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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북한전문가가 포착한 「새 기류」

    ◎“「냉전의 고도」 평양에도 지각변동 조짐”/「빨치산 3세대」인 젊은층서 개방 건의설/“변화는 불가피”… 북측 사회학자들도 시인/「체제모순」 언급 시작… 50년대 소 변신과정과 흡사 북한의 박성철을 비롯한 몇몇 당간부들이 최근 김일성에게 개방정책을 건의했다가 좌천됐거나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고 10일 도쿄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북한에는 동구의 급격한 변화가 전달되지 못하고 있으며 독재체제 수호를 위한 사상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이같은 움직임은 90년대의 북한을 주목하도록 하기에 족한 것이라고 이들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복수의 북한문제 전문가에 따르면 개방정책의 건의는 빨치산 제3세대에 속하는 젊은층에 의해 주도됐으며 한때 북한의 권력서열 상위에 들었던 박성철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 지난 88년 11월 조선노동당 정치국원 후보에서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던 전병호와 86년 4월 정치국원후보로 등장했던 이선실은 해임보도도 없이 숙청됐을 가능성이 크다고이들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들 가운데 박성철은 자신이 담당했던 「사업」이 계속 실패,평가절하가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난 11월19일 실시된 도ㆍ시ㆍ군 인민회의 대의원선거 때에는 당서열 제19위로 처져 있었으며 최근에는 이보다 더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지난해 선거당시 당서열은 김일성ㆍ김정일에 이어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가 제3위였으며 그 뒤를 이종옥 연형묵 김윤혁 김영남 허담 황장엽 서철 김복신 정준기 최태복 현무광 김중린 김창주 강희원 허정숙 박성철 홍성남 윤기복 한성용 서윤석 박남기 김환 조세웅 서관희 홍시학 강성산 최광 주응태가 잇고 있다. 이 가운데 김정일의 동정이 보도된 것은 지난해 7월8일 평양에서의 세계청년학생축전 폐막식에 참석한 이래 4개월만이며 서철노동당 정치국원은 88년 6월24일 이래 1년5개월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지난 연말 동구권에서의 변혁의 와중에서도 북한은 충격을 감춘채 침묵하고 있으면서도 격동의 여파가미치지 않게끔 각종 조치를 취해 왔다. 세계 34개국 주재대사 및 동구권 유학생들의 긴급소환,자체내의 사상통제를 강화한 것 등이 그것이다. 루마니아 사태에 관해서는 12월24일 조선중앙통신에 영문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제르프레스통신에 의하면 12월16일과 17일 루마니아의 티미시와라시에서 정치불안이 계속되고 있으며 21일 부쿠레슈티에서 반정부 집회와 데모가 행해졌다. 이같은 데모는 루마니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났다. 지금 약간의 폭력사태마저 보도되고 있다. 이 사태는 사회질서를 심히 혼란시키고 있다』고 이 통신은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의 이같은 보도는 대외선전용이어서 북한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기는 하지만 그나마 루마니아의 정치적 대변혁이 된 군중데모에 관해 북한측이 처음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22일에는 평양방송이 루마니아에 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도를 내보낸 바 있다. 『아제르프레스통신에 의하면 21일 루마니아 공산당서기장 차우셰스쿠동지 사회아래 행해진 당중앙정치집행위원회의 회의에서는 인민의 생활향상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회의는 차우셰스쿠동지의 제의에 따라 1백50만 이상의 근로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조치로써 1990년 2월1일부터 최저임금을 2천레이로부터 2천2백레이로 인상키로 결정했다. 중앙통신은 25일 전날에 이어 루마니아정세의 제2보를 보도,구국전선평의회의 설치를 처음으로 전했다. 