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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틴·로하니, 벌써 10번째 만남… ‘反美’로 밀착

    러 “美, 핵합의 일방적 파기 반대” 이란, 자국화로 무역거래 제안 등 美 제재 피해 전략적 동맹 강화 반미(反美)의 깃발 아래 러시아와 이란의 밀월은 깊어져만 간다. 카스피해 연안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란에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등 수뇌부와 잇따라 회담했다. 이번 만남은 푸틴 대통령과 로하니 대통령의 10번째 회담이었다. 특정 국가 정상들이 10번이나 만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푸틴 대통령이 10차례 만난 정상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로하니 대통령뿐이다. 로하니 대통령이 10회 회담한 정상도 푸틴 대통령밖에 없다. 양국은 ‘공동의 적’ 미국과 대립 중이다. 회담이 끝난 뒤 로하니 대통령은 “러시아는 친구이자 이웃이며 전략적 파트너”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 역시 “이란은 러시아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답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핵합의 파기 위협에 대해 “국제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은 핵합의 위반이 아니라 자주국방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이란의 관계는 시리아 내전을 거치면서 더 단단해졌다. 러시아는 2015년 9월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냉전 시기가 끝난 이후 러시아가 외국에서 벌인 첫 군사작전이었다. 러시아의 참전에는 이란의 설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러시아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 목적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이란은 2011년 시작된 내전 초반부터 시아파 민병대를 참전시켜 정부군을 도왔다. 지난 6월에는 자국에서 테러를 벌인 IS를 응징하겠다며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동부 데이르에즈조르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공개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미국이 지난 7월 내전에서 발을 빼면서 러시아와 이란을 등에 업은 정부군의 승리로 끝나 가는 모양새다. 정부군이 시리아 영토의 85% 이상을 장악했다. 알자지라는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참전은 성공적이었다”면서 “일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다가 수많은 사상자를 낸 미국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는 선에 머물렀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시리아를 발판으로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다. 지난달 5일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사우디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자 이란의 적국이다. 뉴욕타임스는 살만 국왕의 방러에 대해 “사우디가 반발해 온 러시아의 시리아 정부군 지원을 암묵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산유국인 러시아와 사우디는 최근 석유 감산 합의 연장 가능성을 함께 시사해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란의 정치평론가 무스타파 코슈체흠은 “러시아가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았다”며 “소련이 분해되고 붕괴되면서 러시아는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러시아는 곧 과거의 힘을 되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는 이란에도 반갑다. 알자지라는 “강력한 동맹국을 얻는 것은 전략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그 강력한 동맹국이 이란이 믿을 만한 국가인 러시아라면 더할 나위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해빙 무드에 관해서는 “이란과 관계가 악화될 경우 러시아는 정치·경제적으로 잃을 것이 너무 많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관계 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이란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만남은 푸틴 대통령이 주도한 매우 중요한 회담”이라면서 “모스크바가 이란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양국 관계가 향후 중동 질서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로하니 대통령에 앞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하메네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목적은 같다. 우리가 협력해 미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며 “양국 간 무역거래를 달러화가 아닌 자국화로 해 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금융 제재를 무력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와 이란 국영석유회사(NIOC)는 300억 달러(약 33조 4000억원) 규모의 합작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레스토랑 ‘관상용’ 곰 2마리…학대, 굶주림에서 구조돼

    레스토랑 ‘관상용’ 곰 2마리…학대, 굶주림에서 구조돼

    좁은 우리에 갇혀서 만찬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들이 떠나면 남은 음식을 주워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워야 했던 곰들이 자유를 되찾았다. 서남아시아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인근에 있는 한 레스토랑은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면서 창 밖으로 곰들을 관찰할 수 있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었다. 마치 사파리 공원처럼 편안하게 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단위의 고객이 특히 많았다. 하지만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곰들은 최악의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미샤’, ‘다샤’라는 이름의 이 곰들은 무려 10년간 차가운 철창에 갇혀 레스토랑 손님들이 남긴 음식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사람들이 즐겁게,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허기가 진 상태에서 애처롭게 바라봐야만 했다. 게다가 철장은 비좁았고 두 곰은 철장에서 나오려고 스스로 부딪히거나 매달리는 행동을 쉬지 않았다. 미샤와 다샤가 잔뜩 굶주린 채 갇힌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은 레스토랑을 방문했던 동물보호단체 및 몇몇 손님에 의해 알려졌고 결국 전 세계에서 이 곰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최근 영국 동물보호단체 및 현지의 야생동물 보호단체가 힘을 합쳐 구조 작업에 나섰다. 검사 결과 두 마리 모두 심각한 영양실조 증상을 보이고 있었고, 철창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외상도 있었다. 영국 동물보호단체 측은 구조 당시 철장 내부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공개했는데, 더럽고 좁은 철장 내부에 놀라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 동물보호단체는 곰들이 흥분하지 않도록 진정제를 놓은 뒤 조심스럽게 철창 내부에서 꺼냈고, 곧바로 보호구역으로 이송했다. 난생 처음 자유를 되찾은 이들은 여생을 이 보호구역에서 지낼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과거 소련 국가였던 아르메니아에는 곰을 포획해 기르는 전통이 있었으며, 이 전통이 변질되면서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해 학대당하는 곰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Kazakhstan’이 ‘Qazaqstan’으로 바뀐다. 러시아로부터 벗어나려고

    ‘Kazakhstan’이 ‘Qazaqstan’으로 바뀐다. 러시아로부터 벗어나려고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표기가 ‘Kazakhstan’에서 2025년에는 ‘Qazaqstan’으로 바뀌게 된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무겁고 딱딱한 키릴 문자 대신 더 멋진 라틴 알파벳으로 국호를 표기했으면 좋겠다고 공표했다. 당장은 라틴 문자로 바꾸되 2025년까지 새 라틴 문자를 정착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올해까지는 모든 공문서를 라틴 문자로 바꾼다. 내년에는 교사 훈련을 시작하고 새로운 교과서를 개발한다. 2025년이 되면 모든 공문서 작업과 발행을 새 라틴 문자로 한다. 물론 키릴 문자가 여전히 쓰이는 과도기가 있을 수도 있다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덧붙였다. 라틴 문자로는 ‘Kazakhstan’이지만 새 라틴 문자 표기법이 자리 잡히면 ‘Qazaqstan’이 된다. 라틴 알파벳은 키릴 문자보다 훨씬 글자 수가 적어 카자흐어가 내는 소리들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물을 효율적으로 덧붙여야 한다. 한반도의 12배 영토에 인구라고 해봐야 2000만명이 안되는 이 나라는 국민들의 말을 완벽하게 표현해주는 문자가 없어 애를 먹어왔다. 카자흐어는 기본적으로 투르크 언어로 처음에는 아라비아 문자를 썼다. 그러다 1929년 옛 소련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면서 아라비아와 라틴 문자를 병용했다. 11년 뒤에는 옛 소련의 다른 공화국들과 보조를 맞춘다며 키릴 문자로 바꿨다. 다만 키릴 문자는 카자흐스탄에서 변용돼 러시아 글자 33개에 카자흐 것 9개를 더했다. 이에 견줘 라틴 알파벳은 26개 밖에 안된다.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나라를 근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정치 분석가들은 러시아와의 오랜 관계를 청산하려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의 진출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하나 지구촌과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는 데 더 편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이유도 곁들여졌다. 옛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중앙아시아의 다른 네 나라 가운데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여전히 키릴 문자를,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라틴 알파벳을 쓰고 있다.키릴 문자를 버려야 한다는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일상생활에서 혼란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당근을 가리키는 카자흐어는 ‘с?б?з’인데 라틴 문자로는 ‘sabeez’로 표기해왔다. 그런데 새 라틴 문자로는 ‘sa’biz’로 표기해야 한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해시태그를 붙여 ‘#saebiz’로 쓰고 있다. 그런데 이 ‘saebiz’는 러시아 말로 ‘заебись’인데 ‘혼란스럽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야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몰라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옛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건 옳은 방향인지 모르겠으나 수백년 동안 사용해온 문자에 익숙한 세대와 미래 세대를 분리시키려는 정치적 꼼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차대전 역사 다시 써야 하는 이유...“히틀러, 전쟁 끝나고 1955년까지 살았다”

