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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 세대] 미얀마의 쿠데타와 중국의 부상/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2030 세대] 미얀마의 쿠데타와 중국의 부상/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생

    2월 벽두부터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최초의 외교적 도전에 맞닥뜨렸다. 오랜 기간 강력한 권력을 유지해 온 미얀마 군부는 2011년 부분적인 민정 이양을 실시하면서 정치의 전면에서는 물러났다. 그러나 10년에 걸친 미얀마의 민정은 태생적으로 불안정했다. 군부는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보장받는 가운데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약진하면서 군부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군부의 이런 불만과 불안감은 권력을 다시금 ‘회수하겠다’는 결정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쿠데타가 단순히 미얀마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미얀마 문제는 국제 문제, 그것도 미국이 처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과 깊은 연관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 국제적 고립을 선택한 미얀마 군부는 자신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중국과 오랜 밀월관계를 구축해 온 터였다. 2011년 이후 들어선 민선 정권은 중국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서방 세계에 더 접근하고자 했지만, 2017년에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탄압을 둘러싼 서방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다시 중국에 밀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얀마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는데, 여기에는 인도양의 차우퓨 항만 개발, 차우퓨에서 윈난성 쿤밍까지 이어지는 송유관, 최근에 추가된 철도 사업 등이 포함된다. 그러니 미국이 군부 쿠데타를 비난할 경우 군부가 대체 불가능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는 중국으로 아예 넘어갈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부상하는 중국의 존재감이 드리우는 더 큰 문제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은 무역과 투자를 무기로 동남아 권위주의 정권의 든든한 우군이 돼 주고 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미얀마와 함께 동남아의 대표적인 친중국 국가이다. 중국은 최근 권위주의 정권 지원과 경제적 당근을 무기로 태국과 필리핀 등 전통적 친미 국가들에도 우호 공세를 이어 가는 모양새다. 태국과 필리핀에서는 각각 군부와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리더의 지위를 회복하고, 권위주의 중국에 맞서는 동맹을 본격화해야 할 바이든 정부는 중국으로 더 경도될 기세를 보이는 동남아 권위주의 정부와의 관계가 큰 딜레마일 것이다. 미국은 독재자들과도 친교를 맺으며 중국을 견제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까? 아니면 미국의 진정한 힘은 가치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그들을 강하게 비판해야 할까? 이런 고민은 소련의 팽창을 막고자 했던 냉전시대의 고민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소련을 대하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접근법은 ‘둘 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 민주주의 선도국을 자임하는 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부상하는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그들은 한국의 친구인가, 아니면 지탄받아 마땅한 독재자들인가?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작심 한 달’ 벗어나고 싶다면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작심 한 달’ 벗어나고 싶다면

    구소련의 곤충분류학자인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는 8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70여권의 학술 서적과 단행본 100권 분량 연구논문을 썼습니다. 여기에 100권을 웃도는 학술 자료를 비롯해 꼼꼼하게 제본한 소책자도 수천 권 남겼습니다.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비밀은 ‘시간통계 노트’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기록하고 분석한 그는 먹고 자는 데 쓰는 12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알차게 활용했습니다. 2004년 국내 출간한 뒤 지난해 12월 재출간된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의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황소자리)에 담긴 내용입니다.연말, 연초가 되면 계획 세우기나 시간 관리법 등을 다룬 책이 많이 나옵니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지만, 저처럼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겁니다. 류비셰프의 책을 다시 들춰 보다가 도움이 될 만한 신간들을 찾아봅니다. 우선 류시천 조선대 디자인대학원장이 쓴 ‘1페이지 꿈지도’(청림출판)가 눈에 들어옵니다. 책의 핵심은 ‘피시본 다이어그램’입니다. 꿈을 향한 출발점인 지금을 꼬리에 두고, 최종 꿈에 도달하는 시점을 머리로 정해 계획을 만들어 가는 방법입니다. 등 쪽 가시에는 꿈에 도달하는 중간 과정인 ‘주요 목표’를 기재하고, 배 쪽 가시에는 버킷리스트를 적어 가는데, 머리부터 시작해 꼬리로 역순으로 계획을 만들면 됩니다.아침저녁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새벽형 인간’으로 유명한 컨설턴트 이케다 지에의 ‘매일 아침 1시간이 나를 바꾼다’(비즈니스북스)는 제목 그대로 아침 활용법입니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일과 중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일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유튜버 류한빈의 ‘아침이 달라지는 저녁 루틴의 힘’(동양북스)은 반복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루틴’을 세워 퇴근 후 3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계획이 예기치 않게 흔들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적어 놨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만큼 잘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gjkim@seoul.co.kr
  • 프랭크 허버트·문윤성, SF소설 거장의 재발견

