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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전·노씨 2차공판/「12·12­5·18」관련

    ◎검찰 12명 직접신문 12·12 및 5·18사건의 2차 공판이 18일 상오 10시부터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리는 이 날 공판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씨 등 12·12사건 관련 피고인 13명이 출정한다. 검찰은 지난 11일의 1차공판 때 직접신문을 마친 노피고인을 뺀 나머지 12명의 피고인을 직접신문한다.전두환피고인은 유학성·황영시피고인에 이어 세번째로 신문을 받는다. 검찰은 유·황피고인에게 각각 1백 문항,전피고인에게는 3백 문항을 신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한 경위와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재가 여부 등 핵심 쟁점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할 예정이다. 한편 재판부는 1차공판 때와 같은 법정소란을 막기 위해 법정내 방청석을 감시하는 폐쇄회로 TV 2대를 설치,운용키로 했다.
  • “중국군 훈련 최근접지” 대만 팽호도를 가다/본사 이기동 특파원

    ◎전투기 굉음… 도로엔 군보훈련 군인/섬 전체 팽팽한 긴장감… 주민들 출어 못해/마공 시내는 선거철 소란 가득… 묘한 대조 대북을 출발한 90인승 쌍발 프로펠러여객기는 불과 1시간만에 팽호군도의 수도 마공시 공항에 도착했다.만만치 않은 전운은 비행기가 내리면서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느껴졌다.군용비행장의 한켠을 민간기들이 이용하는 탓인지 대만군의 주력 F5기들이 연이어 뜨고내리며 내는 굉음에 귀가 멍멍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통하는 해안도로변 곳곳에 위장망을 씌운 대공포가 솟은 방공포대가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중국군이 공정대를 투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전략요충지인 탓인지 도로 곳곳에서 M16 소총으로 무장한 소대병력이 구보훈련을 하고 있다. 도로변의 한 대공포진지를 찾아들어가보니 진지를 에워싸고 갓 만든듯 흙이 채마르지 않은 엄호·방어진지들이 불과 4∼5m간격으로 들어서 있다.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려던 앳된 얼굴의 병사는 1주일여 전부터 엊그제까지 새 방어진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중국군이 2차 실탄사격훈련을 벌였던 해역은 이곳 팽호도에서 서남쪽으로 불과 70여㎞ 떨어진 곳.고기잡이 배로도 1시간30분 남짓 거리이다.마을주민들이 가리키는대로 섬 남단 이수산항의 방조제 위에 올라 망원경을 통해서 보니 훈련 인근지역인 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팽호도의 주민 10만여명은 대부분이 어업을 생업으로 한다.잡은 고기를 대북,홍콩,일본 등지로 수출해 보기 드문 부촌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중국군의 훈련으로 출어를 제대로 못해 생계에 적지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왕씨성을 가진 한 어부는 『중국군의 훈련을 전후해 출어를 삼가라는 현당국의 당부가 있었다.그리고 요즈음 날씨도 좋지 않아 이래저래 출어를 않고 있다』고 했다.왕씨는 『중국군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대대로 살아온 이곳을 떠나기는 싫다.맞서 싸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팽호도에서 중국군이 상륙하기에 가장 용이하다는 지형의 익문촌 일대 해변초소들에서는 병사들이 참호를 파고 모래주머니로 진지를 보강하느라 한창이다.진지 주변의 긴장감과는 달리 초소 앞까지택시를 들이대는데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26세라는 대만 가오슝 출신의 장교는 『전쟁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초소의 엄호시설과 참호보강 작업을 하고 있지만 평소와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마공시내로 들어오면서 해변의 긴장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23일 실시되는 총통선거의 각당 운동원들이 떼지어 다니며 전단을 뿌리고 스피커를 단 선거운동용 차량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대북시도 그랬듯이 전쟁의 긴박감보다는 선거철의 소란함이 앞서는 것같았다.관광상품을 파는 한 가게주인은 심지어 『외국기자들이 왜 이렇게 몰려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당신들이 전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고까지 했다. 해질 무렵 항구에서 닻을 내리던 한 어부는 『중국군 훈련지역 쪽으로 가니까 대만해군정이 가로막고 더이상 밑으로는 못가게 하더라』며 그곳 사정을 전해주었다.한화로 30만원에 배를 빌려 이튿날 훈련해역으로 나가볼 생각이라고 했더니 그는 손을 가로저으며 『가까이 갈 수도 없을 뿐아니라 아무 표시도 없는 망망대해일 뿐인데 뭣하러 가느냐』고 만류했다.해가 지면서 시외곽으로는 또다시 전에 없는 긴장감이 에워싼다.군인들이 지나는 차량을 일일이 세워 검문하고 순찰군인들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해안순찰도 크게 강화됐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피차 사생결단의 전의를 다지는 것도 아니고 적의 머리끝 하나 비치지 않는 이상한 「전쟁전야」속에 팽호도의 밤은 깊어갔다.
  • 신한국당 강용식 의원 정치풍토 소개

    ◎불순금심·무전구천·유전불납 등 “국민회의에 「신종 칠거지악」” 총선 정가에 「신종 칠거지악」이라는 말이 새로 등장했다.예전의 우리 며느리들처럼 김대중총재의 「사람」들이 범해서는 안되는 7가지 「잘못」을 시사하는 신풍조어다.김총재의 눈밖에 벗어나면 쫓겨나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는 야당의 정치풍토를 꼬집고 있다. 이같은 신종어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 새로운 유행어로 부상할 조짐이다.최근 야권이 국민회의의 공천헌금 문제로 소란스러워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바람을 탈 기세다.신한국당 강용식선대위 상황실장이 최근 야당의 모 인사에게 들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첫째 「김심」에 순종하지 않는 불순금심,둘째 돈도 없으면서 공천을 달라는 무전구천,셋째 주머니에 있으면서 돈을 안내는 유전불납,넷째 허락없이 제멋대로 크려는 무허성장등이다. 또 다섯째는 입이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 유구유언,여섯째는 총재보다 한발 앞서 걷는 선행김행이며 마지막 일곱째는 총재 행차 때 배웅도 마중도않는 불송불영이다.
  • 12·12­5·18 공판과정 녹화/「2차」때부터

    ◎CC­TV 설치… 법정질서 유지 서울지방법원(원장 정지형)은 오는 18일 열리는 12·12 및 5·18사건 2차공판부터 417호 대법정에 CC­TV를 설치,모든 공판과정을 녹화할 방침이다. 법정관리 등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지법 권광중 민사수석부장판사는 16일 『지난 11일 1차공판에서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 폭행사건이 발생,법정질서 유지차원에서 폐쇄회로 TV 2대를 설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CC­TV가 법정내 질서유지목적으로 설치되기 때문에 재판부와 피고인석주변은 제외하고 방청석만 촬영,법정소란이 발생할 경우 증거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 선관위 경고 무시한 야당/양승현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첫 적용되는 통합선거법에는 애매한 조항이 많다.불균형도 적지않다는 게 실제 이 법을 지켜야 할 정치권의 얘기이다. 실상이 그렇다 하더라도,또 「악법도 법이다」는 경구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늘상 선거철이면 보게 되는 우울한 장면들이 너무 많다. 14일 하오 8시 종로 3가의 P호프.국민회의 젊은 후보들이 주축이 된 「그린캠프 21」이 마련한 「청년대화광장­김대리의 희망을 이야기하자」가 열렸다.처음 선보인 행사인 만큼 일반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나도 한마디」 순서. 정대철 선대위의장과 이종찬 부총재,이해찬 선거기획단장이 준비된 무대 위로 올라섰다. 순간,한쪽 구석에서 소란이 일었다.선관위직원들이 『당공식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후보자가 앞에 나와 얼굴을 알리거나 발언을 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이에 당관계자들은 『저 분들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얼굴을 알리기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대응했다. 선관위와 국민회의 관계자 사이의 실랑이는 20여분내내 계속됐다.합의점을 찾았다기 보다는 문제의 프로그램이 끝난 탓이다.「예술」로 불리는 정치의 미덕인 자정과 절제의 능력을 상실한 셈이다. 이날의 「눈쌀 찌푸려지는」 장면은 선관위 관계자들이 보고 느끼는 일상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지금 이 시간도 전국 곳곳에서 이같은 일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고 비디오카메라를 든 한 직원이 전한다. 선거철이면 항상 불거져 나오는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이번 선거법은 14대 국회가 여야 합의로 만들어낸 성과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그런데도 걸핏하면 편파적이고 잘못됐다며 상대방을 고발하고 흠집내느라 연일 야단법석이다. 「여의도」에서 하루도 거르지않고 선거관련 고발이 잇따르는 것은 도대체 누구 책임이란 말인가.그 해답은 유권자만 아는 것 같다.
  • 「12·12」「5·18」 공판­역사적 현황

