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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WTTC 아시아총회 개회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WTTC 아시아총회 개회사

    1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아시아총회 개막식에서 한국 유일의 WTTC 정회원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WTTC는 세계 여행·관광 업계를 이끄는 글로벌 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세계 최대 민간 여행단체로, 서울에서 총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총회에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탈렙 리파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사무총장, 마틴 크레그스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 회장, 디런 폰세카 익스피디아 사장, 아비드 버트 반얀트리 호텔 앤드 리조트 사장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스웨덴은 70세 정년 추진 중”

    “스웨덴은 70세 정년 추진 중”

    “스웨덴은 많은 예산을 들여 관대한 사회보장을 시행하기 때문에 조세부담률이 높다. 하지만 이를 통해 계층 간 이동성을 높이고 빈부격차를 줄였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보건사회부 사회보장 장관은 9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스웨덴의 복지정책 개혁 방안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스웨덴 양국 간 사회복지정책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먼저 “사회복지제도는 고유한 맥락 속에 있기 때문에 수출하거나 수입할 수 없다. 다만 세상에 완벽한 국가는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배울 건 배워야 한다”면서 “세계는 갈수록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사회복지제도에서도 다양한 국제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모든 사회복지정책은 예산을 필요로 하는데, 관대한 복지는 노동 의욕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가정 양립, 정년연장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국민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스웨덴에서는 법정 퇴직 연령이 61~67세이지만 실제로는 평균 64.5세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법정 퇴직 연령을 최소 70세로 늦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복지는 장기적으로 초당적인 협력을 필요로 한다”면서 “정부와 의회, 노사가 함께 모여 ‘바꾸면 안 되는 부분과 바꿔도 되는 부분’을 선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고 조언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현정은 회장, 브라질 ‘리오브랑코’ 훈장 받아

    현정은 회장, 브라질 ‘리오브랑코’ 훈장 받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한국-브라질 경제 교류 확대에 대한 공로로 브라질 정부로부터 ‘리오 브랑코’ 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브라질의 유명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리오 브랑코 남작을 기리고자 1963년 제정된 것으로 브라질과의 정치·외교·경제 분야 등에 기여한 외국인에게 주는 훈장이다. 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브라질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훈장을 받은 현 회장은 “브라질 하면 예전에는 삼바와 축구, 커피, 아마존 등의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요즘은 친구라는 뜻의 ‘아미고’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며 “현대그룹과 브라질이 진정한 친구로 남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 회장은 2011년 4월 브라질 명예영사로 위촉됐으며, 같은 해 5월 현대그룹은 브라질 남부 지역 히우그란지두술주와 투자교류 확대 양해각서를 교환한 바 있다. 그룹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내년 3월 완공을 목표로 브라질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남미 시장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하이트진로, 신제품 ‘퀸즈에일’ 출시

    하이트진로, 신제품 ‘퀸즈에일’ 출시

    5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모델들이 하이트진로가 출시한 에일맥주 ‘퀸즈에일’을 소개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이번 신제품 출시를 통해 국산맥주 품질에 대한 논란을 깨끗이 불식시킨다는 각오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화보] 조수미와 함께 무대 서게 될 ‘실력파 아이돌’ 양요섭

    [화보] 조수미와 함께 무대 서게 될 ‘실력파 아이돌’ 양요섭

    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수미 파크콘서트 ‘라 판타지아(La Fantasia)’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남성그룹 비스트 멤버인 양요섭, 성악가 조수미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보컬 앙상블 로티니(박지민, 허종훈, 임경택), 지휘자 아드리엘 김(Adriel Kim)이 참석해 진행되었다. 조수미 파크콘서트는 오는 14, 15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다. 장고봉PD goboy@seoul.co.kr
  • [포토] 조수미 ‘비스트 양요섭과의 듀엣 원했다’

    [포토] 조수미 ‘비스트 양요섭과의 듀엣 원했다’

    비스트 양요섭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수미 파크콘서트 ‘라 판타지아(La Fantasia)’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남성그룹 비스트 멤버인 양요섭, 성악가 조수미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보컬 앙상블 로티니(박지민, 허종훈, 임경택), 지휘자 아드리엘 김(Adriel Kim)이 참석했다. 장고봉PD goboy@seoul.co.kr
  • 디아지오코리아 “취약계층 여성 자립 부축”