    2차대전 역사 다시 써야 하는 이유...“히틀러, 전쟁 끝나고 1955년까지 살았다”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독일 나치스 아돌프 히틀러가 2차 대전 이후에도 생존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담긴 미국 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가 지난 27일(현지시간) 공개됐다. 공식적으로 히틀러는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초부터 베를린 총리관저 지하벙커에 은신했다가 소련군과 연합군이 베를린 외곽까지 진격해오자 연인 에바 브라운과 ‘벙커 결혼식’을 올린 뒤 4월 30일 권총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CIA가 공개한 정보원 ‘코드명 CIMELODY-3’ 보고서에 따르면 “1955년 9월 전직 독일 SS(친위대) 대원이 ‘히틀러는 사망했다고 알려졌던 연도보다 10년 뒤인 1955년에도 콜롬비아에 생존해 있었다’며 ‘히틀러는 콜롬비아를 떠나 1955년 1월 아르헨티나에도 갔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밀문서에는 1954년 콜롬비아에서 찍은 것으로 추측되는 사진 한 장이 첨부돼 있다. 사진 속에는 생존 당시 콧수염 등 히틀러와 유사한 모습의 인물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군지, 해당 대원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세간의 음모론으로 남아있던 ‘히틀러 생존설’에 대한 의혹이 실제 CIA 정보원의 보고서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히틀러의 생존설은 그동안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난 2011년 영국의 역사가인 제라드 윌리엄스와 사이먼 던스틴이 ‘그레이 울프: 히틀러의 탈출’이라는 저서를 통해 당시 히틀러 부하 증언을 토대로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이 자살로 위장한 뒤 아르헨티나로 탈출해 1960년대까지 함께 살았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히틀러를 둘러싸고 그의 아들 생존설부터 외계인 납치설까지 온갖 음모론이 제기돼 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아하! 우주] “인간은 어떤 존재?” - 교황이 묻고, 우주인이 답하다

    [아하! 우주] “인간은 어떤 존재?” - 교황이 묻고, 우주인이 답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무는 우주인들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역대 교황이 ISS의 우주인과 통화를 한 것은 2011년 교황 베네딕트 16세에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 번째다. 교황은 26일 ISS에 체류하는 우주인들에게 영상 전화를 걸어 20분간 영상 통화를 나누었다. 교황은 먼저 “좋은 아침, 혹은 저녁입니다. 우주에 있는 그대들은 알 수 없겠죠?” 하고 인사를 건넨 다음, 지구와 400km 떨어진 ISS의 우주인들에 다소 까다로운 철학적인 질문을 비롯해 이들이 우주인이 된 동기를 묻기도 했다. 이탈리아 우주인 파올로 네스폴리는 교황의 인사에 “좋은 아침입니다. 52/53 우주원정대 대원들과 ISS에 함께하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대답한 후, “우주 속 인간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는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자신은 인간의 운명에 대해 성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도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저는 이곳에서 우리의 목표가 인간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지식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그는 “인간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줘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ISS의 사령관 미국인 랜돌프 프레스닉은 “우주에서 사람들은 형언할 수 없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이곳에서 보는 지구는 평화롭고 고요하다. 국경도, 분쟁도 없고, 오직 평화로울 뿐”이라며 “여기선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게 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우주인인 세르게이 라잔스키는 어떻게 우주인이 되었냐는 교황의 질문에 “소련 시절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발사 작업에 할아버지가 수석 엔지니어로 관여했다"면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가는 것이 무척 영광스럽다”고 대답했다. 우주에서 무엇이 행복을 주는가라는 교황의 물음에 우주인은 “가장 큰 기쁨은 매일 창밖으로 신의 창조물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신의 의도와 약간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라고 대답했다. 교황은 지구는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세상을 신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우주인들에게 부러움을 표했다. 20여 분간 우주 생활에 대해 관심을 보인 교황에게 우주인들은 “교황도 우주에 나올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구 400㎞ 상공의 궤도를 돌고 있는 ISS는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과학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며, 2000년부터 세계 각국의 우주인이 거쳐 갔다. 현재는 미국인 3명, 러시아인 2명, 이탈리아인 1명 등 총 6명이 탑승해 있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케네디 암살문서 2891건 공개] “케네디 암살범, 범행 두 달 전 KGB 접촉”…증폭되는 음모론

    [케네디 암살문서 2891건 공개] “케네디 암살범, 범행 두 달 전 KGB 접촉”…증폭되는 음모론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가 범행 2개월 전쯤 옛 소련(러시아)의 정보기관 KGB와 접촉했다는 내용의 문서가 공개됐다. 하지만 소련 정부는 오히려 당시 암살을 린던 존슨(36대 대통령) 미 부통령을 비롯한 미 내부 소행으로 보고, 케네디의 부재에 따른 미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두려워했다는 사실도 드러나 케네디 암살 배후에 대한 의혹이 풀리기보다 음모론만 증폭되고 있다.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에 따라 공개한 기밀문서 2891건 가운데 미 중앙정보국(CIA)이 암살 다음날인 1963년 11월 23일 작성한 문서에는 오즈월드가 범행 2개월여 전인 9월 28일 멕시코 주재 소련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오즈월드는 KGB 요원인 발레리 블라디미로비치 코스티코프 영사와 어눌한 러시아어로 대화했으며 CIA가 이 대화 내용을 도청했다. 당시 코스티코프 영사는 암살 업무를 담당한 KGB 13호실에서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CIA 문서는 “예민한 임무를 수행하는 KGB 요원이 소련 대사관과 공공연하게 접촉한 것은 흔하지 않다”는 논평까지 곁들여 오즈월드를 KGB 일원으로 분류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오즈월드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퍼스트레이디인 재클린과 함께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던 케네디 대통령을 소총으로 저격해 암살했다.하지만 오즈월드는 공산주의에 심취해 소련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전향하는 등 소련과 연관을 맺고 있던 인물이라 단순히 KGB를 접촉했다는 점만으로 소련 배후설을 뒷받침한다고 결론 내리기는 무리라는 평가다. 오히려 이날 함께 공개된 암살 직후의 미 연방수사국(FBI) 보고서는 “우리 정보원에 따르면 소련 관리들은 대통령 암살로 인한 공백기에 일부 무책임한 미군 장군들이 소련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다”면서 “소련 공산당은 이번 사건을 미국 내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벌인 음모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FBI 문서에는 또 “KGB가 (케네디 밑에서 부통령을 지냈고 암살 직후 대통령직을 계승한) 린던 존슨 대통령이 암살 배후임을 지목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첩보도 게재됐다. 당시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대화록에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11월 23일 FBI 댈러스 지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암살범으로 체포된 오즈월드를 살해하기 위해 조직된 위원회 멤버’라고 소개하며 암살을 예고하는 전화를 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오즈월드는 다음날인 11월 24일 댈러스의 나이트클럽 사장이던 잭 루비에 의해 살해됐다. 루비는 자신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당하기 25분 전 영국 신문사인 ‘케임브리지 뉴스’ 기자에게 “미국에서 무엇인가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는 내용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익명의 발신자는 “런던의 미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야 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내용은 영국 정보기관인 MI5를 거쳐 CIA와 FBI에 전달됐다. 이날 공개에도 불구하고 암살 배후를 명확하게 밝힐 획기적인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로 일부 기밀문서를 비공개로 해 달라는 CIA와 FBI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주요 문서 200여건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케네디 암살문서 2891건 공개] CIA 기획설·쿠바 배후설·마법의 총탄?…재확산되는 의혹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26일(현지시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에 관한 각종 기밀문서 2891건을 공개했지만 결정적 내용이 없어 ‘소련 배후설’ 이외에도 각종 음모론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암살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만만찮다. 이는 케네디 정부 당시인 1961년 4월 미국이 쿠바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CIA 주도로 피그만 침공작전을 강행했지만 실패했던 사실에서 비롯됐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를 지원하는 소련과의 확전을 우려해 공군에 지원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자신들을 해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CIA가 암살을 기획했다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1975년 록펠러위원회(제럴드 포드 정부 시절 CIA 활동을 조사한 위원회) 문서에는 케네디 정부 초기 CIA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암살하려 했음이 드러났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당시 법무장관은 “CIA가 쿠바에 가서 카스트로를 죽일 총잡이를 고용하기 위해 샘 지앙카나에게 접근할 중개인을 고용했다고 들었다”고 FBI에 밝혔다. 지앙카나는 당시 시카고 마피아 두목이었으며 CIA는 지앙카나에게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이에 따라 카스트로 전 의장이 보복으로 케네디를 암살했다는 ‘쿠바 배후설’도 나왔다. 하지만 미 하원 특별위원회는 쿠바가 배후일 가능성은 낮다고 결론 내렸다. 이 밖에도 케네디 전 대통령의 베트남 철수 계획에 반발한 군산복합체가 배후라는 설, 케네디 정부의 마피아 소탕령을 막기 위해 마피아가 ‘거사’에 나섰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리 하비 오즈월드가 총탄 세 발을 발사하고 케네디 대통령과 존 코널리 텍사스 주지사를 맞혔는데, 두 발은 빗나가고 한 발이 동시에 두 명을 저격한 것으로 나타나 ‘마법의 총탄’이라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오즈월드 이외에도 현장에 다른 범인이 존재할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편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이번에 공개를 보류한 자료 200여건의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향후 180일간 추가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케네디 암살, 영국은 미리 알았다?…“FBI, 암살범 살해 예고 전화 받아”

