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소란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숙면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넥센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점사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지방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45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었는가 하면,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예언도 있었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서로 교대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예언이 역사상 한꺼번에 존재한 적은 오히려 드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나타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언이 혼합되기도 했다. 역사상 존재한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실개천들에 비유된다.‘정감록’은 그 냇물들이 한데 모여들어 이뤄낸 호수라고 볼 수 있다.18세기 전반, 조선 영조 때 역사의 무대 위로 처음으로 등장한 ‘정감록’은 지난 200∼300년 동안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제 ‘정감록’은 민간에 유행하는 예언서를 모두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정감과 이심 및 이연 등 3인의 대화다. 이를 ‘감결’이라고도 하는데 이본이 많다. 길이가 가장 짧은 한글 본은 약 2430자, 가장 긴 한문본은 6030여자나 된다.‘정감록’에는 ‘감결’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예언서가 속해 있다.‘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화악노정기(華岳路程記)’,‘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무학비결(無學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징비기(徵秘記)’,‘토정가장비결(土亭家藏秘訣)’,‘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삼도봉시(三道峰詩)’,‘옥룡자기(玉龍子記)’ 등이 그것이다. ‘정감록’이 예언서의 집성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국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그 이름 아래 묶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러 예언서에서 탐지되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정감록’에 살아있어서다. ●삼국통일 무렵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돼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언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예언서가 출현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성스러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을 따름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신라의 탈해왕과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왕의 등극을 알리는 설화가 나온다. 이처럼 위인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나 태몽 등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는 물론이고, 서양 고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웃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들은 이상한 동물의 출현과 예외적인 천문현상 및 자연계의 이변을 정치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삼국사기’ 등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수백 군데나 있다. 고대 한국에는 국가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자명고 같은 물건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신기한 피리도 있어, 불기만 하면 적군이 저절로 물러나고 질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말인 7세기 후반이다.“백제는 달 바퀴와(月輪)와 같고 신라는 초승달(月新)과 같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리란 정치적 예언인데, 이런 내용이 거북 등에 적힌 채 백제의 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짤막한 문장은 한국 최초의 정치적 예언서였다. 이것이 발견되고 얼마 안 돼서 이번엔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고려비기’가 발견되었다. 요컨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해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전해오던 예언이 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것은 외래문자인 한자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예언서는 길이가 극히 짧고 시적이었으며 비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말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예언서 역시 그랬다. 그는 “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시구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비유법이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특징이 10세기 초 철원에서 나온 ‘고경참’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140여자로 구성된 ‘고경참’은 왕건이 궁예를 꺾고 개성에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고려는 12대 360년간 유지된다고 예언되었다. 이 예언서는 단군신화나 주몽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왕건 같은 ‘성인’이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점에서 ‘정감록’의 원형이다. 고려의 국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관한 점에서도 ‘정감록’의 선구가 된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언한 글이 많이 등장했다. 풍수설은 ‘정감록’의 경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미래의 수도를 계룡산, 가야산, 전주 및 개성으로 예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풍수설에 기초한 것이다. 아울러 십승지설을 비롯해 전국의 길지를 따져본 것도 풍수설의 영향이다. 풍수설을 대표하는 고려의 예언서로는 도선(道詵·827∼898)의 저술로 알려진 몇 가지가 있다. 아울러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하는 것이 또 있다.‘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예언가 신지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 도선의 저술이라고 알려진 예언서들도 위작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도선은 풍수설의 대가였다. 다만 고려태조와 가까운 사이였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태조와 긴밀했던 것은 그의 제자 경보(慶甫·868∼948)였고, 그로 인해 역사책에는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가 과장되었다. 11세기 중엽, 고려 문종 때부터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널리 유행했다. 땅 기운은 일정하지 않아 때로 약해지나 적절한 방법을 쓰면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수도 이전 논의가 활발했다. 처음에는 평양이 길지로 각광을 받았지만,13세기 고종 때부터 한양이 길지로 떠올랐다.14세기에는 한양천도가 기정사실로 취급될 정도였다.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론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당시 천도론을 이끈 예언서는 도선의 저술이라 하는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었다. 앞서 말한 ‘신지비사’는 논쟁에서 보조기능을 담당하였다. 아직 예언서 형태로 자리매김된 것은 아니나 7세기 후반 고구려에서도 풍수설이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당나라가 파견한 도사(道士)들이 풍수설을 이용해 고구려의 국운을 연장시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도사들은 평양에 새로 성을 쌓거나 바위를 부숨으로써 고구려의 국운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고구려에 수입된 풍수설은 점차 부동의 위치를 확립했고, 도선과 그 제자들의 손을 거쳐 고려 이후 줄곧 예언서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정감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천 후천설 고려 때는 점성술에 입각한 예언서도 유행했다. 고려 인종이 즐겨 인용한 ‘고현유훈(古賢遺訓)’을 이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거기에는 머지않아 역사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정감록’에 암시된 선천과 후천의 교대설은 그 싹이 바로 ‘고현유훈’에 있었다.‘고현’이란 옛날의 현인 즉, 과거의 뛰어난 예언가다. 여기서 말하는 ‘고현’은 특히 천문과 역법에 밝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이렇게 주장돼 있다 한다.“천지가 생긴 지 수만 년이 지나면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는 때를 만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 화 목 금 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에 모여들 것이다. 이를 상원(上元)으로 삼고, 이 날로 달력의 기원을 삼아야 된다. 이때 천지가 열리고 성인(聖人)의 도가 행해질 것이다.” 당시 인종은 묘청과 백수한 등 예언전문가들에게 정치를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했다. 왕은 묘청의 권유로 ‘고현유훈’을 읽어 보았음 직한데 특정한 날이 되면 역사의 무대가 새로 펼쳐져 이상정치가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체의 운행을 인간사회의 변화에 직결시킨 점에서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관념은 19세기말까지도 민간에 널리 통했다. ‘고현유훈’의 기초가 되는 점성술은 운수설과 결합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역사에는 아홉 번에 걸쳐 새 왕조가 등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예언서도 나왔다. 조선 초기 식자층이 읽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그런 식의 책이다.‘정감록’에도 역대 왕조의 운수가 밝혀져 있고, 계룡산시대 이후의 도읍지가 예언돼 있다. 그와 동시에, 머지않아 선천이 끝나고 후천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꿈이 깃들어 있다. ●미륵하생설 선천 후천설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편 것이 미륵하생설(彌勒下生說)이다.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연다는 믿음이 한국에는 널리 유행했다.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미 죽은 지 천년도 더 된 궁예를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륵불로 믿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궁예 미륵상이나 경기도 안성시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은 민간의 신앙 대상이다. 고려 말에 경상도 고성 출신 이금은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했다. 그는 다가올 미륵 세상의 모습을,“내가 조화를 부리면 풀에서 파란 꽃이 피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씨앗을 뿌려서 두 번 거두게 되리라.”고 묘사하였다.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예언한 점에서 그의 설명은 ‘미륵하생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따랐다 한다. 이금을 추종하는 신앙 집단은 우선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고위관리들까지 신도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이금 일파가 송두리째 제거되었다. 그 뒤에도 자칭 미륵불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려 우왕 때 개성에서 미륵불을 일컫는 승려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미륵불로 믿고 쌀과 베를 앞다퉈 바쳤다. 사노(私奴) 무적도 미륵불의 화신이라 주장하다 관헌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거듭된 왜구의 침입과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말세 의식이 만연해, 어서 미륵불이 내려와 이상세계를 펼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자칭 미륵이 속속 등장했다.17세기 후반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은 미륵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아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그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환은 추종자 11명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여환이 사라진 뒤에도 미륵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영조39년(1763) 10월2일자 ‘실록’을 보더라도,“지난번 황해도에서 미륵불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에 어사(御史)를 보내 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19세기 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자신을 천자 미륵이라고 일컬었다. 임종 때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까지 했다. 자칭 미륵불들은 다들 그 나름으로 예언을 일삼았는데, 강일순은 다가올 미륵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100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른다.” 이러한 견해는 ‘미륵하생경’과 대체로 일치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고 믿는 미륵하생신앙은 고대 중국과 티베트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금강산을 법기도량(法起道場)으로 믿어, 내세불인 미륵불이 반드시 한국에 출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예부터 예언서나 도참(圖讖) 또는 노래를 빌려 이 점이 늘 강조됐다. 자연히 ‘정감록’에도 미륵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불법이 다시 부흥하리라는 예언을 낳았다. ●정성진인 또는 해도진인설 조선후기 예언서에서 미륵은 진인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로 진인은 미륵세상을 맞이할 세속군주 전륜성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승려 여환 사건 때도 이미 ‘정성인(鄭聖人)’이 등장한다.18세기부터는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 때마다 ‘진인(眞人)’이 거의 늘 등장했다. 이지서의 괘서 사건에서도 그랬고,19세기 초 서북인의 차별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홍경래의 난 때도 진인이 언급됐다. 진인은 ‘정감록’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새 세상을 열 미래의 왕이 다름 아닌 ‘정성진인(鄭姓眞人)’이거나 ‘해도진인(海島眞人)’이었다. 그 성씨가 정이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섬에 숨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감록’을 가탁한 민중운동은 갈수록 증가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민란이나 그때 창궐했던 화적들은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다)”을 구호삼아 외치는 형편이었다. 도적의 우두머리도 진인을 자처하였다. 진인의 시대가 열리고 보니, 그의 사주(四柱)까지 조작되었다. 진인은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난다. 그의 사주는 뱀이 변하여 용(龍)이 되는 것이라 크게 길하다 했다. ●‘정감록’의 질적 변화 조선후기부터 ‘정감록’에 약속된 새 날의 도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곧 진인이 섬에서 나와 계룡산에 천도할 줄로 철석같이 믿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정감록’ 신앙의 영향 아래 여러 신종교가 출범했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개중에는 민중의 금전과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사교 집단도 비일비재했다. 사교 집단은 ‘정감록’을 빙자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일부 신종교에서는 ‘정감록’ 해석에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정성진인이 오기만 기다리며 계룡산에 들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정감록’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했다.“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개조(開祖) 소태산 대종사의 말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정성진인은 실상 정법(正法)일 뿐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소태산은 앞서 도적들이 되뇌던 ‘정감록’의 한 구절 “이재궁궁”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는다.“세상에는 구구한 해석이 많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도덕의 본원을 밝힘이라.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실천하여 남과 다투지 않고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상 숱하게 많았던 예언서들이 ‘정감록’ 호수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거칠고 아득했다.‘정감록’이 도달한 종점엔 천만다행으로 살벌한 투쟁이 아닌 상생(相生)이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교장이 ‘노령교사’ 학생앞서 폭행

