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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이녁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 “난들 보고 싶지 않았겠나.” “더요… 더 껴안아줘요.” “잔등이 부러지겠네….” 육허기가 명치끝까지 차올랐던 남정네와 천성이 색골로 태어난 편발 처자가 누운 채로 북합(北合)을 벌이며 엎어지고 자빠지는 가죽방아를 거침없이 찧어댔으니, 사내보다는 계집이 벌이는 행방의 도리가 제법이라 할 만하였다. 마침내 절정에 도달한 구월이가 한 손으로는 사내의 댕기 머리를 비틀어 잡아당기며 다른 한 손으로는 잔허리를 부러져라 껴안고 뒹굴었다. 그러면서도 아득하게 중얼거렸다. “조용… 조용하세요.” “알았으니 제발 그만 종알거리게….” 구월이는 뱃구레 저 아래쪽으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정욕의 덩어리가 목구멍 가득히 치밀어 올라 밖으로 내닫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토하듯 크게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몸부림치던 배고령도 어느덧 턱을 궐녀의 젖무덤에 박고 엎드렸다. 목젖까지 차올랐던 육허기를 채우고 나자, 만리행역이 싹 가시는 듯하면서도 뼛골이 녹아난 듯하고 몸뚱이가 나른하였다. 한동안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구월이가 벗어 두었던 고쟁이를 끌어당겨 몸을 덮으면서 말했다. “얼마 전에 엄니가 도감 어른더러 중신아비가 되어달라고 조르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금시초문인걸.” “소금 상단 중에 한 총각을 눈여겨보았다가 초례청을 차릴 작심으로 도감 어른께 청을 넣은 것 같았지요.” “그게 누군데?” “행중에 송만기라는 엄지머리가 있지 않습니까.” “엄니가 만기를 겨냥하여 데릴사위라도 들일 작정이었나?” “나한테도 각오하고 있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니 틀림없지요. 그러니 이녁도 맘 단단히 먹고 계세요. 미천한 계집 일생을 그르칠 일이 없도록 잡도리하세요.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나는 자문하고 말 테요.” “계집편성이라더니… 말이 씨가 된다는 소리 못 들었나? 걸핏하면 자문하겠다는 얘기는 왜 자꾸 하나. 구월이는 내게 과람한 사람일세. 시일을 두고 궁리를 터봐야 할 것이야.” 그때 구월이는 배고령의 얼굴을 할끔하고 나서, “지난해 봄에 날 밖으로 불러내어 곁을 달라고 성가시게 굴 때는 내일 당장 초례를 치르자고 큰소리치더니…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조를 지키지 못하고 비위짱 좋게 견디고 있네요….” “어허… 아비 무덤 앞에서 염치없이 눈물 쏟는 게 아닐세. 진정하시게. 설마 내가 임자를 배신할까. 그런 일은 없을 게야.” “여의치 못하면 우리 먼 대처로 도망합시다. 살림이 옹색하게 되면 제가 달비 머리를 끊어 팔아서라도 가계를 이어갈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주워들은 얘기가 구월이 입에서도 나오네그려. 남녀가 정분나면 도망하자는 소리는 꼭 계집이 먼저 한다더군.” “남정네들이란 이녁처럼 칠칠치 못해서 그렇지요.” “그나저나 구월이 엄니가 만기를 겨냥하여 데릴사위 삼자 하고 옹고집을 부린다면, 그런 낭패가 없겠는걸. 만기는 나이도 나보다 팔팔한 손아래일 뿐 아니라, 사내치고는 계집처럼 미색이어서 나같이 삼촌뻘 되는 사람과 혼인했다는 창피한 소리는 듣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러니까 차제에 눈 딱 감고 엄니한테 이실직고해서 죽든 살든 양단간 아퀴를 지으세요.” “양단간에 아퀴를 지으라고 엄포를 놓는 걸 보니, 구월이 엄니 속내가 만기 쪽으로 기울어 요지부동이면 구월이 그리로 혼인할 속셈도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질정찮은 소리로 안채우지 마세요. 내가 길거리에 나와 앉은 허튼 계집인가요.” “우리끼리 거두어온 정리가 그토록 돈독한 터에 구월이가 까막과부되었다고 숙덕거릴 때까지 내버려둘까. 조급하게 굴지 말게나.” 구월이는 그 말을 신둥머리지게 되받아치며 성깔을 부렸다. “비위짱도 좋지. 썩은 달걀에서 꼬끼오 소리 나거든? 꽃 피자 해 지고 말았다는 얘기를 예사로 하네…. 그래도 이녁의 말을 믿어야겠지.” “구월이가 내 말을 못 믿으면 이 세상 어디 가서 믿을 사람을 찾겠나….” “언죽번죽 말은 청산유수네….” “야기가 매우 차군, 어서 옷 챙겨 입게나.”
  • [김문이 만난사람] 야구 입문 50년…살아 있는 전설의 타자 백인천

    [김문이 만난사람] 야구 입문 50년…살아 있는 전설의 타자 백인천

    다 알지만 지구는 둥글다. 해와 달도 둥글다. 그리고 공도 둥글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모형은 둥근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원은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수레바퀴를 이용해 힘의 균형, 힘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다. 뉴턴의 물리학적 측면에서도 원은 힘의 균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도형으로 여긴다. 수박, 토마토, 사과 등 대부분의 맛있는 과일이 둥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둥글기 때문에 이변도 많이 생긴다. 특히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렇다. 야구 경기에서는 어떨까. 공도 둥글고 방망이도 둥글다. 파울도 많고 땅볼도 많다. 그러나 둘 다 제대로만 맞으면 큰 이변이 생긴다. 경기를 뒤집는 홈런이다. 까닭에 야구에 열광하는 팬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의 높아진 수준도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추신수나 류현진 선수의 경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기면 짜릿하고 지면 안타까워한다. 에라, 비오는 날 공통분모나 다름없는 야구 얘기나 실컷 해 보자. 전설의 타자가 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4할 1푼 2리. 아직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주인공은 백인천(70)씨다. 그가 올해로 야구에 입문한 지 50년이 됐다. 비록 현역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원한 야구 선수처럼 살아간다. 야구장을 직접 찾기도 하고 집에서 TV를 시청하면서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후배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한다. 우리나라 홈런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 1960년 6월 제15회 청룡기쟁탈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서울시 예선에서 경동고와 휘문고가 맞붙었다. 경동고의 선공으로 시작된 경기에서 4번 타자 겸 포수로 출전한 백인천 선수는 3회 초 휘문고 투수 이명우의 볼을 받아쳐 왼쪽 담장을 훌쩍 넘기는 투런 홈런을 터뜨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홈런은 서울운동장 야구장 개장 이래 고교 선수가 터뜨린 첫 홈런이 됐다. 이후 백인천 선수는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명성을 날렸다. 1962년 1월 타이완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쑹산(宋山) 구장에서 홈런을 쳤다. 이 역시 쑹산구장 개장 이후 첫 홈런이었다. 주최 측은 홈런상으로 은 트로피를 수여했고 홈런공이 떨어진 지점에 기념패를 박아 백인천의 홈런을 기렸다. 이 대회 이후 백인천은 1963년 일본 프로야구계에 진출했고 곧바로 3할대를 유지하는 수위 타자가 됐다. ‘프로야구 일본 진출 1호’인 그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으면서도 일본 프로야구 생활 18년간 타격왕과 최다 2루타, 최다 3루타 등의 기록을 세운다. 40세 때에는 한국으로 귀국해 MBC청룡에서 감독 겸 선수로 뛰어 4할 1푼 2리의 시즌 타율 기록을 세웠고 아직도 경신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원년 최다 안타, 타격왕, 득점왕, 최고 출루율, 최고 장타율도 기록하고 있다. 그는 현재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전설의 타자를 만났다. 아파트 입구에서 동호수를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백씨와 마주쳤다. 동네 헬스클럽에서 막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중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건강에 대한 얘기부터 나왔다. “제가 프로야구 생활을 한 지 벌써 50년이 됐네요. 현역 선수로 뛴 20년 동안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습니다. 이제는 건강해지는 프로선수가 되려고 합니다. 1996년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삼성의료원에 입원했거든요. 그때 프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새삼 알았습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절망 속에 허덕이다가 건강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야구에 미쳤듯 운동에 미치자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이젠 보다시피 이렇게 다 좋아졌어요.” 그의 집 안에는 현역 시절 야구공이며 배트, 모자, 각종 트로피 등이 진열돼 있었다. 건강을 과시하듯 MBC청룡 시절 4할 타율을 기록했던 배트를 꺼내 왕년을 회상하면서 스윙 자세를 취한다. 과연 운동만으로 그의 건강이 회복됐을까. 물었더니 침과 운동 요법을 병행하면서 구운 소금을 꾸준히 섭취했단다. 1년 전에 다친 고관절도 다 붙었고 뇌경색으로 가물가물했던 기억력도 완전히 회복했다며 웃는다. 18년 가까이 건강 찾기에 공들인 끝에 지금은 골프도 치고 사그라졌던 근육도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나이 70이지만 다시 청년으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팔뚝 근육을 자신 있게 드러내 보인다. 야구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에 대해 “여러 가지로 발전했지만 섬세한 면에서 아직 부족하고 프로답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현역 시절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공의 반발력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이 때문에 번트를 잘 안 하고 한 방 날리는 것을 자주 노린다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출신 선수들에 대해서는? “외국에 나가면 길게 가는 선수가 있고 짧게 가는 선수가 있습니다. 박찬호는 밑바닥(마이너리그)부터 출발해 오래갈 수 있었고 추신수도 그렇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2군부터 시작했습니다. 밑바닥에서 고생한 경험 때문에 오래갈 수 있었지요.” 요즘 타율이 내려앉은 추신수 얘기를 꺼냈더니 “타율은 바뀌지만 타점과 홈런은 안 바뀐다”고 하면서 원 포인트 레슨을 한다. 추신수는 5월까지만 해도 타율이 3할 3푼 3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2할대로 떨어졌다. 