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소나무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전진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구조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러시아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자립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109
  • 남북 교역 44% 감소/101건 1,965만 달러/지난 7월

    ◎통일원 승인실적 기준 지난 7월중 남북교역 승인실적은 1백1건,1천9백65만2천달러로 지난달에 비해 44.3%,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7%가 각각 감소했다. 18일 통일원 집계에 따르면 이가운데 반입승인은 48건,1천7백24만9천달러로 지난달에 비해 39.2% 감소했고 반출의 경우 53건 2백40만3천달러로 65.%가 줄어들었다. 특히 2억3천4만1천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쌀 15만t에 대한 무상반출이 승인됐으며,49만5천달러 상당의 소나무 꽃가루 11t이 처음으로 반입승인됐다.
  • 불량식품 사범 무더기 적발/숯가루·꿀섞어 “암에 특효”

    ◎경찰청 일제단속/36명 구속 2천여명 입건 경찰청은 14일 지난 7월 한달 동안 부정·불량식품 위반사범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여 적발된 2천9백26명 가운데 무허가로 건강보조 식품을 제조·판매한 박동래(45·에덴식품·충북 제천시 자작동)씨등 36명을 식품위생법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2천8백91명을 입건했고 밝혔다. 또 5백95명에 대해서는 해당 행정기관에 통보,행정조치토록 했다. 박씨는 92년4월부터 소나무 숯가루와 올리브기름,벌꿀등으로 「르바엘과립」이라는 무허가 건강보조 식품을 만들어 암·갑상선·장염등에 효염이 있는 것처럼 속여 지금까지 7천여만원어치를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단속유형별로는 무허가식품제조·판매 3백7건 3백14명,부정·불량식품 판매 1백53건 1백55명,가짜 양주·벌꿀·참기름류 판매 5건 10명,기타 식품위생법위반 2천4백12건 2천4백49명등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가량 늘어났다.
  • 멋진 환경/쾌적 환경/아파트 건설 새바람

    ◎건설사,다양한 부대시설로 고객 유혹/조깅코스·정수시설·공기정화기는 기본/정자·인공수로 꾸미고 광섬유 조명까지 아파트를 단순 주거공간으로서가 아니라 환경과 건강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4계절 식수,산책로,조깅코스,이벤트행사장,휴게소,분수,계곡,인공수로,광섬유를 이용한 조명시설 설치 등 높아진 수요자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주택업체들의 관련 상품은 다양하다.깨끗한 수돗물과 맑은 공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따라 정수설비나 공기정화 시스템을 설계에 반영하는 것은 이미 기본에 속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이달 31일 입주예정인 고양시 화정 현대아파트 단지에 30m의 계단식 인공수로와 분수대를 설치했다.수로바닥은 5색의 모래를 깔았으며 앞에는 대나무를 심었다. 또 기존의 수은등 대신 광섬유를 이용한 조명시설을 설치하고 단지내 곳곳에는 10평미만의 소규모 공원을 만들었다.서울 대림동을 비롯,인천 목련2차와 김천 신음지구에는 5백㎡의 롤러스케이트장을 설치했다. 선경건설도 부산해운대,울산 우정 2차,대전 엑스포아파트에 롤러스케이트장을 설치했다. 금호건설은 인천 부평에 짓는 아파트 단지에 차별화된 조경시설을 선보인다.진입로 곳곳에 휴게소를 만들고 단지 중앙에는 정자와 산책로가 있는 테마공원을 꾸미는 한편 생태공원인 자연학습장,아크로폴리스 형태의 야외이벤트 행사장과 씨름장도 마련했다.이와함께 벽천,분수,실개천 등을 곳곳에 배치했다.유실수와 향토수목을 심어 전원풍의 아파트가 되도록 했다. 「그린홈,클린아파트」를 내세우는 대우건설은 올해부터 단지마다 「대우동산」이라는 단지공원을 조성하고 있다.입구에 담쟁이를 올린 돌담과 대형유실수를 심고 공원 내에는 육각정자를 설치하고 자연석과 마사토로 꾸며 한국적 분위기를 내는 공원이다. 삼성건설은 수원시 율전아파트에 충격흡수용 특수바닥재를 깐,길이 2㎞ 폭90㎝의 조깅코스를 설치할 예정이다.한신공영도 이미 부산 괘법 2차단지에 6백m의 조깅코스를 만들었다. 두산건설은 4계절 조경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단지내 가로수는 느티나무를,입구에는 벚나무를 심는 등 소나무 일색인 기존의 식재에서 벗어나 1백여종의 수목을 심어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동아건설은 의정부 장암아파트에 분수대와 시계탑,그리고 수영장을 만들어 분양 1백%의 실적을 올렸다. 아파트 외관을 독특하게 꾸며 조경의 멋을 한껏 살리기도 한다.LG건설은 부산 개금동에 짓는 아파트 꼭대기층 발코니 천장을 하늘이 보이도록 반투명유리를 사용했고 계단벽체도 유리를 써 멋을 냈다.
  • 서울까치/파도/광복 50돌 의미 되새기는 무대

    ◎서울시립무용단·국립음악원,세종문화회관서 창작무용극 공연/서울까치­정도 6백년 시대적 흐름 재조명/파도­일에 끌려간 한 도강의 생애 담아 국립국악원과 서울시립무용단이 광복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형 공연을 마련한다. 특히 국립국악원은 드물게 전 공연을 무료 무대로 꾸민다. 서울시립무용단이 오는 10∼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무용극 「서울까치」.서울정도 6백주년을 맞아 서울의 역사를 조선의 성립·일제의 침략·남북분단·산업화에 이르는 시대적 흐름속에서 재조명해본다.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지켜온 정신과 꿈의 상징으로는 의인화된 소나무와 까치가 등장한다.국제무대를 겨냥한 올 하반기 정기공연작품으로 이 무용단이 그동안 추구해왔던 국제화를 겨냥하고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한국춤의 범주를 벗어나 춤사위에도 현대적 기법을 가미했다.음악도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우리음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을 시도한다.현대적 무대기법으로 서정미 넘치는 춤사위를 역동적으로 형상화했다. 배정혜 단장이 직접 안무를 맡고 중견 연극 연출가인 오태석씨가 대본을 썼다. 국립국악원도 18∼20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대형 창작무용극 「파도」를 공연한다. 일본에 끌려가 온갖 역경을 이기며 예술혼을 지켜가는 한 조선 도공의 생애를 그린 작품으로 70분동안 8장으로 꾸며진다.「파도」는 격동의 역사를 상징한다. 지난해 7월부터 1년여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쳤고 2억원 가량의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다.50명의 국립국악원 연주단이 현장연주를 하는 대형무대이다. 도공들의 힘찬 춤사위를 비롯해 조선민중의 저항춤 「무명저고리춤」「수건춤」「허수아비춤」「약속의 춤」 등 대형군무가 대형무대를 뒷받침해준다.대형무대답게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호리전트막도 올릴 예정이다. 풍랑장면과 도자기 제작과정을 슬라이드 컷과 조명을 이용한 특수효과로 처리하며 금기시됐던 일본춤을 과감히 도입한 것도 특색이다. 중견 연극연출가 차범석씨가 대본을 썼고 문일지 무용감독이 안무를 맡았다. 광복 50주년 공연인만큼 7∼12일 국립국악원에서 원하는 일반인 누구에게나 무료 초대권을 나누어준다.
  • 서울 각 구청/“애향심 높이고 지역특성 부각”

    ◎새 상징물·로고 제작 「붐」/구로­아홉 노인/은평­비둘기/양천­태양·물 등 형상화/공모통해 주민 행정참여·단합 유도 민선단체장의 취임으로 본격적인 주민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지역주민의 애향심을 높이고 자치단체의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상징물과 휘장·로고 등을 앞다투어 새로 제작하고 있다.이러한 움직임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취지에서 지방자치의 개막에 걸맞는 참신한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자치단체들은 특히 새로 정할 상징물에 대해 주민을 대상으로 직접 공모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자치단체 행정에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편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는 최근 「도시이미지프로그램」의 하나로 구를 상징하는 로고와 휘장을 구민 공모방식으로 새로 만들었다.휘장은 쾌적한 환경을 상징하는 초록색 바탕에 주민의 단결과 화합을 뜻하는 둥근 타원과 흰색 느티나무를 그려넣었다.여기에 구로구의 탄생에 얽힌 전설속의 노인 9명을 9개의 푸른 점으로 형상화했다. 양천구도 지난달 15일 구의 이름을 나타내는 태양(양)과 물(천)을 동그라미와 물결무늬 등으로 형상화한 휘장과 구기를 새로 제작했다.타오르는 희망을 상징하는 주황색 동그라미를 미래지향적인 구의 발전상을 나타내는 3개의 선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아래쪽으로 깨끗함과 생동감을 상징하는 청색 물결무늬를 새겨넣었다. 은평구는 구민한테 공모한 대추나무열매와 비둘기를 조화시킨 상징마크를 민선구청장 취임직후인 지난달 29일 구의회 심의를 통해 최종확정했다.서대문구도 최근 엑스포 디자인연구소에 맡겨 구민의 화합과 애향심을 상징하는 두개의 타원이 겹쳐 있고 구의 대표적 명물인 독립문을 그린 상징도안을 새로 만들었다. 성동구는 최근 1천8백만원의 예산을 들여 세종대 산업디자인연구소에 상징물제작을 의뢰,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산을 형상화한 작품을 최종채택했다.지난 3월 성동구에서 나뉜 광진구는 일간지 광고를 통해 공모한 42점의 구기 시안 가운데 당선작을 오는 25일 확정,발표한 뒤 오는 10월쯤 만들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대구시는 최근 시민 3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팔공산을 상징물로 선정하고 7백만원의 시상금을 걸어 주민을 대상으로 도안을 현상공모했다. 경북도민의 기상과 적응력을 상징하는 뜻에서 상징나무를 느티나무로 바꿨으며 강한 의지와 서민적 기품을 나타내는 백일홍을 도의 꽃으로 정했다.웅비하는 경북을 뜻하는 왜가리는 도의 새로 선정했다. 강원 강릉시와 원주시는 민선시장 취임직후 시청를 상징하는 휘장과 상징물 배지를 만들어 이곳을 방문하는 외부손님과 주민에게 지역홍보 치원에서 나눠주고 있다. 충북은 속리산 정이품소나무 사진액자 1천개를 만들어 주병덕 지사를 찾는 방문객에게 충북을 기억하라는 뜻에서 선물로 주고 있다. 충주시는 충주·중원의 통합과 민선자치단체의 출범을 기념하는 뜻에서 고도 충주를 기리는 기념탑이나 상징조형물을 내년까지 세우기로 하고 세부계획을 짜고 있다. 새로 신설된 인천의 연수구와 계양구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로고와 상징물,구민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 구청장의 관심 아래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서울 광진구청 박기호(42)문화계장은 『구민의 애향심을 높이고 우리 구의 독자성을 강조한다는 뜻에서 상징물과 구기·구가 등을 구민을 상대로 공개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 타국에서 부른 노래(두만강 7백리:23·끝)