    ◎“쿠테타 아닌 구국행위” 궤변/수의입은 전·노씨 뉘우침 없이 당당/“당신들이 스타냐” 항변에 한때 술렁/“불행한 현대사 심판”… 방청객 착잡한 표정 17년 전 무력으로 국권을 장악했던 쿠데타의 주역 16명이 마침내 모두 한 법정에 섰다.두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다.현대사의 획을 긋는 역사적 재판으로,전 세계의 이목도 집중됐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을 비롯,국권탈취 주역들의 표정에서는 뉘우침을 읽을 수 없었다. 1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재판부의 호명에 따라 전두환 피고인이 먼저 법정에 들어섰다.이어 노태우 피고인이 입정해 전피고인 바로 옆에 섰다. 노씨 비자금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해 10월7일 육사 교정에서 11기 임관 4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이후 6개월여만의 기구한 만남이었다. 두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노피고인은 쿠데타의 좌장이자 옛 동지인 전피고인의 오른 손을 왼손 안쪽으로 잡았다. 이어 유학성·황영시 피고인 등 나머지 피고인들도 차례로 법정에 들어섰다. 피고인들은 12·12 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한 뒤 보안사에서 당당하게 기념 촬영을 했고 이듬해인 80년 5월 국보위를 출범시켰다.이를 바탕으로 5∼6공의 대통령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이 날은 피고인석에서 뒷모습을 「단체촬영」당하며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했다.그럼에도 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이어 김상희 부장검사의 공소요지 낭독이 끝난 상오 10시25분부터 시작된 변호인의 공소요지 반박은 정오까지 진행됐다. 하오 2시30분에 속개된 재판에서도 계속됐다. 『민주화 운동이란 이름으로 10여년간의 진실을 호도했다』며 시작된 전상석 변호사의 반박요지는 5공화국의 정통성과 검찰기서의 부당성을 강변하는 것이었다. 노태우 피고인은 검찰의 직접 신문에서도 자신의 행위가 국가를 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숨겨진 진실을 공개해 참다운 정의를 구현하는 계기가 되고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재판』이라는 검찰의 모두진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재판 내내 역사의 심판을 벗어나려는 쿠데타 주역들의 강변이 계속됐다.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상오 재판이 끝나고 피고인들이 악수를 나누자 방청석에 있던 고 강경대 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5)가 『너희들이 스타냐』라고 고함쳤다. 그 순간 강씨의 주변에 있던 20여명의 전·노피고인의 측근들이 일제히 일어나 『조용히 해』라며 달려들어 한동안 소란이 빚어졌다. 방청객들의 표정도 모두 착잡했다.
  • 「12·12」「5·18」 공판­이모저모

    ◎전씨,노씨와 귀엣말… 제지 당하자 당황/보도진 사진 촬영 이례적 90초 허용/방청진 「암표」 1장에 50만원 웃돌아 두 전직 대통령을 함께 법정에 세운 「세기의 공판」이 열리기 전부터 법원이나 구치소 주변은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법원주변◁ ○…정문 앞에는 6개 중대·7백20명의 경찰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폈다.「5·18동지회」 등 5·18관련단체 회원 80여명은 이날 상오 광주에서 전세버스 2대를 타고 올라와 법원으로 들어가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5월 민중항쟁 동지회」 김현장 회장(46)은 『전·노 두사람에게 5·18 유족들의 울분을 보여주기 위해 피켓과 현수막을 준비했는데,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항의.이들은 전·노씨 등 피고인들을 태운 호송차가 도착하자 계란 등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상오 9시 방청권을 손에 쥔 사람들은 수고비를 톡톡이 받고 의뢰를 받은 심부름 센터 직원들이 대부분.방청권을 받기 위한 줄서기는 지난 9일 하오 시작돼 같은날 하오 8시 사실상 마감됐었다. 때문에 방청권의 「암표값」은 이틀 밤을 철야한 품값과 공판이 갖는 의미에 비춰 장당 50만원을 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법정에서 전·노피고인에게 고함을 쳤던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5)는 전씨의 차남 재용씨(32)를 전치 3주의 진단서를 첨부,경찰에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전·노씨가 웃으며 악수를 하는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고함을 치는 순간 옆 자리에 앉았던 재용씨가 목을 때렸으며,전·노씨의 측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고 주장. 강씨는 공판이 끝난뒤 목의 상처를 이유로 관악구 사당동 사당의원에 입원. ▷호송◁ ○…안양교도소 및 서울구치소·영등포구치소 등 3곳에 분산 수감돼 있던 두 전직 대통령 등 구속피고인 11명에 대한 법정호송이 상오 7시50분부터 경찰의 삼엄한 경비속에 2시간여동안 진행됐다. ▷구치감◁ ○…노피고인은 상오 9시22분 경기5더1062호 호송차량을 타고 법원 구치감 입구에 도착한 뒤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일체의 답변을 하지 않고 바로 구치감으로 들어갔다.그는 비자금 사건 등 계속된 재판으로 지친 탓인지 초췌한 표정이 역력했으며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 ○…6분 뒤 경기6도1007호 차량을 타고 도착한 전피고인도 미소까지 띠고 손을 흔들며 당당하게 입정하던 지난번 비자금 사건 재판 때와는 달리 긴장된 모습.그는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전·노피고인을 태운 호송차량은 시민들이 던진 계란 등의 얼룩이 앞유리창과 옆창문 등에 묻어 있었다. ▷법정◁ ○…서울지법 417호 법정으로 통하는 2층 검색대 앞에는 전·노씨의 친인척과 측근 인사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원홍 전 문공장관,김진영 전 육참총장,이필섭 전 합참의장,최석립 전 경호실장,최웅 전 대만대사,김재명 전 지하철공사 사장 등 5∼6공 인사들도 대거 방청. 전씨가 백담사에 유배됐을 당시 백일기도를 도왔다는 성능스님은 『오랫동안 전 전 대통령을 뵙지 못해 나왔다』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날 피고인들이 모두피고인석에 서자 인정신문에 앞서 90초동안 피고인의 뒷모습과 재판부·검사석에 대한 보도진의 촬영을 허용.40초이던 전·노씨 비자금 사건 공판에 비해 촬영허용 시간이 곱절 이상 길어졌다. ○…검찰은 노씨에 대한 직접신문을 진행하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전씨가 귀엣말로 노씨와 수차례 속삭이자 강력히 제동. 하오 속개된 공판에서 김상희 부장검사가 『전두환 피고인은 가만히 계십시오』라고 큰소리로 제지하자 전씨는 놀란 듯 검사석을 돌아본 뒤 서둘러 재판장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등 당황한 표정이 역력. ○…상오 재판이 끝나며 다소간의 소란이 빚어지자 김영일 부장판사는 하오 5시55분쯤 20분간 휴정을 선언하고 퇴정하면서 『누구도 법정안에서 소란을 피울 수 없다』며 『그런 사람은 법정에 들어올 자격이 없으며,앞으로는 재판부가 퇴정한 이후의 법정소란 행위도 절대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 ○…노씨는 비자금 사건 공판 때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자기 변호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검찰신문에 대응해 눈길. 노씨는 정총장의 연행은 신군부측의 하극상에 의한 불법행위였다고 검찰이 추궁하자 『당시 신군부 장성 이외에 정식 지휘계통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만큼 불법적 요소는 없었다』고 강변. 특히 『합수부장은 범죄혐의가 있는 한 어느 누구라도 수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며 정총장을 연행한 행위가 정당했다고 주장. ▷연희·서교동◁ ○…두 전직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변은 비교적 한산.가족용 방청권 3장을 받은 재국씨 등 전씨의 세아들은 상오 8시25분쯤 어머니 이순자씨를 집에 남겨 둔채 법원으로 출발. 재국씨는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변호인과 상의해서 나중에 말하겠다』고 짤막하게 답변. 노씨의 장남인 재헌씨도 아침 일찍 서초동 법원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교동 집 주변도 한적했다.최 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언론을 통해 오늘 공판이 열리는 사실은 아시겠지만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고 전언. ▷피해자 반응◁ ○…이 사건의 직접 피해자인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70)과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65·재향군인회 회장)은 관련자들에게 엄정한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씨는 『부하들이 반란죄를 짓고 법정에 선 모습을 보니 다소 안타깝다』며 『그러나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다가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등 반란을 꾀한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씨도 『반란사건을 진압하지 못한 지휘관으로서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다』며 『앞으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를 토대로 한 엄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며 『재판부는 여론과 국민감정보다는 예방적 차원에서 냉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 민주당 「독도수호」 집회 노인섞인 백명이 저지/탑골공원서

