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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집표기로 당별 분류·집계/뉴햄프셔 맨체스터 제1투표소 참관기

    ◎입구선 후보운동원이 한표 호소/투표용지 공화 빨강·민주 노랑색 뉴햄프셔주 제1의 도시인 맨체스터 시청옆 엘름스트리트의 웹스터초등학교 체육관에 설치된 맨체스터 제1투표소.뉴햄프셔의 2백98개 투표소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이 투표소는 역대 이곳의 승자가 반드시 지명전에서 승리했다는 기록 때문에 미대선의 「바로미터」임을 자랑하는 지역이다.투표시작 시간인 상오8시가 되자 학교주변은 등교하는 학생들과 투표광경을 취재하려는 취재진들로 붐볐다.입구에는 치열한 3파전에 돌입한 돌,뷰캐넌,알렉산더 등 공화당후보 운동원들이 피킷을 앞세우며 마지막 한표를 호소했다. 엘름스트리트에서 조그만 공구상을 경영하는 밀리간 데이비드씨(60)는 8시30분쯤 투표소 안으로 들어섰다.학생식당겸 체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투표소 벽면에는 투표요령을 알리는 안내문들이 붙어 있었다.데이비드씨는 투표종사원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당적확인을 위해 성(David)의 알파벳 순에 따라 A­F,G­M,N­Z의 세줄로 된 등록라인중 A­F 라인에 서서 투표인명부를확인하고 용지를 교부받았다.투표용지는 공화당은 빨간색,민주당은 파란색,무소속은 노란색으로 보통 복사용지보다 약간 길었으며 후보자들의 이름과 출신지역이 세로로 적혀 있고 그 오른쪽에는 타원형의 공란이 있어 수성펜으로 채우게 돼있었다. 공화당원인 데이비드씨는 빨간색 투표용지를 받아들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공화당 후보로는 22명의 이름이 인쇄돼 있었으며 그중에는 내슈아에 사는 친구 조지아나 도르슈크의 이름도 있었다.주선관위에 1천달러를 내면 후보등록을 할수 있기 때문에 4년에 한번씩 자신의 광고를 위해 1천달러씩을 쓴다는 친구였다.민주당용지에도 클린턴대통령을 비롯한 21명의 후보가 적혀 있었고 무소속용지에도 두명이 인쇄돼 있었다.투표용지 밑에는 인쇄되지 않은 사람중에 자신이 미는 사람의 이름을 쓸수 있는 빈칸도 있었다. 그때 장내가 소란스러워지며 돌후보 내외가 열렬한 지지자인 뉴햄프셔 스테펜 메릴 주지사 내외와 함께 투표소 안으로 들어왔다.투표종사원들과 악수를 나눈 돌후보는 기자들의 질문에 『근소한차이라도 이기는 것은 이기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기표소는 20개가 마련돼 있었다.데이비드씨는 기표후 기표소 옆에 놓인 집표기에 투표용지를 집어넣었다.1m정도 높이로 팩스머신 비슷하게 생긴 이 집표기는 투표용지를 올려놓으면 자동적으로 안으로 빨아들였다.당별 분류및 집계는 이 전자집표기의 몫이었다.한국에서와 같은 손으로 일일이 개표하는 절차가 없었다. 투표소 문을 나오는 데이비드씨에게 출구조사를 하는 여론조사원이 누구에게 왜 투표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돌,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같아서』라고 대답하고는 자신의 가게로 행했다.
  • 경주∼울릉도 화상연결 첫 영상재판 이모저모

    ◎울릉도법정 판사자리엔 대형모니터/“잘 들리고 잘 보입니까…” 장비 점검부터/“도박벌금 1만원” 어민 “정말 편리해졌다” 『지금부터 원격영상재판방식으로 민사조정사건 95머 1577호 보증채무금사건의 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울릉도등기소에 계신 신청인과 피신청인 두분은 경주지원에 있는 재판장의 모습이 잘 보입니까.목소리도 잘 들립니까』 『예.잘 보이고 들립니다』 9일 상오 대구지법 경주지원 3호법정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경주와 울릉도를 화상으로 연결하는 영상재판이 열렸다. 경주지원 김원종판사는 8천7백만원의 보증금지급을 구하는 신청인 박모씨와 피신청인 김모씨를 울릉도등기소에 마련된 임시법정에 앉혀놓고 재판을 시작했다. 1만1천여 울릉도주민이 민사조정사건이나 즉결심판 같은 비교적 간단한 재판을 받으려면 종전까지 사나흘에서 1주일을 허비해야 했다.4시간의 거친 뱃길을 헤쳐 포항까지 간 뒤 다시 관할법원이 있는 경주까지 버스로 가야 했다.날씨가 나쁘면 배편이 결항되기 일쑤였다. 법정에는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자리에 20인치짜리 모니터가 자리잡았다.울릉도등기소에 있는 소송당사자 앞에도 법복을 입은 근엄한 판사 대신 52인치짜리 초대형모니터가 설치됐다.또 다른 방청객용 모니터도 있었다. 모니터 이외에도 중계카메라와 마이크,그리고 서류전송장비 등이 갖춰졌고 참여계장 1명이 울릉도에서 보내는 소송관련 서류를 전송받고 장비를 다뤘다. 첫 화상재판의 선고는 벌금 20만원형이었다.김판사는 노래방에서 소란을 피우다 즉심에 회부된 회사원 김모씨(30)에 대해 『죄질이 나쁘지만 우발적인 행위임을 감안해 벌금 20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화면에서도 반성하는 김씨의 표정이 역력했다. 도박을 하다 즉심에 회부돼 벌금 1만원형을 받은 어민 최모씨(45)는 재판이 끝난 뒤 『정말 편리해졌다.그동안 경주까지 가서 재판을 받느라 생업에 지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심리적 거부감과 생소함 때문에 화상재판이 어색하리라고 예상됐으나 일반재판과 마찬가지였다.주위가 산만한 일반재판보다 오히려 집중감과 긴장도가 더한 것 같았다. 재판이 끝난 뒤 김판사는 『얼굴을 맞대지 않아서인지 처음엔 서먹서먹하기도 했으나 금방 적응됐다』고 말했다.법원측은 용모와 목소리를 고려해 비디오형인 김판사를 첫 화상재판의 판사로 선택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9억여억원을 들여 영상재판시스템을 설치했으며 오는 27일에는 춘천지법 홍천군법원에서 강원도 인제·양구간에 두번째 화상재판을 갖는 등 도서벽지 주민에게 편리한 사법서비스를 늘려갈 방침이다.
  • 소설가 최인훈(작가를 찾아:2)

