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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섭장관에게 듣는 문화체육정책(국정탐방)/대담=김정태 문화부장

    ◎“청소년 함께 뛰노는 수련활동 제도화”/문화·체육 생활화… 신바람나는 사회로/도서관기금 신설·기업 예술투자 유도/국민체육 5개년계획 수립… 스포츠공간 넓힐 계획 문화체육부가 발족해 문화·예술과 체육·청소년문제를 하나의 정책목표아래 집행한지 두달이 됐다.그러나 체육청소년부에 속했던 부서들이 문화체육부 건물에 정식입주한 것은 지난달 말이므로 명실상부한 통합은 이제 막 이루어진 셈이다. ○「레포츠문화」 개발 그동안 「한지붕 세살림」이라는 새로운 틀의 정비를 끝내고 비로소 통합정책의 시동을 건 것이다. 통합부처의 초임장관이자 집권당의 4선의원으로서 분주한 나날을 맞고 있는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을 만나 정책운용방안을 들어봤다. ­이장관은 취임이후 『문화와 체육이 한데 어우러지는 정책을 적극 개발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그 구체적인 방안부터 듣고 싶습니다. ▲「건강한 육체,건전한 정신」이란 말이 있듯이 문화와 체육은 이질적이라기 보다는 보완적인 것입니다.또 문화와 체육정책이 모두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으므로 둘을 잘 조화시키면 문민정부의 목표인 「더불어 풍요롭게 사는 공동체 구현」에 밑거름이 될 겁니다. 이를 위해 생활문화와 스포츠를 접합한 격조높은 「레포츠문화」를 적극 개발하겠으며 전국의 체육시설을 보완해 공연장이나 전시장으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풍요롭게 사는 공동체 구현」방안을 좀더 설명해 주시지요. ▲문화와 체육은 기본적으로 생존에 관한 문제는 아닙니다.삶의 질을 높이는 요소이지요.그러나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심해 삶의 질에도 큰 편차가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 누구나가 질높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책이 절실하다고 봅니다.국민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범국민 문화예술및 체육중흥 정책이 고려돼야 합니다. 신바람나는 사회는 이 점이 해결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보며 이같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야말로 문화체육부의 핵심작업이 될 것입니다. ○문예진흥기금 확충 ­그러나 올해 총예산액 가운데 문화·체육부문의 예산액은 0.58% 수준인 2천2백27억원에 불과한실정입니다.이같은 재정규모로는 문화·체육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예산배정이 적다는 것을 인정합니다.그러나 국가재정 형편상 특정부문 예산을 한번에 대폭 올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오는 97년까지 문화·체육부문 예산을 1%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만큼 꼭 지켜질 겁니다. 물론 예산이 늘어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그래서 다각도로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어떤것들입니까. ▲기업체로 하여금 문화예술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데 우선 주력하겠습니다.대통령 말씀을 자주 해서 안됐습니다만 그분이 취임초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으니 기업들이 그 돈으로 문화·예술사업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기업체들도 그 뜻에 공감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체육부의 입장에서는 첫째로 기업들이 자체 문화재단을 통해 문화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책을 세우겠습니다.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문화행사를 도와달라고 권유할생각입니다.기업들이 특정 예술가나 예술단체와 결연을 맺어 지속적인 도움을 주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겁니다. 이밖에 문예진흥기금을 확충하고 도서관진흥기금도 신설하겠습니다.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문화부터 수출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문화교류 없는 수출증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바꿔 말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아야 수출의 길도 넓어진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수출대상 지역이 대부분 선진국인만큼 고성능·고문화상품을 만들지 않고 수출을 늘린다는건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은 것이 작금의 실정입니다.상품을 단순한 산업디자인의 차원을 넘어선 예술디자인의 수준으로까지 격상시켜야 합니다. 따라서 문화를 기업에 응용하는 산업­예술,즉 「산문협동」사업을 적극 밀고 나갈까 합니다. 국제문화교류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활성화시키겠습니다. ­문화예술진흥법·국민체육진흥법등 문화체육부 관련법령이 많습니다.그러나 개중에는 부실한 내용을 담고 있어 선언적 의미만 있을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법령도 있습니다.민주화·자율화시대에 부응,과감히 정리할 뜻은 없는지요. ▲문민시대에 걸맞도록 국민주도에 의한 문화예술 활동이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령의 제정·개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올해 안에 모두 9개의 관련법령을 고칠 예정인데 이중에는 지방문화육성방안과 기업의 문화지원을 용이하게 하는 법안등이 포함될 겁니다. ­이달은 청소년의 달입니다 날로 심각해지는 청소년문제를 우려하는 국민이 많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실정입니다.주무장관으로서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21세기 통일세대의 주역인 오늘의 청소년들은 마음과 몸이 모두 튼튼해야 합니다.그러나 청소년문제는 대학입시와 밀접하게 연계돼 그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입시지옥이 존재하는한 청소년의 인격도야,전인교육은 불가능합니다.그래서 청소년문제에 대해 교육부측과 논의하는 상설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에게 1년에 1∼2차례 유스호스텔등지에서 수련회를 갖게 하고 그 결과를 내신성적에 필수로 넣는 방안등이 이 협의체에서 논의될 수 있겠지요. ­체육부문으로 이야기를 돌려볼까요.그 동안의 체육정책이 「엘리트체육」위주였다는 비판이 제기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새정부가 체육진흥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정부가 86·88 양대회에 대비해 대표선수 양성등 엘리트체육에 중점을 두었던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올림픽이후로는 정책방향도 생활체육진흥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상충한다고 보지 않습니다.황영조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조깅인구가 크게 는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 생활체육이 활성화되면 체육인구의 저변이 확대되고 따라서 우수선수가 많이 발굴될 겁니다. 「국민체육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생활체육 공간을 확대하고 다양한,또 건전한 생활체육및 건강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보급하고자 합니다. ○「풍요공동체」 구현 ­2년전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여자단체전 우승을 차지해 7천만 겨레를 감격시켰습니다.그러나 오는 11일 열릴 예정인 42회 대회에 대해서는 남북간에 단일팀을 구성하는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남북 체육교류를 활성화할 복안을 갖고 계신지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뒤 남북간의 모든 대화가 중단된 상태입니다.현재로선 대화가 재개될 때에 대비,북한측이 수용할 수 있는 사업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현직의원으로서 장관직책을 수행하다보면 장단점이 있을텐데요. ▲국가정책 수행의 성패는 국민의사를 얼마나 잘 수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이 점에서 여러 계층의 소리를 늘 듣는 정치인이 장관직을 수행하는 것은 장점이 더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앞으로도 각계 전문가의 조언과 지식을 충분히 받아들여 문민정부의 목표인「더불어 풍요롭게 사는 공동체 구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51)

    ◎길림시절:10/「반제청년동맹」의 날조/28년에 결성된 세계반제동맹/“27년 산하청년단체 조직” 주장/31년의 서울상해파공적 가로채 김일성은 1927년 1월이 아니라 이 해 8월에 길림에 왔다.그 증거는 회고록의 다음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길림에 왔을 때 「ㅌ·ㄷ」의 몇몇 성원들은 화전에서 약속한대로 이 도시에 와서 문광중학교를 비롯한 시내 학교들과 기관구·선창 등에 적을 두고 있었다』 ○“「ㅌ·ㄷ」서 개편” 기록 이 이외에 같은 8월에 화전의 「ㅌ·ㄷ」성원들이 만주 각 지방의 조선인 거주지역으로 떠났고 그 중에는 독립군이 된 사람도 있었다고도 적고 있다. ㅌ·ㄷ성원이란 김일성이 68년 이후 제 멋대로 과거의 화성의숙생들에게 붙인 이름이다.화성의숙은 회고록에서는 2년제라든가 학생수가 40명 이상이라든가 하고 있지만 일본기록에는 그 이수 기간이 1년반이며 학생수도 30명으로 되어 있다.그 개학도 26년 3월로 되어 있으므로 이 때 입학한 학생이 졸업한다면 그것은 27년8월이 된다.김일성이 심양에서 길림으로왔을때 중퇴하지 않고 졸업한 나머지 화성의숙생들은 길림을 비롯한 만주 각지의 정의부 관할구역으로 배치되어 갔다.그들 속에는 문광중학교에 들어간 학생도 있었다.김일성은 8월달에 길림에서 화성의숙 졸업생들과 만난 것이다. 김일성이 길림에서 화성의숙의 졸업생들과 만난 일은 이들을 「ㅌ·ㄷ」성원으로 만들어 버린 그에게 경력변조 작업을 한층 더 본격화하는 발판을 제공하게 되었다.예를 들어 83년의 김일성 연표는 그가 1927년8월27일에 「ㅌ·ㄷ」을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한 것으로 하고있다.이 날자 자체는 문제 투성이 이지만 하여간 화성의숙생이 길림에 와서 첫 「동창회」를 열었다면 그 달이 8월 정도로 되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기작가가 날짜를 매기면서 저지르는 모든 비리에 눈을 감으면 이러한 견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우선 화전현에서 가입시켰다고 주장하는 「ㅌ·ㄷ」성원을 일부러 길림까지 데리고 와서 반제청년동맹 성원으로 삼았다는 말은 지리적으로 보아 무리가 아닐 수 없다.필자는 일찍이 이 점을 신랄하게 지적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그가 길림소년회·유길학우회를 조직한 후 여기에 망라된 회원들을 「ㅌ·ㄷ」에 가입시켰다고 주장하게 되었다.화성의숙 일부 졸업생은 합류한 것으로 처리하여 모순점을 줄인 것이다.물론 우리가 보면 이렇게 해도 「ㅌ·ㄷ」자체가 날조인 이상 「반제청년동맹」도 날조가 아닐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있은 적이 없었던 「김일성의 반제청년동맹」에 대하여 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반제청년동맹은 ㄱ·ㅌ·ㄷ·ㄴ의 구호를 그대로 내세우고 그 강령을 그대로 계승한 반제적이고 대중적인 비합법청년조직이었다.조직의 기본구성은 조선청년이었으나 우리는 반제적 입장이 강한 중국청년들도 거기에 가입시켰다. ○“구호·강령도 계승” 이 조직은 문광중학교·길림제1중학교·길림제5중학교·길림사범학교·길림여자중학교·길림법정대학을 비롯하여 조선학생이 있는 시내의 모든 학교들에 다 들어갔으며 강동·신안둔을 비롯한 길림주변의농촌지역과 유하현·화전현·흥경현 일대에도 뿌리를 박았다.조선청년들이 있는 곳이면 다 퍼졌다.반제청년동맹에서는 얼마후부터 등사판으로 선전용 자료까지 밀어내뜨렸다』 28년에 있었던 코민테른 제6차대회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투쟁과 공산주의자의 임무」란 반제국주의 테제가 나왔고 식민,반식민지의 혁명운동이 많이 토의되었는데 여기에서 대중조직인 반제동맹 결성방침이 결정되었다. 이 6차대회 직후에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으로부터 승인을 취소당하였다.이동휘가 그 결정서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파인 서울상해파의 간부들과 협의하여 곧바로 당재건에 착수하였다.이 파는 29년 초에는 그 본거지를 길림 돈화 지방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해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사건은 그들의 대중적 지반을 확대하는 일인이 되어 30년 1월 상순에는 재만한인반제국주의동맹이 결성 되었다.이 재만한인 반제국주의동맹은 3월17일 전만한인반제국주의대동맹 창립준비회를 개최하였고 이 준비위원회는 맨 먼저 청년반제국주의대동맹을 조직하였다.그리하여 6월3일 재만한인 반제국주의동맹은 청년반제대동맹과 공동으로 길성한인반제국주의동맹 발기회를 발족시키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그후 서울상해파는 코민테른의 1국1당 원칙으로 그 활동을 정지하여야 했다. ○결성 4년 앞당겨 요컨대 전세계의 반제동맹은 28년에 있었던 코민테른 제6차대회 이후에 생겼다.따라서 반제동맹의 청년조직이라는 뜻을 가진 「반제청년동맹」은 27년 8월에는 존재할래야 존재할 수가 없는 조직으로 되기 마련이다.이러한 조작은 서울상해파가 결성한 「청년반제국주의대동맹」의 존재를 알고 있는 김일성만이 할 수가 있다.그는 이 파의 공적을 횡취하고 그 결성연도를 31년부터 무려 4년이나 앞당겨서 「자신의 반제청년동맹」을 조작한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 1」206면 ②「불멸의 자욱을 따라 1」234면 ③평전 163면 ④「세기와 더불어 1」247면 ⑤평전 139면 이하
  • 민족분단 아픔 소리꾼 통해 표현/이정일 일인극 「콜라병」 무대에