    프랭크 허버트·문윤성, SF소설 거장의 재발견

    국내외 옛 SF 거장들의 고전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열렸다. 황금가지는 프랭크 허버트(1920~1986)의 장편소설 ‘듄’을 20년 만에 신장판 전집(6권)으로 재출간했다.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된 ‘듄’은 같은 해 제정된 네뷸러상의 첫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지금까지 2000만부 넘게 판매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SF 소설이 됐다. 국내에선 2001년 첫 번역본이 출간된 이후 20년 만에 다시 나왔다. ‘듄’은 허버트가 기자로 활동하던 1950년대 후반 미국 오리건주 해안의 모래언덕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이를 조사하며 시작됐다. 모래언덕의 장대한 풍광에 매료된 허버트는 이를 바탕으로 6년간 원고를 집필한다. 소설은 사막 행성 ‘아라키스’를 배경으로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와 그의 자녀 레토와 가니마가 다른 정치세력들과 벌이는 권력투쟁을 그리고 있다. 1984년에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듄’을 영화로 제작했고, 오는 10월에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도 개봉될 예정이다.아작 출판사는 국내 최초 장편 SF 소설을 쓴 문윤성(1916~2000·본명 김종안) 작가의 첫 작품집 ‘월드컵 특공작전’을 사후 약 20년 만에 펴낸다. 문 작가는 1967년 국내 최초의 성인용 SF 장편소설 ‘완전사회’를 출간해 한국 SF 문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이번 소설집에는 작가가 장년기에 쓴 수십 편의 중·단편 가운데 표제작 ‘월드컵 특공작전’을 포함한 8편을 엄선해 실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1980년대 냉전 당시 양대 초강대국이던 미국과 소련의 과학기술을 한국이 앞선다는 상상력이 작품 전체에 깔렸다는 점이다. 예컨대 1983년 소련의 대한항공(KAL) 007 여객기 격추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련 공습’에서는 한국이 당시 미지의 스텔스 기술을 활용해 소련에 복수한다. 또 ‘덴버에서 생긴 일’은 한국인이 미국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자 물질에서 기억을 뽑아내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오해를 푸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글로벌 In&Out] 소일 영토분쟁과 마오쩌둥/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소일 영토분쟁과 마오쩌둥/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일본은 영토 문제가 많은 나라이다. 독도 문제나 센카쿠 열도(댜우위다오)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아베 정부에 있어서도 스가 정부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영토분쟁은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분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현행 일본 정부의 커다란 외교적 승리로 기록되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이 이 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게 가장 현실적인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쿠릴 열도 문제에서 중국이 일본을 사실상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쿠릴 열도 문제에서의 중국 입장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쿠릴 열도가 소련 영토에 편입된 것은 1945년 일제 패망 직후다. 일본의 재군사화를 우려한 스탈린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대일참전의 대가로 쿠릴 열도를 요청했고, 미국과 영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한 일본도 이를 인정했으나 소련은 중국이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서명을 거부했다. 하지만 스탈린 사망 후 1956년 2월, 일본은 주장을 바꾸고 쿠릴 열도의 반환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소련은 이 문제를 일본을 미국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한 기회로 간주하고 협상에 들어갔으나 미국의 간섭으로 실패했다. 1960년대 초 중소의 이념·정치지리학적 갈등이 발생하면서 중소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공산진영에서 분열이 발생했고 중국의 지도자인 마오쩌둥은 이를 이용해 소련을 비난하면서 자본주의진영 국가들과의 관계를 점차 정상화해 나가기로 했지만 일본 정부에 그 암시를 보내야 했다. 기회는 1964년에 왔다. 그해 7월 10일, 중국을 방문한 일본사회당 대표단이 마오쩌둥과 회담을 열었다. 그 회담에서 홋카이도 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아라 데쓰오가 마오에게 쿠릴 열도에 대해 묻자 마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소련은 점령한 지역이 너무 많다. 얄타회담에서 외몽골을 명의상 독립시켜 중국으로부터 분리시켰지만, 사실상 소련 통제 아래에 둔 것뿐이다. 외몽골의 면적은 너희들의 지시마(쿠릴 열도)보다 훨씬 넓다. 우리는 외몽골 반환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그들은 안 된다고 했다. 1954년 흐루쇼프와 불가닌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제기한 것이다. 그들은 루마니아의 땅을 빼앗고 베사라비아라고 불렀다. 독일의 동부 땅도 빼앗아 거기 사람들을 서부로 내쫓았다. 폴란드의 땅도 빼앗아 벨라루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독일에서 또 땅을 빼앗아 벨라루스에 넘겨준 땅에 대한 보상으로 폴란드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들은 핀란드의 땅도 빼앗았다. 빼앗을 수 있는 것들을 다 빼앗는 사람들이다. (중략) 너희 일본은 인구가 1억명이지만 면적은 37만㎡밖에 안 된다. 100여년 전에 우리는 바이칼 호수 이동의 지역을 빼앗겼다. 이 빚을 청산하려 해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너희들의 지시마 군도는 문제가 되지 않다. 당연히 너희들에게 반환해야 할 땅이다.” 마오의 이 발언은 13일 일본의 일간지들에 보도되고 큰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9월 2일, 소련공산당 기관지인 브라우다가 큰 기사를 발표했고 마오쩌둥을 비판했지만 마오의 말이 이미 국가의 외교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2008년 중국이 비밀해제한 자료에 따르면 그 내용은 7월 28일 중국의 모든 외교공관에 통보됐고 중국의 외교 방침이 됐다. 1970년대 초, 중국의 세계지도상 쿠릴 열도 남부의 지명이 일본식으로 바뀌었고 그 옆에 ‘소련에 의해 점령됨’(蘇占)이라는 표기가 생겼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됐지만 쿠릴 열도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그 표기는 ‘러시아에 의해 점령됨’(俄占)으로 바뀐 것뿐이다. 중국을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간주하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는 중국의 이런 태도의 위험성을 잘 인식해 경계하는 세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 13살에 나치 수용소에 갇힌 소년이 그림으로 남긴 역사 공개

    13살에 나치 수용소에 갇힌 소년이 그림으로 남긴 역사 공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린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공개됐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1940년대 초반 악명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91세 남성 토마스 게브다. 이 남성은 13세 때 어머니와 함께 1943년부터 1945년까지 2년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남부 오슈비엥침(독일어명 아우슈비츠)에 세워진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에 의해 약 400만 명이 학살된 아픈 역사의 장소다. 10대 초반이었던 게브는 수용소에 도착한 뒤 어머니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로 진군했을 당시, 게브는 약 6만 명의 다른 수감자와 함께 독일군으로서 참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1만 5000명의 수용자가 사망했지만 게브는 살아남았다. 이후에도 독일의 또 다른 강제수용소로 옮겨졌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마침내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 이후 영국으로 탈출해 아버지와 만난 그는 자신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수용소 내부에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수많은 강제수용자의 모습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부의 지리, 나치에 의해 잔혹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낱낱이 그림으로 기록했다.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반대로 용감하게 도망치려 했지만 붙잡힌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까지,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역사의 참혹한 한 장면이었다. 그는 “13살 때 어머니와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라면서 “이 모든 것은 히틀러가 만든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수용소에서 아주 짧은 순간 어머니를 다시 만났고, 그 순간을 위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어줬다는 사실”이라면서 “수용소 사람들은 서로를 인간으로서 느끼며 도왔다”고 덧붙였다. 이 남성은 어린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기억을 그린 그림 80여 점을 모아 최근 책으로 출간했다. 그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는 어린이 생존자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수용소도 꺾지 못한 ‘지적 저항’

    [그 책속 이미지] 수용소도 꺾지 못한 ‘지적 저항’

    작가이자 비평가인 유제프 차프스키는 폴란드군 장교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1940년 소련군에 잡혀 수용소에 수감된다. 영하 45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그는 수용소 동료들을 대상으로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불리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강의를 시작한다. 포로들과 정신적,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고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80년 전 작성한 강의록에는 저자가 기록한 글이 빼곡하다. 강의에서 강조해야 할 부분까지 온전히 남았다. 책은 강의록 원본을 수록하고, 저자의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 지적 저항운동이자 죽음이 엄습한 현장에서 써 내려간 인간을 찾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미 육군의 차세대 준중거리 극초음속 미사일 ‘OpFires’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미 육군의 차세대 준중거리 극초음속 미사일 ‘OpFires’

    극초음속이란 음속의 5배 또는 그 이상에 해당하는 속도를 뜻한다. 지난 2019년 러시아가 Kh-47M2 킨잘과 아방가르드 같은 극초음속 무기들을 선보였고 뒤이어 중국도 둥펑-17을 공개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속속 극초음속 무기들을 선보이면서 미국도 이를 추월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극초음속 무기는 극초음속 비행체와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미 육군은 특히 극초음속 비행체를 내장한 미사일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극초음속 비행체란 발사체의 추진력을 이용해 높이 상승했다가 이후 분리되어 활공하면서 비행한다. 극초음속 비행체는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며 기존 탄도미사일의 재돌입체와 달리 독특한 비행 궤적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체계로 요격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극초음속 비행체의 무기화를 처음 시도한 것은 미 육군이었다.2011년 극초음속 비행체를 내장한 AHW(Advanced Hypersonic Weapon)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1987년 12월 미국과 소련 간에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과 중국과 러시아의 군비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실상 개발을 중단했다. 그러나 2019년 중거리핵전력조약에서 미국이 탈퇴하고, 미 육군이 새로운 군사교리로 다영역작전을 채택하면서 사거리 2000km 이상의 장거리극초음속무기인 LRHW(Long Range Hypersonic Weapon)을 개발해 2023년까지 전력화할 계획이다.또한 미 육군은 중국과 러시아간의 준중거리 미사일 격차를 줄이기 위해, 미 국방성 고등기술연구원(DARPA)과 함께 OpFires(Operational Fires)라는 새로운 극초음속 무기를 개발 중이다. 장거리극초음속무기인 LRHW와 마찬가지로 극초음속 비행체를 내장한 OpFires는 사거리가 1600여km에 달한다. 또한 마하 5이상으로 날아 20분 내에 1600여km 떨어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OpFires는 A2/AD(Anti-access/Area Denial) 즉 반접근/지역거부에 사용되는 적의 방공망을 재빠르게 파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OpFires는 크기가 큰 LRHW와 달리 C-130 수송기로 공중수송이 가능하도록 콤팩트하게 만들어질 예정이다. OpFires 발사차량에는 극초음속 비행체를 내장한 3발의 지대지 미사일이 장착되며, 미 육군의 고기동 대형 전술트럭을 차체로 사용한다. 미 록히드마틴사가 만들 OpFires는 2023년에 완전 비행 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며,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추진체의 지상연소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바 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후쿠시마 원전 건물 덮개 안쪽에서 ‘초강력’ 방사선 검출

