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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통일 지금이 중요한 시기다”/노조에 신이치(지구촌 칼럼)

    ◎기회 잃지않도록 한국 주도권 확고히 해야 필자는 올해 2월부터 3월에 걸쳐 3주동안 현지조사차 한국에 머물렀다.이번 현지조사에는 두가지의 과제를 안고 갔다.하나는 한국인이 북한의 현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 가이고 또 하나는 한국인이 통일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려 하고 있는가 였다. 필자가 이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올해 들어서 북한에서 일어난 일련의 움직임,예를들면 잠비아의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 부부의 한국망명(1월),김정일의 전처인 성혜림의 서방탈출(2월),사회안전부 경비원의 무장망명기도(2월)등의 사건들이 필자에게 「북한의 체제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인상에는 일련의 사건 뿐아니라 지난해 여름 대홍수로 드러난 심각한 식량사정을 비롯한 경제사정의 악화,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지 않는데 따른 정치의 혼미,게다가 94년부터 촉발된 북한인 망명자의 급증등에 대한 사실과 인식이 작용하고 있었다.이러한 인상을 갖는 것은 필자만은 아니었던 듯하다.그즈음 한국의 어떤 신문은북한전문가에게 「북한붕괴의 유무」를 물어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했던 인상,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식은 앞서 말한 일련의 움직임 다음에 행해진 도이치 미국 CIA국장의 발언에서 한층 진실감을 더 느끼도록 했다고 필자에게는 생각된다.도이치국장은 미상원 정보위원회의 청문회(2월22일)에서 「북한의 붕괴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증언했다.그 때문에 필자는 북한 전문가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사람들에게 「북한의 붕괴가능성」,그러할 경우의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 돌아가면서 의견을 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첫 질문에 대해서는 「북한체제붕괴의 판단은 시기상조다」라는 것이었다.중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아무리 식량문제가 심각해져도 그것 때문에 북의 체제가 붕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그 이유로서 북한 사람들은 원래부터 식량부족에 익숙해져 있다든가 북한사회에는 몇 겹의 질서안정장치가 작동되고 있다는 점등이 열거됐다. 북한의 체제붕괴는 아직 미래의 일이라는 인식이 강한 때문일까,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통일의 가능성이 강하다든가 그것을 쟁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견은 극소수였다. 필자로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부의 한 위원회 관계자가 『통일은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이다.이 말은 현재 한국사회의 통일문제에 대한 자세를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그 뒤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는 3월말부터 4월초에 걸쳐 한때 긴박한 전개를 보였지만 현재는 소강상태가 돼 있다.표면적으로는 변화가 없는 듯이 생각된다.그러나 필자에게는 한반도 인식이 이 사이에 크게 변화해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느껴진다. 그 첫째는 김정일의 권력 불승계에 대해서이다.너무 긴 권력의 공백은 상식으로 볼 때 이상하다,북한에서 권력투쟁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강해지고 있다.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 후계자로서의 김정일의 지위가 반석같기 때문에 김정일은 언제라도 국가주석 및 노동당 총서기에 취임할 수 있다,취임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해결해 나가는 것이 확실히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복상설,신병설,타이밍설은 그런 견해의 곁가지에 불과하다.그러나 이 견해는 김일성사후 2년이 지난 현재 커다란 의문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두번째가 북한의 경제적 붕괴라는 현실이 보다 명백하게 됐다는 점이다.6년 연속의 마이너스 성장,대외무역의 계속적 감소는 주요 광산물 및 기초자재등의 감산추세와 함께 북한경제에 있어서 재생산의 메카니즘이 기능하지 않게 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북한 경제는 말하자면 줄 끊어진 연처럼 공중을 돌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로 북한의 붕괴가 현실감을 띠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주변대국의 한반도 정세에의 개입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최근에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대규모로 식량과 석유를 지원할 것이라고 보도됐지만 이 보도도 중국이 북한사태를 이 이상 방치하면 중국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 세가지 점에서 한반도 정세변화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사태는 보다 긴박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북한의 소프트 랜딩(연착륙)이 가능할 것인가,만일 가능하다고 해서 그로써 남북한의 평화통일이 가능하게 될 것인가 등에 대해 다시금 물음이 제기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문제는 중대한 국면에 와 있다고 생각된다.필자로서는 한국이 전쟁이나 다른 대혼란을 피하고자 해서 강대국의 손에 통일문제를 맡김으로써 결과적으로 스스로 통일의 기회를 포기하게 되지 않도록 바라고 싶다.
  • 「교육개혁」 국민협조에 달렸다/문용인 서울대 교수(서울광장)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 수많은 제도개혁이 이루어 졌다.정부 부처를 통폐합했던 행정개혁에서부터 금융과 부동산 거래의 실명제에 이르기까지 정부수립 이후 50여년에 있었던 어떤 변화를 모두 합쳐도 이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제도개혁에 비할 바가 못된다.최고 권력자에 의한 일방적 지시에 따른 개혁이 아니고 전문가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준법절차를 따른 개혁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교육개혁 분야에서는 이 점이 특히 두드러진다.우선 지난 50년간에 이만한 규모의 교육개혁이란 아예 존재해본 적이 없었고 관주도가 아니고 수십여명의 민간 전문가와 시민대표가 참여해서 개혁안을 만들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낸 적이 없었다.아울러 국민들 전체의 한결같은 소망을 모아서 GNP중의 5%를 교육을 위해서 쓰도록 국가 예산편성상의 지침을 못박는데 성공한 적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교육개혁이 바로 금년부터 집행의 원년에 이미 접어 들었다.금년 3월 새학기 부터 종합생활기록부가 활용되기 시작했고 학교 운영위원회가 가동되기 시작했다.금년 가을에 치러질 97학년도 신입생 모집도 교육개혁안의 취지대로 시행되도록 벌써부터 입시전형절차와 내용이 이미 공표된 바도 있다.대학별고사인 본고사의 철저한 폐지방침이 각 대학에 의해서 확정 됨에 따라 국·영·수중심의 본고사 강행으로 빚어졌던 과열과외와 입시학원의 파행성이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소강상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대학 경쟁력의 확보에 최대 역점을 두고 추진된 대학개혁도 평가인정제와 자율화라는 두가지 정책의 구도 속에서 차츰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그런데 문제는 국민의 호응이다.교육개혁은 다른 분야에서의 제도개혁과는 좀 다른 생태적 조건을 갖는다.예컨대 금융실명제나 부동산 실명제 또는 많은 행정개혁은 일단 방침이 결정되면 국민들은 수용과 동조할수 밖에 없으며 그 개혁에 맞추어 이루어진 법적조치에 따라 행동할 수 밖에 없다.즉 그런 개혁은 강제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다르다.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내려서 강제성이 발동되는 것을 전제로한 개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금융실명제가 국민들의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강제화 시키기 때문에 그것은 개혁조치이고 강제성의 덕분에 성공할수 있었다.그러나 예컨대 종합생활기록부 제도와 관련해서는 그런 강제성이 크게 한계를 갖는다.모든 학교가 종합생활기록부제도를 도입하라고 강제화 시킬 수는 있다.그러나 학생하나 하나의 종합생활기록부는 기록하는 교사에게 강제성을 띠는 획일화된 지침을 주기에는 불가능하며 또 바람직 하지도 않다.즉 아무리 종합생활기록부 제도가 교육개혁의 차원에서 강제화된 제도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직접 기술하고 작성하는 교사의 자율성을 제한 할 수는 없다. 교육개혁은 대다수가 이런 생태적 조건을 갖는다.대학입시의 파행성을 막고자하여 본고사폐지 방침을 설사 정했다고 하더라도,또 모든 대학이 한날 한시에 시험을 치르는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 복수응시기회의 확대란 제도를 도입했다고 하더라도 각 대학에 강제화 시키지 못한다.대학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개혁의 대원칙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하는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개혁은 국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중요하다.강제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한 제도개혁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개혁의 취지를 이해하고 선의로 해석해서 따라주고자 노력해야 한다.왜냐 하면 교육개혁은 대학과 학교와 교수 교사 학원관계자 학부모,그리고 학생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최종적인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그들이 이런 자율적인 판단을 선의로만 발휘하고 있지 않은 신호들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몇몇 대학들이 종합생활기록부의 점수화에 너무 집착하는 것,학교운영위원회를 학교운영의 한 권력체로 인식하고 과욕을 부리는 것,중간고사 출제를 쉽게해서 종생부에 기록될 성적 백분율을 일률적으로 높여 주려는 생각등은 바로 이런 자율적 판단의 악용이라고 볼수 있다.수능시험이 내년도 입시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과장된 해석을 확산시켜서 수강생을 의도적으로 유혹하려는 것도 그런 잘못의 또 다른 예인 셈이다. 이와같은 자율성의 그릇된 행사가 심화되면 교육개혁은 그만큼 힘들어 질것이다.
  • 이통주/76만8천원 사상 최고가/89년 상장때의 35배이상 올라

