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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들쭉날쭉 여론조사의 진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열린세상] 들쭉날쭉 여론조사의 진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5년마다 수난이다. 대선이 있는 해가 되면 지지도에 불만을 가진 후보로부터 조작시비를 받는다. 또 조사기관마다 결과가 다르다며 신뢰성을 의심하는 언론보도도 등장하며, 들쭉날쭉 지지도를 접한 국민의 항의도 만만치 않다. 아무 문항이나 시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여론조사는 믿을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다.’는 비난은 대개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도에 집중된다. 최근 언론에 발표된 한나라당 유력후보들의 지지도를 놓고 소란스럽다. 조사기관마다 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보는 국민도 헷갈리고, 보도하는 언론도 곤혹스러워한다. 물론 당사자인 대선후보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선주자의 지지도가 차이 나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문항이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지지도 문항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이다.‘다음 대선주자들 중 누가 차기 대통령으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과 ‘오늘 당장 선거가 있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이다. 전자는 당장의 투표행위를 가정하지 않은 ‘호감도’에 가까운 질문이므로, 적극적 지지층이 아니어도 대개 응답에 참여한다. 당연히 ‘모르겠다’는 응답 유보층은 줄어든다. 반대로 후자는 구체적인 행위를 가정하는 질문이므로 적극적 지지층이 아니면 후보 선택을 유보하므로 무응답층이 늘어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지지층의 결집력이 강하다고 평가되는 박근혜 후보의 지지도는 어떻게 물어봐도 별 차이가 없으나,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층에서도 지지도가 높은 이명박 후보는 질문방식에 따라 지지도에 큰 차이가 나타난다. 사실 여론조사는 여러가지 까다로운 통계학적 전제들을 가진다. 무엇보다 여론조사에는 오차(error)가 존재한다. 모집단인 전체 국민을 일일이 조사하지 않고, 표본을 뽑아 결과를 내는 만큼 표집오차(sampling error)가 반드시 생긴다. 여론조사 옆에 항상 표기되는 표집오차는 장식이 아니며 법으로까지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표집오차 범위 이내에서 오르고 내린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표집오차 앞에 ‘95% 신뢰구간’이라고 표기된 말은 대개 100번 중 95번은 맞지만,5번 정도는 틀릴 수도 있으니 알아서 보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된다. 가끔 오차 범위 이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장하여 큰 변화가 있는 것처럼 그려놓은 도표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또 앞서도 설명했듯이 문항의 차이를 유심히 보아야 한다. 문항이 다른 데도 조사결과가 같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또 문항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를 보면 유용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많은 조사기관들은 서로 다른 질문을 사용한다. 따라서 후보 지지도는 가능한 한 동일한 조사기관의 추이를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어쩔 수 없이 여러 조사기관들의 자료를 함께 비교한다면 반드시 문항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며, 그러한 차이에 대한 설명 없는 보도는 보는 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지지도에 목숨 거는 듯한 모습이 영 위태로워 보인다. 그동안 우리 정치에서 한때의 지지도라는 것이 무의미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이다. 국민의 생각을 한데 모아 정리해주는 장점이 있는 대신, 오차가 존재하는 등 그 한계도 명확하다. 또 조사방법이나 표집과정에서 잘못된 여론조사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한계조차도 여론조사가 가지는 특성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여론조사는 유권자에게나 정치인에게나 어느 무엇보다 유용한 참고자료이기도 하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 고은 시인 “盧의 화법 대통령 언어 아니다”

    원로시인 고은(74)씨는 13일 노무현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과 관련,“대통령의 언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비판적 의견을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광화문문화포럼(회장 남시욱) 주최로 열린 제73회 아침공론 마당에 강연자로 참석한 시인은 “대통령의 언어에는 위선적 품위나 품격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정치에서 (품위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필요한 자격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파격적 언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미증유의 대통령을 경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는 역대 대통령의 언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자신만의 문체를 가진 사람은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명에 불과했다.”고 회고한 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늘 문장화된 문자언어를 썼으며 비서가 써주는 문장이 아닌 자기만의 문체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소란에 대해서는 “자신만이 진리요, 정의라고 외치는 입만 있지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귀는 없다.”고 질타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3)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23)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Ⅴ

