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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 숨겨진 명소 ‘부소담악’

    충북 옥천 숨겨진 명소 ‘부소담악’

    충북 옥천 땅에 나랏님의 부름을 받은 뫼가 있었답니다. 무엇 때문에 부름을 받았는지는 역사도, 사람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나랏님의 굄을 받았다니 자태가 빼어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유추할 수는 있겠습니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 또한 산을 넘지 못합니다. 도성으로 향하던 뫼는 현 군북면 추소리에서 비단강(금강·錦江) 물줄기에 발목이 잡혔고, 나랏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 채 그대로 머물게 됩니다. 그 산이 옥천의 숨겨진 명소 ‘부소담악’입니다. 전설보다 아름다운 건 부소담악의 자태입니다. ‘U’자 모양으로 휘돌아 가는 비단강 물줄기를 가르며 칼날처럼 곧추섰는데, 꼭 입이 긴 악어 가비알이 비단강을 한 입 베어 문 듯한 형상입니다.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 추소리 후세의 인심이 참 각박하다. 언필칭 ‘명소’를 찾아가는 길인데 번듯한 이정표 하나 없다.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에 가는 길을 물을 수밖에. 하지만 추소리에서 부소담악은 풍경의 주인이었다. 이정표가 없어도 찾을 수 있을 만큼, 또 먼 발치에서도 또렷이 인식될 만큼 독특하고 당당한 자태로 이방인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이름이 독특하다. ‘부소담악’(赴召潭岳)이다. 풀자면 ‘부소무니 마을 앞 물 위로 솟은 산’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부소’(赴召)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임금의 부름을 좇아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을 이름치고는 어딘가 어색하다. 연꽃 부(芙), 못 소(沼) 자를 쓰는 게 제격일 듯하다. 실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쓴다. 하지만 옥천군청 홈페이지 등에 언급돼 있는 이름은 분명 ‘赴召潭岳’이다. 이름의 연원은 불분명하다. 다만 향토사학자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백제 성왕과 관련된 표현이 아닐까 짐작될 뿐이다. 성왕이 신라군에 의해 최후를 맞은 곳이 부소담악에서 약 2㎞쯤 떨어진 군서면 월전리고, 추소리와 뒤편 고리산에 백제군 진영이 있었다는 것은 기록이 전하는 사실(史實)이다. 이런 근거 위에 후대의 문장가들이 스토리텔링을 얹어 멋진 이름을 지은 건 아닐까. 하긴 ‘연꽃 같은 호수’(芙沼) 등의 흔한 이름보다는 ‘군왕의 부름을 받은 산’(赴召)이란 이름에서 비장미가 물씬 느껴지지 않는가. 부소담악이 속해 있는 추소리는 작은 마을이다. 추동과 부소무니, 절골 등으로 이뤄져 있다. ‘환산’(環山)이라 불리는 고리산(579m)이 마을을 반지처럼 에워싸고, 마을 앞으로는 호수로 변한 금강이 유장하게 흘러간다. 예로부터 마을의 크기는 작아도 풍경만큼은 빼어났던 모양이다. ‘추소 8경’이 따로 전해져 오니 말이다. 이제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원인은 1980년 들어선 대청댐이다. 금강을 허리춤에 두르고 논과 밭을 거느렸던 고리산은 아랫도리가 물에 잠겼다. 그로 인해 주변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절골에 있던 안양사는 터만 남아 더 이상 저녁 종소리(제5경 안양한종)를 울리지 않는다. 초동들이 문필봉에 올라 불어대던 피리 소리(제6경 문필야적)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비단강을 가르는 칼 그런데 제8경이었던 부소담악만은 달랐다. 범상치 않은 풍모야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대청호가 조성되면서 그 자태가 더욱 도드라졌다. 박찬훈 이장은 “예전엔 나무가 많아 병풍 같은 암벽이 잘 보이지 않았다.”며 “물에 잠기고 흙이 떨어져 나가면서 나무가 많이 사라져 암벽이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추소 8경’ 가운데 가장 끝자락을 차지했던 부소담악이 오늘날엔 되레 으뜸가는 볼거리가 된 셈이다. 오래전엔 산이었을 부소담악이지만 이제는 물 위에 뜬 바위 절벽처럼 보인다. 수십m 높이의 크고 작은 절벽들이 비단강을 찢으며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소나무와 갈참나무 등을 머리에 인 절벽은 길이가 700m에 이른다. 의병장으로 유명한 조헌과 우암 송시열 등이 부소담악을 ‘숨은 병풍’(隱屛)이라 불렀던 이유다. 4번 국도 이백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구불구불 호반도로를 따라 5㎞쯤 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온다. 이 나무가 부소담악으로 드는 사실상의 이정표다. 느티나무를 끼고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철조망 둘러친 바위가 눈에 띈다. 일제 강점기 때 텅스텐 광산이었던 곳이다. 박 이장에 따르면 광산은 길이 30m와 50m 짜리 두 개다. 그중 30m짜리는 장마철에도 침수가 되지 않아 6·25전쟁 때 피난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여기서 발길을 재촉하면 곧 추소정이다. 2008년 조성된 2층짜리 정자다. 외관이야 내세울 게 없지만 2층에서 바라보는 풍광만큼은 더없이 빼어나다. 추소정부터 능선길이 급격히 좁아진다. 끝자락까지 갈 수도 있으나 날카롭게 솟아오른 칼바위들과 그 아래 펼쳐진 벼랑이 제법 가슴을 움찔하게 만든다. 그런데 정작 부소담악의 완벽한 자태를 엿볼 수 있는 곳은 따로 있었다. 마을 뒷산이다. 향토사학자 류제구씨는 이 산의 이름을 “양지복호”라고 했다. ‘볕이 든 땅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란 뜻이다. 야트막한 야산의 이름치고 꽤 거창한 편. 이름에 걸맞게 된비알도 여간 심하지 않다. 허벅지에 쥐가 날 정도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산을 오르지 않으면 풍경의 8할을 놓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 9부 능선쯤 오르면 부소담악과 대청호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왜 부소담악이 비단강을 가르는 칼인지 그제야 확연히 알게 된다. ●풍운아의 사랑 이야기 담긴 청풍정 대청호반 길에서 잊지 말고 찾아야 할 곳이 군북면 석호리의 청풍정이다. 금강이 휘감아 도는 야트막한 야산 중턱 끄트머리에서 단아한 자태로 금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다. 청풍정엔 전설 같은 사랑 이야기가 흐른다. 주인공은 한말 개혁파 정치인 김옥균과 기녀 명월이다. 갑신정변(1884)이 3일 천하로 막을 내리면서 쫓기는 몸이 된 김옥균이 명월과 함께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복잡한 정치판에서 벗어나 빼어난 풍광 속에 머물게 된 김옥균은 대의를 접고 무기력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명월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김옥균이 큰 뜻을 펴지 못한다며 자책했고, 고심 끝에 장문의 편지를 남긴 채 금강에 몸을 던지고 만다. 정자 바로 옆 바위엔 ‘명월암’이란 글자가 또렷이 음각돼 있다. 세 칸짜리 정자야 보잘 게 없다. 하지만 정자가 타고 앉은 주변 풍경만큼은 더없이 빼어나다. 무엇보다 찾아가는 길이 장관이다. 금강과 마주한 산자락을 이리저리 둘러 돌아가는데 그 정취가 자못 도도하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대전통영간고속도로→판암나들목→4번 국도 옥천 방향 우회전→군북파출소 앞 좌회전→군도 14호 추소리 방향→4.5㎞ 직진→추소리 순으로 간다. 청풍정은 추소리에서 나와 4번 국도 옥천 방향으로 좌회전, 석호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맛집:금강을 끼고 있어 유명한 민물고기 요리집이 많다. 도리뱅뱅이는 부산식당(732-3478)과 삼일식당(732-3467)이 많이 알려졌다. 모래무지 요리인 마주조림은 금강나루터식당(732-3642), 생선국수는 금강집(732-8083)이 유명하다. 잘 곳:읍내에선 옥천관광호텔(731-2435)이 가장 크다. 춘추민속관(733-4007)은 옥천 구읍의 고택을 사들여 식당 겸 민박을 한다. 글 사진 옥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성동구 새 ‘명물’ 2제] 응봉산 팔각정 주변 장송