    ◎민족의 한 서린 「선구자의 무대」/연변 원로 음악인 김종화씨,윤해영·조두남에 얽힌 이야기 들려줘/해란강변 말 달리던 선구자 간 곳 없고/일송정 그 자리엔 기념비만 외로이… 중국 동북3성.이른바 만주라고 불렀던 북지에는 민족의 한이 어디 못지않게 서려있다.그리고 그 한을 노래로 달랬던 사연도 숱하게 간직했다.오늘날까지도 민족이 널리 애창하는 애수 어린 가곡과 구슬픈 유행가들이 여기서 잉태되었다. 용정시 시가지에서 4㎞ 떨어진 비암산과 일송정,비암산에서 바라본 해란강은 유명한 가곡 「선구자」노랫말의 무대다.지금으로부터 58년전만해도 돌기둥에 흡사 청기와를 덮은 듯 싶은 두 아름드리나 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일송정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그 자리에 지금은 일송정 기념비와 정자가 들어섰다.또 근래에 정자로 올라가는 길에 「선구자탑」이 세워졌는데,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곧 폭파되었다. ○노래유래 등 사라져 그 바람에 탑에 새겨두었던 「선구자」의 노랫말도,노래의 유래도 사라졌다.그러나 1990년 「선구자탑」을 세운다고 했을 때 꼬깃꼬깃 접어 간직했던 「선구자」노래와 작사자 윤해영,작곡자 조두남에 얽힌 사연을 증언한 분이 생존해 있다.1921년 화룡시 용문향 태생의 연변 원로음악인 김종화(74)선생이 그 분이다.연길시 흥안향에 사는 그를 찾았다.지금도 틈틈이 기타를 칠 정도로 아주 건강했다. 『1939년 이른 봄이었디요.부친과 함께 일곱식구를 거느리고 훈춘 양수를 떠나 흑룡강 목단강시에서 80여리 떨어진 신안진으로 이사를 한 것입네다.신안진은 60리 넓은 벌판이라 18개나 되는 큰 마을들이 자리잡은 반도시 반농촌이었댔는데,학교만 해도 10개에 병원도 3군데나 됐드랬디요.내가 꾸린 동양사진관 같은 사진관도 5개나 되고….벌판을 질러 흐르는 해랑강에 뗏목을 띄워 해림을 거쳐 목단강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디요.그래서 여관이며 식당이 흥청대고 기생집들도 적잖았수다.그런데 신안진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의사 한 분이 안전병원이라는 병원을 경영하셨댔디요.기타연주와 작곡법을 배우던 나도 그 병원을 드나들던 사람중의하나였습네다』 그는 신안진에서 1942년 겨울 조두남을 먼저 만났다.자그마한 유랑극단에서 아코디언 주자였던 조두남의 첫 인상은 키가 커 보이고 깡마른 것이었다.「라 콤파르시타」와 「마리네라」를 연주하면서 정서전환점에 다다르면 으레 히죽 웃곤 했다.깡마른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음악이 나오나,하는 찬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조두남의 왼손엔 붕대가 감겨있었다.할머니의 강권으로 일찍 고향 평양에서 장가를 들었던 조두남은 이참저참 집을 뛰쳐나왔던 것으로 김종화선생은 기억했다. 안전병원을 개업한 안의사댁은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조두남도 그 집에 묵었다.1943년 가을 목단강시 유랑극장에서 「동만총성 추기 민족예술전」을 열 때 신안진악단연주로 조두남 창작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한 사나이의 반평생」「농촌의 사시절」「고향생각」이 인기를 끌었다.그 무대에서 「고향생각」을 불렀던 남수억(74)은 지금 화룡시 팔가자진에 살고 있다. ○「용정의 노래」로 불러 김종화 선생이 윤해영을 만난 것은 1944년 봄의 일이다.조두남이 집에 찾아와 영안에서 갖는 신곡 발표공연에 나와 기타를 쳐달라는 부탁을 받고 영안에 갔다가 만났다.물론 조두남의 소개를 받았다.그 발표공연에서 오늘날 「선구자」로 더 널리 알려진 「용정의 노래」가 처음으로 발표되었다.이밖에도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으로 된 「목단강의 노래」 「산」 「흥안령 마루에 서운이 핀다」등을 선보였다. 윤해영과의 첫 만남을 쉽게 떠올린 김종화 선생의 얼굴에는 연민의 그늘이 스쳐갔다.김종화선생의 말을 들으면 윤해영은 매우 불행한 삶을 산 것 같다. 『작사자 윤해영 선생은 조두남 선생 보다 두 세살 위이었디요.키는 작았지만 아주 친절합데다.학교에서 선생질을 하다가 영안 협화회에서 일을 보고 있다고 기랬어요.그날 신곡발표공연이 끝나고 윤해영 선생 집에서 소박한 술자리를 벌였디요.다가 「목단강의 노래」를 합창한 기억이 납네다』 그 「목단강의 노래」에는 윤해영이 인간적으로 겪었던 불행한 사연을 담았다는 것이 김종화 선생의 설명이다.윤해영의 집 술자리에서 「목단강의 노래」합창이끝나자 윤해영은 벽에 걸린 사진액자를 거두어 한 없이 흐느꼈다고 한다.아이를 안고 있는 윤해영의 부인 모습이 든 사진액자였는데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부인을 추모하기 위해 쓴 가사가 「목단강의 노래」라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1945년 9월 윤해영은 신안진 대성백화점 김광호의 여동생을 후처로 맞았다.후처는 소학교 선생이었다.처가에 왔을 때 김종화선생을 불러 「해저문 마을」의 작곡을 부탁했다.김종화선생은 신문에 난 윤해영의 시 「동북인민 행진곡」에 곡을 붙여 발표한데 이어 1946년 7월 목단강시 서장안회관에서 같은 방법으로 윤해영 작사 「동북인민 자위송가」를 내놓았다.윤해영은 「동북인민 자위송가」발표 마지막 날 김종화선생을 찾아와 술을 마셨다.그 술자리에서 윤해영으로부터 후처가 결혼 일곱달만에 아이를 낳아 이혼했다는 것과 혼자 떠돌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윤해영이 떡국 장사를 했는지 어느 식당에서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그러나 김종화선생의 판단은 그가 북한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왜냐하면 1949년 우연히 입수한 북한 노래집에서 윤해영 작사의 「분여받은 땅」인가 하는 노랫말을 보았기 때문이다.「장군님 주신 땅에 밭갈이 하세」등의 내용이 들어있는 북한정책 찬양노래라 했다.윤해영의 소식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가사도 조금 달라져 김종화 선생의 이야기는 다시 조두남에게로 이어졌다.1944년 봄 신곡발표회 이후 평양 고향에 갔다가 그 해 겨울 신안진으로 다시 돌아온 조두남의 인생에는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그것은 조두남의 두번째 결혼이었다. 『첫번째 부인은 남편이 밖으로만 돌자 개가를 했더라고 기래요.그런데 새로 맞은 부인은 늘씬한 서울나기 여성이었디요.그때 조두남선생은 목단강시에서 극단을 조직하고 있던 관계로 태평양레코드 전속가수 서태림과 조두남선생이 손수 키우던 21살 짜리 손풍금수 안향락을 데리고 와 함께 만났댔습네다.날 더러도 극단에 가자는 것을 식구들 생계 때문에 사양했디요.기리고 나서 1945년에 조두남선생이 신안진에 와서 안전병원 안원장과 내가 사진을 찍은 것이 마지막이야요.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 우연히 서울방송을 듣다가 「용정의 노래」가 나와 귀를 번쩍 떴디요.그런데 가사도 좀 바뀌고 곡목도 「선구자」로 바뀌었습데다.이 말을 다 한 것은 역사는 언젠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우다』
  •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이세기의 인물탐구:79)

