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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 열린사회 흔드는 적들

    플라톤도 나쁘고 마르크스도 나쁘다.철학자 칼 포퍼가 반세기 전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한 말이다.포퍼는 자유를 열린사회의 기준으로 삼아 인류사의 자유로운 발전을저해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심판대에 세웠다.그러나 포퍼의문제의식을 우리 사회로 가져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시 얘기로 접근해 보자.유럽의 도시가 갖는 특별한 의미는 광장에서 나온다.도시에는 성당이 있고 성당보다 낮은곳에 시청이 있으며,그 사이에는 넓은 광장이 조성돼 있다. 중요한 건물이나 역사적 조형물 역시 광장과 함께 있다.도시에서 광장의 존재는 휴식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데,특히 시민들 사이의 ‘회합’과 ‘의사소통’을 상징한다.따라서 광장은 시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열린도시의 증거로서 민주주의의 보루가 된다. 도시가 강을 끼고 발달하기 때문에 도시와 강의 유무상통역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런던과 템스강,파리와 센강처럼 도시와 강은 하나로 통합돼 있다.그러니 도시에서 강도 사람에게 열려 있다.독일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에는 개찰구도없고 검표원도 없다.자동발매기에서 기차표를 사서 자유롭게 이용하다가 집에 가면 된다.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지하철을 운영하는 것인데,지하철의 중심에 시민이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상황이 열린사회와 열린정치를 가능하게하는 것 아닐까. 이 잣대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자.우리에게는 담벼락으로둘러싸인 폐쇄적인 휴식공간이나 놀이공원은 있을지언정 개방된 시민적 광장은 없다.도시생활에서 원초적인 휴식이나놀이는 허용하되,시민적 회합과 의사소통은 봉쇄당하고 있는 것이다.강 역시 도시를 가로지르기는 하지만 강과 도시는 분리돼 시민적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지하철 이용시 개찰구 차단장치와 씨름해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도시는 시민을 배제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시민은 도시의 중심이 아니며,도시는 시민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도시가 공간적으로만 닫혀 있는 것이 아니다.도시의 내부를 들여다보자.모든 권력기관들이 시민들의 접근을가로막고 있지 않는가.국회,정부청사,대법원,대검찰청 모두가 닫혀 있으며 “접근하면 발포한다”고 위압하는 자세다. 청와대의 폐쇄성은 닫힌사회의 압권이다.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은 권력기관 앞에서 비굴한 민원인일 뿐이다.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치와 경제와 교육 등 사회의 모든 곳이 닫혀 있다.결국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닫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닫힌사회로 전락한 것은 플라톤이나 마르크스 때문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개발독재의 경험 때문이다.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극한적인 수탈과 배제의 통치를 유산으로 물려주었다.해방 후에는 식민주의를 승계한 자들이 극단적 반공주의와 개발독재를 통해 식민주의의 경험을 재생산했다.이몰상식한 상황이 국민들에게 이기주의와 기회주의,가족주의와 지역주의를 생존의 법칙으로 가르쳤다.지배집단이 시민배제적 통치구조를 강제하고 국민들은 스스로 그 속에 숨어버린 것이다. 21세기 우리 사회의 화두는 민주화와 개혁이다.개혁의 원리는 간단한데,그것은 한마디로 닫혀 있는 모든 것을 국민들 앞에 활짝 여는 것이다.개혁은 청와대와 행정부와 국회를 비롯한 국가 기구의 문호를 개방하고 운영을공개하는데서 시작된다. 정치·경제·교육도 마찬가지다.그렇게 해야 독점과 전횡과 부패가 사라지면서 소외와 불만과 갈등도 사라진다.그과정에서 시민적 참여가 확대되면서 시민 중심의 재구조화가 이뤄질 수 있다.그것이 민주주의다. 포퍼가 우리 사회를 본다면 어떻게 말할까? 개혁을 방해하는 자들을 열린사회의 최대 적으로 지목할 것이다.극단적반공주의에 사로잡혀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자들과 수구보수의 논리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또 있다.시민운동을 음모론으로 몰아 시세차익을 노리는자,언론자유와 탈세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식한 세도(稅盜),지역주의에 빌붙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정치적 ‘아편쟁이들’도 모두 열린사회의 적이다.당연히 포퍼는 우리가 이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정 대 화 상지대교수·정치학
  • [대한광장] ‘기메박물관’ 재단장의 교훈

    유럽 최대 규모의 아시아예술박물관인 ‘기메박물관’이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5년동안의 보수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한국을 비롯해 캄보디아 인도 중국 일본 등 14개국의 수준 높은 옛 문화가 다시 파리 센강변에 그 자취를 뽐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우리를 뿌듯하게 하는 것은 한국 전시관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점이다.한국관이 1곳에서 3곳으로 늘었고 전시공간도 이전보다 5배나확장된 108평이나 된다.박물관이 갖고 있는 1,000점의 한국 문화유산중 346점을 우선 전시하고 나머지 작품도 교대로 선보인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박물관에 들어서면 양쪽에 17세기 조선시대의 ‘묘지기 석상’이 관람객들을 맞는다는 사실이다.마치 박물관의수호신인양 늠름하게 자리잡고 있다.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석상하나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아직 공간이 좁은 한국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심어주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을 준다.보수 이전에는 그 자리에크메르의 석불상들이 서 있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우리문화의 입지가 갈수록 커지고 있음이살갗에 와 닿는다.가볍게 보고 스쳐갈 수있는 석상 하나가 ‘문화 대사관’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문화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눈부신 변화는 한국 하면 중국의 아류거나 일본의 식민지 정도로 인식하는 기존의 편견을 불식하기에 충분할 것이다.특히 고려청자는 이웃에 있는 중국관의 송나라 자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신비로운 비색과 독특한 제조기법,섬세한 선의 곡선 등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잡아끈다.여기에는 물론 문화전파 경로를 배려한 박물관 측의전시관 배치도 한몫했다. 전시관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중국 문물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되새기게끔 해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고려시대 회화의 특징인 불교 회화 부문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한 작품이 두점이나 걸린 것을 보고 6년전 서울 호암갤러리고려불화전시회에서 느낀 벅찬 감동을 파리에서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금불상, 신라 토기,조선시대 김홍도의 풍속화와 8폭 병풍에담긴 ‘평안 감사 행차도’, 조선시대 왕족 이청의 ‘죽도(竹圖)’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번 한국관 확장은 우리문화의 독창성과 특수성을 프랑스 혹은 유럽,나아가 세계 만방에 알리는 첨병 구실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한국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때 이런 문화적 자긍심이 정서적으로 따뜻한 위로를 가져 줄 것이다.아울러 해외 교민들도 자부심을 갖고 떠나온 조국에 대한 사랑을 새록새록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큰 변화의 이면에는 프랑스 최초의 주한외교관인 플랑시,1960년대 한국대사를 지낸 상바르 등 소장품을 기증한 프랑스인들의 노력도 숨어 있다.그리고 부족한 인원과 재정 등 열악한 조건에서도 묵묵히 한국문화를 알리려고 노력해 온 한국문화원의 ‘20년 땀’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1등 공신이라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재정적인뒷받침과 지속적인 관심이다.지난해 10월 대영박물관의 한국실 개설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인 기메박물관 사례는 한국의 문화정책 방향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문화분야는 그 효과를 길게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메박물관 재단장에서 확인하게되는 것이다.“박물관은 미래를 향한 기억이다”라는 말이 있듯 기메박물관에 대한 지혜로운 투자가 앞으로 거둘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올해 문화부 예산이 전체 예산의 1%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문화예산은 적은 편이 아니다. 다만 그동안의 문제는 그 혜택이 소수에게 돌아가거나 당장 돈이 될것 같은 분야에 치중해온 데 있다고 할 것이다.이제부터라도 정책 방향을 박물관이나 도서관 등 인프라 구축에 비중을 늘려서 국민 대부분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그것이 문화민주화를 앞당기는 길이 아닐까. 이병주 파리7대학 한국학과 교수
  • 부시 NMD 왜 밀어붙이나

