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소과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표정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정치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전차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감염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89
  • 라이터 생산/트로닉스(앞서가는 기업)

    ◎부도딛고 러 진출… 시장 10% 점유/5천달러 투자… 연매출 6백만달러/구소과학자 고용 첨단기술 개발도 단돈 5천달러를 투자,러시아 라이터 시장을 휩쓸고 있는 중소기업인이 있다.국내에서의 부도를 딛고 재기에 성공한 그의 성공담은 현지에서도 화제다. 트로닉스사의 유시흥 사장(50)이 그 주인공.연 3백만개의 라이터를 생산,전체 러시아 시장의 10%를 차지하고 있다.라이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현지 생산업체 가운데 최고의 점유율이다. 유사장은 지난 90년 모스크바를 방문,라이터가 절대 부족한 것에서 사업아이디어를 얻었다.『시장조사를 위해 국산 1회용 라이터 5백개를 가져가 크렘린 궁 앞에서 팔아 봤더니 순식간에 동이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91년 현지 투자를 위한 상담을 진행하던중 자신의 국내 라이터 제조업체가 연대보증에 얽혀 부도를 냈다.이것저것 다 정리하고 손에 남은 것이 5천달러.유사장은 러시아가 무덤이라는 생각으로 모스크바로 향했다. 현지 한국인들과 러시아인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 현지 라디오 공장내 2백평을 연간 1백50달러에 2년 동안 빌리고 월 20달러의 인건비로 30명의 현지인을 고용했다.10만달러짜리 라이터 생산기계도 3천달러에 얻었다.지금은 말도 안되는 헐값이지만 당시엔 혼란기라 가능했다고 한다.현재 인건비는 모스크바의 경우 2백달러에 육박하고 교외도 1백달러 선이다. 『언어문제는 현지 한국인을 고용,해결했지만 러시아인들은 자존심이 강해 융합이 어려웠습니다.무리한 독촉은 피하고 서서히 한국식 경영을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생산을 늘렸습니다』 라이터가 귀한만큼 여러차례 사용하는 주입식을 생산,1∼2달러 선에 8가지 모델을 개발했다.생산규모는 급성장,시작 당시 30명에 불과했던 근로자수가 현재 5백여명에 이르고 있다.매출도 10만달러에서 지난 해 6백만달러로 급성장했고,지난 해부터 시작한 금속가공 등이 호조를 보여 올해는 1천만달러로 목표를 높였다. 유사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93년부터 사업 다각화에 나서 축적된 자본으로 기술개발업에 승부수를 던졌다.구소련이 무너지면서 실업자가 된 과학자 10명을 고용,이곳의 첨단 무기기술을 산업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냉각기술과 소각로 등 3건의 기술을 개발,한국의 세화 플랜트사와 대광산업 등에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기술이전을 하는 실적을 올렸다.유사장은 『일본에서 기술이전을 구걸하기보다 이곳의 고급인력을 활용,첨단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빠르다』며 『풍부한 원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고 현지 중소기업의 가동률이 저조해 소비재 분야에서 유망한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 인쇄물 폭주/홍보물“홍수”… 인쇄소 즐거운비명(접전 6·27선거)

    ◎투표용지 12억장… 후보 팸플릿 용지난/우편물 평소 2배… 배달 비상체제 가동 지방선거 입후보 등록이 12일 마감되고 후보자들의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홍보용 인쇄물이 넘쳐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부산 등 전국의 대도시 인쇄소에서는 폭주하는 주문물량을 대기 위해 시설과 인원을 총동원 해 연일 밤샘작업을 하고 있고 우체국들에도 평소보다 2배이상 많은 우편물들이 밀려들고 있다.일선 구청에서는 선거용 홍보물량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에 대비,환경미화원들은 물론 새로 「기동대」를 편성하는 등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전국에서 1만5천4백여명이 출마하는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자의 공식 홍보물과 투표용지만 6천1백15t,12억5천3백만장에 이른다.가구마다 40여장이나 배포되는 셈이다. 전국의 우체국들에는 이날 하오부터 후보자들의 우편물이 크게 늘고 있다.서울 마포우체국의 한 관계자는 『선거공보 등이 집중적으로 접수될 이번주에는 평소보다 2배이상 많은 하루 60만통가량의 우편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우편물이 늘어나자 각 구청에서는 「선거철 기동미화반」 등을 긴급편성해 운영하고 있다.서울 광진구청 청소과에서는 미화원 18명과 2.5t 트럭 2대로 「선거 기동대」를 편성해 유세장등에 동원하고 있다.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하철역 주변 2곳에도 상오 4∼6시 사이 6명의 미화원을 고정 배치하고 있다.광진구청 관계자는 『관내 13개 동에서 선거기간동안 25만장의 명함이 쏟아지는등 하루평균 종이 인쇄물 같은 재활용 쓰레기가 평소보다 3t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이러한 사정은 다른 구청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양의 선전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컬러인쇄소도 비상체제에 들어갔다.선전벽보와 선거공보,책자형 및 전단형 인쇄물,개인명함형 인쇄물 등 후보자용 홍보물 5종은 대부분 컬러 인쇄물이다.그러나 전국 4천6백28개 인쇄소가운데 컬러인쇄가 가능한 곳은 1천3백48곳에 불과하다.컬러인쇄 능력이 5억장가량 부족한 셈이다. 컬러인쇄소의 후보자 인쇄물 신청 건수는 최고 9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최고 15명의 입후보자 홍보물을 처리할 수 있는 을지로 3가의 D인쇄소는 이날까지 2배이상인 37명이나 몰려들어 중소업체에 하청을 주고 밤샘작업을 하는 등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그러나 일부 후보자는 법정기한까지 홍보물을 선관위에 제출하지 못하는 사태도 일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심지어 같은 선거구 후보자들이 같은 인쇄소에 주문,선거공보나 전단형 인쇄물의 앞뒤면이 서로 다른 후보자의 내용으로 잘못 인쇄되는 수도 있어 부작용이 심각한 실정이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쇄물 파동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면서 『지방 후보들이 인쇄의 질 등을 고려해 대도시지역 인쇄소에 주문하지만 대도시 인쇄소도 폭주하는 물량을 제대로 소화해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 자동차 밀수(두만강 7백리:12)