    케네디 암살, 영국은 미리 알았다?…“FBI, 암살범 살해 예고 전화 받아”

    미국 정부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에 관한 각종 기밀문서 2800여 건을 무더기로 공개하면서 그동안 횡횡하던 암살 사건의 음모론 전모가 밝혀질지 주목되고 있다.미국 국가기록보관소는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10월 26일로 기밀해제 시한이 만료된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관련 문서 2891건을 공개했다. 그러나 자료가 방대해 전문가들을 동원한 분석에도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일부 외신들은 독자들에게 “온라인에 공개된 자료를 읽어보고 흥미로운 내용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도움을 구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문서 공개로 몇 가지 공개된 자료 중 눈에 띄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특히 케네디 암살에 대한 정보를 영국 언론이 미리 눈치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내용도 드러났다. 케네디 암살 사건이 일어나기 25분 전 영국 캠브리지 이브닝 뉴스의 한 기자는 “뭔가 큰 뉴스가 있으니 미국 대사관에 전화해 알려야 한다”는 내용의 알 수 없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FBI 부국장이 국장에게 건넨 메모에는 “영국 국내 정보를 다루는 MI-5가 11월 22일 오후 6시 5분 캠브리지 뉴스 선임기자에게 익명의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런던 주재 미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큰 뉴스를 알려야 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적혀 있었다. 암살범 리 하비 오즈월드가 범행 두 달 전 KGB 요원과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CIA가 도청한 내용도 추가로 공개됐다.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당일 작성된 CIA 메모에 따르면 CIA는 오즈월드가 범행 두 달 전 멕시코 주재 소련 대사관에 전화한 내용을 도청했다. 당시 멕시코시티에 체류하던 오즈월드는 어눌한 러시아어로 발레리 블라디미로비치 코스티코프 영사와 통화했다. CIA는 코스티코프 영사를 암살 업무 담당인 KGB 13호실 소속 ‘확인된 KGB 요원’으로 불렀다. CIA는 오즈월드가 여권이나 비자 문제에 도움을 받기 위해 러시아 대사관과 접촉했던 것으로 파악했다.오즈월드는 범행 이틀 뒤인 1963년 11월 24일 호송 도중 나이트클럽 사장 잭 루비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FBI는 오즈월드가 살해되기 직전 그에 대한 살해 협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J. 에드가 후버 전 FBI 국장이 작성한 오즈월드의 사망 경위 설명 문서에는 FBI 댈러스 사무소가 오즈월드가 총에 맞아 죽기 전날 ‘오즈월드 살해 위원회’ 회원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고 돼 있다. 이 남성은 오즈월드를 죽이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댈러스 경찰은 보안을 강화했으나 오즈월드는 결국 루비에 의해 살해됐다. 다만 루비는 오즈월드 살해가 자신의 단독 범행이며 FBI 댈러스 사무소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후버 국장은 밝혔다. 한편 함께 공개된 1975년 록펠러 위원회 문서에는 케네디 행정부 초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암살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록펠러 위원회는 포드 정부 시절 CIA의 활동을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위원회로 위원장이었던 넬슨 록펠러 당시 부통령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문서에는 CIA가 카스트로 전 의장 암살을 위해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내용 등이 포함됐다. 문서에 따르면 케네디 전 대통령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은 “CIA가 쿠바에 가서 카스트로를 죽일 총잡이를 고용하기 위해 샘 지앙카나에게 접근할 중개인을 고용했다”고 들었다고 FBI에 밝혔다. 지앙카나는 당시 시카고 마피아 두목이었다. 다만 케네디 암살 사건 조사를 위해 구성된 미 하원 암살특별위원회는 카스트로가 케네디를 암살했을 가능성이 적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도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미국에 쿠바를 파괴할 구실을 주기 때문에 위원회는 카스트로가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했을 것으로 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케네디 암살, 영국은 미리 알았다?…케네디 암살범, KGB 접촉도