    부시 행정부가 러시아와 중국 등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가미사일방어망(NMD) 체제를 강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미국을 겨냥한 핵과 미사일의 위협이 이미 위험수위에 달했기 때문일까.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의 새 행정부가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대외정책을 추구하려 한다고 분석한다.“인권유린이 있는 곳에 미국이 있다”는 클린턴 행정부식 발상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 관계된다면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6일 미국의 ‘힘과 권위’를 대외정책의 기준으로 삼았다.그동안 그는 클린턴 행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수차례의문을 표시해 왔다.잠재적인 적으로부터 미국과 우방을 보호할 적극적 대책이 없다 보니 ‘전략적 경쟁자’들에게 질질 끌려다녔다고본다.대중국 정책이나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에 무기력 증세를 보였고유럽과 남미,아시아 등지에서도 입지가 계속 줄고 있다는 것. 부시 안보팀은 러시아와의 전략무기감축협정 등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정체하고 있을 때 유럽과 제3세계의 군사력은 상대적으로 확충됐다고 여긴다.미국은 러시아와의 군비경쟁보다 과거 소련의 핵기술이이란과 같은 테러지원국에 유출되는 것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북한의 미사일 개발능력을 의심하는 것도 세계 군사력의 ‘평준화 현상’을 우려해서다. 옛 소련은 붕괴했고 국제정세 또한 중국을 중심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전쟁 수행 방법도 새롭게 고려해야 한다는 게 부시 안보팀의 생각이다.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핵 보유국’으로 러시아가 아닌 중국을 지목할 정도다.72년 소련과 맺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에도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미국은 NMD 추진의 명분으로 ‘최소한의 방어력’,‘군사력의 우위’라는 표현을 쓰지만 과거처럼 소모적인 군비경쟁에 매달리지 않으려면 1%의 잠재적 위협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기조다.부시 대통령도“스스로 의제를 제시하지 않으면 해외의 적이나 남들이 위기를 제기할 것”라고 밝혔다. NMD 추진이 군사력 증강만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우방의 평화 증진을 내세워 아시아,중동,유럽 등에서 미국의입지를 강화하고 러시아와 중국의 ‘신(新)부국강병책’도 견제하려는 다목적용이다.여기에는 부시 대통령의 미국내 지지기반인 군수산업과 석유업체들에 대한배려도 깔려 있다.군 장비의 현대화에만 450억달러가 소요된다.최소한 600억달러가 들어갈 NMD 계획은 군수산업체에게는 엄청난 수익을안겨줄 ‘꿈의 프로젝트’다. 백문일기자 mip@. * “”ABM어기면 모든협정 파기”” .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국가미사일방어망(NMD) 강행 천명에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미-러간 외교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6일 미국의 NMD 구상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또 미국이 72년 옛 소련과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을 어긴다면 모든 군비통제협정을 파기하겠다고 경고하면서 미국이 ABM협정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이날 부시 행정부가 ‘힘의 외교’ 원칙에 따라 NMD 강행 의사를 표명하면서 ABM협정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데 따른 것.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날 상원의 인준청문회에서 ABM협정을‘구시대의 역사’라고 표현하면서 “러시아와의 핵협상은 미국의주요 과제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앞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ABM협정의 수정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같은 미국의 움직임은 나토의 확대와 함께 러시아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러시아는 미국의 강대한 군사력이 국제사회의 ‘힘의 균형’을 깨고 국가간에 지나친 군비경쟁을 유발한다고판단,이를 우려하고 있다. 올레그 체르노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서기는 최근 한 잡지와의 회견에서 “NMD 구축은 전세계의 안보시스템을 와해시켜 미국을 포함한모든 국가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미국이 NMD 구축을 강행하면 러시아는 안보 확보를 위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며 앞으로 10년간 군비지출을 2배로 늘려 국내총생산(GDP)의 5%인 900억파운드(180조원)의 예산을 배정할 것이라고 푸틴 대통령의 정치담당보좌관의 웹사이트를 인용,전했다. 이동미기자 eyes@. *中 “”평화 저해”” 기본입장.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정부는 26일 국가미사일방어망(NMD) 구축 계획을 추진하는 등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힘의 외교’ 천명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중국 언론들도 부시 행정부의 ‘힘의 외교시대 선언’에 관한 간략한 사실 보도만 하고 있을 뿐 구체적 논평은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미국의 NMD 구축 계획이 세계평화와 안정을 저해한다고 보고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이다.미국의 NMD 구축 계획이미사일 개발을 확산시키는 등 각국의 군비경쟁을 촉발하는데다,21세기 세계 평화체제의 전략적 균형을 깨뜨리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에 따라 미 정부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을 준수하도록 촉구하고 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아·태 지역의 군사동맹을 확대함으로써 NMD 구축 계획을 철회하도록 압박할 방침이다. 궈센강(郭憲綱)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미주연구실 부주임은 “부시미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내세워 세계 평화체제를 깨뜨릴수 있는 NMD구축 계획을 추진한다면 중국 정부는 유엔총회 등 각종 국제회의나미국과의 외교·군사회담 등을 통해 철회를 종용하는 한편,국가 보위를 위한 군사적 전략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미국의 NMD 구축 계획에 대한 강력한 반대입장을 대내외에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중 러시아를 방문,NMD 구축 추진 등의 국제적 현안에 대해 러시아와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대(對)중국 러시아제 무기판매·중국 우주개발계획 지원 등의 조항을 새로 포함시키는 등 1950년대 옛 소련 시절체결한 ‘중·소 우호동맹 상호 원조조약’을 시대조류에 맞게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khkim@
  • 장 자크 쉴 佛 공쿠르상 수상