    ◎「태광」 기록깨… “최고 120만원” 전망 1백만원대의 고주가 시대가 멀지 않았다. 한국이동통신이 25일 전날보다 2만1천원 올라 주당 76만8천원으로 마감되면서 우리나라 증시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종전의 최고가는 지난 1일 태광산업이 기록했던 76만원. 태광산업과 최고가 자리를 놓고 엎치락덮치락했던 한국이동통신은 지난 89년 11월7일 2만2천원에 상장된뒤 6년5개월만에 주가가 무려 34배이상 폭등했다.한국이동통신 주가는 92년 3월16일 10만원,93년 12월11일 20만원,한달만인 94년 1월14일 30만원,같은해 8월13일 40만원,10월4일 50만원으로 채 3년도 안되는 기간에 주가가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그뒤 1년 넘게 소강상태에 머물다 올 1월24일 60만원을 넘어섰다. 최근 방한했던 앤드루 해링턴 살로먼 브라더스 홍콩법인 이사도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이동통신 수요 등 내재가치를 따져볼때 1백20만원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해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도 높다.유공 19.5%,선경인더스트리 1.6% 등 지분율 20.1%로 선경그룹 계열사인한국이동통신은 지난해 1조3천2백25억원의 매출과 1천8백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김균미 기자〉
  • 북 더이상 도발 못하게 한미일 공동제재 필요/미 평화연 주장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북한의 판문점 도발이 그 의도가 불분명하고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할지라도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은 그같은 행위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하며 북한이 더이상 유사한 행동을 할수 없도록 강력한 경고를 해야 한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14일 보도했다. 미평화연구소의 스탠리 로스 연구실장은 이날 포스트지에의 기고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클린턴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의 평화과정을 주도해나가기 위한 동맹국들의 제도적 장치와 수단의 강구가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스 실장은 또 미국 일본 한국 3국은 이번 기회에 판문점에서 도발을 획책하며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구하려는 북한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공동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북은 「양안 사태」서 교훈 얻어야”(해외 사설)

    ◎긴장고조 야기는 오히려 역효과 초래 남북한을 횡단하는 군사분계선이 흔들리고 있다.북한이 정전협정 의무를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긴장고조를 야기하는 외교는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올 것이다. 군사분계선은 한국전쟁 휴전협정이래 40년이상 소강상태를 유지해왔다.남북한 모두가 무력충돌을 자제해 왔기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비무장지대의 유지·관리의 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북한의 이러한 선언은 지난달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군사분계선의 양측에는 전쟁 전야의 군사적 움직임이 있다』고 말한뒤 나왔다.북한이 정전협정의 임무를 포기한다며 밝힌 구체적인 조치는 「판문점 공동경계구역과 비무장지대에 출입하는 요원과 차량에 식별표지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부분뿐이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 움직임에 대해 「북한측이 도발행위를 강행할 경우 한·미공동방위체제를 바탕으로 강력히 대응한다」고 경고했다.하지만 한·미 양국 모두 특별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예정은 없다.앞으로도 자극적인 반응은 자제하기를 바란다. 북한이 정전협정의 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한 목적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것이다.북한은 최대의 위협인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남북관계에 주도권을 잡으려하고 있다.이때문에 한국이 참가하는 군사정전위원회 출석을 거부,이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구축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인 남북한이 대화를 선행시켜야한다는 입장으로 북한과의 협상에 응하지않고 있다.북한은 미국이 신중한 대응을 보이는 것은 한국의 방해때문으로 보고 한국을 위협하면서 긴장상황을 만들어 대통령선거전에 분쟁을 피하고 싶은 미국을 잠정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의 장으로 끌어드리려는 전술을 쓰고 있다. 북한은 또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끌어내 식량난에 허덕이는 국내의 불안을 무마하고 종반전에 접어든 한국총선에서 김영삼 대통령 정권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자유무역지대의 나진·선봉 지구에 외국기업의 유치활동을 전개하고 남북대화의 재개를 요청하며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재개의 뜻도 나타냈다. 김일성주석 사망후 이미 1년9개월이 지났지만 북한의 최고권력의 자리는 비어있다.최근에는 강경자세를 보이는 군의 움직임이 눈에 띄며 후계자로 보이는 김정일 서기의 통솔력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그것도 북한에 대한 불신의 한 요인이다. 최근 중국은 대만총선에서 군사적 압력을 가했지만 역효과을 내고 외교적 고립만 자초했다. 북한은 중국의 군사적 행위의 결과를 교훈으로 삼기 바란다.북한은 지금까지 긴장을 고조시켜 목적을 달성하는 외교전략을 추진해왔으나 장기적으로 볼때 그러한 전략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군사적 긴장을 이용한 외교는 오히려 불신감만 높힌다.
  • 「공천헌금」 총선정국 새 파문/검찰 자금흐름 수사 안팎

    ◎「국창근 후보 8억」 당 유입 여부 규명 주력/제보자 발뺌·정치권 이해 달라 진통 예상 검찰이 4·11 총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당의 공천헌금 의혹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함으로써 정치권에 파문이 일고 있다. 야당 일각에서는 『장학로씨 부정축재 사건을 축소한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맞불 작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12일 전국 공안부장 회의에서 김기수 검찰총장이 『공천헌금 비리를 철저히 수사해 엄중 처벌하라』고 강력히 지시했다는 점을 강조 한다.한 관계자는 『관련자들의 제보와 법에 따라 의연하게 수사하고 있다』며 『우연히 장씨사건 등과 시기가 겹쳤을 뿐』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국민회의 국창근 후보(전남 담양·장성)에 관한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 8일.국후보와 공천경쟁을 하다 탈락한 박태영의원측이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국후보는 지난 3일 박의원을 제치고 공천자로 확정됐다. 박의원측은 공천자 확정 직전 특별당비 명목으로 1억원을 내는 등 모두 2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반면 국후보는 공천대가로 50억원을 냈다는 것이 현지 소문이라고 검찰은 전했다. 국후보의 혐의를 포착한 것은 지난 28일.국후보의 주변 인물 4명의 이름으로 된 36개 계좌에서 지난 11월부터 1월까지 1천만∼2천만원씩 모두 8억원이 1만원권으로 인출됐음을 확인 했다.4명 중 일부는 검찰 조사에서 명의를 빌려준 사실을 부인했다. 염보현 전 서울시장과 강원도 철원·화천에서 공천경쟁을 하다 떨어진 자민련의 김영태씨도 측근 등을 통해 지난 달 자민련 간부 3∼4명에게 2천만∼3천만원씩 모두 1억원을 공천 헌금으로 건넸다고 제보했다. 검찰은 자민련 이필선 부총재가 『자민련 지도부가 전국구후보 공천 대가로 40억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이 내용이 담겼다는 녹음테이프를 확보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검찰의 수사의지는 단호하다.특히 국후보는 가급적 이번 주에 소환해 사법처리할 계획이다.하지만 정치권의 이해와 맞물려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최근에는 제보자로 알려진 박태영의원측도 비협조적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문제의 8억원이 모두 공천헌금으로 쓰여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국씨는 『전남 국민상호신용금고의 차명계좌는 남동생과 친누나 등 4명의 것으로 사업자금을 예치하는 데 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은 최소한 국후보의 사전선거운동 혐의와 금융실명제 위반 부분은 확실하다고 자신한다. 검찰은 국씨 말고도 호남 지역의 국민회의 후보 1∼2명의 공천헌금 혐의도 내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돈을 주고 국회의원직을 사는 행위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황진선 기자〉 ◎여·야 반응/“철저 수사”­“정치공작” 공방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국민회의 「공천헌금」 파문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선거 중반전으로 치닫고 있는 30일 국민회의 국창근 후보(전남 당양·장성)가 거액의 공천헌금을 제공한 혐의를 잡았다는 검찰의 발표에 따라 신한국당과 국민회의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신한국당 기현정 부대변인은 『우리당은 야당이 공천과정에서 거액의 자금이 오갔다는 심증을 갖고 있는 터에 이번 사건이 일어났다』며 확증을 잡을 수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분위기였다.기부대변인은 이어 『국민회의 공천헌금 문제는 지난번 김상현 지도위의장이 공천헌금 수수와 착복에 대해 폭로하고 민주당 이기택 상임고문이 김대중 총재에게 공개토론을 제의할 때부터 모든 국민들이 잘 알고 있는 사항』며 『검찰이 공천헌금 비리를 철저하게 파헤칠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장씨사건 축소 겨냥 ○…국민회의 김한길 선대위대변인은 『검찰이 장씨 사건의 수사 발표일에 국후보 문제를 조작해 터뜨린 것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상투적인 정치공작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며 『우리당은 공천을 대가로 어떤 헌금도 받은 적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파문의 장본인인 국후보도 반박성명을 통해 『검찰이 밝힌 전남상호신용금고 비밀계좌는 사업을 하는 동생 세조(47)가 누나 등의 명의로 거래하던 계좌이기 때문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선거를 앞두고 본인의 명예에 막대한 피해을 준 만큼 관계자들을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겠다』고밝혔다. ○“부패고리 청산해야” ○…민주당 김홍신 선대위대변인은 『공천 때마다 심증있고 물증이 없던 김대중 총재의 노회한 안개수법을 이번 기회에 밝혀야 한다』고 공격의 포문을 열며,『깨끗한 정치실현을 위해 30년 3김청치의 부패고리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련은 공식 논평없이 사태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입장.당의 한 관계자는 『국민회의가 부인을 했고 사건의 진상도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남의 당에 일에 뭐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며 대응을 자제했다.〈오일만 기자〉
  • 중·대만 사태에 경제대비를(사설)