    ◎일제 중고차 1대3천∼4천불에 거래/ 두만강은 외줄기로 흘러가는 국경의 강이다.그 강의 유역에는 외진 마을들도 있다.십여년 전만 해도 기차구경을 못했다는 촌로들이 있을 정도였다.해방이 되던 해에 소련군 지프가 길도 아닌 길을 따라 천신만고 끝에 마을로 들어오자 차 앞머리에 여물을 수북하게 갔다놓았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있다.마치 소에게 여물을 먹이로 주기라도 하듯이…. ○차 앞머리에 여물까지 놔 그런 삼수갑산 같은 마을이 용정시 대소과수농장과 백금향 사이에 있다.세찬 물결과 깊은 산,그리고 나무숲에 갇힌 마을이다.이 마을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승용차들이 들어왔다.하이야라고 부르는 승용차들인데,이 산골마을에 몰려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이를테면 산골마을이 승용차 밀수기지로 이용되었던 것이다.마을 사람들은 밀수꾼들이 떨어뜨린 떡고물 얻어먹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신바람이 난다. 『하루에도 이 길로 매미차(승용차가 매미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 처럼 땅에 납작 엎드린다고 해서 생긴 말)들이 수십대씩 지나갔디.그래서 조용하던 동네가 벅적댔지 않았갔시요.그때 마을 사람들은 뗏목을 묶어 매미차를 실어오는 일을 했수다.하룻 저녁 나가 어슬렁대면 사오백원은 벌었다 이겁네다』 자동차 밀수는 1992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그러나 그해 가을에 꼬리를 사렸는데,세계 각국의 중고차는 다 흘러들어온 것 처럼 보였다.한대에 3천∼4천달러씩 하는 일본 도요타계열의 승용차로부터 몇만달러나 하는 미국제 차까지 다양하기 이를데 없었다.이들 승용차는 연변에 들어와 패쪽을 달고 곱배기 값으로 팔려 중국 각지에 흩어져 나갔다.외국 땅에서 실컷 굴러다니다 목숨만 간당간당 붙어 들어온 중고차가 중국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이 무렵에 모든 정력을 자동차 밀수에 바친 사람들이 많다.해관과 같은 유관기관원 주머니에 찔러주고 중개인 호주머니 역시 곯지않게 해주고도 두배 장사가 되었다.훈춘시 한 무역회사원 이강돈(35)씨 말을 들어보면 자동차 밀수가 화수분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6만달러를 감춰가지고 로시야(러시아)로 건너갔디요.거기주먹들과 미리 선이 닿아 있어서 도착한 날로 흥정에 들어가 차 다섯대를 샀더랬습네다.길이가 7.5m나 되는 미제 링컨표와 도요타 넉대였디요.주먹들이 전신무장을 하고 우리가 산 차를 끌고 나오는 데 로시야 경찰이 추격해옵데다.우리 차가 속력을 내니까 추격을 포기했는지 로시야 경찰차가 안 보여서 겨우 안심했디요.국경선까지 배웅한 주먹패거리들과 작별하고 장령자 해관을 쏜살 같이 빠져나와 차를 그날 다 처분했수다.경비를 빼고 칠십만원이 남습데다』 ○노인들 달라진 세상 한탄 자동차밀수가 성행하면서 달러 씀씀이가 커져서 중국 여러곳에서 달러가 연변으로 몰려들었다.달러값도 물론 천정부지로 뛰었다.그래서 국정가격이 1달러에 8.27원인데 암시장가격은 12원까지 오른 적도 있다.전국에서 달러값이 제일 높은 지역이 연변이라고 한다.달러 장사꾼도 생겨나 비행기를 타고 남방 연해지구까지 펄펄 뛰어 다닌다.달러수집에도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자동차밀수가 주로 두만강연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음식업자와 여관업자들이 이사가는데강아지 따라가듯 강믿으로 옮겨갔다.해괴한 바람이 산 좋고 물 맑은 강가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놓은 꼴이 되었다.그래서 노인들은 달라진 세상을 한탄하기 일쑤다.용정시 백금향 백금촌에서 만난 박길남(68)노인도 그런 노인의 한분이었다. 『광복 전에도 백금향에 요리(요릿집)들이 있긴 했디.강 건너 회령과 무산에는 제법 고운 기생들이 욱실거리고….우리 동네 박아무개는 생강장사로 돈을 버네까 기생놀이에 빠져버렸디.한번은 생강을 사서 배 한척에 골똑 싣고 가서 받은 돈을 몽땅 이화자라는 기생 밑에 바쳤다 이거야.그런데 기생년이 돈 떨어지니끼리 박아무개를 내쫓아버렸디.박아무개가 쫓겨나오는 마당에 기생더러 옷을 한번 벗어달라고 간청하고는 시한수를 지었다고 기래요』 그 시는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멀리서 보면 죽은 말의 눈이요,가끼이서 보면 상처가 깊구나.더구나 이도 없는 짧은 입인데,생강 한배를 다 삼켰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는 한시였다고 한다.비록 돈은 다 날렸을지라도 위트가 있는 한량이었던 모양이다.기생 사타구니에 빠지면 패가망신이 자명하다는 말을 누누이 한 노인은 백금 산골에 들어온 음식점이나 여관·가라오케가 못마땅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차밀수로 떼돈을 쥐게 된 사람들은 고기반찬에 얼큰히들 술을 먹고는 가라오케에 들어가 한때의 피로를 풀고는 여급의 젖가슴에 팁을 끼워주었다.화룡시 숭선진 가라오케에서 반년간 육체봉사를 한 어느 여인은 사내들의 손가락새에 끼워 묻어나온 돈으로 차 한대를 밀수해서 연길에 들어가 택시업을 벌였다고 한다. ○93년10월 된서리 맞아 뒤늦게 밀수소식에 접한 한국 장사꾼들이 부랴부랴 연변으로 달려왔다.그들은 연줄이 닿는대로 계약을 하고는 허둥지둥 돌아가 중고차를 모아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다.많이는 산동쪽으로 흘렀지만 더러는 연변 가까이 로시야부두와 북조선 청진에도 배를 정박시켰단다.조금만 흥분거리가 있으면 자랑하지 않고 못배기는 민족이라 한국 신문에는 중국으로 들어간 차가 얼마인데 그중 정상무역과 밀수의 비례며,새 차와 중고차 숫자는 얼마라고 똑똑히 밝혔다.한국보다 엄청 많은 수량의 중고품을 쏘고도 입을 싹 다시고 아닌 보살 능청을 떤 일본은 너무나 대조적이라 하겠다. 1993년10월부터 연변에서는 차밀수를 타격하기 시작했다.주에서는 밀수타격사무실을 전문 내오고 해관과 군대를 동원하였다.망둥이가 뛴다고 전라도 빗자루가 뛰는 식으로 늑장을 친 사람들의 골통이 깨지기 시작했다.한국 차 수십대를 실은 연변 장사꾼의 배가 산동 앞바다에서 해군들에게 나포된 일은 전국을 들썩하게 들었다 놓았다.선불로 차까지 사놓았지만 길이 막혀버렸으니 가슴을 치고 통곡한들 용빼는 수가 없었다.
  • 한국측 초대작가 9인의 면모/무등벌서 세계적 미술축제

    ◎「광주 비엔날레」준비 한창/30∼60대 고른 분포… 활동영역 다양/한국미술 현주소 국내외 소개 큰 기대/경주서 워크숍 갖고 주제토론도 광복 50주년과 「95 미술의 해」에 개최되는 한국미술 최대의 행사이자 국내 최초의 국제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9월20일∼11월20일 광주중외공원 문화벨트)가 한국측 초대작가 선정으로 그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 및 오세아니아 담당 커미셔너인 유홍준(미술평론가·영남대교수)씨가 공개토론회(4월1일·서울 가람미술관)를 거쳐 선정하고 제9차 집행위원회의 인준을 거쳐 지난달 21일 최종 확정한 한국작가는 안성금 김명혜 김익령 김정헌 임옥상 서정태 신경호 홍성담 우제길씨 등 9명.설치 도예 한국화 서양화 각 분야에서 확고한 개성으로 당당하게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들이다.연령층 또한 30대 중반에서 60대까지 골고루 분포돼 있고 활동영역이 다양해 한국 미술문화의 현주소를 국내외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권에서 유일한비엔날레로 창설된 광주비엔날레.그 역사의 맨 첫장을 장식하게 될 이들은 4∼5일 경주 불국사관광호텔에서 워크숍을 갖고 어떤 방법으로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경계를 넘어」에 부합되는 작품을 제작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모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지난 86년 도불,일본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안성금씨(37)는 다양한 소재의 벽을 위주로 설치작품을 선보일 계획.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 설치도 계획하고 있다. 서울대 조소과와 뉴욕 프랫인스티튜트를 졸업한 김명혜씨(35)는 조각적 영역에 기술공학을 접목시킨 참신한 아이디어의 설치작품으로 관심을 모으는 신예 작가.그는 냉전이 와해되면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경계를 다시 찾아놓고 나서 그것을 넘겠다는 생각으로 입체작업을 구상중이다. 서울대 선후배 사이인 김정헌(49)임옥상(46)신경호(46)씨는 한국현대정치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다뤄 제도권 미술에 충격을 던진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들.김씨는 「경계」를 넘어설 수 있으려면 좀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스러움에 초점을 맞춘 평면과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경계를 가진 나라』라는 임씨는 경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토대로 한 설치 및 평면을 선보일 계획이다. 상징주의 수법을 현실감 있게 끌어안는 작업을 보여온 신씨의 경우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5·18 광주항쟁을 다룰 예정이다. 빛과 어둠의 대비로 드라마틱한 조형세계를 연출해온 우제길씨(53)는 「마음의 경계」를 넘는 방식으로 빛에 초점을 맞춘 설치와 입체작업을 택했다.또 광주라는 지역적·정치적 특성을 견지하면서 민중의 삶과 애환을 작품에 형상화해 온 홍성담씨(40)는 평면작업을 기본으로 비디오 설치를 추가,경계가 무너지지 않고 있는 90년대의 현실을 짚어볼 계획이다. 서정태씨(43)는 한국적 정서와 미감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신선하게 구성해 나가고 있는 작가.그는 사람들의 사이를 경계짓는 내면적 갈등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작업방식으로 표현해 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호주전시관계로 이번 워크숍에 불참한 김익녕씨(60)의 경우 관객과 작품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포용력 있는 현대도예 설치를 구상중이라고 알려왔다. 이처럼 주제에 대한 접근방식이나 해석은 각기 달랐지만 참가 작가들의 공통된 의지는 『광주비엔날레의 창립전 출품작가로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것이었다.
  • 영농철 잇단 「씨앗 분쟁」/수확물·맛 등 제품설명서와 차이

    ◎보상액수 싸고 농민­종묘사 다툼 영농철을 맞아 농민과 종묘회사 간에 「씨앗 분쟁」이 잦다.채소나 과일 등의 씨앗을 사들여 수확한 결과 맛이나 당도 등이 설명서에 들어 있는 제품의 특성과 차이가 나거나,심지어는 품종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30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부산과 경남 창원 지역의 농민들은 올들어 서울 한농종묘에서 「평강 알타리 무」의 씨앗 4천5백ℓ(2백80㏊분)를 구입,77㏊에 심었으나 알타리 무보다 값이 싼 일반 무가 더러 나왔다.이 회사는 농림수산부의 조사 결과 농민들이 산 씨앗의 평균 7%가 일반 무인 것으로 드러나 지난 17일부터 오는 10월 13일까지 1백80일간 판매금지 조치를 받았다. 회사 측은 고의성이 없으므로 비닐하우스 1백50평당 종자 값인 4만원을 보상해 주겠다고 제안한 반면 농민들은 10만원을 요구,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또 서울 S종묘에서 「홍토좌 FR」라는 참외 씨앗을 사다가 60㏊에 심은 대구 달성군과 충북 음성군 지역의 1백여 농가도 생육이 부진하고 참외의 색깔이 나쁘다며 회사 측과 마찰을 빚고 있다.농림수산부는 지난 12일 농민의 피해보상에 대한 분쟁조정을 한국 소비자보호원에 의뢰했다. 농림수산부 강상헌 채소과장은 『시·도에 종묘 관련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1차적으로 분쟁을 해결토록 한 뒤 그래도 안되면 소비자+호원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혈육의 정/연변은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두만강 7백리:6)