    [파리 AFP 연합] 작가 장 자크 쉴(59)이 30일 소설 ‘잉그리트 카방’으로 프랑스 최고문학상인 공쿠르 문학상을 수상했다. 코드디부아르 태생의 작가 아마두 쿠루마(72)도 ‘알라는 의무가 없다’는 작품으로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 르노도상을 받았다. 쉴의 공쿠르상 수상작은 자신의 여자친구인 독일 여배우이자 카바레여가수인 잉그리트 카방의 삶을 그려냈다. 쉴은 파리 센강 주변의 출판가에 있는 카페 ‘플로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상은 한 작가에게 준 것이라기 보다 한 여성의 나약함과 상처받기 쉬움을 표현한 정신상태에 수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쉴과 쿠루마는 올해 공쿠르상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여 심사위원들의 6차례에 걸친 투표 끝에 4대3의 표차로 쉴이 상을 받았다. ‘잉그리트 카방’은 72년 ‘장미 먼지’와 76년 ‘텔렉스 번호 1번’에 이은 쉴의 3번째 작품이다.
  • ‘마이웨이’작곡자 질 티보 타계

    프랭크 시나트라의 세계적인 히트곡 ‘마이 웨이’의 공동 작곡자인 프랑스출신의 질 티보가 지난 3일 파리 교외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프랑스 언론들이8일 보도했다.향년 73세. 티보가 1967년 작곡한 ‘콤 다비튀드(평소와 같이)’란 곡을 영어로 옮긴‘마이 웨이’는 프랭크 시나트라,니나 시몬,섹스피스톨 등 유명 가수들이불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낸 프랑스 10대곡 가운데하나다.예술가와 학생들이 모여 살던 파리 센강 좌안 지하술집 등지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며 가난한 음악가 생활을 시작했던 티보는 유명한 록가수 조니할리데이,실비 바르탕,미셸 사르두 등이 부른 노래의 가사를 쓰기도 했다. 파리 AFP 연합
  • [대한광장] 물러서야 문이 열린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 여행중 세군데 지하시설을 둘러보았다.대부분의 관광명소는 지상이나 산 언덕에 자리하게 마련이지만 지하시설들을 둘러보며 느낀 점이 많았다.세 곳은 지하철과 카타콤베,그리고 하수도 정화시설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시민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으며 도쿄의 지하철에 버금간다고 해서 자랑이 대단하다.카타콤베는 지하납골당이다.파리개발이 한창일 때 근교에 있던 무덤들을 일제히 정리하면서 그 유골들을 지하에 모아둔 곳이 카타콤베이다.수를 셀수 없는 유골들이 즐비하게 진열된꼬불꼬불한 터널을 지나느라면 오싹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필자를 감동시킨 것은 하수도를 정화하는 지하시설이었다.파리 시민이 배설하고 버린 오수들이 다양한 여과과정을 거쳐 정수되도록 만든 지하시설은 가히 놀랄 지경이었다.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센강을 살렸고 자기네 환경을 살리고 있었다.더 놀랄 일은 하수도정화시설을 일반인에게 공개해 구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네들은 냄새나는 치부를 관광거리로내놓고 있는 것이다.프랑스의 하수도라고 해서 향수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네 하수도라고 해서 악취만 풍기는 것도 아니다.본래 하수도란 선진국,후진국 가릴 것 없이똑같다.이유는 먹고 마시고 내미는 배설물이 같기 때문이다.그런데 저 사람들은 관광명소로 하수도를 드러내고,우리는 감추고 숨겨야 한다.그것은 똑같은 배설물이지만 처리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공장폐수나 배설된 오수를 남몰래 강물에 버리는 사람들로서는 하수도 정화시설 공개란 꿈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파리에서 본 세군데 지하시설은 입구와 출구가 있었다.마치 탄광의 갱도처럼 어둡고 긴 터널속에도 순환과 소통의 질서가 있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네 현실은 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터지는 입구는 있어도 헤쳐나갈 출구가없다.아니 입·출구가 다 막힌 동굴과도 같다.거기서 저마다 아우성이고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가 하면 육박전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한마디로 이만저만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유럽의 어느 극장에서 코미디가 공연되고 있었다.어릿광대로 분장한 코미디언이 무대를 주름잡으며 신나는 모노 코미디를 엮어내고 있었다.극장 안을가득 메운 관객들은 배꼽을 잡고 웃어대며 즐기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무대 뒤편에서 전기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했다.놀란 감독이 무대에서 공연중인광대에게 관객들이 놀라서 당황하지 않도록 화재상황을 알리고 대피하도록조치하라는 쪽지를 전했다. 코미디언은 관객들이 놀라지 않도록 기지를 발휘해 화재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관객여러분,놀라지 마십시오.무대 뒤편에서 전기누전으로 불이 났습니다.이건 절대로 코미디가 아닙니다.빨리,그러나 침착하게 서둘러 대피해주십시오.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라고.그러나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어대며박수를 쳤다.그러는 사이 불길이 무대 위로 옮겨붙기 시작하자 코미디언은“여러분 이 불길을 보십시오.이것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빨리 대피해야 삽니다”라고 소리를 쳤지만 관객들은 실감나게 불까지 지피며 연기한다고 떠들어댔다.그러는 사이 불은 극장 안으로 옮겨붙기 시작했고 사태의 심각성을발견한 관객들은출구로 몰려들었다.누군가가 소리쳤다.“여러분 한 걸음씩만 물러서십시오.그래야 문이 열립니다”.그러나 그 누구도 뒤로 물러서는사람은 없었고 그 탓으로 대형참사로 이어졌다는 얘기…. 그렇다.지금 우리는 출구가 막혔다.그리고 그 출구는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야 열리도록 설계돼 있다.그런데 아무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돌진과 공격만이 최상의 병법인양 덤비고 떠들기만을 반복하고 있다.물러서야 문이 열린다는 원초적 진리를 왜 모르는지 안타깝고 답답하다.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
  • [문명자 회고록 내가 본 朴正熙와 金大中](1)