    케네디 암살, 영국은 미리 알았다?…케네디 암살범, KGB 접촉도

    미국 정부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에 관한 각종 기밀문서 2800여 건을 무더기 공개하면서 암살을 둘러싼 여러 미스터리가 풀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국가기록보관소는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명령에 따라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관련 문서 2891건을 공개했다.이는 1992년 제정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기록 수집법’에 의해 규정된 기밀해제 시한이 이날로 만료됐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민감한 내용이 담긴 문서 300여 건은 시한 막판에 공개가 보류된데다, 자료가 워낙 방대한 탓에 전문가들을 동원한 분석에도 수개월은 족히 걸릴 것으로 보여 암살 미스테리를 풀기는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간 여러 차례 있었던 미 정부의 각종 기밀해제 문서 등에서 드러난 사실과 비교해 크게 새롭거나 주목할 만한 ‘결정적 내용’도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꺼번에 봉인 해제된 방대한 자료 해독의 어려움을 감안한 탓인지 영국 가디언 등 일부 외신은 관련 기사를 실으면서 독자들에게 “온라인에 공개된 자료들을 읽어보고 흥미로운 팩트가 발견된다면 알려 달라”고 도움을 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CNN 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등 미 언론이 이날 공개된 문서에서 일단 눈에 띄는 일부분을 추린 내용을 소개한다.●CIA의 카스트로 암살 계획…“마피아에 10만 달러 제의” 1975년 록펠러 위원회 문서에서는 케네디 행정부 초기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암살 계획을 엿볼 수 있다. 록펠러 위원회는 포드 정부 시절 CIA의 활동을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위원회로, 위원회를 이끈 넬슨 록펠러 당시 부통령의 이름을 딴 것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배후로도 지목된 바 있는 카스트로 전 의장을 CIA가 암살하려 작전하다 실패한 것은 이미 과거 CIA 등의 기밀문서 해제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문서에는 CIA가 카스트로 전 의장 암살을 위해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내용 등이 포함됐다. 문서에 따르면 케네디 전 대통령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은 “CIA가 쿠바에 가서 카스트로를 죽일 총잡이를 고용하기 위해 샘 지앙카나에게 접근할 중개인을 고용했다”고 들었다고 FBI에 밝혔다. 지앙카나는 당시 시카고 마피아 두목이었다. 당시 CIA는 총잡이 고용 대가로 지앙카나에게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1964년 FBI 메모에는 쿠바 망명자들이 쿠바 지도자들을 살해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금액을 제시한 내용도 담겼다. 이들은 피델 카스트로 10만 달러, 라울 카스트로 2만 달러, 체 게바라 2만 달러를 각각 제시했다. ● 미 하원 조사위 “케네디 암살 배후 쿠바일 가능성 적다” 하지만 케네디 암살 사건 조사를 위해 구성된 미 하원 암살특별위원회는 카스트로가 케네디를 암살했을 가능성이 적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도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미국에 쿠바를 파괴할 구실을 주기 때문에 위원회는 카스트로가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했을 것으로 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978년 하원 조사관들이 쿠바를 방문했을 때 카스트로는 쿠바가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CIA 메모에 따르면 1963년 미국 주재 쿠바 대사는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소식에 “행복하고 기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신경질적 미치광이’ 암살범 오즈월드, 암살 전 KGB 요원과 통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범인 리 하비 오즈월드가 범행 두 달 전 KGB 요원과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CIA가 도청한 내용도 추가로 공개됐다. CIA가 오즈월드로 보이는 남성과 KGB 요원이 통화한 내용을 도청했다는 것은 이전에 공개된 기밀해제 문서에서도 이미 드러난 내용이다. 이번에 추가 공개된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당일 작성된 CIA 메모에 따르면 CIA는 오즈월드가 범행 두 달 전 멕시코 주재 소련 대사관에 전화한 내용을 도청했다. 당시 멕시코시티에 체류하던 오즈월드는 어눌한 러시아어로 발레리 블라디미로비치 코스티코프 영사와 통화했다. 메모에서 CIA는 코스티코프 영사를 암살 업무 담당인 KGB 13호실 소속 ‘확인된 KGB 요원’으로 불렀다. 이 메모 작성자는 오즈월드가 여권이나 비자 문제에 도움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러시아 대사관과 접촉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에 대한 소련 반응을 전한 FBI 메모에 따르면 당시 소련 지도자들은 오즈월드를 “조국과 모든 것에 신의가 없는 신경질적인 미치광이”로 간주했다. 또 소련 당국자들은 암살 배후에 우익 세력이나 케네디 전 대통령 후임인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이 있을 가능성을 우려했으며, 암살 여파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걱정한 사실도 이번 자료 공개로 드러났다. ● FBI, 오즈월드 피살 직전 협박전화 받아 오즈월드는 범행 이틀 뒤인 1963년 11월 24일 호송 도중 나이트클럽 사장 잭 루비가 쏜 총에 맞아 숨졌는데, 오즈월드가 살해되기 직전 FBI가 그에 대한 살해 협박을 알고 있었던 내용도 공개됐다. J. 에드가 후버 전 FBI 국장이 오즈월드의 사망 경위를 설명하는 문서를 보면 FBI 댈러스 사무소는 오즈월드가 총에 맞아 죽기 전날 ‘오즈월드 살해 위원회’ 회원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이 남성은 차분한 목소리로 오즈월드를 죽이겠다고 했으며, 이에 댈러스 경찰은 보안을 강화했으나 오즈월드는 결국 루비에 의해 살해됐다. 다만 루비는 오즈월드 살해가 자신의 단독 범행이며 FBI 댈러스 사무소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후버 국장은 밝혔다. ● 케네디 암살, 영국 신문사는 미리 알았다? 케네디 암살에 대한 정보를 영국 언론이 미리 눈치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내용도 드러났다. 가디언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 사건이 일어나기 25분 전 영국의 캠브리지 이브닝 뉴스의 한 기자는 “뭔가 큰 뉴스가 있으니 미국 대사관에 전화해 알려야 한다”는 내용의 ‘미스테리한 전화를 받았다. 당시 FBI 부국장이 국장에게 건넨 메모에 따르면 “영국 정보기관인 MI-5가 11월22일 18시5분(GMT 기준) 캠브리지 뉴스의 산 선임 기자에게 익명의 전화를 건 사실을 보고했다”며 “전화를 건 사람은 런던 주재 미 대사관에 전화를 걸여 큰 뉴스를 알려야 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돼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러시아 언론사, 기자 잇단 피습에 호신용 총기 지급

    러시아 언론사, 기자 잇단 피습에 호신용 총기 지급

    러시아의 한 유력 언론사가 정부를 비판하는 기자들에 대한 잇단 테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호신용 총기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27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반정부 성향의 신문인 노바야 가제타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은 정부가 언론인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소속 기자들에 총기를 지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23일 모스크바에 위치한 민영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바’(모스크바의 메아리)에 괴한이 난입해 근무 중인 여기자를 흉기로 찌른 데 따른 조치다. 반정부 성향의 에호 모스크비의 진행자인 타티야나 펠겐가우에르(32)는 당시 공격으로 목에 깊은 자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에호 모스크비 방송에서 “기자들에 대한 잦은 공격 때문에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는 잦은 암살 기도 속에 살고 있으나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고 통탄했다. 그는 자신의 뉴스룸을 무장시킬 것이라면서 이는 정당한 자위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직원들을 러시아 내무부로 보내 무기훈련을 받도록 할 것이며 ‘충격용 무기’를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충격용 무기는 통상 고무 탄환을 발사하는 권총을 의미하며 이들 무기는 근거리에서 발사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 2001년 이후 노바야 가제타 소속 언론인 6명은 의문스런 상황에서 사망하거나 피살됐다. 체 첸공화국의 인권침해를 보도해온 안나 폴리코프스카야는 2006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총격을 받고 피살됐으며 3년 후에는 신문의 프리랜서 기자인 아나스타시아 바부로바가 모스크바 길거리에서 역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신문의 칼럼니스트이자 에호 모스크바의 진행자인 율리아 라티니나는 지난달 자신의 승용차가 방화된 후 러시아를 떠났다. 무라토프 편집장의 무기 지급 발언 이후 무기제조업체인 칼라슈니코프 사는 언론인이 자사 제품인 MP-80-13 충격용 권총을 구매할 경우 10% 할인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의 유력 진보계 신문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이브닝 스탠더드와 인디펜던트 등 영국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가문의 사업가 알렉산드르 레베데프가 공동 소유주로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덩샤오핑 지운 시진핑, 사상의 자유 허할까

