의 여인들’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 7936만 달러(약 2001억원)에 낙찰된 점을 들어 이 그림 역시 진품으로 확인되면 우리 돈으로 최소 수백억원에 거래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상상이상 충격적인 장면 ‘뭉클해’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상상이상 충격적인 장면 ‘뭉클해’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6.25 전쟁 사진 공개가 화제다.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한편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 시작해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1945년 2월의 얄타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의 38도선을 경계로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군이 각각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자, 이 결정에 따라 38도선 이남에서는 미군정이, 이북에서는 소군정이 시작되었다. 한반도 내의 갈등과 대립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지역적 분할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1948년 8월 15일 남한에 먼저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고 이어 9월 9일, 북한에도 단독정부가 수립됐다. 남한에서 단독정부 반대운동이 좌익 주도의 폭동으로 치닫는 가운데,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얻어 정부 수립을 착실히 준비했던 것이다.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사진 = 국가기록원 (6.25 전쟁 사진 공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우리 은하속 ‘괴물 블랙홀’ 26년만에 깨어나 - ESA

    우리 은하속 ‘괴물 블랙홀’ 26년만에 깨어나 - ESA

    우리 은하에 속하는 거대한 블랙홀이 수십년 만에 깨어났다. 26년 만에 다시 활동을 재개한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약 8000광년 거리에 있는 백조자리 V404. 그 질량은 우리 태양의 수십 배에 달한다. 이 블랙홀이 최근 자신의 짝별로부터 다시 막대한 양의 물질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듯하다. 유럽우주국(ESA)은 블랙홀로 추정되는 이 천체로부터 극히 이례적인 빛 폭발을 관측했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블랙홀은 주변에 있는 물질을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발생해 엑스선과 감마선 상에서 밝게 빛날 때가 있다. 천문학자들의 오랜 관측 대상인 이 블랙홀은 지난 15일 다시 우주라는 무대로 멋지게 복귀했다. 이 블랙홀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첫 징후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스위프트(Swift) 위성의 ‘폭발 경보 망원경’(BAT)을 통해 관측됐다. 갑작스러운 감마선 폭발 이후 엑스선 상에서도 관측됐다. 이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있는 일본실험모듈(JEM)의 맥시(MAXI, Monitor of All-sky X-ray Image)가 같은 곳에서 엑스선 플레어를 관측했다. 이런 초기 감지로 블랙홀의 다양한 파장을 감시하기 위해 우주 관측에서 지상 망원경들에 이르는 대규모 관측 계획이 진행됐다. 이런 광범위한 노력으로, ESA의 인티그럴(Integral, International Gamma-Ray Astrophysics Laboratory) 위성과 관측소는 17일부터 폭발하는 블랙홀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인티그럴 프로젝트 책임자인 ESA의 에릭 쿠울케르스 박사는 “1시간이 못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블랙홀에서는 반복적으로 밝은 빛이 번쩍였다”며 “이는 다른 블랙홀 시스템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시 엑스선 상에서는 우주의 가장 밝은 광원 가운데 하나인 게성운보다 50배 더 밝게 빛났다”고 설명했다. 백조자리 V404가 블랙홀 시스템이라는 것은 1989년 일본 엑스선 위성 긴가(Ginga)와 당시 옛소련의 미르우주정거장에 있던 고에너지 관측장비를 통해 관측됐고 이후 활동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쿠울케르스 박사는 “당시에는 천문학자는 물론 장비, 시설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부족했기에 오늘날 천문 관측 네트워크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E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러, 2년내 차세대 핵잠수함 극동 배치”