    대만해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대만간의 군사적 긴장상태는 그 자체로서 세계적 우려이자 관심사항이다.그러나 그 관심과 걱정의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긴장상태가 초래할 경제적 파장이다.특히 우리는 두 나라와 지역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사태의 진전을 주시하면서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비가 필요하다. 양안간의 긴장상태는 세계여론이나 주변국의 입장등을 감안하고 대만총통선거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장기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긴 하다.그러나 사태의 장기화여부를 떠나 긴장상태발발 그 자체가 중국과 대만뿐 아니라 주변국에 영향을 주고 있다.이미 우리의 수출선들이 대만항로 대신 우회항로를 선택함으로써 아직 크지는 않다 해도 시간과 비용의 추가발생이 일어나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과 대만은 세계 11위와 13위의 무역강국이면서 우리와는 상호보완 또는 경쟁관계가 큰 나라다.특히 홍콩을 포함한 화교권에 대한 우리의 무역흑자가 대일 무역적자액과 상쇄시킬 수 있는 규모인 점을 고려한다면긴장상태의 정도에 따른 다양한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사태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으나 지나친 낙관도 대비책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사태를 장·단기적 관점에 놓고 우리 경제에 있을 수도 있는 여러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데는 여러 상황전개에 대한 충분한 사전대비노력이 필수적이다.긴장사태가 조기에 끝난다 하더라도 중국과 대만간의 경제관계,그리고 중국에 대한 각국의 투자관계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정책당국자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이번 긴장상태는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중국·대만간의 경제유대가 가장 큰 희생물이 될 공산이 크다.또 중국에 대한 투자를 열심히 해온 외국기업은 중국의 정치적 안정에 대한 전망을 수정하는 계기를 주었다.누가 무엇을 잃고 얻을지는 모르나 적어도 우리는 잃지 않는 쪽에 서기 위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 미·북 물밑접촉“상당한 진척”시사/미,여행경고국서 북 제외 배경

    ◎테러포기 약속 등 북한 평화공세 먹혀들어/선거앞둔 클린턴 「핵합의」 업적 선전 계산도 미국무부가 북한을 여행경고국에서 제외한 사실은 최근 미·북 화해기류에 편승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첫 구체적 완화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미국무부의 재외자국민 보호를 위한 특별기구인 「시민비상센터」(CEC)가 해외공관 및 정보기관들의 정보를 총망라하여 지정해오고 있는 여행경고국은 내란중이어서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몇몇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을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다할 외부적인 상황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해제조치는 양국관계 개선을 위한 물밑 접촉이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사자인 미국무부측도 여행경고국 해제에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양국간의 「상황개선」에 따른 것임을 부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볼때 제네바 핵합의 이후 다소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미·북관계가 급진전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진전은 현재 양국간의현안문제로 돼있는 ▲연락사무소 개설 ▲추가경제완화 ▲신코콤(대공산권수출통제위)체제의 북한규제 철회 ▲테러국명단에서의 북한삭제문제 등에서 북한측에 유리한 분위기를 이끌어 낼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은 그동안 지난 1월 미국무부에 테러포기 서한을 보낸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측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미사일개발 및 수출통제에 대한 협의에 응할 태도를 보였으며 또 미국측에 잠정평화협정의 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이같은 북한의 미국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련의 평화공세는 미측에 상당히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제네바 핵합의에 의한 핵동결약속을 비교적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미국무부 관리들은 최근 『이제는 미국이 무엇인가 해야할 차례』라는 말을 해왔다.특히 클린턴 재선전략의 최대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북한과의 핵합의는 무슨 수가 있어도 올11월의 선거때까지는 불협화음이 나지 않도록 이끌어간다는 방침으로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일련의 완화조치들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1월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한 연설에서 「부랑아국가」(Pariahstates) 명단에서 북한을 슬그머니 제외시켰으며 지난달초에는 한국 일본 등 우방의 의사에 반한채 북한 식량지원을 위해 2백만달러의 정부원조를 「인도적 차원」이라는 구실로 제공했다. 또 오는 4월 클린턴 대통령의 일본방문시 한국에도 들러달라는 초청에 대해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거절을 분명히 했으며 미의회의 통과지연으로 난관에 처한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 대금을 우선 일본으로부터 차입토록 하는 등 북한의 비위맞추기에 급급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북한에 대한 여행경고국에서의 해제 역시 이같은 조치들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볼수있다.
  • 「독도기점」한·일 관계 최대변수로/「16일 일 경제수역선포」이후

    ◎일측 “독도 포함” 결정땐 파국 치달을듯/경계선 확정않고 협상통해 타결 가능성 지난 8∼9일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총리와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행언)외상의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망언으로 촉발된 한일 양국의 대립은 주말의 소강상태를 거친뒤,12일부터 다시 첨예화되는 분위기다.공로명외무부장관과 김태지주일대사는 이날 일본 각료들의 잇단 망언에 대한 대비책을 협의했으며,일본측도 가토 고이치(가등굉일) 자민당 간사장이 『대화를 계속하지 않으면,양국관계가 복잡해진다』고 우리정부를 비판하는등 계속 전선이 유지되고 있다. 독도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전선은 오는 16일 일본정부가 각의(국무회의)에서 배타적경제수역(EEZ)선포 방침을 결정하게 되면,더 한층 미묘하고 복잡하게 흘러갈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각의에서 일단 2백해리 EEZ의 선포 방침만 결정한다.따라서 일본정부가 한반도와 EEZ의 경계선을 획정할 기선(기준선)을 어디로 삼을 것인가 하는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독도문제가 한일간의 주요 외교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각의가 끝난뒤 일본기자들의 경계선 획정방침에 대한 질문공세가 쏟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일본정부가 어떤 발표를 하는지가 한일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일본정부는 이미 한반도와의 경계선 획정과 관련한 세가지 정도의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외무부는 파악하고 있다.외무부는 또 그에대한 대응책도 검토중이다. 먼저 일본이 우리와의 일전불사를 각오하고,독도를 기점으로 삼는다고 발표할 수도 있다.이럴 경우 한일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독도 영유권은 연례행사처럼 지나가는 과거사 망언과는 차원이 다른 주권문제이기 때문이다.일본도 한국도 이런 사태는 원하지 않지만,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두번째는 일본이 기선을 확실한 일본영토인 오키도로 하는 방안이다.독도는 울릉도로부터 49해리,오키도로부터는 96해리 떨어져 있다.따라서 이럴 경우에는 독도가 당연히우리의 EEZ수역안으로 들어오게 된다.우리정부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그러나 이는 일본정부가 독도의 영유권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므로,일본 국내사정상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은,일본 정부가 경계선에 대한 언급을 아예 삼가는 것이다.『국제법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추후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정도가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막후 외교협상을 통해 16일 각의후의 발표내용에 대해 치열한 신경전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이 EEZ선포 방침을 발표하게 되면,정부도 곧바로 EEZ를 선포한다.일본측이 16일 어떤 발표를 하느냐에 따라 우리정부도 다각도의 대응책을 마련해두고 있다.
  • 김종휘씨 「김천」 가명으로 입국/검찰 수사·안양교도소 이모저모

