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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대한민국 24시] (4) 포경에서 관경으로… 진화하는 고래산업

    [新 대한민국 24시] (4) 포경에서 관경으로… 진화하는 고래산업

    지난 8일 오전 9시 울산 남구 장생포항. 30도를 훨씬 웃도는 날씨에도 전국에서 모인 관광객 350여명으로 부두가 떠들썩하다. 출항을 앞두고 들뜬 관광객들은 크루즈 선박 ‘고래바다여행’(550t·정원 399명)을 배경으로 벌써부터 기념사진 촬영에 홀린 듯하다. 한 차례 나가면 세 시간 남짓 물살을 가르는 이 배는 1~2개월 전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1986년 상업포경 금지 이전까지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장생포가 ‘포경’(捕鯨)이 아닌 ‘관경’(觀鯨·살아 있는 고래 구경)으로 재도약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여행선은 오전 10시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을 뒤로하고 선착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관광객들은 눈앞에 펼쳐진 시원한 동해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뱃머리에서 눈을 좌우로 돌리자 연안 경관이 그림처럼 와 닿는다. 무더위에 찌든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진다. 동방파제를 지난 여행선이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울기등대 쪽에서 고래 탐사가 시작됐다. 옅은 안개가 잔뜩 끼었다. 2m 높이의 파도도 여행을 가로막지 못했다. 금세 곳곳에서 “야, 고래다”라는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여행선은 20여분이나 바다를 선회했다. 그러나 허옇고 짙푸른 너울을 고래로 착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소동은 수그러들었다. 울산 남구가 2009년 7월 우리나라 관경산업에 첫발을 뗐다. 고래바다여행선 운항 첫해 3512명이었던 탑승객이 올해 4개월 만에 3만 3110명으로 늘어났다. 허문곤(54) 선장은 “한때 포경산업 덕분에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富)를 누렸던 장생포는 1986년 상업포경 금지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급속히 쇠락했다. 그런데 고래관광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관경산업은 2005년 5월 개관한 고래박물관으로 가능성을 활짝 열었고 고래바다여행선 운항으로 본격화됐다는 게 허 선장의 설명이다. 장생포를 찾은 누적 관광객은 2009년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제 연간 50만명 이상 몰린다. 3층 갑판에 모인 어린 승객들은 선체에 부딪히는 파도를 놀이기구 삼아 하얀 물보라에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는 금방이라도 물속에서 솟아오를 것 같은 고래를 놓치지 않으려고 잠시도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부모들은 이런 모습을 담으려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대구에서 왔다는 이영창(36)씨는 “여행선을 꼭 한번 타보고 싶었다. 네 살배기 딸이 아빠와 함께한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행선이 북쪽으로 기수를 돌리면서 울산항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대형 화물선들도 손가락만큼 작아졌다. 승객들은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유조선과 컨테이너선 등 대형 화물선도 손에 잡힐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울산항 앞바다에는 매일 10여대의 화물선이 입출항을 위해 정박한다. 허 선장은 “수온이 20도 이상 올라야 전갱이와 오징어 등 고래 먹잇감이 돌아와 고래를 볼 확률도 높아지는데 고래를 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선은 2009년 4월 시험 출항에서 1500여 마리의 참돌고래 떼를 발견한 이후 몇 차례 고래 떼 발견 소식을 전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고래 발견율은 30%에도 못 미친다. 운항 첫해 9.7%에서 이듬해 28.4%, 2011년 9.6%, 지난해 25%로 회복했지만, 올 들어 7월 말 현재 8.6%로 들쭉날쭉하다. 평균 14%다. 고래가 먹이를 따라 움직이는 회유성 동물인 데다 수온이 낮아지면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설령 고래를 발견하지 못해도 지루하지는 않다. 밴드 연주와 노래 등 다양한 공연이 이어진다. 음료를 마시거나 군것질도 2·3층에 마련된 스낵코너, 커피점, 매점 등에서 해결할 수 있다. 연안 야경 투어 땐 연인과 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커플 데이’, 시원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비어 파티’, ‘선상 재즈카페’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된다. 관광객 정종철(71·충남 서산)씨는 “서산 마룡마을에서 주민 24명과 함께 고래를 보러 왔다. 여기까지 왔으니 고래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할 고래관광 유람선을 탈 수 있어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허 선장은 “얼마 전 단체관광에 나선 경남 산청의 한 마을 어르신들이 고래를 봤다”면서 “입소문이 이웃 마을로 퍼져 산청군 지역 3개 마을 주민들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출항 1시간쯤 지나 장생포 동남방향 8.9마일(약 14.32㎞) 해상에 도착했다. 평소 고래가 자주 목격됐던 지점이라 승무원들의 눈빛도 빨라졌다. 승객들도 검푸른 바다를 주시했다. 배는 다시 항로를 확인하며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울주군 간절곶 앞바다로 이동하는 1시간여 동안에도 승객들의 고래 찾기는 계속됐다. 조타실에서 만난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연구사는 “울산항 앞바다는 대형 화물선의 운항이 많아 소리에 민감한 고래를 다른 곳으로 쫓아 보내는 나쁜 영향을 주고, 여행선이 다니는 연안도 고래 서식지가 아닌 지나는 길목이라 발견율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래 발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상 15마일(약 24.13㎞) 이상 나가야 하는데 여행선의 안전 문제상 먼 거리 출항이 허가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관경산업이 활성화되려면 혹등고래와 향고래, 긴수염고래, 범고래, 귀신고래 등 덩치가 크고 천천히 이동하는 고래가 많아야 한다”며 “이런 고래는 열대나 극지방에 주로 서식하면서 연안 아주 가까이에 머물 뿐 아니라 산란기에는 이동도 적어 60~70% 이상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장생포는 여행선과 연계한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마을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그나마 낫다”면서 “돌고래류와 밍크고래가 동해안을 따라 이동하지만, 혼자 다니는 밍크고래보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돌고래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관광객들은 안개 낀 궂은 날씨 때문에 이날 아쉽게도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고래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표정은 사뭇 밝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고래 이야기를 듣고, 배 위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래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래를 못 본 관광객들에게는 고래박물관 무료입장권이나 고래생태체험관 40% 할인 입장권이 주어진다.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은 어린이체험관·포경역사관·귀신고래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실제 고래를 잡던 포경선과 대형 브라이드 고래뼈를 전시하고 있다.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살아 있는 돌고래 4마리를 수족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남구는 고래관경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장생포 일대를 고래특구로 조성하고 있다. 공사가 한창인 ‘고래문화마을’은 내년 준공될 예정이다. 포경 전진기지였던 장생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 영화 세트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옛 장생포 마을’, 고래이야기와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고래산책로’ ‘고래뱃속 체험장’ 등이 들어선다. 고래전망대는 울산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래전망대에서는 현재 건설 중인 울산대교, 장생포항, 석유화학공단, 시내 전역을 볼 수 있다. 실물 크기의 고래조형물, 어린이를 위한 고래놀이터, 자연생태학습장인 수생식물원도 조성된다. 고래관광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행선은 매주 화~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한 차례 운항한다. 토요일엔 오후 1~4시와 7~9시, 일요일엔 오전 10시~오후 1시와 오후 2시 30분~5시 30분 각각 두 차례 운항한다. 글 사진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돈만 있으면 개도 명첨지 대접받는 세상인데…. 배고령이 가진 것이라고는 댕댕 소리 나는 불알 두 쪽밖에 없는 혈혈단신 가난뱅이라는 것입니다. 계집이 시집갔을 때, 시댁이 미주알이 찢어질 듯 가난하면 필경 매파를 원망할 것이고, 지각 없이 혼인을 주선한 어미를 미워할 것이고, 그 불평이 하늘에 닿을 것이다. 급기야 남편을 원수로 알 것이고, 바라보는 얼굴에 차디찬 원망이 사라질 날이 없을 것이다. 음식 수발은 시늉일 뿐일 것이니, 그 음식이 입에 달기는커녕 비상처럼 쓰디쓰겠지. 집안일은 물론이고 비가 내려도 비설거지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걸핏하면 울고불고 화내고 욕하고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 트집 잡고 늘어지겠지. 