    서울 응봉산 꼭대기에 솔향기를 그윽히 내뿜는 장송(長松)이 새로운 명물로 등장했다. 성동구는 정상에서 은은한 솔향기를 맡으며 한강의 아름다운 물빛을 감상할 수 있도록 팔각정 주변에 소나무 6그루를 심었다고 23일 밝혔다. 응봉산은 서울시와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별 보기 좋은 명당’으로 선정한 곳이다. 그만큼 주변 경치가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다소 인공적으로 꾸며졌다는 지적도 적잖게 받는다. 그러다가 소나무를 심으면서 소나무 줄기의 굴곡과 리듬감이 어우러지면서 예스러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평가다. 구는 주민들이 손쉽게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팔각정 진입로 계단을 친환경 목재 계단으로 바꾸고 배수로도 보강했다. 산책로 주변에는 상록수와 꽃나무를 심어 화단을 조성했으며, 휴게소 2곳도 마련했다. 특히 여성 등산객들을 위해 전용 주차장과 비상벨을 설치했다. 구는 친환경 그린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서울숲과 남산을 연결한 총 8.4㎞의 그린 산책로인 ‘서울숲·남산길’을 만들었다. 지난달에는 대현산과 금호산에도 1.1㎞의 산책로를 조성했다. 서울숲·남산길에는 전망 데크와 생태 다리를 만들어 시민들이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5)무주 삼공리 반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5)무주 삼공리 반송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 제 삶에 어울리는 격이 있다. 어떤 생명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고 크게 자라는 데에 제 격이 있고, 어떤 생명은 작아도 독특한 모양새에 제 멋이 들어 있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이 있게 마련이다. 그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어울릴 때에 비로소 우리 사는 이곳이 진정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다. 온 생명의 어울림이 빚어내는 결과다. 나무도 그렇다. 잎이 예쁜 나무가 있는가 하면 꽃이 좋은 나무가 있고, 큰 나무가 있으면 작은 나무도 있다. 봄에는 꽃이 좋은 나무, 여름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 가을 겨울이면 상록성나무의 초록 잎이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낸다. 이 땅의 사철이 어느 때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근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반송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꼽는 소나무도 그렇다. 소나무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소나무로서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제가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육지의 소나무와 바닷가의 곰솔은 비슷한 소나무이지만 서로 다른 멋을 지닌다. 소나무의 한 종류로, 아름다운 수형을 가진 반송(盤松)은 또 다른 멋이 있다. 반송은 뿌리 부분에서부터 여럿으로 갈라진 줄기가 부챗살처럼 활짝 펼쳐지며 자라는 특징을 가졌지만, 잎이나 열매를 포함한 모든 특징은 소나무와 같다. 반송은 크게 자라지 않고, 수형이 아름다워 조경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어 키운다. 대개의 반송은 모양이 조금씩 다르지만 활짝 펼쳐지는 가지가 이뤄내는 생김새가 아름답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우리나라의 반송 가운데에 천연기념물 제291호인 무주 설천면 삼공리 반송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반송이라는 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는 게 반송의 특징이라고는 했지만, 이처럼 많은 가지로 갈라지면서도 반듯하게 자란 경우는 흔치 않다. 낮은 산기슭에 우뚝 선 이 나무는 150년 전에 이 마을에 사는 이주식이라는 사람이 옮겨 심었다고 한다. 나무의 나이가 350살쯤으로 여겨지는 것에 비춰 보면 200살쯤 됐을 때 옮겨 심었다는 이야기다. 적잖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사실 큰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은 이식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고난도의 공사에 속한다. 150년 전이라면 기술과 장비가 흔치 않았을 때다. 심지어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나무가 있는 자리까지 큰 나무를 싣고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을 게다. 좁다란 산길은 지금의 중장비도 오르기에 매우 급한 비탈이기 때문이다. ●만지송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멋 “이주식이라는 어른의 후손이 우리 마을에 살아 계세요. 이종만이라는 분이지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나무를 옮겨 심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진 게 없어요. 마을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전해내려온 것이지요.” 나무 바로 옆에 조성한 가족 묘원을 둘러보러 나온 김철규(57)씨의 이야기다. 나무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목의 첫 번째 집에 사는 김씨는 마을에 나무의 근본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이 나무가 이 자리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모두가 귀하게 여겨온 나무라고 덧붙인다. “가지가 많아서 구천송이라고도 하죠. 저는 어릴 때부터 이 나무와 함께 살아온 셈이에요. 워낙 잘생긴 데다 튼튼하기도 해서 별 걱정이 없었죠. 그런데 옛날에 눈이 많이 내린 적이 있었어요. 큰 가지 위에 눈이 소복이 내려앉으니 나뭇가지가 휘청거리면서 부러지겠더라고요. 그때 마을 어른들이 군에 이야기해서 쇠줄을 쳐서 가지를 보호했어요. 그게 한 삼십 년쯤 전입니다.” 삼공리 반송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건 아무래도 활짝 펼쳐진 가지와 가지 사이를 견고하게 잡아쥔 굵은 쇠줄이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을 옥죄는 쇠창살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옆으로 펼쳐진 가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나뭇가지에 무게가 실리면서부터 바람이 세게 불거나 눈이 쌓이면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무주의 대표적 명승인 구천동으로 들어서는 길목이어서 삼공리 반송은 구천송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또 하늘로 펼쳐진 나뭇가지가 1만 개에 이른다고 해서 만지송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만지송은 모든 반송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지만, 만지송이라는 이름이 삼공리 반송만큼 잘 어울리는 나무도 없지 싶다. 순하게 그린 동그라미 모양으로 솟아오른 나무의 높이는 14m나 된다. 또 여러 개의 줄기로 나눠진 뿌리 근처의 둘레는 7m 가까이 된다. 크게 자라지 않는 반송의 특징에 비춰 봤을 때 이 정도면 매우 큰 나무에 속한다. 우리나라 반송 가운데에는 가장 큰 나무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나무 “이 자리는 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는 곳이에요. 언덕 아래에서 바람이 웅크리고 힘을 모아서 한꺼번에 휘몰아치거든요. 심할 때에는 그냥 서 있기도 힘든 자리지요. 이런 자리에서 수백 년 동안 자랐다는 것만도 놀라운 일 아닌가요? 게다가 이만큼 건강하고 멋들어지게 자랐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주변에 바람을 막아줄 지형지물이 전무한 까닭에 나무는 언제나 불어오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한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나무는 지난 350년 세월을 잘 버텨왔다. 이제 삼공리 반송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다고 김씨는 강조한다. 그러나 더 고마운 건, 한 그루의 나무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부러질까 저어하며 지켜낸 삼공리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다. 바람 부는 언덕 위에 나무는 홀로 서 있지만 이제는 큰 사랑을 받는 나무가 됐다. 나무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며 빚어낸 넉넉하고도 아름다운 결과다. 글 사진 무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31. 통영대전고속국도의 무주나들목으로 나가서 장수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7㎞ 남짓 가면 덕유산국립공원과 장수 방면으로 가는 길이 나눠지는 사산삼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덕유산국립공원 가는 길로 들어서서 14㎞쯤 가면 왼편으로 구천초등학교가 나온다. 1㎞쯤 더 가면 길가에서 삼공리 반송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에서 왼편의 비좁은 마을 길로 들어서서 길 끝까지 오르면 나무가 있다. 나무 앞까지 자동차로 접근할 수는 있지만, 경사가 급하고 길이 좁아서, 초보운전자는 조심해야 한다.
  • [연평도 포격 1주년] 北 방사포탄 170여발 상흔 남은 연평부대는 지금…

    [연평도 포격 1주년] 北 방사포탄 170여발 상흔 남은 연평부대는 지금…

    포성도, 포연도 멈춘 연평도 상공 헬기에서 내려다본 섬 전경은 그저 한가롭게만 보였다. 바닷물이 물러난 갯벌 위에는 지난밤 꽃게잡이에 나섰을 어선 몇 척이 기우뚱하게 걸터 앉아 모자란 잠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헬기가 고도를 낮출수록 눈앞에 들어오는 마을과 부대 곳곳의 풍경은 한가롭다기보다는 황량해 보였다. 1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쏟아진 북한의 방사포탄 170여발이 남긴 상흔을 지우기 위해 민·군을 가릴 것 없이 공사장으로 둔갑한 연평도는 메마른 먼지가 포연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난 15일 서울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싣고 떠난 CH47 치누크 헬기가 50여분 간의 짧은 비행 끝에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도착했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충격은 가시지 않은 듯했다. 헬기가 내려앉은 연평부대의 초입 건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상상조차 못했던 전쟁의 위압감이 눈에서 머리로, 가슴으로 차올랐다. 헬기장에서 불과 50m 아래쪽, 지금은 안보전시관으로 쓰이는 서해 최전방 연평부대 내 이발소는 1년 전 북한 포격 도발의 상흔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말끔했던 벽은 파편으로 누더기가 됐고 122㎜ 방사포탄이 관통한 천장에는 지름이 1.5m쯤 되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건물의 뼈대를 이뤘던 철근들만 앙상하게 드러나 녹슬어 있었다. 또 건물 안 구석 한편의 유리 전시관에 진열된 방사포탄 탄두에는 포의 구경을 뜻하는 ‘122’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지난해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어뢰 몸통에 쓰여 있던 숫자 ‘1번’이 순간 머릿속에서 오버랩됐다. 연평부대와 마을을 잇는 길가 한편의 소나무에는 해병대 모표가 꽂혀져 있었다. 그날 휴가를 받아 부대를 떠나던 고(故) 서정우 하사가 포격당하고 있는 부대 모습을 보고는 발길을 되돌려 부대로 뛰어들어 오다가 적의 포탄에 맞아 숨을 거두는 순간 서 하사의 정모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해병대는 이런 쓰라린 흔적들을 고스란히 남겨 두기로 했다. 그날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기기 위해서다. 기자단과 동행한 해병대 김정수 대위는 “당시 점점 다가오는 공룡 발자국 소리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해병대사령부로 자리를 옮긴 김 대위는 당시 반격에 나섰던 K9 자주포 부대인 포 7중대 중대장이었다. 그와 함께 7중대를 다시 찾았다. 북한군 포문이 첫 번째 목표로 겨눴던 포 진지 주변은 화염에 그을린 얼룩과 포탄 자국, 포탄에서 튕겨져 나온 피탄들이 박힌 흔적들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해병대원들의 눈빛만은 더 매서워졌다. 포탄이 빗발치는 순간에도 움츠리지 않고 전열을 가다듬어 13분 만에 반격에 나섰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누명(?)을 썼던 그들은 속 모를 비난을 가슴에 삭이는 대신 복수를 다짐하며 포술을 더 갈고닦았다. 기자들 앞에서도 보란 듯 시연해 보였다. “전투 배치”라는 지휘관의 구령에 복명복창이 끝나기도 전에 포상 안에 웅크리고 있던 K9 자주포가 ‘부르릉’ 울어대더니 이윽고 육중한 포체가 포상을 빠져나왔다. 곧이어 자주포 조종석 앞 모니터에 전달된 가상 적의 도발 원점을 향해 ‘위이잉’ 하며 포신이 맞춰지는가 싶더니만 곧바로 포 안 쪽에서 “전투 배치 끝!”이란 함성이 짧게 울려 퍼졌다. 지금도 연평 부대 곳곳에는 ‘11월 23일,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는 문구가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연평 해병대원들은 한결같이 “한 번 더 도발해 온다면 도발 의지까지 꺾어 놓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연평도 포격 1주년] 소나무에 새겨진 ‘해병 투혼’