    후쿠시마 원전 건물 덮개 안쪽에서 ‘초강력’ 방사선 검출

    원자력규제위원회, 중간보고서 초안 공개 폐로가 추진되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2, 3호기 원자로 건물 5층 부근에서 강력한 방사선이 방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방출되는 방사선량은 그대로 노출될 경우 1시간 안에 사망할 정도로 강력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폐로 작업의 일환으로 내년부터 우선 시작될 예정인 2호기 원자로 내의 핵연료 찌꺼기(데브리) 반출 작업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접근 1시간 내 사망할 정도의 방사선량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산하 검토회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관련해 2019년 9월 재개한 조사의 중간보고서 초안을 26일 공개했다. 이 초안에 따르면 후쿠시마 제1원전의 2, 3호기 원자로 건물 5층 부근에 방사선량이 매우 높은 설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농도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것은 원자로 격납 용기 바로 위에서 덮개 역할을 하는 직경 12m, 두께 약 60㎝의 원형 철근콘크리트 시설이다. 총 3겹으로 이뤄진 이 덮개의 안쪽 부분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양을 측정한 결과, 2호기는 약 2~4경(京, 1조의 1만배) 베크렐(㏃, 방사성 물질의 초당 붕괴 횟수 단위), 3호기는 약 3경 베크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방사선량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10시버트(㏜, 인체피폭 방사선량 단위) 전후로, 사람이 이 환경에 노출되면 1시간 이내에 사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베크렐은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방사능 강도를, 시버트는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지표다. 국제기준에 맞춰 일본 관련 법령에 정해진 방사선 업무 종사자의 선량 한도는 전신 기준으로 연간 20밀리시버트(m㏜, 5년 연속 근무 기준)다. 1시버트가 1000m㏜이므로, 10시버트의 피폭량이 인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가늠할 수 있다. 검토회는 대량의 세슘이 덮개 안쪽에 부착된 이유에 대해 폭발사고 직후에 덮개가 방사성 물질이 옥외로 누출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수소 폭발로 덮개 부분이 변형된 1호기는 2, 3호기보다는 적은 약 160조 베크렐의 세슘이 부착된 것으로 추정됐다. 폐로 1차 관문 ‘덮개 제거’부터 난관후쿠시마 원전 운영업체인 도쿄전력은 내년부터 2호기의 원자로에서 녹아내린 데브리를 꺼내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폐로에 돌입하기 위한 1차 관문이 될 이 작업을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덮개를 제거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요미우리신문은 총 465t에 달하는 덮개 무게와 덮개에 부착된 세슘의 높은 방사선량이 폐로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규모 9.0의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후쿠시마현 태평양 연안의 후타바, 오쿠마 등 두 마을에 절반씩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 침수로 인해 원자로로 공급되던 전력이 끊겼고, 제1원전 6기의 원자로 중 오쿠마 마을 쪽의 1~4호기의 냉각장치 작동이 중단됐다. 이 영향으로 1~3호기의 노심용융(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는 것)이 일어나면서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해양으로 대량 누출됐다. 이 사고는 국제원자력 사고등급(INES) 기준으로 1986년의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최고 레벨(7)에 해당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검토회는 당시 격납용기 손상을 막기 위해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는 증기를 대기로 방출한 ‘벤트’(vent) 과정을 검증해 1, 3호기의 증기가 원자로 건물 내에 역류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CCTV 영상 분석을 통해 3호기에서 폭발이 여러 차례 일어난 사실도 확인했다. 일본 원자력규제위는 사고 10주년인 오는 3월에 최종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마지막 블랙리스트 생존자 월터 번스타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마지막 블랙리스트 생존자 월터 번스타인