행패를 보다 못한 시부모가 꾸중을 한다 해도 귀담아 듣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낯빼기를 비틀어 꼽고 대들어서 시부모의 복장만 태울 것이다. 부모님께 아침에 문안 드리고 저녁에 자리까지 보아 드리는 것은 며느리로서 당연한 일인데, 시부모가 핀잔이라도 주면, 흰자위를 굴리면서 동네방네 쏘다니며 게거품을 물고 비방을 일삼겠지. 그렇게 되면 누가 시부모이고 누가 며느리인지 도무지 경계가 흐트러져 온 집구석이 억울함과 원망으로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 설사 제가 가진 재능이 남편의 열 배 스무 배가 된다 하여도 그 재능을 다른 남자를 찾아 헤매는 데 쓸 테지. 집안은 부창부수인데 매일 저녁마다 암탉의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마을에 울려 퍼지게 된다면, 그 집안에는 필경 재난이 닥치지 않겠느냐고…. 숫막을 열고 난 뒤 오가는 길손들로부터 들은 풍월은 많아서 구구절절이 주워섬기는데, 시생의 등에 진땀이 흘렀습지요.” 만기의 말에 정한조는 허허 웃고 나서, “오죽했을까…. 천지개벽이 된다 하여도 사태를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넋두리에 하소연을 늘어놓았겠지…. 월천댁도 숫막을 열고 있다지만, 옹색하기는 배고령과 다름없겠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옹색한 살림에 찌들다 보니까 푸념인들 오죽했겠나. 그 아낙네가 심덕이 무던해서 걸핏하면 덧거리를 많이 주어서 이렇다 할 이문을 바랄 수 없었지. 서둘러 혼수 장만하고 주과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니, 우리 접소에서 십시일반으로 갹출하여 혼수 장만해서 혼례를 치러야 하겠지. 배고령은 아직 모르고 있을 터, 흥부장에서 돌아오면 데리고 나가서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조용히 일러 주게.”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아 흥부장 어물 도가로 갔던 일행이 흥정을 하다 말고 허행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배고령이 장가들게 되었다는 소문은 누가 발설한 적도 없었으나 어느새 퍼져 만기가 조용히 불러내어 여러 사연을 통기할 것도 없게 되었다. 말래 접소에서 그런 소동을 벌이는 동안 천봉삼과 곽개천은 길세만을 데리고 내성장 임소에 머물러 있었다. 안동 부중으로 떠난 반수 권재만이 임소로 회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반수는 진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동 임소 도회에서 하회가 어떻게 떨어질지 궁금하여 목이 빠질 지경이었다. 내성 임소에서 양류밥이나 축내며 하회 기다리기를 사흘째가 되는 날 보발꾼으로부터 통기가 왔는데, 장차 열흘 정도는 기다려야 도회가 열릴 것 같으니 말래로 돌아가라는 전갈이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으나, 나선 김에 들러볼 곳이 없지는 않았다. 바로 내성에서 서벽(西碧)을 지나 옥돌봉* 아래의 박달령을 넘어 오래전 보부상들이 발견하였다는 오동나무골 약수터가 지척인 생달에 이르는 상로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생달을 오동나무골로 잘못 부르기도 하는 것은 서로의 상거가 오리정밖에 되지 않는 까닭도 있었는데, 서벽은 물야(物野)를 거쳐 주실내나 예비재를 거쳤고, 영주(榮州)는 삽재를 거치거나 입석(立石)에서 시냇물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그 상로는 사기점 사람들이 간혹 이용하는 장삿길일 뿐 내왕이 빈번한 곳은 아니었다. 생달 마을이나 그곳에서 오리정인 오동나무골 약수터에서는 성황당이 있는 박달령만 넘으면 곧바로 영월 땅이란 얘기만 들었지, 천봉삼이에겐 발새 익은 길이 아니었다. 아니래도 반수 권재만으로부터 말래에서 눈 빠지게 바라고 있는 하회가 떨어지면, 곧장 생달 마을을 얼추나마 둘러보고 말래 접소로 돌아갈 참이었다. 곽개천과 작반한 것은 그와 같은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달령 오른쪽으로는 옥돌봉과 구룡산 높은 뫼가 버티고 있고, 왼쪽 멀리로는 늦은목이를 껴안은 선달산이 버티고 있어 영월과 태백으로 오가는 등짐장수들은 필경 박달령을 넘는 지름길로 내왕해야만 일정을 줄일 수 있었다. 천봉삼이 그런 청을 하였을 때, 행중에서 지름길 찾는 일에 달통한 곽개천이 흔쾌히 승낙하였다. 길세만은 내성에 두고 가려 하였으나, 일행과 떨어져 있다가 큰 봉변을 당했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았던 길세만이 거의 우는 얼굴로 두 사람의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내성에서 생달까지는 불과 40리 노정이라, 발바닥에 날개를 달았다는 장정들 걸음으로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새벽에 발행하여 저녁 중화 먹기 전에 당도한 생달 마을에는 예견했던 것과는 달리 유숙할 길손을 받아 주는 숫막이라곤 허리는 매화나무 등걸처럼 휘고 얼굴에 저승꽃이 핀 노파가 경영하는 한 집밖에 없었다. 생달이 그처럼 피폐하게 된 연유는 강원도 영월 태백으로 드나들던 부상들이 박달재를 넘다가 고개치에서 출몰하는 도적에게 크게 봉변을 당한 뒤로, 내성에서 옥돌봉 기슭을 지나 구룡산 아래의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로 가는 길목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옥돌봉: 일명 옥석산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남정네가 냉담하시면 계집은 매우 무색하여 몸 둘 바를 몰라 처신이 매양 두서없고 거동이 주책없기 마련입니다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일 접소로 돌아가시면 동배간들이 야심한 터에 처소를 나간 곡절을 묻고 놀림가마리가 될 터인데, 어찌 감당하시겠습니까.” “몰래 나왔는데 눈치나 챘겠소” “어림없습니다. 내일 동 트기 전에 벌써 접소는 물론이고 왕피천 염막에까지 소문이 파다할 터인데요.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을 새가 듣는다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방 점고하는 질청의 호방은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손을 써놓았구려.” “진작에 인정전을 찔러주었으니, 귀동냥으로 눈치를 챘어도 한동안 못 들은 척하겠지요. 걸핏하면 면박을 잘하는 위인이긴 하지만, 그동안 관령 거역한 적도 없었으니 비위가 거슬려도 잠잠하겠지요.” “참으로 빈틈이 없구려.” “접장과의 일이라면 불을 들고 화덕으로 뛰어들라 해도 서슴지 않겠습니다.” “이런 낭패가 없구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정한조는 잠깐 눈을 붙였다 닭울녘이 되어 서둘러 지어준 새벽동자를 먹고 향임의 집을 나섰다. 뻐근했던 하초가 문득 가벼워진 것을 깨달았다. 손에는 향임이가 쥐여준 조그만 항아리 하나가 있었다. 마시라고 주는 견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길가에 흔히 있는 쇠비름을 뜯어 고은 것입니다. 오행초(五行草)라 하기도 하고 장명채(長命菜)라 부르기도 해서 장수의 명약이지요. 피를 잘 돌게 하고 악창을 다스리는 데 특효라 합니다. 하루에 한 숟갈씩 드시면 오래 사신답니다.” 항아리를 쥐여주며 향임이가 한 말이었다. 접소에 당도하였을 때는 아침 선반머리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접소의 헐숙청에 있어야 할 동배간들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10여 년째 접소에서 동자치 노릇하는 노파와 적굴에서 풀려난 후 그때까지 접소에서 양류밥을 먹고 있는 몇몇 늙은이들과 아녀자들이 비설거지를 하느라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한 잎에서 난 듯 지난밤에 자취를 감춘 연유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동배간들은 아침동자 먹는 대로 내왕 행보로 한식경에 상거한 흥부장 어물 도가나 염막으로 흩어진 뒤였다. 그들이 입도 뻥긋하지 않는 것에 주눅이 들어 살평상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진력나도록 우두망찰하는데, 마침 샛재로 갔던 만기가 비를 흠뻑 맞으며 종종걸음으로 접소에 당도하였다. “초례청을 차려 혼례를 치르기로 담판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만기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꿰고 있기에 지난밤의 일을 눈치챌까, 공연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만기가 초연한 척하겠지만, 눈치채게 된다면 필경 강새암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차제에 곡경을 치른다 할지라도 만기와의 사이를 이렇게 처분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한마디를 거들었다. “월천댁이 많이 놀라서 기함하고 말았겠지?” “한 지붕 밑에 한 이불을 덮고 잠들던 모녀지간에도 딴 꿍심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불찰이 자기에게 있다고 한탄하였습니다. 자기 속에서 내질린 피붙이라면 필경 자기 손바닥 속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숱한 풍진을 감내해왔는데, 종국에 가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이 되었다고 눈물을 질금거립디다. 시생을 신랑감으로 겨냥하고 있었던 것도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되었지요. 구월이가 진작 소동 커질 것을 알아채고 이웃에 몸을 숨겼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조리돌림으로 분풀이를 당했을 터지요. 두 눈을 흡뜨고 샛재 비석거리가 들썩하도록 들쑤시고 다녀도 구월의 행방을 찾아내지 못한 월천댁은 애매한 까치 소리에 돌팔매질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부아를 달래는 고초를 겪었지요.” “임자도 같이 곡경을 치렀겠구만.” “불구녕을 질러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습니다…가시나무 비녀와 삼베 치마로 몸가축을 한들 얼마 가지 않아 콧등이 땅에 닿을 늙은이에게 소생을 맡길 수 없다고 버티는 심지를 돌려놓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아침에 바람 불고 저녁에 비가 내리는 속에, 외로운 등불과 차디찬 벽을 마주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월천댁도 잘 알지 않소. 이미 배태까지 한 소생을 어미처럼 만들지 말고 심지를 다잡으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더니 한바탕 서럽게 울고 나서 한다는 말이 괴이하더이다.” “그건 무슨 소린가?”
  • [영상] 류현진, 경기 도중 갑자기 유리베 뺨을… “둘 사이 무슨 일이?”