이 통신은 외국의 신문보도를 인용,소란이 돌발한 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긴장이 계속되고 23,24일 이틀간 각지에서 격렬한 포화가 교차되었다고 전하고 대부분의 가로가 봉쇄되고 공장은 조업을 정지했으며 상점은 문을 닫은 채 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통신은 차우셰스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처럼 북한은 외부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또한 내부의 반대세력도 없으므로 동구권과 같은 변화발전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보아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의 김일성체제에 대한 개방압력의 움직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북한을방문했던 「저지 인 모스크바」(JUDGE IN MOSCOW)지의 소피 퀸 기자가 11일자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에 게재한 기사에 따르면 북한의 사회과학자들은 잠재적인 변화조짐이 북한내에 있다고 시인하고 그 사회에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며 결국 변화는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특히 예전에는 사회주의에 모순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은 허용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태발전은 소련의 과정과 비슷한 것으로서 소련에서는 1955년부터 처음으로 소련내에 사회주의의 모순이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소피기자는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들 또한 올해의 북한을 주목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 KAL기,회항소동/인니서/이륙 10분만에 엔진에 불 붙어

    ◎승객 1백20명 공포속 아우성… 사상자는 없어 지난7일 하오9시40분쯤 자카르타공항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KAL628편 A300여객기(기장 신이열)가 이륙한지 10분쯤 후에 2천1백m 상공에서 엔진에 불이 붙는 원인 모를 고장을 일으켜 긴급회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0일 사고기 승객들에 따르면 사고기는 승객 1백20명과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 13명 등을 태우고 자카르타공항을 정상이륙한 후 10분쯤 지나 갑자기 펑하는 폭음과 함께 2개 엔진중 1개가 불길에 싸이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사고기는 곧바로 자카르타공항으로 회항,착륙에 성공했으나 사고기로부터 무선연락을 받은 자카르타공항측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긴급히 앰뷸런스와 소방차를 출동시켰고 사고기가 착륙할 때까지 기내는 공포에 싸인 승객들의 아우성으로 소란을 빚었다. 대한항공측은 사고후 승객들을 자카르타 인터콘티넨탈호텔에 투숙시키는 한편 서울에서 기술요원들을 포함한 사고대책반을 태운 A300 대체기를 8일 하오 현지로 보내 9일 상오7시10분 승객 전원을 서울로 수송했다. 사고기는 현재 자카르타공항에서 엔진교체 작업중이다.
  • 임양ㆍ문신부,재판거부/방청객 제한 항의

    ◎변호인 70명도 사임계 내기로/재판부,22일 구형공판 강행 예정 서울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황상현부장판사)는 8일 북한에 멋대로 다녀온 「전대협」대표 임수경피고인(22)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신부 문규현피고인(41)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다섯번째 공판을 열어 사실심리를 모두 마쳤다. 임ㆍ문 두 피고인은 이날 공판에서 『법정에서 통일논의에 관한 진실을 밝히려고 했으나 더이상 재판부를 신뢰할 수 없어 재판을 거부하겠다』고 밝힌뒤 재판부의 신문에 대해 일체 답변을 하지 않았다. 변호인측도 공판이 끝난뒤 『방청객 수와 녹취를 제한하는 등 최소한의 소송절차조차 재판부에서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이같은 상황에서는 더이상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측은 『재판을 거부함에 따라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은 내지 않고 70여명의 변호인단이 모두 변호인사임계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재판부는 『지난 4차례의 공판에서도 드러났듯이 법정소란으로 방청객을 제대로 제한하지 않고서는 공판을 제대로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방청제한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하고 피고인들이 모든 것을 증언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방청을 제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오는22일 6차공판때 검찰측이 증인으로 신청한 검찰직원에 대한 신문을 마친뒤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없으면 곧바로 구형공판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판부는 변호인들이 모두 사임계를 낼 경우 국선변호인을 선임,공판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공판은 재판부가 방청권을 30장만 발부,일반방청객의 모습은 전혀 눈에 띄지않았으며 임피고인의 어머니 등 가족 2∼3명과 법원직원ㆍ취재기자 등 30여명만 공판과정을 지켜보았다.