    러시아가 오는 2017년 야센급 차세대 핵잠수함을 극동에 배치한다. 중국도 야센급 핵잠수함 도입 계획을 갖고 있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군사력 강화 정책이 향후 동북아 안보에 큰 위협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5일(현지시간) 일본의 온라인 시사잡지 ‘더 디플로맷’은 러시아 관계자들을 인용해 러시아가 소련 때 건조한 노후 핵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5세대 야센급 2호함을 이르면 2017년까지 태평양함대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야센급 2호함이 이미 14척의 핵잠수함을 보유한 태평양함대에 배치되면 수중전력이 크게 강화돼 지역국들을 긴장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야센급 차세대 핵잠수함은 만재배수량이 1만 3500t 안팎으로 길이 119m, 최고 시속 31노트, 최대 잠항심도 600m 등이다. ‘가장 조용한 살인무기’로 불리는 이 잠수함은 최첨단 원구형 음파탐지기와 저자기성 강철 함체를 갖고 있다. 또 사거리가 최대 300㎞에 이르는 P-800 오닉스 등 10개의 어뢰발사관을 갖췄다. 러시아는 애초 2020년까지 순항미사일 탑재 등 다목적 야센급 핵잠수함 8척을 건조해 실전에 배치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예산 문제에 발목이 잡혀 여지껏 신형 핵잠수함을 북해함대에 한 척밖에 배치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러시아는 만재배수량이 4만 8000t인 타이푼급 3척, 2만 4000t인 보레이급 3척 등 60척의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는 모두 다르게 울고 웃는다/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우리는 모두 다르게 울고 웃는다/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어제 아침에 학교로 향하는 중학생 딸아이의 등 뒤로 “너, 6·25가 어떤 날인 줄 알아?”라고 물었다. 북한의 김정은이 이 땅의 중학교 2학년들의 ‘중2 병’이 무서워서 절대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세간의 우스갯소리를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딸아이에게서 싸늘한 반응이 되돌아온다. “뭐라고?” 나는 다시 물었다.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젊었을 때 일어났던 한국전쟁, 안 들어 봤어?” 그제서야 아빠를 아래위로 휙 훑어보더니 딸아이가 쿨하게 대답하고는 현관문을 꽝 닫고 돌아선다. “아, 김일성, 남침!” 세월의 영사기를 돌리듯, 그 순간 나는 이런저런 단편적인 기억들을 쏜살같이 떠올린다. 어렸을 때 ‘라면땅’이라는 이름의 과자가 있었다. 1975년이었나? 우리 집이 서울로 이사를 오기 전의 일이다. 새로운 과자가 나왔다는 동네 친구들의 소식에 마음이 설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낙담하게 된다. 그 과자 포장지에 새겨진 로고가 당시 소련의 국기와 비슷해 보였다. 그런 이유로 그때 동네 꼬맹이들은 그 과자는 소련에서 온 간첩들이 만들었으니까 먹었다가는 우리가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해괴한 소문을 퍼뜨렸다. 나도 그 소문을 믿고 말았다. 많이들 기억하고 있겠지만 당시 소련 국기에는 ‘해머’와 ‘서양 낫’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마 그 과자 봉지에 있었던 어떤 무늬가 얼핏 보기에 그런 모양이었던 것 같다. 저녁에 나는 다시 딸아이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학교에서 6·25 포스터 그리기, 뭐 그런 거 안 하니?” 아빠의 질문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싶더니 금세 얼굴에는 생글생글 미소가 가득하다. “오늘 학교에서 뭐 좋은 일 있었어?” 물어보기가 무섭게 딸아이가 대답한다. “응. 저번에 나 생파(생일파티)했었잖아. 아빠 그때 내 친구 8명이 와서 밥 먹은 거 기억하지? 근데 어제 JS가 생파했는데, 6명밖에 안 왔대. 아이, 고소하다.” JS는 우리 딸이 라이벌 친구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부르는 방식이고, 내심 누구의 생일파티에 친구들이 더 많이 찾아왔나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딸아이와 친구들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동안 집사람이 카드결제를 하면서 비싸다고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아빠 덕에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덕에 풍요를 즐기며, 우리 자식 세대는 이렇게 웃는다. 다시 화제를 돌린 딸아이는 “다음달 직업체험 하는데, 아빠 절대 신청서 내지 마. 내가 무지하게 창피하거든.” 식탁 아래로 발을 뻗어 내 다리를 툭 차고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는다. 우리 자식 세대는 이렇게 운다. 낮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요즘 들어 허리가 아프다는 하소연을 부쩍 많이 하시는 어머니는 아들의 전화가 무슨 진통제인 줄 아신다. “그래 점심 먹었니? 아까 뉴스 보니까 우리 대통령이 일본한테 대범하게 얘기 잘했다며? 네가 보기에도 잘한 것 같아?” 아들의 전공이 외교라는 이유로 듣고 싶은 대답을 기다리던 어머니께 “예,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전화기 너머로 환한 미소가 전해 온다. “그래 그래야지. 우리 대통령 하는 일이 다 잘 되어야지”라고 대답하신다. 우리 부모 세대는 이렇게 웃는다. 바로 그 순간 전화선을 타고 아버지의 음성이 희미하게 실려 온다. 어머니를 부르며 또 뭔가를 가져다 달라고 하시나 보다. “어휴, 내가 너희 아버지 때문에 못 산다. 내가 먼저 가야 나 소중한 줄 알지, 아휴.” 어머니의 레퍼토리는 평생 변함이 없다. 그 일관된 멘트는 우리 부모 세대가 우는 방식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나와 딸아이의 저녁식탁 대화를 애매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집사람이 입을 연다. “근데 엄마가 주말에 올라오신대. 당신 1박2일로 중국 출장이지? 혈압측정기 새로 필요하다셔. 면세점에서 하나 사와.” “어, 알았어.” 나의 시원한 대답에 집사람은 이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와 집사람, 그러니까 우리 세대는 이렇게 웃는다. 그러면서 집사람은 갑자기 또 한마디 볼멘소리를 덧붙인다. “인문학을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거야? 왜 자꾸 강의를 줄이는 거야.” 대학에서 불어학을 가르치는 아내는 2학기 시간표에서 강의가 또 하나 줄었다고 불만을 쏟아낸다. 딸아이와 어머니와는 다르게 우리 세대는 이렇게 운다.