    미국에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 치던 1950년대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극작가 겸 제작자 월터 번스타인이 102세를 일기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많은 영화인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영화계를 떠나거나 극단을 선택하기도 했는데 그는 가명으로 TV 드라마 각본을 쓰면서 끝까지 영화에의 길을 걸어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버라이어티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이 전했다. 부인 글로리아 루미스는 사인을 폐렴이라고 전했다. 1964년 시드니 루멧 감독에 헨리 폰다가 주연한 ‘핵전략사령부(Fail-Safe)’, 1976년 마틴 릿 감독에 우디 앨런이 주연인 ‘프론트(The Front)’, 이듬해 마이클 리치가 메가폰을 잡고 버트 레이놀즈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호흡을 맞춘 ‘우정의 마이웨이(Semi-Tough)’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너무 오래 전 영화만 들었다는 생각에 2007년 ‘트럼보’를 들어본다. 번스타인은 이 영화에 본인 역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2002년 ‘트럼프와 딕데이터’에도 본인 역으로 나섰다. 전도유망한 작가의 길은 1950년대 초반 미국 하원에 반미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가로막혔다. 호구지책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것이 TV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작가의 이름을 ‘앞잡이’로 빌려 쓰는 것이었다. 앞의 영화 ‘프론트’가 이를 다뤘음은 물론이다. 1996년 출간된 회고록 ‘Inside Out’를 통해 “집을 나설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어깨를 돌려 뒤를 돌아본다. 피할 수 없이 누군가를 마주칠까봐 늘 마음을 졸인다. 예상하고도 막상 닥치면 당황하기 시작한다. 일순간 공포의 냄새가 느껴지고 분노와 부끄러운 감정이 뒤섞인다. 두려워하는 일은 그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것이다. 진실로 그들에게 진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우유를 배달하는 것처럼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고 끔찍했던 당시를 돌아봤다. 블랙리스트 전력에도 그를 기용한 것은 루멧 감독이었다. 1958년 소피아 로렌 주연의 ‘That Kind of Woman’ 각본을 본인 이름으로 썼다. 그 뒤 ‘Heller in Pink Tights’ ‘핵전략사령부’ ‘몰리 맥과이어’ ‘우정의 마이웨이’ ‘전장의 우정(Yanks)’ 등 힘있는 각본을 연달아 내놓았다. 오스카 추천된 ‘프론트’와 1998년 ‘캐롤가의 저택(The House on Carroll Street)’으로 암울한 블랙리스트 시절을 실감나게 옮겼다는 평을 들었다. 1976년 다큐멘터리 ‘Hollywood on Trial’에 직접 출연해 이 때를 다뤘다. 종군기자 출신인 그는 말년에도 드라마 각본을 계속 썼다. 고발성이 강한 ‘둠스데이 건’과 ‘Miss Evers’ Boys’를 집필했다. ‘구두쇠와 꼬마 숙녀(Little Miss Marker)’로 본업 외에 감독 외도를 했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다트머스 대학 대학원을 다니며 뉴요커에 대한 단편을 발표했다. 졸업뒤 2차 세계대전 때 입대했다. 여러 잡지에 종군 기사를 썼고 양크란 잡지에 자신의 참전 경험을 기고했다. 독일과 같은 편에 선 유고슬라비아의 마르샬 티토와 독점 인터뷰가 가장 대표적인 그의 업적이었다. 전후 그는 뉴요커에 입사했지만 일년 뒤 할리우드로 떠나 오스카 수상작 ‘All the King’s Men’을 제작한 로버트 로센 자문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각본 데뷔작은 1948년 서스펜스물 ‘키스 더블러드 오프 마이 핸즈’로 버트 랭카스터와 조앤 폰테인이 호흡을 맞췄다. 커리어 초반 더 집중한 것은 라이브 TV 드라마였다. 뉴욕으로 돌아와 정기적으로 집필했다. 대표적인 것이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리치 보이’로 필리스 커크와 새내기 그레이스 켈리가 주인공이었다. 1950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 로렌을 위해선 두 편의 각본을 더 썼는데 ‘A Breath of Scandal’과 조지 쿠커의 ‘Heller in Pink Tights’였다. 그 뒤 릿의 ‘Paris Blues’를 집필했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그대로 옮긴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과 매릴린 먼로의 마지막 출연작이며 1962년 6월 잦은 펑크로 해고되고 2개월 뒤 의문사하면서 끝내 촬영을 마치지 못한 ‘썸씽즈 갓 투 기브’ 등 여러 편의 각본을 감수했다. 루멧의 ‘핵전략사령부’ 각본을 쓴 다음 2차대전 스릴러물 ‘The Train’을 랭카스터 주연으로 연출한 존 프랑켄하이머를 비롯한 여러 전직 드라마 연출자들과 함께 일했다. 1966년 범죄극 ‘The Money Trap’을 쓴 다음 릿의 1970년 드라마 ‘몰리 맥과이어’에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우정의 마이웨이’는 번스타인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프로 풋볼 선수를 재미있게 다뤘다. 하지만 1978년 해롤드 로빈스의 ‘자동차왕 로렌(The Betsy)’이나 ‘An Almost Perfect Affair’처럼 돈벌이를 위해 쓴 작품도 있었다. 존 슐레진저 감독의 감동적인 2차대전 드라마 ‘전장의 우정’으로 다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유일한 연출 작품은 1980년 셜리 템플의 영화를 바보처럼 리메이크한 ‘구두쇠와 꼬마 숙녀’로 월터 매튜 주연이었다. 5년 뒤 최초의 여성 슈퍼 히어로 영화로 평가되는 ‘빌리진의 전설’과 1987년 ‘비밀의 목소리(The Couch Trip)’, 1989년 ‘후레치2’는 그저 그랬다. 1988년에 쓴 블랙리스트 시절의 서스펜스 드라마 ‘캐롤가의 저택’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는 드라마 집필에 주로 매달려 ‘줄리엣 비노쉬의 마라(Women and Men: In Love There Are No Rules)’ ‘둠스데이 건’과 에미상 수상작이며 터스키기 매독 실험을 다룬 ‘Miss Evers’ Boys’. 1999년 홀마크 명예의전당 작업의 일환으로 아일랜드 상황을 다룬 텔레픽 “듀랑고(Durango), 2011년 영국 BBC 미니시리즈 ‘Hidden’ 공동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1994년 번스타인은 WGA 동부지구의 평생 공로를 인정받아 이언 매켈런 헌터 메모리얼상과 2년 뒤 Independent Features Project의 고담상을 받았다. 2008년 WGAE는 에벌린 F 버키상을 수여하면서 “모든 영역의 작가들에게 영예와 존엄을 안긴 공로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숨을 거둘 때까지 뉴욕대학의 티시예술대학 방문교수이자 극본 주제 자문으로 일해왔다. 많은 이들이 그저 좌파의 대의를 돕다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반면, 그는 실제 미국공산당 당원이었으며 1956년까지 남아 있었다. 소련군이 헝가리를 침공하고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3년 뒤 세상을 떠나는 요지프 스탈린의 잔학한 죄상을 고발하자 더 이상 소비에트 도그마에 복무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이상을 좇았던 사람들의 슬픔을 토로했다. 앞의 회고록에서 “당을 떠났지만 사회주의 이상을 버리지는 않았다. 불평등과 착취에 기반하지 않은 시스템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고인은 네 번 결혼해 다섯 자녀를 뒀다. 장수한 만큼 여러 분야의 친구들이 많았다. 작가 어윈 쇼와 셜리 잭슨을 비롯해 작곡가 어빙 벌린, 여배우 베트 데이비스 등이었다. 특히 데이비스와 고인은 칼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찬양하는 공통점이 있으며 데이비스가 “가장 대단한 책들”이라고 하자 고인이 무척 놀라고 반가워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고인은 회고록에서 영화의 “미스터리한 힘에 이끌려 신성한 과정에 함께 했다”면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많은 이들이 어렵고 재간있게 작업을 해야 하는 성당 건축과 비슷하다. 다 끝내고 그것을 바라보면 축복받고 샤르트르(고딕풍 대성당)를 보는 기분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뉴욕) 5번가에서 성 패트릭 성당을 보는 것이다. 그것도 성당이긴 하다. 시종으로서 난 여전히 어둑하고 겁나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신비롭게 해방된 느낌을 품는다”고 적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인구 130만 발트 소국, 역대급 여풍 몰아친다

    인구 130만 발트 소국, 역대급 여풍 몰아친다

    에스토니아에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1977년생인 공정거래 분야 변호사 출신 정치인 카야 칼라스(44)가 주인공이다. 칼라스 총리 지명자가 남녀 동수 내각 구성을 약속, 인구 130만명인 북유럽의 발트해 연안 소국이 ‘여풍’(女風)의 진원지로 주목받고 있다고 AP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칼라스 지명자와 호흡을 맞출 케르스티 칼률라이드(52) 대통령도 2016년 첫 여성·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했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방한했던 칼률라이드는 지난해 4월엔 문재인 대통령과 코로나19 대응 협력 관련 통화를 하는 등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이어 가고 있다. 칼라스는 2011년 중도보수 성향인 개혁당에서 의원 활동을 시작, 2017년부터 이 당의 첫 여성 당대표로 활동해 왔다. 칼라스는 구소련 해체 당시 에스토니아의 시장경제 도입을 주도하고 2000년대 이후 에스토리아 총리, 유럽연합(EU) 교통담당 집행위원을 역임한 심 칼라스(73)의 딸이기도 하다. 2019년 3월 총선에서 개혁당이 전체 101석 중 34석을 확보, 제1당이 되면서 칼라스는 총리 자리를 예약해 두었다. 당시 총선에서 중도진보 성향의 중앙당은 26석을 얻는 데 그쳐 제2당으로 전락했지만 중앙당과 민족주의 정당인 EKER당, 보수 성향의 조국정당 등 3개당 연정의 집권은 유지됐다. 지난 13일 중앙당 소속 유리 라타스 전 총리가 당직자가 연루된 부패 스캔들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며, 칼라스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칼라스의 개혁당은 중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으며 1918년 에스토니아 건국 이래 103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총리를 추대했다. 칼라스는 “15명의 내각 중 최소 6명 이상을 여성으로 채우겠다. 내각 등 정부 고위직을 남녀동등 비율로 구성해 양성평등 달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칼라스 총리 지명자가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한다면 발트 3국 중 리투아니아에 이어 두 번째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바이든 반복적인 ‘통합’ 메시지는 미국의 위기의식을 담은 것”

    “바이든 반복적인 ‘통합’ 메시지는 미국의 위기의식을 담은 것”

