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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파견 긴급구조대 23일 귀국

    대지진 피해가 발생한 일본에서 구조활동을 펼쳤던 우리 정부의 긴급구조대가 23일 귀국한다. 22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일본 니가타에 머물고 있는 긴급구조대 106명은 군수송기를 타고 23일 오후 2시 50분쯤 서울 성남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긴급구조대에 참가했던 외교부 인도지원과장은 이날 먼저 귀국했다. 구조대는 지난 12일과 14일 일본 센다이 지역에 급파된 뒤 가모지구, 미야기현 다가조시 등에서 수색 및 구조활동을 통해 17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러나 지난 18∼19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따른 방사능 누출 위험이 우려되고 일본 측으로부터 요청받은 지역에 대한 임무가 끝나면서 센다이에서 니가타로 전원 철수한 뒤 대기해 왔다. 외교부 관계자는 “구조대의 귀국 결정은 일본 정부와 협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일본 측은 한국구조대가 외국 구조대 가운데 마지막까지 헌신적으로 활동한 데 감사를 표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으로 일본 측과 협의해 구호물자 제공과 피해지역 복구 활동 등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열린세상] 쓰나미와 문화/조광 고려대 한국사 명예교수

    [열린세상] 쓰나미와 문화/조광 고려대 한국사 명예교수

    인간이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정리해 나갈 때부터 자연과 문화는 주요한 사색의 대상이었다. 문화에는 수많은 개념이 통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자연의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류의 대응방법’이라는 규정도 있다. 물론 자연은 인간을 향해 도전만을 감행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그래서 고대사회 이래로 사람들은 자연과 문화를 서로 공존하면서 대립되는 존재로 이해해 왔다. 또한 이 도전을 통해 인간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9.0의 진도였다고 한다. 이 지진의 여파로 쓰나미(津波)가 뒤따랐고, 지진을 이긴 원자력 발전소도 쓰나미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일본의 자연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드러내준 사건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그들의 태도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과 그 수준을 가늠케 한 사건이었다. 지진과 쓰나미라는 인류문명에 대한 자연의 공격 가운데에서도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자 노력했으며, 힘써 평온과 질서를 유지해 나갔다. 처참하게 파괴된 슈퍼마켓 앞에서도 그들은 어김없이 줄을 서서 물건 값을 치렀다. 그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지구 다른 쪽에서 자연재해에 뒤따라 일어났던 혼란과 약탈 등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보면서, 그들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이 자연의 재난은 정쟁을 멈추게 했고, 국가적 위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치된 노력을 드러내 주었다. 피해를 입은 동포들을 돕고자 노력하는 일본인의 진지한 모습들이 도처에서 속속 드러났다. 이 엄청난 자연의 도전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들의 태도는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역사적 앙금이나 현실적 분쟁, 경쟁 등을 뒤로한 채 우리나라나 중국 그리고 미국 등 멀고 가까운 나라들이 일본을 앞다투어 지원하고자 했다. 이번 대지진과 지진해일 사건을 계기로 일본보다 더 가난한 나라들까지도 마음을 열고 일본을 돕기 위해 너도나도 일어섰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다는 일은 빈부의 정도를 떠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감정의 발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보편적 도움과 격려는 일본의 재난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좌절하고 있을 이와테의 주민들이, 그 아름다운 고향을 상실한 센다이의 시민들이 하루바삐 다시 일어나 새로운 일본을, 새로운 일본 문화를 가꾸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실은 하늘에 통하고 진심은 얼어붙은 상대를 움직이게 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것은 진실한 인간성을 드높이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땅히 이번 지진과 쓰나미의 재난을 입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도와야 한다. 이는 질서의식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배려심을 키워주어 우리 문화를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이번에 일어난 자연의 사건을 통해 일본도 우리와 함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관찰자들은 지금 일본인이 보여주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와 연대의식은 일본인 내부에 국한된 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인 스스로는 자신들 이외에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함을 지적한다. 여기에서 일본문화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 논의되기도 한다. 일본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많은 친구들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을 돕기 위해 전개한 작전명도 다름 아닌 ‘친구들’이었다. 물론 이번 일로 인해서 일본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그들은 또 이와 함께 새로운 것을 얻었다. 그것은 일본문화에 불행을 통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하는 현명함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번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문화의 질을 고양시키고, 폭을 확대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신속대응팀 센다이 남는다

    외교통상부는 21일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총영사관으로 급파된 정부 신속대응팀이 재외국민 보호조치가 마무리될 때까지 현지에서 계속 머무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에서 급파된 신속대응팀은 7명에서 현재 6명으로 축소해 운영 중에 있다.”면서 “교민보호 관련 조치가 다 이뤄져 현지 총영사관이 통상적인 업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신속대응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와 함께 단기체류자(뉴커머)와 재일동포의 소재 파악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니가타현으로 주둔지를 옮긴 119구조대도 일본 정부와 협의해 구조활동을 계속할 것인지를 정할 방침이다. 윤설영·허백윤기자 snow0@seoul.co.kr
  • 한국구조대 임무 끝 전원 니가타로 철수