    [연평도 포격 1주년] 소나무에 새겨진 ‘해병 투혼’

    1년 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포탄들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북한 황해도 개머리 기지에서 날아오른 방사포탄들이었다. 집중 포화를 맞은 연평부대에서 피어오르는 화염과 포연은 마을 앞 부둣가에서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제대를 한 달 앞두고 12박13일간의 마지막 휴가길에 올라 인천으로 떠날 여객선을 기다리던 서정우(당시 22세) 병장은 멀리 부대에서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에 넋을 잃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부대로 달려갔다. 어엿한 청년이 된 아들의 귀향을 바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도 잠시 뒤로 미뤄놨다. 반격에 나설 연평부대 화기중대의 81㎜ 박격포 사수라는 임무가 먼저 떠올랐다. 화염과 포연 속 사지(死地)에 남아 있을 동료들을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부두에서 출발한 버스가 부대 앞에 도착하자마자 튕기듯 뛰어내려 무작정 부대로 이어진 언덕길을 내달려 올랐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동료들보다 한발 앞서 달리던 서 병장의 바로 앞에서 적의 122㎜ 방사포탄이 불을 뿜었다. 북한이 2차 포격에 나선 오후 3시 15분쯤 서 병장은 그렇게 흩어지는 화염과 함께 스러져 갔다. 이튿날 서 병장이 산화한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가 소나무에서 뭔가 반짝이는 물체를 동료 해병들이 발견했다. 서 병장의 정모에 붙어 있던 해병대 모표였다. 포격 당시의 충격에 날아간 모표는 소나무 줄기 한가운데에 또렷하고 깊게 박혀 있었다. 억울하고 분했나 보다. 그래서 포격 현장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려 했나 보다. 서 병장의 모표는 지금 ‘해병의 투혼’이 돼 있다. 해병대는 소나무와 이 모표를 그대로 보존, 영원히 서 병장을 기리기로 했다. 정부는 서 병장을 하사로 1계급 추서하고,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Weekend inside] ‘천덕꾸러기’ 혹은 ‘지역 자랑’ 지자체 상징목 신세 하늘과 땅 차이

    [Weekend inside] ‘천덕꾸러기’ 혹은 ‘지역 자랑’ 지자체 상징목 신세 하늘과 땅 차이

    ‘부산에 가면 동백나무가 즐비할까. 천안에는 능수버들이 늘 낭창낭창 늘어져 있을까.’ 지자체들의 주요 도로에는 시목(市木)·군목(郡木)이라는 이름의 상징나무들이 지천일 것 같지만 막상 보기란 쉽지 않다. 물론 ‘○○고을’이란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상징나무를 많이 심어 자치단체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곳도 더러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18일 충남 천안시에 따르면 능수버들 가로수는 11월 현재 648그루로 전체 가로수 4만 498그루의 2%에 그치고 있다.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제 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으로 시작하는 민요 ‘흥타령’이 오랜 기간 널리 불리며 ‘천안 하면 능수버들’이었다. 시는 이 나무를 시목으로 정해 지역적 상징성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현재 천안의 주요 가로수 수종은 은행나무 9939그루(25%), 이팝나무 7547그루(19%), 벚나무 6217그루(15%) 등이다. 다른 지역과 별 차이가 없다. 산림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의 가로수가 534만 9000여 그루이며, 벚나무가 가장 많고 은행나무, 느티나무, 양버즘나무 순이었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천안시 관계자는 “봄이 오면 능수버들 꽃가루가 날려 알레르기가 생긴다는 시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경미화원들도 “진딧물이 많이 끼고, 늦가을 낙엽은 길바닥에 납작 달라붙어 청소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천안시는 직영 양묘장에서 꽃가루가 덜 날리는 능수버들 수백 그루를 재배하고 있지만 고민만 하고 있다. 부산시는 시목인 동백나무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도 못 하고 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노래 덕에 ‘부산 하면 동백꽃’이었다. 그러나 정작 가로수는 왕벚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이 주종이다. 박상문 부산시 주무관은 “지구온난화로 동백나무 생육 환경이 더 좋아졌지만 나무 폭이 넓어 운전자 시야를 가린다는 민원 때문에 가로 화단 등에만 심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시는 온난화로 시목인 전나무를 가로수로 활용하는 게 어려워졌다. 대구는 기후가 더운 탓에 지금도 전나무 가로수는 거의 없고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이진충 시 주무관은 “강직, 영원, 기상을 표현하려고 1972년 전나무를 시목으로 정했을 뿐 굳이 실제 식재와 연관시킬 필요가 있느냐.”면서 “시민들도 시목이 어떤 나무인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백합나무가 시목이지만 전체 가로수 16만 9620그루 가운데 백합나무는 4433그루뿐이다. 대전시는 1999년 시목을 목백합에서 ‘선비정신’을 기린다는 소나무로 바꿨지만 전체 가로수 12만 7600그루 중 소나무는 991그루로 1%도 안 된다. 그나마 전임 시장 때는 교차로 등에 소나무를 많이 심었지만 시장이 바뀐 뒤에는 한 그루도 가로수로 식재되지 않았다. 광주시는 시목인 은행나무가 가로수의 33%에 이르지만 “가을에 열매 악취가 심하다.”며 지난해부터는 단 한 그루도 심지 않고 있다. 충북은 사정이 다르다. 충주시는 1997년 충주 초입인 달천동 인근 5㎞ 구간에 850그루의 사과나무를, 보은군은 2007년 탄부면 상장리~임한리 사이 국도 2.2㎞ 구간에 1700여 그루의 대추나무를 가로수로 각각 심었다. 영동군은 전체 가로수 2만 660그루 중 감나무가 1만 2403그루로 60%를 차지한다. 1970년대부터 주민들이 심기 시작한 뒤 군에서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섰다. 2000년 ‘전국 아름다운 거리숲’ 대상을 받기도 했다. 정구식 영동군 산림경영과 주무관은 “감나무 가로수가 감고을이란 인식을 높여 2007년 ‘감산업특구’로 지정되는 데 한몫했다.”면서 “지역색을 분명히 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자랑했다. 최정우 목원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역에 맞는 나무를 상징목으로 정해 지역 축제, 특산물 판매와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전국종합 sky@seoul.co.kr
  • “한·중·일, 절대강자 없는 가위·바위·보 관계로”

    “한·중·일, 절대강자 없는 가위·바위·보 관계로”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 가위, 바위, 보처럼 삼자가 우열을 가릴 수 없고 서로 보완적인 상태로 세 나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역설했다. 이 이사장은 16일 베이징 주중 한국문화원에서 한국교민과 중국인 등 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에서 “한 국가가 패권을 갖는 과거의 고정된 피라미드식 위계 질서가 아닌 순환하는 동태적 협력 상태로 한·중·일 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 지역공동체 형성 등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위, 바위, 보의 순환의 질서, 즉 바위는 가위를 이기지만 보에는 지는, 그러면서 보는 가위에는 지는 상호 보완적인, 절대강자가 없는 그런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한 공존공영 패러다임 열쇠 이 이사장은 한·중·일 관계가 과거와 같은 패권 추구를 넘어서 보다 평등한 공존공영의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열쇠 중 하나는 한국의 균형자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역할이라면서 좀더 강력하고 활력있는 한반도 역할의 중요성을 주문했다. 대륙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한국이라는 반도세력의 균형적인 역할은 중·일 간 대립과 경쟁을 누그러뜨리고 삼국간 협력을 강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쟁 의식이 강한 일본과 중국은 상대방에 주도권을 주는 일을 꺼리지만 한국이 나서서 공통의 일을 주도적으로 맡아 한다면 안심할 것이다. 중·일이 패권 추구를 지양하고, 초국가 형태의 지역공동체 건설이라는 시대적 조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도 한국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 이 지역에 강력한 두 국가만 있었다면 협력 속도가 느리겠지만, 한국이란 존재로 인해 가위-바위-보 같은 관계의 순환이 가능하다. 유럽연합의 수도가 프랑스 파리나 독일의 베를린이 아닌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것이나 한·중·일 협력센터가 서울에 만들어진 것은 그런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중·일 과거 잃어버린 기억 상실자 이 이사장은 “문화적 유산과 가치에 있어서 한·중·일은 모두 과거를 잃어버린 기억상실자가 된 상태”라면서 “함께 교류하며 건설적인 관계를 만들었던 문화적 기억을 역사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공감과 나눔을 확대 재생산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 나라는 매·난·국·죽과 소나무라는 문화적 상징의 의미를 이해하는 문화코드와 한자, 도자기, 유교문화 등 문화적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에 이를 재해석하고 발전시켜 나갈 때 일국 패권주의 가위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자, 유교 등 한·중·일의 문화 유산을 강조할 때 중국의 문화우월주의를 부채질하고, 중국의 소유권 주장을 강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한자와 유교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풍부한 내용을 넣은 것은 다름아닌 아시아의 문화변전소 역할을 했던 한국과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 나라 공통의 문화를 기반으로 생명 공동체 모델을 찾고 네트워킹을 만들어 나갈 때 세계 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평화로운 지역공동체와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 교류로 과거 상처 치유해야 중국 및 일본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한류에 대한 반감 또는 배척 움직임과 관련한 입장에 대해 이 이사장은 “한류가 인기가 있는 것은 감동이 있고, 공감이 있기 때문인데 이를 경계하고 시기하는 좁은 민족주의적 입장도 있다. 또 문화와 역사를 둘러싼 공격의 배후에는 독단적인 자국중심주의적인 자부심과 과거의 상처로 인한 굴욕감이란 이중성이 교차하며 도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화적 교류와 대화를 통해 역사적 상처와 오해를 치유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일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처방했다. 중국의 부상과 강대국으로의 발돋움이 기회냐 혹은 위기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중국이란 존재는 이제 피하거나 외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반일, 반중, 친중을 뛰어넘어 어떻게 공존하고 함께 번영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나 시장의 쟁탈전을 넘어선 문화적 공감과 감동으로 한·중·일의 관계와 역사를 끌고 가는 모멘텀을 구축하고 발전시키자고 역설했다. 글 사진 베이징 이석우편집위원 jun88@seoul.co.kr
  • 대법, 5공 공안조작 ‘오송회’ 피해자 국가배상액 150억 확정