    ◎박동진옹 작창·국수호씨가 안무 인간문화재 박동진옹의 「적벽가」이수자인 이정일씨가 일인극을 무대에 올린다.공연기획 소리새가 기획하고 흥사단이 후원한 이정일 한판극 「콜라병」이 그것이다.오는 27일부터 5월5일까지 대학로 충돌1소극장(741­0300)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전쟁동이 소리꾼 조만득의 해학과 풍자를 통해 민족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기원하는 작품으로 최근 동두천에서 일어났던 「윤금이양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지난 72년부터 91년까지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해온 이정일씨는 이작품에서 소리꾼 엿장수 양공주 동성연애자 미군병사등 18명의 다양한 인물들로 바꿔가며 출연해 대변신을 시도해 관심을 모은다.최송림씨가 작품을 쓰고 유중열씨가 연출을,그리고 박동진옹이 작창을,국수호씨가 안무를 각각 담당했다. 이번 작품은 특히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소년소녀 가장돕기 기금마련 공연으로 준비됐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50)

    ◎길림시절:9/「유길학우회」 활동의 허구/“이준·안중근의 독립투쟁 비판” 주장/27년엔 공산당 영향력 없어 불가능/종교타파 주도자,자신서 여선생으로 바꿔 회고록에서는 길림소년회와 유길학우회가 한 사업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⑴조기회…아침마다 지구별로 열었다.일요일은 모든 회원들이 북산에 가거나 그 밑의 운동장에 가서 체육경기를 했고 가창행진도 하였다. ○“노동이 낫다” 인식케 ⑵종교타파…김일성이 조선인소학교의 여선생을 시켜 종교를 믿는 학생에게 하루종일 하느님에게 빵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였다.그 다음에 여선생에게 학생들을 데리고 밀 이삭을 주워 그것으로 빵을 만들게하여 먹을 것을 얻는 데는 「하느님」보다 노동이 낫다는 것을 인식시키도록 하였다.또 소년회원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보고 「소년 애국가」·「조선인 길림소년회가」같은 혁명가요를 보급하였다. ⑶국어강습…27년 여름에는 중국소학교에 다니는 소년 등 우리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20일동안 국어를 가르쳤다.「조선사람은 조선을 알아야 한다」란 구호를 내걸었는데 계영춘·김원우·박소심이 강의에 출연하였다. ⑷과외활동…용담산 원족,강남공원 야유회,문화유적 참관,강연회,토론회,학습회,웅변대회,독서발표회,노래보급,연예공연 등을 다양하게 조직하였다. ⑸비밀활동…강남공원·북산 등에서 야유회의 간판을 가진 비밀회의를 많이 하였다.북산의 약왕묘 지하실은 그들의 전용 회의실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하였다. ⑹강연…오동진·이탁 등 정의부 지도자들은 국치일(8월29일),3월1일,단군 탄생일(10월3일)등 주요 기념일에 교포들과 청년학생들을 모아 놓고 강연회와 토론회를 자주 조직하였다.김일성도 연설했다. ⑺토론회…27년 여름에 손정도네 예배당에 유길학우회 성원들을 모아 놓고 이준의 방법이 옳은가,안동근의 방법이 옳은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가졌다.이 토론회를 계기로 조선을 독립시키는 데는 테러나 청원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진로가 탐구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⑻계몽사업…소년회원들까지 동원하여 강동·육대문·신안둔·대황구와 같은 농촌마을에 나가 농민들의 일손을 도와주면서 그들을 계몽하였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활동」의 실태를 분석해 보자. 첫째로 손정도의 예배당에서 당시의 학생들이 일제 요인을 향한 테러나 강대국을 위한 청원의 방법으로는 나라를 찾을 수 없다고 토론했다는 것은 민족주의운동 진영에 공산주의 사조가 침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둘째로 종래는 김일성 자신이 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었던 종교타파 문제가 이번 회고록에서는 그 주인공이 「조선인소학교」의 여선생으로 바뀌었다.이 학교는 일본기록이 말하는 「신개문 밖의 예배당에서 경영하는 유치원」이다.공산주의 사조는 당시 유치원 선생에까지 파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부 계통” 입증 따라서 이러한 일들은 29년 께가 아니면 생길수가 없다.김일성이 주장하는 27년 상반기에는 길림지방에서는 민족주의진영 세력이 압도적이었고 조선공산당의 영향은 아직 그 내부에까지 침투되지는 못하였다. 셋째로 국어강습은 회고록 본문을 읽어보면 김일성이 한 일이 하나도 없다.대신 조선공산당 재건파의 하나인 서울상해파의 간부 박소심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 사실은 29년에 서울상해파가 국어강습을 지도했고 그들이 계영춘,김원우 등 정의부 좌경분자들을 강사로 끌어들인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넷째로 오동진,이탁 등 정의부의 지도자가 강연했는데 이런 강연을 김일성도 했다고 하고 있다.이것은 그가 국민부 계통이었다는 것을 실토한 대목이다.소년회장으로 있었던 29년 무렵 그가 소년들 앞에서 「강연」을 한 것 자체는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다. 다섯째로 29년 당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는 여러 종파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과외활동,비밀모임,대중 계몽사업을 벌였다.그들은 민족주의 단체에 적극적으로 침투하여 서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썼다. 이 때문에 국민부 인사들은 혹은 좌경화되고 혹은 「반동」으로 몰리고 동족상잔의 가지가지 비극이 연출되었다.정의부계통의 청소년들도 조선공산주의운동의 강력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김일성도 그런 소년의 한 사람이었다. 회고록의 기술을 분석해보면 이상과 같다.그러나 회고록은 이러한 진실을 계속 외면하고 29년 께에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선상에 나타난 일련의 현상을 27년에 끄집어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 총영사 질겁” 과장 『조선인길림소년회,조선인유길학우회,마르크스 레닌주의 독서조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길림일대에서는 「ㅌ·ㄷ」성원들을 핵심으로 하는 새세대의 혁명역량이 급속히 자라나게 되었다. 길림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총영사까지도 이것을 간파하고 우리의 활동에 주의를 돌리게 되었다.길림 일대에서 새로운 혁명세력이 등장하여 그것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데 질겁한 총영사는 자기나라 외무대신에 보낸 공식 보고문에서 그 대오가 조직력이 강하다는 것과 장차 무서운 존재로 나타나게 될 위험성이 있으니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①「세기와 더불어 1」241면 이하 ②같은 책 2백46면
  • 가정주부가 15년째 동물애호운동

    ◎갈곳없는 개·고양이 등 2백여마리 보호/동물보호협회장 금선란씨 「사랑스런 개…」도 펴내 『동물을 업신여기면 사람도 그릇된다.인간의 사랑이 동물에게도 미쳐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한다』한 주부의 동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동물보호운동에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재단법인 한국동물보호협회의 금선란회장(48)은 직함에 걸맞지 않은 평범한 가정주부이다.다만 동물을 아끼는 마음이 남다를 뿐이다.무지한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고 쓴 동물수기에는 고귀한 인간애가 넘친다. 최근에는 「사랑스런 개와 고양이를 위하여」란 책자를 발간,전국의 초중고교와 대학에 1만부를 무료로 배포하는등 자라는 청소년들의 정서순화교육에 힘쓰고 있다.회원이되면 개인적으로 이 책을 무료로 준다.이 책은 3백80쪽짜리로 애견의 훈련,개를 보살피는 요령,고양이 바로알기 등 우리와 가까운 동물을 보호하고 사랑해주는 방법 등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버려진 동물들이 너무 가엽고 생명을 소홀히 여기는 풍조가 안타까워 오갈데 없는 동물고아들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금씨가 동물사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년 전부터이다.개와 고양이가 심하게 학대받고 도살되는 야박한 인심이 그를 동물애호가로 변신시켰다. 우선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들을 모아 보호했다.주변에서 발견되는 동물들을 모두 모으다 보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국제동물보호재단(IFAW)에 도움을 요청,불모지이다시피한 국내 동물보호운동을 조금씩 확산시켜 나갔다. 지난 91년 12월에는 한국동물보호협회를 설립,동물사랑이 곧 인간애의 시작이라는 신념을 이웃에 심어주고 있다.협회에서는 동물에 대한 ▲잔학행위방지 ▲질병예방 ▲치료 및 불임수술 등 동물보호를 위한 박애정신을 활발히 실천하고 있다. 『동물의 불임수술은 학대가 아니라 보호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차면 짝을 찾는 본능 때문에 여러가지 위험하고 귀찮은 일이 생기지요』 수컷이 암컷을 찾아 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개장수에게 붙들려 죽는 일도 많을 뿐더러 고양이는 발정기때 너무소리를 질러 이웃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협회는 또 오는 7월을 동물보호의 달로 정하고 5월에 각급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동물사랑」을 주제로한 글짓기 대회와 사진콘테스트를 개최하는 등 아낌없는 후원을 하고 있다. 개와 고양이,오소리,비둘기,족제비 등 갈 곳 없는 동물 2백여마리를 보호하고 있는 금씨는 자칭 「동물 고아원장」이다.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했고 동물사랑에 별다른 종교적 믿음은 없다.전국에 5백명으로 늘어난 회원을 중심으로 동물사랑운동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연락처는 053­629­6143 한국동물보호협회.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9)