    동일본 대지진 피해 현장에 급파돼 구조작업을 벌여 왔던 우리 정부의 긴급구조단이 19일 전원 센다이 지역에서 철수했다. 센다이 지역에 머물고 있던 잔류 구조대원 31명 등이 버스를 타고 3시간 30분가량 떨어진 니가타에 도착했다고 현지 관계자들이 전했다. 앞서 구조대원 76명은 전날 니가타로 철수한 상태였다. 107명으로 구성된 한국 긴급구조단은 지난 14일 피해 지역 내 최대 도시인 미야기현 센다이에 본부를 차리고 구조활동을 펼쳐 왔다. 구조대 전원이 니가타로 이동한 것은 대원들이 방사성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데다 일본 정부로부터 요청받은 지역에 대한 임무가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니가타에서 휴식을 취하며 일단 대기한 뒤 일본 정부와 협의해 구조 임무를 재개할 계획이다. 이동성 긴급구조단장은 이날 “한국 구조대는 피해 지역에 머문 각국의 국제 구조대 가운데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가장 오랫동안 미야기현 피해 현장에 머무르며 활발한 구조활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구조활동의 어려움에 대해 “눈, 비, 바람, 추위에 시달렸으며 야외에서 숙영을 하다 보니 휴식도 충분히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며 “식수 외의 생활용수가 없어서 일주일 넘게 전 대원들이 샤워는커녕 세수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구조대의 니가타 이동은 본국 철수를 위한 수순이냐.”는 물음에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후쿠시마 원전 상황 등을 보고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국내 음반시장 日대지진 ‘여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국내 음반시장이 찬바람을 맞고 있다. 일본 관광객 특수로 호황을 맞던 음반판매점 매출이 평소보다 80~90% 가까이 급감했다. 그간 국내 음반판매점은 동방신기, JYJ, 소녀시대, 카라, 2PM 등 이른바 한류 가수들의 앨범을 일본에서보다 2.5배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에게 필수 관광코스로 각광을 받아 왔다. 18일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등 국내 서점가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 이후 1일 음반 매출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80~90%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광화문점 관계자는 “평소 오전에 찾는 손님 99%가 일본인들이고, 규모도 보통 20~30명씩은 됐는데, 지금은 한두명에 불과하다.”면서 “1일 평균 200만~300만원이던 매출액이 지금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 점원은 “평일에는 일본어를 더 많이 썼는데, 지금은 한국어를 더 많이 쓴다.”고 상황을 전했다. 권정숙 부루의뜨락 대표 역시 “일본인의 구매가 매출의 80% 정도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평소의 3분의1도 안 찾아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송인호 서울음악사 대표도 “침체된 국내 음반시장을 살려준 사람들이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는데…”라면서 “일본 지진으로 국내 음반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센다이의 서적 물류센터가 지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 일본서적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영풍문고 등 각 서점 관계자는 “일본 패션 잡지가 못 들어온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각 서점마다 ‘요미우리’, ‘아사히’,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신문 판매량은 30% 정도 늘어나 일부 서점에서는 구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일본인 관광객 숫자가 확연하게 줄어든 서울 명동의 화장품 거리에도 지진 여파가 없지는 않았지만 음반 판매점만큼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준·최두희기자 dh0226@seoul.co.kr
  • 일본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도 혼란

    일본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동일본 대지진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왔다. 많은 선수들이 방사능 유출에 대한 공포로 일본을 떠나고 있다. 남은 선수들도 난생 처음 겪는 혼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에서 우타자로 뛰는 전 메이저리거 랜디 루이스는 18일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참사 당시부터 현재의 혼란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선수들의 상황을 가감 없이 전했다. 라쿠텐은 참사의 진앙지인 센다이를 연고로 하고 있고, 김병현을 비롯해 대럴 래스너, 라이언 스피어, 켈빈 히메네스 등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속해 있다. “참사 당시 우리는 센다이와 640㎞ 떨어진 곳에서 시범경기 중이었다. 8회에 심판이 갑자기 경기를 중단시키고 나서야 지진이 난 걸 알았다.”고 루이스는 당시를 회상했다. 선수나 관중 할 것 없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루이스와 김병현 등 팀 선수들은 임시로 나고야의 한 호텔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선수들은 모두 죄책감을 느낀다고 루이스는 전했다. “우리는 호텔 뷔페를 먹고 있는데 센다이에 있는 일본인들은 굶주리고 있다. 그들에게도 따뜻한 밥과 마실 것이 필요하다.”고 루이스는 말했다. 동시에 극도의 불안감도 느낀다고 했다. “지난주 나의 일상은 지진, 화산 분출, 원전 폭발과 쓰나미였다.”면서 “다음은 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는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루이스는 말했다. 지난 시즌 두산에서 부동의 에이스였던 켈빈 히메네스는 참사를 온몸으로 직접 겪었다. 시범경기에 참여한 동료들과 떨어져서 센다이에 머무르며 재활 치료를 했던 탓이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패닉은 피할 수 없었다. 루이스는 “히메네스는 너무 불안한 마음에 옆에 있던 과자 세 박스를 먹어치웠다고 한다. 나중에 그에게 전화하니 숙소로 쓰는 아파트가 난장판이 됐다고 울먹이며 전했다.”고 했다. 일본 퍼시픽리그의 개막이 연기된 상황에서 많은 선수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루이스는 전했다. 방사능 유출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스는 안전이 보장되는 한 남아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팀을 위해 남아 있고 싶다. 모금운동과 구호운동도 돕고 싶다. 일이 잘못될 경우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끝까지 함께할 거다.”고 그는 말했다. 외국인 선수들의 엑소더스는 비단 야구뿐이 아니다. 일곱 차례나 일본 J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명문팀 가시마 앤틀러스는 지난 16일 선수단 임시 해산 결정을 내려 오스왈도 올리베이라 감독을 비롯한 외국인 선수와 스태프들이 속속 일본을 떠나고 있다. 가시마는 방사능 유출 우려가 커진 후쿠시마 제1원전과 200㎞ 떨어져 있다. 가시마 홈 경기장 역시 지진에 크게 훼손된 데다 J리그 자체가 중단된 상황에서 선수단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구단 관계자는 전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모두 떠났다, 그러나 한국 구조대는…