    ◎“빼신자”… 계란 던지며 난투극 1일 하오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민주당의 「독도수호 결의대회」가 공원주변에 있던 이를 저지하는 40∼60대 1백여명의 시위대에 의해 무산됐다. 민주당에 따르면 이날 폭력사태는 민주당의 이중재·홍성우 선거대책위원장과 서경석 정책위의장,노무현 전 부총재,박석무·원혜영 의원 등 민주당 지도부와 당직자등 3백여명이 3·1절을 맞아 하오 4시쯤 탑골공원앞에 모여 행사를 열려는 순간 이들이 조직적인 폭력으로 대회를 저시했다는 것이다. 공원안에 있던 일부 노인들은 먼저 도착한 박의원 등에게 『왜 소란을 피우느냐』『김대중선생을 따라가지 않은 배신한 X』『사이비 야당은 물러가라』는 등의 욕설과 함께 계란세례를 퍼부었다고 민주당은 주장했다.이들은 또 곧이어 홍성우·이중재선대위원장 일행이 공원에 도착하자 공원입구에서 이들을 막아세운 뒤 이를 제지하는 민주당측 관계자들과 20여분 동안 발길질과 주먹다짐이 오가는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박의원이 양복상의가 찢기고 발길질을 당했으며 이원주기획조정실부실장 등 민주당 관계자 3명과 MBC 정용시카메라기자가 얼굴 등에 심한 상처를 입고있다.
  • 전자집표기로 당별 분류·집계/뉴햄프셔 맨체스터 제1투표소 참관기

    ◎입구선 후보운동원이 한표 호소/투표용지 공화 빨강·민주 노랑색 뉴햄프셔주 제1의 도시인 맨체스터 시청옆 엘름스트리트의 웹스터초등학교 체육관에 설치된 맨체스터 제1투표소.뉴햄프셔의 2백98개 투표소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이 투표소는 역대 이곳의 승자가 반드시 지명전에서 승리했다는 기록 때문에 미대선의 「바로미터」임을 자랑하는 지역이다.투표시작 시간인 상오8시가 되자 학교주변은 등교하는 학생들과 투표광경을 취재하려는 취재진들로 붐볐다.입구에는 치열한 3파전에 돌입한 돌,뷰캐넌,알렉산더 등 공화당후보 운동원들이 피킷을 앞세우며 마지막 한표를 호소했다. 엘름스트리트에서 조그만 공구상을 경영하는 밀리간 데이비드씨(60)는 8시30분쯤 투표소 안으로 들어섰다.학생식당겸 체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투표소 벽면에는 투표요령을 알리는 안내문들이 붙어 있었다.데이비드씨는 투표종사원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당적확인을 위해 성(David)의 알파벳 순에 따라 A­F,G­M,N­Z의 세줄로 된 등록라인중 A­F 라인에 서서 투표인명부를확인하고 용지를 교부받았다.투표용지는 공화당은 빨간색,민주당은 파란색,무소속은 노란색으로 보통 복사용지보다 약간 길었으며 후보자들의 이름과 출신지역이 세로로 적혀 있고 그 오른쪽에는 타원형의 공란이 있어 수성펜으로 채우게 돼있었다. 공화당원인 데이비드씨는 빨간색 투표용지를 받아들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공화당 후보로는 22명의 이름이 인쇄돼 있었으며 그중에는 내슈아에 사는 친구 조지아나 도르슈크의 이름도 있었다.주선관위에 1천달러를 내면 후보등록을 할수 있기 때문에 4년에 한번씩 자신의 광고를 위해 1천달러씩을 쓴다는 친구였다.민주당용지에도 클린턴대통령을 비롯한 21명의 후보가 적혀 있었고 무소속용지에도 두명이 인쇄돼 있었다.투표용지 밑에는 인쇄되지 않은 사람중에 자신이 미는 사람의 이름을 쓸수 있는 빈칸도 있었다. 그때 장내가 소란스러워지며 돌후보 내외가 열렬한 지지자인 뉴햄프셔 스테펜 메릴 주지사 내외와 함께 투표소 안으로 들어왔다.투표종사원들과 악수를 나눈 돌후보는 기자들의 질문에 『근소한차이라도 이기는 것은 이기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기표소는 20개가 마련돼 있었다.데이비드씨는 기표후 기표소 옆에 놓인 집표기에 투표용지를 집어넣었다.1m정도 높이로 팩스머신 비슷하게 생긴 이 집표기는 투표용지를 올려놓으면 자동적으로 안으로 빨아들였다.당별 분류및 집계는 이 전자집표기의 몫이었다.한국에서와 같은 손으로 일일이 개표하는 절차가 없었다. 투표소 문을 나오는 데이비드씨에게 출구조사를 하는 여론조사원이 누구에게 왜 투표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돌,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같아서』라고 대답하고는 자신의 가게로 행했다.
  • 경주∼울릉도 화상연결 첫 영상재판 이모저모

    ◎울릉도법정 판사자리엔 대형모니터/“잘 들리고 잘 보입니까…” 장비 점검부터/“도박벌금 1만원” 어민 “정말 편리해졌다” 『지금부터 원격영상재판방식으로 민사조정사건 95머 1577호 보증채무금사건의 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울릉도등기소에 계신 신청인과 피신청인 두분은 경주지원에 있는 재판장의 모습이 잘 보입니까.목소리도 잘 들립니까』 『예.잘 보이고 들립니다』 9일 상오 대구지법 경주지원 3호법정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경주와 울릉도를 화상으로 연결하는 영상재판이 열렸다. 경주지원 김원종판사는 8천7백만원의 보증금지급을 구하는 신청인 박모씨와 피신청인 김모씨를 울릉도등기소에 마련된 임시법정에 앉혀놓고 재판을 시작했다. 1만1천여 울릉도주민이 민사조정사건이나 즉결심판 같은 비교적 간단한 재판을 받으려면 종전까지 사나흘에서 1주일을 허비해야 했다.4시간의 거친 뱃길을 헤쳐 포항까지 간 뒤 다시 관할법원이 있는 경주까지 버스로 가야 했다.날씨가 나쁘면 배편이 결항되기 일쑤였다. 법정에는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자리에 20인치짜리 모니터가 자리잡았다.울릉도등기소에 있는 소송당사자 앞에도 법복을 입은 근엄한 판사 대신 52인치짜리 초대형모니터가 설치됐다.또 다른 방청객용 모니터도 있었다. 모니터 이외에도 중계카메라와 마이크,그리고 서류전송장비 등이 갖춰졌고 참여계장 1명이 울릉도에서 보내는 소송관련 서류를 전송받고 장비를 다뤘다. 첫 화상재판의 선고는 벌금 20만원형이었다.김판사는 노래방에서 소란을 피우다 즉심에 회부된 회사원 김모씨(30)에 대해 『죄질이 나쁘지만 우발적인 행위임을 감안해 벌금 20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화면에서도 반성하는 김씨의 표정이 역력했다. 도박을 하다 즉심에 회부돼 벌금 1만원형을 받은 어민 최모씨(45)는 재판이 끝난 뒤 『정말 편리해졌다.그동안 경주까지 가서 재판을 받느라 생업에 지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심리적 거부감과 생소함 때문에 화상재판이 어색하리라고 예상됐으나 일반재판과 마찬가지였다.주위가 산만한 일반재판보다 오히려 집중감과 긴장도가 더한 것 같았다. 재판이 끝난 뒤 김판사는 『얼굴을 맞대지 않아서인지 처음엔 서먹서먹하기도 했으나 금방 적응됐다』고 말했다.법원측은 용모와 목소리를 고려해 비디오형인 김판사를 첫 화상재판의 판사로 선택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9억여억원을 들여 영상재판시스템을 설치했으며 오는 27일에는 춘천지법 홍천군법원에서 강원도 인제·양구간에 두번째 화상재판을 갖는 등 도서벽지 주민에게 편리한 사법서비스를 늘려갈 방침이다.
  • 소설가 최인훈(작가를 찾아:2)