    ◎길림시절:8/「유길학우회」 인물·사업 조작/일경문서의 「우상화 저촉」부분 삭제/30년도 기록 27년도 사실로 원문 날조/「항일운동」 부분은 연도뺀채 그대로 기록 조선전사는 일본 경찰이 기록한 조선인류길학우회에 관한 문서에서 김일성 우상화에 저촉되는 부분은 모두 삭제하였다.그런데 이 삭제 부분을 빼면 나머지 문서의 의미란 다음과 같이 된다. ○구체적인 날짜 삭제 「유길학우회는 길림에 사는 중등학교 이상의 한인학생이 조직하고 있다.민족의 기념행사들을 거행하고 중국측에 일제 타도를 선전하고 있는 단체이다」 즉 구체적인 인명·단체명·연도·날짜·사업내용 등을 모두 빼고 이 정도로 문장을 애매모호하게 하지 않으면 1930년의 기록을 가지고 「김일성이 1927년에 유길학우회를 조직했다」는 날조는 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일본 경찰기록은 30년 3월에 작성돼 있다.한편 회고록은 김일성이 29년 가을부터 30년 5월까지 길림감옥에 투옥됐다고 주장하고 있다.필자가 후에 밝히겠지만 김일성은 30년 3월에는 감옥에 있지도 않았다.그러나 전기작가들은 이 기록이 그가 수감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기간중에 일제가 작성한 것을 뻔히 알면서 이것을 27년에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찬과 왜곡은 기록 원문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진실을 또한번 왜곡하는 엄청난 죄행을 다시 저지르게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원문에서 「본년 1월중 선내학생소요사건에 대하여…대일반항운동을 유리케 전개」하려고 했다는 일절은 삭제하지 않고 있다. 전기작가들은 이 기록이 1930년에 작성됐다고 알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하였다.이 때문에 독자들은 이 일절이 27년의 이듬해인 28년 1월에 만주에서 일어난 학생소요사건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26년 4월26일에는 조선왕조 마지막 왕인 순종이 승하하였다.그 국장의 날을 계기로 하여 유명한 6·10만세사건이 일어났으므로 이 개찬문을 보는 북한주민들은 그 1년반 후인 1928년 1월께 이 반일운동이 만주까지 파급되었다고 착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6·10만세사건은 조선공산당이 활약한 사건으로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었다.따라서 전기작가들이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둔 「반 일본제국주의 선언」이란 어구를 보는 북한주민들은 이 「선언」을 당시의 조선공산당이 작성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원문 그대로 읽으면 이 소요사건은 26년의 6·10만세운동이 아니라 29년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사건의 영향이 길림까지 파급된 결과 일어난 것이다. 광주학생사건은 한반도 전체를 독립운동의 도가니로 만들었다.그리고 이 반일운동을 길림에서 추진한 것이 유길학우회였다.조선공산당 재건파의 하나인 서울상해파에 속하는 학생들이 이를 지도하였다. 또 「반 일본제국주의 선언」이란 30년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조선공산당의 작품일 수가 없다.이것은 1928년에 있었던 코민테른 제6차대회의 방침에 따라 30년에 만주에 탄생하는 반제동맹이 작성한 선언인 것이다. 1927년 전반기에 조선인길림소년회와 조선인유길학우회의 최고지도자였다고 하는 김일성의 주장을 사실에 비추어 검토해 보자. 1930년의 일제기록에 의하면 당시 길림성성에 있었던한인 소학생은 일본 남만주철도(만철)가 경영하는 길림심상소학교에 7명,중국측 소학교에 10명 내외있었다.또 5세부터 8세까지 아동이 4월부터 개교한 친일 서당과 그 반대파인 신개문 밖의 예배당 유치원에 각각 11명과 8명 있었다. 이 기록이 말하는 친일적 서당이란 종래의 영신학교가 1929년 여름 경영난으로 폐교된 관계로 30년 4월 길림성성 대마로에 새롭게 생긴 서당이다.5월 말에는 유길학우회 회원들이 그 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이 영신학교는 존속기간 중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1926년에 길림성성에는 한인 중학생이 22명,법정학교 학생이 1명 있었다.30년의 조사로는 사립 육문중학교와 문광중학교,성립 제오중학교에 20명 내외,그리고 길림대학에 2∼3명의 학생이 있었다. 소년회의 입회자격은 그 후신인 소년탐험대의 규약으로 보아 8세부터 16세까지로 추정된다.따라서 여기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길림심상소학교와 친일파 서당에 다니는 아동들을 빼고 중국소학교 학생과 예배당 유치원생 중 7세이하를빼면 회원자격이 있는 아동수는 수명에 불과하다.소년회원은 여기에 친일파를 뺀 중학생 10몇명을 더한 합계 20명 정도밖에 안되었다. ○소년회원 20명 안팎 게다가 30년 당시는 소년회가 길림소년회와 길성소년회로 갈라져 있었다.29년에도 분열되어 있었더라면 김일성은 고작 10명정도의 성원을 거느리는 소년회 회장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조선인유길학우회는 중학생 이상이 회원이었다.김일성은 29년에 중학교 3학년으로서 이들 20명 정도가 되는 회원의 중견 정도였던 것이다. 물론 그는 29년 전반기에는 길림에서 소년회장이었지만 27년 전반기에는 이러한 조직에 들어 있지도 않았고 길림성성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①평전 110∼1면 ②평전 115면
  • 과학자 모교방문/초중고생들 크게 호응

    ◎방사선 측정실험때 학생들 진지/학교측도 “후배 학습열 향상” 환영/과기재단,올 60명 방문추진… 과학차도 지원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이 벌이고 있는 「과학기술자모교방문운동」이 초·중·고등학교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수한 업적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과학기술자들이 모교의 어린 후배학생들을 찾아 나서 과학기술의 불씨를 지피는 운동이 본격화 되고있는 것이다. 지난91년 6월부터 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일깨우고 알리기 위해 모교방문을 추진해온 과학기술진흥재단은 올해 60명의 모교방문을 지원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의 진흥에는 정공법 밖에 없다.연구소를 짓는다거나 연구기자재를 구입하는 일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그러나 그안에서 머리를 짜내고 연구를 할 수 있는 과학자 하나를 기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우리 과학기술계도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켜 과학기술의불을 일으키고 몰두하는 꼬마 과학자를 많이 키워야한다.그중에서 추리고 다듬어 20년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길러내는 외에는 길이 없다』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의 윤영훈 사무총장은 이행사는 어린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이라고 취지를 들려준다. 과학자 모교방문프로그램의 첫 스타트를 끊은 사람은 한국 원자력안전기술원 임용규원장(60). 그가 91년 6월13일 모교인 대전중학교를 처음 방문한 이래 같은해 전국적으로 30명,지난해 60명등 모두90명이 모교를 찾아 과학강연을 했다. 원장은 『가끔 모교를 방문했었지만 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왜 과학자를 선택했는가」등을 강연할때는 무척 마음이 설레ㅆ다』고 전하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비디오상영과 방사선측정실험을 할때 후배들의 진지한 모습에 대견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문 당시 임원장은 학교측에 TV와 비디오를 기증했고 대부분 과학자들은 현미경을 한대씩 기증한다. 지난해 11월28일 부산고를 방문한 삼보콤퓨터 기술연구소 서진구소장(43)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대에 학생들에게 체험담을 곁들여 강연한 것은 내게도 좋은 기회였다』며 방문이후 후배들이 컴퓨터에 대한 문의편지나 전화까지 해오고 있다며 흐뭇해 했다. 서울대 공과대학장 이기준교수(55)는 지난해 4월20일 서울사대부고를 방문한데 이어 오는4월9일 충남 아산군 탕정국민학교를 방문할 계획이다. 금성중앙연구소 강린구소장(59)의 모교인 서울 교동국민학교 임태식교감(52)은 『과학적 사고를 갖게 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학생들이 훌륭한 선배와 함께 하는자리를 아주 뜻깊어한다』며『앞으로 더 많은 선배들을 초청,학생들과의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운동에 대한 호응이 높아지자 진흥재단은 오는 26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과학기술자들의 모교방문에는 지금까지 벽지등을 순회하던 과학차를 동행케해실험도 하는등 과학잔치를 벌이게할 계획이다. 진흥재단 청소년과학부 황인수과장(40)은 『올해에는 전자통신연구소강자영박사등 60명의 과학기술자들이 모교를 방문 할 예정』이라면서 『이미 모교를 방문했던 많은 과학자들이 이같은 기회를 다시 갖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회분위기의 총체적 일신(출범 김영삼신한국:11)

    ◎미래·창조지향 새 기풍 조성/편법주의 배척… 원칙준수관행 정착/활력과 참여의 행동양식으로 무장 김영삼대통령은 최근 『개혁을 해 나가는데는 역풍도 있고 저항도 있을 것이지만 개혁을 위한 전진은 결코 멈추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새정부가 추구하는 개혁은 과거지향이 아니라 미래지향이며,파괴지향이 아닌 창조지향인 만큼 국민의 공감과 합의속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신한국창조를 위한 개혁은 대통령이 앞장서 이끌겠지만 여기에는 국민의 동참과 협력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사회에 광범위하고 뿌리깊게 만연된 「과거의 유물」들을 청산하고 2∼3년내에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기 위해선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운 기풍이 진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개혁의 1차적 대상이 정치권을 비롯한 지도층에 초점이 맞춰지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총체적인 사회개혁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11일 새정부의 국정지표로 내세운 4대과제 가운데도 「건강한 사회」가 들어있는 것은 이같은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미 지난번 「인사파동」에서 변화하는 사회분위기의 일단을 보여주었다.과거와는 달리 최고통치권자가 자신이 단행한 인사의 잘못된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국민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개혁이 더이상 「아래」에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실천되는 작업이란 사실이 입증된 만큼 이에 상응하는 국민의 의식개혁도 수반돼야 한다. 새로운 사회기풍의 조성은 국가기강의 확립에서 시작된다. 김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듯 목적을 위해 절차가 무시되는 편법주의는 단호히 배척돼야 한다. 국가기강은 건전한 가치관과 생활규범이 국민개개인 생활속에 내면화되어 사회질서와 공동체규범이 확립될때 비로소 실현 가능하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권위와 질서의 붕괴 ▲도덕성의 실종 ▲부정부패 ▲과소비와 퇴폐향락풍조 ▲물질만능주의 ▲지역·계층·세대간 갈등등 각종 병리현상이 판을 치고있다. 눈앞의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가치를 압도하고 땀흘린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며 법을지킨 사람이 오히려 「이단시」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때문에 새시대에 부합하는 사회기풍은 단기적으로는 각종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고 장기적으로는 문민시대와 통일조국시대에 대비한 국민정신및 민족자존의식의 확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로써 폐쇄와 경직에서 개방과 활력의 시대로,갈등과 대립에서 대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갈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제도뿐 아니라 의식과 행동양식의 전환도 아울러 요구한다. 일하는 분위기의 조성,준법의식과 도덕성의 회복,기준과 원칙에 의해 업무가 처리되는 새로운 관행의 정착등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확립되어야 한다. 또 남이야 어떻든 나만 좋으면 좋다는 식의 이기주의 청산과 있는자가 보다 양보하는 「나눔의 미덕」도 사회기풍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특히 「부패사슬」과 유착고리의 단절은 껍질을 벗는 아픔을 감내하는 노력을 요하는 만큼 이에대한 각오가 필요하다. 국민의 동참을 요구하는 새로운 사회기풍의 진작은 그러나 먼저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전제돼야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 고통의 분담을 과감히 요구해야 한다.그래야만 개혁에 반발하는 기득권층과 수구세력들이 민심의 향방을 우려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다시뛰는 한국인의 모습은 김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이룩되지 않는다.고통은 나누고 기쁨은 공유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때 신한국은 이룩되는 것이다. ◎전문가의 시각/의식개혁 나부터 시작하자/학교·가정 제자리 찾아 도덕심 회복/박정희 서울YWCA회장 새정부는 사회개혁의 실현가능성에 믿음을 갖게하여 국민들이 김영삼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너무나 크다.새정부가 그 많은 과제들을 하루아침에 다 치유하기는 힘들겠지만 시작되는 여러 상황들을 보고 국민들은 찬사를 보내고 정말 잘되어 갈것으로 믿고 있다.즉 부정부패가 척결되고 경제는 살아나고 국가기강이 바로 잡힐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각종 법령이나 제도의 개선과 행정규제위원회의 신설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도반가운 일이다.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각종 무질서와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과 조직폭력배 단속에도 나서고 있는 것등은 사회기풍 개혁에 기본이 될 것이다.여기에 발맞추어 국민들은 이러한 새로운 기풍진작을 스스로 참여하는 범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나가야 할 것이다.윗물맑기 운동으로 솔선수범하는 대통령과 함께 윗물만 탓하지말고 나부터 시작하면 바꿀 수 있다는데 우리들은 공감하며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한다. 국민들의 의식개혁이 일어나고 도덕성 회복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의식혁명은 제도화되고 생활화되어야 한다. 우리사회의 이같은 새로운 기풍진작은 우선 올바른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나라를 짊어질 청소년들에 대한 가정·학교·사회에서의 도덕교육은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신한국창조를 위한 요체는 우리사회의 도덕률을 확립시키는데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가정에서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가정이 건강해짐으로써 국가사회에 새로운 가치관이 확립되고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가정이 무너지면 사회자체가 괴멸될 것이다. 건전한 가정을 꾸미는 일은 부모의 책임이다.자녀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면서도 자신들은 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부모 또는 어른들이 있는 한 「한국병」은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만연된 병리현상인 사치 향락풍조와 3D현상,지역감정은 없어져야 한다. 소득수준을 벗어난 과소비행태를 근절시켜야 한다.우리는 30여년전의 보리고개를 잊어서는 안된다.근검 절약하여 저축을 늘리고 그 돈이 기업으로 들어가 시설투자와 새기술개발을 통해 고용을 확대,세계경제 한파를 극복하는데 온 힘을 모아야 한다. 또한 시민 민간단체들의 질서지키기 운동이나 공해추방운동,자원 재활용운동등 사회자정운동이 확산되어야 할것이다. 새로운 사회기풍은 사장된 고급인력의 자원봉사자들이 발벗고 나서 사회복지와 아름다운 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구석의 소외된 자를 돌보며 사랑을 나눌때 저절로 형성될 것이다.
  • 고교자녀 문화활동 학부모 85%가 찬성