    덩샤오핑 지운 시진핑, 사상의 자유 허할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내놓은 수많은 메시지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덩샤오핑(鄧小平)과의 차별화다.덩샤오핑이 1981년 제시한 모순론인 ‘인민의 물질적 수요’와 ‘생산 능력 낙후’ 사이의 모순을 시 주석은 ‘인민의 아름다운(美好) 수요’와 ‘불균형적인 발전’ 사이의 모순으로 수정했다. 덩이 “먼저 부자(자본가)를 키워 가난한 사람까지 먹고살게 하자”며 내세운 ‘선부론’(先富論)도 이번에 폐기됐다. 대신 시 주석은 지난 25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공동부유로 가는 길에서 한 명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며 ‘공부론’(共富論)을 제기했다. 시 주석은 덩샤오핑이 확립했던 정치 기제도 일거에 무너뜨렸다. 후계자를 미리 정해 권력 암투를 막는 장치로 작동했던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지도자 미리 지정)이 폐기됐으며, 상무위원회를 총서기 참모조직으로 바꿔 집단지도체제도 사실상 끝냈다. 시 주석이 중국이라는 항공모함의 방향을 틀기로 작정한 것은 시대가 변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대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도 ‘신시대’였다. 시 주석은 기자회견에서 “신시대에는 새로운 행동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대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이제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나라가 아니라 음식쓰레기 처리를 고민하는 나라가 됐다. 공장을 세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공장을 멈춰 공기를 맑게 하는 게 목적이다. 당대회 대표로 참여한 허베이성 탕산시 당서기는 “허베이 주민의 꿈은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이 제시한 모순론의 ‘아름다운 수요’는 빈부 격차 해소, 환경오염 개선, 공정한 분배 등이다. 지금까지 중국 사회는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쪽으로 나아갔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0.465를 기록했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소득이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음을 보여 주며, 0.4를 넘으면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역·도농 간 격차도 심각하다. 지난해 중국 도시민의 연평균 소득은 3만 3616위안(약 574만원)으로 농촌(1만 2363위안)의 2.7배에 이르렀다. 서민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부동산 폭등이나 부의 세습 문제는 시 주석 집권 이후 오히려 심해졌다. 시 주석이 업무보고에서 “집은 투기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정의를 견지할 것”이라고 말할 때 가장 많은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은 중국 국민의 요구가 어디에 있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시 주석이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가장 역점을 두는 게 탈빈곤 정책이다. 시 주석은 지역별 성장률을 당서기 평가의 최우선 잣대로 삼아 왔던 것을 지난해부터 확 바꿔 빈곤 퇴치 목표 달성 여부로 평가하고 목표에 이르지 못하면 문책하고 있다. 시 주석은 2020년까지 7000만명에 이르는 빈곤층을 구제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이 목표는 연간소득 6200위안(약 105만원) 이하의 빈곤인구를 없애겠다는 것으로, 극빈층 구제 사업일 뿐 중산층의 복지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시 주석은 2020년까지 중복지 수준의 샤오캉(小康)사회를 건설하고 2035년에 사회주의 현대화를 이룬 뒤 2050년에 세계를 선도하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서구 사상의 유입을 막는 데 급급했던 기존 모습에서도 탈피해 중국의 가치를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당의 영도(지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골고루 퍼져야 사회주의적 가치가 더 튼튼하게 뿌리내린다는 것이다. 영도의 ‘핵심’은 시진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 주석은 소련 공산당이 멸망한 이유를 지도력 약화에서 보고 있다”면서 “자신과 당의 리더십이 강화돼야 경제 개혁은 물론 환경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향후 중국에는 이념 교육과 개인숭배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장은 ‘시진핑 사상’을 교과서에 수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더 좁아지고 인터넷 통제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 주석이 제시한 ‘아름다운 수요’에는 경제적 요구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BBC 중문망은 “중국 공산당은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는 착각일 뿐”이라고 전했다. 독일 뒤스부르크 대학의 우창 박사는 “증가하는 중산층은 중국 공산당에 최대 위협”이라면서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부흥으로 중산층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지만 중산층은 국가의 부강을 넘어 개인의 자유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사회평론가 장리판은 “시진핑의 권력이 강화될수록 아무도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도 점점 닫힌 사회가 되는 모습이 중국의 진짜 ‘모순’이라는 것이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시진핑 2.0시대] “쓴 열매 삼키지 않겠다”… ‘강한 중국’으로 국제질서 재구축

    [시진핑 2.0시대] “쓴 열매 삼키지 않겠다”… ‘강한 중국’으로 국제질서 재구축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제시한 집권 2기 청사진의 핵심은 ‘강한 중국’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근대 이후 고난을 겪었던 중화민족을 떨쳐 일어나게(站起來) 했고,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을 부유하게(富起來) 했다면, 시진핑은 강대한(强起來) 중국을 만들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강한 중국’ 노선은 단연 외교·군사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시 주석은 지난 18일 당대회 개막식 업무보고와 25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상호 존중과 공평·정의, 협력·상생에 기초한 ‘신형 국제 관계’의 구축을 추진할 것”이라며 ‘평화 외교’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지 말라”고도 했다. 국제사회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시 주석의 진심이 담겨 있을 것으로 본다. 여기에선 적어도 중국이 현재 갈등·대립 중인 외교·안보 분쟁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속내가 묻어난다. 기존의 미·중 간 외교·안보·무역 갈등은 물론 중·일 영토분쟁,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에서 기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는 뜻이다. 특히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서는 “국가 간에는 동맹이 아닌 동반자로서 새로운 교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시 주석이 강조한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 주석은 이 발언을 하면서 “냉전 사유를 버리고 대항이 아닌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미 동맹과 북·중 혈맹 모두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한·미 동맹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동시에 북·중 혈맹을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돌리려는 정책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관계와 관련해서는 기존의 ‘신형 대국 관계’ 대신 ‘신형 국제 관계’를 강조했다.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는 ‘신형 대국 관계’를 미국이 계속 무시하자 중국이 양자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독자적인 다자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모든 국가를 평등하게 대하는 중국 외교의 전통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자국 우선주의로 내달리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와 같은 중국식 프로젝트로 국제질서를 재구축해 미국 패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야망이 숨어 있는 셈이다. BBC 중문망은 중국의 외교 방향이 덩샤오핑이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와 장쩌민(江澤民) 시기의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 낸다)를 넘어 분발유위(奮發有爲·분발해 성과를 낸다)로 변했다고 분석했다. BBC는 “중국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태평양 지역에서 광범위한 투자와 교류로 기회를 모색할 뿐만 아니라 대테러, 사이버안보, 기후변화 등 비전통적 안보 영역에서 핵심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한 중국’은 군사적 충돌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군대는 인내해야 한다’(軍隊要忍耐)고 했으나, 시 주석은 ‘싸워서 이기는 군대’(能打仗 打勝仗)를 만들고 있다. 시 주석은 2020년까지 군의 기계화와 정보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룬 뒤 2035년에는 국방·군대 현대화를 실현하고 2050년엔 세계 일류 군대를 건설하겠다는 ‘시간표’도 제시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 5년 동안 마오쩌둥 이래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바꾸었다.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 등 4총부 형태를 중앙군사위원회 직속의 15개 부·위원회 체제로 바꾸는 한편 4대 군구(軍區) 체제를 동·서·남·북·중 5부 전구(戰區)로 개편하고 병종도 육·해·공 3군에 로켓군과 전략지원부대를 추가했다. 홍콩의 중국 문제 전문가 류쓰루는 “시 주석의 군대개혁은 옛 소련식 체제를 바꿔 미국 군대의 모델을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전의 작전지휘는 중앙군사위의 4개 총부가 군구에 지시를 내리면 야전군, 사단, 여단, 연대 사령부를 거치는 단계별 상명하달 시스템이었으나, 지금은 중앙군사위가 직접 군인 한 명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미군의 지휘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는 것이다. 장비 현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 4월 자국산 최초의 항공모함 진수를 포함해 올 상반기에만 중·대형 함정 10척을 건조했다. 6월 말 진수한 055형 자국산 미사일 구축함은 스텔스 기능과 레이더 성능, 정보처리 능력, 순간 최고속도 등이 미군 주력인 줌월트보다 앞선다고 중국은 자부한다. 쉬정 홍콩 즈밍연구소 국장은 대만 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가 되려면 실전 경험이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중국군은 새로운 체제와 무기 장비의 효용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한 차례 실전을 벌이려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4차 산업혁명 핵심은 ‘SF 상상력’에 있다