    ◎“내소설은 모두 남북문제의 변주”/6·25때 월남… 떠돌이 생활해온 처지가 원형/하지만 그 체험을 「날것」으로 드러내지는 않아/작품통해 끊임없이 질문… 한번도 결론 제시 한적 없어/정말로 문학하겠다면 뭐든지 써 볼수 있어야 해방과 한국전쟁을 통해 남북한을 골고루 살아봐도 마땅치 않자 중립국행을 택했다가 그 중립국행 선상에서 바다에 뛰어든 이명준.한국 소설사에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여러겹으로 문제적인 인물도 드물다.자유당 독재가 막을 내린 60년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은 「이도 저도 아니다」는 전면 부정의 이념적 선택을 한국 지성사에 안겨줬다.그 선택은 뿌리뽑힌 4·19세대의 떠돎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었다.그같은 결말의 바닥엔 작가의 개인사,더 나아가 실존적 허무의식에 부대끼던 분단세대 전체의 의식세계가 깔려있었던 것이다.어느 덧 분단문학의 고전이 돼버린 소설 「광장」.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 「광장」이 던진 질문,「광장」의 선택은 아직도 유효할까? 『동서냉전이 누그러진 지 오래지만 남북관계의 본질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내 작품이 문제삼았던 것이 분단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또한 갇힌 시대상황에서 인간이 어찌 살아야 할지 다같이 생각해보자는 것이기도 했고요.우리의 자유를 가로막는 제약중에도 분단은 뜻밖에 요지부동으로 굳어가고 있었고 이 사슬은 아직도 쩔그럭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냉정할이만큼 흐트러짐없는 한마디 한마디로 최인훈씨는 분단의 상처가 현재진행형이라고 못박는다. 『따지고 보면 내 소설은 모두 남북문제의 변주』라는 본인의 얘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분단체험은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두루 꿰뚫고 있다.작가는 두만강변 회령에서 태어나 해방후 원산으로 이주했고 6·25를 틈타 가족과 월남했다.의식했든 않았든 그는 반쪽 고향에서 떠돌이로 살아온 자신의 처지를 원형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그것은 일본 학교에서 히라가나를 깨칠락 말락하자 밀어닥친 해방으로 돌연 미국식교육에 내던져지고 금새 또 6·25에 휩쓸린 지난 세대 청년들 전체의 얘기다.한 평론가가 「피란민 의식」이라고 지적한 민족의 공동상처가 작품을 떠받쳐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체험 그 자체를 날 것으로 드러내놓지 않았다.「광장」「그레이 구락부 전말기」「회색인」「화두」등 작품에도 빈번히 그려지듯이 평생에 걸친 독서편력은 그의 주인공들을 끝없이 사색하고 반성적이 되도록 만들었다.그는 모든 문제에 거리를 두고 되씹어 재구성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한국문학에 새롭게만 느껴지는 지식인소설,관념소설을 열었다. 『「화두」를 실험적 전위소설이라고 어려워하는 반응들을 보곤 아주 놀라웠어요.그정도는 20세기 세계문학에선 이미 공유재산이 된 수법 아니요? 미술이며 음악은 난해해도 반기면서 소설만은 한글깨친 사람 다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심심하지요』 『유년시절,창작뒷얘기,독서단상 등을 한데 버무려 역사를 말하려 했다』는 93년작 「화두」는 미묘한 찬반양론을 불러온 게 사실.『한 개인의 체험으로 세기말적 실상을 묘파해냈다』『현란하게 무르익은 대가의 사상』이라는 찬사의 한켠에선 『육질은 없고 앙상한 관념뿐』이라는 비난도 따랐다.『10년넘게 소설을 쓰지 않더니 최인훈의 시대는 역시 갔다』는 고약한 수군거림도 들렸다. 『내 작품들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무언가를 구하려는 자세일 뿐 한번도 결론 자체를 제시한 적이 없소.「화두」라는 말부터 결론·예언·체계화 따위 굳은 자세와 대척되는 우리문화의 귀한 정신자세 아니오.그런데 어떤 이들은 아직도 미완성인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너무 쉽게 결론내 버려요.80년대에 작품을 별로 안썼다지만 「길에 관한 명상」이며 「문학과 이데올로기」 등 산문집도 두툼한데.소설만 정통문학이고 다른 것은 과외라고 치부하는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문학을 하겠다면 뭐든 다 써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오』 그간 그의 문학적 갈증은 너무 커서 소설이라는 한 그릇에만 가둬 둘 수 없었던 것은 사실.70년대 써 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둥둥 낙랑둥」 등의 희곡작품으로 그는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 열린 「한국작가포럼」에 소설가가 아닌 극작가 자격으로 초청받았다.우리 연극사를 독식하다시피 해온 사실주의 전통에 대든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그의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운명에 적극 감응하는 생기넘치는 인물들을 창조해냈다.그런가하면 사유깊고 지적인 그의 문장은 한국문학사에 독특한 에세이 문체로 주목받았다. 『산문은 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정서의 씨앗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데다 작가의 문장력이며 기본기를 완전히 들통내는 장르지요.따라서 외국에선 고급한 산문작가는 소설가 이상으로 쳐주는데 우리는 정반대로 산문을 너무 푸대접해왔어요.떼밀린듯 개항을 맞은 근대사로 정신문화 자체가 뿌리째 흔들렸기 때문이 아닌가 아쉬워요.비단 문학 뿐 아니라 역사·철학적 소양이 높았던 옛적 선비들에겐 산문이 가장 인기있는 장르였거든요』 산문정신을 도두 말하는 그에게선 영락없는 문학청년의 열정이 엿보인다.아무튼 최인훈과 같은 작가를 가져 한국문학사는 풍요롭다.성마른 사실주의가 소란스럽던 지난시절 천천히 씹어 생각하는 최인훈의 목소리는 한국문학에 숨돌릴 틈을 터줬다.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서울대)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근대 시민사회 인간의 자의식을 탐구하는 수단이라고 할때 그 장르적 특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이는 우리 문학사에서 이청준을 제외하곤 최인훈이 유일하달 정도』라고 평가한다. 작가는 최근 『정보화 시대에 문학이 어떻게 하면 잡다한 정보들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만도 못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하는 특성은 역시 높은 정신적 품격이 아닌가 해요.영상시대다 뭐다 하지만 그같은 매력에 끌려 평생 문학에 매달려온 나로서는 문학의 장래를 낙관합니다』 『살아생전 소원이 통일이지만 역사를 누가 예측하겠느냐』는 말엔 이명준을 무턱대고 바다로 몰아넣은 젊음의 혈기는 가라앉고 조심스러운 지혜가 묻어난다. 『돌이켜보면 광장의 주인공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할일에 너무 조바심을 내고 금새 선택을 해버린 것도 같아요.지금 「광장」을 다시 쓴다면 결론이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약력 ▲1936년 4월13일 함북 회령에서 목재상인 최국성의 장남으로 탄생 ▲해방통에 원산으로 이주(47년)했다가 6·25때 해군함정 LST편으로 가족과 함께 월남(50년) ▲대표작 소설 「광장」(60년) 「구운몽」(62년)「회색인」(63년)「서유기」(66년)「총독의 소리」연작(67년∼)「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연작(69년∼)「화두」(93년)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70년) 등 ▲단편 「웃음소리」로 동인문학상(66년)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77년)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로 서울극평가그룹상(79년)등 수상 ▲아이오와 대학 초청으로 도미(73년) 4년간 미국체류.이때의 대폭 개작을 비롯,평생 6회에 걸쳐 「광장」을 개작 ▲문학과 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완간(79년) ▲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
  • 김정일 공석에 자주 나타나(북녘 뉴스라인)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김정일이 지난 19일부터 22일 사이 네차례나 공석에 참석하는등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이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22일 조총련대표단과의 군협주단 및 공훈합창단 공연관람이었다.이에 앞서 김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일꾼 및 제1차 세계군인체육대회참가선수·임원들과의 기념촬영에 자리를 함께 했었다. ◎상업관리소,인기직장으로 부상 북한 주민들에게 「상업관리소」가 최근 인기직장으로 부상,이곳으로 직장을 옮기기 위해 뇌물까지 바치는등 전직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상업관리소란 주민들에게 직접 상품을 공급해주는 국영상점들을 대상으로 물품을 대주는 중간공급소를 말한다.이 곳에 근무하게 되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데다 필요물품을 국영상점에서 국정가격으로 쉽게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나진·선봉에 10개 공업지구 북한은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에 10개의 공업지구를 획정하고 각 공업지구별로 투자대상업종을 지정,외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공업지구의 전체면적은 2천3백30㏊로,개별공업지구는 60㏊에서 5백50㏊에 이르기까지 유치업종의 성격에 따라 면적이 책정됐다.북한은 오는 5월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의 협조아래 현지에서 최초의 투자설명회를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미 「블랙 게리맨더링」 위헌 논란/선거구 36곳 흑인 의원 특혜