  • 美 교회 총기난사 나무라듯… 교황 “무기 좇는 자는 기독교인 아니다”

    “세계는 다시 위선에 사로잡혔다. 지금 우리가 처한 갈등과 분열은 제3차대전에 필적할 만하다. (돈을 좇아) 무기를 만들거나 무기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 부를 수 없다.” ‘진보주의’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기산업 종사자들과 유럽의 절대권력을 향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참살, 소련의 기독교인 학살 등을 차례로 언급한 교황은 “이제 우리는 금권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인간성 말살을 경험하고 있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흡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흑인 교회 총격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무기산업의 과실에만 집착하는 보수 세력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듯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서부 공업도시인 토리노를 방문한 교황은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즉흥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작정한 듯 위선과 절대권력을 비판했다. 과거 산업 중심지인 토리노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농민들을 떠올리며 “지금은 난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지만 입국을 거부당한 채 수용소에 갇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폐한 경제와 전쟁을 피해 떠밀려 온 난민들은 피해자일 뿐”이라며 난민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교황의 이날 연설은 토리노대성당에 모셔진 ‘토리노의 수의’를 참배한 직후 나왔다. 진위 논란에 휩싸인 이 수의는 대다수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예수의 성혈이 새겨진 천으로 간주되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꼭꼭 숨겨라… 최고인민회의도 모르는 北 국방비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꼭꼭 숨겨라… 최고인민회의도 모르는 北 국방비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은 지난 2월 24일 ‘2015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과 북한의 군사력 현황을 비교하며 “한국이 북한에 비해 엄청난 열세”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현역 전투병은 63만여명으로 119만명인 북한의 54%”라면서 “한국 군사력이 북한에 앞서는 부분은 13개 항목 중 장갑차와 헬기 등 2개 분야뿐”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노후한 장비까지 포함시켜 단순히 숫자만 비교한 것일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론의 동향은 심상치 않았다. 네티즌들은 “북한보다 압도적인 국방비를 쓰면서 아직도 북한에 뒤지느냐”고 들끓었다. 북한은 지난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회의에서 액수는 밝히지 않은 채 군사비가 전체 예산의 15.9%라고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추산한 북한 재정 규모를 근거로 11억 500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북한은 해마다 예산의 15~16%를 지출한다고 발표해 왔다. 남한의 지난해 국방비는 325억 달러(35조 7000억원) 수준으로 북한의 30배 수준인 셈이다. 국방부는 이로부터 한 달여 후인 4월 14일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군사비 규모가 남한의 3분의1 수준인 102억 달러(약 11조 2000억원)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의 군사비는 은폐된 부분이 많고 실제 구매력평가환율(PPP) 기준으로 따지면 100억 달러를 상회하기 때문에 30배 차이까지 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남한 63만명 vs 북한 120만명 ‘이길수 있나’ 이 같은 일련의 모습은 북한의 실제 군사비와 군사력을 놓고 이해 당사자 간 ‘진실게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국방비 관련 공식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은 국내총생산(GDP)과 국가 예산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구소련 등 옛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발표하는 국방비는 일부일 뿐 나머지는 은폐돼 있다고 분석된다. 북한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국방예산이 정부 예산의 30% 수준이라고 공표해 왔지만 1972년부터 17%라고 발표했고 이후 15~16%대 수준을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는 군비 가운데 경상유지 비용 부문만 예산으로 공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일 “북한이 군사력 강화를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서도 평화를 중시한다는 국제적 선전의 명분을 쌓아야 하는 입장에서 군사비 지출을 최대한 적게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 군 당국의 북한 군비 분석은 은폐된 비용을 추산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한다. 북한군 병력 규모는 현재 120만명, 남한은 63만여명 수준이지만 40년 전인 1975년만해도 남한 63만명, 북한 56만여명 수준으로 북한군 병력 숫자가 적었다. 북한이 40년간 꾸준히 군사력을 증강해 120만 대군을 육성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의 15% 수준으로는 어렵다는 평가다. 