    영국, 프랑스가 떠났다. 러시아와 타이완도 짐을 쌌다. 10여명으로 구성된 몽골 구조대도 18일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됐던 각국 구조대원들의 철수가 시작됐다. 여전히 일본 동부의 수많은 마을이 지진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흔에 신음하고 있건만 후쿠시마 공항에 착륙했던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뉴질랜드와 호주의 구조 대원 4명이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국 구조대의 귀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미야기현을 중심으로 생존자 수색에 여념이 없는 구조대가 있다. 바로 한국의 긴급 구조단이다. 지난 12일과 14일 잇따라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파견된 한국 긴급 구조단 105명. 무너진 건물 잔해를 뒤지고 진흙 속을 헤치며 그 어딘가에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을 생존자를 찾아 지금도 센다이시 아라하마와 다가조시 등을 훑고 있다. 방사능 보호복과 제독약도 다 가져왔다. 시간에 맞춰 방사능 측정도 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 현장을 서둘러 빠져나가는 외국 구조대를 쳐다보면 방사능 피폭에 대한 두려움이 불쑥불쑥 솟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연일 애를 태우고 있는 가족들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래서 생존자 구출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수록 함께 줄어드는 게 있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다. “일본을 돕기로 했으면 실제로 돕고 가야 한다.” “이재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복구 활동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떳떳하게 귀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이동성(53) 단장의 말이다. 긴급 구조단이 일본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인명구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한국의 구조대는 일본의 소방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이번에 그 빚을 제대로 갚아야 한다. 그래서 구조 활동에 대한 일본의 편의 제공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 이재민 수송에 이용하는 45인승 버스 2대 비용 90만엔(약 1240만원)도 우리 돈으로 지불했다. 차량에 들어갈 경유 3000ℓ와 휘발유 1000ℓ도 한국에서 공수했다. 파손된 차량과 건물 안, 맨홀 아래에서 시신을 발견하면 이들은 진흙 범벅인 작업복의 매무시를 고친다. 현장에 있던 대원들이 모두 모여 거수 경례를 하고 묵념을 드린다. 일본의 관습에 따라 손을 모아 명복을 빌기도 한다. 구조 대원들의 정성스러운 시신 수습 모습에 이재민들도 울먹이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며느리를 아직 못 찾았습니다.” “회사 동료가 휩쓸려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꼭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느새 배웠는지 또박또박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해 오는 주민도 생겨났다. 숙소는 재해 현장과 가까운 미야기현 공설운동장 옆에 있는 보조운동장에 설치한 텐트다. 며칠 새 강한 눈바람이 날려 텐트 안까지 눈이 불어닥쳤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라고 전한다. 세수도 한국에서 가져간 물티슈로 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현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8일 자 신문에서 한국 긴급 구조단원들의 구조 활동을 ‘비통의 수색’이라는 제목으로 소상하게 소개했다. 경술국치 101년.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재난 현장에서 두 나라의 새 역사를 조용히 쓰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대재앙 넘은 한·일 지식인 우정… 그들의 아주 특별한 편지

    대재앙 넘은 한·일 지식인 우정… 그들의 아주 특별한 편지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거쳐 일본 도쿄대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분야는 근대 한·일 관계사. 이마니시 하지메는 일본 아오모리현 도호쿠 공업대학 교수다. 도호쿠 공대는 이번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센다이에 있다. 이마니시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구조역학과 지질구조 전문가다. 삼성물산 고문으로 있으면서 한국 건축물의 지질구조도 오래 연구했다. 이때 정 이사장과 친분을 쌓게 됐다. 2005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는 양국 최대 규모 교류행사인 한·일 축제한마당 운영위원장(2008년)도 맡았다. 창졸간에 덮친 대재앙 직후 두 사람이 황망히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국경과 지배·피지배 역사를 뛰어넘어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한·일 지식인의 우정과 인간애가 깃들어 있다. 그 내용을 공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센다이의 이마니시 선생께 16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열어 보니 선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후딱 훑어보아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했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선생의 간결한 문장을 되씹어 읽으면서, 동북관동대진재(東北關東大震災)를 겪은 일본인의 심경과 자세에 대해 깊은 동정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일본이 미증유의 재난을 하루빨리 극복하고 훌륭하게 재건하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선생의 허락을 받지 않고 편지를 공개하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한국의 독자들에게 피해지의 현황과 당사자의 상황을 육성으로 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짧은 편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 앞에서도 의연하게 행동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군더더기 없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3.16 정재정 #정재정 선생께 연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려를 끼쳤습니다. 이곳은 괜찮습니다, 처도 개도 집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제부터 개통했기 때문에 메일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가스와 수도는 안 됩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어떻게든 해 나가고 있습니다. 걱정을 끼치게 되었습니다만, 오늘 나토리시 유리아게하마와 센다이공항 가까이까지 걸어서 가봤는데, 95%의 목조 건물이 소멸되었습니다. 항상 들렀던 식당도 없었습니다. 쓰나미는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차가운 재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이라기보다는 담담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이 정직한 감상입니다. 이곳은 괜찮습니다. 우선 연락만으로 그칩니다. 3.15 이마니시 하지메 지난 11일 오후 저는 공무에 바쁜 관계로 일본에서 엄청난 지진이 발생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그 심각함을 알고 센다이에 계신 선생의 안부가 궁금하여 저와 아내가 몇 차례 전화를 했습니다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틀 만에 간신히 연락이 된 요코하마의 지인을 통해서도 선생의 안부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15일에 선생께 직접 메일을 보냈는데, 위와 같은 답신을 받았습니다. 편지를 읽고 나니 선생과 나눈 우정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을 돕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민지 지배의 비참한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까지도 가담하고 있습니다. 90여년 전 관동대진재 때의 조선인 학살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런 자세를 보인 것은 한·일 관계의 획기적 진화를 보여 주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저는 선생을 비롯한 일본인 수강생들에게 동북 지역의 한·일 관계사 유적지 답사를 안내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재난에 휩쓸린 그 지역이 하루빨리 복구되어 일본에서 저의 강의가 속개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부디 자중자애(自重自愛)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18 정재정
  • 하늘길… 바닷길… 교민 구출길 모두 뚫는다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물질 누출 등으로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군용기와 해경경비함을 동원해 교민을 구출하겠다는 방침이다.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일본 지진피해대책특위 2차회의에 참석, “일본 원전 등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될 경우 전세 항공기·선박·군용기·해경 경비함·군함 등을 총동원해서 국민을 대피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출국하는 분들의 노력을 덜기 위해 국토해양부 및 관련 항공사측과 협의해서 항공기 운항을 증편하고 대형 기종으로 변경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항공사측과 왕복 요금을 편도 요금으로 받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협의 중이다. 민 차관은 이어 “일본은 물자지원을 정부 채널을 통해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어 외교부를 중심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물품을 확보하고 있고 이중 실제적으로 필요한 물자들을 선정해서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구호물자 지원을 요청해옴에 따라)19일에 생수 100t과 담요 6000장을 전세 민항기편으로 일본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날에는 센다이 지역에 생수 20t을 군 수송기 3대에 나눠 제공했다. 정부는 또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80㎞ 밖에 있는 우리 국민들에 대해서도 풍향 변화 등을 감안,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권고했다. 민 차관은 오후 외교부 브리핑에서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80km 바깥지역에 체류하는 국민들도 상황 호전시까지 조금 더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80㎞ 이내 지역의 우리 국민에게 대피 또는 실내 체류를 권고한 것보다 조치를 강화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영국 등의 근거에 따른 80㎞ 내 대피 권고가 하루 만에 80㎞ 밖으로 바뀌면서 정부 정책이 갈팡질팡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미경·허백윤기자 chaplin7@seoul.co.kr
  • [서울광장] 그들인들 어찌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까/박홍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들인들 어찌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까/박홍기 논설위원

