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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남한에서 개발한 항암제, 이북 아버지 산소에 바칠 날 손꼽아”

    “내가 남한에서 개발한 항암제, 이북 아버지 산소에 바칠 날 손꼽아”

    북한에서 인정받았던 수재 의대생은 1990년대 졸업 직후 ‘고난의 행군’ 한복판에 서게 된다. 제대로 환자를 치료하고 마음껏 의학을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그는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하는 북한의 열악한 현실에 좌절했다.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북한에서 힘들게 쌓아 올린 경력을 뒤로하고 남한으로 넘어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남한 정착 13년이 지난 현재 자신의 한의원을 운영하고, 봉사활동으로 의술을 펼치고, 대학원에선 우수 논문을 발표하며 북한에서 못다 이룬 포부를 실현하고 있다. 의료인이자 의학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자신이 개발한 항암제를 북한에 묻힌 아버지에게 바칠 꿈을 갖고 있다는 박지나(44) 친한의원 원장을 지난달 27일 서울 성동구 한의원에서 만났다.박 원장은 인민학교(초등학교)부터 고등중학교(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고등중학교 3학년 때는 ‘7·15 최우등상’을 받았다. 전국의 우수 학생을 모아 아홉 차례 시험을 치르게 한 뒤 상위 216명에게 주는 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산고급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날인 7월 15일을 기념해 제정한 상이라고 한다. 이 상을 받으면 중앙당과 교육부, 중앙사로청이 발행하는 대학 추천서를 받게 된다. 수능에 해당하는 대입 시험은 면제받고 대학별 입학시험만 보면 된다. 박 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성이과대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의대에 진학했다. 집안 성분이 발목을 잡은 탓이었다. 박 원장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이북 지역 부농이었는데,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의 토지개혁 당시 타도 대상으로 몰렸다. 북한에서 성분이란 족쇄가 다소 느슨해진 것은 1980년 중반 들어서부터다. 성분을 너무 따지다 보니 국가적 인재를 쓸 수가 없어 김일성 주석이 ‘성분을 안 보고 인재를 쓰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대학도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뛰어났지만 성분 때문에 쥐 죽은 듯 살았습니다. 제 언니도 대학에 가지 못했죠. 저와 사촌 동생들이 졸업할 때 돼서야 겨우 의대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도 김일성종합대학과 같은 최고 명문대는 꿈도 못 꿨죠.”박 원장은 의대에서 한의학을 전공했다. 타의로 진학했지만 대학에서도 1등은 이어 갔다. 당시 북한 의대는 우수 학생을 추려 학업과 연구를 병행시키고 대학 졸업과 함께 석사 학위를 주는 과정이 있었다. 한 해 400명 졸업생 중 박 원장을 포함해 석사까지 취득한 졸업생은 4명에 불과했다. 성분 제약 속에도 의대 엘리트 코스를 밟은 박 원장은 졸업 후 북한의 비참한 사회 현실과 열악한 의료 환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북한에서는 의대를 졸업하면 정부가 배정하는 병원에서 일해야 한다. 박 원장은 내과에 배치됐다. 당시는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북한 경제가 최악이던 가운데 기근과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제 첫 번째 환자는 쥐가 매개하는 전염병인 출혈열 환자였습니다. 발병 2~3일 내에 수액만 강력 투여하면 사망하지 않는 병이었죠. 제가 출혈열이라고 진단했는데 다른 의사들이 안 믿었습니다. 남한에선 흔한 수액을 투여하면 그만이지만 북한에선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 신중을 기한 겁니다. 갓 졸업한 저를 우습게 본 것도 있을 거고요. 결국 환자는 숨졌습니다. 서른둘밖에 안 된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장례식에 가 보니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엄마 죽은 줄도 모르고 길에 나와 놀고 있더라고요. 그때 충격을 받아 며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습니다.” 결국 박 원장은 탈북을 결심한다. “의대에서 죽도록 공부하며 어떤 환자가 와도 다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부풀어서 병원에 출근했는데 처방을 하면 약이 없습니다. 약이 없어 죽어 간 환자가 너무 많습니다. 성분이 안 좋아서 인정은 못 받고 이용만 당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학 때부터 하던 연구도 마저 하고 싶었습니다.” 2007년 남한에 도착한 박 원장은 생각지도 못한 벽에 부딪힌다. 북한에서 취득한 자격이 인정되지 않아 남한에서 다시 한의사 국가고시를 봐야 했던 것이다. 낮에는 파출부 등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힘들게 모은 자료로 공부하던 박 원장은 두 차례 낙방 끝에 2011년 남한 한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한의원을 열었다. 탈북민 한의사로서 수차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대한한의사협회가 운영하는 한의진료 전화상담센터에서 주말 자원봉사를 하며 한의혜민대상 공로표창 대상도 받았다. 박 원장은 북한에서 한의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양방 내과에서 근무했다. 북한에서는 양의학과 한의학 전공생에게 양·한방을 모두 가르친다. “북한 양의사는 한의학의 기본을 이해하고 한의사도 양의사 못지않게 양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북한 의료 체계가 ‘양진한치’, 양방으로 병을 진단하고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원칙에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의학 교육과 의료 시스템은 양방과 한방을 이원화하고 있는데 동서 의학의 장점을 두루 취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양·한방을 모두 아는 전문가가 환자 상태에 따라 최선의 치료 방법을 판단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는 그런 전문가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환자들은 양의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며 정부도 보험 재정을 낭비하게 돼 안타깝습니다.” 북한에서 전염병이 극심했던 시기에 의사로 근무했던 박 원장은 북한이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의료 자원이 부족하기에 전염병이 발생하면 감염원과 감염 경로를 확실하게 차단한다”며 “독재 정권이기에 환자를 정확하게 고립시키고 완치될 때까지 감금하다시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으로선 내부에서 전염병이 발생하면 통제가 어렵겠지만 코로나19처럼 외부에서 유입되는 전염병은 국경 봉쇄만 하면 되니 차단하기 쉬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북한에 가장 시급히 지원해야 할 물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원장은 ‘쌀’이라고 답했다. “북한이 중국을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해 왔는데 국경을 봉쇄하면서 식량난이 심해졌습니다. 쌀값이 10~20배는 뛰었다고 합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게 아니라 굶어서 죽게 생겼다는 말도 나온다고 합니다.” 박 원장은 지난 2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이었던 미래한국당의 공천관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한국당 공관위가 내놓은 비례대표 후보 명단이 모당 미래통합당의 반발로 백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다고 한다. “집안 성분보다는 능력에 따라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갈망해 남한에 왔는데 남한 사회도 점점 안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느껴 공관위에 참여했습니다. 공관위원들이 밤을 새우며 지원자 500명의 서류를 다 읽고 채점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하루아침에 공관위가 해산되는 걸 보고 권력의 무자비함을 느꼈습니다. 공관위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소신을 지켰기에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박 원장은 경희대 한의대 석사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 현재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인삼에서 추출한 성분의 대장암 치료 효과를 연구한 석사 논문은 지난 4월 SCI급 학술지에 등재됐다. 박사 논문도 한약재 성분의 항암 효과를 주제로 할 계획이다. 박 원장의 아버지는 그가 대학 3학년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암을 끝까지 연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제 인생은 의료인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남한에서 죽도록 공부를 하며 이런저런 고난을 겪었지만 저의 희로애락은 언제나 의료와 의학에서 나왔습니다. 가장 기뻤던 일도, 가장 슬펐던 일도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탈북민이라고 신기해서 주목받는 게 아니라 실력 있고 환자에게 사랑받는 한의사로, 한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중국 창어 5호 탐사선 달 표면에 착륙, 암석 수집 나선다

