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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깔깔깔]

    ●이 여자가 사는 재미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여자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 : 혹시… 담배 피우나요? 여자 : (호들갑을 떨며) 어머, 저 그런 거 못 피워요. 남자 : 그럼 술은? 여자 : 어머, 저 그런 거 입에도 못 대요. 남자 :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애는요? 여자 : 연애요? 전 아직까지 남자의 ‘남’자도 모르는걸요. 남자 : 정말 순진하시군요. 전 솔직히 반갑긴 하지만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시는지? 여자 : (환하게 웃으며) 호호호, 전 거짓말하는 재미로 살아요.●좋은 남편 4대조건 *아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돌쇠. * 개미처럼 부지런-마당쇠. * 아내 단점이나 잘못은 절대 비밀-자물쇠. * 밤에는 언제나-변강쇠.
  • “룰루~” 김정은 안방 컴백

    “룰루~” 김정은 안방 컴백

    “저는 정말 심한 로맨티스트예요.” 선이나 소개팅에는 끌리는 유전자가 없단다. 무엇인가 우연한, 그리고 로맨틱한 만남에 유혹을 느끼는 체질이라는 김·정·은. 그래서인지 꿈결 같은 사랑이야기를 좋아하고, 또 스스로 그런 역할이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파리의 연인’ 이후 1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재벌가에서 곱게 자란 ‘공주’ 역할이다. 오는 27일 시작하는 SBS 수목드라마 ‘루루공주’(연출 손정현·극본 권소현 이혜선)를 통해서다. 지난해처럼 푹푹 찌는 안방의 여름을 시원하고 달콤하게 바꿔주리라는 기대가 진작부터 쌓이고 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다리는 팬들을 생각하면 부담돼요. 하지만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죠.” 본의 아니게 ‘공주’라는 타이틀을 달아서 민망스럽다는 그녀는 “좋은 옷과 스포츠카, 멋드러진 선글라스로 상징되는 부잣집 딸은 아니다.”면서 “스쿠터를 타고 싶어하고, 그래피티에 꿈이 있는 소탈하고 귀여운 역할”이라고 전했다.‘파리’를 촬영할 때는 걷기 아니면 버스 타기에 “다음에는 잘 사는 역할을 할거야.”라고 다짐했더니,‘루루’에서는 오히려 더 뛰어다닌다며 농담 섞인 푸념을 한다. ●‘파리의 연인’과는? 여러모로 ‘파리’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이 나오고, 또 ‘파리’에서 공동연출을 맡았던 손정현 프로듀서가 메가폰을 잡았다. 김정은-박신양-이동건으로 이어지는 삼각 관계는 김정은-정준호-김흥수로 변신한다. 차이점은? ‘파리’의 강태영은 가진 게 없어도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고, 느끼는 역할이었다.‘루루공주’의 고희수는 겉으로는 가진 것이 많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온실 속 화초’로 곱게만 키워진 조금은 슬픈 캐릭터. “처음에는 소극적이고 조신한 모습을 많이 보이죠. 천방지축 태영이와는 달라요.” 특히 ‘파리’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김정은으로 인해 남자 주인공 박신양이 달라지지만,‘루루’에서는 정준호 때문에 김정은이 껍질을 부수고 나와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그는 “태영이와 희수가 겉은 다른 듯해도 마음이 순수하고 해맑은 점이 같다.”고 귀띔했다. 상대역 박신양과 정준호의 차이점을 물었다.“정말 곤란한 질문이네요.”라며 허허 웃더니 “신양 오빠는 배울 점이 많아요. 준호 오빠는 연기하기에 너무 편하고요.”라고 답했다. ●삼순이 언니 최고죠∼! 절친한 사이인 김선아와의 맞대결은 피했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이 한 주 앞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이 나서 삼순이를 응원했다는 그녀는 “솔직히 김삼순과 맞물렸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김정은은 “선아 언니 연기는 스타일이 다르다.”면서 “요즘 여성들을 대변하는 삼순이를 보고 스트레스가 확 풀리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연예인 봉사모임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의 같은 회원 김민종이 출연하는 MBC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와 마주치게 됐다.“서로 살살 하자고 했지요. 호호.” 김정은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 시간 동안이라도 시청자들을 달콤한 꿈에 빠지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진심을 가지고 찍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루루공주는 어떤 드라마? ‘루루공주´의 주인공 김정은과 정준호. 이들은 이미 영화 ‘가문의 영광´으로 흥행 커플임을 입증한 바 있다. 김정은은 국내 최고 그룹 KS 그룹 회장의 손녀딸 고희수를 맡았다. 어려서부터 재벌가 자녀로 교육받았다.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뛰어나다. 하지만 화를 내서도 안 되고, 마음대로 웃지도 못한다. 제대로 연애도 한 적 없고, 심지어 뚱뚱해져서도 안 된다. 정준호는 박우진을 연기한다. 한마디로 왕자다. 능력도 있고, 리더십도 탁월하다. 또 사람에 대한 편견도 없다. 고희수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건설회사 사장의 외동아들이다. 주변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한다. 너무 자유분방한 것이 탈. 게다가 플레이보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잊은지도 오래됐다. 이들이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되며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킨 끝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모습이 안방에 전달된다. 제목에서 ‘루루’(lulu)라는 단어는 뛰어난 사람이나 미인, 또는 괴짜 등의 뜻을 지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Love & Wedding]김기범(32·회사원)·이승기(28·회사원)

    [Love & Wedding]김기범(32·회사원)·이승기(28·회사원)

    ‘인연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1999년 10월 첫번째 토요일 점심.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심심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던 그날, 방 안에 있기가 군대에 있을 때보다도 답답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친하게 지내던 여동생한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소개팅이라도 해 달라고 조를 심산이었다. 때마침 여동생은 신촌에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놀고 있다고 했고 나는 이때다 싶어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 신촌으로 나오라고 했다. 청춘남녀 3대3으로 번개팅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인연은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나는 청순하고 맑은 첫 인상의 그녀에게 용기내어 관심을 표현했다. 그런데 무덤덤한 그녀는 별 반응이 없었다. 어쨌든 그날 바로 연락처를 받고 다음날 만나 남산을 걸어서 올라갔다. 그녀와 함께 걷는 한걸음 한걸음이 마냥 즐거웠다. 남산에서 내려와 비디오방에 갔다. 상·하나뉘어진 ‘조 블랙의 사랑’이라는 긴 영화라 오히려 오랫동안 같이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는 거의 끝나가는데 그녀의 손은 잡기 힘들었다. 이상한 녀석으로 보면 어쩌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망설임의 끝에 결국 그녀의 손 위로 내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내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어질해지고 온몸이 마비되는 듯 얼어붙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 그녀에게 뭘 하고싶은지 물어 보았더니 그녀는 예전부터 친구들과 같이 놀기로 약속을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 약속을 깰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는 애인이 생겼는데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건 취소하고 나랑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나는 직접 그녀의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 애인임을 밝히고 양해를 구했다. 결국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강원도 오색약수터로 여행을 떠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끽했다. 그 뒤 1999년 12월31일에서 드디어 2000년 1월1일로 새천년을 맞이하러 에버랜드로 갔다. 그 날도 하늘에서 새하얀 눈꽃이 새천년을 축복하듯 하늘을 수 놓았고 우리는 차 안에서 히터를 틀고 라디오를 들으며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제는 내 옆에 함께 있는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사랑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제 사랑했다고 오늘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현재형이다. 사랑한다. 승기!
  • 블루버드가 누구예요?

    블루버드가 누구예요?

    ‘블루버드’가 싸이월드 페이퍼(미니홈피에서 글을 꾸며 펴내는 1인 미디어)에서 최고의 요리짱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맛있게 사는 이야기’는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페퍼(페이퍼)’가 됐다. 이를 탄생시킨 ‘엄마’는 올해 스물일곱살의 김항아씨다. “학교를 마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일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고 집에만 있는 게 힘들던 차에 싸이가 페이퍼 서비스를 하면서 상품을 내걸더라고요.‘한 4등쯤해서 아무거나 받아야지.’라며 열심히 올렸는데 1등이 됐지 뭐예요. 상품으론 MP3를 받았어요.ㅎㅎㅎ” “페퍼를 처음 발행할 때 시간을 많이 뺏긴 탓에 ‘옵바(오빠·남편)’가 반대하더라고요. 유명 페퍼가 되고 경품도 타니깐 옵바 태도가 달라지던데요. ㅎㅎㅎ” 친구의 소개팅을 주선하다 만난 ‘옵바’와 지난해 2월에 결혼했다.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인 요즘 26세에 결혼한 것도 상당히 이색적이다. 싸이질이니, 홈피니, 페이퍼니 하는 첨단을 달리지만 ‘생필품’인 휴대전화는 없다.10개월 된 딸 가인이도 낳고 경기도 수원의 한 주택에서 시부모와 함께 산다. 시어머니(51)는 “이 나이에 며느리 밥상 받을 나이는 아니잖아.”라며 “스스로 해먹죠.”라고 말했다. 그래서 부엌도 따로 쓴다. 며느리 자랑이 여느 시어미니 못지않다.“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잘 끓여요.” 정작 항아씨는 “음식을 잘 못해요. 요리책이다, 인터넷이다 뒤져서 만들곤 했는데….” 요리하면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 남편이란다.“집에서 하는 음식들을 주로 찍어서 올리다 보니 요리책에 나오는 것처럼 모양을 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손으로 여러번 만지다 보면 신랑한테 내놓기도 미안할 때도 있었고요.  신랑은 사진을 찍는 동안 식탁에 앉아 기다리기 일쑤죠.ㅎㅎㅎ” 사진 비결은?.“원래 사진찍기를 좋아해요.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배경그림을 공부했던 것도 많은 도움이 되고요.” “음식은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 정말 상상 속의 그맛이 나오더라고요. 저와 함께 행복 음식에 빠져봐요.”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은행들 ‘젊은부자 잡기’