    4차 산업혁명 핵심은 ‘SF 상상력’에 있다

    60년 전인 1957년 10월 4일 밤, 당시 소련 영토였던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를 꿈꿔 왔던 인류의 오랜 소망이 실현된 것이었다. 냉전시대 소련과 군비경쟁을 벌이던 미국은 우주개발 경쟁의 우위를 빼앗겼다는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졌다. 이후 미국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는 등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시스템부터 과학·수학 교육 개편까지 사회 전체적인 개편을 가져왔고 소련을 앞서기 위한 ‘아폴로 달 탐사 프로젝트’를 이끌어 냈다. 그 결과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성과를 냈다.스푸트니크 1호나 아폴로 11호처럼 인간이 만든 물체를 우주로 날려 보내는 로켓과 인공위성 초기 역사의 이면에는 SF의 상상력이 자리잡고 있다. 로켓 기술을 가능케 해 인류가 우주를 탐사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소련의 물리학자이자 SF작가인 콘스탄틴 치올콥스키(1857~1935) 덕분이다. 치올콥스키는 프랑스 대중소설 작가 쥘 베른의 1865년 작품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영감을 얻어 1898년에 현대 로켓기술을 탄생시킨 기념비적 논문인 ‘로켓에 의한 우주공간의 탐구’를 발표했다. 이 논문이 과학계에 알려지기까지는 5년 가까이 걸렸는데 이유는 치올콥스키 자신이 물리학자이지만 ‘지구와 우주에 대한 환상’, ‘다른 세계에 생명은 있는가’와 같은 SF소설을 쓰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그의 로켓 기술이 그저 SF적 상상력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이처럼 SF는 당대의 과학기술이 이룩해 내지 못한 미래를 상상력을 통해 예측하고 기술개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과학사를 보더라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상상력’이었다. 특히 SF는 과학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대표적 장르이기 때문에 과학자와 SF작가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고 있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다. 나는 그 상상력을 자유롭게 이용한 예술가”라며 과학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SF 거장으로 꼽히는 미국 작가 필립 K 딕이 1950년대 초에 쓴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작품에서는 멀티터치가 가능한 투명디스플레이, 자율주행차, 망막스캔 인식기술, 보행자 맞춤형 광고 등 현재 연구되고 있거나 미래에 등장할 개연성이 큰 기술들로 가득 차 있어 전문가들에게도 다양하게 인용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외국에서 SF는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사랑받는 분야이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일부 마니아들만 좋아하는 장르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잡지들이 속속 창간되면서 SF에 대한 관심도 함께 늘고 있다. 실제로 외국에서 SF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장르로 자리잡게 된 19세기 중후반은 다양한 과학잡지들이 창간되면서 일반인들도 최신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던 시기였다. 국립과천과학관의 경우 2009년 ‘SF과학영화제’로 시작해 2012년부터는 ‘SF축제’로 규모를 키워 SF 장르를 통해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도 ‘과학이 도전하는 SF’라는 주제로 오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6일간 SF축제를 개최한다.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최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기술과 사회의 미래상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많아졌지만 청소년을 비롯한 미래 세대들에게 호소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미래 세대에게 미래상을 보여 주고 과학적 영감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SF처럼 문화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수단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케네디 암살 배후’ 54년 만에 밝혀지나

    ‘케네디 암살 배후’ 54년 만에 밝혀지나

    3000여 문건 예상… 관심 집중 공개 범위 싸고 벌써 갑론을박백악관 “모두” vs 정보담당 “일부만” CIA·KGB 개입설 등 진위 주목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과 관련한 기밀 문건을 공개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동안 수많은 음모론을 낳았던 암살의 배후가 밝혀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추가 정보를 받는 대로 나는 대통령으로서 오랫동안 막혀 있던 기밀 ‘JFK 파일’이 공개되도록 허가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정보 공개는 1992년 제정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기록 수집법’이 관련 문서 공개 시한을 2017년 10월 26일로 규정한 데 따른 것이다. 1963년 11월 22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도중 리 하비 오즈월드의 총탄에 맞아 숨진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관련 기밀문서는 3000여건이다. 미국은 이번 기밀문건의 공개 범위를 두고 벌써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백악관 보좌진을 중심으로 투명하게 ‘전면 공개’를 주장하는 반면 안보·정보 담당 부서 등에서는 미국의 정보 활동과 관련된 내용을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기밀 JFK 파일들의 개봉 허용’으로 방침을 밝힌 만큼 전면 공개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핵심 측근 로저 스톤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련 정보의 일부를 비공개로 하는 것보다는 모든 문서를 일단 투명하게 세상에 내놓는 게 낫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가안보회의(NSC) 등은 일부 문서가 현재 정보 당국의 활동과 작전을 노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기한 마감 직전 ‘일부만 공개’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남은 문서들의 공개 방침은 정해졌지만, 공개 수위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보좌진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미국 국가기록원은 문서 공개가 다음주로 임박함에 따라 막판 준비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관련 기밀문서 공개가 처음은 아니다. 그간 3만여건이 공개됐지만 암살의 배후나 이유 등과 크게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이번에 공개될 나머지 3000여건의 문건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사실관계가 적시됐을 가능성이 커 보여 상당한 관심이 집중돼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암살 배경 등을 놓고 여러 가지 음모론이 끊이지 않아 왔다는 점에서 문서 공개가 새로운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동안 미국민의 대다수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았다. 서거 50주년이었던 2013년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여전히 60%가 ‘단독 범행이 아니라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설은 수십 가지에 이른다. 첫째가 미 중앙정보국(CIA) 음모설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CIA를 해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CIA가 조직 차원에서 또는 일부 과격한 요원들이 독단으로 범인인 오즈월드를 고용, 암살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이를 주장하는 이들 중 일부는 오즈월드는 ‘위장용’이었을 뿐 실제로는 정예 저격수를 따로 배치해 범행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마피아 개입설도 나온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당시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이었던 샘 지앙카나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앙카나의 딸 앙투아넷 지앙카나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폭로했다. 구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음모설도 있다. 쿠바 미사일 사건으로 실추된 소련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KGB의 암살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미국은 왜 70개국에 800개 기지를 둘까

    미국은 왜 70개국에 800개 기지를 둘까

    기지국가/데이비드 바인 지음/유강은 옮김/갈마바람/572쪽/3만원 미국은 현재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해외 군사기지를 갖고 있다. 펜타곤 공식 집계로만 보더라도 그 숫자는 70여개국 800개에 이른다. 해외 기지와 관련한 미국인은 50만명, 군사활동에 드는 비용은 1700억 달러(약 26조원)에 달한다. 해외에 군인 한 명을 주둔시키기 위해 미국 납세자들은 연평균 1만~4만 달러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그 많은 인원과 비용이 소요되는 미군기지는 꼭 필요한 걸까. 데이비드 바인 미국 아메리칸대 인류학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6년간 12개국 60곳의 현장 취재를 토대로 쓴 책에서 “이제 ‘기지국가’인 미국의 해외 기지가 존재해야 하는 필요성을 일일이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일갈한다.미국의 해외 기지 확산 배경을 놓고 많은 이들은 냉전시기의 ‘전진 전략’을 들먹인다. 소련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미국 군사력을 집중시키는 전략 말이다. 하지만 소련도, 냉전체제도 사라진 지금 왜 여전히 그 많은 미군기지가 존재해야 할까. 바인 교수는 이 대목에 주목한다. “미국이 많은 숫자의 기지와 수십만 병력을 해외에 상주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가안보 정책에서 거의 종교적 신념이나 다름없다.”바인 교수가 가장 강하게 반박하고 나선 부분은 바로 이 대외·국가안보 정책이다. 세계 평화와 주둔국의 안정을 지킨다는 ‘종교적 신념’과 같은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남북 대결이 대표적 사례다. 북한은 세계 최강 미군이 코앞에 주둔한 상황에서 군사력을 늘리는 게 타당하며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 붕괴로 한반도가 통일되면 수만 명의 미군이 중국 국경에 가까이 배치될 게 뻔한 만큼 북한을 지원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소련이 붕괴된 지금 중국,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도 오히려 중국·러시아의 군사적 대응을 자극해 ‘자기충족적 예언’을 실현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대외 국가안보 정책 말고도 책에서 드러나는 미군기지의 문제점은 수두룩하다. 독성물질 배출로 인한 환경훼손, 주둔지 주민을 상대로 한 강간 등의 범죄, 현지 주민들의 인권 무시나 거주권리 침탈, 독재자나 독재정권과의 결탁…. 디에고 가르시아와 비키니환초를 비롯해 태평양 작은 섬 주민들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고향 땅에서 쫓겨났고 그들이 살던 섬은 방사능 피해와 활주로 건설 탓에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됐다. 이런 문제를 사실적으로 고발한 저자는 경제적 관점에서도 미국이 해외 기지로 잃는 게 더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작은 정부와 긴축예산이 지배하는 시대에 수송기술 발달로 원거리에서 신속한 병력 전개가 가능해진 지금 대규모 해외 기지의 존재는 낭비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들 해외 군사기지 유지에 2014년에만 최소 850억 달러가 들었다고 추산하고,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군산복합체들이 이득을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군기지의 수로 치면 한국은 83개로 독일(174개), 일본(113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독일과 일본은 모두 2차대전 전범국이다. 저자는 “왜 전쟁 피해자인 한국이 전승국의 해외 기지 텃밭이 됐느냐”고 묻는다. 책에는 미군 해외 군사기지 중 최대급 최신 기지가 될 평택기지 조성 탓에 결국 쫓겨난 대추리 주민들 이야기도 들어 있다. “미군 해외 기지가 지구 전체를 에워싸고 있다”고 표현한 저자는 결국 불필요한 기지를 전부 폐쇄하고 세계 곳곳의 갈등을 군사적 방법이 아닌, 정치·경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외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매듭짓는다. 한국을 향해선 이렇게 말한다. “궁극적으로 한국인들이 자국 땅 모든 외국 군대의 주둔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마땅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시론] 쉬운 한글과 어려운 한국어/장두식 단국대 대학원 초빙교수