북한의 군사 부문 경제는 국가 경제와 별도로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장비획득비, 군사건설비, 연구개발비나 퇴역 군인에 대한 연금 지출 등은 군사비 항목에서 제외됐을 개연성이 크다. 북한의 경우 군사 기지를 건설할 때 국유지를 사용하면 되고 군대를 동원해 건설하면 노임을 절약할 수 있다. 단순 경제규모 차이를 기준으로 군사비 지출을 계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군 당국의 판단이다. KIDA는 북한의 연간 핵 개발비용이 약 6억 5000만 달러이고 미사일 개발비용은 연간 5억 7000만 달러라고 추산하고 있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신형미사일 개발과 성능개량에 주력하는 만큼 연간 무기·장비 획득비는 최소 15억 달러 이상일 것이라는 평가다. 이를 감안한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군사비 지출은 102억 달러 수준으로 북한 GDP의 20~30% 수준이라는 것이다. 남한의 지난해 군사비는 GDP 대비 2.38% 수준이다. ●군 당국 북한 위협 과대평가 논란도 특히 북한의 군비 지출 현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북한 권력층 가운데서도 극히 소수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역임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생전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예산을 심의할 때 심의에 들어가자 전 비서들이 모여 토론하는데 그때 나오는 숫자와 최고인민회의에 나온 숫자가 달랐고 국방비만큼은 얘기하지 않는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의 북한 군비 지출과 군사력 평가에도 과장이 포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과거 군 당국이 이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고 북한의 위협을 과대 평가해 국민들의 불신만 높였다는 의혹이다. 2013년 11월 국정감사 당시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은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누가 이길 것으로 보이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한·미 동맹이 싸우면 우리가 월등히 이기지만, 남북한이 1대 1로 붙으면 우리가 불리하다”고 답변했다. 이는 국방부가 북한의 재래식 전력 위협을 과대 평가해 조직을 확장하고 예산을 더 확보하려는 이율배반적 태도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이 같은 불신의 기저에는 정부 재정의 14.5%(올해 기준)를 국방 예산으로 투입해도 방산비리로 예산이 줄줄 샌다는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국방부는 군사력 산출 방식에 대해 PPP를 중심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마저 객관적 평가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는 “전년에 비해 북한군 포 숫자가 늘어나면 무기 단가에 늘어난 수만큼 곱해서 재정을 산출하는 식”이라면서 “문제는 이 단가가 우리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라 북한이 실제로 이를 얼마에 구입하는지 알 수 없어 부정확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북한 원화의 가치와 실제 상품에 대한 구매력을 과연 군사 부문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실제 북한 군사비는 40억 달러를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 당국은 남북한 현존 무력을 비교 평가하기 위해 ‘전력지수’ 방식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 전차를 비교하면서 전차의 성능에 따라 가중치를 다르게 두고 이에 수량을 곱해 총점을 매기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물적 역량 중심의 방식으로 정확한 군사력을 측정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공군력을 비교할 때 항공기의 숫자만큼 출격 횟수와 총체공시간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단일 무기 수치의 합으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함택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적의 위협을 극대화해야 하는 군의 속성상 북한의 위협 기준을 최대한 높이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 GDP와 예산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군의 발표가 완전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 병참지원 열악 전면전 수행능력 떨어져” 앞서 제시된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군사력 보고서도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 보고서의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각 무기 체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북한의 낡은 무기까지 계산해 ‘북한 군사력이 우세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문제는 이 같은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들이 록히드마틴 등 방산업체들의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공포’를 강조해 미국 방산업체들의 무기 구매를 유도하는 셈이다. 북한은 무기의 수량에서 우세하지만 해·공군 장비는 소형이고 노후화된 구식 장비가 많다. 