    [영상] 류현진, 경기 도중 갑자기 유리베 뺨을… “둘 사이 무슨 일이?”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6·LA 다저스)이 경기 도중 후안 유리베(34)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포착돼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13일(이하 한국시각)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시즌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4대 2로 앞선 8회 말, 류현진이 덕아웃에서 유리베의 빰을 때리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됐다. 유리베가 뭔가를 말하자 류현진은 대답 대신 왼손으로 유리베의 오른쪽 빰을 내리쳤다. 강도는 약했지만 빰을 맞은 유리베는 곧바로 류현진의 손을 격하게 뿌리치며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베의 옆에 있던 헨리 라미레스(30)도 살벌한 표정으로 류현진을 바라봤고, 주변에 있던 선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류현진은 유리베의 정색한 표정을 보며 그 자리에 떠났고, 뒤돌아서 유리베를 묘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작은 소동에도 다저스는 메츠를 4대 2로 꺾으며 68승 50패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 자리를 지켰다. 2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60승 57패)와의 격차도 7.5 경기로 벌렸다. 류현진은 14일 오전 11시 10분 뉴욕 메츠와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시즌 12승에 도전한다. 한편 류현진과 유리베의 동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류현진, 유리베에게 뭔가 악감정이 있었나. 장난치곤 너무 심하다”, “류현진 이번 일로 팀내에서 문제가 돼 내일 경기에도 지장을 주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류현진과 유리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숨이 막힐 정도로 치를 떨던 월천댁은 울다 말고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정주간 뒤쪽에 있는 부엌 봉노로 내달았다. 애매한 구월이를 아주 요절낼 작심하고 지겟문을 돌쩌귀가 나가떨어져라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나 죽여주십사 하고 엎드려 있어야 할 구월이는 봉노에 없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챈 구월이는 진작부터 어디론가 피신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뒷덜미를 잡아채서 패대기를 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던 월천댁은 구월이가 보이지 않자 그만 어진혼이 빠져 불당그래와 삭정이들이 널려 있는 정주 바닥에 넉장거리하고 드러누워버렸다. “주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정주 바닥에서 넉장거리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풀어헤쳤던 젖무덤을 서둘러 수습한 만기가 허둥지둥 달려와서 손사래치며 앙탈하는 월천댁을 곁부축해서 가까스로 일으켜세웠다. 그러나 억장이 무너져 눈앞에서 헛것만 오락가락하는 궐녀는 곧장 만기를 뿌리치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울타리 밖으로 내달았다. 손바닥 같은 숫막거리라 할지라도 가뭇없이 숨으려는 구월의 처지와 그를 찾아 헤매는 월천댁의 처지는 사뭇 다른 법, 눈을 화등잔같이 뜨고 화냥년 보리방아 찧듯 두서없이 허둥지둥 소생의 거처를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북새통을 피우며 발서슴하고 다니던 중에 어느덧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심사도 얼추 가라앉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까닭이 모두 제 못난 탓이었다는 생각을 진작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만기를 남장 계집인 줄 모르고 김칫국을 떠먹은 불찰은 따지고 보면, 누워서 침 뱉기요, 똬리로 샅 가리기였다. 이렇게 날뛰는 단초가 모두 월천댁인 자기 실수였지, 구월의 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처럼 황당하고 뒤틀린 심사를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혈육인 구월이뿐이었기에 이런 소동을 벌인 것이 아닌가. 굽도 젖도 못하고 월천댁 숫막 툇마루에 앉아 있던 만기는 나무 비녀에 쪽진머리가 봉두난발이 되어 집으로 들어서는 월천댁을 우두망찰하고 있었다. 구월이를 찾아내지 못한 앙갚음으로 만기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뒤틀어잡고 앙탈을 부리지 않는 걸 보면 그나마 넋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지는 않았다. 툇마루에 앉아 있는 만기에게 힐끗 일별을 보내면서 월천댁은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육실할 년이 어디 숨어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나.” 일테면 뒤틀린 심사가 원망 반 걱정 반으로 바뀐 셈이었다. 궐녀는 툇마루 끝자리에 풀썩 엉덩이를 걸치면서 뇌까렸다. “이년 내 눈앞에 보이기만 해봐라…… 등에서 누린내가 나도록 패주고 다리몽생이를 싹둑 분질러서 문밖 출입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테니……” 만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토록 모진 악담을 퍼붓는 월천댁이 구월이가 나이로 치면 삼촌뻘인 배고령과 정분을 터왔고 그로 말미암아 배태까지 했다고 직토를 해버린다면 어떤 몰골이 될까. 평소에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밭의 개똥도 줍지 않을 만치 소슬하게 살아왔다는 월천댁이 그 말을 듣게 되면 또다시 기절초풍을 하고 말 것이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치는 격이 될지라도 부리를 헌 김에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까지 직토를 해버려야 죽든 살든 양단간에 결말이 날 것이었다. 속으로 주저주저하는데, 난데없이 날아든 까치 두 마리가 맞은편 소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숫막을 향해 지악스럽게 짖어댔다. 이상하게 까치들은 항상 짝을 지어 날아다니며 성가시게 굴었다. 짖는 소리가 애간장을 긁어대듯이 거슬렸던 월천댁이 마당가의 돌멩이를 집어들고 까치들을 향해 팔매질을 하면서 걸찍하게 악담을 퍼부었다. “이놈의 새끼들…… 여동밥을 처먹지 못해 환장을 했나, 남의 복장 지르려고 몸 닳게 짖어대나.” 얼혼이 나가서 전전긍긍하는 월천댁을 가까스로 달래서 툇마루에 주질러앉힌 다음, 덩달아서 물에 빠진 사람처럼 엄벙덤벙하고 있는 늙은 중노미를 불러 물 한 사발을 떠오게 하였다. 그리고 소뿔은 단김에 빼더란 말이 있듯이 나중엔 벼락이 떨어지더라도 내친김에 속내에 있던 말을 들이대고 말았다. “구월이를 얼른 혼례 치러주는 게 순서입니다. 이제 서둘러 혼례를 치를 때가 되었지요.” “혼례를 치를 때가 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여? 비 오는 날 똥장군을 지고 밭두렁 비탈길을 걸으라면 걸을까 그건 못해.”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만기가 쐐기를 박았다. “무하고 여자는 바람 들면 못 쓴다는 말 듣지도 못했소? 이팔의 나이를 훌쩍 넘긴 처자가 배태를 하였다면, 삼이웃에 소문이 낭자하기 전에 냉큼 초례청을 차려주어야 하지 않겠소.” “아니, 구월이가 배태하였다고? 누가 그런 날벼락 맞을 말을 해?” “누가 그러는 게 아니라, 그거야 구월이 불러 물어보면 알 테지요. 등잔 밑이 어둡더라고 우리 상단 동무들은 모두가 눈치챈 일을 정작 어미가 모르고 있었구려.” “아이고 내 팔자야…… 개살구 지레 터진다더니 이 산중에 처박혀 사는 년이 바로 그 짝 났네. 내가 살아도 못 살어…… 나이 쉰이 다 되도록 딸자식 하나만 바라보며 애면글면 모든 고초를 참아왔는데, 종국에는 까막까치도 찾아와서 못난 어미 보고 짖게 되었구려. 내가 자문이라도 해야 분풀이가 되지 않겠소. 세상에 이런 봉변이 어디 있소.” “그러니까 동네방네 요상한 소문 퍼지기 전에 혼례를 치러주자고 도감 어른께서 말씀을 하시어 시생이 허둥지둥 찾아온 것입니다.” “도감 어른께서? 도대체 어느 놈이 금지옥엽인 내 딸에게 배태를 시켜 남의 애간장을 끓인단 말이오?”
  • [지구촌 책세상] ‘가까이 숨어있는 공포’를 엮어내다