    ◎청소년문화연,학부모 1168명 조사/예절·정서함양순… 66% “교외봉사 내신반영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의 학부모들은 학교에서의 청소년문화활동에 적극 찬성하며 청소년문화활동 프로그램에서 주로 예절및 규범적인 측면의 문화활동이 실시되길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청소년의 동아리활동에 대해 매우 허용적인 자세를 취하며 과반수 이상의 학부모들은 특별활동및 교외봉사활동의 참가정도를 내신성적에 반영시키는데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가 최근 서울시내 중고생 학부모 1천1백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문화활동 정책수립을 위한 기초조사」결과 밝혀졌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들의 85%는 학교에서의 청소년문화활동이 강조될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청소년문화활동 프로그램을 위해 주당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할애되는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청소년문화활동 프로그램에서는 예절및 규범적인 측면의 문화활동이 가장 강조되기를 원하고 있으며(36%)그 다음이 정서함양의 문화활동(31.5%),체력단련 문화활동(20.5%)의 순이다. 또 응답자의 77%와 40%는 학교내외에서의 동아리활동에 각각 허용적인 자세를 취했으며 66%는 특별활동및 교외봉사활동의 참가정도를 내신성적에 반영시키는 것에 찬성했다.그러나 내신성적 반영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하는 학부모들도 많았다. 한편 학부모들의 72%는 각종 유해환경과 과중한 학교수업 등으로 청소년문화가 불건전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나 48%가 청소년의 여가활동을 위해 주당 5시간 미만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응답,청소년문화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적인 배려에는 인색한 이중적인 사고를 드러냈다.
  • 국가 백년대계 교육정책 방향(출범 김영삼신한국:7)

    ◎“21세기 민주시민 양성” 교단개혁 주도/입시위주 탈피,생활교육에 주력/GNP 5% 투자… 사학재정 지원/대학문턱 낮춰 산업체근로자 입학기회 늘려 김영삼대통령의 새 정부는 출범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신 한국교육 창조」의 첫번째 분야로 교육개혁를 꼽고 있다. 「신 한국교육 창조」로 요약되는 새 정부의 교육개혁은 지금까지의 교육체계의 틀을 그대로 두고 특정 제도를 고치는 식의 종전의 분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한국교육」 창출 잘못됐던 교육의 기본 틀을 새롭게 바꿈으로써 명실상부한 「국가 백년대계」의 주춧돌을 새롭게 놓겠다는 구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영삼정부는 「사람다운 사람,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인간교육」을 교육개혁의 푯대로 제시하고 있다.유치원,국민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교 교육은 ▲인간을 존중하는 사람 ▲높은 공동체의식을 갖춘 도덕적인 사람 ▲열린 마음과 창조적 능력을 지닌 사람 ▲21세기를 주도할 세계 시민적 자질과 미래 지향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는데 초점이 일관되게 맞추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하면 된다는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인 비도덕성을 차제에 바로 잡고 건전한 정서 함양을 위해 초·중·고교에서는 인간성회복을 위한 생활교육을 크게 강화하도록 되어 있다. ○공동체의식 강조 일선 학교의 생활교육은 특정 교과목에 한정될 일이 아니다.전 교과에 걸쳐 올바른 역사관,국가관,정직,질서,화합등 건전한 가치관을 새롭게 심어주는 민주시민 교육으로 실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청소년의 건전한 정서 함양을 위해 지역별로 학생들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있는 학생교육원을 건립하고 학급자치 활동지도를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 뒷바침도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인간성 회복교육과 함께 새 정부 교육개혁의 또 다른 축은 과학기술 교육이다.과학교육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고급 과학기술 인력양성의 기반을 구축하고 국민의 합리적인 사고와 탐구적인 생활태도를 함양시키는 기본적인 교육활동이다. 다가오는 21세기의 고도 산업정보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치열한 국제경쟁속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은 탄탄한 과학 기술의 뒷받침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과학·기술의 연구및 개발활동의 산실인 대학의 교육여건을 크게 보강해 그간 양적으로만 팽창해온 대학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는게 우리 교육이 안고있는 중요한 숙제이다. ○대도시 2부제 없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학을 비롯한 학교에대한 재정적 지원이 앞서야 한다.올해 국민총생산액(GNP)의 3·7%에 불과한 교육재정을 새 정부가 공약한대로 오는 98년까지 5%까지 끌어올리는 과제도 결코 쉽지 않다.역대 정부가 교육계의 현실로 보아 늘 공감하면서도 시행에 옮기지 못했을만큼 국가재정 형편이 여의치 못한 까닭이다.그러나 새정부는 교육재정 확충방안을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늘어나는 교육재정은 현재 한 학급당 전국 평균 40명 수준인 국민학교 학생수를 35명수준까지 낮추고 서울등 대도시의 2부제 수업을 완전히 해소하는등 교육 여건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이 기대된다. 또 산업체 기능인력 양성을 위한 실업계고교 교육의 내실을 기하기위해 실험·실습기자재를 크게 보강하고 노후된 교육기자재를 전면 교체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총생산액 5%에 이르는 엄청난 재원은 특히 사립대학에대한 국가지원이 크게 늘어나 대학의 재정난을 완화시키는 것은 물론 대학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교원지위 크게 향상 대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대학의 자율화가 더 신장돼야 한다는 지적이다.신입생의 선발권등 일체의 학사업무가 자율화되는 대신 대학평가제,교수평가제등 대학의 자율적인 경쟁력향상 노력을 유도하는 제도도 함께 병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새정부의 교육개혁은 국민의 평생교육체계를 확립하기위해 근로자에대한 계속교육기획을 확대하고 산업체 근로자의 대학입학 요건 완화대책,독학사 학위취득제도와 대학및 전문대의 평생교육원 설치등을 대폭 확대하기로 되어 있다. 교육문화 체질개선과 함께 교육에대한 실추된 국민적 신뢰회복 효과도 노리고 있는 새정부의 교육개혁 구도는 「존경받는스승상」으로 요약되는 교원지위향상 대책도 포함하고 있어 교육계뿐아니라 국민적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전문가의 시각/대학 증원보다 교육질향상을”/교수·시설 확충에 역점… 자생력 길러야/김신일 서울대교수·교육학 김영삼대통령은 선거기간중에 스스로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하였으므로 교육문제와 관련하여 그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는 역대 대통령에 비하여 남다른데가 있다.교육은 김대통령이 잘만하면 역사에 뚜렷이 기록될만큼 큰 업적을 남길수 있는 분야이기도하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교육문제 해결을 위하여 교육개혁위원회,대통령교육자문위원회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운영도 해보았지만 최근의 연속적인 대학입시부정사건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개혁은 고사하고 문제만 더욱 누적되어왔기 때문에 교육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어느때 보다도 높다.그리고 대통령이 남길만한 치적으로 경제발전이나 남북통일은 이미 전임 대통령들이 부분적으로 차지한 셈이므로 신임 대통령에게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교육개혁이야말로 가장 좋은 치적감이 아닐수 없다. 신임 대통령과 그 정부가 추진해야할 교육개혁의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할 것이다. 첫째,종래의 양적 확대의 정책으로부터 질적 수준향상의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여야 한다.특히 대학과 대학원 교육의 질적 수준향상은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 있어서 국가의 존망이 걸리다시피한 시급한 과제이다.이제까지의 대학교육정책은 학생수만 가지고 따지는 학생정원관리정책이었다.그러므로 정원에 한명만 넘어도 불호령을 내리는 교육부가 대학이 마땅히 갖추어야할 교수와 교육시설은 턱없이 모자라도 용인해주었다.이제는 정책방향을 1백80도로 바꾸어 교수와 교육시설의 확보여부는 엄격히 감독하는 반면 정원에 대하여는 대폭 완화하여야 한다.학생수에 대한 교수와 시설의 확보율만 실제로 엄격히 지킨다면 학생정원은 궁극적으로 자유화시켜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요컨대 교육연건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규모만 비대하고 내실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교육을 확실하게 바로잡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4년제 대학의 입시는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고려하여 일정수준 이상에 도달한 사람에게만 입학자격을 부여하는 대학입학자격고사제를 도입하여야 한다.반면에 전문대학에는 입학기준과 정원을 자유화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전문대학까지 다닐수 있도록 기회를 개방하되,4년제 대학은 질적 수준을 높이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혁하여야 한다. 둘째,과학기술교육의 강화인데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는 국사립대학간의 기능분담이 필요하다.즉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과학기술교육은 국립대학에 주로 담당시키고 교육비가 다소 적게 드는 인문사회과학교육은 사립대학이 주로 담당하도록 기능을 분담시키자는 것이다.이제까지는 이러한 기능분담이 없었으므로 부실한 이공계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여 대졸실업자만 늘려왔다.이번 입시부정사건으로 드러났듯이 재정난에 허덕이는 사립대학들에 엄청난 설비투자와 교육운영비가 필요한 첨단과학기술교육을 맡기는 것은 무모한 정책이 아닐수 없다. 셋째,교육투자의 확대를 위하여 국가와지방자치단체간의 교육비분담구조를 개편하는 한편,사교육비지출을 공교육비화할수 있도록 교육관련세제를 개혁하여야 한다. 교육비분담의 기본구조를 초중등교육을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고 대학교육은 국가가 담당하도록 개편하여야 한다.그리고 각가정에서 학원비·과외비·참고서비 등으로 지출하는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방세및 교육관련세제의 개혁을 통하여 공교육비화하여 학교로 끌어들여야 한다.그렇게하면 공약으로 내세웠던 교육예산의 국민총생산고 5%는 어렵지 않게 달성할수 있을 것이다. 넷째,사립학교와 대학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현재는 일부를 빼놓고는 사립교육기관들이 마치 개인소유물처럼 되어있다.학교이름을 대면 그 학교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금방 댈수 있을 정도로 사유성이 강하다.게다가 몇해전에 개정한 사립학교법이 철저하게 설립자본위주로 되어 있어서 설립자와 그 가족들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이래가지고는 사립학교의 정상적 발전도 어려우려니와 사립대학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을 정당화하기가 어렵다.하루빨리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여 공공관리의 폭을 넓히고 학교회계를 공개시키는등 공공성을 확대시켜야 한다.그렇게 하는 한편으로 국고의 사립대학 지원을 적어도 대학예산의 10%까지 늘려야 한다.
  • 백남근 교통부 관광국장(만나고 싶었습니다)