    대한매일은 미국 US 아시안뉴스 서비스 주필인 문명자씨의 미공개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을 단독입수,내용 가운데 일부를 발췌하여 연재합니다.문씨는 지난 73년 ‘김대중납치사건’을 국내에 보도한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에 정치망명을 선언한 이후 30여 년간 미국서 활동해온 현역언론인입니다.그동안 그는 국내에서 접할 수 없는 한국관련 고급정보를 목격하고 기록해 왔으며 이번 회고록은 이같은 내용들을 토대로 한 것 입니다.회고록에는 한국현대사의 ‘미스터리’는 물론 한·미관계의 이면사를 처음 공개한 것도 상당수 포함돼있어 ‘역사적 기록’으로서도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73년 4월 15일 대만대학에 박사학위를 받으러 간다며 한국을 빠져나온 전중앙정보부장 김형욱(金炯旭)이 며칠후 미국에 나타났다.그것은 영락없는 도망길이었다. 5·16 쿠데타의 주동인물중 하나였던 그는 그후 출세가도를 달렸다.63년 5월 제4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한 김형욱은 박정희를 위해 별명처럼 ‘곰’같은 충성심을 발휘하는 한편 자기자신을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치부를 했다.이같은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망온 이유는 자명했다.수십년간 충성해온 수하들을 하루 아침에 내치고 잡아넣는 박정희의 냉혹성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김형욱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71년 공화당 전국구 의원 신분으로 남미를 방문하고 뉴욕에 들렀을 때였다.그때 나는 MBC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유엔 취재차 뉴욕에 있다가 당시 컬럼비아대학 연수생으로 와 있던 동아일보 기자 이웅희(李雄熙·현 무소속 국회의원)와 함께 김형욱과 뉴욕의 한 한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망온 이후 나는 그와 수 차례 만난 적이 있다.73년 11월 내가 미국에 정치망명을 선언한 후 그는 내게 “문 여사,용감한 결심을존경합니다.우리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입니다”라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그는 내가 망명을 선언한 후 부쩍 자주 전화를 걸어왔는데 “김대중 납치범 명단을 내가 다 가지고 있는데 때가 되면 가르쳐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77년 1월 김형욱은박 정권의 미국 의회 부정로비사건 조사를 위해 구성된프레이저위원회에 증인으로 채택되어 있는 상태에서 아들과 함께 유럽여행을한 적이 있다. 그는 뉴욕 케네디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낯뜨거운 사건이 발생했다.김형욱이 달러를 밀반입하다가 세관원에게 걸린 것이다.내가 그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유태인 친구의 제보 때문이었다. 세관원은 오리걸음(덕 워킹)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양남자가 뭔가 숨긴 것이틀림없다고 확신,김형욱을 멈춰 세웠다.꼭 아편쟁이같이 생겨 마약밀수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헤이,유,스탑”(여보,좀 멈춰요). “미?”(나요?). “예스,유”(예,당신말이오). 더욱 한심한 일은 세관원이 그를 불러 세워 몸수색을 하려 하자 김형욱은 한국식으로 세관원을 협박했다고 한다.“내 몸을 수색해서 아무것도 안나오면너 그냥 두지 않겠다”.“오케이”.세관원은 보안관에게 명령했다. “데려가 발가벗겨”. 보안관이 김형욱을 방으로 데려가 발가벗겼는데 그는 무려 7만5,000달러의돈뭉치를 다리에 붕대로 둘둘 감고 그 위에 여자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79년 10월 7일 김형욱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후 나는 교토통신의 요코가와 워싱턴특파원과 함께 처음으로 뉴저지에 있는 그의 저택을 방문한 일이있다.그의 부인 신영순(申英順·在美)에게 주소를 물어 찾아간 그의 집은 웬만한 미국 부호의 집 못지않게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실종 직전 김형욱은 이른바 ‘회고록’ 출판문제로 박 정권과 막판 거래를하고 있었다.박 정권은 김형욱에게 “회고록을 출간하지 않는 대가로 500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하고 이미 100만∼150만 달러를 먼저 지불했다고 한다.김형욱은 그 나머지 돈을 받으러 파리에 갔다가 결국 실종되고 만 것이다. 김형욱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우선 중앙정보부가 파리에 온 김형욱을 납치,살해한 후 센강에 버렸다는 설도 있었고,또 산 채로 짐짝처럼 포장해 KAL기에 실어 서울로 데려갔다는 설도 있다. 그 무렵 우리 사무실에 프랑스어로 된 익명의 편지가 날아들었는데 그 내용은 김형욱이 KAL기 짐칸에실려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의 한 항공사 화물부에 문의를 해보았다.“사람을 짐짝처럼 싸서운송하는 것이 가능합니까?”.“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곤란하고 온도·습도가 낮아 사람이 짐칸에서 파리∼서울간 15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래저래 취재는 벽에 부딪쳤고 나는 김형욱의 사인규명을 거의 포기했다. 그런데 80년대초 나는 뜻밖의 루트를 통해 김형욱의 사인에 대한 상당히 정확한 정보에 접하게 되었다.발설자는 정일권(丁一權) 전 국무총리였다.그는유럽을 여행하던 중 파리에서 자신이 신뢰하는 모 인사(본인의 요청으로 신분을 밝힐 수 없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잔인하다 잔인하다 했지만 박정희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잘못했다고비는 김형욱이를 자동차에 실어 그대로 폐차장에 밀어넣어 버렸다네”그의 말에 따르면, 산 채로 서울로 납치해간 김형욱을 차지철이 경복궁에서청와대로 이어지는 지하벙커를 통해 박정희 앞에 대령했는데 김형욱이 박정희에게 “잘못했습니다.죽여주십시오”하고 빌었다는것이다. 정일권의 말대로라면 김형욱은 폐차장 압착기 아래서 최후를 맞았다는 얘기가 된다.정일권의 입장에서 보면 김형욱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던 ‘이북파 최측근’이었으니 분개할만도 했을 것이다. 나는 이같은 사실을 정일권 본인을 통해 거듭 확인한 바 있다.지난 8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하얏트호텔에서 정일권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김형욱이가 서울로 잡혀와서 비참하게 죽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으시다는데 사실인가요?”“예,내가 그런 애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그것은 사실입니다”. 정일권은 말년에 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94년 타계했는데 내가 그를 본 것은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文明子씨 일문일답 ■회고록을 출판하게 된 동기는. 역사를 위한 기록이다.한국사회는 가치의 혼돈시대를 맞고 있다.이대로 한세기만 지나면 한국사회에는 박정희를 미화하는 기록만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의 권부를 가까이서 취재하면서 나는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사실들을 많이 보고 들었다.우리 후손들의 역사인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바람으로 그동안 보고 들은 박정희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회고록의 제목은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인데 박정희 전대통령에 관한 부분이 70% 정도를 차지하는 있는 것 같은데…. 61년 5·16쿠데타 때부터 시작해 82년 김대중씨가 사형수에서 사면을 받고워싱턴에 왔을 때까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박정희씨는 이미 관 뚜껑에 못을박은 사람이고 김대중씨는 아직 활동하는 현역 정치인이 아닌가. 김대중씨에대한 기록은 또다른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문 주필의 박정희 전대통령 비판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관적이라는 지적이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박정희에 대해서 나는 한 언론인으로서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그러나독자들은 나의 책에서 사실만을 보면 된다.1961년 4월이후 현재까지 워싱턴에서 벌어진 한국정치 관련사건들을 사실에 입각해 기록했다.사실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문 주필의 회고록에는 특정인들의 실명이 거침없이 거론되고 있는데…내가 실명을 거론한인물들은 한국정치사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다.그들은 공직에 취임함으로써 이미 역사의 심판대 위에 스스로 올라선것이다. 나는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언론의 익명문화다.육하원칙의 가장 첫번째 요소가 ‘누가’이지 않은가.한국의 언론인들은 혈연·지연·학연의 인간관계 속에 깊이 편입돼 있어 실명을 거론하지 못한다. 퇴직후에도 그 인간관계 속에서 살길을 찾아나가야 하므로 ‘익명의 문화’는 극복되지 않는다.내 경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사회에서 떨어져 40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다. ■그동안 ‘반한인사’ 또는 ‘친북인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이에대한 본인의 견해는? 유신정권때인 70년대까지는 ‘반한인사’로 불렸는데 80년대말 남북 고위급회담이 본격화된 후 북한취재에 나서면서 ‘친북인사’로 호칭이 바뀌었다. ‘반한인사’,‘친북인사’란 중앙정보부가 만들어낸 용어로 전혀 타당하지않다.굳이 말하자면 ‘반박정희 인사’나 ‘반유신인사’라고해야 옳다.‘친북’도 그렇다.남북은 같은 민족이다.서로가 ‘친북’도 하고 ‘친남’도해야 한다.‘친미’나 ‘친일’,‘친중’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94년 김일성 주석 사망후 ‘100일설’부터 ‘3년설’까지 북한붕괴론이 대단했다.내가북한에 가보고 와서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고 했더니‘친북인사’라고 했다. 한반도 남북에 사는 사람들은 분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보는 시야도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스스로 외눈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두 눈으로 보는 사람이 편파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운현기자] -文明子씨는 인가 문명자(文明子·70)씨는 38년째 미국 권부의 상징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 재미교포 언론인이다.73년 11월 당시 보도금지 사항인 ‘김대중납치사건’을 보도한 후 중앙정보부의 체포위협을 피해 미국에 ‘정치망명’을한 전력으로 그동안 국내에선 그의 활동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80년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초청으로 미국 여기자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덩샤오핑을 인터뷰했으며 90년 남북고위급회담 이후방북취재를 시작한이후 92,94년 두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을 인터뷰했다. 30년 대구 출생인 문씨는 숙명여고 졸업후 연세대 영문학과 1학년 재학중 6·25를 맞아 피란지 부산에서 일본으로 유학,메이지대 경제학부·와세다대국제법 대학원을 졸업했다. 61년 조선일보 워싱턴특파원을 시작으로 동아일보,경향신문,MBC 워싱턴특파원을 역임한 그는 73년 미국에 정치망명한 후 미국인 동료기자들과 함께 US아시안뉴스 서비스(통신사)를 설립,국제정치담당 주필로 일하고 있다. 동양통신 초대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남편 최동현(崔潼鉉)씨와 사이에 1남 1녀.그의 미국이름 주리 문(Julie Moon)은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가 지어준 것이다. [정운현기자]
  •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 20년만의 귀국 인터뷰