    중국 창어 5호 탐사선 달 표면에 착륙, 암석 수집 나선다

    중국이 일주일 전 발사한 무인 달 탐사선 창어(嫦娥) 5호가 1일 밤 11시쯤 달 표면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고 중국국가우주국(CNSA)이 밝혔다. 창어 5호는 지난달 24일 오전 4시 30분(이하 현지시간) 하이난(海南)성 원창(文昌) 우주발사장에서 최신 운반로켓 창정(長征) 5호 야오(遙)-5에 실린 채 발사됐다. 지난해 1월 인류 최초로 창어 4호 탐사선을 달 뒷면에 착륙시키고 올해 7월 자국 최초의 화성탐사선 톈원(天問)-1호를 쏘아 올린 데 이어 2년 사이 세 번째 우주 탐사 계획에 나선다. 이날 달 착륙 모습은 일주일 전 발사 때와 달리 생중계하지 않고 착륙 뒤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녹화 중계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수석 과학 담당 토머스 저부첸은 국제적인 연구 공동체가 어느 나라가 달에서 뭔가를 가져오든 궁극적으로 이것을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달 샘플을 수집해 지구로 돌아오는 임무는 1960~1970년대 미국과 옛 소련 이후 40여년 만이며, 중국은 미국과 옛 소련에 이어 세 번째로 임무 수행에 도전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달에서 샘플을 가져온 것은 1976년 옛 소련의 루나 24호의 200g이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창어 5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인류가 찾지 않았던 달의 ‘폭풍의 바다’ 지역에서 2㎏의 샘플을 모으게 된다. 이에 견줘 미국은 1976년 170g을 시작으로 아폴로 탐사 전체를 통틀어 달에서 382㎏의 암석과 토양들을 지구에 가져왔다. 두 나라가 가져온 샘플을 합쳐도 400㎏이 채 되지 않았다. 적어도 30억년 전의 비밀을 품은 것이 달의 암석들인데 이번에 창어 5호의 무인 탐사선은 13억년 전에 화산 분출이 있었던 달 북위 40도의 화산 지대 `몽스 륌케르‘(Mons R?ker)에서 토양 샘플을 수집한다.중국은 2013년 처음 달 착륙에 성공한 뒤 10년 안에 달에서 샘플을 가져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창어 5호 탐사를 통해 달의 화산 활동이 얼마나 오래 이어져 태양 방사선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자기장이 언제 소멸됐는지 규명하길 기대하고 있다. 달 샘플 수집은 며칠 밖에 걸리지 않아 창어 5호는 네이멍구 초원으로 귀환하게 된다. 소행성에서 시료를 채취해 지구로 가져오는 일은 일본이 앞서 있다. 지난해 4월 지구에서 3억 4000만㎞ 떨어진 소행성 ‘류구’에서 탐사선 ‘하야부사2’가 시료를 채취했으며 올해 12월 귀환한다. 앞서 또 다른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1’도 2010년 미립자 1500개를 갖고 지구로 돌아온 바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혼날까봐” 코에 넣은 동전 53년 만에 꺼낸 남자

    “혼날까봐” 코에 넣은 동전 53년 만에 꺼낸 남자

    콧구멍에 넣은 동전을 잊고 있다가 53년 만에 꺼낸 남자가 있다. 30일 메트로 등 외신에 따르면 59세 러시아 남성이 호흡곤란으로 병원을 찾았고, 스캔 결과 비강(鼻腔)에서 예상치 못한 물체가 발견했다. 그는 6살 때 자신의 오른쪽 콧구멍에 동전을 집어넣었단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엄한 어머니에게 혼날까 봐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자신 또한 곧 잊어버렸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나 이 남성은 호흡곤란으로 병원을 찾았고, 의료진은 53년 만에 수술을 진행했고 남성의 코에서 동전을 빼냈다. 53년 전 당시 1페니(약 15원) 정도의 가치가 있었던 이 동전은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사용이 중단된 것이다. 수술을 집도한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그는 수술 사흘 만에 퇴원했고, 완전한 호흡을 되찾았다”고 밝혔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트럼프의 이간질 리더십과 선택적 침묵/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트럼프의 이간질 리더십과 선택적 침묵/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까지 사상 두 번째로 많은 7400만명의 지지를 받고도 재선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이 그를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규정했지만, 트럼프를 지지한 미국인이 4년 전보다 1100만명이 늘어났다. 친구인 동맹을 갈취하는 것은 물론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자국민이 27만명 넘게 사망하는 등의 악정(惡政)에도 트럼프의 위력이 가공할 만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줬다. 하지만 미국 의회도 실패한 트럼프 탄핵에 미국인이 사상 유례없는 열기로 나섰다. 미국이 트럼프를 해고한 가장 큰 이유는 자국민을 적으로 삼는 이간질 리더십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실, 미소 냉전에서 이긴 미국은 1990년대 이후 내부의 역량을 모을 외부의 적을 잃어버렸다. 내부 지향적으로 변한 미국은 소위 ‘문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 윤리를 강조하는 보수파는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샐러드볼’을 강조하는 리버럴은 문화적 다양성을 중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전선은 총기 규제와 낙태 문제에서 나아가 동성애와 마약 합법화, 오바마 케어 등에 이르는 이슈로 가히 이념 전쟁이다. 이런 의제들은 미국의 정체성 문제이니 논쟁을 거듭하면서 철학적, 문화적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자양분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새로운 적을 만들어 냈다. 현실 정치인은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없는 적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 현실인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가 외부의 적을 만든 것을 딱히 비난할 수만은 없다. 트럼프가 만든 대표적인 적은 중국이다. 냉전시대 소련의 자리에 중국을 치환시켰다. 실제로 미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도전하는 중국과 신냉전을 치르고 있다. 특히 저학력의 백인 미국인은 자신들의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가 중국 때문에 사라진다고 여긴다. 배설구로써 미국인들의 지탄 대상이 여기까지였다면 트럼프가 재선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트럼프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적은 바로 자기 나라 국민이다. 이미 미국민이 된 히스패닉과 소수 인종을 범죄자 취급했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진보를 극좌로 몰아붙였다.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는 절박한 외침에 백인 우월주의자인 트럼프는 “증오”라고 몰아붙였다. 그가 올해 독립기념일 ‘큰 바위’ 얼굴인 러시모어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 영웅들이 나치와 파시스트, 공산주의에 승리했듯 “지금은 극좌, 무정부주의자, 약탈자들을 물리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을 분열시켜 서로 싸우게 한 트럼프 리더십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으로 판단한 미국인 8000만명이 그를 심판한 것은 더욱 놀랍다. 트럼프의 이간질 리더십의 무기는 8800만명의 추종자를 둔 트위터다. 그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국제회의 도중에도 국민을 편가르는 주장을 날리다 요즘엔 “투표 사기”라는 억지를 부린다. 트럼프의 거짓말에 이골이 난 트위터가 오죽하면 그의 트윗을 숨김 처리까지 할까. 트럼프 추종자들은 이성이 마비된 광신도처럼 언론이나 전문가의 과학적 견해보다 그의 트윗을 닥치고 믿는다. 국민을 이간질하는 리더십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적폐니 토착왜구로 편가르고, 광화문 집회 참석자인 국민을 ‘살인자’로 비난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도 분열적이다. 트럼프의 시도 때도 없는 트윗과는 달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이전투구와 같은 현안을 정리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침묵하는 것도 이간질 리더십이다. 서로 싸우게 하는 리더십은 민주주의 위기라고 판단해 트럼프가 버림받은 것을 우리 정치권은 곱씹어야 한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민주주의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지켜내는 것이란 것을 보여 줬다. chuli@seoul.co.kr
  • 中 창어 5호, 달 궤도 진입 성공!