    은행들 ‘젊은부자 잡기’

    ‘차세대 갑부를 잡아라.’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들이 20∼30대 젊은 부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다. 젊은 갑부들은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투자, 대출, 보험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목돈을 묻어두고 좀처럼 굴리지 않는 노년층보다는 훨씬 큰 이익을 은행에 안겨준다. 더욱이 아직은 PB 고객이 아니더라도 현재 PB고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60대 이상 자산가들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예비 갑부’들도 대부분 20∼30대여서 은행들은 부모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까지 치밀하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0%를 잡아라” 시중은행에 따르면 PB고객 중 20∼30대는 10% 안팎에 불과하고, 이들의 예치금도 전체의 8% 정도로 분석된다. 반면 60대 이상 고객은 35% 이상을 차지하며 예치금도 전체의 40%에 이른다. 그러나 은행들은 젊은 고객에게서 훨씬 많은 수익을 챙긴다. 실제로 A은행의 경우를 보면 7억 5000만원을 맡긴 67세 고객으로부터는 연 307만원의 이익을 얻었지만 2억 1400만원을 맡긴 36세의 고객으로부터는 494만원의 이익이 났다. 67세 고객은 목돈을 적금이나 예금에 묻어두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36세 고객은 보험(방카슈랑스)을 들고, 자신의 예금을 담보로 대출도 받아갔으며, 카드나 자기앞수표도 발행해 은행에 짭짤한 수수료 수익을 안겼다. 두 고객을 함께 담당하는 A은행 PB는 “노년층에게는 병문안, 절세상담, 각종 기념일 선물, 쇼핑, 식사 등의 다양한 서비스 비용이 들어가 실제로는 은행 이익이 거의 없다.”면서 “그러나 30대 고객은 별다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도 투자 욕심이 많아 다양한 부대 수수료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예비 갑부’ 쟁탈전 은행들이 돈을 굴리기보다는 유지에 급급한 60세 이상의 고객들을 극진히 모시는 가장 큰 이유는 ‘대를 잇는 PB고객 창출’을 위해서다. 은행 PB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서상 대부분의 노년층 재력가들은 아직 자녀들, 특히 아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상속하고 싶어한다. 시중은행의 한 PB는 “노년 고객들의 상담 대부분이 상속에 관한 것”이라면서 “현재 이들의 자산 이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상속 과정에서는 대규모 이탈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부분의 노년층이 다른 은행과도 거래를 하고 있고, 그들의 2세들은 보다 나은 투자처를 찾으려는 욕망이 강해 ‘수성’이 쉽지만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각 은행의 PB들은 노년층 고객의 ‘집사’로 나서고 있다. 특히 조만간 거액을 상속받을 20∼30대 ‘예비 갑부’들을 위해 유학 상담이나 취미 활동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소개팅’이나 중매를 주선해주며 환심을 사고 있다. 또 경쟁 은행과도 거래하는 고객과 고객의 자녀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자산을 자기 은행쪽으로 이동시킬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하나은행의 PB담당 고위 관계자는 “조만간 PB 1세대 고객의 대규모 퇴장이 예상된다.”면서 “그들의 자산을 이어받아 다양한 수수료 수익을 창출할 2세대 고객을 어느 은행이 선점하느냐에 따라 PB사업의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여담여담] 결혼이 ‘벤처’인 사회/김미경 문화부 기자

    남녀공학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주변 ‘싱글’들이 부탁하는 소개팅이나 선을 주선해온 지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그동안 다행스럽게도 멋진 몇 커플을 탄생시키며 명성(?)을 얻었다. 지금도 싱글친구들과 선후배, 출입처 지인들이 기자의 ‘오지랖’을 믿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활약상’이 예전같지 않다. 근래 들어 성공률이 현저히 떨어져서다. 또 주변에 이혼이 늘어나는 등 척박한 현실도 한몫한다.‘내가 연결해준 커플이 갈라선다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는 예외가 없다. 그래서 머뭇거리게 된다. 부러움속에 결혼했던 커플들이 갈라섰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세 커플 중 한 커플은 갈라선다.’는 통계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경제난 등 여러 이유로 헤어지는 부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자랑스럽게 청첩장을 돌렸던 친구가 ‘혼수’갈등으로 결국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까지 생겼다. 이제 이혼이나 파혼은 결혼하는 것만큼 일상적인 일이 된 것일까? 이러다 보니 주변에 화려한 ‘싱글족’이나 ‘딩크족’이 늘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결혼하면 불행하다.”고 외치는 싱글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각종 모임을 만들어 나름대로 즐거운 삶을 영위한다. 이제 결혼은 적령기도, 당위성도 없는 힘빠진 관습이 돼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사회의 기본 근간이다. 가정의 붕괴는 출산율 저하는 물론, 정신적인 혼란을 초래해 결국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 될 것이다. 오죽하면 최근 한 민간 경제연구원이 저출산을 막기 위해 독신에게 ‘독신세’를 물리자고 주장할 정도가 됐을까? 이런 의미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혼을 유도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책임일 것이다. 국내 유수의 결혼정보회사가 최근 ‘자동매칭시스템’특허를 내 벤처기업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회사측은 이 시스템을 통해 회원들을 사회계층, 생활스타일, 생물학적 특성별로 지수화해 이에 맞는 이성을 자동으로 연결해준다. 매칭시스템을 통해서라도 천생연분을 만나면 좋으련만, 결혼이 ‘100개 생기면 1개 살아남는’ 벤처와 같이 어려운 ‘사업’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⑨-KCC 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⑨-KCC 그룹