    제5공화국 시절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 중 하나인 ‘오송회’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국가 배상액이 150억원으로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이 사건 피해자인 고(故) 이광웅씨의 부인 김문자씨 등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150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를 비롯한 이 사건 피해자와 가족은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1심에서는 “이씨 등을 영장 없이 강제연행해 불법 구금하고 갖가지 고문과 회유·협박 등 불법 행위를 자행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는 위자료와 이자로 약 20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불법 행위가 일어난 이후 오랜 기간 통화가치에 변동이 생긴 만큼 이자는 재심 재판 변론 종결일 이후부터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배상액을 150억원 정도로 낮췄다. 다섯(五)명의 교사가 소나무(松) 아래에 모였다는 의미를 가진 오송회는 1982년 군산 제일고 전·현직 교사들이 4·19 기념 행사를 치른 뒤 시국토론을 갖고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낭송했다는 이유로 공안 당국에 의해 이적단체로 간주됐다. 당시 전주지법은 3명에게 실형 선고, 6명에게 선고 유예했으나 광주고법은 9명 모두에게 징역 1~7년의 실형을 내렸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2071년이후 남한 아열대 기후로” 환경과학원 조사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2071년 이후에는 남한 전역이 아열대 기후로 바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목적으로 지난해 실시한 ‘국가 장기 생태연구 사업’ 결과를 9일 발표했다. 환경과학원은 한반도 생태계 변화 체계와 생물 다양성 보전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2004년부터 19곳의 연구 지역에서 육상·담수·연안·동물 등 4개 분야의 생태계 변화를 모니터링해 오고 있다. 연구 결과 2071년 이후 백두대간의 일부 고산지대를 제외한 남한 전역이 아열대 기후로 바뀔 것으로 전망됐다. 아열대 기후의 연평균 기온은 16∼18도이고 2011∼2040년에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일부가, 2041∼2070년에는 서울과 대구, 서해안 일부까지 포함될 것으로 분석됐다. 자연 생태계는 이미 기후변화 등의 요인으로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리산 남서 지역인 전남 구례군 토지면(해발 약 400m)의 숲을 2005∼2010년 모니터링한 결과, 온대수종인 소나무의 밀도가 18% 감소했다. 하지만 난대 수종인 비목나무와 때죽나무는 각각 460%와 150% 증가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3) 경북 상주시 상현리 반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3) 경북 상주시 상현리 반송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1904~1987)은 신화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짚어보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도덕적 질서를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하는 사회적인 기능을 가진다.”고 했다. 현재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깨닫고 일관된 우주 질서를 회복하는 기능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신화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사람이 당장에 실현해야 할 사람살이의 가치를 담고 인구에 회자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신화를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이라고 하는 근거다. 오래된 나무들에 어김없이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도 결국은 지금 우리가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담은 이야기라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크고 오래된 나무의 줄기 안에 신화 속의 동물인 이무기가 산다는 식의 흔하디흔한 이야기는 더 이상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큰 나무의 가지를 꺾는다거나 베어내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역시 성장과 발전 위주의 산업사회에서는 우스개조차 되지 않는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반송에 얽혀 전해오는 전설은 이 같은 전설들과 조금 다르다. 물론 500살 된 이 나무에도 어김없이 이무기는 산다. 뿐만 아니라 나무 줄기 속의 이무기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사전에 큰 소리로 울음소리를 낸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흉사에 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는 고마운 이무기다. 짚어보면 이 역시 흔한 전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호들갑스러워질 까닭은 없다. ●줄기속엔 전설 속 짐승 이무기가 그러나 또 하나의 별난 전설이 있다. 이 나무에서 잎을 따는 것은 둘째 치고, 저절로 땅에 떨어진 솔잎을 주워 가기만 해도 천벌을 받는다는 전설이다. 그것도 당대에 그치지 않고, 삼대에 걸쳐 이어지는 끔찍한 벌이라고 한다. 물론 천벌의 구체적 내용은 없다. 그저 공포심을 일으키는 엄포 정도이지만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나무 곁에서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떨어진 솔잎이 거름 되는 자연의 이치 물론 소나무의 한 종류인 반송은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수다. 하지만 한번 난 잎이 평생 달려 있는 건 아니다. 낙엽성 나무처럼 한꺼번에 잎을 떨구지는 않아도 오래된 잎은 하나 둘 떨어지고 새잎이 난다. 수명 없는 생명체는 없는 게 자연의 이치이고, 솔잎도 그 이치에서 예외일 수 없다. 땅에 떨어진 솔잎은 나무 뿌리 근처에 모여 잘 썩은 뒤에 나무의 거름이 된다. 쉬 썩지 않는 특징 때문에 솔잎이 썩으려면 시간이야 걸리지만, 나무에게는 더없이 좋은 거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름이 되기 전에 일쑤 솔잎을 주워 가곤 한다. 불쏘시개뿐 아니라 송편을 찔 때도 요긴해서다. 사람에게 솔잎이 쓰이면 쓰일수록 나무는 스스로 지어낸 양분을 잃는 셈이다. 요즘이야 다른 종류의 질 좋은 거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지만, 자연 상태에서 나무가 스스로 자라야 했던 옛 시절에라면 언감생심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안타까워한 지혜로운 한 어른이 나무를 오랫동안 지켜내기 위해 솔잎을 보존하자고 생각했을 게다. 따로 거름을 주지는 못할망정 솔잎이 온전히 썩어 거름이 되는 것만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돌아보면 이는 자연의 순환 원리를 잘 반영한 매우 슬기로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사나운 짐승인 이무기가 산다는 이야기도 솔잎을 주워 가면 천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모두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 지켜내기 위한 지극한 노력의 결과이지 싶다. “그냥 보기에 좋잖아. 마을 사람들이 애지중지 지키는 좋은 나무이기는 한데, 그런 이야기는 잘 모르겠는걸. 언제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저이는 알려나?” 상현리 반송 바로 아래 첫 집에 사는 팔순의 동관댁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수십년을 살았지만 나무의 전설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거듭되는 질문이 성가셔진 할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에 접어드는 다른 노인에게 대답의 순서를 넘기고 만다. “나도 모르겠는데, 그게 어디서 나온 이야기지? 옛날에야 그런 전설이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 잊혀진 거지. 이무기가 산다는 이야기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솔잎을 주워 가지 말라는 전설은 가물가물하네.” 느릿느릿 몰고 오던 자전거를 세우고, 동관댁 할머니 곁에 주저앉은 신인재(71) 노인 역시 전설의 근원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우리 나무를 지키기 위한 옛 사람들의 지혜로운 이야기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솔잎을 주워 가면 삼대에 이어 천벌을 받는다는 별난 전설은 상현리 반송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슬기로운 이야기다. 그러나 곁에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이제는 잊힌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불과 30년 전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1982년 당시의 기록에만 화석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전설은 잊혀져도 지혜는 솎아내 지켜야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단오 때에 그네를 매고 놀던 것도 꽤 오래된 일이야. 한 20년 전까지 하고 요즘은 안 하지. 좋은 나무이니, 그냥 바라볼 뿐이지. 굳이 전설을 이야기할 겨를이 있나?” 한 그루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옛 사람들의 지혜로운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전설은 사라진다 해도 전설과 함께 나무를 지키려 한 옛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지혜만큼은 오래오래 지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첫걸음임에 틀림없다. 캠벨의 일갈처럼 ‘신화는 지금 우리가 실현해야 할 삶의 가치’인 까닭이다. 글 사진 상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50-1. 당진상주고속국도의 화서나들목에서 좌회전하여 화서면사무소 방면으로 간다. 곧바로 나오는 화령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학교 울타리를 끼고 우회전하여 250m 간 뒤에 우회전하면 하현마을이다. 여기에서 300m 남짓 더 들어가면 상현1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다시 400m쯤 더 들어가면 길 끝의 나지막한 언덕 위로 나무가 보인다. 나무가 서 있는 언덕 앞에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 [사건Inside](7) 피해자·피의자·증인 모두 시신으로…‘거창 40대 여성 실종사건’