    디아지오코리아 “취약계층 여성 자립 부축”

    국내 양주 소비 급감으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주류회사 디아지오코리아가 국내에서 사회공헌사업의 첫발을 디딘다. 디아지오코리아의 조길수 대표는 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마음과마음재단’ 출범 간담회를 열고 “취약 계층 여성의 자립을 위해 향후 5년간 매년 10억원을 여성가족부를 통해 지원한다”고 밝혔다. 7월 취임 이후 첫 공식 행사에 나선 조 대표는 “지역사회와 동반성장하는 기업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며 “대표 제품인 조니워커가 역사와 전통을 가진 술로 인정받는 것처럼 디아지오코리아도 신뢰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마음과마음재단은 여성가족부와 손잡고 올해 미혼모 등을 위한 주거안정 지원(4억 9000만원), 자립지원형 ‘새일(새로 일하기)’ 센터 운영(4억원), 한부모가족 상담·교육 지원(1억 1000만원) 등의 활동을 펼친다. 마음과마음재단은 디아지오가 작년 말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대상으로 발표한 ‘플랜 더블유’(Plan W)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플랜 더블유는 디아지오 아시아태평양 본부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포토] 노래 잘하는 ‘실력파’ 아이돌 양요섭 이번엔 조수미와…

    [포토] 노래 잘하는 ‘실력파’ 아이돌 양요섭 이번엔 조수미와…

    비스트 양요섭 조수미 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수미 파크콘서트 ‘라 판타지아(La Fantasia)’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남성그룹 비스트 멤버인 양요섭, 성악가 조수미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보컬 앙상블 로티니(박지민, 허종훈, 임경택), 지휘자 아드리엘 김(Adriel Kim)이 참석해 진행되었다. 조수미 파크콘서트는 오는 14, 15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다. 장고봉PD goboy@seoul.co.kr
  • [포토] 양요섭 조수미 두 사람의 하모니 기대돼

    [포토] 양요섭 조수미 두 사람의 하모니 기대돼

    비스트 양요섭 조수미 비스트 양요섭·성악가 조수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수미 파크콘서트 ‘라 판타지아(La Fantasia)’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남성그룹 비스트 멤버인 양요섭, 성악가 조수미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보컬 앙상블 로티니(박지민, 허종훈, 임경택), 지휘자 아드리엘 김(Adriel Kim)이 참석했다. 장고봉PD goboy@seoul.co.kr
  • 9억 8000만원짜리 시계

    9억 8000만원짜리 시계

    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서 시계 브랜드 피아제의 홍보 모델들이 9억 8000만원짜리 폴로 투르비용 하이주얼리 시계(가운데) 등 초고가 시계들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10일까지 에비뉴엘 피아제 매장에서 가격이 총 90억원에 달하는 시계 17점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연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한국타이어, 독일 3대 명차에 제품 공급