    ◎2천년 세계10대관광국 도약 총력/1천만명 몰릴 대전엑스포 준비 순조/내년 1백여개 대규모 국제회의 유지/국민 관광수요 충족위해 각종시설 확충 등 추진 관광산업은 굴뚝없는 공장으로 비유된다.외화 가득률이 높기 때문이다.정부는 올해 8월부터 시작되는 대전엑스포와 94년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관광산업을 획기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각종 시책을 펴고있다.오는 2000년까지 세계10대 관광국으로의 도약이 목표이다.우선 94년도에 외래관광객 4백50만명 유치,여행수입 50억달러 달성을 겨냥하고 있다.정부의 관광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교통부의 백남근 관광국장을 관광안내원 공순복씨(한진관광 일어통역)가 만나 정부의 관광진흥정책을 들어본다. ▲공순복씨=93대전엑스포는 세계 1백여개국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로서 우리나라 관광진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이에 대비한 관광진흥대책은 무엇입니까. ▲백남근국장=93대전 엑스포 총관람인원이 1천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외국인 관람객도 60여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있습니다.이 기간중에 사용될 호텔객실은 약 1만5천여개로 추산되고 있으며 부족한 객식 2천여개는 건설중에 있습니다.엑스포 아파트와 민박등의 시설도 적극 활용,외국인 관광객들이 숙식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이 기간동안 일본인 관광객들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현재 제주도에 한해 실시하고 있는 무사증 입국을 8월부터 12월까지 허용할 계획입니다.서울올림픽 경험을 살려 특색있는 관광코스 개발및 새로운 쇼핑상품의 개발과 관광종사원의 서비스 향상등 관광수용 태세완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씨=올해 대전엑스포에 이어 추진하게 될 「94한국방문의 해」사업의 주요 내용과 준비상황은 어떻습니까. ▲백국장=최근 적자를 보이고 있는 여행수지 개선과 한국관광의 새 전기를 만들기 위해 서울정도 6백년이 되는 94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90년9월 전세계에 선포했습니다.「94한국방문의 해」에는 PATA총회 만국우편연합총회 세계에스페란토대회등 1백여개의 대규모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외래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관광행사로눈축제,꽃축제,사계절축제,세계요리 축제등 32개의 대형 국제행사와 전통민속 문화행사를 연중 개최할 계획입니다.이 행사를 세계에 널리 홍보하기 위해 엠블럼 로고 주제등 상징물을 활용하고 미의 사절을 선발하여 유치홍보사절단으로 파견하는등 해외 홍보활동을 적극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공씨=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국민들의 여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여가활동이 급격히 증가될 전망입니다.복지증진의 측면에서 국민들의 여가및 관광수요를 충족시킬 대안은 무엇입니까. ▲백국장=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여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관광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소비지출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정부는 이같은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8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 모두 85개 관광지를 개발하여왔고 올해에도 보완 개발을 포함해서 모두 17개소의 관광지를 개발하고 있으며 경주 보문 관광단지,제주 중문단지를 비롯하여 해남 화원관광단지,감포 해안관광단지등 모두 8개소의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을 추진중에 있습니다.또 국민들의 다양한 관광성향에 부응하기 위하여 가족단위 관광객이 이용할수 있는 가족휴가촌등 관광휴양 시설과 자동차 여행문화에 부응하는 자동차 야영장,관광도로등의 관광시설을 확충하고 특히 도시주변에 국민휴식공간을 확대해 가는 한편 국민복지증진 차원에서 근로자·청소년계층의 관광장려를 위하여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갈 계획입니다. ▲공씨=남북한 교류협력분야 부속합의서의 발효에 따라 국민들의 남북한 관광교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남북한 관광교류 협력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무엇입니까. ▲백국장=남북한 관광교류 협력을 위한 시행가능한 사업으로는 남북한을 방문하는 외래관광객이 상호 직접 방문할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남북한을 연결하는 관광코스를 공동 개발하고 남북한 주민들의 관광교류를 추진해 나가며 관광시설을 합작건설하는 사업등을 고려할수 있습니다. 우선 관광자원 공동개발을 위한 조사단 파견등을 고려할수 있으며 사업의 추진을 위한 시행절차 방법등에 관해 남북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를 통하여 협의,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휴전이후 40년동안 사람이 출입하지 않은 판문점주변의 비무장지대와 금강산과 백두산등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아도 4계절이 뚜렷하며 역사와 전통이 깊어 사회간접자본을 잘 투자하면 관광객을 끌어들일수 있다고 봅니다.더욱이 남북통일이 되고 중국과 러시아가 육로로 연결된다면 대륙철도와 항공기를 이용한 세계의 관광객들이 부산과 서울로 몰려들 전망입니다. ▲공씨=관광업계 종사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백국장=관광산업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왔고 관광산업 종사자 여러분들은 그늘진 곳에서 서비스향상에 주력해왔습니다.여러분들은 한국관광의 주역이자 민간외교관이라는 긍지를 갖고 현업에 종사해주기 바랍니다.국민소득의 향상과 함께 여러분들을 보는 국민의 인식도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 “보람에 산다”자원봉사 참여 늘어/청소·세탁에서 호스피스까지 다양

    ◎주부·대학생중심… 전국서 3만명 활동/신분보장·교통비지원·보험혜택 절실 88서울올림픽이후 사회봉사에 대한 국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자원봉사에 나서는 사람들이 적지않다.자원봉사는 남을 도움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을수 있을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보완,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는 조그만 디딤돌이 된다. 전문가들은 자원봉사가 이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수 있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자원봉사활동이 국민들 사이에 생활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최근들어 자원봉사인구가 크게 늘기는 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곳을 충당하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또 홍보부족 등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절차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자원봉사의 실태와 접근요령 등에 대해 소개한다. ▷현황◁ 현재 각종 사회복지시설이 자원봉사자의 수급을 맡아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최근에는 대학생 주부 직장인 뿐만아니라 전문직종사자의 참여도 느는등 자원봉사의 저변이 크게 확대되고 있으며 시설봉사에서 가정방문봉사 위주로 경향이 바뀌었다. 자원봉사자의 전체숫자는 가장 최근 자료인 91년도 보사부 통계에 의하면 2만8천명이지만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자원봉사자의 70%이상은 여성이며 주부와 학생 종교인 직장인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이들의 활동은 청소 세탁 취사 심부름 말벗 등 단순노력봉사에서 부터 상담 치료 간병 학습지도등 전문적 영역까지 매우 다양하다. 자원봉사자의 모집과 관리는 각 사회복지시설에서 개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주요시설의 활동상황은 다음과 같다. ◇여성자원활동센터=여성유휴인력 활용을 위해 정무제2장관실 산하에 설치된 여성자원봉사자 모집기관으로 전국 1백10개 시군구의 1백25곳에 설치되어 있다.여성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교육및 배치를 맡은 부녀복지관 여성회관같은 지역센터로 보내주는 역할을 맡고있다. 서울시의 경우 22개구청의 가정복지과 부설 등으로 26곳에 설치된 여성자원활동센터에서 자원봉사 신청자를 모아서 지역센터인 마포·구로·노원부녀복지관에서 이들을 교육시킨후 사회복지시설과 연결해준다.여성개발원의 인력은행을 이어받아 91년 7월에 시행된이래 1만여명이 거쳐갔다. ◇재가복지봉사센터=92년부터 보사부 시행에 의해 3백평이상의 종합사회복지관에 부설되어 현재 전국적으로 1백44군데에 이른다.파견된 2명의 사회복지사가 자원봉사신청자의 희망에 맞춰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봉사할 곳을 정해주면 자원봉사자는 주1회 정도 무의탁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 등의 가정을 방문,각종 봉사활동을 벌인다. ◇지역복지봉사센터=사회복지시설의 협의체인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부설로 전국 15개 시도에 설치되어 있다.신청자에 대해 사회복지와 자원봉사 일반에 대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교육을 시킨후 원하는 봉사처와 연결해준다.91년이후 3백5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순수민간단체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중점적으로 모집·관리하고 있다.장애인·노인·아동청소년복지관련 자원봉사활동에 현재 1천5백여명,32개 단체를 연결해주고 있다. ▷개선점◁ 대부분의 모집기관들이 절대적인 홍보부족에다 분산되어 있어 많은 자원봉사자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게다가 자원봉사자에 대한 신분보장이 미흡,사기 저하로 중도에 그만두는 예도 적지않다.자원봉사에 대한 정책과 지원 없이 과도한 봉사정신만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나라 자원봉사의 실태.자원봉사자들에게 최소한 교통비와 중식비를 제공하고 봉사활동 중에 다치는 경우에는 전액 보험처리해주어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참여방법◁ 자원봉사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는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신의 형편과 능력에 닿는 조그만 봉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봉사를 할 마음이 있더라도 선뜻 할 자신이 없으면 친구나 이웃과 함께 시도해 보는것도 좋다.1주나 2주에 한차례씩 봉사하다가 능력이 생기면 1주에 2회이상 봉사할수도 있으며 호스피스활동등 보다 전문적인 봉사활동으로 옮길수도 있다.아무리 쉬운 봉사활동이라도 꾸준한 인내와 정성을 요하므로 성급한 성취감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가까운 모집시설에 전화나 면담으로 보다 자세한사항을 안내받을수 있다.
  • 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과학평론)