    1623년(광해군 15) 3월13일 새벽, 광해군은 다급하게 창덕궁의 담을 넘었다. 내시의 등에 업힌 채 궁인 한 사람만을 대동한 초라한 몰골이었다.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반정군(反正軍)의 함성 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안국방(安國坊)의 여염으로 숨어들었다. 궁궐 담을 넘는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광해군’이 되었고,‘폐주(廢主)’,‘혼군(昏君)’으로 불리기 시작했다.‘쫓겨난 임금’,‘어리석은 임금’이란 뜻이다. ‘폐주’는 몸을 숨긴 지 하루도 못되어 체포되었다. 이윽고 강화도를 거쳐 제주도로 옮겨졌다. 유배지 제주에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19년. 광해군이 ‘인생무상’,‘권력무상‘을 곱씹어야 했던 그 시간,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역사도 요동쳤다. ●인조반정, 성공하다 광해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1623년의 쿠데타를 보통 인조반정(仁祖反正)이라 부른다.‘반정’이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올바른 곳으로 돌아간다(發亂世反諸正)’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광해군을 몰아내려는 모의는 162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이서(李曙), 신경진(申景 ), 구굉(具宏) 등 무신들이 먼저 발의하고 김류(金 ), 이귀(李貴), 최명길(崔鳴吉) 등 문신들을 끌어들이면서 급진전되었다. 신경진과 구굉은 모두 능양군(綾陽君·인조)의 인척들이고 김류와 이귀, 최명길 등은 광해군대 조정에서 쫓겨났던 서인(西人)의 명망가들이었다. 그들은 왜 정변을 기도했을까? ‘인조실록(仁祖實錄)’은 ‘윤리와 기강이 무너져 종묘사직이 망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반정의 명분을 기록하고 있다.1613년 ‘은상(銀商) 살해 사건’에서 비화된 계축옥사(癸丑獄事)를 통해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살해되고, 곧 ‘폐모논의(廢母論議)’가 일어났던 것이 결정적이었다.‘폐모논의’는, 그것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불효(不孝)의 극치’이자 패륜으로 인식되어 광해군 정권에 치명타가 되었고, 반정 주도 세력에는 ‘거사’를 정당화하는 절호의 명분이 되었다. 하지만 인조반정 주도세력들이 거사를 성공시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고변(告變) 때문에 거사 계획이 몇 차례나 누설되었지만 용케도 토벌을 피했다.1622년 가을, 평산부사(平山府使)로 임명된 이귀는 신경진과 함께 거사를 도모하려 했는데 기밀이 누설되었다. 체포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김자점(金自點)과 심기원(沈器遠) 등이 광해군의 후궁에게 청탁을 넣어 겨우 무마되었다. 1623년 3월의 거사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거사 하루 전날인 3월12일, 북인(北人) 김신국(金藎國)은 자신이 입수한 서인들의 거사 계획을 정승 박승종(朴承宗)에게 알렸다. 곧바로 역모 관련자들을 심문하기 위한 추국청(推鞫廳)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관련자들을 잡아들이라는 왕명이 떨어지지 않았다. 추국청이 설치될 무렵, 광해군은 후궁들과 연회를 벌이려던 참이라 재가를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반정 주도 세력들에게는 그야말로 천운(天運)이었다. 이윽고 홍제원(弘濟院)에 집결했던 반정군은 3경 무렵 창의문(彰義門)을 깨부수고 창덕궁으로 들이닥쳤다. ●광해군, 폐위되다 인조반정의 거사를 이끌었던 반정군의 전력(戰力)은 사실 보잘것없었다. 병력은 1000여명에 불과했다. 그 가운데 장단부사(長湍府使) 이서가 이끄는 700명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었다. 홍제원에 집결했던 군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유생들과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 무기를 잡아보거나 전투를 치른 적이 없는 그들이 기율이 있을 리 만무했다.‘일사기문(逸史記聞)’의 저자는,“웃고 떠들고 소란을 피워 제대로 통솔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 반정군이 그나마 대오를 갖추고 기율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무장 이괄(李适) 덕분이었다. 그는 당시 광해군에 의해 북병사(北兵使)에 임명되어 임지로 부임하려던 직전에 반란군에 가담했다. 이귀가 그의 장재(將才)를 알아보고 대장을 맡긴 것이었다. 이서 등 몇몇을 빼면 백면서생(白面書生)에 불과했던 반정군 지휘부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정군이, 광해군에 대한 경호를 책임지고 있던 훈련도감(訓鍊都監)의 정예병과 대적하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반정군은 창덕궁으로 거의 무혈입성(無血入城)했고, 광해군은 반역세력에 대한 진압 한번 시도하지 못한 채 궁궐의 담을 넘어야 했다. 왜 그랬을까? 문제는 항상 내부로부터 불거져 나오기 마련이다. 즉위 말년의 광해군이나 그의 측근이었던 대북파(大北派)는 정치적으로 모두 문제가 있었다. 대북파의 핵심인 이이첨은 정치적 반대파인 서인과 남인(南人)을 모두 축출한 이후 권력이 극도로 비대해졌다. 그는 대외정책에서 광해군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광해군 또한 권간(權奸)이 되어버린 그를 불신하고 견제했다. 광해군은 폐위되기 전 6년 동안 자신의 경호 책임자인 훈련대장을 11차례나 교체했다. 평균 1년에 두 차례나 바꾼 것이다. 제대로 믿을 만한 신료가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불신감의 표출이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거사가 일어날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이흥립(李興立)은 반정군에게 포섭되었다. 광해군을 배신한 이흥립은 반정군이 창덕궁으로 난입하는 것을 방관했다. 광해군은 또한 말년에 김개똥(金介屎)이란 상궁을 총애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귀, 김자점 등 반정 주도세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이귀가 역모를 꾀한다.’는 투서가 수차례나 들어왔음에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비호 때문이었다. 말년의 광해군은 정치적 판단력에서 분명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폐위의 명분이 된 외교정책 인조반정의 성공과 함께 인목대비(仁穆大妃)는 부활했다. 인조는 반정 성공 직후 덕수궁에 유폐되어 있던 그녀를 찾아뵙고 반정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인조에게 옥새를 넘기고 그의 즉위를 선언했다. 그로써 인조는 선조(宣祖)의 왕통을 잇는 계승자로 자리매김되었다. 이윽고 광해군이 끌려와 인목대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광해군에 대한 그녀의 원한은 처절했다. 인목대비는 “10여년 동안 유폐되어 지금까지 죽지 않은 것은 오직 오늘을 기다린 것”이라며 광해군의 목을 베려고 시도했다. 인조와 신하들은 ‘폐출된 임금이지만 신하들이 그에게 형륙(刑戮)을 가할 수는 없다.’고 결사적으로 방어했다.3월14일, 인목대비는 ‘광해군의 죄악’ 10가지를 제시하고 그를 폐위한다는 교서를 공식적으로 반포했다. 당연히 ‘폐모살제(廢母殺弟)’가 먼저 언급되었다.‘궁궐 공사를 대대적으로 일으켜 백성들에게 고통을 준 것’,‘선왕조의 구신(舊臣)들을 모두 쫓아낸 것’,‘뇌물로 인사를 단행하여 혼암(昏暗)한 자들이 조정에 넘치게 한 것’ 등의 ‘악행’들이 차례로 거론되었다. 인목대비는 이어 ‘외교 문제’를 언급했다.‘선조는 임진년의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명나라가 위치한 서쪽을 등지고 앉지 않았다. 광해는 배은망덕하여 천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랑캐에게 성의를 베풀었으며, 심하전역 때는 전군을 오랑캐에게 투항시켰고, 황제가 칙서를 내려도 구원병을 파견하지 않아 예의의 나라인 조선을 오랑캐와 금수가 되게 만들었다.’고 성토했다. 한마디로 ‘재조지은을 배신했기 때문에’ 폐위한다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광해군 시절의 대북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되었다. 이이첨, 정인홍 등 핵심 인물들은 대부분 처형되거나 조정으로부터 영구히 축출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거사가 성공한 당일, 인조가 도원수(都元帥) 한준겸(韓浚謙)에게 평안감사 박엽(朴燁)과 의주부윤(義州府尹) 정준(鄭遵)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점이다. 박엽과 정준은 서쪽 관방(關防)인 의주와 평양에 머물면서, 광해군의 지시대로 명 및 후금과의 외교 교섭을 전담하고 있던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처형한 것은, 향후 인조정권의 대외정책이 바뀔 것임을 암시하는 조처였다. 바야흐로 인조반정의 성공과 함께 조선과 명, 조선과 후금의 관계 또한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06일 TV 하이라이트]