    홍세화(52)씨에게 서울은 인간의 정겨운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 낯선 도시로 다가왔다.파리에서 20년간 이방인 생활을 하다 14일 잠시 서울에 온 홍씨는 인간적인 정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동숭동의 한 식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항에서 들어오며 서울이 너무 많이 변해 얼떨떨했다.거리도 잘 정돈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파트숲과 한강을 보며 시멘트문화의 삭막한 도시로 변한 서울 풍경이 안타까웠다.아파트숲은 자연과 인간과의 융화를 가로막는 장벽처럼 느껴졌다.한강은 파리의 센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큰 소중한 강으로 멋있게 꾸밀 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서울의 이러한 모습은 철학의 빈곤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홍씨는 지난 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그동안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해왔다.지난 95년 자전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을 내우리나라에 그 존재를 알렸다.최근에는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한겨레신문사)를 냈다. 그는공항에서 아버지 홍승관(80)씨등 가족과 유홍준 교수등 지인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서울에 온 그는 가장 먼저 대학로를 찾았다. 홍씨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많은 실업자나 거지들을 보며 사회보장의 미흡함을 느꼈다.프랑스에서는 1930년대 자전거 타고 바캉스를 가던 시절부터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자동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는 오늘에도 사회보장이 제대로 안돼 있는 것이 안타깝다.분단이후 사회정의도 안보에 눌리고 경제제일주의에 밀려났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에서의 택시운전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내몸을 움직여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그 당시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는데 택시운전은 나를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게 했다.그는 88년 4월부터 2년4개월간 택시운전을 했다.후배의 권유로 택시운전을 그만둔 그는 지난해까지 한국의상실 프랑스 지사장으로 일했다.지금은 글쓰는 것 외에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그는 “한국의 산과 들 등 자연을 가장 보고 싶었다.보고 싶은 사람도 굉장히 많았으며한 사람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원망하고 싶은 사람도 많았지만 지금은 다 잊었다는 그의 말에는 자신이 강조해온 관용의 자세가 엿보였다. “영구귀국할 것이다.나이가 들면 누구나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겠는가.파리의 생활은 ‘나 있는 곳에 우리가 없는 쓸쓸한 이방인의 삶’이다.”그의 부인도 파리생활은 적막한 절간 생활과 같다고 말했다.홍씨는 그러나 “당장 돌아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파리에서 글도 쓰고 한반도를 바라보며 공부도 더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정권과 과거 정권과의 근원적인 차이는 극우집단이정권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고 말했다.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평가에는 부정적이다.“박정희를 재평가하려는 것은 철학의 빈곤때문이다.땀흘려 일한 사람이 누군데 경제발전을 박정희 한 사람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론은 이미 그 전정권에서 계획이 다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과 지식인을 강하게 비판했다.“한국의 정치 지도층이나공부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책무 의식이 너무 부족하다.”중도좌파의 감성적 사회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는 가장 힘겨운 때는 80년대 초 전두환정권이 등장했을 때였다고 말했다.“한국사회에 희망이 없어 보였다.” 홍씨는 “한국에 돌아오면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싶다.그리고 사회진보와 자아실현을 위해 고민하는 젊은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그들에게 사회적 책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출판기념회,강연 등바쁜 일정을 마치고 7월7일 프랑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창순기자 cslee@
  • 한강에 문화의 다리를/김석철 아키반 대표·건축가(서울광장)

    1900년 한강철교가 들어서면서 500년동안 사대문안에 머무르던 서울의 도시확대가 시작되었다.서울의 도시확대는 당연히 한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했으나 일제하에는 식민도시로서 도시성장이 왜곡되어 한강이 도시외곽이 되고 해방후에는 한강이 바다에 닿지 못하는 분단도시가 되어 한강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도시구역의 창출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강에 다리가 들어선 1900년,인구 20만 미만이었던 도시가 100년만에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강북에 5백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거대 도시가 되었으나 아직 한강은 서울의 중심공간이지 못하고 넘어야할 강으로 남아있다.1965년 양화대교가 선 이후 지난 30년사이 한강에 20개 가까운 다리가 들어섰고 지금도 새로운 다리가 공사중이고 설계중이다. ○차량전용 반인도적 다리 현재 한강의 대규모 교량만도 20여개가 넘으며 한강다리의 길이는 대략 1∼1.5㎞정도고 잠수교 위의 반포대교 같은 복층교나 지하철교를 겸하고 있는 것도 있다.세계의 거대 도시중 서울만큼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을 가진 도시는 없는데 정작 그중 최고의 장소인 한강위의 다리는 하나같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는 토목적 다리들이다. 도시의 가장 중요한 장소는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이고 다리다.템스강,센강의 수많은 다리는 물론 피렌체의 베키오다리,베네치아의 리알토다리,프라하의 카롤다리 모두 도시의 상징적 만남의 공간인데 한강의 다리는 자동차의 통행만을 위한 반인도적 다리다. 한강에 서울의 광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사는 문화공간의 다리를 세울 때가 되었다.서울을 가장 잘 볼수 있는 곳이 한강이고 서울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한강이므로 한강 위의 도시공간인 문화의 다리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될 것이다.문화의 다리는 문화공간이 도시인프라와 함께 하는 문화인프라로서 서울시민에게 삶의 빛나는 한때를 알게하는 상징적 장소가 될 것이다. ○반포∼동부이촌동 연결 한강에서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것이 보이는 반포 둔치와 중앙박물관이 서는 용산공원앞 동부이촌동 둔치를 잇는 문화의 다리를 세우면 서울 어디에서도 한강에는쉽게 갈수 있으므로 한강에서 배를 타면 문화의 다리에 닿고 거기서 경북궁으로,예술의 전당으로,중앙박물관으로 갈 수 있어 서울의 역사 문화공간을 도시 모든 곳에 닿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도시의 흐름에서 차단된 문화공간은 문화인프라일 수 없다.문화의 다리는 서울의 강북과 강남으로 나뉜 두 서울의 중심공간이면서 일상의 흐름에서 소외된 한강을 서울의 일번가로가 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한강으로 분단된 5백만의 두 불완전도시가 하나가 되게 하는 문화의 다리는 경북궁과 중앙박물관과 예술의 전당을 잇는 서울 문화인프라의 상징축상에 선,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위의 도시공간이 될 수 있다. ○최고의 수상도시공간을 연간 1억인구가 될 공항과 항구가 모인 서해안으로부터의 흐름과 서울의 도시흐름이 만나는 21세기 서울광장이 될 문화의 다리를 중앙박물관 건립을 계기로 건설하자.한강위에 샹젤리제만한 거리를 만들어 서울 문화인프라의 중심공간으로 만들수 있어야 서울이 서울시민의 것이 될 것이다. 가슴을 닫고 사는 서울시민 모두의마음을 도시공간과 잇는 문화의 다리인 1만5천평의 선형 공간을 한강에 띄워 비문화적 도시에 문화를 심는 우리시대의 다리를 만들어 새로운 2000년에 닿게 하자.
  • 다이애나비 윤화사망/어제 새벽 파리서