    ◎과학교육의 해… 「기술맹」 퇴치 교육부는 1993년을 「과학교육의 해」로 설정하고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하여 세부적인 운영계획을 확정하는등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일대 혁신을 기하는 신선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주제를 「청소년들에게 과학의 꿈을」로 선정한 이 미래지향적인 사업은 93년 한해만의 사업이 아니라 2001년까지의 장기적인 사업으로서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전반적으로 다가올 과학기술사회에 걸맞도록 쇄신하려는 노력이라 하겠다.특히 올해는 과학기술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도약의 길을 보여주는 대전엑스포가 열리는 해인 만큼 과학교육의 개혁을 위해서 절대적인 호기인 것이다. 과학교육의 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세부사업들이 기획되어 있다.첫째로 학생들의 탐구력을 돋구기 위하여 전국의 초·중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탐구」올림픽이 개최된다.학생과학탐구 발표대회,청소년과학 경진대회,퍼스널컴퓨터 경진대회,우수과학교재기구 전시회 등 다양한 학생과학활동 행사들을 개최함으로써 학생 및 교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인들의 과학교육사업의 참여를 도모한다.둘째로 대전엑스포 93을 통한 광범위한 과학교육을 실시한다.대전엑스포는 미래과학기술의 발전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귀중한 기회이다.천만명의 관람객들에게는 과학기술문명의 진수를 알릴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기술사회에서의 당당한 역할과 그 열매를 건설적으로 즐길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이다.대전엑스포의 관람 전후를 연결하는 과학교육프로그램들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과학교육의 기능을 극대화하고 엑스포에서 얻게 되는 결과도 최대화한다.셋째로 과학교육 지원체제를 대폭적으로 강화하는 전국민 캠페인을 전개한다.열악한 교육현장의 과학교육 실험실습기자재를 대폭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단체의 참여와 재계를 비롯한 일반국민의 자발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특히 지역사회를 동원하여 각 고장의 과학교육진흥을 위한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넷째로 과학교육교사들의 사기앙양과 질적향상을 위한 학술행사와 연수과정들의 운영이다.획일화된 입시제도에 의하여 위축되었던 탐구교육,재능발굴교육을 확대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과학교육담당교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능력을 제고시켜야 하겠다.이는 뜻과 의욕이 있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으면 가능하다.다섯째로 과학교육발전 종합계획을 범정부적 차원에서 수립하고 추진체제를 제도화함으로써 장기적인 과학교육발전을 위한 연등계획을 실시하는 것이다.이 장기계획의 최종연도를 2001년에 둠으로써 21세기 과학기술 기본교육의 틀을 만든다는 것이다. 93과학교육의 해 추진위원회에서는 더욱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사업의 확대추진을 건외하고 있다.과학교육의 일대 혁신은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국민에게도 절실한 과제이기 때문이다.과거의 과학교육이 대상의 제한,생활과의 연결성이 없는 지식만의 교육과정이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과학기술맹」이 되어 있다.일상생활에서는 수많은 첨단기술제품을 사용하고 첨단산업발전에 따른 각종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내용을 전혀 모르는 과학기술의 눈뜬 장님들이 너무나 많다.글을 못 읽는문맹들이 현대사회를 운용키 어려운 것과 같이 과학기술의 ABC를 모르고는 과학기술사회에 살기가 어렵다.따라서 하루바삐 전국민을 상대로 한 과학기술교육과 과학기술맹 퇴치운동이 일어나야 하겠다.특히 대중언론매체들이 단순오락물의 방영에서 탈피하여 과학교육내용이 재미있게 담겨진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고 방영해야 할 것이다.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부모회 및 지역사회의 각 단체들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도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삽입함으로써 사회운동을 통한 성인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또한 직장을 중심으로 한 직장과학기술교육이 이루어져서 직장의 연구실화,직장의 교육장화를 가속시켜야 할 것이다.직장의 과학기술혁신은 국가사회의 과학화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새 행정부가 들어서게 된다.「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한 새 정부는 과학기술진흥을 동시에 높이 제창하고 있다.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을 생각한다면 교육과 과학기술을 접목시킨 국가개발계획이 튼튼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93년을 과학교육의 해로 선정한 것은 혜안의 결단인만큼 새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전 국민의 과학교육에 있어서 획기적이고 장기적인 도약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풍선 불면서 씹으면 묘한 기분”/「환각본드껌」 국교생 유행

    ◎문방구 등서 1백원에 팔아/제조사불명의 무허제품… 단속 시급 환각성의 「본드껌」이 국민학생과 중학생 사이에 크게 번지고 있다. 「본드껌」은 길이 5㎝정도의 물감통 모양에 들어있는 치약상태의 빨간 물질로 본드냄새가 강하게 나며 빨대 끝에 묻혀 불면 풍선이 되는 아이들의 놀이기구이나 환각제로 이용돼 문제가 되고있다. 본드껌은 「점보칼라풍선」이라고만 쓰여 있을뿐 제조회사도 허가번호도 없는 무허가 제품인데다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갖고 놀면 환각상태에 빠질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고 있다. 다만 어린 아이들이 빨대로 풍선을 불고 있는 만화가 그려져 있고 「씹거나 먹지 마세요」라는 경고문만 있을뿐이다. 특히 「본드껌」은 학교 부근이나 주택가 문방구등에서 1백원에 쉽게 살수 있어 유치원에 다니는 5∼7세의 어린이에게 까지 번지고 있어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서울 양천구 W국민학교 5학년인 임모군(12)은 『지난해 말부터 친구들 사이에 본드껌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며 『본드껌을 갖고 놀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또 중학교 2학년인 백모군(15)도 『호기심에 몇번 풍선을 만들어 봤다』며 『요즘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갖고 노는 것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교육구청에 공문을 보내 「본드껌」단속을 지시,각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1주일에 몇번씩 가방및 소지품 검사를 하는등 본드껌 단속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 S국민학교 교사 이모씨(35)는 『거의 매일 소지품 검사를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드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적발된다』고 말했으며 Y국민학교의 한 교사도 『10일전부터 본드껌 단속을 위해 소지품 검사는 물론 학교앞 문방구에도 본드껌을 팔지 못하도록 협조를 당부했다』고 말했다. 광명국민학교 최병록교감(50)은 『본드껌과 같은 무허가 불량품에 대한 단속이 시급하다』며 『특히 본드껌등을 사용하는 학생은 맞벌이부부 가정의 경우에 많이 나타난다』고 말했다.이와함께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민학교 학생들 사이에 사행심을 조장해온 카드놀이는 이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이는주로 중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본드흡입이 국민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되고 노름풍토가 유치원생들에게까지 번지는등 청소년들의 건전치 못한 여가활동이 저령화 되는 현상이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총액임금제 당분간 계속 추진”/16일 본회의(의정중계)

    ◎사면복권 대상 선정원칙·범위 밝혀라/95년 지방까지 청정연료사용 의무화 ▷답변◁ ◇현승종국무총리=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발생한 용공시비는 후보자간의 문제인 만큼 개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부산기관장모임사건과 관련,정부는 관계공직자들을 인사조치 하는등 적법한 조치를 다했다. 정부조직개편은 현재 의원입법으로 진행중이며 정부조직체계 전반의 개편은 차기정부에서 보다 심도있게 연구검토될 것이다. 정부는 환경문제에 대해 지난해 6월 리우환경회의를 계기로 7월에 지구환경장관 대책회의를 설치하고 현재 지구환경 종합대책을 추진중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 문제와 관련해선 정신대 피해자신고접수를 바탕으로 일본에 응분의 보상을 촉구할 방침이다.한일양국 정부가 긴밀히 논의하고 있는 만큼 남북한이 공동대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필요할 경우 유엔 인권위를 통해서라도 대처할 것이다. 공직자 부조리 추방을 위해 정부는 사정체계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각종제도와 관행을 과감히 개편하겠다. 금년에도 안정기조 정착과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임금안정이 불가피하다.임금결정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유도하겠다. ◇이수정문화부장관=홍란파는 1922년 이래 봉숭아등 많은 노래로 암울한 시대에 민족혼을 고양해 각계의 추천으로 지난해 8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다만 그의 행적에 대한 친일시비가 이는데 대해서는 유감이다. 내년 동학혁명 1백주년을 맞아 지난87년부터 17억원의 예산으로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동학사상의 재조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역사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힘쓰겠다. ◇이진삼체육청소년부장관=청소년의 국가관 확립을 위해 독립기념관 방문기회를 늘리겠다. ◇백광현내무부장관=안기부 직원이 부정입학을 알선한 학부모는 광운대 후기 전자공학과에 응시한 김모군의 아버지로 현재 무역협회 감사역으로 근무중인 김모씨와 염색공장인 아진실업의 대표인 김모씨등 두명이다. 「고문」혐의로 수배중인 이근안은 연고지 은신처등을 다각적으로 수사하고 있으나 아직 검거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공소시효는 그잔여시효가 5년8개월이 남아있다.현재 항소심에 계류중으로 형 확정때까지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 현재 시국치안 경찰관은 전체 경찰의 4.7%에 불과하다.문민정부 출범에 따라 각종 불법집회나 시위가 감소할 것이므로 시국경찰의 업무를 민생치안으로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 ◇안필준보사부장관=도농간 의료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농촌지역에 대학병원의 분원설립을 촉진하고 1·2차 의료기관의 육성을 위해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강력히 추진하겠다. 질병치료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양·한방 복합진료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이연택노동부장관=노조신고 때 상급단체를 기입하도록 계속 지도하겠다.이는 노조법상 우리노조가 총연합단체·산별·단위노조등 3단계 기본조직으로 돼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으면 노조체계가 혼란되고 단위노조의 난립으로 오히려 노조의 단결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총액임금제는 당분간 계속 추진할 계획이며 이를 금융실명제와 연계하면 곤란하다. ◇이문석총무처장관=최근 3개월간 대통령실에서 전출된 인원은모두 11명이며 이 가운데 2명은 승진,9명은 같은 직급으로 이동했다.승진한 2명은 해외공관장 발령을 받았기 때문에 관례에 따라 한 직급 올린 것이다. ◇이재창환경처장관=환경규제 차이에 의한 상계관세도입은 그린라운드라는 형식으로 선진국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가까운 시일내에 구체화되기는 힘들다. 대기보존 대책은 에너지 정책과 깊은 관계가 있는 만큼 95년까지는 청정연료사용의무화를 지방까지 확대하겠다. 폐기물관리의 효율성을 위해 1회용품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을 도입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정우법무부장관=14대 대통령의 취임을 맞아 갈등의 해소와 대화합의 차원에서 취임직후 대사면이 실시될 것이다.그러나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므로 여기서 사면의 기준 폭을 말씀드리기 힘들다. 사면을 제청할 장관으로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실시되도록 건의하겠다.민주화운동과정에서의 학생및 공안사범,노동쟁의과정에서의 근로자,일반형사범 등 대상범위를 확대하도록 건의할 방침이다. ◇유혁인공보처장관=지금까지 각 종교방송국으로부터 36개의 지방국신설 신청을 받았으나 공보처로서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의 증설계획을 현재로서는 갖고 있지 않다. 종합유선방송은 지적소유권문제와 같은 장애요인이 있더라도 방송문화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시행돼야할 것이다. 또 방송구역분할과 채널구성방안등의 구체적인 준비작업은 새정부출범후에 본격화되리라 본다. ▷질문◁ ◇장영달의원(민주)=총리는 지난 대선관리를 총책임진 장본인으로서 김영삼당선자가 25일 취임하기에 앞서 자신의 동지에 대해 용공매도한 행위를 공식사과하도록 요청할 의향이 없는가.지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호남지역의 숙원사업에 대해 예산을 대폭 지원하고 부산기관장 모임에 참석했던 관계자 전원을 구속처벌할 용의는 없는가. 새정부 출범에 맞춰 추진중인 사면 복권대상자 선정원칙과 그 폭을 밝히라. ◇송두호의원(민자)=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재산공개등 「윗물맑기운동」을 전개해야 하며 이러한 운동이 사회전체의 범국민 정신운동으로 확산될 때 이 땅의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에대한총리의 견해는. ◇김진영의원(국민)=이번에 청와대 비서실및 경호실 간부 23명에 대한 훈장수여 결정이 알려졌다.사전에 국무총리,총무처와 상의가 있었는가. ◇조진형의원(민자)=이번 입시부정은 사학의 재정이 부실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본다. 기여금 입학제를 도입하거나 재정이 빈약한 사학재단을 과감치 처리하든지 아니면 정부의 재정지원을 늘려주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대한 견해는. 또한 대학정원을 늘려 수요를 충족시키는 대신 엄격한 졸업정원제를 실시할 생각은 없는가. ◇원혜영의원(민주)=6공하에 있었던 각종 권력형 비리의혹 사건과 관련,노대통령은 퇴임전에 「6공하 비리의혹청산 선언」을 하여 자신의 재임기간중에 있었던 모든 의혹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용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최상용(민자)=신한국건설의 중점과제중 하나인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노사관계에 관한 제도개혁이 선결과제라고 보는데 노조조직 체제의 산별체제전환과 노조의 정부정책참여및 경영참가등을 새정부의 주요과제로 선정,추진할 용의는 없는가.
  • 한·대만,단교후 첫 학술회의/청주대국제문제연주최,학술·문화교류회의