    요즘 일본의 최대 유행어는 ‘바이카에시’(배로 되갚음)다. 민영방송 TBS에서 일요일 오후 9시 방송되는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때문이다. 지난 4일 4회 방영분이 평균 시청률 27.6%를 찍으면서 올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로 군림한 ‘한자와 나오키’의 주인공의 모토가 바로 ‘바이카에시’다. 일본의 경제 거품이 막 꺼지던 무렵 세계 3위의 메가뱅크 ‘도쿄중앙은행’에 입사한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는 성실과 복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은 성선설이지만, 누군가에게 당하면 갑절로 갚아 줘야 직성이 풀린다. 일본인들은 이 드라마에서 ‘복수의 쾌감’을 느낀다.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자가 이케이도 준(50)이다.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쓰비시 은행에 취직해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던 이케이도 준은 소설가로 전업, 1998년 은행의 융자 회수로 나락에 떨어지는 중소기업 사장의 얘기를 다룬 소설 ‘끝없는 바닥’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2010년 담합 문제를 다룬 소설 ‘철의 뼈’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했고, 일본의 변두리 공장 기술과 장인 정신을 그린 소설 ‘변두리 로켓’으로 2011년 나오키상의 주인공이 됐다. 최근 ‘한자와 나오키’의 인기로 인해 이케이도 준이 지난달 발표한 ‘어서오세요, 저희 집에’도 덩달아 일본 출판가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최대 서점인 기노쿠니야가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이 책은 지난 5일 현재 문고판 부문 6위에 올라 있다. 내용은 이렇다. 근면 성실한 직장인 구라타 다이치는 어느 여름날 지하철 승강장에서 새치기를 하려는 남자에게 무심코 싫은 소리를 했다가 끔찍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화단은 밟아서 망쳐지고 우편함에는 죽은 고양이가 들어 있는가 하면 방에서 도청기까지 발견되면서 구라타는 물론 가족들의 신변까지 위험에 처한다. 가족들은 온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스토커와의 일전을 결의하지만, 구라타는 파견지인 나가노 전자부품 회사에서 영업부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삐쭉 튀어나온 나사 하나 때문에 거대한 빌딩이 무너질 수 있는 것처럼, 일상의 작은 소동 하나가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치밀한 필체로 그려낸다. ‘가까이에 숨어 있는 공포’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한국에 출판되어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하늘을 나는 타이어’(2010),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2007)을 읽어 보면 좋겠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中 “비데에서 불이” 소동…원인불명

    중국의 유명 회사에서 만든 비데에서 갑자기 불이 났다. 중국 광둥(広東)성 둥관(東莞)시의 한 고급 주택에 설치된 비데가 자연 발화하는 소동이 있었다고 중국 지역 일간지 난팡두스바오(南方都市報)가 7일(현지시간) 전했다. 문제의 비데는 중국의 유명 메이커인 동팡웨이위(東鵬衛浴)의 제품이다. 비데에서 불이 난 후 다행히 욕실의 급수 호스가 파열돼 불을 꺼서 화장실 일부가 타고 불이 꺼졌다. 이 비데는 2010년에 샀지만 설치하고 사용한 것은 지난해부터이다. 비데를 구매한 민(敏)씨는 3,000위안(약 54만 원)에 이 제품을 샀다. 사고가 있던 날 오후 4시쯤 사용한 후 콘센트를 빼지 않고 외출했다. 밤 9시쯤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에 검은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민씨에 따르면 집안이 가스로 가득 차 있었으며, 피해 총액은 약 30만 위안(약 5,400만 원)이다. 해당 제품을 판매한 회사에 상황을 전달했지만 회사 측에서는 ‘생산이 중단된 모델이다’라는 응답만을 되풀이했다고 전해졌다.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 폭염·폭우에 취객·소음 ‘수난시대’…20여명씩 6개조로 나눠 천막 사수

    “어떤 어려움도 우리의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민주당의 서울광장 ‘천막당사’ 체제가 장기화되고 있다.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3~4일이면 끝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6일로 장외투쟁 6일째이다. 8월 땡볕에 그대로 노출된 의원들과 당직자들의 셔츠가 땀으로 흥건히 젖고,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천막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도 민주당은 요지부동 천막당사를 지키고 있다. 이날 오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자 당직자들은 자동반사적으로 책상 위로 올라가 천막을 손으로 받쳤다. 자칫하면 천막이 빗물의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거나 천막 안으로 빗물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당직자들은 일사불란하게 노트북과 선풍기의 전원을 껐다. 이제 임시 천막당사 생활에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게시판에는 ‘바닥에 놓인 멀티탭을 높은 곳으로 이동시킬 것’, ‘장우산 등을 이용해 천막 상단에 고인 빗물을 아래로 떨어뜨려 제거할 것’ 등 우천 시 행동요령이 빼곡히 적혀 있다. 임시 ‘비공개 회의실’까지 갖췄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천막으로 가린 공간을 본부 한편에 만들었다. 전날 신임 인사차 방문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준우 정무수석도 이곳에서 김한길 대표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 고생은 일상화됐다. 불볕더위로 천막 안은 ‘가마솥’, ‘사우나’나 마찬가지다. 본래도 땀이 많은 체질인 김 대표는 회의가 끝나면 와이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지도부가 회의 때 하는 모두발언에 날씨 얘기가 ‘단골 손님’이 됐을 정도이다. 김 대표는 이날 천막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우리를 시샘하는 한여름 땡볕과 비바람도 우리를 흔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고, 전병헌 원내대표는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장마 속에 투쟁을 해오고 있는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24시간 운영되는 천막당사를 지켜야 하는 당직자들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의원들은 20여명씩 6개 조로 나눠 오전·오후 순환 근무를 하고 있다. 오전 8시 천막당사로 ‘출근’, 당직자에게 출석체크를 한 뒤 인근에서 시민들에게 국가정보원 개혁 관련 홍보물을 배포하거나 국정원 개혁을 위한 서명을 받는다. 정치적 노선이 다른 일부 보수단체 회원이나 취객 등 불청객들도 시시때때로 천막당사를 찾아 소동을 벌인다. 서울광장에서 연일 열리는 각종 행사로 인한 소음도 천막당사를 운영 중인 민주당으로선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가방속 시계 알람에 공항 3시간 올스톱…

    가방속 시계 알람에 공항 3시간 올스톱…

    국제 테러 단체 알 카에다의 테러 공격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자국민의 해외 여행객들에게 주의보를 발령한 가운데 미국 내 공항에서도 보안 검색이 강화되고 있어 웃지 못할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3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팜비치 국제공항에서는 갑자기 한 수화물 안에서 ‘삐-‘ 소리가 들리자 이를 폭발물로 의심하여 한때 공항이 폐쇄되고 여행객들이 소개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빚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공항 2층 발권 장소에 놓인 한 가방에서 디지털 시계 알람 소리가 들리자 발권 직원이 이를 공항 보안 요원에게 알렸고 즉각 폭발물 탐지반을 비롯한 특수 요원들을 태운 차량이 공항 주차장 내부로 들이닥쳤다고 당시 상황을 목격한 여행객들은 전했다. 이 해프닝으로 인해 공항 청사 내부의 여행객들은 전부 소개 조치되었으며 이착륙하려던 비행기도 3시간 이상 지연되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 국제공항은 오후 2시가 넘어 폭발물 탐지반과 보안 요원들이 문제의 디지털 알람 시계를 찾아내 이를 끄고 나서야 겨우 정상화되었다고 현지 언론은 덧붙였다. 사진 : 알람 시계 해프닝으로 소개 조치되어 텅 빈 공항 모습(페이스북)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서울역 노숙인, 소화기 들고 난입해…