    [사건Inside](7) 피해자·피의자·증인 모두 시신으로…‘거창 40대 여성 실종사건’

    ‘시체는 경찰이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 있다.’ 경남 거창 40대 여성 살해 사건의 범인 김모(63)씨. 그는 잠적하기 전 아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40일 가까이 행방이 묘연했던 피해여성 이모(46)씨의 시신은 김씨의 말대로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시신이 발견되기 이틀 전 김씨는 범행을 자백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결국 범행의 전모는 끝내 밝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올 가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3구의 혼백 없는 시신만을 남긴 채 그렇게 미스터리로 남고 말았다.   ●실종된 여사장…유력 용의자의 집 포클레인엔 “이 사장, 급하게 돈을 써야 하는데 당장 가진 게 없네. 나 4000만원만 빌려 주소.” “내도 당장은 돈이 없는데, 한번 알아는 보겠심더.” 거창군 고제면에 사는 이씨가 옆동네에 사는 김씨를 만나러 간다고 집을 나선 것은 지난 9월 21일. 두 사람은 10여년 전부터 사업 관계로 알아온 사이었다. 같은 자영업자 처지였던지라 급전이 필요한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씨는 자기 아버지에게서 돈을 빌려 김씨에게 건넸다. 하지만 약속했던 날짜가 지나도 김씨는 돈을 갚지 않았다. 무수한 빚 독촉에 지친 이씨는 그날 상대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짓겠다며 집을 떠났다. 그것이 가족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이씨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다음날 거창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여자 혼자 빚을 받으러 간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연락마저 끊기자 혹시 김씨가 나쁜 마음을 먹은 게 아닌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도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김씨의 집에 간 것은 확실했다. “아 글쎄, 내랑 전화한 것은 맞지만도 만나지는 못했다카이.” 김씨는 예상대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정황상 그의 범행이 유력했지만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의 실마리는 뜻밖의 장소에서 나왔다. 김씨를 주시하던 경찰이 그가 운영하는 민박집의 포클레인 삽에서 페인트 자국을 발견한 것.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이 페인트는 자동차 도색에 사용되는 페인트로 실종된 이씨의 산타페 차량과 같은 색깔임이 밝혀졌다. 경찰은 김씨의 집 주변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결국 사건 발생 후 한달 만인 지난달 21일 김씨 집 마당 앞 언덕 5m 깊이의 땅속에서 이씨의 차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곳에 이씨는 없었다.   ●유력한 증인의 투신자살…난관에 봉착한 수사 김씨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지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의 압박이 거세지자 불안감을 느낀 김씨가 차량이 발견되기 하루 전인 20일 잠적해 버렸다. 김씨는 가족들에게 “대구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자취를 감췄다. 이런 가운데 김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인이었던 김씨의 아들(32)이 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아들 김씨는 차가 발견된지 닷새 만인 25일 새벽 1시쯤 경찰에 자진해서 나왔다. 그는 아버지의 범행을 알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가 저에게 ‘이씨가 이미 죽었고 시신은 경찰이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가 종적을 감추기 직전까지 계속 자수하라고 권유했어요.” 하지만 아들 역시 이씨의 소재나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은 모르는 듯 했다. 경찰 조사를 마친 아들은 바로 그날 오전 7시쯤 거창읍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경찰에 출두한 지 6시간 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사건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유서나 메모를 남기지 않았다. 사건은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른 가족들 역시 알리바이가 확인되는 등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거기다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가족들까지 공범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유가족들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다.   ●용의자마저 자살…시신은 대체 어디에 사건 발생 37일 만인 지난달 27일 용의자 김씨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시신은 거창군 위천면에 있는 자신의 민박집에서 발견됐다. 이틀 전 자살한 아들 김씨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친구가 이날 오전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집에 들렀다가 시신을 발견했다. 김씨는 오른쪽 손목에 자상을 입은채 화장실 입구에 쓰러져 있었다. 경찰은 김씨가 스스로 손목을 그어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김씨는 자신이 이씨를 살해했음을 자백하는 짧은 유서를 남겼다. ‘경찰서장님 죄송합니다. 고인에게 내 목숨 끊어 속죄합니다. 순간적인 격분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저의 단독범행입니다. 저의 목숨으로 용서를 바라겠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끝까지 시신의 행방에 대해서는 털어놓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이란 말 뿐이었다. 이게 무슨 수수께끼 같은 상황인가. 경찰은 전·의경을 포함해 800명의 인력을 동원, 인근 수색에 나섰다.   ●시신은 찾았지만…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어, 땅이 왜 이러지. 혹시 여기 시신이 있나.” 사건 발생 39일만인 29일 오후 3시 40분쯤. 시신 수색을 벌이던 자율방범대원이 언덕을 오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언덕 중턱에 있는 소나무를 잡는 순간 나무가 무게를 못 이기고 쑥 빠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건장한 남성이 체중을 실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뿌리가 뽑힐리는 만무한 일. 결국 그 나무 아래에 이씨의 시신이 나타났다. 용의자 김씨가 자살한 펜션에서 직선거리로 8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시신은 가로 70㎝, 세로 1m 20㎝, 깊이 65㎝의 구덩이에 웅크린 채 묻혀 있었다. 이미 부분적으로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던 이씨의 시신에서는 목을 조른 듯한 액흔(扼痕)이 발견됐다. 김씨가 말한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은 결국 펜션 옆 야산 소나무 밑이었다. 나무에 가려 대대적으로 수색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김씨의 예상은 결과적으로 빗나갔다. 경찰은 김씨 아들의 진술과 유서내용 등을 바탕으로 이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장본인으로 김씨를 지목하고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피의자 김씨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보낼 예정이다. 피해자 이씨와 피의자 김씨, 증인인 아들 김씨까지 모두 사망하면서 사건의 전모는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김씨의 범행이 우발적이었던 것인지, 계획적이었던 것인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는지 등은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차량과 시신을 번거롭게 따로 묻은 이유도 의문점으로 남았다. 특히 차량은 중장비까지 동원해 5m 깊이로 숨겼으면서 왜 시신은 고작 65㎝ 밖에 안되는 깊이로 묻었는지 등도 밝혀지기 어렵게 됐다. 경찰 관계자 역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시신이 차 안에 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두번으로 나눠 작업을 했는지, 이 사건에서 가장 희한한 대목”이라고 했다. 아들 김씨가 공범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상황에서 김씨가 다른 인물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 아들에게 범행을 털어놓은 이유 등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 역시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을 주시하고는 있지만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의심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피해자와 피의자만 확정된 상태에서 종결된 이번 사건은 명확한 인과관계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로 끝나게 됐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2)상주 판곡리 낙화담 소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2)상주 판곡리 낙화담 소나무

    사람보다 오래 사는 나무는 사람살이의 오랜 내력을 담고 살아남는다. 그러나 나무 스스로 사람살이의 내력을 드러내 이야기하는 법은 없다. 나무 안에 담긴 사람의 역사는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지켜낼 수도, 알아볼 수도 없다. 나무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다면, 나무는 그저 평범한 자연물에 불과하다. 하나의 자연물이 사람의 정신과 문화를 상징하는 의미를 갖게 되려면 반드시 그를 지키는 사람들의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무의 줄기에 새겨진 사람살이의 속내는 한낱 먼지 되어 사라지고 만다. 나무에 새겨진 삶의 정신과 가치를 지켜내고, 살리는 것은 온전히 지금 사람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한스러운 역사 지닌 ‘낙화담’ 경북 상주시 화동면의 청도김씨세거지인 판곡리에 들어서면, 먼저 마을의 내력을 상징하는 재실을 만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김준신 의사의 제단비가 있는 재실이다. 청도김씨 출신의 의병장인 김준신 의사는 이 마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일군 선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재실 곁으로 너른 들판이 내다보이는 자리에는 앙증맞은 연못이 있다. 연못 가운데에는 못 전체를 가득 채울 듯한 인공 섬이 있고, 그 섬 안에 아름다운 수형의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연못과 소나무가 모두 아늑한 자연마을에 잘 어울려 가을 운치가 살아 있는 풍광이다. 이곳에 연못이 지어진 건 조선 건국 무렵이다. 당시 황간 지역에서 현감을 지내던 김구정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새 왕조를 세우자, 그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은거할 곳을 찾아나섰다. 그의 눈에 들어온 터가 바로 이곳 화동면 판곡리였다. 숲이 우거지고 골이 깊어서, 세상살이와 거리를 두고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땅은 유난히 불의 기운인 화기(火氣)가 드셌다. 김구정은 그래서 화기를 누르기 위해 마을 중심에 바로 이 연못을 팠다. 지금은 고작 330㎡ 규모지만, 처음에는 무려 5000㎡를 넘었다고 한다. 낙화담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들의 한스러운 내력이 보태지며 붙었다. 당시 전투에서 승승장구한 김준신 의사가 순직한 뒤의 일이다. 복수를 위해 찾아온 왜병을 피하려던 아낙들은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차례차례 연못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지금 연못의 규모로는 짐작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주변 풍광을 압도할 만큼 큰 연못이었음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두 번의 죽을 고비 넘기고 살아나 옛일을 또렷이 바라보았을 낙화담 소나무는 여전히 매우 싱그러운 자태로 600년의 세월을 증거하고 서 있다. 아담한 크기의 규모로 작아진 연못에 잘 어울리는 소나무는 김구정이 연못을 완공한 뒤에 손수 심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손쉽게 건너갈 수 있는 연못 가장자리에 인공 섬을 쌓고, 그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풍광 좋은 연못에 솔향기 가득 품은 자연 정자를 지은 셈이다. 그때가 조선 건국 무렵이니 나무의 나이는 600살을 넘었다. “저 나무가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 1964년에는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어. 내가 젊어서 고향을 떠나 있던 사이에 동네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그네를 걸고 놀기도 했지만 보살필 줄을 몰랐던 거야. 나무가 반절 가까이 죽었더라고.” 청도김씨 대종중 김재궁 부회장의 이야기다. 조사 끝에 그는 곁에 있는 방앗간에서 흘러나와 연못으로 스며든 기름이 원인임을 알아냈다. 인공섬에까지 기름기가 차올라 나무가 숨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던 것이다. 김 부회장은 대부분의 흙을 새 흙으로 교체하는 어려운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계도 없이 손수 삽과 지게를 짊어지고 해낸 수고로운 일이었다. 당시 전문가들도 나무의 생존 가능성이 50% 미만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의 지긋한 노력으로 나무는 죽음의 고비를 이겨냈다. 또 한번의 고비는 1992년에 찾아왔다. 소나무에 해충이 들면서 시들해진 것이다. 이때에도 김 부회장은 나라 안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나무병원의 전문가들을 불러들여 자문을 얻고 나무를 치료해 살려낼 수 있었다. “저 나무가 어떤 나무인데 그냥 죽이겠어. 우리 조상께서 손수 심으신 나무이고, 또 이 연못에 우리가 살아온 고난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는데 그걸 지키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고 살 수 있겠어.” ●나무 사랑은 곧 조상과 나라 사랑 김 부회장의 낙화담 소나무에 대한 사랑은 단지 한 그루의 소나무에 대한 사랑만은 아니다. 이는 필경 나무를 심은 조상과 이 땅의 역사에 대한 지극한 애정 그리고 자존심임에 틀림없다. 낙화담 소나무는 물속의 험난한 생육환경에서도 13m의 높이로 자랐다. 가슴 높이 둘레도 2m를 넘는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도 나무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여전히 싱그럽다. 김 부회장의 지극정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마침내 나무는 지난 2004년에 경상북도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됐다. 옛것을 지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러져가는 옛것을 지키기 위해서 가진 것을 선선히 내놓는 헌신적인 노력만이 우리의 오래된 가치와 정신을 지켜낼 수 있다. 아늑한 자연마을에서 옛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향기를 머금고 낙화담 소나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앞에 펼쳐질 1000년의 역사를 다시 쓸 것이다. 글 사진 상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200살 넘은 소나무 구합니다”