    ◎양국 학자들 “민간차원 교류 지속” 희망 한국과 대만간의 단교조치로 정치적인 모든 관계는 중단되었으나 학술·문화등 민간차원에서의 교류는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이같은 주장은 지난해 8월 양측의 외교관계 단절이후 서울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청주대 국제문제연구원(원장 이은호) 주최 「한·대만의 학술·문화교류증진」국제학술회의(15일·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제기됐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참석 학자들은 이같은 한국과 대만간의 민간차원에서의 교류증진은 이데올로기 차원을 떠나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공동이해를 위해 긴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한국의 한중교육기금회(회장 김준철)와 대만의 중한문화기금회(회장 채홍문)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 학술회의는 국교단절 이후 바람직한 관계설정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첫발표에 나선 김학주교수(서울대)는 『대만이 대부분의 국가들과 국교를 단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있는 것은 활발한 학술·문화적 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또 『대만과 대륙이 인문과학뿐 아니라 첨단과학 분야에 있어서 까지도 활발한 학술·문화교류를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학계에서도 중국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양측과 모두 학술·문화분야의 관계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만측의 이명교수(대만정치대)는 『현재 양측의 외교관계는 이미 중단되었으나 문화·교육교류의 협력은 변함없이 지속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는 양측의 공동이해에 관계되는 일로 상호협력을 증진시키는 한 요인이 될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교수는 또 『막스 베버는 유가윤리및 도가가치는 중국의 현대화를 방해한다고 주장했지만 유가윤리를 바탕으로한 일본을 비롯한 대만 한국 홍콩 싱가포르등 이른바 사소용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통한 현대화를 이루고 있으며 대륙도 빠른 발전도상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어 개절생교수(대만사범대)도 주제발표에서 『한국과 대만은 어떤 정치·외교적 관계보다도 훨씬 심오한 문화적 관계를 유지시켜왔다』는 점을 강조했다.그래서 외교관계의 단절과는 구애없이 ▲사회·교육등 공통문제에 관한 학술토론등 의견교환 ▲청소년의 상호초청을 통한 이해확대 ▲문화·예술계인사의 교환방문 증진등 앞으로 민간차원에서의 교류증진이 계속되길 희망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6)

    ◎소년시절:17/「ㅌ·ㄷ」강령의 출처/30년 결성 「농민총동맹」의 강령 개작/68년부터 「조선노동당 뿌리」로 선전/민족주의 단체에 소속… 공산운동과는 무관 김일성이 날조하여 1968년부터 등장시킨 타도제국주의동맹은 그후 「조선노동당의 역사적 뿌리」를 내린 모체로서 백방으로 선전되어 나간다. ○사이비 공산주의자 필자는 전고에서 그가 을 결성한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그러나 당시의 그의 생활을 보면 그는 동급생이나 학교당국과 고립되어 있었고 김시우의 집에나 가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그리하여 결국 그는 화성의숙을 그만두고야 말았다.따라서 의 날조는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사생활과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의 당시의 사상은 민족주의가 아니었다.이 때문에 그는 화성의숙을 그만두었다.또 그가 당시 살부회에 속하거나 살부회의 영향하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유치한 극좌적 사고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그리하여 이것은 당시 그가 일종의 사이비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에게는민족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 어떤 사상적 맹아상태가 이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필자는 이것이 그후 북한에서 유일독재를 실시하는 으로 되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1966년은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김일성 자신의 사상임이 명백히 되어 나가는 시기였다.또 67년은 그가 저지른 일종의 쿠데타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가 있었다.그는 이 회의를 열어서 보천보전투 때에 중공유격대를 국내에서 도운 박금철등을 숙청하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라고 전 당원에게 강요하였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란 김일성의 말만 들으라는 야만적인 탄압을 당원들과 대중들이 감수하는 것을 요구하는 사상체계인데 이것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는 다른 사고방식이다.북한에서는 74년에 요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주의는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고 그에 의하여 밝혀진 이론과 방법의 체계로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나 「현시대의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 레닌주의들과는 근본 다른 독자적인이론이다」 ○유일사상체계 강요 따라서 주체사상의 맹아로 되는 그 어떤 사상상태를 추정할 때 화성의숙 시절의 김일성의 정신상태는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김일성의이 조선노동당의 조직적 전통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고 있는 부분은 날조로 밝혀졌다.하지만 필자는 지금 「주체사상의 뿌리」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의 화성의숙 시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의 이른바 「강령」문제에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이께서는 의 목적을 장차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며 당면하게는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데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것이 68년 전기의 기술인데 물론 결성되지도 않았던 에 이러한 강령이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그러나 없었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것이 김일성 전기연구의 숙명이므로 이 강령의 추처를 알아 본다. 김일성이 화전의 을 날조할 때 그는 1929∼1930년에 남만주에서 사귄 인물들의 사적과 그들이 가담한 사건들을 자기의 업적 날조에 대거 동원하고 있다.최형우의 「소사」도용과 국민부 산하 남한청총 청년들의 맹원 만들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의 강령도 1930년 3월에 남만주 흥경현에서 있었던 동성조선인농민총동맹의 강령 내용을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그는 남한청총에서는 한번도 간부가 되지 못하였으나 남한청총이 합류하여 결성된 이 농민총동맹에서는 하부말단 임원으로 선발되었다.그는 이 동맹의 강령에 접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강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일본제국주의를 박멸하고 조선의 절대 독립을 완성함. 2,노동자 농민의 민중정권을 건설함. 3,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농민에게 무보상 대여함. 4,청년 부녀의 독자적 발전을 기함. 5,전세계의 무산계급 및 피압박민족과 단결함. 이 농민총동맹의 강령 제1조가 강령의 당면목적이 되고 나머지 조목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하여 싸운다고 추상화되었다.당시의 국민부는 공산주의조류의 도도한 흐름에 못 이겨 민족주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청년층의 좌경화가 촉진되고 있었다. ○재* 번져가던 시절 우리는 이상과 같은 분석으로 조선노동당 강령의 「뿌리」가 된다고 선전되어 있는 이 엉뚱하게도 당시 약간 좌경화된 국민부 산하단체의 강령에 흡사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1920년대의 김일성은 조선공산주의운동과 관계가 거의 없었다.그는 실제로는 민족주의단체 정의부나 국민부의 청소년 단체에 소속해 있었다. 따라서 조선노동당은 조선공산주의운동이 아니라 사실은 민족주의 단체 정의부나 국민부 내에 있었던 김일성 개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①평전 295면 ②「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49면 ③「현대사자료 29」 562면
  • 정부교체 지켜보는 「교량국회」/임시국회 의사일정및 전망

    ◎회기 짧아 쟁점법안은 이월 가능성/야선 임명동의안­장선거 연계전략 제1백60회 임시국회가 20일 회기로 9일 하오 개회됐다.아직 세부적인 의사일정에 대해 민자·민주·국민 3당간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정상운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국회는 정치권이 신·구정부의 교량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크게 보면 두가지의 역할로 요약된다.대정부질문을 통해 6공의 공과 과를 짚어본다는 「마감의 장」이다.반면 새정부의 국무총리·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과 체육청소년부와 동자부의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처리하는 「출발의 터」이기도 하다. 특히 새 대통령의 취임식이 회기중에,그것도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열리게 돼 이번 국회는 그만큼 새로운 시험무대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의사일정◁ 개회첫날인 9일에는 박준규의장의 개회사에 이어 의원직을 승계한 민자당의 구창림·박근호의원과 민주당 남궁진의원의 의원선서가 있었다.대정부 질문의 답변을 듣기위해 국무위원 출석 요구안도 통과시키고 산회했다. 10일부터 16일까지는 대정부 질문이 진행된다.정치,외교·안보·통일,경제 1,경제 2,사회·문화등 5개 분야로 나눠 벌이게 된다.토·일요일인 13,14일은 휴회키로 3당 총무간에 합의를 본 상태이다.각당은 이를 위해 분야별 질문의원을 선정,질문 초안을 다듬고 있다. 본회의가 끝난 17일부터 20일까지는 상임위활동이 시작되며 22,23일은 법안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다시 개회된다.새 대통령취임식 하루전인 24일은 참석준비를 위해 하루 휴회할 예정이다.취임식이 끝난 25일 하오에는 본회의를 열어 국무총리와 감사원장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고 26일에는 일반 안건들을 처리한다.27일 본회의를 개회,새 정부의 각료로 임명된 각 부처 장관들로 부터 신임인사를 끝으로 이번 국회는 폐회된다. ▷국무총리·감사원장 인준절차◁ 이 문제를 놓고 민주·국민 양당은 자치단체장 선거조기실시및 정치관계법 개정특위 구성과 연계시키고 있어 다소의 난항이 예상된다.그러나 아직 인선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정확한 예측은 섣부른상황이다.야당측은 표결시 퇴장불사 방침을 흘리고 있으나 부담이 커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게 정가의 공통된 관측이다. ▷법안처리◁ 종합유선방송법개정안등 계류중인 법안 27건을 포함해 30여개 법안을 심의할 예정이나 민자당은 회기중 반드시 처리할 법안을 13개 정도로 압축시킬 계획이다. 이 중에는 월남전 참전으로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무료진료 혜택을 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고엽제 의증환자진료 등에 관한 법률안」등 새로 제출예정인 법안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참전군인 지원법개정안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번 국회는 회기가 짧은데다 민자당이 새정부 출범 준비로,민주·국민당이 각기 대표경선과 정주영대표의 정계 은퇴로 지휘부 공백을 맞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꼭 필요한 민생법안만 처리하고 대부분의 쟁점법안들은 4월 임시국회로 이월될 전망이다.예컨대 단체장선거실시시기에 대한 합의도출이 회기중에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한 지방자치법개정안 등이 이월 대상법안이다. ▷쟁점현안처리◁ 민자당은 총리·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및 정부조직법 개정안처리 등 새정부 출범준비에 만전을 기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자·국민당측은 지난 대선때 대두됐던 「용공음해시비」등 부정선거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안기부법·정치관계법 개폐에 초점을 맞춘다는 입장이다. 특히 민주당측은 단체장선거 상반기중 실시와 국가보안법등 이른바 개혁입법 추진을 총리인준과 연계키로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야당측이 당지도체제 개편등 내부전열정비가 더욱 시급한 과제임을 감안한다면 이같은 표면적 강경기조는 「엄포용」공세로 그칠 공산이 크다.즉 국가보안법·안기부법·지방자치법 등 3대 중점법안처리와 선거제도개혁문제는 어차피 4월 임시국회로 넘겨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번 국회는 대선패배에 대한 반작용으로 야당측이 김대중 전민주당후보에 대한 「용공음해시비」및 선거사범에 대한 편파수사시비 등을 빌미로 「한풀이」용 정치공세를 벌일 가능성도 있다. 민자당은 그러나 대선후유증을 여과한다는 차원에서 국민당측의 「금권선거」에 대한 강도높은 「맞불」공세로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이다. 상공부를 「산업통상부」로 바꿔 동자부의 주요업무를 흡수통합하고 폐지되는 체육청소년부 업무중 청소년교육은 교육부로,청소년 문화업무는 문화부로 이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1단계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부분적으로」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작은 정부」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확보된 만큼민주당측이 무리한 실력저지에 나설 공산도 희박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 한국무용가 최현씨(이세기의 인물탐구:14)