    3일 오후 3시쯤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지하철 1호선 승강장에서 화재 진압용 스프링클러가 갑자기 작동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소동 당시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승강장에 비치된 소화기를 집어들어 뿌리자 화재감지기가 소화기 분말을 연기로 오인, 승강장 계단 쪽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당시 승강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주변에 있던 승객 3명이 물을 뒤집어썼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바로 스프링클러를 차단하고 피해 이용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등 상황을 수습했다”면서 “소화기를 뿌린 남성은 달아나버려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래서 하는 얘긴데… 단돈 몇 푼이라도 노잣돈을 구처할 수 없겠는가?” 그때서야 모꺾어 앉아 있던 계집은 고개만 돌리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길세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요? 나더러 노잣돈 내놓으란 것이요?” “몇 푼이나마 있으면 발굽이라도 뗄 수 있지 않겠나.” “진서 글도 잘하시고 대국 일도 잘 아시는 분이 좆 같은 소리 그만하시오. 지금까지 공다지로 먹은 식대부터 내놓고 노잣돈 타령하시오. 갖은 갈롱을 떨어가며 잔허리가 부러져라 하고 삭숭이를 받쳐준 해우채는 언제 건네줄 텨?” 처음 만날 때부터, 계집의 얼굴이 동글납작하고 콧등 주위에 깨알 같은 점들이 오종종하게 박히고 입술도 얇아 심지가 깊지 못하고 수다스러울 것 같았으나, 며칠 데리고 놀 계집에게 별 주책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 걱정이 이런 행티를 부리게 된 것이었다. “허어… 이 사람 보게.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소리라더니 천생 그 짝일세. 임자 그 시답잖은 불두덩 아랫구멍으로 들어간 돈이 얼만데 지금 와서 염치없게 해우채 타령인가. 올곧은 정신 가진 계집이라면 내 앞에서 그런 악증 부리는 게 아닐세. 하긴 내가 자기 단속이 부족하고 대가 물러서 못 쓰겠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일세. 그로써 갈보한테 노잣돈 구걸하는 하찮은 신세가 되었지만, 자네가 지금까지 끽소리 한마디 없이 밑엣품을 팔아온 날 업신여기고 되반들거리는 낯짝을 쳐들고 방색하는 꼴을 보자 하니 지금 당장 칼을 물고 엎어지고 싶구먼. 달포 가까이 서로 격의 없이 나누었던 정분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때였다. 계집이 발딱 몸을 일으키더니, 부엌으로 내달았다. 그리고 금방 봉노로 돌아왔는데 손에는 어느새 식칼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길세만의 턱밑에 바싹 들이대고 들까불면서 쏘아붙였다. “어디 칼 물고 엎어지는 꼴을 구경 한번 해봅시다.” 계집의 태도가 부글거리던 가슴속에 불을 댕기고 말았다. 눈에 불꽃이 튀는 듯했던 길세만은 더이상 입씨름을 참지 못하고 계집의 귀쌈을 찢어져라 후려치고 말았고, 그 사품에 계집은 칼질을 당한 갈대처럼 풀썩 꺾이어 주저앉고 말았다. 따귀 한 대에 기절을 해버렸는지 한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부들자리 위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계집편성에 또 무슨 소동을 벌일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슬히 바라보는데, 어느덧 계집의 어깨가 겨울 사시나무처럼 떨리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서글픈 생각이 폐부를 파고들었다. 중놈의 바랑 속에 들어 있는 빗처럼 쓸모없는 목숨, 티끌 같은 목숨을 부지하자고 이토록 팍팍한 세상을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신세는 계집이나 길세만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새우는 대대로 곱사등이더라고, 알고 보면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 당하면서 살아가긴 매한가지가 아닌가. 못된 소행머리로 기광을 부렸다 하지만, 손찌검까지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가슴을 쳤다. 행렬 잃고 땅에 떨어진 기러기도 매한가지, 성깔이 어긋나서 식칼을 들고 들어와 턱밑에 들이댄 것도 모두가 이처럼 각박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려 했으니 얻어진 악증이 아니던가. 마음이 흔들비쭉하여 죽이라고 악지를 부리며 지다위하고 대들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투전판에서 전대를 털린 것도 모두가 미련했던 자신의 탓이었지, 정분을 나누었던 계집이 사주해서 얻은 횡액은 아니었지 않은가. 잠깐 부린 소행머리가 괘씸하다 해서 손찌검을 한 것은 백번 돌이켜보아도 잘못된 일이었다. 길세만은 계집의 흔들리는 어깨를 가만히 안아주며 말했다. “내가 잘못했네. 요사이 이르러 기운도 탈진하고 형세가 기울다 보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네. 이제 진정하고 일어나 앉게. 두 번 다시는 데데하게 노잣돈 구처해 달라는 얘기는 않겠네.” “기운이 남았거든 더 때리세요. 투전판에서 돈 잃고 뜨내기 계집에게 노잣돈 구걸하는 사내가 부끄럽지도 않소?” “어허… 겸연쩍게 왜 또 그러나. 내 그럴 의향이 없다니까 그러네.” “그동안 거웃이 쓰리고 아파도 군소리 한마디 없이 육공양을 암팡지게 대접해온 터에 이런 괄시가 없소. 그동안 건네준 해우채가 분수에 넘치도록 과람했다 하나 내가 생트집으로 주머니를 발긴 적은 없지 않소.” “잘 알고 있네. 얼혼이 빠진 내가 형장 맞을 짓을 하였네.” “해우채로 건네준 돈은 벌써 똥 된 지 오래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뒷간에 오래도록 앉아 살펴보지 않았소. 뒷간에서 뭘 찾느라고 그토록 오래 앉아 있었소?” “이제 그만하게. 뒷간에 똥밖에 더 있었겠나.” 길세만이 몇 번이나 다짐을 두고 사죄한 덕분인지 계집은 더이상 모질게 파고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날 밤은 오줄없는 계집처럼 육공양을 해서 길세만을 아주 노골노골하게 만들었다. 침통하고 소슬하여 심신이 지친 터라, 평소와는 달리 일합을 치른 후에는 녹아떨어져 코까지 골았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가슴을 바위가 짓누르는 듯한 거북함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섬뜩하여 눈을 떠보니 어섯눈에도 시꺼멓게 보이는 한 장정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라타 있었다. 이게 어인 도깨비인가 싶어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는데, 가슴을 타고 앉은 자가 반사적으로 목덜미를 누르고 있어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 잡도리하였는지 아갈잡이까지 되어 있었다. 적당을 모두 소탕하였다는데, 이건 또 어디서 나타난 산적이며 무뢰배인가 싶었다. 수시로 드나들었던 투전판의 타짜꾼들은 아닐 것이었다.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는 냄새로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뱃구레를 깔고 앉은 위인은 길세만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인데도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그때 문득 뒤통수를 치는 상념이 있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겨우 기신을 차리고 일어나긴 하였으나 주눅이 들어 시무룩하던 천봉삼의 얼굴이 일순 밝아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생도 홀가분하게 누명을 벗고 다시 생업에 종사하게 될 날이 있겠습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궐자가 잡히면, 노형께선 매야에서 고초령을 넘는 상로에서 생업을 도모할 길을 찾게 될 것이오. 임소의 반수 어른과 도감 성님께서도 그렇게 약조가 된 듯합니다. 노형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우리 원상들은 동무 중에 밑천을 날린 동무가 있으면 십시일반으로 추렴하여 밑천을 만들어주는 풍속이 있지 않소. 열명길에 든 동무가 있으면 갹출하여 부의금을 전달하고, 행상길에 질병에 걸리면 반드시 구완하고, 폭리를 취하면 응징하지 않았소.” 곽개천이 걱정했던 대로, 길세만은 울진 소금 상단이 윤기호를 회칠하여 회술래를 돌릴 때 내성 색주가에 처박혀 있었다. 저잣거리에서 빈둥거리던 잡살뱅이들과 아녀자들이 구경이 생겼다 하고 길거리로 몰려나가는 북새통을 벌였으나, 길세만은 투전판을 빠져나와 색주가의 측간으로 가서 북새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앉아 있었다. 지린내와 구린내가 코를 들쑤셨으나 그 와중에 가뭇없이 숨을 곳이 있다면 측간뿐이었다. 혹간 측간에 소피를 보러 오는 갈보들도 길거리로 떼거지로 몰려나가고 없었기 때문에 그만한 은신처가 없었다. 차제에 소금 상단 동무들에게 발각된다면 지금 윤기호가 치르는 것처럼 곱다시 장문을 당해서 굴신을 못하도록 얻어맞고 상단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저잣거리에서 풍속을 어지럽혔다가는 지체 없이 징치를 당하였다. 장감고(場監考)가 두량을 조금이라도 농간하였다가는 임소에서 잡아들이게 되어 있었고, 술주정하는 자는 심하고 심하지 않고를 막론하고 비록 얼굴이 붉게 변하는 데 그치더라도 여축없이 잡아들였다. 서로 때리고 다투는 자는 먼저 성을 내어 구타하기 전에 비록 언쟁하는 데 그치더라도 적발되면 잡아들였다. 더욱이 잡기나 투전판을 벌여 서로 언쟁하거나 손찌검이 시작되면 원상이고 아니고를 불문하고 잡아들였다. 지금에 이르러 그 엄격함이 해이하게 된 측면도 없지는 않으나, 길세만의 경우는 색주가의 갈보들과 은근짜들에 빠져 전대를 몽땅 털리고 밑천까지 탕진하고 말았으니, 그런 행적이 낱낱이 밝혀지면 즉시 장문으로 다스려질 것이었다. 천생 숨어살며 비렁뱅이로 연명하지 않으면 살아날 가망이 없게 되었다. 구린내가 등천하는 측간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그만 똥통에라도 빠져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 결기가 없어 사추리 아래 똥통을 멀거니 내려다보기만 했을 뿐 몸을 던질 수는 없었다. 그는 길거리의 소동이 얼추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가만히 측간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지금 당장 갈 곳은 투전방뿐이었다. 불똥 디디는 걸음으로 봉노로 다가갈 동안 색주가의 좁은 마당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문득 까닭 없는 서러움이 가슴으로 밀려와 울컥하고 울음이 터져나오려 하였으나 꿀꺽 삼켰다. 울음을 삼켰으나 그 사품에 눈물이 팍 쏟아지고 말았다. 때 묻고 해진 옷소매로 삽시간에 인중까지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외짝 지게문을 열고 봉노로 들어갔다. 언제 돌아왔는지 윤기호의 길거리 회술래 구경 갔던 은근짜가 돌아와 있었다. 봉노 안 윗목에는 계집이 뒷물하던 소래기와 호박씨 반 접시가 휑뎅그레하게 놓여 있었다. 계집을 발견하자 와중에도 문득 반가워 한마디 던졌다. “임자…… 언제 왔나?” “구경 갔다가 금방 돌아왔어요.” 아랫녘장수 계집으로 말하면 그와는 달포 가까이 살송곳을 박아주었던 사이였다. 미천한 계집이었지만, 요분질이 어찌나 지독하고 달콤했던지 한번 희학질을 치르고 나면 한동안은 뒤통수가 찡하고 머릿속이 어찔어찔하여 걸음을 떼어놓아도 휘청휘청 뒤뚱뒤뚱하였다. 홍합* 대접이 그처럼 아주 착실하고 자별하였는데, 투전판에서 전대를 깡그리 털리고 말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난 뒤부터는 그때마다 앙칼지게 냉갈령을 쏘아붙이며 곁을 주려 하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일로 길세만은 말구멍이 막히도록 기가 질려 있었다. 그러나 길세만이 봉노로 들어섰을 때 어찌된 셈인지 계집은 보란 듯이 고쟁이만 걸친 채 씹거웃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도록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있었다. 거북했던 길세만이 문득 고개를 돌리며 구경나갔던 저잣거리의 사정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구경할 만하던가?” 계집이 힐끗 곁눈질하더니 시큰둥하게 대꾸하였다. “내로라하던 어물 객주도 낯짝에 회칠을 하고 나니…… 찌그러진 모색이 염소 새끼나 다름없어 보기에 민망합디다. 얇은 바지에 윗도리는 발가벗은 채로 작은북을 등에 지고 두 다리를 질질 끌고 걸으면서 나는 도둑의 접주입니다. 나는 장물을 팔아 구린 돈을 챙긴 죄인입니다 하고 중얼거리면서 아이들이 던지는 돌을 그대로 맞고 걸어가는데, 혹간 목소리가 속으로 기어들면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회초리로 등을 쳐서, 다시 그가 고개를 들어 나는 도둑입니다 하고 목청을 돋워 외치게 합디다. 차마 눈뜨고 못 볼 일입디다.” “눈뜨고 보고 왔으면서 못 보았다고 시치미를 떼는가. 상단 사람들도 많던가?” “어디서 몰려왔는지…… 이녁 빼고는 모두 모였습디다. 오랜만에 저잣거리에 나가보았더니…… 장꾼보다 풍각쟁이가 더 많습디다.” “그게 무슨 소린가 하면, 원상들보다 왈짜 무뢰배가 더 많다는 뜻일세.” “나야 풍각쟁이가 누군지 원상이 누군지 알 게 무어요. 전대 두둑한 사내면 그만이지……” “그런데 나도 맥을 놓고 여기서 묵새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소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서 기동을 해봐야 하겠네.” “내키는 대로 하기요.” *홍합:여자의 하문을 빗대어 이르는 말
  • [지금&여기] 이스라엘과 창조경제/류지영 국제부 기자