    ●사랑해도 괜찮아(KBS2 오전 9시) 석훈의 회사 앞에서 기다리던 시내는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고, 석훈은 그런 시내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시내는 주필과 함께 있는 영숙을 보고는 놀라 뛰쳐 나온다. 하웅이 마루치와 함께 경찰서 신세를 진 사실을 알게 된 철웅은 화가 나서 하웅을 내쫓고 새로운 베이비시터를 구하려고 애쓴다.   ●클로즈업(YTN 낮 12시35분) 1987년 6월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국민행동지침에 따라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호헌철폐, 개헌쟁취!’. 대통령 간선제 헌법을 직선제로 바꾸라는 요구였다.6·10항쟁을 이끌었던 사람의 하나인 백기완 선생과 ‘6월 항쟁’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평소 애교 많고 말도 잘하는 35개월 핑크공주 승아. 기분이 좋으면 웃기도 잘하고 말도 예쁘게 하는 승아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엄마도 말릴 수 없다. 엄마는 승아의 울음 떼가 두려워 웬만한 것은 다 들어주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생도 돌봐야 하는 엄마는 이런 승아의 요구를 모두 다 들어주기가 힘들다는데….   ●뉴스추적(SBS 오후 11시15분) 올해 69세의 김 모 할머니. 무릎에 좋다는 말에 알로에 제품을 먹었다가 중환자실 신세까지 졌다.13세 아들의 아토피를 고치려고 프로폴리스 제품을 먹이고 바르기도 했다는 이 모씨. 그러나 아들은 한 달 만에 쇼크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남들은 모두 몸에 좋다는데, 이들에게는 왜 이런 일이 나타날까.   ●메리대구 공방전(MBC 오후 9시55분) 저녁을 같이 먹게 된 메리와 도진, 대구와 소란 네 사람. 메리는 말없이 열심히 먹기만 하고, 도진과 소란은 티격태격 한다. 비단에게 맞고 온 아문을 보며 소란은 아문에게 보디가드가 필요하다며 대구를 추천한다. 은자에게 셔츠를 돌려주러 간 메리와 대구는 셔츠를 보고 놀란 은자를 뒤로 하고 도망간다.   ●환경스페셜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KBS1 오후 10시) 경북 영천의 시골마을 오산리에 올해 문을 연 산자연학교.18명의 아이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초등교육과정 대안학교다. 산자연학교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대신 올챙이를 잡고 수달과 고라니를 만나는 아이들. 과연 야생동물들과의 만남으로 무엇을 느끼고 배우는 것일까?
  • [31일 TV 하이라이트]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무영은 두 사람만의 공간이었던 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기다리던 지수를 만난다. 무영은 기다려준 지수에게 다시는 등을 보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표절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은주는 입맛이 없고 헛구역질까지 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력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진다. ●해피투게더(KBS2 오후 11시5분) 학창시절, 왕방울만 한 눈에 여자보다 더 뽀얀 피부로 유난히 튀었던 김희철. 가만히 앉아서 여학생들을 울렸던 꽃미남 김희철의 파란만장 스토리가 공개된다. 역시 ‘작업´에 능수능란했던 홍록기. 친구의 리얼한 증언으로 들어보는 작업의 비법을 소개한다. 당시 작업의 필수 조건이던 ‘댄스 3종 세트´도 공개된다. ●메리대구 공방전(MBC 오후 9시55분) 패션쇼가 끝나고 옷을 입은 채 나간 대구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기분 좋게 걷다가 갈 데가 없자 서점에 들어선다. 대구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소란에게 메리는 왜 그러냐며 캐묻고, 그 사람 좋아하냐는 말에 집주소를 알려준다. 대구에게로 가려던 소란은 전략이 필요하다며 작전을 바꾸기로 한다. ●쩐의 전쟁(SBS 오후 9시55분) 주희를 부른 지점장은 “인사부에서 지방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며 대출정보를 넘겨달라고 윽박지른다. 보스를 찾아간 나라는 2억원을 내놓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고 상기시킨다. 나라가 펀드매니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보스는 나라에게 함께 일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는데….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25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최고(最古)의 신문사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세계의 다른 많은 신문사들과 함께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현주소를 통해, 언론의 위상과 가치를 재조명해 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멕시코는 한국의 중남미 수출 물량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주요 교역국이다.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면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 업체들의 투자로 고용이 창출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현지의 근로 문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 [박기철의 플레이볼] 팀 순위 결정 방식 새로운 제안

    돔 구장 설립 구체화, 해외 진출 선수들의 복귀,10년 만에 최단 경기 100만 관중 돌파 등 프로야구에 희소식이 쏟아진 지난주 말, 서울여대에서는 작지만 의미있는 모임 하나가 열렸다. 전국의 통계학과, 체육학과를 중심으로 스포츠 통계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모여 가진 연구발표회였다. 이 가운데 원광대 수학정보통계학부의 김혁주 교수가 제안한 팀 순위 결정 방식 중 가장 간단하고 이해가 쉬운 것을 하나 소개한다. 프로야구의 순위 결정 방식에서 항상 초점이 되는 문제는 무승부다. 현재의 방식은 무승부를 제외하고 승을 승패의 합으로 나누어 승률로 하고 이 순서로 순위를 정한다. 프로야구는 출범이후 계속 이 방식을 채택해오다 1987년부터는 무승부에 0.5점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기도 하고 2003년에는 다승제를 채택하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원래 방식으로 돌아왔다. 무승부를 제외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 방식은 무승부 경기를 승패가 결정된 경기의 승률로 인정한다. 14일 현재 1위 SK는 31경기를 치러 18승11패2무로 승률 .621이다. 여기서 무승부인 두 경기의 승률을 18승11패를 올린 승률과 같다고 보는 방식이다. 무승부 경기를 인정하지 않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순위 결정 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지 않는다. 심한 경우 한 시즌에 10경기 이상의 무승부가 나오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가끔 소란의 주범이 된다.극단적인 예로 3승7무를 한 A팀과 9승1패를 한 B팀이 있다면 지금 방식은 A팀이 승률 1.000이고 B팀은 .900으로서 A팀의 순위가 앞선다.B팀이 더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무승부 제외 순위 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이다. 두 팀이 똑같이 3연패를 당했을 때 A팀은 3승7무3패,B팀은 9승4패가 된다는 사실을 보면 현재의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다. 김 교수가 제안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승을 승패의 합이 아니라 경기의 합으로 나누는 것이다. 현재 승률 계산 방식의 분모인 승+패에 무승부를 추가한 방식이다. 이 방식이라면 A팀은 승률 .300,B팀은 .900으로 B팀이 앞선다.A팀의 승률은 엄청 줄어들지만 사실 이것이 스포츠적인 정서나 자연 섭리에는 어울린다. 이 방법을 쓰면 다른 장점도 있다. 다승제를 채택할 때 가장 큰 문제가 팀 간에 서로 치른 경기수가 다르면 승점에 따른 순위는 시즌 종료 뒤에 나타날 순위와는 괴리가 생긴다.100경기를 치른 팀의 승점이 150이고 90경기를 치른 팀의 승점이 145라면 승점이 적은 팀이 오히려 모든 경기를 마쳤을 때 승점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새 방식은 치른 경기수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럴 염려도 없다. 하지만 이 방법도 약점은 있다. 전체적으로 승률이 낮아진다.1위 SK의 승률은 .621에서 .581로,7위 삼성은 .444에서 .414로 낮아진다. 그럼에도 이 제안은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김석의 갯바위 통신] 남해안 벵에돔낚시