    ◎조지아주 3곳 통합 결정후 소송 확산 미국에서 「블랙 게리맨더링(선거구 흑인 특혜편성)」이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블랙 게리맨더링이란 흑인이 연방하원에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구를 흑인에게 유리하게 고쳐놓은 것을 일컫는 말. 최근 일부 백인들이 많은 지역에서 블랙 게리맨더링으로 흑인들에게 특혜가 돌아가고 있다고 위헌소송을 제기,미국 전역이 위헌성 여부로 소란을 겪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하원의석 4백35개중 흑인 의원은 지난 연말 시카고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제시 잭슨목사의 아들을 포함,39명으로 전체의 9%에 이른다.인구비(13%)엔 다소 못 미치나 다른 중요 사회경제지표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이 흑인의석은 10년도 못되는 사이에 배로 불어난 것이다.그러나 이런 흑인의원의 급증은 흑인 정치세력의 일취월장 덕분이 아니라 블랙 게리맨더링의 산물이라는게 백인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39명 흑인의원중 36명은 흑인인구가 과반수인 선거구에서 당선됐다.흑인들은 한곳에 몰려사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연방하원 선거구의 평균인구수(59만4천명)와 흑인전체인구비중 등을 감안할 때 이 흑인인구 과반수 선거구는 상당수가 정치적 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은 10년마다 인구센서스에 따라 철저한 연방의석수 주별재할당과 주내 선거구재조정을 실시한다.이는 연방하원 선거구 획정의 대원칙으로 존중되고 있다.이 원칙은 지난 64년 「모든 투표의 가치는 똑같다」는 대법원판결 이후 확정됐다.이에 따라 연방하원의 선거구는 인구수가 거의 1천명내외의 편차로 비슷하게 그려진다. 반면 정치적 게리맨더링도 관행으로 인정된다.미국은 선거구획정 권한이 주의회에게 있어 다수당,특정인물 당선을 위한 정치적 게리맨더링이 예부터 있어왔다.한 소도시가 3,4개 선거구로 잘라지면서 공룡보다 훨씬 괴상한 「으깨 터진 빈대」 모양새의 선거구도 적지 않다. 이 게리맨더링은 처음에는 흑인과 상관없는 정치관행이었으나 10년전 연방 법무부가 1965년 민권운동에 따라 「투표권리법」을 관철시킨데 힘입어 「블랙」이라는 접두사를 붙이게 됐다.법무부는 소수계의 적극적인 투표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해 「특정 선거구의 소수계인구 과반수 획정」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런 블랙 게리맨더링은 그러나 지난 연말 조지아주 연방법원이 3개 흑인과반수 선거구를 1개로 줄이도록 결정한데 따라 극복하기 힘든 도전에 직면했다.또 대법원은 흑인 과반수 선거구와 관련,텍사스의 3곳,노스캐롤라이나의 2곳 선거구에 대해 위헌여부를 다루고 있고 플로리다,일리노이,뉴욕,루이지애나,버지니아주에서도 인위적으로 소수계로 전락한 백인유권자들이 헌법소송을 제기해놓은 실정이다.결국 10년도 못가 블랙 게리맨더링은 사라질 운명에 놓여있다.
  • 폭력 미군 징역 6월/서울지법 선고

    서울지법 김동환 판사는 21일 지하철 안에서 소란을 피우다 이를 막던 한국인 승객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징역1년이 구형된 주한미군 프랭크 골리나(31·병장)피고인에게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를 적용,징역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판사는 『한국인을 집단폭행한 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며 골리나피고인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실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 특별법 “공감”…특검제 “이견”/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답변