    분열 가속화에 일단 ‘브레이크’북한 언급 없는 건 예상됐던 일한미일, 부분 군사협력 가능해도한미일 동맹은 한국에 큰 부담싱가포르 선언은 원칙 표명일뿐“이렇게 완전히 ‘통합’이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취임사를 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지켜본 김준형(58) 국립외교원장은 “이번 미국 행정부의 교체가 미국 역사 뿐 아니라 인류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완전히 깨져 버렸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일단 수습할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2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만난 그는 “시작도 하기 전에 (통합에) 성공할 지 얘기하는 건 가혹하다”면서 “바이든 말처럼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함께 지켜보자”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이든 취임사에서 눈에 띈 부분은. “민주주의, 통합 등 핵심 단어를 표현을 달리하면서 계속 반복하고 재강조했다. 그만큼 미국 내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간에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한 명복을 빌며 묵념한 것도 울림이 있었다.” -취임사 전반에 대한 인상은. “미국은 현재 보건·경제·분열·인종차별·기후변화 위기 등 5가지 위기가 한꺼번에 왔다고 한다. 취임사 곳곳에서 이러한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바이든에게는 해결해야 될 과제이자 도전이다. 이를 극복하겠다는 게 취임사를 관통하는 메시지 아닐까 싶다.” -미국이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10년간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 체제가 유지됐다. 하지만 2001년 9·11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 2016년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을 거치면서 통합 분위기는 완전히 깨졌다. 트럼프가 ‘촉매’ 역할을 했다고 본다. 바이든이 브레이크를 밟고 ‘일단 멈춤’에는 성공했지만 유턴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래도 미국에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치유자’ 이미지를 가진 바이든일 수 있다.” -취임사에 한반도 정책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예상됐던 일이다. 다만 ‘동맹 회복’이란 표현 속에 기본적으로 다 녹아 있다고 본다.” -동맹 강화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미국의 동맹 복구에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중국이 부상한다는 현실적 인식이다. 미국이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동맹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굉장히 중요한 국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두 번째, 트럼프 정부 때와 달리 동맹국으로부터 보호비를 갈취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방위비 분담감을 통해 협박 카드로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동맹 강화는 한국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원칙, 이념을 중시하면서 자칫 이념 전쟁으로 갈 수 있다. 근본적인 가치 싸움이 되면 실제적으로는 미중간 냉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 입장은 분명하다. 한미일이 북한 문제 등에서 부분적으로 군사협력을 할 수는 있어도 한미일 동맹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맹은 자동적으로 모든 일에 개입하기 때문에 중국을 적으로 만들 수 있다.”-북한 입장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어떤 언급을 하길 기대하지 않았을까. “취임사에 북한 관련 언급이 없었다고 북한이 실망을 하거나 이를 도발의 이유로 삼는다면 미국을 모르는 것이다. 대북 메시지는 거대한 취임식보다는 미국 외교안보팀의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이 조건부 대화를 제안했는데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까. “앞으로 6개월 간 눈치 싸움이 될 거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이벤트 접근방식을 거부한다고 했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동안에는 조심스럽게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황이 아주 악화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면 오바마 정부 때처럼 도발의 패턴은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빅딜’보다는 ‘스몰딜’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된 상태에서 일시에 비핵화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그대로 둘 수도 없다. 중간 단계로 스몰딜도 필요하다. 일단은 북한의 핵을 동결시키고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든 정부 출범에 맞춰 우리 외교라인도 진용을 재정비했다.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진보 정부가 겹칠 때 항상 한 쪽은 임기 말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시간표상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그래도 정의용(외교부 장관 후보자)·서훈(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투톱 체제’ 카드를 내민 건 문재인 정부가 최소한 (대화의) 기반을 갖추겠다는 것이고,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은. “한미 양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서 서로 의심하지 않도록 공조를 튼튼히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승부를 걸어볼 시점이다. 미국에도 ‘과감하게 나아가겠다’고 설명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는 3월 한미군사연합훈련이 걸림돌이 될까. “코로나19로 정상적인 훈련은 어렵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다만 축소를 하더라도 코로나19 때문이 아닌 한반도 평화를 위한다고 ‘포장’을 잘 해야 한다. 한국보다는 미국이 선제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발전시키자는 우리 측 제안이 역효과를 낼까.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 때의 모든 성과를 뒤집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완전한 비핵화 등이 담긴 싱가포르 합의는 원칙을 표명한거다. 이것 자체를 버린다는 건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거다. 이를 추인하는 게 트럼프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폐기할 이유 없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두렵지 않다” 러 공항서 체포된 나발니… 푸틴에 정치적 저항

    “두렵지 않다” 러 공항서 체포된 나발니… 푸틴에 정치적 저항

    “나를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았느냐” 여유지지자 수백명 몰려 도착 예정 공항 변경폼페이오·설리번 “즉각 석방” 한목소리BBC “나발니 귀국, 푸틴에 직접적 도전”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불리는 러시아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독극물 테러를 당한 지 5개월여 만인 17일(현지시간) 고국으로 돌아와 체포됐다. 이날 모스크바 북쪽 외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한 나발니는 체포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여객기에 함께 있던 부인 율리야와 입을 맞춘 뒤 교정 당국 요원들에게 순순히 끌려 나갔다. 체포 당시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일어났고, 서방 국가들은 잇달아 규탄 성명을 내놓는 등 ‘푸틴의 정적’은 고국 땅을 밟자마자 정국을 흔들었다. 이날 나발니의 얼굴에서 독극물 테러로 사지를 헤맸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체포되기 직전 취재진에게 “나는 내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밝힌 그는 공항 경비대원들에게 “나를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당초 나발니 부부가 탄 여객기는 모스크바 남쪽 브누코보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지만, 공항 활주로가 갑자기 폐쇄되며 셰레메티예보 공항으로 항로가 바뀌었다. 여객기 측은 착륙 직전 기술적 이유로 도착 공항이 바뀌었다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브누코보 공항에 모인 수백명의 나발니 지지자들을 의식해 당국이 일부러 항로를 바꾼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날 브누코보 공항에서는 나발니의 귀환을 기다리던 시민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다 경찰에 끌려 나갔다. 나발니는 2014년 프랑스 유명 화장품 회사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사건으로 징역 3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뒤 집행유예 의무를 어겨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당국이 자신을 체포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돌아온 것이지만, 나발니의 귀국은 푸틴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저항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푸틴 입장에서는 나발니를 가둬 놓아도, 풀어놓아도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당장 미국과 서유럽 주요국들은 나발니가 체포된 직후 러시아 정부를 성토하는 메시지를 잇달아 내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차기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제이크 설리번은 각각 성명과 트위터로 나발니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국내 정치적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던 두 진영이 이번 현안에 대해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낸 셈이었다. BBC는 “나발니의 귀국은 푸틴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그를 탄압할 경우 서방 국가들의 더 많은 제재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반면 나발니를 그대로 놔둔다면 올해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는 푸틴에게는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발니는 지난해 8월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던 여객기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뒤 독일 베를린 소재 샤리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이후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의 연구소들은 나발니가 옛 소련 시절 개발된 신경작용제인 ‘노비촉’ 계열 독극물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발표했지만, 러시아는 자국 정보기관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푸틴 정적‘ 나발니 독일서 귀국하자마자 체포, 30일 구금된다