    [김석의 갯바위 통신] 남해안 벵에돔낚시

    감성돔은 바닥낚시! 벵에돔은 전층낚시! 많은 바다낚시인들이 공감하는 두 대상어의 공략기법이다. 그래서 감성돔낚시를 할 때는 채비가 바닥층을 긁어야 하고, 많은 채비를 뜯겨야 한마리의 감성돔 얼굴을 볼 수 있다. 반면 밑밥과 미끼를 동조시켜 전 수심층을 탐색하며 입체적 공략을 하는 벵에돔 낚시에서는 하루 몇수 정도의 벵에돔 얼굴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벵에돔을 목표로 출조하는 날에는 ‘꽝’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낚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남해안 곳곳은 아기자기한 벵에돔 낚시가 절정이다.5월부터 9월에 이르는 하절기 벵에돔낚시 시즌이 개막되면서 많은 바다낚시인들을 바다로, 바다로 부르고 있다. 이제 벵에돔 사냥을 떠나보자. 먼저 벵에돔의 습성부터 알아야 한다. 벵에돔은 바닥층에서 수면상층부까지 전층을 자유롭게 유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당일 현장의 유영층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조건이 맞지 않을 때는 바닥층에 웅크리고 있다가 내려오는 미끼만 받아 먹지만, 활성도가 좋을 때는 밑밥을 따라 수면까지 떠올라서 낚시인들을 깜짝 놀라게도 한다. 밑밥에 반응해서 잘 올라오던 벵에돔도 주변환경이 소란스럽거나, 수온의 변화가 생기면 곧 입을 닫아 버린다. 바닥층에 냉수대가 형성되면 수면층으로 일제히 떠올라 둥둥 떠다니기도 하지만, 전혀 입질은 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도 연출된다. 보통의 상황에서는 수면층과 중층, 바닥층 중 어느 곳에서 유영하고 있는지만 파악하면 군집성이 강한 벵에돔을 팔이 저리도록 낚아낼 수 있다. 따라서 감성돔낚시처럼 바닥층에 고정되는 일관된 낚시 형태보다, 찌밑수심을 수시로 조정하면서 수면 상층부에서부터 바닥층까지 골고루 탐색을 하며 첫 입질을 받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투박한 채비다. 겨우내 사용하던 대물감성돔 채비를 그대로 벵에돔낚시에 사용한다면 껌벅이는 찌만 보게 되고, 쑤욱∼쑥 들어가는 벵에돔의 시원한 입질은 좀처럼 받아내기 힘들 수도 있다. 낚싯대와 릴은 감성돔 채비에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나, 원줄은 다소 가는 2호 내외, 목줄은 1.2∼1.5호 정도를 쓰는 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가는 줄을 쓰는 이유는 벵에돔이 바닥층보다는 중·상층부에서 주로 입질을 해 원줄·목줄 등이 수중여에 쓸릴 위험이 감성돔낚시에 비해 덜 하기 때문이다. 여수 포인트24시 출조전문점 011-9624-0049.
  • [Seoul In] 중구의회 김연선 의원 제명

    서울 중구의회는 제148회 임시회를 열고 “지방자치법 제34조 제2항 규정에 의거, 의원으로서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김연선 의원에 대해 제명을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의회에 따르면 김 의원은 지난 3월29일 상임위원회 회의 때 본인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자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등 큰 소란을 피웠다. 유리컵을 바닥에 내리쳤으며, 의사봉으로 탁자의 유리를 수차례 깼다.‘너 몇 살이야, 네가 위원장이야.’ 등 고함을 지르면서 상임위원장을 밀치기도 했다. 더구나 이 장면이 녹화된 CCTV가 TV를 통해 방송돼 중구의회의 위상을 크게 실추시켰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김석의 갯바위 통신] 남해안 벵에돔낚시

    [김석의 갯바위 통신] 남해안 벵에돔낚시

    감성돔은 바닥낚시! 벵에돔은 전층낚시! 많은 바다낚시인들이 공감하는 두 대상어의 공략기법이다. 그래서 감성돔낚시를 할 때는 채비가 바닥층을 긁어야 하고, 많은 채비를 뜯겨야 한마리의 감성돔 얼굴을 볼 수 있다. 반면 밑밥과 미끼를 동조시켜 전 수심층을 탐색하며 입체적 공략을 하는 벵에돔 낚시에서는 하루 몇수 정도의 벵에돔 얼굴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벵에돔을 목표로 출조하는 날에는 ‘꽝’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낚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남해안 곳곳은 아기자기한 벵에돔 낚시가 절정이다.5월부터 9월에 이르는 하절기 벵에돔낚시 시즌이 개막되면서 많은 바다낚시인들을 바다로, 바다로 부르고 있다. 이제 벵에돔 사냥을 떠나보자. 먼저 벵에돔의 습성부터 알아야 한다. 벵에돔은 바닥층에서 수면상층부까지 전층을 자유롭게 유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당일 현장의 유영층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조건이 맞지 않을 때는 바닥층에 웅크리고 있다가 내려오는 미끼만 받아 먹지만, 활성도가 좋을 때는 밑밥을 따라 수면까지 떠올라서 낚시인들을 깜짝 놀라게도 한다. 밑밥에 반응해서 잘 올라오던 벵에돔도 주변환경이 소란스럽거나, 수온의 변화가 생기면 곧 입을 닫아 버린다. 바닥층에 냉수대가 형성되면 수면층으로 일제히 떠올라 둥둥 떠다니기도 하지만, 전혀 입질은 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도 연출된다. 보통의 상황에서는 수면층과 중층, 바닥층 중 어느 곳에서 유영하고 있는지만 파악하면 군집성이 강한 벵에돔을 팔이 저리도록 낚아낼 수 있다. 따라서 감성돔낚시처럼 바닥층에 고정되는 일관된 낚시 형태보다, 찌밑수심을 수시로 조정하면서 수면 상층부에서부터 바닥층까지 골고루 탐색을 하며 첫 입질을 받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투박한 채비다. 겨우내 사용하던 대물감성돔 채비를 그대로 벵에돔낚시에 사용한다면 껌벅이는 찌만 보게 되고, 쑤욱∼쑥 들어가는 벵에돔의 시원한 입질은 좀처럼 받아내기 힘들 수도 있다. 낚싯대와 릴은 감성돔 채비에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나, 원줄은 다소 가는 2호 내외, 목줄은 1.2∼1.5호 정도를 쓰는 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가는 줄을 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벵에돔이 바닥층보다는 중·상층부에서 주로 입질을 해 원줄·목줄 등이 수중여에 쓸릴 위험이 감성돔낚시에 비해 덜 하기 때문이다. 여수 포인트24시 출조전문점 011-9624-0049.
  • [인터뷰] 국내 첫 외국인 교생 마크 토마스