    KCC 하면 아직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페인트 ‘숲으로’ 하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금강고려화학의 영문 첫글자를 아예 사명으로 정한 KCC는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네 삶과 매우 밀접한 기업이다.KCC 제품 없이는 집을 지을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유리, 창호재, 바닥재 등 웬만한 건축자재는 거의 다 만든다.“없는 것은 시멘트와 철골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1958년 8월, 스물두살의 대학생이 “장형의 유학 제의를 뿌리친 채” 직원 일곱명을 데리고 서울 영등포에 ‘금강스레트공업주식회사’를 세운 게 KCC그룹의 출발이다. 땀에 흥건히 젖어 ‘슬레이트’를 직접 찍어내던 대학생 사장이 바로 오늘날의 정상영(69) 명예회장이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왕 회장)의 막내동생이기도 하다. “왕 회장의 형제나 자식들은 대부분 크든 작든 기업체를 떼어 받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오롯이 혼자 힘으로 기업을 일으켰다. 공장의 벽돌 한 장, 물빠지는 배수로 위치, 못 하나까지 직접 얹고 정하고 박았다.” 정 명예회장과 3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온 한 임원의 얘기다.KCC가 짧은 시간 안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현대’라는 확실한 납품처 덕도 있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창업주의 저력을 빼놓을 수 없다. KCC그룹은 지난해 1조 9000억원의 매출과 130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KCC건설(옛 금강종합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자동차유리 생산업체), 고려시리카(유리원료 제조사), 금강레저(골프장 운영업체) 등 7개 계열사 모두가 흑자를 내고 있는 재계 서열 29위(공기업 제외)의 알짜그룹이다. 특히 건축·산업자재 부문에서는 2위와의 격차를 갈수록 넓히며 독주하고 있다. 자산규모는 4월1일 현재 3조 5300억여원으로 현대백화점그룹(3조 7800억원)과 비슷하다. ●왕회장도 꺾지 못한 막내의 고집 그 자신 “공부가 싫어 소학교 졸업장이 전부가 된 것이 아니었기에, 아우들은 유학 아니라 그 이상도 해주고 싶었던”(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가운데) 왕 회장은 동국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막내동생 상영(SY)도 유학보내려 했다. 그러나 SY는 “나도 내 사업을 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왕 회장의 한마디가 곧 법이었던 현대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대가 사람들은 “막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학자금을 불모지나 다름없던 건자재 사업밑천으로 털어넣은 SY는 “통금시간(밤 12시)에 맞춰 퇴근하고 해제 사이렌(새벽 4시)에 맞춰 출근”했다. 운도 따라주었다. 때마침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면서 초가 지붕이 속속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금강스레트는 찍어내기가 바쁘게 팔려 나갔다. 제법 돈이 모이자 젊은 상영은 슬몃 욕심이 생겼다. 당시 인기있었던 초콜릿시장 쪽을 기웃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장형의 호된 꾸지람이 돌아왔다.“초콜릿은 네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다. 이왕 사업을 할거면 국가경제에 도움되는 것을 하라.” 정신이 번쩍 든 SY는 이때부터 건축·산업자재 국산화에 매달리며 한 우물만 팠다. 변변한 기술 하나 없이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던 도료(74년), 유리(87년), 실리콘(2003년) 사업에 차례로 진출했다. 다들 “무모하다.”며 말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13년이나 걸려 완공한 전주의 실리콘공장은 SY의 뚝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몽진(45) 회장은 언젠가 사석에서 “전후복구사업과 수입대체 사업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아버지의 자부심은 큰아버지(왕회장)에 못지 않다.”고 말했다. 불같은 성정도 비슷하다. 왕 회장에게 혼쭐나 넋이 나간 현대건설 임원이 출입문 대신에 캐비닛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듯,KCC에는 한 임원이 정 명예회장에게 야단맞던 도중에 기절한 실화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아들들이 소신껏 일하도록 부러 13층 회장실에는 출근하지 않는 정 명예회장은 대신 지방공장 순시로 ‘취미’를 바꿨다. 전국 13개 시·도에 모두 공장이 한 곳씩 있어 발길 닿는 대로 불쑥 들러 젊은 날 자신이 직접 들여놓은 설비들을 살펴보곤 한다. ●5개국어 능통한 정몽진 회장 SY는 아들만 셋을 두었다. 지난 2000년 그룹 경영을 장남인 몽진씨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앉았다. 이 해는 그룹의 양축인 ‘금강’(슬레이트 등 무기화학 전문)과 ‘고려화학’(페인트 등 유기화학 전문)이 합병돼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장남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회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귀국후 1991년 고려화학 이사로 경영에 합류했다. 예나 지금이나 비즈니스 영어는 그룹 안에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러시아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 중국 곤산의 페인트공장 준공식 때는 유창한 중국어로 식사를 해 현지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실리콘 기술 개발을 위해 해외 과학자들과 담판을 벌일 때도 통역 없이 직접 설득에 나섰다. 이런 그를 보고 정 명예회장은 임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저렇게 잘 하는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왕 회장을 닮아 칭찬에 인색한 정 명예회장은 아들 앞에서는 일절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정 명예회장이 그룹의 기반을 닦았다면 정 회장은 ‘3대 키워드’로 제2 도약을 노리고 있다. 첫번째 키워드는 해외다.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재 3곳(중국 2, 싱가포르 1)인 해외 생산공장을 앞으로 3년 안에 5개를 더 지어 8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환경 파괴를 대체할 차세대 성장산업인 실리콘과 건자재 유통도 핵심 키워드다.“유통을 빼앗기면 이름없는 하청업체로 전락한다.”는 것이 정 회장의 지론이다. 한 임원의 얘기다.“명예회장님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다소 보수적이다. 반면 회장님은 해외유학파답게 세계시장의 변화와 큰 흐름을 빨리 읽어낸다.” 장남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세 아들 가운데 가장 털털해 친화력이 좋다. 한때 고려대 ‘막걸리 시범조교’로 활약했던 술 실력을 바탕으로 해마다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에서 임직원들과 삼겹살 소주 파티를 벌이곤 한다. 요즘에는 위장이 나빠져 와인으로 주종을 바꿨다. ●SY의 또다른 자부심 둘째 아들 몽익 둘째 아들 몽익(43)씨는 미국 시러큐스대학에서 경영정보시스템(MIS)을 전공했다. 이어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국제재정학 석사학위를 땄다. 그는 이 전과정을 4년만에 끝마쳤다. 금강과 고려화학 합병 직후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도록 경영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주역이 바로 그다. 최근에는 사무실 기기를 최신 오피스용 가구로 교체하고 소프트웨어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룹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강화시켜온 덕분에 올 2월 KCC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물론 직급은 총괄 부사장으로 같은 대표이사인 형보다 아래다. 입사(89년 금강)는 형보다 2년 빠르다. 적절한 긴장관계를 통해 건전한 경쟁을 이끌어내려는 정 명예회장의 의도가 엿보인다.KCC 지분을 몽진(17.7%)-몽익(8.82%)-몽열(5.29%) 세 아들에게 모두 나눠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 부사장은 형보다 더 꼼꼼한 편이다. 과묵해서 임원들이 말붙이기를 다소 어려워한다. 의외로 운동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고 잘한다. 고등학교 때는 전국체전에서 승마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농구·스키·수영 실력도 프로급이다. 골프는 싱글(핸디 10)에 가깝고 엄청난 장타다. 반면 정 회장은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클래식이나 재즈 등 집에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정 회장이 동생 얘기가 나오면 사석에서 곧잘 하는 얘기가 있다.“딜(deal)은 아무래도 내가 좀 더 강하다. 그러나 디테일은 동생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내가 협상을 통해 골격을 세우면 그 골격에 맞게 디테일을 짜는 것은 몽익이다.” 유난히 용산고 출신이 많은 것도 KCC가의 특징이다. 막내 몽열씨를 빼고는 3부자(父子)가 모두 용산고를 나왔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도 용산고 출신이다. 모교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애정은 유명하다. 장남 몽진씨가 이른바 ‘뺑뺑이’로 용산고에 배정됐는데도, 발표난 그 길로 친구들에게 한 턱 냈을 정도다. 용산고에 승마반도 만들어줬는가 하면 농구 코트까지 지어줘가며 허재 등을 영입, 오늘날의 ‘농구 명문’으로 키워냈다. 몽진씨와 몽익씨는 고등학교-대학교(고려대)-대학원(조지 워싱턴) 동문이기도 하다. ●‘스위첸’ 성공시킨 ‘리틀 정상영’ 셋째 아들 몽열 89년 미국 FDU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물여섯살의 나이에 고려화학에 입사한 셋째 아들 몽열(41)씨는 97년 금강종합건설 상무가 되면서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건설 체질’이다. 공사판에서 소주잔 기울이기를 좋아하고, 낭만도 아는 기분파다. 그러나 한번 화가 나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그룹 임직원들이 정 명예회장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존재다. 정 회장도 “우리 형제 가운데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 막내”라며 “몽열이가 화나면 나도 무섭다.”고 농반진반 얘기할 정도다. 작고 단단한 체구나 사업 수완도 아버지를 빼닮았다. 2003년 사장으로 승진한 몽열씨는 주택사업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만에 ‘스위첸’(아파트)과 ‘웰츠타워’(주상복합)를 유명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았다. 여기에는 정 사장의 정보기술(IT) 지식도 한몫 했다. 컴퓨터학을 전공한 그는 일상생활은 물론 기업 경영에도 IT를 일찌감치 접목시켰다. 선진국형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공사를 맡은 주택의 소프트웨어에도 “유별날” 만큼 공을 들였다. 