    中 창어 5호, 달 궤도 진입 성공!

    역사적인 달 샘플 채취 위한 첫단계 돌입 중국의 야심찬 달 탐사선 창어 5호가 달 궤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창어-5의 역사적인 미션은 달의 암석 샘플을 채취해서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다. 8200㎏의 창어-5는 지난 11월 24일 중국 하이난섬 원창 우주발사장에서 창정(長征) 5호 로켓에 실려 발사된 후 112시간의 비행 끝에 28일 달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창어-5 궤도선은 28일 오후 8시 58분(한국시간) 달의 고도 400㎞ 상공에서 주엔진을 점화했다고 중국 달탐사 프로그램 관계자가 점화 한 시간 뒤에 발표했다. 탐사선은 달의 인력권에 들어가기 위해 약 17분간 3,000뉴턴 엔진을 분사해 우주선의 속도를 낮추었다. 이는 달 암석 샘플을 채취해 12월 중순 지구로 귀환하는 창어-5의 23일간 미션에서 중요한 단계를 차지하는 기동이다. 창어-5가 이 임무에 성공하면 이는 1976년 구소련의 루나 24호의 달 샘플 채취 후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쾌거로, 중국은 미국과 구소련에 이어 세 번째로 달 암석 채취에 성공한 국가가 된다. 창어-5의 단기간 미션은 액션으로 가득 차 있다. 우주선은 11월 28일께 달 궤도에 도착한 다음, 하루 정도 후 4개의 모듈 중 2개(착륙선과 상승 장비)를 달 표면에 내려보낸다. 착륙선은 거대한 화산 평원인 폭풍의 바다에 있는 룀케르 산 지역에 착륙할 예정이며, 1969년 NASA의 아폴로 12호 등이 탐사한 지역들에 대한 탐사도 미션에 포함되어 있다. 달 샘플을 실은 창어-5 서비스 모듈은 지구로 귀환하여 12월 16-17일 양일 간에 예정된 터치 다운 직전에 캡슐을 내려놓을 것이다. 창어-5 미션은 지구촌 우주 마니아들에게도 널리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우주선이 달로 날아가는 동안 무선통신 동호인들은 우주선을 추적하고, 심지어 지구로 전송된 데이터를 해독하여 태양 전지판에 비치는 햇빛을 보여주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그때 그 우크라이나산 산딸기, 정말 안전했을까

    그때 그 우크라이나산 산딸기, 정말 안전했을까

    캐나다 국경수비대원들이 우크라이나산 산딸기를 싣고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트럭 한 대를 멈춰 세웠다. 방사선 탐지기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수비대원들은 산딸기에서 추출된 방사선량이 허용 범위 안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입국을 허용했다. 이는 2018년 한 방사선 연구단체가 캐나다 국경수비대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그런데 그 허용 범위란 게 정말 안전한 수치였을까. 핵은 무서운 존재다. 형체도 없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인다. 더 무서운 건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인간의 자세다. 가장 투명해야 할 핵 관련 사항들은 거의 전부가 기밀이거나 거짓이거나, 둘 중 하나다.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는 이 같은 핵과 관련된 거짓과 기만의 역사를 들춰 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1986년 옛 소련 시절(현 우크라이나)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인류 최악의 핵 재앙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의 지도자와 사업가들은 재해 규모를 지독히 축소해 발표했고, 고도의 방사선 속으로 소방관들을 투입했으며, 방사능 수준 등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체르노빌과 딱 판박이다. 저자는 한국도 안심할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치’라 불러도 좋을 만큼 100여명의 공무원이 무더기 기소됐던 2012년 영광원자력발전소(현 한빛원자력발전소) 부품 인증 사건 등 거짓과 무지가 부른 위기의 순간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그 무엇으로도 방사성 동위원소의 흔적을 지울 순 없다. 하지만 산딸기는 동위원소를 추출하는 일을 아주 잘한다. 버섯, 나무도 방사성 동위원소의 훌륭한 저장소다. 그런데 이들이 저장했던 방사선을 배출하는 ‘폭탄’으로 바뀔 때가 있다. 인간의 입으로 들어갔거나 산불이 났을 때다. 이들을 ‘폭탄’이 아닌 우군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나 안다. 이를 직시하고 실행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저자가 주문하는 것도 바로 이 내용이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러 해군 “미 구축함 영해서 몰아냈다” 미 해군 “그런 일 없는데”

    러 해군 “미 구축함 영해서 몰아냈다” 미 해군 “그런 일 없는데”

    러시아 해군이 극동 연해주 인근의 자국 영해를 침범한 미국 구축함을 몰아냈다고 러시아 국방부가 24일(이하 현지시간) 밝혔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태평양함대 소속 대잠함 ‘아드미랄 비노그라도프’가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표트르 대제 만에서 미 해군 구축함 존 S 매케인 함의 러시아 영해 침범을 중단시켰다”고 발표했다. 존 매케인함은 표트르 대제 만의 러시아 영해를 2㎞ 정도 침범했으며 이에 러시아 군함 아드미랄 비노그라도프가 국제통신채널을 통해 공격 기동을 경고하자 곧바로 공해 상으로 돌아갔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존 매케인함은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하는 미 제7함대 소속인데 당시 러시아 영해 인근을 항해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군함은 2017년에 싱가포르 근처 해역에서 유조선과 충돌해 10명의 선원이 희생된 일이 있다. 아드미랄 비노그라도프 호 역시 지난해 동지나해에서 미국 크루즈 유람선과 충돌해 폭발 직전까지 갔다. 당시 이 사고를 두고도 두 나라는 서로 비난했다. 미 해군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존 매케인 함이 쫓겨난 것도 아니라고 해명했다. 문제의 해역은 일본과 러시아, 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해에 속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바다와 공중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다 충돌 직전까지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영국 BBC는 다음날 뒤늦게 전했다. 1988년 옛 소련의 프리깃함 베차베트니가 흑해에서 미국 유람선 요크타운을 들이받았는데 해역 침범을 이유로 들었다. 모스크바와 워싱턴 관계는 지금까지도 긴장 상태가 유지되고 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아직도 미국 대선을 승리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 축하의 뜻을 전하지 않고 있다. 또 내년 2월 폐기되는 핵무기 감축협정을 대체할 방법을 타결짓지 못하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글로벌 In&Out] 러시아가 존경하는 김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김청풍/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러시아가 존경하는 김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김청풍/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 박사과정