    ◎거의 조선족이 알선… 70년대부터 재회 급증/한달간 머물며 “못다한 정”나누고 여행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고국 어느쪽의 혈육이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남북의 혈육들이 이념적 갈등 때문에 고국땅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고나 할까.조선족들의 이런 처지는 남북으로 갈라진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속된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에 조선족들이 끼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문혁이전엔 엄두 못내 그러나 남북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문화혁명 이전에는 상봉을 주선하기는 커녕 조선족 자신들조차도 남한에 혈연,특히 이름깨나 난 혈연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문화혁명 당시에는 이런 꼬투리만 잡혀도 호된 투쟁을 받았다.남한에 혈연을 둔 것도 죄가되어 실제 곤욕을 치른 조선족들도 많다. 용정시 백금향에 들렀을 때 백금발전소 최몽필 문화잠장으로부터 생소한 이야기를 들었다.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의 6촌 계수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발전소에 살면서 좀 떨어진 향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밥을 지어준다는 그 여인의 이름은 윤순옥(64).막상 만났더니 오랜 고생 탓인지는 몰라도 노쇠한 그늘이 역역했다. 그녀는 24살이 되던 해에 12살이나 더 먹은 박용태(함북 길주군 태생으로 72년 작고)의 후실로 들어왔다.후취 장가를 들 무렵 3살난 아들이 있었다.박용태의 부친은 박관일,박관세,박관선 3형제였는데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5촌이 되는 사람들이다.보학도 배우지 않았거니와 족보도 확인하지도 못한 나로서 그렇다 아니다를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방송국에 편지 부탁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박용태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관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신사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형제분이 찍은 사진이었다.밤이면 이불 속에서 사진을 보이면서 박정희라고 이야기 할 때 그녀는 모골이 송연했다.그때만 해도 적국의 대통령과 인척관계가 된다는 사실만이라도 감옥 밥을 무던히 먹을 죄였던 것이다.벽에 걸어둔사진틀 뒤에 몰래 보관하고 집식구들끼리만 돌려 보곤 했다. 그러다가 문화혁명 시기에 우연히 사진이 치보주임 최홍운씨의 눈에 띄었다.최 주임은 박정희라는 것은 몰랐지만 해방전 박용태의 신사복차림을 보고는 소각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귀띔해 주었다.그러나 박씨는 사진을 농속에 깊숙히 감추어 두었다.만약 당시 최주임이 고자질을 했더라면 박정희와의 관계는 뒤로 제쳐놓고도 투쟁을 받았을 것이다.1972년 박씨가 세상을 뜨자 사진을 불살라버렸다. 한중수교가 이루어 진 후 일가 친척 없이 고독하게 살아온 그녀는 한국 KBS사회교육방송국에 친척을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냈다.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과 친척이라고 선을 달아 줄 것을 요구한 편지가 꽤나 된다면서 그녀의 혈육을 찾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지는 못했다.사회교육방송국에서 종종 보내온 책자와 편지를 지금도 보배처럼 보관중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다. 『령감은 고생만 하다 너무 일찍 가셨디요.기런 북새통을 살다보니 박대통령 사진도 못 남겼수다.다가저의 불찰이디요.저는 박씨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남이라면 남일테지만….자식들한테 혈육도 모르고 지내게 하는 거이 가슴 아픕네다』 그러나 두만강을 사이 두고 한동안 친선을 유지해온 중국과 북한은 사정이 달라 혈육간의 왕래가 비교적 잦았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방승섭(68)은 여기서 김일성주석으로 호칭하는 그의 처형 아들이었다.다시 말하면 김일성주석의 본처 김정숙의 언니가 바로 방승섭의 모친이다.70년대 초 두 나라 정부에서 교섭하여 방승섭부부,어머니,두 아들과 딸하나를 데려갔다.1986년 대소과수농장의 관치성농장장은 조선을 방문하는 기회에 청진시 칠세대에 사는 방씨 댁을 찾아갔다.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후한 접대를 해주었다.방씨 부인은 3년 전에 대소과수농장을 찾아온 적도 있다. 용정시 지신(일제시기 화룡현 다라즈)의 출신이고 항일투쟁에 차가했다가 현재 조선인민군에서 장군이 된 김광협의 친척들은 50년대와 60년대에 북한으로 이주했다.김광협의 7촌 조카 김상호는 1946년 참군하여 조선으로 나간 후 소련 유학을 하고돌아와 조선인민군 공군 부사령이 되었다고 한다.김상호는 어머니와 일가친척을 모두 모셔갔다. 연변에 살던 김광협의 친척들은 소작농으로 가정 살림이 째지게 가난했다.세발의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살림인지라 김광협의 동생은 한쪽 눈이 먼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동생 일가가 평양에 도착하던 날 김광협은 처 유명옥과 함께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제수를 보는 그의 마음은 참 딱했을 것이다.그런만큼 그는 제수를 끔찍히도 아꼈다고 한다.순 농군으로부터 국가 간부가 된 동생은 처하고 불화했는데 그 일 때문에 형님한테서 모진 꾸지람을 들은 다음부터 가정화목을 지켰다는 것이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노인들의 이야기다. 김광협의 6촌 형님 김병협은 북흥촌 이기희씨의 고모부이다.그 이씨가 회령 사탕공장에 있을때 들었다는 이야기는 김광협 일가의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그러네까 64년도 일입네다.김광협 6촌형의 딸,내게는 고종사촌 되는 누이가 두만강을 건너 평양 갔다 오는 걸음에 우리집에 들렸댔습네다.그 고종4촌 말이 김광협 집 앞대문엔 보초가 다섯이나 서 있더라고 기래요.삼촌을 집에 모신 김광협은 아침 문안을 꼭 드리고 식사도 독상을 대접하더랍데다.김광협은 식구들과 식당칸에서 밥을 먹으면서 요리가 나오면 모처럼 온 조카딸에게 연신 넘겨주었다는 거디요.조카딸도 화룡영화관 해설질을 하던 남편과 함께 나중에 평양으로 불러들였디요』 ○남북 오누이 극적 상봉 그러한 북한과의 일변도 왕래가 변화를 일으켜 딴판을 맞고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남쪽의 혈육과도 정을 통하게 되었다.두만강을 훌쩍 건너는 것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우회하는 먼거리에 남한이 있을지라도 무척 가까워졌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일이다.중국 조선족 한 분은 북과 남에 사촌형제들이 있다.그해 북에 건너가 4촌 여동생한테 남에 사는 형한테서 온 편지를 전했다.편지를 받아쥔 여동생은 흐느껴 울었다.얼마나 그립던 오빠였던가!여동생의 남편은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되어 남으로 밀고 내려갔다. 그분은 얼마있다가 남한의 사촌형님 집으로 갔다.형을 만난 그는 깜짝 놀랐다.형님이 앞을 못보는 장님이 되었던 것이다.6·25전쟁 당시 국군에 있었던 형은 어느 한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는 것이다.어찌 보면 매부의 총에 부상을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타의에 의해 혈육간에 살생을 해온 우리 민족처럼 뼈에 사무치는 한을 가진 민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분은 여동생과 형님이 중국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그러자 형님은 『소경인 내가 볼수도 없는 신세이고 만나면 여동생한테 서러움만 더 줄것이니 친척 동생더러 대신 가서 만나라』고 했다.결국 친 오누이의 만남은 무산되었지만 다른 혈육이 중국에서 뜻깊은 눈물의 상봉을 가졌다.그들은 만 한달간 한 집에 머물면서 한 많은 회포를 풀었다.그래서 두만강가는 이래저래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모양이다.
  • 가고 온 사람들(두만강 7백리:5)