    한국타이어, 독일 3대 명차에 제품 공급

    국산 타이어 업체들이 세계 일류를 꿈꾸며 연구·개발(R&D)과 생산량 증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글로벌 프리미엄 자동차에 타이어를 공급하는 것을 계기로 2020년까지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는 국내 타이어 기업 최초로 메르세데스-벤츠의 럭셔리 모델인 ‘뉴S 클래스’에 타이어 공급을 시작하고, BMW의 고급 세단인 5시리즈에도 납품한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한국타이어는 2006년 아우디, 2011년 BMW에 이어 벤츠를 고객으로 확보, 독일 3대 명차의 고급 세단에 타이어를 공급하는 성과를 이뤘다. 한국타이어는 북미 시장에서 판매량이 많은 일본 3대 자동차 혼다 시빅, 도요타 코롤라, 닛산 알티마에도 타이어 공급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서승화(65) 한국타이어 부회장은 “독일 3대 명차 브랜드의 고급차종은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5대 타이어 업체가 독점 납품하던 시장”이라면서 “이번 공급 확장으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았다”고 자평했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은 “벤츠 S클래스나 BMW 5시리즈 등 고급 세단에 타이어를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보증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서 “다른 자동차 브랜드와 더 많은 차종에 대한 공급 계약을 맺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금호타이어는 경기 용인에 중앙연구소를 열고 2016년까지 기술력 강화와 우수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2018년까지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선도적인 제품을 개발·출시해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한다는 목표다. 김창규 금호타이어 사장은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는 것이 글로벌 타이어 기업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며 “추후 해외공장 증설과 해외 완성차 업체에 타이어 공급을 확대해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0)도심재개발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0)도심재개발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1월 22일 내무부 연두 순시를 마치고 장관실에서 (정일권) 국회의장, (김종필) 국무총리, (김현옥) 내무장관 등과 함께 점심을 했다. 식사를 마친 박 대통령은 정부청사 14층 장관실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도렴동·적선동·내자동·내수동·당주동·체부동으로 연결되는 일대에 빽빽하게 들어선 한옥 밀집 지대가 눈 아래 펼쳐져 있었다. 박 대통령은 한옥 지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런 곳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장차 무슨 큰일을 하겠느냐. 빨리 재개발을 추진해서 어떤 외국의 수도에도 손색이 없도록 하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약간 격한 어조였다고 한다. 지시는 그날로 (장예준) 건설부 장관과 (양택식) 서울시장에게 전달됐다.”(손정목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1970년대 초 서울 도심은 낮고 낡았다. 5층 이상의 드문드문 있을 정도였다. 제1차 서울 도심부 재개발이 촉발된 요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 꿈’이 실현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진 지 8개월 만인 1973년 9월 6일 소공동, 서대문, 무교·다동, 을지로1가, 장교동, 도렴동, 적선동, 동대문, 태평로2가, 남창동, 서린동 등이 재개발지구로 전격 고시됐다. 이후 80년대 중순까지 20층 안팎의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라 스카이라인을 올려놓게 된다. 재개발되기 전 무교동과 다동은 환락가였다. 1976년 무교동 일대에는 최고의 나이트클럽 코파카바나를 비롯한 230개의 유흥업소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무교동과 다동, 서린동 사이를 가로지르는 청계천로를 20m에서 50m로 넓히는 과정에서 유흥업소 64개가 헐리고 대형 오피스빌딩이 신축되면서 차츰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한창 전성기 때에는 지금의 강남 유흥가를 방불케 했다. 소설가 이병주, 시인 구상 같은 문인들이 애용했던 서린여관은 1973년 20층짜리 서린호텔로 바뀌었다. 서린호텔도 재개발이라는 시대의 트렌드를 비켜 갈 수 없었고, 1992년 지금의 청계 11이라는 오피스빌딩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통기타 가수의 산실 세시봉이 있던 스타더스트호텔 자리에는 SK서린빌딩, 한국개발리스 등이 들어서 흥청망청하던 이 동네의 옛 영화를 짐작할 수도 없게 한다. 토지와 건물 소유자, 세입 상인의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고 진행된 재개발에 따라 의주로 지구에 호암아트홀(JTBC), 삼도빌딩(에이스타워)이 들어섰고, 무교다동지구에는 프레스센터와 코오롱빌딩(더 익스체인지 서울), 을지로1가에는 삼성화재빌딩·두산빌딩(하나은행 본점)이 지어졌다. 을지로2가에는 내외빌딩·중소기업은행본점·한화본사, 도렴지구에는 변호사회관(광화문 변호사회관)·로얄빌딩이, 적선지구에는 적선현대빌딩·현대상선빌딩(노스게이트빌딩) 등이 자리 잡았다. 중소 상인들을 몰아내고 삼성, 현대, SK, 롯데, 두산, 한화 등 대기업에 도심을 상납하는 형태로 귀결됐다. 대통령의 머릿속에 도심 재개발의 필요성을 절감시킨 계기는 약간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 10월 31일 미국 제36대 린던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쟁 참전 7개국 정상회담을 마치고 방한했다. 