    ◎“내소설은 모두 남북문제의 변주”/6·25때 월남… 떠돌이 생활해온 처지가 원형/하지만 그 체험을 「날것」으로 드러내지는 않아/작품통해 끊임없이 질문… 한번도 결론 제시 한적 없어/정말로 문학하겠다면 뭐든지 써 볼수 있어야 해방과 한국전쟁을 통해 남북한을 골고루 살아봐도 마땅치 않자 중립국행을 택했다가 그 중립국행 선상에서 바다에 뛰어든 이명준.한국 소설사에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여러겹으로 문제적인 인물도 드물다.자유당 독재가 막을 내린 60년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은 「이도 저도 아니다」는 전면 부정의 이념적 선택을 한국 지성사에 안겨줬다.그 선택은 뿌리뽑힌 4·19세대의 떠돎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었다.그같은 결말의 바닥엔 작가의 개인사,더 나아가 실존적 허무의식에 부대끼던 분단세대 전체의 의식세계가 깔려있었던 것이다.어느 덧 분단문학의 고전이 돼버린 소설 「광장」.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 「광장」이 던진 질문,「광장」의 선택은 아직도 유효할까? 『동서냉전이 누그러진 지 오래지만 남북관계의 본질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내 작품이 문제삼았던 것이 분단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또한 갇힌 시대상황에서 인간이 어찌 살아야 할지 다같이 생각해보자는 것이기도 했고요.우리의 자유를 가로막는 제약중에도 분단은 뜻밖에 요지부동으로 굳어가고 있었고 이 사슬은 아직도 쩔그럭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냉정할이만큼 흐트러짐없는 한마디 한마디로 최인훈씨는 분단의 상처가 현재진행형이라고 못박는다. 『따지고 보면 내 소설은 모두 남북문제의 변주』라는 본인의 얘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분단체험은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두루 꿰뚫고 있다.작가는 두만강변 회령에서 태어나 해방후 원산으로 이주했고 6·25를 틈타 가족과 월남했다.의식했든 않았든 그는 반쪽 고향에서 떠돌이로 살아온 자신의 처지를 원형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그것은 일본 학교에서 히라가나를 깨칠락 말락하자 밀어닥친 해방으로 돌연 미국식교육에 내던져지고 금새 또 6·25에 휩쓸린 지난 세대 청년들 전체의 얘기다.한 평론가가 「피란민 의식」이라고 지적한 민족의 공동상처가 작품을 떠받쳐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체험 그 자체를 날 것으로 드러내놓지 않았다.「광장」「그레이 구락부 전말기」「회색인」「화두」등 작품에도 빈번히 그려지듯이 평생에 걸친 독서편력은 그의 주인공들을 끝없이 사색하고 반성적이 되도록 만들었다.그는 모든 문제에 거리를 두고 되씹어 재구성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한국문학에 새롭게만 느껴지는 지식인소설,관념소설을 열었다. 『「화두」를 실험적 전위소설이라고 어려워하는 반응들을 보곤 아주 놀라웠어요.그정도는 20세기 세계문학에선 이미 공유재산이 된 수법 아니요? 미술이며 음악은 난해해도 반기면서 소설만은 한글깨친 사람 다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심심하지요』 『유년시절,창작뒷얘기,독서단상 등을 한데 버무려 역사를 말하려 했다』는 93년작 「화두」는 미묘한 찬반양론을 불러온 게 사실.『한 개인의 체험으로 세기말적 실상을 묘파해냈다』『현란하게 무르익은 대가의 사상』이라는 찬사의 한켠에선 『육질은 없고 앙상한 관념뿐』이라는 비난도 따랐다.『10년넘게 소설을 쓰지 않더니 최인훈의 시대는 역시 갔다』는 고약한 수군거림도 들렸다. 『내 작품들은 끊임없는 질문으로 무언가를 구하려는 자세일 뿐 한번도 결론 자체를 제시한 적이 없소.「화두」라는 말부터 결론·예언·체계화 따위 굳은 자세와 대척되는 우리문화의 귀한 정신자세 아니오.그런데 어떤 이들은 아직도 미완성인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너무 쉽게 결론내 버려요.80년대에 작품을 별로 안썼다지만 「길에 관한 명상」이며 「문학과 이데올로기」 등 산문집도 두툼한데.소설만 정통문학이고 다른 것은 과외라고 치부하는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문학을 하겠다면 뭐든 다 써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오』 그간 그의 문학적 갈증은 너무 커서 소설이라는 한 그릇에만 가둬 둘 수 없었던 것은 사실.70년대 써 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둥둥 낙랑둥」 등의 희곡작품으로 그는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 열린 「한국작가포럼」에 소설가가 아닌 극작가 자격으로 초청받았다.우리 연극사를 독식하다시피 해온 사실주의 전통에 대든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그의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운명에 적극 감응하는 생기넘치는 인물들을 창조해냈다.그런가하면 사유깊고 지적인 그의 문장은 한국문학사에 독특한 에세이 문체로 주목받았다. 『산문은 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정서의 씨앗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데다 작가의 문장력이며 기본기를 완전히 들통내는 장르지요.따라서 외국에선 고급한 산문작가는 소설가 이상으로 쳐주는데 우리는 정반대로 산문을 너무 푸대접해왔어요.떼밀린듯 개항을 맞은 근대사로 정신문화 자체가 뿌리째 흔들렸기 때문이 아닌가 아쉬워요.비단 문학 뿐 아니라 역사·철학적 소양이 높았던 옛적 선비들에겐 산문이 가장 인기있는 장르였거든요』 산문정신을 도두 말하는 그에게선 영락없는 문학청년의 열정이 엿보인다.아무튼 최인훈과 같은 작가를 가져 한국문학사는 풍요롭다.성마른 사실주의가 소란스럽던 지난시절 천천히 씹어 생각하는 최인훈의 목소리는 한국문학에 숨돌릴 틈을 터줬다.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서울대)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근대 시민사회 인간의 자의식을 탐구하는 수단이라고 할때 그 장르적 특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이는 우리 문학사에서 이청준을 제외하곤 최인훈이 유일하달 정도』라고 평가한다. 작가는 최근 『정보화 시대에 문학이 어떻게 하면 잡다한 정보들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만도 못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하는 특성은 역시 높은 정신적 품격이 아닌가 해요.영상시대다 뭐다 하지만 그같은 매력에 끌려 평생 문학에 매달려온 나로서는 문학의 장래를 낙관합니다』 『살아생전 소원이 통일이지만 역사를 누가 예측하겠느냐』는 말엔 이명준을 무턱대고 바다로 몰아넣은 젊음의 혈기는 가라앉고 조심스러운 지혜가 묻어난다. 『돌이켜보면 광장의 주인공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할일에 너무 조바심을 내고 금새 선택을 해버린 것도 같아요.지금 「광장」을 다시 쓴다면 결론이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약력 ▲1936년 4월13일 함북 회령에서 목재상인 최국성의 장남으로 탄생 ▲해방통에 원산으로 이주(47년)했다가 6·25때 해군함정 LST편으로 가족과 함께 월남(50년) ▲대표작 소설 「광장」(60년) 「구운몽」(62년)「회색인」(63년)「서유기」(66년)「총독의 소리」연작(67년∼)「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연작(69년∼)「화두」(93년)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70년) 등 ▲단편 「웃음소리」로 동인문학상(66년)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77년)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로 서울극평가그룹상(79년)등 수상 ▲아이오와 대학 초청으로 도미(73년) 4년간 미국체류.이때의 대폭 개작을 비롯,평생 6회에 걸쳐 「광장」을 개작 ▲문학과 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완간(79년) ▲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
  • 김정일 공석에 자주 나타나(북녘 뉴스라인)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김정일이 지난 19일부터 22일 사이 네차례나 공석에 참석하는등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이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22일 조총련대표단과의 군협주단 및 공훈합창단 공연관람이었다.이에 앞서 김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일꾼 및 제1차 세계군인체육대회참가선수·임원들과의 기념촬영에 자리를 함께 했었다. ◎상업관리소,인기직장으로 부상 북한 주민들에게 「상업관리소」가 최근 인기직장으로 부상,이곳으로 직장을 옮기기 위해 뇌물까지 바치는등 전직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상업관리소란 주민들에게 직접 상품을 공급해주는 국영상점들을 대상으로 물품을 대주는 중간공급소를 말한다.이 곳에 근무하게 되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데다 필요물품을 국영상점에서 국정가격으로 쉽게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나진·선봉에 10개 공업지구 북한은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에 10개의 공업지구를 획정하고 각 공업지구별로 투자대상업종을 지정,외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공업지구의 전체면적은 2천3백30㏊로,개별공업지구는 60㏊에서 5백50㏊에 이르기까지 유치업종의 성격에 따라 면적이 책정됐다.북한은 오는 5월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의 협조아래 현지에서 최초의 투자설명회를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미 「블랙 게리맨더링」 위헌 논란/선거구 36곳 흑인 의원 특혜