    ◎광복­6·25이후­문혁때 귀향 줄이어/60년대말까지 쉽게 도강… 65% 다시 연변에/“지금은 갈수 없는 땅”강 건너 바라보며 눈물 ○보따리 이고 강 건너 끼룩 끼룩 끼루룩…. 한떼의 기러기가 일찍 얼음이 녹은 강 한구석을 박차고 북한땅을 멀리 돌아 날아간다.걸음을 멈추고 강 건너 마을을 바라보았다.한낱 짐승들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강.그렇지 못한 우리에게 두만강은 늘 한을 던져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 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옛날 선조들이 불렀다는 「월강곡」을 되뇌어 보았다.나라의 독립을 위해 개척민에 뽑혀 산길을 찾아 나선 선조들은 밀물처럼 강을 건너왔다.그리고 또 광복 후 이주 당사자들과 후손들은 고국이 그리워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시 강을 되건너 썰물같이 대거 고국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귀향은 광복 당시였다.일제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나라가 독립을 맞자 조선족들은 보따리를 싸지고 두만강을 건넜다.당시 귀향민들은 두가지 부류다.대부분의 사람들은조상들이 묻힌 땅을 찾아 귀향했다.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고향을 찾았지만 살수가 없어 이남으로 곧장 월남했다.광복이 되자 연변과 북한의 공산당 정부는 일제주구 청산부터 시작했다.훈춘의 대지주이고 대동아전쟁때 비행기를 헌납하고 동경에 가서 천황의 접견을 받은 한희삼은 물론 다른 지주와 친일파들은 처단 당했다.항일부대 토벌에 공로가 있는 용정의 박도끼는 북한으로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청진에서 잡혀 총살당했다고 한다. 화룡현 신선대 대장 김일로는 일제가 연길공원에 동상까지 만들어 세웠던 김동환 다음으로 가는 주구였다.1940년 3월25일 일본인 산림경찰대장과 함께 자기의 병졸들을 휘몰아 독립군을 추격하다가 홍기하에서 매복습격을 받아 1백20여명의 졸개를 잃었다.김일로도 졸개들을 호령하다가 벌린 입으로 탄알이 꿰뚫고 지나갔지만 요행히 목숨은 건졌다.이남으로 건너간 그는 여생을 편히 보내다가 수원에서 일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번째 대 귀향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였다.한국전쟁(6·25)이후의 일인데 전후복구 지원을 위해 많은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들어갔던 것이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에서만도 49호가 나갔다.그리고 인민공사가 시작되면서 굶어 죽게 되자 다시 살길을 찾아 북으로 건너갔다.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최태경 일가는 19 62년에 함경북도 연사군으로 이사했다.최씨의 막내 딸 최해옥은 연사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중 5학년 때 평양으로 뽑혀갔는데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서 「꽃파는 처녀」에서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인재들이 많이 갔다.중국에서의 반우파투쟁이 지식인들을 잡는 운동이나 다름이 없고 민족심을 가진 사람들은 반동적 민족주의자로 되는 판국이라 떠나들 갔다.유명한 시인 주선우,작곡가 정진옥,소설가 김동구,아동문학가 채택룡 등 문학예술계 인사들도 떠나갔다.용정시 삼합향 승적 신재룡은 길림성 공업학원 학생이고 축구를 잘 했다.지금 그는 조선체육대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너왔다 도로 가고 용정시 삼합향 북흥촌 이기희(54)는 연변대학을 다니다가 2학년 때인 1961년 7월 북한에 들어가 만 6년을 살고 다시 돌아왔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 살다가 다시 연변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당시 회령의 사탕공장건설은 연변에서 건너간 귀향민이 대부분이였댔습니다.나는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 공무직장에 배치 받았디요.직장장의 이름을 딴 김희진작업반에 배치합데다.그때 국가 철도상이자 함북도 건설사업소 소장으로 파견나왔던 김주봉이 하루는 우리 공장에 와서 연설을 하면서 「중국에서 하루에 백오십명씩 건너오고 또 매일 백여명씩 되넘어갑니다.조국에 왔으면 참답게 살아야지 이것이 뭡니까」라고 비판을 했디.어떤 날 출근하면 많은 사람이 없어집데다.알아보면 중국으로 돌아간거디요.67년 7월에 나도 가정을 데리고 도강을 했으니 아마 이튿날 내 자리가 비어 야단이었을 것이 뻔합데다.이북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호구를 붙여주지 않다가 67년 9월 정부에서 한꺼번에 복적시켰댔시요』 세번째 귀향은 문화대혁명시기이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만 해도 항일에 참가했던 사람들 70여명 모두가 귀순 분자로 투쟁을 맞았으니 2백50호 중에 70호가 적이된 셈이었다.그중 10여호가 북한으로 도망갔다.용정시 백금향 백금촌 차덕균은 일제시기 동경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다.일본에서 공부한 사실이 간첩조건이 되어 투쟁을 맞았다.모진 매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북한으로 갔는데 떠나던 날 큰 딸이 친척 집에 가고 없어서 두고 간것이 생이별이 되었다.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사이섬에서 총 사격을 받고 수백명이 종성으로 집체도주 한 일이 대표적 사건이다.선구촌 문영기(54)씨도 그 사건에 끼었던 한사람이다.캉다(강대)요 홍색이요 하는 조직간에 말로하던 시비질이 주먹질,돌팔매질,몽둥이 싸움으로 번졌다. ○“북에 남아라”만류도 1967년7월29일 연길 캉다에서 개산툰에 와 개산툰 캉다와 합세하여 홍색을 쳤다.싸움은 공장울안에서 일어났는데 쌍방은 돌멩이를 던지고 창으로 찔렀다.홍색에서는 열세에 몰리자 해관의 총을 내다 불질을 해댔다.캉다패들은 결국 선구 대안 두만강 복판 사이섬으로 쫓겨나고 말았다.8월2일 홍색은 사이섬을 포위하고 투항하라고 공포를 놓았는데 총소리를 들은 북한땅 종성 사람들이 강변으로 나와 어서 건너오라고 소리를 쳤다.3백여명이 모조리 강을 건너갔으나 여자 하나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북한에서는 대우를 제법 해주었다.그러면서 돌아가면 잘못 된다고 북한에 남으라는 선전을 했지만 몇사람 이외에 모두가 두달 후 되돌아왔다.주모자들은 감옥에 들어가 1년씩 구류를 사는 것으로 그쳤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당시의 일들이 억울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그때 북한으로 건너가 거주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손해배상을 받아갔다.용정시 삼합진 승지촌 김광진은 지방 자위단에 있었다는 죄로 투쟁을 당하다 죽었다.그래서 온 가정이 야간 도주하여 회령으로 건너갔다가 지난 92년에 아들 김상연이 와서 용정시 민정국에 상소,3만원(인민폐)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현재 화룡시 덕화진 남평촌의 내 숙부(유인상·77)는 낮이면 두만강가에 나가 건너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지으시기 일쑤다.내 고모가 60년도에 조선 청진으로 간 이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조카들은 60년대 초에 다녀갔고 몇해전까지는 편지라도 오갔는데 벌써 5년째 소식조차 모르고 있다.앞길이 멀지 않은 숙부는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부친(유민상·84년 별세)께서도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말끝마다 외우시다가 한많은 세상을 뜨셨다.
  • 고난의 시절/대약진 운동·문혁때 갖은 고초(두만강 7백리:4)

    ◎1957년 대약진/조선족 농토 모두 국유화… 군사훈련 시켜/1966년 문혁/5만여 동포 간첩·반혁명분자 몰아 고문 고난의 시대와 오늘 요즘 연변의 향진 일선 간부들은 저녁이면 술에 곤죽이 되어 돌아온다.그리고는 아침에 식사도 변변히 못하고 출근하기가 일쑤여서 위와 간을 버렸다고 한다.그 이유는 상부에서 지시는 내려오고 농민들은 치받아 중간에서 농민들을 달래느라 술을 마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래서 간부질(노릇)하려면 술재간을 키워야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런 것이 모두 세월 탓이다.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간부들에게 대든다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화룡시 남평진 유신촌에 사는 유택모(68)노인은 요새 간부들을 미더워 하면서 개혁개방의 시대에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개혁시대 보람 느끼며 『간부들도 우리네 사정을 알고 위에는 슬슬 거짓말도 하는것 같습데다.우리에게 이롭게 하자는 거디요.고생 끝에 낙이라고 좋은 세월이야요.그리고 등소평 동지는 정말로 감사한 분이십네다.개혁개방을 하니 얼마나 좋습네까.문화혁명 때에 가을을 해도 두달씩 했고 온 하루 뼈 빠지게 일 해도 5전(벼 한근이 9전이였다)수입이였디요.보리고개를 넘기 바쁘게 식량이 떨어지고….도거리(땅을 개인한테 나누어 줌을 이르는 말)를 하니 일년내내 하던 일도 세네달이면 되고 산량이 많이 나고 정말 옛날 지주보다도 훨씬 잘살게 됐디뭡네까.농한기면 버섯이며 약재들을 캐서 팔아 목돈을 쥐기도 하디요.작년에 송이를 따서 열흘 사이에 큰 돈을 벌었다구요.문화혁명땐 자본주의 복벽을 방지한다고 버섯은 고사하고 닭알 한알 팔지 못하게 했으니 원…』 그러나 불모지를 가꾸어 먹고 살만하게 된 조선족 들에게 지난날 불행은 크게 두번 찾아왔다.중국의 조선족들이 못자리판을 이룬 연변에서 「대약진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57년이다.이 때에 간부들은 요즘과 같은 선의의 거짓말이 아닌 진짜 거짓말을 식은죽 떠 먹듯 내뱉았다.모든 개인의 재산을 국유화하면서 3년안에 영국을 따라잡는 다고 말대포를 펑펑 쏘아댔다.그 거짓말을 참말로 알아들은 연변 사람들은 몇년 후 차를 사게 되면누가 운전을 할 것이냐를 너나 없이 걱정할 정도였다.꿈도 참 야무졌다. 대약진 운동에 따라 향을 인민공사,촌을 대대,자연부락을 소대로 조직했다.또 농민군사화를 위해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온 마을이 집체식당에서 끼니를 꾸렸다.당시 생활은 집체화여서 먹는 것은 물론 잠자리 까지도 합숙화를 시도했다.농기구의 기계화 명목으로 손수레 바퀴축에 마구잡이로 베어링을 넣었다.제대로 굴러갈 턱이 없었는데,약진운동은 마치 그 손수레 같은 것이었다. 화룡시 덕화진 천중백(65)노인이 회고하는 당시 연변 농촌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수운 꼴이 많다.그러나 어디 웃음인들 웃을 여력이 있었겠는가….하여튼 그 절박했던 어려운 시절의 사연을 귀담아 들어 보았다. 『하루 진종일 일을 하고도 밤이 이슥해야 잠을 잤디요.밤에는 학습과 논쟁(토론)을 하라고 기래요.눈을 비비면 새벽부터 군사훈련을 시켰댔는데,농촌사람들이 제대로 할리 만무 아닙네까.아 글쎄 「우로 돌앗」하면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꾸만 위켠으로 돌아 두만강을 향합데다.훈련 받는데서 보면 위켠에 두만강이 있었댓시요.기리니끼리 농사일도 안되고….해봤자 내 일이 아니니까 건성건성이었디요.그런데 명령은 주살나게 떨어져 정신차릴 틈도 없습디다』 ○“3년내 영추월”외쳐 대약진 운동은 허상에 불과했다.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위에서 농사땅 깊이갈이(심경)를 명령하면 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한 곡식을 그대로 둔채 흙을 덮어버렸다.그리고 나서 다음해 씨앗을 뿌리면 곡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땅속에 썩지도 않은 콩대 등이 그대로 깔려있으니 흙이 들떠 곡식이 자랄 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보고는 늘 전량 완수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위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맞장구를 쳤다.깊이갈이를 해서 1㏊당 36만근의 수확은 거뜬할 것이라는 맞장구였다.36만근이 수확기에 가서는 결국 1만근도 안되게 줄지만,콩꼬투리 하나 남기지 않고 실어가버렸다.먹을 양식이 남지 않았다.그래서 이삭이라도 주워올까 하면,또 명령이 떨어졌다.발갈이요,추비요 하고 다그쳐 제것이라고는 곡식 한톨 가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1966년 5월부터 대륙을 휩쓸어 버린 이른바 문화대혁명은 「대약진 운동」을 뺨쳤다.연변에서 문화대혁명 당시 반혁명분자,간첩,우파,지주,부농,나쁜 분자,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반동적 지식분자 등의 혐의로 투쟁을 받은 사람은 무려 5만여명이었다.간부,인테리는 모두 투쟁 대상이었다.외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거나 편지거래가 있었다면 간첩이고 심지어는 말 한마디 잘못해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용정시 삼합진 북흥의 한인수는 사람들이 목에다가 충(모택동한테 충성한다는 뜻으로 심장을 상징하는 복숭아형 빨간 판에 충자를 쓴 패쪽)자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고 『병아리 잡아 먹는 개처럼 패쪽은 왜 메고 다니는가』라고 해서 반년동안 투쟁을 당했다.그리고 한 무식한 할머니는 모택동의 어록「최저한도의 지식분자」를 「쇠좃 한동이」로 잘못 알고 외우다 1년동안을 욕보았다.한어를 모르는 송석봉은 모두들 한어로 구호를 부르는데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다가 엉겁결에 『나두…』하고 한마디 외쳤다가 한달동안 끌려다녔다.송석봉의 별명은 지금도「나두」다. 투쟁수단의 가혹정도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매는 약과,납을 녹여서 먹이고 쇠를 달구어 물리고 널판에 못을 박고 그 위로 걷게하고 온돌방에 가두어놓고 물 한모금 안주고 불을 때서 데우는 등의 고금 고문수단이 총동원 되었다. ○자살하는 사람 속출 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조창선은 불찜질을 당한 그날 밤 두만강 건너 벼랑밑에 가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시체가 발견되었는데도 죽은 사람의 허리띠가 조선 상표가 붙은 것이라는 것을 트집잡아 중국 사람이 아니라고 못가져 오게 했다.결국 조선에 사는 친척들이 매장을 했다.지금도 묘는 강 건너에 있다. 문혁 당시 주도권을 잡고 사람잡이에 날뛴 사람은 대개 일자무식의 농민,노동자,군인이었다.그들은 노농병선전대라는 이름으로 농촌과 도시의 공장과 직장을 쥐고 흔들었다. 그들의 무지의 실례가 하나 있다.당시 소수민족의 언어를 한어화하였는데 조선말도 한어를 기준으로 고쳤다.연변인민출판사로 들어온 노동자선전대는 조선말 고유어를 한어로 고치는데 요일도 한어화 하여 성기로 고칠것을 주장하고 나섰다.요일이 성기로 되면 월요일은 성기일,화요일은 성기이,일요일(성기일)은 또 월요일과 똑같은 성기일이 될것인데 어떻게 가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걸려 결국 포기되었다.만약 이런 걸림돌이 없었더라면 문화혁명 10년동안의 3천6백55일은 모두 성기로 변했을 것이다.
  • 행원 「자율봉사」 큰 성과/장은,신입사원 「인성강화」 프로 도입