    초등학교 교장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교사를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해 물의를 빚고 있다. 28일 전북 익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전 11시쯤 익산 모초등학교 3층 복도에서 박모(55) 교장이 권모(59) 교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했다. 박 교장은 도서관 개관행사를 감독하다 수업 중이던 권 교사에게 ‘마이크를 가져오라.’고 지시했으나 권 교사가 수업 중이라며 이행하지 않자 복도로 불러내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는 등 소란을 피운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박 교장은 권 교사를 교장실로 끌고가 허벅지를 발로 밟고 두 손으로 멱살을 잡는 등 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소란을 피워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박 교장은 “마이크를 가져오라고 하자 권 교사가 세 차례나 귀찮게 한다며 욕설을 해 서로 옷깃을 잡고 실랑이를 했을 뿐이며 허벅지를 발로 밟는 등 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전교조 전북지부는 성명을 내고 “교장이 교사를 폭행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교단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철저한 감사를 실시하고 폭행 당사자를 중징계하라.”고 요구했다.익산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길섶에서] 적막한 결혼식장/신연숙 논설실장

    옛날 결혼식장은 소란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의 이야기꽃과 신랑신부 친구들의 흥분어린 웅성댐,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의 수선이 있었다. 시간 대마다 다른 예식이 있는 탓에 진행을 서두르는 것도 소란의 한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도떼기시장 같은 예식장보다는 차라리 경건한 성당 결혼식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혼식장 풍경이 점차 달라져가고 있다. 예의 시끌벅적거림이 없어졌고 어린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아마도 식사대접이 허용되고 호화스러운 호텔까지 예식업에 나서면서부터가 아닐까 한다. 호텔 등 결혼식장의 식사 비용은 1인당 수만원. 식사비까지 감안해 부조금을 챙겨야 하다 보니 ‘봉투’부담이 훌쩍 늘었다. 아이들은 아예 하객 대열에서 제외되기 일쑤고 본인도 봉투만 보내거나, 참석하더라도 눈도장만 찍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다 보니 어떤 결혼식장은 성장(盛裝)한 어른 하객들만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적막한 모습이다. 마치 국빈만찬장을 보는 것 같다. 얼굴 들이밀기도 부담스러운 요즘 결혼식장 보다는 차라리 도떼기시장 같은 옛날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든다. 신연숙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홍석현씨 “8년전 일이라…”

    홍석현씨 “8년전 일이라…”

    안기부와 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16일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 참여연대가 고발한 홍석현 전 주미대사를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밤늦게까지 조사했다. 홍씨는 13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이날 오후 11시쯤 귀가했으나,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홍씨를 상대로 삼성이 1997년 여야 대선후보측에 불법 자금을 제공할 때 ‘전달책’ 역할을 했는지, 같은 해 추석을 앞두고 동생인 홍석조 광주고검장을 통해 검찰 간부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는지 조사했다. 검찰은 특히 홍씨가 전달한 정치자금의 규모 및 자형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시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또 홍씨가 당시 30억원을 대선후보에게 전달하지 않고 보관하다가 99년 보광그룹 탈세사건 수사 때 적발됐다는 의혹도 캐물었다. 또 전·현직 검찰 인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내용과 기아자동차 인수 로비 의혹 등에 대해서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홍씨는 “8년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며 대부분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홍씨는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 출두,“검찰에서 상세히 말하겠다.”고 짧게 말했다. 홍씨의 검찰 출석은 99년 9월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구속된 이후 6년여 만이다. 홍씨가 서초동 검찰청사에 모습을 드러내자 민주노동당과 X파일 공대위 소속 7∼8명이 홍씨를 에워싸고 “이건희를 구속하라. 홍석현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홍석현을 구속 처벌하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이 회장과 홍씨의 얼굴인형까지 동원한 이들의 기습시위에 당황한 홍씨는 청사 입구로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고 홍씨를 따라 청사 안으로 들어가려던 시위대와 몸싸움을 벌이는 등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검찰은 전날 구속수감된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을 상대로 도청 대상이었던 정·관·재·언론계 등 주요인사 1800여명의 구체적 신원을 캐고 있다. 검찰은 김대중(DJ) 정부 당시 김영삼(YS) 전 대통령 등 정계 주요인사와 여야 국회의원 299명 전원, 차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과 재경·통일안보·사회 관련 부처의 정책수립 담당 국장, 언론사 국장급 이상 주요 간부,30대그룹 사장 및 회장, 재야 및 시민사회단체 간부 등이 도청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이 도청정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DJ를 비롯한 정권 실세들에게도 도청 정보가 보고됐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김효섭 박지윤기자 newworld@seoul.co.kr
  • 짝사랑 9년 감방인들 어떠리

    짝사랑 9년 감방인들 어떠리

    짝사랑 9년 - . 그 짝사랑 때문에 가정도 직장도 잃고 유치장만 12번을 드나든 사나이. 그러고도 조금도 굽힐 줄 모르는 집념이 있다. 이 한 많은 짝사랑의 주인공 권기성(35)씨가 3월 20일 하오 서울 종로경찰서 보호실에 들어서자 낯익은 담당순경은 한번 씩 웃고 나서 물어볼 필요도 없이 권씨의 조서에「추수(追隨), 불안감을 조성한 혐의」란 죄명을 달았고 권씨도 자주 있었던 절차라 이의를 붙이지 않았다. 죽도록 좋아하는 여자를 따라다니다 결과적으로 그 여자를 괴롭힌 권씨는 이런 간단한 절차를 밟아 또 10일간의 구류 처분을 받은 것. 권씨의 이 끈질긴 짝사랑 9년의 내력을 살펴보자. 권씨의 고향은 충남 당진군 신평면 신송리.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권씨가 돈벌이를 하러 결혼한 지 4개월 된 부인 손(孫)모(34)여인과 함께 서울에 온 것이 지난 612년 초가을이다. 직장도 없이 셋방을 얻어 어려운 생활을 하던 권씨는 그 해 11월 다행히「국졸」이란 학력 덕으로 고향 선배의 소개를 받아 창신시장 경비원으로 취직이 됐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장 구석구석을 살펴야 했던 권씨는 취직 한 달만인 그 해 12월 초 어느 날 시장 안 M미장원 앞을 지나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M미장원에 새로 온 미용사 이(李)모(28·당시 20)양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그날부터 권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미장원 앞을 서성거렸고 이양이 출·퇴근할 때면 멀리서 속을 태웠다. 그 뒤 1년 동안 권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미장원을 쳐다보는 일로 일과를 삼았다. 그러다 참다 못하면 미장원 안으로 뛰어들어 하소연도 해보고 퇴근길엔 따라가 통사정도 해보았으나 이양의 반응은 언제나 냉담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처녀, 첫눈에 반해 참을 수 없이 이러다 보니 좁은 시장 안은 매일같이 권씨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권씨가 이를 알게 된 부인과 시비가 잦았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시장조합에는 마음을 물리겠다는 각서를 세 번이나 써야 했다. 권씨가 맨 처음 유치장 신세를 진 것은 62년「크리스마스」. 권씨는 이날 담판을 질 셈으로 M미장원 안으로 뛰어들었다. 권씨의 이 대담한 공격에 놀란 것은 이양뿐 아니라 꽉 찬 손님들과 미장원「마담」. 권씨는 잠시 뒤 달려온 백차에 실려 동대문서 유치장으로 직행했다. 그 뒤 1주일 만에 유치장을 나온 권씨는 갈 곳이 없었다. 직장에선 해임통보가 와 있었고 그간 들어가지 않던 집엔 들어갈 체면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양의 태도가 변할 리는 만무였다. 그러나 권씨의 일편단심(?)은 조금도 흔들릴 수 없었다. 이양은 그의 모든 것이었으며 먼 발치로나마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권씨는 M미장원에서 가까운 일터를 찾아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런 생활이 4년을 계속되는 동안 권씨는 인천에서 모 대학에 다닌다는 이양의 남동생을 찾아가기도 했고 이양의 고향인 온양에 가 이양의 부모를 만나도 보았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67년 7월 이양이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다. 알고 보니 미장원 N마담과의 친분 때문에 권씨의 시달림 속에서도 자리를 옮기지 못했던 이양이 견디다 못해 훌쩍 떠나 버렸던 것이다. 권씨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다. 시름 속에 며칠을 보낸 권씨는 이양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 수소문 끝에 있을 법한 부산, 온양 등지를 수없이 뒤졌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 68년 3월 그간 항상 마음에 걸리던 부인과의 이혼수속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이양을 찾는 작업을 계속했다. 권씨의 판단으로는 이양이 서울에 있을 것 같았고 있을 곳은 미장원일 터이니 화장품 외무사원을 하며 서울의 모든 미장원을 뒤져보기로 했다. 권씨의 판단은 적중했다. 화장품 등을 메고 골목골목의 미장원을 하나도 빼지 않고 찾아 다니던 권씨는 이양이 M미장원을 떠난 지 7개월, 외무사원 2개월 만인 그 해 10일 단성사 옆 N미장원에서 이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권씨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 아가씨가 “미친놈” 욕해도 유치장 나가면 또 찾겠다 권씨는 그 길로 회사로 달려가 사표를 내고 이양을 달랬다. 그러나 이양의 태도는 예나 그때나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그래 권씨는 실의에 빠져 자살할 생각까지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이양은 권씨를 피해 직장을 자주 옮겼으나 권씨의 집념은 끈질긴 것이어서 그때마다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러다 보니 권씨가 구경한 유치장도 여러 곳이 됐다. 동대문서, 성동서, 종로서… 이렇게 다채로웠다. 이양은 여러 곳을 옮겨 보았으나 피할 길이 없다고 체념했던지 지금 있는 종로구 청진동 Y미장원에 와서는 그대로 머물러 버렸다. 권씨는 여전히 Y미장원을 찾아 다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미장원 잎에 서있다가 이양이 나타나면 따라 나섰다. 이양은 꼼짝할 수가 없었고 때로는 미장원 안까지 들어와 소란을 피우니 그런 때는 경찰의 힘을 빌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3월 20일에도 권씨는 아침부터 Y미장원 앞을 서성거렸다. 참다 못한 권씨는 이날 하오 3시쯤 미장원으로 뛰어올라가 담판을 내자고 소란을 피웠다. 이럴 때마다 놀란 것은 손님들. 주인「마담」은 112의「다이얼」을 돌려야 했다. 이렇게 해서 권씨가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것은 이양을 알고 이번까지 12번. Y미장원 관할서인 종로서엔 이번까지 8번이 된다. 이렇게 돼서 관할 청진동 파출소는 말할 것도 없고 본서 보안과 경찰관들과 권씨는 낯익은 구면이 되어 버렸다. 이 끈질긴 사나이 권씨는 경찰서 유치장 문을 12번째 들어서면서도『저 사람이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디 이럴 수가 있느냐』는 이양의 말에는 아랑곳없이『나가면 또 찾아가겠다』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임춘웅(林春雄)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3/30 제2권 13호 통권 제27호 ]
  • 불타오르는 파리