    최근 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연구하며 독일의 나치즘과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항한 영웅들에 대한 기억을 후대에게 전승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되면서 소련 시기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그중 타향에서 태어나 온갖 고난을 겪으며 살았던 ‘김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의 생애가 관심을 끌고 있다. 김 니콜라이는 러일전쟁 중인 1904년 11월 18일 제정러시아가 다스렸던 연해주 지역에 이주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한국어 이름은 김청풍이다. 13세가 됐을 때 그는 10월 사회주의 혁명 소식을 듣게 되고, 볼셰비키에 가담해 극동 지역에 쳐들어간 일제가 지지했던 백위파와의 투쟁에 참가했다고 한다. 이후 러시아 내전이 끝나자 농업에 종사하면서 중학교에 다녔다. 1925년 10월 소련군에 입대하고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보병학교를 졸업한 후 극동 지역에 돌아가 중대장을 지냈다. 1928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하고 1929년에는 중국 만주 지역의 군벌이었던 장쉐량의 도발로 인해 발생한 중동철도분쟁에 참전했다. 전투 경험을 쌓은 김청풍은 군인으로 성장했으며, 1938년 소련 최고의 군사학교인 프룬제 군사대학을 졸업하고 1939년 소련·핀란드 전쟁에 참전했다. 같은 해 소련에서 진행된 대숙청에 휘말렸으나 무죄 판결을 받아 1940년 2월에 군대에 복귀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소련을 침략했다. 소련군은 큰 피해를 입어 후퇴하고 있었으며 독일군은 그 기동력을 이용해 소련군 부대들을 포위, 섬멸하고 있었다. 참으로 시련의 시기였다. 만일 일제의 동맹국인 독일이 독소전쟁에서 이겼다면 전 세계가 파시즘이라는 암흑시대에 빠졌을 것이고 한반도의 해방도 없었을 것이다. 1941년 7월 15일 독일 육군 기갑전력의 창시자이며 제2차 세계대전의 명장인 구데리안이 지휘했던 부대들은 소련 서부전선군의 일부를 포위하려고 했다. 위험성을 인식한 소련군 사령부는 그 부대들을 소지강으로 옮길 것을 결정했으나 이용할 수 있는 다리가 크리체프라는 도시에 집중돼 있어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소련군 사령부는 시간을 벌기 위해 크리체프로 향하던 부대를 멈추고 서쪽으로 약 4㎞ 떨어진 소콜니치라는 마을로 이동해 적의 공격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청풍이 지휘했던 137사단 409보병연대의 대대였다. 김청풍의 부대는 600명과 45㎜ 경대전차포 4대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밀려오는 기갑전차 사단을 막아야만 했다. 7월 17일 오전 3시 30분 수개의 기계화보병대대, 공병부대, 수대 전차 그리고 중포(重砲)의 지원을 포함한 독일군 전투단이 공격에 들어갔다. 같은 날 오전 5시쯤 전투단의 선두 부대가 김청풍 부대와 부딪쳤다. 하지만 김청풍은 지리적 조건을 잘 이용해 방어선을 뚫으려던 독일군 선두 부대를 후퇴시켰다. 김청풍 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은 전투단장인 에버바흐 중령이 중포를 활용했으나 맹포격을 받은 김청풍은 이를 버티고 오전 8~9시가 돼서야 후퇴하기 시작했다. 짧은 전투였지만 4시간이나 벌어 준 김청풍 대대 덕분에 소련군의 주력은 성공적으로 소지강을 건너갔다. 크리체프에서 또 하나의 짧은 전투를 벌이고 소지강의 동쪽 기슭으로 건너가 교량을 폭파한 김청풍 대대는 독일군 명장의 부대들을 막음으로써 수많은 소련군인을 구했고 나치독일 패망에 크게 기여했다. 그 후 김청풍은 독소전쟁의 마지막 날까지 용감하게 싸웠고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 해방작전에 참여했다. 그는 1946년 제대 후 극동 지역으로 돌아가 한인집단농장 농장장을 지냈다고 한다. 1976년 12월 7일 별세해 한반도에서 약 550㎞ 떨어진 비킨이라는 도시에서 군장으로 안장됐다.
  • ‘달나라로 간 선녀 찾을까’ 中 무인 탐사선 창어 5호 발사

    ‘달나라로 간 선녀 찾을까’ 中 무인 탐사선 창어 5호 발사

    중국이 달 표면에서 암석 등을 채취해 지구로 돌아오는 임무를 수행하고자 무인 달 탐사선 창어 5호를 발사했다. 1970년대 미국과 구소련이 경쟁적으로 달 연구에 나선 뒤로 40여년 만이다. 24일 중국 국가항천국은 “이날 오전 하이난 원창 우주발사장에서 창어 5호가 운반체인 창정 5호 로켓에 실려 예정된 궤도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창어는 중국 고대 전설에서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난 선녀로 달의 별칭이다. 구소련은 1959년 ‘루나’ 2호 탐사선을 보내 세계 최초로 달 표면 착륙에 성공했다. 미국도 이에 질세라 1969~1972년 아폴로 탐사선을 6차례 발사해 달에서 암석과 토사 시료를 가져왔다. 중국이 달 표본을 지구로 가져오려는 시도는 처음이다. 창어 5호는 인류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달 북서부 ‘폭풍우의 바다’에 착륙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형상 탐사, 지질 배경 조사 등을 진행한 뒤 암석과 토양시료 등 2㎏을 채취한다. 과학자들은 해당 지역의 암석·토양이 기존 샘플보다 생성 시기가 짧아 달의 화산활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탐사는 지구 출발부터 귀환까지 23일이 걸린다. 중국은 2013년 달 착륙에 성공했다. 지난해 1월 창어 4호 탐사선은 처음으로 달 뒷면에 착륙시켰고, 올해 7월에도 첫 화성 탐사선 톈원 1호를 쏘아 올리는 등 ‘우주굴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10년 안에 로봇 기지국을 만들어 달 남극 지역도 무인 탐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를 실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중국도 달 암석 가져온다 - 역사적인 달착륙선 창어 5호 발사