    [인터뷰] 국내 첫 외국인 교생 마크 토마스

    “헬로우! 수업 시작해도 되죠?” 한국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영국인 교생 마크 토마스(29). ‘국내 최초의 외국인 교생’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만났다. 서울 전동중학교에서 지난 2일부터 한달 일정의 교생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이미 한국 학교에 완전히 적응한 듯 했다. “선생님은 왜 맨날 늦어요?” 라며 장난을 거는 학생들에게 “내가 언제 늦었는데?”라고 받아칠 만큼 여유도 생겼다. 아직은 조금 어눌한 한국어지만 “여러분 조용히 해”라며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모습은 한국 선생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을 따라 여행 왔다가 한국이 좋아져서 아예 눌러앉은 그는 이곳에서 선생님이 되려고 한 이유를 묻자 “영국에서보다 한국에서 가르치는 일에 더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2002년에 와서 5년째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사람들이 모두 좋고 한국 문화도 좋아한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며 한국 생활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음식을 다 같이 떠먹는 찌개문화가 어색했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가는 대중목욕탕은 아직도 어렵다.”며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적인 차이도 있음을 밝혔다. 자신에 대한 질문에는 수줍어하던 그가 학생들에 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무척 소란스러워서 통제가 되지 않았다.”며 힘들었던 기억을 먼저 꺼내놨다. 그러나 곧이어 “이제는 괜찮다. 친해져서 힘들었던 것들은 다 잊어버렸다. 교생 실습이 끝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며 짧은 시간에 많이 가까워진 학생들과의 관계를 말했다. 끝으로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묻자 “친구처럼 편안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히며 수줍게 웃었다. 외국인 교생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어떨까. 그가 담당하고 있는 1학년 2반 학생들은 “멋있어요, 너무 인자해요”라고 입을 모으며 그의 영국 신사다운 성품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고 함께 교생 실습중인 김유라(24) 씨는 “외국인이라 학생들이 오히려 더 잘 따른다.”며 부러워했다. 한편 그의 지도교사인 장윤숙 선생님은 “무척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면서도 “흔히 쓰이는 한자를 몰라 수업이 끊길 때도 있다.”며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언론에 내내 시달렸을 그가 “오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라며 오히려 먼저 인사를 건내는 모습에서 친절한 예비 선생님을 느낄 수 있었다. 나우뉴스 손진호, 박성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슈퍼주니어, 왜 이럴까

    ‘욕설파문, 주민-팬클럽간 폭행에 이어 교통사고까지’ 인기 아이들그룹 ‘슈퍼주니어’가 잇따른 악재로 인해 연예활동에 비상이 걸렸다. 슈퍼주니어는 지난 19일 KBS2 FM ‘슈퍼주니어의 키스더라디오’ 진행을 마친 뒤 스타크래프트 승합차로 이동하다 밤 0시17분쯤 서울 동작대교∼반포대교 방향 올림픽대로에서 차가 뒤집혀 타고 있던 멤버 4명과 매니지먼트 관계자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한 규현(본명 조규현)은 CT 촬영결과 골반과 갈비뼈가 부러지고 기흉(흉막강 안에 공기나 가스가 차는 상태)이 생겨 가슴에 관을 박고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서울병원에 입원중인 이특(박정수)과 은혁(이혁재)도 유리 파편을 빼내는 수술을 받고 CT 촬영을 마쳤다. 사고자 중 신동(신동희)만 유일하게 경상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교통사고로 이들의 방송활동에 커다란 차질이 예상된다. 현재 이특과 은혁이 DJ를 맡고 있던 KBS 라디오 ‘슈퍼주니어의 키스더라디오’는 19일 같은 팀 멤버 성민과 려욱이 임시 DJ로 나섰다. 신동이 진행을 맡기로 한 MBC TV ‘뽀뽀뽀 아이 조아’ 또한 출연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15일에는 서울 청담동 슈퍼주니어의 숙소인 모 빌라 앞에서 10대 팬들과 주민들간 충돌을 빚기도 했다.70여명의 극성팬이 노래를 부르고 고함을 지르는 소동이 오후까지 이어지자 참다 못한 주민 김모(51)씨가 10대 여학생 2명을 쓰레기 집게로 때려 경찰에 입건된 것. 평소에도 팬들의 소란으로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입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슈퍼주니어 측의 이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일에는 멤버 동해(본명 이동해)가 중국 공항에서 팬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나돌아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7회 ‘음악풍운방’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을 때 2000여명의 중국인들이 슈퍼주니어를 보기 위해 몰려들자 동해가 “아이씨 나오라고 XX”이라고 욕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 퍼진 것. 이에 동해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정말 마음 속 깊이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있다.”며 “중국에 계신 팬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슈퍼주니어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요즘 왜 슈퍼주니어 멤버들에게 이런 일들이 자꾸 겹치는지 너무 걱정되고 마음 아파요. 빠른 쾌유 빌어요.’(UniqueLucy) ‘황금돼지 해에 웬 날벼락인가요. 그저 오빠들이 많이 안 다쳤으면 좋겠네요.’(frosty1004) 등 팬들의 위로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6인조 슈퍼주니어의 활동에 대해 아직 논의할 단계는 아니지만 멤버 중 세명이 사고를 당해 활동중단 여부를 고민중”이라고 밝혔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인터뷰] 외국인 ‘첫 교생’ 마크 토마스

    “헬로우! 수업 시작해도 되죠?” 한국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영국인 교생 마크 토마스(29). ‘국내 최초의 외국인 교생’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를 만났다. 서울 전동중학교에서 지난 2일부터 한달 일정의 교생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이미 한국 학교에 완전히 적응한 듯 했다. “선생님은 왜 맨날 늦어요?” 라며 장난을 거는 학생들에게 “내가 언제 늦었는데?”라고 받아칠 만큼 여유도 생겼다. 아직은 조금 어눌한 한국어지만 “여러분 조용히 해”라며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모습은 한국 선생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을 따라 여행 왔다가 한국이 좋아져서 아예 눌러앉은 그는 이곳에서 선생님이 되려고 한 이유를 묻자 “영국에서보다 한국에서 가르치는 일에 더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2002년에 와서 5년째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사람들이 모두 좋고 한국 문화도 좋아한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며 한국 생활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음식을 다 같이 떠먹는 찌개문화가 어색했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가는 대중목욕탕은 아직도 어렵다.”며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적인 차이도 있음을 밝혔다. 자신에 대한 질문에는 수줍어하던 그가 학생들에 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무척 소란스러워서 통제가 되지 않았다.”며 힘들었던 기억을 먼저 꺼내놨다. 그러나 곧이어 “이제는 괜찮다. 친해져서 힘들었던 것들은 다 잊어버렸다. 교생 실습이 끝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며 짧은 시간에 많이 가까워진 학생들과의 관계를 말했다. 끝으로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묻자 “친구처럼 편안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히며 수줍게 웃었다. 외국인 교생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어떨까. 그가 담당하고 있는 1학년 2반 학생들은 “멋있어요, 너무 인자해요”라고 입을 모으며 그의 영국 신사다운 성품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고 함께 교생 실습중인 김유라(24) 씨는 “외국인이라 학생들이 오히려 더 잘 따른다.”며 부러워했다. 한편 그의 지도교사인 장윤숙 선생님은 “무척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면서도 “흔히 쓰이는 한자를 몰라 수업이 끊길 때도 있다.”며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언론에 내내 시달렸을 그가 “오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라며 오히려 먼저 인사를 건내는 모습에서 친절한 예비 선생님을 느낄 수 있었다. 디지털콘텐츠팀 글 :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 영상 :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회플러스] ‘김기사’ 김철민 술먹고 난동