    ◎스스럼없이 화필 휘젓는 큰 예인/작품마다 영혼이 움직이듯 팽팽한 긴장감/화려한 채색 거부… 발묵·석묵법 자재로이/77년 「한국현대회화 유럽전」때 “동양문화의 진수” 보여 산정의 성북동 무송재는 지금 녹음이 한창이다.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벌써 그 짙푸른 녹색으로 인해 집안은 유현한 산곡과도 같다.안채로 통하는 디딤돌 외에 새파란 이끼가 휘덮인 마당은 모든 것이 푸른 가운데 허공에 우러른 첨단에마저 서슬 푸른 냉기가 감돈다.「일편연홍난입문,한조각의 붉은 빛도 문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산정의 말대로 영롱산관 죽리관 수죽원하관 창하헌 등 그의 당호들은 집안에 넘치는 푸른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화실 창앞에 쭉쭉 뻗어 있는 청청하고 곧고 차가운 대나무며 지금 막 피기 시작한 보랏빛 추국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시든 빛을 보이지 않는 영롱한 환경은 서울 한복판이건만 실로 아득한 선경인 듯 감탄스럽기만하다.여기에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과 한옥중의 한채에 온통 중국고서적이 산적해 있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이 얼마만한것인가를 미루어볼 수 있다. 그는 성북동 전에는 노송으로 우거진 월곡동에 살다가 대학때의 스승인 근원 김용준을 그리워하여 지금부터 20여년전 스승의 노시산방이 있는 이곳에 한옥을 지어 이사했다. ○회화예술 변혁 앞장 산정은 널리 알려지다시피 서시문화를 두루 갖추고 상식에 안주하려는 회화예술에 변혁과 개혁의 화업을 이뤄낸 동양화 대가다.초기에는 범속과 권위와 형식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앞세워 「고루협애가 없는 방종자일한 표현」으로 개혁의지의 향방을 모색하다가 차츰 「감각의 해방을 원점으 로 되돌린 절제화면」을 이룩하면서 남보다 일찍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평론가 이경성씨는 그의 첫번째 전시 팸플릿에서 그와 같은 유사성을 「명대의 서위나 청초의 석도」에 비유하고 오광수 역시 「수묵화를 감필묘법으로 구사한다는 차원에서 남송의 양해나 선화파의 목계의 화격」에 닿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병관씨는 「모든 진실한 작품은 침착하다」는 칸딘스키의 말을 인용하여 『산정의 작품은 무한을 생각케 하는활짝 트인 화면공간속에서 「숭고한 형이상학적인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과연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상태,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듯하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려는 자기모순을 함축한 그의 작품은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영혼이 움직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9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군무」「사람들」시리즈는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붓을 던졌다는 표현이 더욱 옳다」는 정병관씨의 평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바 있다.즉 「붓의 전진하는 속도감과 상하로 누르고 떼는 강약의 압력은 낭만적인 금선의 무쌍한 변화」와도 같으며 「발묵과 석묵법의 자재로운 움직임」은 바로 산정 그림의 즉흥성과 필연성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산정은 「스스럼없이 필력을 구사할 줄 아는 이 시대 재능이 뛰어난 예인」으로서 「흉중의 고고특절한 품성 없이는 문자향과 서권기를 지니지 못한다」는 추사의 지론을 실천시킨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세때 뒤늦게 입문 그가 화단에 등단한 것은 아직 대학재학중이던 20세였으나 뒤늦게 45세되던 해 서울 첫 개인전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에는 일정한 채색과 반추상의 형태가 깃들여 있었다.그러나 산정 자신은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메마른 구각이나 비좁은 질곡은 싫다」고 천명했고 이후 채색이 없는 검정색의 선묘형상들은 그 기호적인 성격과 힘과 자발성을 채색의 경우보다 한층 강하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는 우리 화단에서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언제나 커다란 구심점을 긋고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오늘날 수많은 미술대전에서 동양화가 구상·비구상으로 나눠지게 된 것도 단순히 이 작가의 작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화단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산정은 유럽쪽에 눈을 돌려 수많은 해외전에서 한국회화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그중 77년 9개월에 걸친 「한국 현대회화 유럽전」에서는 현지 신문들이 「서세옥의 추상적인 묵화들은 동양화라 일컬어지는 한국 전통미술의 현대적 전모를 집약함으로써 서양인에게 동양문화의 진미를 보여주었다」(르피가로 78년6월28일자)고 쓰기도했다. ○올 11월 개인전 열어 그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고서화가 있는 집안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다.독립운동을 하던 부친 서장환(석련)공은 세 아들중 일총한 산정을 특히 총애하여 「성동」이란 아호를 내려주었으나 대학시절 영운(김용진) 춘곡(고희동) 소전(소전 손재형)등 그의 스승들이 「세옥」의 옥자와 관련된 「옥출곤강(금과 옥돌은 산에서 캔다)」이란 의미의 「산정」을 지어주었다. 지난해 서울대 정년퇴임후 산정은 무송재 녹음속에 파묻혀 그의 전생애가 그렇게 일관해왔듯이 자유하는 예술가로서의 절제와 생략과 탈속의 묘를 구체화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의 테마는 여전히 인간에 집착한다.세월도 서릿발 같은 그의 의지를 피해가는지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적진에 뛰어들어 호랑이나 사자를 사로잡듯」 우주의 올바른 기운을 수백호 화면속에 역동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요즘은 오는 11월로 잡힌 개인전과 그가 발족한 한·중미술협회의 요청으로 그동안 써온 한시를 친필서예로 꾸미는 「산정문집」 출간준비에여념이 없다.그중 연전에 중국 양자강을 둘러보며 지었다는 「단현」이 눈에 띈다. 「비지양현회 농현감금심 고산류수곡 적막실지음 석현호불기 천재거무회 수주아양곡 공류일금대(이땅의 두 현인이 만나 거문고로 서로 마음을 느끼니 이는 고산곡과 유수곡이라,지음이 없으니 적막하구나.옛 현인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누가 고산 유수곡을 연주할 것인가,속절없이 거문고 튕기던 언덕만 남았구나)」이는 중국 춘추시대의 거문고 명인이던 백아가 그의 거문고소리를 좋아하던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현을 끊어버린 일화를 그린 시로 그들이 거문고를 타던 양자강가에 서자 이런 시를 읊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3∼4년전까지만해도 송죽 우거진 뜰에서 산정은 가까운 이들을 모아 거문고며 가야금연주를 즐기곤 했다.그러나 명고수 김명환씨가 4년전 작고하고 단골손님이던 언론인 예용해씨마저 지난해 타계하자 화가는 혼자 남아 그때의 감흥을 한편의 시와 한점 획(화)으로 남기게 됐나보다. 이제 산정댁의 대나무가 그 놀라운 푸른빛을 뻗치고 소나무향이 온산을 뒤덮어도 이 풍치를 음미할 만한 유장한 현금은 울려지지 않는다.단지 우거진 나뭇닢이 단 한 잎도 시든 기색 없이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는 것처럼 시들 줄 모르는 산정의 붓끝은 그 탁발한 금선의 선율로 「청청속의 노주」를 결국 성취하게 될 것이다. □연보 ▲19 29년 대구생 ▲49년 제1회 국전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 수상 ▲50년 서울대 미대 졸업 ▲54년 제3회 국전서 「휘월의 장」으로 문교부장관상 수상 ▲54∼95년 서울대 미대 교수 ▲59년 묵림회 창립대표위원 ▲61∼82년 국전 심사위원·운영위원 ▲62년이후 상파울루비엔날레 칸국제회화제 이탈리아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 도쿄비엔날레 파리현대미전 등 출품 ▲64년 국제조형예술(IAA) 한국위원회위원장,신인예술상 심사위원장 ▲64∼88년 한국미협이사장·회장 ▲66∼71년 유럽·남북미 34개국 여행,한국현대미술 프랑스순회전 ▲70년 국전 초대작가상,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73년 예총부회장 ▲74년 서세옥전(현대화랑초대전) ▲77∼78년 한국현대 동양화유럽순회전,스웨덴 폴란드 독일 프랑스 ▲79년 서세옥전(도쿄 우에다화랑 초대) ▲82∼85년 서울대 미대학장 ▲83년 서세옥전(뉴욕 퍼시픽아시아박물관초대),전국미대협의회회장 ▲85년 서세옥특별전(뉴욕 바로카레지미술관 초대) ▲89년 서세옥전(현대화랑 초대),뤼턴오브 마르코폴로전(프랑스 파리) ▲90년 한국작가전(중국 북경),한·중미술협회 결성 ▲91년 한·중미술대전(중국 북경)이후 서울·남경·상해 등지서 교류전시 그외 한국회화대전및 아세아현대미술전 한국미술상황전 LA87미술전 조선일보미술관개관기념 현대작가초대전 서울올림픽아트 국제현대미술전 등 다수 출품,국민훈장석류장 서울시문화상 한·중미술협회회장,미협고문
  • 우랄의 옛도시­페름시(시베리아 대탐방:21)

    ◎인구 1백만… 우랄 최대의 문화중심지/「러」 3대 발레극장·베르샤긴 미술관이…/실바강 따라 1시간동안 절경 펼쳐/별장 지붕위 “매물” 페인트 표시 눈길끌고 페름시에 도착하면서 여행출발 이후 처음으로 인구 1백만명이 넘는 대도시를 밟아보게 된다.이곳은 프리 우랄 최대의 문화중심지로 혁명전까지 우랄의 행정수도는 에카테린부르크가 아니라 페름이었다.우랄의 공장지대에서 생산된 각종 물품들은 육로로 이곳까지 와서 배로 카마강∼볼가강을 따라 러시아중부의 각 도시로 운반돼 나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발레단(키로프발레단의 새이름),모스크바의 볼쇼이와 함께 러시아 3대 발레극장으로 꼽히는 페름발레단이 이곳에 있다.그러나 너무 추운 환경탓에 우수한 발레리나들이 서쪽도시로 빠져나가 지금은 그 명성이 많이 바랬지만 전유럽에 명성을 날렸던 발레학교는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그리고 20세기초 화가 베르샤긴의 작품 60여점을 소장한 베르샤긴미술관을 자랑한다.특히 이 도시는 카마강변의 언덕위에 건설돼 체코의 프라하 같이 언덕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정경이 일품이다. ○5㎞ 얼음동굴로 유명 페름은 또한 역대 소련 외상들 중 가장 유명했던 몰로토프가 이곳에서 혁명운동을 한 인연으로 40년부터 57년까지 시 이름이 몰로토프였다.러시아 전역에는 유명한 볼셰비키라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을 딴 도시·대학이 5∼6개는 되는 게 보통이다.57년 도시 이름이 페름으로 바뀐 것은 몰로토프가 카가노비치·쉬필로프등과 함께 반흐루시초프 음모에 가담했다가 실각했기 때문이다.카가노비치는 스탈린 때 철도상을 지낸 스탈린의 최고 심복중 한명으로 이름난 킬러.러시아인들은 지금도 그를 가리켜「아이언(철혈) 카가노비치」라고 부른다. 페름역을 출발해 조금 나아가면 실바강이 나오고 강과 철길이 만나는 지점에 쿵구르역이 있다.쿵구르인들은 러시아에서도 손재주가 좋기로 이름난 사람들이다.쿵구르 구두·쿵구르 케이크·쿵구르 악기등 손재주가 필요한 정교한 제품들로 이름난 도시다.1759년까지는 우랄전체자보드(공장)의 행정본부가 있었을 정도로 번창했던 도시였으나 이후 시베리아철도가 건설돼 다른 도시가 커지며 상대적으로 쇄락의 길을 걷고 있다.이곳을 제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쿵구르스키 리제나야 피쉐라(쿵구르 얼음동굴)」라는 지하동굴이다.길이 5㎞가 넘는 동굴안에 60여개의 호수가 서로 연결돼 있는데 항상 영하의 기온으로 얼어 있는 곳이다. ○야생능금꽃 눈부셔 길이 5백㎞의 실바강을 따라 1시간여 동안 그림같은 우랄의 절경이 펼쳐진다.강,강안의 바위,그위의 나무숲….페름주에서 우랄의 중심부에 위치한 스베르들로프스크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역은「코르간」이다.입산신고대란 뜻의 이름인데 숲이 많은 우랄지대라 이런 마을 이름이 유난히 많다. 왼편 차창밖으로 맑게 내리쬐는 5월 햇살아래 폭 1백여m의 실바강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우랄산맥의 정점에 있는 유럽·아시아 분수령에서 발원해 유럽쪽으로 흘러내리는 강이다.시베리아횡단열차구간중 최고로 꼽히는 절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강변에는 잎이 갓 돋아나 연두색을 띤 베료자와 겨울을 지나 검붉게 뻗은 소나무·옐나무들이 같은 비율로 뒤섞여 고도로 세련된 색의 하모니를 연출해내고 있다.강변에 늘어선 별장 지붕에 흰 페인트로 커다랗게 「프로다유(팔겠다는 뜻)」라고 써놓은 글씨가 눈길을 끈다. 기차가 산정을 향해 숨가쁜 행진을 계속해 본격적으로 우랄의 수중으로 들어서자 지금껏 보이지 않던 새로운 수종들이 나타났다.야생능금꽃이 눈꽃을 덧씌운 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1시간여를 달린 뒤 스베르들로프 경계를 넘어 첫번째 역인 샬랴역을 지나갔다.갑자기 잎을 달지 못한 베료자나무들이 나타나 산 곳곳이 민둥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우랄은 아직 봄의 첫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우랄산맥은 서쪽으로는 페름주의 쿵구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에카테린부르크시 직후 산세가 끝이나며 동서거리의 최장은 2백㎞,남북길이는 2천㎞에 이른다.전체적으로 완만한 산세를 보이지만 북쪽 코미공화국에 있는 최고봉 나로드나야산은 해발 1천8백95m에 이른다. 페름에서 에카테린부르크로 연결되는 현재의 직선노선은 1905년에 건설됐다.그 전에는 1875년에 건설된 북쪽 우회도로가있었을 뿐이다.이 직선노선이 건설되기전 우랄과 모스크바를 잇는 노선은 에카테린부르크에서 남으로 첼리야빈스크를 경유해 서쪽으로 사마라를 거쳐 모스크바로 연결됐다.따라서 시베리아횡단열차노선도 첼리야빈스크에서 동쪽으로 쿠르간∼페트로파블로프스크(카자흐영토)∼옴스크로 이어졌다. 현재 이 북부 카자흐경유 노선은 매우 아름다운 절경을 지나긴 하지만 승객들이 기피하는 노선이다.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양국 국경세관에서 거의 1시간 이상씩 짐검사를 해 승객들을 귀찮게 굴기 때문이다.러시아인들은 노비자이지만 외국승객의 경우 이 노선을 이용하자면 미리 카자흐정부로부터 통과비자를 얻어야한다. ○희귀금속 무진장 매장 마침내 러시아 최대 산업지구 우랄지구로 들어섰다.우랄은 최대 공업지대이면서 메탈·희귀금속의 최대 매장지다.이 금속들을 발달된 기계공업기술로 묶어 아주 밀접한 단일 경제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현재 우랄로 통칭되는 이 산업지대에는 페름주·코미자치공·스베르들로프주·첼리야빈스크주를 비롯해순수농업지대인 쿠르간주·바시코르토스탄주·우드무르티공화국등이 속한다. 우랄의 가장 큰 자랑은 역시 무궁무진한 금속이 매장돼 있다는 것이다.지질학적으로 오래된 산은 완만하지만 희귀석·메탈·알루미늄 등 귀중한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고 반면 지진대로 분류되는 신생 산맥은 산세가 가파르고 아름다운 반면 자원이 매장돼 있지 않다.우랄은 전자의 전형적인 예이다.
  • 파리외곽의 허름한 아틀리에「아스날」/파리의 한국화가들 창작열기가득