    TEXT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 소요사태가 열흘째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파리 시내 중심가에까지 차량 방화가 발생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이다.●화염병 제조 공장 급습 그동안 비교적 치안이 확립된 것으로 평가받던 파리 중심가에서도 5일 밤과 6일 새벽 사이 32대의 차량에 방화가 일어났다. 범행 후 도주하는 스쿠터 운전자를 추적하기 위해 경찰 헬기가 밤새 서치라이트와 카메라를 비추었다. 파리 동부와 북부를 오가는 야간버스도 방화를 우려해 운행을 중단했다. 파리 서쪽 100㎞의 에브뢰에서는 청년들이 쇼핑센터 주차장에 불을 질러 차량 50대가 한꺼번에 탔으며 우체국과 보육학교 등 대형 건물도 표적이 되고 있다. 프랑스 북부 릴, 북서부의 루앙, 남서부의 툴루즈 등 모방 폭동이 잇따르면서 이날 밤에만 전국의 차량 1300여대가 화염병 투척 등에 불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로써 지난달 27일 촉발된 파리 교외의 무슬림 소요사태로 인해 지금까지 차량 3500여대가 불타고 800여명이 경찰에 검거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경찰은 에브뢰 지역에서 화염병 제조 공장을 발견해 150개의 완성된 화염병과 100개의 빈병, 수십 ℓ의 휘발유, 폭동자들이 쓰는 복면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미성년자 6명을 체포한 경찰은 “꼬마들이 화장실에서 만든 게 아니다.”며 ‘조직적 범죄’임을 강조했다. 아직까지 프랑스 거주 한국 교민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주프랑스 대사관은 교민들에게 안전에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번 사태가 무슬림(이슬람 교도) 빈민 거주지가 있는 다른 유럽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각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지낸 이탈리아 야당 지도자 로마노 프로디는 5일 “우리가 파리와 다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사회 및 주택 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파리와 같은 많은 소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각국 신문들도 무슬림 폭동이 국경을 넘어 확산될 것을 우려하면서 프랑스의 무슬림 통합정책 실패를 지적했다. 스페인의 자유주의 성향 일간지인 라 반구아르디아는 “프랑스의 ‘가을 폭풍우’가 ‘유럽의 겨울’을 예고하는 전주곡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대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사태가 격화되자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관과 러시아 대사관은 자국 여행객들에게 소요 지역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시라크 대통령 특별 안보회의 소집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이번 소요사태와 관련해 특별 안보 회의를 소집했다. 앞서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5일 정부 비상회의를 소집해 단호히 대처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검찰은 폭동 참가자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을 통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악의 폭동 지역 중 하나인 올네-수-부아에서는 5일 아침 1000여명이 거리로 몰려 나와 ‘폭력은 그만’을 외치며 침묵 시위를 벌였다.lotus@seoul.co.kr
  • [무슨 영화 볼까]

    [무슨 영화 볼까]

    ● 월래스와…(4일 개봉) 장르/등급 애니메이션/전체 감독/배우 닉 파크/ 피터 샐리스·랄프 파인즈 줄거리 ‘월래스’와 보좌견 ‘그로밋’이 도시를 위협하는 거대 토끼의 저주에 맞서 벌이는 수사극. 20자평 애니메이션도 음식 처럼 ‘손맛’이 들어가면 감칠맛이 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 ● 유령신부(3일 개봉) 장르/등급 애니메이션/전체 감독/배우 팀 버튼/조니 뎁·헬레나 본햄 카터(목소리) 줄거리 실수로 유령에게 결혼반지를 끼워버린 남자. 삼각관계 통한 사랑찾기. 20자평 인간 동선 재현한 ‘환상만점’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꽃피는 팀 버튼식 상상력. ● 사랑해,말순씨(3일 개봉) 장르/등급 드라마/12세 감독/배우 박흥식/문소리·이재응·박유선 줄거리 소란했던 80년대를 살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통. 그를 통해 웅변되는 가족애. 20자평 모성(母性)을 향한 아련한 기억 더듬기, 결정타 없이 잘게만 부서져 나열되는 에피소드.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장르/등급 드라마/15세 감독/배우 민규동/엄정화·황정민·임창정·김수로 줄거리 여섯 커플들에게 일어나는 일주일 동안의 아주 특별한 사랑이야기. 20자평 한국판 ‘러브 액추얼리’. 유머와 감동의 균형미, 안타깝게 중언부언 늘어지는 스토리. ● 야수와 미녀 장르/등급 로맨틱 드라마/12세 감독/배우 이계벽/류승범·신민아·김강우 줄거리 시력장애우 ‘여친’이 광명을 찾자, 외모 콤플렉스 걸린 ‘남친’이 펼치는 거짓말 퍼레이드. 20자평 남자 주인공의 외모에 시비 거는 영화가 또 있었던가? 참신한 소재, 지지부진한 드라마. ● 오로라 공주 장르/등급 스릴러/18세 감독/배우 방은진/엄정화·문성근·권오중 줄거리 딸아이의 죽음에 복수하는 처절한 모성애. 20자평 ‘배우 출신 감독’의 스크린 연착륙 데뷔작.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연출력, 숨겨진 1인치를 보여주는 엄정화의 연기력. ● 새드무비 장르/등급 멜로/15세 감독/배우 권종관/정우성·임수정·차태현·염정아 줄거리 이별 앞에서야 비로소 완전연소하는 4개의 사랑이야기. 20자평 ‘종합선물세트’.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전에 먼저 감정과잉된 스크린.
  • [오늘의 눈] 여당, 달라져야 한다/박준석 정치부 기자

    열린우리당의 내부 소란이 예사롭지 않다.10·26 재선거 패배 책임에서 비롯된 내홍이 지도부 사퇴를 넘어 친노-반노를 둘러싼 계파간 힘겨루기로 번졌다.‘탄핵’이니 ‘출당’이니 하는 극단적인 말까지 오간다. 새 지도부의 노력으로 갈등은 일단 진정국면으로 접어든 듯하지만 잠시 ‘잠수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의 눈에는 곱게 보일 리 없다.‘배부른 논쟁’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특히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한 정기국회 중임을 감안하면 그렇다. 물론 어느 집단이나 내홍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과연 집권 여당으로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내분을 겪은 적이 몇차례 있지만 이렇다 할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5월 4·30 재보선 패배와 실용-개혁 노선경쟁, 당·청 갈등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의원 워크숍이 열렸다. 당시 지도부는 ‘국민을 위해 집안싸움 그만하자.’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이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가기 위한 미봉책임이 바로 드러났다. 이후에도 계파나 개인간 노선경쟁, 당·청갈등은 여전했다.8월에도 또 한차례 워크숍이 열렸다. 대통령이 언급한 연정발언을 두고 시작된 당내 분란을 수습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이때도 ‘논쟁은 그만하고 민생에 주력하자.’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역시 연정에 대한 당내 논란은 계속됐고 당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이번만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추락하는 지지율은 이제 더 떨어질 데가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새 지도부의 역할도 크지만 현 시점에서 소속 의원 개개인의 태도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처럼 자기만 옳다고 외쳐대면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목소리와 몸을 낮추어야 한다. 또 하나 대권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장관의 복귀를 문제해결의 ‘만능열쇠’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의원들의 태도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누가 오더라도 집권당으로서의 제역할을 하기 힘들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제왕적 리더’가 아닌 ‘민주적 리더’를 원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박준석 정치부 기자 pjs@seoul.co.kr
  •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5)한국의 다법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5)한국의 다법