환영 행사에 학생 100만명, 시민 155만명, 공무원 20만명 등 모두 275만명을 동원한다는 어마어마한 계획이 세워졌다. 정부는 방한 당일 학교, 은행, 회사, 관공서의 임시 휴무를 결정했다. 서울 시민이 350만명이던 시대에 200만명 이상이 김포공항~한강대교~용산~시청 앞 연도에서 미국 대통령 일행을 환영한 것이다. 행사장인 시청 앞 광장에는 30만명의 시민, 학생이 대기했다. 한국전쟁을 치른 나라, 베트남전쟁으로 부흥의 기회를 잡은 나라 서울로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실황중계는 35분간 이어졌는데 존슨 대통령의 연설 13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카메라는 시청 건너편 ‘추잡하기 이를 데 없는’ 화교촌(플라자호텔 자리)과 남창동·회현동의 판잣집과 창녀촌을 비췄다. 서울 도심의 슬럼가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방송을 본 재미교포 10만명이 난리가 났다. 부끄러워 못살겠다는 탄원서가 쏟아졌다. 박 대통령은 이때 도심 재개발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화교 집단촌인 소공동에서 도심 재개발의 막이 올랐다. 1882년부터 서울에 들어온 화교는 1894년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일본과 다툰 청일전쟁 이전까지 3000명 넘게 거주했다. 1910년 519가구 1828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조금씩 늘었다. 1970년에는 서울 거주 전체 외국인 1만 463명 중 8262명이 중국인이었다. 대부분 소공동에 모여 살았다. 화교회관 건립 등 아이디어가 속출했지만, 사업은 3년 이상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감정가 평당 30만원 정도의 땅을 현금 107만원을 주고 몽땅 사들인 것은 한국화약(한화) 창업주 김종희였다. 화교가 서울 한복판 차이나타운에서 내쫓기는 세계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1978년 그 자리를 병풍처럼 가리는 프라자호텔이 준공됐다. 서울 도심 재개발사업 제1호였다. 오늘날 한화금융프라자 등 북창동 한화타운 형성의 기반이 됐다. 관망하던 대기업들이 뒤질세라 재개발 전선에 뛰어들었다. 삼성생명이 태평로2가 일대의 토지를 소리 나지 않게 사들였고, 1976년 지하 4층 지상 26층짜리 삼성 본관이 건립됐다. 이어 1984년 동방생명(삼성생명) 빌딩이 완공됐다. 광화문 교보빌딩이 1984년, 남대문시장 서쪽 입구 대한화재해상보험이 1980년 속속 들어섰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는 1980년대 초반 도심부 재개발에 또 한 번의 공간혁명을 몰고 왔다. 서울은 인구 900만명의 메트로폴리스답지 않게 시가지는 초라했다. 1982년 마포로, 태평로, 종로, 을지로, 한강로 등 주요 간선도로변 42개 지구와 종로·중구의 도심지구 등 모두 95개 지구가 재개발촉진지구로 지정돼 고도제한이 풀리고 호텔, 백화점, 극장 등 대규모 위락시설의 신축이 허용됐다. 김포공항~여의도~마포로~서소문~시청까지 속칭 ‘귀빈로’가 상전벽해를 이뤘다. 유행가 속 ‘마포종점’은 증권·금융오피스빌딩 벨트로 변했다. 서울시가 1989년 펴낸 ‘도심재개발사업 연혁지’에 따르면 당시 사업이 완료됐거나 추진 중인 126개 지구의 시행 주체는 80% 이상이 대기업이었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삼성본관, 삼성생명, 종로타워, 중앙일보사, 삼성화재 등 6건이었다. 현대와 옛 대우, 코오롱, 롯데가 각 3건을 기록했다. 관철동 삼일빌딩에서 청계천 길 건너 을지로와 청계고가 3·1로에 접하는 을지로2가와 장교동·수하동 일대에는 180개의 건물에 인쇄소 519개, 식당 71개 등 모두 830개의 가게가 빼곡한 인쇄소 골목을 이루고 있었다. 1987년 프렝탕백화점, 한화그룹 본사, 중소기업은행 본점 등 3개 건물이 준공돼 정리됐다. 서울역 앞 양동 재개발은 옛 대우그룹의 몫이었다. 남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은 양동은 슬럼가의 대명사였다. 60년대 말 대우센터빌딩(서울 스퀘어)에 이어 1979년 힐튼호텔이 들어서면서 서울역 앞의 풍경을 바꿨다. 1994년 CJ빌딩 등의 신축으로 양동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 3차 도심 재개발은 이명박 시장 때인 2004년 8월 도심 고도제한이 기존 고도제한선인 낙산(92m)보다 낮은 90m에서 20m 더 높은 최고 110m까지 풀리면서 지구별로 추진된 것이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세종로 서쪽 내수동과 사직동 일대에 풍림 스페이스본 등 4000여 가구의 주상복합이 쏟아졌고, 신문로에도 금호아시아나빌딩과 흥국생명빌딩 등이 우뚝 솟았다. 수하동 일대에서는 미래에셋의 센터원 쌍둥이빌딩이 교보빌딩보다 더 큰 덩치를 자랑하게 됐으며, 동국제강 사옥인 28층짜리 페럼빌딩도 이에 못지 않다. 2008년부터 100m가 넘는 25층 안팎의 대형 빌딩 신축 붐이 불붙은 곳은 청진·도렴지구·세종로 지구다. 교보빌딩 바로 뒤에 대림산업의 D타워, KT 광화문 사옥 뒤편에 KT 신사옥 올레 플렉스, 옛 한일관 자리에 GS 그랑 서울, 신문로 초입 옛 금강제화 자리에 미래에셋이 디럭스급 포시즌호텔을 경쟁적으로 짓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 도면을 보면 이들 빌딩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1호선 종각역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흙만 파면 유적과 유구가 쏟아지는 서울 600년의 핵심 지역인데도 그 누구도 훼손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옛 서울 보전이나 복원은 안중에도 없다. 서울시가 추진 중이던 청계천 지천 백운동천(白雲洞川)이나 중학천(中學川) 물줄기의 완전 복원도 물 건너간 셈이다. 이들 빌딩 아래를 흐르는 백운동천은 인왕산에서 청계천을 거쳐 한강으로, 중학천은 북악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모였다가 한강으로 흘러가는 한강의 35개 지천 중 하나다. 좋든 싫든 이들 빌딩이 완공되는 2014년 이후 서울 도심은 또 한 번 개벽할 전망이다. joo@seoul.co.kr
  • 롯데장학재단 장학금 19억원

