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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예견된 北 수소폭탄, 손 놓고 있었던 정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예견된 北 수소폭탄, 손 놓고 있었던 정부

    북한이 새해 벽두를 기습적인 핵실험으로 장식하면서 남북 관계가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6일 오전 10시 30분경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기습적인 핵실험을 강행하고 당일 정오에 조선중앙TV 특별 중대발표를 통해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급작스런 ‘수소탄 실험 성공’ 소식에 정부 당국은 패닉에 빠졌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유관기관은 핵실험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한다는 미국조차도 불과 수 시간 전에야 감청을 통해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확인을 위해 급하게 정찰기를 띄웠지만 결국 사전 첩보 입수와 경보에는 실패했다. 북한의 핵실험 사실을 가장 빠르게 파악한 곳은 안보 관련 기관이 아닌 ‘기상청’이었다. 정부는 핵실험 직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예상치 못했던 북한의 기습적인 ‘수소탄 실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가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을 정말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北, 핵탄두 보유는 90년대에 달성 북한이 이번에 ‘완전 성공’했다고 발표한 실험은 수소탄, 즉 일반적으로 수소폭탄(Hydrogen bomb)으로 불리는 폭탄이다. 보통 원자폭탄으로 불리는 핵무기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분열을 통해 파괴력을 얻는 것과 대조적으로 수소폭탄은 핵분열-핵융합 다단계 과정을 통해 파괴력을 얻기 때문에 원자폭탄과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갖는다. 핵분열 방식의 원자폭탄이 작게는 1kt(TNT 1000톤) 안팎의 위력부터 크게는 100~200kt(TNT 10만~20만톤) 정도의 폭발력을 발휘하는 것과 달리 핵융합 방식의 수소폭탄은 작게는 200~300kt 수준의 위력부터 크게는 50Mt, 즉 TNT로 환산하면 5000만 톤에 달하는 위력을 갖는다. TNT 5000만 톤이면 미국이 6.25 전쟁 당시 3년여 간 한반도 전역에 퍼부었던 폭탄의 83배에 달하는 폭탄이 동시에 터지는 위력이다. 이처럼 강력한 위력 때문에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현재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이른바 ‘핵클럽’ 국가들은 모두 수소폭탄 개발에 일찌감치 성공해 실전에 배치했고, 관련 기술의 확산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그러나 만들지 말라고 해서 말을 들을 북한이 아니다. 북한은 1950년대 핵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하고, 1970년대 중반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을 위한 전문가와 기술자들을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핵개발은 플루토늄(Pu-239)과 고농축우라늄(HEU : High-Enriched Uranium)을 이용한 핵분열 무기, 즉 원자폭탄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북한은 핵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20여 년 만에 플루토늄을 이용한 내폭형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고,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우리나라와 미국을 기만한 뒤 곧바로 파키스탄과 접촉해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라 불리는 압둘 아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는 이른바 ‘칸 네트워크’를 통해 파키스탄이 1982년 중국으로부터 넘겨받은 우라늄 핵탄두인 CHIC-4의 설계도와 관련 부품을 각국에 팔았고, 이 설계도는 지난 2003년 리비아 핵 사찰 당시 발견된 바 있었다. 북한도 이 설계도와 관련 부품 확보를 시도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얼마 전 사망한 전병호 前 노동당 군수담당비서가 1998년 칸 박사에게 보낸 편지와 칸 박사의 증언에서 드러난다.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에 이어 칸 박사의 도움으로 손쉽게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북한의 다음 수순은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궁극의 핵무기, 바로 수소폭탄 개발이었다. 수소폭탄은 그 자체로도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지만, 이 기술을 응용할 경우 증폭핵분열탄(Boosted fission weapons)을 개발해 핵분열 무기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반드시 개발해야 할 기술이었다. 문제는 북한이 핵융합 무기 개발을 위한 관련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이 10년이 훨씬 넘었고,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 6년 전이지만, 관계 당국은 “그럴 리 없다”며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심지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기까지 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소폭탄 개발 징후는 6년 전 이미 포착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나섰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실제로 수소폭탄 실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국내외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제기해 왔다. 오랫동안 북핵 문제를 연구해 이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이 2012년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고, 북한에서 핵 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온 세계적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 역시 2013년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가능성은 이미 2010년에 북한 스스로 대내외에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 있었다. 북한은 지난 2010년 5월 12일자 노동신문에서 ‘방안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을 실현시키는데 성공’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핵융합 기술을 연구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사실 북한이 발표한 ‘방안온도에서의 핵융합 반응’ 즉, 상온핵융합은 미국조차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2005년에서야 성공한 기술이다. 관련 기술 개발에 뒤늦게 뛰어든 북한이 그 많은 핵물리학 선진국을 제치고 2010년에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핵융합과 관련된 모종의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증거가 과학계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우선, 방사성 원소인 제논(Xenon)이 포집됐다. 북한이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2010년 5월 12일에서 불과 이틀 뒤인 5월 14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운영하는 강원도 고성군 소재 거진측정소에서 측정소 설치 이후 사상 최대치의 방사성 원소를 발견한 것이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선동(서울 도봉을) 의원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자료를 근거로 “거진측정소의 핵종탐지장비가 제논-135를 2007년 측정소 설치 이후 최대치인 10.01mBq/㎥을 탐지했고, 제논-133 역시 2.45mBq/㎥를 탐지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방사성 원소는 거진관측소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탐지됐는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 Comprehensive Nuclear-Test-Ban Treaty Organization)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보고 받은 것이 스웨덴 국방연구소 대기과학자 라스 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 박사가 세계적 군사과학저널인 과학과 세계안보(Science & Global Security)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확인됐다. 대기 중에서 이 같은 수치의 제논 원소가 발견되려면 측정소 근처에 제논을 사용하는 방사성 의료기기를 운용하는 병원을 설치해 운영하거나 인접 국가에서 핵실험을 해야만 한다. 거진 측정소 인근에는 방사성 의료기기를 운용하는 병원이 없기 때문에 당시 인접 국가에서 모종의 핵실험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방사성 원소 검출 외에도 지진파도 감지됐다. 중국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은 2014년 11월 지구물리학 국제학술지인 지진학연구소식(Seismological Research Letters)에 게재한 논문에서 2010년 5월 12일 풍계리에서 소규모 핵폭발이 있었다고 보고했고, 미국 프린스턴대 마이클 쇼프너(Michael Schoeppner) 연구원과 독일 함부르크대 율리히 쿤(Ulrich Kühn) 연구원 역시 미국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진파 분석결과를 토대로 2010년 5월 소규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했다. 즉, 북한은 2010년부터 자기 입으로 핵융합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이를 응용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한 과학적 근거들도 국내외 과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왔었다. 그러나 북한의 발표와 과학계의 이러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을 일관되게 취해왔다. 안보에서의 ‘아전인수’는 곤란 정부가 북한의 핵 능력을 지속적으로 평가절하하면서 쉬쉬하는 이유는 시쳇말로 ‘아전인수(我田引水)’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현 정부 들어 계속된 대북정책의 성격을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다. 상황을 입맛대로 해석하고, 입맛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DMZ 지뢰 도발 사건으로 긴장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와의 협상에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청와대에 돌아와서는 “북한으로부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았다”고 발표했다가 북한으로부터 “사과와 유감의 뜻도 구분 못하는 남조선 당국은 조선말 공부부터 다시 하라”는 모욕적인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물론 황병서와 김양건은 협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김정은으로부터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았다. 이 같은 정책 실패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한 결과였다. 북한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남한이 대북 강경 정책을 펴든 햇볕정책을 펴든 북한의 국가정책은 핵무기 개발과 실전배치라는 일관된 것이었고 지난 40여 년간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북한 정권의 핵은 체제 유지를 위한 필요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보수 그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북한 핵무기 보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경우 정치·경제적으로 몰아칠 후폭풍을 감당하지 않으려 했고 “그럴 리 없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폭탄 돌리기를 계속 해왔다.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구소련 KGB 문서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미국의 영변 폭격을 가로 막았고,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이 파키스탄의 칸 박사와 접촉해 우라늄 핵무기 관련 기술을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던 그 시기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북한에 핵개발 자금으로 쓰일 수도 있는 달러 지원을 계속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북한의 1차 핵실험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공론화되었음에도 ”북한 핵실험 징후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며 북한의 핵개발 지속 사실을 애써 외면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연속된 핵실험을 지켜보면서도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할 단계는 아니며, 실전배치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 중동에서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이란 등 여러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지만 일찌감치 좌절된 것은 이들 국가가 핵무기를 가졌을 경우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당사국인 이스라엘이 외교적 압박과 공습, 심지어 테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핵 위협의 직접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공습이나 전방위적인 제재와 압박을 주도하기는커녕 핵개발 자금으로 쓰일 수도 있는 현금을 지원하거나 국제 제재를 반대하고 북핵 위협을 외면하는 등 북한의 핵개발을 오히려 돕고 있는 정책 오류를 이어가고 있다. 