    ◎조지아주 3곳 통합 결정후 소송 확산 미국에서 「블랙 게리맨더링(선거구 흑인 특혜편성)」이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블랙 게리맨더링이란 흑인이 연방하원에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구를 흑인에게 유리하게 고쳐놓은 것을 일컫는 말. 최근 일부 백인들이 많은 지역에서 블랙 게리맨더링으로 흑인들에게 특혜가 돌아가고 있다고 위헌소송을 제기,미국 전역이 위헌성 여부로 소란을 겪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하원의석 4백35개중 흑인 의원은 지난 연말 시카고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제시 잭슨목사의 아들을 포함,39명으로 전체의 9%에 이른다.인구비(13%)엔 다소 못 미치나 다른 중요 사회경제지표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이 흑인의석은 10년도 못되는 사이에 배로 불어난 것이다.그러나 이런 흑인의원의 급증은 흑인 정치세력의 일취월장 덕분이 아니라 블랙 게리맨더링의 산물이라는게 백인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39명 흑인의원중 36명은 흑인인구가 과반수인 선거구에서 당선됐다.흑인들은 한곳에 몰려사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연방하원 선거구의 평균인구수(59만4천명)와 흑인전체인구비중 등을 감안할 때 이 흑인인구 과반수 선거구는 상당수가 정치적 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은 10년마다 인구센서스에 따라 철저한 연방의석수 주별재할당과 주내 선거구재조정을 실시한다.이는 연방하원 선거구 획정의 대원칙으로 존중되고 있다.이 원칙은 지난 64년 「모든 투표의 가치는 똑같다」는 대법원판결 이후 확정됐다.이에 따라 연방하원의 선거구는 인구수가 거의 1천명내외의 편차로 비슷하게 그려진다. 반면 정치적 게리맨더링도 관행으로 인정된다.미국은 선거구획정 권한이 주의회에게 있어 다수당,특정인물 당선을 위한 정치적 게리맨더링이 예부터 있어왔다.한 소도시가 3,4개 선거구로 잘라지면서 공룡보다 훨씬 괴상한 「으깨 터진 빈대」 모양새의 선거구도 적지 않다. 이 게리맨더링은 처음에는 흑인과 상관없는 정치관행이었으나 10년전 연방 법무부가 1965년 민권운동에 따라 「투표권리법」을 관철시킨데 힘입어 「블랙」이라는 접두사를 붙이게 됐다.법무부는 소수계의 적극적인 투표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해 「특정 선거구의 소수계인구 과반수 획정」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런 블랙 게리맨더링은 그러나 지난 연말 조지아주 연방법원이 3개 흑인과반수 선거구를 1개로 줄이도록 결정한데 따라 극복하기 힘든 도전에 직면했다.또 대법원은 흑인 과반수 선거구와 관련,텍사스의 3곳,노스캐롤라이나의 2곳 선거구에 대해 위헌여부를 다루고 있고 플로리다,일리노이,뉴욕,루이지애나,버지니아주에서도 인위적으로 소수계로 전락한 백인유권자들이 헌법소송을 제기해놓은 실정이다.결국 10년도 못가 블랙 게리맨더링은 사라질 운명에 놓여있다.
  • 폭력 미군 징역 6월/서울지법 선고

    서울지법 김동환 판사는 21일 지하철 안에서 소란을 피우다 이를 막던 한국인 승객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징역1년이 구형된 주한미군 프랭크 골리나(31·병장)피고인에게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를 적용,징역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판사는 『한국인을 집단폭행한 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며 골리나피고인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실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 한 해의 끝달(외언내언)

    열두장짜리 캘린더가 뜯겨나가더니 한장만 달랑 남았다.마지막 잎새 같은 한장의 달력 위로 분주히 스쳐가는 12월의 스케줄.한 해의 미진했던 일도 마무리짓고 동창회다,송년회다 해서 한 해를 결산하는 모임이 연달아 자리를 잡았다.마음도 몸도 바삐 뛰어야 하는 12월이고 계절은 깊은 겨울로 들어선다.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한 해를 뒤돌아보니 다사다난,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11월 비자금과 관련된 노전대통령의 구속은 세계를 놀라게 한 빅뉴스였다.두 사건이 모두 부정부패와 관련된 우리나라 정치·사회의 치부노출이란 점에서 참으로 곤혹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했던 부끄러움이었다.그나마 수출 1천억달러를 돌파하고 9.8% 고성장을 보인 경제의 약진이 국민들을 위로시켰다고나 할까. 12월은 한 해의 끝달이라 유난히 빠르게 지나간다.그 빠른 흐름속에서 우리는 올해 미진하거나 마루어졌던 일을 챙겨나가야 한다.지난 정초에 올해 하겠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점검해보면 아마도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아침에 정하고 저녁에깨는 것이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한 해의 개인적 결산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이달에 해야 할 일이다. 긴긴 겨울밤 오래 문안 못드린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일도 좋을 것이다.오래 못만난 스승이나 친구에게 문안편지를 띄우는 일도 12월이 제격이다.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소 엄숙해지고 인생을 관조하게 되는 법이다. 분수없는 연말의 흥청거림과 소란에서 조금은 벗어나 조용한 연말연시를 보내는 것도 생활의 지혜일 것이다. 연말연시에는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의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펴주는 온정을 나눠야 한다.해마다 살아가기는 그런대로 나아지지만 「그늘진 곳」을 찾아주는 발걸음은 뜸해지는 게 오늘의 얄팍한 세태다.온정을 자꾸만 잃어가는 세태가 아쉽다.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을 것이라는 예보다.추운 겨울 「나눔의 기쁨」을 맛보며 불우한 이웃과 함께 12월을 포근하게 보내자.
  • 특별법 “공감”…특검제 “이견”/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답변

    ◎국회 청문회·국정조사 요구­야권/위법문제 우선 해결이 중요­이 총리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는 긴급 현안질문을 통해 5·18특별법 제정에 대한 각당의 견해를 밝히고 정부의 방침을 물었다.강신옥(민자)·안동선(국민회의)·장기욱(민주)·김동길(자민련)의원 등 여야 4당의 대표질문자로 나선 의원들은 특별법의 당위성에는 모두 공감하면서도 특별검사제 도입과 대선자금문제등의 쟁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김동길 의원(자민련)◁ 최근의 12·12나 5·18,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파문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의 자세를 보면 마치 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앞서 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김대통령은 3당통합을 했기에 대통령이 되지 않았는가.호랑이 잡기 위해 들어갔다고 하는데 들어가서(통합해서) 정말 호랑이 잡으러 왔다고 했다면 민정계가 그를 도와주었겠는가.도와달라고 했으니 도와준 것 아니냐.이제와서 그들을 칠 수 있는가. ▷안동선 의원(국민회의)◁ 김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것은 비자금정국에서 탈출하려는 「깜짝쇼」가 아닌가.12·12와 5·18주범들에게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이 어떻게 동일인들을 동일한 사실로 기소할 수 있는가.검찰이 재수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검찰이 독립성을 유지하기 힘든 최고권력층 비리나 헌정파괴,집단학살 등의 범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태우씨의 비자금은 국회청문회와 국정조사권,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장기욱 의원(민주당)◁ 새로운 질서는 잘못된 과거를 완전히 파기할 때 만이 창조될 수 있다.일부 5·6공 세력들이 보수를 자임하면서 마치 5·18특별법 제정을 우익대 좌익의 대결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민주세력을 좌익으로 몰아 탄압하던 과거 독재정권들의 못된 버릇을 못버린 것이다. 김대통령은 모든 것을 정치로 풀지 않고 검찰로 풀려고 한다.정치검찰에 의한 검찰정치가 계속되는 것이다. ▷강신옥 의원(민자당)◁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12·12 불기소처분 이유는 수단이 부정해도 성공만 하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늦은 감이 있지만 5·18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김대통령의 용단은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사전 유출돼 헌재의 권위와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진상과 대책을 밝혀달라.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볼 때 5·18에 대해 공소권없음 결정을 한 검찰이 다시 수사를 맡을 수는 없다고 보는데 법무부장관의 견해는.아울러 불기소결정을 한 검찰관계자들을 문책할 용의는. ▷이홍구 국무총리◁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지시는 관련 당사자들을 의법처리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서 결코 사과할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지금 우선 중요한 것은 입법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특별검사제 도입등 법집행을 둘러싼 방법문제가 아니다.법체계가 다른 미국의 특검제를 무조건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그러나 법제정 과정에서 논의된다면 3권분립의 토대 위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이번 특별법 제정은 특정 정치세력이 아닌 사건 관련 당사자를 법적 처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지난 40여년 헌정사에서 자주 정치가 법보다 우위에 섰다.따라서 오늘의 과제는 어떻게 법에 입각한 정치를 만드느냐에 있다.비자금정국과 특별법정국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법에 따라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처리하겠다.특별법이 제정되면 시행에 필요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데 만전을 기하겠다. 검찰이 노태우씨 비자금의 사용처를 철저히 조사하고 있으므로 여권의 대선자금 부분도 밝혀질 것이다.청문회개최와 국정조사권 발동 등에 대해서도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조사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를 거둔 검찰 책임자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문책할 수는 없다. ◎허화평 의원 본회의 발언 안팎/“「민주」 위장 좌파,군·보수세력 공격”/“보수우익 국민이 최후심판 내릴것” 주장/구시대 청산 국민여망·당론 정면 도전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잇따라 고함이 터지는등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5공「신군부」 핵심중 한사람인 민자당 허화평의원이 신상발언을 통해 5·18특별법제정에 정치적 좌파의음모가 개재된양 꼬집는 「망언」에 가까운 소신피력을 했기 때문이었다. 허의원은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민주투사들에 의하여 조종을 울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로 시작되는 두쪽짜리 유인물을 비장한 표정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구시대의 청산을 갈망하는 국민의 여망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당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이었다.야당의석은 물론 민자당의석에서도 그의 4분간 신상발언 도중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허의원은 『역사에 있어 책임은 일방적일 수 없고 같은 시대,같은 무대에서 서로 다투었던 세력들에겐 책임이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다』며 『80년 당시 민주화세력들이 분열하지 않고 과격한 민중전술을 동원하지 않았던들,5공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서두를 꺼냈다.그러자 이때부터 국민회의 의석쪽에서 『무슨 말이야』라는 고함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의원은 목청을 높여 『민주화투쟁 그것만으로 모든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민주라는 미명하에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된 점 역시 허다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규명이 문제라면 여소야대 정국하에서 1노3김에 의한 5공청산이 있었고,12·12에 관한 국정조사와 12·12와 5·18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있었다』고 강변했다. 다시 의석에서 『먼저 반성해야지』(국민회의 김영진 의원),『어렵다』(민자당 변정일 의원),『무슨 소리야』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허의원은 특히 정치권의 5·18특별법 제정 추진에 대해 『나라 요소요소에 자리하고 있는 좌파들이 이른바 민주세력·양심세력·진보세력·통일세력으로 위장하면서 12·12와 5·18을 투쟁의 고리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계기로 군을 무력화시키고 보수우익세력에게 일대 타격을 가해 국면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극적 분석」을 해 여야의원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허의원은 『작금의 현실은 국민의 다수인 보수우익이 침묵하는 가운데 좌파가 주도하는 소수세력이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듯 소란하고,일부 전파매체들은 당대의 역사를 정치드라마 형식으로 왜곡 날조해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최근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 「제4공화국」「코리아게이트」등 TV드라마를 겨냥하기도 했다. 허의원은 또 『4·19직후 민주당이,또 5·16군사정부가 소급입법을 했으나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정치발전이 있었느냐』고 반문한 뒤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보면서 좌우투쟁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고 「엄포성」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자 『수백명을 죽이고도 뻔뻔스럽다』(국민회의 김옥두 의원),『내버려 둬』(민주당 장기욱 의원)등의 고성이 의사당을 다시 어지럽혔다. ○…허의원은 야유에 개의치 않고 비감한 어조로 『나는 정치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진실은 영원하고 최후심판은 국민의 다수인 보수우익이 내려줄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그의 발언에 대해 민자당 강삼재사무총장은 『이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해서야 되겠느냐』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그러나 현재로선 당차원의 대책은 세우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지하철서 취중 난동 미군 2명 조사