    “스님네가 찾아와서 조주 문을 두드리니/차 이름(茶松)이 부끄러워하며 뒤뜰로 모시네/해남 초의선사 동다송을 진작 읽고/당나라 육우의 다경도 보았네/정성을 다하여 경뢰소를 우려내/손님께 따르니 피어나는 차의 향기/질화로 위 동병 속에 찻물이 익고 나면/한 잔의 금설은 제호보다 낫다네” 다송자 보정 스님의 차시다. 다송자 보정 스님은 전남 순천 송광사로 출가해 80여 수의 차시를 남긴, 근대를 대표하는 차인이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선이다. 차 역시 마찬가지다. 한 잔의 차에는 우주를 그대로 담은 평상심이 깃들어 있고 그 차는 곧 선일 수 있는 것이다. 초의 스님은 자신이 주석하던 큰절 대흥사를 떠나 두륜산 중턱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일지암이다. 그런 소중한 일지암이 쇠락해지자 초의 스님 상좌와 더불어 그 초암을 복원한후 시 한 수를 읊었다. “연하가 난몰하는 옛 인연의 터에/스님 살림할 만큼 몇 칸집 지었네/못을 파서 달이 비치게 하고/간짓대 이어 백운천을 얻었네/다시 좋은 향과 약을 캤고/때로 원기로 묘련을 펴며/눈앞을 가린 꽃가지를 잘라버리니/좋은 산이 석양 노을에 저리도 많은 것을” 다도는 차를 마시는 정신적, 문화적 행위로 규정된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여러 대중들 앞에서 무대예술로 육법공양 등 의식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다법이란 차를 행하는 모든 행위의 총체적인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초의 스님의 다법은 검박한 살림살이 속에서 풍요롭고 맑은 마음자리를 품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초의 스님의 다법이 일상에 있어서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충만하게 하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도(道)요, 선(禪)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차를 끓이는 사람은 삿됨이 없어야 하고 중정을 지켜야 한다. 중정이란 곧 삶의 철학이다. 차를 끓일 때 물의 온도, 차의 양, 시간 등 그 어느것 하나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다법은 바로 중정의 묘리에 있다. 초의스님은 영혼을 일깨우는 도인의 찻자리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밝은 달 촛불이 되고 또 벗이 되니/흰 구름 자리되고 또 병풍이 되어주네/솔 솔 솔 찻물 끓는 소리 시원하고 고요하니/맑고 찬 기운 뼈에 스며 영혼을 일깨우네/오직 흰 구름 밝은 달 두벗을 삼으니/도인의 찻자리 이보다 빼어날 소냐” 참으로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이다. 솔 솔 솔 찻물 끓는 소리를 밝은 달과 흰 구름을 벗 삼아 들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삶의 여유가 바로 도인의 찻자리인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일깨우는 찻자리만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찻자리의 미덕은 어디에 있는가. 초의스님은 “손님이 많으면 소란스러우니 고상함을 찾을 수 없다. 홀로 마시면 그윽하고, 둘이 마시면 빼어난 것이요, 셋은 멋이라 하고, 대여섯은 덤덤할 뿐이요, 일곱여덟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찻자리는 가능하면 사람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차가 갖고 있는 근본성질이 맑고 조용한 성품과 잘 조화가 됨을 의미한다. 명나라 도륭은 고반여사(考槃餘事)에서 “차를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이 좋다. 손님이 많으면 시끄럽다. 또한 소란스러우면 아취가 모자란다. 홀로 마시면 그윽하고, 둘이 마시면 빼어난 것이요, 서넛을 멋이라 하고, 대여섯은 덤덤할 뿐이요, 일곱여덟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며 차를 마실 때에는 가능한 한 담백한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반여사에서는 또 차를 마시는 행위를 덕을 쌓는 것과 비교하고 있다.“차는 행실이 바르고 덕을 닦은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음료다. 백석의 맑은 샘물을 길어 끓이는 절차를 법도에 맞게 하여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이 한결같이 계속하여 그 법식을 완전히 익히고 깊이 음미하여 정신이 융회하고 심취해서 제호나 감로에 비교할 만한 참다운 맛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다도를 훌륭하게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모처럼 좋은 차를 마시면서 그 사람 됨됨이가 미흡하다면 마치 좋은 샘물을 퍼서 잡초에 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보다 큰 죄가 없을 것이다. 차의 멋을 모르고 꿀꺽 단숨에 마셔 맛의 분간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 속될 수가 없다.”고 했다. 차는 무척이나 신령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 위에서 노니는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신령이라 함은 인간의 영혼을 맑고 담백하게 일깨운다는 것이다. 차는 인간을 위한 것이고 우리 모두를 위한 현재적 존재인 것이다. 차는 또한 적요(寂寥)한 것이다. 적요라는 것은 고요하고 그윽한 경지에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시대의 문화는 자유분방한 가치를 선호하며 율동과 리듬, 그리고 비트로 이어지는 동적인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인들은 참을 줄도, 기다릴 줄도 모른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가 돼버린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차는 우리들의 들뜬 문화를 가라앉힐 또 하나의 정적인 작용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도(茶道)의 정의는 명확한 것이 된다.‘다도’란 차나무를 재배하고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고 차를 마시고 찻자리를 정리하는 일체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다도를 좀더 압축적이고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차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닦는 행위로 요약해 볼 수가 있다. 장원은 ‘다록’에서 다도에 대해 “차를 정성들여 만들고 건조하게 저장하며 깨끗하게 우리면 다도를 다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도를 더욱 더 명쾌하게 정의해놓은 것이 바로 불가(佛家)의 다선일미(茶禪一味)다. 풀이해보자면 차와 수행은 하나라는 것이다. 차는 곧 진리요, 진리는 곧 차라는 뜻이기도 하다. 차를 통해 오묘한 진리 길에 다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다도와 다법은 구별되어진다. 다도란 특별한 격식이 없이 차를 통해 심신을 수련, 진리의 길에 이르는 것이고 다법(茶法)은 특별한 격식을 지킴으로써 찻자리의 예절을 전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조주스님의 수행법인 “차나 한잔 마시게,”와 초의스님의 ‘중정의 묘’는 다도의 진수가 어디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도는 있는가?´라는 물음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다. 대답은 ‘당연히 있다.’이다. 삼국의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도는 심신을 수양하는 한 방편으로 작용해온 것이다. 산과 들을 달리면서 활과 검을 쓰며 심신을 단련했던 화랑들도 차를 통해 그 정신세계를 고양시켰으며, 고려시대 스님들과 문인들은 “한잔의 차는 곧 참선의 시작”“차의 맛은 선의 맛”이라며 차를 진리를 고양시키는 도(道)의 동반자로 본 것이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다. 중정의 묘리를 강조했던 초의스님뿐만 아니라 추사 김정희도 “차를 끓여 마시는 것이 바로 도의 본체를 체득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차는 진리의 문을 여는 것과 같이 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전통의 다도는 ‘차와 진리는 하나’라고 정의해 볼 수 있다. 참으로 고아하고 높은 차의 품격과 일치하는 우리의 전통 다도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차를 높은 품격의 길로 이끄는 고아한 정신세계를 지녔다. 그런 점에서 차인들의 마음가짐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다. 차의 도가 진리의 길에 있다면 모든 사람을 융섭하는 화합과 자비의 마음이 깊어져야 한다. 차인들은 일상에서 차인으로서 도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그 차인의 찻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높은 품격의 향기를 품어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시대에는 우아하고 품격있는 행다법만이 존재한다. 자신의 인격을 고양시키고 수행하지 않는 차인들의 찻자리는 이제 반성되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차는 오감(五感)으로 마신다고 했다. 귀로는 찻물 끓는 소리를, 코로는 향기를, 눈으로는 다구와 차를, 입으로는 차맛을, 손으로는 찻잔의 감촉을 느끼라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차는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통해 그 맛과 향취를 즐겨야 한다. 그렇다면 행다법은 어디에 있는가. 행다법은 차를 잘 우려내고 차의 도리에 맞게 찻자리를 격식있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과도한 기교나 격식을 차리는 경향이 오늘의 행다에 있는 것은 어쩌면 차의 근본과 배치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다의 기본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차의 품성에 맞춰 차의 맛을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둘째,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하며 셋째, 차와 다구, 물과 불, 손님과 주인이 모두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하는 모든 행위를 통칭하는 행다는 차를 끓이는 전다법과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공다법(供茶法)이 있다. 공다법은 곧 다례(茶禮)로 볼 수 있다. 다례는 말 그대로 예절을 갖추어 차를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다. 다례는 그 목적에 따라 생활다례(生活茶禮), 접빈다례(接賓茶禮), 의식다례(儀式茶禮)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생활다례는 여러사람이 함께 둘러앉아 마시는 두리차, 혼자 마시는 명상차가 있다. 접빈다례에는 차우들이 함께하는 예다법(禮茶法)인 가회다례(嘉會茶禮), 또 존경하는 사람이나 윗사람에게 차를 올리는 공경다례(恭敬茶禮)가 있다. 의식다례에는 차례(茶禮), 추모헌다례(追慕獻茶禮), 잔치다례, 개천다례, 궁중다례(宮中茶禮)가 있다. 그리고 차의 종류와 행다하는 사람에 따라 잎차행다(葉茶行茶), 말차행다(末茶行茶), 선비차 행다 등이 있다. 다도와 행다의 근원에 대해 초의스님은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준다. “차를 딸 때는 그 현묘함을 다해야 하고, 만들 때는 그 정성을 다해야 하며, 물은 그 참물을 얻어야 하고, 달일 때는 그 중정(中正)을 얻어야 하며, 체(體)와 신(身)이 서로 어우러지면, 건(健)과 영(靈)을 함께 얻는 것이 다도(茶道)의 경지다.” 일지암 암주 ■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다도시연 모든 것은 근원으로 회귀한다. 생멸의 아름다운 공존은 우주만물의 삶을 각성하게 한다. 그래서 생멸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주는 또 하나의 화두 같은 것이다. 가을이 되면, 그리고 겨울이 되면 우리는 정신적인 공허에 시달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허한 영혼을 채우기 위해 이 세상 수많은 선지식들이 기록한 책을 찾는다. 책은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선지식(善知識)이다. 그 선지식의 바다를 헤매는 것만큼 즐거운 일상은 없다.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도서전에 초청을 받아 참여했다.57회째를 맞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도서전이다. 세계 110개국 30여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이번 도서전은 성황리에 열렸다. 우리나라는 그 도서전에서 주빈국이었다. 주빈국 오프닝 행사로 사단법인 초의차문화연구원의 선다도 시연이 열렸다. 주최측의 초청공연이었다. 세계 선종의 본산답게 주빈국 주요 책목록에는 ‘직지´, 서산선사의 ‘선가귀감´ 등 불교의 선에 관한 책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프닝 행사 시연자로 선 다도를 선택한 주최측의 초청에 따라 초의스님의 선다(禪茶)를 시연하게 된 것이다. 주제는 ‘차 한잔에 담긴 느림의 미학’이었다. 선다의 기본은 정(靜)과 적(寂)을 통한 동(動)으로 나아감이다. 그뿐만 아니다. 동은 곧 정과 적으로 부드럽고 원만한 순환을 통한 자연스러운 가라앉힘이다. 선다의 시연은 그런 점에서 정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나 30여만명이 참가한 북새통 같은 곳에서 더구나 작은 공간에서 선다를 시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대금소리로 자리를 잡았다. 느리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을 뿜어내는 대금은 혼란스러운 장내를 순간 가라앉혔다. 선다는 원래 특별한 무대장치가 필요없다. 선다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10폭 병풍을 두르고 하얀 백자 찻잔을 준비했다. 하얀 다포, 그리고 담백한 한복을 입은 시연자들의 모습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관객으로 불어났다. 티(tea)와 커피 그리고 포도주나 맥주를 선호하는 그들에게 조금은 번거로울 수 있는 다도 시연에 생경하기만 한 표정들이었다. 필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필자는 관람객들에게 “차 마시는 행위는 젠(禪)을 추구하는 것이다. 젠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 붓다가 깨달음을 추구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선다도는 자신의 내적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이요 화두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의 선 다도는 1300여년간 이어진 불교문화의 진수다. 차, 물 그리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 삶의 근원을 찾는 찻자리는 그런 점에서 번뇌에 빠져 자신을 놓쳐버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정신적인 양식이다. 좋은 찻잔에 좋은 마음으로 차를 담아 손님을 접대하는 행위를 통해 한국의 정서와 문화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선다 시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초의스님의 정신이 깃든 차인 ‘설아’차의 향기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푸른 옥색 같기도 하고 연한 연두색 같기도 한 영롱한 찻물이 작고 하얀 찻잔에 담겨 돌아가자 관람객들은 탄성을 그치지 못했다. 그들의 문화적 수준은 매우 높았다. 생활다도를 무대예술로 끌어올린 선다의 독특한 시연을 금방 배우고 익힌 것이다. 총 3차례 열린 이번 선다 시연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곳은 바로 독일 내 언론들이었다. 동양의 변방나라에 수천년에 걸친 문화의 향기가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그들의 눈에 선다 시연은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방송과 신문의 인터뷰와 카메라 세례는 한국불교의 문화, 한발짝 나아가 우리민족의 문화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 ‘사랑해 말순씨’ 남매 이재응·박유선