역대 모든 정권이 북한의 핵개발을 돕거나 방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어느 한 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외교·경제적 제재와 더불어 군사적 압박이라는 카드를 함께 쓰는 투-트랙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국가의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하자니 진보 성향의 야당이 반발하고 있고, 군사적 압박을 취하자니 그러한 능력을 갖추는데 막대한 국방예산 추가 투자가 부담되니 제재와 압박은 미지근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군사적 압박은 아예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사국이 이런데 북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국가들이 북핵 제재에 관심을 갖고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실제로 UN 안보리에서 그동안 3차례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고 193개 회원국에게 이행 제재 실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193개의 UN 회원국 가운데 보고서를 제출하는 나라는 전체 회원국의 19%인 35개국에 불과하며, 중국은 원유부터 식량, 군용차량, 심지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차량까지 북한에 제공하며 안보리 결의를 비웃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북한 스스로 개발한 것이지만, 그들의 핵 능력이 수소폭탄을 운운할 수준까지 고도화될 수 있도록 온실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무책임한 폭탄 돌리기 덕분에 국민들은 이제 터지기 직전의 북핵이라는 폭탄을 손에 받아들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과연 이 폭탄 돌리기를 끝낼 수 있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공격용 헬기 타고 다니는 푸틴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공격용 헬기 타고 다니는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1999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실각과 함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권좌에 오른 이후 16년째 장기 집권하며 21세기의 짜르(Czar·황제)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다. 그는 악명 높은 구소련 정보기관 KGB 요원으로 냉전시기 최전선이던 동독에서 활약했고, 소련 붕괴 이후에는 KGB에서 분리되어 국내 보안 업무를 담당하던 조직인 연방보안국(FSB)의 장관으로 일하는 등 정치보다는 첩보와 정보전에 정통한 관료였다. 이러한 이력 때문인지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색 행보를 이어갔다. 라이플 한 정만 들고 혈혈단신 사냥터로 나서는가 하면, 급류가 흐르는 계곡에 몸을 던져 수영을 즐기고, 수송기를 직접 조종하거나 심지어 정상회담 일정을 펑크내가면서까지 폭주족들과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기도 했다. 이러한 괴짜 성향 때문인지 그는 대통령 전용헬기조차 평범함을 거부했다. 크렘린 상공의 공격헬기 지난 2015년 연말, 모스크바의 대통령궁인 크렘린 영내에서 육중한 체구의 공격용 헬기 2대가 이륙하는 장면이 행인의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이내 화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청와대 헬기장에서 코브라 공격용 헬기가 떠오른 셈이니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궁 앞마당에서 공격용 헬기가 떠오른 것을 놓고 SNS에서는 푸틴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느니 쿠데타가 발생했다느니 다양한 ‘카더라’ 통신이 난무했지만, 이 공격용 헬기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모든 오해가 풀렸다. 바로 푸틴의 새로운 전용헬기였던 것이다. 크렘린궁에서 이륙한 헬기는 러시아 공군의 주력 공격용 헬기인 Mi-24 하인드(Hind)의 최신 개량형인 Mi-35M 공격용 헬기를 개조한 VIP 전용헬기 Mi-35MS였다. 외관만 놓고 보면 공격용 헬기와 거의 차이가 없었으니 오해가 있을 법 했다. Mi-35MS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공격용 헬기 개조 VIP 전용헬기다. 일반적으로 공격용 헬기는 적진 상공을 휘저으며 공격을 퍼부어야 하기 때문에 적의 대공포에 피격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덩치를 줄여 설계된다. 일반적인 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병력 탑승용 공간은 없애고, 조종사(Pilot)와 무장사(Gunner)를 제외한 추가 병력 탑승 기능은 모두 삭제하여 오로지 무장 탑재와 운용에 최적화된 형상으로 개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Mi-24는 태생부터 이러한 공격헬기와는 다른 설계 사상을 가지고 개발됐다. 소련군은 월남전에서 미 육군이 UH-1 휴이(Huey·병력수송헬기)와 UH-1 건십(Gunship·무장헬기)를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병력수송헬기와 무장 헬기의 기능을 하나로 합칠 것을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 조건에 따라 밀(Mil) 설계국은 Mi-24라는 물건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형상의 Mi-24는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은 대규모 기갑부대와 공수부대로 순식간에 주요 도시를 점령했지만, 산악 지역을 거점으로 저항하는 이슬람 반군 무자헤딘(Mujahidin)의 치고 빠지기 식 전술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도 이 무자헤딘의 일원이었는데, 이들은 전투 중 노획한 소련군의 장비에 의존하는 소규모 게릴라로 활동하다가 사우디 등 이슬람 국가들, 심지어 미국까지 나서서 자금과 무기를 지원함에 따라 지역을 통째로 점령한 군벌 형태로 발전해 각지에서 소련군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이에 소련은 산악 지형에서는 전차나 장갑차보다는 공격용 헬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Mi-24 공격용 헬기를 대규모로 투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무자헤딘의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산은 울창한 숲이 아닌 바위산인 경가 많아 숨을 곳이 없었고, 변변찮은 대공 무기가 없던 게릴라들에게 하늘에서 기관포와 로켓탄을 퍼붓는 공격용 헬기는 문자 그대로 사신(死神)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위력을 떨친 Mi-24는 공산권 주요 국가에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동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은 물론 남미 지역까지 50여 개 국가에 수출된 Mi-24는 냉전 시기 미국의 AH-1 코브라(Cobra)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산권의 표준 공격용 헬기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는 냉전 붕괴 이후 Mi-28이나 Ka-50과 같은 신형 공격용 헬기를 개발해 배치했지만, 병력 수송 임무와 공격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Mi-24의 전술적 이점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Mi-24의 엔진과 무장, 전자장비를 대폭 개량한 Mi-35를 내놓았는데, 푸틴은 이것을 가지고 자신의 전용 헬기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21세기 짜르’가 탈 전용 헬기인 만큼 Mi-35에는 환골탈태에 가까운 수준의 대대적인 개조가 이루어졌다. 기체를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값비싼 복합 소재를 대폭 사용했고, 속도 성능과 민첩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메인 로터를 유리섬유 소재 신형 로터로 바꾸고 엔진도 교체했다. 갑작스럽게 미사일이 날아올 경우에 대비한 방어 장비는 물론 전자전 장비까지 탑재했다. 또한 VIP 탑승 공간에 대한 방탄 처리와 더불어 추락하더라도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랜딩기어도 완전히 새로 설계했다. 8명이 탑승할 수 있는 병력 탑승 공간 역시 푸틴을 위해 호화롭게 개조됐다. 실내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게 바뀌고 널찍한 좌석과 회의용 테이블도 추가됐다.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시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푸틴의 성향을 반영해 창문도 커졌다. 지상 공격과 병력 수송 등 순전히 군사 작전을 위해 개발된 공격 헬기가 최고의 생존성과 안락함을 자랑하는 VIP 전용 헬기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공격형 VIP 헬기, 푸틴의 취향? 일반적으로 대통령 등 국가수반이 타는 VIP 전용 헬기는 생존성과 안전성을 강화하고, 대통령뿐만 아니라 참모진도 동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큼직한 중대형 헬기를 기반으로 개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S-92를 비롯해 미국의 마린 원(Marine One), 프랑스와 독일(EC-725) 모두 10톤급 이상의 중대형 헬기이다. 이러한 케이스는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래 러시아는 대통령 전용헬기로 자국의 베스트셀러 중형 헬기인 Mi-8을 개조한 중형 VIP 전용헬기인 Mi-8MTV를 운용하고 있었다. 공산권 국가의 표준 수송헬기로 대량 보급된 Mi-8은 우리 군의 UH-60 블랙호크에 비견되는 중형 헬기이지만, 훨씬 더 대형의 기체로 내부에 최대 24명이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 헬기를 VIP용으로 개조, 내부에 고급 좌석과 회의용 테이블, 위성통신시스템 등 다른 나라의 대형 VIP 헬기 못지않은 설비를 탑재해 대통령 전용 헬기로 운용하고 있었다. 푸틴은 이 헬기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고, 지방 시찰 시 종종 이 헬기를 이용했는데, 헬기 이용 횟수가 점차 많아지면서 지난 2013년에는 비좁은 크렘린궁 안에 아예 헬기장을 따로 만들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헬기 이용 횟수가 잦아지면서 경호 및 의전을 담당하는 부서는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러시아는 체첸 등 소수 민족에 의한 독립운동으로 인해 치안이 불안한 상태였고, 최근 푸틴 대통령이 IS와의 전쟁을 선포함에 따라 국내의 체첸 반군과 IS의 연계 테러에 의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분실된 무기가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고, 퇴역 군인과 폭력조직에 의한 무기 암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으며, 전체 국경선 길이만 62,269km에 달해 국경을 통해 밀반입되는 불법 무기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나라이다. 즉, 푸틴이 타고 있는 대통령 전용 헬기가 러시아 영공을 비행하는 중이라도 언제 어디서든 지대공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에서 푸틴을 암살하기 위해 전용 헬기를 공격할 세력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푸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90%에 육박할 정도로 절대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측의 러시아 경제 제재가 장기화되어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던 고유가 상황도 무너지면서 푸틴의 리더십과 지지율은 오로지 선전전에만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황까지 악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초 유력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Boris Nemtsov) 피살 사건으로 인한 러시아 내 반 푸틴 세력의 결집, 크림반도 무력 침탈로 인한 우크라이나와의 긴장 고조, 시리아 내 IS 공격으로 인한 이슬람 세력과의 충돌과 러시아 내 무슬림 세력의 동요 등 불안 요소가 하나 둘씩 고개를 들고 있다. 푸틴의 ‘공격형 VIP 헬기’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Mi-35MS VIP 전용 헬기는 그 태생이 강력한 방호력을 가진 공격용 헬기인 만큼 푸틴과 경호당국이 우려하던 대부분의 위협으로부터 푸틴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헬기이고, 이제 푸틴은 러시아 영내 어디라도 이 헬기를 타고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반대파와 정적, 그리고 주변 국가들을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장기 철권통치를 이어가면서 적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값비싼 전용 헬기는 애초부터 만들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전세계 정체불명의 미스터리한 소리들 TOP 10