    ‘푸틴 정적‘ 나발니 독일서 귀국하자마자 체포, 30일 구금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독극물 공격에서 살아남은 알렉세이 나발니(44)가 17일(이하 현지시간) 조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체포돼 다음날 재판 결과 구금 30일형이 선고됐다. 모스크바 외곽의 한 경찰서에서 법원 심리가 진행됐는데 판사는 집행유예 요건을 위반한 것이 맞다며 다음달 15일까지 구금하라고 판결했다. 판사는 또 오는 29일 심리를 열어 그에게 내려진 3년 6개월의 집행유예를 실형으로 대체할지를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나발니는 전날 저녁 8시 10분쯤 러시아 항공사 ‘포베다(승리)’의 베를린~모스크바 노선 항공편을 이용해 모스크바 북쪽 외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부인 율리야가 동행했다. 나발니가 탄 여객기는 당초 모스크바 남쪽 외곽 브누코보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으나 착륙 얼마 전 갑자기 항로를 바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내렸다. 현지 언론은 브누코보 공항 활주로에 제설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착륙이 불허됐다고 보도했는데 지지자들이 나발니의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몰려나와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그런 것으로 보인다. 나발니는 셰레메티예보 공항 도착 후 입국심사대에서 경찰에 체포됐다고 그의 변호사가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연방형집행국은 이날 보도문을 통해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형집행국 모스크바 지부 요원들이 집행유예 의무를 여러 차례 위반한 혐의로 지난달 29일 수배 대상이 된 나발니를 체포했다”고 확인했다. 나발니는 집행유예 취소 소송이 예정된 이달 말까지 구치소에 수감될 것으로 알려졌다. 나발니는 귀국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나는 두렵지 않다. 내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 대한 형사 사건은 조작된 것임을 안다”고 저항을 다짐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경찰은 나발니가 이끄는 반부패재단(FBK) 변호사 류보피 소볼 등 브누코보 공항으로 영접 나온 그의 측근들을 체포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폭동진압부대 ‘오몬’ 요원 등은 공항 대합실에 모인 수백 명의 나발니 지지자들을 밖으로 몰아내는 한편 저항하는 일부를 체포했다. 연방형집행국 모스크바 지부는 앞서 지난 14일 나발니가 2014년 사기 사건 연루 유죄 판결과 관련한 집행유예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수배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면서, 그가 귀국하면 곧바로 체포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나발니는 지난 2014년 12월 프랑스 화장품 회사 ‘이브 로셰’의 러시아 지사 등으로부터 3100만 루블(약 5억 9000만원)을 불법 취득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3년 6개월에 5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당초 2019년 12월 종료될 예정이던 집행유예 시한은 2017년 법원 판결로 지난해 말까지 한차례 연장됐다. 러시아 교정 당국은 나발니의 집행유예 의무 위반을 근거로 모스크바 시모노프 구역 법원에 집행유예 판결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집행유예의 실형 전환을 위한 시모노프 법원의 재판은 오는 29일 예정돼 있다. 정부 인사들의 부정부패를 줄기차게 고발해온 나발니는 지난해 8월 20일 국내선 비행기로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던 중 기내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당시 비행기는 옴스크에 비상착륙, 그는 옴스크 병원에 머물다가 사흘 뒤 베를린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18일 만에 의식을 회복한 그는 퇴원해 베를린에서 재활 치료를 받아왔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의 연구소들은 나발니가 옛 소련 시절 개발된 신경작용제인 ‘노비촉’ 계열 독극물에 중독됐다고 발표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근거 부족을 이유로 나발니 중독 사건에 관한 공식 수사를 개시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나발니의 독극물 중독 사실과 자국 정보기관이 연루됐다는 나발니 측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연말 연례 기자회견에서 외국 정보기관이 뒤에서 나발니 중독설을 퍼뜨리고 있다며 자신들이 의도했다면 임무를 완수해 나발니는 살아 있지 못할 것이라고 무서운 해명을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구사일생 그리고 대격변, 세계적 역사학자가 본 유럽의 100년