    새달 3일 개봉하는 문소리 주연의 ‘사랑해, 말순씨’(제작 블루스톰·M&F)는 박흥식 감독이 1980년께로 시계바늘을 돌려 만든 휴먼드라마다.‘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인어공주’를 연출한 감독의 범상찮은 감성이 여지없이 또 묻어났다. ●이재응, ‘효자동 이발사´ 등서 연기력 인정 하지만 뚜껑을 열고본 즉 이 영화는 문소리의 것이 아니다. 극중 그녀(김말순)가 남편 없이 혼자 키우는 남매, 광호와 혜숙이의 영화이다. 사춘기 중학생 아들과 엄마가 겪는 통과의례 같은 갈등의 에피소드들에 소란했던 현대사의 한 자락이 녹아든 영화에서 남매는 관객을 속수무책으로 울려버린다.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을 완벽하게 그려낸 광호 역의 이재응(14)은 ‘선생 김봉두’‘효자동 이발사’‘꽃피는 봄이 오면’ 등으로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얼굴. 혜숙 역의 박유선(6)은 500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이 영화로 데뷔하는 생초짜 신인이다. 시사회 다음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둘을 만났다. “소리엄마(문소리)를 또 만나서 행복했어요. 엄마와 티격태격하는 대목들은 어렵지 않았는데, 후반부 감정조절은 정말 어려웠어요.(엄마의 죽음 앞에서)너무너무 슬픈데도 펑펑 울어선 안 된다는 게 감독님 주문이었거든요.” ‘효자동 이발사’에서 문소리의 아들로 나온 이후로 재응이는 그녀를 ‘소리엄마’라 부른다.“너무 떨려서 기자시사회 시간을 어떻게 넘겼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씨익 웃는 모습은 그대로 수줍음 많은 사춘기 소년이다. ●박유선, 500대1 오디션 뚫은 ‘생초짜 신인´ 주인공을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스크린에 데뷔한 건 ‘로드무비(2002년)’. 극중 황정민의 아들로 얼굴을 비쳤다. 재응이를 아역스타로 띄워올린 건 ‘선생 김봉두’. 양은냄비의 라면을 선생님과 나눠먹던 천진한 강원도 산골아이 역할로 무공해 이미지는 단박에 날개를 달았다. 까무잡잡한 피부, 유난히 둥글고 선한 눈망울 덕분이기도 했을까.‘효자동 이발사’‘꽃피는 봄이 오면’ 등 따뜻한 휴먼드라마 쪽으로만 부지런히 불려다녔다. “이번 영화에선 제 얼굴이 나오지 않는 게 세 장면뿐이에요. 그걸 보고나선 연기가 더 두려워지는 거 있죠? 참 이상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땐 촬영현장이 놀이터 같았는데….” 그래도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는 자신있게 받아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았던 지난해는 중학교 1년생(현재 인천 연화중 2년).“극중 캐릭터와 똑같은 나이라 감정연기에 제대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촬영현장에서의 버팀목이자 제일 무서운 연기지도 선생님은 소리엄마였다.”며 “병든 엄마를 찾아간 외갓집에서 엄마랑 단둘이 처음으로 다정히 얘기하는 장면, 엄마가 떠나고 여동생과 함께 밥을 앉히는 장면 등이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고도 했다. ●“스릴러·공포물 도전해보고 싶어요” 현장 스태프들에게 ‘천재’소리를 듣는 재응이의 연기력은 어쩌면 타고났다. 옆에 있던 이모 매니저는 “꼬마적에 치마에 스타킹을 신고 다녀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소리 엄마’의 신뢰는 전폭적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망설이던 문소리는 재응의 캐스팅이 확정되자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재응이의 먼 꿈은 영화감독이다.“스릴러나 공포물에 도전해보고 싶고, 하지원 누나도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재응이와의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기자는 아차, 싶었다. 의자를 오르락내리락 천방지축인 여섯살 철부지를 어떻게 꼬드겨야 인터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넘칠락말락 하던 관객의 눈물샘을 기어이 흘러넘치게 만드는 암팡진 조연. 죽은 엄마의 옷을 끌어안고 “엄마냄새가 난다.”며 대성통곡하는 유선이의 막판 시퀀스는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한 방’이다. 화제의 그 장면을 어떻게 연기했는지, 그것만은 확인해야 했다.“소리엄마가요, 엄마가 죽었는데도 엉엉 울지도 못하면요, 진짜 엄마따라 집에 가야 된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마∼악 눈물이 나왔어요.” 몇달 연기학원 다닌 게 유선이 이력의 전부. 한글도 떼지 못했는데, 그 힘든 장면을 NG 한번에 통과했다. 유선이는 최근 크랭크인한 현빈 주연의 로맨틱 드라마 ‘백만장자의 첫사랑’에 또 캐스팅됐다. 아무래도 이 늦가을, 말순씨네 아이들이 극장가에서 일을 내지 싶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사랑해 말순씨’ 는 박흥식 감독의 감수성을 폐부깊이 공감해온 관객이라면 ‘사랑해, 말순씨’는 익숙해서 더 반가울 드라마다. 낡은 일상 속에서 툭툭 먼지를 털고 건져올린 남녀의 사랑이야기(‘나도 아내가’), 시간이 벌여놓은 가치관의 간극을 갈등하는 딸과 엄마의 가슴시린 이야기(‘인어공주’). 이번엔 아들이다, 열네살 여드름쟁이 중학생 소년.1980년을 배경으로 잡은 영화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을 빌려 얼룩진 현대사의 한 장을 복기해낸 요령 많은 휴먼드라마가 됐다. 중학교 1학년인 광호(이재응)는 화장품 냄새 때문에 “엄마냄새가 나지 않는” 화장품 외판원 엄마(문소리)가 창피하다며 늘 불만이다. 그런 엄마를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다섯살짜리 여동생 혜숙이(박유선)도 얄미워 죽겠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우디로 돈벌러간 남편 대신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말순씨’는 사춘기 아들의 억지투정을 웃음으로만 받아넘기는, 촌스럽고 무식하지만 푸근하고 인정많은 ‘동네 아줌마’다. 80년대를 추억하는 영화에는 이렇듯 특별한 기억은 없다. 아랫방에 세든 누나(윤진서)를 빙빙 맴돌다 몽정을 하고, 몰래 숨어서 도색잡지를 보고, 대화가 안 된다며 엄마에게 툴툴대는 주인공 광호는 모두의 사춘기 모습일 뿐이다. 골목길을 서성거리는 바보(TV ‘인간극장’에 소개된 다운증후군 소년 강민휘 분),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광주민주항쟁, 학원가를 떠돌았던 행운의 편지 등 지난 시대의 징표들이 추억의 화첩처럼 유쾌하고 잔잔하게 스크린을 채운다. 아버지의 부재, 모성을 향한 아련한 부채감 등 ‘인어공주’에서 보여준 감독의 감성이 시대상황을 재현해낸 디테일 풍부한 화면을 통해 큰 힘을 얻었다. 지나치게 잘게 부숴진 에피소드의 나열로 드라마의 힘을 맛볼 수 없다는 게 약점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공기업 취업 성공기] 계산문제 많은 전공시험 ‘손으로 풀기’ 연습을

    [공기업 취업 성공기] 계산문제 많은 전공시험 ‘손으로 풀기’ 연습을

    환경공학을 전공해 화학직군에 응시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인터넷으로 지원서를 작성하고 전공시험을 본다. 시험은 시사와 전공이며, 나는 전공시험으로 화학과 환경을 봤다. 시사는 인터넷과 신문·뉴스를 주로 이용했다. 일반적인 시사 책을 보는 것은 너무 지루하고 내지식이 돼주지 못한다. 전공했던 환경의 경우는 취업준비하면서 틈틈이 공부를 해왔기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화학은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일반 서점에서 파는 문제집은 그 내용이 너무 취약했기 때문에 일반화학 책을 봤다. 두 권으로 된 두꺼운 화학책을 들고 매일 도서관으로 갔다. 그 누구의 조언도 없었기에 무슨 문제가 나올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공기업에 관련한 카페에도 가입했지만 한수원의 화학직군에 관련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발전소란 특성을 생각해 열역학을 주로 공부했고 원자력을 알기 위해 관력서적을 읽었다. 한수원에 입사 지원서를 작성한 날부터 매일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회사 소개나 홍보·자료들을 봤고, 현재의 중점사항들을 체크했다. 이후에 면접을 볼 때 유용한 자료로 쓰였다. 요즘 들어 전공보다는 어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전공 또한 중요하다. 한수원 전공시험은 난이도가 높다. 시간에 비해 계산문제가 많고 계산기 사용이 금지되므로 이에 대비하는 것도 좋다. 전공시험을 통과하고 논술과 인·적성검사를 보고 3일 후에 면접을 봤다.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순간 막막했다. 인·적성검사는 서점에서 파는 관련 문제집을 사서 보며 경향을 파악했다. 논술은 그 당시의 사회 이슈를 위주로 글을 써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논문집을 봤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평소에 책을 읽던 습관이 많은 도움이 됐다. 면접은 홈페이지에서 회사에 관한 사항들, 이를테면 ‘최초로 원자력 발전을 한 것은 1978년 건설된 고리 1호기’ 등 관련사항을 알아두는 것이 이롭다. 또한 카페에서 한수원의 면접 경험자들의 글을 모두 체크해두면 좋다. 면접은 개인 면접과 집단 토론 면접으로 이루어진다. 면접관의 질문 의도파악이 중요하고 너무 강한 목소리보다 차분한 목소리가 더 높게 평가된 것 같다. 자리가 아무리 불편하고 불안하더라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 다리를 꼬고 면접을 같이 본 사람이 있었는데 당연히 지금 한수원 식구가 안됐다. 한수진 한국수력원자력 영광원자력본부
  • 대정부질문 대북사업 중단 논란