    서울 마포경찰서는 12일 술에 취해 지구대에서 소란을 피운 인기 개그맨 김철민(24)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1시쯤 마포구 망원동에서 술에 취해 택시기사와 요금 문제로 승강이를 벌이다 지구대로 온 뒤 30여분 동안 경찰관을 상대로 난동을 부린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MBC 인기 개그프로그램인 ‘개그야’ 의 ‘사모님’코너 에서 ‘김기사’ 역할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 [열린세상] 용수철 개혁과 서울시 3% 퇴출제/최병대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용수철은 평상시에는 본래 모습으로 있다가 힘이 가해지면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 힘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우리의 공직사회를 지칭할 때 자주 용수철이론에 적용시켜 보곤 한다. 중앙정부이건 지방정부이건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개혁이다, 혁신이다 하며 요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이란 미명하에 각종 제도와 위원회를 양산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하지만 정권말기에는 하나같이 시작할 때의 그 의지는 온데간데없고 국민들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노 대통령은 이전의 어느 대통령보다도 정부의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아무리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혁신관련 회의나 행사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참석하여 혁신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국민들은 노 대통령의 혁신의지가 체감되지 않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참여정부 혁신의 전도사로 불리고 있는 오영교 동국대총장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사람에 의한 개혁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한 개혁체제를 구축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공로가 인정되어 청와대 정부혁신특보와 행자부장관으로 발탁되었다. 작년에 공기업옴부즈맨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KOTRA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혁신적이며 역동적인 모습은 별로 체감되지 않았다. 이즈음 KOTRA는 공기업평가 때 고객만족도조사결과를 실제보다 부풀려 이미 지급받은 성과급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오영교 사장 재직시에 혁신의 선도기관으로 칭송받던 기관이 비판의 대상으로 추락한 데에는 공공기관이 조금이라도 혁신에 대한 틈새를 보이면 용수철과 같은 회귀본능이 발동함을 보여주고 있다. 지방정부도 중앙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요란스럽게 새로운 구호와 정책들이 쏟아진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취임이후 줄곧 서울을 세계 10위권의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창의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시정’을 표방했다. 최근에는 부서마다 획일적으로 3%의 무능·불성실 공무원을 ‘현장시정추진단’에 편입시켜 철밥통 공무원의 퇴출을 유도한다고 하여 서울시가 소란스럽다. 열심히 일하며 창의적인 공무원을 우대하고 무능하고 나태한 공무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퇴출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조직 안팎으로부터 공감을 얻어야 한다. 우선 획일적으로 3%의 공무원을 부서별로 일시에 차출하려는 방법의 부적절성이다. 만약 공직사회에서 생산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장애요소가 된다면 3%가 아니라 30%라도 퇴출시켜야 한다. 부서별로 일시에, 일률적으로 3%라는 방식은 공감하기 어렵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정하고 누적된 자료를 토대로 무사안일한 공무원이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일시에 획일적인 3% 방식을 적용하여 인사교류 대상자에게 1∼5순위 희망부서를 신청하도록 하고, 선택받지 못하면 퇴출 대상자로 전락시킬 경우, 최대의 피해자는 정년을 목전에 둔 자, 동료애의 발로가 어려운 전산직 같은 소수직렬이나 힘없는 기능직으로 쏠릴 것은 불문가지이다.‘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의 냉소주의가 만연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원점에서 제도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지혜를 모으고 용수철 같은 개혁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병대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 [토요영화]

    ●역전에 산다(SBS 밤 12시5분) 2003년 개봉했던 이 영화는 진정한 ‘인생역전’이란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어긋난 관계를 회복해 가는 소박한 미덕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주인공 승완(김승우)이 우연히 접한 다른 차원의 삶을 통해 불화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혼위기에 있던 아내 지영(하지원)과 화해를 통해 익숙한 것들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그 순간 변화와 사랑이 찾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네티즌 평점 6.98(10점 만점). 어릴 적 골프 신동에서 퇴출 직전 증권사 영업사원으로 전락한 승완. 눈치 없고 순진한 탓에 직장에서 왕따인 승완은 조폭 마강성의 투자금을 한 회사에 투자했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쫓기고 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터널 속을 질주하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한 남자를 만난 뒤 터널 벽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다. 정신을 차려보니 승완은 자신이 어려서 꿈꾸던 골프 스타가 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내인 인기여배우 지영은 갑자기 착해진 승완을 보며 이혼을 결심했던 마음이 흔들린다. 뜻밖에도 승완에게는 세계 챔피언 빌 잭슨과의 골프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다. 골프채를 놓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승완은 이제 막 자신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지영을 위해 꼭 우승하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에 몰입한다. ●시실리 2km(MBC 밤 12시30분) 2004년 개봉 당시 ‘TTL소녀’임은경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 임창정, 권오중의 코믹연기가 돋보인다. 조직의 다이아몬드를 갖고 도주한 석태(권오중)는 시골마을 시실리에 숨어든다. 그가 다이아몬드를 확인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떨어져 질식사할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죽었다고 생각해 땅에 묻어버리기로 한다. 석태를 쫓던 양이(임창정)가 휴대폰 위치추적으로 시실리를 찾지만 마을 주민들은 석태를 부인하면서 사건은 점차 미궁으로 빠져든다. 양이는 다이아몬드의 존재를 눈치 챈 마을주민들과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이 마을에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음을 알게 된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교도소 교정사고 10년새 3배 폭증

    교도소 교정사고 10년새 3배 폭증

    교정시설 ‘담장 안’에서 일어난 폭행·자살 등 교정사고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전문연구원과 법무부 교정국 류종하 보안경비과장이 공동연구 발표한 ‘교정사고의 처리 실태와 개선 방안’에 따르면 교정시설 안에서 발생한 교정사고 수가 1996년 292건에서 2005년 885건으로 10년 새 3배 이상 늘어났다. 전체 교정사고 중 폭행·상해는 2004년 67.6%,2005년 64.7% 등으로 가장 많았다. 또 수용자가 교정시설 직원을 폭행한 사고는 96년 6건으로 2.1%에 불과했지만 2004년 81건(12.7%),2005년 128건(14.5%)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수용자의 소란난동 역시 96년 3건에서 2005년91건으로 늘어나 전체 사고 중 10.3%나 차지했다. 교정 사고 발생 원인별로는 전체적으로 ‘우발적 충동이나 불만’의 경우가 가장 많았고 ‘처우 불만’ 등이 뒤를 이었다. 전과별로는 초범 수용자의 사고가 가장 잦았고 뒤이어 5범 이상 수용자의 사고 비중이 높았다. 한편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자살이 교정시설에서도 급증,96년 9건이던 것이 2004년 12건,2005년 16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잇따른 자살 사고 방지책으로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혼거실 수용을 장려하고 있지만,2005년의 경우 독거실 수용자 자살이 4건 발생한 데 비해 혼거실에서는 두 배인 8건이 발생, 별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자살 사고 원인별로는 2003년의 경우 ‘중형선고 예상’이 40%로 가장 많았고 2004년에는 ‘소외감 등’이 33.3%,‘중형선고 예상’이 25%로 나타난 반면,2005년에는 ‘출소 후 생활비관’이 37.5%,‘범죄 죄책감’이 18.8%로 높은 비중을 보였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불량 노숙인’ 오죽했으면…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 대합실 일부가 심야시간대에 폐쇄된다. 한국철도공사 부산지사는 23일 최근 ‘불량 노숙인’들이 야간에 대합실을 점령해 음주소란, 고성 방가, 구걸 행위등을 일삼아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1층과 3층 대합실 일부를 오는 28일부터 폐쇄 조치한다고 밝혔다. 폐쇄 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5시간 동안이다. 철도공사측은 지난해 절도·폭력·기물파손 등 노숙인들이 일으킨 형사사건이 41건, 역사 내 소란 흡연 등 행정사건이 1600여건에 달해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부산역 노숙인 수는 남성 200여 명, 여성 10여명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졌다. 철도공사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7월1일 ‘노숙인 없는 부산역’을 선포할 계획이며 부산 동부경찰서의 협조를 통해 노숙인들의 범법행위를 강력단속해 나갈 방침이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대합실이 폐쇄되더라도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1번 매표창구는 상시 개방한다.”며 “부산역을 쾌적하게 만들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문화마당] 아버지의 2월/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시인