    서울 종로경찰서는 20일 술에 취해 전동차의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소란을 피운 경기도 파주군 E캠프 공병중대 소속 포센티 로렌스병장(33)등 주한미군 2명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로렌스병장 등 5명은 지난 11일 하오9시35분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정차한 전동차(기관사 권영두)에서 객차 유리창 1장을 부수는 등 소란을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이 전동차에 타고 있었던 신정원씨(45·회사원)는 『구파발역에서 승차한 미군 7명이 술을 마시며 괴성을 지르는 등 소란을 피워 30여명의 승객이 거세게 항의하자 이같은 행패를 부렸다』고 말했다. 구파발역 역무원 이희성(36)씨도 『신고를 받은 순찰직원등 6명이 전동차를 세워 미군에게 전동차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으나 이들이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고 욕을 하면서 승객및 순찰직원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면서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이 팔과 무릎 등을 다쳤다』고 말했다.
  •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남긴 것

    ◎165만명 관람… 「세계속 예향」 도약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며 한국 남도의 대표적인 도시 광주의 이미지를 새롭게 한 광주비엔날레가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세계적인 미술행사로,또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과연 제 모습을 갖추고 성과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당초의 우려와 달리 광주비엔날레는 두달동안 무려 1백65만명이 넘는 엄청난 관객동원으로 예상을 뒤엎는 외형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일 하오4시부터 광주에서는 비엔날레의 성공을 자축하는 화려한 축하공연과 함께 폐막식이 거행됐다.이날 하오5시30분부터 비엔날레의 본거지였던 중외공원내 야외공연장에서 베풀어진 폐막식에는 비엔날레 관계자들과 광주시민,전국의 문화예술계 안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번 비엔날레의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며 아쉬움속에 폐막식을 가졌다. 명실공히 국제미술제로서 그 면모를 과시한 국내 초유의 광주비엔날레.미술제로서 이번 비엔날레의 순수예술적인 측면과 광주라는 국내 한 지방도시에서 치러진 국제행사로서의 그 의의를 결산해 본다. ◎미술적 평가/대중화 성공 불구 품격시비 “흠”/역량있는 작가 유치 과제 남겨 미술적인 측면에서 『관람객 숫자만으로 본질을 평가할 수 없다』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주최측은 「성공적 미술축제」라는 자체평가를 주저하지 않고 내후년 제2회 행사를 위한 청사진 그리기에 한껏 부풀어 있다. 이번 행사는 국내 관객동원 숫자에 비해 외국인 관람객이 기껏 2만4천여명에 그쳤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그러나 주최측은 낙후된 한국의 관광여건을 본질적 이유로 들며 오히려 프랑스 「르 몽드」지나 일본 「NHK」방송의 대대적 보도등을 내세워 해외매스컴의 관심 또한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아시아 최초로 치러지는 국내 초유의 국제미술행사이면서도 급하게 준비한 1백82억원의 예산을 들여 1년도 못되는 촉박한 일정에 막을 올렸다.부진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상흔」으로 얼룩진 광주의 아픈 이미지를 밝고 활기찬 현대예술의 도시로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했다. 전시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장르중에서도일반인과의 교감이 거의 없는 미술을 새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는 점은 큰 성과가 된다. 그러나 미술적인 측면에서 이번 비엔날레 기본품격은 크게 부족한 편이었다.주최측 한 고위관계자는 『일부 지식인들의 비판』이라고 하지만 말많은 국내 미술계로부터는 『국제행사 좋아하는 국내 몇몇 인물들의 잔치에다 본 전시의 출품작들도 수준미달이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비엔날레조직위 내에서도 각 지역별 커미셔너들의 실력과 자세에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본 전시인 「국제현대미술전」의 커미셔너들이 세계 각 지역의 실력있는 작가들을 유치할만한 역량의 인물들인가에서 시작된 회의는 결국 「30세 전후의 제3세계 작가들이 벌여놓은 희귀한 설치비엔날레」가 되고 말았다는 비판을 낳았다.「경계를 넘어서」 오늘의 앞서가는 현대미술을 보인 것까지는 좋았지만 80%가 설치미술이며 엉성한 작품진열에 해설도 제대로 돼있지 않은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본 전시외에 「광주 오월정신전」이나 「인포아트전」등 의미있는 특별전이 이 행사를 빛낸 점도 있지만 비엔날레가 향토축제 벌이듯 지나치게 많은 부대행사를 기획한 점도 부정적인 측면에 속한다.한 관계자는 『그렇게 해서라도 손님을 끌어야 했다』지만 이 또한 순수미술 행사로서 비엔날레를 평가할때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환경속에 미술품을 호젓하게 감상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낳은 셈이다. 어쨌든 관객은 운집했다.그리고 적자도 보지 않았다.그만한 큰 행사를 잘 치러낸 주최측의 노고도 대단하다. 하지만 전시에 대한 평가는 『뭔가 잘 모르겠다』는 일반관객들이나 『실망했다』는 미술전문 관계자들에서 볼때 결국 부정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한번의 행사로 그 성격을 단언할 수 없듯이 앞으로의 광주비엔날레가 조직적이고 탄탄한 운영기반을 갖춰 명실공히 「동양 최고의 국제미술경연」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행사평가/지자체 첫 국제행사 흑자운영/「한의 도시」 이미지 쇄신 성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만들어낸 「축제 광주」의 모습을 과시한 이번 비엔날레기간 내내 이곳에는 란즈베르기스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국내외 인사들이 찾았다. 남종화의 산실인 이곳의 예술적 토양을 바탕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예술행사로 승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방도시에서 치러낸 첫 국제행사라는 의미도 크다. 본 전시등 미술전에 세계 58개국에서 5백여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30개국 1만2천여명의 예술가가 참가해 음악·무용·패션·민속공연등 다채로운 행사를 폈으며 하루평균 2만6천여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지자제 실시와 함께 새로 출범한 주최측인 광주광역시는 1백82억원의 전체 예산중 행사개최비 77억원에 비해 입장료수입과 수익사업등에서 94억7백만원을 올려 행사운영 측면에서도 흑자를 내며 여타 도시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점도 곳곳에서 노출돼 대부분 관객이 비좁은 공간속에서 떼밀리다시피 전시관을 돌며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여러 곳에서 작품훼손이 잇따랐고 일부작품은 위작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세월동안 외부에 「한」의 도시라는 어두운 이미지로 비춰진 광주에서 거둔 이번 행사의 성공은 시민들에게 자긍심과 큰 활력을 선사했다. 거리마다 나부끼는 애드벌룬과 행사장 주변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외지 인파는 광주를 살아 꿈틀거리는 도시로 바꿨다. 각종 전시에서 선보인 설치미술품과 행위예술은 평면그림 위주로 미술을 인식해온 일반 시민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맛보게도 했다. 광주시는 이를 계기로 인본예술과 첨단산업이 어우러진 활기찬 도시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는 97년 2회 행사때는 국제규모의 영화제와 첨단과학산업단지를 기반으로 한 산업디자인도 함께 개최하기로 했다. 주최측인 광주광역시에는 이번 축제무드를 지역발전과 지방의 국제화 전략에 어떻게 접목시켜 나가느냐가 숙제로 남아 있다. ◎비엔날레 전문위원겸 전시부장 정준모씨/“전문 인력 적어 진행 큰 어려움 겪어 이번 경험살려 지금부터 「2차」 준비” 국내 제1호 독립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잘 알려진 정준모씨(39).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전문위원겸 대변인,전시부장을 맡아 자타가 공인하는 비엔날레 살림꾼으로 가장 진땀을 뺀 인물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실제적인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온 사람으로 감회도 남다를텐데. 『모든 일이라면 어폐가 있구요 전시파트 전반을 이끌면서 홍보와 전시환경,작품운송,보험,도록제작등 전시실무를 전담했습니다.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익숙해진 일들이지만 짧은 시간과 많은 양의 작품속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단 광주 시민들 특유의 애향심과 언론의 지대한 관심이 큰 힘이 됐습니다』 ­보람도 많았겠지만 어려움도 많았을텐데요. 『많은 경험을 단기간에 한 보람이 있구요 외국의 많은 친구를 사귄게 재산같습니다.단군이래 최대 문화행사에 경험부족과 미술행정,아트메니지먼트에 관련한 전문인력이 거의 전무하다는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직 뚝심과 열정으로 부딪친 전시본부 스태프들의 노력이 빛났습니다』 ­기간중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한번은 24시간동안에 서울을 3번이나 다녀와야 했습니다.개막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는데 작품설치에 필요한 전자장비를 구하기 위해 항공으로 1회,봉고버스로 2회를 오갔습니다. ­선험자로 볼때 차기비엔날레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폐막과 함께 2차 대회를 준비해야 됩니다.또 현대미술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섭외력,어학실력,통솔력을 갖춘 총 큐레이터와 팀웍이 맞는 실무진이 절대 필요하지요』
  • “여론에만 맞추면 나라 불행…”/노씨 수사­노씨·중수부장 대화