    전세계 정체불명의 미스터리한 소리들 TOP 10

    전세계 정체불명의 미스터리한 소리들에 관한 톱 10 영상이 유튜브상에서 화제다. 4일(현지시간) 영국판 허핑턴포스트는 유튜브 채널 ‘올타임 10s’(Alltime10s)가 제작한 ‘설명되지 않는 10가지 미스터리한 소리들’(10 Mysterious Unexplained Sounds) 영상을 기사와 함께 소개했다. 영상에는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풀지 못한 러시아의 비밀 신호, 멤논 조각상의 이상한 소리, 바다의 낮은 소리, 외계에서 온 와우 시그널 등 정체불명의 미스터리한 소리 10가지가 순위별로 담겨 있다. 10위 러시아 비밀 신호 4625Mhz에서 잡히는 이상한 신호. 처음 모스크바 근처의 한 방송국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으나,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쪽으로 옮겨감. 러시아 군대가 쓰는 비밀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 9위 멤논 조각상 나일강 서쪽에 있는 테베 공동 묘지의 거대한 석상인 멤논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 새벽이면 나는 이 이상한 소리는 서기 27년 석상이 무너진 이래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 현악기 줄이 끊어질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이 소리에 대해 과학자들은 석상의 갈라진 깊은 틈 속에서 이슬이 증발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8위 퀘이커(오리) 북극권 깊은 곳 바닷속에서 나는 기묘한 잡음. 냉전시대 소련 잠수함에 의해 관측된 적이 있으며 개구리 울음 소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7위 낮은 소리 1997년 굉장히 낮은 소리지만 아주 강력한 주파수가 몇 달 동안 관측됨. 과학자들은 소리의 근원이 남미에 가까운 태평양 어디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소리의 근원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6위 가장 외로운 고래 ‘52헤르츠 고래’라고도 알려진 높고 짧은 음을 내는 고래는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 과학자들은 이 고래가 돌연변이이거나 기형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같은 주파수대로 소통하는 고래들과 달리 이 고래는 다른 개체들과 소통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 불린다. 5위 슬로우다운 미국 해양국이 발견한 태평양 적도 부근 깊은 곳에서 나는 소리로 약 7분 동안 났으며 그 주파수가 점점 낮아져 ‘슬로우다운’이란 이름이 붙은 정체불명의 소리. 4위 타오스 험 뉴 멕시코의 타오스를 비롯 몇몇 장소에서 포착된 괴상한 낮은 주파수의 웅웅거리는 소리. 이 소리가 나는 곳에서 사는 사람 중 약 2%만 들을 수 있는 희한한 소리며 몸 밖이 아니라 몸 안에서 나는 소리로 느껴진다고 한다. 3위 업스윕 1991년에 처음 관측된 자동차 알람 같은 소리로 여러 주파수 사이를 오가며 점점 높아진다고 한다. 미국 과학자들이 관찰한 이 소리는 아주 커서 태평양 전역에서 관측될 정도며, 봄과 가을에 최고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위 스카이퀘이크 폭발음과 비슷한 이 소리는 여러 해변에서 흔히 관측된다. 현재까지 과학자들은 이 소리의 원인을 찾고 있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이는 해저 동굴이 무너지는 소리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위 와우 시그널 와우 신호(Wow! signal)은 외계 지적생명탐사인 SETI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도중에 발견된 신호로 1977년 8월 15일 밤에 포착됐다. 72초간 수신된 이 특이한 소리에 대해 사람들은 외계인이 지구와 접촉을 시도하기 위해 보낸 신호라고 주장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직도 이 소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 찾지 못하고 있다. 사진·영상= Alltime10s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KAL 식별 어려웠다 vs 아니다… ‘냉전시대’ 소련·미국 논쟁

    미국과 소련은 1983년 9월 1일 발생한 소련군의 KAL기 격추 사건과 관련해 당시 서로 상반된 주장을 내놨다. 사건 여드레 뒤인 9일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소련군 참모총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KAL기 격추 사건의 불가피성을 주장하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국 방송연설에서 이를 반박했다. 냉전시기 미·소의 상반된 주장을 쟁점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KAL기·미 정찰기 랑데부 소련 측은 KAL기가 미 정찰기(RC135) 한 대와 랑데부, 10분간 함께 비행했으며 고의적으로 자국 영공을 침범했고 소련 요격기를 무시한 채 달아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측은 KAL기가 통상 임무를 행하던 미 정찰기 한 대와 근접 거리에서 ‘잠깐 동안’만 비행하다가 곧 떨어졌으며, 미 정찰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경고 발사 소련 측은 자국 요격기가 KAL기와 접촉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경고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소련 조종사들이 무선을 통해 KAL기와 접촉을 시도한 뒤 120차례나 경고 발사를 가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측은 조종사들이 위급한 상황에 직면할 경우 다른 나라 비행기들과 교신이 가능한 ‘국제무선파장’이라는 보호수단이 있다며, 소련 전투기들은 조종사의 망명을 우려해 이 같은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소련 조종사와 지상관제소 간의 대화기록으로 봐서 KAL기에 운항등이 켜져 있었으며 KAL기에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육안 식별 소련 측은 어둠 탓에 KAL기의 모습을 식별하기가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측은 사고 당시 밤 날씨는 쾌청했으며 하현달이 비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조종사가 KAL기에 근접해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美 ‘소련 KAL기 격추’ 진상 알고 있었다

    美 ‘소련 KAL기 격추’ 진상 알고 있었다

    1983년 9월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격추한 사건의 진상을 미국이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미국은 그동안 “소련이 민간기인 줄 알면서도 공격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사건 발생 2개월여 뒤 미국 정부 고위 관리가 일본 정부 당국자를 만나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소련 영공에서 공해상으로 막 나가려던 참에 격추했다’고 말한 기록이 공개됐다고 24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 같은 기록은 이날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외교 문서에서 확인됐다. 1983년 11월 14일자로 작성된 이 ‘극비’ 메모에선 ‘소련 측이 미국 정찰기 항적에 약 15분 후에 들어온 대한항공기를 미군기로 오인했다’는 미 정부 고위 관료의 발언이 담겨 있다. 이 관료는 ‘소련의 레이더 3대 중 1대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소련 측이 오인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 ‘미사일이 2발 발사됐고 대한항공기가 11분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급하강하다가 추락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문서에 기재돼 있다. 공개된 외교 문서와 관련해 다수의 일본 언론은 미국이 조기에 일본과 상세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아사히신문은 당시 미국이 이런 오인 격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도 ‘민간기인 것을 알고도 공격했다’며 소련을 비난했다고 전했다. 이는 미·소가 대립하던 냉전 시기에 미국이 대외적으로 정보 조작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고 덧붙였다. 메모가 작성될 당시 일본 외무성 인사과장이었으며 나중에 최고재판소(대법원) 판사를 지낸 후쿠다 히로시(80)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내가 남긴 기록”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상당한 고위 관료에게서 들은 내용이지만 상대가 누군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정부도 소련이 민간기를 의도적으로 노렸다는 견해를 취했으나 이에 관해 후쿠다는 “민간기라는 사실을 알고서 격추할 정도로 소련이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대한항공기는 항법 실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정찰기로 오인됐다’는 재조사 결과를 사고 발생 10년 뒤인 1993년에야 공표했다.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여객기는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사할린 서쪽 해상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 29명과 승객 240명 등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1983년 KAL 피격은 소련의 오인 격추”