    ◎“검찰서 밝히겠다” 조사실 직행­김 전수석/“설마 강제 급식까지 하겠느냐”­전씨 아들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 소강상태에 빠진 듯했던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수사는 11일 하오 「율곡비리」에 핵심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미국 도피 2년8개월여만에 급거 귀국,검찰에서 철야조사를 받음에 따라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12·12 및 5·18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내역을 캐기 위해 재벌총수 등을 상대로 「보안수사」를 계속했다. ▷김종휘씨 수사◁ ○…김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은 이날 하오 4시50분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직후 곧바로 검찰수사관들에 의해 대검청사로 연행.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한항공 017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 전수석은 「김천」이라는 가명을 썼으며 김씨의 부인(59)과 아들(28)도 「박영」「김승」이라는 가명으로 함께 입국. 검찰은 입국장에서 김씨를 연행,공항 대합실에 대기하고있던 보도진을 따돌렸다. ○…하오 5시59분쯤 검찰 호송차를 타고 대검청사에 모습을 나타낸 김전수석은 『전투기 기종변경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가』,『F­16기를 선정한 대가로 얼마의 리베이트를 받았는가』 등 쏟아지는 질문에 입을 열지 않다가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짤막하게 답변. 지난 93년 4월 미국도피 이후 2년8개월여만에 귀국한 김 전수석은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고 귀국했느냐고 묻자 『자진해서 왔다』고 말한 뒤 굳은 표정으로 조사실로 직행. 김씨는 검찰청사 현관으로 들어서다 사진기자들의 「요구」에 몇걸음을 물러서 포즈를 취하기도. ▷12·12 및 5·18 수사◁ ○…12·12 당시 최규하 전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정동호씨는 이날 상오 9시45분쯤 검은색 바바리 코트속에 목도리를 두른 모습으로 출두하면서 『그저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만 대답한 뒤 조사실로 직행. 10여분 뒤 도착한 주영복 전국방부장관도 질문공세에 침묵으로 일관. 반면 상오 10시에 도착한 이학봉씨는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인터뷰를 자청,청사 계단 앞에서 정승화 전육참총장 연행의 정당성을 주장,허화평씨의 선례를 답습. 그는 『10·26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살해되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정전총장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정전총장이 박전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김씨와 상당한 공모가 있었다고 주장. 또 『정총장이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이 아주 많았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 뒤 『모든 진실은 검찰 조사에서 다 밝혀질 것』이라고 강변. 이씨는 특히 『최전대통령으로부터 연행재가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쿠데타를 하면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하느냐』고 반문,기자들이 『그렇다면 강압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사실을 인정한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얼굴을 붉힌 채 조사실로 황급한 발걸음. ▷안양교도소◁ ○…전씨 수감 9일째를 맞은 이날 둘째 아들 재용씨가 하오 1시50분쯤 안양교도소를 방문,전씨를 면회한 뒤 하오 3시15분쯤 돌아갔다. 재용씨는 『아버지가 얼굴 살이 많이 빠지는등 부쩍 수척해지셨다』면서 『그러나병보석은 생각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용씨는 『검찰이 비자금을 수사하고 있는 것을 아버지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미 구내방송을 통해 알고 계시며 나도 사실을 알려드렸다』면서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비자금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재용씨는 또 전씨의 단식이 길어지면서 교도소측이 강제급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설마 강제급식까지 하겠느냐』며 몹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전날 하오 2시부터 7시간에 걸쳐 검찰의 조사를 받은 전씨는 이날 상오 6시30분 초췌한 모습으로 기상한 뒤 역시 보리차만 마시며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전씨는 단식이 길어지면서 피곤한 듯 자주 침상에 눕고 있으며 독거실 안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운동을 반복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교도소측은 전했다. ○…이에 앞서 상오 9시15분쯤 면회를 한 이양우 변호사도 『어른이 계속 식사를 안하고 계신다』고 소개. 이변호사는 『재수사를 예상치 못하고 지난 93년 12·12와 5·18에 대한 검찰수사 때 준비했던 변호자료를 대부분 폐기처분했다』면서 『이제 다시 처음부터 자료정리를 해야할 판』이라고 토로. 이변호사는 『단식 9일째를 맞은 어른의 몸무게가 64㎏으로 10㎏이 줄었지만 아직 정통성 수호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다』고 전언.
  • “노소영씨 부부 직접 조사할 계획없다”/안 중수부장 일문일답

    ◎“동방 페레그린 증권사 압수수색 검토”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은 11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스위스 비밀계좌를 추적하기 위해 외무부를 통해 미국과 스위스에 사법공조를 요청,이 부분의 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의 수사계획 및 재소환 등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아직 보고받지 못했다』등으로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노씨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수사는 어떻게 돼가나. ▲규명의 단서가 되는 노씨의 딸 소영씨 부부의 19만달러 불법 분산예치사건 당시 수사기록을 미국측으로부터 넘겨받기 위해 주미한국대사관과 미법무성등을 상대로 협의중이다.또 스위스에도 오늘 상오 외무부를 통해 사법공조요청서를 보내 현재 주한 스위스대사관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 ­소환된 노씨동생 재우씨의 조사내용은. ▲동호빌딩과 미락냉장의 자금출처와 노전대통령의 돈이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등이다. ­그렇다면 혐의가 일부라도 드러났기 때문에 소환한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다만 동호빌딩 주식의 절반이상을 재우씨의 아들 호준씨가 소유하고 있고 미락냉장은 이들부자가 49%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우씨의 소환을 당초 12일에서 하루 앞당긴 이유는. ▲수사팀에서 빨리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결정한 것일 뿐 별다른 뜻은 없다. ­노전대통령에 대한 재소환 날짜는 정해졌나.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소영씨부부를 직접 조사할 계획은. ▲없다.예전의 수사기록만 있으면 된다. ­노전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계획은. ▲없다. ­동방페레그린 증권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돼가나. ▲현재 확인중이다.필요하면 압수수색도 실시할 것이다. ­노씨의 재소환은 곧바로 노씨 및 관련재벌들의 일괄 사법처리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면 되나. ▲그때 가봐야 안다. ­호남지역 재벌들이 DJ(김대중씨)에게 돈을 주었다는데. ▲그런 것은 없는걸로 알고 있다. ­금진호 의원은 재소환하나. ▲지금으로서는 계획 없다. ­신명수 동방유량 회장은. ▲아직 재소환 계획 없다. ­청우건설 조기현회장에 대한 소환은. ▲그때가서 알려주겠다.­이미 귀가한 재벌들이 재소환될 수도 있나. ▲필요하면 재소환하겠다. ­부동산 자금추적 성과는. ▲밝힐 수 없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액수만이라도.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자금추적이 3천5백억까지 확인됐었는데 현재는 어떤가. ▲그 선(3천5백억)은 넘어섰다.그러나 현재는 부동산 계좌추적에 치중하느라 그쪽 부분 수사는 소강상태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이 사건의 명칭을 무엇으로 정했나. ▲나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중간수사결과 발표시점은. ▲중간에 하겠다.
  • 삼척 연안 적조 주의보로 대체