  • 「광주」걸려 몸싸움 난장판…“서면매듭”/“5공청산 대단원”증언안팎

    ◎민주의원 명패 던지고 평민의원 삿대질/“22일 자위권 발동” 답변에 분위기 험악/욕설ㆍ야유… 의원끼리 멱살잡고 육탄전/8차례 정회소동… 노 의원,서면사과 거부 ○실증언 1시간50분 ○…섣달 그믐날인 31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증언을 듣기 위해 열린 국회 5공ㆍ광주특위 합동청문회는 상오 10시에 시작해 8차례나 정회사태가 벌어지는 진통속에 새해가 시작되는 자정을 넘겨 차수변경까지 해가며 마라톤 진행. 이날 전 전대통령의 국회증언은 80년대를 마감하고 새 정국을 열리라는 역사적 상징성과 국민 일반의 기대를 갖고 있었음에도 답변내용을 문제삼는 야당의원들의 거센 항의와 여야합의에 따른 회의진행을 요구하는 여당원들간의 실랑이 때문에 전 전대통령의 실질증언 시간은 1시간50분에 그쳤고 광주관련 뒷부분과 보충질의 등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종결. 회의벽두 전 전대통령이 질문사항에 대한 답변을 하기에 앞서 전직대통령으로 사상 처음 국회증언대에 선 감회를 피력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을 때만 해도장내는 엄숙한 분위기.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 전 전대통령이 5공당시 여러 조치들이 불가피했던 점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자 흥분한 야당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일어났고 이에 여당의원들도 맞고함으로 맞서 극도의 환란상을 연출. 특히 광주문제와 관련,군의 자위권 발동을 거론하는 순간 평민당의 일부 비특위의원들이 거친 욕설을 해대며 전 전대통령에게 달려들었고 민주당의 노무현의원은 증인석으로 명패를 집어던지는 「상식밖의」 행동을 하자 민정당과 전 전대통령측이 청문회에 불참,결국 회의가 「파탄」에 도달. 청문회가 파행으로 흐르자 야3당은 「위증」 및 「불출석」 등을 이유로 국회고발을 거론하는 등 증언이 새 불씨로 등장할 때에 대비했고 민정당측은 일부 야당의원들이 「의원답지 못한 폭력적 행위」로 인한 불상사라고 야당측을 비난. ○회의속개 합의 불발 ○…회의장 소란으로 31일 저녁 7시55분부터 정회가 시작된 뒤 여야는 간사회의를 통해 ▲명패를 던진 노무현의원의 서면사과 ▲소란행위를 유발했던 조홍규ㆍ정상용ㆍ이철용의원(평민)을 회의장에 출석시키지 않기로 합의,회의를 속개할 예정이었으나 노 의원이 구두사과 발언을 고집한 데다 조의원 등도 회의장 방청을 주장,결국 밤 11시 증인의 불출석 속에 야3당측 의원들만 자리를 한 가운데 회의를 속개. 회의 속개후 신상발언에 나선 노무현의원은 『명패를 던진 것은 사실이나 그같은 사태가 발생했던 당시는 이미 정회가 선포된 뒤였고 증인이 퇴장한 지 상당시간 지난 뒤였다』면서 『회의벽두부터 국민의 여망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회의가 진행된 데 대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 ○자정무렵 기자회견 ○…전 전대통령은 이날 밤 11시55분쯤 증인대기실로 쓰던 국회 2층 국무위원대기실에서 이춘구총장ㆍ이한동총무 등 민정당의원 20여명과 백담사측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통해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물을 10분간에 걸쳐 낭독. 전 전대통령은 『알고 한 일이건 모르고 안 일이건 제가 맡고 있던 그 시대의 일은 전적으로 최고책임자인 저의 책임』이라면서 『국민이 내리시는 것이라면 죽음의약사발도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 거듭 강조. 기자회견을 마친 전 전대통령은 『오는 백담사에서 새벽에 출발하느라 제대로 잠을 못잤는데 이제 다시 백담사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기자 여러분에게 할 말도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자』는 말을 남기고 국회를 출발. 전 전대통령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은 당초 서면답변서 낭독을 마친 뒤 신상발언용으로 준비됐으나 청문회가 중단됨에 다라 기자회견문으로 대체됐다는 후문. ○“합의사항 파기” 비난 ○…전 전대통령이 1일 새벽 0시10분쯤 국회를 출발하자 민정당은 의원간담회를 갖고 해산할 것을 결정했으나 이춘구총장ㆍ이한동총무ㆍ박철언정무1장관 등은 따로 남아 구수회의를 계속하다 0시30분쯤 모두 귀가. 이날 의원간담회에서 이 총무는 『전 전대통령이 엄청난 수모와 온갖 굴욕을 감내하며 과거청산 마무리를 위해 증언대에 섰다』면서 『그러나 야당의원들은 자기들 총재의 합의사항도 파기하면서 모욕적인 행동을 자행했다』고 비난. 