    [시론] 쉬운 한글과 어려운 한국어/장두식 단국대 대학원 초빙교수

    지난 추석 연휴에 한국어를 잘하는 젊은 외국인들이 나오는 방송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미국에서 한국어가 가장 어려운 외국어로 꼽힌다고 한다. 한국어와 영미어가 친족 관계가 아니고 문자인 한글은 알파벳이 아니다.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한국과 미국이 밀접한 접촉을 한 경험이 많지 않다. 그러니 미국인들에게 한국어는 어려운 외국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런데 ‘한국어는 어렵지만 한글은 쉽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필자는 지난 4년 동안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교 한국학과에서 한국어문학을 강의했다. 제자들은 대부분 청소년기부터 한류 문화에 푹 빠져 있었던 학생들이었다. ‘김나지움’(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엑소’나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따라 불렀던 학생들은 한국어에 겁을 먹지 않았다. 첫 강의 시간에 신입생들은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만들어 내는 소리에 신기해하면서 한글의 원리를 금방 이해했다. ‘언너’, ‘크리스틴’, ‘니콜렛’ 등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기도 했다. 헝가리어가 핀우그르어 계통이기 때문에 한국어 문법이 낯설지 않고 영어나 독일어보다 이해하기 쉽다고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2학년이 되고 나자 한국어가 너무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법이 아니라 어휘들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제자가 “‘천하’, ‘세상’, ‘누리’가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진 어휘잖아요. 한국 고유어보다 한자 어휘가 많다 보니 좀 복잡해요”라고 하소연한다. 한글을 문자로 사용했던 시기보다 한자로 표기했던 시기가 길기 때문에 한국어에는 한자 어휘가 많다는 것을 설명하자 “인터넷에서 논문을 검색하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어린이’라는 고유어 어휘보다 ‘아동’이라는 한자어 어휘를 더 많이 쓰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제자들의 파란 눈에는 고유어 어휘와 한자어 어휘가 구별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제자들이 부전공으로 중국어나 일본어를 공부하기 때문인가라고 생각하다가 한국어에서 한자어 어휘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게 되었다. 헝가리 1956년 반소 혁명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소련군 탱크에 저항하는 부다페스트 아동’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라는 고유어 어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아동’이라고 썼을까. 조선 중기의 문인 유몽인은 ‘유야담’에서 제비가 유식해서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謂知之 不知謂不知 是知也·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라고 ‘논어’를 지저귀고, 개구리도 ‘맹자’를 읽어서 ‘독락악여중락악숙락’(獨樂樂與衆樂樂孰樂·홀로 즐거워하는 것과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즐거운가)이라고 운다는 조선 속담에 관해 쓰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사신 황백룡과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선 제비들은 ‘논어’를 읽는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백룡이 중국에도 그와 비슷한 말이 있는데 개구리들이 ‘맹자’를 읽어서 ‘독락악여중락악숙락’이라고 운다고 하여 그를 놀라게 했다. 백룡은 북경어가 아니라 강남 사투리로 발음하면 개구리 울음과 아주 비슷하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그가 조선 속담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 알고 보니 중국 속담이었던 것이다. 그의 황당한 경험이 바로 현재 한국어의 실상이 아닌가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라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높다’라고 말하면 어색하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한자를 빌려 쓰다 보니 생경한 한자어들조차 한국어 속에서 태연하게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어에서 고유어 어휘들의 위상이 높지 않다. 이는 한국의 학자와 문학자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닐까. 한국에도 독일의 괴테와 같은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쉬운 한글을 가진 어려운 한국어라는 역설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 [열린세상] 북한의 시장경제 진전에 한반도의 희망이 있다/신봉길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객원교수

    [열린세상] 북한의 시장경제 진전에 한반도의 희망이 있다/신봉길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객원교수

    북핵 문제로 한반도에 연일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상대방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험한 말들이 오간다. 핵무기는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고 위협과 억지력으로만 기능을 한다는 주장이 있다. 구소련의 절대적 독재자였던 스탈린도 핵무기를 손에 쥔 뒤에는 “이 세상의 종말을 상정하지 않고는 핵무기를 쓸 수 없다. 정상적으로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핵무기는 핵무기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이지만 핵이라는 거대 위협 앞에 불안감이 머릿속을 감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이다. 북핵과 미사일의 실전배치 가능성 이전에 군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큰 우려다. 둘째는 강력한 제재와 당근을 병행한 협상이다. 우선 핵과 미사일 활동을 동결하되 최종적으로는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 문제는 북한이 일시 동결에 동의할 수는 있어도 핵의 완전 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점이다. 셋째는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서의 북한과 함께하는 불안한 공존이다.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지만 북한의 핵 공갈과 위협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 경우 한국 국민은 상당 기간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밖에 없다. 모두 만만찮은 시나리오들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북한 체제 자체의 변화로 북핵 문제가 중장기적으로는 지금과 다른 양상을 띨 것이라는 기대다. 현재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정보 유입’과 ‘아래로부터의 자체적 시장화’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립외교원의 김태환 교수 같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당국과 인민들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김씨 왕조 체제를 중장기적으로는 크게 흔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장마당’의 등장 등 북한의 시장화는 북한의 배급제 붕괴와 연관돼 있다. 1990년대 후반 극심한 경제난(‘고난의 행군’)으로 국가와 당이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인민들 스스로의 생존 노력이 시장을 형성한 것이다. 지금은 이 시장이 북한 경제의 활력을 이끄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인민들도 먹을 것과 입을 것 등 생존을 100% 국가에 의존하던 상황에서 상당 부분 자체 노력과 시장에 의존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당연히 국가와 당의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시장과 돈이 힘인 세상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망명한 북한의 전 고위 외교관 태영호씨가 올 초 한국외교협회 강연에서 이러한 상황을 증언했다. 북한 당국이 전무후무하게 인민들에게 굴복한 일이 있었다. 2009년 11월 김정일 정권이 화폐 개혁을 전격 단행했을 때다. 시장과 시장 세력인 소위 ‘돈주’(시장화 과정에서 크게 돈을 번 사람들)들을 통제하고 경제에 대한 당과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려 했던 것인데 인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시장에서 물건이 사라지고 가격이 폭등하며 경제가 마비 현상을 보였다. 화폐 개혁의 실무 책임자였던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을 희생양으로 처형하는 등으로 가까스로 사태가 진정됐다. 이처럼 북한은 이제 상당 부분 시장경제가 작용하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당의 고위층 등 핵심 계층들이 평양의 고급식당, 슈퍼마켓 등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DVD, USB, 무선전화와 국경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 등을 통해 외부 정보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다. 인민이 자신을 먹여 살리고 지켜 나가는 세상에서 당과 정권에 대한 절대적 충성의 필요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태영호씨는 북한의 장마당이 한국 물건과 돈에 의해 가동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북한이 변하고 체제도 변하고 결국 김정은 체제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북한 핵 문제도 이 과정에서 해결될 것이다. 마침 문재인 정부도 남북을 아우르는 경제공동체 실현을 통일로 가는 1단계 비전으로 제시했다. 내부로부터의 변화 즉 외부 정보 유입과 시장경제화를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과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로 보인다.
  • 50만명 숨진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 ‘美정부 묵인’ 증거 50여년 만에 공개