    ◎국회 청문회·국정조사 요구­야권/위법문제 우선 해결이 중요­이 총리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는 긴급 현안질문을 통해 5·18특별법 제정에 대한 각당의 견해를 밝히고 정부의 방침을 물었다.강신옥(민자)·안동선(국민회의)·장기욱(민주)·김동길(자민련)의원 등 여야 4당의 대표질문자로 나선 의원들은 특별법의 당위성에는 모두 공감하면서도 특별검사제 도입과 대선자금문제등의 쟁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김동길 의원(자민련)◁ 최근의 12·12나 5·18,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파문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의 자세를 보면 마치 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앞서 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김대통령은 3당통합을 했기에 대통령이 되지 않았는가.호랑이 잡기 위해 들어갔다고 하는데 들어가서(통합해서) 정말 호랑이 잡으러 왔다고 했다면 민정계가 그를 도와주었겠는가.도와달라고 했으니 도와준 것 아니냐.이제와서 그들을 칠 수 있는가. ▷안동선 의원(국민회의)◁ 김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것은 비자금정국에서 탈출하려는 「깜짝쇼」가 아닌가.12·12와 5·18주범들에게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이 어떻게 동일인들을 동일한 사실로 기소할 수 있는가.검찰이 재수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검찰이 독립성을 유지하기 힘든 최고권력층 비리나 헌정파괴,집단학살 등의 범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태우씨의 비자금은 국회청문회와 국정조사권,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장기욱 의원(민주당)◁ 새로운 질서는 잘못된 과거를 완전히 파기할 때 만이 창조될 수 있다.일부 5·6공 세력들이 보수를 자임하면서 마치 5·18특별법 제정을 우익대 좌익의 대결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민주세력을 좌익으로 몰아 탄압하던 과거 독재정권들의 못된 버릇을 못버린 것이다. 김대통령은 모든 것을 정치로 풀지 않고 검찰로 풀려고 한다.정치검찰에 의한 검찰정치가 계속되는 것이다. ▷강신옥 의원(민자당)◁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12·12 불기소처분 이유는 수단이 부정해도 성공만 하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늦은 감이 있지만 5·18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김대통령의 용단은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사전 유출돼 헌재의 권위와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진상과 대책을 밝혀달라.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볼 때 5·18에 대해 공소권없음 결정을 한 검찰이 다시 수사를 맡을 수는 없다고 보는데 법무부장관의 견해는.아울러 불기소결정을 한 검찰관계자들을 문책할 용의는. ▷이홍구 국무총리◁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지시는 관련 당사자들을 의법처리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서 결코 사과할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지금 우선 중요한 것은 입법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특별검사제 도입등 법집행을 둘러싼 방법문제가 아니다.법체계가 다른 미국의 특검제를 무조건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그러나 법제정 과정에서 논의된다면 3권분립의 토대 위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이번 특별법 제정은 특정 정치세력이 아닌 사건 관련 당사자를 법적 처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지난 40여년 헌정사에서 자주 정치가 법보다 우위에 섰다.따라서 오늘의 과제는 어떻게 법에 입각한 정치를 만드느냐에 있다.비자금정국과 특별법정국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법에 따라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처리하겠다.특별법이 제정되면 시행에 필요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데 만전을 기하겠다. 검찰이 노태우씨 비자금의 사용처를 철저히 조사하고 있으므로 여권의 대선자금 부분도 밝혀질 것이다.청문회개최와 국정조사권 발동 등에 대해서도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조사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를 거둔 검찰 책임자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문책할 수는 없다. ◎허화평 의원 본회의 발언 안팎/“「민주」 위장 좌파,군·보수세력 공격”/“보수우익 국민이 최후심판 내릴것” 주장/구시대 청산 국민여망·당론 정면 도전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잇따라 고함이 터지는등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5공「신군부」 핵심중 한사람인 민자당 허화평의원이 신상발언을 통해 5·18특별법제정에 정치적 좌파의음모가 개재된양 꼬집는 「망언」에 가까운 소신피력을 했기 때문이었다. 허의원은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민주투사들에 의하여 조종을 울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로 시작되는 두쪽짜리 유인물을 비장한 표정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구시대의 청산을 갈망하는 국민의 여망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당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이었다.야당의석은 물론 민자당의석에서도 그의 4분간 신상발언 도중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허의원은 『역사에 있어 책임은 일방적일 수 없고 같은 시대,같은 무대에서 서로 다투었던 세력들에겐 책임이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다』며 『80년 당시 민주화세력들이 분열하지 않고 과격한 민중전술을 동원하지 않았던들,5공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서두를 꺼냈다.그러자 이때부터 국민회의 의석쪽에서 『무슨 말이야』라는 고함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의원은 목청을 높여 『민주화투쟁 그것만으로 모든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민주라는 미명하에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된 점 역시 허다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규명이 문제라면 여소야대 정국하에서 1노3김에 의한 5공청산이 있었고,12·12에 관한 국정조사와 12·12와 5·18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있었다』고 강변했다. 다시 의석에서 『먼저 반성해야지』(국민회의 김영진 의원),『어렵다』(민자당 변정일 의원),『무슨 소리야』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허의원은 특히 정치권의 5·18특별법 제정 추진에 대해 『나라 요소요소에 자리하고 있는 좌파들이 이른바 민주세력·양심세력·진보세력·통일세력으로 위장하면서 12·12와 5·18을 투쟁의 고리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계기로 군을 무력화시키고 보수우익세력에게 일대 타격을 가해 국면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극적 분석」을 해 여야의원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허의원은 『작금의 현실은 국민의 다수인 보수우익이 침묵하는 가운데 좌파가 주도하는 소수세력이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듯 소란하고,일부 전파매체들은 당대의 역사를 정치드라마 형식으로 왜곡 날조해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최근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 「제4공화국」「코리아게이트」등 TV드라마를 겨냥하기도 했다. 허의원은 또 『4·19직후 민주당이,또 5·16군사정부가 소급입법을 했으나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정치발전이 있었느냐』고 반문한 뒤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보면서 좌우투쟁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고 「엄포성」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자 『수백명을 죽이고도 뻔뻔스럽다』(국민회의 김옥두 의원),『내버려 둬』(민주당 장기욱 의원)등의 고성이 의사당을 다시 어지럽혔다. ○…허의원은 야유에 개의치 않고 비감한 어조로 『나는 정치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진실은 영원하고 최후심판은 국민의 다수인 보수우익이 내려줄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그의 발언에 대해 민자당 강삼재사무총장은 『이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해서야 되겠느냐』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그러나 현재로선 당차원의 대책은 세우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한 해의 끝달(외언내언)

    열두장짜리 캘린더가 뜯겨나가더니 한장만 달랑 남았다.마지막 잎새 같은 한장의 달력 위로 분주히 스쳐가는 12월의 스케줄.한 해의 미진했던 일도 마무리짓고 동창회다,송년회다 해서 한 해를 결산하는 모임이 연달아 자리를 잡았다.마음도 몸도 바삐 뛰어야 하는 12월이고 계절은 깊은 겨울로 들어선다.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한 해를 뒤돌아보니 다사다난,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11월 비자금과 관련된 노전대통령의 구속은 세계를 놀라게 한 빅뉴스였다.두 사건이 모두 부정부패와 관련된 우리나라 정치·사회의 치부노출이란 점에서 참으로 곤혹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했던 부끄러움이었다.그나마 수출 1천억달러를 돌파하고 9.8% 고성장을 보인 경제의 약진이 국민들을 위로시켰다고나 할까. 12월은 한 해의 끝달이라 유난히 빠르게 지나간다.그 빠른 흐름속에서 우리는 올해 미진하거나 마루어졌던 일을 챙겨나가야 한다.지난 정초에 올해 하겠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점검해보면 아마도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아침에 정하고 저녁에깨는 것이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한 해의 개인적 결산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이달에 해야 할 일이다. 긴긴 겨울밤 오래 문안 못드린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일도 좋을 것이다.오래 못만난 스승이나 친구에게 문안편지를 띄우는 일도 12월이 제격이다.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소 엄숙해지고 인생을 관조하게 되는 법이다. 분수없는 연말의 흥청거림과 소란에서 조금은 벗어나 조용한 연말연시를 보내는 것도 생활의 지혜일 것이다. 연말연시에는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의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펴주는 온정을 나눠야 한다.해마다 살아가기는 그런대로 나아지지만 「그늘진 곳」을 찾아주는 발걸음은 뜸해지는 게 오늘의 얄팍한 세태다.온정을 자꾸만 잃어가는 세태가 아쉽다.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을 것이라는 예보다.추운 겨울 「나눔의 기쁨」을 맛보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12월을 포근하게 보내자.
  •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남긴 것