북한군이 자주포, 방사포(다연장 로켓), 대공포를 많이 보유한 것도 한·미 연합군에 비해 공군의 제공권이나 지상 공격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군이 포병의 수적 우세에 힘입어 전쟁 발발 시 초기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어도 병참 지원이 열악해 전면전 수행 능력은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함 교수는 “군사력과 군사비는 대체로 비례하나 한 해 군사비뿐 아니라 누적 투자비가 어느 정도인가도 중요하다”라면서 “재래식 군사력은 남한이 우위이나 문제는 지정학적으로 서울이 휴전선에 가까이 있어 위협을 받아 방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대칭전력인 핵무기를 포함시키면 남북 간 군사력 우위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함 교수는 “남한이 재래식 무기에서 우위를 보여도 북한의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위력을 지닌 한·미 동맹의 억제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러시아 관리 “美아폴로 달 착륙, 국제조사 하자” 제안

    러시아 관리 “美아폴로 달 착륙, 국제조사 하자” 제안

    지난 1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영자신문 모스크바 타임스에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이 기사의 제목은 '러시아 관리가 미국의 달 착륙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를 제안했다'(Russian Official Proposes International Investigation Into U.S. Moon Landings). 이 기사에서 지칭된 관리는 '러시아판 FBI'로 불리는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마킨이다. 그는 최근 현지의 대표 신문 ‘이즈베스티야’에 이같은 내용의 칼럼을 기고해 미국의 달 착륙 음모론에 다시 '불'을 붙였다. 무려 반세기나 지난 옛날 이야기가 즉각 서구 언론에 인용 보도된 것은 역시나 미국의 아폴로 11호 달착륙을 둘러싼 '음모론'이 지금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음모론의 핵심 중 하나는 당시 소련의 앞선 우주 개발에 자존심 상한 미국이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이라는 사기극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킨은 "미국이 달에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1969년 달 착륙시 촬영된 원본 필름이 사라진 것과 380kg에 달하는 월석의 행방을 조사하자"고 주장했다. 사실 이 두가지는 미국의 달 착륙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다. 실제 미 항공우주국(NASA) 측은 지난 2009년 달 착륙 과정을 담은 원본 비디오 테이프 45개를 실수로 지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여기저기 나눠줬다는 무려 380kg에 달하는 수많은 월석 전체의 행방 또한 묘연하다. 물론 마킨의 주장대로 미국의 달 착륙을 놓고 실제로 국제 조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는 뜬금없이 이같은 주장을 펼쳤을까? 서구언론들은 그 배경에 미국 FBI가 주도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부패 수사에 대한 불쾌감으로 풀이하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월드컵 개최를 목전에 둔 러시아가 대회가 무산되는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곧 러시아가 뇌물로 2018년 월드컵 개최권을 얻었다는 세간의 '음모론'에 대한 러시아의 우회적인 반격인 셈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F22機 배치” vs “ICBM 추가”… 美·러 신냉전

    “F22機 배치” vs “ICBM 추가”… 美·러 신냉전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관계가 악화된 러시아가 핵무기 추가 배치 계획을 밝혔다. 냉전 때 미국과 소련이 했던 것처럼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경쟁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근교 쿠빈카에서 열린 국제군사기술포럼 ‘군-2015’에서 “올해 40여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추가 배치해 핵전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고 AP와 인테르팍스 등이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서유럽을 감시하는 새로운 레이더 기지도 조만간 시험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배치하고자 하는 ICBM은 ‘RS24 야르스’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야르스는 각개 조정이 가능한 4개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최대 1만 1000㎞ 밖의 목표물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또 적의 방공망을 교란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뚫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방침에 미국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과 러시아는 1990년대 이후 소련 영토에서 핵무기를 감축하기 위해 협력했다”며 “누구도 우리가 후퇴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번 러시아의 ICMB 추가 배치가 1991년 맺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의 MD가 이미 중거리핵전략협정(INF) 합의를 위반했다고 맞받아쳤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누군가 우리 영토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군대와 무기를 배치해야 한다”며 “나토가 우리 국경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날 미국은 최신예 전투기인 ‘F22 랩터’를 유럽에 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F22 랩터는 최대속도 2410㎞에 레이더 추적을 피할 수 있는 스텔스 기능과 기관포·공대공 미사일·유도폭탄 등의 무기를 장착했다. 