    대정부질문 대북사업 중단 논란

    25일 국회의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은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중단 논란이 부각됐다. 참여정부의 대북관을 놓고 해묵은 여야 시각차도 그대로 재연됐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가시 답변’으로 한나라당 의원들과 설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대 대북사업 왜 중단됐나.” 대정부 질문에서는 북측이 현대측에 잠수함 설계도를 요구했다고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이 주장하고 나서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 의원은 “지난 7월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이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북측에서 이런 제의를 한 것으로 안다.”면서 “현 회장은 ‘다른 것을 달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그것만은 차마 양심상 줄 수 없다.’고 거부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현 회장이 김윤규 전 부회장을 해임시킨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김 전 부회장이 8억원을 유용했다고 해서 해임시켰다는 것은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정 장관도 현대측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때문에 정부도 현대아산을 압박하다가 지금은 발을 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답변했고, 이 의원이 “현 회장에게 직접 확인해 봐라. 엄청난 사실이….”라는 거듭된 추궁에도 “유언비어 수준의 얘기”라고 일축했다. 현대아산측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맞지않는, 한마디로 황당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현대아산 주변 사람으로부터 제보된 내용”이라면서 “제보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총리,“훈계하지 말라.” 이 총리의 ‘깐깐한’ 답변태도를 놓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먼저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이 “국민을 대표해서 정부를 비판하는 곳이 국회인데 의원의 다소 쓴소리에 총리나 각료가 공격 대응하는 것은 유감”이라면서 “총리도 의원 시절에 불성실한 국무위원 답변을 질타하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이 총리는 답변하지 않았지만, 이 의원이 “총리의 대부도 땅 투기 의혹이 일었을 때 여론조사를 해봤다.”고 소개하자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총리는 “일부 언론이 왜곡보도한 것에 돈을 들여 여론조사를 했다니, 가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고 또다시 독설을 날렸다. 이어 “총리는 훈계나 들으러 나온 사람이 아니다.”고 쏘아붙였다.‘강정구 파문’과 관련해서도 “유신체제 내내 수배·감옥생활을 했는데 당시 빨갱이로 몰던 사람들이 요즘 이념·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면서 참 별꼴 다 본다는 생각이 든다.”고 일침을 날렸다. ●다양한 제안도 쏟아져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은 통일·외교 전문가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86.5%가 제4차 6자회담을 ‘성공적’으로 평가하면서도 60%가 “향후 이행이 잘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당 임종인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일본 국회의원은 입국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장기적인 한·일관계에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서울에 온다면 우리측 고위인사 면담 등에서 구분해 대응할 필요는 있다.”고 답변했다. 박준석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 속의 리더십/오세훈 변호사

    우리는 지금 무한 경쟁이라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변화의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가 경제를 출렁이게 할 수도 있고, 최고경영자의 적절한 판단 하나가 세계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가 개혁을 이야기한 지도 10여년이 훨씬 지났다. 새로운 대통령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개혁 담론이 등장하지만, 체감 위기감은 낮아지기보다 점점 더 높아만 가는 것이 현실이다. 며칠 전 OECD 보고서 내용을 놓고 벌어진 한바탕 소란도 그런 위기감의 표현일 것이다. 비전은 커다란 정치적 그림이지만, 개혁은 실제적인 사회의 변화다. 개별적인 사안에 맞는 변화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가야만 가능하다. 민주 사회에서 실생활의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대하여 절대 다수의 공감을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나, 다수의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만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왕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던 전제시대에서조차 이것은 진리였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정책이 있어도 백성의 공감을 얻지 못한 정치는 실패했다. 고려 숙종은 외척의 발호와 여진족의 압력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부국강병의 비전을 제시했다. 적극적인 대외 확장과 과감한 재정개혁을 통해 개인이 아닌 국가의 부를 확대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어려웠던 백성의 삶은 잦은 여진정벌과 국가사업으로 인해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이 비었다(十室九空)’고 할 정도로 피폐해졌고, 신하들 사이에서도 민생안정이 우선이라며 따르는 자가 줄어들었다. 백성이 힘들어하고, 뜻을 받드는 신하가 줄어들자 숙종은 부국강병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상대방의 이해를 얻지 못한 개혁,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개혁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교훈이 남은 것이다. 개혁에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당연히 ‘내 임기 중에 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개혁을 어렵게 만든다. 조선 초 정도전의 전제개혁의 모델은 고려 말 공민왕때 나왔다. 완성되기까지 40여년이 걸린 것이다. 고려 광종과 조선 태종이 각각 개국세력을 정리하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여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면, 각 왕조 최고의 통치자라는 성종과 세종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개혁은 내가 아니면 안 되며, 내가 집권하는 동안에 무엇인가 완성해야 한다는 ‘개혁 독점욕’과‘개혁 조급증’은 순리가 아님을 지나간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진정으로 위대한 업적이, 선임자들이 피땀으로 일군 토대를 벗어나 역사의 연속선 밖에서 이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내 이름표가 붙은 무엇인가를 남기겠다는 부질없는 공명심만큼 지도자가 피해야 할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개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사람을 얻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진흥왕은 전통 귀족들을 세력기반으로 계속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김유신의 조부이자 가야계인 김무력을 중용했고, 고구려에서 귀화한 승려 혜량을 당시 신라의 정신적 지주인 승통으로 삼았다. 진흥왕 대의 르네상스는 이처럼 다양한 외부 인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신라의 인재풀을 한 단계 넓힌 결과이다. 개혁에 성공한 리더들은 한결같이 군주 개인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통합과 조화로 이끄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변혁기를 지나 온 과거를 돌이켜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다.‘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세훈 변호사
  • [지금 그곳은] 서울역 무료진료소

    [지금 그곳은] 서울역 무료진료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난 10일 오후 8시 ‘서울역 노숙인 무료 진료소’를 찾았다. 네 평 남짓한 공간에서 의사와 약대생·간호대생 등이 하루 평균 80∼100명의 노숙인을 돌본다. 2002년부터 ‘노숙인다시서기 지원센터’가 서울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곳으로 시내에서 노숙인 무료진료를 해주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야간진료가 시작된 지 30분이나 지났는데도 이곳을 찾아오는 노숙인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많아졌다. 환절기라 감기·몸살 환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싸움 등으로 크게 다치거나 오랫동안 지병을 앓는 환자들도 간간이 찾아왔다. 다리를 절면서 찾아온 김모(65)씨가 힘들게 의자에 앉아 엉덩이를 보여주자 의사 이규훈(한양대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씨는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욕창이 난 것이다. 곪은 지는 한달 정도 됐다고 했다. 이씨는 김씨에게 간단한 소독을 해주고 반창고를 붙여주며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와서 치료를 받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씨는 “고령의 노숙인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활동이 적어 욕창이 악순환되기 십상”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마에 상처를 입은 노숙인 황모(42)씨에게 의사 이씨는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데다 이마도 빨리 꿰매야 한다.”면서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치료를 받기 위한 진료의뢰서를 써줬다. 이곳에서 가능한 치료는 기본적인 것으로 추가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진료소와 협약을 맺은 서울의료원, 시립동부병원, 국립의료원 등 2·3차 의료기관에서 이뤄지게 된다. 보험적용이 되는 진료과목은 무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비용주체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호사 최안숙씨는 “노숙인이 협약 의료기관이 아닌 곳을 찾아갈 경우 대부분의 병원이 노숙인을 무시하면서 진료를 안 해준다.”면서 “머리를 크게 다쳐 치료를 시급히 해야 했던 한 노숙인이 사립병원에 갔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와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노숙인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귀찮은 존재로 여긴다는 뜻이다. 술냄새를 풍기면서 들어온 최모(39)씨는 다짜고짜 의사 이씨에게 영양제를 달라고 했다. 이씨는 “술을 먹으면서 영양제도 먹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면서 “차라리 술을 안 먹는 게 낫다.”고 말했지만, 최씨는 “술을 먹어야 정신이 말짱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면서 “알코올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전체 거리 노숙인의 60%나 된다.”면서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밖에서 30여분 동안 소란을 피우는 노숙인도 있었다. 진료소 맞은편에 서울역파출소가 있지만 자원봉사자들은 경찰을 부르지는 않았다. 간호사 최씨는 “대화상대가 없는 노숙인의 특성상 평소 하고 싶은 말들을 진료소에 쏟아낼 때가 많다.”면서 “난감할 때도 있지만 경찰을 부르면 노숙인들이 이 곳(진료소)을 자주 찾지 않게 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타일러서 보낸다.”고 말했다. 야간 진료는 9시30분쯤 끝났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뤄지는 주간 진료를 받은 환자까지 합하면 93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주간 진료는 공중보건의가 맡아서 하고 야간 진료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선재마을의료회, 한대병원, 고대병원 등 20여개의 단체·기관 소속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이뤄진다.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의 활동가 이수범씨는 “그나마 전국에서 형편이 나은 편인 서울역무료진료소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면서 “노숙인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공간·인력·예산확충 등 노숙인을 위한 정책적인 추가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한국산 분홍빛 신예병기