    [지금&여기] 이스라엘과 창조경제/류지영 국제부 기자

    박근혜 정부의 ‘이스라엘 배우기’가 한창이다. 이스라엘 벤처 생태계 구축을 본떠 ‘한국판 요즈마펀드’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기술 군인 육성 제도인 ‘탈피오트’ 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창업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이스라엘을 모델 삼아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는 의도다. 기자가 서울신문 창간특집 기획인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취재를 위해 찾아 간 이스라엘은 분명 배울 점이 많은 나라였다. 경제 수도인 텔아비브는 서울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곳이었다. 동성애를 금지하는 유대교(기독교)의 성지 나라에 ‘게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도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곳의 자유로움을 잘 말해줬다. 이런 개방성이 창조경제를 이끌어 내는 근간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중동국가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위험한 나라였다. 건물마다 국제공항 수준의 보안 검색이 이뤄지고, 거리에선 소총을 든 군인들이 수시로 민간인을 검문한다. 기자도 취재 마지막 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 짐가방을 끌고 텔아비브 시내를 돌아다니다 누군가 폭탄 테러범으로 신고해 경찰들이 총출동하는 소동을 겪었다. 여권을 보여주고 가방을 열어 주고도 계속해서 폭언을 퍼붓던 경찰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주변국들이 모두 적국이다 보니 이스라엘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과 ‘사생활 보호’ 등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배우려는 이스라엘의 창조경제는 이런 특수성의 산물이다. 탈피오트는 이스라엘 영재들에게 군 최고 기밀인 전자전(戰) 시스템을 구축하게 하고 그 대가로 퇴역 이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벤처를 중시하는 생태계 역시 전쟁 때문에 20~30년 뒤를 내다보며 큰 기업을 키워내기가 불가능한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정부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아일랜드, 스웨덴, 두바이, 독일 등 수많은 나라들을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성공적으로 한국화했다고 자부할 만한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다. 그 나라만의 역사적·문화적 토양을 고려하지 않은 ‘무작정 따라하기’는 귤을 탱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superryu@seoul.co.kr
  • 비 안 오는데 또 누수… 세종청사 부실 논란