    일본엔 ‘마음으론 울면서 얼굴로는 웃는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되도록이면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내가 울면 나보다 더 큰 불행을 당한 이에게 폐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메이와쿠(迷惑·폐) 방지 문화이다.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등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 그리고 원자력발전소 폭발과 방사능 공포 속에서 보여준 일본 국민의 침착성과 차분함은 세계인들에게 진한 울림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죽음의 사신 같은 시꺼먼 파도에 사랑하는 자식을, 부모를, 이웃을, 정든 집을 잃은 그들이다. 언제 닥칠지 모를 대재앙에 항상 신경쓰고 경계하고 대비해 왔건만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제대로 손을 쓸 틈조차 없었다. 아름답고 평온하던 동북부 해안은 더 이상 아름답지도, 평온하지도 않다. 숲의 도시로 불리던 센다이는 질퍽질퍽한 개흙과 건물 잔해더미에 덮였다. 처참한 광경이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확인된 희생자만 1만명이 넘고 이재민도 40만명 이상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재난이다. 리히터 규모 9라는 수치보다 훨씬 큰 시련에 맞닥뜨렸다. 하지만 흔들림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인들 가슴이 미어지지 않겠는가. 화가 안 나고, 분노가 일지 않겠는가. 자연 재앙보다 공포스러운 방사능의 위협에 피난을 떠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삶의 터를 지켜줘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정부, 갈팡질팡하는 총리, 원전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도쿄전력에 부아가 치밀지 않겠는가. 방사능 대량 누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말이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원폭’으로 끔찍한 아픔을 겪은 그들이기에 더욱 무섭고 두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매뉴얼대로, 배운 대로 참고 견디며 행동하고 있다. 주먹밥 한개로 세끼를 때우고 종이박스를 깔고 모포 한장을 덮고 자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4㎞가량 줄을 서며 두세 시간씩 기다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눈에 띌 만한 새치기도, 사재기도, 소란도, 약탈도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폐허를 헤매는 노부모, 시신 앞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 남편이 숨져 있을 부서진 집터에서 조용히 합장하는 여인…. 고통과 슬픔에 의연하게, 감정을 절제하는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최후까지 마이크를 붙잡고 “빨리 도망치세요.”라며 대피방송을 하다 쓰나미에 스러져간 25세의 말단 동사무소 직원, 언제 폭발할지 모를 원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퇴직 직전의 원전 직원에 대한 사연도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 디 이들뿐인가. 일본 방송도, 신문도 유난히 재난에는 흥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다. 1995년 고베대지진 때도 그랬다. 공영방송이자 재난방송인 NHK의 앵커, 기자와 아나운서들은 초유의 대재앙 앞에서 평소보다 차분한 어조로 피해 상황과 대피 요령, 피난처 정보, 구조활동 등을 상세히 전달했다.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섣부른 추측을 하지 않고 갈등과 불안을 부채질하거나 자극하지도 않았다. 유족들의 통곡 보도도 자제했다. 불필요한 제2, 제3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절망을 희망으로 함께 바꿔야 하는 재난 극복이 우선인 까닭이다. 문제는 우리다. 그들이 위기 때마다 결집, 연대하는 공동체 및 시민의식에 경탄만 할 게 아니라 ‘우리는 안전한가.’를 다시 묻고 챙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화(和·조화)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 재난대응 시스템의 산물임을 직시해야 한다. 거대한 자연의 힘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가 아닌,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라는 교훈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 국민의 행동에 대해 ‘인류정신의 진화’라고 평가했지만 그들도 속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고 있다. hkpark@seoul.co.kr
  • “시신 한 구라도 더 찾아내는 게 아직 남아있는 이유”

    “시신 한 구라도 더 찾아내는 게 아직 남아있는 이유”

    방사능 유출 공포가 확산되면서 일반인들은 물론 외국 구조대원들마저 서둘러 귀국하는 가운데 쓰나미가 휩쓸고 간 피해현장에 남아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긴급 구조단이다. 지난 12일부터 센다이에서 구조 활동을 벌여온 이들은 19일부터 니가타현으로 옮겨 2단계 구조 활동에 나선다. 18일 이동성(53) 긴급구조단장, 최종춘(44) 소방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지 구조 상황을 알아봤다. →센다이에서 구조대원들이 니가타현으로 철수하는데. -이 단장 19일부터 구조작업이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간다. 구조대원 105명 중 3분의1인 35명만 센다이에 남고, 나머지 70명은 니가타로 이동한다. 구조작업에서 복구작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타이완 구조대원은 서둘러 귀국했지만 최대한 오래 일본에 남아 이재민들의 재활까지 도울 생각이다. →현재까지 구조 활동은 어떻게 진행해 왔나. -최 소방장 미야기현 시아가마시 니하마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오전 6시에 현장에 와 오후 5시 야영 텐트로 돌아갈 때까지 일본 자위대가 1차로 수색을 마친 지역을 현지 경찰과 함께 돌고 있다. 대부분 출입이 완전히 통제돼 있어 일반인들을 만날 수 없지만 만나는 분들은 깊은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건넨다. →구조 작업 중 어려웠던 점은. -이 단장 구조 작업보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국내의 과도한 관심이 더욱 힘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우리들은 대원들의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작은 힘을 보탠다는 생각뿐이다. 우리를 영웅시하면 귀국하지 못한다. -최 소방장 쓰나미가 완전히 휩쓸고 지나가서 진흙이 10㎝씩 쌓여 있다. 걸어다니는 데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가모지구는 예전의 지형이나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수색하느라 힘이 배로 든다. →점심은 제때 챙기나. -최 소방장 줄만 당기면 데워지는 비상식량을 12일치 가져와 점심 때 먹고 아침에는 컵라면 등으로 때우고 있다. 어제(17일) 5일치를 더 공수해 왔다. →국내에서는 구조단 대원들을 많이 걱정한다. -최 소방장 매일 방사능 수치를 점검하고 있다. 0.2~0.3μ㏜가 나온다. 일상생활 수준이어서 계속 남기로 했다. 언제든 탈출할 수 있도록 보호복을 준비해 왔다. 보호복은 피폭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작업하려는 용도가 아니라 탈출용으로 입겠다는 것이다. 충분히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 임병선기자·도쿄 이종락특파원 bsnim@seoul.co.kr
  • “일본인들도 빠져나오는데… 방독마스크도 없이…” 애끓는 119대원의 아내들