    【강릉=조성호 기자】 국립수산진흥원 동해수산연구소는 14일 강원 남부 삼척시 연안에 내려졌던 적조경보를 적조주의보로 대치,발령했다.적조의 밀도가 계속 감소하고 적조대의 범위도 줄며 소강상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 동해안 적조 다시 악화/포항·경주/양식 멍게 떼죽음

    【포항=이동구 기자】 소강상태를 보이던 적조현상이 다시 악화되며 포항과 경주 등 경북 동해안에서 처음으로 수심 4∼10m에 설치된 양식장의 멍게가 떼죽음을 당했다. 5일 국립수산진흥원 동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남해안에서 발생한 맹독성 적조가 지난 달 21일 경주 등 동해 남부해역으로 북상한 뒤 3∼4일 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 지난 3일부터 적조밀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 바다와 감포 연안 일대 수심 4∼10m에 설치된 10개 양식장의 멍게 8백52t·9억4천6백여만원어치가 집단 폐사했다.
  • 이사민·현 앨리스 사건(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8)

    ◎재미교포 부부… 49년 입북후 고위직 올라/북,「미 간첩」 혐의로 체포… 남로당 숙청 이용 한국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남북한 집권세력은 내부투쟁을 통해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남쪽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19 52년 부산정치파동을 거쳐 재집권한데 이어 북쪽에서는 그해가 끝날 무렵 남로당계 숙청을 서둘렀다. 김일성은 52년 12월15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 『종파주의 잔재들이 당과 정부기관에서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이들을 남겨두면 적의 「탐정배」(간첩)로 변하고 만다고 강조했다.남로당계를 겨냥한 이 발언을 뒷받침해 19 53년 1월 「문헌토의사업」이 벌어지면서 대대적인 남로당계 검거선풍이 일었다. ○53년 남로당 숙청 시작 3월 들어 박헌영을 비롯,이승엽·이강국 등 주요 간부들이 잇따라 체포됐으며 이 가운데 이승엽등 12명에 대한 재판은 휴전직후에,박헌영에 대한 재판은 55년에 각각 열렸다.이들에게 걸린 죄목은 「미 제국주의를 위한 간첩행위」와 「국가전복 음모」,「남반부 민주역량 파괴」등이다.따라서 이 사건을 흔히 「박헌영사건」또는 「박헌영 미제간첩 사건」이라고 부른다. 박헌영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대표적인 의혹사건의 하나로 꼽힌다.이는 사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이같은 상황에서 박헌영사건의 성격을 가늠해 주는 또 다른 간첩사건인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재미동포인 이사민·현앨리스 부부가 북한 정권 수립 후에 입북,고위관리로 일하다 한국전쟁 발발후 소련을 통해 탈출을 기도한 사건을 말한다.남로당 숙청에 앞서 발생한 이 사건은 이승엽등의 재판과 박헌영재판에서 그들의 「미제 간첩」행위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묻혀 있었다.그러나 이번에 서울신문이 이사민부부에 관한 자료와 당시 그 사건을 취급한 관계자들의 증언을 발굴해 사건 내막을 상당한 부분까지 밝혀냈다. 이사민은 본명이 이경선(미국명 이윌리엄)으로 출신지·나이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그러나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민족혁명당 미주지부에서 일하는등 항일독립운동에 관계 했다.부인 현앨리스는 재미 독립운동가 가운데 거물로 꼽히는 현모씨의 딸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부가 공산주의자가 된 시점은 확실하지 않지만 1947년 초 이미 재미 친북파의 대표로서 자리를 잡았다.이사민은 그해 4월부터 정기적으로 북한에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보고서는 주로 체코 수도 프라하에 머물고 있던 한오수를 통해 북한 당국자들에게 전달됐다. 이들의 미국내 활동은 매우 적극적인 편이었다.미국 공산당에 가입해 한인조직을 결성,한달에 한번 꼴로 모임을 가졌다.그러면서도 평소 이사민은 워싱턴에,현앨리스는 로스앤젤레스에 떨어져 살며 각각 활동한 것을 보면 상당한 골수분자들처럼 보인다. 이와 함께 외부조직으로 민주인민전선연맹과 진보당후원회를 결성해 재미 한국인 단체,미국 좌파단체들과 고리를 맺었다.이들은 민주인민전선연맹을 통해서는 한인 최대 조직인 국민회에 북한에 설립된 인민공화국을 승인하라고 권하기까지 했다.또 「독립」이라는 주간신문을 2천여부 발행하여 국외및 각급단체에 배포했는데 당시 현지에서 발행된 한글 주간신문 4종 가운데 북한 소식을 보도한 것은 「독립」하나 뿐이었다. 이처럼 활발히 움직이던 이사민부부가 갑자기 북한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뜻을 밝힌 때가 1948년 12월이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발굴한 「이사민의 보고서」(별도기사 참고)에서 이사민은 김일성·박헌영에게 동구권 국가를 통해 입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실제로 이 부부는 1949년 1월 체코 프라하로 가 체코정부에 북한으로의 정치망명을 요청했다. ○박헌영이 적극 도와 그러나 북한행이 생각대로 쉽지는 않았다.이들의 망명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3∼4개월이 걸렸다.체코정부가 이들의 의도를 의심했기 때문이다.체코 안전기관은 먼저 분명한 정치적 동기가 없다고 판단했으며,게다가 이들은 북한이 부모의 고향이라고 주장했으나 거짓말인 것으로 판명됐다.정체를 의심한 체코 안전기관은 이를 북한 내무성 안전국에 알렸으며 북한당국도 망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고했다. 이때부터이사민·현앨리스와 박헌영이 관련되기 시작한다.당시 외무상인 박헌영은 내무성의 판단을 무시하고 부부에게 입국사증을 내주었다.아울러 이들이 북한에 도착하자 외무성을 동원해 환영행사를 해주기까지 했다.그후 이사민은 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조사연구부 부(부)부장으로,현앨리스는 중앙통신사 번역부장을 거쳐 외무성 조사보도국에서 일했다.내무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북한 이들이 짧은 기간에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역시 박헌영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사민과 현앨리스는 북한에 들어와 5∼6개월 동안 아주 성실하게 일해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그러나 입국을 거부했던 내무성 안전국은 여전히 부부를 주시하고 있었다.이들은 직위를 이용,유럽에 편지를 자주 했는데 일일이 검열을 당했다.따라서 답장은 한차례도 받을 수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이사민부부는 황급히 북한당국에 유럽여행을 요청했다.내무성은 「불가」통보를 했지만,이번에도 외무성이 출국사증을 내주었다.북한을 떠난 이들이 소련 모스크바공항에 도착하자 북한 안전국 요원들은 짐을 수색했다.의심했던대로 그동안 수집한 자료가 쏟아져 나왔으며 그 가운데는 군대관계 비밀자료도 여럿 들어있었다. 그길로 북한으로 강제귀환된 부부는 안전국의 추궁 끝에 미 정보기관으로 부터 정보수집 임무를 띠고 침투했다고 자백했다.마치 한국 땅을 밟았다 사이공으로 탈출했던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을 보는 듯이 북한의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은 아주 드라마틱하다. ○북한판 「이수근 사건」 이 사건의 불똥은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파에게로 튀었다.이사민부부의 북한 입·출국을 방조한 박헌영이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953년 7월30일 열린 이승엽등의 재판에서 이강국은 『50년 7월 미국에서 직접 파견한 간첩분자 이윌리엄(이사민)과 현앨리스를 평양에 있는 집에서 두차례 만나 공화국의 군사기밀을 탐지하여 제공하는데 대한 토의를 했다』고 고발됐다. 또 55년 12월 재판받은 박헌영도 같은 혐의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더욱 구체적이었다.곧 박헌영은 48년 6월 하지로부터 『이사민등미국 정보원들을 유럽을 통해 북한에 보내겠으니 입국과 간첩활동을 보장해 주라』는 지령을 받았다.이에 따라 이사민등이 입북할 때 입국사증을 내주었으며 현앨리스를 중앙통신사·외무성에,이사민을 조국전선의 요직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박헌영은 과연 미국의 간첩이었을까,아니면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에서 지는 바람에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까.그 진실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사민·현앨리스 사건이 이제 막 역사의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사민의 대북 보고서/“미 교포 공산당원 26명” 김일성에 보고/47년부터 미 정세 등 탐지… 편지 보내/“곧 동구 경유 입북” 박헌영에도 알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박헌영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구체적인 행적은 베일에 가려 있던 이사민 관계 자료를 이번에 발굴했다.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이사민이 미국에 있던 19 48년 12월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직접 보낸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서 「미국 워싱턴주재동지대표」이사민은 ▲당 동지들의 활동 ▲조선인 거류민의 분위기 ▲독립운동 상황 ▲미국의 정세들을 자세히 전했다.당 동지들의 활동에 대해 『현재 당원으로는 로스앤젤레스에 13인,샌프란시스코에 1인,뉴욕에 4인,워싱턴에 2인,기타 지역에 6인을 합하여 26인』이 있으며 이들은 『미국 당부(미국 공산당)의 허락으로 조선인그룹빠를 재조직하고 1개월에 1차 회집』한다고 밝혔다.또 현지의 당원 대표는 『로스앤젤레스의 변준호·김강·현앨리스,워싱턴의 이사민·선우학원,뉴욕의 신두식·곽지순』등 7명이라고 소개했다. 이사민은 이와 함께 동지들 중 일부가 동유럽을 경유하여 북한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그후 이사민과 현앨리스는 체코 프라하를 경유해 북한에 들어갔다.이 대목이 이사민과 박헌영의 연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고서 수신자중 한명이 박헌영이었으므로 그가 이사민의 입북계획을 미리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박헌영은 이사민의 입북이 어려워지자 적극 도왔으며,북한에 있을 때나 뒷날 출국할 때도 이사민을 옹호했다.박헌영의 이른바 「미제간첩 사건」과 이사민을 직접 연결시킬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의심받을 만한 정황은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보고서에서 이사민은 47년 4월이후 동구권을 통해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이 루트가 이제 불가능한 듯 하다고 밝혔다.그래서 앞으로는 자신에게 직접 연락달라며 미국 주소를 제시했다. 이사민이 보고서를 작성할 무렵은 47년 3월 미국이 「트루먼독트린」을 발표한 뒤 동서냉전이 더욱 격화된 시기라는 점에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이 시기에 동구권을 통한 북한과의 서신교류나,미국 주소로 연락을 받겠다고 제의한 사실들은 미 정보기관의 양해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발굴한 「이사민의 보고서」.「박헌영사건」관련인물로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이사민은 이 자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 궁금증 증폭/JP 중병설