    한국산 분홍빛 신예병기

      「얄타」회담 때 미소의 양 거두가「콘돔」외교전쟁을 벌였다. 먼저「스탈린」이 특대형「콘돔」하나를「루스벨트」미국대통령에게 선사했다. 그러면서 말했다.『이것은 소련에서 제일 큰「사이즈」입니다』 다음날「루」대통령이「스탈린」에게 소련제 특대품보다 조금 더 큰 놈을 답례로 내놓았다. 그러면서 말했다.『이것은 미국에서 제일 작은「사이즈」입니다』 「스탈린」의 표정이 어떠했는지는 딱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이「콘돔」외교전쟁의「링」에서「루」대통령의 오른손이 오른 것만은 사실이다. 「콘돔」은 외교 교섭장에서 웃음을 자아내는데 쓰여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사람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됐다. 그뿐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출을 해서 외화를 획득하는「콘돔」국제상인도 탄생하고 있다. 일본 선남선녀가 쓰게 될 3만불 어치 2월 19일 김포공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대한항공기는 사상최초로 색다른 수출품을 싣고 갔다. 물표를 점검한「스튜어디스」양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얼른 손을 떼었다.「가족계획을 위한 남성용 고무제품」. 일컬어「콘돔」이란 신예병기다. 수출한국을 위해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우리나라 비행기가 국산「콘돔」5천「그로스」를 일본으로 첫 수출하는 날이었다. 일류「메이커」인 D물산이 일본의 A무역회사와 연간 5만「그로스」(약 3만「달러」어치)의 매매계약을 맺었다. 그 제1차 화물이 일본측의 불 같은 독촉을 받아 서민에게는 하늘의 별따기 같은「제트」여객기를 잡아타고 나간 것이다. 1「그로스」는 12「타스」다. 일본으로 수출되는 국산「콘돔」은 60만「타스」- 720만 개에 이른다. 국산「콘돔」이 이렇게 해서 세계의 인구 폭발문제를 깊이 근심하는 일본의 뭇 선남선녀에게 가뿐한 해방감을 갖다 줄 것이다. 「콘돔」대일수출 성공의 의의는 수출확대에 미력의 기여를 한다는 무역진흥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산기술이 일진월보(日進月步)했다는데 더 큰 뜻이 있다. 해방 후 진주한 미국 군인들이 가족계획보다도 성병예방용으로 끼고 들어온 색다른 박래품(舶來品)이「실버·텍스」라는 상품이었다.「실버·텍스」가 애용자의 판도를 넓히면서「텍스」바로「콘돔」이라는 유행어가 생겼다. 인도 정부의 국제 입찰 땐 4파전 끝에 당당히 이겨 국산품이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또 비록 국산화가 성공했다 할지라도 초창기의 국산품은 영 사람을 실망케 했다. 오므라들어 있을 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어느 정도 팽창을 하면 구멍이 뽕 났다. 가족계획에 충실한 나머지 신경질스러운 친구는 사용 전에 그 속에 담배연기를 불어넣어서 구멍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소란을 피워야 했다. 그런가 하면 그 용도를 가장 충실히 다해야 할 결정적 순간에 삭막하게도 찢어지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애용자에게 뒷맛 나쁜 환멸의 비애를 안겨다 주었다. 쓸만한 국산「콘돔」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64년. 현재「콘돔」업계를 독주하고 있는 D물산회사의 생산시설이 시동하면서부터다. 이 공장의 생산시설은 일본의「야나세」주식회사에서 도입되었고 생산기술도 그곳 기술자가 와서 지도해주고 갔다. 이번의 대일수출은 일본기술을 도입한 국산품이 불과 5년 사이에 일본제품을 누른 승리의 대일본 역수출이다. 바로 국산「콘돔」의 일본 역습이다. D물산에서는 대일수출은 더 많아지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산「콘돔」의 수출시장은 일본만이 아니다. 지난 68년에 39만 9,927「달러」분을 태국, 인도,「이란」에 수출했다. 특히 인도 수출은「메이드·인·코리어」의 성가를 세계에 떨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구 증가 억제에 제일 신경을 쓰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인도다. 세계가족계획기구의 원조를 받아「콘돔」등의 대량수입을 하고 있다. 그것도 보통 방법이 아니라 국제 경쟁입찰을 통해 품질 좋고 값싼 제품을 산다. 인도 정부가 입찰시킨 68년도의 국제 경쟁에서는 한국을 비롯, 미국, 서독, 일본의 4개국이 참가, 염서(炎暑)의 나라 인도에서 뜻하지 않은「콘돔」4파전이 벌어졌었다. 여기서 한국 제품이 다른 3개국 제품을 눌러 낙찰의 영광을 얻었다. 이 낙찰성공에 이어 한국제품을 재인식한 태국과「이란」이 수입을 했다. D물산에서는 국산「콘돔」뿐만 아니라「콘돔」포장 기계를 인도에 더 수출하기 위해 인도보건사회부 당국과 상담(商談)을 진행 중이다. 6.5배 늘어나야 한다는 등 까다로운 국제규격 합격 그 일 때문에 작년 말 동사 김의한(金義漢) 사장이 인도의 가족계획사업자금 원조국인「스웨덴」에 갔다가 2월에 돌아왔다. 수출 전망이 밝다는 소식이다.「콘돔」의 품질이 국제적으로 인정이 되려면 까다로운 국제규격과 엄격한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수출되는 국산「콘돔」은 이 관문을 무사 통과한 것이다. ◎ 국제규격(「스웨덴」국립시험소가 1959년에「아시아」「유럽」「아랍」등 세계 여러 지역 각 종족의 남성의 체갹과 체력의 모든 상태를 고려해서 가장 합당한 것으로 제정한 것) ▲ 두께 = 최고 0.07mm (지나치게 두꺼우면 경원되기 쉽다는 점과 너무 얇으면 찢어지기 쉽다는 점을 계산해서 두 요구를 일치시킨 두께가 이것이다) ▲ 넓이 = 옆으로 눕혀 폈을 때의 폭 50mm (이「사이즈」의「콘돔」이면 입구의 직경 37mm, 가운데의 직경 50mm의 원통이다) ▲ 길이 = 20cm (이 길이와 넓이는 사용자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충분하다. 바꾸어 말하면 세계 어느 민족을 말할 것 없이 길이 20cm는 팽창계수의 최대치다. 이것이 대체로 하나의 평균적인 최대 한계점이란 것을 말해준다) ▲ 무게 = 1.1 ~ 1.4g ▲ 신장률 = 최저 650% (길이로 따지면 20cm의 6배 반, 1m 30cm 이상 늘어난다. 그러므로「콘돔」길이가 20cm라고 해서 비관할 필요는 없다) ▲ 인장도 = 최저 200kg/cal ▲ 분비물받이의 길이 = 1.5cm (「콘돔」의 맨 끝에 대롱대롱 달린 동그란 용기. 어린이 새끼 손가락의 맨 마지막 관절이 있는 끝부분 만한 크기. 분비물의 1회 사출량을 받는 데는 이만한「사이즈」의 받이면 족하다) ◎ 품질시험 = 여러 시험을 한다. 그 중에서도 까다로운 과정이 두 개 있다. ▲ 수압시험 = 한 제조업자가 가지는「콘돔」재고상품 중 멋대로 500개를 뽑아낸다. 이 중 300개에 대해 시험을 한다. 시험은 300cc(보통 아기 우유병의 1.5배 가량)의 물을 가득히 부어 3분간 매달아두면서 물이 새느냐 안새느냐를 본다. 300개 중 4개까지를 허용한계로 하고 있다. ▲ 팽창도시험 = 역시 재고품 500개를 멋대로 뽑아 그 중 100개를 시험한다. 시험은 공기를 주입해서 터질 때까지의 용량을 본다. 터질 때의 용량은 25ℓ 이상이라야 한다. 공기 25ℓ를 먹어 부풀어 올랐을 때의「콘돔」의 모양은 길이 60~70cm, 직경 70cm의 고무풍선이 되어 있다. 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을 해야 세계에서 남부끄럽지 않은 의젓한「콘돔」의 행세를 할 수 있다. 서독·「체코」제품도 국제 규격엔 미달 「스웨덴」국립시험소의 검사는 까다롭다. 세계에서 합격한 나라가 한국을 비롯, 미국, 영국, 일본의 4개국 뿐이다. 심지어 서독과「체코」제도 딱지를 맞고 있다. 품질이 좋아지고 가족계획사업에 따라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자「콘돔」의 종류다 다양해졌다. 투명하고 흰 색깔인 보통「콘돔」에 진기한 가공을 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약물처리를 한 것까지 등장한다. 대머리총각같이 밋밋하고 흰 색깔의 물건은 재미가 없다. 그래서 기교를 부린 것이 침실의 연출에 알맞다는 분홍색의 고무를 옆으로 보일락말락하게 주름살을 가게 한 특제품. 폭이 약 5mm인「데리케이트」한 주름살이 3cm 간격으로 4개 박혀 있다. D물산의 신안특허품이다. 또 하나는 제1차적 사용단계에서 뻑뻑한 감을 없애기 위해「콘돔」의 바깥 표면에「제리」를 바른 가공품이다. 특히「제리」를 사용한 것은 그것이 피부에 닿으면 미끈미끈한 쾌감을 주는 동시에 살균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사용도중에 찢어져도 가족계획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완전무기라고 또 한바탕 PR이다. 처녀수출로 일본에 시집간「콘돔」도 표면이 멀쑥한 보통 물건이 아니다. 분홍색에 주름이 간 특제품. 특히 이것이 수출된 이유에 대한 풀이가 재미있다. D물산 관계자는『생활수준이 높아진 까닭인 것 같다』고 분홍색 주름살「콘돔」과 인생「엔조이」론을 결부시켰다. 우리나라의 연간 총소비량은 2백만「타스」로 2천 4백만 개다. 한 달치는 1천 2백만 개. 가족계획협회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임남성의 인구는 4백만이다. 이 사람들이 한 달에 3개씩「콘돔」을 쓰고 있다는 추계가 나온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건강한 청장년층은 1주일에 2~3회(이희영 박사의 연구)로 되어 있다. 이것으로 본다면 한 달에 8 ~ 12회나「콘돔」을 써야 할 기회가 있다고 할 것이다. 국내 소비는 보통품 50% 분홍색 주름살 30% 정도 D물산은 판로는 넓다고 사세확장에 자신이 만만이다. 그럴 수밖에 없게 됐다. 요즘 경구피임약이 고혈압을 악화시킨다는 미국「스탠포드」대학의 연구보고가 있어 간편한 경구약품이 경원받게 됐다. 기타 피시술자의 수는 지극히 적은 상태에 있다. 그래서 가족계획이 엄격하게 시행되기만 하면 적어도 한 달에 3천 3백만 ~ 4천 8백만 개의「콘돔」이 소비될 수 있다고 계산한다. 지금보다도 2천만 ~ 3천 6백만 개가 더 많은 숫자다. D물산의 판매량을 종류별로 보면 백색의 보통품이 전체의 50%이고 분홍색 주름살이 30%, 나머지가「제리」가공품이다. 이중에서도 서울과 부산 등지 대도시를 중심해서 분홍색 주름살이 많이 나가고 판매량이 점점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 선데이서울 69년 3/2 제2권 9호 통권 제23호 ]
  • [길섶에서] 명당 유감/심재억 문화부 차장