    롯데장학재단 장학금 19억원

    롯데장학재단은 28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청소년과 대학생 810명에게 장학금 19억 3000만원을 전달했다. 신영자(앞줄 가운데) 재단 이사장이 시각장애를 딛고 미국 버클리음대에 합격한 재즈피아니스트 강상수(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씨 등 장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롯데장학재단 제공
  • 창조경제 이끌 민간단체 닻올랐다

    창조경제 이끌 민간단체 닻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건 창조경제 실현을 지원할 민간단체인 ‘혁신창조경제포럼’(NICE·New Innovation, Creative Economy)이 28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모든 산업 분야에 ‘오픈 플랫폼’을 연구·보급하고, 산·학·연·관 협동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는 이 포럼은 논의된 내용을 정책입안이나 기술화, 사업화 등으로도 공유할 방침이다. 또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세계 최고의 웹(Web) 3.0 유비쿼터스를 활용한 각종 정책과 사업 과제를 발굴해 지원할 계획이며, 융합 혁신기술의 사업화를 위한 전문가를 육성하고, 집단지성 네트워크도 구축할 방침이다. 포럼에는 전직 관료들과 대학교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박철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이 이 포럼의 창립 추진위원장을, 조병완 한양대 공과대 교수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오장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과 김동수 전 정보통신부 차관, 박덕배 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이 고문으로 위촉됐다. 포럼 결성을 주도한 박 사장은 “현재 세계경제는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과 좁혀져 가는 기술 격차로 인해 어느 국가와 어느 기업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면서 “이런 여건에서는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한 시장의 선점과 창출이야말로 앞으로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새 정부도 새로운 경제비전으로 창조경제를 제시했지만 여전히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만 무성할 뿐 그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며 “이런 이유로 창조경제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답을 찾아 보급하기 위해 포럼을 결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무 차장 출신으로 공직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온 박 사장은 “아날로그 시대에 디지털 기술이 창조경제였다면 지금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게 창조경제”라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롯데백화점 추석 맞이 경품행사

    롯데백화점 추석 맞이 경품행사

    25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모델들이 추석 맞이 경품행사를 홍보하고 있다. 1등 당첨자에게는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이용할 수 있는 9인승 캠핑카 이용권과 추석 쇼핑 지원금 1000만원이 제공된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⑨ 정동과 덕수궁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⑨ 정동과 덕수궁