    “200살 넘은 소나무 구합니다”

    울산시가 태화루 복원에 사용할 국산 소나무를 애타게 찾고 찾고 있다. 울산 중구 태화동 옛 로얄예식장 일대 1만 403㎡ 부지에 복원될 태화루는 조선시대 영남루,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로 꼽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됐다. 시는 소실된 태화루를 오는 2014년 3월까지 복원키로 하고 현재 부지 조성작업을 완료했다. 시는 지금까지 400여억원을 들여 부지 매입 등을 완료한 데 이어 내년부터 누각, 행랑채, 대문채 등 목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금강송을 비롯한 국산 소나무를 구하지 못해 난관에 봉착했다. 태화루 복원에 필요한 소나무는 누각 580그루 등 모두 1252그루다. 구입비만 약 13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면 7칸, 측면 4칸의 주심포식 누각 기둥과 대들보로 사용할 굵은 소나무 48그루 확보가 가장 큰 문제다. 기둥에 들어갈 소나무는 지름이 54∼60㎝, 대들보는 69㎝가 돼야 한다. 이런 소나무는 수령 200년 이상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시와 시공사는 최근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신응수 대목장을 태화루 복원사업의 도편수로 참여시켜 소나무 수급을 맡겼다. 신 대목장은 현재 경북 울진, 강원도 강릉과 삼척 등지의 사유림과 목재상을 대상으로 수소문에 나섰다. 연내 소나무를 구입해야 올겨울과 내년 봄 건조 과정을 거쳐 가공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캐나다 등 북미산 소나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서울 문정동 폐철도부지 공원으로

    1983년 철도부지 지정 뒤 방치됐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 폐철도부지가 28년 만에 녹색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서울시는 이달부터 14억원을 들여 문정역에서 제일은행 앞까지 200m 구간, 5696㎡에 공원조성 공사를 벌여 내년 2월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1993년 철도부지 지정계획이 취소된 지역으로, 2004년부터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200m 구간이 완공되면 폭 30m, 길이 1.7㎞, 면적 4만 9972㎡의 문정공원 조성공사가 모두 끝난다. 마지막 구간 200m에는 분수, 잔디마당, 소나무숲 등이 조성돼 지역 주민은 문정역까지 울창한 숲길을 걸어 출퇴근할 수 있게 된다. 송파대로와 인접한 지하철 8호선 문정역 앞 진입광장은 수경 및 휴게시설 등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민다. 진입광장에는 약속장소나 지역 상징물이 될 분수대와 소통의 장소인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소나무와 배롱나무, 은행나무 등이 터널을 이루는 그린웨이가 뚫린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은은한 빛 감도는 살결 ‘소나무의 유혹’

    은은한 빛 감도는 살결 ‘소나무의 유혹’

    소나무만 집중적으로 그려온 홍소안(53) 작가의 소나무 그림이 오는 11월 9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벽원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온 작가답게 전시 제목도 가장 단순하게 ‘소나무’전으로 정했다. ●수십년 전국각지 돌며 소나무만 담아 홍 작가는 의젓한 자태, 꼿꼿한 기상을 지닌 소나무를 수십년간 탐구해 왔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채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작가는 전국 각지를 답사하면서 실제 소나무를 충분히 관찰하고 공부한 뒤 그림을 그린다. 소나무에 반한 이유는 “꼿꼿한 기백”이다. 해서 작품도 소품이 없다. 대개 100호쯤은 ‘가볍게’ 넘긴다. “소나무의 기백을 표현하려다 보니 대작을 아니 그릴 수는 없어서”다. 그 탓에 전시 한 번 할라치면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그리는 법도 독특하다. 소나무의 두툼한 살결과 뻗어나가는 맛을 살리려다 보니 은은한 빛이 감도는 광목천을 쓰기도 하고, 서양 재료인 아크릴에다 동양 재료인 수목까지 고루 섞어 칼로 작업한다. 이번에는 좀 더 관능적으로 다가간 점이 눈에 띈다. 배배 꼬인 몸통을 여자에 비유해놓은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 ‘아름다운 춤을’, ‘아름다운 포옹’ 같은 것으로 정했다. 소나무의 생김생김에 따라 적합한 이름을 가져다 붙였는데, 잘 어울려 보인다. ●꼿꼿한 기백만 있다더냐, 관능미도 넘쳐 작품 전체에는 소나무든 배경이든 붉은 기운이 맴도는데 이것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더 돋운다. 김상철 미술평론가는 “초기 소나무 작업이 실경에 기반한 성실하고 진지한 것이었다면, 후반기로 갈수록 소나무만 뚜렷하게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소나무 특유의 기세와 기운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소나무의 엄격함보다는 피와 살이 있는 소나무를 통해 사람의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02)732-37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안면도관광지 친환경 개발로 수정

    국제 수준의 해양관광지 건설을 목표로 추진 중인 충남 태안군 안면도관광지 개발계획이 ‘6성급’ 최고급 호텔과 일본풍의 ‘해수온천장’ 등의 친환경 고급 휴양지 조성으로 수정된다. 이전에는 골프장, 수상스포츠 중심의 ‘유럽 지중해식’ 개발계획이었다. 충남도는 26일 안면도관광지 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인 인터퍼시픽컨소시엄이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안면도관광지 개발 종합계획’을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2013년 착공해 2020년 완공할 계획이다. 숙박·문화시설을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으로 꾸미는 도시계획운동인 ‘뉴 어바니즘’(New Urbanism)이 핵심 콘셉트. 미국 뉴욕 ‘햄턴’과 플로리다 ‘시사이드와 윈저’, 이집트 ‘엘구나’처럼 환경적이면서 고급스러운 휴양지 조성이 목표다. 최고급 호텔과 해수온천장을 건설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터퍼시픽컨소시엄 관계자는 “관광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대규모 시설을 지어 놓고 놀고 즐기는 쪽에서 한적한 휴양지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건강을 챙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 안면도관광지 개발 콘셉트를 수정했다.”고 말했다. 인터퍼시픽 측은 또 병원과 승마·수영·영어 등을 가르치는 교육아카데미, 미술관, 승마장, 기업연수마을, 테마파크 등 기존 국내 휴양지와 차별화된 시설도 조성한다. 보행자가 중심이 되는 보행로와 공원, 목장 등 전원풍의 소도시도 이곳에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가족 단위로 찾아 쉴 수 있도록 가족호텔, 콘도미니엄, 오토캠핑장을 만들고 해양수족관 등 볼거리도 들어선다. 친환경 휴양지답게 생태꽃테마파크, 염전에코테마파크 등이 조성된다. 건물도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저층 단독형에 건폐율이 10%로 제한된다. 모래가 바다쪽으로 밀려나는 바람에 백사장과 해변 생태가 망가진 꽃지해수욕장의 옹벽 등 인공구조물을 철거해 원래 자연환경으로 되돌리고, 이른바 ‘안면송’으로 유명한 소나무숲과 구릉을 최대한 살리는 것도 이 수정 개발계획의 핵심이다.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고, 기존 계획에 있던 골프장과 노인휴양시설 등 일부는 그대로 추진된다. 인터퍼시픽은 조만간 안면도에서 이같은 개발계획에 대해 주민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10월까지 마스터플랜을 확정할 계획이지만 이번 수정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장애 뛰어넘은 예술혼…청각 잃은 김교생씨 첫 개인전