    아버지의 유택(幽宅)은 갯가 솔밭에 있습니다. 갯바람이 갈밭을 짓치고 내닫다가 황토 둔덕 다복솔밭에서 거친 숨 가라앉히며 다리를 푸는 곳. 그곳에 밋밋한 그 산처럼 겸손한 봉분 하나로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삶을 살고 계십니다. 그곳은 당신께서 생전에 잡아 두신 자립니다. “잘 봐라. 여기서 저쪽 지봉에 눈길을 맞춘 뒤 좌로 딱 다섯 걸음 되는 곳이다.” 이렇게 어린 자식들에게 자신의 처소를 일러주신 아버지는 지금 평안하실까요.‘좌청룡 우백호’ 식의 명당론으로 보자면 아버지의 유택은 분명 명당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좌청룡도 우백호도 없고,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길지도 아닙니다. 그러나 모름지기 처소란 편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누대의 고향이 굽어보이는 그곳이 아버지에게 가장 어울리는 유택임에 틀림없습니다. 요새 묘든, 집이든 명당이라면 혼을 빼놓고 덤비는 사람 많습니다. 염치 챙기느라 명당에 못 들어 이렇게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맘 편히 누울 수 있는 곳이 명당이겠지요. 주제도 모르고 명당이라며 덥석 달려 들었다가 동티날까 두렵기도 하고요.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방송시장 지각변동 신호탄

    방송시장 지각변동 신호탄

    ‘요즘 방송가가 참 어지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니 인터넷프로토콜TV(IPTV)니 하는 것들을 둘러싸고 웅성대더니 ‘지역MBC들의 종합편성PP’에다 ‘방송위원회의 경인방송 후속대책’이란 것이 나와 시끌시끌하다. 앞의 것이 뉴미디어라면 뒤의 것은 올드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앞의 것이 기존 매체에 대한 도전이라면, 뒤의 것은 기존 매체의 응전이라고 보는 축도 있다. 도전과 응전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으니 당분간은 소란스러움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종합편성PP, 경인방송 후속대책?-지상파방송 늘어난다 경인방송 후속대책과 종합편성PP설립, 이 두 가지는 간단하게 말해 새로운 지상파방송사가 생긴다고 요약할 수 있다. 지역MBC계열사들이 설립하겠다고 나선 종합편성PP는 각 지역 방송사의 작품들 가운데 우수한 것들을 뽑아 따로 편성해 방송하겠다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케이블 채널이지만, 지상파채널도 케이블을 통해 시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상파방송과 맞먹는 효과를 낳게 된다. 여기에다 종합편성 프로그램프로바이더(PP)는 케이블·위성방송이 의무적으로 재전송한다. 지역MBC가 서둘러 뭉친 배경에는 지역민방의 등장과 뒤이어 선보인 뉴미디어들 때문이다. 뭔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정파된 경인방송의 후속 사업자는 연내 선정될 예정이다. 이 방송 사업자는 인천·경기 전역에 방송을 내보내고 서울에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통해 재전송한다. 서울지역SO와 연계만 잘 이뤄진다면 재전송채널도 본방송 채널과 같은 채널번호를 쓸 수 있다. 그리고 꼭 재전송이 아니더라도 인천·경기 전역을 대상으로 방송전파를 쏘아올리면 전파가 서울로 넘지 않게 막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 때문에 ‘사실상 제2의 SBS 허가’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사안들은 방송시장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경인방송, 벌써부터 說 說 說…… 경인방송 후속대책을 두고는 벌써부터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방송권역 확대 결정에 대한 의혹이 거둬지지 않고 있어서다. 방송권역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옛 iTV관계자들조차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새 방송사업자 자리를 탐내고 있는 일부 업체들이 열심히 뛰지 않았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몇몇 회사와 그 배경에 있는 모 재벌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는 말도 나돈다. 동시에 이미 사업자 선정에 강한 의지를 내보였던 CBS와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는 특혜시비를 잠재울 수 있는 명분 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중기협은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라는 명분에 방송경험 부족을 메울 수 있는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CBS는 ‘특정종교’라는 핸디캡을 벗기 위해 다른 종교와의 컨소시엄 구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당사자는 부인하는데 업계에서는 진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MBC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도 2·3대 주주로라도 참가할지 주목거리다. ●종합편성PP? MBC 제2TV? 종합편성PP 설립문제는 훨씬 더 심한 강력한 견제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우선 지역MBC들끼리 하는 것이라 지역민방과 지역KBS와의 관계설정이 모호하다. 동시에 케이블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케이블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을 얘기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지상파계열 케이블들의 독주가 확연하다.”면서 “지상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상파방송의 영향력을 또 한번 키워줄 종합편성PP 허용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다른 지상파방송사들 역시 지금은 잠잠하지만 ‘제2의 MBC냐.’라는 불편한 시선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당장 지난 2일 열린 토론회에서도 이와 같은 반대논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역MBC의 주식 대부분을 MBC가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MBC에만 종합편성PP를 허용하는 것은 지나친 특혜가 아니냐는 반론들이었다. 그 가운데 종합편성PP 인가권을 가진 방송위 김동균 채널사용사업부장의 반론이 눈길을 끌었다. 김 부장은 “원래 방송위가 논의했던 종합편성PP 허가 문제는 문화관광부의 외주제작채널 추진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있었고 보도기능 허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방송위가 종합편성PP를 거론했던 이유를 똑바로 이해하라는 말이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만취자격리법 세심하게 접근해야

    술에 취해 막가는 사람들을 제재하는 법이 추진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서재관 의원 등 의원 24명이 최근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우리는 이제 만취 난동자에 대한 효율적인 규제가 필요한 때라고 판단한다. 취중 난동에 비교적 너그러운 사회 풍토가 바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실제 사회질서 유지와 사회적 비용 등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법의 제정 및 집행에 인권 침해의 소지가 없도록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발의된 법안대로 다중이용시설·대중교통수단 등에서 술에 취해 기물을 마구 부수거나 다른 사람에게 거칠고 위협적인 말이나 행동을 일삼을 때 법의 적극적인 개입은 불가피하다.2003년에 발생한 취중 범죄 건수가 66만 6727건에 달하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게다가 이 가운데 40%는 강력·폭력사건이다. 취중 공무집행방해도 무려 전체 공무집행방해 사건의 49%를 차지한다. 취중 범죄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주취자로 인한 행정비용·인건비 등의 낭비가 440억원에 이른다니 대책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영국에서는 취중 소란·난동자를 연행, 경찰서 유치장에 36시간까지 수용한다. 프랑스도 공공장소에서 만취해 있는 사람에게 34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한다. 발의안에 포함된, 만취 난동자에 대해 최장 24시간 격리와 자해 등을 막기 위한 진정의(鎭靜衣)등 보호 장구의 사용도 고려할 만하다. 하지만 집행에 신중해야 한다. 반드시 가족 등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만 일시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해둔다. 따라서 법안 통과에 앞서 만취 난동자의 기준, 규제 방법 등을 세밀하게 따질 것을 거듭 요구한다.
  • “숨겨온 이웃사랑 알린 언론 미워”

    숨겨온 이웃사랑이 알려져 이웃에게 상처를 줄까 걱정돼 울어버린 여고생과 친구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9일 오후 1시쯤 서울 송파구 문정동 영동일고교 복도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었다.3학년 J(17)양이 담임 김이수(51) 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복도 한가운데 놓였던 교내질서 안내표지판을 발로 뻥 차버린 것.J양은 “자원봉사를 해온 친구가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는데, 언론에 드러나는 바람에 오전 내내 울었다.”면서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친구가 괴로워해 자신도 모르게 표지판을 걷어찼다.”고 털어놨다. 얘기는 J양의 급우인 임수빈(17)양으로 되돌아간다. 수빈이는 송파동 일신여중에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6년 동안 학교를 오가면서 쓰레기를 주워담아 ‘휴지 줍는 아이’로 알려졌다.또 고교생이 돼서는 인정받은 봉사활동만 1학년 때 432시간,2학년 때 557시간, 지난 1학기 때 278시간으로 모두 1282시간이나 된다.‘봉사활동 지존’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송파노인복지관과 청암노인요양원, 인성장애인복지관 등 복지시설 10여곳을 돌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처음엔 “잘난 척한다.”는 오해도 받았다. “제 일이 알려지면 그동안 한 식구처럼 지내온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입니다. 또 아주 작은 일이고, 지금은 입시준비로 줄어들었는데 마치 큰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져 부끄럽습니다.” 임양은 아침 7시에 집을 나선다.7시50분까지 등교하면 되지만 학교 주변에 쓰레기를 줍기 위해 30분 정도 빨리 집을 나선다.등굣길에 쓰레기를 줍지 못하면 점심시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처음엔 길을 걷는 사람들, 특히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깨끗한 길을 걸으며 건강해지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죠.” 오후 수업 시작 전에 일어난 ‘작은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침내 권용란(50·여) 교감 선생님이 “좋은 일은 널리 알려 확산시키는 것도 이웃사랑을 키우는 길”이라며 설득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만취난동자 24시간 구금”

    인권침해 소지를 놓고 논란을 빚어온 주취자 보호 관련법이 마침내 국회에 발의됐다. 음주로 인한 우발적 범행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막고 경찰력 낭비도 최소화하겠다는 게 입법취지다. 하지만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강제격리하는 이 법안이 인신제한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어 시민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경찰서에 주취자 안정실 열린우리당 서재관 의원 등 국회의원 21명은 지난 7일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형식은 의원 발의지만 지난해부터 경찰청이 추진해온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사실상 정부 발의의 성격이 짙다. 법안은 ▲도로·공원·극장 등 다중이용시설 ▲자동차·기차·배 등 대중교통수단 ▲병원·관공서 등에서 술에 취해 기물을 부수거나 남들에게 거칠고 위협적인 언동을 할 경우 경찰서 안에 마련된 ‘주취자 안정실’에 최장 24시간까지 격리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자해 등 상태가 심할 경우에는 진정의(鎭靜依) 등 보호장구를 입히고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이나 화재발생 우려가 있는 물건을 갖고 있으면 영장 없이 바로 압수할 수 있게 했다. ●“치안강화” vs “인권침해” 법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경찰은 일제히 환영했다. 서울의 유흥업소 밀집지역 지구대 관계자는 “매일 밤 욕설은 기본이고 맞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마다 공무집행 방해로 입건할 수 없어 그냥 참는다.”면서 “이번 기회에 주취자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외국에는 이미 비슷한 법이 있다.”면서 “현실을 모르고 대안 없이 인권만 내세우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주취자들로 인한 행정비용, 인건비 등 낭비가 연간 44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24시간씩이나 가둔다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자 인권침해”라면서 “국민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단순히 경찰들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격리하자는 뜻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경찰 편의만을 생각한 법이 경찰 출신 의원에 의해 발의돼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입법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법안 자체가 부실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조성기 본부장은 “외국에서는 주취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팀을 따로 두거나 경찰에게 철저한 교육을 한 뒤 법을 도입했다.”면서 “이번 법안은 주취자에 대한 기준도 애매하고 준비가 충분치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