앞서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동유럽 국가들에 5000여명 병력이 이용 가능한 탱크·보병전투차량·곡사포 등 중화기를 배치할 계획을 밝혔다. 러시아군 관계자는 이와 관련, “냉전 이후 미국과 나토의 가장 공격적인 조치”라며 반발했다. 안토노프 러시아 국방차관은 “나토가 러시아를 군비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핵전력을 지렛대로 삼아 동진(東進)하는 나토와 미국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한 TV에 출연해 “(미국과 나토가 군사개입을 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군비 증강 계획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한 전문가는 “러시아가 추진하는 군비 증강 계획은 2020년까지 4000억 달러(약 447조원)가 든다”며 “이는 경기가 침체된 러시아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라고 분석한 것으로 AP가 전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마오 ‘혁명성지’ 간 시진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후 처음으로 지난 16일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시 ‘쭌이 회의’ 혁명성지를 찾았다. 쭌이 회의는 80년 전 공산당 홍군이 대장정을 벌이던 1935년 1월 열린 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를 말한다. 홍군 지도부에서 밀려나 있던 마오쩌둥(毛澤東)이 이 회의에서 친소련파의 실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장원톈(張聞天), 주더(朱德), 류사오치(劉少奇) 등의 지지를 얻어 군사적 실권을 쥐었다. 시 주석은 열사능원을 참배한 뒤 “마오 주석의 용병술은 귀신같았다. 유격전의 모범”이라고 감탄했다. 신화통신은 “쭌이는 마오의 사상이 시작된 곳이자 중국 공산당의 독립적인 주권 행사가 시작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시 주석의 쭌이 방문은 그의 핵심 지도 노선인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 강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처벌하며 공산당을 재탄생시키려는 의지를 혁명성지 방문으로 보여 줬다는 것이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혁명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 주석의 사상개조 작업은 서구의 청교도 운동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은 지난 12일 개국 공신인 천윈(陳雲) 탄생 110주년을 맞아 “혁명기에 ‘홍색 유전자’를 지닌 탁월한 당원이 많았다”면서 “혁명가의 숭고한 품격을 이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엄치당은 공산당 지배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인민일보가 연일 서구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색깔 혁명’ 실패를 분석하는 것도 공산당 영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맞춰 중국 공산당은 17일 국가기관, 민간단체, 경제단체, 문화단체, 사회단체 등의 지도기관은 반드시 ‘당조직’을 설치해야 한다는 ‘당조직 공작 조례’를 발표했다. 정부기관을 통제하는 ‘당위원회’와 별도로 각 단체나 기업에 당조직을 신설해 당원과 비당원의 결속을 강화하고 정책 집행을 주도하며 간부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알카에다 2인자 알와히시 사망

    알카에다 2인자 알와히시 사망

    프랑스 파리 주간지 샤를로 에브도 테러의 배후 단체로 알려진 알카에다 예멘지부(AQAP)의 수장 나세르 알와히시가 미군의 공습으로 숨졌다고 AQAP가 1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알카에다가 ‘성전’(지하드)의 주도권을 놓고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와 경쟁하는 가운데 조직의 2인자가 사망하면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AP에 따르면 AQAP 고위 관계자는 이날 공개한 비디오 성명에서 알와히시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빈자리를 AQAP의 2인자인 카심 알라이미가 계승한다고 밝혔다. AQAP는 “미국과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QAP를 이끌었던 알와히시는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에 이어 조직의 2인자로 군림했다. 199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에 가입한 뒤 2001년까지 오사마 빈라덴의 부관으로 근무하다가 2009년 예멘에서 AQAP를 창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와히시의 사망은 IS와 대립 중인 알카에다에 막대한 손실이라고 AP는 분석했다. 알카에다와 IS는 모두 이슬람 율법에 기반한 무장단체이지만 IS는 스스로 칼리프 국가라고 칭하며 세력 확장에 치중하는 반면 알카에다는 IS의 칼리프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과의 전쟁을 강조한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수니파 무장단체인 탈레반은 이날 칼리프 국가 수립 1주년을 맞은 IS에 서한을 보내 IS를 견제했다. 이날 온라인에 공개된 편지에서 탈레반은 서방에 맞서는 탈레반과 IS가 우호관계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탈레반은 1970년대부터 옛 소련의 침공에 맞서온 자신들을 빈라덴도 인정했다며 정통성을 강조했다. 이어 “우리 일에 개입하지 말라”며 IS의 세력 확장을 경고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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