    1983년 9월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격추한 사건의 대략적인 진상을 미국이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언론은 사건 발생 2개월여 뒤 미국 정부 고관이 일본 정부 당국자를 만나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소련 영공에서 공해상으로 막 나가려던 참에 격추했다’고 말한 기록이 공개됐다고 24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런 기록은 이날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외교 문서에서 확인됐다. 보도에 따르면 1983년 11월 14일자로 작성돼 ‘극비’로 분류된 메모는 ‘소련 측은 미국 정찰기 항적에 약 15분 후에 들어온 대한항공기를 미국기로 오인했다’는 미 정부 고위 관료의 발언을 담고 있다. 이 관료는 ‘소련의 레이더 3대 중 1대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소련 측이 오인한 이유를 설명했으며 ‘미사일이 2발 발사됐고 대한항공기가 11분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급하강하다가 추락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문서에 기재돼 있다. 공개된 외교 문서와 관련해 다수의 일본 언론은 미국이 조기에 일본에 상세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아사히 신문은 당시 미국이 이런 오인 격추 사실을 파악하고도 ‘민간기인 것을 알고도 공격했다’며 소련을 비난했다고 전했다. 이는 미·소가 대립하던 냉전시기에 미국이 대외적으로 정보 조작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메모가 작성될 당시 일본 외무성 인사과장이었으며 나중에 최고재판소(대법원) 판사를 지낸 후쿠다 히로시80)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나의 기록이다. 미국 정부의 상당한 고관에게서 들은 내용이지만 상대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정부도 소련이 민간기를 의도적으로 노렸다는 견해를 취했으나 이에 관해 후쿠다는 “민간기라고 알고서 격추할 정도로 소련이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회고했다.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여객기는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사할린 서쪽 해상에 추락해 승무원 29명과 승객 240명 등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1983년 KAL 피격 미국, 일본에 “소련 오인 격추” 알려

    1983년 9월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격추한 사건의 대략적인 진상을 미국이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언론은 사건 발생 2개월여 뒤 미국 정부 고관이 일본 정부 당국자를 만나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소련 영공에서 공해상으로 막 나가려던 참에 격추했다’고 말한 기록이 공개됐다고 24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런 기록은 이날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외교 문서에서 확인됐다. 보도에 따르면 1983년 11월 14일자로 작성돼 ‘극비’로 분류된 메모는 ‘소련 측은 미국 정찰기 항적에 약 15분 후에 들어온 대한항공기를 미국기로 오인했다’는 미 정부 고위 관료의 발언을 담고 있다. 이 관료는 ‘소련의 레이더 3대 중 1대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소련 측이 오인한 이유를 설명했으며 ‘미사일이 2발 발사됐고 대한항공기가 11분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급하강하다가 추락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문서에 기재돼 있다. 공개된 외교 문서와 관련해 다수의 일본 언론은 미국이 조기에 일본에 상세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아사히 신문은 당시 미국이 이런 오인 격추 사실을 파악하고도 ‘민간기인 것을 알고도 공격했다’며 소련을 비난했다고 전했다. 이는 미·소가 대립하던 냉전시기에 미국이 대외적으로 정보 조작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메모가 작성될 당시 일본 외무성 인사과장이었으며 나중에 최고재판소(대법원) 판사를 지낸 후쿠다 히로시80)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나의 기록이다. 미국 정부의 상당한 고관에게서 들은 내용이지만 상대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정부도 소련이 민간기를 의도적으로 노렸다는 견해를 취했으나 이에 관해 후쿠다는 “민간기라고 알고서 격추할 정도로 소련이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회고했다.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여객기는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사할린 서쪽 해상에 추락해 승무원 29명과 승객 240명 등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자의적 금리 결정 명백한 실수” vs “수학 공식 따라 결정땐 재앙”

    [글로벌 인사이트] “자의적 금리 결정 명백한 실수” vs “수학 공식 따라 결정땐 재앙”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 결정은 마치 소련 정치국의 소수 지도부가 빵의 가격을 결정하던 것과 같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랜드 폴 상원의원은 연준이 9년여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한 지난 16일(현지시간) 연준이 계획경제체제의 소련처럼 자의적으로 금리를 결정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폴 의원은 이날 연준의 금리 결정 방식을 소련의 빵값 결정 방식에 비유하면서 “소련은 결국 빵의 가격 결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붕괴됐다”며 “정부가 임금과 물가를 통제하는 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연준에 돈의 가격(금리)을 결정하는 권한을 거리낌 없이 부여했다”고 강조했다.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준에 대해 정치적이며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탄생 102년을 맞은 연준은 그 자체가 ‘달러 가치’라고 할 정도로 신용받는 기관이다. 연준에 대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의 이런 비판은 연준의 독립성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보수적이고 자유지상주의적인 정치인과 경제학자들은 2008년 이전에 연준이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 많은 사람이 빚을 내며 부동산을 매수했고,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융위기를 맞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금융위기 사태 이후 연준이 경기 부양을 위해 과도하게 돈을 찍어내는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2011년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재선시키기 위해 경제 거품을 조장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기로 결정한 지난 10월 도널드 트럼프는 “재닛 옐런 의장이 금리 인상을 미룬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연준에 대한 미국 보수파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지난달 19일 공화당은 의회의 연준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연준 감독 개혁과 현대화 법안’(FORM Act)으로 명명된 이 법안은 연준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회계감사, 정책감독의 강화를 골자로 한다. 법안은 기존에 연준 회계감사를 독립 기관인 연준 감찰국(OIG)이 진행하던 것을 의회 소속의 회계감사원(GAO)이 진행하도록 했다. 또 회계감사원이 연준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정책 결정 및 집행도 감독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연준의 금리 결정 권한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법안은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고용 등의 경제 지수를 변수로 한 ‘수학 공식’을 만들어 이 공식에 따라 금리를 결정하도록 했다. 연준의 금리 결정이 이 공식에서 벗어날 경우 연준 의장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공식을 따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이 밖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도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을 구제하는 데 활용됐던 연준의 긴급자금 지원 권한도 엄격히 제한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옐런 의장은 이 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옐런 의장은 “이 법안은 통화정책 결정자들을 방해하고 FOMC의 독립성을 파괴하는 재앙”이라면서 “특히 법안에 규정된 ‘수학 공식’과 같은 단순한 규칙에 따라 금리가 결정됐다면 실업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고 물가상승률은 목표치인 2%에 비해 턱없이 낮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연준의 금리 결정이 단순한 수학 공식에 의해 결정되거나 의회의 입김에 크게 흔들릴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전문 온라인매체 더스트리트는 “경제 상황과 조건은 매우 복잡하다”면서 “정책 결정에서 고려할 변수와 목표를 미리 결정해 단순화한다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들을 빠뜨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할 스콧 하버드대 법학 교수는 “의회의 통제를 강화하고 연준의 권한을 제한한다면 2008년과 같이 긴급한 금융위기가 닥쳤을 경우 연준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준이 독립성은 보장받아야 하지만 투명성 또한 확보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크 레본트 미 의회 거시경제정책 전문위원은 이달 의회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에서 “연준에 대한 감독과 연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한 공개는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감독을 강화할 경우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 “경제학자 대다수는 연준이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될 때 더 나은 정책을 생산한다고 결론 내린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연준의 정책 결정 과정 등 내부 정보에 대한 투명한 공개는 의회와 국민이 연준의 결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면서 “투명성의 강화는 연준이 특정 정파와 기업을 부적절하게 도와준다는 정실주의 논란을 불식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나치 황금열차는 ‘헛꿈’이었다