    ◎“국민 궁금증 덜게 모든 의혹 해소를”­안 부장/“나때문에 여러분 고생… 건강 괜찮다”­노씨 15일 하오 2시48분쯤 서초동 대검청사에 도착한 노태우 전대통령은 곧바로 7층 안강민 중수부장실로 올라갔다.8분여동안 대추차를 마시면서 계속된 이날 대화에서 검찰측에서는 이정수 수사기획관,노 전대통령측에서는 법률자문역을 맡은 김유후 전 청와대 사정수석이 배석했다. 다음은 대화내용이다. ▲노 전대통령=나때문에 여러분 고생을 많이 시키고 있습니다. ▲안 중수부장=건강은 괜찮으십니까.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죠. ▲노=좋지 않았습니다.약먹고 이제 괜찮습니다. ▲안=오늘은 먼저보다 더 빨리 도착하셨군요. ▲노=오다보니 선도하는 차량이 있어서 경찰사이드카인지 알았는데 언론사 차량이 앞뒤 좌우에 있었습니다.혹시 경찰차가 선도하게 되면 다른 일반차량에 불편을 끼칠까 걱정했습니다. ▲안=조사실이 좋은 시설은 아닙니다만 계시면서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노=고맙습니다. ▲안=국민들이 궁금해 하는의혹이 너무 많습니다.이번 기회에 모든 의혹을 해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너무 여론이 원하는 대로 맞춰 하다보면 나라가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노 전대통령은 조사검사인 문영호 중수2과장이 기다리고 있는 11층 특별조사실로 향했다. ◎연희동서 대검청사까지/취재차량 보일때는 얼굴 가려/최악상황 예상한듯 표정 비장 ○…15일 상오 9시 30분쯤 『노태우 전대통령을 하오3시 재소환할 것』이라는 검찰의 갑작스런 발표가 나오면서 한동안 조용했던 연희동 노씨집 주위는 다시 취재진들로 북적대며 긴장감이 돌기 시작. 언론보도 직후에야 소식을 안 경찰도 기존 3개 중대의 경찰병력에다 4개 중대를 추가 배치해 8백여명의 경비병력으로 연희동일대에 삼엄한 검문활동을 전개. ○…하오 2시30분쯤 검은색 싱글차림의 노씨가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아들 재헌씨와 동생 재우씨,비서관 등이 배웅.노씨는 대문앞에서 재헌씨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뒤 비서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최석립전경호실장과 함께 서울 2프2979 검은색 뉴그랜저 승용차에 올라타고 검찰청사로 직행. 노 전대통령의 차량행렬은 서대문구청·연희 입체교차로·서교호텔·강북로를 타고 가다 잠수교를 통과해 출발한지 18분만인 하오 2시48분쯤 서초동 대검찰청사에 도착. 노 전대통령의 승용차와 경호차량이 줄곧 1백㎞이상의 속력으로 질주하자 이를 뒤따르던 취재차량들이 서로 뒤엉켜 2∼3건의 접촉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모 방송사 차량에서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란을 빚기도 했다.노씨는 차안에서 취재차량이 보일 때마다 얼굴을 손으로 가리는등 다소 불안한 표정을 보였으며 버스를 탄 시민들은 전직대통령의 소환장면을 목격하기 위해 차창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진풍경을 연출. ○…대검청사에 도착한 노씨는 윤주천 대검사무국장의 안내로 귀빈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7층 안강민 중수부장실로 직행. 노씨는 취재진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한 뒤 2∼3걸음 걷다가 포토라인에서 2∼3초 가량 포즈를 취하는 등 여유를 보이려 애쓰는 모습. 현관 회전문을 통해 청사 안으로 들어선 뒤에는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지어보였으나 이내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듯 아랫입술을 지긋이깨물며 비장한 표정.
  • 민속축제 수르하루방(시베리아 대탐방:47)