    >> 정동 공사관거리 어떻게 형성됐나 서울 도심 한복판 중구 정동(貞洞)이 외국 공사관 거리로 바뀐 데에는 사연이 있다. 미국공사관이 1883년 정동에 처음 자리 잡으면서 열강이 속속 진입한 것이다. 서울에서 근대의 풍경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곳 정동의 형성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진 셈이다. 1880년 우리나라에 첫 공사관을 개설한 일본 공사관이 들어선 곳은 서대문 밖이었다. 조선은 외국 공관의 사대문 안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 진압 과정에서 청군과 일본군이 도성 안에 주둔하면서 금역은 깨졌다. 새 경계선으로 정한 것이 개천(청계천)이었다. 종묘사직이 있는 개천 안쪽만에라도 외세를 들여놓지 않으려고 버텼다. 일본과 청나라의 틈을 비집고 미국이 사대문 안 정동에 전격 상륙한 것이다. 왜 하필이면 정동이었을까? 조선과 수호조약을 체결한 미국 초대 공사 푸트에게 정동에 공관과 사택을 알선해 준 이는 수송동에 살고 있던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돌프였다. 통역 윤치호의 처가가 정동에 있었던 이유도 컸다. 그러나 강원도 관찰사 민치상의 아들 민계호의 집을 외국인에게 선뜻 내어 준 것은 고종의 윤허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당시 58세로 나이가 지긋하고 경력도 상당한 푸트에 대한 고종의 개인적 호감이 작용했다고 한다. 푸트는 1만냥을 주고 125칸의 건물이 딸린 한옥을 사들였다. 이 집은 미국 공사관을 거쳐 나중에 미국 대사관저(하비브하우스)가 된다. 푸트는 정동에 정착한 최초의 외국인이 됐다. 이어 영국 영사관(1884년), 러시아 공사관(1885년), 프랑스 공사관(1889년), 독일 영사관(1891년), 벨기에 영사관(1901년) 등이 합류하면서 정동은 양인촌(洋人村)이 됐다. 정동은 서양 외교관이나 선교사, 그들의 가족에게 여러모로 좋은 곳이었다. 인천항이나 한강을 통해 서울 진입이 손쉬운 마포나루와 양화진이 가깝고, 경복궁이나 경운궁에 접근하기 좋다. 사대문 성곽 안이어서 안전하고, 토지와 가옥 매입이 쉬우며, 특정 지역에 모여 살기에 편리했다. 19세기 말엽까지 서울에는 9개 나라의 공관이 있었는데 이 중 7개 나라가 정동 권에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공관만 정동 밖에 있었다. 개항기 서울에서는 모두 226명의 서양인이 117채의 집을 차지했다. 대부분 정동이나 연지동에 거주했다. 여기에다 청국과 일본인을 포함하면 외국인 수는 모두 3200여명에 이른다. 독립신문 1897년 4월 1일자는 “프랑스인 28명에 가옥 7호, 러시아인 57명에 가옥 22호, 독일인 9명에 가옥 7호, 미국인 95명에 가옥 40호, 영국인 37명에 가옥 41호, 청국인 1273명에 가옥 110호, 일본인 1758명에 622호 등 모두 3257명에 가옥 767호이라더라”라고 보도했다. 이후 13년이 흐른 1910년 서양인 수는 308명으로 별 변화가 없었다. 같은 해 7월 15일자 대한매일신보에 따르면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 수는 2344명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경성에 거류하는 외국인을 조사한즉슨 영국인이 88명, 미국인 131명, 프랑스인 57명, 독일인 19명, 러시아인 12명, 벨기에인 1명, 청국인 2036명이라더라”라고 보도했다. 미국 공사관의 정동 진입 당시 일본 공사관은 남산자락 아래 예장동에 있었고, 청나라의 공사관 격인 상무총서(商務總暑)는 남별궁터(조선호텔)에 있었다.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는 청은 공사관을 설치하지 않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지낸 천수탕(陳樹棠)이 1883년부터 2년간 주조선(駐朝鮮) 상무위원(商務委員)이란 직함을 달고 활동했다. 실질적인 청국대사였다. 그는 외국사절단 회의석상에서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니 나의 직위는 외국 사신 중 우두머리이며, 조선의 정승보다 상석에 앉아야 한다”며 거드름을 피웠다. 후임자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직함은 ‘주찰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紮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였다. 1885년부터 10년간 조선총독 행세를 한 위안스카이는 명동 옛 중국 대사관 자리에 총리아문이라는 집무실을 설치했다. 지금의 을지로입구와 마포나루에 청국경찰서와 청국파출소를 각각 두는 등 경찰력을 따로 운영했다. 이들의 위세를 업고 중국 상인들이 소공동을 중심으로 수표동과 관수동에 상권을 형성했다. 정동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왕자의 난을 치른 태종이 계모의 능을 정릉동으로 옮겨 버렸기 때문에 능의 실체는 없고 이름만 남았다. 미국 공사관 터가 정릉 터로 추정된다. 태조 때 정릉에 설치한 문인석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전성기 정동에는 외국 공사관을 비롯해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 학교와 손탁호텔, 성공회, 구세군 본영, 정동 제일교회, 덕수교회 등 종교시설 등 모두 25개의 큰 건물이 들어서 서울에서 가장 화려하고 분주한 동네였다. 현재도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러시아 대사관 등 6개국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대사관저는 웬만한 대사관을 압도하는 규모다. 정동에 근대의 향기는 여전하지만 자취는 거의 사라졌다. 정동의 옛 공사관과 거리가 그때 그 모습으로 보전됐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을 감출 길 없다. >> 덕수궁인가 경운궁인가 ‘도심 궁궐’ 경운궁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황궁이었다. 고종은 백성이 모이기 쉬운 경운궁과, 청과 일본의 군사력이 미치기 어려운 정동 외국 공사관을 이용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정사를 본 1896년 아관파천 이후 1910년 국치일 이전까지 서울의 정치 중심은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이었다. 이곳에서 1897년 대한제국 수립을 선언했으며 원구단과 황궁우를 짓는 등 위상회복을 꾀했다.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간 8㎞ 거리의 단선궤도 전차를 1899년 개설했는데 이는 도쿄보다 3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경운궁은 을지로와 충무로 등 주요 도로와 사통팔달 식으로 연결되는 방사성 교통 요충지가 됐다. 조선 500년간 왕족이나 명문가의 거주지이자 사색당파(四色黨派) 중 서인(西人)의 주거지이던 정동이 하루아침에 양인촌으로 둔갑하면서 사실상 열강의 조계지(租界地)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고종은 먼 나라와 친교를 맺어 가까운 나라를 공략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계책에 따라 서구열강의 힘을 빌려 일본과 청의 야욕을 막으려고 했다. 고종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미국 공사관이 정동에 터를 잡은 지 13년 후인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일본군의 눈을 피해 야밤에 경복궁을 탈출, 미국 공사관 안 쪽문을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했다. 명성황후가 참변을 당한 경복궁에 더 머물길 원치 않았다. 이곳에서 1년 9일을 머물면서 경운궁을 정비했고, 이듬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궁(皇宮)으로 썼다. 1919년 승하할 때까지 23년간 경운궁과 정동을 떠나지 않았다. 경운궁 대안문 앞에서 치러진 국장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나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꿨다. 동문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이라고 이름을 바꿔 정문으로 썼다. 대한제국 시기 열강이 공사관과 교회, 학교 용도로 야금야금 잠식한 경운궁은 3분의1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1930년 덕수궁에는 전(殿) 6채, 당(堂) 7채, 헌(軒) 5채 등 18개 건물만 달랑 남았다. 궁궐 부지 2만여 평 중 절반을 또 공원용지로 떼어 냈다.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장충단공원, 남산공원과 함께 서울의 3대 공원으로 지정됐다. 일본을 상징하는 벚나무를 심었다. 역사상 첫 황궁이던 경운궁은 창경궁과 함께 일개 공원으로 전락했다. 경운궁이라는 이름은 역사와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덕수궁이면 어떻고 경운궁이면 어떠하며, 대안문이면 어떻고 대한문이면 또 어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비록 우리 손으로 바꿨지만, 일제의 술수와 압력이 개명을 종용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운궁 명칭 회복운동이 몇 년 전 시작됐다.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경운궁으로 환원하자는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주장에 대해 문화재청은 잔재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덕수궁을 유지했다. 문화재위원회도 명칭을 변경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못하고, 반대 의견이 많아 명칭 변경 안건에 대한 심의를 보류한다고 밝혔었다. 조선총독부를 해체한 이유를 망각하고 있다. 역사에는 곡절이 있다. 곡절의 진위를 캐묻는 의문과 왜곡 바로잡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진실도 눈을 감고 말 것이다. joo@seoul.co.kr
  • 하정우·구혜선 볼까… 극장 말고 청주비엔날레서