이에 앞서 이 총무는 31일 밤 11시40분쯤 증인대기실로 전 전대통령을 찾아 증언이 계속되기 어려움을 최종 통보. ○…이날 5차례 정회끝에 하오 7시51분 속개된 청문회에서 전 전대통령이 발언대에 나와 『5월22일 자위권 발동…』이라고 말하는 순간 1층 의원방청석에서 청문회를 지켜보던 평민당의 정상용의원을 선두로 이철용ㆍ조홍규의원 등 「구경꾼」들이 『살인마 전두환』 『사람을 죽여놓고 무슨 자위권이냐』 『발포책임자부터 밝혀라』고 고함치며 단상앞으로 뛰쳐나오자 이들을 육탄저지하려는 민정당의 강우혁ㆍ권해옥의원 등과 서로 멱살을 잡는 등 육탄전이 벌어져 한순간 아수라장. 몸싸움이 점점 격력해지면서 이철용의원이 전 전대통령의 바로 곁에까지 다가와 욕설을 퍼붓자 문 위원장은 7시55분 재빨리 정회를 선포. 이에 전 전대통령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 변호사와 정동성의원(민정)과 함께 청문회장을 나서자 갑자기 노무현의원(민주)이 자신의 책상위에 놓여있던 명패를 집어들어 전 전대통령이 서 있던 발언대를 향해 투척. 한편 1층 청문회장의 소란과는 별도로 2층 방청석에서도 평민당측방청객과 민정당측 방청객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한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 ○“속개 못한다” 흥분 ○…평민당 정상용 이철용의원들의 소란과 민주당 노무현의원이 자신의 명패를 집어던져 정회가 선포되자 민정당의원들은 의원실로 내려와 특위위원회의 및 당소속의원간담회를 잇달아 열고 긴급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 민정당의원들은 노 의원이 던진 명패를 들고와 『이런 짓을 하는 게 어떻게 국회의원이냐』 『회의를 계속할 수 없다』며 흥분된 모습이었는데 이춘구총장도 『노 의원의 명패를 돌려주지말라』고 지시하는 등 강경 발언. 백담사측의 이양우변호사도 울먹이는 표정으로 당지도부를 찾아 『이런 상태로 증언이 되겠느냐』고 하소연. ○…이날 상오 10시부터 시작된 청문회는 전 전대통령의 5공특위 질문사항에 대한 답변이 약 1시간에 불과했음에도 4차례의 정회와 의사진행발언,답변도중의 소란으로 하오 4시20분쯤에야 5공부분이 마무리되고 광주부분에 대한 답변이 시작. 황명수위원장은 이날 증언에 앞선 인사말에서 전 전대통령에 대해 『5공비리의 정점에서 초법적 통치권을 행사했던 증인은 5공정권 찬탈과정에서의 폭압과 집권기간동안 자행된 탈법ㆍ비리의 제도적 부정부패에 대해 성실하게 증언하라』며 증언을 듣기도 전에 미리부터 논죄. ○…이어 전 전대통령은 지금까지 국회청문회에 소환됐던 증인들이 위원장에게 오른손을 들고 선서문을 낭독했던 것과는 달리 발언대에 나와 선서문을 낭독한 뒤 서명날인하여 위원장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선서를 대체. 전 전대통령은 특위의 질의에 대한 증언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직 대통령의 국회증언이라는 오점을 남긴 것은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오이며 모든 것이 저로 인해 문제된 업보임을 인식하고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면서 증언대에 서게 된 소회를 피력하는 순간 곁에서 지켜보던 이 변호사는 끝내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이어 전 전대통령이 답변에서 『일해재단 성금 모금과정에 의혹이 없으며 이같은 연구소는 나라를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강조하자 평민당의 양성우의원이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한다,우리가 여기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다』고 항변했으며 정동호ㆍ신재기ㆍ홍희표의원 등 민정당의원들이 『할 말이 있으면 보충질문때 해라』고 일제히 소리쳐 한차례 공방전. ○“답변 미진하다” 고함 ○…식사 정회후 하오 2시 속개된 회의는 각당 대표 1명씩의 의사진행발언후 증언을 계속 들을 예정이었으나 의사진행발언시간중 증인이 반드시 나와 있어야 한다는 평민당측의 항의소동 등으로 20분동안 여야간 고함만 오고간 채 또다시 정회소동을 연출. 황 위원장은 회의가 속개된 직후 『오전답변중 25∼26개 항목에 대한 답변이 빠져 있다』며 『이들 누락항목에 대한 답변은 광주부분에 대한 답변과 보충질의 답변이 끝난 뒤 듣기로 간사간 합의를 보았다』고 소개하며 각당 1명씩 나와 의사진행발언을 하도록 요구. 그러나 첫 의사진행발언자로 발언대에 나선 김영배의원(평민)은 『의사진행발언중에는 반드시 증인이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전 전대통령의 출석을 요구하자 황 위원장은 『의사진행발언은 증인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기로여야간 합의를 했다』며 간사회의 합의내용을 소개. ○“포괄적인 답변말라” ○…국회는 하오 4시5분 5공특위의 질의에 대한 증언을 마무리짓고 사회자를 문동환광주특위위원장으로 교체한 뒤 「광주」부분에 대한 증언을 청취. 