    ◎승용차 터널벽 받아… 동승 애인 함께 다이애나 전 영국왕세자비(36)가 31일 파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졌다. 다이애나는 이날 새벽 0시경 파리 중심부 센강 북안에 있는 강변북로를 잇는 지하터널에서 타고가던 승용차가 중앙분리대와 도로벽을 잇달아 들이받는 바람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출혈과다로 4시경(현지시간) 사망했다고 프랑스 내무부가 공식 발표했다.〈관련기사 9면〉 다이애너와 동승했던 그녀의 연인이자 이집트의 재벌 2세 도디 알­파예드(42)는 사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다이애너 일행은 이날 새벽 이른바 ‘파파라지’로 불리는 상업 사진사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과속으로 달리다가 충돌사고를 일으켜 변을 당했는데 타고 있던 메르세데스 벤츠 600 승용차는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영화 초대석)

    ◎우연히 만난 남녀 끊임없는 격렬한 정사/70년대초 작품불구 「예술·외설」 논란 일듯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이미 세계 영화계에서 논란의 여지없는 명화로 꼽힌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이 영화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비로소 시작될 전망이다.70년대 초 만든 작품이 이제서야 국내 영화팬들에게 공개되기 때문이다.더욱이 영화 자체가 2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보아도 충격적이어서 논쟁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파리 센강 위를 달리는 전철 교각 아래에서 중년의 사나이 폴(마론 브란도 분)이 귀를 막은채 절규하지만 그 소리는 전철이 내는 소음에 묻혀버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이어 20대 아가씨 잔(마리아 슈나이더)이 임대아파트를 구하고자 들른 방에서 잔과 폴은 만난다.별다른 대화없이 격렬하게 정사를 벌이는 두사람.잔은 폴의 정체를 궁금해 하지만 폴은 이름을 가르쳐 주는 것마저 거부한다.둘은 아파트에서 만날 때마다 섹스에 탐닉한다.폴은 뒤늦게 잔에 대한 사랑을 실감하며 레스토랑에서만나 청혼한다.그곳에서는 탱고 경연대회가 진행중이다.폴은 잔과 함께 멋대로 춤을 춰 대회를 망친다.자신을 쫓아내는 주최측 인사에게 폴은 엉덩이를 까보이며 야유한다.한편 잔은 폴이 실체를 밝히며 청혼하자 오히려 그에게서 달아난다.자신을 쫓아 집까지 따라온 폴에게 총을 쏜 잔은 『난 저 사람을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잔의 몸에 버터를 바르고 계간하는 장면을 비롯,섹스신은 노골적·변태적이며 폴이 거침없이 내뱉는 대사들도 대단히 상스럽다.일부에서 이 영화를 외설로 규정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같은 장면·대사를 통해 자본주의의 틀에 갇힌 현대인의 절대적 고독을 밑바닥까지 보여준다.마론 브란도의 명연기는 설명이 필요없겠고,이 작품으로 데뷔한 마리아 슈나이더의 연기도 대단하다. 「마지막 황제」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베르나르도 베루톨루치 감독의 72년 작품.21일 개봉 예정.
  • 서울을 아름다운 도시로 되살리자/공형식(발언대)

    서울은 북악산·남산·인왕산·낙산 등 아기자기한 산에 둘러싸여 있는데다 특히 한가운데로 한강이 흐르고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도시다.런던의 테임스강이나 파리의 센강의 폭은 한강에 견준다면 샛강정도밖에 되지 않는다.이렇게 천혜의 조건을 지닌 서울은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각종공해에 찌들고 공기마저 몹시 혼탁한 도시가 돼버렸다. 홍콩의 권위 있는 여행전문지 「비즈니스 트래블러」는 최근 1천명을 대상으로 도시별 교통상황과 대기오염·물가 등 모두 12개 항목에 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서울이 세계 46개 대도시 가운데 39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이 34위인 자카르타와 35위 대북,36위 양곤,37위 모스크바,38위 북경보다 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지난 94년의 31위,95년의 35위에 비춰본다면 외국관광객의 서울에 대한 인상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것은 큰 폭의 관광수지적자로 나타났다.이 잡지는 서울이 ▲택시잡기 어렵고 ▲외국인에게 친절하지 않고 ▲대기가 심하게 오염됐으며 ▲교통체증이 심각한도시라고 보도했다.특히 도로표지판 등 관광안내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부끄러울 따름이다.가장 좋은 여행지로 뽑힌 도시는 호주의 시드니로 최근 3년연속 선두를 지켰으며 캐나다의 밴쿠버는 지난 95년의 4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아시아지역에서는 싱가포르가 종합순위 5위로 유일하게 상위 10위권에 포함됐다고 한다. 전국의 산이 저마다 곱게 물든 단풍으로 단장,뻬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은행나무 등 서울의 가로수잎을 보면 자동차공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낄 수 있다.시민 모두가 자동차 운행횟수를 줄이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맑은 공기를 되찾아 외국관광객의 발길을 서울로 되돌리도록 노력하자.〈서울 제11지구 의로보험조합 대표이사〉
  • 서울의 색이 어둡다/조윤애 고대 안암병원 안과과장(굄돌)