    비 안 오는데 또 누수… 세종청사 부실 논란

    마른 하늘인데 정부세종청사 건물에서 또 누수 현상이 발생해 부실 시공 논란이 일고 있다. 세종청사 4동에 있는 기획재정부 3층 복도 천장에서 25일 오전 9시쯤 한 방울씩 물이 새기 시작했다. 세종청사관리소 직원들이 급히 물이 새는 부분을 뜯어내 원인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누수는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씨에 발생했기 때문에 공무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청사관리소 관계자는 “비가 오지도 않는데 물이 샌 것으로 봤을 때 설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의 경우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배관이 문제였는데 이번에도 같은 이유 때문인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새로 지은 건물에서 물이 새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빈번하게 누수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준공검사 등 건물 관리·감독 체계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월에는 농식품부 장관실 천장에서 물이 새 집기를 옮기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천장에서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콸콸 쏟아져 장관 비서실 직원들이 사무 집기를 싸들고 대피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또 같은 달에는 기획재정부 3층 복도에서, 지난해 말에는 2동의 공정거래위원회 4층 복도에서 갑작스럽게 물이 샜다. 기재부, 공정위, 농식품부 등이 입주한 세종청사 1단계 2구역은 2010년 10월 착공해 지난해 11월 완공했다. 당시 완공 시기를 맞추기 위해 지난해 장마가 한창일 때 스프링클러가 포함된 소방·통신, 배관, 미장 등 내부 공사를 강행하면서 부실 시공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정홍원 국무총리도 지난 23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청사의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몇십 분이 걸리는데, 이건 정말 잘못된 것”이라면서 “멋만 부렸지 실용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강원 정선·태백 폐광지에 관광객 몰린다

    강원 정선·태백 폐광지에 관광객 몰린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강원 폐광지역이 피서철 몰려드는 체험 관광객들로 생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 5월 문을 연 강원 정선 고한읍 ‘삼탄아트마인’에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폐광지역을 살리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삼탄아트마인은 폐광된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시설을 리모델링한 예술문화공간으로 개관 이후 지금까지 5700여명이 찾았다. 이곳은 2001년 폐광된 이후 폐허로 방치돼오다 ㈜솔로몬이 ‘폐광지역 복원 사업’에 따른 정부 지원금과 자체 예산을 들여 3년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변신에 성공했다. 삼탄아트마인은 다수의 탄광 시설을 보존하거나 재활용한 점이 특징이다. 정비공장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바뀌었고 수평갱은 포도주 저장고가 됐다. 광원들이 헬멧에 장착된 조명기구를 충전하던 장소는 영상작품 전시실이 됐고 중압압축기실은 원시미술관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삼탄아트마인의 전시 공간에는 150여개국에서 수집한 공예품과 현대회화 등 다양한 작품 10만여점이 있다. 이 같은 볼거리와 시대적 의미 덕분에 삼탄아트마인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7월의 추천 여행지로 선정됐다. 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실시한 올해 공공디자인대상 우수사례 예비심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태백시 구문소동의 ‘365세이프타운’도 방학을 맞아 예약 관광객들이 몰리며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송파스카우트연맹과 서울 남부 걸스카우트연맹 대원 1500여명이 찾아 체험 관광을 했다. 이어 26일 속초양양교육지원청에서 100명, 30일 동부인재개발원 350명 등의 단체 예약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한국관광공사가 여름철 관광캠페인 TV CF에 365세이프타운을 홍보하는 한편 이달의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해 주가가 높아지고 있다. 365세이프타운은 학교와 고속도로 휴게소 등 1만 2000여곳에 홍보물을 발송하는 등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정선·태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인 꼴이 되었다. 육허기는 채우게 되었으나 구월이와 초례청을 차리지 않으면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 뻔한데 난데없는 만기가 그 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만기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한 월천댁에게 무릎을 꿇고 빈다 해도 혼인을 쉽사리 허락할 리 없었다. 이튿날 새벽 말래로 발행하는 배고령의 발걸음은 그래서 천근같이 무거웠다. 세상에는 예상에 없었던 변고와 재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의 일도 당장 내일조차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사뭇 뒤통수를 쳤다. 그처럼 울적한 감회로 말미암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해 오랜만에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말래 접소에 당도했으나 벌써 상대는 다시 행장을 꾸리며 내성 발행을 서둘렀다. 말래에서 해물 저자인 흥부장까지는 보통 걸음으로는 한식경이지만, 소금 짐을 진다면 내왕 행보에 꼬박 하루가 걸렸다. 뒤늦게 당도한 배고령이 상대의 걸음을 뒤따라잡기는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접소에서 3, 4일은 양류밥을 먹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접소에 남아 있기로 작정한 사람 중에는 정한조도 있었다. 길세만을 찾지 못했다는 말에 정한조는 예상했던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붙잡히면 장문을 당할 게 뻔한데, 임자하고는 막역한 사이라 할지라도 나 여기 있네 하고 쉽사리 낯짝을 내밀 것 같은가.” “허물없이 지낸 지 오래된 사이라 시생이 나서면, 필경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나도 사정은 알고 있었네. 하지만 이번의 일로 내성 저잣거리며 색주가의 속사정을 소상하게 기찰하지 않았나. 나중 가면 그것도 적지 않은 소득이 될 것이야.” “그럼 당분간 도감 어른을 수행해야 하겠군요.” “운수납자로 가장했다는 천봉삼 내외를 다른 숫막에 거처를 정해주고 바라보는 참일세. 근본이 원상이었으니, 나로선 설분만 할 수 없는 형편일세. 게다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일호의 속임도 없이 실토정을 하고 처분만을 기다리는 처지라, 거칠게 대접할 수 없고 그 내자 되는 아낙네는 국량이 깊은 여인네라 언사가 순박하여 본데없이 굴지 않으니, 두고 보았다가 도타할 징조만 보이지 않는다면 백방하려는데 임자 생각은 어떤가?” “도감 어른 어취를 듣자하니 진작에 놓아줄 생각을 가졌네요. 시생도 같은 염의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냥 놓아주는 것보다, 우리가 놓쳐버린 그 두령이란 놈을 찾으라는 분부를 내려서 놓아주면 어떻겠습니까. 궐놈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천봉삼 아니겠습니까.” “그럴싸한 생각일세. 천봉삼이란 자가 이태 동안이나 풍상을 겪었으나 적굴놈들을 비롯해서 무뢰배들과 동고동락으로 지냈다면 그 패거리의 속사정에도 밝을 테니 추쇄를 시켜보면 두령의 행방뿐만 아니라, 어쩌면 길세만의 거처까지 밝혀낼지도 모르겠군.” “설마… 길세만이가 적굴 놈들과 결탁을 했을까요.” “그야 모르지,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목숨을 부지하자면 무뢰배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지 않겠나.” “내성에서 오동나무골 생달에 정처를 정하고 산다는 상단을 만나 몇 마디 나누었는데, 곧은재 아래에 있는 검은돌 마을에 그곳 붙박이 떨거지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태백이나 영월의 험구들을 넘어온 상단을 등쳐먹는다 합니다. 숫막에 앉아 술과 고기를 실컷 시켜 배를 불리고 수월찮은 식대를 상단에게 떠넘기는 것을 예사로 저지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가 불리한 상단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을 접대하고 있답니다.” “우리 소금 상단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우리 상단에게는 감히 덧들이지 못했겠지요.” “횡행하는 무뢰배들과도 한통속이겠구만.”
  • 하나된 드레스 코드 하나된 승리 코드…홍명보호 첫 소집