    ◎풍년 기원하는 부랴트족의 명절/인구 43만의 바이칼호 주변 최대 소수민족/샅바 없고 제한시간 없는 맨몸씨름 인기/경마종목 복잡… 앞발로만 뛰기 등 이색적 남부 시베리아 바이칼호 주변 최대의 민족은 부랴트족이다.이들은 지난 92년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행정적으로 독립한 부랴트자치공화국내에 모여 산다.총인구가 43만 1천여명(95년 상반기기준).이들은 다시 공화국내 6개 자치관구에 흩어져 살고있다. 흥미를 끄는 것은 부랴트족은 러시아 연방내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지난 79년 말 35만명의 인구가 10년 뒤인 지난 89년에는 20%가 는 42만명에 이르렀다. 취재진이 부랴트족을 찾은 곳은 바이칼호 남서쪽 이르쿠츠크에서 90여㎞ 떨어진 우스치 아르딘스크 마을이었다.때마침 이들은 자신들만의 축제한마당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축제의 이름은 「수르하루방」.이들은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는 최대명절로 「수르하루방」을 꼽았고 파종을 끝내고 「하늘」에 좋은 수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 축제를 민속축제로 전승하고 있었다. ○파종 끝내고 축제 시작 하지만 이들 어느 누구도 「수르하루방」의 의미는 모르고 있었다.우스치 아르딘스크시장이라는 칼 보리스씨의 안내로 취재진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집회가 벌어지는 한 운동장을 찾았다. 이곳은 부랴트식 씨름·활쏘기·말타기가 열리는 자리였다.동시에 구역을 대표한 가무단들이 나와 민속노래와 춤을 곁들이며 마을사람들을 축제무드로 이끌고 있었다.공설운동장 격인 이곳에는 아침 축제시작전부터 3만여명의 마을 주민가운데 수천명이 모여들어 스탠드를 메웠다.축제는 3단계로 진행됐다.이곳은 이미 구역단위에서 예선전을 거친 팀들이 「준결승전」을 갖는 곳이었다.여기서 이긴 팀들은 곧 열릴 전 부랴트공화국 축제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취재팀은 「귀빈」대접을 받고 귀빈석으로 안내됐다.옆좌석에는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한 노인이 자리했다.알렉산드르 우베예프란 이 노인은 79세였다.까닭을 물으니 「수르하루방」에는 반드시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을 모시도록 돼 있었다.칼 보리스시장은『부랴트족은 어릴적부터 손윗사람을 모시는 것을 큰 덕목으로 삼고 있다』면서 『자녀들이 (거절하지 않고) 부모나 조부모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그는 『부랴트족은 주술을 행하고 점을 보며 굿을 행하기도 하는 등 샤머니즘을 잘 보존해 내려오고 있다』고 전했다.또 적어도 10촌까지는 친척이며 친척간 혼인도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는 것이 보리스시장의 얘기였다. ○화목이 가장 큰 덕목 민속명절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민속의상을 입고 나오리라는 취재팀의 기대는 깨졌다.관중으로 나온 주민들은 대부분 평상복차림이었다.또 격투종목에 출전한 선수들도 집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오거나 아디다스등 현대식 추리닝 차림으로 경기에 임했다.이윽고 시장이 개막을 선언하자 관중들은 환호로 답했다.시장의 개막연설,심판소개,지난해 최우수선수들의 성화점화식이 있었고 성화는 성화봉에 그냥 불을 붙여 사용했다.어린이들이 갖고 나온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고 이어 구역을 대표하는 민속가무단이 그들의 민요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약 30분간의 식전행사가 끝나자 경기가 시작됐다. 처음 경기는 씨름이었다.「바리바」라는 이 씨름은 우리나라의 씨름과 흡사했다.먼저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는 선수가 지는 것이다.샅바는 없이 맨몸으로 경기를 벌였다.제한시간이 없이 끝장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경기가 계속되는 동안 관중들은 운동장 주변의 포장마차 같은 곳에 몰려가 샤스리크(구운 양고기) 등에 보드카를 곁들여 먹으며 축제분위기에 빠져들어갔다.이웃 학교운동장에서는 구역을 대표한 민속가무단들이 자리를 옮겨 노래를 계속해댔다.우리의 남도가락 같은 「요하루」를 불러댔고 노래를 부르는동안 가무단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를 「연기」했다.이들의 춤을 구경하던 한 40대 주부는 『우리는 화목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는다』며 부랴트족의 특질을 얘기해주었다.이들은 취재진에게도 『한번 받으면 잔을 비워야 한다』며 술을 권했는데 이 술은 바로 말젖을 발효시킨 시베리안 술이었다.엷은 우유빛을 한 이 술은 와인처럼 마시기는 부드러웠지만 생각보다 독한것 같았다. ○주변의 포장마차 인기 이어 장내는 활경기를 한다고 선수들을 집합시키려 했으나 각 구역에서는 선수가 구성이 안돼 경기를 하지 못했다.곧 이어 경마경기 안내방송이 나왔고 장내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경마장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었다.취재진은 운동장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약 4㎞ 떨어진 경마경기가 열릴 예정인 들판으로 나갔다.벌써부터 많은 주민들이 나와 있었고 처음 운동장의 수보다 관중이 많이 나와 있어 경마에 대한 부랴트족의 관심도를 반영했다. 경마종목은 생각보다 많고 복잡했다.2백m 단거리에서부터 3천m,5천m 경기가 있었고 말 뒤에 작은 트레일러를 달고 달리는 짐경마경기도 따로 있었다.또 말이 뛰는 형식에 따라 3종목이 있었다.사람으로 치면 경보 같은 것과 앞발로만 뛰기,네발을 모두 사용해 뛰기,지상으로부터 항상 한 발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뛰기 등이었다.말이 이런 형식으로 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경기가 진행되면서 말이 그러한 규칙을 지키며 경기를 벌이는 것이 흥미로웠다.기수들의 나이제한은 없었고 6세 이상이면 누구나 어떤 경기도 참여할 수 있었다. 경마를 구경하던 한 주민은 『부랴트족은 3∼4세 때부터 말타기를 배운다』면서 『말을 타지 못하면 부랴트족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 노씨의 「초라한 귀가」/김경운 사회부 기자(현장)

    ◎“아직도 반성 못했다” 이웃 주민들 분통 2일 새벽 노태우 전대통령은 지치고 초라한 몰골로 연희동 집으로 돌아왔다. 16시간에 걸친 검찰조사를 마치고 상오 2시47분 연희동 자택에 도착한 노씨는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승용차에서 내려 정치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던 아들 재헌씨에게 안기다시피해 집으로 들어섰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고 귀가한 하루가 그에게는 5년 동안의 대통령 재임 기간보다 더 길게 느껴진듯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터지는 보도진의 후레시 세례 속에 그의 얼굴은 언뜻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전날 아침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보도진을 따돌리느라 진행 방향을 속이며 골목길로 도망치듯 내달리고 카메라를 향해 눈길 한번 맞추지 못하던 노씨를 바라본 연희동 주민들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입을 모았다. 2년9개월 전 노씨가 대통령직을 마치고 따뜻한 이웃으로 돌아왔을 때 진심으로 노고에 감사를 표시하고 환영했던 주민들이었다. 한 주민은 당시를 초봄의 아침 햇살이 따스할때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번 귀가는 은둔자의 그것이었다.초겨울의 스산함이 귓볼을 할퀴는 시간에 노씨는 누가 볼세라 황급히 들어갔다. 주민들은 노씨가 검찰에서 돌아온 뒤 영양주사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조사에서도 부인으로만 일관했다는데 부인하기도 힘들었던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이날 상오 침묵 속에 휩싸인 노씨집을 지나던 한 시민은 『검찰청사를 나서며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해놓고 부인으로 일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퇴임 9개월 전부터 지금의 연희동 사저가 초라하다며 2억여원의 시예산을 들여 조경 보수공사를 하는 소란을 피우더니 초라한 것은 집이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한 주부가 독백처럼 내뱉었다.
  • 품행 제로(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어린이 눈 통해 불 교육제도 풍자/동심 상징적으로 표현… 뛰어난 실험작 영화에 미쳐서 부모님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며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누구에게 뒤질세라 우리나라에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세번씩 보면서 바둑에서 복기를 하듯 영화의 한 장면 한장면을 기억하던 대학시절,우리영화의 발전을 위해 이 한몸 바치겠다는 각오로 일본을 거쳐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던 나에게 충격을 준 영화가 장 비고 감독의 「품행제로」(ZERO FOR CONDUCT)였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장 비고.그는 4편의 영화만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그의 실험적인 영화는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을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다.그의 뛰어난 상상력과 상징적인 영상 그리고 리리시즘적인 묘사는 영화가 스토리에 의존하지 않고 영상언어로서 표현할 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품행제로」는 장 비고 자신이 기숙제학교에서 8년간 보낸 소년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품행제로는 일요일에 외출금지를 의미하는것으로 엄격한 규제와 통제속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부르주아적인 교육제도를 풍자한 말이다. 엄격한 선생들과 4명의 악동들이 쫓고 숨는 게임중 기숙사 침실의 소란을 피우는 장면.특히 베개속에서 새털이 휘날리는 가운데 하얀 침대포를 몸에 감고 행진하는 환희에 찬 소년들의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묘사,마치 천사들이 하늘나라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연상시킬 만큼 동심의 심리를 영상으로 훌륭하게 묘사한 것은 영화사에 길이 기억될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다음날 학교축제일에 초대된 지사,경찰서장,목사 등이 귀빈석에 앉아 있는데 4명의 악동들이 학교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규칙 죽여! 품행제로 죽여! 자유만세!』를 외치며 지붕의 맨 위쪽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마치 지상을 떠나 구속이 없는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듯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프랑스의 교육제도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 영화는 19 33년 개봉돼 상영되던중 극장안에서 난동이 일어나 검열당국으로부터 상영금지 조치를 받은후46년까지 상영이 금지되었다.최근에 와서 장 비고의 작품들이 복원돼 찬란한 빛을 보게 되니 떨리는 마음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한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느낌이다.
  • 박 의원 체포동의안 국회표결 이모저모