    ◎13일째 칩거… 방문인사 “차라리 뵙지 않을걸”/일각에선 “정가·언론 시선끌기 아니냐” 추측 김종필자민련총재는 16일에도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예정돼 있던 일본 아사히신문 편집국장과의 면담계획도 취소했다.자신의 건강을 둘러싼 온갖 구설에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벌써 13일째 청구동 자택에서 칩거중이다. JP(김총재)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미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대수롭지 않은 병」을 뜻하는 말이다.그러나 지난 7일 청구동을 방문한 한 인사는 『차라리 뵙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다』고 말했다.그의 건강상태가 처음 측근들을 통해 전해진 정도를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측근들은 JP의 칩거가 지난 3일 골프모임에서 어깨에 담이 든 때문이라고 했다.담이 팔로 내려오며 12일부터 회복되기 시작했고,이제는 손목부분에만 통증이 조금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안성열 대변인은 16일 『총재가 18일 아침 9시 당사에서 기자들과 「티 타임」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그러면서 『아직은 손목이 좋지 않으니 오랜만에 만났다고 악수할 때 너무 세게 흔들지말라』고 농을 건네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위에서는 JP의 중병설에 대한 의문을 여전히 풀지 못한다.지난 1일 젊은사람에게도 무리일 만큼 과음한 상태에서 2일 대전 대덕지구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여기에 다음날 골프모임에 참석했으니 단순한 담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위의 시선 때문인지 안대변인은 국회 개회식이 열린 지난 11일 「총재근황」이라는 보도자료를 낸데 이어 「입원설 사실무근」「총재동정」을 잇따라 배포해 「설」을 불식시키느라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JP가 오히려 이같은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독주」를 하고 있는데다 자민련의 현역의원 영입작업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던 상황에서 「JP 와병설」은 당장 그에게 정가와 언론의 시선이 몰리게 했고,시간이 갈수록 궁금증을 더하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게다가 그의 칩거는 당을 결속시키는 효과까지 가져오고 있다.JP로서는 쉴만큼 쉬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유야 어떴든 JP가 18일에는 출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더 이상 칩거할 경우 그 이유가 와병이라면 세대교체론을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주고,칭병이라면 정치인으로서의 신뢰감에 실망을 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이유 때문이다.
  • “한강수위 지켜라” 철야 경계/댐관리 건교부 상황실

    ◎상·하류 영향 정밀분석… 피해 극소화/가상 시나리오 작성… 도상연습까지 『2백㎜ 이하로만 와라』 태풍 재니스에 거는 건설교통부 홍수대책실의 바람이다. 한강에 홍수경보가 발령된 지난 25일 건교부 홍수상황실.상황판을 지켜보던 대책반원들 사이에 긴장이 흘렀다.한시간 전만해도 7천t선을 오르내리던 충주댐의 초당 유입량이 단양 등 댐 상류지역의 집중호우로 1만t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충주댐 수위는 이미 1백40m를 넘어 만수위(홍수위)1백45m에 가까워 방류량을 늘려야 할 형편이었다.그러나 방류량을 늘리면 충주댐과 섬강,달포천이 합류하는 경기도 여주지역의 하천의 범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홍수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댐수위 조절은 댐 상류지역은 물론 하류지역의 영향을 정밀 분석,피해를 극소화하는 경우의 수를 도출해내는 작업이다. 한 시간 뒤.한국 수자원공사와 한강홍수통제소의 계산이 나왔다.경기도 여주지역의 물난리를 막기 위해선 충주댐의 방류량을 초당 6천7백∼6천8백t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방류량축소 긴급지시가 충주댐에 떨어졌다. 그러나 충주댐의 방류량을 크게 줄였음에도 불구,섬강과 달포천의 유량이 급증하면서 낮12시까지만 해도 8m를 약간 웃돌던 남한강 여주지역의 수위가 갑자기 시간당 20㎝ 이상씩 높아지기 시작했다.대책반원들을 아연 긴장시켰다.하지만 곧 현재의 강수상황이 계산돼 충주댐 방류량을 줄였기 때문에 여주지역 수위가 10m를 고비로 낮아질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시간당 20㎝ 이상 높아지던 여주지역 수위는 하오 6시쯤되자 10.6m를 고비로 다시 떨어져 26일 들어 8.6m선을 오르내리고 있다.5년전 「일산의 악몽」을 떨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상황실은 또 다시 비상작전에 들어갔다.작전명 「소양댐·충주댐 저수용량 확보」.태풍 재니스의 영향권에 있어 언제 집중호우가 쏟아질지 몰라 소강상태를 이용,두댐의 용량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상황실은 태풍 재니스가 집중호우를 가져올 것에 대비한 도상연습에도 들어갔다.시나리오명은 「태풍 재니스의 내습시 강우상황 분석」.2백㎜의 강우량이면 홍수조절은 무난,2백50㎜ 이상이면 어려움이 예상돼 전략수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돼 있다. 태풍 재니스호가 2백㎜의 비를 몰고오면 소양강댐 수위는 27일 하오 1시쯤 최고 수위가 1백96.64m,청주댐도 27일 하오 4시쯤 최고 수위가 1백43.9m로 홍수위인 1백98m와 1백45m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 이상이면 한강도 어렵다.
  • 남한강 범람위기 벗자 “안도”/이틀간 밤새 가슴졸인 여주지역 현장