덕분에 KCC건설은 도급순위 32위, 신용도 9위의 중견업체로 성장했다. ●‘창업동지’ 조은주 여사 현대가의 가풍이 그렇듯 정 명예회장은 연애결혼을 했다.“큰형님 회사(현대건설)를 드나들면서 경리팀의 동갑내기 아가씨에게 반해” ‘작업’을 건 것이 결혼까지 이어졌다. 조은주(69) 여사다. 서울 진명여고를 나온 조 여사는 당시 이화여대에 합격해 놓고도 등록금이 없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독립군이었던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된 아버지가 6·25전쟁 때 전사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조씨는 ‘대학생 사장’을 남편으로 둔 덕분에 물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슬레이트공장 인부들의 밥이며 새참은 으레 그의 몫이었다. 직원들 식사를 지어 나르는 일은 그후로도 20년 넘게 이어졌다. 지금도 서울 서초동의 구사옥에서 근무하는 고참 직원들 가운데는 사원식당에서 밥을 짓는 조 여사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 ●큰며느리는 음대… 셋째며느리는 미대 자유연애로 결혼한 정 명예회장은 아들들의 ‘사랑’에도 너그러웠다. 몽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홍은진(41)씨와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했다. 홍씨는 한때 아이스크림 ‘퍼모스트’로 유명했던 옛 퍼모스트유업 사장의 딸이다. 전자부품회사인 ‘퍼시픽 컨트롤스’ 홍준 사장이 처남이다. 그렇다면 소개팅 주선자는 누구일까. 다름아닌 사촌형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촌동생에게 친구의 처제인 음악도를 엮어준 것. 정 의장과 죽이 맞아 처제를 소개팅 장소로 내몬 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치과 주치의이자 성균관대 교수인 임순호 박사다. “연애할 때 플루트를 불어주던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는 정 회장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며 “결혼후에는 한번도 플루트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투덜대곤 한다.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과의 혼사는 몽익씨에 이르러 이뤄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 최은정(42)씨가 부인이다. 가톨릭 계통인 일본 성심대학 교육심리학과를 나왔다. 최씨의 언니 은영씨는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과 결혼했다. 조 회장이 몽익씨의 손위동서인 셈이다. 막내 몽열씨는 큰형수의 영향을 받았는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이수잔(35)씨와 결혼했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외국인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한자이름이다.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장인이 ‘쌓을 잔( )’자를 썼다고 한다. 여자들의 사회활동을 싫어하는 가풍 탓에, 큰동서와 마찬가지로 결혼과 동시에 그림을 접었다. 막내 며느리답게 활달한 편이다. ●‘숙부의 난’ 할 말 많지만… 정 명예회장은 조카 며느리인 현대그룹 현정은(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었다. 현대가 사정에 밝고 당시 분쟁에도 깊숙이 개입했던 한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한 명예회장님의 생각은 분명하다. 현 회장의 외가를 포함해 정씨 집안 사람이 아닌 제3자가 큰형님이 평생을 바쳐 일군 현대를 넘보려 한다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대상선 등 관련 지분을 팔지 않고 계속 갖고 있는 것은 이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라고 설명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정몽헌 회장에게 200억원을 조건없이 내준 것이 ‘의리’가 아니라 ‘경영권을 염두에 둔 계산된 행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 “지나간 상처를 다시 헤집고 싶지는 않다. 명예회장님도 더이상 언급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리셨다. 다만 이 말만은 하고 싶다. 명예회장님은 장조카인 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이 아버지(왕 회장)와의 갈등으로 방황할 때 형님 눈치 보지 않고 우리 회사 부사장 자리를 선뜻 내줬다. 또다른 조카가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시달릴 때 70억원을 조건없이 빌려준 분도, 몽헌 회장이 군 복무를 6년이나 할 때 뒤를 봐준 분도, 명예회장님이었다.” ●“숫자는 기본” 전문 경영인들 건장한 체격의 김춘기(59) KCC 대표이사 사장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정몽진 회장이 “(그룹에)꼭 필요한 분”이라고 언급한 이다.75년 고려화학으로 입사해 꼬박 30년을 KCC와 함께했다. 특히 영업쪽에서 잔뼈가 굵었다. 마당발 인맥과 철저한 고객관리로 KCC의 영업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말단사원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이력도 흔하지는 않지만 ‘국가대표 스키선수’라는 경력이 더욱 눈길을 끈다.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학교때 우연히 본 스키영화 ‘백령의 왕자’에 푹 빠져 스키선수가 됐다. 대학생(경희대)때는 동계 유니버시아드와 올림픽 대회에도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그러나 취직과 동시에 “스키는 깨끗이 잊었다.”고 김 사장은 털어놓았다. 꼼꼼함은 모든 임원들의 공통점이지만 김 사장은 유난히 치밀하고 숫자에 밝다.“노력은 능력을 앞선다.”는 게 30년 직장생활의 신조다. 김 사장의 좌우 양쪽으로는 정몽진 회장에 버금가는 영어 실력으로 수출을 책임지고 있는 김영호(55·부사장) 해외본부장과 전문 무기화학 지식으로 제품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정복동(58·부사장) 생산기술본부장이 포진하고 있다. 금강레저 박연구(51) 대표와 고려시리카 이성수(53) 대표는 대학 졸업장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전문인력들이다.“학교 공부는 다소 게을리했을지 몰라도 추진력과 친화력은 (전교 1등보다)훨씬 낫다.”는 KCC의 독특한 사풍이 반영된 결과다. 코리아오토글라스 주원식(62) 사장과 금강화공의 한상기(57) 중국 곤산·신세균(55) 베이징 법인장,KCC 박성완(47) 싱가포르 법인장 등은 전문 기술인맥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일본 아사히글라스 출신의 시마나가 모토야스(61) 부사장 등도 KCC를 떠받치는 핵심 인력들이다. hyun@seoul.co.kr ■ 정상영 일가 ‘밥상머리 교육’ 정상영 명예회장의 세 아들 부부는 한주 걸러 일요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이태원 본가를 찾는다.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서다.“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며 자식들과 아침식사-사실상 새벽밥-를 함께 했던 왕 회장에 비하면 며느리들의 부담이 한결 덜하다. 음식도 각자 집에서 ‘주특기’ 한가지씩을 싸들고 와 끓이기만 하면 된다. 며느리들의 음식솜씨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 정 명예회장은 며느리를 들이면 반드시 반년씩 데리고 살았다. 그래야 가풍도 익히고 속정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학 내내 플루트만 불다온 큰며느리가 음식을 잘 할 리 만무했다. 둘째며느리에게 기대를 걸었다. 요리학원을 다녔다는 재벌가의 둘째며느리는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내놓았다. 견디다 못한 정 명예회장은 급기야 “이러다가 굶어죽겠다.”며 하소연했다고. 그 며느리들이 ‘사원식당 주방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시어머니의 특별지도 아래 지금은 ‘선수’가 됐음은 물론이다. 정 명예회장은 자식들에게 매우 엄격하다. 그 영향을 받아 정몽진 회장도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아들 명선(11)군을 굳이 외국인 학교나 사립학교가 아닌 집 부근의 일반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다. 학교도 자가용을 태우지 않고 걸려서 보낸다.“어렸을 때부터 보통사람, 못사는 사람의 삶도 느껴봐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다만 큰딸 재림(15)양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귀국해 “성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외국인 학교에 보냈다. hyun@seoul.co.kr ■ 정 명예회장 ‘씨름꾼 경영론’ 왕 회장이 ‘빈대의 철학’으로 유명하다면 정상영 명예회장은 90년대 중반 ‘씨름꾼 경영론’으로 회자됐다.“씨름은 씨름꾼에게 맡겨야 한다.”는 단순 명쾌한 논리였다. 정 명예회장은 “씨름꾼이 아닌 사람이 씨름판에서 승리하기 어렵듯 기업간의 경쟁은 기업가에게 맡겨야 한다.”며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강조했다.KCC그룹의 사시인 ‘맡은 자리의 주인이 되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왕 회장의 지론이기도 하다. 지역 거상들이 장악하고 있던 총판(판매실적에 관계없이 물건값 선지급) 체제에 맞서 팔린 만큼만 대금을 지급하는 코카콜라식의 ‘루트 세일’을 도입해 유통 혁명을 일으킨 것이나, 당시로서는 ‘생뚱맞기’ 그지없는 슬레이트 홍보영화를 만들어 275개 시·군에 배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큰형에게 영향받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렇듯 정 명예회장에게 있어 왕 회장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형이라기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차이만 스물 한살이었다. 조카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는 두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젊었을 때 잠깐 초콜릿사업에 눈돌린 것 외에는 한번도 한 눈을 팔아본 적이 없는 그가 1970년 8월 현대차 부사장으로 홀연히 옮겨간 것도 “와서 미수금 70억원을 해결하라.”는 장형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자까지 회수해주고 다시 KCC로 돌아왔을 때는 1년 반이 흘러 있었다. 훗날 정 명예회장은 “중요한 시기에 내 사업에 공백을 가져 아쉬워한 적은 있었어도 불평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여기에는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왕 회장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막내동생을 가까이 대했던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KCC측은 펄쩍 뛴다. 한 임원의 얘기다. “92년 대선 패배 이후 두문불출하던 왕 회장이 다시 산업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95년 KCC의 여주 유리공장 3호기 점화식에서였다. 또 거동이 심하게 불편해지기 전까지 왕 회장이 거의 매일같이 들러 골프를 친 곳이 금강CC였다. 라운딩 멤버는 언제나 정상영 회장이었다.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왕 회장 성격에 이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정 명예회장도 세상 사람들의 짐작 이상으로 장형에게 극진했지만, 왕 회장 역시 막내동생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결혼이야기] 최민수(28·현대산업개발 홍보팀) 이선영(25·신한은행 김포공항점)