    ◎정박아시설서 빨래/꽃동네 노인 돌보기/환경미화원과 청소/3일간 봉사대상 스스로 찾아 활동/“산다는 의미 깨달았다” 예상밖 호응 최근 일부기업이 신입사원채용기준에 사회봉사항목를 포함시키는 등 인재평가기준이 점차 「능력」위주에서 「인성」우위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장기신용은행이 올 신입사원연수과정에 도입한 「H·R(인성재강화)」프로그램이 잔잔한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H·R」프로그램은 장기신용은행이 올초부터 지난 4일까지 50여일 81명의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수과정에 포함된 2박3일간의 자원봉사활동.지난해에는 경비제한 없이 국내 아무데나 여행할 수 있도록 했으나 올해는 사회적 가치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연수프로그램을 대폭 바꿨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계획부터 실행·평가까지 모두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봉사활동을 할 단체나 기관을 스스로 선정,섭외과정을 거쳐 일정한 봉사활동을 한 뒤 자유로운 양식으로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면 된다. 지난달 18일부터 3일동안 실시된 「H·R」를 통해 이들이 벌인 봉사활동은 정박아시설에서의 빨래·청소,고아원의 잡일돕기,노인정·탁아소에서의 봉사,어린이놀이터 페인트칠하기,환경미화원 보조,공동묘지 무연고묘 돌보기,헌혈권유 등 각양각색이었다. 매일 새벽에 나와 하루종일 강서구청 청소과 환경미화원과 함께 청소를 한 최진환(27)씨는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준만(29)씨는 부인과 함께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아가 무의탁노인들을 돌보고 온 뒤 『늘 세상에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 강사이 오가던 인정(두만강 7백리:2)

    ◎60년대초엔 북한냉면 먹으러 수시 왕래/물길러 오가던 아낙네들 문화혁명뒤에 사라져/용정 백금발전소 전기는 아직도 상계리에 공급 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김 노인은 마을 앞 강건너 북한 땅인 무산군 화평리(화평리­옛 이름은 봇더기)에 사는 조카잔치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어느날 강에 나갔다가 강 건너에서 목욕을 하는 조카를 보았다.아무 날 잔치를 한다고 높은 소리로 알리더라는 것이다.그런데 미처 출국 수속을 하지 못해 갈 수 없었던 그는 잔치날 강언덕에 서서 형님 집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가깝고도 먼 이웃땅 참으로 두만강 양안의 마을은 가까우면서도 멀다.거리로 계산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고 국법으로 따지면 멀다.그러나 철조망을 치고 콘크리트 담벽을 쌓은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눈 한반도 군사분계선에 대면 두만강은 보통강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만강은 국경선 구실을 변변히 못했다.강 양쪽의 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통행증이나 여권 따위는 필요도 없이 왕래를 했다.용정시 개산둔진 선구촌 사람들은 냉면 먹으러 대안의 종성으로 다녔다고 한다.개산둔에 가야 식당추념들을 할 수 있었는데 20여리나 떨어졌고 국수맛도 엉망이었다.그래서 가까운 강건너로 가면 걸음도 덜고 입맛도 돋굴 수 있었으니 진짜 꿩 먹고 알 먹기였다.더구나 종성의 냉면은 함경도에서도 제일이어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연변 텔레비전방송국 아나운서 박홍섭씨는 어릴 때 삼촌을 따라 강을 건너 친척 잔치에 참가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한달을 놀다가 돌아오려니 그만 얼음이 풀리기 시작했디 뭡네까.교두로는 감히 올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강이 다 풀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디요.그래서 두껍고 긴 널빤지를 가져다 량켠 얼음우에 걸쳐놓고 허리에 바줄을 동여매고 건너왔댔시요』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중국과 북한관계가 냉랭해지면서 국경선은 쌀쌀한 냉기를 풍기기 시작했다.그러나 1970년 주은래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후 완화되긴 했다.겨울이면 두만강에서 아이들은 함께 썰매나스케이트를 타는 경우도 있다.말하자면 중국과 북한의 국제경기라 하겠다. 용정시 백금향 동광촌 제3촌민소조(옛명 현암동)는 10여호 오붓한 마을이다.몇년 전까지만해도 이 마을에서는 두만강물을 길어 음료수로 했다.겨울에 강이 얼면 아예 대안의 북한 상계리에 건너가 물을 길어왔다.온 마을이 물동이를 이고 지게를 지고 국경을 넘어 이국으로 간다.그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출국했다간 입국했다.아마 중국에서 출국 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을 꼽으려면 이 마을 아낙들일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동삼 내내 펄럭거리고 다니자니 미안하기 짝없더만요.상계리 분들이 얼굴한번 찡그리는 일없이 반겨 줄수록 죄송했디요.그래서 가끔 사탕,과자며 과일이며 떡을 가져다 드리곤 했는데,그러면 상계리 분들은 「이러지 마시라우요.엎음 갚음이랍니다」고 기래요.「우리가 쓰는 전기가 백금발전소의 전기 아닙니까」라면서….물고생을 무던히도 했디요.그때는 언제면 집에서 물을 받아 먹나고 학수고대했는데….정부에서 이런 사정을 알고 뽐프를 놓아주어서야물동이를 팽개치게 되었다구요.그런데 정작 물고생을 덜고 나자 상계리의 고마운 분들이 그리워집디다.물을 긷는다는 핑계로 국경을 넘나들었는데 이젠 세울 명목을 잃은거디요. 동광 마을 김씨가 들려준 국경을 드락거릴 시절의 회고담이다. 북한 땅 상계리와 서쪽으로 마주한 용정리 백금향 안개골에 들어선 백금발전소는 7백리 두만강에서 유일무이한 발전소다.1960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리처 이호성과장이 안개골을 답사하고 발전소 건설구상을 구체화했다.그해부터 착수한 공사는 만 10년이 걸려 지난 1970년 5월부터 정식 발전을 시작했다.그런데 상계리는 조개형국으로 된 언덕이 북으로 뻗어내려 두만강이 병풍처럼 둘러선 두렁바위(둘러선 바위라고 해서 불려진 이름)를 핥으며 10여리를 굽이 돌아간다.강을 따라 전깃줄을 늘리려면 인력과 물력 낭비가 엄청나 사전에 북한측과 협의하고 곧바로 조개언덕으로 전선대를 세우게 되었다.그 보상으로 상계리와 상계리에 있는 북한 공전소에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안개골이 전기골로 백금발전소 퇴직간부 서현석(67·경상북도 영천군 고견면 태생)씨는 『예전에 안개골은 이름 그대로 늘 안개에 묻혀 있었수다.발전소가 세워진 후로 안개골은 별무리가 내려 앉은 격이 되었지.안개골이 전등골로 탈바꿈한 셈이우다』라고 말했다. 누누천년 이 땅을 적시며 흘러온 두만강은 우리 민족의 발목을 잡는 테였다.재난을 덮어씌우고 혈육간의 이별을 주고,그래서 아리랑고개 다음 가는 눈물이 강이 아니였던가! 하지만 반 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온 우리는 끝내 두만강을 정복하고 두만강문화를 창조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문명시대가 열리면서 두만강 푸른 물이 누렇게 혼탁해졌다.그래도 두만강연안 사람들은 여전히 동방예의지국의 배달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백금향 백금촌 제2촌민소조 박길남(함북 무산군 풍경면 소학동 태생)노인을 찾아갔을 때 그 집에서는 꿩고깃국에 햇 이밥으로 후더운 접대를 했다.연변에서 평강벌 입살이 제일미라 만주국시기 공품이었다고 하지만 백금의 입쌀도 못지 않았다.최몽필잠장은 이밥맛이 어떠냐고 묻고는 수입해온 종자라고 부언했다. 『백금은 연변에서 해발고가 가장 높고 서리가 빨리 내려 논벼산량이 많이 떨어지는 땅입네다.그런데 백금 제4촌민소조 분이 어느 해 가을 강을 건너가 조선(북한)논에서 잘 영근 벼이삭을 몰래 가져 왔댔습니다.이듬해 그것을 심었는데 그 품종이 지금 백금에 많이 퍼진겁네다.서리가 빨리오는 고산지대에 맞는 우량품종을 수입 한 걸로 봐주시라요.그 다음부터 좋은 소출을 내게 되고 맛도 훨씬 좋아졌고…』 ○봄이면 과일꽃 만개 지난해 11월 25일 나는 우리 민족의 후더운 정을 한가슴 지니고 용정시 대소 과수농장을 찾았다.시루형국의 두개의 시루봉사이 안침진 곳에 터를 잡고 강건너 오국산성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모여 앉은 대소 과수농장은 봄이면 과일꽃속에 묻히고 가을이면 싱그러운 사과향기에 젖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된다.현재 1천7백명의 인구에 4백여명 노동자를 가진 이 농장의 과수밭은 4백50㏊.국광,홍성,진홍,계광 등 20여가지 사과품종의 총산이 4백50만근이라고 했다. 광복전에 대소 땅은 거의가 이씨 성을 가진 지주 차지였다.천성이 부지런한 이씨 지주는 북한땅 길주에서 사과묘목을 사다가 아래 시루봉과 웃 시루봉줄기가 만나는 움푹지고 양지바른 비탈에 심었다.그리고 식구들과 소작인들을 총 동원해서 사과밭을 가꾸었다.사과원을 만들면서 이씨지주의 며느리는 일에 지쳐 죽기까지 했다.이씨지주는 며느리의 묘를 사과밭속에 썼는데 지금도 임자 없는 묘가 쓸쓸히 남아있다.그러나 광복이 나고 공산당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지주를 청산하자 자기가 심은 사과가 열매를 맺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씨지주는 몰래 떠나버렸다. 1964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덕해 제1대 주장이 대소로 시찰을 왔을 때 촌에서는 이씨지주과원의 사과를 대접했다.홍조를 띤 처녀의 볼마냥 탐스러운 사과를 받아든 주장은 대대적으로 사과원을 꾸려볼 구상을 했다.그는 요녕성 개현에서 초빙받아온 과수전문가 관치성(만족)을 대소에 파견하여 농장을 세웠다.이씨지주의 대담한 시도가 없었더라면 오늘 날 두만강변에 사과원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몇해 전에 대소과수농장허경진(46)부농장장이 20여리 떨어진 백금향에 초빙되어 가 30㏊ 땅에 사과나무를 심었지만 매서운 강바람에 겨울을 나면 얼어 죽어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일이 있다. 대소 맞은 쪽 대안 마을은 북한 함북 회령군 상수리다.그들은 강 하나 사이두고 대소에 사과꽃이 만발한 것을 볼 때마다 승벽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어느 해엔가 그들은 대소의 사과묘목을 떠다가 옮겼다.한해 겨울을 났는데 무사했다.신심이 생긴 회령군에서는 과수지도원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여 시찰을 했다.원래 회령군에는 1천여㏊의 살구나무와 다른 과일나무가 있을 뿐 사과는 없었던 것이다.1985년 가을 대소에서는 묘목을 대량 보내고 이듬해 4월 22일 대소과수 농장에서 관치성,허경진,김수돈(57)등 책임자와 기술자들이 회령으로 건너갔다.그들은 회령군의 6개 이를 순회하며 기술지도를 했고 자동차로 접수를 싣고 가서 접목 등 지도를 해주기도 했다.85년부터 88년까지 4년동안 대소과수농장에서는 묘목과 접수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1988년 회령군에서는 세 상자의 사과를 따가지고 대소과수농장으로 와서 감사드렸다.1993년 여름에는 대소에 친척이 있는 상수 사람이 친척앞으로 편지를 보내 과수농약을 보내달라고 했다.농장지도부에서는 토론하고 밤을 타서 농약상자들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주었다.이치로 따지면 국경을 사사로이 넘나드는 것은 불법이다.하지만 후더운 인간애앞에서 그런 것들이 때로는 무시되었다.
  • 포항공대 11.3대1 경쟁/동국대 조소과 46대1 최고