백씨는 한국야구 최고의 이론가나 다름없다. 가장 큰 문제는 타격할 때 발사 자세에서 배트를 쥔 손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추신수는 전형적인 어퍼스윙 타자이기 때문에 밑에서 위로 퍼 올리는 타격을 합니다. 이런 유형의 타자들은 장타력을 지녔지만 체력적 부담이 크게 됩니다. 시즌 초반 체력에 문제가 없을 땐 홈런과 타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5월에는 3할대 타율과 7개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수가 늘고 원정의 피로가 겹치면서 퍼 올리는 타격 자세는 부담을 주게 됩니다.” 그러면서 배트를 쥔 손이 떨어지는 것, 지나치게 넓은 보폭, 어깨가 먼저 열리는 자세에서는 결코 좋은 타격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살인적인 경기 스케줄을 잘 견뎌내야 살아남는다고 했다. “홈런보다 정확도를 높이는 쪽이 추신수에게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트를 쥔 손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몸쪽 공을 좀 더 공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류현진 선수에 대해서는 어떤 지적이 나올까. “류현진도 원정 경험을 잘 견디는 것이 관건이다. 팬들은 이기길 바라지만 상대가 있다. 프로는 냉정하며 그에 따른 정신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야구 중독자가 돼야 한다. 심한 중독자가 돼야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뛰고 있는 이대호 선수에 대해서는 “성격도 좋고 비교적 적응을 잘하고 있다. TV를 통해 경기를 쭉 지켜보고 있다”면서 일본 감독들이 대부분 후배인데 만나면 힘도 좋고 수준이 높아졌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한국 야구의 수준과 관련해서는 “거의 일본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야구 인생 50년을 회고한다. “처음 일본 갔을 때 일본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까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야구 중독자가 되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방망이에 무거운 쇠붙이를 붙이고 계속 스윙 연습을 했습니다. 제가 그걸 개발했는데 요즘에는 많은 후배 선수들이 그렇게 하더군요. 결국 일본에서도 통할 수 있었습니다. 후회 없는 야구 인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4할 타자는 미국에 4명이 있고, 일본에는 없다. 그만큼 그의 기록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타자와 투수의 대결에서 누가 유리할까 물었더니 “그건 모릅니다. 잘 맞은 공도 수비수가 잡아 버리면 아웃되는 것이 아니냐”며 웃는다. 그의 고향은 평북 철산이다. 아버지가 중국에 사업차 갔을 때 출생했고 3세 때까지 중국에 살다가 북한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광복 이듬해 해주를 통해 바닷길로 가족들과 함께 월남했다. 장충초등학교에 다니다 한국전쟁 때 피란을 갔고 졸업은 효제초등학교에서 했다. 중학교는 성동중학에 입학했다가 경동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는 친형의 권유로 전학을 했다. 그가 야구를 하게 된 계기가 된다. 이후 경동고에 진학하면서 야구 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광복 후 고등학생으로는 최초의 홈런을 친 선수가 됐다. “그때부터 야구에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질은 별로 없었어요. 스포츠는 반복 연습입니다. 집에서 타이어 매달고 연습하다 보니 팔에 힘이 생기더군요. 시간만 되면 공을 쳤죠. 나중에는 저절로 신 나더라구요.” 그는 1983년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그리고 2002년 롯데 감독을 끝으로 야구장을 떠났다. 지금은 건강 관리에 전력을 쏟고 있다. 앞으로 야구 아카데미를 만들어 야구팬, 그리고 야구 꿈나무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1982년 당시 4할 1푼 2리를 기록했던 방망이를 들고 지그시 미소를 짓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백인천은 누구 1943년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에서 태어났다. 3세 때 북한 철산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광복 이듬해 가족들과 함께 월남했다. 성동중학에 입학했으나 경동중학으로 전학하면서 야구 방망이를 잡게 됐다. 1960년 경동고 시절 서울운동장에서 개장 이후 첫 홈런을 쳤다. 1962년 타이완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쑹산(宋山)구장 개장 첫 홈런 타자가 됐다. 1963년 일본 프로야구 진출 1호 선수가 됐다. 일본에서 타격왕과 최다 2루타, 최다 3루타 등의 기록을 세운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귀국해 MBC청룡에서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이때 기록한 4할 1푼 2리의 시즌 타율(80경기)은 현재까지 경신되지 않고 있다. 이후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을 역임했다. 1999년과 2006년에는 각각 SBS와 tvN에서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건강 관리에 힘쓰면서 한국 프로야구은퇴선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영민 타격상(1959년), 대한체육회 대한민국 최우수선수상(1962년), 일본 프로야구 수위 타자, 베스트나인(1975년),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전 출장(1967, 1970, 1972, 1979년), 한국 프로야구 최우수감독상(1990년) 등을 받았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찾고 있던 길세만의 소식은 듣지 못하고 하소연만 듣다 숫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배고령은 하루 말미를 더 두고 그의 은신처를 찾아보려 하다가 단념하고 피륙 짐을 흥정하여 지고 말래로 떠나 버렸다. 내성을 떠날 때는 안면 있는 행상들 대여섯을 만나 동행하였으니, 중로에서 짐승을 만나 경난을 겪을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길세만을 찾지 못해 찜찜하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말래까지 가는 십이령길 어디에서 그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말래 접소에서 도감 정한조에게 면박을 듣더라도 아무런 소득이 없는 내성에 두 사람만 머물고 있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포주인 윤가의 집이 바로 코앞이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동나무골 생달에서 왔다는 상단의 말을 곱씹어 보면, 길세만이가 이미 내성 저잣거리를 떠나고 없다는 언질을 준 것인지도 몰랐다. 겪은 사정도 그러하거니와 작반하는 일행이 차인꾼 한 사람뿐으로 단출할 때 샛재 비석거리에 당도해, 소금 상단이 눈치채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내성을 떠나서 샛재까지 해가 나절가웃으로 기울 때와 아귀가 맞게 당도하도록 행보를 조절하였다. 동행한 차인꾼은 도중에 있는 숫막에 당도할 때마다 배가 맹꽁이가 되도록 술을 퍼먹었다. 길세만을 찾아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회정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까닭이었다. 배고령은 그를 잡고 꼬드겼다. “급히 서둘러서 좋은 세 가지가 있네. 하나는 역병을 피하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곤경에 처한 장소에서 달아나는 것이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빈대, 벼룩 잡는 일이네.” “다른 것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만, 벼룩 잡는 것은 빠를수록 좋겠지요.” “임자는 왜 그렇게 말이 많은가.” 두 사람은 예정했던 대로 내성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샛재 비석거리에 당도하였다. 중도인 밭재의 밥자리와 빛내골에서 내성길로 나선 행상들과 마주쳤으나 정한조가 행수로 있는 소금 상단은 아니었다. 샛재 숫막의 월천댁은 담꾼과 일행이 되어 회정하는 배고령을 알아보고 알은체하였으나, 마침 그 어름에 들이닥친 상단들을 수발하느라 엉덩이에 불이 붙어 있었다. 월천댁 숫막에 사처를 잡자, 동행한 차인꾼은 남의 속내도 모르고 해가 나절가웃이나 남았으니 내처 말래까지 가자고 짓조르고 들었으나 배고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월천댁과 노닥다리 중노미가 길손들 수발에 숭어뜀을 하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틈을 타서 배고령은 정주간을 가로질러 구월이가 거처하는 방문 앞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구월이. 나 왔네.” 방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야무진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알고 있었어요.” “엄니는 길손들 수발에 분주한 터에 방 안에서 무얼 하나?” “깨어진 바가지 꿰매고 있어요.” “달이 뜰 임시에 묫자리로 나오게.” “누가 보기 전에 문 앞에서 얼른 비켜나세요.” 봉노에서는 조금 전에 당도한 상단들이 모여 앉아 밥을 먼저 먹을까, 술추렴을 먼저 할까를 두고 양단간에 담판들 한답시고, 부질없이 다투고 있었다. 방바닥이 헐벗은 각설이 불알이라고 강짜를 놓아 늙은 중노미는 군불 지피느라 바쁘고, 월천댁은 조껍질로 담근 술을 거르랴 초벌 안주 마련하랴 오지랖 챙길 겨를도 없었다. 정주간에서 나온 배고령이 시치미를 잡아떼고 봉노로 돌아와 다리쉼을 하였다. 차인꾼은 밥자리나 숙소참을 만날 때마다 술을 퍼마셨으니 저녁 먹을 일이 없었고, 그는 밥 먹을 경황이 없었다. 배고령 밤이 이슥하기를 기다렸다가 구월이와 약조한 장소인 묫자리를 찾았다. 5월이지만, 산속의 야기는 아직도 차가웠다. 비석거리 왼편으로 소나무들이 울창한 산기슭을 타고 조금만 오르면 두 사람이 밀회 장소로 자주 이용하였던 무덤 하나가 나타났다. 십이령 벼랑길가에는 그 무덤 말고도 주인 없는 무덤이 여럿이었다. 모두 그 길을 내왕하며 살았던 보부상들의 무덤이었다. 후사를 두지 않았으니 명절이 되어도 무덤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기로 약조한 무덤은 바로 구월이를 낳아 준 아비의 무덤이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곡절을 묻는 거조가 길세만의 면목을 알고 있을 것 같아 냉큼 그렇다고 대답하고 얼른 봉당으로 다가서며 환원수작 나눈 뒤 어디서 온 상단이냐고 물었다. 행수로 보이는 자가 듣고 있다가 봉당 모서리에 대고 곰방대의 담뱃재를 툭툭 털고 나서, “봉당이나마 우선 좌정하시지요. 보아하니 종일 쏘다니느라, 고단하시겠소.” 나이는 사십대 후반으로 보였고, 허우대는 부상들이 언제나 그러하듯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였다. 역시 입성도 깔끔했다. 