    [결혼이야기] 최민수(28·현대산업개발 홍보팀) 이선영(25·신한은행 김포공항점)

    우리가 처음 만난 때는 2003년 5월 3일. 친구가 소개팅을 했는데,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이런 운명도 있을까. 그녀 역시 친구 따라 우연히 나온 것이다. 우연이 필연으로 연결될 수도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는 분위기 넘치는 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아니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던 나의 심장이 갑자기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멈춰버리기 일보 직전까지 달아올랐다. 나는 용기를 냈다. 주머니에는 영화표가 있었다. 나는 영화표를 꺼내들고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런데…. 결과는 OK! 그녀와 다시 만나 처음 본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었다.“다들 손잡고 다니는데…, 우리만 따로 걷고 있네요. 손 잡아도 돼요?”난 영화는 딴전이었고 그녀의 부드러운 손맛(?)에 푹 빠졌다. 아직도 영화 스토리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한 데이트를 기념으로 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앞으로 1주일 내내 데이트를 신청해서 모두 OK를 받아내겠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가 함께하라는 운명이다.” 운명일까, 정성일까. 아니면 하늘이 도왔을까. 그녀는 1주일 데이트 신청에 한번도 퇴짜를 놓지 않았다. 이후 달콤한 데이트를 이어가던 어느날 우연찮게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줄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그녀의 집이 우리 회사가 지은 아파트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나의 운명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 속으로는 어느새 ‘청혼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에게 고백할까…. 고민에 빠져있던 1년 전, 아르키데메스의 발견처럼 갑자기 내 머리를 스치는 프러포즈 방법이 떠올랐다. 신한은행 홍보팀의 협조를 얻어 사내방송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녀의 직장에서도 도와줘 내가 쓴 사랑의 고백이 담긴 편지와 신청곡(임창정의 ‘결혼해줘’)까지 사내방송을 탔다. 우연히 방송을 듣던 그녀는 감동을 받았고, 며칠 뒤 나는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하며 고백했다.“평생 너의 사진 속에 나를 담고 싶다.”고. 드디어 다음달 14일(토) 오후 3시 안암동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결혼한다. 처음 만난 지 2년 만이다. 다가올 나의 밝은 미래를 그려보며 오늘 하루도 그녀를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해본다.
  • [결혼이야기]이교혁(25·SK텔레콤 홍보실) 정혜림(25·교사)

    [결혼이야기]이교혁(25·SK텔레콤 홍보실) 정혜림(25·교사)

    2000년 4월 고향 친구들 술자리에 새로운 여자가 나왔다. 소개팅식으로 만남을 주선한 것인데, 어색할까봐 여럿 있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한 것이다. 말수가 적고 차분한 듯했지만 그녀는 노래방에서 크라잉넛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을 불러 나의 첫 인상과 예상을 뒤엎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먼저 “내가 누구게?”라는 ‘유치한’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그 해 8월,4개월간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나는 군대를 가게 됐고, 훈련소에서 그녀에게 아무 말없이 내 목걸이를 손에 쥐어주며 내 마음을 주었다. 이후 그녀는 나의 힘든 훈련소 생활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매일 편지를 보냈고 하루에 2∼3통씩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동료들의 부러움은 대단했다. 군생활 몇달 후. 그녀는 전화통화에서 “내 친구들에게 너를 어떻게 소개해야 될지 모르겠어….”라는 물음을 던졌다. “사귀자.”는 말을 한 적도 입대할 때 “기다렸으면 좋겠어?”라는 물음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던 건 내가 더 좋아했던 만큼 그녀가 나의 제대를 기다려 줄 거라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기쁜 마음을 억누르며 “네 마음대로 소개햐.”라는 충청도 사투리로 대답을 했다. 멋없는 말투였지만 그녀는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다. 제대하기 10개월 전 그녀는 서울로 이사를 왔고 용산에서 군복무 중이었던 나는 더 자주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졸업할 시기가 다가왔고 그녀는 결혼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우리는 동갑에 생일도 같았는데 이듬해의 우리 생일인 4월24일 결혼을 하자는 나의 제안에 그녀는 흔쾌히 동의했다.‘성격 차이’로 헤어지는 이들이 많은 요즘 서로 노력하며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 [결혼이야기]신동철(35·우리은행 대리) 원선아(29·서울프라자호텔 대리)

    [결혼이야기]신동철(35·우리은행 대리) 원선아(29·서울프라자호텔 대리)

    사랑을 ‘사고’라고 했던가?‘제발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게 하소서.’작년 늦여름 어느 날, 나는 사랑의 ‘교통사고’라도 나기를 바라며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대학교 남자동기가 학교 선배이자 직장 선배인 그를 소개해 준다고 했을 때 남자들이 소개해 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준 미달, 함량 미달이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친구의 요청에 이번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옅은 희망을 품고 끝내는 승낙하고 만 것이다. 늦는다는 성의없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는 멀리서부터 웃으며 걸어오는 저 사람!그가 내 앞에 앉는 것이 아닌가?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최대한 호의적인 미소를 띠고 앉아 지루하게 얘기를 듣고 있는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이 사람에게 꿈이랄까, 인생의 목표랄까, 철학이랄까 아님 멋이라고 할까…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한 낯선 단어들이 떠올랐다. 스물여덟인데도 결혼할 기미는커녕, 연애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주위 사람들은 소개팅에 나가면 무조건 눈 딱 감고 세 번만 만나보라고 충고를 해 오던 터였다. 그럼 이 사람도 세 번만 눈 딱 감고 만나볼까? 두번째 만남은 곧 이루어졌다.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는 평범한 데이트를 했는데 도무지 재미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중에 진한 농담을 던지는 짓궂은 기사를 만나 ‘납치의 위험’까지 느낀 나에게 그날은 악몽으로 기억되었고 이후에 걸려오는 모든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르는 그는 답답했겠지만 내겐 그런 배려심은 없었다. 늘 그렇듯 그저 그런 소개팅으로 막이 내리는가 싶었다. 때마침 나는 부서가 바뀌어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2주간의 공백기간 동안 시적 표현을 담아 문자를 보내는 그에게 마음이 조금씩 움직여 세번째 만남이 이루어졌고 열번째 만남이 있던 날 그는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느닷없이 이뤄진 프러포즈였지만 그의 말에 진실이 느껴졌고, 만남이 지속되면서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져 스무번째 만남에서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남편과 메모하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 덕분에 만날 때마다 몇번째 만남이라고 세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여든일곱번째 만남을 끝으로 매일 함께할 수 있는 부부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확신한다. 지난여름 서로가 34년 동안,28년 동안 찾아 헤맨 잃어버린 반쪽을 만났음을, 그래서 온전한 원이 되었음을, 그래서 이 세상을 향해 함께 힘차게 굴러 나갈 거라는 것을.
  • [결혼이야기]이형근(33·LG전자 홍보팀 과장) 조혜진(31·주부)

    [결혼이야기]이형근(33·LG전자 홍보팀 과장) 조혜진(31·주부)

    지난 2003년 무더웠던 8월의 여름 날 오후, 후배 녀석이 사무실이 떠나가라 큰 목청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소개팅? 좋지∼이쁘고 성격도 좋다구? 그런데, 몇 년생이라구?” 그러고서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졌다.“음… 74년생이면, 나랑 동갑이네, 그러면 잠깐만 기다려봐.” 한참 머뭇거리던 후배는 나에게 “이 대리님 소개팅하실래요 대리님보다 나이도 두살이나 어리구 이쁘다는데요.” 이렇게 해서 나는 평생 반려자가 된 나의 반쪽 조혜진을 만나게 된다. 동그란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이 돋보이는 예쁘고 선한 첫 인상, 다소곳하고 얌전한 성품도 일품. 첫만남에서부터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결심을 굳게 했다. 두 번째 날에 나는 대뜸 그녀의 손을 잡아 버렸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1년여 연애 기간 동안 그녀와 나는 다툰 기억이 없다. 우리의 경우엔 어떤 문제도 없이 순조롭기만 했다. 나는 일산에 살았고, 그녀는 분당에 살았던 탓에 우리에게는 평일 데이트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은 평일날 영화를 본 뒤 그녀를 분당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다. 나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일산 집에 귀가할 수 있었다. 그 뒤부터는 평일 데이트는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투정을 한 적이 없다. 그녀는 참을성도 많고 무엇보다 까다롭고 급한 내 성격을 잘 받아준다. 그렇게 열애 끝에 지난 1월28일 결혼식을 올려 현재 목동에 신혼 살림을 꾸리고 있다. 무엇보다 나 역시 그녀의 고운 성품에 동화되어 서로에게 필요한 ‘안성맞춤 부부’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지만 아직 집 거실에 번듯한 TV 한 대 장만하지 못했다. 나의 회사에서 세계적인 첨단 TV를 생산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더 좋은 제품을 더 낮은 가격으로 출시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TV 구입을 못하게 하는 이유다. 그래서 아직 회사 동료, 학교 동창, 친구들에게 집 구경을 못시키고 있다. 결혼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아내는 “TV 없이 집들이는 절대 안할 것”이라고 말한다. 집들이를 하고 싶으면 어서 빨리 TV를 장만하자고 강요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 벽걸이 TV 가격이 더 내려갈 예정이란 말이야.” 결혼을 앞두신 분이나 결혼하신 분들의 재미있는 연애경험담, 결혼생활의 추억담을 실어드립니다. 사진, 청첩장을 보내주시면 함께 실어드립니다. 매달 마지막주에는 7팀을 추첨해 2팀에게 토마토스튜디오 웨딩사진 촬영권,5팀에게는 에버랜드 자유이용권(2장)을 드립니다. ■ 보내실 곳:wedding@seoul.co.kr(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반드시 기재) ■ 선물:스튜디오 촬영권(화장 및 드레스 포함,11×14인치), 에버랜드 자유이용권(6만원 상당) ■ 발표:매월 마지막주 목요일. ■ 토마토 스튜디오는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웨딩사진 전문 스튜디오입니다. 새로운 감각으로 예비부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곳이래요. (02)3442-2321,www.tomatostudio.co.kr
  • [깔깔깔]