    ◎4개대원서마감/오늘 마감 서울대·고대 정원 넘어/내일까지 막판 눈치 심할듯 전기대 1백27개 대학 가운데 포항공대 등 4개대학이 4일 맨 먼저 원서접수를 최종 마감한 결과 서울대등 명문대와 입시일이 달라 복수지원이 가능한 포항공대가 11대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고 입시일 9일에 논술고사만을 치르는 동국대도 9.2대1의 높은 지원율을 나타냈다. 또 5일 원서 접수를 마감하는 서울대와 고려대는 인기학과를 비롯한 상당수 학과에 소신지원자들이 몰려 정원을 넘어섰으나 6일까지 접수하는 연세·서강·이화여대 등 대부분 서울소재 대학은 접수창구가 한산해 막판 눈치작전이 예상된다. 포항공대는 1백80명모집에 2천33명이 지원,평균 11.28대1을 기록한 가운데 재료금속 13.3대1,수학 12.7대1,기계 11.8대1 등 10개 전학과가 상당히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 94학년도 입시에서 19.2대1의 높은 지원율을 보였던 동국대는 4천7백32명 정원에 4만3천5백97명이 원서를 내 9.2대1의 경쟁률에 조소학과가 46대1로 최고 경쟁률을 나타냈고 연극연기학과 44대1 등 높은 지원율을 보인 학과가 많았다. 또한 이날 접수를 마감한 서울교대는 개교이래 최고인 15.7대1,인천교대는 9.7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교육대학에도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한편 5일 접수를 마감하는 서울대는 4일까지 5천45명 정원에 7천92명이 지원,1.41대1의 전체 경쟁률에 법학과 1.93대1,정치학과 2.11대1,경제학과군 1.34대1,의예과 1.73대1,물리학과 1.07대1,컴퓨터공학과 1.06대1 등 인기학과와 중문과 등 어문계 학과에 지원자들이 몰려 1백8개 모집단위 가운데 93개가 정원을 넘어섰다. 83개 학과에서 4천4백51명을 모집하는 고려대는 원서접수 이틀째인 이날 4천6백10명이 지원,평균 1.04대1의 경쟁률에 47개학과가 미달됐다. 학과별로는 의예과가 3.47대1로 가장 높았고 법학과 1.83대1,경영학과 1.14대1,경제학과 0.79대1,정치외교학과 1.44대1,전자공학과 1.07대1 등이었다. 4일 접수를 시작한 연세대는 건축공학과(1.28대1)와 성악과(1.53대1),주거환경학과(1.08대1) 등 5개 학과만 정원을 넘겼을 뿐 대부분이 정원을 채우지못해 평균 경쟁률 0.55대1로 지원자가 적었다.
  • 35개 통합시 내년1천30명 감원/내무부 시달

    ◎시·군 중복 3백40개과 통폐합/경제·대민서비스 관련과는 신설 내무부는 8일 2∼3개국을 신·증설토록 하는 전국 35개 통합시의 행정기구 개편안을 확정,일선 시·도에 시달했다. 개편안은 통합시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청에는 인구규모와 지역특성에 따라 농정국 또는 산업경제국 등 2∼3개 국을,지방의회에는 사무국을 각각 신설토록 하고 있다. 또 지역주민들에 대한 행정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통합시청에 청소과,상·수도과,건축과 등을 신·증설한다. 이에 따라 지금의 통합대상 69개 시·군의 81개국은 통합후에는 1백98개로 늘어난다. 그러나 시·군에 함께 설치돼 있던 과와 계는 통합돼 과는 1천2백65개에서 9백25개로,계는 3천9백54개에서 3천6개로 각각 줄어든다. 일부 행정기구 신·증설에도 불구하고 중복되는 행정부서의 통합으로 모두 2천4백42명의 인력이 남게되며 내년에 1천30명을 비롯,오는 99년까지 연차적으로 인원을 감축한다.
  • 김장철 채소·양념값 껑충/열흘새 배추31·무43% 올라

    ◎고추/1근 4천2백원/마늘/㎏ 2천7백원/주말 고비로 오름세 꺾일듯 김장채소와 양념류의 값이 뛰고 있다.추위로 출하량이 주는 반면 김장성수기를 맞아 수요는 늘기 때문이다. 6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배추의 도매가격(중품기준)은 6t 한차에 85만원으로 지난달 25일의 65만원보다 30.8%,무는 1백만원으로 42.9%가 각각 올랐다.양념류의 경우 고추는 6백g에 4천2백원으로 지난달 25일의 4천1백원보다 2.4%,마늘은 ㎏당 2천7백원으로 12.5%가 각각 올랐다.양파도 ㎏당 6백80원으로 열흘 사이에 23.6%가 뛰었다. 강상헌 농림수산부 채소과장은 『성수기를 맞아 채소류와 양념류값이 오르고 있으나 걱정할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이번 주말을 고비로 오름세가 한풀 꺾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 고추 과잉생산 가격파동 우려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고추가 과잉 생산돼 가격 파동이 우려된다. 24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올해 고추의 실 수확량은 17만6천t으로 지난 해(18만7천t)보다는 1만1천t이 적지만 수요량인 16만t보다는 1만6천t이 많다.지난 해에 남은 1만t을 합하면 수요량보다 16.3%(2만6천t)가 많은 셈이다. 농림수산부 강상헌 채소과장은 『가뭄으로 작황은 나빴으나 재배면적이 8만9천㏊로 지난 해보다 4천㏊‘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내년 1월부터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따라 4천3백여t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김장 성수기가 끝나는 연말이나 연초부터 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따라서 판매 적기인 요즈음 출하량을 늘려 제 값을 받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 올 김장비용/4인가족 79,000원