    그림같은 바다로 둘러싸인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힌다.연중 초가을 날씨에 각양각색의 밝은 파스텔 톤으로 치장된 유럽풍의 예쁜 집들은 천혜의 미항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동양의 샌프란시스코로 불리는 홍콩 또한 화려한 주위 경관으로만 인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세련된 도시감각을 살린 높은 빌딩은 물론이려니와 밝은 색으로 칠해진 아파트며,차의 화려한 색들에서도 경쾌함이 뿜어난다.대중교통 수단인 이층버스가 빨간색인데도 유치하지 않고 오히려 동화속 버스같아 미소를 자아낸다.일본은 택시를 흰색으로 통일하였다.이들은 자연의 혜택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우나 밝고 예쁜 색으로 도시의 분위기를 명랑하게 연출하고 있다. 천혜의 조건을 보자면 서울도 이들에 못지않다.도심중앙에 단아한 남산이 있고 외곽에는 북한·불암·아차·관악·우면·구룡·대모·청계산들이 우아한 병풍을 두른 듯하다.유유히 흐르는 한강은 실지 그 유명한 센강보다 시원하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서울이라면 왜 충충한 회색의 도시가 연상되는 걸까.주범은 매연과 먼지로 범벅된 스모그일지 모르나 그의 제거는 영원한 숙제다.대신 다른 도시처럼 건물과 차 색깔들로 회색의 서울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몇해전 버스가 밝은 색으로 바뀌었을 때 사람들은 무척 반겼다.아파트 색들도 밝게 바뀌고 있다. 이제 여전히 회색계통에 머물고 있는 그많은 택시들도 흰색,노란색등 예쁜 원색으로 통일해보자.밝고 정리된 느낌으로 시민들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주고 눈에 잘 띄어 교통도 원활해질 것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심어 관광객 유치에도 한몫을 하게 되리라.2002년에는 대망의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여기에 밝고 예쁜 색들로 치장된 상큼한 서울은 필수적이다.
  • 센강변 예식… 고성 피로연…/외국인 「파리 결혼관광」 붐

    ◎작년 1천5백여쌍… 주로 일·미인 많아/최소경비 10만프랑…여행사 유치경쟁 외국인의 파리 결혼관광이 유행이다.꿈과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관광을 하자는 것이다. 파리로 신혼여행을 떠날바에야 아예 결혼식마저 파리에서 가지면 일석이조라는 생각에서다.지난 한해동안 파리결혼관광을 한 사람은 1천5백여쌍.대부분은 일본인이고 그다음이 미국인이다. 결혼식장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파리시내 센강 바로 옆에 위치한 미국인 교회 캐티 화이트가 꼽힌다.프랑스 성당들은 외국인들에게 식장으로 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이 교회는 외국인의 결혼식 담당직원을 두고 예약을 받고 있다. 식장 대여비용은 6천프랑(90만원)이고 드레스등의 혼수용품을 빌려주기도 한다.이 교회에서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외국인은 모두 4백50여쌍이고 그중 4백쌍이 일본인이다. 결혼관광은 지난 90년대초부터 나타났으나 요즘들어 엄청나게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결혼식과 관광에 모두 적기인 5∼7월이 피크이다. 때문에 결혼관광시장은 연간 2천만프랑(30억원)으로 추정되면서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여행사들은 한사람당 1만1천프랑(1백70만원)∼2만1천프랑(3백20만원)정도의 관광상품을 내놓고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결혼관광객에게 눈독을 들이는 상인은 여행사뿐 아니라 대형 백화점도 마찬가지다.파리 최대 백화점의 하나인 갤러리 라파예트는 외국인 결혼관광객들에게 고급 드레스를 빌려주고 있으나 가격은 대외비이다. 또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파리 근교의 샤토(성)를 빌려줘 피로연을 갖거나 휴식을 취할수 있도록하는 성주도 나오고 있다.비용은 7천5백프랑(1백12만원)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결혼관광은 이런 저런 비용을 합하면 엄청난 호화판 결혼식이라는 비난도 있다.가족과 가까운 친지들만 파리의 결혼관광에 참석할 경우에도 10만프랑(1천5백만원) 이상이 드는 것으로 추정된다.일부 실속파들은 자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난뒤 파리로 신혼여행을 온뒤 교회에서 결혼식을 다시 갖기도 한다는 것이다.〈파리=박정현 특파원〉
  • 30대 한국인 남자 파리 센강서 익사/여 시체상자 갖고서

    【파리=박정현 특파원】 30대 한국인 남자가 여성의 토막 시체더미가 든 상자를 갖고 파리 센강에 빠져 숨져 있는 희대의 범죄사건이 발생해 파리경찰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파리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황우열(32·파리시내 거주)씨가 15일 상오 7시(현지시간) 파리시내 베르시 다리 아래 빠져 숨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경찰은 황씨와 함께 한 상자를 건져냈으며 이 상자에는 신원을 알수없는 여인의 토막 시체더미가 발견됐다.
  • “드골이후 가장 탁월한 불지도자”/타계한 미테랑 전 불 대통령

    ◎14년간 최장수 집권… 유럽통합 주역/외교·인권에 큰업적… 핵실험 중단도/말연 전립선압 투병속 강인한 정신력으로 존경받아 프랑스 현대사의 큰별이 졌다.프랑수아 미테랑 전프랑스대통령이 타계한 것이다.그는 커다란 정치적 업적을 남겼지만 그보다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더욱 큰 존경을 받아왔다. 미테랑전대통령은 집권말기 전립선암으로 대통령직을 더이상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투병생활을 했다. 지난94년 12월 헬무트 콜 독일총리와의 정상회담때는 회담도중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왔다. 자크 시라크대통령도 8일 내외신 기자와의 신년하례식에서 병앞에서 무력함을 보여주지 않은 그의 자세를 의식한듯 『미테랑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고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그는 병을 앓으면서 각별한 용기를 갖고 살아왔다』고 투병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을 하라는 의사권유에 따라 한달전까지만 해도 센강변을 산책하던 모습을 보여주면서 투병생활을 계속했다.그러나 결국 그는 퇴임 8개월여만에 79세의 생애를마감했다. 미테랑은 지난80년 프랑스 사상 처음으로 사회당정부를 탄생시킨뒤 14년동안 최장수 집권을 누려왔다.드골 대통령이후 가장 탁월한 지도자였던 그는 콜독일총리와 함께 유럽을 한지붕으로 엮는 통합을 적극 추진해 프랑스를 유럽의 2대 맹주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2차대전후 무기력상태에 빠져 있던 프랑스국민들에게 새힘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외교·국방면의 업적은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게 했다. 집권하던해 사형제를 폐지하는 등 그가 펼친 인권정책은 돋보이는 치적의 하나로 꼽힌다.또 문화의 대중화정책은 프랑스와 파리를 세계문화의 중심지로 더욱 빛나게 했다.그는 핵실험의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었다. 미테랑은 화려한 사회당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재정적자와 인플레 등의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결국 사회당 정책은 제대로 이뤄내지는 못했다.중앙집권에서 탈피해 지방정부에 많은 권한을 이양하는 등 과감한 정책을 폈으나 10여년만인 집권말기에 지방정부의 부패현상을 빚기도 했다.
  • 불 노총,10일 전면파업 선언/쥐페 총리 긴급각의 소집…대책부심