    “일본인들도 빠져나오는데… 방독마스크도 없이…” 애끓는 119대원의 아내들

    동일본 지진 현장에 급파된 119중앙구조대원 임팔순 소방교(8급)의 부인 김미영(33)씨와 방경호 소방교의 부인 김보경(32)씨는 처음엔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했다. “남편이 탈없이 돌아오길 기도할 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만 했다. 그러나 18일 이들이 살고 있는 의정부시 민락동에서 어렵사리 만나본 두 사람은 속말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방사능 공포 때문에 제 나라 사람들도 앞다퉈 빠져나온다는 판에, 사지에 보낸 것 같아 미안해서 두 다리 펴고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간밤에 짧게 전화통화를 했어요. 센다이 지역에 내린 폭설로 베이스캠프 천막이 폭삭 주저앉았답니다. 열선으로 데워 먹는 비상식량조차 넉넉지 않은 눈치예요.” 행여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칠 것을 염려라도 하는 듯 전화선 너머의 남편들 목소리는 밝다고 했다. 그래도 “천막 캠프라 너무 추워 밤잠을 설친다.”는 말은 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임 소방교는 4년 전에, 방 소방교는 2년 전에 각각 지역구조대에서 중앙구조대로 소속을 옮겼다. 자신도 8년차 소방교인 미영씨는 “중앙구조대로 옮기는 사람들은 자원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면서 “대형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소방기술을 익히려는 일 욕심일 뿐 특별승진을 하는 것도, 보수가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외파견 구조대로 몇 차례나 남편을 떠나보냈어도 이번만큼 애가 많이 탄 적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1월 남편이 아이티 대지진 현장에 나가 한달 만에 돌아왔을 때도 그저 여진만 없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면 됐다.”는 보경씨는 “이번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공포 때문에 사고 없이 귀국해도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울 것 같다.”고 걱정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가끔씩 비치는 한국 구조대원들이 제대로 방독 마스크조차 끼지 않은 장면을 볼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두 사람은 센다이에 파견된 105명 대원들의 가족 모두가 똑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한국신속대응팀 미야기현서 교민 4명 첫 구조

    한국신속대응팀 미야기현서 교민 4명 첫 구조

    일본에 파견된 지 닷새 만에 한국 신속대응팀이 통신과 교통 두절로 고립돼 있던 교민 등 한국인 4명을 구조했다. 센다이총영사관에 파견된 정부 신속대응팀은 지난 16일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의 한 주택에서 6일간 고립돼 있던 교민 김영순(52·여)씨와 김씨의 두 언니, 형부 등 4명을 구해냈다. 지난 12일 파견된 이후 한국인 구조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구조된 김씨는 지난 11일 자신을 만나러 일본에 온 언니 점순(62)·영분(60)씨 및 형부 서원석(69)씨와 함께 집에서 점심을 먹다 급작스럽게 발생한 규모 9.0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갇혀 외부와 연락이 두절됐었다. 김씨 등은 모두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 등은 지진 발생 직후 근처 학교 건물로 대피해 1600여명의 일본인과 함께 구조대를 기다렸다. 임시 대피소로 쓰이던 학교도 쓰나미로 건물 2층까지 물이 차올랐고 외부와의 통신과 왕래가 두절됐다. 고립 3일째 일본 구조대를 만나 학교를 빠져나온 뒤 간신히 지인을 만나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외부와 연결된 것은 그로부터 이틀뒤인 15일. 어렵게 전화가 연결돼 지인에게 고립사실을 알렸고,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에 있던 조카가 신속대응팀에 신고하면서 극적으로 구조가 이뤄졌다. 센다이지역에는 120명의 정부 신속대응팀이 파견돼 교민 등 수색에 참여, 지금까지 한국 국적자와 조선적 동포 1명씩 2명의 희생자 신원을 확인했다. 외교부는 미야기현 주변에 거주하는 교민 등 70여명과 연락이 닿지 않아 소재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대피소 고령환자 27명 사망

    “학교 체육관에 깔린 다다미, 그 위에서 얇은 담요를 감고 기침을 그치지 않는 70~80대 노인 환자들. 새벽이면 영하 3~5도를 기록하는 쌀쌀한 날씨 속에 난방이라야 운동장만 한 체육관에 난방기 6개가 여기저기서 돌고 있을 뿐이다.” 빈약한 대피소 상황을 전하면서 추위와 대피 생활의 피로, 의사와 의료시설 부족으로 지진해일에서도 살아남았던 노약자들이 건강을 해쳐 잇따라 목숨을 잃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7일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대피소에 피난 온 환자 가운데 18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이와키시 대피소에 후쿠시마 현내 병원에서 옮겨진 128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이동 도중 숨진 2명을 비롯해 18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령자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기에 앞서 일시적으로 대피해 있었다. 신문은 또 이와테현에서 지난 16일 시립 제일중학교로 피난하던 80대 여성과 피난을 준비하던 미야기현 내 한 종합병원의 노인 입원환자 8명이 사망하는 등 지진 관련 사망자는 모두 27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대피소에는 간단한 의료 시설과 의사 4명이 있었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의 무리한 이동으로 인한 피로와 추위를 고령 환자들이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고베 대지진의 한 생존자는 “피곤과 추위에 지친 노약자들이 신선한 야채와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기 어려운 데다 영양 불균형으로 지병이 악화되거나 그에 따른 합병증이 생기기 쉽다.”고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올 동일본 지역의 3월은 초겨울 날씨로 쌀쌀한 편이다. 습기로 강한 한기가 스며들어 노약자들은 더욱 지내기 쉽지 않다. 17일 동일본 지역은 일본 수준에서는 한겨울 기온이었다. 모리오카 영하 5.9도, 시오가마 영하 4.2도, 센다이시 영하 2.7도, 소마시 영하 2.5도 등 이 지역 대부분이 영하권이었다. 일본 기상청은 추위는 18일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더 많은 고령 환자와 노약자들의 사망이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동일본 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역 후쿠시마현의 사토 유헤이 지사는 “원전 인근 거주민들을 위한 대피소가 마련됐지만 따뜻한 음식은 물론 연료, 의약품 등 기본적 생필품조차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모든 것이 부족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한·일 지식인의 아주 특별한 편지