    나치 황금열차는 ‘헛꿈’이었다

    “그곳에는 빈 터널만 있을 뿐이다. 어떤 데이터도 기차가 지하에 묻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다.” 15일(현지시간) 폴란드 남서부 탄광도시 바우브지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야누시 마데이 크라쿠프대 교수는 ‘황금열차’의 존재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자기장 분석기와 적열 카메라를 통해 지난 한 달간 조사한 자료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 지역에서 70년간 회자돼 온 황금열차의 전설을 일축했다. 앞서 수천억원의 보물이 묻혀 있을 것이라 주장했던 아마추어 탐사가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은 이날 1945년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숨겨놓은 것으로 알려진 황금열차에 대한 기대감이 산산조각 났다고 보도했다. 바우브지흐시의 주도 아래 지난달부터 탄광 전문가, 지질학자, 기술자 등이 팀을 이뤄 35㎞ 구간에서 이뤄진 탐사 결과, 보물을 가득 실은 열차가 지하 갱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황금열차는 지난 8월 이후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왔다. BBC 등 주요 언론들이 황금열차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폴란드인과 독일인이 바우브지흐의 한 로펌을 통해 발견된 황금의 10%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부터다. 폴란드 법에선 유실물 발견자는 10%의 소유권을 갖는다. 바우브지흐 주민이자 아마추어 탐사가인 이들은 폴란드 남서부 체코 접경 지역인 브로츠와프의 산간지역 터널에서 사라졌다는 황금열차와 관련된 증거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열차의 길이가 92m, 높이가 8m이며 넓이가 5~6m에 이른다는 주장까지 곁들였다. 현지 언론들도 “이번에 발견된 것은 황금열차가 맞다”거나 “금 300t이 실려 있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바우브지흐시는 즉시 변호사, 군대, 경찰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리고 전문가들에게 매장된 열차의 발굴을 의뢰했다. 군사보호지역인 매장 추정지도 곧바로 일반에 개방됐다. 이 지역에선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독일이 1945년 소련군의 폴란드 침공과 더불어 황금과 보석, 무기를 가득 실은 황금열차를 바우브지흐에서 독일로 출발시켰다가 열차가 인근 브로츠와프에서 행방을 감췄다는 이야기가 줄곧 전해져 내려왔다. 전문가들의 부인에도 애초 황금열차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탐사가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피오트르 코퍼는 “지하에 매장된 전선이 조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며 “지역민들로부터 그곳에 열차가 묻혀 있다는 증언을 직접 확보했고 자체 탐사기로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가디언은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황금열차에 얽힌 전설을 놓고 당분간 여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프로파간다 파워(데이비드 웰치 지음, 이종현 옮김, 공존 펴냄) 선전은 ‘정보 전달’이나 ‘교육’과는 다른 정치적 행위다. 프로파간다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굳어진 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선전이 전쟁의 조직적인 공략 수단으로 대규모로 이용되면서 대중은 선전의 목적과 방법을 의심하게 됐고, 거짓말, 속임수, 세뇌와 같은 단어와 동의어가 됐다. 저자는 선전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쳐 초고속 정보통신 사회관계망이 특징인 21세기까지도 더 정교해지고 효과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역사상 가장 유능한 프로파간다 전술가로 꼽히는 나폴레옹은 “1000명의 적군보다 3개의 적대적 신문이 더 무섭다”며 1801년 프랑스 신문 73개 중 64개를 폐간했다. 북한 김일성 주석도 절대적 지도자 숭배라는 프로파간다로 새로운 왕조를 건설했다. 255쪽. 3만원. 역사 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이야기(박지욱 지음, 시공사 펴냄) ‘진료실의 고고학자’로 자평하는 저자는 의학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저자는 뇌졸중이 스탈린을 쓰러뜨리지 않았다면 6·25전쟁은 훨씬 더 길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근대에 만연했던 결핵은 낭만주의 작가들의 염세적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다. 책에서는 한국의 비극적 운명이 결정된 회담으로 유명한 1945년 2월 얄타회담에 대한 의학적 진단도 내리고 있다. 얄타회담의 거두인 영국 처칠 총리는 심한 건망증을 앓았고, 소련 스탈린은 과도한 의심증을, 그들에 비해 젊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심각한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 이들 셋은 공교롭게도 모두 뇌졸중으로 숨졌다. 뇌기능이 완벽하지 못했거나 이상으로 인해 판단력이 약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328쪽. 1만 3000원. 플레이(김재훈·신기주 지음, 민음사 펴냄) 작은 벤처에서 시작한 게임 회사 넥슨은 어떻게 글로벌 공룡이 됐을까. ‘바람의 나라’,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 우리나라 게임 역사를 새로 쓴 기업이 넥슨이지만 회장도 없고, 비서도 없고, 직함도 없는 독특한 기업 문화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넥슨 창업주이자 은둔의 경영자로 꼽히는 김정주와 그의 친구인 송재경의 만남부터 시작한다. 21년 된 청춘 기업 넥슨의 역사는 한 편의 게임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어제의 친구가 넥슨을 떠나 강력한 라이벌이 되고, 경쟁자가 회사의 기둥이 된다. 넥슨과 관련된 수십명의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이 교본서로 삼을 만하다. 글과 카툰으로 구성됐다. 376쪽. 2만원. 멸종하거나 진화하거나(로딘 던바 지음, 김학영 옮김, 반니 펴냄) 인간의 진화를 다룬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인간은 대형 유인원 과에 속한다. 현존하는 대형 유인원은 약 2만년 전 번성했던 유인원 종의 후손이다. 기후 변화로 숲이 사라지면서 수십종이 멸종하고, 영장류가 사라진 무대는 원숭이가 재빠르게 차지했다. 인간이 인류로 진화한 데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종교와 스토리텔링이라는 문화적 행위가 자리잡고 있다.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뇌 크기가 비약적으로 커졌고, 현재와 같은 골격 구조가 만들어지는 등 다섯 단계의 전환점을 거쳤다. 이 책은 뇌의 절대적 부피와 사회적 관계망 크기가 관련돼 있고, 뇌에 필요한 에너지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시간과 예산을 효과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진단한다. 416쪽. 1만 9000원. 정의:세상이 정의로워지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최진기 지음, 휴먼큐브 펴냄)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문학 강사인 최진기가 쉽고 재미있게 정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책을 펴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대변되는 공리주의 개념부터 칸트의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을 통한 절대 선에 대한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설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책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작이 된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해설서 격이다. 샌델의 정의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의를 제시한다. 184쪽. 1만 2000원.
  • 국가 안보 뒤흔드는 무기 브로커의 세계