    하나된 드레스 코드 하나된 승리 코드…홍명보호 첫 소집

    축구대표팀이 확 달라졌다. 2013동아시안컵을 앞두고 17일 소집된 태극전사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출발했다.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각을 잡았고,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정문부터 숙소동까지 걸으며 국가대표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졌다. 원한다고 아무나 걸을 수 없는 길을 밟으며 태극마크와 투혼을 심장에 꾹꾹 새겼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과 10분간의 미팅을 통해 “대표선수의 사명감을 가져 달라”는 짧고 굵은 메시지를 던졌다. 동아시안컵은 대회 자체의 중량감은 떨어지지만 ‘홍명보호’의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끈끈한 팀워크와 희생·헌신을 기본으로 하는 홍 감독의 축구철학을 엿볼 수 있는 데뷔전이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의 졸전,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문 등으로 흐트러진 대표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과 동시에 1년도 남지 않은 브라질월드컵 멤버를 검증하는 의미도 있다. 올해로 5회째인 동아시안컵은 한국·중국·일본·호주가 풀리그로 우승국을 가리는 대회다. 두 차례(2003년·08년) 정상에 섰던 한국은 오는 20일 오후 7시 호주와의 1차전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과 차례로 격돌한다. 홍 감독은 “훈련도 중요하지만 사령탑으로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준비할까에 초점을 맞추겠다”면서 “팀정신과 경기력은 물론 브라질에서의 활약 가능성까지 전체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월드컵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몇몇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밖에 없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된 만큼 선수들의 각오도 남달랐다. 홍 감독 품에서 공을 찼지만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낙마한 김동섭(성남)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눈을 빛냈고 고무열(포항)도 “절실함을 보여 주는 게 우선”이라고 털어놨다. ‘제2의 홍명보’로 불렸지만 부상으로 꿈이 좌절된 홍정호(제주)는 “올림픽을 다녀온 선수들에게 도전하는 입장인데 감독님께 믿음을 심어주겠다”고 말했다. ‘팀 스피릿’이 돋보이는 첫날 풍경이었다. 이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홍 감독. 소집 시간보다 두 시간 앞선 오전 10시에 NFC 정문으로 들어선 그는 취재진을 향해 “올림픽대표팀을 맡았을 때부터 항상 제일 먼저 왔다”고 멋쩍게 웃었다. 홍 감독은 “내가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는 진해선수촌까지 버스로 5~6시간을 가면서도 긴장해서 잠도 못 잤다”고 회상하며 “짧지만 선수들이 정문부터 숙소까지 걸으면서 국가대표로서의 자신을 돌아봤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태극전사들은 홍 감독이 앞서 공지한 ‘드레스코드’에 맞춰 정장 차림으로 모였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맸다. 서동현(제주)이 오전 10시 30분 첫 테이프를 끊었고 염기훈과 김신욱이 차례로 들어왔다. 과거 스포츠브랜드의 광고행사장, 혹은 외제차 쇼케이스장 같던 모습과 180도 달랐다. 직접 차를 몰고 NFC 숙소동 앞에서 내렸던 선수들은 이날 정문에 내려 직접 트렁크를 끌고 350m를 걸었다. 모처럼 구두를 신은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표선수로서의 책임감을 말했다. 새 캡틴으로 낙점된 하대성(서울)은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세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면서 “경쟁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목표를 갖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월드컵 최종예선 레바논전 때 나눠 준 양복을 입은 박종우(부산)는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르더라”고 전했고 김동섭은 “성남 백화점에서 3일 전에 양복을 사며 의지를 다졌다”고 얼굴을 붉혔다. 고무열은 “넥타이 매는 법을 몰라 호텔 직원이 도와줬다”고 수줍게 웃었고 이명주(포항)는 지난해 K리그 시상식 때 큰맘 먹고 구입했다는 겨울 양복을 입고 땀을 쏟았다. 가장 늦은 오전 11시 40분에 들어온 김영권(광저우)은 ‘꼴찌’라는 귀띔에 당황하며 “아직 20분 전인데 내가 마지막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대표팀은 한 시간 동안 미드필드 압박 위치와 수비 조직력을 꼼꼼히 맞춰보며 담금질을 시작했다. 이날 경기가 있는 김창수(가시와), 황석호(히로시마) 등 J리거 7명은 훈련 이틀째인 18일부터 합류한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축구를 정말 사랑한다면/이기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축구를 정말 사랑한다면/이기철 체육부장

    스포츠는 직업이 아닌 바에야 우리 생활의 활력소이자 청량제다. 인간의 한계 극복에 감동하고, 예술 같은 신기에 감탄한다. 또 밍밍한 일상에 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축구, 특히 국가대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국민은 일본과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여전히 목에 핏대를 세운다. 태극 마크를 단 붉은 악마 유니폼에는 우리의 정체성이 스며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에서 축구 한 경기 이기고 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얼마든지 많은데도 말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나 최근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투지를 보이며 선전한 경기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어냈다. 어떤 정치인의 사자후보다 더 우렁차다. 그러나 우리 국가대표팀은 언제부턴가 비장함이 묻어나는 경기를 잃어버렸다. 이런 대표팀에 홍명보가 지휘봉을 잡았다.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이 확정됐지만 지리멸렬한 경기를 본 국민은 큰소리로 그를 감독으로 불러들였다. 홍명보의 감독 선임은 그가 지금까지 축구 지도자로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데 따른 성과인지, 주장으로 활동했던 2002년 월드컵 4강신화 재현을 갈구하는 역사의 흐름 또는 운명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홍 감독에게는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월드컵을 지휘할 총사령관의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국민의 기대가 잔뜩 실린 것과는 달리 홍 감독은 어떤 난제라도 풀 수 있는 만능 키를 가진 것이 아니다. 올림픽대표팀 등에서 그의 성공 경험이 국가대표팀 감독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대표팀 선수 개개인의 역량은 남미나 유럽 선수들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홍 감독은 “월드컵에 우리 팀보다 수준이 낮은 팀은 없다”며 걱정한다. 대표팀의 정신상태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동이나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파주트레이닝센터에 들어서는 데서 보듯 비뚤어진 스타 의식에 젖은 연예인처럼 변했다. 국가대표로서 자부심,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거나 국민에게 환희와 영광을 돌려주겠다는 의지가 도대체 보이질 않는다. 이런 대표팀을 단박에 업그레이드할 비방은 없다. 우리 선수의 개인기가 11개월 만에 쑥 늘거나, 팀 수준이 갑자기 높아질 리가 없다. 대표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소년부터 학원 축구에 이르기까지 하부구조가 허약한 탓이다. 체질 개선 없이는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기는 요원하다. 브라질월드컵의 성과가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성과가 극히 나쁘다면 또 감독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하다. 2002년 거스 히딩크 이후 2013년 홍명보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10명의 국가대표 감독이 교체됐다. 과정이나 경기 내용보다 눈앞의 승부, 즉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결과 지상주의에 축구도 덩달아 매몰된 까닭이다. 같은 기간 일본의 감독 교체는 5차례였다. 우리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5단계가 높은 나라다. 감독 교체는 대증요법이지, 특효 처방이 아니다. 축구협회는 당장의 결과보다는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세워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 태반은 축구 관전평을 한마디씩 내놓는다. 축구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방증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축구를 사랑한다면 K리그 한 경기라도 경기장에 가서 보자.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며 즐기자. 팬이 경기장에서 함께하는 축구. 그게 우리 축구의 빈약한 하부구조를 튼튼하게 하는 첫걸음이다. chuli@seoul.co.kr
  • 아시아나, 이번엔 중국에서 연료유출 견인 사고

    아시아나, 이번엔 중국에서 연료유출 견인 사고

    최근 미국 샌프란시코 국제공항에서 충돌사고를 일으켰던 아시아나항공 소속 여객기가 11일 중국에서 연료 유출로 견인됐다.12일 중국 신화통신은 전날 낮 12시 10분 상하이를 떠나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아시아나항공 OZ362편의 착륙장치에서 연료가 누출되면서 승객들이 일제히 내리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연료 누출은 여객기의 랜딩 기어에서 발생한 것을 알려졌다. 여객기는 견인차량에 끌려 이동한 뒤 긴급 점검을 받았다. 목격자에 따르면 연료 누출 사실이 확인되자 조종사는 즉시 시동을 끄고 관제탑에 보고했으며 신고를 받은 소방차 등이 곧바로 현장에 도착해 기름 제거 작업을 벌였다. 이번 사고로 항공기 출발이 지연대 289명의 승객이 공항에서 6시간 가까이 대기하는 불편을 겪었다. 승객들은 수시를 마친 여객기를 타고 이날 밤 9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 승객들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상황을 전하면서 견인되고 있는 여객기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현지 매체들은 아시아나항공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충돌 사고를 일으킨지 일주일도 안된 상황에서 또 사고가 생겨 승객들이 불안에 떨었다고 전했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中서 아이폰4 갑자기 폭발

    中서 아이폰4 갑자기 폭발

    중국에서 아이폰4가 갑자기 폭발해 자고 있던 남성이 봉변을 당할 뻔했다. 중국 언론 충칭천바오(重慶晨報)는 10일(현지시간) 중국 충칭(重慶)시에 사는 왕씨의 집에서 아이폰4가 갑자기 폭발해 소동이 있었다. 폭발이 일어난 것은 9일 심야. 왕씨가 자고 있던 사이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폭발음에 눈을 뜬 왕씨는 아이폰에서 불이 나 이불에 옮겨붙는 것을 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폭발음이 큰 것은 아니었지만, 옆집의 남성에게 들릴 정도였다. 왕씨는 “폭발 후 타는 냄새가 났으며 방 안에 연기가 찼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폭발 당시에 아이폰은 충전하지 않고 있었다. 폭발한 아이폰은 지난 1월 5880위안(약 107만 원)에 구매한 것으로 현재 충칭 공안당국에서 폭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레코드차이나 정선미 인턴기자 j262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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