    ◎절제된 몸짓… “여백의 미” 표현 일품/고고한 기품 넘치는 타고난 재능의 예인/김해랑문하서 승무·태평무 등 두루 이수/완벽주의적 성격… 대선배와의 불화 “천추의 한”으로 갓쓰고 도포입고 부채들고 최현이 무대에 나타나면 이도령이 광한루에 나선듯 화사하고 눈부시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헌칠하고 단정한 매무새,운신의 폭이 조용하면서도 민첩하다.삭풍이 이는 한겨울에도 그의 분위기에는 오월 단오같은 싱그러운 신록이 묻어있다. 부채끝으로 오작교(오작교)를 가리키고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리면 그때마다 한양의 풍류와 선비의 기품이 동시에 엇갈린다. 무용계에서 「푸르름을 몰고다니는 예인」으로 불리는 것처럼 그는 20대 미장부의 멋과 미를 변치않는다.나이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젊고 기개에 넘쳐있다.언제 어디서나 누구앞에서나 당당하다. 우선 그의 춤솜씨부터가 그렇다.타고난 재능과 기량으로 그는 빠르고 느린 어떤 곡조에도 절묘한 춤의 경지를 보여준다. 정중동이 절제된 그의 「승무」나 「살풀이」등 그의 춤의 매력은 그 움직임마다에 여백의 미를 살리는데 있다.뿌리치고 내뻗는 손짓하나에도 선과 배경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듯 하다.힘이 들어가지 않은,몸속으로부터의 흥취가 절로 살아나 어느땐 멈추고 어느땐 다시 흐른다.그리고 조각처럼 푸르고 흰 얼굴에는 한과 슬픔을 자제한 인고가 담겨있다. 그는 춤뿐아니라 춤과 관련된 영화와 연극,창극과 뮤지컬을 두루 섭력한 예술가다. ○춤관련 영화·연극 출연 완벽주의자인만큼 한가지를 알아도 끝까지 파고들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쌓고있다.대강대강 그럭저럭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사람을 사귀어도 한번 사귄 사람은 절대로 놓지않는다. 이렇게 흑백이 분명하기때문에 무용계에서의 그의 위치는 자칫 외롭기 십상일수가 있다.그러나 서로서로 인맥·학맥,제자 스승으로 얽히고 설킨 속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타고난 재능,탁월한 춤솜씨 하나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춤추는 사람이 춤잘추는데야 누가 뭐라하겠는가.위로는 막강한 선배들이 기라성처럼 좌정하고 이리저리 끈이 닿는 무용풍토에서 최현자신은 그런 자부심과 오기 하나만으로 고고하게 버티어왔다 할수 있다. 그가 춤으로 무용계에 어필하기 시작한 것은 65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초라니」에서다.조택원이후 송범 김진걸 이매방으로 이어지는 남자무용수중 수려한 춤과 미모마저 갖춘 그의 출현은 무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51년이후 한때 영화에 심취하여 조미령 김승호 허장강 등 당대 스타들과 영화 「춘향전」「시집가는날」등에서 주연,이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춘향전」「마의태자」「황진이」등은 노련미 넘치는 춤기교와 함께 영화에서 닦은 연기솜씨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비상」은 그 자신이 끊임없이 추어왔고 지금도 무용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의 하나다. 소매가 긴 백삼에 상투관 차림,부채 하나만으로 무대를 누비는 이 「비상」은 희로애락의 일상사를 살고있으나 저 하늘을 향한 끝없는 의지,꿈을 잃지않으려는 인간의 끈질긴 열망이 춤속에 담겨져 「마음을 비운 춤」「생의 환희와 승리를 득도의 경지로 이끈 춤」「아무도 비상을 최현만큼 출수 없다는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을수 있다」고 시인이며 무용평론가인 김영태가 쓴적이 있다. 영화·연극 못지않게 그의 음악취미또한 광적이다. 76년 호암 이병철회장의 도움으로 독립문쪽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최현무용단을 창단했을때 그의 연구소는 무용연구소라기보다는 마치 음악연구소처럼 사방벽이 온통 오리지널 디스크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의 오디오 취미는 「마니아」급으로 오디오전문지들은 걸핏하면 드보르자크에서 수재천에 이르는 그의 음악취미·오디오기기들을 탐방취재하고 있다.이 방면에서는 특히 김영태와 의기투합하여 두사람은 충무로에서 용산전자상가를 곧잘 기웃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취미도 “광적” 최현은 마산에서 성장했지만 본래 부산사람이다.본명은 최윤찬,후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최현이란 예명을 가졌다. 16세때 전국가요경연대회에서 특상한 것을 계기로 「천재소년가수」가 되어 지평선 가극단을 쫓아 마산에 정착,마산의부호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김해낭문하에 입문하여 그곳에서 궁중무에서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를 고루 이수했다. 그러나 스승이 초기엔 장작이나 패게하고 집안청소를 하게 할뿐 도무지 춤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때도 당돌했던 그는 『왜 춤을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항의하곤 했다. 『예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네가 보고 느끼고 깨달아라』그는 머리속에 꽉 찼던 안개가 걷힌 듯 스승의 이 말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때부터 춤이 몸속에서 피돌기처럼 돌고 흥이 기운처럼 솟구치기를 기다렸다.스승은 그제서야 그에게 춤 한자락씩을 지도해나갔다. 예술의 겸손을 엄숙하게 익히고도 인격수양이 덜 됐거나 춤을 잘 춘다는 주변의 칭찬에 우쭐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잊히지 않을 큰 「잘못」을 하나 저지른 적이 있다. 58년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스승 김해랑 안무로 「독무」를 출때였다. 당시 명고수인 지영희씨가 장단,그의 부인인 성금련씨가 가야금을 연주,진양조에서 중머리 중중머리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영희씨가 그만 잦은몰이 장단을 잘못친 것이다. 박자와 호흡,시간조절에 의해 손의 움직임을 감을 수도 펼수도 있는 그로서는 리듬이 맞지않아 크게 당황했고 무대는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지영희씨에게 덤벼들었다. 『무대는 생명입니다.단 한번의 실수도 있어선 안돼요.관객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나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지영희씨는 『최선생 내가 정말 잘못했네.큰 실수였다』고 백배사죄했으나 그로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망발.당대의 명인이자 대선배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방만함을 후회했다고 탄식한다. 이제 그는 참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다.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고 진지하게 나를 점검하여 「몸짓」하나 「소리」하나에도 자연의 질서가 깃든 지혜와 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그리고 내 춤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나의 한과 정취와 풍류의 빛,내가 살아온 춤의 굽이굽이를 함께 향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현의 많은 이야기중에서 그가 54세때 27세 연하의 신부를 맞아들인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화제중 하나다. ○54세때 27세 신부 맞아 84년 12월,일밖에 모르던 까다로운 성품의 최현이 갑자기 결혼을 발표,더구나 신부는 서울예고를 졸업,그가 지도위원으로 있던 국립무용단 단원이라고 해서 주변의 놀라움은 한층 컸다. 신부인 원필녀씨는 나이보다 깊고 의젓한 성품으로 춤추는 스승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혼자서 그를 사모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두사람의 결혼은 올해로 만 9년.제자로서 스승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결혼초기때의 사랑과 정성과 존경을 변함없이 나누고 있다. 최현씨는 그동안 부인을 한성대와 이대대학원에 다니게 했고 지금은 한성대에 출강.『내가 아프면 밤새 내 머리맡에 앉아 나를 지켜준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6월엔 제1회 원필녀개인무용발표회를 주선해 주었다.그리고 그가 사랑해마지않던 그의 춤 「비상」을 부인에게 추게 했다. 그는 88올림픽 폐막식때는 10만군중과 수천명의 출연자들에게 청사초롱 「안녕!」을 추게 하여 방대한 스케일로 각계의 시선을 모았었다.지난해엔 청소년예술제에 「파란풍선」에 이은 「비단안개」를 안무,서울예고 무용단을 이끌고 일본 도쿄 무장야시민문화회관에서 「시집가는날」을 공연,올해는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기금을 받아 그의 개인발표회를 준비중이다.작품은 정철의 「사미인곡」. 차범석극본·최종원음악의 이 작품은 그의 춤 60평생을 정리한 집대성의 일환으로 그의 특기인 「춤에서의 여백의 미」를 유장하게 전승시킨다는 집념을 담고 있다. 그는 아무리 춤을 잘추어도 훈련된 춤,숙련된 춤은 단호하게 부정한다.긴 세월 스스로 깨달아 마음속에서 몸속에서 자연스러운 율동으로 우러나오는 극미(극미)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기를 축적시키면서 이를 어느 한순간 우주의 무한한 공간속에 힘차게 내뿜는다.장삼자락을 낙화로 흩날리며 탄식의 숨결을 하공에 흩뜨려놓듯,그래서 그의 춤의 한끝은 결국 끝없는 비상임을 그는 알고 있다. □연보 ▲1929년12월 부산 영도 출생.최재용씨와 이말념씨의 2남5녀중 장남 ▲1946년 마산으로 이사 ▲1953년 마산상고졸업 ▲1959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 졸업 ▲1988∼1990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예술학과 수학 ▲1946∼1953년 마산 김해랑 무용연구소 입문 전통무용 유형과 기법사사 ▲1953년∼ 오광대일인자 장재봉,민속춤의 김숙자씨등에게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 등 이수 ▲1955년 최윤찬무용연구소 개설 ▲1961∼1962년 서울대 음대 무용강사 ▲1965∼1985년 서울예고 강사 ▲1967∼1974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강사 ▲1976년 최현 무용단 창단 ▲1980∼1981년 중앙대 예대 무용과 강사 ▲1981∼1985년 서울예전 무용과 주임교수 ▲1982년 최현 무용연구실 개설,한국무용협회이사,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예총)이사,문공부 문화재 전문위원,국립무용단지도위원,한국무용협 부이사장,대한민국 무용제 심사위원 문예진흥원 지원기금 심사위원역임 (영화)「삼천리의 꽃다발」 「시집가는날」 「춘향전」 「불멸의 성좌」 (무용·안무출연)무용극 「초라니」 「춘향전」 「시집가는날」 「마의태자」 「황진이」국립창극 「심청가」 「강릉매화전」 「광대가」 「변강쇠타령」 「시집가는날」 「대춘향전」 「허생전」 「심청」 「서동가」 「이춘풍전」 「놀부전」 「소태산」 「아리랑」 ▲1970년 일본 EXPO70 한국의날 안무·출연 ▲1971년 국립무용단 유럽지역 10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5년 국립무용단 일본 10개도시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예술제 「녹」 「비상」안무·출연 ▲1980년 국립무용단 동남아 9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82년 시립무용단 「한국 명무전」에 「비상」출연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초청공연 「헌화가」안무·출연 ▲1987년 88서울예술단 창단공연 「새불」구성·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안무총괄 「안녕」 ▲1990년 국제문화협 주최 일본 지역 공연 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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