    ◎여 “사법처리 마땅” 야 “표적수사” 공방/개회벽두 자유발언 내용싸고 맞고함/민주당 2명외 야당의원들 모두 기권 국민회의측 민주당 전국구의원인 박은태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실시된 16일 국회 본회의는 여야의 맞고함과 의사진행발언,야당측의 표결불참 등이 뒤엉킨 가운데 어수선하게 진행됐다. ○…황락주 국회의장이 상오10시쯤 개회를 선언하자마자 국민회의의 이협 의원 등은 4분 자유발언을 통해 『국회의원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신분을 보장한 헌법정신에 비추어도 체포안을 졸속처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표적수사」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자당의 박헌기 의원은 4분발언에서 『비리수사를 표적수사다,야당탄압이다 하는 것은 구시대적 행태』라면서 『국회의원도 비리를 저질렀으면 엄정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박의원이 발언하는 동안 국민회의측 의석은 『내려가』라는 고함 등으로 소란. ○…신상발언에 나선 박은태 의원은 자신이 운영하던 미주산업(MJC)과 (주)미원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 내용등을 상세히 설명하며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여야간 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퇴장했던 이홍구 국무총리는 박의원이 15분간의 육성연설을 마친 11시쯤 입장해 새해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했다. 이어 낮 12시쯤 체포동의안이 상정되고 안우만법무부장관의 제안설명이 있자 장석화의원(국민회의)은 반대토론을 통해 『회기중 불체포특권이 보장된 국회의원을 무슨 긴급한 사정이 있어 구속하려 하나』고 공격을 재개했다. 또 이협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이런 상태에서 표결을 할 수는 없다』고 정회및 총무회담을 요청했고 자민련의 조일현·민주당의 장기욱의원 등도 『이 문제를 윤리위와 소관상임위에 넘겨 충분히 검토한 뒤 처리하는 것이 국회의 권능을 세우는 길』이라고 가세했다. ○…그러나 황의장은 『이 정도면 충분히 토론했다』면서 표결을 선언했다.황의장이 야당측의 항의에 『여야 사이에 협의를 해 보라』고 물러서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민자당의 총무단은 물론 강삼재사무총장까지 나서 『진행 똑바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의장이 결국 투표를 선언,하오1시부터 민자당의원들의 투표가 시작되자 국민회의 의원들은 『호명절차도 없는 투표는 무효』라고 비난했다.황의장은 이에 『국민회의 의원들이 호명을 방해했다』면서 의사국장에게 호명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국민회의측은 끝까지 표결에 나서지 않았고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도 양문희·정기호 의원(민주당)을 빼고 모두 기권했다. 표결결과 출석의원 2백74명 가운데 민자당 1백62명과 민주당 2명등 1백64명이 투표에 참가,찬성 1백60,반대 3,기권 1표로 나타나 민자당에서 최소 1표,최대 3표의 이탈표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황의장이 체포동의안 가결을 선포하자 의석에 앉아있던 박의원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기도. ○…박은태 의원은 이날 하오 7시50분쯤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조홍규·강철선·한화갑·오탄의원등과 함께 검찰에 출두,담당검사인 안대희중수부 1과장과 20여분 동안 면담을 한 뒤 하오 8시15분쯤 서울구치소로 직행. 박의원은 구치소로 가기에 앞서 『부산 출신이 국민회의에 들어갔다고 탄압할수 있느냐.내가 다닌 프랑스 소르본 대학 정신인 「저항」을 본받아 지역 갈등을 해소하고 민주발전을 이루는데 앞장서겠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심정을 피력. ○…대검 중앙수사부는 이날 하오 국회 본회의에서 박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예상했던대로」라는 반응.
  • 케이블TV 중계속의 의정/서동철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16일 열린 국회 본회의는 두가지 측면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첫째가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몸싸움」없이 처리됐다는 점이라면,둘째는 국민들이 여과되지 않은 그 진행과정을 헌정 사상 최초로 케이블TV중계를 통해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의정활동의 TV중계문제는 그동안 국회 안팎에서 상당한 논란을 빚었다.의원들이 유권자를 의식,성숙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긍정론과 인기위주 의정활동에 치중할 우려가 있다는 부정론이 팽팽히 맞서왔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날 본회의 TV중계는 어느 쪽의 예상이 적중했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본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결론부터 말해 이날 TV의 국회본회의 중계방송은 예상대로 가능성과 우려가 엇갈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야당은 박은대의원 체포동의안에 앞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총리의 시정연설을 케이블TV는 물론 기존 공중파TV방송들이 중계한다는 점을 철저히 이용했다. 국민회의의 조세형·조홍규·이협 의원은 황락주 국회의장이 개회를 선포하자마자 잇따라 4분자유발언과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박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의 부당성을 주장했다.이어 장본인으로 신상발언에 나선 박의원은 5분의 발언시간을 넘기고 고함이 난무하는 장내소란속에 규정에 따라 확성장치가 꺼진 상태에서 15분 동안 스스로 결백을 주장했다. 예정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진행된 이홍구총리의 연설이 끝난뒤 국민회의의 장석화의원은 발언기회를 얻어 박은대의원의 신상발언중 시간초과로 앰프가 끊겨 방송에 나가지 못한 부분을 되풀이 했고,이마저 시간초과로 앰프는 다시 꺼졌다. 이같은 모습에 대해 동료의원이 구속되는 마당에 당연하지 않느냐는 옹호론도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날 야당의원들이 하고싶은 말을 다 했음에도 과연 박의원에게 돌아간 것이 무엇일까. TV를 지켜본 한 시민은 『할 말은 많았겠지만 국회법이 정한 시간안에 자신의 주장을 소화하지 못한 박의원과 의사진행방해에 가깝게 잇따라 발언에 나선 그의 동료들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야당의원들은 이날 TV중계를 최대한 이용하려 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손해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 해외여행 태국 치앙마이/코끼리타고 「원시 정글탐사」 짜릿