문 위원장은 여당의원들의 항의와 반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면밀하게 연구된 질문들이 회피되고 적당하게 넘어가는가 하면 답변이 자기정당화로 일관하고 있다』며 전 전대통령을 비난한 뒤 『포괄적으로 답변하지 말고 질의 번호에 따라 하나하나씩 답변해달라』고 요구. 한편 평민당 김대중총재는 이날 상오 연석회의장에 들어가 증언을 경청한 뒤 하오부터는 국회총재실에서 TV를 통해 증언장면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지켜봤으며 민주당 김영삼총재도 아침 일찍부터 국회총재실에 나와 김동영사무총장ㆍ이기택총무ㆍ박관용통일특위위원장 등 당 소속의원들과 전씨의 증언내용에 관해 얘기를 나누면서 TV로 전씨의 증언장면을 계속 지켜보는 등 비상한 관심을 표시했으나 공화당 김종필총재는 청구동자택에서 혼자 TV를 시청.
  • “어떤 심판도 달게 받겠다”/전 전대통령,서면답변내고 백담사로

    ◎증언 소란끝에 중단,파행종결/「광주」 군 배치ㆍ이동 관여 안했다/정치자금 민정외엔 준일 없어/증언내용 전두환 전대통령은 구랍 31일 재임기간중 정치자금문제에 대해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기부받은 바 있다』고 말하고 『민정당 이외의 특정인에게 정치자금을 준 일은 없다』고 밝혔다. 전 전대통령은 이날 국회 5공 및 광주특위 연석회의로 열린 청문회에 출석,이같이 말하고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게 됨으로써 과거청산의 마무리가 아니라 청산의 새로운 시작이 되고 과거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될까 두렵다』며 구체적인 정치자금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전 전대통령은 6ㆍ29선언에 대해 『6ㆍ29선언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어떻게 실현되고 추진돼 정치발전과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경위나 배경을 들추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면서 『정치이면의 얘기는 현실정치에 민감한 영향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훗날 회고록 등을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전대통령은 광주사태에 언급,『초동 진압단계에서 계엄군의 강경진압과 악의적인 유언비어에 자극받은 일부 시민의 과격시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하고 『본인은 당시 군의 배치이동 등 작전문제에 대해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말해 광주사태진압 및 발포와 무관함을 주장했다. 전 전대통령은 『본인은 광주 무력진압에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겠고 시민 상대의 사태수습을 군작전 개념으로 한다는 것은 현명치 않다는 의견을 계엄사 지휘관들에게 전달한바 있다』고 말하고 『자위권행사 문제는 군인복무 규율에 따라 불가피한 상황하에서 행사된 것으로 판단되며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5월22일 자위권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의 작전지침이 하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전 전대통령은 『12ㆍ12사태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도중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었을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사전에 준비된 병력출동 계획도 없었다』고 밝히고 『12ㆍ12사태는 시해사건에 대한 수사책임자인 본인이 주도한 것이며 그로 인해 야기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본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는 전 전대통령의 증언 부실 등을 이유로 여야간 야유와 고함ㆍ몸싸움이 속출해 8차례나 정회를 거듭한 끝에 민정당측과 전 전대통령이 불참한 가운데 야3당 의원들만으로 자정을 넘겨가며 파행적으로 진행되다 1일 0시50분에 산회됐다. 