    다음 달 11일 개막하는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최민수, 하정우, 유준상, 임혁필, 박은혜 등 국내 유명 연예인 20명이 손수 만든 공예품을 출품한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19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설명회를 열어 배우 최민수와 박은혜가 직접 바느질하고 빚은 가죽 공예품과 도자 공예품을 각각 출품하는 등 다양한 전시가 마련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별 전시 부문인 ‘스타 크라프트’전에 참여한다. 최민수는 7년간 공들여 만든 지갑, 벨트 등 가죽 공예 오브제를 내놓는다. 앞서 몇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으나 공식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다. 배우 하정우는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 그림을 넣은 작품을 선보이고 배우 구혜선은 그림을 새긴 거울을 출품했다. 가수 조영남·남궁옥분·유열·이상은, 배우 리사, 개그맨 임혁필 등도 입체적인 그림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스타 크라프트전을 기획한 김종근 홍익대 교수는 “연예인들의 작품을 통해 청주비엔날레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릴 것”이라며 “작품은 경매에 부쳐 수익금을 불우 이웃 돕기에 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70억원이 투입되는 청주비엔날레는 오는 10월 20일까지 40일간 충북 청주시의 옛 연초제조창에서 이어진다. 1999년부터 시작된 행사의 올해 주제는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 2013베니스비엔날레 참여 작가인 조아나 바스콘셀로스를 비롯해 영국 왕립미술학교 출신의 깃털공예가 케이트 맥과이어, 미국 최초의 살아있는 인간문화재 데일 치훌리, 도예가인 신상호 홍익대 명예교수 등 60개국의 작가 3000여명이 참여한다. 전시 감독은 박남희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와 가네코 겐지 미노도자기박물관장이 함께 맡았다. (043)277-2501~3.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아이스 수박 보기만 해도 시원~