    ◎양념류값 올라 작년보다 5% 늘어/무·배추는 작황 좋아 수급원활 기대 가족이 4명인 가구의 올해 김장 비용은 지난 해(7만5천1백68)보다 4.9%가 는 7만8천8백75원이 들 것 같다. 농림수산부는 10일 올 김장철에는 배추와 무의 가구당 소비량이 지난 해보다 각 1개씩 줄어드나,배추 값이 폭락했던 지난 해보다 비싸지고 마늘과 생굴 및 젓갈 등의 양념류와 해산물 값도 다소 오를 것으로 보고 이같이 전망했다.가구당 소비량을 배추의 경우 19포기,무 22개,고추 4.5근,마늘 2.3㎏으로 잡고 산출했다. 주재료인 무와 배추·고추 및 마늘 값은 5만1천6백31원,파와 생강·당근·젓갈·소금 등의 부재료는 2만7천2백44원이다.품목별 단가는 12월 5일의 소비자 예상 가격을 기준으로 했다. 농림수산부는 10일부터 오는 12월 20일까지를 김장 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주요 소비지에 7백여개의 김장시장을 개설하기로 했다.주산지의 농협과 대도시의 공판장에는 김장채소 알선센터를 설치하고 농협 차량 3천7백여대를 수송에 동원키로 했다. 한편 올해 김장 채소의 수급은무난할 전망이다.강상헌 농림수산부 채소과장은 『무의 생산 예상량은 지난 해보다 6%가 는 1백만t,배추는 계획량과 같은 1백80만t으로 전망된다』며 『재배 면적이 적정하고 작황도 좋기 때문에 기상 이변이 없는 한 수급에는 지장이 없다』고 내다봤다.
  • 세리­법무사­기업 “구조적 비리”/기소앞둔 「도세사건」 중간점검

    ◎「상납­비호」 부패 연결고리 드러나/영수증검증 계속… 착복 60억 넘을듯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착수 한달여만인 다음달 1일 기소할 방침이어서 일단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실무를 담당하는 세무계장과 직원등 하위직 공무원들이 지방세 영수증의 위조에서 부터 숨기기까지 조직적으로 교묘하게 저질른 범행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더욱이 이들을 지휘감독하는 상급자들이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비호해줬으며 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법무사까지 결탁된 「총체적 비리」인 것으로 밝혀졌다.그 결과 현재 모두 21명이 구속됐고 그 과정에서 사건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자 최기선인천시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번 사건의 수사는 경찰이 사건 일체를 검찰에 송치한 지난 13일부터 본격화됐다. 검찰은 수사에 들어가 ▲분실된 91·92년도 취득세의 행방을 찾는 작업 ▲횡령규모 파악을 위한 영수증 대조작업 ▲고위층 관련등 세갈래로 나누어 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경찰의 사건수사초기에 없어진 91·92년도분 영수증의 행방을 찾는 작업에 수사력을 집중,지난 22일 영수증을 발견하면서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 영수증을 토대로 영수증 대조작업을 벌여 지금까지 모두 1천9백63건에 60억2천만원의 횡령규모를 밝혀냈다.현재 영수증 검증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다소 늘어날 것으로 검찰은 보고있다. 특히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안씨등 과의 연결고리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지난 15일 인천시의 세무업무를 총괄하면서 안씨의 비리사실을 묵인해준 하정현 인천시 감사1계장(53)이 구속되는 것을 시작으로 이광전 인천시 보사국장(53),인천시 정책보좌관인 강기병씨(60)등 고위 공무원 3명이 이들과 결탁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의 범행에 법무사사무소 직원들도 상당해 개입된 것으로 들어났고 기업체 역시 결탁된 것으로 밝혀져 지금까지 모두 21명이 구속됐다. 검찰조사 결과 안씨는 모두 8개의 은행도장을 위조,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구청에서 세금을 받게 한뒤 감면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 착복하는 「원시적인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안씨는 부하직원들에게 횡령액중 10∼30% 정도를 떼어준 것으로 밝혀졌다.법무사와 공모해 등록세를 착복해 구속된 양인숙씨(29·북구청 세무과 9급)도 법무사사무소 직원들에게 같은 수법으로 영수증을 모은뒤 10∼15%의 수고비를 건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주목받는 대목은 기업체를 상대로한 세금횡령이다. 안씨와 이씨등은 체납한 기업에 직접 찾아가 세금납부를 독촉을 한뒤 기업측이 자금사정을 호소하면 「분할납부」「어음수납」등 특혜를 주겠다고 유인,세금을 내게한 뒤 가짜 영수증을 건네주고,금액이 클 경우 일부는 납부하고 일부는 착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에따라 기소과정에서 주범 안씨와 양씨,이승록씨등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국고손실)를 적용할 방침이다.이 조항은 회계사무에 종사하는 자가 국고에 손실을 끼칠 것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른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 ▲국고손실이 5억원이상일 때는 무기징역 또는 5년이상의 징역 ▲국고손실이 5천만원이상5억원미만 일때는 3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경실련 고발접수 도세 유형/종소세환급분 지불통보후 “무소식”/“양도세 감면” 유혹 부동산거래 종용/휴가비 노골적 요구… 중기 “속앓이”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9일 서울 종로5가 사무실에서 지난 15일부터 2주동안 자체 고발창구에 접수된 60여건의 세무비리 고발사례를 분석,검토한 결과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20건을 공개했다. 경실련은 다음주초 감사원에 관련자료 일체를 넘겨 조사를 의뢰키로 했다. 경실련이 이날 공개한 비리유형은 크게 ▲거래금액 축소조작에 의한 세금탈세(2건) ▲소득세,취득세 과·오납 및 부가세 환급비리(5건) ▲부동산중개업자,세무브로커에 의한 부가세 및 종합토지세 탈루(2건) ▲세금부과시 대민접촉에 의한 뇌물요구(5건) ▲건축관련 세무부정(3건) ▲기타(3건)등이다. 이들 세무비리는 지방세 관련 9건,국세 관련 11건이며 담당기관은 서울이 5개 구청,6개 세무서,국세청 등이며 지방의 경우 5개 시,2개 구청이 해당됐다. 특히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인천 북구청관련 고발도 포함돼 있다. 구체적인 고발사례는 다음과 같다. 『(익명요구)지난 3년동안 종합소득세에 대한 연말 환급분을 매년 20여만원씩 모두 60여만원을 지불통보만 하고 돌려주지 않았다(인천B구청)』 『(무역업을 하는 김모씨)세무서 담당자가 부가가치세 환급금 1천5백만원가운데 5백만원을 공제한 1천만원만 환급해주고 세무서 장부에는 다 지급한 것처럼 처리하고 있다.올 1·4분기도 그렇게 당했다(서울 D세무서)』 『(익명요구)강남일대 부동산중개업자들이 신축한지 3년된 아파트소유자들에게 「잘아는 세무서 담당자를 통해 양도세를 적게 내도록 해주겠다」며 매매를 종용하고 있고 실제로 양도세를 적게내고 매매되고 있다(서울 K세무서)』 『(익명요구)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남편이 담당 세무공무원의 정기적인 금품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결국 도산하고 말았다(서울 Y세무서)』 『(학원강사 박모씨)부친이 경기도 Y시에서 가구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세무공무원들이 세금을 감면해 주는 대신 뇌물을 요구하여 불경기에 더욱 애로사항이 많다(경기도 Y세무서)』 『(익명요구)영세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부가세과 직원이 해마다 여름휴가비를 노골적으로 요구해 10만원씩 줬다(서울 J구청)』 『(익명의 부동산중개업자)건물 1개동을 신축,준공검사 후 취득세 5천만원이 부과됐으나 구청 세무1과 담당직원이 「공사비를 조정해 취득세를 조금만 물도록 해주겠다」며 그 대가로 상납을 요구해 거액을 주고 취득세는 절반인 2천5백만원만 냈다(서울 K구청 세무1과 담당자 박모씨)』 『(성북구에 사는 법무사사무소 직원)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인천과는 달리 서울과 부산은 전산화돼 있어 영수증 위조가 힘들다고 하지만 경험상 납세필증이 위조되어 있는 영수증을 많이 봤다(서울 S구청 세무과)』 경실련은 이처럼 구체적인 세무비리 사례들이 고발됨에 따라 이날 하오 서울시와 부산시측에 「상업은행에 수납된 15개 지방세 세목별,월별,구청별 징수내역」에 대한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했다.▷사건일지◁ 8월중순 부평경찰서 내사 9월6일 양인숙 최병창씨등 2명 구속 9월7일 인천시 북구청에 대한 특별감사 착수 91,92년 취득세 증발사실 확인 9월8일 이승록 수배 9월10일 안영휘 구속 9월12일 인천시 조광건법무사 8억8천만원 횡령혐의 고발 9월13일 검찰로 사건송치 9월14일 설애자 구속(법무사사무소 사무장),김형수(38)미국으 로 도피 9월15일 하정현 감사1계장 구속 9월17일 이광전 시 보건사회국장(전북구청장)구속 9월18일 강기병 시 정책보좌관 구속 9월19일 최기선 인천시장 사임 9월22일 분실됐던 91,92 취득세 영수증 발견 9월24일 이종심 세무과장등 4명 구속 9월25일 이덕환씨등 4명 구속 9월26일 이승록 구속 9월27일 기업체 관련자 소환 9월28일 이우영 대우전자 직장주택 조합장 구속
  • 감사원/「소과 중심체계」 비효율적