배고령이 다시 어디서 온 상단이냐고 물었다. “차차 아시게 되리라 믿소만, 우리도 한때는 뜨내기 행상으로 저잣거리에 당도하면 접소나 사처 잡는 숫막을 바로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으로 여겼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난해부터 선달산 아래에 있는 오동나무골(梧田) 생달이라는 마을에 정처를 두고 살면서 옥돌봉 아래에 있는 박달령을 넘어 내성이나 현동 저자, 구룡산 아래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 태백의 물상객주로 드나들고 있지요. 여기서 150리에 상거한 충청도 단양은 풀방구리에 생쥐 드나들듯 수월하게 내왕하고 있지요.” 오동나무골 생달 마을이라면 곽개천이 지난날 포수 생활할 적에 발견한 약수터가 시오리 상거에 있는 곳이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게다가 지난번 화적들에게 목숨을 잃었던 차인꾼을 옥돌봉 기슭 노루막이에 묻어준 기억도 없지 않았다. “그곳에 약수터가 있지요, 아마?” “잘 알고 계십니다그려. 우리는 약수터와 시오리 정도 떨어진 골짜기에 정처를 정해 살고 있습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내려앉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가근방에서는 그만 한 길지가 없겠다 싶어 골짜기에 띄엄띄엄 토담집을 짓고 접소로 쓰기도 하고 보행객주도 열어 그럴싸한 저잣거리를 찾아 헤매는 행상들이나 고단한 길손들이 쉬어가도록 주선하고 있습니다. 물도 귀하지 않고, 찬바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통팔달이어서 내왕 행보가 앉아서 떡 먹기보다 손쉽지요. 강원도의 영월과 태백, 울진의 흥부장, 충청도의 단양과 영주, 경상도의 내성과 안동의 경계를 멀어야 150여 리 내외 행보에서 드나들 수 있지요. 적어도 사방 200여 리에 상거한 고장에서 나는 토산품이나 유기 같은 물화의 시세를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꿰뚫어 볼 수 있어 길미를 챙기기에도 가근방에서는 오동나무골 생달만 한 곳이 없지요. 그래서 시생들의 형세가 기운 적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모두 가솔을 거느리고 있겠군요?” “정착한 원상들이 열 안짝으로, 가솔들을 거느린 동배간도 있지만 대부분 엄지머리로 지낸답니다.” “언사가 매우 순박하십니다.” “정착하고 난 뒤 안정을 찾은 덕분이겠지요.” “오동나무골 얘기는 소문을 들어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대면하기는 처음입니다. 거래하는 물목들은 무엇이오?” “곡물과 약초와 피륙입니다.” “시생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지요?” “이틀 전에 이곳 어물 도가 포주인을 회술레 돌리는 것을 보았고, 노형께서 동배간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소금 도가 포주인을 훼가출송시킨 것은 적당의 소굴을 섬멸하면서 얻은 결과입니다. 궐자뿐만 아닙니다. 십이령길 곳곳에는 신표도 갖지 않은 무뢰배가 원상 행세하며 창궐하여 장시의 풍속이 개차반된 지 오래지요. 십이령길 내왕 행보에도 그런 왈짜들이 들끓고 있지요. 이들 모두를 소탕해야 장삿길 소통이 원만해지겠지요.” “우리 행중도 얼마 전 검은돌 마을에 소금을 거래하러 갔다가 그곳에 박힌 돌 행세하는 무뢰배에게 둘러싸여 숫막의 술동이가 비도록 술을 사고 나중에는 전대까지 털려 거래는커녕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처럼 크고 작은 폐해를 설혹 내성 아니라도 많이 겪고 있지요.” “용모단자는 없습니다만, 시생의 동배간은 본 적이 없으시군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도 발 달린 짐승이긴 마찬가지인데…. 사정이 다급하다면 꼭 내성 저잣거리에서만 머물 까닭도 없겠지요.”
  • 美 서부서 만난 아름답고 신비로운 협곡·화산지형

    美 서부서 만난 아름답고 신비로운 협곡·화산지형

    미국 서부에는 카우보이와 총잡이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마지막 미개척지로 여겨졌던 이곳에는 지금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거대한 규모의 대자연이 펼쳐져 있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이 만든 캐니언랜즈의 협곡들과 여전히 뜨거운 숨을 내뿜고 있는 옐로스톤의 화산 지형은 서부를 ‘지질학 교과서’라 불리게 만들었다. EBS ‘세계테마기행’은 15~18일 밤 8시 50분 지질학자 김영석 교수와 함께 미국 서부로 떠난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자연이 형형색색 사암을 빚어 만든 캐니언랜즈다. 수십만년 전 지각운동으로 서서히 땅이 융기한 뒤 강에 조금씩 침식당하며 다채로운 협곡이 형성된 곳이다. 지형이 험악하고 규모가 방대하지만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김 교수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데드 호스 포인트’, 일몰과 일출이 장관인 ‘메사 아치’, 아치의 길이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긴 ‘모닝글로리 아치’ 등을 찾아간다. 16일에는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방문한다. 수십만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이 화산 고원지대에는 300여개의 크고 작은 간헐천과 온천이 있다.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올드페이스풀 간헐천’은 평균 65분에 한 번씩 1만ℓ의 물을 지상 55m까지 뿜어내는 장관을 보여준다. 사막 풍광으로 유명한 애리조나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한 인디언과 서부 개척 시대 백인들의 문화가 기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건조하지만 연중 따뜻하고 쾌적한 기후로, 사막은 황량하다는 상식을 깬다. 제작진은 사막의 오아시스인 피닉스의 ‘캐니언 레이크’와 거인 선인장이라 불리는 ‘사와로 선인장’이 지천에 있는 ‘사와로 국립공원’ 등을 차례로 방문한다. 마지막으로 찾는 곳은 ‘죽음의 계곡’이라는 뜻의 데스밸리다. 사람이 살기 힘든 극한의 기후를 가지고 있지만 안에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풍경이 숨겨져 있다. 해수면보다 85.5m 낮은 거대한 소금물 호수 ‘배드워터’, 데스밸리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으로 꼽히는 ‘움직이는 돌’ 등이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배고령은 차인꾼 한 사람과 동행하여 길세만을 찾아나섰다. 정한조의 말대로 그의 성품이나 버르장머리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은 행중에서 배고령 한 사람뿐이었다. 행중 사람들이 짐작했던 것처럼 투전판보다는 색주가 갈보들에게 혼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갈보는 그의 전대가 완전히 거덜나서 먼지가 풀썩풀썩 날 때까지는 사타구니에 끼고 뱉어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평소 길세만은 장삿길보다는 간색에 정신이 팔려 실성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성품이었고, 장가도 들지 않은 형편이어서 고향에 공양할 사람도 없었다. 애틋하게 아끼는 계집사람도 없는 형편이어서 애써 번 푼돈이라도 아낄 줄 몰랐다. 필경 담벼락에 용수를 내걸고 떡 벌어진 술청을 차린 소문난 색주가보다는 고샅길 안쪽에 숨어 있는 허름한 선술집 뒷방에 계집과 함께 홀딱 벗고 누워 있을 게 분명했다. 보부상들은 자나깨나 한결같이 옷을 벗고 잠을 청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물것들을 몸에 달고 살아 옷 한 번 벗고 자는 것이 평생소원이기도 했다. 일행 중에서도 길세만이 걸핏하면 옷을 벗었다. 그러나 낮 동안 윤기호의 훼가출송으로 내성 저잣거리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그것까지 나 몰라라 하고 계집을 사타구니에 끼고 누워 있을 만치 그의 배짱이 두둑했을까. 그런 의심까지 들었으나, 배고령은 차인꾼을 데리고 색주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번 일로 길세만이 소금 상대에서 윤기호처럼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짓눌렀다. 계집을 좋아하는 병통이 있어서 곧잘 빈축을 사긴 하지만, 사람의 심덕 한 가지는 무던해서 남을 해코지하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날씨를 알아맞히는 재간은 일행보다 하루이틀이 빨랐다. 보통 비가 내릴 조짐이 있으면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온다든지, 고추잠자리가 낮게 난다든지, 개구리가 지악스럽게 운다든지 하는 징조가 보이지만 길세만의 한마디보다 정확하지는 않았다. “보게 배고령. 내 어깨가 결리는 것을 보니, 내일은 비가 오겠는걸.” 한마디하면 내일쯤은 반드시 비가 내렸다. 소금 섬이나 건어물과 미역 짐을 지고 다니는 소금상단에서는 언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지 하루나 이틀 전에 알아맞히는 사람이 행중에 있다면, 시세를 결단하고 점락(漸)이나 안매(安賣)를 막는 데 크게 한몫을 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정한조도 날씨가 수상해 보이거나 말래를 발행할 임시에는 반드시 길세만을 불러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도 길세만의 은신처를 반드시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만 내성에 떨어뜨리고 소금을 곡물로 바꾼 상단은 다시 말래로 떠난 지가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서캐 잡듯 내성과 현동 저자의 술청거리를 뒤졌으나 길세만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보통 울진의 흥부장 쪽에서 온 소금 상단이 떠나면 내성의 색주가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고 7, 8일 후에 소금 상단이 다시 회정하면 색주가는 다시 초파일의 절간처럼 야단법석이 되었다. 배고령은 이틀 동안이나 길세만을 찾아 동분서주하던 끝에 어떤 허름한 숫막 봉노에서 10여 명이나 되는 상대들과 마주쳤다. 면목을 찬찬히 살펴보았으나 안면이 익숙한 사람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들은 좁은 봉노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거동이 살얼음 밟듯 조용조용한 편이었는데, 입성들이 중구난방인 소금 상단들과 달리 매우 깨끗하고 언사도 차분했다. 그중 행수로 보이는 자가 문밖에서 궁싯거리며 숫막을 살피는 배고령을 보고 물었다. “노형께서는 사람을 찾으시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어물 도가를 경영하여 적지 않은 식산을 한 윤기호 같은 인물의 얼굴에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회칠까지 하여 훼가출송(毁家黜送)을 한다는 것일까. 그것을 당하면 패가망신은 물론이고, 내성의 저잣거리에서는 두 번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회술레는 중화 무렵까지 온 저잣거리를 세 번이나 지나고, 그것도 모자라 숨어 있는 고샅길까지 찾아가며 수치를 안기었다. 해가 나절가웃이나 지났을 무렵 배고령이 곽개천에게 다가왔다. “성님, 이제 그만하고 돌려 보내는 게 어떻겠소?” “임소의 분부가 있었나?” “아니오.” “아니면 길을 가로막고 서서 작경하는 놈들이라도 있었나?” “그럴 리가 있겠소.” 