    ◎권순철·이영배씨 등 우리작가 37명 활동 파리에서 1시간 남짓 남쪽 외곽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파리 제15구에 육중하게 서있는 철골조의 허름한 건물을 만나게 된다.흡사 군의 대형 병기고같은 우중충한 모습의 이 건물안에 젊은 화가들이 치열한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아스날」(Artsenal). 2차대전중 탱크의 병기고로 쓰이던 건물을 프랑스 정부가 가난한 화가들을 위한 아틀리에로 제공,현재 60여명의 화가들이 이곳에 들어가 작업중이다.이가운데 한국작가는 37명.한달 10만원꼴의 월세만을 지불하면 되는만큼 파리 시내에서 변변한 작업 공간 마련이 하늘의 별따기인 이들 입장에선 더없이 고마운 예술의 보금자리인 셈이다. 이곳에 들어가 있는 작가들 가운데는 한국 작가들이 단연 많아 정기적인 모임에서도 한국어가 통용될 만큼 이곳은 한국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다. 파리의 유행하는 작품경향에 대한 정보도 교환할 수 있고 객지에 떨어진 동포들끼리 향수도 달랠 수 있어 마치 파리의 한국인촌처럼 느껴질 정도다. 2년전 이곳에 입주해 작업중인 윤봉환씨는 『선후배 작가들이 작품에 대한 의견도 나눌 수 있고 이곳에 마련된 전시장을 통해 작품발표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좋다』고 밝혔다. 아스날이 각국 작가들에게 인기를 끌게된 공로는 순전히 한국 작가들에게 돌아간다. 지난 91년 권순철,이영배씨등 한국작가 2명의 발의로 「소나무회」가 결성된 후 공동 작업장을 물색하던중 우연히 프랑스 국방성 소유의 탱크 수리공장이 이전하면서 비게된 이곳을 인수받아 아스날로 이름짓고 정착하게 된 것. 그로부터 4년.적지않은 한국 작가들이 이 건물을 드나들면서 숱한 화제와 작품을 남겼고 지금은 어느정도 정착단계에 들어섰다고 이곳 작가들은 말한다.매달 1회정도의 회원작가 그룹전을 여는 것을 비롯해 비회원작가와의 연계전도 열어 한국 작가끼리의 교감을 나누며 개인적으로 한국 나들이도 심심치않게 하고있다.
  • 이농현상/개방바람 타고 돈벌이 찾아 도시로(두만강 7백리:14)

    ◎문혁이후 젊은이 떠나고 부녀자만 남아/7백가구 부동촌엔 농사꾼 한사람도 없어 연변의 조선족들은 지금 식생활에는 걱정이 없다.해방전 대지주들 보다 더 잘 먹고 산다.옛날의 지주집이래야 호주만 이밥을 먹어대고 다른 식구들은 조밥에 된장국이 고작이었다.그러나 요즘은 웬만하면 모두가 이밥을 밥상에 올려놓는다. ○옛 지주보다 더 잘살아 농촌의 소득도 높아졌다.용정시 백금향의 1인당 연간수입은 1천6백원으로 조사되었다.화룡시 숭선진은 1천3백원,두만강 연안 산골의 향진지역도 1천2백원을 웃돌았다.문화대혁명 시기 뙤약볕에서 동이땀을 이틀은 흘려야 10원을 벌었던 때에 비하면 천양지판이다.당시 편지 한통 부치는데 8원이었으니 기가 막힌 노임이었다.그래서 문화대혁명 이야기만 나오면 목청 안 높이는 사람이 없다. 『사시사철 뼈 빠지게 일하고도 굶기는 밥먹듯 했수다.쑥에 소나무 껍질에 안먹어 본 별식이 없드랬시요.그런 주제에 밭고랑 타고 앉아서 세계 혁명에 관심을 가지라고 족쳐댑데다.미친 광대놀음을 한 거디요.등소평동지 개혁개방 안했더라면 모두 굶어죽었을 겁네다』 연변지역 신문에는 농촌소식들이 왕왕 실린다.예전같이 해방전 살림에 비교하는 잠꼬대는 없어졌으나 농촌수입이 해마다 올라간다는 기사가 많아졌다.그런데 물가가 오른 것을 생각하면 농촌소득 높아진 것 만을 자랑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한다.이러한 사실은 농가와 인구가 함께 줄어드는 것을 보아도 알수 있다.화룡시 숭선진의 경우 지난 1990년 1천25가구의 농가가 지금은 9백90가구로 줄었다.호적만 숭선진에 두고 도시로 빠져나간 사람만도 6백20명이나 된다. ○초가집 한채에 1천원 두만강 연안에 임자를 잃은 밭들은 풀이 무성하고 마을마다 주인없는 집들이 쓸쓸히 서 있다.화룡시 노과진 호곡촌은 무산과 마주한 오붓한 17호 인가를 가진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3개의 굴뚝에서만 연기가 날뿐이다.그리고 화룡시 덕화진 부동촌은 독립군 안무 일가가 자리잡고 항일을 해온 유서깊은 마을로서 광복후 7백여호였다.그런데 이제는 황폐해져 농사꾼은 한 집도 없다.두만강 언덕에 자리 잡은 초가들은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대머리 모양으로 볏짚이엉이 훌렁 벗겨져 귀신 살기 알맞는 마을이 되었다.그같이 을씨년스러운 마을에 유독 한 집만이 앞마당에 닭 몇마리가 구구구 모이를 쪼고 개가 행인을 보고 콩콩 짖는다. 지나가던 걸음에 그 집을 들렀다.늙은 양주가 따뜻한 온돌에 앉아서 이불을 꿰매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니 대단히 반가워했다.아이들 소꿉장난 모양으로 개와 닭 하고 동무하며 적적하게 살아가던 양주는 낯도 성도 모르는 길손이지만 찾아온 것이 무척 기뻤던 모양이다.인간무리에서 살면 인간이 혐오스럽다가도 인간이 없는 곳에 살면 오히려 그리워 한시도 인간을 떠나 살수 없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주인의 이름은 이성국(60)인데 화룡시에 거주하는 퇴직 노동자였다.지난해 8월 4백원에 버린 집을 사서 들었다고 한다.오랜 간염환자라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휴양삼아 와 있다는 것이었다.화룡시에 있는 자식들이 쌀이며 채소며를 날라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영감이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십리 밖 남평에 가서 사오기도 한다는 것이다.농사꾼들이 삶을찾아 버리고 간 산수 좋은 이 땅은 서서히 주인이 바뀌고 있다.텃밭이나 가꾸면서 여생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휴양지로 변해가고 있다. ○도시인 「별장」 구입 늘어 도문시 위자구진 하남촌은 20여호의 마을인데 2∼3년 사이에 절반정도의 초가를 도시에서 퇴직한 노인들이 차지했다.연길에서 40리 거리라 집값이 꽤나 비싸다고 하는데 한채의 초가가 1천원 내외다.마을을 통째로 산다고 해도 3만원이면 남는다.한국을 드나들면서 현대 문명에 머리가 튼 젊은 사람들은 초가를 사서 주말 별장삼아 쓰고 있다. 화룡시 덕화진 용현촌 박서양(69)노인은 일제때 울릉도에서 속아 이민을 온 사람이지만 연변의 농촌을 지키고 있다.일본인들이 만주로 가면 들판에서 해가 뜨고 지는데 감자가 하도 커서 둘이서 하나를 다 못먹는 복지라고 하는 말을 듣고 19 38년 고향을 등졌다.그런데 웬걸,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넜더니 하늘만 보이는 산골이었다.아름드리 나무를 베어 부지런히 농토를 개간,그런대로 배불리 먹었다. 그러다 해방에 이어 문화대혁명을 맞았다.문화혁명 시기에는 겨우 감자톨을 구워먹으면서도 거지로 빌어먹고 산다는 고향(한국)으로 돌아가지 안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고향에서 연변땅 밀림지대로 함께 이주했던 24가구가 해방 이후 거의 귀국해버린 뒤였다.혼자 남은 그는 그저 공산당 은덕에 감사했다. 『일본놈한테 속고 공산당에 속아 살다가 이 나이가 됐제.지난 90년에 고향 울릉도에 갔더니 없는게 없이 살데.나도 밥술이나 먹어 잘 사는줄 알았더니 그게 아이데.그래도 여기 살수 밖에 없제.땅파먹고 사는 사람은 땅 떠나면 몬 산다구…』 노인은 「농자천하지대본」이 다시 올 날을 기다렸다.고지식한 땅을 믿는 노인 역시 고지식한 마음으로 또 한해 농사철을 맞고 있다.
  • 통나무 원두막 팝니다/산림청,한옥형태 상품화 전국 시판