    중국도 달 암석 가져온다 - 역사적인 달착륙선 창어 5호 발사

    1976년 이래 약 반세기 만에 최초로 달 암석 채취를 위한 달착륙선을 실은 로켓이 발사되었다. 중국의 무인 달착륙선 창어(嫦娥) 5호가 24일 오전 5시 30분(한국시간) 하이난섬 원창 우주발사장에서 창정(長征) 5호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던 창어 4호의 뒤를 이어 창어 5호는 달 앞면에 착륙한다. 주임무는 태양계 진화의 비밀을 풀 달 암석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창어 5호는 달 암석 샘플을 가지고 12월 중순께 귀환하게 된다. 만약 창어 5호가 이 임무에 성공하면 이는 1976년 구소련의 루나 24호의 달 샘플 채취 후 처음으로 중국은 미국과 구소련에 이어 세 번째로 달 암석 채취에 성공한 국가가 된다. 창어 5호의 단기간 미션은 액션으로 가득 차 있다. 8200㎏의 우주선은 오는 28일께 달 궤도에 도착한 다음, 하루 정도 후 4개의 모듈 중 2개(착륙선과 상승 장비)를 달 표면에 내려보낸다. 중국 관계자들은 창어 5호 미션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착륙선은 거대한 화산 평원인 폭풍의 바다에 있는 룀케르 산 지역에 착륙할 예정이며, 1969년 NASA의 아폴로 12호 등이 탐사한 지역들에 대한 탐사도 미션에 포함되어 있다.고정 착륙선은 카메라, 지상 침투 레이더 및 분광계로 주변 환경을 조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주된 임무는 약 2㎏의 달 물질을 채취하는 일로, 그중 일부는 지하 2m에서 파낼 것이다. 이 작업은 2주, 달의 기준으로는 하루 동안 수행된다. 창어 5호 착륙선은 태양 에너지로 작동하므로 밤이 되면 작동할 수 없다. 달의 룀케르 산 지역은 12억 년 전에 형성된 암석을 품고 있다. 창어 5호가 이 암석 샘플을 갖고 온다면 달의 역사 후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구와 태양계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9년에서 1972년 사이에 아폴로 우주비행사가 가져온 382㎏의 달 암석은 훨씬 더 오래되어 더 오랜 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창어 5호 착륙선은 샘플을 상승 운반체로 옮긴 후 달 궤도로 발사하여 서비스 모듈과 그것에 부착된 지구 반환 캡슐에 달의 물질을 적재하고, 서비스 모듈은 지구로 귀환하여 12월 16~17일 양일 간에 예정된 터치 다운 직전에 캡슐을 내려놓을 것이다. NASA의 아폴로 캡슐과 같은 우주인이 탄 캡슐에는 강력한 열 차폐가 필요했지만, 창어 5호는 ‘도약식 재진입’을 수행하여 감속을 위해 대기에 한 차례 바운싱한 후 내몽골에 착륙할 예정이다. 중국 최초의 달 샘플 반환 미션인 창어 5호는 중국 신화에서 달의 여신 항아(姮娥)의 이름을 딴 ‘창어 로봇 달탐사 프로그램’의 여섯 번째이자 가장 야심찬 임무다. 중국은 2007년과 2010년에 창어 1호와 창어 2호 궤도선을 각각 발사했으며, 창어 3호는 무인 달 탐사차 위투(玉兎ㆍ옥토끼)를, 창어 4호는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창어 5호는 최근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각국의 우주 물질 샘플 반환 미션의 일환이다. 오는 12월 6일에는 일본의 하야부사-2 임무에서 수집한 소행성 류구의 물질 샘플이 호주에 착륙할 예정이며, NASA의 오시리스-렉스(OSIRIS-REx) 탐사선은 지난달 소행성 베누의 샘플을 다량 채취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그 물질은 2023년 9월에 지구로 돌아올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창어 5호 임무는 중국이 2030년대 달에 연구기지와 인간 거주지를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최신 단계”라고 평가했다. NASA 관계자도 “이것은 대단한 임무다. 중국은 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중국 24일 창이 5호 발사, 달에서 뭔가 가져오는 세 번째 국가 야망

    중국 24일 창이 5호 발사, 달에서 뭔가 가져오는 세 번째 국가 야망

    1970년대부터 달의 암석 조각을 가져오고 싶어 했던 중국이 24일 마침내 그 염원을 풀기 위한 첫 장정에 나선다고 영국 BBC가 22일(현지시간) 전했다. 무인 우주탐사선 창이 5호를 실은 로켓 장정 5호 로켓이 하이난성 원창(文昌) 우주기지에서 발사된다. 만약 탐사가 성공해 암석 조각을 지구에 가져오면 미국과 옛 소련에 이어 세 번째 나라가 된다. 가장 마지막으로 달에서 샘플을 가져온 것은 1976년 옛 소련의 루나 24호였다. 창이 5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인류가 찾지 않았던 달의 ‘폭풍의 바다’ 지역에서 2㎏의 샘플을 모으게 된다. 이에 견줘 미국은 1976년 170g을 시작으로 아폴로 탐사 전체를 통틀어 달에서 382㎏의 암석과 토양들을 지구에 가져왔다. 중국은 2013년 첫 달 착륙에 성공한 뒤 10년 안에 달에서 샘플을 가져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창이 5호 탐사를 통해 얼마나 달의 화산 활동이 오래 지속돼 태양 방사선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자기장이 언제 소멸됐는지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남성성만 부르짖는 사회 ‘섬세한 몸짓’으로 맞서다

    남성성만 부르짖는 사회 ‘섬세한 몸짓’으로 맞서다

    ‘조지아’ 하면 애틀랜타가 위치한 미국 남동부 주를 떠올리기 쉽다. 커피 브랜드가 생각나는 사람 역시 적지 않겠다. 또한 국가 이름이기도 하다. 러시아터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댄, 소련에서 1991년 독립한 나라.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과거 공산권에 속한 신생국가이기에 그러한데,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감독 레반 아킨은 스웨덴에서 나고 자라 영화계에서 활동했다. 스웨덴인이 왜 조지아 영화를 만들었나 싶지만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그의 부모가 조지아 출신이라 그렇다. 레반 아킨은 어린 시절부터 조지아를 드나들며 그곳을 주변인으로서 관찰했다. 그런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13년이다. 그는 조지아의 문제를 지켜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해결하는 데 힘쓰기로 결심한다. 거리 두기에서 현실 참여로의 변모는 조지아에서의 성소수자 권리 인정 행진에서 비롯됐다. 이들 퍼레이드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수천 명의 군중에게 공격받은 것이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다. 2019년 조지아에서 개봉할 당시 곡절도 많았다. “동성애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은 조지아인과 기독교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이자 교회에 대한 공격”이라는 반대 시위가 거셌다. 그래도 표는 매진됐다. 영화를 통한 레반 아킨의 현실 참여가 성공을 거뒀다는 뜻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퀴어 영화 제작 자체가 사건이 되는 문화권에서 최초로 퀴어 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퀴어뿐 아니라 영화에도 같이 방점을 찍을 정도의 완성도를 가졌다. 그 중심에 ‘춤’이 놓인다. 여기서 춤은 조지아 무용이다. 타악기 리듬에 맞춰 절도 있는 동작을 취하는 조지아 무용은 조지아의 전통이자 자랑스러운 민족성을 상징한다. 조지아의 얼이 서린 춤을 남녀노소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문젯거리가 있다. 조지아 무용을 옛날 방식 그대로만 이어 나가려는 고루함이 그것이다. 그 탓에 배제당하고 상처 입는 사람들이 생겨난다.선생은 조지아 무용을 “남성적 춤”이라고 규정하면서 “약함은 설 자리가 없다”고 강변한다. 보통 남성 무용수와 달리 섬세한 몸짓 언어를 구사하는 메라비(레반 겔바키아니 분)에게 하는 말이다. 남성은 남성답게(?) 힘찬 몸짓 언어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요에 그는 지쳐 간다. 이런 관습을 굳이 따를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은 동료 이라클리(바치 발리시빌리 분)를 만나면서부터다. 사랑의 여러 효과 가운데 하나는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니까. 메라비는 조지아가 가하는 억압에 조지아 전통이자 민족성의 대표격인 무용을 전유해 맞선다. 춤추며 싸운 기록. 이를 담아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영화가 됐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사설] 국익 우선의 냉엄한 국제외교 현실 보여준 아르메니아 패전