    ◎165만명 관람… 「세계속 예향」 도약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며 한국 남도의 대표적인 도시 광주의 이미지를 새롭게 한 광주비엔날레가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세계적인 미술행사로,또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과연 제 모습을 갖추고 성과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당초의 우려와 달리 광주비엔날레는 두달동안 무려 1백65만명이 넘는 엄청난 관객동원으로 예상을 뒤엎는 외형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일 하오4시부터 광주에서는 비엔날레의 성공을 자축하는 화려한 축하공연과 함께 폐막식이 거행됐다.이날 하오5시30분부터 비엔날레의 본거지였던 중외공원내 야외공연장에서 베풀어진 폐막식에는 비엔날레 관계자들과 광주시민,전국의 문화예술계 안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번 비엔날레의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며 아쉬움속에 폐막식을 가졌다. 명실공히 국제미술제로서 그 면모를 과시한 국내 초유의 광주비엔날레.미술제로서 이번 비엔날레의 순수예술적인 측면과 광주라는 국내 한 지방도시에서 치러진 국제행사로서의 그 의의를 결산해 본다. ◎미술적 평가/대중화 성공 불구 품격시비 “흠”/역량있는 작가 유치 과제 남겨 미술적인 측면에서 『관람객 숫자만으로 본질을 평가할 수 없다』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주최측은 「성공적 미술축제」라는 자체평가를 주저하지 않고 내후년 제2회 행사를 위한 청사진 그리기에 한껏 부풀어 있다. 이번 행사는 국내 관객동원 숫자에 비해 외국인 관람객이 기껏 2만4천여명에 그쳤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그러나 주최측은 낙후된 한국의 관광여건을 본질적 이유로 들며 오히려 프랑스 「르 몽드」지나 일본 「NHK」방송의 대대적 보도등을 내세워 해외매스컴의 관심 또한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아시아 최초로 치러지는 국내 초유의 국제미술행사이면서도 급하게 준비한 1백82억원의 예산을 들여 1년도 못되는 촉박한 일정에 막을 올렸다.부진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상흔」으로 얼룩진 광주의 아픈 이미지를 밝고 활기찬 현대예술의 도시로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했다. 전시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장르중에서도일반인과의 교감이 거의 없는 미술을 새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는 점은 큰 성과가 된다. 그러나 미술적인 측면에서 이번 비엔날레 기본품격은 크게 부족한 편이었다.주최측 한 고위관계자는 『일부 지식인들의 비판』이라고 하지만 말많은 국내 미술계로부터는 『국제행사 좋아하는 국내 몇몇 인물들의 잔치에다 본 전시의 출품작들도 수준미달이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비엔날레조직위 내에서도 각 지역별 커미셔너들의 실력과 자세에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본 전시인 「국제현대미술전」의 커미셔너들이 세계 각 지역의 실력있는 작가들을 유치할만한 역량의 인물들인가에서 시작된 회의는 결국 「30세 전후의 제3세계 작가들이 벌여놓은 희귀한 설치비엔날레」가 되고 말았다는 비판을 낳았다.「경계를 넘어서」 오늘의 앞서가는 현대미술을 보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80%가 설치미술이며 엉성한 작품진열에 해설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본 전시외에 「광주 오월정신전」이나 「인포아트전」등 의미있는 특별전이 이 행사를 빛낸 점도 있지만 비엔날레가 향토축제 벌이듯 지나치게 많은 부대행사를 기획한 점도 부정적인 측면에 속한다.한 관계자는 『그렇게 해서라도 손님을 끌어야 했다』지만 이 또한 순수미술 행사로서 비엔날레를 평가할때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환경속에 미술품을 호젓하게 감상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낳은 셈이다. 어쨌든 관객은 운집했다.그리고 적자도 보지 않았다.그만한 큰 행사를 잘 치러낸 주최측의 노고도 대단하다. 하지만 전시에 대한 평가는 『뭔가 잘 모르겠다』는 일반관객들이나 『실망했다』는 미술전문 관계자들에서 볼때 결국 부정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한번의 행사로 그 성격을 단언할 수 없듯이 앞으로의 광주비엔날레가 조직적이고 탄탄한 운영기반을 갖춰 명실공히 「동양 최고의 국제미술경연」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행사평가/지자체 첫 국제행사 흑자운영/「한의 도시」 이미지 쇄신 성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만들어낸 「축제 광주」의 모습을 과시한 이번 비엔날레기간 내내 이곳에는 란즈베르기스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국내외 인사들이 찾았다. 남종화의 산실인 이곳의 예술적 토양을 바탕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예술행사로 승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방도시에서 치러낸 첫 국제행사라는 의미도 크다. 본 전시등 미술전에 세계 58개국에서 5백여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30개국 1만2천여명의 예술가가 참가해 음악·무용·패션·민속공연등 다채로운 행사를 폈으며 하루평균 2만6천여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지자제 실시와 함께 새로 출범한 주최측인 광주광역시는 1백82억원의 전체 예산중 행사개최비 77억원에 비해 입장료수입과 수익사업등에서 94억7백만원을 올려 행사운영 측면에서도 흑자를 내며 여타 도시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점도 곳곳에서 노출돼 대부분 관객이 비좁은 공간속에서 떼밀리다시피 전시관을 돌며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여러 곳에서 작품훼손이 잇따랐고 일부작품은 위작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세월동안 외부에 「한」의 도시라는 어두운 이미지로 비춰진 광주에서 거둔 이번 행사의 성공은 시민들에게 자긍심과 큰 활력을 선사했다. 거리마다 나부끼는 애드벌룬과 행사장 주변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지 인파는 광주를 살아 꿈틀거리는 도시로 바꿨다. 각종 전시에서 선보인 설치미술품과 행위예술은 평면그림 위주로 미술을 인식해온 일반 시민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맛보게도 했다. 광주시는 이를 계기로 인본예술과 첨단산업이 어우러진 활기찬 도시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97년 2회 행사때는 국제규모의 영화제와 첨단과학산업단지를 기반으로 한 산업디자인도 함께 개최하기로 했다. 주최측인 광주광역시에는 이번 축제무드를 지역발전과 지방의 국제화 전략에 어떻게 접목시켜 나가느냐가 숙제로 남아 있다. ◎비엔날레 전문위원겸 전시부장 정준모씨/“전문 인력 적어 진행 큰 어려움 겪어 이번 경험살려 지금부터 「2차」 준비” 국내 제1호 독립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잘 알려진 정준모씨(39).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전문위원겸 대변인,전시부장을 맡아 자타가 공인하는 비엔날레 살림꾼으로 가장 진땀을 뺀 인물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실제적인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온 사람으로 감회도 남다를텐데. 『모든 일이라면 어폐가 있구요 전시파트 전반을 이끌면서 홍보와 전시환경,작품운송,보험,도록제작등 전시실무를 전담했습니다.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익숙해진 일들이지만 짧은 시간과 많은 양의 작품속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단 광주 시민들 특유의 애향심과 언론의 지대한 관심이 큰 힘이 됐습니다』 ­보람도 많았겠지만 어려움도 많았을텐데요. 『많은 경험을 단기간에 한 보람이 있구요 외국의 많은 친구를 사귄게 재산같습니다.단군이래 최대 문화행사에 경험부족과 미술행정,아트메니지먼트에 관련한 전문인력이 거의 전무하다는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직 뚝심과 열정으로 부딪친 전시본부 스태프들의 노력이 빛났습니다』 ­기간중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한번은 24시간동안에 서울을 3번이나 다녀와야 했습니다.개막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는데 작품설치에 필요한 전자장비를 구하기 위해 항공으로 1회,봉고버스로 2회를 오갔습니다. ­선험자로 볼때 차기비엔날레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폐막과 함께 2차 대회를 준비해야 됩니다.또 현대미술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섭외력,어학실력,통솔력을 갖춘 총 큐레이터와 팀웍이 맞는 실무진이 절대 필요하지요』
  • 지하철서 취중 난동 미군 2명 조사

    서울 종로경찰서는 20일 술에 취해 전동차의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소란을 피운 경기도 파주군 E캠프 공병중대 소속 포센티 로렌스병장(33)등 주한미군 2명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로렌스병장 등 5명은 지난 11일 하오9시35분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정차한 전동차(기관사 권영두)에서 객차 유리창 1장을 부수는 등 소란을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이 전동차에 타고 있었던 신정원씨(45·회사원)는 『구파발역에서 승차한 미군 7명이 술을 마시며 괴성을 지르는 등 소란을 피워 30여명의 승객이 거세게 항의하자 이같은 행패를 부렸다』고 말했다. 구파발역 역무원 이희성(36)씨도 『신고를 받은 순찰직원등 6명이 전동차를 세워 미군에게 전동차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으나 이들이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고 욕을 하면서 승객및 순찰직원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면서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이 팔과 무릎 등을 다쳤다』고 말했다.
  • “여론에만 맞추면 나라 불행…”/노씨 수사­노씨·중수부장 대화