곽개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기왕 시작한 것 된변을 보여주어야 하네.” “윤가의 걸음걸이를 보자 하니…… 쓰러지면 두 번 다시 기신을 차리고 일어나지 못할 것 같소. 게다가 윤가가 반정신을 차린다 한들 이제 무슨 반죽으로 어물 도가를 열 수 있겠소. 그 도가 자리에 연못을 파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개아들 놈이 그와 거래를 트려 하겠소. 이제 윤가는 있으나 마나한 위인이 아니겠소.” “어디 윤가놈 하나 때문인가. 이 꼴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무뢰배들이 두 번 다시 장시의 풍속을 어지럽히려 들지 못하도록 혼찌검을 내자는 것이 아닌가. 건드리다 말면 애당초 거들지를 말아야지. 부리만 헐어서는 저들이 올곧은 정신을 차리겠는가.” “성님 말이 그르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놈 저러다가 저승 구경시키겠소.” 곽개천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죽어봐야 저승을 알지.” “길바닥에서 죽기를 바라지는 않지 않습니까. 일이 커질 수도 있지요…… 게다가 항자불살(降者不殺)이라 하지 않았소.” “임자는 겁도 많군. 사람 목숨이 임자 생각보다는 호락호락하지 않아. 뱃구레에 된불을 맞고도 100리를 가는 게 사람 목숨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람이 한번 죽고 나면 그만이지, 죽은 뒤의 일을 누가 알겠나. 먼 달구질을 하거나, 먼가래를 치거나, 까마귀밥이 되거나, 죽은 사람이 알게 뭐야. 이놈도 마찬가지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나나 이놈이나 달린 목숨이 하나뿐이란 것이지. 찬 서리는 가슴에 사무치고 매서운 겨울바람 뼈에 닿았던 지난겨울의 고초를 우린 꿋꿋하게 참아내었지 않나…… 왜 그 고초를 이겨내려 했을까. 단 몇 닢의 이문 때문이 아니었나? 재수가 좋아야 좁쌀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고개치 넘을 때 토악질해가며 우리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고 미행하는 짐승에 쫓기고 대처로 나서면 지악스럽게 짖어대는 동네 개들에 쫓기며 살아왔지 않나. 그런데 소문난 씹에 잔등이 부러지더라고 이런 도둑의 접주에게 우리의 하찮은 이문들이 오랫동안 유린되어 왔지 않았나.” “그런데 성님, 우리 행중이 저지른 과실은 어떻게 하렵니까?” “길세만이 저지른 일 말인가?” 배고령은 대꾸는 않고 곽개천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선지 몰라도 곽개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윤기호를 백방시키고 말았다. 소금 도가의 서사와 그의 아내가 허겁지겁 달려와 송장이나 다름없는 윤기호를 업어갔다. 곽개천의 고집대로 놓아두었더라면 그나마 거둘 것도 없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소임을 소홀히 했을 뿐만 아니라, 색주가에 파묻혀 투전 놀음에 빠졌을 길세만의 행방을 찾는 일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정한조는 평소 그와 자별한 사이인 배고령으로 하여금 가뭇없이 숨어버린 그의 은신처를 수소문해보라는 분부를 내리고 아주 오금을 박았다. “임자들…… 궐자를 찾아내어 대령시키지 못하면 우리 행중이 말래 접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야.”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길지란 어떤 곳을 가리키는 것이오?” “징세나 부역이 없고, 토호들의 발호나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없고, 양반도 없고 상것도 없는 세상 아니겠습니까.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지 않아도 열매가 열리는 그런 땅이겠지요. 마당에 노루가 뛰어들고, 솥에는 꿩이 저절로 날아드는 그런 땅이겠지요.” “가관이군. 조선 땅에는 그런 별천지란 없소. 헛것을 보지 않는 이상 그런 희한한 세상은 없을 것이오.” “지성껏 찾다 보면 있겠지요.” “말본새를 보자 하니 비슷한 곳이라도 찾은 것 같은데?” “야숙하더라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계곡이나 들판이 있다면 그런 곳이 길지가 아니겠습니까.” “그 산채에서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전긍긍하였답니다.” “슬하에 소생은 두지 않았소?” 그 말에 월이는 고개를 떨구더니, 한동안 뜸들인 다음에야 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산채에서 도망할 말미도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태어나면서부터 병치레로 시난고난하던 피붙이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불쌍한 것을 산기슭 진흙 속에 묻어둔 채 우리 내외만 살겠다고 허둥지둥 도망한다는 게 하늘에서 날벼락이라도 떨어질까 차마 못 할 짓이었습니다. 도무지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기약 없이 산채에 잡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돌림병으로 잃었소?” “아닙니다.” “아니면?” 월이는 말문을 닫고 밤하늘로 시선을 둔 채 묵묵부답이었다. “내가 아낙네에게 못 할 말을 했소?” “지난해 초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산채 된비알 남새밭의 김을 맨다 하고 아이의 허리에 끈을 매고 다른 한끝은 나뭇등걸에 매어서 밭둑에서 혼자 놀도록 놓아둔 채, 김 매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지요. 멀리 두고 간혹 바라보면 혼자서 옹알이를 하며 잘 놀고 있었는데… 그런데… 언제부턴가 옹알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놀라서 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아뿔싸 허리에 맨 끄나풀이 아이의 목에 감겼구려…?” “쇤네가 짚검불같이 여위디여윈 어린것을 죽인 셈입니다. 그런데 명색 어미란 계집은 구차한 명줄을 달고 있으니… 이런 죄인이 도방 대처로 나간들 가위 담도 벽도 의지할 곳도 없거니와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살아갈 방도를 찾는다 하여도 여럿 가운데서 견모만 될 뿐 어찌 고개를 들고 살 수 있겠습니까. 수치스럽고 구차한 목숨 부지하게 된 것만 천만천행으로 생각하고 화적들의 소굴에서 사는 게 팔자려니 여겼을 뿐입니다.” 정한조가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어쩌다 비명에 간 갓난아이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이 무안하여 한동안 말없이 불당그래로 화톳불을 거두다가 슬쩍 말문을 돌려버렸다. “적당들이 십이령길 요해처 곳곳에 척후를 놓아 우리 원상들의 동정을 낱낱이 살펴서 매복하고 있다가 복물바리를 털고 살상까지 서슴지 않았소. 뿐만 아니오. 지방 수령들은 화적이 저지르는 여항간의 작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해서 저들의 간담만 키워 지금에 와서 거칠 것이 없게 되었소. 그것을 기화로 화적들이 도방 대처까지 내려와 무뢰배나 도부꾼으로 가장해 기한에 떨고 민들레를 뜯어 먹으며 송기죽이나 가죽나무를 삶아 연명하는 농투성이들 괴나리봇짐까지 탈취하는 분탕질을 예사로 저지르게 되었소. 그랬다면 산채에 있던 화적들은 필경 배불리 호궤시켰을 법한데 어째서 행색들이 굶어 죽은 송장들 같소?” “지금까지 눈 속을 헤치고 수리쉬나 참취 같은 산나물을 뜯어 삶아 소금에 찍어 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송기죽을 끓여 먹거나, 질경이를 뜯고 칡뿌리를 캐어 속을 채워 산채 식구 모두가 미주알이 빠져 죽을 고생들 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된비알을 기어오르며 도토리를 주워 연명하였습니다. 어쩌다 조밥에 배추고갱이로 국이라도 끓이게 되면, 그걸 숭미탕(?尾湯)이라 해서 잔칫상 받은 듯 즐겨 먹곤 하였습니다.” “그게 사실이오?” “쇤네가 어찌 거짓 발고 하겠습니까.”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북새통 중에 우왕좌왕하다가 두령이란 놈을 등시색출 못 한 것은 큰 실책이었네. 뿐만 아니라 곳간도 찾아봐야 소용없네.” “땡추란 놈을 다시 한번 작신 두들겨서 추달을 해볼까요?” “소용없는 일이야…… 곳간은 따로 있을 게야. 산채는 허울뿐이었네.” “두령이란 놈이 순경 소임하던 자가 아닙니까?” “척후로 십이령길을 수시로 들락거린 것은 틀림없으나, 궐자가 천봉삼이라면 죽지 못해 한 짓일 게야. 궐자의 내자와 피붙이가 산채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네.” 먼산바라기 하던 계집의 얼굴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동저고리 자락을 적시고 있었다. 일행은 발짝 떼어놓기조차 임의롭지 못한 잔당들을 이끌고 한나무재 계곡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지난번 곽개천 일행이 포자를 벌였던 밥자리에서 다시 화톳불을 피우고 야숙할 채비를 하였다. “두령 행세하던 두 놈 중에 한 놈만 잡았으니, 밤을 낮 삼아 억죽박죽 뛰어다니고도 반타작밖에 못 한 꼴이군.” 두령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일행이 화톳불을 피우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궐놈의 형용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으니, 궐놈이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지 않는 이상, 조만간 우리 손에 잡힐 테지. 너무 애간장 태우지 말게.” 정한조는 산채에서 데리고 온 계집사람을 화톳불 가로 가만히 불러 앉히고 구초도 받아낼 겸 지금까지 산채에서 살아오면서 겪은 이러저러한 사정들을 물었다. “송파에서 떠나왔소?” “예.” “성씨는 뉘 댁이오?” “저기 있는 외간의 남정네는 천봉삼이라 부르고 쇤네는 월이라 합니다.” “그 산채에 인질로 잡혀간 지는 얼마나 되었소?” “두 해 전입니다. 삼남으로 내려가면 살길을 찾겠거니 해서 무작정 발서슴하던 중에 무단히 십이령 고개로 접어들었습니다. 워낙 산중인데다가 밤낮없이 짐승들에 쫓기어 조도로 밀려나서 도무지 동서남북을 가릴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시단이 되어 화적들과 마주쳤고, 그들은 우리 내외와 아이를 유리걸식하는 유민인 줄 알고 무작정 산채로 끌고 갔습니다. 산채의 세력을 불리자는 속셈이었겠지요. 우리 내외는 목숨 건진 것만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지금껏 연명해온 것이지요.” “산채에 연고가 있었소?” “연고라니요?” “연고도 없는 적소에서 한 가솔이 고스란히 살아남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소?” “쇤네의 남정네가 지니고 있던 신표를 발견하여 송파의 행상인이란 것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암자를 삭도간(索道間) 삼아 염탐꾼으로 쓴다면 흥부장과 염전이며 십이령 소금 상단들의 사정을 소상하게 알아내어 적지 않은 이득을 얻을 것이란 생각을 가졌기에 부득불 살려둔 것이겠지요.” “댁은 산채에서 양류밥이나 먹었소?” “동자치였습니다.” “송파에는 알음이 없소?” “알음이 없지 않았으나, 하직하고 떠나오게 되었고, 척분도 두지 않았습니다.” “쇠살쭈 노릇으로 송파 장시를 호령했다는 얘길 들었는데?” “행수는 따로 있었지요. 쇤네의 남정네가 우연히 임오년 난리에 연루되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다가 겨우 목숨을 보전하여 송파를 하직하고 살 붙이고 살 만한 길지를 찾는답시고 남쪽으로 발서슴하고 다녔습니다.”