    한국 언론이 온통 국내 정치와 미국 대선에 매몰된 사이, 한반도에서 직선 거리로 7000㎞ 가까이 떨어진 코카서스 지역 한켠에서 벌어진 전쟁이 한국 외교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분쟁지역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놓고 지난 9월말부터 지난주까지 44일간 싸웠다. 제주도의 2배 반 크기인 이 땅은 국제법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이지만, 아르메니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지만, 이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가 져 아제르바이잔에 주요지역을 넘겨주게 됐다. 두 나라의 표면적 국력을 비교하면 아제르바이잔의 승리가 당연하다. 아제르바이잔이 국내총생산(GDP) 472억 달러에 세계 군사력 순위 64위인 반면, 아르메니아는 GDP 134억 달러에 군사력 111위이다. 아제르바이잔이 병력 6만 6000여명, 탱크 220대, 전투기 37대를 보유한 반면 아르메니아는 병력 5만 1000여명, 탱크 165대, 전투기 18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쟁은 제3국의 지원 여부에 따라 판세가 달라지곤 한다. 만약 아르메니아가 주요 국가의 지지를 받았다면 전쟁의 양상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편에 설 법한 나라들이 적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독교 국가인 서방국들은 대부분 입으로만 휴전을 촉구하면서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드물게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마저 중립을 밝혔다. 심지어 이슬람 세계의 ‘공적’인 이스라엘은 중립은 커녕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을 사실상 지원했다. 서방국이 아르메니아를 외면한 주된 이유는 아제르바이잔의 막대한 지하자원 탓이다. 조지아는 아제르바이잔의 천연가스를 송유관을 통해 유럽으로 연결하는 대가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이스라엘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동시에 아제르바이잔은 자국의 무기를 수입하는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미국은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데다 아제르바이잔의 석유가 소련의 송유관 팽창 정책을 저지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수수방관했다. 일본·중국·러시아 등 내로라 하는 강대국에 둘러쌓인 한국은 아르메니아의 패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력(GDP)에 6위권 군사력을 보유한 한국은 무시당할 국력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국제외교에서 어느 나라도 명분보다는 철저히 실리를 따진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주요 강대국 중 어느 나라든 한국을 외면할 수 없도록 가치와 힘을 키워야 한다.
  • 22년 만에 새 옷 입은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22년 만에 새 옷 입은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수용소의 비인간적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려 충격을 던진 ‘수용소 군도’가 2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나왔다.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이면서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45년부터 11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며 보고 겪은 일을 생생하게 기술하면서 20세기 기록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저작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1973~1976년 발표한 원작의 1988년 국내판 초판 번역(김학수)을 유지하되, 오류를 바로잡고 새 한글맞춤법과 외래어표기법을 반영한 6권짜리 개정판을 오는 20일 출간한다고 밝혔다. 원서 도판 50여점을 이번에 처음 수록했다. 재소자 시절 저자와 수용소 내부 모습, 총살된 사람들의 얼굴 등도 실렸다. 책에는 저자는 물론 200명 넘는 죄수들의 이야기와 편지가 담겨 있다. 죄와 관계없이 수용소에 끌려온 이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현장을 파헤치며,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돼 3000만부 넘게 팔렸다. 최초이자 최대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1918년 러시아 키슬로보츠크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로스토프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병 장교로 참전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난한 사실이 발각돼 징역형에 처해졌다. 첫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1962년 발표했고,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수용소 군도’ 발표 이후 1974년 독일로 추방됐고, 1976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94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2008년 8월 모스크바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인권 짓밟은 독재 소련…‘수용소 군도‘ 22년 만에 개정판

    인권 짓밟은 독재 소련…‘수용소 군도‘ 22년 만에 개정판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 수용소의 비인간적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려 충격을 던진 ‘수용소 군도’가 2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나왔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1973~1976년 발표한 원작의 1988년 국내판 초판 번역(김학수)을 유지하되, 각종 오류를 바로잡고 새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반영한 6권짜리 개정판을 20일 출간한다고 밝혔다. 원서의 도판 50여 점을 이번에 처음으로 수록했다. 재소자 시절 당시 저자와 수용소 내부 모습, 총살된 사람들의 얼굴 등도 담겼다. 책은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이면서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45년부터 11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며 보고 겪은 일을 생생하게 기술했다. 저자는 물론 200명 넘는 죄수들의 이야기와 편지를 담아낸 방대한 분량의 작품이다. 죄와 관계없이 수용소에 끌려 온 이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시스템을 파헤친 20세기 기록 문학의 정수로 꼽히며, 발간 이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돼 3000만부 넘게 팔렸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정권의 비윤리성과 부도덕함, 이중성 등을 전 세계에 알려 최초이자 최대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1918년 러시아 키슬로보츠크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로스토프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병 장교로 참전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난한 사실이 발각돼 징역형에 처해졌다. 강제노동수용소 수감자의 하루를 그린 첫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1962년 발표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수용소 군도’ 발표 이후 1974년 독일로 추방됐고, 1976년에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20년간 망명 생활을 끝내고 1994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2008년 8월 모스크바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열린세상] 헨리 키신저와 중국/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특별공훈교수