    ◎2∼4평 조립식… 2백∼3백50만원 「올 여름에는 자그마한 나의 원두막이나 방갈로를 만들어 한 여름의 무더위를 잊자」. 산림청은 7일 낙엽송 등을 이용,원목의 자연스러움을 살린 전통 한옥 형태의 통나무 원두막과 방갈로 등 2개의 모델을 개발,상품화해 일반에 판매한다고 밝혔다. 산림청은 이를 위해 최근 1억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경기도 가평군의 임업 협동조합에 통나무 가공공장을 설치했다.가평지역에서 생산되는 낙엽송·잣나무·소나무 등 품질이 우수한 통나무를 자연 그대로 가공,전국 어디에서나 설치할 수 있는 조립식으로 제작됐다.원목을 그대로 사용,재질이 단단하고 나무결이 곱다. 휴양림 내의 숙박시설·주택·정원·휴게소 등에 2평 이상의 땅만 있으면 설치할 수 있다.따라서 가족과 함께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고향의 정취는 물론 자연의 싱그러움을 한껏 맛보는 데 제격이다. 원두막과 방갈로는 각각 2평짜리와 4평짜리 등 4개의 종류가 있다.가격은 2평짜리 원두막이 2백만원,방갈로는 3백50만원선.전국 어디에서나 주문과 동시에 배달,그날 설치해 준다.문의는 가평군 임협 통나무 원두막 가공공장.(0356)82­2207.
  • 「군사」의 용산이 문화의 중심지로(박갑천 칼럼)

    『맑은밤 텅빈강에 온갖소리(만뢰) 고요한데/발(렴)을 반만걷고 흰달빛 맞이하네/보랏빛연기 흩어지니 하늘은 넓기만하고/얼음같은 달은 반쯤떠서 금떡(금병)같구려/빈마음 함께 밝아 더욱 맑고 깨끗하나니/밤늦도록 학과 더불어 흰털 휘날리는듯/강가 어디선가 날라리(철적)소리 들려오누나/맑은흥(청흥) 유유히 강굽이 따라 퍼져나가네』(한문원문은 생략) 경도십영의 제천완월(제천정에서 달을 감상함)에서 강희맹이 읊은 시.제천정은 용산구 한남동 한강가에 있던 정자로서 왕가의 별장으로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용산.양화나루 동쪽언덕의 산세가 용이 서린 형국이라서 용두산이라 했고 용산이란 이름은 거기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토박이이름은 미리뫼였을까.용산은 군사시설과 관계를 지니면서 내려온다.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려면서부터 그랬다.황현의 「매천야록」에도 그게 보인다.『왜인들이 숭례문(남대문)에서 한강에 이르는 구역을 제멋대로 금긋고서 군용지라는 푯말을 세워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그일대 3백여만평은1905년 일본군이 내부대신 이지용과 교섭하여 강제로 수용해버렸다.용산동1가에서 5가에 이르는 언저리로서 사격장등이 세워지면서 군사기지화한다.그건 광복후로도 이어진다.미군부대가 들어서서 넓은 지역을 차지해버렸으니 말이다.자연히 우리의 국방부등 군사관계 청사들 또한 이곳에 들어앉았다.용산3동의 경우 민가는 1백50채뿐이었을 정도로.이젠 그 군사시설들이 물러난다. 조선초기의 청백리 청파 기건이 살았대서 붙은 이름이라는 청파동을 안고 있는 용산.바로 옆까지 들어온 한강물이 철썩이는 「푸른언덕」은 아름다웠던 것이리라.그 청파동보다 남쪽에 있는 이태원주변에 대해서는 「용재총화」가 이렇게 묘사한다.『그곳으로는 맑은 물이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절의 동쪽에는 큰 소나무들이 동네에 가득하다.성안에 사는 부녀자들이 피륙을 빨고 바래기 위해서 모여든다』 군사시설 물러가는 용산땅은 문화의 터전으로 모습을 바꾼다.얼마전 김영삼대통령은 이 용산일대가 2000년대 서울의 문화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도 있다.고려 숙종때 최사추가 「도읍후보지」로 보고드렸다는 곳이 용산일대.시대가 흘러 문화의 도읍지로 되나보다.
  • 통영/천혜의 해양경관 휴양지로 탈바꿈

    ◎「충무 마리나」 개장… 요트·윈드서핑 즐겨/사천공항서 무료셔틀버스… 한산도까지 보트로 30분 「동양의 나폴리」「남해안의 백진주」 등으로 불리는 항구도시 경남 통영시(종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영시로 통합)가 관광휴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곳은 쪽빛바다와 풋풋한 바다냄새,뱃고동과 갈메기가 어우러져 남해안의 정취가 가득한 한려수도의 중심지인데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을 이룩한 한산섬을 비롯,해수욕장·낚시터 등이 인접해 천혜의 해양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더욱이 지난해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충무마리나」가 올해 콘도 등 각종 부대시설을 잇따라 보강,개장해 수상스키·제트스키·윈드서핑 등 각종 해상레포츠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통영시 도남동 도남항에 위치한 충무마리나 리조트는 경남도 도남관광개발 계획에 따라 (주)금호개발이 오는 97년 완공을 목표로 총 1천4백50억원을 들여 건립하는 12만3천여평규모의 육·해상 레저타운. 지난해 육·해상 계류장과 요트클럽하우스가 개장된 데 이어 지하 1층 지상 15층에 16·27·60평형의 객실 2백72실과 회의실,한·양식당,전자오락실,사우나,노래방 등의 부대시설을 고루 갖춘 콘도미니엄(70% 분양)이 지난 9일 개장됐다.또 오는 97년초 스포츠센터,육·해상 놀이공원,야외 체육시설,충무공 전승기념관,상가 등이 들어서게 돼 해상리조트로서의 제모습을 갖추게 된다. 마리나는 요트를 정박시킬 수 있는 계류시설과 요트클럽하우스,요트수리·급유소 등을 갖춘 요트전용항구.이 곳은 현재 8∼18인승 모터요트 15척과 돛을 단 세일요트 5척 등 20척을 보유하고 있다.비회원이 4가족 18인승 모터요트를 이용할 경우 비용은 40만원선이다. 또 관광유람선 선착장이 이웃한 곳으로 이전해 와 한산도·해금강·매물도 등을 수시로 운행하고 있어 주변 명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도남항에서 모터보트로 30분거리의 한산도는 요즘 만개한 동백꽃으로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이 곳에는 이충무공이 한산대첩의 공훈으로 3도 수군통제사가 된 뒤 지은 제승당(제승당·사적 113호)과 수루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분 거리의 비진도해수욕장은 1백년이상 된 소나무숲이 바다와 잘 어우러져 연간 6만여명이 해수욕을 즐기는 호젓한 해변이다.또한 통영에서 27㎞ 떨어진 소매물도는 경관이 아름다워 해금도라고도 불리어지며 섬의 대부분이 70여m의 아찔한 절벽이다.글씨가 새겨져 있는 강정이란 뜻의 「글씽이강정」과 암수바위가 유명하다. 이밖에 추도·사량도·연화도 등은 낚시터로 유명한데 감성돔·노래미·도미 등이 많이 낚이며 특산물로는 돌미역·멸치·나전칠기·통영갓 등이 있다. 승용차로는 대구∼구마고속도로∼마산∼통영으로 가면되고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진주 사천공항에 도착,충무마리나까지 운행되는 무료셔틀버스를 타면된다.충무마리나(02­758­8764) 도남관광단지 유람선(0557­645­2307)
  • 항일투사들의 유택(두만강 7백리:7)