  • [지상파 하이라이트]

    ■KBS 파노라마(KBS1 밤 10시) 4년간의 끈질긴 추적을 통해 국내 방송 최초로 포착한 사향노루의 실상이 펼쳐진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사향노루가 2011년 무인카메라에 포착됐다. 야생에서의 생존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 그런데 계속된 추적과 관찰을 통해 사향노루의 숨겨진 생태를 동영상으로도 담아내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상황에 맞닥뜨린다. ■힐링투어 야생의 발견(KBS2 밤 8시 20분) 데뷔 15년차 연예인 데니안. 데뷔 후 단 한 번도 휴가를 떠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여행’과 ‘자유’는 너무나 낯선 단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속으로 삼키거나 가벼운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 전부. 그런 그가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캠핑 마니아인 절친 일락(가수)과 함께 강원도 영월로 여행을 떠난다. ■파이널 어드벤처(MBC 밤 10시) 세 번째 레이스는 태국 중부 깐짜나부리의 넝방마을에서 진행된다. 이곳은 태국의 소수 민족인 카렌족이 거주하는 인적 드문 오지 마을로, 험난한 지형과 복잡한 지리 때문에 출연자들은 한층 더 힘겨운 레이스를 펼쳤다. 특히 이번 레이스에서는 이동수단을 자전거로 제한해 기존 레이스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정글의 법칙(SBS 밤 10시) 축구 스타 안정환의 은퇴 후 첫 경기가 야크 똥 밭에서 펼쳐졌다. 그곳은 조금만 뛰어도 헛구역질이 나오는 해발 3788m의 히말라야 폭순도 스타디움이다. 한편 상대팀은 생존 내내 안정환에게 축구로 한판 붙자며 심기를 건드리던 노우진과 만성피로의 주인공 박정철이다. 과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고산축구경기의 승자는 누가 될까. ■다문화 휴먼다큐 가족(EBS 밤 10시 45분) 하얀 소금꽃밭이 끝없이 펼쳐진 소금의 섬 신의도에는 베트남에서 와 염부가 된 부티란 프엉씨가 산다. 재혼인 남편 우승씨와 결혼해 졸지에 네 아이의 엄마가 된 프엉씨는 막내 샘까지 낳으면서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됐다. 나이 차이가 13살이나 나는 남편과는 집에서 쉴 때마저 꼭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닭살 부부다. ■각설탕(OBS 밤 11시 5분) 제주도 푸른 목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은(임수정)은 어릴 적부터 유난히 말을 좋아해 말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다. 특히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말 천둥이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각별해 둘은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따르면서 동고동락한다. 자신 또한 엄마 없이 외롭게 자랐기 때문에 그녀에게 천둥이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 [지상파 하이라이트]

    ■고향극장(KBS1 밤 10시 50분) 웬만한 약초에는 훤한 약초박사 금옥씨와 천지분간 못 하는 초보 약초꾼들이 약초 찾아 삼만리 산행을 시작했다. 독초냐, 약초냐 고민하는 이들의 예측불허 위기일발 상황이 이어진다. 과연 금옥씨와 초보 약초꾼들은 무사히 산을 내려올 수 있을까. 탤런트 김미경의 맛깔스러운 내레이션이 함께한다. ■은희(KBS2 오전 9시) 성재는 은희의 출근으로 사무실 일이 너무나 즐거워진다. 성재가 전에 없이 일을 열심히 하자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금순은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한편 금순이 20년 전 고향 사람과 형만을 비롯한 옛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석구는 더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낀다. 이에 우연히 재필로부터 정옥이 일하는 곳을 알게 된 석구는 국밥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MBC 특별기획 구암 허준(MBC 밤 8시 55분) 허준(김주혁)은 해부도를 참고하며 정성스럽게 반위를 치료하지만 약속한 기일이 다가와도 병의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예진(박진희)과 소현(손여은)은 초조해하며 눈에 보이는 병증인 구안와사부터 다스릴 것을 권유하지만, 허준은 포기하지 않는다. 한편 김병조(이찬)는 심한 고통을 느끼며 토혈을 한다. ■꾸러기 탐구생활(SBS 오후 4시 30분)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유와 얼음, 그리고 소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얼음과 소금으로 어떻게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을까. 꾸러기 탐구대원들과 실험에 나선다. 한편 넘어질 때도 요령만 있으면 다치지 않는다는데…. 유도의 기본 기술인 낙법에 대해 배워 보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도 탐구해 본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규슈는 일본의 다른 섬에 비해 예부터 새로운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자 본연의 전통을 간직해 온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 지켜온 전통을 따라가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 오랜 전통을 이어온 도자기 마을, 온타로 향한다. 기하학적 무늬가 특징인 온타 도자기를 만드는 이곳의 풍경은 모든 걱정을 씻어주는데…. ■더 워(OBS 밤 9시 50분) 탈레반이 설치한 급조폭발물에 희생되는 병사들과 민간인들. 10년 이상 계속된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황폐해지고, 사람들의 피해는 더 커져만 간다. 계속되는 전쟁의 참상, 물러설 수 없는 전투와 피할 수 없는 총격전. 이제 막 성인이 된 앳된 병사들이 바라본 혹독한 전쟁의 실체와 군인의 눈으로 기록한 아프가니스탄의 치열한 교전 기록이 공개된다.