    장애 뛰어넘은 예술혼…청각 잃은 김교생씨 첫 개인전

    청각·언어장애 2급인 대구대 직원 김교생(55)씨가 23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20일 개막한 이 전시회 출품작은 100여호에 이르는 대작을 포함해 모두 40여점이다. 소나무 설경, 바다, 파도, 장미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은 가슴속에 그려왔던 그리움과 희망을 담고 있고, ‘고구려의 얼’이라는 작품에선 고구려의 역사를 담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짚어냈다. 두 살 때 홍역을 앓아 청각을 잃은 그는 수화나 필담으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초등 4학년 때 대구학생미술실기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해 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대상을 비롯해 각종 공모전에서 30여차례 입상하기도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파주 三善…평화·역사·예술을 한번에 즐기는 가을 근교 여행지

    파주 三善…평화·역사·예술을 한번에 즐기는 가을 근교 여행지

    때로는 사람이 몰리지 않는 호젓한 북쪽으로 발길을 돌릴 일입니다. 단풍 행락객들로 도로가 몸살을 앓는 가을엔 더욱 그렇습니다. 경기도 파주는 은근히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최전방 도시로 인식되지만, 그곳에 전쟁의 기억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율곡 이이의 고향 마을이 있고, 예쁜 현대 건축물들이 늘어선 언덕, 헤이리도 있지요. 평화와 상생의 공간이 된 임진각 평화누리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오가며 기러기 등 철새들의 군무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으니 이만하면 가을 근교 여행지로 제격이지 싶습니다. 전쟁 상흔 지운 임진각 평화누리 예전 임진각은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던 곳이었다. 굳은 표정의 초병이 지키던 ‘자유의 다리’와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 등에선 늘 긴장이 흘렀다. 하지만 새 단장한 임진각 평화누리는 평화롭다. 그리고 밝다. 주말엔 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번다하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분단과 냉전시대의 상징이었던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대형 야외공연장 ‘음악의 언덕’과 수상카페 ‘카페안녕’,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있는 ‘바람의 언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말이면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린다. 주차장에서 시민들의 메시지를 새겨 넣은 조각 작품을 지나면 연못 한가운데에 찻집 ‘카페안녕’과 만난다. 코르텐이란 녹슨 철강 마감재로 외벽을 마감한 모습이 마치 100년도 넘게 서 있었던 느낌을 준다. 연못을 건너면 바람의 언덕이다.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자연을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언덕에선 3000여개의 바람개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바람의 언덕 옆으로는 인상적인 대나무 작품 네 점이 서있다. ‘통일부르기’란 이름의 조형물로, 점점 키가 자라는 모습에서 점점 다가오는 통일의 그날이 연상된다. 임진각은 옛 콘크리트 건물을 철거하고 현대적인 건축물로 새로 태어났다.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이었던 곳이 하릴없이 스러져 간 것에 아쉬움도 남는다. 전망대와 식당, 커피숍,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여행자의 편의를 돕고 있다. 임진각 앞에는 전쟁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자유의 다리’는 1953년 6·25 전쟁 포로 교환을 위해 설치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포로들은 차량을 이용해 경의선 철교(임진각 철교)까지 온 뒤, 자유의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자유의 다리 끝은 굳게 닫힌 철문이다. 그곳부터 민간인통제구역이다. 철문엔 통일을 염원하는 메모 리본과 깃발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다. 자유의 다리 초입엔 경의선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6·25 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던 기차다. 녹슨 기관차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50년 12월 말 평양으로 가던 기차는 파주 장단역 어름에서 심한 공격을 받았고, 파괴된 채 반세기 넘도록 비무장지대에 방치되다가 2009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031)953-4854. 360살 느티나무 그늘아래 율곡 유적지 파주는 조선시대 대표적 경세가 중 한 명인 율곡 이이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외가인 강원도 강릉이지만, 본가가 있던 곳은 파주였다. 자신의 호 또한 파평면 율곡리 지명을 따 지었다고 전해진다. 6세 때인 1541년 처음 파주 땅을 밟은 이후, 그는 주로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시기에 파주를 찾았다. 그만큼 그의 숨결이 머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법원읍 동문리 율곡 유적지다. 자운서원과 율곡의 가족묘, 율곡기념관 등이 한곳에 모여있다. 율곡 유적지에 들면 가을 무르익은 너른 공간이 방문객을 맞는다. 단풍 든 느티나무 아래 너른 풀밭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여느 유적지들과 달리 풀밭에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관리인이 없어 좋다. 자운서원은 1615년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에 의해 창건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소실됐다가 1970년 복원됐다. 서원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 하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묵은 향기는 건물의 크기를 뛰어 넘고도 남는다. 특히 강인당 양 옆에 버티고 선 느티나무의 위세는 대단하다. 360년을 살아온 나무의 밑둥치는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둘러야 맞닿을 정도다. 자운서원 옆은 가족묘다. 율곡의 묘,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의 합장묘 등 13기가 조성돼 있다. 아울러 율곡 신도비와 자운서원 묘정비 등 여러 문화재도 주변에 함께 들어서 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031)958-1749. 율곡이 시상을 즐겼다는 화석정도 둘러 보는 게 좋겠다. 율곡 유적지에서 9㎞ 정도 떨어져 있다. 화석정에 오르면 임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물 정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는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엔 율곡이 8세 때 처음 지었다는 시 ‘팔세부시’(八歲賦時)가 걸려있다. 화석정 주변의 밤나무는 2005년 파주시에서 일본산 리기다 소나무를 베고 새로 심은 것들이다. 당시 파주시는 율곡의 탄생설화에 맞춰 999그루의 밤나무와 한 그루의 나도밤나무를 식재했었다. 예술이 흐르는 문화공간 헤이리 임진각 평화누리, 율곡 유적지 등 옛것을 두루 살피고 자유로 주변으로 나오면 현대식 건물과 조형물들이 어우러진 헤이리와 만난다.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갤러리와 카페, 공방, 서점, 레스토랑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곳이다. 헤이리는 미술, 음악, 문학, 건축, 문화비즈니스맨 등 380여 명의 예술인들이 1998년 탄현면 50만㎡(15만여 평) 부지에 자연과 사람, 문화예술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자는 취지로 건설하기 시작한 마을이다. 문화가 창작되고, 동시에 향유되는 공간이다. 정부 지원 없이 민간인들의 힘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건설 중이다. 마을 규정에 따라 집의 60%는 문화공간이다. 건물 또한 높이 12m를 넘는 건 없다. 담도 없고, 인위적 재질의 페인트를 칠한 건물도 없다. 집이 곧 미술관이고 카페고 공연장이다. 또 마을 전체의 75% 이상은 자연 그대로 둬야 한다. 오래된 굴참나무를 베지 않기 위해 외벽에 12개 구멍을 낸 갤러리가 있고, 마을 가운데 작은 시냇물을 보존하기 위해 다리를 5개나 만든 것도 그런 까닭이다. 다만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대가로 지갑을 열 각오는 하고 가야 한다. 글 사진 파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 파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승용차는 자유로를 기준 삼는 게 편하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자유로 끝자락에 있다. 율곡 유적지는 당동 나들목을 이용한다. 헤이리는 성동 나들목에서 지척이다. 서울역~임진각을 오가는 경의선을 이용해도 된다. ▲맛집 적성면 두지리의 원조두지리매운탕은 민물고기 매운탕을 잘한다. 959-4508. DMZ 해마루촌(www.haemaru.org)에서는 장단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0)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0)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오고 가는 계절이야 어쩔 수 없지만, 갑작스레 차가워진 바람은 근심을 불러온다. 한창 단풍 드는 나무들의 안부를 걱정하게 되는 찬바람이다. 도심의 나뭇잎에도 붉고 노란 물이 제법 올라왔다. 소슬바람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더 그리워진다.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사람의 마을에 가을의 시를 한 행씩 채우는 중이다. 이처럼 단풍 빛 짙어지는 가을에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소나무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소나무의 초록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단풍이 더 짙어지면, 홀로 뿜어내는 소나무의 푸른 기개는 절정에 이를 게다. 가을과 겨울은 분명 소나무의 계절이다. 독야청청 푸른 소나무가 이 땅에 한 편의 시를 남길 차례다. 글 사진 울진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뻗어 나온 모든 가지 낮게 늘어뜨려 경북 울진군을 대표할 만한, 조금은 별나게 생긴 소나무를 찾아 나선 길을 이종주(56) 시인과 함께했다. 달포 전에 울진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시인은 곧게 뻗어 오른 금강송의 푸른 기개에 온통 넋을 빼앗겼다고 했다. 그에게 금강소나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진 나무를 보여 주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하늘로 솟구치는 생김새인데, 이 나무는 거꾸로 추락하는 생김새를 가졌군요. 하늘과 땅을 잇는 남다른 방식이네요.” 나무 앞에 닿자마자 그가 토해 놓은 감탄사에 이은 행곡리 처진소나무의 첫인상이었다. 천연기념물 제409호인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는 소나무의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다. 이 나무가 처진소나무라고 불리는 건 나무의 모든 가지들이 낮은 곳으로 축축 늘어지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처진다 해서 유송(柳松)이라고도 부른다. 흔한 나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우 희귀한 나무도 아니다. 특히 경북 청도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처진소나무가 운문사 경내와 매전면 동산리 강변에 두 그루나 있다. 그 밖에도 청도를 비롯한 우리 산과 들에서는 야생으로 자라는 처진소나무를 드물게나마 찾아볼 수 있다. 잎을 비롯한 모든 생김새와 생육 특징은 여느 소나무와 다를 게 없다. 다만 줄기에서 뻗어 나오는 모든 가지가 낮은 자세로 가라앉는다는 점만 다르다.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 담아내 높이가 11m쯤 되는 행곡리 처진소나무는 이 같은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나무다. 이 나무는 마을이 처음 생겨날 때인 350년 전쯤 심은 것으로 짐작된다. 제법 너른 폭의 개울이 나무 옆으로 지나는 걸로 봐서 처음에는 넘쳐 흐르는 개울물을 막기 위해 심은 방재림의 한 그루로 짐작된다. 그때 함께 숲을 이뤘을 다른 나무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 처진소나무 홀로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라도 나무가 있다. 나무는 말없이 사람 곁에서 사람살이를 지키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무의 덕을 받으며 살지만, 그만큼 나무의 존재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또 나무 곁에 살면서 사람들은 나무를 바라보며, 사람살이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도 그랬다. “큰딸이 어느 날 수녀가 되겠다는 거야. 참 답답한 노릇이었지. 에미 애비는 성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수녀라니 이게 웬 말인가 싶더군. 거, 참 말려도 소용없었어. 지금은 환갑이 다 됐는데, 수녀로 잘 살아.” 나그네들의 인기척을 느끼고 나무 앞으로 다가온 진기은(85) 노인의 이야기다. 다짜고짜 털어놓는 노인의 옛이야기에 시인의 대거리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나무 그늘에 주저앉은 노인은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무도 처진 가지를 노인 곁으로 잔뜩 수그린 채 소슬바람에 스쳐 오는 시인과 노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애들 말 안 들으면 답답하지, 뭐. 그러면 여기 나무에 나오곤 했어. 하긴 우리 마을에서야 별로 갈 데가 없어서 일 없으면 모두 여기 나와 쉬곤 하지. 이 나무야말로 우리 마을 이야기를 모르는 게 없을 거야.” 수도자가 된 딸자식의 생활을 일일이 알 수 없는 노인은 아직도 홀로 사는 딸자식의 안부가 걱정되고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딸이 보고 싶을 때 찾아 나오는 곳도 바로 이 처진소나무 아래라고 노인은 덧붙였다. “이리 오래된 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어떻게 알겠어? 저 앞의 비각은 옛날에 이 마을에 살던 주명기라는 효자를 기념하는 비각이지. 조선 말기에 벼슬하던 사람인데 나무하고는 아무 관계 없어.” 순서도 없이 사람과 나무를 넘나드는 노인의 이야기는 막힘이 없었다. 평생을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사람살이의 알갱이, 혹은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 지어내는 한 편의 서사시다. ●사람 꼿꼿이 사는 힘 나무에서 온 듯 나무가 듣고, 시인과 노인이 나눈 말들의 상찬을 뒤로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 한 통 보냈다.’는 시인의 메시지였다. 소나무를 주제로 서둘러 쓴 시의 초고인 듯한 편지였다. “까닭 없이 저리 높이 자랄 리 없다/뼈에 사무친 추위 이길 리 없다”로 시작한 그의 편지는 “끝없이 견디는 당당한 힘/더 높이 하늘에 닿기 위해/허공을 가르는 바늘 잎”이라는 소나무 예찬으로 이어졌다. 흔한 인사 한마디 보태지 않은 그의 짤막한 편지는 “푸른 하늘로 싣고 가는 분명한 힘”으로 끝났다. 금강송의 고장 울진에서 처진소나무를 바라보며 시인은 하늘과 땅을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푸른 힘을 떠올린 것이다. 땅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며 수직으로 서서 사는 사람이 사는 힘이 바로 나무에서 비롯된 것이지 싶은 깨달음이 담긴 고마운 편지였다. ▶가는 길:경상북도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672. 울진은 비교적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 자연의 멋이 잘 간직된 곳이다. 행곡리를 찾아가려면 동해안의 국도 7호선을 이용할 수도 있고, 봉화에서 이어지는 불영계곡을 따라 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모두 절경이다. 울진군청에서 남쪽으로 3㎞쯤 되는 곳에서 나오는 수산교차로가 행곡리 입구다. 불영계곡 방면으로 강을 따라 난 도로에는 띄엄띄엄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수산교차로에서 3㎞쯤 떨어진 곳에서 나오는 다리를 건너면 강변에 서 있는 나무에 닿을 수 있다.
  •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 “백남준은 내 영화에 영향 준 매우 중요한 인물”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 “백남준은 내 영화에 영향 준 매우 중요한 인물”