    여느 해보다 따뜻한 2월이 왔다 간다. 설날이 지나가고 새 학기가 다가온다.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오고 신입생들이 학교로 들어가려고 준비한다. 세상이 아무리 소란해도 젊은 세대들은 겨울의 얼어붙은 밭에서 새순이 돋듯이 솟아나온다. 설날의 미덕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가족을 통해 자기를 되새겨 보고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 데 있다. 그런데 가족의 중심에 서야 할 아버지의 자리는 축소되고 없어져버린 것 같다. 아버지의 처진 어깨가 유난히 커 보인다. 어머니의 자리가 좀더 커진 것 같지만 그 또한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자리일 것이다. 산업사회가 대가족제도를 붕괴시켰고 디지털 사회가 핵가족마저 붕괴시키고 나면, 인간 존재는 가족이라는 끈을 잃어버리고 낱개의 존재로 고독하고 음울하게 살아갈 것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되고 우울증이 심화되며 자살률이 급증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2006년도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수상 기념연설 ‘아버지의 가죽가방’은 전세계인을 잔잔하게 감동시킨 바 있다. 젊은 시절 문학 지망생이었지만 별 볼 일 없는 문인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가죽가방으로부터 그의 문학이 유래했다고 그는 말했다.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자신의 뜻을 접고 파지에 가까운 글을 가죽가방에 남기고 간 아버지의 유언은 파묵에게 삼류 문사로 세상을 살다 갈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되었다. 남의 글을 아류적으로 추종하는 한 제대로 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은 파묵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커다란 유산이었다. 아버지 없는 아들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미 아버지가 새로운 세대의 전범이 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전 시대와의 단절을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 시대의 교훈을 질료로 삼지 않은 전진이란 불가능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전 시대와 단절된 전진은 일시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언제나 더 큰 대가를 치러왔다는 것이 인류사의 교훈이다. 2월을 보내면서 고형렬 시인의 시집 ‘밤 미시령’을 다시 읽어 보았다. 여러 시 중에서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가 인상적이었다. 겨울방학을 보내고 개학이 다가오는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명태를 구워 먹던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라 그도 또한 아들과 더불어 명태를 구워 먹으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아버지가 되려고 아들을 불러 앉히고 그 중태를 죽죽 찢어 입에 넣어주었다. 그 황태 간 있던 곳에서 눈냄새가 나고 납설수 냄새도 나자 아버지 냄새가 났다. 슬프다기보다 50년 신춘에 이렇게 건태 뜯어 먹는 버릇도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들도 나를 닮을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에 이런 이야기는 시인의 추억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가고 시인도 가고 나면 그의 말대로 시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친구처럼 명태를 구워 먹는 기억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아주 삭막하게 단절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첨단을 간다고 하더라도, 아니 디지털 시대의 첨단을 가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친구처럼 함께 사는 삶이 필요하다. 누구나 스스로 존재하는 독자적 개체이지만 그 독자성은 가족 구성원을 중심으로 방사적인 그물망을 구성하고 있다. 그 그물망이 조금이라도 훼손된다면 정서적·개체적 중심도 흔들리게 된다. 아버지만 존재하고 아들은 없던 권위주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의 젊은 세대가 결코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 없는 젊은 아들만의 시대는 그보다 더 불행한 시대일 것이다. 아버지를 부정하라. 그러기 위해 눈 냄새 나는 아버지의 잘잘못을 제대로 배우라.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시인
  • “모나리자 안내 힘들다”佛박물관 파업

    |파리 이종수특파원|‘모나리자의 미소’가 무서워?’ 14일(현지시간) 파리의 주요 박물관인 루브르와 오르세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무료 입장일인 첫째 일요일이 아닌데도 이날 오후 루브르 방문객들은 공짜로 명작을 감상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에 견줘 오르세 박물관은 개장일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지 않아 방문객들이 허탕을 쳤다. 사연은 이렇다. 두 박물관 안내원들이 15일 파업 돌입에 앞서 이날 ‘실력 행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루브르 안내원들은 매표소에 이르는 길을 봉쇄했고 오르세 일부 직원들은 일손을 놓아 개관에 필요한 인력이 부족했다. 파업 주체는 ‘모나리자’나 ‘비너스’ 등 루브르 명작 코너를 안내하는 직원들. 이들은 업무가 너무 힘들다며 수당 인상과 근무 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그러자 노조연맹의 하나인 ‘연대·단결·민주주의’(SUD)의 문화분야 지부에 같이 소속된 오르세 박물관 직원들도 파업에 동참한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루브르 박물관 안내원들의 ‘명작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루브르 박물관 노조의 크리스텔 기아데르는 “방문객수는 2005년 750만명에서 2006년 830만명으로 늘어났는데도 안내원수는 늘어나지 않았다.”며 “더 많은 전시실이 문을 열면서 우리 업무는 단순히 인파를 통제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다른 안내원은 “명작 코너를 찾는 인파 때문에 소란이 그치지 않아 참을 수 없다.”며 “특히 ‘모나리자’ 등 인기있는 걸작 코너는 더 힘들다.”고 호소했다. 이어 “무료 입장을 하는 날에는 평균 6만 5000여명이 몰려드는데 견디기 힘들고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덧붙였다. ‘모나리자’ 코너의 안내원들은 방문객들이 카메라 플래시 단속에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루브르 박물관측은 공식성명서에서 “전체 직원 가운데 5%만 파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viele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 임진왜란,누르하치,그리고 조선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6) 임진왜란,누르하치,그리고 조선 Ⅲ