    한·일 지식인의 아주 특별한 편지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거쳐 일본 도쿄대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분야는 근대 한·일 관계사. 이마니시 하지메는 일본 아오모리현 도호쿠 공업대학 교수다. 도호쿠 공대는 이번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센다이에 있다. 이마니시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구조역학과 지질구조 전문가다. 삼성물산 고문으로 있으면서 한국 건축물의 지질구조도 오래 연구했다. 이때 정 이사장과 친분을 쌓게 됐다. 2005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는 양국 최대 규모 교류행사인 한·일 축제한마당 운영위원장(2008년)도 맡았다. 창졸간에 덮친 대재앙 직후 두 사람이 황망히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국경과 지배·피지배 역사를 뛰어넘어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한·일 지식인의 우정과 인간애가 깃들어 있다. 그 내용을 공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3월 16일]  센다이의 이마니시 선생께  16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열어 보니 선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후딱 훑어보아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했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선생의 간결한 문장을 되씹어 읽으면서, 동북관동대진재(東北關東大震災)를 겪은 일본인의 심경과 자세에 대해 깊은 동정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일본이 미증유의 재난을 하루빨리 극복하고 훌륭하게 재건하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선생의 허락을 받지 않고 편지를 공개하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한국의 독자들에게 피해지의 현황과 당사자의 상황을 육성으로 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짧은 편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 앞에서도 의연하게 행동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군더더기 없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정재정  ========================================================================================    정재정 선생께  연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려를 끼쳤습니다.  이곳은 괜찮습니다, 처도 개도 집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제부터 개통했기 때문에 메일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가스와 수도는 안 됩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어떻게든 해 나가고 있습니다.  걱정을 끼치게 되었습니다만, 오늘 나토리시 유리아게하마와 센다이공항 가까이까지 걸어서 가봤는데, 95%의 목조 건물이 소멸되었습니다. 항상 들렀던 식당도 없었습니다.  쓰나미는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차가운 재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이라기보다는 담담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이 정직한 감상입니다.  이곳은 괜찮습니다.  우선 연락만으로 그칩니다.  3월 15일 이마니시 하지메   [3월 17일]   지난 11일 오후 저는 공무에 바쁜 관계로 일본에서 엄청난 지진이 발생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그 심각함을 알고 센다이에 계신 선생의 안부가 궁금하여 저와 아내가 몇 차례 전화를 했습니다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틀 만에 간신히 연락이 된 요코하마의 지인을 통해서도 선생의 안부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15일에 선생께 직접 메일을 보냈는데, 위와 같은 답신을 받았습니다. 편지를 읽고 나니 선생과 나눈 우정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선생은 토목기술, 특히 지질구조 전문가로서 한국의 유수 기업 고문 재직 당시 서울일본인회의 문화 부문 위원장을 맡아 한·일 교류협력에 앞장섰습니다. 저는 그때 일본인을 상대로 한·일 관계사를 강의했고, 가끔 역사의 현장을 찾아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선생과 함께 한·일 축제에 관한 책을 양국에서 동시 출판한 일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을 돕자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민지 지배의 비참한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까지도 가담하고 있습니다. 90여년 전 관동대진재 때의 조선인 학살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런 자세를 보인 것은 한·일 관계의 획기적 진화를 보여 주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저는 선생을 비롯한 일본인 수강생들에게 동북 지역의 한·일 관계사 유적지 답사를 안내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재난에 휩쓸린 그 지역이 하루빨리 복구되어 일본에서 저의 강의가 속개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부디 자중자애(自重自愛)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정재정
  • [이춘규 논설위원 도쿄 리포트] 자연에 맞섰던 日의 상징 ‘산리쿠의 굴’ 최후 맞다