  •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집은 ‘와초문학뜰’이다. 뜰 바로 아래에는 조용히 출렁이는 탑정호(塔亭湖)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는 조각가 류훈의 작품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때요’가 있다. 이 조각은 세 명의 인간형상이다.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시름에 빠진 중년의 노동자이고 나머지 둘은 서로 떠들다가 ‘술 한잔 하자’는 자세를 취하며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 노동자이다. 집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流留亭)라는 문패가 그럴듯하게 걸려 있다. 그가 직접 쓴 글씨로 새겨넣었다. 얼핏 보아도 붓글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부인은 10년 동안 서예공부를 했다. 부인이 그가 쓴 ‘흐르고 머무니~’를 보더니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쓰면 어떡하느냐”며 한동안 삐쳤다(?)고 한다. 정자 바로 앞에는 앙증맞은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졸졸 흐르고 붕어새끼들이 이리저리 뛰놀기에 딱이다. 정자에서 몇 발짝 걸어가면 텃밭이 있다. 상추와 고추 등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글을 쓰다가 소일거리로 잠깐씩 들러 자라는 식물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곳,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은 팬들을 위해 ‘행복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1년에 봄, 가을 두 번 공개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찾아온다. 글을 써서 인세로 장만한 집일까. “논산시에서 임대해 준 것이고 임대료는 내지 않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필실은 1층과 2층에 있다. 1층은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2층은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최근 ‘와초문학뜰’에서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해에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썼다.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2년여의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달 26일 고향에서 첫 작품을 쓴 박씨와 와초문학뜰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편하고 허름한 옷차림이다. 마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정자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원래는 마음 심(心)자를 써서 ‘심유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머무는 적은 없어요. 그래서 흐를 유(流)자로 바꿨더니 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요. 원래 붓글씨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직접 먹을 갈고 화선지에 쓰고 현판에 새겨 달아놓았습니다.” 머물고 흐르는 것이 곧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배도 고픈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미리 와 있던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인근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옮겼다. 식당 주인이 그를 단골손님처럼 반긴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닭도리탕’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주종과 주량을 물었더니 “오늘은 속이 별로 안 좋아 막걸리 두어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 소주 반 병 정도나 과실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2년 동안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원래는 고향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는데 하루는 40대의 젊은 시장이 ‘형님, 고향으로 오시죠’라고 해요. 그 형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금강문화권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탑정호수 건너편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계백이 깨진 곳이지요. 이 금강문화권은 또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 그리고 동학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혼이 많아 한밤중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단다. 밤에 술을 마시고 마당에 앉아 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라는 것. 누구냐고 했더니 ‘계백 장군 똘마니 장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안 가고 그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장수는 ‘계백 장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라고 했단다. 얘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웃으면서 패망한 군인들의 원혼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겠다고 했더니 “뼛골만 있어도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것이 작가가 아니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2년 동안 고향사랑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고향에 오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희생했다면 요즘은 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아버지들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가부장의 권위도 해체되고, 아버지는 늘 자식을 위해 과실을 따오고 30대의 장성한 자식조차 여전히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과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지, 지난 반 세기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에는 자식을 위해 수시로 돈을 뺄 수 있는 통장 역할을 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폭력과 쓸쓸함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아버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아버지10’을 다루고 있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며 웃는다. ‘은교’의 경우 시간의 반란을 그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을 원래 77세로 설정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젊은이들이 읽지 않는다며 65세로 해달라고 했다.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70세.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과 달리 20대 여자들이 책을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 쓴 ‘소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금’은 지금까지 7만부를 찍었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독서 인구는 그에 비해 적어요. 예를 들어 문학책이 10만부가 팔렸다고 할 때 문학을 알고 사는 사람은 2만명, 나머지 8만명은 사회적 이슈이거나 자극적인 데서 책을 구입합니다. 5만 독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문학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수준이 문화적으로 높아져야 잘못된 제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소설이란 마라톤과 같으며 빈틈없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작가들은 스타트는 좋으나 체력이 문제라면서 “소설이란 걸어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하며 달의 뒷면, 어두운 면까지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끈기와 투지가 있어야 하며 작가의 뒷심이 약하면 시대를 바라보는 뒷심 또한 약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보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이야기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문을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머지 인생을 굳이 정보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순간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단다. “30대에는 사랑받고 싶어 넓이에 정체성을 두고 글을 썼고 40대를 넘기면서 깊이를 추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써오는 동안 벌써 40년 연애한 것처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에게 아직도 순정주의 문학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15차례나 했다. 존재의 등반이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기, 초월적인 세계를 실감하기, 인간의 갈망이 있는 그곳에서 불멸과 순간, 현세적 삶과 초월적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비우니 향기롭다’, ‘나마스테’, ‘촐라체’ 등이 이 같은 산악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도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어 한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걷기’는 어떻게 될까. “여기 올 때 고전소설 몇십 권을 가져왔는데 다시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란 쿤데라 작품도 읽어봤고, 아마 다음은 역사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 후기 노론의 기반이 되는 곳이 바로 논산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활의 모토에 대해 물었더니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라고 했다. 달랑 물에 만 밥과 김치를 먹으며 육체와 정신의 기름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범신은 누구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까지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다.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장편소설로는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김동리문학상(2001년), 만해문학상(2003년), 한무숙문학상(2005년), 대상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아이구…… 행수님 정말 왜 이러십니까?” 그제야 윤기호는 그때까지 부리던 호기는 온데간데없이 우는 소리를 터뜨렸다. “간특한 놈, 정말 아니면? 희롱하자고 벌인 일인 줄 아는가?” “아이구구…… 행수님 우선 작두부터 치워주시지요.” “도타할 구멍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나? 작둣간에서 한 발자국만 비켜나려 했다간 당장 태질을 시켜 평생 병신으로 살도록 만들어버릴 터. 어디 그뿐일까, 네놈의 재취 장가처도 적굴에 집어넣어 평생을 적굴 놈들 동자치로 연명하게 만들어주마. 알 만하냐?” ”그걸 모르겠습니까.” “작도를 치우기 전에 한마디만 해. 적굴 놈들과 내통하여 와주 노릇하면서 인령아인*한 게 틀림없겠다?” 윤기호가 드디어 턱을 땅바닥에 내려뜨리고 너부죽하니 엎드렸다. “그…… 그렇습니다.” “상인이란 흥정을 트다보면, 이익이 실팍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야. 그러나 우리 상단은 포주인과 신의를 지켜준답시고 고헐간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거래를 트지 않았나. 차제에 두 번 다시 우릴 배신하면 어물 도가에 연못을 파고 네놈은 차후로 사내구실을 못 하도록 불알마저 까버릴 테니 명심하라. 네놈이 상종한다는 무뢰배들도 적굴 놈이 분명하고 그들이 가진 신표나 상표 역시 위조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네 놈도 알고 있을 터. 장차 그런 패악을 정습치 못하면 난장박살을 낼 테니 명심하라.” 정한조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윤기호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중화참 무렵에 염탐꾼으로 내보냈던 길세만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내성 장시 색주가에 있는 투전판에서 타짜꾼이며 무뢰배 들의 행티에 짓눌려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홍등녹주(紅燈酒)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버릇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막상 듣고 보니 당장 용수 달린 색주가를 뒤져 여러 동패가 바라보는 앞에서 장문을 내리고 싶었다. 소임을 소홀히 한 죄는 그렇다 하더라도 장사밑천을 걸고 다투는 투전판에는 얼씬도 말라는 엄중한 분부를 내린 것은 오래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배간을 징치할 궁리부터 할 때는 아니었다. 적굴 놈들이 패거리를 만들어 내성 장시에 머물면서 소금 상단이 거래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을 노린다는 윤기호의 자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처하는 곳이 바로 지난번 일행이 적지 않은 수치를 겪었던 바로 그 숫막이었다. 윤기호의 단골인 색주가 술청거리에 있는 그 숫막에는 모두 기골이 든든한 일곱 명의 산적들이 사흘 전부터 들이닥쳐 진을 치고 포자(?煮)를 낭자하게 벌이며 소금 상단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곽개천 일행이 한나무재에서 만났던 산적 일행과는 그 규모가 사뭇 달랐다. 화승총 두 자루까지 갖추고 있었고, 환도를 가지고 있었다. 대중없이 덧들였다간 상단이 곱다시 흉변을 당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거처하는 곳이 몇 번 가본 일이 있는 익숙한 숫막이라는 것에 기선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 숫막의 구조를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한 놈도 놓치지 않고 포박할 수 있었다. *인령아인(引領牙人):소금의 밀매를 중개하는 사람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내 말은 포주인이 그 비린내 나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우리 상단의 동정을 도둑의 소굴에 팔았다는 것이오. 어디 그뿐이겠소. 적굴 놈들의 장물아비가 되어 잠은도매(潛隱盜賣)하고 벌어들인 더러운 돈으로 화식을 노렸으니, 그 한 가지만으로도 포주인을 그냥 둘 수는 없었소. 포주인의 됨됨이가 당초부터 배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문득 헤아려보아도 십 년 숙객이라 거래를 끊지 않고 범절 차려서 상종해 왔소. 그렇게 도둑의 와주 노릇으로 화식하여 장차 일향을 호령하고 호광을 누린다 한들 오래가진 못하오. 공명이나 분복이란 제 분수에 넘치면 필경 화를 입고 패가망신할 것이오. 지난겨울 우리 행중이 십이령길 눈보라와 매서운 한고에 시달리면서도 어물 도가의 신용이 어긋나지 않도록 물화를 여축없이 대어주지 않았소. 그때 포주인은 뜨끈뜨끈한 봉노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도둑의 장물을 팔아 화식을 노려 왔소. 그 장물이 도대체 뉘 것이오? 손톱으로 여물 썰듯 죽을 고생으로 연명하는 우리 상단의 것이 아니겠소.” “적굴 놈들이나 장시에서 떠나지 않는 무뢰배들에게 혹간 소금 상단의 동정을 은밀히 귀띔해 달라는 위협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등 두드리고 배 문질러서 몇 푼 찔러주며 돌려보내곤 하였지요. 뱀의 꼬리를 따라가면 대가리에 이르더라고, 행수가 이끄는 상단이 적굴 놈들에게 전대를 털리거나 멸구를 당하는 봉변을 당하면 시생의 어물 도가 역시 망조가 든다는 것을 슬기구멍이 꽉 막힌 놈이라 한들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그들과 내통하다니…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깁니다. 내가 감옥에 갇혀서 섬거적을 뜯어먹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댁들에게 싸다듬이당할 죄가 없소이다. 대중없는 풍설을 믿고 사람 잡지 마시오.” “아닌 보살 하는 것 보니…포주인이 미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미련하기가 몽둥이로 소를 몰겠소. 계집이 정절을 지켜야 계집의 구실 하듯 상인은 신의를 지켜야 고깃값을 하는 게요. 그래도 산적들과 내통하여 장물아비 노릇한 적이 없다고 버틸 작정이오? 패가망신한다는 말을 흰소리로만 들었소?” “그걸 모를 턱이 있겠습니까. 내가 행수 일행과 안면을 싹 바꾸고 적굴 놈들을 상종하여 보비위나 일삼는 쓸개 빠진 놈인 줄 아시오? 내가 화적질을 방조했다면 이 자리에서 칼을 물고 엎어지겠소이다. 내 처신이 그토록 데데하게 보였소? 곤장(棍杖) 메고 매 맞으러 가더라고 시생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 화를 자초하겠소?” 듣고 보니 그럴싸한 얘기였다. 윤기호의 됨됨이를 모르는 사람은 그 하소연을 곧이듣고 눈물이 쑥 빠질 지경이었다. 포주인의 발명을 침통한 표정으로 듣던 정한조가 일행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들은 구석에 놓아두었던 작두를 포주인 앞에 대령하였다. 한 사람이 달려들어 그의 윗도리를 피나무 껍질 벗기듯 홀랑 벗겨버렸다. 그리고 그의 한 팔을 시퍼런 작두날 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발버둥쳤으나 장골 두 사람의 완력을 뿌리칠 수 없었다. 작두날 사이에 한 팔을 올려놓자마자, 이때까지는 그나마 반정신은 남아 있던 그의 안색이 희미한 밤빛 속에서도 파리하게 가시는 듯했다. 순식간에 사시나무 떨듯 하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정한조의 입에서 단호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열명길이 지척에 있소. 작두날에 팔 하나를 잃고 곰배팔이 되어 내성장시에서 쫓겨나겠소. 아니면 적당과 내통한 사실을 직토하여 그 꼴같잖은 허우대라도 온전하게 보전하겠소?”