    88분 동안 대사는 없다. 우연히라도 대사가 들어갈 법한 축제장면조차 한마디의 대사도 들을 수 없다. 배경음악도 없다. 전업 배우도 나오지 않는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잠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몇 차례 ‘고비’를 넘긴다면 황홀한 경험을 할 터. 이탈리아 서남부의 벽촌 칼라브리아를 배경으로 생명과 자연의 순환을 그린 영화 ‘네 번’(20일 개봉)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전 세계 평단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영화는 3개의 토막이야기-‘늙은 목동’ ‘새끼염소’ ‘전나무와 숯’-로 구성된다. 하나의 생명체가 물리적으로 사라지는 순간, 다른 생명체가 탄생하는 순환을 영혼의 윤회라는 프레임으로 풀어낸다. 각본·연출을 맡은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위)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영화만큼 진지하고, 영화만큼 독창적인 장문의 답을 보내왔다. →특정 시간과 장소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사와 음악도 배제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정중동이다. 독특한 방식을 고수한 까닭은. -공간과 시간은 인간끼리 약속한 개념이다. 난 필름이 돌아가는 동안은 가능하면 인간의 선입견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맞다. 카메라를 거의 이동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움직여 관객에게 이미지를 읽는 방향을 제시하는 건 자극적인 방법이다. 음악도 쓰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고정된 프레임을 선호한다. 난 영화라는 언어가 아주 폭력적인 설득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영화적 언어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억지로 설득하는 듯한 화면 이동을 거부하고 싶었다. ‘네 번’을 보는 동안 관객은 염소나 나무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고, 인간이 지구를 다스리는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전통적인 동물 계급 피라미드를 부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영화를 보는 수준이 ‘네 번’ 정도 되고, 청각도 염소 우는 소리나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 나는 소리보다 인간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수준이 돼야 가능할 것 같다. →영화를 통해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순환하는 삶과 자연, 시간을 초월한 장소의 망가지지 않은 전통을 보여준다. 주변에 있는 사물들의 강력한 연관성을 찾을 필요를 느꼈고 영화가 사라진 연결고리를 다시 찾게 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고 독창적이다. 하지만 상업영화의 문법에 익숙한 관객, 영리를 추구하는 배급업자와 극장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텐데. -신경 쓰지 않는다. 운 좋게도 영화 판매를 전담하는 올림피아 폰트 채퍼가 남들보다 영화를 팔 능력이 더 있다. 그녀에게 다음 영화가 벌레 사회의 불행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더니 “알았어요. 60개국 이상 팔 수 있어요!”라고 하더라.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여행 중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들었는데. -2003년에 그곳에서 첫 장편 ‘기프트’(Il Dino)를 찍었다. 이후 종종 이곳을 찾았는데 친구들이 오지 몇 군데를 방문해 보라고 권했다. 비보 발렌티아 지방의 산악지대인 세레라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수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방법으로 숯을 만들었다. 한눈에 반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처음부터 목동과 동물, 칼라브리아의 숯장수, 몬테폴리노에서 매년 5월 열리는 나무 축제 등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유는 몰랐다. 너무 다르고, 너무 떨어져 있는 실체 사이에서 어떤 연관성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2500년 전 위대한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글을 읽었는데, 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네 가지 형태의 삶-광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성·이성-이 있다. 피타고라스 덕에 네 개의 실체를 연결하는 해결책이 윤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목동, 새끼 염소, 커다란 전나무 그리고 숯더미 등 네 개의 다른 캐릭터에 연속적으로 깃드는 영혼의 신비한 여행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5년이나 걸렸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새끼염소 출산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도 궁금하다. -목동들한테 같은 장면을 반복 촬영해야 한다는 걸 이해시키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분들은 같은 염소의 젖을 여러 번 짜거나 하루에 염소 떼를 데리고 같은 장소를 두 번 지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동물들을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고 인간의 규칙을 강요하는 대신 그들의 규칙을 존중했다. 새끼 염소 출산 장면은 10월 중 2주 정도가 산란기고, 이 시기에 거의 200회 정도 출산을 한다는 것을 목동들에게 전해 듣고 준비했다. 새하얀 새끼 염소가 태어나는 장면을 찍고 싶었는데, 30마리 중에 한 마리 정도 나온다더라. 엄청나게 찍어야겠다고 각오했는데 처음 촬영에서 태어난 염소가 하얀 녀석이었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해서 시각적으로 인지하도록 하는 게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담을 수 있는 도구다. 예컨대 영화는 세상과 우리의 관계를 담을 수도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실체를 재발견하게 해주기도 한다. →한국영화를 보는 편인가. 좋아하는 감독은.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이창동과 홍상수 감독을 특히 존경한다. 영화인은 아니지만, 백남준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작업은 그의 영향을 받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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