    “미나미산리쿠 앞바다 최후의 굴입니다. 이번 3·11 대지진 직전에 채취한 것입니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산리쿠 해안에서는 더 이상 굴 양식을 할 수 없을 겁니다. 바다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양식을 할 수 없게 된 거죠. 너무 슬퍼요.” 지난 16일 늦은 밤 일본 국회의원들도 자주 찾는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오코노미야키(빈대떡과 유사) 음식점 주인이 우리나라 굴보다 배나 큰 싱싱한 굴을 구워 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식당도 지진 때 컵과 식기가 여럿 파손됐다고 했다. 이 굴은 지진의 파장을 상징한다. 주인의 말대로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는 쓰나미로 궤멸하다시피 했다. 인구 1만 7000명이 사는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차가운 눈이 무정하게 내린 17일 현재 인구의 반 정도인 8000명 이상이 행방불명된 상태다. 그 앞바다가 일본에서도 유명한 굴 산지다. 일본에서는 한겨울 서쪽 히로시마와 동북쪽 센다이에서 양식된 굴이 계절의 별미로 꼽힌다. 하지만 센다이 바로 북쪽 미나미산리쿠 앞바다에서 양식된 굴이 최고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설명이다. 그 별미가 이번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산리쿠 굴’은 일본인들이 자연에 도전해 온 상징이다. 일본인들은 유사 이래 끝없이 자연재해를 극복하려 했다. 어류 양식업은 세계 최고 수준.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태풍 등이 올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방조제와 각종 시설물을 축조했다. 와세다대의 한 교수는 익명을 전제로 “일본인들의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스트레스를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이런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시설을 축조하고 과학을 발달시켰다.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봐 왔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강한 기술력의 기본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처절하게 자연에 도전했다. 서기 800년대 이번 3·11 대지진과 유사한 규모의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도호쿠지방 육지까지 엄습했었다는 일부 내용이 구전되고 있다. 그때부터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방조제를 축조해 왔다고 설명한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도 쓰나미가 오는 것에 대해서도 구전을 남겼다. 당시는 몰랐던 칠레 연안 강진에 의한 쓰나미였다. 에도시대 이후 기록하기 시작했다. 방조제를 쌓고, 쓰나미 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운하를 팠다. 높은 쓰나미 피난 구조물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대지진은 시설물들을 무심하게 삼켜 버렸다. 이로 인해 자연에 대한 일본인들의 도전이 약화되고 자연에 일부 순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간의 도전이 재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 대책은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재해에 대한 일본인들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면 복구계획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17일 피해의 전모가 밝혀진 뒤에야 정확한 복구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지진 이전과 같은 형태로 복구시키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높이 10m에 길이 2㎞가 넘는 거대한 방조제를 축조하는 것이 자연재해를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지만 근본적 대책은 못 된다는 것. 따라서 해변에 밀집돼 있던 주택·사무실을 내륙으로 분산시켜 재건할 것으로 예상했다. 파괴된 철로는 상당수 재건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대지진은 지금까지 어떤 일본인도 상상하지 못했던 자연의 대역습이었다. 자연에 응전하는 인간의 대비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이번 쓰나미가 입증했다. 자연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일본인들은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도 일본 정부나 기업들이 새로운 차원에서 복구 문제, 도시계획 등을 강구할 것으로 봤다. “일본인들은 자연에서 배운 것은 반드시 현실에 반영한다. 정면으로 맞서는 방침을 바꿀 것이다. 역사적 전환점이다.”라고 했다. 일본인들이 정말 자연에 순응해 갈까. taei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일본, 스포츠로 희망의 물꼬 터라/김영중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일본, 스포츠로 희망의 물꼬 터라/김영중 체육부장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이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다. 스포츠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예정된 경기나 대회가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있다. 오는 21일 도쿄에서 개막될 피겨 세계선수권대회가 무산됐고, 일본 프로축구 J리그는 이달 경기를 모두 연기했다. 몬테네그로와 일본 축구대표팀이 25일 치르기로 한 친선경기도 취소됐다. 이런 가운데 일본프로야구 양대리그의 하나인 센트럴리그가 예정대로 25일 개막을 강행하기로 했다. 퍼시픽리그는 2주 뒤인 다음 달 12일 시작하기로 했다. 지진 피해가 덜 했던 센트럴리그와 달리 퍼시픽리그는 아직 정상적인 경기를 치르기 어렵다.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있는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홈구장이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아서다. 하늘에서 찍은 외신 사진을 보면 라구텐 홈구장인 크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구장은 포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게다가 지역의 많은 시민이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진 피해 상황도 갈수록 악화된다. 여진은 끊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는 폭발과 화재가 잇따라 ‘제2의 체르노빌 사태’가 우려된다. 동북부 지역은 전기가 부족, 제한 송전이 실시된다. 선수들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로 경기를 치를 형편이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라쿠텐이 하루빨리 야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과 하나가 됨은 재난 극복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야구기구(NPB) 가토 료조 커미셔너도 “선수들이 한시라도 빨리 플레이를 보여주는 게 피해지역에 용기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슬픔에 빠져 절망만 할 수 없다.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찾아야 한다. 스포츠가 그 끈의 한 가닥이 될 수 있다. 이를 엮으면 재난 극복의 원동력이 된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16년 전 ‘아랫동네’에서 일어난 기적이 데자뷔된다. 1995년 효고현 고베시는 리히터규모 7.3의 대지진을 겪었다. 박찬호와 이승엽이 함께 뛰는 오릭스의 당시 연고지가 고베다. 2004년 오사카로 연고지를 옮겼다. 고베는 6000여명의 시민이 지진에 희생됐다. 쓰나미에 휩쓸린 센다이보다는 상황은 낫지만 오릭스도 경기를 치를 여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민들은 프로야구가 제대로 열리기를 두손 모아 기원했다. 암담한 현실을 이겨낼 유일한 희망을 야구에서 본 것이다. 이런 고베 시민의 열정과 염원은 오릭스를 우승으로 이끄는 기적을 연출했다. 1989년 오사카에서 오릭스로 팀 이름이 바뀐 뒤 첫 우승이었다. 이듬해엔 일본 정상에까지 올랐다. 우리도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침체에 빠졌을 때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양말 투혼’을 보이면서 우승해 많은 용기를 얻지 않았는가. 지난해 6월 열린 남아공 월드컵축구대회 때는 칠레가 희망을 쐈다. 칠레는 12년 만에 출전한 월드컵에서 48년 만에 첫 승리를 거두며 16강까지 올랐다. 칠레는 같은 해 2월 규모 8.8의 강진에 흔들렸다. 칠레 대표팀은 한 남자가 폐허 더미 속에서 찾아낸 찢어진 국기를 내걸며 모든 힘을 쏟아부어 성과를 이뤘다. 칠레는 1960년 5월, 역대 가장 큰 규모인 규모 9.5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러나 칠레는 재난을 이기겠다는 의지 하나로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칠레는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2-4로 패배했지만 대단한 쾌거였다. 비탄에 빠진 칠레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라쿠텐도 경기를 치르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어제 고베의 기적이 일어났던 호모모토 필드 고베(옛 고베 스카이마크 스타디움)를 대체 홈구장으로 사용하겠다고 신청했다. 현재 오릭스의 보조구장이다. 라쿠텐이 어디서든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한다면 센다이 시민들은 야구를 통해 희망을 보고, 용기를 충전하고, 재기의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라쿠텐이라고 기적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재기를 노리는 김병현도 라쿠텐 유니폼을 입었다. ‘힘내자 센다이!’라는 힘찬 구호가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jeunesse@seoul.co.kr
  • “잃어버린 가족 꼭 찾아주세요” 벽보서 트위터까지 눈물 호소

    “잃어버린 가족 꼭 찾아주세요” 벽보서 트위터까지 눈물 호소

    동일본 대지진의 참극이 일주일째로 접어들면서 잃어버린 가족과 친지를 찾는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흘러넘치면서 일본 사회를 적시고 있다. ●대피소 게시판마다 전단 가득 지진 발생 엿새가 지난 16일 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집중된 미야기 현의 센다이·미나미산리쿠·게센누마 등지에 마련된 대피소에는 실종된 가족을 찾는 벽보와 전단이 게시판을 가득 메웠다. 전화와 통신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피해 지역에서 벽보와 생존자 명단은 가족을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됐다. 천우신조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수십곳의 대피소를 전전하며 벽에 붙은 생존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들은 흰 종이에 빨간색 펜으로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적은 뒤 그 아래에 찾는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자신의 신상 명세와 머물고 있는 대피소의 이름을 남겼다. 게센누마 시청 별관에 있는 대피소에서 만난 구마가이(57)씨는 “쓰나미 통에 잃어버린 아내와 손자가 혹시라도 대피소에 이름을 남겨 놨을까 싶어 찾아왔다.”면서 “수십개의 대피소를 모두 뒤져서라도 가족들은 꼭 찾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온라인 홈페이지와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실종자 가족들의 절절한 사연이 이어졌다. 구글 재팬이 지진 발생 직후 개설한 ‘일본 대지진 실종자 검색 사이트’에는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을 찾는 사연만도 수십개가 올라 있다. 한국에 있는 김정씨는 ‘센다이에 사는 57세 한국인 김영숙씨를 찾는다’는 글을 올리고 “153㎝의 키에 일본인 남편, 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비슷한 느낌의 사람이라도 좋으니 무슨 연락이든 꼭 부탁한다.”는 사연을 남겼다. 16일 오후 3시 현재 이 사이트에는 20만 5800개의 실종자 리스트가 올라온 상태다. ●한국 교민 찾는 사연도 수십개 SNS를 통해 가족을 찾은 기쁜 소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트위터에 “게센누마에 살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 모두가 연락이 안 된다.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연락 바란다.”라는 글을 남긴 일본의 유명 엔카 가수 하타케야마 미유키는 16일 오후 2시쯤 “아버지와 동생이 무사하다.”는 답장을 받았다. 미유키의 트윗은 ‘DATE FM’이라는 센다이 시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트위터로 재전송되면서 이 방송국 트위터를 팔로하는 수천명이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미유키는 결국 길이 막혀 갈 수도, 전화가 두절돼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던 가족의 소식을 사흘 만에 트위터를 통해 듣게 됐다. 미유키는 “가족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당장 달려가고 싶다.”면서 “트위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다시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게센누마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日 한겨울 한파로 전력대란 비상...사망자 속출