    [열린세상] 헨리 키신저와 중국/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특별공훈교수

    중국이 주요 2개국(G2)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나라가 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대일로로 대변되는 중국의 야망은 유럽 대륙으로 손을 뻗고, 바다로는 남중국해와 스리랑카 넘어 유럽까지 거점을 만들고 있다. 일본 언론은 중국의 해병대가 본래의 모습을 숨긴 채 거점국가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같은 일을 상세하게 잘 아는 미국은 중국의 욕망을 무너뜨리려고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지만 힘이 약한 나라들은 중국이 투자하는 돈의 매력에 벗어날 수 없어 땅을 내어주고 중국은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미국을 상대로 싸울 만큼 경제력이 커진 배후에는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던 헨리 키신저가 그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미중 국교정상화를 키신저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도지사를 지냈던 이시하라 신타로는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그의 저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에서 미국과 중국이 국교정상화에 이르게 된 외교 비사를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물론 이 내용은 지금도 살아 있는 키신저의 회고록에도 똑같이 설명되어 있다. 1949년 마오쩌둥이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어떻게든 국제체제에 편입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면 중국 내의 자유와 민주, 인권이 신장될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국교정상화의 대화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자 키신저가 중국에 직접 날아가 몇 장의 첩보위성 사진을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에게 내어 놓자 중국은 아연실색 놀라고 만다. 그 사진들은 구소련과 중국의 우수리강 국경 분쟁 당시 사진인데 중국의 군인들이 안개가 자욱히 낀 날에 구소련이 모를 줄 알고 우수리강 가운데 있던 조그만 젠바오섬을 점령하고자 들어갔다가 구소련의 공격을 받고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키신저는 그 당시의 첩보위성 사진을 보여주며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면 중국이 원하는 인공위성 사진을 제공하겠다고 했고 우주에서 지구를 들여다보는 능력이 없었던 중국은 즉각적으로 국교정상화에 동의를 하며 개혁개방정책에 추진해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일당독재체제인 중국은 신속한 결정으로 경제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미국에 맞설 수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미국의 첩보위성에 놀란 중국은 우주 개발에 국력을 쏟아 자체 GPS인 베이더우를 구축하는 등 미국과 어깨를 겨누는 우주 선진국이 되었다. 큰돈을 벌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해 요녕함을 시작으로 순국산 항공모함을 계속 건조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중국은 미국에 정치·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국가가 되었고 아시아·태평양 영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 같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 내에서는 중국을 왜 저렇게 키워 놓아서 미국의 골칫덩어리가 되게 만들었는가라는 비판이 나오게 되고 키신저의 대중 외교전략이 과연 옳았는가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자신만이 중국의 힘을 뺄 수 있다고 믿고 앞으로는 그 어느 대통령도 중국의 힘을 뺄 수 없다는 각오로 대중국 정책 펼쳤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이 가능해짐에 따라 미국의 의도대로 패권적 중국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한국은 미국과 함께 행동할 수밖에 없으나 중국은 미국과 한국관계를 벌려 놓으려고 정치·경제적 압박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중국이냐 미국이냐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선택의 절대적 준거는 주한미군의 존재다.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온존하려면, 중국에 유화책 정도를 쓸 수밖에 없다. 외교 책략의 한계가 상존한다. 이런 한계에 직면했을 때는 올바른 판단을 위해 역사를 회고하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회고할 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했고 한국 전쟁에는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다. 1945년 이후 미국과 함께 평화와 번영을 일구었고, 세계 10대 무역국이 되었다. 키신저 즉, 미국이 중국을 국제사회로 나오게 했던 국교정상화가 옳았는지에 대한 해답은 먼 훗날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 테헤란에서 암살된 알카에다 2인자, 젊을 적 이집트 프로축구 선수

    테헤란에서 암살된 알카에다 2인자, 젊을 적 이집트 프로축구 선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2인자로 알려진 아부 무함마드 알마스리(57, 본명은 압둘라 아흐마드 압둘라)가 딸 미리암(28)과 함께 지난 8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 공작원들에 의해 암살됐다고 미국 정보 소식통들이 밝혔다. 놀라운 것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조직인 알카에다 수뇌부가 시아파 맹주 이란의 수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특종 보도한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전했다. 신문은 미국 정보 당국 소식통 네 명을 인용해 알카에다 창립 멤버 가운데 한 명이며, 현재 알카에다 수장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에 이어 2인자로 꼽혀온 알마스리가 미국의 의뢰를 받은 이스라엘 공작원들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탄 공격을 주도해 224명을 숨지게 한 인물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현상금 1000만 달러에 지명 수배돼 있었다. 딸 미리암은 9·11 테러 주모자로 2011년 미군의 비밀 작전에 의해 살해된 오사마 빈라덴의 아들인 함자 빈라덴과 결혼했으나 그녀의 남편도 지난해 7월 미군 작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스라엘 공작원 둘은 지난 8월 7일 오후 9시쯤 테헤란 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을 탄 채 알마스리 부녀가 탑승한 르노 L90 세단을 뒤쫓아가 권총으로 사살했다. 공작원들은 총탄을 다섯 발 발사했는데 네 발은 차 안의 운전석으로 향했고, 나머지 한 발은 근처 다른 차량에 박혔다. 사건 직후 이란 관영 언론들은 레바논 역사 교수 하빕 다우드와 딸 마리암이 숨졌다고 보도했고, 레바논 뉴스채널인 MTV과 소셜미디어에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다우드를 헤즈볼라 멤버라고 밝혔다고 전했는데 알마스리의 죽음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보당국은 알마스리가 2003년부터 이란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란과 사사건건 충돌했던 알카에다 2인자가 테헤란에 이토록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알카에다는 알마스리의 신변에 대해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으며 미국이나 이스라엘, 이란, 알카에다 등 어떤 나라도 그의 죽음을 공개하지 않은 점도 놀랍긴 한 가지다. 이란은 자국 내에 알카에다 대원이 없다며 NYT 보도 내용을 강하게 부인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이란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은 때때로 미디어에 거짓 정보를 퍼뜨려 이란과 알카에다 같은 조직을 연계하려고 한다”면서 “이는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조직의 범죄 행위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이라고 비난했다.한편 알마스리는 1963년 이집트 북부 알가르비야 지구에서 태어나 이집트 프로축구 1부리그 선수로 뛴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소련이 침공한 뒤 아프간을 돕기 위해 지하디스트의 길에 뛰어들었다. 10년 소련이 물러난 뒤 그는 이집트로 귀국하려 했지만 거부당하자 아프간에 남은 뒤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나 알카에다를 창립했다. 당시 170명의 발기인 가운데 일곱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1990년대 초 빈라덴과 함께 수단 하르툼을 여행하며 군사 세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군벌 영웅 무함마드 파라 아이디드 수하로 들어가 무반동포 발사 훈련을 반군들에게 시켰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 나온 1993년 미군의 모가디슈 작전 때 헬리콥터가 격추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마스리가 훈련시킨 성과였던 셈이다. 2000년 그는 알카에다 9인의 집행위원회 멤버에 올라 군사 훈련 책임을 떠맡았다. 동시에 아프리카 작전 책임을 맡아 2002년 케냐 몸바사 공격을 지시해 13명의 케냐인과 3명의 이스라엘 관광객 살해를 명했다. 2003년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란에 잠입해 초기에는 가택 연금에 처해졌으나 나중에는 자유롭게 나돌아다녔다. 2015년 이란당국은 알카에다 지도자 5명을 예멘에서 납치된 이란 외교관들과 교환했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위장 술책이었다고 미국 정보당국은 결론 내렸다. 나아가 아프간, 파키스탄, 시리아까지 자유롭게 여행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립 대테러 센터 국장 출신인 니콜라스 라스무센 같은 이는 알마스리의 죽음이 알카에다 기성 세대와 2011년 빈 라덴의 사망 이후 성장한 신세대 지하디스트들의 분절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그는 알카에다 운동이 작은 세포로 분절되고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고 갈파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코로나19 은폐 의혹 무시…아끼는 개 ‘황금동상’ 만든 대통령 누구?