    아이스 수박 보기만 해도 시원~

    말복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야외무대에서 남녀 모델들이 ‘대형 아이스 수박 깨고 더위 날리자’ 이벤트를 홍보하고 있다. 길이 1.5m에 이르는 대형 얼음을 깨고, 속에 든 수박을 꺼내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나눠 주는 행사다.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 8월의 크리스마스… 보기만 해도 시원해

    8월의 크리스마스… 보기만 해도 시원해

    9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산타 복장을 한 남녀모델들이 인공 눈을 뿌리자 고객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백화점은 무더위에 지친 고객들의 발길을 유도해 매출 부진을 탈출하고자 이날부터 22일까지 ‘8월의 크리스마스’ 행사를 펼친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베를린장벽 붕괴후 이념 해체… 달라지는 사람들 면밀히 탐색”

    “베를린장벽 붕괴후 이념 해체… 달라지는 사람들 면밀히 탐색”

    “동독인에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는 모든 것의 마지막과 같았습니다. 음식도, 옷도, 화폐도, 심지어 공기와 사랑도 변했어요.” ‘심플 스토리’와 ‘아담과 에블린’ 등으로 국내 독자에게 알려진 독일의 소설가 잉고 슐체(51)가 올해 만해대상 문예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8일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통일이 가져오는 변화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면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변화된 체제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바뀌어 가는지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슐체는 1962년 옛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자느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못 봤지만” 20여년간 통일 전후의 독일을 면밀히 지켜봤다. 1998년 발표한 ‘심플 스토리’는 동독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통일 이후 달라진 동독인들의 삶을 그렸다. 그는 “독일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 두 언어의 체계와 관계를 알 수 있듯 한 체제를 경험하다 다른 체제를 겪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통일 이후의 가장 큰 변화로 그는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꼽았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일은 사라졌고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이 되었다. 이념이 떠난 자리에는 시장과 자본주의가 들어섰다. 베를린의 수돗물 민영화를 예로 든 그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성장과 민영화”라고 통독의 현실을 진단했다. 2011년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당시에도 “통일 이전에는 공산당 서기장에 대해 입도 뻥긋 못했다면 지금은 사장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슐체가 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장벽이 무너진 것은 어찌 됐든 큰 행운이었다”면서 “다만 조금 다른 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독에 급하게 편입되면서 동독의 경제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슐체는 설명했다. 그는 “생활 수준이나 교류 여부 등을 보면 북한과 동독은 비교하기 어렵다”면서도 “독일처럼 통일을 서두르는 대신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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