  • 건강기능식품 슈퍼 판매·기능 광고 허용

    건강기능식품을 슈퍼마켓에서도 팔 수 있고 관련 식품의 구체적인 기능 표시 광고도 허용된다. 뮤직비디오와 웹툰에 대한 사전 심의제도가 자율심의 방식으로 바뀐다. 위성, 케이블, 인터넷TV(IPTV) 등 모든 방송사의 전송방식을 서로 혼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위성방송을 인터넷망을 통해 IPTV로 서비스하는 ‘접시 없는 위성방송’(DCS)의 도입이 가능하게 됐다. 정부는 25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네거티브 규제방식의 확대추진 방안’을 보고했다. 네거티브 방식은 전면 허용을 원칙으로 하고 금지는 예외적으로 하는 규제방식이다. 이날 정부가 확정한 네거티브 규제방식의 확대를 위한 산업별 10개 부처의 우선 추진과제에는 벤처의 입지 관련 규제, 건강기능식품 제조업 허가, 재활용 폐기물의 종류 및 처리방법, 선박 투자업 및 선박운용회사의 인허가, 복합물류터미널사업 등록규제 등이 포함됐다. 현재 360일이 걸리는 의약품·의료기기 관련 신기술 평가기간을 250일로 줄이고, TV 전송망사업자(NO)의 등록요건을 완화하는 방안도 들어있다. 관련 정부 부처들은 추진계획의 세부이행 계획을 수립해 오는 7월부터 순차적으로 확정·시행해 나가기로 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 활동과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규제 방식을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금지를 예외적으로 하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의 도입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일반 국민들에게 불편과 부담을 주는 현장 애로 사항, ‘손톱 밑 가시’ 113건에 대한 개선 대책도 확정했다. 이는 지난달 중소기업 ‘손톱 밑 가시’ 130건을 개선 과제로 확정한 데 이은 후속 조처다. 국외 이주자에 대한 주민등록증 발급, 체육지도자 학력 요건 완화, 주민등록상 주소지에서만 가능했던 장애인 복지카드의 주민센터 재발급 허용 등도 포함돼 있다. 이주 국민의 경우 주민등록이 자동 말소돼 금융거래, 취업, 사업 등 국내 경제활동에서 불편을 겪는다는 지적에 따라 30일 이상 국내 체류하는 이주 국민에게 별도의 주민등록증을 발급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창업 2년 이내 중소기업이 공공조달 다수공급자계약(MAS)에 참여할 때는 납품실적(연 3건) 기준 요건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또 영세사업자에 대한 미소금융 운영자금 대출 기준을 현행 사업자 등록 후 1년 이상에서 1년 미만으로 낮추기로 했다. 산림사업법인 등록기준도 현행 설립요건(기술자 3인과 기능인 6인)에서 하향 조정된다. 우체국 국제특송(EMS) 요금체계도 현행 500g에서 250g으로 세분화해 물류비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영세 중소서점(면적 330㎡ 미만) 의 책 공동구매를 지원하고, 10인 미만의 도산 기업 근로자에 대해 국선 노무사가 무료로 지원하도록 했다. 정부는 법령 개선 등 후속조치를 마련해 오는 하반기부터 개선 대책을 순차적으로 이행해 나가기로 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정한조는 대답이 없었고, 일행 두 사람은 말도 없이 메줏덩이만 한 주먹으로 윤기호를 태질해서 흙바닥에 주질러 앉히었다. 다짜고짜 윤기호부터 잡아 엎치는 일은 모험이었다. 그들이 가졌던 속내대로 자복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십이령 소금 상단의 장래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단골 거래처를 잃으면 상단으로서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될 것이었다. 척후로 풀었던 일행을 만나 보기도 전에 일을 벌이게 된 것에는 그들이 처음 약조했던 날짜를 어기고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에 믿을 수 없고, 그와 함께 오늘 밤 윤기호를 다스리지 못하면 실기해서 오히려 저들에게 상단을 덮칠 기회만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래를 발행하여 내성까지 당도할 동안 많은 내왕길에 만난 길손들이 상단이 이동하는 경로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들 길손들 중에는 필경 적굴과 내통하는 위인도 있었을 것이다. 정한조는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윤기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패랭이에 꽂아둔 곰방대를 뽑아 살담배를 힘주어 꾹꾹 다져넣고 부싯깃에 불을 댕겼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밤빛은 음산하고 축축했다. “비가 오려나….” 일행 중에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색주가 술청거리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은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명료하게 들려왔다. 정한조가 담배만 피울 뿐, 오랫동안 굽도 떼지 않을 뿐 아니라 말문조차 열지 않자, 조바심이 난 윤기호가 얼굴을 되들고 야무진 말소리로 물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내가 누군 줄 알고 야심한 터에 자는 사람을 끌고 와서 찍자를 부리시오. 행수와 시생은 십 년 지기로 쌓아온 정리가 돈독하지 않았소. 시생이 그동안 행수를 상종함에 사리에 그름이라도 있었소?” 제법 뇌까리는 윤기호의 말은 들은 척도 않던 정한조가, “죄는 청승개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나무가 맞는다는 얘기군… 제 분수에 넘치는 짓을 대중없이 저지르면 나중 가서 이런 앙화를 입게 마련이오.” 밸이 뒤틀린 윤기호가 곡경 치르게 된 것은 예상 못 하고 시종 깐깐하게 굴었다. “앙화를 입어? 내가 얼뜨기인 줄 아시오? 그런 억탁으로 생사람 잡지 마시오.” “빼죽거리지 말고 직토하시지 그러시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하였소. 내게 무슨 허물이 있다고 가당찮은 엄포를 놓으시오.” “근자에 우리 행중 사람을 풀어 포주인의 동정을 소상하게 염탐시켜 보았소. 그랬던 것은 포주인 명색이 우리 상단과 거래할 적에는 입에 넣은 것도 꺼내줄 것처럼 막역하게 상종하지 않았소. 그런가 하면 등 뒤로는 적굴 놈들과 은밀히 내통하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우리 상단의 동정을 낱낱이 밀고하여 저들이 상인해물(傷人害物)하는 데 구애가 없도록 도왔소. 비보라에 부대끼며 보잘것없는 이문이나 바라는 상단을 덮쳐 봇짐을 탈취하고 심지어 우리 상단 사람을 멸구까지 시키도록 거들지 않았소. 지금까지도 우리 행중이 광대나 풍각쟁이나 약초꾼으로 가장하고 화적의 소굴을 염탐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소?” “수하 행중을 풀어서 시생의 동정을 염탐했다면… 장시에 원진을 친 무뢰배들이 도가를 무상출입하면서 행하를 뜯어가거나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박을 깨트려 저승 구경을 시키겠다고 행패를 부린다는 것도 아시겠구려. 굳이 세작을 놓지 않더라도 행수께서 몸소 목도한 일까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행패가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었습니까. 콩죽은 내가 먹는데 배는 행수가 앓는 꼴이외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분천 나루를 건너면 곧은재를 넘어야 하고 그 너머에 숫막이 기다리는 검은돌 마을 숫막거리가 나타난다. 일행은 방울나귀를 이끌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숫막거리에 당도하였다. 정한조를 행수로 하는 그들 일행은 유난히 떠들어댔다. 쓸개에 뜨물이 든 사람들처럼 헤헤거리고 웃거나 서로 부아통을 지르며 역증난 소리로 언쟁을 벌이고 하찮은 일에도 천둥소리에 검둥개 날뛰듯 북새통을 벌였다. 그 모두가 주위의 시선을 끌기 위한 계책에서 나온 행동거지였다는 것을 주위에선 알 턱이 없었다. 나귀까지 이끄는 상단이 현동과 내성을 겨냥하고 간다는 소문이 여러 길손들 사이에 짜하게 퍼지기를 정한조는 바라고 있었다. 말래를 떠난 지 나흘째 되던 해질녘에 그들 상단은 때맞추어 내성에 당도하였다. 조마조마한 가운데 내성에 당도한 그날이 바로 소금과 미역 그리고 건어물을 실어오기로 윤기호와 약조했던 날이기도 했다. 소금 상단이 여러 패로 나누어 발행함으로써 셈속이 빠르고 용력이 드세다는 적당들의 세력을 여러 갈래로 분산시키는 데는 성공한 셈이었다. 하지만 소금 상단의 정한조나 곽개천 같은 행수들이 적소의 동정을 살피거나 도륙낼 작정으로 휘하의 상단을 동원했다는 소식이 그들 두령에게 입문되기 전에 적당들을 소탕하지 못하면 되려 어육지변으로 떼송장이 생길 가망이 있었다. 숙객 사이인 윤기호의 어물 도가에 행담을 풀고 서사로부터 임치표(任置票)를 받은 다음 당나귀들도 단골 마방에 맡겼다. 어떤 행중은 거래 사정에 따라, 수결한 어음(於音)이나 환간(煥簡)을 받거나 삭채표(朔債票), 보음지(保音紙)를 받기도 하였다. 거래 문서를 발행한 윤기호가 경상도 내륙은 물론 멀리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소금이나 건어물을 사러 온 원매자들과 흥정하여 가절(價折)을 놓게 되면, 구문을 떼고 피륙이나 잡곡 그리고 유기그릇으로 바꿔 소금 상단에 넘긴다. 그러면 척매(斥賣)든 도환(倒換)이든 소금 상단과의 거래는 일단 끝이 난다. 일행은 우선 내성까지 미복잠행 중이었던 길세만의 거처부터 찾아야겠기에 수하 행중을 풀어 매복처를 수소문하도록 하였다. 먼저 약조한 대로라면 잠행시켰던 일행 모두가 내성의 숫막거리 근처에 은신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밤이 이슥하도록 찾아다녔으나, 그들의 행방은 핫바지에 방귀 새듯 온데간데없었다. 자정이 가깝도록 뜬눈으로 기다리던 정한조는 척후로 띄운 동무들 거처 찾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는 서둘러 수하 동무 둘을 데리고 도방에서 지척인 어물 도가를 찾아갔다. 지게문을 한참이나 흔들고 나서야 곤하게 잠이 들었던 윤기호 내외와 서사가 깨어났다. 홀딱 벗고 누웠던 내외가 부산스럽게 잠자리를 수습하기를 기다렸다. 어섯눈조차 뜨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윤기호의 뒷덜미를 잡아채어 일행이 유숙하기로 하였던 도방 뒤쪽의 작둣간으로 데리고 갔다. 한바탕 조리질쳐서 혼쭐을 뺀 다음 작둣간 안으로 잡아 엎치려는 일행을 뒤돌아보며 영문을 모르는 윤기호가 눈발을 날카롭게 흡뜨며 성깔을 부렸다. “이 무슨 해괴한 거조요?”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글쎄올시다…. 별반 본 게 없는데….” “노인장의 처지는 십분 알고 있으나, 근자에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낌새가 있었던 떨거지들이 분천을 지나다녔다면 슬쩍 귀띔을 해 주시지요.” “글쎄…, 내가 이젠 기력도 쇠약한 데다 안질까지 앓고 있어서 거루를 타고 건너다니는 사람들의 면목을 딱히 분별하지도 못한다오.” “그들이 강을 건너 내성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소, 아니면 울진 쪽으로 오는 것을 보았소?” “글쎄요. 짐 없이 건너다니는 장정들이 어디 한둘이랍디까.” “노인장에게 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할 것이오. 혹여 왈패들에게 조리돌림이라도 당할까 두려운 게로군요.” 