    열악한 의료설비와 강추위 등으로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현 등 주요 피해지역 대피소에 피난해 있던 피난민 중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다고 17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특히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전력수요가 급증하며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인근 대피소에 있던 병원 환자 18명이 이송 중 또는 이송 후에 사망했다. 의료설비가 없거나 피로,추위 등이 누적된 탓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 후쿠시마 현내 후타바 병원과 노인보건시설에 수용돼 있던 환자와 입소자 128명은 14일 밤 현립 이와키고요 고교에 버스로 이송되는 도중 2명이 숨졌으며 이후 16일까지 12명이 차례로 사망했다. 이 학교 체육관에는 대형 난방기 6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모포가 부족했고 의료설비나 상주하는 의사도 없었다. 이와테현 리쿠젠다카타시에서는 16일 시립 제1중학교에 대피해있던 80대 여성이 사망했으며 미야기현 다가조시의 센엔소고병원에서도 17일 아침 고령의 입원환자 8명이 숨졌다. 일본기상청에 따르면 도호쿠(東北) 지방은 16일부터 겨울형 기압배치가 되면서 강한 한기가 밀려와 17일에는 각 지역에서 한겨울 같은 추위를 보였다. 17일 새벽 모리오카시는 영하 5.9도를 기록했으며 시오가마시 영하 4.2도, 센다이시 영하 2.7도, 소마시 영하 2.5도 등이었다. 추위는 18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렇게 기온이 떨어지면서 전기공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은 이날 긴급성명을 내고 “추위 때문에 전력 수요가 급증, 오늘 저녁부터 밤에 걸쳐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국민과 산업계에 절전에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도쿄전력 관내의 전력공급량은 3350만㎾이지만 오전 중 최고 사용량이 3292만㎾에 달했다. 도쿄전력이 지역별 제한송전을 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전력여유가 빠듯해진 것은 갑자기 한파가 닥치면서 난방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은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달하는 저녁부터 밤 시간대에는 꼭 필요하지 않은 전열기를 끄는 등 한층 절전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열린세상] 대통령이 일본 위로 방문을/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

    [열린세상] 대통령이 일본 위로 방문을/이광형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

    이웃나라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화면에 거듭거듭 보이는 쓰나미 장면은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최악의 비극이다. 집과 자동차들이 마치 성냥갑처럼 물위에 떠다니고 사람과 배들이 휩쓸려 내려가는 광경을 보면서 영화 속의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떠오른 생각은 역시 일본인들은 대단하다는 점이다. 갑자기 닥친 대재앙이지만 평소 훈련했던 대로 질서를 지켜 대피했다. 거의 무정부 상태로 변했음에도 사회질서는 잘 지켜지고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미국 뉴올리언스와 2010년 대지진이 난 아이티에 강도, 약탈 사건이 많았던 사실과는 크게 대비된다. 이런 점을 보면 일본은 한국을 닮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권력이 없어졌던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동안에 강도나 도둑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은행에 있는 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역시 한국과 일본은 한 핏줄의 선량한 민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정서가 잠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과거사 때문이다. 일제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픈 과거가 있고 또한 일본이 성의껏 사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옆집이 잘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 세계를 통하여 볼 때 잘사는 이웃 나라를 좋아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의 한·일 관계를 보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한류열풍이 불어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국의 스마트폰이 잘 팔리기 시작했다. 한류가 그저 연예 쪽에서 그친 채 상품 구매는 별개로 보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일본인들이 가슴을 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제정치적으로 볼 때 일본은 항상 우리의 우방이다. 작년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끼고 가장 무역을 많이 하고 있는 중국도 알고 보니 우리 편이 아니었다.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럴 때 우리가 진정한 우정의 손을 내밀어 마음을 전달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여 어려움에 처한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줄 것을 제안한다. 센다이 등 주요 재난 지역을 방문하여 우리 국민의 구호물품을 전해주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진심어린 위로를 전하면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깊이 새겨질 것이다.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던 기간에 쓰촨성에서 대규모 지진이 났다. 대통령은 예정에 없는 일정으로 지진 현장을 방문하여 우리의 우정을 표한 바 있고, 그때 중국인들은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후 쓰촨성에서 박람회가 열렸을 때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갑자기 한국관을 방문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한국 대통령의 지진현장 방문 사실을 환기시키며, 자신의 한국관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사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국과 일본은 참으로 기구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근대사에서 일제 강점기의 뼈 아픈 상처는 아직도 가슴속에서 완전히 치유되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난 우리의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에게 자극을 주고 영향을 끼친 것도 일본이다. 만약 옆에 일본이 없었다면 우리의 경제성장은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많다. 많은 일본인들도 앞으로 거대한 중국 옆에 살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더욱 친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과거는 과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일본은 세계 3위 경제대국이고 우리의 제2 교역국이면서 국제 사회에서 우리를 후원하고 있는 우방이다. 이런 친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재난이 닥친 지금이 우리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신속하게 구조 인력을 파견한 것은 잘한 일이다. 더 나아가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을 방문하여 우리의 마음을 전하고 이웃에 친구가 있음을 보여주면 좋겠다. 친구를 원하면 내가 먼저 친구가 되라는 말이 지금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일본의 신속한 재난 복구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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