    구사일생 그리고 대격변, 세계적 역사학자가 본 유럽의 100년

    세계적인 역사학자 이언 커쇼가 쓴 유럽 현대사 저작이 출간됐다. 1914년부터 2017년까지 100년 남짓 역사를 각각 928쪽, 1128쪽에 이르는 2권의 책에 담았다. 시기별로 나눈 각각의 책 부제에 당대를 설명하는 문구를 붙였다. 1권 제목은 ‘유럽 1914-1949: 죽다 겨우 살아나다’인데, 저자는 20세기 전반이 ‘지옥’과도 같았다고 술회한다. 1차 세계대전으로 시작해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혁명과 대공황까지 있었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당시 유럽의 파국 원인으로 4가지를 제시한다. 인종·민족주의 갈등의 폭발, 강대국의 치열한 영토 개정 요구, 격심한 계급갈등,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와 볼셰비즘의 승리다. 1권의 마지막 해를 1949년으로 잡은 것은 전쟁 여파 때문이다. 1945년 5월 공식적인 교전이 끝났지만, 전쟁 직후 유럽에는 실질적인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2권 제목은 ‘유럽 1950-2017: 롤러코스터를 타다’로 했다. 지난 70년간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처럼 극단적인 변화를 겪으면서도 이탈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저자는 20세기 후반 유럽의 가장 큰 곤경으로 ‘냉전’을 꼽는다. 공산당 정권은 1953년 동독, 1956년 헝가리, 1981년 폴란드처럼 자국민 저항을 폭력으로 억누르기도 했다. 1989년 동유럽 공산당 정권 붕괴에 이어 1991년 소련이 몰락하면서 냉전은 해소됐지만, 이후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저자는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의 탈식민화를 비롯해 1973년 오일쇼크, 2008년 금융위기 등으로 성장에 타격을 입은 유럽을 살핀다. 1990년대 이후 유럽 통합과 이민자들의 이입으로 ‘유럽인들만의 유럽’을 지키려는 포퓰리즘까지 아우른다.커쇼는 히틀러 전기 ‘히틀러Ⅰ-의지 1889-1936’과 ‘히틀러Ⅱ-몰락 1936-1945’로 유명하다. 2000년 최고의 역사 저작에 주는 울프슨 역사상에 선정됐고 2002년에는 역사학 발전 기여 공로로 영국 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도 받았다. 2012년 라히프치히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코로나19 백신’ 카드 들고 아프리카 찾아간 中 속내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중국이 새해 들어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가속하며 우군 확대에 나서고 있다. 중국이 전통적 우방인 아프리카에 감염병 백신을 지원해 미중 갈등 상황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주도권을 공고히 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11일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새해 첫 순방으로 나이지리아와 콩고, 보츠와나, 탄자니아, 세이셸 등 5개국 방문을 마치고 9일 베이징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왕 국무위원은 인민일보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방제 공동 대응, 중대 협력 사업 가속화, 일대일로 추진, 국제 사회에서 협력 강화 등에 합의했다”고 성과를 과시했다. 그는 자국산 코로나19 백신을 전 세계 공공재로 쓰겠다는 약속을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먼저 이행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뒤 “이번 순방을 계기로 일대일로를 강화해 아프리카의 자주적인 발전 능력을 제고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왕 국무위원은 미국을 겨낭한 듯 “중국과 아프리카는 주권과 민족을 수호하고 정당한 발전 권리를 지키며 다자주의를 지지한다”면서 “어떠한 외부 간섭도 반대하며 중국은 아프리카와 함께 더욱 긴밀한 운명공동체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이 새해 첫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택한 것은 이 지역을 미국에 맞설 전략적 요충지로 삼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류는 명 왕조 정화 함대의 원정(1405~143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15년 소말리아가 명 왕조에 보낸 동물에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기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때다. 중국 공산당은 1950년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이나 소련에 속하는 않는 ‘제3세계’라는 공통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현재 중국은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의 광물 자원을 독점 계약하는 등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 위안화를 달러화처럼 태환화폐로 사용하고자 준비 중이다.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중국이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 후보를 지지한 것도 양측 간 긴밀한 관계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이 공격적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하자 서구세계에서는 이를 ‘차이나프리카’로 부르며 경계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일대일로는 부채의 덫”이라며 중국을 비난만 할 뿐 정작 이 지역의 경제적 자립에는 관심이 없는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에 서운한 감정이 많다. 중국의 속셈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서구세계에 마냥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부 외신은 중국이 아프리카에 구체적인 백신 공급 계획을 밝히지 않은 채 생색만 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CNN은 “중국의 끊임없는 인권 유린 문제와 대미 무역 전쟁으로 중국에 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부정적 평가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주요 국제기구에서 결정적 투표권을 가진 아프리카 동맹국들은 중국의 소위 ‘백신 외교’에 훨씬 더 중요한 블록이 됐고, 중국도 아프리카 내 영향력 확보에 더 매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 외교부장이 1991년부터 31년째 새해 첫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갔다 온 것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주춤했던 일대일로 사업을 재건하고 확장하려는데 목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열린세상] 헨리 조지가 바라던 사회/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열린세상] 헨리 조지가 바라던 사회/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몇 년 전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구소련 시절 지어진 노후 백화점 건물 자산관리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해당 국가는 구소련 해체 후에도 여전히 사적 토지소유가 제한돼 있었다. 개인이나 법인은 토지의 장기사용권을 통해 건물을 짓고 운영했는데, 문제는 그 토지사용권 기간이 정부 의지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됐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토지사유제를 도입한다고는 했지만, 수년간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았다. 부패된 지방정부의 수장은 늘 바뀌었고, 조세제도도 들쭉날쭉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로서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 한 이 자산을 빨리 처분하는 것이었다. 글로벌 자산관리 회사는 물론 회계법인, 부동산 업자를 통해 매각을 타진해 봤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피드백은 냉담했고, 매수자들은 토지의 소유권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굳이 건물을 매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안으로 자본을 투입해 노후된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는 방안도 고려해 봤다. 하지만 경제성 분석 결과 마이너스 현금 흐름이 도출돼 이마저도 폐기됐다. 건물의 자산 가치는 대지비와 건축비로 나뉘는데, 이 건물의 경우 대지비는 거의 가치가 없는 수준이고, 내용 연수 기간이 도래한 건축비의 감가상각 잔존가액 역시 제로에 수렴해 자산 가치가 거의 없었다. 거기다 납부해야 하는 토지세액과 건물 냉난방비, 유지수선비를 고려하면 현금 흐름상 오히려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아무런 사회적 효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상기 경험을 통해 필자는 그 토지의 소유권 혹은 명확한 사용권이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깨달았다. 토지의 소유권이 불확실한 사회에서는 부동산의 매매도, 자본의 투입도 일어나기 어렵고, 이는 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같은 사회적 효용을 발생시키기 어렵게 만들었다. 딱히 이 건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해당 도시에는 여전히 현대화된 건물이 별로 없었고, 심지어 구도심 한가운데 23층 고층 호텔은 짓다 만 채 흉물스럽게 10년가량 방치되고 있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다 보니 정부 등 여기저기서 해결책을 내놓기 분주하다. 그 해결책 중에는 19세기 미국에 거주하던 헨리 조지 역시 늘 거론된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저서를 통해 토지사유제가 정의롭지 못함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저서를 잘 들여다보면 그가 토지사유제의 정의롭지 못함은 역설했지만, 그 해결책은 토지주의 지대 환수에 있지 토지 소유권 몰수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본 투입을 통한 토지의 유익한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했으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토지가치세의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토지가치에 대한 세금 이외의 모든 세금은 폐지하자는 주장을 펼쳤는데, 21세기 현대 국가 거주민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우리 사회는 헨리 조지가 주장한 것 이상의 지대 납부 의무를 토지주에게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고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면 재산세, 지방교육세, 도시지역세는 물론 종합부동산세와 농어촌특별세를 납부해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임대소득이 있다면 이는 종합과세 대상이며,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취득세 및 주택양도세도 납부해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는 그 140년의 시간 동안 헨리 조지가 원하는 방향 이상으로 많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세기 헨리 조지를 언급하며 더 강력하고 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을 펼치자고 말할 수 있을까. 헨리 조지는 말했다. 노동자는 노동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고, 자본가는 투입된 자본에 대해 충분한 소득을 올리도록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이는 노동과 자본을 많이 생산할수록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공동의 부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억제하고 누르려는 징벌적 관점에서 부동산 정책을 펼치기보다 상생적 관점에서 공동체의 파이를 어떻게 키워 나가고 분배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높은 보유세의 캐나다나 토지소유권이 없는 중국 역시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고찰할 필요도 있다.
  • 지식인 ‘권위의 가면’을 벗기다