    ◎1년전 과정원 크게줄여 10개과 증설/업무 지나치게 세분… 감사질 떨어져/번거로운 심의관제도 재검토 필요 정부 각 기관의 예산집행과 인력,조직의 효율성을 감사하는 역할을 하는 감사원이 오히려 비효율적인 인력운영으로 감사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3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1개과 정원을 15∼16명에서 11명으로 줄이고 대신 10개과를 증설,업무를 세분화하는등 기존의 대과를 소과체제로 조직을 개편했다.또 국장과 과장사이에 심의관(3급)제도를 신설했다. 감사업무의 전문화와 감사인력의 효율적 운용이라는 목표 아래 단행됐던 조직개편은 그러나 시행 1년도 못돼 많은 문제점이 도출되고 있다.감사원 직원과 간부들 사이에서 조차 조직의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는 실정이다. 현행 소과제는 과장을 포함해 1개과 인원이 11명 정도.이 가운데 실제로 감사에 투입되는 인원은 서무와 교육및 잔무를 처리하느라 빠진 인력을 빼면 5∼6명 정도에 불과하다.이 인력으로는 웬만한 중앙부처를 7∼10일동안 감사하기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 감사원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인력구조로는 감사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래서 2∼3개과가 합동으로 감사를 나가는 경향이 늘고 있다.이 경우에도 문제는 많다. 여러 과가 함께 일을 하다보니 과간에 업무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또 감사지휘를 심의관이 맡아 현장에 있어야 할 과장이 사무실을 지키는 때가 허다하다.심지어 1년에 한번도 감사현장에 나가지 못하는 과장들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대상기관의 특징과는 상관없이 과를 일률적으로 세분한 것도 문제다.예를들어 국세청과 서울시는 3개과,은행과 국방부는 2개과로 업무가 분산돼있어 일관성있는 감사와 자료수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의관제 역시 재검토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심의관은 당초 2개과 이상이 투입될 때 감사를 지휘하고 각종 업무를 조정하며 국장을 보좌하기 위해 신설됐다.인사숨통을 터 조직에 활기는 불어넣었지만 애매한 업무분장으로 인해 권한과 책임이 없는 「유명무실」한 자리가 되고 있다는게 중론이다.불필요하게 결재단계만 늘렸다는 비판도 있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과의 규모를 다양화시켜 상황에 따라 융통성있게 운영하고 감사관(4급)이상 상위직의 효율적인 운용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는 방향으로 감사원의 기구개편이 시급하다고 여겨진다.
  • 롤링스톤스/창단30돌 미순회공연/비틀즈와 쌍벽 이뤘던 인기 록그룹

    ◎50대나이에 불구 열정적 무대 펼쳐 비틀즈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록그룹으로 칭송받는 롤링스톤스가 첫 앨범을 낸지 30년만에 12번째로 미국내 40개 도시를 순회하는 대형콘서트에 나서 올드팬들은 물론 록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을 열광에 빠지게 하고있다. 그룹 창설 멤버들이 모두 중년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롤링스톤스가 공연내내 보인 특유의 정렬적인 리듬과 무대매너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엔터테이너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세계순회공연의 일환으로 8월1일부터 시작된 이번 콘서트에서 롤링스톤스 멤버들은 과거에 못지않은 열정적인 모습으로 공연 첫날부터 2∼3시간동안 논스톱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특히 손자를 둔 할아버지이기도한 믹 재거는 공연내내 무대 구석구석을 마구 헤집고 다니는 정력을 과시,관중들의 갈채와 환호를 자아냈다. 올해 51세의 리드 싱어 믹 재거를 필두로 키스 리처드(50),기타리스트 론 우드(47),드러머 찰리 와트(53)등 원년 멤버와 본래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였던 빌 와이먼을 대신한 새베이스 연주자 대릴 존스(32)등 5명의 롤링스톤스 멤버들은 자신들의 22번째 앨범이자 현재 빌보드 차트 6위에 올라있는 「부두 라운지」를 비롯,「만족」「홍키 통크 위민」과 같은 과거 히트곡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곡을 연주했다. 6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한몸에 받아온 롤링스톤스는 과거 또 하나의 위대한 그룹인 비틀즈와 여러 면에서 비교되기도 했다.그러나 비틀즈에 비해 롤링스톤스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된 경우가 많았으며 음악잡지나 심지어 풍자만화등에서도 대부분 롤링스톤스는 비틀즈보다 낮게 취급됐다. 이는 한편으로 서로의 차별성을 의미하기도 했다.1일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미국 워싱턴의 RFK스타디움에서 가진 공연도중 믹 재거는 『비틀즈는 항상 주인공이었다.그러나 우리는 그들과는 정반대되는 곳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비틀즈와는 다른 세계의 음악을 추구했다는 설명이다. 사실 어느누구도 롤링스톤스의 인기가 이처럼 오래 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차분하고 세련된 모습의 비틀즈에 비해 롤링스톤스는 다소과격하게 보일 정도로 격한 무대매너를 보였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들의 인기가 언제 사라질 것인가를 얘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부두 라운지」는 롤링스톤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그것은 롤링스톤스의 새로운 출발이며 멤버들간의 독특한 개성차이가 만들어낸 창조적인 조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전세계의 록음악 팬들은 이제 롤링스톤스의 또다른 매력을 느끼게 될 것같다.
  • 남총련 폭력시위·점거난동 여파/대학마다 피해방지 “비상”

    ◎연합집회·외부인 출입 금지/홍익대 “10억손실 보상받을 길 막막” 광주·전남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남총련)소속 대학생들의 홍익대 기습점거시위사태이후 각 대학들이 피해방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홍익대가 이번의 폭력시위로 10억원대의 재산피해를 입었으나 보상은 커녕 호소할 곳도 없게 되자 각대학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시위관련 정보를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다. 홍익대는 지난 20일 긴급 교무회의를 소집,피해보상을 받는 방법을 논의했으나 선례가 없어 일단 「어떻게든 피해보상을 받는다」는 원칙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학교측에 따르면 이번 남총련 시위로 학생회관과 본관등의 앞면 유리창 1천4백장과 책걸상등 8천만원 상당의 각종 집기류가 파손되는등 측정가능한 재산피해만 최소한 1억5천만원에 이른다.그러나 학생들은 『미술대학 동양학과와 조소과 실습실에 있던 학생들의 예술작품과 각종 도구가 상당수 부서지거나 파손됐음을 감안하면 전체 피해액은 10억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이 대학은 이면영총장 취임이래 총장이 엑셀승용차를 타는등 학교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 운영을 해왔으나 이번 피해로 모든 절약운영이 물거품이 됐다. 각 대학은 타대학생들이 참석하는 연합집회의 경우 대부분 과격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고 학교기물 파손에 대한 법적인 보상제도가 없다는 점때문에 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총학생회측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연세대가 지난해 6월 『학교시설을 보호하기위해 학교의 허가없는 외부단체의 모든 집회를 금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대부분의 대학들이 이에 따르고 있으나 이번처럼 돌발 학생시위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것이 현실이다. 연합집회의 경우 경찰과의 충돌이 없더라도 1회당 재정손실은 5백만원에서 천만원대에 이르며 투석전이나 화재가 발생하면 수억원씩의 재산피해를 본다. 서울대는 92년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서총련)발대식때 문화관 대강당내 의자등 기물이 파손돼 수천만원어치의 재산피해를 입은뒤 일체의 외부연합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이 대학 김동진학생처장(50)은 『한총련등타대생들이 연합집회를 강행하려할 경우 총학생회와 주최측에 자제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등의 방법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총련 본부가 있는 한양대는 지난 11일의 「6월항쟁기념대회」를 비롯,최근 1년남짓동안 6차례의 연합집회가 교내에서 열렸으나 이를 막을 수 없어 대책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학교측은 피해를 최소화하기위해 총학생회측의 집회신고시 3건당 1건꼴로 허락해준다는 방침이나 한총련등 주최측이 집회를 강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 사용후 핵연료란

    ◎원자로안에서 3년정도 탄찌꺼기 1백㎏ 녹이면 플루토늄 1㎏ 추출 원자로안에 들어있는 핵연료는 핵분열을 하지않는 우라늄238과 3%의 우라늄235로 돼있다. 원자로안에서 3년 가까이 타고난 핵연료에는 아직도 타지않은 우라늄235가 1%가 남아있고 우라늄 238이 중성자를 받아 생성된 플루토늄239가 1% 들어있다.이것이 「사용후 핵연료」이며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것을 「재처리」라고 하고 「재처리」후 남은 찌꺼기가 「고준위 폐기물」이다. 핵연료의 97%를 차지하는 우라늄238은 원자로에서 연소과정을 거치며 중성자를 흡수,플루토늄 239로 변해 남는다. 이때 쓰고난 핵연료에서 질산등을 이용,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정제,추출할수 있다.1백㎏의 사용후 핵연료를 질산으로 녹이면 핵폭탄을 만들수 있는 1㎏의 풀루토늄 239를 추출할 수 있다.핵폭탄 하나를 만드는데는 약 7∼8㎏의 플루토늄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문에 사용후 핵연료는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를 받게 되며 재처리 관련시술은 수출통제목록에 포함되어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