    ◎메이핑강 뗏목에 몸 싣고 자연 풍관 즐겨/북부 고산지대… 미인 많은 곳으로 소문나/10월∼1월 관광적기… 하루 코스 2만6천원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방콕과 달리 소란스럽지 않고 상쾌하다.특히 10월부터 1월까지가 관광하기에 알맞은 날씨다.해발 4백20m의 고산지대라 공기가 맑다. 치앙마이는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새로운 도시」라는 뜻의 치앙마이는 13세기 말 멩라이 대왕이 도읍을 정해 태국 북부지방의 중심도시 역할을 해왔지만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현대식 건물 공사가 아직도 한창이다. 그러나 태국에서도 으뜸가는 미인이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곳 답게 수줍음과 상냥한 태도가 이방인을 즐겁게 한다. 방콕의 로즈가든에서 민속쇼와 함께 코끼리쇼를 즐길수 있다면 치앙마이는 코끼리를 직접 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치앙마이의 여행사는 미니버스로 북쪽으로 1시간(60㎞)거리에 있는 치앙다오의 한 코끼리 훈련장으로 안내한다.이곳에서 태국인의 생활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코끼리를 능수능란하게 부리는 모습을 구경한 뒤 코끼리 등에 올려놓은 나무의자에 몸을 싣고 정글여행을 떠난다.사람의 보통 걸음 보다 느린 속도로 좁은 산길을 또는 개울물을 거슬러 깊은 산속을 돌아 다니다 보면 옛날 사냥길에 오른 태국 왕족이나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는 한니발 장군의 행렬을 연상케 한다.나무의자에 등이 결리는 불편을 빼면 코끼리 걸음에 따라 흔들리며 주는 자극이 짜릿하다. 1시간여의 코끼리여행이 끝나면 다시 산길을 20분 정도 걸어 「리수」족 부락을 찾아보게 된다.부족사람들의 생김새만 빼면 마을 입구에서 노니는 닭들과 초가지붕,우리없이 키우는 돼지와 개가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자는 모습이 한국의 어느 산골 마을과 다를게 없을 정도로 눈에 익다. 이어 미얀마에서 발원하여 방콕까지 흐른다는 메이핑강을 따라 뗏목여행도 즐길 수 있다.어른 종아리 굵기의 대나무 15개를 엮어 만든 길이 18m의 뗏목은 앞뒤에서 사공 2명이 삿대를 저어 약 5㎞(40분)를 흘러내려온다.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강 양쪽에 펼쳐지는 풍광을 한가롭게 즐길수 있는 여유를갖게 된다. 도착지점에서 기다린 여행사버스가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화원과 나비농장에 들러 구경과 함께 수제품 구입을 권유한다. 치앙마이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직접 현지 여행사를 통해 자기 시간에 알맞는 코스를 선택,국적이 서로 다른 외국인 대여섯명을 벗삼아 하루를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하루코스 여행요금은 8백50바트(2만6천원).
  •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패배 항의(조약돌)

    ◎LG팬들 오물투척·롯데팬 폭행 ○…10일 하오 8시40분쯤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정문앞에서 LG트윈스와 롯데자이언츠의 코리안시리즈 진출전에서 LG가 패배,탈락하자 이에 흥분한 LG팬 4백여명이 이광환 LG감독에게 패인 해명을 요구하고 심판들의 판정이 잘못됐다며 30여분동안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롯데 팬 1명이 LG팬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오른쪽 눈가장자리가 1㎝가량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LG팬들은 야구장 정문앞 도로를 점거 『LG』 『LG』를 연호하다 9시45분쯤 자진해산했다.이 때문에 잠실야구장 주변의 교통이 2시간여동안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이에 앞서 일부 LG팬들은 LG의 패색이 짙어지자 운동장안으로 빈 깡통등 오물을 던지며 소란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현장에서 소란을 피운 LG팬 7명을 연행,조사한뒤 훈방했다.
  • 「백화점 붕괴」 거짓 신고/소방관 등 긴급출동 소동(조약돌)

    ○…8일 하오 7시쯤 인천 부평경찰서 상황실에 자신을 설계사라고 밝힌 한 남자로부터 『현대백화점 옹벽에 7∼8㎝의 균열이 발생해 건물이 기울고 있으니 손님들을 긴급 대피시키라』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관,경찰관,공무원들이 긴급 출동하는 등 한때 소란.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소방본부와 시청 등에 이를 통보해 인근 북부소방서에서 소방차 4대와 소방관이 긴급 출동해 안전점검을 벌이는 등 법석을 떤 것. 경찰은 관계기관의 정밀 조사결과 이 백화점에는 옹벽이 없으며 두달전 관할구청으로부터 건물 안전진단을 받아 이상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장난전화에 의한 해프닝으로 결론.
  • 5·18/송복 연대 교수·정치사회학(서울광장)

    「5·18」은 우리 현대사의 아킬레스건이다.누가 집권을 하고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위기의 소지는 결코 가시지 않을 것이고,그로 하여 정치는 내내 진통을 겪을 것이다. 「5·18유혈참극」이 있은 8년후 이 비극적 역사를 캐내는 「5공 청문회」가 열렸고 그리고 4년후 대통령선거 때엔 김대중 후보의 「국민대화합」선언도 있었고,그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에 묻자」는 스테이트먼트도 있었다.그러나 잊을만 하면 다시 상기되고 잊을만 하면 다시 들고 일어나는 것이 「5·18비극」이다. 우리는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도 했고 「민족중흥」이라고 할만큼 새로운 역사도 일으켰다.공산주의 콤플렉스,적화통일의 위협에서도 상당한 정도 벗어났고,드디어는 자유민주주의의 빛나는 승리,흡수통일의 위업을 이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졌다.그러나 이 「5·18」의 비극은 그대로 남아 있다.그 참극을 당한 사람들의 그때 그 상처의 치유는 커녕 그 아픔조차도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 야당에서 주장하는 대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면 그때 그진실이 밝혀지고 그 아픔이 줄어들 수 있을까.「5공 청문회」에서처럼 제대로 규명되는 것은 없이 세상만 더없이 소란해지고,정치만 더욱 혼란해지고,이 세계화시대 나라의 위신만 천인단애로 추락하는 것이 아닐까.그리고 다시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미상불 그렇게 될 것이다.그것이 우리가 겪어온 역사다.우리 역사 뿐아니라 총체적으로 인간의 역사 자체가 개인의 아픔과 관계없이 흘러가고 또 흘러왔다.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에서 개인의 선과 역사의 선을 구분하고 있다.개인에게 있어 선이 역사에서는 얼마든지 악이 될 수 있고,개인에게 있어 악이 역사에서는 얼마든지 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늘상 쓰는 「역사적 행위」라는 말은 그의 이같은 개인 선과 역사 선의 분리에서 나왔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며 늘 개탄하는 것은 역사의 현실과 인간의 가치가 이렇게 서로 분리돼 있다는 것이다.역사의 현실은 선한 자의 편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사람들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며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어느 역사든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 시대,그 사회의 가치지향적 인간들이다.그러나 그 인간들이 만드는 그 역사는 그 인간들이 바라는 가치대로 진행돼 가지 않는다.사람들은 누구나 「역사의 정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절규한다.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 정신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운다.그러나 그 역사는 그 역사의 논리대로 움직여갈 뿐이다.역사는 오직 역사의 현실이 있을 뿐이다. 조선조 5백년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전반에서 가장 정통성 없는 왕은 수양대군 세조라 할 수 있다.세조만큼 가장 명분없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무고한 생명을 희생해가며 왕의 자리에 앉은 군주는 없다.그의 치적도 부왕 세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그렇게 왕위에 앉고도 재위기간은 13년에 지나지 않는다.그런데도 그의 시호는 아버지 「세종」보다 더 위업을 드러내는 「세조」가 돼 있다.시호는 왕이 죽은 뒤 그의 공덕을 높이 받들어 바치는 이름이다.그 이름이 부왕보다 더 위대했다.그리고 그의 사후 조선조 20대 왕들은 모두 그의 자손들이다. 조선조의 의기로운 남아들이 그냥 넘어갈리가 없다.세조가 죽은 30년 뒤 그의 부당한 왕위찬탈을 고발하는 글을 사초에 올렸다 하여 또 한 차례 값진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비극이 있었다.그것이 역사에서 말하는 무오사화다.그럼에도 오늘날 국민학교 학생들의 역사교과서에까지 세조는 좋은 임금으로 칭송돼 있고,「성공한 쿠데타」는 「성공한 사례」로 그려져 있다. 사마천은 그의 명저 사기열전 제1권 백이편에 이렇게 「역사」를 혹평하고 있다.『사람들은 하늘은 선한 자의 편에 선다고 말한다.그런데 행동이 궤도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고(조행불궤),세상에서 해서는 안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데도(전범기위),일생이 편안하고 부는 자손대대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가더라(이종신일락 부후루세불절).반대로 땅도 골라서 밟고(택지이도),꼭 때맞춰 발언을 하고,공정한 일이 아니면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데도(시연후출언 비공정불발분),재앙을 만나 죽는 자 그 수는 헤일 수가 없더라(이우화재자 불가승수).도대체 이놈의 세상,천도가 있느냐 없느냐(당소위천도시야 비야)』 역사란그런 것인가. 2천년전이나 이제나 하나도 다름이 없다. 역사적 허무주의가 우리의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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