    국가 안보 뒤흔드는 무기 브로커의 세계

    타인 간의 상행위 매개를 업으로 하는 사람. 줄여서 중개상인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브로커’(Broker). 국내에서는 특정 단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로비스트’와 혼용되기도 하는 브로커는 비리나 도박 등 주로 범죄와 관련된 내용에 붙어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특히 브로커가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범죄 분야는 현재 정부가 대대적인 소탕에 나선 방위산업 영역이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올 연말로 수사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할 예정인 상황에서 국가 안보를 위협했던 무기 브로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방위사업 수사는 무기 브로커와의 전쟁” 지난해 11월 범정부 합동수사단 출범이 공식화한 직후 검찰과 합수단은 언론에 “방위산업이 아닙니다. 방위사업 수사단입니다”라며 수사단 명칭을 정확히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합수단 명칭이 ‘방산비리 합수단’과 ‘방사비리 합수단’으로 언론사마다 다르게 보도되는 것을 하나로 바로잡은 것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방위산업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요한 산업 분야로 ‘방산비리 합수단’으로 보도가 반복되면 국민에게 방산 분야 전체가 비리로 얼룩졌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고 수사팀도 방위산업 전반이 아닌 육·해·공군 특정 개별 사업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방위사업 합수단’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수단의 이런 설명은 군 고위 장교와 국내외 방산업체 그리고 이들을 연결해 주는 무기 중개상이 개입하는 방위사업의 특성상 앞으로 수사의 방향이 방위사업별로 포진한 무기 브로커 비리 적발 및 처벌에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됐다. 수천억~수조원대의 대형 사업을 주무르는 무기 브로커를 적발하면 이들과 결탁한 군 수뇌부와 방산업체까지 함께 도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합수단 관계자는 “방위사업 수사는 사실상 무기 브로커와의 전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1년 동안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 실제 국내 거물급 무기 중개상들의 이름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이규태(66) 일광공영 회장과 정의승(76) 유비엠텍 회장, 함태헌(59) 셀렉트론코리아 대표 등이 피의자 신분으로 합수단에 소환됐다. 특히 과거 대형 방위사업 비리인 율곡비리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정 회장과 불곰사업 비리로 처벌된 이 회장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면서 쉽사리 뿌리가 뽑히지 않는 방위사업 비리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불곰’ 이규태 가장 먼저 혐의 드러나 범죄 혐의가 가장 먼저 드러난 거물급 무기 브로커는 ‘불곰’ 이 회장이었다. 경찰공무원이었던 이 회장은 1985년 돌연 제복을 벗고 무기중개업에 뛰어들었다. 그해 11월 일광공영을 설립한 뒤 30여년간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 일광그룹으로 키웠다. 그는 2000~06년 옛 소련에 제공한 경협 차관의 원리금 일부를 러시아 무기로 상환받는 ‘2차 불곰 사업’에서 러시아 군수업체 측 중개상으로 활동하며 휴대용 대전차유도미사일과 공기부양정 등을 군에 납품했다. 당시 이 회장이 중개한 무기의 총금액은 3억 1000만 달러(약 3650억원) 규모였다. ‘불곰의 이규태’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배임·횡령 범죄가 드러나면서 2012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사법처리된 뒤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거느린 사업가로,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을 둔 교육자로, 노인·아동 대상 복지사업을 하는 복지가로 승승장구했지만 과거 범죄 혐의가 합수단에 포착되면서 지난 3월 구속 기소됐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터키 하벨산사의 전자전훈련장비(EWTS) 도입 사업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예비역 공군 준장 출신 등과 공모해 1101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받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회장이 경기 의정부 도봉산 컨테이너 야적장에 숨긴 군사기밀 등 방위사업 관련 자료가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그에게 기밀을 빼돌린 국군기무사령부 군무원 등 군 관계자도 재판에 넘겨졌다. ●정의승, 율곡비리 이어 잠수함 비리도 연루 1993년 군 전투력 증강을 목표로 진행된 대규모 방위사업인 율곡사업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됐던 정 회장은 무기 브로커 중에서도 ‘범털’로 통한다. 그는 1977년 해군 중령을 끝으로 전역해 무기중개상으로 변신했지만 장성급 등 전·현직 군 간부를 통해 지금도 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정 회장은 해군 장교 시절부터 탁월한 영어 실력과 사교력으로 국내외 방위산업체의 영입 대상으로 떠올랐다. 예편 직후 독일 방산업체 엠테우(MTU) 한국지사장으로 무기중개업을 시작해 사업 영역을 넓혀 왔으나 율곡사업에서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3억원의 뇌물을 건넨 것으로 드러나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이후 보석으로 풀려난 뒤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율곡비리 이후 언론에서 모습을 감췄던 정 회장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합수단이 수사에 착수한 3조 7000억원대 규모의 해군 잠수함 도입 사업인 ‘장보고Ⅰ,Ⅱ 사업’ 비리에 연루되면서다. 합수단은 정 회장이 이 사업을 통해 외국 방산업체로부터 받은 1000억원대 중개수수료를 홍콩 등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계좌에 숨겼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만 법원은 “정 회장이 관련 해외계좌 내역 등을 스스로 제출하는 등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 7월 영장을 기각했다. 합수단은 또 5890억원대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 도입 사업에서 이를 중개한 셀렉트론코리아의 함 대표가 최윤희 전 합참의장 등을 상대로 금품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하고 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두 차례나 기각되면서 수사가 가로막힌 상황이다. ●靑경호실장부터 ‘미녀 브로커’ 린다 김까지 일반 국민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대형 방위사업비리는 1980년대 ‘노스롭 스캔들’이다. 당시 군에 F20 전투기 판매를 추진했던 미국 노스롭사는 한국 정부와의 계약 체결을 위해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박종규씨에게 수천억원의 뇌물을 주고 박씨를 무기 브로커로 고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정부 최고위층과 노스롭 임원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전방위 로비를 벌였지만 전투기 시험비행 중 추락사고가 발생하면서 도입 계약도 무산됐다. 첩보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미녀 브로커’가 정부 고위직을 상대로 스파이 노릇을 한 ‘린다 김’ 사건은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재미 무기 브로커 린다 김(62·한국명 김귀옥)은 1995년 정부가 추진한 2200억원 규모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백두·금강 사업)에서 미국 방산업체를 위해 이양호 당시 국방부 장관과 전직 국회의원 등에게 접근했다. 이 전 장관이 린다 김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하는 린다에게. 편지 잘 받았어요. 중략 편지 말미에 린다의 결론, ‘당신을 사랑해요’가 모든 것을 감싸고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린다 김을 고용한 미국 방산업체는 사업 응찰업체 중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도 최종 사업자로 낙점됐다. 하지만 이후 린다 김은 군사기밀을 빼돌리고 사업총괄팀장에게 1000만원을 준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이 전 장관은 경전투 헬기 사업에서 뇌물 1억 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씨줄날줄] 비셰그라드식 체제 전환의 교훈/구본영 논설고문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의 앞 구절이다. 이국의 황량한 공간을 배경으로 가을의 쓸쓸함을 잘 형상화했다는 명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인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란 역사적 비극이 일제의 폭정으로 고달팠을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을 법하다. 중유럽의 체코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체코·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 등 4개국 정상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른바 비셰그라드 국가(V4) 정상들을 한꺼번에 만난 것이다. 비셰그라드 그룹은 중유럽 4개국 지역 협력체다. 옛소련이 해체되면서 그 위성국의 처지에서 벗어난, 뼈아픈 과거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헝가리의 비셰그라드에서 결성했다. V4는 역사적으로 주변 ‘공룡국’에 번갈아 유린당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김광균 시인이 읊은 것처럼 폴란드 도룬시가 독일 나치정권의 포화로 이지러졌듯이…. 폴란드가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 등 강국의 등쌀에 시달렸던 것처럼 체코와 헝가리도 마찬가지였다. 동서 냉전기에 체코인들은 둡체크 주도로 민주화 운동을 벌였으나 소련군이 탱크로 진압하면서 1988년 ‘프라하의 봄’ 때까지 긴 겨울을 보내야 했다. 냉전 시절 먼 나라였던 V4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느낌이다. 한·V4 정상회담을 계기로 50조원대에 이르는 중유럽 신규 인프라 시장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됐다니 반갑다. 슬로바키아 신규 원전이나 헝가리 지하철 보수 사업에 뛰어들 기업들엔 발판이 마련됐다면 말이다. 하지만 더 반겨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과거 북한과 사회주의 블록에 속했던 V4가 북핵 포기를 합창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이 비셰그라드 그룹 4개국의 성공적인 체제 전환을 언급한 대목이 주목된다. 한·V4 정상회담 직후 공동회견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과정, 통일 이후 통합 과정에도 의미 있는 교훈과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소 뜬금없이 들릴 것을 감안한 것일까.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은 “비셰그라드 정상들이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갈 때 겪은 어려움과 실책들이 (한국에) 참고가 될 것이고, 아낌없이 자신들의 경험을 우리와 나누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부연 설명했다. 당연히 일리가 있다. 옛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도미노 붕괴’를 거친 뒤 요즘 V4 국가들이 괄목할 만하게 도약 중인 배경이 뭔가.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복수 정당제와 자유선거 등 민주화에도 연착륙하면서 진정한 체제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쪽인 북한이 외려 교훈을 얻어야 할 듯싶다. 이제라도 시대착오적 유일체제와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선진국 역사교육 갈등은 어땠나

    선진국 역사교육 갈등은 어땠나

    세계의 역사교육 논쟁/린다 심콕스·애리 윌셔트 엮음/이길상·최정희 옮김/푸른역사/540쪽/3만 5000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명제는 엄정한 현실의 단면이면서 한편으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자연환경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생존의 방법과 기쁨, 혹은 한정된 먹을거리 등을 놓고 거둔 승리의 전과를 자랑스럽게 글로 남겼다. 현대 사회에서도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다른 이들에게 이식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저항은 필연이었다.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명제, 즉 역사교육은 정치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미국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89년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속에서 교육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가 역사 표준’을 설계하고 기금을 모았다. 하지만 국가 역사 표준 연구팀은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초강대국 미국의 영광스러움에 대한 찬사나 애국주의가 아닌, 여성과 소수자, 빈곤계층 등 문화적 다양성, 세계시민성의 역사에 표준안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화당이 다시 한 번 뒤집기를 시도해 국가 역사 표준을 무력화시켰다. 영국에서도 1988년 대처 정부가 많은 논란 속에서 영국의 역사를 크게 부각시킨 ‘국가중심 교육과정’을 도입했다. 네덜란드는 2006년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날짜로 구성된 ‘국가적 정전’을 만들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서구의 역사학자, 교육학자 등은 2006년 10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모여 원탁토론회를 가졌고 그 논의의 결과물을 이 책으로 정리했다. 주제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였다. 어떤 학자들은 ‘역사가 공민적 가치와 바람직한 시민정신을 배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학자는 ‘시민교육의 도구가 아니라 역사적 의식을 배양하고 학생들에게 풍부한 탐구 방법을 소개하는 지적 탐구 분야로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역사 교육의 방법론과 실험적인 제안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한결같이 모아지는 부분은 분명했다. 국가주의건, 민족주의건, 지역주의건, 세계주의건 특정한 표준이나 규범을 지향하는 것은 역사학의 본질과 충돌한다는 사실이다. 키스 바턴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는 자기 나라의 역사를 긍정적인 용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불가피하게 주요한 내용의 삭제와 왜곡을 수반한다고 지적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파문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2015년 세밑 한국 사회에 울림이 더욱 크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통합과 화합의 지름길, 관용/강동형 논설위원