    코로나19 은폐 의혹 무시…아끼는 개 ‘황금동상’ 만든 대통령 누구?

    코로나19 은폐 의혹에도 불구,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의 기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시내 한복판에 아끼는 개의 황금 동상을 제작했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이 중앙아시아셰퍼드 황금 동상을 세우고 호화 기념식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열린 동상 제막식에 직접 참석해 해당 견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제막식에는 유명 가수와 안무가들이 총출동해 동상을 둘러싸고 화려한 공연을 펼쳤다.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슈가바트 원형 교차 한가운데 우뚝 선 높이 12m짜리 황금 동상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고대 견종 중앙아시아셰퍼드를 형상화했다. 구소련이 원산지로 일명 '알라바이'라 불리는 중앙아시아셰퍼드는 4000년 전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목축견으로 길러졌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서식하고 있다.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지난해 관련 책을 집필하기도 했을 만큼 중앙아시아셰퍼드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2017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새끼 중앙아시아셰퍼드를 선물하며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아들은 해당 견종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준비도 끝마쳤다. 코로나19 은폐 의혹에는 아랑곳 않는 기이한 행보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팬데믹 이후 줄곧 '코로나19 제로'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로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공식적으로 보고된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이런 정부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코로나19가 상당 수준 번졌을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1일 자유유럽방송(RFE)은 병원마다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넘쳐, 시민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를 꺼려한다고 전했다. 병원에 갔다가 행여 코로나19에 전염될까 싶어 아파도 집에 있는 사람이 많다는 설명이다. 또 코로나19와 비슷한 폐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들 시신이 특수 비닐가방에 담겨 유가족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묘지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현지 상황을 주시하던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8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독립 조사 허용을 요구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확진자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그러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긴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임에는 분명하다. 한편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기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코로나19 우려를 무시한 채 대규모 인원이 집결하는 승마 행사를 강행해 국제 사회의 비난을 샀다. 중앙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인 투르크메니스탄은 풍부한 천연가스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2006년 취임 후 15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독재 속에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톡] 어류, 핵전쟁 등 극한 상황서 인류의 식량원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톡] 어류, 핵전쟁 등 극한 상황서 인류의 식량원

    요즘 SF 소재들은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핵전쟁에 대한 공포나 핵전쟁 이후의 상황에 대한 상상을 다룬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가장 충격적인 SF는 1983년 미국 ABC에서 만든 TV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벌이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너무나 잘 표현해 핵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방영 당시 약 1억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역대 최고 시청률로 2009년까지 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냉전 시대에는 미소 양대 강국이 핵전쟁의 키를 쥐고 있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 러시아 이외 핵보유국들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곳은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입니다. ●인도·파키스탄 핵전쟁 땐 소빙하기 올 수도 실제로 지난해 10월 미국 럿거스대, 콜로라도대 공동연구팀은 인도·파키스탄 핵전쟁 발생 시 5000만~1억 2500만명이 숨지고 지구 전체 기온이 2~5도가량 떨어지면서 소(小)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습니다. 지난 3월에도 럿거스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인도·파키스탄 핵전쟁이 지구 식량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논문을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핵전쟁 첫해 전 세계 식량 생산의 12%가 감소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듯싶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 미국 텍사스 리오그란데밸리대, 콜로라도 볼더대, 국립대기연구센터, 럿거스대,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연구소, 컬럼비아대,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 캐나다 맥길대, 독일 라이프니츠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공동연구팀은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농업 생산 감소분을 어업이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고 11일 밝혔습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11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농업 생산량 20% 감소… 어류 큰 변화 없어 연구팀은 인도·파키스탄 간 핵전쟁 시나리오 5개와 미국·러시아 간 핵전쟁 시나리오를 갖고 지구 전체 농업생산량 변화, 어획량 변화를 시뮬레이션했습니다. 분석 결과 앞선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과 비슷한 파괴력인 16㏏급 핵폭탄 100개가 터지는 저강도 핵전쟁 상황에서도 낙진으로 인해 햇빛이 가려지고 온도가 떨어지면서 전 세계 농업생산량이 10~20%가량 줄어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전 세계 어류 개체수는 크게 줄지 않아 전쟁 후 1~2년 동안 모든 동물성 단백질의 40%를 대체하는 등 농업생산량 감소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남획을 막고 어류 자원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조치입니다. 만약 이런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핵전쟁 발생 시 어류 자원도 30% 이상 줄어 심각한 식량 부족 현상이 발생해 국가·계층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핵전쟁이 아니라 지구온난화 때문에도 식량 자원 감소가 우려되는 만큼 이제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dmondy@seoul.co.kr
  • 블루마블·지구돋이…NASA 우주 탐사 역사담은 희귀 사진 경매

    블루마블·지구돋이…NASA 우주 탐사 역사담은 희귀 사진 경매

    인류 우주 탐사의 도전을 담은 희귀한 사진들이 무더기로 경매에 나왔다.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CNN 등 현지언론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탐사 황금기 시기 촬영된 총 700장의 원본사진이 오는 19일까지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를 통해 판매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NASA의 우주탐사 황금기는 미국과 소련이 달 탐사 경쟁을 벌였던 1960년 대 냉전시기를 말한다. 지난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절치부심하던 미국은 결국 달에 성조기를 꽂으며 세계 최강국의 위상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경매에 오른 사진들은 당시 화려했던 우주탐사의 영광을 기록한 추억이자 역사다.이번 경매 사진 중 가장 높은 가치로 평가받는 것은 총 3장이다. 먼저 지난 1969년 아폴로 11호 임무 당시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 위에 서있는 사진이다. 달 위에 홀로 서있는 암스트롱을 담아낸 사진으로 촬영자는 '비운의 우주인' 버즈 올드린이다. 이 사진의 예상 낙찰가는 최대 6만3000달러(약 7000만원)다.이어 인류가 첫번째로 촬영한 ‘어스라이즈’(Earthrise)가 최대 3만7800달러(약 4200만원)로 평가받았다. 어스라이즈는 우리 말로 ‘지구돋이’를 뜻하는데 1968년 12월 24일 당시 지구촌이 크리스마스 이브로 들떠있을 때 아폴로 8호의 달 착륙선 조종사인 윌리엄 앤더스는 역사적인 이 사진을 촬영했다.그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사진은 1972년 촬영된 블루마블(Blue Mable)이다. 당시 달로 향하던 아폴로 17호의 승조원들은 지구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우주에 두둥실 떠있는 '푸른구슬'을 담아 역사적인 이 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은 3만1500달러(약 3500만원)로 평가받았다.또한 버즈 올드린의 인류 최초 우주셀카도 경매에 나왔다. 최대 1만600달러(약 1200만원)의 가치가 매겨진 이 셀카는 암스트롱에 이어 항상 2인자에 만족해야 했던 그에게 ‘인류 최초’라는 타이틀을 안겼다. 그는 1966년 제미니 12호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최초의 우주 셀카를 남겼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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