    ●이 여자가 사는 낙 소개팅 자리에 나선 남자와 여자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남자 : 혹시…, 담배 피우나요? 여자 : (호들갑 떨며) 어머∼, 저 그런 거 못 피워요∼! 남자 : 그럼, 술은? 여자 : 어머∼, 저 그런 건 입에도 못 대요! 남자 : 그러면 지금까지 연애는? 여자 : 연애요? 전 아직까지 남자의 ‘남’자도 모르고 살았는걸요∼! 남자 : 정말 순진하시군요! 전 반갑긴 하지만 무슨 낙으로 사시는지? 여자 : 호호호, 거짓말하는 재미로 살아요! ●힘이 넘쳐서 A : 내 나이가 일흔다섯인데 저렇게 멋진 모델들을 보면 스무살만 더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 B: 스무살만 더 젊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잘못하신 것 아닌가요? A: 아냐, 스무살 더 먹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여자들을 봐도 흥미가 없어질 것 아닌가.
  • [결혼이야기]한동호(33·하나로텔레콤 PR팀)·변원진 (34·서울광고기획 매체팀)

    [결혼이야기]한동호(33·하나로텔레콤 PR팀)·변원진 (34·서울광고기획 매체팀)

    지난 2003년 여름 청평의 수상 스키장.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직원들이 한데 모인 행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머리가 촉촉이 젖은 한 여자가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순수한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뒤풀이 자리에서 내 이미지를 심어주기로 마음을 먹고 슬리퍼가 벗겨질 정도로 막춤추기도 불사했다. 당시 노래방 바닥을 짓이기느라 까맣게 된 발바닥이 족히 3일은 간 걸로 기억한다. 뒷조사를 통해 이름, 나이, 회사 등을 알아봤다. 나보다 한 살 연상이란다. 그렇게 해맑고 어린 이미지인데…. 하지만 작업을 접을 만큼의 장애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당시 만나던 여자와 헤어질 기로에 있던 터라 선뜻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 후 3개월 동안 마음을 정리했고 여름이 지나 찬바람이 불 때 다시 시도했다. 주변을 탐문한 결과 남자 친구는 없었고 열심히 선을 보는 중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저녁시간에 전화를 했다. “한동호라고 하는데 기억 나세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요새 소개팅 많이 하신다고 하던데, 저랑도 한번 합시다.” 강하게 나갔다. 그 날이 아마 수요일쯤이었다. 금요일도 토요일도 약속이 있고 일요일은 강아지 산책을 시켜야 한다며 거절했다.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지만 물러날 수 없었다. “월요일날 보죠!” 거절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알았는지 승낙을 받아냈다. 그러나 월요일 오후 약속 재확인 차 전화를 했더니 약속이 있어 못 만나겠단다. 약속 잡을 때는 자존심을 버렸지만, 약속을 일방적으로, 그것도 당일 날 깬 것에 대해서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우린 인연이 아닌가 보죠.” 아쉽지만 과감하게 접었다. 그렇게 전화 두 통화의 추억을 남기고 가을이 지나갔다. 시간은 흘러 2004년도 4월 봄이 왔다. 그녀를 본 수상스키장에서 만난 또 한 친구(남자)로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 친구가 그녀에게 내 얘길 했더니 그녀도 내심 아쉬워하는 것 같더란 것이다. 더이상 나를 막을 것은 없었다.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어 다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시 날을 잡았다.6개월 전과 마찬가지로 약속 당일 재확인 차 전화를 했다. 갑자기 상사를 모시고 어딜 가야 한단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늦게라도 올 테니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6개월 침묵의 효과가 제대로 먹혔나 보다. 밤 9시가 되어서 겨우 만났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우리의 만남이 오는 26일 결실을 맺는다. 어렵게 만난 만큼 그녀와의 인연을 영원한 사랑으로 예쁘게 간직할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해본다. 원진아 사랑해∼.
  • [결혼이야기]장윤석(32·신세계 백화점부문) 성윤희(30·임상병리사)

    [결혼이야기]장윤석(32·신세계 백화점부문) 성윤희(30·임상병리사)

    생김새와 성격이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른, 도무지 공통점이 없는 우리였지만 결혼 전에 딱 한가지 맞는(?) 게 있었습니다. 언젠가 드라마틱하게 연인을 만나 결혼하겠다는 아주 평범한 공통점. 이런 만남은 누구나 꿈꾸는 소망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흔한 소개팅으로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선배 여자친구의 친구를 소개받게 되었던 거죠. 처음 보았을 때, 서로의 이상형도 아니고 첫눈에 반하지도 않았습니다. 인연이 되려고 했을까요. 카페에서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귀 기울여주고 미소로 답해 주는, 너무도 편한 느낌을 받게 됐고 혹 ‘나의 반쪽’이란 생각이 와닿았습니다. 이후 만남의 정은 모닥불처럼 조금씩 타올랐고, 한동안 여행을 다니고 영화와 라이브 카페를 좋아하고 등등 공통점 찾기에 열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남도 1000일이 지나면서 무료해져만 갔습니다. 서로의 집도 멀어 나는 경기도 분당, 그녀는 서울 강북이었으니 만남도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전국 방방곡곡에 가볼 만한 곳도 다 가보고 볼 만한 영화도 다 가봤으니 무료함이 더했을 법했지요. 이런 와중에 큰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기다리다 못해 결혼이야기를 꺼냈고, 나로선 결혼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터라 자신없은 대답만 늘어놓았지요. 그녀는 헤어짐을 결심했는지 이후 연락을 끊었습니다. 우리의 화해에는 첫 소개를 해주었던 선배 커플이 다시 다리를 놔주었습니다. 다시 만난 나에게 주어진 그녀에 대한 기회는 ‘영원히 행복하게’ 그 것뿐이었습니다. 만난 지 3년째 날에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프러포즈를 어떻게 할까. 드라마틱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의미있게 프러포즈를 계획하던 중 인터넷에서 프러포즈 대행사를 찾게 됐습니다. 호텔의 BBQ파티를 예약하고, 노래와 사랑고백 편지를 읽어주려는 이벤트를 연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2004년 8월15일 만난 지 3년째 되는 날, 드디어 프러포즈를 감행했습니다.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노트북을 갖고 가 이어폰을 그녀의 귀에 꽂아주었습니다. 노트북에는 당시 박신양씨가 불러 화제를 모았던 ‘사랑해도 될까요’를 노래하는 내 모습이 플레이됐습니다.3일밤을 새우면서 만든 영상편지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사이버식 프러포즈’라고 해야 하나요. 편지가 끝날 무렵 드디어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러곤, 공통점이 없는 우린 결혼 준비 4개월만인 지난 2월19일 결혼에 골인했고, 지금은 한 이불속에서 같은 꿈을 꾸어갑니다.
  • [결혼이야기]오승주(32·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정효은(27·MBC 스페셜팀 작가)

    [결혼이야기]오승주(32·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정효은(27·MBC 스페셜팀 작가)

    6개월 만의 초고속 결혼. 주위에 결혼 소식을 전하자 한결같이 돌아온 대답은 “사고쳤냐?”였다. 사고라고?맞다. 그것도 아주 대형사고다. 평생 결혼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 같던 숙맥이 누구나 보증하는 당차고 야무진 평생의 반려자를 얻었으니까. 효은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9월18일. 회사 인터넷팀에 근무하는 효은 후배의 소개로 얼굴을 맞댔다.“소개팅이나 한번 해달라.”고 쉼없이 닦달하는 협박성 부탁을 견디지 못한 후배는 “언니, 그냥 가서 얼굴이나 내밀고 와.”라면서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만나기 며칠 전에 이미 휴대전화 번호를 건네받아 수차례 효은의 목소리를 들은 상태였기 때문에 첫 대면이라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처음 만나도 오래된 느낌. 워낙 영화를 좋아하는 효은과 곧바로 심야극장으로 향했다.3편의 영화 관람을 마친 뒤 효은을 바래다주고 초가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다. 효은과 나머지 인생을 함께 하겠다고…. 이후의 플랜은 거침없이 진행됐다. 방송작가의 직업 특성상 작품에 참여하면 새벽 3∼4시는 거뜬히 넘기는 효은에게 ‘안전한 귀갓길’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승용차를 몰고 데리러 갔다. 얼굴을 맞댈수록 추억과 정이 쌓여 갔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체육부에 있던 당시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하면서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회사에서 ‘잘릴’ 뻔한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10월말 사회부에 와서도 새벽 2시 야근이 끝나면 곧바로 효은의 회사 앞으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그러면서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이 단단히 굳어갔다. ‘날카로운 첫 키스’는 효은의 집 앞에서 11월초 번개처럼 이루어졌다. 작품 뒤풀이로 술을 마시고 얼굴이 발그레진 효은의 입을 포갰다.“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이 멀었다.”는 한용운님의 시구는 틀리지 않았다. 프러포즈는 효은의 집 근처 비디오방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고 나서.“결혼이 미친 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게.”라고 뜬금없이 말하자 효은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남으로 만나 사랑을 키워온 여섯달, 오는 5일 우리는 결혼식을 올린다. 평생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며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가슴에 새긴 채 새롭게 열리는 인생의 열차에 함께 탑승한다.
  • “삼겹살·순대 맛에 푹 빠졌어요”