    지식인 ‘권위의 가면’을 벗기다

    대표적인 공연예술 지원사업인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5개 연극 작품이 오는 8일부터 차례로 첫선을 보인다. 주로 ‘경계’에 서서 현대사회를 바라보거나 그동안 외면받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 다양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들로, 관객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기대를 모은다. 우선 극단 김장하는 날의 ‘에볼루션 오브 러브’가 8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라 사랑에 대해 묻는다. 인간의 사랑을 사회, 문화, 정치, 철학, 생물학, 심리학적으로 다각도로 풀어낸 다큐멘터리극으로 특히 소외되고 상처받는 사랑에도 주목한다. 기존에 남성 중심으로 쓰인 신화와 영웅담에서 벗어나 여성 중심 서사로 써내려간 현대판 신화물 ‘달걀의 일’(극단 푸른수염)은 경주를 배경으로 여성 고고학자와 유물, 할머니, 남성 등을 한데 모아 가부장 문화를 꼬집고 새로움을 찾는다. 9~17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한 대학을 통해 지성과 권위라는 가면 속에 가려진 지식인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해부하는 고발극 ‘누란누란’(극단 산수유)도 눈에 띈다. 22일부터 3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이어진다. 같은 기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깐느로 가는 길’(극단 명작옥수수밭)은 1998년 남파 간첩과 전직 안기부 요원의 목숨을 건 영화 제작 프로젝트 과정을 그려낸다. 다양한 오마주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김정일 등장, 소련 해체 등 급격한 사회 변화와 이념과 실존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고역’(공연연구소 탐구생활)은 2018년 입국한 예멘 난민들로 뜨거운 주제가 된 난민을 통해 타인을 수용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다음달 19~28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13번째를 맞은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는 총 194개 단체가 지원해 연극 5개, 무용 8개, 전통예술 3개, 창작뮤지컬 4개, 창작오페라 1개 작품이 선정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스텔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재즘’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스텔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재즘’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간) 미 공군의 폭격기 및 전략폭격기를 운용하는 AFGSC(Air Force Global Strike Command) 즉 지구권타격사령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재즘(JASSM)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내부 무장창이 아닌 외부 무장 장착점에서 발사하는 B-1B 폭격기 모습을 공개했다. 재즘은 미·해공군의 합동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로, B-1B 폭격기의 경우 내부 무장창에 24발을 장착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 무장 장착점까지 사용하게 되면 6발을 추가로 운용할 수 있다. B-1B 폭격기의 경우 개발 당시부터 외부 무장 장착점에 각종 무장을 운용할 수 있었지만, 1991년 당시 소련과의 전략 무기 감축 조약에 따라 사용을 중단해왔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의 군사 대결이 본격화되고 노후화된 B-1B 폭격기 17대의 퇴역이 예정되면서,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B-1B 폭격기의 무장 운용 능력을 대폭 향상시키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미군에 배치된 재즘은 현존하는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가운데 유일하게 완전한 스텔스 성능을 자랑한다. 상대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성능 때문에 다른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과 달리 운용이 간편하다는 특징이 있다. 일례로 비 스텔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경우 적 레이더에 탐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형추적비행을 해야 한다. 지형추적비행이란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여 지형의 굴곡을 따라 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지형 대응 유도 방식이라는 특수한 유도기법이 필요하다. 지형 대응 유도 방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사일 경로상의 세세한 비행고도를 입력 해야 한다.반면 재즘은 스텔스 성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형추적비행이 필요 없다. 따라서 비 스텔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에 비해 운용이 용이하고 생존성도 뛰어나다. 재즘은 미 공군의 F-15E, F-16 전투기 그리고 B-1B 폭격기와 B-52, B-2 전략폭격기에서 사용된다. 미 해군은 F/A-18E/F 슈퍼호넷 함재전투기에서 운용한다. 미사일의 유도방식은 GPS와 관성항법장치 그리고 열 영상 탐색기를 이용한 자동 표적 인식 방식 등 총 세 가지 방식을 복합적으로 사용한다. 자동 표적 인식이란 목표물의 2차원 및 3차원 영상 또는 기하 모델 등의 표적 자료를 사전에 입력한 후, 여러 센서에 의해 탐지된 목표물 표적 자료와 사전 입력된 표적 자료를 비교하여 목표물의 종류를 식별 및 인식하는 기술을 뜻한다. 재즘에는 지하시설물 파괴에 특화된 1000파운드(450여kg)급 관통탄두가 탑재된다. 사거리는 370여km로 알려지고 있으며 오차는 3m에 불과하다. 이밖에 파생형으로는 재즘의 터보제트엔진을 터보팬엔진으로 교체한 사거리 1,000km의 재즘-ER(Extended Range)과 장거리 공대함 및 함대함 미사일인 엘라즘(LRASM)이 있다. 재즘-ER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엘라즘은 사거리가 500여km로 추정되고 있으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최초의 대함미사일로 알려져 있다. 재즘-ER과 엘라즘은 재즘과 동일하게 1000파운드 급 탄두가 탑재된다. 재즘의 발당 가격은 미 2021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한화로 13억 원 이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엘라즘은 43억 원 정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글로벌 In&Out] 러시아에 한국 처음 소개한 몰다비아인 스파파리/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러시아에 한국 처음 소개한 몰다비아인 스파파리/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30년 전인 1990년 12월 14일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한소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당시 많은 러시아인에게 카레야(한국)는 북한이나 러시아연방 구성공화국인 카렐리야로 오해받을 정도로 미지의 땅이었다. 하지만 수교 직후 유학생들과 학자들이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면서 러시아인들이 한국을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러 관계 정상화 30주년을 기념해 최초로 러시아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한 기록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러시아인과 한국인들은 13세기 몽골 칸의 궁궐에서도, 17세기 알바진 전투의 전장에서도 만났으나 당시 서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 상대방이 정확하게 어느 나라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조선에 끼어 있던 안개를 처음으로 걷어 준 사람은 니콜라이 스파파리라는 외교관이다. 니콜라이 스파파리는 17세기 전반 몰다비아 공국 귀족으로 태어나 유럽, 극동 등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친러파였던 그는 1671년 모스크바에 파견되고 러시아에 귀화했다. 1675년 청나라에 파견된 사절단장을 맡아 베이징에서 약 1년간 체류하면서 중국과 그 이웃나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귀국 후 1677년 러시아 외무성에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중에 ‘한국(카레이)誌’라는 부분이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한국을 뚜렷이 소개한 자료이다. 스파파리는 한국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랴오둥 반도와 아무르강 사이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자기만의 국왕이 있으나 중국왕에 종속돼 있다. 여기에 있는 국왕 중에 그런 사람이 많으며 중국의 황제로부터 금인(金印)을 받아야 한다.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중국의 보호를 받는 한국왕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그 나라는 아무르강 근처에 있는 돌출부(한반도)에 위치한다. 하지만 거기에 가려면 아무르강 하구에서 해상을 따라 우회해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만약 아무르강 하구로부터 해상에 돌출부가 없었다면 러시아에서 청나라까지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아주 가까웠을 터이지만 이 돌출부를 일주하는 것은 가능하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면 틀린 설명은 아니다. 조중 관계를 단순한 종주국·속국의 관계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과 왜구의 침탈로부터 중국 지원의 필요성을 위주로 설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스파파리는 조선은 결코 중국의 괴뢰정권이 아니라 자주권을 위한 투쟁을 해 왔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침략을 받았으며 수없이 중국의 종속으로부터 해방했다. 중국인들도 한국인들을 많이 진압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조선의 실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은 팔도로 구성됐 있다. 그 중심에는 아름답고 위대한 수도인 평양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른 도시가 많다.…한국인들은 법, 풍습, 생김새, 말, 신앙 등이 중국과 같다.…중국인들과 다른 점은 여성에 대한 통제력이다.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처럼 여성을 강하게 통제하지 않고 이동의 자유를 허락하며 중국인들은 이를 보고 한국인들을 욕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중국인처럼 부모를 통해 청혼하지 않고 결혼상대를 자유로이 선택한다.” 스파파리는 한국인들이 중국인보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조선에 대한 감탄과 쇄국정책에 대한 유감을 표한다. “한국은 모든 측면에서 풍부한 나라이다.…한국은 쌀의 품질이 어느 나라보다 좋고 온갖 채소, 한지 등을 생산하며…인삼과 금, 은이 많다. 하지만 그 나라는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무역하지 않으며 (외교)관계도 맺어 주지 않는다.…어떻게 봐도 아주 훌륭한 나라지만 러시아 사람들도 외국인들도 아직 가 보지 못했다.”
  • ‘007의 영국’ 뒤통수 친 스파이… ‘소련 영웅’으로 죽다

    ‘007의 영국’ 뒤통수 친 스파이… ‘소련 영웅’으로 죽다

    MI6 소속으로 동료 정보 소련에 넘겨42년형 선고받고 수감… 5년 만에 탈옥한국전쟁 때 北포로… 공산주의로 전향푸틴 “빼어난 용기 지녔던 사람” 애도냉전시대 대표적인 이중간첩으로 알려진 조지 블레이크가 사망했다고 BBC가 러시아 매체를 인용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98세. 네덜란드 출신으로 스페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블레이크는 영국 대외정보기관 MI6 소속으로 소비에트연방(소련) 공작원으로 활동한 전력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동유럽에서 활동하는 MI6 소속 대원 40여명 등 500명 이상의 서방 공작원 정보를 소련에 넘기며 냉전시대 서방의 정보작전에 큰 타격을 줬다. 또 동베를린으로 통하는 지하터널에 영국과 미국이 군사용 도청 장치를 설치한다는 기밀을 빼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1961년 소련의 간첩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며 그는 종신형이나 다름없는 42년형을 받고 수감됐다가 1966년 탈옥해 러시아로 건너갔다. 수감된 지 5년 만에 일어난 그의 탈옥으로 영국 정부는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그는 러시아에서는 그레고리 이바노비치라는 이름을 갖고 첩보원 교육 등으로 여생을 보냈고,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중령 출신으로 연금도 받았다. 고인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뒤 공산주의자로 전향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한 영국 대사관 부영사였던 그는 북한 인민군 포로로 3년간 잡혀 ‘자본론’ 등을 탐독했고,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등을 보고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전향했다. 그는 이에 대해 “만약 공산주의 체제가 승리한다면 전쟁이 종식될 것이고, 그것이 인류에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소련은 그를 ‘국민 영웅’으로 대접했지만, 영국에서는 평생 배신자로 인식됐다. 이에 대해 고인은 “나는 한 번도 거기(영국)에 속해 본 적이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자신을 영국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영국을 배신한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탁월한 전문가이자 빼어난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며 블레이크의 죽음을 애도했고, 영국 정부는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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