    ◎나철·김교헌·서일 선생 묘 새 단장/강양안 마을마다 혁명열사비 우뚝 솟아/한·중수교후 관심 높아져… 모국이장 한창 연길시 사수에서 북쪽 골짜기로 20리가량 올라가노라면 금불동이라는 마을이 있다.이 마을이 등지고 있는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소나무숲이 나오는데 그안에 유달리 깨끗이 가꾼 묘소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묘지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누구도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서 왔으며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길이 없다.다만 숨을 거둘 당시 19살이라는 것과 조선족 항일독립군 젊은 전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 연세가 높은 이상헌(79)노인은 그 무명의 젊은 전사가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정황을 소상히 기억했다. 『꼭 쉰 일곱해전 일입네다.뒷산에서 드문이 총소리가 들려오더니만 일본놈들과 자위단들이 어린애 같이 앳된 새파란 청년을 끌고 마을로 들어왔디요.그 놈들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내다 보는 앞에서 청년을 신문합데다.이름을 물으니까 「항일독립군」이라고만 기래요.그 날 왜놈 장교의 군도에 목이 잘려 죽고 말았디요.하도 기막히고 딱해서 유체를 마을 사람들이 묻어주었댔습네다』 ○무명열사 묘지는 쓸쓸 두만강 양안 마을마다 양지 바른 언덕위에는 혁명열사비가 세워졌지만 산 언덕 공동묘지에 임자 없이 쓸쓸히 있는 독립투사들의 묘지는 풍우의 시달림에 자취를 잃었거나 훼손되어 가고 있다.용정시 삼합진 안미대골로 얼마간 들어 가다가 화선 누비골에 있는 묘지앞에는 돌비석 하나가 쓸쓸히 서 있었다고 한다.비석에는 김병덕 지묘라고 씌어있었다.부근 마을 사람들은 독립군 대장의 묘라고 했다.똑같은 항일투사의 묘지이다.하지만 계급투쟁 세월에 그 누군들 감히 돌볼 수가 있었으랴.몇해전 김병덕의 묘지는 파엎어졌고 대리석 비석도 도난을 당했다.오소리가 묘지에 굴을 뚫고 보금자리를 꾸민 것을 발견한 부근의 사람이 묘를 헤치고 오소리를 잡아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열 항일열사들의 시신은 일찍 북한으로 이장되었다.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한때 친선을 다졌던 터이라 이장이 쉬워 1950년대말에서 60년대 사이에 시신이라도 두만강을 건넜다.이에 비해 한국에 가까운 연고를 둔 항일열사들은 상대적으로 대접이 소홀했다.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항일유적이나 열사들의 묘소가 큰 수모를 겪었다.한중수교가 이루어지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져 항일열사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 넋이라도 살아서 가장 슬퍼하다가 다시 기뻐했을 열사가 있다면 나철,김교헌,서일 선생일 것이다.한국 대종교의 3종사로,또 항일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묘소는 화룡시 삼도구 청호촌에 있다.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항일역사유적지로 지정한데다 한국의 대종교가 묘역을 정화했기 때문에 제법 볼품이 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청산리전투를 총지휘 이 묘역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패거리와 추종자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수난을 겪었다.비석을 모두 내동댕이 쳐서 청호촌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 댓돌로 쓸 정도였다.문화혁명이 가시고 뜻있는 사람들이 묘비석을 찾아내 세웠지만 김교헌선생의 묘비는 끝내 못찾았다.그래서 몇해전에 묘비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대종교는 독립군조직 서로군정서를 만드는데 주역을 담당했고 서안선생은 그 총재로 1920년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다. 지금은 일본인들까지 유골을 찾으려 두만강변의 연변땅을 방문하고 있다.물론 침략자로 두만강을 건넜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얼마전에 한 일본 여인이 용정시 백금향으로 와서 자기의 오빠 묘를 찾았다.묘지 자리를 상세히 그린 지도까지 들고 온 일본 여인을 마을 노인들이 안내했다.묘가 있었다는 장소는 본래 일본 삼림경찰의 묘역이었다.1940년 홍기하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일본경찰은 둘 뿐이었다는데 목숨을 살려 평정대 마을까지 이르렀다가 그중 하나가 병으로 죽어 그곳에 묘를 썼던 것이다.그런데 봉분이 사라져서 어방으로 묘자리가 짐작은 가도 딱 짚을 수는 없었다. 독립군 김덕형의사는 웅진,나진 등 두만강 연안의 조선을 다니며 군자금을 모았던 사람이다.1921년 경술년 토벌 때 어느날 저녁 군자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북흥에 있는 집으로 들어 왔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포위에 걸려희생되었다.그가 죽은 후 식구들은 군자금을 독립군에 전달할 수 없었다.많은 액수의 군자금은 그 집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김덕형의 아들 두 형제는 시름없이 공부를 하였다.광복이 나고 1947년 토지개혁을 하게 되자 생활이 유족했던 그 일가는 청산을 당해 러시아제 금장표 재봉틀마저 빼앗겼다.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던 재봉틀은 얼마전에 고장이 나서 고철로 팔아버렸다.그집 큰 아들은 북한에 들어가 죽고 작은 아들 김성록은 지금 한국에 산다.6·26전쟁 때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 북한에 온 김성록은 중국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북흥의 조선족 친구가 만난 일도 있다.그는 한국군 대좌(대령)군함(계급장)을 달고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보훈처에서는 연변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안화춘 선생의 도움으로 중국내 애국선열들의 묘소를 이장하고 있다.안화춘 선생은 갖은 노고를 아끼지 않고 이 땅을 메주 밟듯 하고 다닌다.이번 두만강 답사길에서 연변 도처에서 희생된 선열들의 자취를 잡을 수 있었다.조창렬노인이 들려준 경신년 대토벌 당시 상황도 그 한토막이다. ○선열들 발자취 곳곳에 부암동에서 독립군 한창준과 이씨가 체포되어 불에 타 죽었댔습니다.시체를 감장하려니 누가 누구인지 가릴 수가 없었디요.일제 놈들은 의병대장 최덕균과 남상윤(남풍수로 불림)선생도 모진 고문을 했다고 기래요.눈에다가 고춧물을 부어 넣고 신문을 했으니끼리 죽을 수 밖에….』 선열들의 비장한 최후는 눈물 없이는 들을수 없었고 일제와 주구들의 만행은 의분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고 부르는 독립운동의 무대 연변은 이렇듯 많은 항일투쟁의 사연을 안고 있다.나는 옛 용정 대성중학교(현재 용정시 제2중학교)앞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시 한구절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무수한 선열들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 아닐 수 없다.
  • 식목일 전국 곳곳 산불/성묘·등산객 부주의로… 1명 사망

    ◎헬기 부족해 진화 어려움도 식목일이자 한식을 하루앞둔 5일 성묘객 또는 등산객,영농준비를 하는 농민들의 부주의로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잇따랐으며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비슷한 시간대에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진압헬기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날 하오 4시 현재 대구에서 4건,경북에서 7건등 모두 11건의 산불이 발생,10여㏊의 임야가 소실된 영남지방에서는 상오 11시부터 하오 2시사이에 4건의 불이 집중적으로 일어나 출동 헬기가 동이 났다. 산림청과 군부대는 4대의 헬기를 동원,영양군 수비면 계리 뒷산등의 산불 진화에 나섰으나 하오 1시 35분쯤 안동군 임하면 오대리 야산에서 불이 나자 출동할 헬기가 없어 손을 쓰지 못했다. 또 이날 하오 2시쯤 서울 서초구 신원동 청계산 중턱에서 불이 나 잡목등 임야 8백여평을 태우고 1시간 40분만에 꺼지는등 수도권에서도 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하오 1시15분쯤 충북 충주시 안림동 계명산(해발 6백50m)에서 발생한 산불은 임야 5㏊를 태우고 정상으로 번지고 있으며 상오 11시20분쯤에는대전시 대덕구 법동 계족산 중턱에서 성묘객 이모씨(72·여)가 피워놓은 향불이 잔디에 옮겨 붙으면서 불이 나 소나무와 잡목등 임야 1만여평을 태우고 2시간만에 꺼졌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에서는 뒷산에서 난 산불로 주민 조수익씨(70)가 숨졌다. 이에 앞서 4일 하오 2시50분쯤 경남 진주시 월아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임야 30㏊를 태우고 17시간만인 5일 상오 8시쯤 진화됐다. ◎부처별 식목행사 정부는 5일 제50회 식목일을 맞아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각 부처별로 일제히 식목행사를 가졌다. 이홍구 국무총리는 이날 상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간부들과 기념식수를 한 뒤 경기도 포천군 중부임업시험장 조림지에 나가 총리실 직원 1백20여명과 함께 분비나무 2천그루를 심었다. 이총리는 이어 이지복 산림청차장으로부터 산불예방 및 진화체제에 대한 보고를 받고 『대형헬기 3대 추가도입 등으로 보강된 산불진화 체제를 효율적으로 가동하라』고 지시했다. 나웅배 부총리는 이날 경기도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에서 직원 1백여명과 함께 잣나무1천5백그루를 심었으며 서석재 총무처장관은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양벌리에서 직원 90여명과 잣나무 2천7백그루를 심었다.
  • 곽만섭 청장에 듣는 산림정책(국정 어떻게 돼 갑니까)