정한조가 그렇게 말하자 늙은 사공은 드디어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그런 패거리들이 며칠 전에는 내성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질을 앓고 있어 보이는 게 없다면서 붉은 고추만 골라 딴다더니… 잘도 봤구려.” “요사이는 좀 나아졌지요.” “노인장과 내가 트고 지내기는 이게 몇 년째요?” “십오륙 년 가까이 된 것 같으오.” “노인장이나 나나 불상놈으로 손가락질받으며 곡경을 치르는 처지지만, 우리끼리 서로 두남두고 의리는 상하지 말고 지냅시다.” 분천 강변에서 40년 넘게 거룻배를 저으면서 늙어 가는 처지라면, 강을 건너다니는 인총들 중에서 어떤 자들이 수사리 살이 하는 자이며, 어떤 자가 무뢰배이며, 어떤 자가 행상인지 거울 속 들여다보듯이 훤하게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길손들의 내왕이 빈번한 강가의 사공들은 산적들의 방조는 물론이고 결탁까지도 서슴없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강 건너 맞은편에는 요사이 들어 보기 드물었던 도포짜리 한 사람이 바라보였다. 그는 새앙머리 처자와 괴춤에 견술 한 병을 차고 수행하는 행랑짜리 하나를 데리고 서서 거룻배가 닿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한가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속내가 다급하고 갈 길이 먼 소금 상단에 비하면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등짐과 쪽지게를 실은 거룻배는 그제야 사공막 앞을 떠나 강심을 향해 끄덕끄덕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때 누구의 입에선가 구성진 사설이 흘러나왔다. 소금 미역 어물 지고 내성장을 언제 가노 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한평생을 넘는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한양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 [열린세상] 친구여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열린세상] 친구여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

    며칠 전 친구를 만났다. 3년 전에 50세의 나이로 명예퇴직을 한 친구는 퇴직금으로 지방에 조그만 가게를 열고 갖은 고생을 했지만 결국 투자금을 다 날리고 말았다. 열과 성을 다해 회사 일에 매진하다 날벼락처럼 강제 퇴직을 당했을 때, 친구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를 이고 주름살이 깊게 팬 초췌한 모습의 그를 보면서 너무 마음이 쓰렸다. 젊은 시절 최루탄 가스에 눈물·콧물을 흘리면서 돌멩이를 던지고, 대기업 임원으로 지치지 않고 일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한 외동아들이 아직 취직을 못 하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50대는 군사독재에 맞서 1987년의 6월 항쟁을 주도한 세대이다. 이 세대로 하여금 젊은 시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거리에 나서게 한 고귀한 신념은 무엇일까. 그것은 독재에 맞서 빼앗긴 자유를 되찾는 것이리라. 교정에 무장 군인과 탱크를 진주시키고, 광주를 비롯한 이 땅 곳곳에서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자행하는 광포한 독재 정권에 맞서, 그들은 젊은 날의 고귀한 피를 아낌없이 흘렸던 것이다.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를 보면, 더욱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면서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던 젊은 남녀가 등장한다. 이후 둘은 결혼을 해 부부가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길은 갈라진다. 남편은 점점 타락해 가는 자본주의 한국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젊은 날의 순수한 열정과 신념을 지키고자 자신을 외곬으로 몰아간다. 그런 그의 모습은 소금물에 전 날개로 냉혹한 현실의 바다를 힘겹게 건너려는 나비와 같은 존재에 비유된다. 반면 아내는 일상에 안주한 채 ‘글로벌 교육’을 위해 자식을 중국에 유학 보낸다. 50대를 맞이한 6월 항쟁 세대 대부분은 앞선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중간자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들 대부분은 취직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평범한 일상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젊은 시절 피 흘리며 추구했던 숭고한 정신을 늘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고뇌와 민주화 세대라는 자부심이 뒤섞인 채, 가정과 사회를 위해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세대가 50대이다. 그런 50대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또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사회는 물론이고 가정에서조차 버림받은 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아무런 노후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자식도 건사하지 못한 채 직장으로부터 버림받은 친구의 막다른 삶 앞에서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해 줄 수 없었다. 그것은 친구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암울하고 불행한 시대를 살아온 50대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냐고 울먹이면서 힘없이 고개를 떨구던 친구의 모습을 나는 차마 지켜볼 수가 없었다.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에는 4·19 세대가 혁명 후 18년이 지난 뒤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이 시에서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의 그림자마저 잊고 속물이 되어 살아가지만, 그런 제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 고개를 떨구는 4·19 세대의 자기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에게 꼭 이 말은 해주고 싶다. 친구여, 고개를 떨구지 마라. 우리가 고개를 떨굴 일은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옛사랑의 그림자마저 망각한 상황에 대해서일 뿐이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더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던 그 정신을 떠올리면서 오늘의 암담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에서 이런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온 우리 50대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여,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라.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시생처럼 아예 엄지머리로 지내는 것이 신수에 편한 것이겠습니다.” “딱히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지게를 지고 제사를 지내도 제멋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식솔을 두고 성가심을 받는 것도 겪어보면 사람 사는 낙이 아니겠나.” “행중 식구에게 부대끼는 것도 시생에게는 힘에 겨운데요.” “세상사란 보기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 있네. 조그만 구멍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바위를 높다랗게 쌓았다고 볼 수도 있고, 다르게 보면 높은 성벽을 단단하게 쌓기 위해서 둥그런 구멍을 터놓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인지 시생은 대중을 못 하겠습니다.” 그때 권재만은 말없이 웃고 말았다. 상단 식구는 오랜만에 종아리에 칭칭 감았던 통행전과 신들메를 풀어 거풍을 시키거나, 담배 잎이나 신갈나무 잎사귀로 밑창을 깐 짚신들을 벗어 햇볕에 말리기도 하였다. 뼈에까지 사무쳤던 땀을 들인 축들이 나귀 등에서 복물짐을 내리는 광경을 멀리 비켜 앉아 지켜보면서, 정한조는 그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문득, 콧등을 스치는 강바람이 크게 차갑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강가에는 부들솜을 뭉친 것 같은 버들개지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멀리 바라보이는 몇 그루의 버드나무는 어느새 연둣빛을 띠며 봄바람을 타고 주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분천 강가 길턱에는 나른한 봄빛이 찾아든 것이었다. 시절이 4월 하순으로 들어서면, 질경이에 새순이 돋고, 노린내 나는 괴불주머니, 노란 꽃다지, 눈 속에 피는 복수초, 자주색의 제비꽃, 쇠뜨기, 진달래, 곤드레 잎들이 피면서 수리부엉이가 번식을 시작한다. 너무 바쁘게 설치며 살아온 터라 시절이 바뀌는 것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슴속으로 가만히 스며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봄볕에 취해 앉은 채로 꼬박 졸고 말았다. 상단 일행이 등짐을 거룻배로 옮겨 싣느라 북새통을 벌이는 중에 정한조는 사공막 앞에 앉아 흐릿한 눈으로 강 건너를 바라보는 늙은 사공 곁으로 갔다. 그가 나이로 보아선 띠 동갑으로 십수년 손위였지만 안면을 트고 흉허물 없이 지낸 지도 십 년이 넘는 사이였다. “요지간에 짐이나 괴나리봇짐 없이 거루를 타고 건너 다닌 패거리가 여럿이었소?” 강가에 기거하면서 늙어가는 사공이라면 지금 정한조가 건넨 언사가 언중유골임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사공으로 연명하려면 알고 있는 것이 많다 할지라도 미주알고주알 주둥이를 헤프게 놀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언사를 사양하지 않고 대중없이 나불거렸다간 사공막이 불살라지고 옆구리에 칼침을 맞는 변고를 겪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울진 염전과 현동과 내성을 수시로 오가는 소금 상단 행수와는 자별한 사이로, 나중에야 조리돌림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닌 보살로 손사래만 칠 수 없는 처지였다. 금쪽 같은 됫박 소금도 수시로 얻어먹은 전력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입이 간질간질하였으나 또다시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처지는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 거룻배에서 노질하고 있는 두 젊은이는 모두 늙은이 슬하에 거두고 있는 소생들이었다. 낡은 거룻배 한 척에 늙은이를 비롯해서 주렁주렁 매달린 가솔의 생계가 붙잡혀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간질거리던 입술이 굳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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