이날 저녁 7시30분 5차례의 정회끝에 속개된 회의에서 광주문제에 대해 증언하는 가운데 평민당의원들이 격렬하게 항의,민정당의원들과 격돌을 벌였고 정회가 선포되자 민주당 노무현의원이 전 전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던지는 사태가 발생,민정당측이 서면사과를 요구했으나 야당이 이를 거부하자 민정당과 전 전대통령은 증언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이날 파행적인 청문회 결과 야당측이 위증시비를 제기하는 한편 부실답변을 계속 문제삼고 있고 특히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증언에 대해 평민당과 재야 등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전대통령은 이날 증언이 중단된 뒤 서류로 제출한 나머지 증언을 통해 광주에서의 발포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던 입장에서 건의를 받을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고 부인하고 『광주의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 당시 정부와 군의 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책임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재임중 상처를 치유,해결하지 못한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 동기에 대해 『최대통령이 하야시 발표한 성명내용에 비춰 헤아려 볼 수 있을뿐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추측해 말하기 어렵다』고만 답변했다.
  • “증언 미흡하나 「청산」의 전기로”/전 전대통령 증언하던 날

    ◎“형식적 답변엔 실망… 진실 밝혔어야”/일손 놓고 TVㆍ라디오에 몰려/연휴 거리 한산… 휴양지도 “썰렁” 31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역사적인 국회증언은 끝내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이른바 「5공청산」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대다수 국민들은 전 전대통령의 증언내용이 미흡하고 형식적이었다고 지적하면서도 국회증언이 변칙적으로 끝난데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지난친 소란행위가 빌미가 됐다는데 대해 실망을 금치 못했다. 국민들은 여야의원들이 증언을 듣기 보다는 맞고함을 치는 등 소동을 벌여 정회를 거듭하다가 결국 얼버무리는 식으로 끝나버린데 대해 눈살을 찌푸리면서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향상이 「5공청산」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다른쪽에선 이날의 파행적인 청문회가 전 전대통령의 증언이 불성실한데 따른 것이며 전 전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과거를 보다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국민들 대부분은 신정연휴 첫날인데도 외출을 삼가고 상오11시부터 시작된 TV중계를 자정이 넘도록 시청했다. 귀성 또는 휴양길에 올랐던 사람들도 열차나 버스ㆍ승용차안에서 TV나 라디오중계를 숨을 죽이고 청취했다. 그러나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청문회장이 여당의원들이 불참하고 야당의원들만이 자리를 지키며 증언내용을 성토하다 전 대통령마저 백담사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이번 청문회는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이 무엇인지를 아느냐』는 등의 비난전화가 각 언론사와 정당사무실 등에 빗발쳤다. 상당수 국민들은 특히 잇단 정회끝에 하오7시51분에 속개된 청문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증언도중 일부 야당국회의원들이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폭언을 퍼붓거나 명패를 집어던지는 등 난장판이 벌어진 끝에 4분 남짓만이 끝나자 『국회의원들이 도대체 국민들의 수준을 어떻게 여기는 것이냐』고 흥분했다. 이날 중계방송이 시작된 이후 서울시내거리는 한때 행인과 차량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산했다. 그러나 정회가 자주되는 등 증언자체가 다소 지루해지자 상오11시쯤 81.4%에 이르던 방송청취율이 갈수록 떨어져 50%선을 밑돌기도했다. 이날 서울시내 아파트밀집지역은 시민들이 자정이 넘도록 재방송된 증언내용을 시청하느라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몇몇 시민들은 『그동안 전씨가 많이 늙고 수척해진 것 같다』고 안쓰러워 하기도 했다. 백화점과 극장에도 상오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가 하오부터 몰려들었지만 예년에 비해서는 한산한 편이었다. ▷광주◁ 이날 광주시민들은 80년5월 광주의 비극을 다시한번 되새겼다. 5ㆍ18때 부모형제 혹은 자식을 잃은 유족들과 불구가 된 부상자 등 피해 당사자들를 비롯,광주시민들은 한결같이 TV앞에서 녹화중계되는 역사적인 증언을 지켜봤다. 