    ◎“국민 궁금증 덜게 모든 의혹 해소를”­안 부장/“나때문에 여러분 고생… 건강 괜찮다”­노씨 15일 하오 2시48분쯤 서초동 대검청사에 도착한 노태우 전대통령은 곧바로 7층 안강민 중수부장실로 올라갔다.8분여동안 대추차를 마시면서 계속된 이날 대화에서 검찰측에서는 이정수 수사기획관,노 전대통령측에서는 법률자문역을 맡은 김유후 전 청와대 사정수석이 배석했다. 다음은 대화내용이다. ▲노 전대통령=나때문에 여러분 고생을 많이 시키고 있습니다. ▲안 중수부장=건강은 괜찮으십니까.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죠. ▲노=좋지 않았습니다.약먹고 이제 괜찮습니다. ▲안=오늘은 먼저보다 더 빨리 도착하셨군요. ▲노=오다보니 선도하는 차량이 있어서 경찰사이드카인지 알았는데 언론사 차량이 앞뒤 좌우에 있었습니다.혹시 경찰차가 선도하게 되면 다른 일반차량에 불편을 끼칠까 걱정했습니다. ▲안=조사실이 좋은 시설은 아닙니다만 계시면서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노=고맙습니다. ▲안=국민들이 궁금해 하는의혹이 너무 많습니다.이번 기회에 모든 의혹을 해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너무 여론이 원하는 대로 맞춰 하다보면 나라가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노 전대통령은 조사검사인 문영호 중수2과장이 기다리고 있는 11층 특별조사실로 향했다. ◎연희동서 대검청사까지/취재차량 보일때는 얼굴 가려/최악상황 예상한듯 표정 비장 ○…15일 상오 9시 30분쯤 『노태우 전대통령을 하오3시 재소환할 것』이라는 검찰의 갑작스런 발표가 나오면서 한동안 조용했던 연희동 노씨집 주위는 다시 취재진들로 북적대며 긴장감이 돌기 시작. 언론보도 직후에야 소식을 안 경찰도 기존 3개 중대의 경찰병력에다 4개 중대를 추가 배치해 8백여명의 경비병력으로 연희동일대에 삼엄한 검문활동을 전개. ○…하오 2시30분쯤 검은색 싱글차림의 노씨가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아들 재헌씨와 동생 재우씨,비서관 등이 배웅.노씨는 대문앞에서 재헌씨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뒤 비서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최석립전경호실장과 함께 서울 2프2979 검은색 뉴그랜저 승용차에 올라타고 검찰청사로 직행. 노 전대통령의 차량행렬은 서대문구청·연희 입체교차로·서교호텔·강북로를 타고 가다 잠수교를 통과해 출발한지 18분만인 하오 2시48분쯤 서초동 대검찰청사에 도착. 노 전대통령의 승용차와 경호차량이 줄곧 1백㎞이상의 속력으로 질주하자 이를 뒤따르던 취재차량들이 서로 뒤엉켜 2∼3건의 접촉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모 방송사 차량에서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란을 빚기도 했다.노씨는 차안에서 취재차량이 보일 때마다 얼굴을 손으로 가리는등 다소 불안한 표정을 보였으며 버스를 탄 시민들은 전직대통령의 소환장면을 목격하기 위해 차창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진풍경을 연출. ○…대검청사에 도착한 노씨는 윤주천 대검사무국장의 안내로 귀빈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7층 안강민 중수부장실로 직행. 노씨는 취재진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한 뒤 2∼3걸음 걷다가 포토라인에서 2∼3초 가량 포즈를 취하는 등 여유를 보이려 애쓰는 모습. 현관 회전문을 통해 청사 안으로 들어선 뒤에는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지어보였으나 이내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듯 아랫입술을 지긋이깨물며 비장한 표정.
  • 민속축제 수르하루방(시베리아 대탐방:47)

    ◎풍년 기원하는 부랴트족의 명절/인구 43만의 바이칼호 주변 최대 소수민족/샅바 없고 제한시간 없는 맨몸씨름 인기/경마종목 복잡… 앞발로만 뛰기 등 이색적 남부 시베리아 바이칼호 주변 최대의 민족은 부랴트족이다.이들은 지난 92년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행정적으로 독립한 부랴트자치공화국내에 모여 산다.총인구가 43만 1천여명(95년 상반기기준).이들은 다시 공화국내 6개 자치관구에 흩어져 살고있다. 흥미를 끄는 것은 부랴트족은 러시아 연방내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지난 79년 말 35만명의 인구가 10년 뒤인 지난 89년에는 20%가 는 42만명에 이르렀다. 취재진이 부랴트족을 찾은 곳은 바이칼호 남서쪽 이르쿠츠크에서 90여㎞ 떨어진 우스치 아르딘스크 마을이었다.때마침 이들은 자신들만의 축제한마당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축제의 이름은 「수르하루방」.이들은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는 최대명절로 「수르하루방」을 꼽았고 파종을 끝내고 「하늘」에 좋은 수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 축제를 민속축제로 전승하고 있었다. ○파종 끝내고 축제 시작 하지만 이들 어느 누구도 「수르하루방」의 의미는 모르고 있었다.우스치 아르딘스크시장이라는 칼 보리스씨의 안내로 취재진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집회가 벌어지는 한 운동장을 찾았다. 이곳은 부랴트식 씨름·활쏘기·말타기가 열리는 자리였다.동시에 구역을 대표한 가무단들이 나와 민속노래와 춤을 곁들이며 마을사람들을 축제무드로 이끌고 있었다.공설운동장 격인 이곳에는 아침 축제시작전부터 3만여명의 마을 주민가운데 수천명이 모여들어 스탠드를 메웠다.축제는 3단계로 진행됐다.이곳은 이미 구역단위에서 예선전을 거친 팀들이 「준결승전」을 갖는 곳이었다.여기서 이긴 팀들은 곧 열릴 전 부랴트공화국 축제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취재팀은 「귀빈」대접을 받고 귀빈석으로 안내됐다.옆좌석에는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한 노인이 자리했다.알렉산드르 우베예프란 이 노인은 79세였다.까닭을 물으니 「수르하루방」에는 반드시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을 모시도록 돼 있었다.칼 보리스시장은『부랴트족은 어릴적부터 손윗사람을 모시는 것을 큰 덕목으로 삼고 있다』면서 『자녀들이 (거절하지 않고) 부모나 조부모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그는 『부랴트족은 주술을 행하고 점을 보며 굿을 행하기도 하는 등 샤머니즘을 잘 보존해 내려오고 있다』고 전했다.또 적어도 10촌까지는 친척이며 친척간 혼인도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는 것이 보리스시장의 얘기였다. ○화목이 가장 큰 덕목 민속명절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민속의상을 입고 나오리라는 취재팀의 기대는 깨졌다.관중으로 나온 주민들은 대부분 평상복차림이었다.또 격투종목에 출전한 선수들도 집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오거나 아디다스등 현대식 추리닝 차림으로 경기에 임했다.이윽고 시장이 개막을 선언하자 관중들은 환호로 답했다.시장의 개막연설,심판소개,지난해 최우수선수들의 성화점화식이 있었고 성화는 성화봉에 그냥 불을 붙여 사용했다.어린이들이 갖고 나온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고 이어 구역을 대표하는 민속가무단이 그들의 민요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약 30분간의 식전행사가 끝나자 경기가 시작됐다. 처음 경기는 씨름이었다.「바리바」라는 이 씨름은 우리나라의 씨름과 흡사했다.먼저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는 선수가 지는 것이다.샅바는 없이 맨몸으로 경기를 벌였다.제한시간이 없이 끝장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경기가 계속되는 동안 관중들은 운동장 주변의 포장마차 같은 곳에 몰려가 샤스리크(구운 양고기) 등에 보드카를 곁들여 먹으며 축제분위기에 빠져들어갔다.이웃 학교운동장에서는 구역을 대표한 민속가무단들이 자리를 옮겨 노래를 계속해댔다.우리의 남도가락 같은 「요하루」를 불러댔고 노래를 부르는동안 가무단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를 「연기」했다.이들의 춤을 구경하던 한 40대 주부는 『우리는 화목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는다』며 부랴트족의 특질을 얘기해주었다.이들은 취재진에게도 『한번 받으면 잔을 비워야 한다』며 술을 권했는데 이 술은 바로 말젖을 발효시킨 시베리안 술이었다.엷은 우유빛을 한 이 술은 와인처럼 마시기는 부드러웠지만 생각보다 독한것 같았다. ○주변의 포장마차 인기 이어 장내는 활경기를 한다고 선수들을 집합시키려 했으나 각 구역에서는 선수가 구성이 안돼 경기를 하지 못했다.곧 이어 경마경기 안내방송이 나왔고 장내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경마장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었다.취재진은 운동장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약 4㎞ 떨어진 경마경기가 열릴 예정인 들판으로 나갔다.벌써부터 많은 주민들이 나와 있었고 처음 운동장의 수보다 관중이 많이 나와 있어 경마에 대한 부랴트족의 관심도를 반영했다. 경마종목은 생각보다 많고 복잡했다.2백m 단거리에서부터 3천m,5천m 경기가 있었고 말 뒤에 작은 트레일러를 달고 달리는 짐경마경기도 따로 있었다.또 말이 뛰는 형식에 따라 3종목이 있었다.사람으로 치면 경보 같은 것과 앞발로만 뛰기,네발을 모두 사용해 뛰기,지상으로부터 항상 한 발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뛰기 등이었다.말이 이런 형식으로 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경기가 진행되면서 말이 그러한 규칙을 지키며 경기를 벌이는 것이 흥미로웠다.기수들의 나이제한은 없었고 6세 이상이면 누구나 어떤 경기도 참여할 수 있었다. 경마를 구경하던 한 주민은 『부랴트족은 3∼4세 때부터 말타기를 배운다』면서 『말을 타지 못하면 부랴트족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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