    3년 동안 한국의 고교에서 우리 교과과정을 배웠던 외국 유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했다. 경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서울산업대에 합격한 9명이 그들로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출신이 각각 3명씩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초청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지난 2002년부터 한국에서 살며 배우고 있다. 이미 지난 98년부터 선배 31명이 한국에서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9명 전원이 대학에 진학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최고 18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의 한국행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기숙사가 제공된다. 경기기계공고 추교수 교사는 “모두 그 나라에서 엘리트로 꼽히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이들에게 한국 생활은 낯설고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쇼핑을 하러 갔는데 대부분이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 hina)’라서 한번, 그러면서도 가격이 비싸서 또 한번 놀랐죠.” 중국에서 온 둥밍(董明·20)은 대뜸 이렇게 말한다. 둥밍은 “신문 보도가 자유롭고 드라마나 음악은 물론 영화 같은 문화산업이 발달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학생들에게 한국 생활은 ‘문화적 충격’이라 할 만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아브로르(20)는 “처음엔 학생들이 직접 교실을 청소하고 선생님들이 예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삼겹살, 순대의 맛에 푹 빠져 있다. 중국 출신 류린(劉琳·19)은 “한국 음식 만드는 것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9명중 4명은 한국인 조상을 둔 ‘고려인’이다. 러시아에서 온 양 이고르의 할아버지는 서울 출신으로 구한말 사할린으로 이주했다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아픈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 늘 할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서 공부해보고 싶었다는 이고르는 “서울의 친척들을 만나게 돼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고려인 학생들에게도 한국어 익히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려인 3∼4세인 이들은 우리말을 모른 채 한국에 왔다. 한국어학원을 다니고 학교 생활을 3년이나 했지만 아직도 우리말은 서툴다. 2일 대학 입학식을 갖는 이들이 사뭇 기대하고 있는 것은 ‘소개팅’이나 ‘미팅’이다. 하지만 이성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공부에 대한 욕심을 앞지르진 못한다.“석사, 박사까지 따 양국 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이라는 이들에게서 대학 새내기의 풋풋한 꿈이 읽혀진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결혼이야기]김민석(29)·휘닉스 커뮤니케이션즈 송서윤(27)·푸르덴셜 생명보험

    [결혼이야기]김민석(29)·휘닉스 커뮤니케이션즈 송서윤(27)·푸르덴셜 생명보험

    ‘첫 인상의 법칙’을 깨뜨려라. 흔히 사람들은 첫 인상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의 인상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데 반을 차지한다고 하죠. 하지만 그 법칙은 제가 그녀를 만날 때만은 예외인 것 같았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군대를 제대할 무렵이었습니다. 같은 부대 동료가 시켜주는 소개팅 자리에 나가 그녀를 만났습니다. 대부분 소개팅을 할 때는 옷차림도 신경 쓰고, 시간도 맞춰서 가지만, 그 날 저는 별로 기대나 관심이 없어 옷도 대충 걸쳐 입고 일부러 30분이나 늦게 약속장소로 나갔습니다. 같이 간 신참이 “늦었는데 빨리 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다그쳤지만 “기다리기 싫으면 가겠지.”라고 배짱까지 부리며 더욱 느긋하게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나간 저는 너무나 순진한 모습으로 약간은 추위에 떨어 상기된 얼굴로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소위 말하는 ‘필(삘)’을 받았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행동했습니다. 후일에 들은 얘기지만 그녀는 기분이 많이 상해서 오기로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늦게 온 주제에 껌까지 질겅질겅 씹으면서, 늦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먼저 성큼성큼 앞서가는 제 모습을 보고 정이 뚝 떨어졌는데, 한참을 얘기 해보니 첫 인상과는 좀 다른 사람이란 걸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두 번째 만남을 허락했다는군요. 이번에는 첫 만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서서히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적당히 망가진 첫 인상이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이 된 셈이었습니다. 첫 인상을 만회하기 위해 연애 기간 내내 말 없이 행동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를 5년 동안 지켜주었고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확신이 들었습니다. 서로에게 “언제 프러포즈할 거야.”라는 식으로 농담을 주고 받다가 별다른 프러포즈 없이 양가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곧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부모님께 프러포즈를 받은 격이랄까요? 너무 잔잔한 결혼 과정에 아내가 섭섭해하는 눈치더군요. 추억의 프러포즈 없는 결혼 생활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선배들의 충고도 보태졌습니다. 결혼 날짜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지만 깜짝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었죠. 결국 감동을 주는 이벤트보다 더한 프러포즈는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2004년 마지막 날 밤, 풍선을 가득 채운 스카이 라운지에서 5년간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담은 5통의 편지와 ‘오감’을 자극하는 선물로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감동 받은 그녀는 저를 안아주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 [결혼이야기]김용철(32·KT 홍보실)·이승미(27·김&장 법률사무소)

    [결혼이야기]김용철(32·KT 홍보실)·이승미(27·김&장 법률사무소)

    2000년 6월17일의 일이었다. 당시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소개팅으로 영문학과 3학년생인 그녀를 만났다. 내 앞에 다가온 그녀의 작고 귀엽고 순수한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내게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차를 마시고 스파게티 전문점에서 저녁을 먹으며 우리의 가슴 떨리는 첫만남은 그렇게 끝이 나려 했다. 그런데, 헤어질 때 그녀가 남긴 Good-bye 멘트는 예술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고개를 꾸벅하면서 “안녕히 가세요.”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한참 순수하고 귀여운 대학 3학년생에게 27살 나이는 극복할 수 없는 대단한 것인가? 그러나 우리의 만남이 두번 세번 계속되면서 5살의 나이 차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누구보다도 닭살스러운 커플이 되어갔다. Good-bye 인사가 “안녕~.” 두 글자로 짧아지는 것만큼 우리의 사이도 무척이나 가까워져 갔다. 마침 기말고사도 끝나 그녀의 머리도 식혀줄 겸 강촌으로 기차여행을 갔다.2인용 자전거를 탈 때 내 허리를 꼭 잡은 그녀의 작은 손길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화창한 여름 햇살과 푸르른 녹음 속에 그녀와 함께 있으매 얼마나 마음이 설는지…. 구곡폭포를 걸어 오르는 길에 조그만 벤치에 앉아 그녀의 땀을 식혀주면서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앞에서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내 모습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단다. 대학생인 여자 친구 덕분에 그녀의 시험기간이면 주말에도 새벽같이 도서관 자리를 맡아 하루 종일 공부하는 그녀 옆자리에서 책을 보다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실용학문인 경영학을 전공한 내게 그녀는 시와 소설을 들려주었고, 내겐 그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취직을 하고 처음으로 야근을 했던 어느 추운 겨울날, 퇴근하며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마음이 찡해 분당에서 신촌으로 차를 돌려 같이 포장마차 떡볶이를 먹던 소중한 기억들. 그녀에게 청혼하기 위해 스위스 출장길에 몰래 준비했던 목걸이를 걸어주며 나와 결혼해 달라고 했을 때의 행복한 눈물과 미소…. 그런 과정 끝에 이 작은 숙녀와 지난해 5월1일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5월의 첫번째 신부’가 되었다. 물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5월의 첫번째 신랑’이 되었고 말이다. 처음 만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소중한 추억과 아름다운 기억을 내게 선물해준 나의 아내에게 감사한다.
  • 휴대전화 안쓰는 ‘별종’ 젊은이들