증언이 중계되는 동안 광주시내에는 운행하는 차량이 줄어들어 한산했고 평상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중심가인 충장로 등지에도 행인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부산◁ 부산에서도 온시민의 눈과 귀가 국회증언 현장으로 쏠렸다. 각 가정마다 TV앞에 둘러앉은 시민들이 80년대의 비극을 청산하기 위한 전 통치자의 증언내용을 주시하는 동안 거리에는 차량통행마저 뜸했고 상가들도 철시상태로 한산한 분위기 였다. ▷대구◁ 대구시내 상가 대부분이 철시한 가운데 많은 시민들은 가정에서 TV증언모습을 지켜보았고 거리에는 행인이나 차량통행이 평소보다 크게 줄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청문회의 파행적 종결 안타까움”/“답변 불실 유감,과거연연 말아야”/“고함ㆍ삿대질 역거워… 정치인 자세도 고칠 때”/전씨 증언 각계반응 ▲이종환씨(30ㆍ회사원ㆍ서대문구 홍제동 유원아파트 3동602호)=전씨가 증언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백담사로 돌아간데 대해 전씨와 의원들 양쪽에 모두 분노를 느낀다. 전씨는 의원들의 보충질문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더욱 흐려질 것으로 보아 돌아간 것으로 본다. 의원들도 특위간사들이 결정한 사항조차 따르지 못해 청문회장이 아수라장이 되고 진행이 늦어진데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최미일씨(34ㆍ주부)=한 평범한 시민으로서 매듭이 잘 풀어지지않은 것을 보고 답답한 심정이다. 전전대통령이 과거문제를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은 구체적인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안정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같은 것도 매듭의 한 단계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 불씨가 새해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으며 민생문제에 보다 많은 비중이 지워졌으면 한다. ▲정수씨(30ㆍ회사원)=청문회의 파국을 보며 우선 답답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질의하는 국회의원이나 답변하는 전 전대통령 모두를 볼때 누구든 국민의 대표라면 이처럼 끝내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5공비리나 광주문제에 관해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며 국민들의 정당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정광모씨(한국소비자연맹회장)=이미 국민들은 현실적으로 5공청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금까지 밝혀진 것 이상의 증언을 기대하지 않았다. 전씨의 증언은 5공치하의 피해자는 물론 국민들이 들어볼 때 미흡한 답변이다. ▲김문수씨(작가)=정치적으로 어떤 전기가 마련되어 새해부터는 우리사회가 발전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TV를 시청했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 이상의 진실이 나오지 않아 지난 청문회 수준에도 못 미쳤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상식이하의 의사진행은 전 전대통령의 증언 못지않은 실망을 보여주었다. ▲김지애씨(41ㆍ주부ㆍ서울 마포구 염리동)=전씨가 국회에서 증언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보니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답변내용이 성실성이 결여돼 있고 자기변명을 하느라 급급해하는 인상을 받아 전씨 증언에 걸었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김병현씨(24ㆍ인하대4년)=전씨가 국회에서 증언함으로써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거나 5공청산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라고 생각한다. 또 국회증언장에 나온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보면서 작년 청문회때와 조금도 변한데가 없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크다 ▲김용모씨(대한볼링협회회장)=전직대통령이 국회증언대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친 것으로 본다. 이번 증언을 끝으로 5공에 대한 시시비비를 더 이상 말고 모든 계층이 합심단결해 국가발전과 통일을 위해 노력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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