    ◎「재니스」 영향 한때 위험수위 육박/만약 사태대비 민관군 동원태세 경기도 여주읍 주민들에게는 제7호 태풍 재니스가 우리나라를 관통한 26일은 길고도 지루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태풍이 큰 피해없이 동해로 빠져 나가면서 범람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벗어나자 일순 안도하며 재난수습을 준비했다. 한강유역 홍수대란의 첨병격인 여주지역에서 펼쳐진 숨막히는 이틀동안의 드라마는 이번 폭우가 절정에 달했던 25일 하오 5시부터 시작됐다. 여주대교 부근의 남한강물이 위험수위 9.5m를 무려 1m나 웃도는 10.5m까지 차오르자 저지대 주민 47가구 1백89명은 긴급 대피길에 올랐다. 이어 전 여주읍지역에는 긴급대피 준비령이 떨어졌다.범람이 시작되는 수위인 여주대교 상판까지 불과 1m만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수위가 조금씩 차올랐기 때문이다. 여주군은 긴급히 민방위 대원,경찰,군장병들이 나와 제방에 모래주머니를 쌓았지만 주민들은 승용차에 옷가지 등을 실어놓은 채 밤을 지새며 최악의 사태에 대비했다.일부 주민은 서울 등의 친척집으로 아예 잠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재해대책본부가 충주댐의 방류량을 초당 1천t 줄이면서 여주의 남한강은 안정권에 접어 들었다. 여기에 4백㎜에 육박했던 빗줄기가 이 날 새벽부터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여주대교의 수위도 8.6m까지 떨어졌다.여전히 홍수 주의보가 발령됐음은 물론이다. 수도권과 여주에 긴장이 다시 감돌기 시작한 것은 하오 2시쯤이었다. 물높이가 8.8m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태풍 재니스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밤 9시에는 8.9m까지 다시 솟았다.전날 밤 공포속에 어둠을 지샜던 주민들은 또다시 대피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더구나 한강 수위를 좌우하는 충주댐이 제한수위를 2.4m나 웃돈 1백40.4m를 보여 태풍이 집중호우를 뿌렸을 때 우려됐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태풍의 영향으로 이날 밤 11시를 전후해 빗줄기가 굵어지자 여주읍내는 일순 긴장감이 고조됐다.여주군 북내면 주민 김모씨(52·농업)는 『지난 72년 남한강 대 범람사태의 악몽이 우려된다』며 귀중품과 옷가지 등을 챙겨 놓고TV를 초조하게 지켜 보기도 했다. 새벽 2시를 넘기며 태풍의 세력이 약해지고 서서히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주민들은 연이틀째의 긴장을 풀며 뒤늦게 잠을 청했다.태풍은 우려와는 달리 50㎜도 안되는 적은 비를 뿌렸기 때문이다. 여주군은 이 날 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민방위 대원,경찰,군장병 등의 긴급 동원태세를 갖췄다.전날 밤 고지대로 대피했던 주민들은 미리 대피했었다. 여주군에서는 이미 건물 53채와 농경지 9백5㏊가 침수되는 등 모두 14억5천5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으나 최종 집계되면 1백여억원을 넘어 설 것으로 관측됐다.
  • 세계­신속군 포격전/사라예보/유엔관측소 공격­보복 맞대응

    ◎크로아군 1만명 전투태세 【사라예보·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회교정부군과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가 22일 3주간의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 사라예보 인근에서 포격전을 재개,7명이 숨지고 유엔 평화유지군 병사 등 38명이 부상했다고 유엔관리들이 밝혔다. 유엔 대변인 피에르 브리에르 중령은 보스니아 회교 정부군이 이날 낮 12시50분쯤(현지시간) 사라예보 북부 보고스카의 세르비아계 무기공장에 포격을 가해 화재를 일으켰으며 세르비아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사라예보 시내와 유엔 관측소에 포격을 가했다. 사라예보 외곽 이그만산에 배치된 유엔 신속대응군은 이날 세르비아계의 두 차례에 걸친 포격으로 에메로비카의 유엔 관측소에서 이집트 병사 6명이 부상한 뒤 사라예보 북동부의 세르비아계 포진지에 6발의 포격을 가했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역시 크로아티아군과의 결전에 대비,병력을 증강하고 진지 보수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전쟁 기원」 논쟁(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2)