    ◎택시·의사·은행 등 민간분야도 동참 【파리=박정현 특파원】 열흘을 넘긴 파업으로 전국이 마비현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는 4일 저녁 긴급 각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총리실이 밝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방문하고 있어 알랭 쥐페 총리가 주재할 이번 각의는 하오 6시에 열리며 각의가 끝나면 정부 대변인의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이라고 총리실 관리들은 덧붙였다. 4일로 파업 11일째를 맞은 프랑스에서는 전철·철도및 시내버스등 대중교통운행이 전면 중단됐고 공립학교·미술관·프랑스전화국과 우체국·병원등도 파업을 계속했다. 게다가 노조조직의 하나인 근로자의 힘(FO)은 파업을 전분야로 확대할 것을 촉구했으며 노동총연맹(CGT)은 오는 10일을 전국적인 파업의 날로 선언,파업은 민간분야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CGT는 5일 파리등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를 벌일 예정이며 택시도 이날부터 운행을 중단하고 의사들도 파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또 국영항공사인 에어 프랑스와 에어 엥테르 항공의승무원들이 7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어서 항공수송수단도 큰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국영자동차회사인 르노자동차와 은행들도 이날부터 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사회보장제 개혁안을 수정하라는 노조의 압력에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자세를 견지해왔다. 한편 정부는 파업장기화에 대비,이날부터 1천7백여대의 관광버스를 임대해 파리시내 13개 터미널에서 무료운행에 들어 가는 등 긴급 교통대책을 실시했다.또 정부는 센강 유람선도 투입,무료로 시민수송에 나섰다. 한편 르 피가로지는 4일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국민의 51%가 정부의 사회보장안 양보에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 불 시라크도 조사 받을듯/호화주택 불법소유 관련

    【파리 로이터 연합】 23일 프랑스의 한 변호사가 검찰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시장이었을 당시 파리시가 부분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한 주택회사가 아파트를 구입하는 과정에 불법개입했는지 여부를 수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변호사 피에르 프랑수아 디비에는 피에르 코트 검사에게 시라크 대통령이 이 문제로 기소될 수 있는지를 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실이 프랑스 신문에 보도되자 프랑화는 급격히 하락,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한때 마르크당 3.5395프랑까지 떨어졌다가 3.5335프랑으로 회복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자신이 파리 시장이었던 77년이후 센강 좌안에 위치한 이 회사소유의 호화아파트를 임대해서 사용해왔다.
  • 서울 상장물(외언내언)

    서울시 청사 현관 위쪽으로 8개의 톱니안에 둥근 원이 그려진 마크가 새겨져 있는 걸 볼수 있다.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서울시의 상징 마크이다. 8개의 톱니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북악·인왕·남산·낙산등 8개의 봉우리를,그 안의 원은 서울성곽을 상징한 것이다.1946년 미군정하에서 「서울」이란 명칭이 선포된 뒤 이듬해 시민들의 공모로 채택된 휘장이다.이 휘장만으로 보면 서울의 공간을 도성안으로 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도에는 대개 심벌마크와 상징기념물이 정해져 있다.미국 뉴욕의 상징물은 커다란 사과인 「빅 애플」(BigApple)이고 일본의 도쿄도에서는 도민의 새로 철새종류인 붉은부리 갈매기를,도민의 나무로는 은행나무를 지정해 놓고 있다.유럽의 도시들은 깃발을 상징물로 정하고 있는데 파리의 상징은 센강의 배가 그려진 깃발이다. 서울시에서도 서울의 나무와 꽃,새를 지정한지 오래된다.시 나무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공해에도 잘 견뎌 가로수로 많이 쓰이고 있는 수종.천년도 더 사는 강인한 생명력을 서울시의 발전에 접목시킨 것이다. 시꽃은 개나리,새는 길조로 통하는 까치로 정해져 있다.그러나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홍보부족으로 아직은 시민들의 생활속에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번에 민선시장 시대의 출범을 계기로 수도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물·마크·슬로건 등을 새로 제정할 것이라고 한다.서울의 정체성을 살리고 새로운 이미지를 표현하자는 것이 그 취지. 인구 1천만이 넘는 대도시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거기에다 6백년의 역사를 갖는 고도란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가.서울을 사랑스러운 도시로 가꿀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친근한 상징물이 제정되기를 기대한다.
  • 불 국립도서센터 내부공사 시작

    ◎미테랑 집권2기 마지막 사업… 98년 준공/센 강변 30㏊에 70억프랑 들여 건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역점사업으로 건립을 추진했던 국립도서센터가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지난 3월 건축 공사를 끝낸데 이어 본격적인 내부시설 작업에 들어가 그 속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국립도서센터는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2기 사업중 마지막 사업으로 설립을 결정,세계 최대의 전문 도서관으로 세운다는 계획아래 지난 90년 착공했다. 지난 5월 정권이 바뀐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새정부도 국립 도서센터 건립을 지속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지난 90년 미테랑 정부는 철도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파리 13구 톨비악 센강변의 부지(30㏊)를 사들여 이가운데 도서관 자체에 7.5㏊나 되는 부지를 할당했다.지금까지 들어간 예산만도 50억프랑의 건축비에다 컴퓨터등 시설비용으로 20억프랑을 추가해 총 70억프랑(한화 약 1조2천6백억원)에 달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 지역을 도서센터를 중심으로한 복합 문화·휴식단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아래 도서관 건물 4동을1㏊의 숲으로 둘러싸이게 지어 녹지대속의 도서관 인상을 짙게 드리우게 했다.도서관 자체는 열람실과 아틀리에,냉난방시설 및 기자재실등 3개 영역별로 나뉘어 있는데 그 구조가 철저히 전문 연구자들을 위해 설계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열람실의 경우 1천4백석의 일반 열람석과 1천9백석의 전문 열람실로 구분되는데 국립도서관의 전문 열람석이 4백석에 불과한 점을 볼 때 전문 연구자들의 공간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열람실은 일반 열람실이 부분 개가식으로 운영되는 반면 전문 열람실은 소장고 4동의 서적을 자동 운반하는 컨베이어 시스템이 가동돼 이용자가 앉은 자리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돼있다.장서는 기존 국립도서관이 보유한 1천4백만권중 80% 가까운 1천1백만권을 이곳으로 이전해 보관하게 되며 현재의 국립도서관이 연도별로 장서를 보관하던 것을 전문 도서관이라는 기능에 맞춰 주제별로 분류해 보관하게 된다. 프랑스 문화성은 이 국립도서관을 유료로 운영하는 것과 함께 책 대출도 하지 않을 방침이다.이는 퐁피두센터 도서관을 무료 운영한 결과 이용자가 너무 많아 부작용이 컸다는 사실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란게 도서센터측의 설명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역대 그 어느 프랑스 대통령보다도 문화시설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훌륭한 건축물을 가진 국민만이 위대한 국민』이라고 말했던 미테랑은 국립 도서센터를 그 가시적인 공간으로 삼았다.오는 98년 준공까지는 앞으로 3년.프랑스가 자랑하는 퐁피두센터와 함께 센 강변의 새 명물로 등장할 도서센터가 파리시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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