    ◎지리산 등 16개산 올해 집중 조림/가공품 생산·산림 관광자원 활용 역점/상속세 공제액 높여 사유림 투자 촉진/2040년까지 해외조림지 확대… 목재 자급률 60%로 □대담=정종석 경제부차장 5일은 제50회 식목일이다. 요즘은 전국 어디에도 헐벗어 볼썽사나운 민둥산은 찾기가 힘들다.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푸르름만큼 쓸만한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심는 정성에 비해 가꾸고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한 탓도 있다. 서울신문 경제부 정종석 차장이 나무심는 기간(3월21일∼4월20일)을 맞아 곽만섭 산림청장을 만났다. ­심는 정성보다 가꾸거나 보살피는 정성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지금까지는 심는 일이 급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60년대부터 시작한 녹화사업으로 산림이 제법 울창해졌으므로 앞으로는 간벌과 풀베기·가지치기 및 비료주기 등의 육림사업을 적극 펼쳐 쓸모있는 경제림을 조성하는 등 산지를 자원화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입니다. ○예산 효율성 극대화 ­임업은 앞으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된다고 봅니까.▲지금은 나무를 심어서 목재를 생산하는 1차산업으로만 보는데,바로 이런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2,3차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얘기입니다.국토의 67%가 산지인 핀란드는 임산물의 수출이 전체수출액의 37%나 되며,국민 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이상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65%가 산지이면서도 임산물소득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미만입니다.나무로 부가가치가 높은 다양한 가공품을 만들고,산림을 관광휴양자원으로 활용하는 등 국민경제에 기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임도 등 생산기반이 취약하고,예산도 빈약하지 않습니까. ▲산림청의 올 예산은 1개 군의 예산과 비슷한 3천7백억원으로,관리하는 면적에 비해 아주 적습니다.앞으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국의 모든 산림을 대상으로 산발적으로 지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산을 중심으로 조림과 육림 및 간벌을 할 계획입니다.올해에는 강원도 원주의 유명산과 강릉의 봉룡산,경북 안동의 장군봉,충남 공주의 오성산,전북 남원의 지리산 및 덕유산 등 전국의 16개 산에 집중투자하기로했습니다. ­아직은 산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편이지요. ▲그동안 산지가 국민경제에 미친 기여도는 작았습니다.산지를 국가발전의 밑바탕이나 삶의 터전이라는 폭넓은 차원에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그래서 나무만 다루지 않고 산지와 산촌을 함께 다루는 종합적인 행정을 펴나갈 생각입니다. ­연평균 8천㏊가량의 산지가 골프장이나 공장용지 등의 비농업용으로 전용되는데,너무 개발에 치우치는 것 아닙니까. ○연 물1백80t 저장 ▲도시화 및 산업화가 진전되면 토지의 공급원으로서 산지에 대한 수요가 늘게 마련입니다.때문에 자연경관을 보존해야 하는 지역은 전용제한구역으로 지정,엄격하게 관리하는 반면 그 이외에는 개발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경사도에 따라 보전 및 준보전임지로 나뉜 현체계를 위치와 형태 및 이용목적에 따라 생산·공익·산업임지로 바꿔 국토종합개발계획과 연계시킴으로써 보존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습니다.상반기중 관계부처와 협의해 6백40만㏊의 산지를 이렇게 다시 고시할 계획입니다.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산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요. ▲산림은 산사태를 예방하고 맑은 공기와 물을 공급하는 등의 공익적인 기능이 엄청납니다.화폐가치로 평가하면 GNP의 12%가량인 28조원이나 됩니다.예컨대 산림의 연간 물 저장능력은 1백80억t으로,국내 7개 다목적댐의 최대저수량의 2배입니다.거대한 「녹색댐」이지요. 맑은 물을 공급하는 데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 5개년 사업으로 5대강유역의 수종을 참나무 등의 활엽수로 바꾸는 등 환경림도 조성할 계획입니다. 또 10년쯤 자란 나무를 산에서 솎아내 도심이나 공단으로 옮겨심어 산의 나무도 잘 자라도록 하고 도시도 녹화하는 2중의 효과를 거둘 계획입니다. ­국토의 65%가 산지인데도 목재의 자급도는 13%밖에 안되지요. ▲녹화가 제법 이뤄졌다고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87%가 30년생이하의 어린 나무들이기 때문입니다.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 등의 혼란기를 거치며 황폐해진 산림을 복구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후반부터입니다.목재로 쓰려면 최소한 50년생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2040년 목재의 자급률을 60%까지 높이기 위해 호주와 칠레·베트남 및 미얀마 등에 70만㏊의 조림지를 확보할 계획입니다.93년부터 이 사업을 시작,지금까지 2천㏊의 해외조림지를 개척했습니다. 무역을 환경문제와 연계하는 그린라운드에 대비,목재의 수입선도 동남아 위주에서 남미와 러시아 등으로 다변화하고 현지에 가공공장도 만들어 합판 등의 반제품을 들여올 계획입니다. ­우리나라 산지의 71%가 사유림인데,산주들이 대부분 영세한데다 수익성도 낮아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경향입니다. ○영세 산주 지원 확대 ▲작년말에 산지의 상속세 공제한도를 9만평에서 30만평으로 늘렸고,공제액도 1억원에서 3억원까지 높이는 등의 투자촉진책을 마련했습니다.전체산주의 96%를 차지하는 10㏊미만의 영세산주로 하여금 협업체를 만들어 조림사업을 함께 펴도록 하고,자금지원도 늘릴 계획입니다. ­요즈음은 산불도 자주 일어나고 규모까지 커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진화의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동력펌프 등의 지상장비 말고도 헬기 18대를 전국의 산불취약지역에 배치했습니다.금년에 5대를 더 들여와 97년까지 1개 도에 3대씩 배치할 계획입니다. ­솔잎혹파리의 피해가 크다지요. ▲전체 소나무숲의 11%인 21만2천㏊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나무에 주사를 하면 효과가 가장 크지만 인력 및 예산상 솔잎혹파리의 천적인 목좀벌레라는 익충을 피해가 심한 지역에 푸는 방제법을 쓸 계획입니다. ­올해는 광복 50주년이자 식목일도 50회인데 예년과 다른 행사가 있습니까. ▲전국 2만4천㏊에 6천2백만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 이외에 남산 소나무의 복원사업 및 비무장지대(DMZ)의 생태계를 조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행정고시 6회에 합격한 곽청장은 창원과 울산시장 및 부산부시장 등을 역임한 내무관료다.지난해 9월 부임한 그는 직원들에게 목재만 생산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소득원을 개발하는 등 임업을 산업화하는 데 앞장서라고 강조한다. ◎정부의 조림 5년계획을 보면/5대강 유역 활엽수림 조성/뿌리길고 낙엽쌓여 물저장 뛰어나/33만㏊ 대상… 올 1만5천㏊ 작업/벌채나무 목재이용·도심지역 옮겨 앞으로 5년 뒤 한강 등 우리나라 5대강 유역의 산림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 대종을 이루는 소나무·잣나무 등 침엽수림이 상수리나무·자작나무 같은 활엽수림으로 크게 바뀐다.올해부터 오는 99년까지 5년 동안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다.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산림이 목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 만은 아니다.거대한 「녹색댐」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우리나라 국토의 65%를 차지하는 산림이 연간 물을 저장하는 능력은 1백80억t이다.7개 다목적 댐의 최대 저수량인 98억t의 갑절 가까이나 된다. 민둥산에 비가 오면 대부분 강으로 바로 흘러가고 만다.그러나 숲이 우거지면 뿌리나 줄기 등에 수분이 흡수됐다가 서서히 강이나 땅 속으로 흘러 들어가며,지하수가 되기도 한다. 일종의 댐 역할을 하는 셈이다.우리나라의 연간 강수량은 1천2백67억t이지만 22% 가량인 2백86억t만 이용된다.오는 20 01년에는 이용량이 3백30억t이 돼야 한다.산림의 녹색 댐 역할은 더욱 요구된다.5대강 유역의 숲을 침엽수 대신 활엽수림으로 바꾸려는 것은 활엽수림의 물 저장 능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침엽수림에 비해 뿌리의 길이가 더 길다.낙엽이 지면 나무 아래의 땅이 햇볕을 많이 받게 돼 다른 식물도 잘 자란다.물을 더 저장하는 효과를 얻는다. 5대강 유역의 산림은 전체 산림면적의 68%인 4백40만㏊이다.산림청은 이 중 7.6% 가량인 33만4천㏊를 활엽수림으로 바꿔 심을 계획이다.5대강으로 합류하는 지류 주변의 3백42개 취수장을 중심으로 반경 5∼10㎞ 이내가 대상이다. 올해에는 5백4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33만4천㏊중 1만5천㏊에서 작업을 펼 계획이다.솎아내거나 벌채하는 침엽수림은 목재로 쓰거나 10년짜리 이하이면 도심지역으로 옮겨 심는다.산의 경사도가 36도 이상으로 가파른 지역은 벌채로 인한 산사태를 막기 위해 제한적으로만 활엽수로 바꿔 심고,침엽수림이라도 천연림으로 보존할 가치가 큰 나무는 그대로 놔둔다. 바꿔 심는 수종은 활엽수 중에서도 갈참나무와 굴참나무·상수리나무·자작나무·고로쇠나무 등 물의 저장 능력이 뛰어난 나무들이다.산림청 자원조성과 정수봉 계장은 『5대강 유역의 상수원 오염 및 물부족 현상을 막기 위해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하는 산림의 대체 조성사업을 펴기로 했다』며 『이 사업이 끝나면 산림에서 천연 여과과정을 거친 1급수 식수를 원활히 공급하게 되며,아울러 쾌적한 휴식공간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지/“수명1천년”…가장좋은 지공예품 소재(한국문화 세계의길:8)

    ◎인형·판화용지·옷감으로 이미 세계적 호평/양산체제 갖추고 「비닐대체 연구」 뒤따라야 「지천년 마오백년」(지천년 마오백년).「종이는 1천년,헝겊은 오백년」이란 뜻으로 우리 한지의 긴 수명을 강조할때 흔히 쓰는 말이다.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다라니경(국보126호)이 종이수명 1천3백여년을 누리고 있고 신라때의 대방광불화엄경(국보196호 호암미술관 소장)의 지수가 올해 1천2백41세이고 보면 이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닥종이를 원료로 한 우리 한지의 우수성은 비단 그 수명에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예부터 호평을 받아왔다.일본 서지학자 야기는 『신라의 백추지(한지)는 다른 어떤 종이와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훌륭한 종이로 중국에서까지도 천하제일이라고 하여 소중히 여겼다』고 기록했다.고려지,즉 한지는 최상품의 주요 조공품이었고 17세기 중국의 기술서 「천공개물」은 『조선의 백추지는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감탄하고 있다. ○옛부터 천하제일 명성 오늘의 한지도 세계적 명성을 지니고 있다.재독작가 김영희씨가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우리 고유의 닥종이 인형과 한지작업을 통해 인기를 누리고 있고 파리에서 활동중인 패션디자이너 이미금씨는 한지를 이용한 의상을 선보여 현지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최근엔 파리의 화랑가에서 한지가 미술작가들의 인기소재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한국국제교류재단이 한국문화를 해외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최근 펴낸 「KOREAN CULTURAL HERITAGE」(한국의 문화유산)시리즈 첫권도 한지를 우수한 문화품목으로 실었다.지난해 5월 손주환 당시 재단이사장이 기획,출간해 세계 1백36개국의 도서관등 관련기관에 무료배포할 이 학술시리즈 첫권에서는 한지의 특징과 제작과정,이용분야를 알기 쉽게 정리해 소개하고 있다. 한편 재독작가 김영희씨의 닥종이인형은 정제가 덜된 거친 한지인 닥종이를 이용한 손작업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작품.지난 81년 서독 뮌헨서의 첫 해외전시회이후 독일전역과 스위스,네덜란드,프랑스의 민간·정부초청 전시회를 꾸준히 가져오며 현지 언론과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또 이미금씨는 지난해 4월 파리근교 소나무회 전시장에서 전통 한복의 선과 색감을 서양의상에 응용한 한지패션쇼를 열어 패션의 새 영역을 열었다는 평을 얻었다. ○일서 인쇄지 이용 계획 그러나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한 한지의 상품화는 아직 부진한 형편이다.미술전문서적 출판사인 API가 조선시대 민화를 한지에 판화로 찍어낸 판본민화를 세계시장에 내놓은게 그나마 한지 상품화의 한 예일 정도이다.지난 93년 전통 닥종이를 서른세겹 겹친 「구아리랑」이란 판화지의 실용특허를 받아낸 API는 지금까지 모두 34종의 판본민화를 개발해냈다.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판본민화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던 API는 이 판본민화를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에 내놓기 위해 영국,오스트렐리아등지에서 시장조사중이다. ○보석함·장롱 제조 가능 현재 세계시장에서는 종이를 이용한 각국의 고유상품들이 활발히 유통되고 있어 우리도 전통 한지를 이용한 문화상품의 세계화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이 시급한 실정이다.멕시코의 경우고유의 종이에 인디언 문양을 넣은 복제품을 각국 백화점에 내놓아 여행객들의 기호품으로 자리잡게 했고 가까운 일본만하더라도 한지원료를 가공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팔고 있어 한지의 종주국인 우리의 체면을 깎고 있다.특히 일본의 경우 수명이 긴 한지를 도서등 인쇄용 재료로 이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편지지,편지봉투,포장지,부채,가구등 한지 특유의 질감과 빛깔을 살린 상품들이 다양하게 유통되고 있는데 이들 상품의 세계화를 모색해볼 만하다.또한 상품화는 되지 않았지만 작품단계에 머물러 있는 오색한지공예나 지승공예도 세계화할 수 있는 문화상품이다.한지를 덧붙여 색채를 넣는 오색한지공예의 경우 내구성에 특유의 자연스런 색채감과 질감까지 갖추고 있어 상품화가 될 경우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특히 한지를 꼬아 만드는 지승공예의 경우 보석함,장롱등 가구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다.지공예의 장점은 단단함인데 한지에 식물성기름을발라 만든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할 정도여서 조선시대 한지는 갑옷,화살통,비옷,우산등에 쓰여졌다. 한지의 이같은 특성에 착안,과학기술처는 지난해 10월부터 공장시설을 통한 우수 한지의 대량생산을 위해 과학적으로 한지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통상산업부는 최근 김치·도자기등과 함께 한지를 수출용 전통상품 유망 14개 품목에 포함시켜 집중육성하기로 했다. ○산업화 적극 지원해야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지를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연구와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임영주 전통공예관 관장은 『한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와 한지공단을 정부차원에서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서양의 종이가 1백년을 견디지 못하고 훼손되는데 비해 한지의 수명은 1천년 이상이고 또 비닐등을 대체해 쓸 경우 공해요인을 없앨 수 있는 장점이 있는만큼 과학적 응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기호 오색한지공예연구회장은 『현재 개인적 작업단계에 머물러 있는 지공예나 지승공예작가들이 조직적으로 산업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경우 한지의 문화상품화와 세계시장 진출은 쉽게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한지 어떻게 만드나/닥풀·섬유소에 풀어 종이액 걸러내/닥나무 속껍질 가려 양잿물에 삶아 한지의 특장은 무엇보다도 직접 손으로 만들어가는 제작과정의 정성에서 나온다.베어낸 닥나무를 다발로 묶어 가마솥에 세워 놓고 가마니로 둘러싼 뒤 물을 붓고 불을 때서 삶는다.겉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삶아지면 꺼내서 껍질을 벗겨 말린다.건조된 껍질을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뒤 하얀 내피부분만 가려낸다.이 내피를 양잿물 섞인 끓는 물 속에서 3시간 이상 삶아 물을 짜낸다.여기에 닥풀뿌리를 으깨서 짜낸 닥풀과 섬유화된 재료를 넣고 잘 저어서 고루 풀리게 한 다음 발에 종이액을 걸러서 떠낸다.이런 과정을 거쳐 흰 빛의 통기성 강하고 질긴 한지가 나오는 것이다. 현재 이런 공정을 거쳐 한지를 만들어내는 공방은 전국에 걸쳐 1백여개.전주한지나 원주한지 등 수공업공장 형태의 한지제작사는 손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이 영세성을면치 못한 채 근근히 맥을 잇고 있는 형편이다.한지 전문 기술인들이 점차 줄어 들어 제대로 된 한지를 만드는 공방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여서 보존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재불 패션디자이너 이미금씨 소견/질감좋고 색상고와 외국인 선호/“한지상품 상설전시관 아쉽다” 『각국의 백화점 전시장 등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한지와 함께 한지로 만든 상품을 상설 전시해야합니다』 재불 패션디자이너 이미금씨(35)는 우수한 한지를 세계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파리근교의 소나무회 전시장에서 한지 의상전시회를 했을 때 외국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전시가 끝나고 나서 의류업계와 컬렉터들로부터 상품화 제휴가 몰려들어 곤혹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덕성여대 섬유과를 졸업하고 현재 파리 8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씨는 파리장식의상미술학교 재학 중이던 85년부터 퐁피두센터에서 한지를 이용한 의상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그는 한지가 외국인들의 눈을 끄는 이유를자연적인 소재와 색채를 주로 이용하게 된 패션계의 최근 추세 말고도 한지가 갖고있는 고유의 장점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계 각국의 종이를 모두 소재로 써봤는데 닥종이를 이용한 한지 만큼 자연스런 멋을 내는 소재를 보지 못했어요.한지는 견고하고 자체의 질감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염색할 때 나타나는 색상이 정확하고 산뜻해 외국의 작가들도 아주 좋아해요』 서울에 올 때마다 인사동 골목을 뒤져 각종 닥종이를 구입해간다는 이씨는 파리의 화랑과 외국작가로부터 한지 구입요령을 알려달라는 주문을 적지않게 받는다고 밝혔다. 종이작업 작가들의 전시회로 매년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판화미술제(SAGA)에는 종이를 판매하는 회사들도 함께 참여하는 만큼 정부 지원으로 한지를 상설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그 파급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클 것이라는 귀띔도 했다.
  • 도서관의 현주소/김광영 수필가(굄돌)