    ◎「이데올로기 잣대」 따라 남침­북침설 대립/본지연재 「모스크바 새증언」이 남침 입증 한국전쟁의 진행 상황은 본지 연재물 「6·25 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에서 이미 자세히 소개했습니다.따라서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시리즈에서는 전황을 직접 다루지 않는 대신 한국전쟁 기간중 있었던 주요 사건·사고와 정치·경제·사회적 흐름을 주로 소개하겠습니다.독자 여러분께 배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950년 6월25일 상오 4시 38선 일대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짙은 안개가 드리워 있었다.일요일을 맞아 새벽 단잠에 빠진 한국군부대 막사 위로 한순간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더니 이어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주력부대가 38선을 넘었다.이에 앞서 상오 3시30분쯤에는 북한 게릴라 3천1백여명이 해군 상륙선단편으로 동해안 옥계·삼척·임원 등 3곳에 상륙했다.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터진 것이다. ○북 군사력 한국 압도 북한군은 개전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말에는 경상도·제주도를 제외한 국토 전역을 수중에 넣는 등 파죽지세로 대한민국을 유린했다.북한군이 전쟁 초기 일방적으로 공세를 벌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북한은 일찌감치 전쟁준비에 나서 개전 당시 군사력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개전 초기 양쪽의 전력을 볼 때 북한이 침략의도를 갖고 대한민국을 먼저 공격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킨 쪽이 어디냐는,곧 「한국전쟁의 기원」을 따지는 논쟁이 오랫동안 끊이질 않았다.이는 한국전쟁이 단순히 한민족간에 벌어진 내전이나 국지전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세계가 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양블록으로 갈라져 냉전체제로 돌입한 다음 벌어진 첫 대결의 장이었다.따라서 한국전쟁 기원에 관한 학설에는 전쟁 자체의 성격 분석을 전제한 이데올로기적 잣대가 작용하게 마련이었다. 한국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은 냉전 발생의 책임을 미·소 중 어느쪽에 두느냐에 따라 두갈래로 나뉜다.하나는 「소련의 공격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대외정책이 미국의 단호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는 전통주의 학파다.거꾸로 「미국이 월등한 군사·경제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하므로 소련이 불가피하게 대응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쪽은 수정주의 학파라고 부른다.기본적으로 전통주의자들은 「남침설」을,수정주의자들은 「북침설」을 지지한다. 전통주의자들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자 수상인 스탈린을 대개 지목하며 그 동기는 다음 몇가지로 분석한다.첫째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유럽에서 압박을 가하자 이를 분산시키려고 극동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압력분산설」이 있다.또 ▲세계 적화를 노리는 스탈린이 미국의 대응 의지를 떠보려고 도발했다는 「저항력 실험설」 ▲주한미군 철수,애치슨라인 설정으로 미국이 한국방위를 허술히 한데다 한국에서도 「5·30선거」에서 우익세력이 패하자 그 틈을 노렸다는 「허점공격설」 등이 있다. ○냉전발생책임에 무게 반면 수정주의 학설은 「맥아더와 이승만이 공모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다.미국의 좌파 언론인 스톤이 제기한 이 주장은 「이승만은 국내 정치위기를해소하려고,맥아더는 미 정부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리기 위해」전쟁을 획책했다는 논지로 구성됐다.정확한 근거없이 단순한 추측에서 시작된 이 가설은 점차 미국·일본 등 서방국가 좌파 지식인사이에 널리 퍼져 수정주의라는 한 갈래를 이뤘다. 「6·25」를 겪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처구니없어 할 「북침설」이 나름대로 세력을 이룬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먼저 전통주의자건,수정주의자건 한국전쟁을 지나치게 냉전논리로만 파악했다는 점이다.이들은 당시 남북한의 정세나 군사력 비교 등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다만 소련 또는 미국이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분석했다.또 한국전쟁 발발에 관한 북한·소련측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은 점도 학자들의 연구를 제약한 큰 요인이었다.예컨대 북한군의 남침을 밝히는 한글 문헌은 1986년까지 한건밖에 공표되지 않았다. 이같은 학계 분위기는 80년대 후반 들어 반전한다.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 보관중인 「북한 노획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이 「6·25」를 철저히 준비했고,치밀한 계획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음이 속속 밝혀졌다.「북한 노획문서」란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에 나선 미군이 평양 등 북한 각지에서 압수한 각종 문서를 총칭하며 그 분량이 1백60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다.이 북한측 자료는,인민군 5개 사단이 6월23일부터 24일 밤사이 38선이북 수㎞ 안에 집결해 25일 새벽 선제공격을 가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가령 6사단 문화부가 6월13일 예하부대에 내려보낸 「전시 정치·문화사업」명령서를 보면 38선으로의 이동­공격 개시­점령지에서의 정치선전 활동에 이르기까지를 5단계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북한 노획문서」의 공개와 이에 근거한 연구성과 발표는 어느쪽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전쟁을 계획하고 주도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이를 결정적으로 확인시켜 준 자료가 서울신문이 올해 발굴해 「6·25 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러시아 소장 비밀문서 9백50여건이다.러시아 외무부·대통령궁·옛소련공산당 중앙위·국방부에서 각각 입수,이번에 처음 공개한 이 자료더미는 한국전쟁 준비에서 휴전에 이르기까지 풀리지 않던 많은 의혹들을 해명해 주었다. ○“3인 공동정범” 밝혀 이에 따르면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은 한국전쟁에 있어 각각 주요 역할을 했고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김일성은 1949년 3월 스탈린을 만나 먼저 전쟁을 제의한다.이를 거부하던 스탈린은 50년 3∼4월 회담에서 남침을 허락했고,이후 53년 3월 사망할 때까지 전쟁을 주도한다.전쟁 계획을 확정하고,중공군을 끌어들였으며,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뒤에도 휴전을 거부하는 등 주요 결정은 모두 스탈린이 내렸다.한편 모택동은 초기에 참전을 주저하긴 했지만 막상 중공군을 투입하고 부터는 전쟁터를 책임진다. 러시아 비밀문서 발굴로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해묵은 논쟁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한민족에게 최악의 상처를 남긴 「6·25」에서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이 공동정범이라는 사실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로 증명됐다. ◎「당 7∼8월 사업계획서」/북,108군·1168면에 「인민위」 설치/도·시·군·면 행정단위 남노당위 “재건”/「평화옹호 서울위」,지지 서명 받아내 전쟁 개시 3일만인 6월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말에는 낙동강 동쪽을 제외한 국토 대부분을 점령한 북한은 점령지에서 당·정 기관의 건립,토지개혁,군지원을 보장하는 활동에 즉시 돌입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비밀문건을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국내 처음으로 공개한다.「당 중앙본부 7월∼8월 사업계획서」라고 이름붙은 이 문서는 「절대비밀」로 분류돼 있으며 등사본으로 50부만 찍은 귀한 자료다.이 문건은 전쟁 초기 승승장구하던 북한이 세운 전략을 알려준다. 사업계획서는 점령지 행정 중심방향으로 ▲옛 남로당조직 복구등 당세 강화 ▲군수품 생산 증대 ▲군·면·이 단위 인민위원선거 및 토지개혁 실시 ▲사회단체 활동 강화 ▲농촌에서의 증산 장려와 현물세 징수 등 5개항을 제시했다.또 10일마다 회의를 열어 이같은 지시사항을 점검하도록 했다. 이 문서에서 나타나듯 북한은 행정구역에 따라 중앙(서울)·도·시·군·면 단위로 각급 당 위원회를 재건하는 동시에 임시인민위원회와 사회단체들을 복구했다.당 위원회 재건작업은 북로당원으로서 파견된 공작대원,남로당 출신 월북자,형무소에서 출감한 남로당 간부 출신,빨치산 간부들이 맡았다.이어 두단계에 걸쳐 「인민정권기관」을 지체없이 세웠다.먼저 점령지에 지역 정권기관으로서 임시인민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곧바로 선거를 거쳐 인민위원회를 정식 설치했다.남한에서 인민위원회가 들어선 곳은 1백8개 군,1천1백68개 면이었다. 인민위원회는 북한에서 실시한 예에 따라 토지개혁을 실시했다.「무상 몰수,무상 배분」을 원칙삼아 일제와 한국 정부,지주 소유 토지는 모두 몰수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자작농은 5∼20정보만 인정했다. 북한은 정치 선전·선동에도 힘을 기울여 7월14일 「평화옹호 서울시위원회」를 조직,북한을 지지하는 서명을 억지로 받아냈다.그 내용은 ▲유엔에 미국의 참전 중지를 요구하고 ▲이승만 대통령 등 대한민국 요인을 반역자로 지목,처형을촉구한 것이었다.
  • 크로아,세계 공격 재개/「보」국경 세계탈출로 집중포격

    ◎휴정협정 서명 수시간뒤 깨져/보스니아 세계,크로아 5개지역 공습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 장병과 난민 약 8만명을 인근 보스니아로 소개하는 내용의 유엔 휴전협정이 체결,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크로아티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간의 전투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고 유엔 관계자들이 7일 밝혔다. 유엔의 한 관계자는 이날 『크로아티아당국이 이날 상오11시30분(한국시간 하오4시30분)쯤 세르비아계의 속임수를 이유로 들어 휴전협정을 폐기한다고 통보한 뒤 즉각공세를 재개했다』고 말했다. 휴전협정이 깨지고 난 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가 유엔군에게 무기를 인도하고 보스니아로 넘어가는 지역의 하나인 토푸스코는 크로아티아군의 격렬한 포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전투기들은 전날 쿠티나의 석유화학공장을 공습한데 이어 이날 다시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영토에 있는 반야 루카를 이륙한 뒤 노브스카·쿠티나·주판야·포제가·비로비티카 등 5개 지역을 공습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앞서 유엔의 한 관계자는 이날 크로아티아군이 크라이나지역에서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와 함께 유엔이 주선한 휴전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날 상오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 자치공화국인 크라이나공화국 및 크로아티아군이 세르비아계의 철수를 내용으로 하는 휴전안에 서명했다』고 밝히고 세르비아계는 이 협정에 근거하여 크로아티아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평화유지군에게 중화기를 양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의 프란요 투지만대통령을 비롯한 크로아티정부 관리들은 이날 『「크라이나」라는 세르비아계 지역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크닌의 탈환은 향후 수세기동안 크로아티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신유고 개입­내전 확대 “갈림길”/크로아의 크라이나 장악이후/세계,대 비세계 대결 구도면 전면전 크로아티아 영토의 3분의1에 달했던 세르비아반군 거점지역의 대부분이 불과 며칠 사이에 크로아티아 정부군에 의해 함락됨에 따라 실지회복을 위한 신유고연방의 개입과 전면전으로의 확산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급해진 신유고연방은 크로아티아내의 유일한 세르비아계 거점으로 남아 있는 동부 슬라보니아로 일단 미사일 발사대와 병력을 실은 트럭 수십대를 보낸 것으로 전해져 이미 개입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일단 크로아티아의 공격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적극개입 의사는 밝히지 않고 있다.보스니아내전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라는 서방측의 요구에 대해 내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적극 중재를 회피해왔기 때문에 크로아티아내전에도 대대적으로 직접 개입하기에는 국제사회의 비난 등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처지다.따라서 무기지원 등 소극적인 간접지원에 그칠 공산이 적지 않다.그럴 경우 뚜렷한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는 지루한 내전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정치지도자인 라도반 카라지치가 라트코 믈라디치 군사령관을 전격 해임함으로써 빚어진 양자간의 권력투쟁은 세르비아계의 일사불란한 행동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유고연방측으로서도 크로아티아내에서 세르비아계가 설 땅을 잃어버린 현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강경파들의 적극개입 요구도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어서 구유고내 세르비아계와 비세르비아계간의 전면전 양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은 보스니아 회교정부군과 합동작전으로 전개된 크로아티아의 이번 공세가 보스니아 평화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인 반응을 보인다.승승장구하던 세르비아계의 위세를 누그러뜨림으로써 세력균형을 이뤄 평화협상의 길을 열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섞인 시각이다.그러나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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