    [서울광장] 통합과 화합의 지름길, 관용/강동형 논설위원

    통합과 화합이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그만큼 정치권과 사회가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다. 많은 정치지도자가 통합과 화합을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과 화합을 위해서는 갈등부터 치료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 분야는 이념 갈등, 지역 갈등, 세대·계층 간 갈등, 노사 갈등 등을 꼽을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에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종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처럼 민족 갈등도 없다. 지역 갈등은 있지만 분리독립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여러 나라에서 겪고 있는 종교 갈등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세상에서 유일한 갈등이 내재해 있다. 남북 분단에서 파생하는 갈등이다. 동·서독이 통일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시대가 종언을 고했지만 우리 사회는 냉전시대의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있다. 분단 상황은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이해집단을 적대적 진영으로 갈라 놓는다. 분단이 가져온 우리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진영의 논리에 빠져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진영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두 진영을 바라보는 ‘경계인’은 설 자리가 없다. 2차 민중 총궐기대회를 놓고도 경찰과 민주노총은 상대를 향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분열과 갈등을 줄일 수 없다. 정부에서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분열과 갈등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12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를 설립했다. 그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차례로 서거했고,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넘치는 사회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해법도 비교적 정확하다. ‘사회통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홍보물에서 정책으로서 사회통합, 시스템으로서 사회통합, 문화로서 사회통합을 제시하고 있다. 정책으로서 사회통합은 일자리 창출과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사회안전망 확대 등이다. 시스템으로서 사회통합은 정부와 시민단체, 민간 전문가를 시스템적으로 연결, 갈등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문화로서의 사회통합은 폭력이 아닌 대화 민주주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도 2013년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회의 설립 취지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의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측면에서 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의 악순환은 거듭되고 있다.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갈등 해소의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존 허쉬가 들려주는 의사결정이론 이야기’라는 책에도 나와 있다. 이 책은 ‘죄수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게임이론을 설명한다. 게임이론의 전제는 주고받는 것이다. 좀 험한 표현으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잘 이뤄진 게임은 상대가 한쪽 뺨을 때리면 맞은 사람도 한쪽 뺨만 때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두 뺨을 때리는 데 익숙하다. 이는 상생 게임이 아니라 죽고 죽이는 전쟁이다. 게임 이론가들은 게임에서 상생하려면 틱포탯(tic for tat) 전략을 구사할 것을 조언한다. 이는 실험으로 검증됐다. 틱포탯 전략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먼저 상대에게 협력해야 한다. 두 번째는 상대가 배신하면 보복한다. 그러나 보복을 하더라도 상대가 때린 것보다 약하게 때리고, 시간이 지나면 용서해야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나 단체는 처음에는 이익을 챙길 수 있으나 결국에는 손해다. 게임 이론에서 중요한 변수는 관용이다. 우리의 정치 문화는 되로 받으면 말로 주는 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게임이론에서는 주고받는 것이 불공평하거나, 상대가 배신하면 양측 모두 손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결국 여야 정치권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틱포탯 전략은 남북 관계, 여야 관계 등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그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은 그런 경우에 속한다. 정치권은 이제 싸울 만큼 싸웠다. 정치권은 관용 없이는 통합과 화합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앞장서 통합과 화합이라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yunbin@seoul.co.kr
  • 50년 전 최초 달 착륙한 소련 ‘루나 9호’를 찾아라

    50년 전 최초 달 착륙한 소련 ‘루나 9호’를 찾아라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인 지난 1966년 2월 3일. 달의 ‘폭풍우의 대양’인 마리우스 라이너 서쪽(서경 64.4°, 북위 7.1°)에 탐사선 한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미국의 자존심을 긁은 이 무인탐사선의 이름은 구소련의 루나 9호(Луна-9). 루나 9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천체에 연착륙한 탐사선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은 물론 달표면을 자세히 찍은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다. 그러나 루나 9호는 착륙 사흘만에 연락이 끊기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등 국제연구팀이 여전히 착륙 지점에 놓여있을 루나 9호를 찾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관심을 끌고있다. 소련이 만들었으나 인류의 유산이기도 한 루나 9호는 넓이 0.6m, 100kg 무게를 가진 기체로, 작은 크기 때문에 착륙지점을 알아도 찾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위해 연구팀이 동원한 방법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달 정찰 궤도탐사선 LRO(Lunar Reconnaissance Orbiter)를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2009년 발사된 LRO는 달 표면의 상세한 관측을 목표로 제작된 극궤도 탐사위성으로 지금도 상세한 관측결과를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 연구에 나선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교 필립 스토케 교수는 "당시 우주선은 자체 로켓의 힘으로 서서히 달 표면으로 하강한 후 루나 9호를 떨어뜨렸다" 면서 "루나 9호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에어백 같은 덮개가 있었으며 착륙 지점에 떨어진 후 주위로 굴렀다" 고 설명했다. 이어 "로켓의 열 흔적이 달표면에 남아있어 착륙지점을 바탕으로 추적하면 루나 9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자신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독일 슈미트 전 총리, 함부르크에서 영면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의 장례식이 23일 함부르크 미헬 교회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수도 베를린이 아닌 함부르크에서 장례식이 거행된 것은 슈미트 전 총리의 유언 때문이었다. 고인은 2010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미헬 교회에서 영면에 들기를 생전에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참석자가 1800명에 달한 장례식에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옌스 슈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등 뿐 아니라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인사들이 참석했다. 고인이 총리를 지내던 1974~1982년 프랑스 대통령이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등이 슈미트 전 총리를 배웅했다. 한국에서는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참석했고, 이경수 주독일대사를 대신해 장시정 함부르크 총영사가 정부 대표로 조문했다.  메르켈 총리는 “어려운 과업에 맞닥뜨려서 옳다고 생각하면 정치적 결과가 따르더라도 최고의 희생을 각오한 채 책임을 다했던 권위있는 인물”이라고 고인을 회고한 뒤 “그의 타계는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리 테러를 거론한 메르켈 총리는 “동기는 다르지만 테러가 여전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다”며 테러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92세인 키신저 전 장관은 “양심 없는 정치는 범죄가 될 수 있다”던 고인의 전 총리 어록을 인용하며 독일어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완벽주의자이며 분위기 있고 끝없이 탐구하고 영감이 풍부하며 항상 신뢰할 수 있었던 특별한 친구”라고 슈미트 전 총리를 기억했다. 시민들도 추도글을 남기며 슈미트 전 총리를 기억했다.  독일 통일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슈미트 전 총리는 오일쇼크, 환율 위기 등 경제적 위기 뿐 아니라 적군파 테러, 구소련의 핵미사일 유럽향 배치 등 안보 위기 속에서 타협의 묘수를 이끌어내왔다. 유로화 체제의 초기 제안자이기도 하다. 총리직을 떠난 뒤엔 시사주간지 차이트의 공동발행인으로 변신, 현안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김영삼 전 대통령 연표

     ●김영삼 전 대통령 연표  -1927 경남 거제 출생  -1950 학도의용군 입대, 국방부 정훈국 대북방송 담당요원  -1951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철학과 졸업   손명순 여사와 결혼  -1952년 장택상 국무총리 인사담당비서관에 기용  -1954 만 26세 최연소로 제3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5·6·7·8·9·10·13·14대 국회의원(9선)  -1954 자유당 탈당  -1963 군정 연장 반대 데모로 서대문형무소 수감  -1965 야당 원내총무 5선  -1969 3선개헌 반대투쟁을 전개하다 초산테러 당함  -1972 유신 선포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 반유신투쟁 전개  -1974 신민당 총재로 선출  -1979 ‘YH사건’ 등으로 총재 직무정지 가처분   뉴욕탐임스 회견을 빌미로 국회의원직 제명  -1980 1차 가택연금  -1981 민주산악회 발족  -1982 2차 가택연금  -1983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투쟁  -1984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발족, 공동의장  -1985 신한민주당 창당, 2·12 총선에서 선거혁명  -1987 통일민주당 창당, 총재 취임 이후 6월항쟁 주도  -1987 제13대 대통령선거 출마해 낙선  -1989 한국 정치인 최초로 소련 방문  -1990 민주·민정·공화 3당 통합 선언, 민주자유당(민자당) 대표최고위원  -1992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  -1992 제14대 대통령에 당선  -1993 문민정부 출범  -1993~1998 금융실명제 도입,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군내 핵심 사조직 ‘하나회’ 해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1998 대통령 퇴임 이후 상도동 자택에 머물며 정치활동  -2013년 폐렴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커버스토리] 좌절된 ‘아랍의 봄’…IS 악마를 키웠다