    소나무가 진초록빛으로 물들던 날 도서관 앞을 지나는 대학생들을 바라보며 얼마전 신문에서 「도서관은 교수에겐 박물관이고,학생에겐 독서실이다」라는 기사내용에 대해 음미해 본다. 도서관의 3요소는 장서,시설,직원이다.서울대 도서관의 장서는 현재 1백79만권인데,외국의 유명대학과 비교하면 장서수가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지방국립대학이나 사립대학은 더욱 빈약하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도서관은 교수에겐 박물관이다」라는 말과 연관하여 서울대 도서관의 경우 도서구입비가 37억5천만원인데,그 가운데 국고가 12억원,장서기금이 25억원이라고 한다.예산과 연관해서 외국과 비교할 경우에는 빈약하지만 지방국립대학이나 사립대학은 더욱 열악하다. 「도서관은 학생에겐 독서실이다」라는 말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면,그것은 현행교육 제도와 연관되어 있다.왜냐하면 대학생들이 주입식으로 강의를 받고 있기에 노트 필기를 잘하고 교과서만 읽으면 학점을 따는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도서관이 훌륭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공부만을 하는 독서실로 전락 한것은 아닐까. 도서관이 본래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행의 주입식 강의로부터 수업을 시작하기 일주일전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실에서 토론할 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그 주제와 관련된 참고문헌을 숙독한 후에 함께 대화하는 수업방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또한 국내의 정보통신 뿐만 아니라 해외의 데이터 베이스에서 각종 정보를 입수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도서관에 소장한 자료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검색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도서관은 참고봉사를 주요 업무로 하는 만큼 이용자들에게 적절한 자료를 서비스하는 사서의 역할이 더욱 요청된다. 우리모두는 도서관이 장서,예산,시설,직원에 있어 성장하는 유기체가 되도록 보살펴야 한다.
  • 산불 잇따라/임야 7㏊ 태워

    19일 하오2시10분쯤 충북 제천시 봉양면 미당리 야산에서 불이 나 소나무와 잡목 등 2㏊를 태워 30여만원(경찰추산)의 재산피해를 낸뒤 3시간여만에 진화됐다. 또 이날 낮12시50분쯤 전남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 야산에서 인근 마을에 사는 서동심씨(56·여)가 밭의 잡초를 태우려다 불이 번져 잡목등 임야 5㏊를 태우고 4시간만에 꺼졌다. 하오2시50분쯤에도 전남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 야산에서 어린이 불장난으로 보이는 불이 나 2년생 리기다소나무 1천여그루 등 임야 0.6㏊를 태우고 1시간만에 진화됐다.
  • 식수고갈 두달째… 목타는 섬주민/주1회 급수선 올때마다 “북새통”

    ◎가뭄특별취재반 통남서 제4신/선착장엔 빈물통 백여개 항상 대기/“지하수는 소금물” 빨래도 엄두 못내 10일 상오 경남 통영시 욕지면 상노대도 탄항부락.유일한 식수원인 지하수를 받기위해 주민 20여명이 줄지어 서있다. 이 마을 박준선씨(45·여)는 『지하수를 뽑아도 염분이 스며들어 도저히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며 『짠물로 빨래하다 보니 흰 속옷이 누렇게 되고 싱크대도 벌겋게 녹슬어 못쓰게 됐다』고 푸념했다. 이 때문에 마을주민들은 인근 욕지도 북서부 청사부락 급수전진기지에서 40t의 물을 싣고 일주일에 한번꼴로 들르는 급수선이 도착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선착장에는 항상 1백여개의 빈 플라스틱물통이 빽빽이 줄지어 놓여 있고…. 상오 10시 30분.40t짜리 물탱크를 실은 23t급 급수선 경남 705호가 도착,선장 손철수씨가 배에서 급수호스를 내리자 30여명의 부녀자들은 자신의 물통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받기 위해 우르르 몰려든다. 경남705호는 7∼10일에 한번꼴로 식수난을 겪고있는 탄항을 비롯,조선·관청·납도·초도·야포·입석등 욕지도 인근 7개 도서마을에 들러 물을 나눠주고 있다. 특히 욕지도 입석부락의 경우 69가구 2백23명의 주민들은 급수선이 도착하면 한바탕 아귀다툼을 벌인다.마을 부녀회장 하둘순씨(46)는 『급수선이 도착하면 집안식구가 전부 동원돼 물을 나른다』며 『선착장에서 집까지의 5분거리를 30동이의 물을 이고 나르면 옷이 흠뻑 젖고 힘이 쭉빠져 다른 일은 할 생각도 안난다』고 말했다. 하씨는 『세숫물로 빨래하고 빨래를 한 물도 다시 세수대야에 담아 때를 가라앉힌뒤 비교적 깨끗한 윗물을 따로 물통에 모아 청소하는등 최대한 물소비량을 줄이고 있다』면서 『파래무침을 만들어 먹고 싶어도 그릇 씻을 일을 생각하면 겁이나 아예 포기하고 만다』고 한숨을 쉬었다. 하오1시 입석에서 자동차로 3분거리인 관청마을. 사람보다도 2t짜리 물탱크 1대와 1t짜리 2대등 50여개의 물통이 먼저 눈에 띈다.물통은 널빤지로 덮여있고 널빤지가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기위해 그위에 돌멩이가 얹혀 있다. 또 마을뒷산 소나무숲에는 누렇게 말라죽은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흉한 모습을 드러낸다.암벽사이에서 자라난 소나무들이 지난 겨울부터 물이 모자라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고사한 소나무는 30년이상 된 것을 비롯,50여그루에 이른다. 이 마을 한호갑 이장(65)은 『지난 87년 셀마태풍때 나무가 바람에 부러진 것은 봤지만 욕지도에서 태어나 60평생을 살면서 소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며 『입춘이 지나면 새 뿌리가 나와야 하는 보리도 누렇게 뜬것을 보니 올해 보리농사도 다 망친것 같다』며 답답해 한다. 올들어 지금까지 불과 40㎜의 강우량을 보인 통영시도 지난 1월부터 5개면 25개 마을에 급수선 2척과 소방차 2대를 이용,비상급수를 하고 있어 식수난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탄항등 욕지도 인근 도서부락들을 둘러봤던 강태선 통영시장은 『남강댐저수율이 현재 50%로 시내는 5월까지는 비가 안와도 급수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이달말까지 비가 안오면 욕지도의 경우 인근 2∼3개 지역에는 운반급수를 더 늘려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