    1405년 퉁밍거티무르가 입조(入朝)해 건주위도지휘사에 임명된 이래 명의 여진족에 대한 포섭작업은 가속이 붙었다. 영락제(永樂帝)는 1409년 흑룡강, 우수리강 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총괄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노아간도사(奴兒干都司)라는 기관을 설치했다. 퉁밍거티무르를 비롯한 여진족 추장들은 노아간도사 아래 편제된 수많은 위소(衛所)들의 장(長)으로 임명돼 명의 신하가 되었다. 명은 위소 우두머리의 임명과 위소 상호간의 분쟁에는 개입했지만 위소의 통치는 여진족의 자율에 맡기는 체제를 만들었다. 만주에 대한 명의 지배는 점차 확고해져갔다. 이제 조선이 ‘고구려의 고토’ 만주를 수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명 견제하의 조선-여진관계 영락제가 만주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고히 했던 뒤에도 조선과 여진의 관계가 단절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조선은 여전히 오도리, 오랑캐, 우디캐 등 여진 종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속했다. 여진인들은 조선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한양에 와서 조공했다. 조선은 입조했던 추장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회사(回賜)라는 명목으로 각종 물자를 제공했다. 태조부터 성종(成宗) 때까지 여진족들의 조공 횟수는 거의 1100차례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여진족 가운데는 아예 조선에 귀화를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조선은 귀화한 여진인들을 향화인(向化人)이라 부르며, 그들을 내지로 이주시켜 집과 땅 등의 생활기반을 제공했다. 조선은 1406년 경원(慶源)에 무역소(貿易所)를 설치해 여진족들과의 교역을 허용했다. 여진족들은 말, 모피, 진주 등 자신들의 특산물을 가져와서 면포, 소금, 솥, 농기구, 소(耕牛) 등을 바꿔갔다. 주로 수렵이나 유목에 종사하다가 점차 농경의 필요성에 눈떠 가고 있던 여진족들에게 조선에서 구입한 소나 농기구는 매우 소중했다. 조선과 여진 사이의 이같은 교류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일찍부터 조선과 여진의 교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명은 1458년(세조 4), 건주좌위 도독 동창(童倉)이 조선에서 벼슬을 받았던 사실을 알게 되자 양자의 접촉을 엄금했다. 하지만 여진족들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컸던 조선과의 관계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조선 또한 여진족들을 일종의 ‘울타리’로 생각했고, 그들을 초무(招撫)하여 몽골 침략 이래 보전하지 못했던 북방영토를 회복하고자 했다. 세종 연간 사군(四郡)과 육진(六鎭)을 설치해 압록강, 두만강 이남의 강역을 확보했던 것은 그같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조선은 또한 여진을 회유하여 스스로를 ‘상국’으로 자부하며 문화적 우월의식을 나타냈다.‘조선의 문물(文物)과 교화(敎化)를 사모하여 귀화한 여진인’을 뜻하는 ‘향화인’이란 말 속에 그같은 의식이 담겨 있었다. ●왜란시 절감한 누르하치의 위협 16세기 이후 여진족에 대한 조선의 관심은 15세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명이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조선의 여진 접근을 견제했던 영향이 컸다. 또 여진세력 자체가 조선 안보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이성량(李成梁)이 활약하던 16세기 후반까지는 여진족 내부에서 조선을 위협할 만한 유력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껏 두만강 부근의 여진족들이 간헐적으로 침략하여 변경을 소란하게 하는 정도였다. 16세기 후반 선조대에 이르러 조선의 권력은 사림파(士林派)에게 돌아갔다.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지향하던 그들은 ‘고구려 고토의 회복’과 같은 대외적 팽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명에 대해 공손히 사대(事大)만 잘하면 대외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여진이나 일본은 그저 교화시켜야 할, 조선보다 한 단계 낮은 ‘야만족’일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당시 한창 세력을 떨치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누르하치에 대해 정확한 정보나 인식을 가질 리 없었다. 정확하지 못한 대외인식의 귀결은 먼저 임진왜란으로 나타났다. 1592년 9월, 누르하치의 원병 파견 제의를 받은 조선이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야기한 바 있다.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선에 들어왔던 명군 지휘관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누르하치 군대의 ‘위력’을 이야기했다. ‘그들 기마군단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일본군에게 밀리면 도주하면 되지만, 누르하치 군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선조와 조정은 바짝 긴장했다. 그 와중에 1595년(선조 28), 산삼을 캐기 위해 평안도 위원(渭原)으로 잠입했던 건주 여진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이 조선 영내에서 소를 훔쳐가자 위원 군수 김대축(金大畜)이 여진인을 사로잡아 죽인 것이었다. 조선 조정은 이 사건 때문에 누르하치가 침략해 오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로 누르하치가 격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같은 해 10월, 선조는 신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올 수 없었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일본군과 맞서고 있는 현실에서 서북변 방어는 거의 방치돼 있었다. 그렇다고 남방의 병력을 빼서 서북쪽으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신충일(申忠一) 허투알라로 보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은 고육지책을 생각해냈다. 명의 권위를 빌려 누르하치의 침략을 견제한다는 복안이었다. 그 계책은 병조판서 이덕형(李德馨)이 주도했다. 이덕형은 명나라 장수 호대수(胡大受)를 움직였다. 호대수의 참모 여희원(余希元)을 건주여진 지역으로 들여보내 누르하치를 선유(宣諭)하도록 했다. 조선 관원에게도 중국인 옷을 입혀 동행시켰다. 1595년 11월, 여희원은 누르하치의 부장(副將)을 만나 여진인들이 조선 영내로 잠입한 것을 힐책하고, 조선에 보복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조선은 여희원을 통해 응급조치를 취한 후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선조는 누르하치를 회유하기 위해 비단을 제공하고, 이후 산삼을 캐기 위해 넘어오는 여진인을 죽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그들의 침략에 대비해 들판을 완전히 비우고 성에 들어가 방어하는 청야책(淸野策)을 연구할 것을 강조했다. 조선은 나아가 남부주부(南部主簿) 신충일(申忠一)이란 인물을 허투알라로 들여보냈다. 조선인의 눈으로 누르하치 진영의 상황을 직접 정탐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조처였다. 신충일은 1596년 1월, 허투알라를 다녀온 뒤 선조에게 상세한 보고서를 올렸다. 유명한 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가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 청 초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료로서 평가받고 있다. 신충일의 보고서를 본 뒤 선조는 “천지의 기세가 바뀌고 있다.”며 탄식했다. 이어 신료들에게 누르하치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북쪽의 ‘오랑캐’, 남쪽의 ‘왜구’ 이른바 북로남왜(北虜南倭)에 의해 포위된 조선의 현실을 새삼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정세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임진왜란을 불렀던 것은 과오였지만, 선조 정권의 누르하치에 대한 대책은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누르하치를 견제할 만한 자체 역량이 없는 현실에서 명의 권위를 이용하고,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높이 살 만하다.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위기를 겪으면서 역설적이지만 조선은 외교적 감각을 키웠던 것이다. 6자회담이 어렵사리 타결됐지만 동북아 평화를 위해 아직 갈길이 먼 오늘날, 선조대의 누르하치 정책은 소중하게 돌아보아야 할 역사의 거울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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