    [커버스토리] 좌절된 ‘아랍의 봄’…IS 악마를 키웠다

    132명의 목숨을 앗아간 ‘11·13 파리 연쇄 테러’의 배후에는 이슬람국가(IS)가 자리한다.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를 자처하는 유럽 국적의 무슬림 젊은이들은 IS의 행동대원이 됐다. 국적과 종교를 묻고 가차없이 총격을 가했다. 몸에 두른 폭탄은 대량 살상을 불러왔다. 왜 이런 살상극이 벌어진 것일까. 이를 따져 보는 것은 IS에 대한 대응 못잖게 중요해졌다. 열심, 노력이란 뜻의 ‘지하드’(이슬람성전)는 이제 서구 기독교 국가에 이슬람 공포증을 유발한다. 애초 가치 중립적이었던 단어였지만 이젠 탈색됐다. 새롭게 도래한 갈등의 구도 속에서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예언했던 문명 간 충돌이 현실화한 것이다. ‘지하디스트’도 원래 단일한 이념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전사들은 아니었다. 파와즈 게르게스 런던 정경대 중동연구센터 소장은 “냉전이란 진영론이 쇠퇴하면서 적과 우군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 낸 악마 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자신의 책 ‘지하디스트의 여정’에서 “알카에다는 유기적 조직이 아니었을뿐더러 아랍인과 무슬림 주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나아가 지하디스트들을 자멸시킬 절호의 기회는 2011년 ‘아랍의 봄’이었다고 말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시민 혁명은 “폭력만이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알카에다의 주장을 퇴색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서방이 민주 혁명 이후 찾아온 힘의 공백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비주류 소수 조직에 불과했던 지하디스트들이 오히려 급격히 세력을 팽창시켰다. ‘지하드’ 원래 뜻은 노력… 이슬라모포비아 유발 ●하디스에 집착하는 급진주의자들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와 벤 알리 대통령이 2011년 실각한 리비아와 튀니지에서는 현재 ‘안사르 알샤리아’ 등 무장조직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알제리 작가인 알리 말렉은 “무슬림이 전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는 지하디스트들의 주장은 코란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토대가 되는 샤리아법도 코란의 일부 구절에만 근거를 둘 뿐이란 것이다. 실제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코란 대신 ‘하디스’라고 불리는 경전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후대에 기록한 책이다. 예컨대 코란에서 무함마드는 침략에 대항하는 방어적 지하드만을 용인했고, 미래에 대한 예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하디스에서 무함마드는 무슬림의 세계 정복이란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하디스는 무함마드 사후 옴미아드 왕조(661~750년) 시대에 처음 출현했다. 가디언,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1세대 지하디스트로 1970년대 이후 무장투쟁을 주도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과 1981년 이집트 대통령인 안와르 사다트의 암살을 주도했던 무장단체 ‘알지하드’ 등을 꼽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과 전쟁을 벌인 무자헤딘은 서방의 지원을 받아 힘을 키웠다. 9·11테러의 총책인 오사마 빈라덴도 무자헤딘의 지도자였다. 1996년 아프가니스탄에 둥지를 튼 빈라덴은 알카에다를 출범시키며 2세대 지하디스트들을 이끌었다. 1996년부터 빈라덴 수하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은 아부 잔달이 대표적인 2세대 지하디스트로 꼽힌다. 2000년 10월 예멘에서 50여명의 사상자를 낸 미 해군 구축함 콜호 폭파사건을 주도했다. 중동 문제 전문가들은 “소련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과격해진 극단주의자들은 지하드에 중독된 상태였다”고 해석했다. ●IS·보코하람, 알카에다 계승한 ‘쌍둥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소련의 아프간 침략과 비슷한 ‘학습효과’를 불러왔다. 빈라덴을 숨기고 비호하던 아프간의 탈레반 정부도 미국의 공격을 받고 실각했다. 이후 주변국에선 이슬람 급진세력이 활개를 쳤다. 최근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는 3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이합집산하며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힘을 불리고 있다. 이들은 결국 한 뿌리에서 비롯됐다. 중동의 IS와 아프리카의 보코하람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나이지리아에 근거한 보코하람은 최근 IS에 충성을 맹세하기 전까지 IS와 ‘쌍둥이’ 행보를 보였다. 수니파 계열의 반정부 단체로 서구 문명과 사상, 기독교 등에 뿌리 깊은 증오심을 품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알카에다를 계승한 탓이다. 두 조직은 각기 ‘이슬람 제국 건설’을 목표로 세력을 확장했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인질 살해 장면 등을 공개하며 다른 무장 단체들의 기를 꺾고 자신들의 사기를 진작한 것도 닮았다. 시공을 초월하는 지하디스트들의 공통점을 대변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외로운 늑대’들이 지하디스트가 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을지 모른다”면서 “국제사회가 혼신의 힘을 다해 아랍권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파리 테러 지시”… AQI합류 1년 만에 1인자로… 한 달여 행방 묘연

    “파리 테러 지시”… AQI합류 1년 만에 1인자로… 한 달여 행방 묘연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보이지 않는 지도자’로 불리는 알바그다디(44)의 목에는 무려 1000만 달러(약 117억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이라크 정보 당국이 프랑스 파리 테러의 배후로 그를 지목하면서 현상금은 갑절 이상 뛸 것으로 보인다. AFP는 이슬람국가(IS)란 조직의 정점에 자리하면서 그간 배후로 언급된 적 없던 알바그다디가 이번 테러를 계기로 전면에 등장했다고 전했다. 그가 널리 알려진 건 지난해 7월쯤이다. 이라크 북부 모술의 한 사원에서 설교를 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이라크, 시리아를 아우르는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스스로 전 세계 무슬림의 지도자인 ‘칼리프’에 등극했다. 선전용 동영상에선 “당신들도 내게 복종하라”고 강요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상대로 투쟁하다 1989년 알카에다를 창설한 오사마 빈라덴보다 종교 색채가 더 짙다. 여태껏 알바그다디에 대해 알려진 건 그리 많지 않다. 본명은 ‘아브라힘 아와드 이브라힘 알리 알 바드리 알 사마라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타고난 지략가로 바그다드대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향에서 이슬람 교사로 활동했다. 그를 IS의 우두머리로 변신하게 한 동기는 무엇일까.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에도 그는 학생 신분이었다. 그러나 2005년 반미 성향의 수니파 단체에서 중간급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면서 급진주의자로 돌변했다. 미군이 운영하는 이라크 남부 포로수용소 ‘캠프 부카’에 4년간 수감됐고 그곳에서 다양한 인맥과 급진 사상을 접했다고 AP는 설명했다. 알바그다디는 2010년 5월, 바그다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의 수장이던 아미르인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가 폭격으로 사망하자 곧바로 조직의 1인자로 ‘깜짝’ 데뷔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나 AQI에 합류한 지 1년 만이다. 지금은 미 국방부의 개별 타격 목록 맨 위 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괴물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알바그다디는 측근인 알골라니에게 알카에다란 사실을 숨긴 채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도록 하고 미국과 서방의 무기 지원을 끌어냈다. 그의 생사는 늘 불투명하다. 미군 특수부대의 표적이 되면서 ‘부상설’과 ‘사망설’이 끊이지 않는다. 그때마다 유튜브 등에 연설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올려 건재함을 과시해 왔다. 지난달 10일 이라크 공군의 차량 행렬 폭격 뒤에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알바그다디는 이라크 안바르주 서부 국경 지대의 카라블라 산악 지대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그를 제거하는 것으로 IS의 활동에 타격을 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빈라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알카에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던 예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파리테러 지시”… AQI합류 1년 만에 1인자로… 한달여 행방 묘연

    “파리테러 지시”… AQI합류 1년 만에 1인자로… 한달여 행방 묘연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보이지 않는 지도자’로 불리는 알바그다디(44)의 목에는 무려 1000만 달러(약 117억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이라크 정보 당국이 프랑스 파리 테러의 배후로 그를 지목하면서 현상금은 갑절 이상 뛸 것으로 보인다. AFP는 이슬람국가(IS)란 조직의 정점에 자리하면서 그간 배후로 언급된 적 없던 알바그다디가 이번 테러를 계기로 전면에 등장했다고 전했다. 그가 널리 알려진 건 지난해 7월쯤이다. 이라크 북부 모술의 한 사원에서 설교를 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이라크, 시리아를 아우르는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스스로 전 세계 무슬림의 지도자인 ‘칼리프’에 등극했다. 선전용 동영상에선 “당신들도 내게 복종하라”고 강요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상대로 투쟁하다 1989년 알카에다를 창설한 오사마 빈라덴보다 종교 색채가 더 짙다. 알바그다디는 ‘바그다드 출신’이란 뜻이다. 이슬람 역사에서 바그다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또 아부 바크르는 이라크와 시리아 정복에 착수한 최초의 이슬람 지도자 아부 바크르(573~634)에서 따왔다. 여태껏 알바그다디에 대해 알려진 건 그리 많지 않다. 본명은 ‘아브라힘 아와드 이브라힘 알리 알 바드리 알 사마라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타고난 지략가로 바그다드대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향에서 이슬람 교사로 활동했다. 그를 IS의 우두머리로 변신하게 한 동기는 무엇일까.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에도 그는 학생 신분이었다. 그러나 2005년 반미 성향의 수니파 단체에서 중간급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면서 급진주의자로 돌변했다. 미군이 운영하는 이라크 남부 포로수용소 ‘캠프 부카’에 4년간 수감됐고 그곳에서 다양한 인맥과 급진 사상을 접했다고 AP는 설명했다. 소련과의 투쟁에서 ‘성전의 영웅’으로 거듭나며 급진주의자로 전향한 빈라덴의 삶과는 궤적이 조금 다르다. 알바그다디는 2010년 5월, 바그다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의 수장이던 아미르인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가 폭격으로 사망하자 곧바로 조직의 1인자로 ‘깜짝’ 데뷔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나 AQI에 합류한 지 1년 만이다. 지금은 미 국방부의 개별 타격 목록 맨 위 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괴물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빈라덴의 알카에다가 소련과의 투쟁 과정에서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한 것과 비슷하다. 알바그다디는 측근인 알골라니에게 알카에다란 사실을 숨긴 채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도록 하고 미국과 서방의 무기 지원을 끌어냈다.  그의 생사는 늘 불투명하다. 미군 특수부대의 표적이 되면서 ‘부상설’과 ‘사망설’이 끊이지 않는다. 그때마다 유튜브 등에 연설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올려 건재함을 과시해 왔다. 지난달 10일 이라크 공군의 차량 행렬 폭격 뒤에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로이터는 인근 주민들의 증언을 인용해 알바그다디가 공습 직전 차로 현장을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알바그다디는 이라크 안바르주 서부 국경 지대의 카라블라 산악 지대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그를 제거하는 것으로 IS의 활동에 타격을 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빈라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알카에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던 예도 이를 뒷받침한다.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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