    美대사관 “환상적 전환 있었다” 알면서 침묵… 보도도 통제 미국이 과거 냉전 시대 인도네시아 친미 정권 수립을 위해 20세기 최악의 대량 학살로 꼽히는 ‘반공 대학살’을 묵인했음을 보여 주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고 AP통신이 17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문서들은 이날 미 정부가 1963~1966년 사이 주인도네시아 미대사관에서 작성된 외교문서 수천건의 기밀 지정을 해제하면서 공개됐다. 1965년 당시 인도네시아는 거의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될 상황이었다. 공산당(PKI) 당원은 수백만명에 달해 중국, 구소련에 이어 세계 3위의 규모를 자랑했으며, 반미·반소련·비동맹 노선을 주창하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도 반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9월 30일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친미 성향의 군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군부는 쿠데타 배후 세력을 척결한다면서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다. 수카르노 체제는 그대로 붕괴했다. 이와 관련, 12월 21일 미대사관은 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불과 10주 만에 환상적 전환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미 10만명이 넘는 시민이 학살된 시점이었다. 전문은 “발리에서만 약 1만명이 살해됐다”고 전했고, 두 달 뒤 발송된 전문에는 “발리에서 일어난 학살로 인한 희생자의 수가 8만명으로 늘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건에는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U)와 산하 청년단체들이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내용도 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상당수 지역에서는 공산당 가담 혐의로 체포된 주민 수가 급증해 시설 수용 및 식량 배급이 힘들어지자 이슬람 청년단체가 이들을 무차별 살상한 정황이 남아 있다. 1965년 12월 인도네시아 서부 메단 주재 미영사관은 현지 이슬람 사원에서 “공산당이 피를 흘리는 것은 닭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내용의 설교가 이뤄졌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목숨을 잃은 민간인 중 상당수는 공산당과 무관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최소 50만명이 학살됐지만 미 외교관들은 친미 정권 수립이라는 결과에만 환호했다. 심지어 미 외교관들은 이런 만행에 앞서 군부에 불리한 외신 보도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 민족의 외교 유전자/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열린세상] 우리 민족의 외교 유전자/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지난 추석 연휴 때 영화 ‘남한산성’을 보았다. 늘 그랬듯이 적전 분열과 삼전도의 굴욕 장면을 보며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교훈을 찾아야 했다. 그 굴욕은 당대의 백성들에게는 어떤 의미였고, 우리 세대에겐 어떤 교훈이 될까. 우리는 환난과 치욕의 역사를 일상생활처럼 무심하게 되새겨 왔다. 필자가 학생 시절 배웠던 고조선의 역사는 한나라에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실상은 고조선이 1년 이상을 분전했고 한나라는 육군과 해군 장수를 모두 처벌할 정도로 고전했다. 단지 지배층 내부의 분열로 패망했을 뿐이다. 우리가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역사를 우리 민족사의 원류로 소중히 하는 것은 그 대륙적 야성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 야성을 언제부터 상실했을까. 현대의 우리 민족에게 그 야성적 민족 유전자는 남아 있는지, 아니면 그저 외세에 굴종하는 변이 유전자만 물려받았는지, 시대를 관통하는 일관된 원형이 있기는 한지 알 수가 없다. 한 명의 대통령이 오래 집권하던 시절에는 그러려니 했겠지만, 우리 정치가 민주화된 오늘날 어떤 유전자와 전통이 대외 관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정치지도자들은 어떤 원칙에 따라 외교 전략을 설계하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북핵 위기와 외교안보의 딜레마 속에서 더욱 궁금해진다. 필자는 40년 전 외교사가 재미있어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다. 근대 아시아 외교사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중일전쟁과 미·일 관계에 관한 것이었는데 한국은 강대국 간의 전쟁과 흥정의 대상으로만 등장했다. 모두가 남들의 외교사였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정리한 외교사가 아직 없다. 중국은 10여년 전에 이미 ‘신중국외교사’라는 책이 몇 종류나 있었다. 평화공존 5개 원칙을 축으로 하는 1949년 이후 중국 외교의 특징을 ‘대국주의와 (아편전쟁 이후) 100년의 콤플렉스’라고 했다. 일본은 2013년 이와나미(岩波)서점이 6권 분량의 ‘일본의 외교’를 간행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15년부터 한국 외교사 프로젝트를 시작해 3년째인 내년에 8권으로 구성되는 ‘한국 외교사’를 편찬할 예정이다. 좀 과도한 욕심을 내서 고대 중국과 고조선 간의 전쟁에서부터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을 거쳐 항일투쟁과 대한민국의 1980년대까지를 관통하는 대외 관계사를 펼쳐 내기로 했다. 필자는 40년을 기다려 온 수요자로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두 가지 소망을 담았다. 우선 우리 민족 외교의 실패와 성공의 사례 속에서 그 유전자와 변이 과정을 찾는 것이다. 그러자면 치욕으로 얼룩진 근대 외교사만이 아니라 더 멀고 긴 역사 속에서 우리 조상은 내외 정세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세심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국절 논쟁도 민족사의 긴 여정에서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면 앞으로는 정치인들이 국가의 품격이나 국민의 안위와 관련되는 안보 문제를 보수와 진보로 분열된 진영 논리만으로 함부로 논하지는 않겠지 라는 소망이다. 우리 민족사의 긴 여정에서 국가 누란의 위기 때마다 지배계층 내부의 분열은 민족의 치욕을 초래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가을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명의 심유경(沈惟敬)이 휴전 조건으로 조선의 분할을 논의한 것이 외세에 의한 최초의 민족 분단 획책이었다. 300년 후인 19세기 말 청?일, 러?일 간의 한반도 분단에 관한 흥정은 결국 미국과 소련에 의한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다. 고조선이나 고구려, 백제의 멸망도 지배층 내부의 분열에 의한 요인이 컸다. 병자호란 때 주화론과 주전론이나, 조선 말기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도 그렇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었다”는 교훈뿐 아니라 저항과 단합을 통한 재건과 부흥의 성공 사례도 새롭게 부각될 것이다. 한국 외교사 편찬 사업에는 시대별로 유수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어 좋은 결과물이 기대된다. 물론 첫술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외교의 역사적 유전자를 찾는 과정의 시작이라는 의의는 크다. 계속해서 보완해 가면 훌륭한 한국 외교사가 완성될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앞으로 외교안보 위기를 극복하는 통찰력을 여기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포토] 이제 역사 속으로…옛 소련 여객기 ‘투폴레프 134’

    [포토] 이제 역사 속으로…옛 소련 여객기 ‘투폴레프 134’

    16일(현지시간) 옛 소련의 여객기인 투폴레프 134(Tupolev 134)를 독일 콧부스의 비행 박물관으로 옮기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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