    휴대전화 안쓰는 ‘별종’ 젊은이들

    휴대전화가 없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난다는 사람이 많다. 특히 활동적인 20∼30세대에게 휴대전화는 옷이나 신발처럼 없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휴대전화 사용을 거부하고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있다.‘별종’으로 비쳐지는 이들의 다양한 이유와 사연이 궁금하다. 이리도 어려울 수가….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여유를 두고 연락을 했으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휴대전화 한통으로 언제든 연락이 되는 요즘 세상에 습관대로 임박해서야 전화를 건 것이 화근이었다. 이메일을 보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를 며칠….‘기나긴’ 기다림 끝에 어렵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필요 느낀 적 없어”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인 박정은(32·여)씨는 휴대전화나 호출기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는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50여명의 활동가 가운데 유일하게 휴대전화가 없다. 박씨는 “써본 적이 없으니 뭐가 좋은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때때로 관계를 맺고 있는 외부 단체에서 “하나 장만하지 그러느냐.”는 얘기를 듣곤 하지만 휴대전화 때문에 업무에 차질을 빚은 적은 없다. 지난 해 국제회의에서도 행사가 열리는 3일동안만 언니의 휴대전화를 빌려 썼을 뿐 큰 불편은 없었다. 박씨는 “휴대전화에 얽매여 각박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면서 “그것도 애초에 습관을 그렇게 들이지 않으면 불편한 줄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휴대전화 없앤 뒤 자유 만끽”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인 이진희(26·여)씨는 6개월 전 휴대전화를 없앴다. 예전에 만나던 사람에게서 시도때도 없이 날아오는 전화와 문자가 부담스러웠던 것. 많을 때는 하루 20통씩 걸려오는 전화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씨는 처음엔 몇달만 쓰지 않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휴대전화를 쓰지 않다 보니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이씨는 “꼭 필요한 연락만 주고받다 보니 친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려졌다.”면서 “가끔 오는 전화가 더 반가워 인간관계는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로 집에서 일하는 탓에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았다. 물론 가끔 원망을 듣기는 한다. 하지만 이씨는 “휴대전화를 없앤 뒤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살 생각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점점 조급증에 젖어 ‘기다림’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데는 휴대전화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동성과 여유를 동시에…‘삐삐파’도 ‘느림의 여유’를 즐긴다 해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타협은 필요한 법. 급한 연락은 받을 수 있으면서도 적당한 자유가 보장되는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로 절충점을 찾는 이들도 있다. 대학원생 권춘섭(33)씨는 대학 시절 이후 지금까지 줄곧 삐삐만 사용하고 있다. 그는 호출기의 가장 큰 매력으로 ‘잠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호출기를 쓰면 필요한 연락만 선별해 할 수 있다.”면서 “쓸데 없는 오해도 생기지 않고 생활의 여유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불편은 느끼지 못한다.”면서 “호출기마저도 버릴 수 있는 경지가 되고 싶다.”고 피력했다. 대학 졸업반인 고재성(26)씨도 지난해 1월 휴대전화를 없애고 호출기를 샀다. 고씨는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타박을 하지만, 조급증이 줄고 느긋해진 것 같다.”면서 “한달에 5만원 이상 들던 요금도 8000원이면 해결된다.”고 설명했다. ●‘삐삐’ 관련 카페도 성황 호출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삐삐삐’ 등 인터넷 카페도 성황이다. 한때 가입자수가 1500만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2만여명으로 줄어든 ‘희귀’ 물건을 쓰다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공익근무요원 정인섭(24)씨는 소개팅을 나가 호출기 번호를 가르쳐줬다가 상대방이 “왜 휴대전화 번호를 안 가르쳐 주느냐.”면서 “마음에 안들면 안든다고 하라.”고 따지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 그러나 취업준비생 김득(26)씨는 “음성을 확인하러 공중전화로 뛰어갈 때 느끼는 기대감은 짜릿하기까지 하다.”면서 “말로 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음성메시지로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고 강조했다. 반면 호출기를 쓰다 최근 휴대전화로 ‘전향’한 대학생 김지양(20·여)씨는 “휴대전화는 손에서 놓지 못하고 집착하게 되더라.”면서 “상대방이 전화를 빨리 받지 않으면 짜증이 나는 조급증까지 생겼다.”며 ‘삐삐’시절의 여유를 아쉬워했다. 이효용 박지윤기자 utility@seoul.co.kr ■휴대전화 안쓰다 ‘항복’한 사람들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장만해 중학생도 휴대전화가 없으면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사람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항복’한 사람들은 “주변의 성화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불편한 점이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한솔제지 인력팀 채향석(39) 차장은 지난 해 2월 휴대전화를 다시 샀다.1997년 6개월 정도 휴대전화를 쓰다가 크게 필요를 느끼지 않아 없앤 지 7년 만이다.‘미개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버텼지만, 상사들이 불편을 토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지난해 초 지방 출장을 갔을 때는 그에게 전해야 할 내용까지 모조리 동료의 휴대전화로 쏟아졌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장만했다. 채 차장은 “휴대전화가 있으니 퇴근길마다 군산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자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밤낮 가리지 않고 회사에서 걸려오는 전화, 또 회식으로 늦을 때마다 날라오는 아내의 문자도 때로는 ‘족쇄’처럼 느껴진다. 채 차장은 “결국 장단점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균형잡힌 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체념했다.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게임개발자로 디지털 세상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이기흔(31)씨는 그러나 얼마전까지 휴대전화는 커녕 호출기도 써 본 적이 없다. 늘 감시당하는 느낌도 싫었고 일에 몰두하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필요한 연락은 이메일과 메신저로도 충분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의 성화에 별 수 없이 지난해 여름 휴대전화를 마련했다. 이씨는 “벨이 울리면 어디서건 무조건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낯설다.”면서 “언제 어디서나 상대의 ‘감시권’에 들어있다는 느낌도 불편하다.”고 짜증스러워했다. 더구나 공짜로 얼마든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인터넷이 가까이 있는데 비싼 이용료를 내면서 휴대전화를 써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주로 사무실에서 새로운 게임 개발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은 거의 없다.”면서 “휴대전화는 ‘도구’가 ‘필요’를 만들어 낸 물건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관광업계에서 일하는 남현주(26)씨는 취업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된 케이스. 대학 시절 몇달 사용해 본 적은 있지만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그는 중요한 연락은 집 전화나 이메일로 받았고, 받기 싫은 전화는 받지 않아도 돼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해 8월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내 놓고는 연락이 엇갈릴까 속이 탔고, 무엇보다 ‘휴대전화도 없는 이상한 지원자’로 찍힐까 꺼림칙하기도 했다. 지금은 취업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없이 살던 때’가 그립다. 남씨는 “전화 온 것 없는지 확인하는 등 휴대전화가 나를 구속하는 것 같다.”면서 “특히 여가시간에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전화가 올 때면 확 던져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씨는 “약속을 할 때도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늦으면 조금 기다리고 하던 나름대로의 여유가 ‘대충대충 빨리빨리’식으로 바뀌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받는 용도로만 사용은 하고 있지만 다시 없애고 싶을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이기적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하는 세상이다. 느림의 여유를 되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휴대전화는 여전히 심기 불편한 도구였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TV, 책을 말하다(KBS1 오후 10시) 칠순을 넘긴 작가 박완서가 들려주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 ‘그 남자네 집’. 출판계에 유령처럼 떠도는 ‘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무색하게 무려 11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우리 문단의 큰 나무 박완서의 존재를 새삼 실감케 했다. 작가 박완서의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오후 11시5분) 천명훈이 ‘단무지 아카데미’코너에 진로상담 교사로 출연해 ‘부담미소’와 웃찾사의 유명한 유행어를 구사한다. 이탈리아 교통경찰의 동작을 보고 바꾼 리마리오 춤의 동작 설명과 깜짝 마술도 볼거리. 막무가내 보이즈가 새롭게 선보이는 코믹 동요 ‘내동생’도 선보인다. ●생방송 쟁점토론(YTN 오후3시5분) 연예인 X파일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사생활 침해에 대해 토론한다. 해당 연예인 50여명은 문건을 만든 광고기획사와 리서치 회사를 처벌해 달라며 검찰에 고소했다. 최근 인터넷의 발달로 심각성이 커지고 있는 개인정보 유출과 사이버테러의 심각성을 두고 토론한다. ●생방송 60분 부모-자녀와 함께 하는 행복한 책읽기(EBS 오전 10시) 논술을 위해서는 고전읽기가 필수 항목이며, 현실적인 시사 쟁점 정리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 좋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고민하고 사고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 그래서 궁극적으로 논술에도 도움이 될 책들을 알아본다. ●논스톱5(MBC 오후 6시50분) 소개팅 남자가 마음에 든 혜선, 하지만 남자의 행동으로는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혜선이와 소개팅 남자를 사이에 둔 논씨네 아이들의 열띤 토론이 시작된다. 정린은 진구를 멋진 남자라고 평하고, 승기는 폭탄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승기,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승급평가에 비행 전술시험까지 겹친 부부. 모처럼 시간을 낸 두 사람은 집에서 함께 시험공부를 한다. 비행 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학술시험. 두 사람은 나란히 부대에서 시험을 치른다. 새해를 맞아 바쁜 와중에도 두 부부는 선물을 준비해 전남 영광으로 부모님을 찾아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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